雨霖鈴 第24

24. 三年不蜚不鳴
새가 삼 년 간을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다.

기왕의 시신이 발견된 날 저녁에 내관이 지붕에 올라 혼을 불렀다. 기왕의 장포가 지붕에 걸려 낙양성에 기왕의 죽음을 알린 것이다. 황제는 기왕의 시신을 발견하고 그의 시신을 붙들고 하염없이 울다가 혼절했다고 한다. 황제가 기왕을 아낀 것은 사실이었는지 황제는 기왕의 시신을 동궁에 안치했다. 부친이 아들의 상주가 될 수 없어, 조왕이 상주가 되었다. 동궁에 설치된 빈소에서 상복을 입고 머리를 푸르고 곡을 하는 조왕의 모습은 보는 이도 탄식하게 만들었다. 호상소는 녹상서사 장화와 장사왕 사마예가 맡았다. 그들은 각 부처에 상을 알리고 동궁을 방문하는 조객을 대접했다.

아비보다 먼저 죽은 자식은 불효자였으므로 예법대로 상을 치를 수도 없었다. 기왕의 시신은 발견된 다음날 아침 바로 대렴(大殮; 입관)하였다. 그리고 그날 낭야왕의 사병이 도성으로 들어왔다. 모든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낭야왕은 황후와 진왕을 석방하고 귀비 유씨에게 죄를 물어 참수하였다. 금위군의 대장군인 범무구(範戊救)는 저항도 하지 않았다. 낭야왕에게 반기를 들었던 남중랑장 사마흠은 사망하였고 유격장군 사마량은 옥에 갇혔다. 사마흠과 사마량은 낭야왕 사마운에게 재종형제다. 사마헌은 좌장사직을 내려놓고 다시 문성왕이 되었다. 황제는 대전 뒤에 있는 식건전에 감금되었다.

사계산장에서 받은 서신에는 파사어도 아니고 만주어도 아닌 글자 들이 쓰여 있었다. 주자서는 한참 그것을 보더니 다시 접어서 봉투 안에 넣었다. 온객행이 물었다. “아서 무슨 내용이야? 양주로 돌아 오래?” 주자서는 온객행을 물끄러미 보더니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렸다. 온객행이 엽백의를 만나고 대부분의 그의 인생을 함께 했지만 노야의 입에서 외출을 자제하라는 소리는 처음 들었다. 엽백의는 온객행이 그 말을 듣지 않을 것도 알고 있고, 그가 가르친 무공으로 온객행이 강호에서 위험에 빠질 일도 많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일은 강호만의 일이 아니다. 온객행은 주자서에게 물었다. “아서 왜 태산에 가야 한다고 했어?” 사계산장의 서신을 받은 주자서는 한참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온객행의 질문을 듣지 못했다는 듯 아무것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주자서는 오경이 끝나는 종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기침하여 주지를 찾아 갔다. 온객행은 방을 빠져나가는 인기척에 잠이 깨서 서둘러 옷을 입고 주자서의 뒤를 따라갔다. 방장실로 향하는 주자서의 발걸음은 거침이 없어서 그를 따라가기 위해 온객행은 훌쩍 경공을 썼다. 주자서는 따라온 온객행을 한번 흘끔 보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해가 어스름하게 뜨기 시작한 새벽은 아직 어두웠다. 하지만 방장실 내부에는 등롱이 켜져 있다. 주자서는 조용한 목소리로 공손하게 아침인사를 했다. 주지는 방문을 열고 나와 두사람을 맞이했다. 방장실 내부에는 회주와 처음 보는 노승, 그리고 아미파의 자순사태가 있었다. 주지는 주자서를 기다린 것처럼 그에게 자리를 권했다.

사계산장에서 보내온 서신에는 그들이 양주 일대에 있는 문파에 대한 자료였다. 오랫동안 얼굴을 보았던 문파도 있었고 새로 생긴 문파도 있었다. 하지만 서신에는 태호파와 화산파 그리고 개방의 분타 중에 하나인 복주에 관련된 내용만 있었다.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태호파와 남궁세가의 관계는 대외적인 것과 달리 그다지 좋지 못한 것이어서 태호파는 도성에 직접 자신들의 상품을 납품하고 싶어 했다. 남궁세가는 황산은장을 통해 태호파가 도성으로 진출하는 것을 막았다. 태호파의 재화는 낭야왕에게 있어 사병을 불리는 좋은 수단이 되었을 것이다.

태호파는 화산파를 시켜 합비 일대의 비옥한 땅이 있는 곳의 치안을 어지럽혔다. 남궁세가의 본거지가 있는 황산은 낙양으로 가기 위해 합비를 꼭 거쳐야 했는데 그 지역 일대가 위험하자 어쩔 수 없이 장강을 끼고 형주로 돌아서 갈 수밖에 없었다. 남궁세가의 눈을 가리고 삼백상단이 합비를 통해 낭야왕의 봉지가 있는 기주로 자금을 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치안이 불안한 합비 일대의 농민들을 사병으로 모집하였으면 그 수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낙양성에 낭야왕의 사병이 들어왔다는 것을 알고 있던 주지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사계산장은 이런 정보를 알고 있으면서 왜 말하지 않았을까? 주구전이 숭산으로 올 때 이들은 합비가 아니라 악양을 거쳐서 왔다. 다 알면서 장단에 맞춘 것인지 아니면 다른 속셈이 있는 것인지, 주지는 사계산장 같은 문파가 제일 어려웠다. 속을 알 수 없어 계속 사람을 살피게 만든다. 다행히 지금은 그들과 같은 편이므로 살필 것이 적다. 숭산은 사계산장을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다.

온객행이 주자서와 주지의 말을 듣고 입을 열었다. “태호파가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조용히 눈을 감고 명상하는 것처럼 앉아 있던 자순 사태가 입을 열었다. “하늘에서 칠보가 비처럼 내려도 사람의 욕망은 다 채울 수 없네.”(74) 노승이 입을 열었다. “앵속을 이용하여 사람을 노예처럼 부리는 것은 파사의 방식입니다. 최근 천마교의 분교 중 하나인 독갈이라 불리는 세력이 천마교 내부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자순사태가 말을 이었다. “그들은 익주 건령에 본거지를 두고 사람들을 잡아다 독을 실험한다 합니다. 청성산에서 있었던 일은 그들이 범인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온객행이 자순 사태를 보았다. 자순 사태는 온객행의 얼굴을 빤히 보더니 말했다. “온객행….” 노승 역시 온객행의 얼굴을 보다가 무언가 깨달었는지 자순사태에게 물었다. “견곡주의 양아들 여옥(如玉)에게 아들이 있지 않습니까?” 자순 사태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장명산 상선의 제자여. 그대 혹 견씨가 아니오?” 노승의 입에서 여옥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온객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인사도 하지 않고 방장실을 나갔다. 노승이 그를 붙잡기 위해 뒤따라 나갔지만 방장실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온객행은 ‘독갈(毒蝎)’이라는 이름을 들어 본적이 있다. 갈고리 같은 칼 끝에 전갈의 독을 발라 사람을 해쳤다. 그들의 독술은 중원의 것과는 달라서 암암리에 찾는 이가 많다고 들었다. 게다가 그들은 중원의 말을 쓴다. 만약 채미공자가 독갈의 일원이라면 초무관에서 독으로 사람들을 조종하거나 죽일 수 있었을 것이다. 독갈은 중원에서 멀리 있으니 원망으로 사람들을 해쳤을 리 없다. 누군가가 시킨 것이다. 누가 그들의 독술을 알아보고 그들을 중원으로 끌어들인 것일까? 온객행은 대웅보전의 서쪽에 있는 고루 지붕에 누워 해가 뜨는 것을 보았다.

설법이 끝나자 대웅보전에서 스님들이 쏟아져 나왔다. 주자서도 있다. 소림사에서 입는 회색의 법복이 아니라 하늘하늘한 흰색 무명옷은 눈에 띄었다. 주자서는 대웅보전 주변을 배회하다 지객당으로 향했다. 온객행은 어제 주자서가 태산으로 가겠다고 하던 것이 생각나 고루에서 훌쩍 뛰어내려 주자서의 뒤를 따랐다. 온객행이 지객당에 닿았을 때 주자서는 어젯밤 온객행이 멀리 던져 놓은 봇짐을 들고 나오는 중이었다.

온객행을 발견한 주자서는 잠시 멈칫 하더니 그를 지나 산문으로 향했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 “노야가 외출하지 말라고 했어. 태산에 가겠다면 나에게 이유를 말해.” 주자서가 온객행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그럼 자네도 청성곡의 이야기를 해볼텐가?” 주자서의 입에서 청성곡의 이름이 나오자 온객행은 온몸에서 힘이 쭉 빠지는 것 같았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소매를 붙잡고 바닥에 털썩 주저 앉자 이번엔 주자서가 놀라 온객행에 다가와 물었다. “노온 왜 그러는가?” 온객행은 무얼 말해야 할지 몰라 한참 입을 달싹이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주자서는 아무 말도 없는 온객행을 보다가 소매를 빼고 다시 산문으로 향했다. 온객행은 주자서를 부를까 하다가 감히 그렇게 하지 못했다. 소리를 내면 말이 아니라 울음이 나올 것 같다.

바닥에 주저 앉아 있는 온객행을 발견한 심아는 들고 있던 찬합을 내려놓고 그를 일으켜 객실 안으로 들어갔다. “온공자 무슨 일입니까? 괜찮아요?” 온객행은 심아의 부축을 뿌리치고 제 발로 걸어서 객실에 있는 의자에 가서 앉았다. 심아는 내려놓은 찬합을 가져와 열며 말했다. “아직 요기하지 않았지요? 주방에는 사람이 많아 제가 찬을 좀 챙겨 왔습니다. 그런데 주공자는 어디 갔습니까?” 그리고는 객실안을 두리번거렸다. 온객행은 ‘끙’ 앓는 소리를 낸 후에 심아가 탁상위에 올려 놓은 찬을 집어먹었다.

주자서가 태산으로 간다 하였으니 무공도 없는 몸으로 고생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요기도 하지 않았고 수중에 돈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심아만 옆에서 안절부절 못하였다. 지객당을 나가기도 전에 훌쩍 경공으로 날아오른 온객행의 눈에 이제 산문을 넘은 주자서가 보였다. 훌쩍 뛰어 그의 곁으로 가서 서니 주자서가 몸을 뒤로 빼며 말했다. “이러지 마시오.”

온객행은 양손을 앞으로 들어 흔들면서 말했다. “아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주자서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나를 붙잡으러 온 것이 아니오!” 온객행은 억울하다는 듯이 뒷짐을 지고 서서 말했다. “당신이 길 위에 먼지라면 저는 흐린 물속의 진흙이에요. 당신 마음이 열리지 않는 다면 소첩은 어디에 기대야 할까요?”(75) 주자서가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우린 이제 그런 사이가 아니니 희롱은 그만 두시오.” 온객행이 품속에서 옥패를 꺼내며 말했다. “아직 보름이 지나지 않았으니 대답은 신중히 하시오.” 그리고는 주자서의 하얀 요대를 끌어당겨 옥패를 달았다.


공의성에 닿자 온객행이 생각했던 대로 분위기가 살벌했다. 성을 드나드는 사람도 많지 않았고 성문 먼 곳까지도 병졸이 늘어서 있었다. 온객행은 관도를 통해 태산으로 가는 것은 이미 틀렸다고 생각했다. 관도를 통해 쉬지 않고 걸어도 이레는 걸리는 길을 관도가 아닌 길로 가야 하니 정말 고생이다. 운이 좋으면 주구전을 만날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도성에서부터 시작되는 평야는 태산까지 이어져 있다. 곡우가 지나 모를 키우거나 씨를 뿌리는 사람들이 많으니 눈을 피해 움직이기가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례의 지역에 대해 잘 모르는 주자서를 잘 달래 온객행은 일단 정주로 향했다. 낙양에서 멀어질수록 사병의 숫자가 눈에 띄게 줄었다. 온객행은 낭야왕에게 위나라를 포위해서 조나라를 구하려는 세력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했다.(76) 그들은 부지런히 걸어 다음날 정주에 도착하였다.

정주에도 주둔하고 있는 군병이 많아 온객행과 주자서는 성에 들어갈 수 없었다. 정주는 성밖에도 번화했기 때문에 두 사람은 허름한 객잔에서 하룻밤을 머무른 뒤에 개봉으로 향했다. 주자서는 온객행이 여비를 사용하는 것이 고마웠으나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관도에서 꽤 거리가 있는 작은 길을 걸으면서도 도성으로 향하는 작은 부대 몇 개를 만났다. 온객행은 걸으면서도 흰소리를 멈추지 않았는데 주자서는 질려 하는 기색이 만연하였으나 내색하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쓰는 중이었다. 두사람은 서로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었으나 묻지 않았다. 온객행은 표정 없는 주자서가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밤이 늦어 또 다시 야숙하게 된 두사람은 익숙하게 각자 할 일을 찾아 했다. 온객행은 근처에 있는 마을에 가서 먹을 것과 불씨를 구해왔고, 주자서는 두사람이 잘 수 있는 자리를 찾아 장작을 주웠다. 온객행이 오면 모닥불을 피우고 다가오는 들짐승을 경계하며 쉬는 것이다. 온객행은 얻어온 밀떡을 주자서와 나눠 먹고 근처에 있는 돌에 기대어 하늘을 보았다. 달이 없는 밤하늘은 별이 밝다.

다음날은 아침부터 날이 흐렸다. 비가 쏟아 지기 전에 최대한 많이 이동해 두고 싶었던 온객행은 주자서의 호리낭창한 허리를 안고 나무의 가장 높은 곳을 밟았다. 얼마 가지 않아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점점 굵어지기 시작했다. 숲에서 비를 피할 곳을 찾다가 폐가를 발견했다. 폐가 근처에 있는 밭에는 풀이 무성하다. 사람이 안 산지 오래 되어 객이 많았다. 먼저 온 객을 내쫓을 수는 없어 온객행과 주자서는 처마 끝에 서서 내리는 굵은 빗방울을 구경했다. “오늘은 하루 종일 올 모양인데? 아서.” 온객행이 말했다. “그러네.” 주자서가 답했다.

온객행은 비가 오는 날을 좋아하지 않는다. 비는 잊고 싶은 것들을 다시 상기시켰다. 다들 오래된 일이라고 하지만 온객행에게는 아직도 진행중이다. 노야는 허튼 짓 하지 말라고 했지만 정말로 청성곡 사건의 실체를 아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을까? 온객행은 그럴 수 없다. 기필코 복수하여 청성곡의 묘비가 있는 곳에 그 자의 살가죽을 벗겨 제를 지낼 것이다. 그게 몇이 되었건 신분이 어떻건 온객행은 분이 풀릴 때까지 그렇게 하리라고 마음먹었다.

온객행은 어깨를 잡아오는 손길에 놀라 벌떡 일어났다. 주자서는 당황한듯 온객행을 보며 말했다. “노온 괜찮아? 안색이 좋지 않네.” 온객행은 어색하게 웃으며 주자서의 허리를 안았다. 어깨에 고개를 걸쳐 놓고 말했다. “아서, 나는 비를 무서워해. 오늘 밤은 잠 못 이루는 밤일 것 같아.” 주자서가 웃으며 말했다. “밤이라면 아직 멀었는데 미리 걱정이시오.” 주자서는 온객행의 등에 손을 올려 그를 쓰다듬었다. 뿌리칠 것 같았는데 또 뿌리치지 않는다. 주자서는 이렇게 정말로 그가 위안이 필요할 때는 그를 뿌리치지 않는다.


다음날 개봉에 도착한 온객행과 주자서는 역시 성안에 들어가지는 못했다. 통행패나 성안에 살고 있는 사람의 입증 없이는 들어 갈 수 없었다. 웃긴 것은 개방에 소속된 증표로 허리에 매는 끈을 묶은 거지들은 자유롭게 통행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내리던 비는 오다 그치기를 반복하여 두사람은 흠뻑 젖어 있었다. 내공이 흩어진 주자서는 입술이 파랗게 질려 덜덜 떨기 시작했고 온객행은 야숙에 지쳐 피곤한 상태였다.

성 앞에 있는 차를 파는 노점에 앉아 몸을 녹였다. 어떡하나 생각하는 온객행을 두고 주자서가 벌떡 일어나 사람들 속으로 걸어갔다. 온객행은 당황하여 찻값을 치르는 것도 잊고 주자서를 따라갔다. 노점상이 뒤에서 마구 욕을 해댔다. 사람들 속에서 주구전이 허허허 웃는 얼굴로 걸어 나왔다. 온객행은 자기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주구전은 쫄딱 젖은 주자서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어깨를 쓰다듬었고 온객행을 발견하고는 그에게 다가왔다. “온공자! 온공자도 이렇게 함빡 젖어서는….” 주구전은 온객행에게 마구 욕을 해대던 그 노점상으로 다시 돌아가 따뜻한 차를 주자서 손에 쥐어 주며 말했다. “어찌 여기 있어?” 주자서는 품에 안고 있던 봇짐 안에서 살짝 젖은 서신을 주구전에게 내밀었다. 아마도 사계산장에서 온 서신일 것이다. 주구전은 봉투를 열어 안에 있는 서신을 읽었다. 빗물에 조금 번져 있었지만 읽는 데에는 문제가 없는듯 주구전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자서가 주구전에게 물었다. “조부, 기왕전하께서 등하 하셨습니다.” 주자서의 목소리는 울먹이고 있었다. 기왕의 죽음이 왜 저렇게 서러운 것일까? 주구전은 놀라서 물었다. “낙양에서의 빈례가 기왕전하의 등하란 말이냐?” 주자서는 눈초리에 눈물을 달고 고개를 끄덕였다. 주구전은 손에 들려 있던 찻잔의 차를 마시고 탁상에 올려 놓으며 다시 물었다. “어찌…어찌…기왕전하께서…?” 눈꼬리에 달려 있던 눈물은 결국 흘러 넘쳐서 주자서의 얼굴을 적셨다.

온객행은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주자서의 옆에 앉아 그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아서, 울지마.” 고개를 숙인 주자서의 눈에서 떨어진 물방울은 주자서의 소매를 적셨다. 주구전은 둘이 하는 모습을 보고만 있다가 한숨을 ‘어휴’ 하고 쉰 다음 온객행에게 물었다. “온공자 대체 무슨 일이오?” 온객행이 말했다. “기왕전하는 이미 대렴했어요. 이미 장사(관을 묻음)지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주구전이 탄식하며 말했다. “아니 그런 법도가 어디 있는가?” 온객행은 고개를 끄덕여 주구전의 말에 동의를 표하며 말했다. “주대인께서는 혹 앵속을 아시오?” 주구전은 눈에 띄게 놀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저 반응은 앵속이 무엇인지, 그 앵속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도 다 알고 있는 눈치였다. 대체 이 노인네는 언제부터 알고 있었던 것일까? 주구전은 더 묻지 않고 앉아서 차를 마시며 생각에 잠겼다.

주자서는 소매로 눈물을 닦고는 주구전에게 말했다. “조부, 제가 이름을 찾으려 하면 어찌 해야 합니까?” 주구전은 눈을 뜨지 않은 채로 고개를 젓고 말했다. “신중히 하였느냐? 남의 선을 말할 때는 자랑하듯 하고, 남의 악을 말할 때는 스스로 그 악을 뒤집어쓴 듯이 해야 한다 했다.”(77) 주자서는 주구전의 말을 듣고 또 한참 눈물을 쏟다가 말했다. “저는… 저는 모친과 유교의 덕으로 살지 않기로 약속했습니다.”(49) 주자서의 말에 주구전이 눈을 뜨고 눈썹을 찌푸리며 주자서를 보았다. 그는 금방이라도 주자서와 함께 울 것 같은 표정을 하다가 이내 다시 눈을 감고 마음을 정리하는 것 같았다.


온객행은 두사람이 대화할 수 있도록 요기거리를 사온다는 핑계로 자리를 피했다. 이름을 찾겠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갑자기 뜬금없이 무슨 소리인가 싶다가 온객행은 조왕과 진왕이 일부러 주자서를 괴롭히는 것이 생각났다. 마치 아주 오래 전부터 알던 사람들처럼. 누굴 닮았다고도 했다. 고모님? 진왕의 고모라면 몇 년 전에 사고로 사망한 경무장공주일 것이다. 주자서가 왜 장공주를 닮았을까? 황제의 자식 중에는 기왕을 제외한 서자는 없다.

애초에 황제가 용양군이 아닐까 하는 소문이 날 정도로 황제는 여색을 멀리했다. 황후는 황제가 되기 전에 맞이한 정실이었고, 귀비는 전쟁 중에 얻은 첩이다. 황제로 등극한 후 이미 아들이 셋 있었으므로 후처를 들이지 않았다. 그러니 주자서가 황자일 리는 없다. 하지만 황자 못지 않은 높은 신분일 가능성도 없지는 않았다.

장공주의 아들이라 하던가 아니면 봉지를 하사 받은 군왕의 사생아라 하던가 사마씨의 황족은 어디를 가나 차고 넘치기에. 온객행이 한참을 돌아 다시 찻집으로 돌아왔을 때 주자서는 여전히 울고 있었다. 주구전은 단호한 기색으로 그를 나무라고 있었다. 주자서의 옆으로 가서 역성을 들자 주구전이 ‘하’ 하고 헛웃음을 지었다.

주구전은 찻값을 치르고 개봉성 밖에 있는 낡은 주점에 방을 잡았다. 주거지와 가까이 있어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정겹다. 사람들의 소란스러운 소음에 목소리를 감춘 온객행과 주구전이 대화했다. 온객행은 초무관에서 있었던 일과 엽백의가 ‘독갈’이라는 마교 집단에 대해 알아보러 갔다는 말을 하였다. 주구전은 태산파와 화산파 뒤에 있는 세력이 삼백 상단이며 그 중 조경이라는 자가 가장 의심스럽다는 말을 했다.

그는 진회장과 함께 서국공과 무언가를 찾으러 다닌 이후로 무공이 크게 늘었으며 그를 견제하는 사람들은 모두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다고 했다. 그의 양부, 그의 정인 그리고 신분이 미천한 그의 양친마저. 온객행은 주구전에게 청성곡의 이야기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으나 주구전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본인이 선뜻 청성곡의 이야기를 꺼냈다.

“진회장은 서국공과 헤어진 이후에 악양파는 물론이고 함께 서국공을 따랐던 사람들을 모두 경계했네. 청성곡의 소식을 듣고 바로 가지 못했던 것도 그들 중에 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네. 사계산장도 넉넉치 않은 살림이었기에 내가 대신 가서 청성곡을 살폈지만 이 노인네에게 무슨 재주가 있겠는가 소흥주 한단지에 청성곡 모두의 혼을 부르는 수밖에.”

청성곡을 수습한 이가 주구전이었다. 온객행은 다급하게 주구전에게 물었다. “혹 아무것도 보지 못하셨습니까?” 주구전은 의아 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무엇이 말인가?” 온객행이 물었다. “화살…화살에 맞은 시신이 있었습니까?” 주구전은 놀라며 온객행에게 말했다. “그것이 화살에 맞은 흉터였군. 흉터만 있을 뿐 어떻게 그런 흉터가 났는 지 알 수 없었네, 자네가 화살이라 하니 그런 것 같네.”

온객행이 다시 물었다. “화살이 없었단 말입니까?” 주구전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화살은커녕 날붙이도 없었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시일이 많이 지난 후라 시신의 형태가 온전하지 않았네, 게다가 우기가 지난 후라 날이 더워 부패가 심했네. 토사물에 휩쓸려 죽은 것이 아니라는 말인가?”

관가의 짓이다. 어떤 강호의 문파도 익주 산골짜기에 한달도 안되는 기간 안에 시신을 처리할 수 있는 곳은 없다. 익주에 있는 문파는 대체로 가파른 산에 막혀 서로 자주 왕래하지 않았고 중원에 상관하기를 꺼려했기 때문에 청성곡의 일은 익주에 가장 나중에 알려졌다. 아니면 알려지지 않도록 관가에서 수를 쓴 것이다.

무고의 일을 알고 있는 것은 서국공과 문성왕 사마헌이다. 사마헌이 낭야왕 사마운에게 말했을 수도 있다. 그러니 사마운의 입에서 무고의 열쇠를 찾는 다는 말이 흘러나오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무고를 열고 싶어하는 사람은 태호파 조경이 분명하다.

(74) 법구경 佛陀品 불타품 186

天雨七寶 欲猶無厭 樂少苦多 覺者爲賢
하늘이 칠보를 비처럼 내려도 사람의 욕망은 다 채울 수 없다. 즐거움은 잠깐이요. 괴로움이 많다고 지혜 있는 사람은 깨달아 안다.

(75) 조식 칠애시

君若清路塵 妾若濁水泥, 君懷良不開 賤妾當何依.
당신이 만약 맑은 길 위의 먼지라면 첩은 흐린 물속의 진흙이에요. 당신의 품이 열리지 않는다면 천첩은 어디에 기대야 할까요?

(76) 사기 손자오기열전 囲魏救趙(위위구조) 위나라를 포위해서 조나라를 구하다.

전국시대 위나라는 강대국으로 성장하여 조나라를 쳐들어 간다. 조나라는 제나라에 구원을 요청했고 제나라는 청에 응한다. 위나라와 제나라 조나라는 국경을 마주하는 나라들로 제나라의 병법가 손빈은 조나라를 돕는 대신 조나라 정벌을 위해 출정한 위나라의 수도 안읍을 공격한다. 제나라의 군대는 갑작스러운 공격에 허겁지겁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77) 공자가어 標題句解孔子家語 상편 14 辯政, 정치를 변론함

子曰 勤之愼之, 言人之善 若己有之 言人之惡 若己受之 故君子無所不愼焉
“부지런히 하고 신중히 하라. 남의 선을 말할 경우에는 자기가 그 선을 소유한 듯이 하고 남의 악을 말할 경우에는 자기가 그 악을 뒤집어쓴 듯이 해야 한다. 그러므로 군자는 신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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