蛇苺 第21

指桑罵槐 | 21. 뽕나무를 가리켜 회나무를 욕하다.

주요는 청구와 양조의 말을 듣고 나서야 금모원군께서 공공을 시켜 일부러 고상을 불렀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래서 요대에 도착해서 금모원군의 알현을 청했지만 거절당했던 것이다. 할 수 없이 공공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려고 했는데 이제 보니 공공을 만나기도 틀린 것 같다. 주요가 작게 한숨 쉬고 고상에게 말했다.
“아상. 아무래도 공공을 오늘 뵙기는 힘들 것 같으니 내일 아침에 다시 오자.”
고상이 주자서의 손을 잡고 주요에게 가서 말했다.
“주요. 아직 나도 혼인을 안 했는데 우리 아이가 먼저….”

주요가 고상의 뺨을 쓸고 말했다.
“너무 서운해 마라. 이 아이도 파사의 변덕에 장단을 맞추는 것뿐이니.”
온객행이 주자서의 곁에 붙어서 그의 허리를 안고 말했다.
“변덕 같은 것이 아니오.”
주자서가 온객행을 힐끔 보더니 ‘하’하고 헛웃음 쳤다. 온객행이 눈썹을 늘어뜨리고 말했다.
“유서!”
고상이 주자서에게서 온객행을 떼어내고 말했다.
“아직 나는 우리 아이를 보낼 마음이 없단 말이오! 이제 막 솜털 같은 우리 아이를 꼬드겨서!”
주자서가 한숨을 쉬고 이 상황이 재미있다는 듯이 보고 있는 청구와 양조에게 말했다.
“저희는 어디에 머무릅니까? 별궁으로 갈까요?”

주자서가 먼저 남궁의 동쪽에 있는 별궁으로 향하자 양조가 다가와 그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아니오. 동궁으로 갈 거요.”
주자서가 눈썹을 찌푸리고 청구와 양조를 보았지만 더 말하지 않았다. 주자서가 청구와 양조를 따라 움직이자 고상이 청구와 양조의 눈치를 보며 주자서의 팔에 매달렸다. 청구가 고상을 보고 말했다.
“네가 그 화사구나. 너는 물가에 산다지?”
고상이 주자서의 눈치를 보고 똑바로 서더니 다소곳이 손을 모으고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고상. 청구 어르신과 양조 어르신을 뵙습니다.”
양조가 동궁으로 향하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아직 이름도 없구나.”
청구가 양조를 따르며 말했다.
“아직 원군을 뵙지 않았으니까. 원군을 뵙고 나면 하늘에서 부르는 이름이 생기겠지.”

청구는 어깨너머로 화사의 옷을 입고 있는 고상과 주자서를 보고 웃었다. 주자서가 청구와 양조의 뒤를 따르자 고상이 다시 주자서의 소매를 잡고 기대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유서. 나는 요대에 처음 와 봐.”
주자서가 손을 펼쳐 귓속말하듯이 고상에게 물었다.
“아상께서도 구름을 밟고 오셨어요?”
고상이 주자서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주자서가 ‘흠’하고 다시 앞을 보고 걸었다. 고상이 주자서의 소매를 당겨 물었다.
“왜? 유서는 구름을 못 타?”
주자서가 고상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고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왜? 주요의 비녀도 있고 내 피도 마셨는데 왜?”
주자서가 고상을 보고 고개를 흔들었다. 고상이 주자서에게 몸을 붙이고 말했다.
“왜 그렇지? 있다가 처소에 도착하면 주요에게 봐 달라고 할게.”
주자서가 부스스 웃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아상께서 걱정하실 일이 아니에요.”

고상이 주자서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고 말했다.
“여기 살 것도 아닌데 구름 좀 못 타면 어때. 내가 안고 가면 되지.”
주자서가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영력을 쓰셔도 되겠어요?”
고상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정말… 여기 있는 모든 것이 나보다 영력이 많은 것 같아. 좀 무서워.”
주자서가 동조하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여기 계신 분들은 육신이 아니라 혼령을 먹는데요.”
고상이 고개를 들어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혼령도 먹을 수 있어?”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상이 눈썹을 찌푸리고 물었다.
“혼령은 어떻게 먹는데?”
주자서는 고상의 의문에 조금 질려서 작게 웃고 말했다.
“왜요? 제 혼령을 드시게요?”
고상이 몸을 바로 하고 주자서의 어깨를 밀고는 말했다.
“유서를 내가 왜 먹어. 먹을 거였으면 내 아이 삼지도 않았지.”
주자서와 고상은 서로 마주 보고 웃음을 참았다. 시시덕거리는 주자서와 고상의 이야기를 듣던 양조와 청구도 어깨를 들썩이며 조금 웃었다.

온객행은 딱 붙어서 앞서 걷고 있는 주자서와 고상이 못마땅해 표정을 구기고 걸었다. 주요가 온객행을 보고 ‘흥’하고 웃으며 말했다.
“겁이 많아서 싫다더니.”
온객행이 주요를 보고 부루퉁하게 말했다.
“그러는 그대는 사내는 싫다더니 이렇게 친히 지켜주러 오셨소.”
주요가 온객행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찌르며 말했다.
“내가 즉저에게 얼마나 많이 뺏겼는지 아는가? 용왕이 되면 다 갚게.”
온객행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용왕 안 한다는데 다들 왜 이러시나.”
주요가 온객행을 쏘아보며 말했다.
“그럼 무슨 수로 지키려고 하나?”
온객행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주요. 발의 영력은 봉인된 것이 아니오?”
주요가 앞서 걷는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아무래도 내가 봉인을 깬 것 같아. 다행히 유서가 잘 버텨주고 있는데 얼마나 갈지 모르겠어.”
온객행이 주요의 소매를 잡고 물었다.
“발의 영력을 옮길 방법은 정말 없소?”
주요가 한숨을 쉬고 말했다.
“영력을 옮기는 방법이야 많지.”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고 주자서를 보았다.
“유서가 버틸 수 있을까요?”
주요가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그게 문제야.”
온객행도 한숨을 쉬고 앞서 걷는 주자서를 보았다.


동궁은 온객행과 주자서가 머물렀던 허름한 별궁의 객실과는 차원이 달랐다. 커다란 외실 안쪽으로 중앙에 사령의 처소가 있고 왼편에는 서재와 집무실이 오른편에는 별실과 객실이 있었다. 그 앞에 작은 정원에는 정각이 있었는데 그곳에 앉아서 차를 마시던 봉황이 그들을 반겼다.
“수원!”
주요가 봉황을 보고 인사했다.
“안시선을 뵙습니다.”
봉황이 주요에게 다가와 팔을 잡고 말했다.
“수원. 예를 거두게. 오랜만이군.”
주요가 작게 고개를 흔들자 봉황이 혀를 차며 말했다.
“그대는 내게 수원이니 그리 알게.”
그리고 제일 큰 객실로 주요를 안내했다. 봉황이 주요에게 말했다.
“동궁은 손님이 많지 않아서 객실이 크지 않으니 불편해도 참아주게.”
주자서는 백택의 정전보다도 넓은 객실을 보고 조금은 의아한 표정으로 봉황을 보았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상도 객실의 내부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져서 봉황의 눈치를 보았다. 봉황이 주요에게 말했다.
“시중을 들 아이가 필요하면 말하게.”
주요가 고개를 흔들고 고상의 손을 잡고 말했다.
“화사가 할 테니 걱정 마십시오.”

봉황이 고상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이 아이가 물가에 산다는 화사군.”
고상이 다소곳이 손을 모으고 인사했다. 봉황이 고상의 팔을 잡아 일으키며 말했다.
“벌써 해시가 넘었으니 쉬시게.”
봉황이 온객행에게 다가가 말했다.
“자네와 내자는 옆에 있는 객실을 쓰게.”
온객행이 봉황에게 소매를 들어 인사하고 주자서를 끌고 객실을 나갔다. 고상이 주자서를 따라 나가려고 하자 주요가 고상을 붙잡고 고개를 흔들었다. 봉황은 온객행과 주자서가 나가자 청구와 양조를 불러 뭐라고 말했다. 곧 청구와 양조도 객실을 나갔다. 봉황이 탁자에 있는 자리를 주요에게 권하며 말했다.
“수원. 그대가 알아 둬야 할 것이 있네.”
주요가 고상을 보자 봉황이 고상에게 손짓하여 자리를 권하고 말했다.
“공석인 자리는 북해 용왕 자리 만이 아니네.”
주요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는 자리니까요.”
봉황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산천대제를 폐할 수도 없고 대신할 수도 없으니 일이 더 복잡하지.”
주요가 눈을 커다랗게 뜨고 봉황을 보았다.
“무… 무슨?”
봉황이 주요를 보고 힘겹게 입꼬리를 끌어당겨 웃으며 말했다.
“그대가 모르는 일이 있네.”
그리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금모원군이 발의 영력을 거두었을 때 생긴 일이다. 금모원군은 발의 영력을 금동으로 만든 팔주령(八珠鈴)에 봉인해 두었다. 금모원군의 거처에 둔 그 신물(神物)은 천존의 허락을 받은 물건이라 아무나 만지거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당시 산천대제는 자신에게 아리따운 요괴와 사람을 보내주는 황룡을 가까이했다. 황룡은 사방신과 오룡의 수장이 되면 금모원군보다 더 큰 힘을 얻게 된다는 사람들의 노래를 듣고 현천상제를 도발했다. 그리고 아무도 현천상제를 도울 수 없게 일부러 산천대제에게 팔주령에 대한 정보를 흘렸다. 영력이 부족하여 무시를 당하는 일이 많았던 산천대제는 금모원군의 거처에 들어가 팔주령을 훔쳐 발의 힘을 휘둘렀다. 산천대제가 휘두르는 힘을 수습하느라 금모원군과 사방신과 오룡, 사령이 바쁜 틈을 타서 황룡은 현천상제가 다스리는 북방의 땅에 황룡의 치세를 드높이는 노래를 퍼뜨리고 현무의 자리를 위태롭게 했다. 현천상제의 힘이 가장 약한 염절(炎節)을 기다렸다가 그를 도발한 것도 처음부터 모두 계획된 일이었던 것이다.

황룡이 현천상제를 죽인 것은 단순히 실수라고 치부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천존께서는 황룡을 땅으로 추방하고 다시는 그가 하늘로 돌아올 수 없다는 축객령만 내리고 더 벌하지 않으셨다. 팔주령으로 하늘을 어지럽힌 산천대제의 입지는 그 전보다 더욱 좁아졌고 발의 강력한 영력을 맛보았던 산천대제는 그 이후로 계속해서 발의 영력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산천대제는 발의 영력의 위치를 황룡이 알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서 황룡을 찾는데 가장 적극적이었다. 어쩌면 이미 찾아서 어디에 숨겨 놓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금모원군은 아무도 몰래 발을 찾아가 그 힘을 돌려주려고 했는데 발은 이미 천존의 명을 받들어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진성(辰星)의 현녀가 되었고 발의 딸들은 그녀의 성과 이름을 세습하며 발의 영력을 봉인하게 된 것이다.

그런 발의 후손을 땅에 있던 황룡이 찾았다. 발의 후손을 다시 하늘로 돌아갈 수 있는 수단으로 보았던 황룡에게서 도망치다 발 후손의 부군이 살해당했다. 그것을 너무 늦게 알아버린 금모원군이 시랑을 보내 발의 후손을 찾게 했지만 때가 너무 늦어 흔적이 끊어진 것이다. 발의 힘을 쫓았던 시랑이 찾아낸 주자서가 사내였기 때문에 시랑은 발의 아이에 대한 자취를 놓쳤다고 생각했다. 금모원군은 주요가 찾아왔을 때, 일부러 황제의 후손이라는 말만 흘렸다. 주요가 대선에서 쫓겨나 한낮 무지기가 된 것도 황룡을 감싸다 그렇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금모원군은 주요가 다시 황룡을 만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만나서 결자해지(結者解之)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사람이 되어버린 황룡이 다시 주요를 찾지 않았으니 이제 놓아주라고. 황룡은 언제든지 주요를 찾을 수 있었지만 찾지 않았으니 네가 그를 버리라고.


주요는 봉황의 말에 미간을 찡그리고 눈을 감았다. 봉황이 주요의 기색을 살피며 말했다.
“원군께서는 아직도 그대를 많이 걱정하고 계시네.”
주요가 고개를 숙이고 울상으로 말했다.
“저 때문에… 원군께 죄를 지었습니다.”
봉황이 주요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그게 아니네. 수원. 그게 아니야.”
봉황이 고상에게 눈치를 주자 고상이 객실 안을 둘러보더니 일어나서 차를 준비했다. 봉황이 주요에게 말했다.
“원군께서는 그대가 황룡의 자리를 맡아주었으면 하네.”
주요가 고개를 들어 봉황을 보고 말했다.
“제가 어찌!”
봉황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대는 이미 죗값을 충분히 치렀네. 과했지. 언제까지 황룡의 자리를 공석으로 둘 수는 없지 않은가? 산천대제께서도 그대라면 수긍하실 테니….”
주요가 자리에서 일어나 소매를 모아 공수하며 말했다.
“안시선. 어찌 무지기가 황룡이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봉황이 인상을 쓰고 말했다.
“수원! 그대가 어찌 무지기인가?”

고상이 주요와 봉황의 눈치를 보다가 주요에게 다가가 팔을 붙잡고 말했다.
“주인, 주인께서 좋아하시는 동정차(洞庭茶)로 할까요? 아니면 올해 새로 딴 연잎 차로 할까요?”
주요는 고상의 목소리에 격앙된 마음이 조금 진정되었다. 눈치를 보며 저에게 다가와 좋아하는 차를 말하는 아이가 귀여워 주요가 고상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벌써 연잎을 땄어? 어디 맛보자.”
주요가 다시 자리에 앉고 고상이 막 끓은 물을 담은 찻주전자에 말린 연잎을 놓고 주요 옆에 앉아 주요의 시중을 들었다. 차시중을 드는 일은 서툴렀는데 천룡이 머무는 동안 익숙해졌는지 곧잘 했다. 고상이 하는 것을 보고 있던 봉황이 주요를 보고 말했다.
“황룡이 되면 가신이 많이 필요할 테니 이 아이도 데려오면 되겠군.”

고상이 봉황 앞에, 주요 앞에 찻잔을 놓고 차를 따르며 말했다.
“올해는 유서가 도와줘서 백련잎을 아주 많이 땄어요.”
그리고 주요를 보고 웃었다. 봉황이 찻잔을 들어 향을 맡고 말했다.
“그대가 태평호에서 더 기다린다 한들 황룡이 오겠나?”
주요는 고개를 숙이고 찻잔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고상이 주요의 소매를 잡으며 눈치를 보자 주요가 찻잔을 들어 향을 맡고 입을 축인 다음 말했다.
“아주 맛이 좋네. 아상.”
고상이 주요를 보고 배시시 웃었다. 주요는 그 모습이 또 예뻐서 한껏 날이 섰던 마음이 누그러졌다. 봉황이 찻잔을 비우고 일어나며 말했다.
“아주 귀한 차를 마셨으니 내게 보답할 기회를 주게.”
그리고 소매를 들어 인사하고 객실을 나갔다.

봉황이 객실을 나가자 고상이 주요에게 기대며 말했다.
“주요. 황룡이 되면 태평호를 떠날 거야?”
주요는 고개를 흔들고 말했다.
“내가 어딜 가겠어.”
고상이 주요의 손을 잡고 말했다.
“주요. 주요가 황룡이 되어 하늘로 가면 나도 따라갈래.”
주요는 고상을 보고 울상을 만들고 말했다.
“거길 어떻게 따라서 오려고.”
고상이 주요의 얼굴을 보고 말했다.
“주요가 하라고 하는 거 열심히 할 게. 이제 도망도 안 가고 다 열심히 할 게. 그니까 파사도 데리고 가자.”
주요가 부스스 웃으며 고상의 코를 손가락으로 ‘톡톡’ 치고 말했다.
“그건 온객행에게 물어봐야지.”
고상이 웃으며 말했다.
“에이 주요! 걱정 마. 유서는 내 아이니까. 유서를 데려가면 파사도 올 거야.”
주요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정말 아주 좋은 미끼네.”
고상이 손을 들어 입을 가리더니 ‘히히히’ 웃었다.


주자서는 봉황이 말한 크지 않은 객실을 보고 조금 넋이 나갔다. 주요와 고상이 머무는 가장 큰 객실도 화려했지만 온객행과 주자서에게 머물라고 한 객실도 매우 컸다. 청구와 양조가 탁자에 가서 앉고는 말했다.
“앞으로 잘 부탁하네.”
주자서가 공손히 소매를 들어 조아리며 말했다.
“망극합니다.”
양조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나는 평상에서 잘 테니 어서 쉬게. 사람은 매일 먹고 잔다지?”
청구가 일어나 화로에 물을 올리며 말했다.
“그래. 우리는 불편해 말고 어서 쉬게.”
온객행이 주자서의 등허리에 손을 얹고 침상으로 가며 말했다.
“객실 안에 함께 있는데 어찌 편히 쉬라는 말씀이오?”
양조가 온객행을 쏘아보며 말했다.
“흑망 너더러 쉬라고 한적 없네.”
주자서가 온객행의 손길을 피해 평상으로 가며 말했다.
“저 때문에 고생이 많으신데 먼저 쉬시지요.”
청구가 낮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자거나 먹지 않아도 되니 상관하지 말고 어서 쉬게.”
온객행이 평상에 가서 앉은 주자서 옆에 앉으며 말했다.
“부부가 있는 방에서 무슨 구경을 하시려구요?”
양조가 고개를 돌려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왜? 무슨 구경시켜줄 텐가?”
청구가 찻주전자에 물을 담고 온객행을 힐끔 보고 말했다.
“오랜만에 좋은 구경하겠군.”
청구가 찻잔과 찻주전자가 담긴 소반을 들고 탁자로 가서 양조 앞에 앉아 차를 나눠 마시며 온객행을 보았다.

주자서가 자리에서 일어나 소매를 모으고 말했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그리고 커다란 병풍 뒤에 있는 침상으로 가서 붉은 장포를 벗었다. 온객행이 주자서가 벗어 놓은 장포를 옷걸이에 잘 걸어 놓고 침대로 다가와 말했다.
“유서.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뭐라도 먹겠어? 지금 준비할까?”
주자서는 작게 고개를 흔들고 신발을 벗고 침상 위로 올라갔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소매를 잡아 그를 멈추고 중의를 벗기려고 하자 주자서가 손을 뿌리치고 말했다.
“그냥 두십시오. 괜찮습니다.”
온객행이 앞섶을 잡아 벌리며 말했다.
“그럼 불편하잖아. 우리는 손님이니까 오래 자도 괜찮다니까.”
주자서는 작게 한숨 쉬고 온객행이 하자는 대로 순순히 따르고 침상 위에 몸을 뉘었다. 주자서는 부드러운 비단 금침에 얼굴을 묻고 금방 잠이 들었다. 온객행도 겉에 입은 장포를 벗고 침상 위로 올라갔다. 요즘 주자서는 금방 잠들고 잘 깨어나지 못했다. 전보다 더 안 먹고 안 마시니 온객행만 애가 타서 안절부절못했다. 축 늘어진 주자서를 끌어안고 온객행이 말했다.
“유서. 내일은 지백에게 가서 잉어를 먹자.”
그리고 주자서의 가슴에 고개를 기댔다. ‘쿵쿵’ 뛰는 심장 소리가 기꺼워 뺨을 비볐다.

온객행이 눈을 떴을 때 주자서는 온객행의 등에 고개를 기대고 팔을 둘러 온객행을 안고 자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 어깨너머로 보니 주자서는 아직도 자는 모양이다. 온객행은 눈을 감고 주변의 기척을 읽었다. 특별히 잠들기 전과 다른 기척이 없어 온객행은 뒤에서 느껴지는 주자서의 온기를 느꼈다. ‘이렇게 안겨 있는 것도 좋구나.’ 하고 생각한 온객행이 배시시 웃었다. 한 시진쯤 주자서에게 안겨 있던 온객행은 주자서가 등에 뺨을 비비는 것을 느꼈다. 온객행에게 둘러싸인 팔이 들리자 온객행은 얼른 주자서의 손을 잡고 뒤돌아 누웠다. 주자서는 아직 잠이 덜 깬 듯 눈을 깜빡이더니 다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제가 얼마나 잤습니까?”
온객행은 주자서와 더 누워 있고 싶어서 말했다.
“아직 더 자도 괜찮아. 더 자게.”
주자서는 다시 눈을 감더니 금방 숨소리가 일정하다. 다시 잠든 주자서의 입술에 입을 살짝 맞추고 가슴에 고개를 기대며 그를 끌어안았다. 주자서는 조금 뒤척이더니 다시 축 늘어져 잠이 들었다.


주요는 고상을 재우고 밤새 생각을 하다 답답해져서 객실을 나와 내원에 있는 정각으로 갔다. 의자에 앉아 한숨을 쉬자 언제 나왔는지 청구가 다가와 인사했다.
“대선. 피로하지 않으십니까? 쉬시지 왜 나오셨어요?”
주요가 청구를 보고 물었다.
“그대는 얼마나 알고 있나요?”
청구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야 원군께서 말씀해 주신 것만 알고 있지요.”
주요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유서는 얼마나 버틸 것 같소?”
청구가 주요 옆에 앉으며 말했다.
“영혼이 타기 시작한 것 같아요.”
주요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청구가 자기가 나온 객실을 보고 말했다.
“흑망은 진심인 것 같아요.”
주요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원군께 부탁해서 반도원의 반도라도 먹일까요? 명(命)이라도 붙잡고 있으면 혼이 좀 덜 탈까요?”

청구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주요에게 다가가 말했다.
“그것이 이상해요. 그 아이에게서 발의 영력과 그 아이의 영혼 말고 다른 것도 느껴져요.”
주요가 고개를 돌려 청구를 보았다. 청구가 주요에게 더 가깝게 다가가 말했다.
“이건 청조께서 해준 말인데. 그 아이에게 천강의 기운이 있다 합니다.”
주요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천강?”
청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무래도 발의 후손이 사내가 된 이유는 그 천강의 기운 때문인 것 같아요.”
주요가 온객행과 주자서가 머무는 객실을 보고 말했다.
“원군께서 따로 하신 말씀은 없으시구요?”
청구가 다시 몸을 바로 하고 기침으로 목을 가다듬더니 말했다.
“이대로 타면 아마 천도연까지 버티지 못할 것 같아요.”
주요가 말했다.
“제가 원군을 뵐 수 있게 도와주시겠어요?”
청구가 중궁 쪽을 보더니 말했다.
“지금이라도 알현하시겠습니까?”
주요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청구가 외실로 손바닥을 펴며 말했다.
“대선, 가시죠.”

양조가 객실에서 나와 청구와 주요가 중궁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 봉황의 처소로 갔다.
“봉황. 수원대선께서 원군을 뵈러 가셨습니다.”
봉황이 장지문을 열고 나와 말했다.
“어떨 것 같은가? 황룡을 맡으실 것 같은가?”
양조가 손사래 치며 말했다.
“저에게 물으십니까?”
봉황이 주요의 객실을 보고 말했다.
“그 고상이라는 아이를 아끼는 듯하니 그 아이를 잘 구슬리면 되지 않을까요?”
양조가 객실을 보고 말했다.
“아직 너무 어리고 영력이 부족하여 하늘에서 못 버틸 텐데요.”
봉황이
“쯧”
혀를 차며 말했다.
“그러게 황룡의 자리는 왜 공석으로 둬서 이 사달을 만드는지….”
양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아서 문제지요. 북해 용왕 자리는 하겠다는 이들 천지인데 천존께서 원하는 치는 관심도 없으니.”
봉황이 온객행이 있는 객실 쪽을 고갯짓하고 물었다.
“발의 후손은 좀 어떻습니까? 버틸 것 같아요?”
양조가 고개를 작게 흔들며 말했다.
“벌써 영혼이 타기 시작했어요. 천도연까지 못 버틸 겁니다.”

봉황이 혀를 차며 말했다.
“이러다 흑망의 내자가 죽기라도 하면 흑망은 또 어떡합니까?”
양조가 봉황을 빤히 보더니 물었다.
“봉황께서는 느끼셨습니까?”
봉황이 양조에게 물었다.
“뭘 말이오?”
양조가 말했다.
“청조께서 말씀하시기를 천강의 기운이 있다 합니다.”
봉황이 양조의 말을 듣고 눈을 내리깔며 입을 다물자 양조가 말했다.
“삼원(三垣; 천궁)과 관계 있는 일 아닙니까?”
봉황이 양조를 힐끔 보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
“원군께 내가 여쭤봤는데 그쪽은 우리가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양조가 다시 시선을 다시 객실로 돌리고 말했다.
“흑망의 힘은 아직 다 돌아오지 않았어요. 그의 봉인된 힘이 모두 돌아오면 제가 막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봉황이 동조하며 말했다.
“차라리 취수를 건너서 얼른 승천했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양조가 고개를 돌려 봉황을 보고 놀란 기색을 하고 물었다.
“아직 힘이 다 돌아오지 않았는데도 가능합니까?”
봉황이 말했다.
“아마 가능할 겁니다. 지킬 것이 생겼으니 더 강해지겠죠.”

양조가 한숨을 쉬고 말했다.
“발의 후손이라는 치는 참 유순하여 다루기 쉬울 것 같은데….”
봉황이 웃으며 말했다.
“그가 발의 후손이라면 그것도 모르는 일이지 않겠습니까?”
양조가 봉황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그것도 그렇네요.”
봉황이 양조에게 물었다.
“수원은 원군께 뭘 청할까요?”
양조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정말 모르겠어요. 자리를 거절하러 가신 것인지 아니면 흑망의 내자를 위해 부탁을 하러 가신 것인지.”
봉황이 중궁 쪽으로 몸을 돌리고 말했다.
“아니면 둘 다일지.”
양조가 말했다.
“대선께서 데려온 화사와 발의 후손이 아는 사이 같았어요. 둘의 영이 비슷하게 닮아 있는 것도 이상합니다.”
봉황이 미간을 찡그리고 물었다.
“그래요?”
양조가 말을 이었다.
“그 화사는 아직 어린데 영력이 꽤 강한 편이에요.”
봉황이 어깨너머로 객실을 보고 말했다.
“참 오래 살다 보니 옥산을 나가 살아남은 화사는 내 평생 처음 봅니다.”
양조가 봉황에게 말했다.
“본인은 모르는 것 같던데….”
봉황이 말했다.
“공공과 원군께서 그 아이에게 바라는 것이 있으니 지켜봅시다.”


고상이 객실에서 나와 주변을 둘러보더니 봉황과 양조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봉황. 양조. 기침하셨습니까?”
고상의 인사에 봉황이 밝게 웃으며 말했다.
“예를 거두세요. 잘 주무셨습니까? 불편하지는 않으셨어요?”
고상이 부스스 웃으며 말했다.
“저는 원래 물 속에서 자는데 침상에서 자는 것은 오랜만이었어요.”
고상의 말에 양조가 ‘하하하’ 웃으며 말했다.
“태평호 전체가 화사의 침상이겠군요?”
고상이 양조에게 웃으며 말했다.
“에이, 어르신 말씀 편하게 하세요. 저는 좀 배가 고픈데 먹을 게 없나요?”
봉황이 외실 오른편에 있는 작은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쪽에 주방이 있긴 합니다만 사용하지 않은지 오래되어서 쓸만한지 모르겠군요. 저와 가서 보시겠습니까?”
고상이 봉황의 소매를 잡고 그 건물로 향하며 말했다.
“봉황 어르신은 뭘 좋아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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