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花柳東風
꽃과 버들 그리고 봄바람.
등잔에 불을 끄고 주자서가 잠드는 것을 지켜본 온객행은 엽백의를 찾으러 밖으로 나갔다. 주구전의 말에 따르면 강호와 작당을 하고 있는 것은 진왕이 아니라 조왕인 것 같았다. 진왕 주변에도 의심스러운 사람이 많기는 했지만 일단은 엽백의를 장명산 밖으로 끌어낼 수 있게 만든 일에 대해 조사하는 것이 먼저다. 가벼운 경공으로 객실 지붕위로 올라간 온객행은 주변을 살피며 주방으로 갔다. 평소와 달리 주방에 불이 밝혀져 있어 조심스럽게 다가간 온객행은 남은 찬에 술을 마시고 있는 엽백의와 주구전을 만났다. “노인네 뱃속에 거지가 들어 앉아 있나?” 온객행의 말에 잔을 부딪히던 두 노인네가 온객행을 보았다.
엽백의가 말했다. “네 시조부에게 못하는 말이 없구나.” 그 말에 주구전이 얼굴을 찡그리며 한숨을 쉬었다. 온객행이 두 노인이 앉은 자리 옆에 쪼그리고 앉아 말했다. “아무래도 헛물을 켠 것 같소. 노야.” 엽백의가 잔에 술을 채우며 말했다. “비린 것을 찾고 서로 피를 빨려 하니,(53) 죄가 있는지 없는지도 구분하기 힘들구나.” 주구전이 술잔을 내려 놓으며 말했다. “엽선배 아무래도 남궁세가와 관련이 있는 것 같으니 어서 여기 일을 정리하고 양주로 돌아가 봐야겠습니다.” 엽백의가 술잔을 비우고 말했다. “하하하, 그게 너의 뜻대로 될 성싶으냐?” 주구전이 술잔을 채우며 다시 ‘어휴’하고 한숨을 쉬었다. 보고 있던 온객행이 물었다. “천자께서는 뭐라고 하시오?” 엽백의는 온객행을 힐끔 보고 고개를 저었다. 온객행은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다물었다.
그날 밤 온객행은 낭야왕의 배 안을 뒤졌다. 내일 낚시를 하며 연회를 하는 배 치고는 지키는 사람도 몇 없었고 배의 상태도 별로 좋지 않았다. 내부는 비어 아무것도 없었고, 누각에는 이런 저런 짐이 잔뜩 실려 있었다. 온객행이 짐을 뒤지자 대부분의 물건은 제남상단에서 구매한 물건 같았다. 그들은 그들이 판매하는 물품에 노란 종이를 붙여 인을 했는데 그 것이 짐 여기저기에 붙어 있었다. 내일 연회에 쓰일 식재료와 술이 대부분이었다. 배를 꾸미는데 쓰는 천과 비단도 몇 필 있었는데 이것은 삼백상단의 물건이다.
양주의 제일 큰손은 오(吳)에 태호파다. 삼백상단은 태호파가 운영하는 상단인데 오와 단양, 고장 신도지역은 예로부터 뽕나무가 많아 비단이 유명했다. 제남상단에서 구매한 것인지 아니면 직접 삼백상단에서 구매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짐에서 묘하게 강호의 냄새가 났다. 남궁세가도 태호파와의 관계를 중요시하고 있으니 아직 모르는 관계가 있을 것이다. 공의에서 진왕은 초무관이라는 기생집에 자주 드나 들었는데, 그곳은 화산파가 아니라 태호파와 관련이 있는 듯했다. 그곳을 호위하고 관리하는 곳은 화산파가 맞았으나 그들의 장부에는 태산파의 낙계(烙契)와 삼백상단의 날인이 있었다.
배를 지키는 사람들의 얼굴을 살펴본 뒤 온객행은 평락원으로 돌아왔다. 노야는 다른 처소에 머무르는지 객실로 돌아왔을 때는 주자서만 침상 위에서 자고 있었다. 천천히 침상 쪽으로 가서 보니 이불에 곱게 쌓여 잠든 주자서가 보였다. 온객행은 침대에 걸터앉아 잠든 주자서의 얼굴을 보았다.
시작은 장난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당황하고 놀라는 반응이 귀여워서 놀리려고 그랬다. 하는 행동이 군자 마냥 뻣뻣하고 아정한 것이 부럽기도 했다. 인상을 쓰고 있는 주자서의 미간에 손가락을 데어보았다. 얼굴을 조금 더 찡그리더니 고개를 돌린다. 온객행은 그것이 아쉬워 ‘아’하고 작게 탄식했다. 침상에서 일어나 평상을 보니 주자서의 옷과 신발이 보였다. 옷은 잘 개서 평상위에 올려 두고 온객행도 장포를 벗어 그 옆에 개어 두었다.
주자서의 신발을 들고 침상으로 가서 그 옆에 놓아주고 온객행은 신발을 벗었다. 몸을 말고 자는 주자서 주변에는 몸을 뉘일 곳이 많았다. 온객행은 주자서가 뒤척이는 소리에 숨까지 멈추고 그 것을 보다가 조심스럽게 이불 안으로 들어갔다. 팔을 굽혀 고개를 괴고 한참 주자서의 얼굴을 보다가 어떻게 잠들었는지 모르겠다.
이불 속에서 눈을 뜬 주자서는 따뜻한 벽에 머리를 기대고 있었다. 숨쉬기가 힘들어서 이불 밖으로 고개를 들었는데 배게 위에 사람의 머리가 보인다. 주자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자신의 몸 가짐을 추슬렀다. 왜 그렇게 했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했다. 이불을 걷어보니 온객행은 중의를 입고 있었고 주자서는 내의를 입고 있었다.
놀란 가슴을 쓸며 한숨을 쉬자 온객행이 추웠는지 주자서가 걷어낸 이불을 끌어 다가 덮었다. ‘이제 이불 안으로 들어오시겠다?’ 주자서는 누워 자고 있는 온객행을 빤히 보다가 조심스럽게 몸을 넘어 신발을 신었다. 온객행이 ‘끄응’ 잠투정을 했다. 평상 위에 곱게 개켜진 자기 옷과 온객행의 옷이 나란히 있었다.
으슬으슬한 아침공기에 주자서가 진왕이 지어준 옷을 다시 주워 입었다. 원래 입고 왔던 옷은 중명원 하인들이 빨아준다고 공의에 두고 왔기 때문에 다른 선택지도 없었다. 언제 일어났는지 온객행이 주자서가 옷 입는 것을 구경하며 입을 열었다. “아서 아직 밖이 어두운데 조금 더 자자.” 주자서는 대답하지 않고 물동이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주자서가 물을 길어 다시 객실로 들어오자 온객행은 옷을 다 입고 머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주자서 손에 들려 있는 물동이를 받아서 물독에 옮겨 담더니 대야에 물을 받아 수건을 적셨다. 주자서가 본인은 우물가에서 씻고 왔으니 어서 씻으라며 의자에 앉았다. 수건을 잘 짠 뒤에 그 물에 손과 얼굴을 씻은 온객행이 주자서 옆에 와 앉았다. “아서, 왜 그래…”
온객행이 울상으로 묻자 주자서가 말했다. “노온…, 나는 생각을 해보겠다고 했지….” 온객행이 주자서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초야부터 치렀다고 하면 되잖아.” 주자서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온객행은 주자서가 정말 서시가 아닐까 잠깐 생각했다. 온객행이 손가락으로 주자서의 미간을 문지르며 말했다. “아서 당연히 찡그린 얼굴도 너무 예쁘지만 나는 아서 웃는 얼굴이 더 좋아.” 온객행의 손을 뿌리친 주자서가 말했다. “노온, 내외가 유별하거늘 어찌…” 온객행이 ‘어휴’한숨을 쉬고 말했다. “알겠어 아서가 하라는 대로 할게. 그러니까 화내지 마.”
웃는 온객행의 얼굴에 한껏 누그러진 주자서가 말했다. “그대가 진심이라는 것은 알았으니, 내게 시간을 주시오. 그 전까지는 서로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지 입을 맞춥시다.” 그 말에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다가왔다. 주자서는 온객행의 얼굴을 밀어내며 말했다. “말을! 말을 맞추어 봅시다.” 아쉬운 듯 온객행이 입맛을 다시고 물었다. “그 시간이라는 것은 언제까지를 말하는 거야? 내일? 모레? 글피?”
주자서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나는 정을 나누어 본적이 없다고 말하지 않았소? 그러니 그보다는 시간이 더 필요하네. 달포를 주시게.” 온객행이 놀라며 말했다. “그렇게 오래? 안돼! 그 사이 다른 놈이 아서한테 수작질하는 꼴은 못 봐!” 주자서는 그런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도성에서 겪은 일 때문에 그러지도 못했다. 온객행을 흘끔 보고 말했다. “알겠네 그럼 보름은 어떠 한가?” 온객행이 눈썹을 늘어뜨리고 말했다. “보름이나? 나를 좋아하는데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린다 말이야?”
주자서가 앞섶에서 온객행이 준 요패를 꺼내며 말했다. “기다리지 못하시겠거든 정표를 다시 주시게.” 온객행은 정표가 든 주자서의 손을 양손으로 붙잡고 밀어 넣으며 말했다. “신첩이 부족한 것이니 성내지 마시어요 서방님.” 온객행의 말에 주자서가 다시 미간을 찌푸렸다. “아직 기러기도 주지 않았고, 합환주도 마시지 않았으니 우린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소.” 온객행이 버럭 말했다. “어제 한 침상에서 밤을 보냈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 아서!” 온객행의 소리에 맞춰 주구전이 어두운 표정으로 객실 안으로 들어왔다.
주구전은 온객행과 주자서의 얼굴으 돌아가며 빤히 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부산스러운 하인들의 움직임에 주자서는 주구전의 손에 이끌려 평락원 하인들을 도왔다. 객실에 홀로 남은 온객행은 침상에 벌렁 누워 눈을 붙였다. 인기척이 느껴져 눈을 떠보니 엽백의가 탁상 앞에 앉아 있었다. “온가야. 허튼 짓은 시작도 안 하는 게 제일 좋다.” 옆으로 돌아누워 고개를 괴며 온객행이 말했다. “노야는 걱정 말고 맡은 일이나 하시오.”
엽백의가 일어나 온객행이 있는 침상으로 왔다. “아무래도 정말 큰 일이 생길 것 같다.” 진지한 엽백의의 얼굴에 온객행이 몸을 일으켜 앉았다. 온객행은 어젯밤 하구에서 조사했던 낭야왕의 배에 대해 이야기했다. 엽백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당장 죽지는 않겠구나.” 라고 말한 엽백의가 온객행을 보았다. “허튼 짓은 시작도 안 하는 게 제일 좋다.” 같은 말을 두번이나 한 엽백의는 훌쩍 방을 나갔다. 온객행은 침상에서 일어나 엽백의가 나간 문을 보았다. 천자는 사시가 되기전에 집을 나설 것이다. 객실에서 나와 내원을 이리저리 기웃거리던 온객행의 눈에 저 멀리 외실 근처 사당에서 유생들의 일을 돕는 주자서가 보인다.
온객행은 할 일이 없어 근처를 어슬렁거렸다. 유교사원에서 보낸 도사와 유생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오늘 낮에 낚시를 하고 밤에 사당에서 제사를 지낼 모양이다. 그리고 내일 오전에 강 하구에 제단을 마련하여 백성들이 볼 수 있게 한번 더 풍년을 기원하고 구경하러 온 사람들에게 떡을 나누어 주겠지. 온객행은 떡이 먹고 싶어 주방으로 갔다.
그곳에는 주구전이 의자에 앉아 제사 음식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말에 맞춰 하인들이 찬합에 음식을 담았다. 아침 식사 전이었던 온객행은 주방 문간에 서서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을 구경하다가 떡을 찌는 시루를 지키고 있는 어멈에게서 시루에 붙은 떡고물을 얻어먹었다.
유교 사원에서 보낸 도사들은 모두 어디 가고 주구전이 앉아서 지시를 하는지 모르겠다. 외실에는 낚시를 하러 가기 위해 모인 귀족들이 모여서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몇은 평락원에서 지냈고 또 몇은 새로 온 것 같았다. 황제가 주관하는 풍년제는 정확히 말하면 내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두가 모이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 엽백의와 주구전을 부르지 않은 것을 보면 아마 간단히 조회를 하려는 모양이었다. 궁금할 이야기도 없으니 온객행은 외실에서 내실로 이어지는 근처에 있는 화원에서 꽃을 구경했다.
두견화일지 연산홍일지 꽃망울이 터진 분홍색의 꽃이 곱다. 그곳이 사당 근처였는지 도사들이 가지고 온 이런 저런 상자가 여기저기 쌓여 있었다. 상자를 유심히 보니 제남상단의 노란종이가 보였다. 이상한 일이었다. 유교사원에서 사용하는 물건은 대체로 관에서 허가한 상인들의 물건을 사용하는데 어째서 강호의 상단인 제남상단의 종이가 붙어 있는 것일까? 온객행은 별 생각없이 내원을 구경하며 걸었다. 가끔 유생들의 짐을 번쩍번쩍 들어 옮겨주는 주자서가 눈에 걸리면 자리에 멈춰서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조왕의 초대는 정말인지 아니면 그냥 놀리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어젯밤 황제가 엽백의와 주구전을 낚시대회에 초대한 것 같았다. 아침식사와 조회를 마친 귀족들이 하나 둘 황제에게 인사하고 평락원을 나갔다. 아마 하구에 가서 미리 준비할 것이 있는 모양이다. 조왕은 어디 갔는지 아침 일찍부터 보이지 않았고 진왕만 황제 옆에 앉아 있었다.
온객행은 주구전의 부름에 주방에서 음식을 나르는 것을 도왔다. 낚시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찬에 쓰인 물고기가 다양하다. 몇 종류는 익주나 양주에서만 잡을 수 있는 물고기도 있었다. 다과는 또 얼마나 소담하고 예쁜지 색색깔의 떡이 먹음직스러웠다. 아직 봄이 오지 않은 것 같은데 황제의 식탁에는 계절이 없는 듯했다.
주구전이 도사들과 유생들에게 한참 잔소리를 하고 있을 때 엽백의가 손에 짐을 들고 들어왔다. 엽백의는 주구전과 주자서를 불러 옷을 갈아 입혔다. 엽백의와 온객행이 입은 것과 비슷한 하얀 무명 옷이다. 저 노인네가 하는 일은 하나하나 다 이해할 수가 없지만 그래도 결과적으로 해가 되는 일을 하지 않으니 그냥 그러 한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주자서에게 다가가 ‘부군 시중을 들어드릴까요?’ 라고 물었다가 엽백의와 주구전에게 눈총을 샀다.
엽백의가 가져온 옷은 원래 온객행의 옷이었는지 주구전에게는 조금 작았고, 주자서에게는 조금 컸다. 주자서의 요대에 매인 주목 요패를 보자 온객행은 기분이 좋아졌다. 평락원을 나와서야 황제가 정말 정주에 왔구나 하는 것을 실감했다. 평락원 주변뿐만 아니라 저 멀리 보이는 성문 근처에도 계급이 높아 보이는 군관들이 보였다. 괜히 두리번거리는 온객행의 소매를 잡아 마차에 태운 것은 주자서다. 온객행과 주구전이 먼저 타고 온객행이 탄 다음에 주자서가 탔다.
하구까지는 마차로 이동해야 할 만큼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군관이 이미 준비한 마차를 거절하는 것도 모양이 이상하여 엽백의는 ‘흠’하고 시키는 대로 따랐다. 노야가 순순히 구는 것을 별로 본적 없는 온객행은 괜히 겁이 났다. 큰 일이 일어날 것 같다고 했으나, 오늘이 아니라는 말도 했으니 걱정할 것은 없었지만, 원래 세상 일이라는 것이 항상 뜻대로 되는 일은 없으니 말이다. 진왕과 황제를 태운 마차는 사시가 되자 마자 출발했으니 벌써 하구에 당도했을 것이다. 마차 안에 앉은 사람 중에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군관이 늘어선 거리를 구경하며 마차에 실려 하구에 도착했다.
황제는 이미 승선했는지 하구 주변이 조용했다. 평소에 부두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온객행이 마차에서 내리려고 하자 주자서가 온객행의 소매를 잡고 고개를 저었다. 주자서가 휘장을 열어 밖을 보니 이제 막 도착하기 시작한 귀족들의 마차가 보였다. 주자서는 마부에게 뭐라고 말하더니 다시 마차 안에 와서 앉았다. 부두근처에 나룻배를 대놓은 곳에 마차를 세우자 주자서가 주변을 살펴보며 내렸다.
온객행이 따라 내리려고 하자 주구전이 그를 막았다. 영문을 몰라 멀뚱히 앉아 휘장을 걷어 주자서를 보았다. 주자서는 저 멀리 황제가 탈 배 근처에 내관을 찾아 공손히 인사하더니 또 뭐라고 말했다. 내관이 주자서에게 인사하고 승선했다. 하나 둘 사람들이 모두 모였는지 배가 출항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조왕이 다급하게 내려와 주자서의 팔을 잡았다. 난처한 듯한 주자서의 모습에 온객행이 마차에서 내렸다.
주구전이 ‘쯧’하고 혀를 찼다. 온객행이 다가오는 것을 본 조왕이 말했다. “온공자께서도 오셨습니까? 자 어서 배에 오르시지요.” 온객행이 포권하여 인사하며 말했다. “조왕전하 스승님께서 아직 승선하지 않으셨는데 어찌 제가 감히…” 조왕이 주자서의 팔을 놓으며 말했다. “예를 거두시오. 상선께서는 어디 있소?” 온객행이 마차 쪽을 보자 조왕이 그쪽으로 갔다. 주구전과 엽백의도 조왕이 도착하기 전에 마차에서 내려 조왕에게 인사했다. 조왕의 안내를 받아 네 사람은 결국 황제가 탄 그 배를 타고 말았다.
황제는 갑판에 있는 제일 높은 누각에 올라 앉아 있었고 그 아래 진왕이 황제의 시중을 들었다. 귀족들은 그 근처에 자리를 하나씩 차지하고 앉아 데려온 하인들에게 낙시대를 걸게 했다. 새하얀 옷을 입은 그들은 짙은 색깔의 비단 옷을 입은 귀족들과 대비되었다. 황제는 정말로 낚시를 할 모양이었는지 배의 갑판에서 연회를 열었다. 악사들이 선실에서 하는 연주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조왕이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상황을 보고 받는 것으로 보아 이 연회는 황제가 조왕에게 시킨 일 같았다.
온객행이 귀족과 인사를 하고 있는 조왕을 보다가 엽백의를 곁눈질로 보았다. 하인이 가져온 낚시대를 받은 엽백의는 낚시대를 강으로 드리우기 전에 낚시 바늘을 뺐다. 그가 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주구전도 똑같이 낚시 바늘을 빼고 낚시대를 드리웠다. 하인들이 안주상을 담은 찬합을 가지고 갑판으로 올라왔다. 황제가 술잔을 들어 연회를 시작했다. 갑판에 나와 앉아 있던 귀족들이 모두 일어나 황제와 함께 술잔을 들었다. 엽백의와 주구전도 술잔을 들어 술을 마셨다. 황제는 물고기를 제일 많이 잡은 사람에게 상을 내리겠다 한다.
하나 둘 낚시대를 걸고 낚시를 시작하자 엽백의와 주구전도 술병을 들고 걸어 놓은 낚싯대 근처에 가서 앉았다. 주자서가 주구전의 시중을 드는 것을 본 온객행이 엽백의 옆으로 가서 공손히 무릎 꿇고 앉아 시중 드는 척을 하였다. 제일 첫 물고기는 이 배의 주인인 낭야왕 사마운이 잡았다. 손바닥 만한 붕어를 낚고 좋아하는 모습이 어색하다. 곧 상기상시 석중과 후장군 왕개도 그 뒤를 이었다. 온객행은 주변을 살피며 누가 누구와 관계하는지 보고 있었다.
숭산에서 만났던 태보는 황제 근처에 앉아 황제와 술을 마셨고, 태보와 함께 숭산에 왔었던 후장군 왕개는 유격장군의 좌장사인 사마헌과 상서령 배회와 이야기하고 있다. 서로 웃는 낯으로 이야기하는 그들이지만 평소에 어떤 사이인지는 잘 알지 못하니 최대한 갑판에 나와있는 사람들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해 두어야 했다.
두리번거리고 있는 온객행 옆으로 주자서가 다가와 찻잔을 내밀었다. 온객행은 그 찻잔을 받으며 기분이 좋아졌다. “아서. 이게 뭐야?” 주자서가 온객행의 옆에 앉으며 말했다. “벽라춘” 온객행이 잔을 들어 맛보았다. 부드러운 맛과 코끝에 남는 꽃향기가 일품이다. 잔을 비운 온객행이 주자서를 향해 웃었다. 주자서도 잔을 들어 목을 축였다.
물고기를 제일 많이 낚은 사람은 태보인 강상이었다. 엽백의와 주구전은 낚시바늘을 빼놓았으니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유시가 될 때까지 커다란 물동이 3개가 가득 찰 만큼 물고기를 잡았다. 황제가 매우 기뻐하며 태보에게 궤장을 상으로 내렸다. 황혼이 내려 앉을 즈음 황제가 탄 배는 정주 하구로 다시 돌아왔다. 엽백의와 주구전은 사람들이 모두 내릴 때까지 갑판에 앉아 술을 마셨다. 그 옆에서 주자서가 조용이 시중을 들었고 온객행은 배를 내리는 귀족들을 난간에 기대어 구경했다.
낭야왕 사마운은 술을 많이 마셨는지 비틀대며 후장군의 마차를 얻어 탔고, 금위군의 대장인 범무구는 본인이 데려온 위위 사필안을 들들 볶았다. 조왕은 마차에 타는 황제를 배웅했고 뒤늦게 배에서 내린 진왕에게 뭐라고 말을 하고 있었다. 조왕과 진왕의 사이는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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