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騎虎之勢
호랑이를 타고 달리다.
네 사람은 객실에 앉아 아무 말이 없었다. 엽백의는 팔짱을 낀 채로 무언가를 생각하는 중이었고, 주구전은 화를 삭이는 중이었다. 주자서는 주구전의 눈치를 보며 온객행이 따라주는 차를 마셨다. 주구전이 주자서에게 무언가 말하려고 하자 엽백의가 눈을 뜨고 말했다. “진왕이 빌린 배가 낭야왕의 배가 맞느냐?” 주구전이 옆에 있다가 말했다. “연주와 서주에 황제폐하께서 타실 만한 큰 배는 낭야왕전하 아니면 제갈세가와 황보세가가 함께 운영하는 제남상단 말고는 없습니다. 지금 상황에 제남상단의 배를 빌려 타시지는 않을 겁니다.” 엽백의가 고개를 끄덕였다.
주구전이 물었다. “숭산에서는 아무 말이 없습니까?” 엽백의가 ‘흠’하더니 말했다. “여태 바둑돌만 보았으니 이제 대국을 두는 자가 누구인지 알아야지.” 엽백의의 말에 주구전이 한숨을 쉬었다. “조왕께서 자서가 아팠을 때 의원을 찾아 주셨습니다.” 엽백의의 한쪽 눈썹이 올라갔다. 엽백의가 물었다. “정주에 초대한 것이 조왕인가?” 주구전은 대답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엽백의는 진왕을 의심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진왕의 지저분한 비밀을 알게 되었지만 그것은 또 나중에 쓸 일이 있을 것이다. 엽백의는 ‘허’하고 헛웃음이 나왔다.
해질녘이 되어 그들은 황제의 부름에 불편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엽백의가 맨 앞에 서서 황제에게 인사를 하고 뒤를 따른 주구전과 주자서, 온객행이 그를 따라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들은 문에서 제일 가까운 쪽의 자리를 안내받아 각자의 상 앞에 앉았다. 엽백의와 주구전이 제일 앞에 있는 상에 앉았고 그 뒤에 있는 상에 주자서와 온객행이 함께 앉았다.
곧 검은색의 관리 옷을 입은 귀족들이 하나 둘 외실로 들어와 황제를 알현했다. 그들은 품계순으로 황제와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황제 바로 옆에는 조왕과 진왕이 앉았다. 얼마 뒤 음식과 함께 악사들이 들어왔다. 황제가 식사를 시작하자 음악이 연주되면서 밖에서 무희들이 들어왔다. 엽백의는 연회도 아닌 저녁식사에서 좋은 구경을 한다며 술잔을 들었다. 주구전은 무희를 한번 보고 뒤쪽에 앉은 주자서를 힐끔 보았다.
주자서는 무희가 들어오자 당황스러웠다. 그들이 입은 옷이 주자서가 입은 옷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밀려오는 치욕에 주자서는 고개를 푹 숙였다. 옆에서 주자서의 시중을 들던 온객행이 물었다. “아서 왜 그래?” 그리고는 주자서의 어깨에 팔을 둘러 그를 품으로 끌어당겼다. 주자서는 화가 나서 온객행이 뭘 하는 지도 몰랐다. 진왕이 일부러 그런 것이다. 주영의 생일때마다 진왕과 조왕은 여자아이의 물건을 선물로 보내왔다. 뭣 모르고 받은 꽃신을 신고 입궁하였다가 사람들의 눈총을 사는 줄도 모르는 그런 아이였다.
아이를 감싸던 기왕을 모욕하는 말을 어떻게 잊을까? 주자서를 떠보기 위해 일부러 이런 옷을 짓고 입힌 것이다. 주자서는 한숨을 깊게 내쉬고 황제 옆에 앉아 술잔을 드는 진왕을 보았다. 주자서와 진왕의 시선이 맞닿았다. 시선을 피하지 않고 바라보고 있던 주자서가 얼른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리는 주자서를 본 진왕은 마음에서 의심이 일었다. 혹시 저 아이가 주영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주자서가 정신을 차리니 온객행의 품에 기대고 있었다. 온객행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무희들의 춤을 보며 음식을 먹었다. 주자서가 품에서 벗어나 바로 앉자 온객행은 주자서의 어깨에 둘렀던 손을 내려 등을 문질렀다. 주자서는 바로 앉은 이후로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앉아 있기만 했다. 주변에 앉은 귀족들의 시선이 따갑다.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주자서는 모르고 싶었다. 해사하게 웃으며 온객행이 옆에서 음식과 술을 권했지만 주자서는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았다.
그것은 엽백의와 주구전도 마찬가지였는데 둘은 술잔을 기울이면서도 음식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황제가 식사를 마치자 악사와 무희들이 외실을 나갔다. 귀족들도 하나 둘 일어나 황제에게 인사하고 자신들의 처소로 가는 것 같았다. 외실을 나가는 그들이 힐끔힐끔 주자서를 보았다. 주자서는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사람들이 거의 다 빠져나간 후에 태보가 외실로 들어왔다. 주구전이 고갯짓으로 아는 척을 했다. 황제는 태보를 보더니 조왕과 진왕을 물렸다. 그들이 나가는 것을 보고 있던 엽백의도 일어나 황제에게 인사했다. 주구전과 온객행도 엽백의를 따라 일어났다. 온객행이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는 주자서의 팔을 잡아 일으켰다. 황제는 엽백의를 잡으며 말했다. “상선께 할 말이 있으니 잠시 기다리시오.” 황제는 주변에 있는 하인들도 모두 물렸다.
눈치를 보던 주구전이 나가려고 하자 황제가 내관을 시켜 문을 닫게 했다. 주구전은 당황하여 주위를 둘러보았다. 녹상서사 장화(張華)와 상서령 배회(裵會)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마음이 불안해진 주구전은 주자서를 찾았다. 주자서도 슬슬 상황이 보이는지 자세를 바로 했다. 주구전이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흔들자 주자서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태보가 입을 열기 전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온객행과 주자서를 발견하고는 내관을 불러 뭐라 말했다. 그 내관이 다시 황제에게 가서 뭐라고 말하자 황제는 그 둘에게도 물러가라 말했다. 공수하여 인사하고 나온 외실 앞에는 초조해 보이는 조왕과 진왕이 있었다.
주자서는 마음을 가다듬고 손을 모아 조왕과 진왕에게 인사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온객행도 주자서를 따라 공손히 인사했다. 진왕이 예를 거두라며 주자서의 팔을 잡았다. 주자서가 진왕의 손을 뿌리치기 위해 한걸음 뒤로 물러나 자세를 바로 했다. 조왕이 말했다. “주공자는 태보 강상선생과 안면이 있는가?” 주자서가 공손히 소매를 들어올려 대답했다. “숭산에서 한번 인사한적이 있습니다.” 조왕은 진왕을 힐끔 보고 말했다. “그래? 스승님께서 소림사에 다녀오셨는 줄은 몰랐네.” 진왕이 옆에서 거들었다. “형님 제가 저번에 유연과 다녀왔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때 스승님과 함께 소림사의 지주스님을 만났었습니다.”
조왕이 ‘흐음’ 고개를 끄덕이며 주자서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조왕이 말했다. “내일 낙수 하구에 배를 띄워 낚시를 할 예정인데 주공자도 함께 가시지요.” 주자서가 공손히 손을 모으며 말했다. “어찌 미천한 제가 나라의 제사에 관여할 수 있겠습니까?” 조왕이 ‘하하하’웃으며 말했다. “그대를 제사에 부르는 것이 아니오. 어디 감히… 하하하, 내일은 제사에 필요한 물고기를 낚는 연회이니 그대를 초대하는 것이오. 연세가 지긋하신 고관대작들 사이에 계시면 아주 보기 좋을 것 같으니 말이오.” 누가 들어도 희롱과 멸시가 담긴 말을 진왕이 거들었다. “미인이여 미인이여! 저녁에는 비 되고 아침에는 구름 되는가, 하룻밤 사이에 핀 매화같이…”(55) 조왕이 ‘하하하’하고 웃었다.
온객행이 뭔가 말하려고 하는 것을 주자서가 재빨리 막으며 말했다. “조왕전하, 진왕전하께서 어찌 미천한 제게 부탁을 하십니까? 하명하소서.” 그리고는 넙죽 온객행을 잡고 무릎 꿇었다. 진왕이 주자서가 하는 말에 피식 웃으며 뭐라고 말하려는 찰나 주자서가 헛기침을 했다. 주자서의 기침소리에 놀란 온객행이 품속에서 하얀 영견을 꺼내 주자서의 입가에 대주었다. 진왕이 고개를 돌려 ‘허’하고 웃은 뒤 말했다. “주공자께서 이리 허약하셔서 주대인의 걱정이 많겠소.” 주자서는 온객행이 준 영견에 대고 더 기침을 하느라 대답하지 못했다. 그것을 보고 있던 조왕은 아직 외실밖에 서있는 내관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이만 가서 쉬게.”
온객행이 주자서를 부축하여 인사하고 하인의 안내로 처음에 소개받았던 객실로 돌아갔다. 하인이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가자 주자서는 입에 대고 있던 영견을 탁상위로 내 팽개치며 의자에 털썩 앉았다. 크게 한숨을 쉬고 마음을 정리하려 하는데 온객행이 심각하게 옆에 앉아서 말했다. “아서, 대체 왜 조왕과 진왕이 너를 못살게 구는 거야?” 주자서도 알 수 없다. 본인이 주영인지 아닌지 떠보려고 저러는 것인지 아니면 원래 다른 모든 사람한테 다 저렇게 구는지 말이다.
주자서는 온객행을 마주보고 말했다. “괜히 그들과 상대하지 말게, 저들에게 사람 목숨은 장기말과 같으니 그냥 조금 당해주면 될 일이네.” 온객행이 눈썹을 늘어뜨리며 말했다. “하지만 이미 혼인한 사람을 이렇게 희롱하다니!” 주자서는 맥이 풀려서 ‘허’ 하고 웃었다. 주자서는 황제가 검선과 조부께 뭘 물으시려는 것인가 걱정이 되었다. 무엇보다 조왕의 움직임이 매우 수상하다. 지금 황제인 외숙과 다른 외숙 외당숙은 다 사이가 좋지 않았다. 황제는 의심이 많으니 잘못 움직이면 누명을 쓰고 참소 당해도 이상하지 않다. 황실내부사정에 대해 잘 모르는 주자서 눈에도 보인다면 다른 사람의 눈에도 보이는 일이다.
심각한 주자서의 표정에 온객행이 말했다. “아서? 아서 왜 그래…? 내가 가서 죽여 버릴까?” 온객행의 말에 놀란 주자서가 얼른 손을 가져다 온객행의 입을 막았다. 숨소리도 내지 않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벌떡 일어나서 문을 열어보았다. 다행이 날이 늦어 객실 들어오는 문 앞에 서있는 병졸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문을 닫고 다시 자리에 와서 온객행을 쏘아보며 말했다. “온객행! 여기 있는 사람들은 사람의 목숨이 세상에서 제일 쉬운 사람이라고 말 했어 안 했어?” 온객행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아서가 이름 불러주니까 좋다.” 주자서는 탁상을 주먹으로 ‘탁’치고는 온객행을 보았다. 온객행은 얼굴에 미소를 지우지 않고 말했다. “아서… 내가 죽을 까봐 걱정하는 거야?” 그리고는 ‘히히히’하고 웃으며 주자서의 팔을 잡아당겨 자기 앞에 있는 의자에 앉혔다. “서방님 걱정마시어요. 부군을 두고 먼저 가는 일은 없게 하겠나이다.” 주자서는 두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크게 한숨을 쉬었다.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몸을 붙이며 말했다. “아서… 아서는 지학이니까 내가 연장자네?” 주자서가 붙어오는 온객행을 밀어냈다. “형님이라고 불러봐, 그럼 내가 아서 말은 다 들어 줄게.” 주자서는 온객행 얼굴을 보고 생각하는 듯했다. 뭔가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는 것 같아 온객행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아서, 형님이라고 불러봐 그럼 아서가 하라는 대로 다 할 거야.” 주자서는 온객행을 형님이라고 한번 부른 후에 장명산 검선과 함께 다시 소림사로 돌아가라고 말할까 한참 생각했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정말 별일도 아닌 이 호칭문제로 주자서는 스스로 이렇게 갈등하게 될지 몰랐다. 한숨을 연거푸 쉬더니 주자서가 조용히 말했다. “노온…” 주자서의 팔에 기대 있던 온객행의 머리가 튀어 오르며 주자서를 보았다. “뭐? 아서? 방금 뭐라구?” 자꾸만 얼굴을 붙여 오는 온객행이 부담스러워 그를 밀어내며 주자서가 말했다. “노온.” 온객행은 못 들은 척 말했다. “아서 잘 안 들려, 좀 더 크게 말해줘.”
외실에 남은 엽백의와 주구전은 태보가 소림사에서 조사한 내용을 보고받는 황제의 이야기를 다 들었다. 다행히 소림사에서 둘이 조사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미리 말해 두었는지 황제는 별 말하지 않았다. 태보가 조사한 내용은 엽백의가 말한 바둑돌들의 일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연주와 기주, 서주 등지의 문파들의 관계도가 높았다. 낙양성의 북쪽과 동쪽은 제(濟)왕 사마경과 낭야왕 사마운의 봉지이다.
황하를 따라 북쪽에 위치한 그들은 선황제에게 역도를 처단할 수 있는 붉은 활을 하사 받은 황족들이다. 지금 황제와는 왕위 계승의 문제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황위 계승 당시의 상황을 잘 알지 못하는 주구전은 의례 고서에서 보았던 황족 간의 승계싸움이 있었겠거니 했다. 엽백의도 슬슬 태보의 보고가 질렸는지 원래 앉았던 자리에 가 앉아 술잔을 들었다. 태보가 보고를 마치자 황제는 엽백의와 주구전을 가까이 불렀다. “그대들 역시 나의 일에 힘을 쓰고 있다 들었다.”
주구전이 엽백의를 봤다. 엽백의가 황제에게 포권하며 말했다. “말은 바람이 일으킨 물결처럼 일정한 모습이 없고 행동에는 득실이 있다 합니다. 바람이 일으킨 물결은 쉽게 움직이고 득실은 쉽게 위태로우니 화가 치미는 것은 교묘한 말과 치우친 말 때문입니다.”(56)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천자께서 교묘한 말을 하는 자와 치우친 말을 하는 자를 찾으시겠다고 하면 제가 도와드릴 수 있으나, 누가 바람을 일으켰는지 물으시면 소인은 아둔하여 찾지 못할 듯합니다.” 황제가 엽백의를 쏘아보았다. 옆에 서있는 주구전만 안절부절 못했다.
황제는 엽백의의 뜻을 알았는지 한참동안 말이 없다 고개를 끄덕이고 엽백의와 주구전을 내보냈다. 하인의 안내를 받아 처소로 돌아오는 길에 주구전이 입을 열었다. “엽선배, 저는 아직도 개미와 파리가 무슨 냄새에 홀려 그리 모였는지 모르겠습니다.”(53) 엽백의가 ‘흠’하더니 말했다. “그대는 들어보지 못했나? 태자가 정해지지 않은 채 군주가 세상을 떠나는 일은…”(57) 주구전이 또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눈치를 보자 엽백의가 ‘흥’하고 코웃음 쳤다.
엽백의는 생각했다. 이 나라에는 망조가 이미 들었다고. 종친이 많은 황제는 권력이 분산되어 하나로 모으기 힘들다. 사공이 많으니 배가 산으로 간다. 군신의 관계는 혈육보다 생판 남남인 것이 나은 것이다. 유교의 충심은 엽백의가 이해하기 너무 어렵다. 강호의 협과 의리는 그보다 쉽다. 엽백의와 주구전은 처음에 와서 머물렀던 객실이 아니라 귀빈들이 머무는 별실로 안내받았다. 하인이 우려 놓은 귀한 차를 마시며 두 노인네는 각자 다른 생각에 빠졌다.
해시(亥時)를 알리는 북소리가 평락원 담 밖에서 들려왔다. 주자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대야에 물을 받고 관수했다. 화를 참느라 아무것도 먹지 않은 주자서의 뱃속이 시끄러웠다. 하루 이틀 굶는 일이야 사계산장에서는 없는 일도 아니었는데 그새 도성의 안락함에 익숙해진 것 같아 주자서는 오늘은 그냥 굶기로 했다. 언제 다가왔는지 관수를 마친 주자서의 얼굴을 온객행이 조심스럽게 수건으로 닦아주었다.
주자서는 온객행의 손에서 수건을 빼앗아 얼른 닦고 대야를 가지고 나가 내원에 버리고 왔다. 다시 물을 길어 대야를 채워주니 온객행이 손을 씻고 얼굴을 닦았다. 객실에는 침상이 하나 있었는데 주자서는 정주로 오는 내내 강바람에 추웠기 때문에 따뜻하게 침대에서 자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연장자이니 침상을 양보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해 평상을 살펴보았다. 이불로 덮을 만한 것이 없어서 주자서는 진왕이 지어준 옷을 덮고 자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주자서가 온객행의 눈치를 보며 장포를 벗었다. 중의까지 벗자 실내는 조금 추웠다. 주자서는 평상위에 옷을 깔고 그 위에 누웠다. 주자서가 옷을 벗는 것을 구경하던 온객행이 앉아 있던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주자서를 일으켜 앉혔다. “아서 왜 평상에서 자? 침상에서 자야지.” 그리고는 앉아있는 주자서를 번쩍 들어 침상위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는 이불을 펴서 잘 덮어주었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뺨을 쓸면서 말했다. “아서 오늘 정말 일이 많았다 그치?”
그때 주자서의 뱃속에서 우렁차게 꼬르륵 소리가 들렸다. 조금 부끄러워진 주자서가 이불안으로 숨으려고 하자 온객행이 품에서 모과 절임이 든 작은 대나무 함을 꺼냈다. “아서, 아까 아무것도 못 먹었지? 자 이거라도 먹어봐.” 온객행은 모과 절임을 집어 주자서의 입가에 대주었다. 주자서는 온객행이 나왔던 꿈이 생각나여 고개를 돌렸다.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아이요! 아서 배고프면 잠도 안 와! 그럼 주방에 가서 뭐 라도 얻어올까?” 주자서 입가에 댔던 모과 절임을 자기 입으로 가져가 먹더니 말했다. “이 모과 절임은 아서 입술이 닿아서 더 맛있어.” 주자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온객행을 보았다.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주방에 다녀올까요? 부군?” 주자서는 생각이 많았다. 온객행이 진왕을 막아줄 좋은 구실이긴 하지만 대체 어디까지 받아줘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 치는 자신과 혼인을 치룬 것처럼 구는데 정말 그래도 되는 건지 주자서는 괜히 불안했다. 이러다 정말 마음을 줘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온객행은 불안한 얼굴을 하는 주자서가 귀여워서 또다시 입을 맞추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손을 들어 어깨를 쓸자 흠칫 떠는 몸짓마저 사랑스럽다.
온객행은 주자서를 놀리고 싶어서 천천히 다가가 귓가에 속삭였다. “부군, 오늘이 저희 초야인가요?” 온객행의 말에 어깨를 들썩이며 몸을 움츠리는 주자서를 보고 온객행은 ‘히히히’하고 웃었다. 주자서는 머리를 흔들어 머리속의 잡생각을 털어내고 온객행을 마주 보았다. 주자서는 어느 시점에서 둘의 관계를 확실히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주자서는 온객행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노온. 그대에게 할 말이 있어.” 온객행이 손에 있던 모과 절임을 내려놓고 자신의 어깨를 잡은 주자서의 팔을 잡았다. “응”
주자서는 본인이 사계산장의 제자이며 주구전과는 친인척 관계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했다. “앞으로 계속 진왕전하께 신세를 지게 될지도 모르니… 내가 그대의 정인… 정인이 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대신에….” 온객행은 다 듣지도 않고 말했다. “아서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린 이미 혼인…” 주자서가 온객행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노온. 나는 진심이야. 그대의 마음에 대해서 진심으로 생각해 보겠다는 말을 하는 거야.”
온객행은 당황했는지 얼굴이 굳었다. “진왕전하께서는 내가 너와 정인이라 해도 본인이 원하면 언제든지 나를 취할 수 있는 사람이야.” 그 말에 온객행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주자서는 또 마음이 약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내가 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대신 나를 도와줘.” 온객행이 몸을 붙여 주자서의 어깨에 이마를 올려놓고 말했다. “응. 응. 아서가 원하는 거라면 뭐든….” 주자서는 온객행의 어깨를 흔들며 말했다. “노온. 흰소리 하지 말고 제대로 대답해.” 그러자 온객행이 주자서의 팔을 뿌리치고 말했다. “아서! 나는 계속 진심이었어.”
온객행의 말에 멋쩍어 진 주자서가 온객행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알겠어. 노온. 네 마음에 제대로 답할 수 있게 나도 잘 생각해볼게. 대신 내 정인인 척해줘.” 온객행이 눈썹을 한껏 내리며 말했다. “정인인 척?” 주자서는 온객행에게 자신의 목표는 양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황실의 일에 휘말려서 지금 이곳에 있는 것은 주자서가 바라는 일이 아니라고도 했다. “사실 난 정을 나눠 본적이 없어서 정인이 어떤 건지 잘 몰라.”
주자서의 말에 온객행의 얼굴에 미소가 돌아왔다. “그래? 아서 그럼 일단 정표를 주고받을까? 아서가 나를 좋아할 수 있도록 나도 노력할게.” 주자서는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니라고 말을 한다고 온객행이 이해할까 싶었다. 주자서는 앞섶에서 온객행이 준 요패를 꺼냈다. “네 정표는 이미 받았으니 내가 줘야지.” 주자서가 말하며 침상에서 일어나 평상에 펼쳐져 있는 옷으로 갔다. 그리고 소매에서 비단으로 만든 작은 영견을 꺼냈다.
그 영견에는 버드나무 잎이 어설프게 수놓아져 있었다. 이 영견은 경무장공주가 주영에게 직접 선물한 것이다. 모친은 수놓는 일이나 음식을 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으셨다. 글을 읽거나 쓰는 것 아니면 바둑을 두는 일을 좋아하셨다. 외조모께서는 수 놓는 일을 좋아하셔서 양안전에 놀러가면 항상 모친께 수를 놓는 것을 가르쳐 주셨다.
이 영견은 그 중에 외조모께서 제일 칭찬을 많이 받은 작품이다. 모친은 밝게 웃으며 내게 주셨다. 그 동안 어설프게 수놓은 향낭이며 주머니는 모두 부친께 드렸는데 제일 잘 만든 영견은 주영에게 주었다. 그 일을 아는 사람은 이제 모두 죽었다. 이 영견이 귀한 것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이제 주영 아니, 주자서뿐이다. 주자서는 그 영견을 온객행에게 내밀었다. 그대가 진심이라면 이 쪽에서도 진심을 보여주겠다는 각오다.
(55) 노동 有所思 그리움이 있어 짓다.
美人兮美人 不知爲暮雨兮爲朝雲 相思一夜梅花發
미인이여 미인이여! 알지 못하네 저녁에는 비 되고 아침에는 구름 되는가, 서로 그리워한 지 하룻밤 사이에 매화꽃 피니…
(56) 장자 내편 4인간세
言者 風波也 行者 實喪也 風波 易以動 實喪 易以危 故忿設 無由 巧言偏辭
말은 바람이 일으킨 물결처럼 일정한 모습이 없고 행동은 득실이 있다. 바람이 일으킨 물결은 쉽게 움직이고 득실은 쉽게 위태로워진다. 그 때문에 분노가 일어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없고 교묘한 말과 치우친 말 때문이다.
(57) 한비자집해 15 망징편
輕其適正 庶子稱衡 太子未定而主卽世者 可亡
왕위를 계승할 적자는 가벼이 대하고 서자도 적자와 대등하게 여기며, 태자가 정해지지 않은 채 군주가 세상을 떠나는 경우는 나라가 멸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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