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笑啼兩難
웃거나 울기 둘 다 어렵다.
익주로 출발하기 전, 서국공은 진회장과 형주 악양에서 만났다. 그 곳에서 무고에 관련된 내용을 들은 진회장은 평소 친분이 있었던 악양파의 소장주 고숭과 그의 의형제인 경호파의 후계 장옥삼 그리고 단양파의 후계 육태충(陸太沖)과 함께 익주로 떠났다고 한다. 성도에 도착하기 전에 그들은 고산파 장주의 막내 심신(沈愼)과 태호파 장주의 사위 조경(趙敬)을 익주 부성에서 만났다고 했다. 그들이 익주로 간다는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은 진회장과 진회장이 도움을 청한 고숭, 장옥삼 그리고 육태충을 제외하고는 강호에 아는 이가 없었는데도 심신과 조경은 알고 그들을 부성까지 찾아왔다고 한다.
익주의 성도로 들어갔을 때 익주자사 문성왕을 만났고, 그들은 성도에서 며칠 머물며 수색에 대한 채비를 했다. 무고의 위치는 소문으로 밖에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기이하거나 사람들이 사라지는 사건들을 조사하면서 그 위치를 추적했다. 때문에 익주 관청의 사건 기록이 필요해서 익주자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문서를 열람했다. 무고의 위치가 높은 산 근처에 있을 것이라는 추측으로 아미산일대와 청성곡 일대를 수색하기 위해 이동했다.
익주의 산들은 높고 깎아지는 듯한 절벽이 많았기 때문에 마을과 마을 사이의 간격이 넓었고 산 근처에는 큰 마을이 없었기 때문에 작은 취락에 며칠씩 지내면서 그 주변을 수색했다. 아미산의 수색이 끝났을 무렵 아미파의 제자였던 진회장의 아내에게 태기가 있어서 진회장은 서국공에게 서신을 남기고 양주 사계산장으로 돌아갔다. 서국공은 고숭을 따로 불러서 진회장이 떠날 때 함께 왔던 일행이 그와 함께 돌아가도 좋다고 말했지만 고숭은 진회장의 몫까지 서국공을 돕고 싶어했다. 청성곡에 도착했을 때 견곡주는 그들을 환대해 주었다. 청성곡의 사람들은 대다수가 의술에 조예가 깊고 약초를 캐러 험한 산지를 돌아다니기에 걸맞은 무공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서국공에게 많은 도움이 됐다.
서국공은 물자의 보급과 무고 수색에 대한 보고를 위해 종종 성도로 돌아가 익주자사와 만나고 왔다. 고숭과 청성곡의 마을 주민 그리고 조경이 수색하던 지역에서 무고를 발견한 날도 서국공은 성도에서 청성곡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서국공은 무고를 발견했던 사람들만 데리고 무고에 가서 옥으로 만든 열쇠로 무고를 열었다. 무고 안에는 무기로 보이는 것은 없었고 돌로 만든 거대한 제단과 여기저기 금과 은으로 만든 제기가 있었고 제단 주변 작은 석실에는 사람들의 시신과 알 수 없는 글자로 쓰여 있는 두루마리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다시 청성곡으로 돌아온 서국공은 무고를 발견한 사람들에게 무고에 대한 것을 함구할 것을 청했고 청성곡의 견곡주와 오랜시간 무엇인가를 논하는 듯했다. 우기가 시작되자 어떨 때는 빗방울이 굵었고 또 어떨 때는 이슬비가 왔지만 하루 종일 비가 멈추지 않았다. 무고를 방문한 이후로도 서국공은 무고에 수차례 방문했고 그동안 고숭과 그의 의형제들은 청성곡을 도와 축대 쌓는 것을 도왔다고 했다. 서국공이 청성곡을 떠나기로 결정한 한 날 견곡주는 비가 거세지기 전에 어서 하산하라며 그들을 재촉했다. 아침 일찍 청성곡을 나온 서국공 일행은 빗물에 질척한 길을 내려오느라 평소보다 더 많은 시간을 지체했고 다음날이 되어서야 성도에 도착했다.
서국공의 일행이 청성곡을 떠나고 견곡주는 사람들을 신의당으로 불렀다. 그는 서국공이 이 곳에 와서 무엇을 찾았는지 그리고 누구와 함께 왔었는지에 대해 잊으라고 했다. 신의곡 사람들은 곡주에게 뜻이 있어서 그리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각자 집으로 돌아간 사람들은 평소에 비가 오면 하던 대로 약초를 정리하거나 집안을 정리했다. 날이 어두워지자 비가 더 거세게 왔다. 온객행의 집은 비탈길에 있어서 비가 오면 항상 신의당에서 비가 지나기를 기다렸다. 그날도 밤 늦게 물이 불어 집 안까지 물이 들이치자 온객행의 부모님은 그를 안고 신의당으로 향했다. 신의당으로 향하는 동안 주변이 부산스러웠다.
신의당에 도착하자 이미 안에 다른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누워 있었다. 온객행의 아버지는 이유를 알기 위해 여기저기 다니며 맥을 짚었다. 시간이 지나자 더 많은 마을 사람들이 신의당으로 왔다. 어떤 사람은 이미 의식을 잃었고 어떤 사람은 아주 위독해 보였다. 마을 사람들이 약초를 구하기 위해 이집 저집 뛰어다니는 동안 온객행은 신의당에서 나와 집으로 향했다. 마을 사람들의 증상에 효과를 보이는 약초가 집에 있다는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참 비를 맞으며 집으로 걸어가는데 산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자 산에서 쏟아진 토사물로 마을 절반이 묻혔고 마을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토사물을 치우기 위해 하나 둘 신의당 쪽으로 향했다. 온객행은 놀라 자리에 주저 앉고 말았다. 한참 비를 맞으며 앉아 있었는데 누군가 신의당 쪽으로 화살을 쏘았다. 굵은 빗방울에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화살이 날아와 마을 사람들을 맞추었다. 온객행은 비를 맞으며 사람들이 쓰러져 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마치 악몽을 꾸는 것처럼 사람들의 비명소리는 빗속에 파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빗길에 지친 서국공일행은 성도에서 이틀 정도 머물며 행낭을 재정비했고 부성으로 돌아가는 길 역시 비가 많이 와서 여러 차례 길을 멈추어야 했다고 한다. 일주일 정도 지나 부성에 도착했을 때 성도에서 서국공에게 보낸 소식으로 알게 되었다고 했다. 고숭이 잠시 생각하더니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둘째는 대체 어떻게 알았지?”
엽백의가 물었다. “둘째라면 누굴 말하는 것이오?” 고숭이 다시 자세를 바르게 하고 말했다. “부성에 도착하여 조경과 심신은 맡겨 놓은 짐이 있어 먼저 서국공과 인사하고 객잔으로 갔습니다. 저 역시 익주자사를 만나고 돌아온 서국공께 인사할 때, 서국공께서 청성곡 소식에 대해 알려주셨습니다. 객잔으로 돌아가서 청성곡으로 돌아갈 것에 대해 논의할 때 조경은 이미 알고 있는 듯했습니다. 묻지 않았거든요 왜 돌아가는지.”
엽백의가 물었다. “왜 청성곡으로 돌아가지 않았지?” 고숭이 대답했다. “어떻게 아셨는지 스승님께서 복귀를 재촉하는 서신을 보내오셨습니다. 스승님께 서국공의 일에 대해 말 할 수 없으니 벌을 받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다 보니 결국 청성곡에는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다른 형제들의 상황도 저와 비슷했을 겁니다.” 엽백의는 시기 적절하게 스승의 서신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태호파의 사위 조경은 하인의 아들이다. 그의 성인 조씨 역시 그의 주인의 성이었다. 그는 무공이 뛰어나 그의 주인에게 양자로 들어갔고, 그 신분으로 태호파 장문인 이경(李慶)의 딸 이요(李曜)와 혼인하였다. 그가 이요와 결혼하기 전에 주인의 딸과 결혼약속을 했었다는 것은 양주 회계사람이면 모르는 이가 없었다. 하지만 전염병으로 조가의 식솔 대부분은 살아남지 못했고 조가(趙家)의 딸 희상군(喜湘君)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조가의 재산은 결국 살아남은 양자인 조경의 몫이 되었고, 조경은 그 몫으로 태호파 장문의 딸 이요와 혼인하였다. 조경은 무공뿐만 아니라 학문도 뛰어나 그의 주변에는 항상 재능이 있는 사람이 모인다 하여 어떤 사람들은 그를 맹상군이라 불렀다. 그들의 재주로 태호파는 양주일대에서 가장 부자다. 그들이 운영하는 삼백상단 역시 양주지역에 있는 비단을 독점으로 거래하는 곳이다. 태호파가 만약 남궁세가와 협력하여 그들의 재력을 누군가에게 모은다면 정말로 하늘이 바뀌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엽백의가 물었다. “무고의 위치는 청성곡 근처인가?” 고숭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근처는 아니고 두 시진 정도 서쪽으로 가면 있는 높은 절벽위에 있는 석굴에 문이 있고, 그 문을 열기 위해서는 옥을 만든 열쇠가 필요합니다.” 엽백의는 ‘흠’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축대 쌓는 것을 도왔다고… 그 위치가 혹 신의당이오?” 고숭이 고개를 들어 놀란 눈으로 엽백의를 보았다. “그날 고소협과 신의당 근처에 있는 축대를 보수한 사람은 혹시 조경이 아니오?” 고숭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그렇습니다.” 엽백의는 ‘흥’하고 코웃음을 치고는 온객행을 보았다.
온객행은 고숭을 노려보고 있었다. 고숭이 말한 내용은 온객행이 기억하는 내용과 거의 일치한다. 고숭은 이후에 청성곡에 일어난 일에 대해 알지 못할뿐더러 관심조차 주지 않았으니 몇 달 후 누군가가 쑥대밭이 된 청성곡을 헤집어 놓은 것을 모를 것이다. 그들이 찾는 것은 보나마나 무고의 열쇠였을 것이다.
엽백의가 고숭에게 다시 물었다. “이 일에 대해 아는 것은 그대의 의형제들뿐인가?” 고숭은 한참 앉아서 고민하더니 말했다. “사계산장의 진회장은 서국공과 친밀한 사이였으니 무언가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엽백의가 미간을 찌푸리자 고숭은 다시 시선을 돌려 고개를 조아렸다. 엽백의가 말했다. “사계산장은 구강이 가물어 요 몇 년 먹고 사느라 고생인데, 만약 그들이 뭔가 알고 있었다면 서국공을 해친 자들이 그들을 왜 그냥 두었겠소? 그리고는 ’쯧쯧’하고 혀를 찼다.
주지 여운은 고숭을 잘 달래 내보내고 엽백의에게 물었다. “무고를 찾는 것이 천자입니까? 아니면…” 엽백의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만약 천자가 찾는 것이라면 걱정할 것이 없지만 그것이 아니면 그게 더 큰일이네.” 주지가 손에 들린 염주를 굴리며 불경을 외웠다. 엽백의는 포단위에 무릎 꿇고 앉아 있는 온객행을 불렀다. “온가야 허튼 짓은 시작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온객행이 고개를 들어 엽백의를 보며 말했다. “그럼 노야가 하는 이 짓은 허튼 짓이 아니오?” 온객행과 엽백의의 시선이 한동안 마주쳤다. 엽백의가 시선을 거두며 한숨을 쉬었다. “짐새는?” 엽백의가 묻는 말에 온객행은 한참동안 답하지 않았다. 엽백의가 주지에게 눈치를 주자 주지 여운은 자리에서 일어나 남궁세가의 소가주에게 물을 것이 있다며 일어났다. 자운당에 온객행 엽백의만 남아 앉아 있다.
온객행은 아주 작은 소리로 말했다. “기왕은 앵속에 중독되었소.” 엽백의가 되물었다. “앵속?” 그리고는 헛기침으로 소리를 조금 더 감추고 말했다. “초무관이냐?” 온객행이 엽백의를 힐끔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품속에서 초무관 소년에게 받은 호리병을 건내 주었다. 엽백의가 놀라 그것을 보고 온객행을 다시 보았다. “초무관에 다녀온 것이냐?” 엽백의의 물음에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순간 엽백의의 얼굴에 노기가 보였다. “온객행!” 온객행은 고개를 돌려 시선을 거두어 버렸다. 엽백의가 다시 물었다. “채미공자를 만난 것이냐?” 이번에 온객행은 고개를 떨구며 고개를 흔들었다. 엽백의는 저 머리통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몰라 답답했다. 엽백의가 한참 호리병을 보더니 물었다. “이것의 주인이 누구냐.” 온객행이 자운당의 문을 보며 말했다. “문성왕” 엽백의도 시선을 옮겨 문을 보았다.
엽백의가 말했다. “주대인은 어디 가고 너 혼자 왔느냐.” 온객행이 대답했다. “양주로 돌아가신다 하여 공의에서 헤어졌습니다.” 엽백의가 문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말했다. “그래 양주로 돌아 갔다는 말이지. 양주는 소흥주로 유명한 곳이니 장명산에 가기 전에 그곳을 둘러보는 것도 좋겠군.” 둘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문만 보았다.
조경은 소림사에 갇힌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게다가 아직까지 무고의 열쇠를 찾지 못한 것을 조왕이 눈치 챈다면 줄타기 같은 이 동맹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조경은 알고 싶지 않았다. 엽백의라는 장명산 검선이 무엇인가 눈치를 채고 자신에게 이것 저것 물어본 것 같은데, 고숭의 입만 조심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고숭은 의리와 협의를 지키지 못하는 것을 큰 흉으로 보았으니 스스로 입을 열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지 않을 것이다. 익주에서 청성곡의 일에 대해 아는 자들은 모두 죽었다. 고숭과 조경의 이야기를 맞추면 청성곡은 큰 비로 비극을 맞이한 작은 촌락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조경은 무고 안에서 파사어로 쓰인 독술을 발견했다. 서국공과 다른 형제들 몰래 그것을 태호로 가져오기 위해 청성곡 사람들 모두를 죽였다. 무고에서 보았던 두루마리와 책들 중에는 조경이 가져온 두루마리에서 보다 더 대단한 마교의 무공이 적혀 있을 것이다. 열쇠는 청성곡에서 나오지 않았는데 대체 어디로 간 것인지 알 수 없다. 후에 열쇠를 찾기 위해 서국공의 집을 뒤졌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서국공의 물건이었으니 황실에 관련된 사람이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대체 낭야왕은 무슨 뜻으로 무고의 열쇠를 찾고 있는 것일까? 조왕이 자신과 낭야왕 사이에서 저울질을 하고 있는 것이라면 큰일이다.
조경은 초조 해졌다. 기왕은 마약에 중독되었으니 쓸모가 있을 때까지 초무관에서 잘 관리하면 된다. 황제의 독살사건으로 잠깐동안 비었던 도성 근처의 병력 덕분에 꽤 많은 물자를 도성에서 빼돌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물자는 화약과 독으로 바꾸어 맹진과 맹주에 숨겨 놓았다. 교활한 조왕이라면 그것을 빌미로 당장 조경의 목을 틀어쥐려고 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다.
대웅보전 안으로 고숭이 주지와 함께 돌아왔다. 고숭의 표정이 좋지 않아 조경은 고숭에게 다가가 물었다. “형님 검선께서는 무엇을 물으셨소?” 고숭이 조경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 “조형제, 청성곡의 일을 기억하는가?” 조경은 뜨끔하여 고숭에게 놀란 얼굴을 꾸며내며 말했다. “청성곡이요? 익주의 청성곡 말입니까?” 고숭이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서 듣고 있던 경호파 장문 장익(張瀷)이 다가와 물었다. “숭아 대체 무슨 일로 지주께서 너를 찾으시냐?”
고숭이 포권하여 인사하며 말했다. “장숙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옆에 있던 조경도 포권하여 장익에게 인사했다. 장익이 조경과 고숭을 보며 말했다. “혹 삼이와 관련된 일이냐?” 고숭이 손사래 치며 말했다. “아닙니다. 숙부님 아니에요. 아무래도 나라에 무슨 일이 생길 모양입니다.” 장익의 표정이 어두워지며 말했다. “또 말이냐?” 그리고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 근처에 있던 문파의 사람들도 그들의 말을 들었는지 대웅보전 안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대웅보전을 나가는 주지와 남궁세가의 소가주 남궁하의 뒷모습이 보인다.
엽백의와 온객행은 쓰잘대기 없는 얘기를 하는 것처럼 꾸며 배 위에서 있었던 일과 평락원에서 있었던 일들을 서로 맞추어 보았다. 낙양 성문 밖을 지키는 교위들이 갑자기 정주로 모두 들어온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다. 배의 주인인 낭야왕과 배위에서의 연회를 준비한 조왕 역시 이번 일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아닌 또 다른 세력이 있다는 것일까?
문성왕 사마헌의 이름이 계속해서 언급되는 것을 보면 그도 청성곡의 일 아니면 무고의 일과 관계가 있는 사람이다. 게다가 초무관에서는 그를 죽이고 싶어한다. 엽백의는 고숭의 이야기를 들었으니 이제 문성왕 사마헌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귀족들을 상대하는 일은 저보다 주구전이 나으니 주구전을 찾아야 한다. 그들은 정말 벌써 양주로 돌아간 것일까?
온객행은 주구전의 손주놈한테 관심이 있는 것 같았는데 또 그렇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쉽게 보내준 것을 보면 평소의 온객행의 태도와는 조금 다르다. 아니면 사계산장의 제자 답게 온객행을 따돌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엽백의가 물었다. “주공자는 네 성에 차지 않았느냐?” 주자서 얘기에 온객행이 얼굴을 찌푸렸다. “노야는 신경 끄시오.” 엽백의가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 너의 그 괴팍한 성격에 질려서 도망간게지.” 온객행이 버럭 소리질렀다. “아니오! 정표도 받았소” 그리고는 품속에서 여인들이 쓰는 것 같은 비단 수건을 꺼내 들었다. 온객행은 손에 잡은 그 수건을 한참 쓰다듬더니 다시 품속에 넣었다.
주구전은 당황스러웠다. 주구전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생에 이렇게 불편한 일은 많지 않았다. 엽백의에게 받은 흰색 장포를 둘러 입고 앉아서 비단옷을 입은 공자들과 속이 다비치는 옷을 입고 곁에 붙어 앉은 여인들을 보고 주구전은 혀를 차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중이다. 옆에 앉아 주구전의 시중을 들고 있는 주자서를 힐끔힐끔 주변 사람들이 쳐다보는 꼴 역시 울화가 치밀어 한숨 밖에 쉴 수 없다. 그는 어쩌다 본인이 낙수가 잘 보이는 청백루에 황족들과 앉아 술자리를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저 누대 위에 상석에서 술잔을 들어 올려 흥을 내는 자는 진왕이다. 어째 진왕과는 만나야 할 때 만나고, 만나지 말아야 할 때도 만난다. 주구전의 술잔을 조심스럽게 채우는 주자서를 보고 또 한숨을 쉬었다. 결과적으로 주자서가 군자산을 먹은 것은 시기적절한 일이 되었다. 나중에 따로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야 하겠다고 생각한 주구전은 주자서가 따라준 술을 마셨다. 낙양성의 백주인 보풍주는 그 역사가 수천년이 넘는다 들었다. 과연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올 만큼 훌륭한 술이다.
한참 요기를 하던 주구전이 주자서에게도 음식을 권했다 주자서는 주변의 눈치를 보더니 고개를 흔들며 거절했다. 요 며칠 먹은 것이 신통치 않아 또 몸이 안 좋아질까 걱정된 주구전이 주자서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았다. 사계산장에서 하던 대로 계화향이 나는 떡을 집어 입안에 넣어 주려다 주변의 시선이 따가워 손을 물렸다.
괜히 속이 타서 주구전은 주자서가 따라 놓은 술을 마셨다. ‘마음은 불편하나 입안은 즐겁구나.’ 주구전의 복잡한 심경을 눈치챘는지 주자서가 주구전을 보고 살포시 웃는다. 주구전은 그것이 기꺼워 ‘허허허’ 하고 웃고 말았다. 진왕이 원하는 대로 주자서 혼자만 낙양성 근처에 두고 갈 수는 없는 일이니 어찌 되었든 주자서를 데리고 양주로 돌아가야 한다.
주구전이 주자서에게 물었다. “자서야, 진왕이 준다는 벼슬 한번 해볼테냐?” 주자서는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얼굴을 구기며 고개를 저었다. “싫습니다.” 주구전이 말했다. “저리 주신다는데 또 안 받기가 그렇구나.” 주자서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양주로 다시 서신을 보내야겠다.
주구전이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시간이 많이 지났는지 옆에 앉아 있는 주자서는 꾸벅꾸벅 앉아서 졸고 있었다. 주자서의 어깨에 손을 올려 그를 깨운 뒤 시선을 돌려 진왕이 앉아 있던 자리를 보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공자들 몇몇은 자리에서 일어나 기루의 위층으로 올라가는 듯했고 진왕을 포함하여 몇몇은 보이지 않았다.
주구전은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여 주자서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일어나자 옆에 서있던 하인이 그에게 다가와 서신을 건내 주었다. 주구전은 한참 고민을 하다 그 종이로 만든 서신을 펼쳐 보았다. 그 서신은 진왕이 공의 가좌로 천거하는 공자들의 이름을 적은 것이다. 그 이름 중에 주자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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