雨霖鈴 第11

11. 憶昔當年
오래 전에 지난 일을 돌이켜 생각하다.

주자서가 혼절하는 것을 본 주구전은 얼른 침상으로 가서 부러 큰소리로 부산을 떨었다. 주구전은 주자서의 손목을 가져와 맥을 짚으며 찬바람을 맞아 중병을 얻은 것일지도 모르니 어서 의원에 가봐야겠다며 주자서를 일으켰다. 온객행이 눈치껏 주자서를 엎으려고 다가갔다. 주구전은 주자서가 신발을 신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방금 신겨준 척을 하며 봇짐을 찾았다.

조왕이 온객행을 막으며 말했다. “멈추시게. 내가 의원을 불러 주겠네.” 하고 하인을 보냈다. 온객행은 주자서를 업은 채로 서서 주구전의 눈치를 봤다. 주구전은 더 이상 황자 전하께 폐를 끼칠 수 없다며 극구 사양하였지만 진왕이 거들었다. “조왕께서 부르신 의원을 헛걸음하게 할 수 없으니 일단 진맥이라도 해보시게.” 그 말에 온객행이 주자서를 다시 침상위에 올려 놓았다. 신발을 벗겨서 몸을 침상위에 눕히자 얼마 안 있어 의원이 들어왔다. 괜히 주구전만 아쉬워서 옆에 서서 안절부절 어쩔 줄 몰라 했다.

조왕은 주구전에게 주자서를 잘 보살피라 말한 뒤 진왕과 방을 나갔다. 의원이 주자서의 맥을 짚고 한참 생각하더니 머리를 갸우뚱하며 주구전에게 이것 저것 물어보았다. 주구전은 괜히 “이런 적이 없었는데….” 같은 말을 하며 의원의 눈치를 보았다. 의원은 놀라서 기혈이 상했고 조금 지쳐 있는 것 같다는 흔한 진단을 하고는 그에 맞는 흔한 재료가 적힌 처방전을 주고 방을 나갔다.

의원이 나간 방문을 닫기 전 주구전은 내원에서 조왕과 진왕이 주자서가 있는 처소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았다. 주구전은 주자서의 부모 중에 주희밖에 보지 못했기 때문에 주자서가 모친인 경무장공주를 닮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벌써 셋이 그렇다고 말하니 주구전은 경무장공주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눈치를 채는 것은 아닌가 겁이 났다.


주자서는 그날 서국공의 저택에 있었다. 오랜만에 도성으로 돌아오신 부친은 급하게 모친을 찾았다. 두 분이 내실에 들어가는 것을 본 아이는 오늘 저녁은 양친과 함께 먹겠구나 싶어서 조금 신이 났다. 내원에 앉아 모친이 주석을 달아 놓은 서책을 읽었다. 아직 글자와 뜻을 연결하지 못해 읽는 것이 더딘 아이는 서책에 정신이 팔려 그날 다른 날과 다르게 집안이 어수선한 것을 몰랐다. 날이 어두워지자 하인이 아이를 데리고 내실로 들어갔다. 그 안에는 아이의 당숙과 숙부도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인척이 기꺼워 아이는 공손하게 손을 모으고 인사했다. 평소라면 밝게 그를 맞이했을 숙부와 당숙의 얼굴이 어둡다. 무거운 기척을 느낀 아이는 모친을 찾았다. 내실의 어른들은 말없이 앉아 한숨만 쉬었다.

경무장공주는 아들을 부군에게 맡기고 내실을 나갔다. 아이를 안아 든 서국공이 입을 열었다. “아직 모를 일이니 섣불리 움직이지 않으면 되네.” 당숙이 말했다. “형님은 그가 어떻게 천자에 자리에 앉았는지 잊으셨습니까?” 숙부가 당숙을 말리며 말했다. “일이 커질 수 있다. 입조심해라.” 어른들은 또 한숨을 쉬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무장공주가 친히 찬합을 들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찬합을 내려 놓자 서국공은 아들을 내려 놓고 직접 차를 끓였다. 경무장공주가 말했다. “사람이 정결하면 욕보이기 쉽고, 스스로를 아끼는 자는 손쉽게 쓰러뜨릴 수 있으며, 남에게 차마 못할 짓을 하지 못하는 자는 스스로에게 못할 짓을 한다 했습니다. 상대가 간사하고 악독하니 어찌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47) 당숙과 숙부는 그 말을 듣고 차 한잔도 마시지 않고 방을 나갔다.

장공주가 아이에게 음식을 주고 옆에 앉아 서국공에게 말했다. “일하는 사람들에게 사례하고 모두 내보내었습니다.” 서국공은 장공주에게 차를 따른 잔을 내밀었다. 장공주는 찻잔을 보고 한숨을 쉬더니 곧 잔을 비웠다. 밥을 다 먹은 아이가 부친에게 물었다. “부친! 아버님께서는 이 서책에서 어떤 구절이 제일 좋으십니까?” 서국공은 아이가 들고 있던 책을 보았다. 스러져간 옛 역사의 관련된 책이다.

그는 책을 내려놓고 말했다. “말로 수식하지 않으며 논의로 누를 끼치지 않고 어진자는 남과의 사귐을 가볍게 끊지 않으며, 지혜로운 자는 남의 공을 버리지 않는다.”(48) 아이는 책을 뒤지며 책에 없는 내용이라고 투정했다. 서국공은 허허 웃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장공주가 마시던 찻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영이는…” 서국공이 말했다. “기별해 놓았으니 곧 올 것입니다. 일이 벌어 지기 전에 와야 할 텐데요.” 그리고는 사람 좋게 ‘허허허’하고 웃었다.

그날 밤 서국공의 저택에 군부가 들이 닥쳤다. 장공주는 시기 좋게 사람들을 잘 내보내었다고 생각하며 금위군에게 호송되어 나가는 서국공을 보았다. 서국공은 집 밖을 나가기 전에 한 번 뒤돌아 경무장공주를 보았다. 장공주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로 외실 밖에 돌처럼 서서 나가는 서국공을 보았다. 아이가 놀라 부친을 따라가며 울자 금위군 하나가 거칠게 아이를 떼어 냈다. 장공주가 계단을 내려와 서자 아이가 모친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울었다.

장공주가 방금 거친 손속으로 아이를 떼어낸 금위군을 쏘아보았다. 집 밖에 서있던 금위군의 대장군 범무구가 교지를 들고 들어왔다. “장공주는 황제의 명을 받으시오.” 장공주는 금족령을 받고도 말했다. “황제의 자애함에 망극 하나이다.” 그리고 금위군이 나가면서 문을 닫고 그 틈에 종이를 붙여 서국공의 저택을 봉하였다. 장공주는 외실 밖에 서서 닫히는 문을 보았다. 문이 닫히자 장공주는 신경질적으로 손에 들고 있던 교지를 바닥에 내던졌다. 치마를 붙들고 울고 있는 아이를 안고 외실 안으로 들어갔다.

장공주는 아이를 의자에 앉히고 자기도 그 옆에 앉았다. 서국공이 끓인 차가 아직 남아 있어 새로운 잔에 차를 따라 아이에게 주고 자신도 차를 마셨다. 아이가 장공주의 눈치를 보며 훌쩍였다. “어머니, 부친께서는…?” 장공주가 아이의 말을 끊었다. “걱정할 것 없다, 부친의 일이니 네 부친께서 알아서 하실 일이다.”

평소와 달리 달래주지 않는 모친이 원망스러워 아이는 입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그래도 모친의 침착한 모습을 보니 안심이 되어 아이는 금방 울음을 그쳤다. 장공주가 말했다. “영아. 몸을 잊고 총명을 버려라.(49) 무위에 머무르면 사사로운 부모자식의 관계도 덧없다.” 이제 막 울음을 그친 아이의 눈에 다시 눈물이 차오른다. “모친…?” 장공주가 말했다. “어버이의 죄는 자식의 죄이니, 나는 혈육의 정을 끊고자 한다.”

장공주의 말에 아이가 의자에서 일어나 모친의 치맛자락을 붙들며 울었다. “모친 왜 그러십니까? 부친은 왜 고초를 겪으십니까? 모친… 소자는 모르겠습니다. 모친께서 알려주세요. 흑흑” 장공주가 자리에서 일어나 치맛자락을 잡은 아이의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어서 이 어미에게 약속하세요. 유교의 덕으로 살지 않겠다고.” 아이는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면서 그렇게 하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장공주는 아이를 안아 주었다.

모친의 품에서는 좋은 냄새가 났다. 부드러운 비단천이 아이의 뺨을 간질였다. 밖에서 나는 작은 인기척에 장공주가 일어나 아이를 뒤쪽으로 숨기며 말했다. “누구냐!” 창호문이 살짝 열렸다 닫히고 검은 옷에 복면을 쓴 남자가 장공주 앞에 무릎 꿇고 말했다. “사계산장 장문 진회장 경무장공주를 뵈옵니다.” 그리고는 복면을 벗었다. 장공주가 운을 띄웠다. “사계절 꽃이 만발하는 곳에서 오셨습니까?” 그러자 진회장이 답했다. “세상의 모든 일이 알려져 끝나는 곳에서 왔습니다.” 장공주는 마음이 놓였다. 서국공은 오래도록 사계산장과의 관계를 소원이 하였는데 어쩌면 이런 일을 염두해두고 일부러 그렇게 한 것 같았다.

장공주는 마음을 정했기 때문에 어서 아이를 안전한 곳으로 보내고 싶었다. “사부께 인사 올리거라.” 정신이 없는 아이는 모친의 말을 듣지 않으면 혹여 자신을 버릴까 그 말을 듣자 마자 들어온 남자에게 바닥에 머리를 붙여 절했다. 아이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장공주의 입에서 모진 소리가 나왔다. “이 아이는 이제 이름이 없소. 주씨도 사마씨도 아니오.” 절을 하던 아이의 머리가 번쩍 들려 장공주를 보았다. 

장공주는 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도 안색이 바뀌지 않았다. 아이는 다시 모친의 치마를 붙들고 울기 시작했다. 장공주는 한숨을 크게 한번 쉬고는 모질게 아이를 떼어내고 말했다. “가시오. 내 아들 주영은 오늘 우물에 빠져 죽었소.” 장공주의 단호한 태도에 무릎걸음으로 그녀를 쫓는 아이가 들려 나간다. 아이는 소리를 내서 울다가 곧 입을 막고 외실에 홀로 남은 모친을 보았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모친의 눈은 눈물이 차서 반질반질 했던 것도 같다.


주자서는 한참이나 일어나지 못했는데, 눈가가 붉었다. 그것이 안타까워 주구전은 침상 곁에 있는 의자에 앉아 한숨만 쉬었다. 주구전은 뭘 더 묻기도 전에 조왕을 보자마자 알아 버렸다. 무림과 관계하여 세상을 어지럽히려는 것은 조왕 사마륜이다. 그의 눈빛은 분노하지 않았는데도 노기를 띄었다. 평소 조왕과 가까이하는 주변 인물들을 정리하면 정확하게 누가 어떻게 관에 관여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진왕과 조왕이 주자서를 두고 꿍꿍이가 있는 듯하니 주구전은 일단 앉아서 그들이 하자는 대로 따라줄 요량이었다.

그러다 문득 온객행을 보았다. 엽백의의 제자라는 이 소년은 온씨라고 했다. 주구전이 알고 있는 온씨는 많지 않았지만 알고 있는 온씨 중에 그를 닮은 이가 있다. “온공자. 부모님께서는 온공자가 이리 낙양에 머무는 것을 알고 있소?” 온객행이 울상으로 주자서의 손을 잡고 있다. 그는 주구전에게 시선도 주지 않고 조금은 차가운 목소리로 답했다. “이미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오.” 주구전은 멋쩍어서 ‘흠흠’ 하고 목을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 “온공자가 온씨라 하여 기억나는 이가 있는데 혹 아는지 들어 보겠소?” 온객행은 대답하지 않고 주자서의 이불을 만지작거렸다.

주구전이 말을 이었다. “익주 청성곡에 의술이 밝은 자들이 기거하는 곳이 있는데, 그 곳의 마지막 곡주가 내 기억으로 견…견…” 주구전은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청성곡은 견곡주가 의술이 뛰어난 자들을 문하로 받아 만든 작은 집성촌이었다. 마음이 좋은 견곡주는 돈이 없어도 도리로 사람들을 고치는 일을 하여 무림에서는 그 명성이 높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0년전에 물난리가 크게 일어 전염병으로 청성곡의 대다수가 죽었다 들었다.

전염병인지라 강호에 있던 사람들도 손을 놓고 볼 수밖에 없었다. 온객행은 주구전의 말을 듣고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아무 말없이 방을 나갔다. 주구전은 나중에 검선에게 더 자세한 일을 물어야겠다 하고 생각한 뒤 침상에 누워있는 주자서를 보았다. “어리석은 자의 지식은 본디 이미 적고 그가 맡은 일은 매우 많으니 어찌 혼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는 것이 없어 일을 고사하고 싶어도 이미 발을 뺄 수 없으니...” (39) 주자서가 작게 모친을 불렀다. 주구전은 혹여 들은 사람이 있을까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자서는 또 어딘가를 헤매고 있었다. 언제인가 와 본 것 같은 곳이다. 서당인지 경을 읽는 소리가 들린다. 눈을 뜨니 커다란 대전 앞에 있는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잡힌 손을 보니 푸른색 비단옷을 입은 기왕(紀王) 사마영(司馬潁)이다. 기왕은 주자서가 계단을 오르는 것이 귀여운지 한 계단 올라갈 때마다 칭찬을 해주었다. “우리 영이는 계단도 잘 오르는 구나.” 기우뚱 아이의 몸이 기울자 기왕이 뒤에서 아이를 받으며 안아 주며 웃었다.

계단 위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진왕(晉王) 사마연(司馬連)이 계단을 내려와 기왕에게 말했다. “누가 보면 네가 낳은 자식인 줄 알겠구나.” 그 말을 들은 기왕이 활짝 웃으며 주자서에게 물었다. “영아 우리 아들 할까?” 아이는 기왕품에 안겨 머리를 도리질하며 말했다. “형님!” 그러자 진왕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 천자께서 손황자로 만들어 주겠다 하시거든 그렇게 고개를 흔들며 싫다 하거라.” 기왕의 표정이 굳었다. 주영은 불안한 마음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저 위에 계단을 아직 내려오지 않은 조왕(趙王) 사마륜(司馬倫)은 보라색 옷을 입었다. 그들을 굳은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서당에서 편전에서 조왕과 진왕을 자주 보았지만, 그들은 아이를 보기만 했다. 틀려도 고쳐주지 않았고, 맞아도 칭찬해주지 않았다. 아직 그런 눈치를 볼 줄 몰랐던 아이는 그냥 그러 한가보다 했다. 그들 말고도 아이에게 관심을 주는 이는 차고 넘쳤으니. 아이는 기왕과 함께 화림원을 거닐거나 양안전에서 황후의 예쁨을 받았다. 아니면 모친과 함께 외조부께 방문했던 것 같다.

커다란 선실전에 들어가면 외조부께서는 항상 밝은 색 중의 차림에 조금 흐트러진 머리를 하고 탁상 앞에 앉아 글을 읽었다. 죽간도 있었고 서간도 있었고, 비단으로 만든 책도 있었다. 아이가 오면 보던 책을 멀리 치워 두고 번쩍 들어 안아 주었다. 그리고는 허리춤에 있는 작은 주머니에서 모과 절임을 꺼내 아이의 입에 넣어 주었다. 그 모과 절임에서는 생강냄새가 났다.

최근에 먹었던 모과 절임은 향긋하고 그 끝 맛도 쌉사름하니 단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주자서의 입에도 잘 맞았다. 괜히 아쉬워 입맛을 다시자 온객행이 나타나 주자서의 입 앞으로 모과 절임을 가지고 왔다. 옥 같은 얼굴로 해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서 그대가 주는 것은 무엇이든 좋아.” 그리고는 모과 절임을 입안으로 넣어 주었다.

그 모과 절임은 쓴맛 하나 없이 입안의 혀가 다 녹을 만큼 달기만 했다. 주자서의 당황한 표정을 보고 온객행이 ‘하하하’ 하고 웃었다. 그제야 주자서는 이것이 꿈인 것을 눈치 챘다. 진짜라면 분명 흰소리를 했을 것이다. ‘내게 모과를 주기에 어여쁜 패옥으로 보답하였지. 굳이 갚자고 하기보다 길이 사이좋게 지내보자며.’(28) 모과도 패옥도 모두 온객행에게 받았다. 굳이 갚지 않아도 된다며 사이 좋게 지내보자며….


온객행은 처소를 나와 내원에서 외실로 자리를 옮긴 진왕과 조왕을 보았다. 엽백의가 주구전을 만나기 전에 말한 적이 있다. 그는 눈치가 좋으니 처신을 조심하라고 말이다. 온객행은 매우 자신이 있었는데 주구전이 청성곡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어찌 할 줄 몰라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벌써 10년이나 지난 일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세상의 모든 일이 알려져 끝나는 곳이라는 사계산장은 그 세가 작긴 하였으나 아직 망하지 않았으니 과연 그 명색이 헛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엽백의가 부탁하고 갔던 일은 대충 마무리 지었다. 중명원은 진왕의 거처가 아니기 때문에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던 것일 수도 있다. 낙양성과 공의성 일대에 사람을 사서 황자들의 관계에 대해 떠보았다. 조왕은 황후의 첫 아들이지만 수완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게다가 황제와 별로 사이가 좋지 않은 황제의 제종형제인 유격장군 사마량과 낭야왕 사마운을 가까이했는데 그들은 전대 황제에게서 구석(50)을 받아 그럭저럭 꽤 큰 병권도 쥐고 있는 듯했다. 진왕은 무관보다는 문관들과 더 자주 어울렸는데 작위만 있는 재당숙인 장사왕 사마예와 산기상시 석중과 친했다. 석중은 황후 왕씨의 동생인 후장군 왕개와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이 둘의 사치는 황제의 귀에까지 들어가 녹봉을 삭감 당하는 일도 있었다고 했다.

지금의 황제는 종친이 많아 그 덕에 황족이 매우 많아졌다. 어떤 황족은 나라를 위해 정치에 힘을 쓰고 백성을 보살피는가 하면 어떤 황족은 높은 자리를 얻고자 아첨했으며 또 어떤 황족은 다른 생각이 있어 보였다. 그것은 온객행이 생각해야할 바는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그것을 별다르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직 온객행 스스로가 원하는 일은 시작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성곡의 물난리는 이상한 점이 많았다. 그 곳은 애초에 물난리가 날만큼 큰 물이 있지도 않았고, 전염병이 돌 만큼 사람들의 왕래가 잦지도 않았다. 온객행이 화를 면할 수 있었던 것은 그날 엽백의가 청성곡에 필요한 약재가 있어 그것을 부탁하기 위해 잠시 방문했기 때문이다. 당시 엽백의는 장명산에서 칩거하고 있었는데, 그의 친우가 중병에 걸려 그를 보살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몇 년 후 망백(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온객행을 자기 자식처럼 아끼고 보살펴 주었다. 그것이 마음에 안든 엽백의는 온객행을 괴롭혔다. 그가 죽고 장명산에 처박힌 엽백의를 밖으로 끄집어 내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던가. 온객행은 시작하면 멈추지 않을 생각이었다. 어떠한 변수도 중간에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을 멈출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47) 국어 優施敎驪姬遠太子 우시와 여희가 태자를 쫓아내도록 교사하다.
精潔易辱 重僨可疾 不忍人 必自忍也
사람이 정결하면 욕보이기 쉽고, 자중자애하면 손쉽게 쓰러뜨릴 수 있으며, 남에게 차마 못할 짓을 못하면 반드시 자신에게는 차마 못할 짓을 합니다.
진나라 우시와 여희가 태자를 없애기 위해 태자의 유약한 성격을 이용하여 태자를 모함한다.

(48) 전국책 31권 燕王喜使栗腹 연왕 희가 율복을 사신으로 삼다.
論不脩心, 議不累物, 仁不輕絶, 智不簡功
논하면서는 마음을 수식하지 않으며 정당한 의논은 남에게 누를 끼치지 않으며 어진자는 남과의 사귐을 가볍게 끊지 않으며, 지혜로운 자는 남의 공을 버리지 않는다.
연왕 희가 진나라에 대패한 조나라를 치려고 창국군 낙문을 불러 물었으나 낙문은 전쟁에 반대하였다. 연왕은 그 말을 듣지 않고 조나라와 전쟁을 했고 낙승에게 군사를 주어 진을 막도록 했다. 하지만 전쟁에서 대패한다. 위 내용은 연왕이 낙문과 낙승에게 보낸 서신의 내용이다. 낙문과 낙승의 죄를 묻지 않을 테니 어서 돌아오라는 뜻이지만 둘은 조나라에 망명하여 답신도 하지 않는다.

(49) 장자 11편 재유
汝 徒處無爲 而物自化. 墮爾形體 吐爾聰明 倫與物忘 大同乎涬溟.
그대가 무위에 머물기만 하면 만물이 저절로 감화될 것이다. 그대의 몸을 잊어버리고 그대의 총명을 버리고 세상의 규범이나 외물을 잊어버리면 혼돈한 도와 완전히 같아질 것이다.

(50) 구석(九錫)은 중국 한나라 때 천자가 공이 큰 신하나 황족에게 준 9가지 특전이다.
  1. 거마(車馬) 행차할 때 항시 두 대의 수레가 움직이는데, 그중 큰 수레는 제후 본인이 타고 작은 수레는 무장을 한 호위병들을 태운다. 그 수레들을 이끄는 짐승들은 검은 소 두 필, 누런 말 여덟 필인데, 이는 황제의 행차에 준하는 격식이다.
  2. 의복(衣服) 곤복과 면류관을 착용하고 붉은 신발을 신는다. 이는 왕의 예복(禮服)에 준하는 복식이다.
  3. 악기(樂器) 조정이나 집에서 음곡(音曲)이나 가무(歌舞)를 감상하는 것을 허용한다. 이는 황제나 왕의 행사에 준하는 격식이다. 천자 앞에서는 팔일무(八佾舞), 왕 앞에서는 육일무(六佾舞)를 추도록 한다.
  4. 주호(朱戶) 거처하는 집의 대문과 나무기둥에 붉은색을 칠하도록 한다. 이 역시 일반 신하들은 사용할 수 없는 천자의 격식이다.
  5. 납폐(納陛) 궁중에서 신발을 신고 전상에 오르내릴 수 있다. 원래 전상(殿上)에 오르려면 당연히 신발을 벗어야 된다.
  6. 호분(虎賁) 천자처럼 늘 곁을 따라다니며 호위하는 3백명가량의 호분 병력을 사사로이 부릴 수 있다.
  7. 궁시(弓矢) 역적을 마음대로 토벌해도 좋다는 권한의 상징으로 붉은 활 한 벌, 붉은 화살 백 개, 검은 활 열 벌, 검은 화살 3천 개를 하사한다.
  8. 부월(斧鉞) 왕의 의장행사에 쓰이는 도끼로 '살인죄로 처벌받지 않는 것'을 의미했다. 다만 이것은 구석으로서가 아니라도 출정하는 장수에게 군권을 맡긴다는 의미로 주는 경우도 많았다. '출정하는 장수에게 부월, 절월(節鉞)을 주었다'는 표현을 쓰는데, 절월은 권위를 상징하는 부절과 생사권을 의미하는 부월을 합쳐 이르는 것으로, 출정하는 장수를 신뢰한다는 뜻이다
  9. 거창규찬(秬鬯圭瓚) 거창(검은 수수로 빚은 술)과 규찬(옥으로 만든 제기)을 조상의 제사에 사용할 수 있다. 이것은 천자의 태묘 제사 때 사용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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