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螳螂窺蟬 黃雀在後
매미 뒤에 사마귀, 사마귀 뒤에 참새.
얼굴을 가린 여인은 온객행에게 시선도 주지 않은 채 어울리지 않는 투박한 포단에 다소곳이 앉았다. 온객행은 아무 말도 없이 자리에 앉는 여인을 보았다. 잠시 후에 하인이 다구를 가져와 차를 우렸다. 하인은 차를 다 내리자 곧 방을 나갔다. 온객행과 여인은 한동안 찻잔에서 피어오르는 식어가는 차의 증기를 보았다. 여인이 물었다. “공자님께서 찾으시는 운일은 강호에 있는 새입니까?”(63) 온객행이 여인을 보았다.
대답이 없는 온객행을 보고 있던 여인의 눈썹이 올라갔다. “공자 아직 어린 것 같은데, 동력조의 대한 이야기는 누구에게 들었습니까?” 온객행은 사실 조금 당황하고 있었다. 이렇게 쉽게 독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눌 줄은 생각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앞에 앉아 차를 마시는 이 여인이 얼마나 알고 있을지도 의심하고 있었다. 온객행은 목이 타서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차를 마셨다. 여인은 시선을 돌리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온객행은 차 맛이 많이 쓰다고 생각했다. 마치 독을 섞은 것처럼.
여인은 일각이나 기다렸는데도 멀쩡히 앉아 있는 온객행을 보고 당황한 눈치였다. 여인은 온객행의 찻잔에 차를 조금 더 따르고 찻주전자의 뚜껑을 열어 냄새를 맡아 보고는 얼굴을 찡그렸다. 여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공자께서는 어디서 동력조의 이야기를 들으셨습니까?” 온객행은 앞에 있는 여자를 바라보기만 했다. 여자의 한쪽 눈이 파르르 떨리더니 곧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갔다.
온객행은 얼굴을 가린 여인이 나가자 여인이 했던 것처럼 주전자의 뚜껑을 열어 냄새를 맡고 안에 들어 있는 찻잎을 보았다. 독말풀이 들었지만 독성이 많지 않은 것으로 보아 개량한 것이다. 보통사람이 먹었다면 아마 현기증이 나서 쓰러졌을 것이다. 온객행은 어릴 때 독을 잘못 먹고 앓은 적이 있어서 독의 내성이 평범한 사람보다 높았다. 자신을 쓰러뜨려서 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했던 것일까? 밖이 소란스러워 방 밖으로 나가니 손님 중에 실랑이를 벌이는 이들이 보였다. 입은 옷으로 보아 높은 관리의 식솔인 것 같다.
초무관에 들어와서 처음 만났던 소녀가 온객행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주변의 눈치를 보더니 온객행을 침실이 있는 위층으로 안내했다. 온객행은 당황했지만 일단 소녀가 하는 데로 두었다. 침실로 들어오자 소녀는 온객행을 침상에 앉히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 침상으로 다가와 온객행이 앉아 있는 침상에 다리를 걸치며 온객행의 목에 칼을 들이 밀었다. 소녀의 목소리가 낮고 거칠게 변했다. “너는 뭐야?” 온객행이 멀뚱히 소년을 쳐다보자 소년은 손에 쥔 칼을 좀 더 바짝 온객행에게 가져다 대며 말했다. “이 칼에는 독이 발라져 있습니다. 공자, 머리가 붙어 있을 때, 입을 여시오.” 온객행이 얼굴을 찡그리자 소년이 얼굴을 붙여왔다.
온객행은 숨을 들이 마시더니 말했다. “동물의 독이군.” 소년이 한쪽 입술 끝을 끌어 올리며 웃었다. “누가 보냈지? 누구에게 듣고 온 거야?” 온객행은 ‘흠’하고 생각한 후에 말했다. “네가 채미공자인가?” 소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가 누구인지는 알 것 없고 누구에게 듣고 왔는지 말해.” 온객행이 말했다. “진왕” 소년이 온객행의 귓가에 속삭였다. “나는 인내심이 없는 사람이야. 장난하지 말고 빨리 말해.” 진왕이 보낸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안다는 것은 진왕은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온객행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기왕” 소년은 한참 생각하더니 말했다. “기왕이 널 보냈단 말이야?” 그리고 소년은 온객행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기왕은 초무관이 어디에 있는 줄도 모를걸? 나를 시험하러 온 건가?” 소년이 온객행에게서 칼을 거두며 물었다. 온객행은 당황한 기색 없이 말했다. “일처리가 부족했다는 소리는 하실 것 같더군.” 아마 이 상황을 보면 엽백의는 분명 온객행에게 한 소리 했을 것이다. 칼을 품속에 집어넣다 만 소년이 온객행을 매섭게 노려봤다. ‘흥’하고 코웃음친 소년이 말했다. “어디서 도 닦는 놈처럼 입고 기생집에 들어와서 대놓고 의심을 사고는 아직도 할말이 있어?”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도라는 것은 원래 세상의 모든 일을…” 소년이 온객행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시끄럽고 정말 진왕이 떠보라고 보낸 거야?” 온객행이 소년을 물끄러미 보았다. 키가 작고 몸의 선이 가늘어 얼핏 보면 어린 소녀 같았으나 다시 보니 온객행과 비슷한 나이 또래의 소년으로 보였다. 몸짓과 말투를 지우니 그제야 소년의 모습이 보인다. 온객행이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원래 높으신 분들께는 모두 의심병이 있다는 것을 그대는 몰랐는가?” 소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병은 꼭대기에 있어야만 생기는 병 인줄 알았지.” 소년의 말에 이번엔 온객행이 ‘하하하’하고 소리를 내어 웃었다.
소년이 말했다. “원래 독은 죽이는 것보다 죽이지 않는 것이 더 어려운 법이야.” 소년의 말에 동의하듯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년이 물었다. “그래서 너의 목표물은 누구지?” 온객행은 한참 머리를 굴리다 말했다. “좌장사 사마헌(司馬憲)” 소년이 온객행의 말을 듣고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드디어 그 쓸모 없는 놈을 처리하는구나.” 온객행은 그저 소년의 말에 동의하며 말을 줄였다.
소년이 다시 물었다. “그래서 중독이야 독살이야?” 온객행이 소년을 보며 말했다. “중독?” 소년은 온객행을 힐끔 보더니 말했다. “기왕처럼 말이야.” 온객행은 기왕이 중독되었다는 사실은 몰랐다. 황실에 연금되어 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다는 풍문을 주워들은 적이 있다. 황후가 마시게 한 술이 대체 어떤 술이기에 중독이 된 것일까? 어쩌면 황후가 일을 꾸민 그 날 처음 마신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강호의 술이라고 했으니 어떤 복잡한 술법이든 독이든 섞인 술이었을 것이다. 온객행은 그것이 어떤 술인지 알아내기 위해 말했다. “그래 기왕처럼.” 그 말에 소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년은 잠시 생각하는 것 같더니 침실을 나갔다.
다시 돌아온 소년의 손에는 작은 호리병이 들려 있었다. 밀랍으로 봉해져 있는 그 병을 온객행에게 주며 소년이 말했다. “앵속(양귀비)의 진액만 모아 굳힌 것이네. 용량은 그대도 알겠지만 조심하지 않으면…” 온객행이 병을 흔들자 안에 들어있는 환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앵속이었군.’ 앵속은 남방에서는 흔히 쓰이는 약재였지만 중원에서는 아직 사용이 많지 않았다. 게다가 앵속은 용량에 상관없이 중독성이 있어서 치료 후에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고통스러운 부작용이 따랐다. 기왕이 앵속에 중독된 것이라면 황후가 해달라는 것은 무엇이든 해주었을 것이다.
소년이 말을 이었다. “앵속의 진액뿐만 아니라 전갈의 맹독이 미량 포함되어 있으니 관리는 물론 취급에 주의하지 않으면 너도 위험할 거야.” 소년의 말에 미소를 지은 온객행이 병을 품속에 넣고 포권하며 말했다. “보잘 것 없는 소인의 목숨까지 걱정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소년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 보잘것없지. 나는 영원히 보잘것없을 생각은 없어.” 소년의 말에 온객행이 말했다. “그대 들어보지 못했나? 세속에서 귀천은 스스로에게 있는 것이 아니네.”(58) 그 말을 하면서도 온객행은 주자서가 해준 말을 떠올렸다. ‘사람의 기준으로 사람의 쓸모를 정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그랬지. 아서가 그렇게 말했었지.’ 온객행의 입꼬리에 미소가 걸렸다.
소년은 그런 온객행의 표정을 말없이 보고 있다가 그에게 다가와 앞섶을 헤치며 말했다. “나는 세속에 사는 사람이지 도를 닦을 마음은 없어. 그대 들어보지 못했나? 작은 도적은 잡히고 큰 도적은 제후가 된다는 말?”(64) 자신의 앞섶을 헤치는 소년의 손을 잡은 온객행이 놀라 소년을 보았다. “귀한 신분은 훔쳐서 얻으면 되는 거야” 소년의 말에 온객행이 그의 손을 뿌리치며 방문으로 걸어갔다. “나는 도를 닦는 놈이니 만물에 귀천이 없소.”
소년은 방금 온객행이 앉아 있던 침상에 풀썩 쓰러지며 다시 몸짓과 말투를 꾸몄다. “어떤 것이 추하고 어떤 것이 아름다운 것인지 알 수 없다. 성공하면 우두머리가 되어 존경받고 성공하지 못하면 꼬리가 되어 천대받으니….(64) 공자, 소녀는 이번에 꼭 성공해야겠습니다.” 온객행이 얼굴을 찌푸리자 소년이 다시 말했다. “걸왕의 개는 요임금께도 짖는다 하니 각자 잘 처신하도록 합시다.”(65) 소년이 살포시 웃었다. 그 모습이 예쁘기도 또 처연하기도 하여 온객행은 기분이 이상해졌다.
온객행은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는 소년이 흩어 놓은 앞섶을 잘 여미며 초무관을 나왔다. 초무관을 나오는 내내 2층 내실에서 들리는 월금 연주는 사람들의 발길을 잡았다. 여자 옷을 입고 있던 그 소년은 아마도 채미공자는 아닌듯하다. 익주장사 사마헌에게 악의를 보이는 것으로 보아 이들도 익주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알고 있는 것 같다. 배위에서 보았던 사마헌은 황제가 아끼는 신하들과 가까이했다. 황제의 내종형제이자 유격장군인 사마량(司馬量)과 대부분의 연회를 함께 했다. 연회준비를 도운 듯한 낭야왕과는 인사만 할 뿐 어떤 대화도 하지 않은 것 같다. 그것이 참 이상했다.
사마헌은 지금의 황제가 등극하기 전부터 낭야왕 사마운(司馬云)의 총신이었는데 말이다. 대체 무엇이 사마운과 사마헌의 사이를 갈라 놓았을까? 아니면 서로의 거동을 조심하는 것으로 보아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천금처럼 비싼 독약을 의심없이 내준 것은 정말로 이상한 일이다. 온객행은 괜히 두리번거리면 의심을 살 것 같아 그대로 걸어 낙양성 밖으로 나왔다. 누군가 그의 뒤를 쫓고 있었는지 온객행이 숲속으로 사라지자 검은 옷과 복면을 한 남자들이 우왕좌왕 온객행을 찾았다. 나무위에 앉아 그들이 지나갈 때를 기다린 온객행이 하늘을 보니 기울어가는 달이 보였다. “저 하늘 해와 달은 오늘도 동녘에 떠오르건만, 어찌해야 님의 마음잡을까요? 내게는 차갑기만 하니…”(21)
엽백의는 평락원을 나오면서 귀족들의 이야기는 나중에 주구전에게 묻기로 했다. 천자가 귀한 이유를 모르는 자들이 자신의 안위를 돌보느라 바쁜 것을 보고 있으면 화가 치밀어 주화입마에 빠질 것 같다. 엽백의는 이 일에 확실하게 관여하고 있는 화산파와 태호파의 입장을 알고 싶었다. 아직도 그들이 숭산에 있을지 아니면 예주로 양주로 돌아갔는지는 알 수 없다. 엽백의는 발을 놀려 숭산으로 향했다.
엽백의가 알기로 강호에서 연맹을 맺은 정파들은 어쩐지 모두 황실과 연관이 있었고, 그리고 그 황실과 연관이 있는 인사들은 모두 무고와 관련이 있었다. 당시 서국공 주희가 무고를 찾은 것은 사계산장의 소장주였던 진회장과 형주 악양성의 악양파의 장문후계 고숭(高崇) 덕분이다. 정확하게 무고의 위치를 알고 있는 것은 그것을 조사했던 서국공 그리고 그가 무고를 찾는데 그를 도운 청성곡 마을 주민 정도가 다이다. 추후에 황제에게 보고서를 올렸다면 아마 황제도 대략적인 위치를 알고 있을 것이다. 알 수 없는 것은 당시 서국공과 함께 무고를 찾아 헤매던 군관 중에 살아남은 이가 아무도 없다. 하다못해 병졸 중에도 없다.
추후에 서선공의 일가가 사망하고 그의 재산은 그 행방이 묘연하다. 주희에게는 형제자매가 있었는데 그들은 주희의 출신인 기주 낙릉에 집성촌을 이루어 거주하고 있다. 그의 매부인 장순(張純)은 태산지역의 태수를 하고 있다. 그가 주희의 인척 중에 주희를 제외하고 가장 높은 지위를 가졌다. 주희는 이룬 업적에 비해 주변에 총신이라 부를 만한 사람을 두지 않았는데 일부러 그런 것인지 아닌지는 이제 와서 알 수 없다.
애초에 현재 황제와의 소원한 관계로 금위군 장군임에도 불구하고 도성을 떠나 있는 날이 더 많았다고 하니 모두 천자의 눈치를 보느라 서선공을 고립시킨 것일 수도 있다. 그는 부마인데 어째서 그의 지위에 맞는 대접을 받지 못한 것일까? 주구전의 말 대로 강호에서 알지 못하는 황실의 사정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엽백의는 머리가 아파왔다. 이런 권모 술수에 관련된 이야기는 엽백의가 멀리하고 싶어하는 사정이다. 황실의 연원도 어찌 보면 개인의 사소한 연원인 것을 그것으로 전쟁을 하고 잇속을 챙기는 것은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도 질린다.
사계산장 사람들은 주구전처럼 ‘허허허’ 웃는 얼굴로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며 마음을 산다. 정보의 본질에 다가가지도 않으면서 잘도 찾아낸다. 그들의 무공은 낮지도 그렇다고 다른 무림 정파에 비해 그다지 높지도 않다. 사람들이 웃으며 흘리는 아주 작은 조각을 주워서 그럴듯하게 맞춰낸다. 그렇게 모은 정보는 돈을 주고 산 정보보다 더 자세하고 실용적이다. 그들의 정보는 권모 술수라고 부를 만한 것들이다. 그러니 주구전이 폐관수련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제자들의 출입을 제한하고 강호와의 거리를 벌린 것이다. 어쩌면 사계산장은 이미 예전에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엽백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 쥐고 일단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청성곡의 일은 황실의 일과 관계가 없는 줄 알았지만 강호에서 나타난 새로운 세력인 그 무림맹은 어째 무고와 관련된 자들이 대다수 연결되어 있다. 황실과 관여하여 무엇을 약속 받았는지 알아내면 관련된 문파를 찾는 것도 수월할 것이다. ‘성난 벌집쯤이야 태워버리면 그만인 것을.’ 엽백의는 화산파의 우달이 아직도 숭산에 있는지 궁금했다. 개방의 장로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렇게 관련자들이 굳이 찾아갈 필요없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면 엽백의의 일은 쉬워지는 것이다. 개방 장로가 두명이나 숭산을 방문했는데 아무런 기별이 없는 개방도 의심스럽다. 중놈들과 먼저 상황을 맞춰본 후에 다음일을 도모해야 할 것 같다.
온객행은 끈질긴 추격에 노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침이 되어서 관도에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났고 검은 복면을 쓰고 검은 옷을 입은 자들은 모두 그 자취를 감추었다. 아니면 복면을 벗고 온객행을 찾고 있는 지도 몰랐다. 온객행은 얼른 공의로 발걸음을 옮겼다. 중명원으로 가면 혹시 아서를 만날 수 있지는 않을까 생각했다. 중명원에 도착한 온객행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하인들은 다행히 온객행을 기억하는지 그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이상하게 주구전과 주자서가 그들을 찾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며 그들의 짐을 온객행에게 주었다.
온객행은 주구전과 주자서의 짐을 들고 그들이 마차와 말을 맡겨 놓은 마구간으로 갔다. 하지만 그들은 마구간에도 오지 않았다. ‘일부러 짐을 찾지 않았나?’ 온객행은 마구간 옆에 주저 앉아 생각했다. 한시진이나 앉아서 주구전과 주자서를 기다렸지만 그들은 마구간으로 오지 않았다. 오시 넘어서야 온객행은 마구간에서 나와 시장으로 갔다. 단지에 들은 모과 절임을 들고 평안 은장으로 들어갔다. 서신에 ‘錦(금; 비단)’이라고 쓴 뒤에 사계산장으로 보냈다. 모과 절임이 동나기 전까지 꼭 아서를 만나러 가겠다고 생각했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짐에 들어있던 호복을 꺼내 옷을 갈아 입고 길게 늘어뜨린 머리도 올려 묶었다. 거기에 봇짐을 둘러 매니 평범한 시골뜨기로 보였다. 온객행은 초무관과 관련된 문파에 대해 조사하기로 했다. 엽백의에게 전해 들었던 청성곡의 상황을 보면 청성곡에는 간자가 있었다. 마을에서 축대를 쌓는 일은 우기를 보내는 도중에 가장 중요한 일이다. 청성곡이 자리를 잡고 십 수년간 일어나지 않았던 산사태가 그날 일어났다. 비가 많이 온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게 큰 비는 예전에도 있었다. 그 산사태는 청성곡 사람들의 죽음을 묻기 위해 조심스럽게 계획된 일이다.
장공은 복수를 원하지 않았다. 그저 딸의 시신을 잘 수습했으면 된 것이라고, 하지만 장공이 돌아가시고 나니 엽백의는 크게 휘청거린다. 내가 그 노야에게 놀아나는 것인지 아니면 노야가 내게 놀아나는 것인지 아니면 둘 다 아닌 다른 사람에게 휘말리고 있는 것인지 이야기를 종합할 필요가 있다. 엽백의를 찾는 것이 우선이다. 온객행은 다시 장명산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 때문에 일단 소림사에 가서 엽백의를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직도 정파의 주요 인물들이 그곳에 남아 있다면 무언가 더 캘 수 있는 내용이 있을 것이다.
공의에서 숭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꽤 한산했다. 날이 따뜻해서 들짐승이 자주 출몰한다 하니 뭉쳐서 산을 넘는 사람들이 많았다. 온객행은 해가 거의 넘어 갈 때 즈음 소림사 산문에 도착했다. 달라진 온객행의 모습을 알아보지 못한 스님들은 그에게 무슨 일로 찾아왔냐고 물었다. 온객행은 장명산 검선의 제자라고 소개하자 그들은 순순히 그를 대웅보전으로 안내했다. 법당에는 나이가 지긋한 회주와 법주 그리고 아직 떠나지 않은 문파 장문인들이 앉아 있었다.
지주가 보이지 않아 두리번거리자 도감 혜림이 온객행에게 반장하여 인사하며 다가왔다. “아미타불, 온공자!” 도감스님은 온객행을 데리고 법전 뒤쪽에 앉으며 물었다. “온공자,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하늘의 색이 바뀌다니…” 온객행도 공손히 포권하고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스승님께서 소림사에 계십니까?” 도감스님이 온객행을 보며 말했다. “알고 오신 것이 아닙니까? 상선께서 공자께 시키신 일이 있다 들었습니다.” 온객행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감스님은 온객행에게 괜히 묻지도 못하고 안절부절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웅보전 안으로 태호파 장문의 사위인 조경이 불편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그를 데리고 온 스님은 조용히 온객행에게 다가와 그를 데리고 자운당으로 향했다. 자운당 안에는 주지 여운과 악양파의 후계 고숭 그리고 엽백의가 앉아 있었다. 온객행은 눈치를 흘끔 보고 포권하여 인사한 뒤에 자리에 앉았다.
엽백의가 온객행에게 눈치를 주었다. 상황을 보니 입을 열지 않는 편이 좋은 듯했다. 엽백의가 말했다. “고소협은 무고에 대해 알고 있소?” 고숭이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것은 왜 물으시는지요?” 엽백의가 말을 이었다. “지금 강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과 관련이 있는 일입니다.” 주지와 엽백의의 눈치를 한참 본 고숭이 입을 열었다.
고숭과 그의 의형제 장옥삼은 10년전 진회장과 주희가 강호를 떠돌 때 그 길을 함께 했던 자들이다. 장옥삼(張玉森)은 양주 파양호 근처에 경호파(鏡湖派) 장문의 아들이다. 고숭은 한참 뜸을 들이며 말했다. 뭔가 떳떳치 못한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그들이 익주의 무고를 찾는 동안 진회장의 처에게 태기가 있어 진회장은 먼저 양주로 돌아가고 남아 있던 고숭과 장옥삼 그리고 서국공 주희는 월수와 운남 근처를 수색했다고 한다.
청성곡 근처에서 결국 무고를 찾아내고 만 것이다. 고숭은 또 한동안 안절부절 못하더니 말했다. “그 곳은 마교와 관련이 있는 곳으로 보였습니다. 저희는 찾았다는 기쁨에 바로 서국공께 알리고 다음날 무고를 열었습니다. 하지만 무고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마교를 숭상하는 자들이 제단을 만들어 흉악한 짓을 일삼았던 곳인 것 같았습니다. 서국공은 몇 일이나 그곳을 둘러보고 나서 저희에게 이 일에 대해 알리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엽백의가 그 말을 듣고 혀를 찼다.
“고소협은 서국공이 낙양에서 비명을 달리했다는 것을 아시오?” 깜짝 놀란 고숭이 엽백의를 보며 말했다. “서국공께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반응으로 보면 고숭은 주희에게 일어난 일을 모르는 것 같았다. 엽백의가 물었다. “그 일에 대해 알고 있는 자는 고소협과 장옥삼 둘뿐이오?” 고숭이 얼굴을 찌푸리며 대답하지 못하자 엽백의가 말했다. “혹 청성곡에 은혜를 입지 않았소?” 고숭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무릎 꿇고 말했다. “악양파 소장주 고숭 상선께 사실을 고하겠습니다.” 무고는 청성곡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들은 그곳을 수색하면서 청성곡에 머무른 것이다. 무고를 찾아낸 것도 그들의 도움을 받은 것이다.
엽백의가 고숭을 쏘아보며 말했다. “청성곡이 물난리를 겪었을 때 그대는 어디 있었소?” 고숭은 이제 벌벌 떨며 말했다. 무고의 일을 없던 일로 하자며 다시 낙양성으로 돌아갈 것을 결정한 후에 그들은 며칠 더 청성곡에 머물렀다고 한다. 견곡주는 곧 우기라 비가오기 시작하면 산을 나가는 것이 곤란하다며 그들의 길을 재촉했고 견곡주의 말에 따라 그들은 곧 청성곡을 떠났다고했다.
그리고 그들이 떠나고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서국공의 일행이 부성에 도착했을 때 청성곡의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엽백의가 미간을 찌푸렸다. 시간이 맞지 않는다. 청성곡의 비극은 그들이 떠난 다음날 일어났다. 엽백의가 물었다. “청성곡의 일은 누구에게 들은 것이오?” 고숭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넙죽 엎드렸다. 온객행이 고숭을 한참 몰아붙인 후에야 고숭이 답했다.
(64) 장자 잡편 29 도척
小盜者拘, 大盜者爲諸侯
작은 도적은 잡히고 큰 도적은 제후가 된다.
孰惡孰美? 成者爲首, 不成者爲尾 어떤 것이 나쁘고 어떤 것이 아름다운지 알 수가 없다. 성공을 하면 우두머리가 되어 존경받고, 성공하지 못하는 자는 꼬리가 되어 천대받게 된다.
(65) 한서 추양열전
桀犬吠堯, 堯非不仁, 特吠非其主耳
걸왕의 개가 요임금을 보고 짖는 것은 요임금이 어질지 못해서가 아니라 단지 주인이 아닌 자를 보고 짖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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