懷沙賦 屈原(굴원)
그리고 나서 굴원은 〈회사(懷沙)〉라는 부(賦)를 지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햇볕이 따가운 초여름이라 초목도 무성하구나.
쓰라린 마음에 영원한 슬픔 안고 유유히 흘러서 남쪽 땅으로 가련다.
쳐다만 보아도 아득하고 멀어서 조용한 것이 소리조차 없구나.
답답하고 울적한 마음 시름에 겨우니 못내 괴롭다.
정(情)을 억누르고 뜻을 헤아려 원통함을 삼키고 스스로 참네.
모난 것을 깎아서둥굴게 만들어도 일정한 규범은 바꾸지 않는데, 근본(根本)이나 초지(初志)를 고치는 것은 군자(君子)가 얕보는 것이라.
먹으로 분명히 그려 놓은 옛날의 설계는 고치지 않으며, 충정이 후덕하고 성질이 올바르기를 대인(大人)이 기리는 바요.
교수(巧倕)라도 자르지 않는데 누가 그 칫수의 바름을 알겠나?
검은 무늬가 어두운데 놓이면 청맹과니는 불분명타 하고 이루(離婁)가 실눈을 뜨더라도 소경은 못 보는 줄로 여기지.
흰색을 바꾸어 검다고 하고 위를 거꾸로 아래라 한다.
봉황(鳳凰)은 새장 속에 있는데 닭과 집오리는 나다니며 춤을 추네.
옥(玉)과 돌을 한 곳에 섞어 놓고 하나의 평미래로 재려고 하니 저 도당들의 비천함이여! 내가 가진 것의 값어치를 모른다.
무거운/ 짐을 많이도 실어 바퀴가 빠져서 움직이질 않네.
아름다운 보석을 품고 있지만 길이 막혔으니 보일 데를 모르겠다.
마을 개들이 떼지어 짖는 것은 이상한 사람 있어 짖는 것이고 영웅과 호걸을 비방하는 건 본래가 용렬해서 그렇다.
무늬와 바탕은 안으로 갖췄으니 중인(衆人)들은 이채로운 걸 모르고
재목과 원목이 산처럼 쌓여 있어도 내 것인 것을 모르는 구나.
어짐(仁)이 겹치고 정의가 이어지고 근신과 온후함이 풍성하여도 순임금님은 만날 수 없으니 누가 나의 거동을 알아나 줄까?
옛적에도 성군(聖君)과 현신(賢臣)이 같이 나지 않는 그 까닭을 알기나 하랴?
탕(湯)과 우(禹)는 먼 옛날이야기 아득하여 생각할 수도 없다.
잘못을 뉘우치고 원한을 삭이고 마음을 억눌러서 스스로 참아 시름이 겨워도 변하지 않으리니 이 뜻을 본보기로 하리라.
길을 나아가 북쪽에 다 닿으니 해는 뉘엿뉘엿 어두워진다.
시름을 풀고 서글픔을 달래며 지나간 큰일들을 마감하리라.
요약하자면
넘실거리는 원수(沅水)와 상수(湘水) 두 갈래로 굽이쳐 흐르고 닦아 놓은 길은 깊숙이 가리워져 멀고도 먼 길은 끝이 없네.
이렇게 읊조리며 슬퍼하며 길이 개탄하여도 세상에 이미 나를 알아주는 이 없으니 인심이란 말할 것도 없네.
가슴에 품은 도타운 정은 비할 데 없이 우뚝하지만 백락(伯樂)이 이미 죽었으니 천리마를 어찌 알아보리오?
인생은 천명을 받아 각기 제자리가 있거늘 마음을 정하고 뜻을 넓히면 내 무엇을 두려워하랴?
상심이 더하여 서럽게 울며 기다랗게 한숨을 쉰다.
세상이 혼탁하여 알아주는 이 없으니 사람의 마음을 일깨울 수 없구나.
죽음을 물릴 수 없음을 알았으니 애석하다 여기지 말아라.
분명히 군자에게 고하노니 내 이제 충신의 본보기가 되리라!
그리고는 마침내 가슴에 돌을 품고 멱라수(汨羅水)에 몸을 던져 죽었다.
굴원이 죽은 후 초나라에는 송옥(宋玉), 당륵(唐勒), 경차(景差)와 같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모두가 문학을 좋아하여 부(賦)로써 명성이 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굴원과 같이 완곡하고 함축적인 문체에는 능했으나 그들 중 누구도 감히 직간을 행하지 않아 결국은 초나라는 날이 갈수록 국세가 약화되어 굴원이 죽고 나서 몇 십년 후에 진나라에 멸망하고 말았다.
굴원이 멱라수에 몸을 던진 이래 100년여 년이 지나자 한나라에 가의(賈誼)란 사람이 장사왕(長沙王: 조조의 아들 조식이다.)의 태부가 되어 상수(湘水)를 지나다 제문을 지어 물속에 던져 굴원을 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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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巧倕) : 중국 고대 신화상의 인물로 요임금 밑에서 공공(共工-技術官)을 지낸 장인의 이름이다. 원래 이름은 수(垂)이나 재주가 비상하다고 해서 교(巧)를 붙여 교수라 칭했다. 해중(奚仲)은 수레를 교수는 배를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 矇瞍(몽수) : 몽(矇)은 눈동자가 있는 소경이고 수(瞍)는 눈동자가 없는 소경이다.
- 이루(離婁) : 눈이 밝아 100보 밖의 가는 털로 볼 수 있었다는 중국 고대 신화상의 황제(黃帝) 때 인물이다.
- 고(瞽) : 눈동자가 없어서 눈꺼풀이 위아래로 달라붙은 장님.
- 영(英)은 만인을, 준(俊)은 천인을, 호(豪)는 백인(百人)을, 걸(桀)은 십인(什人)을 능가하는 인물을 지칭한다.
- 백락(伯樂) : 춘추 때 진나라 목공 때 사람으로 말을 잘 감별했다.
개인적으로 초사를 좋아한다. 일단 시기적으로 이천년 이상 전이기 때문에 뭔가 상상의 여지도 많고 그때와 지금 사용하는 말이 다르기 때문에 해석의 여지도 다양하다 문장을 끝맺는 兮혜 라는 글자도 너무 귀엽다. 굴원과 송옥이 초사의 대표적인 인물이고 초사라고 하는 책의 대부분이 이 두사람이 지은것인데 실전된 부분이 많아 정확히 어떤 것을 굴원이 쓰고 어떤것을 송옥이 썼는지 알 수 없다고 한다.
굴원은 초나라의 왕족이었다고 한다. 미씨 였다고 하니, 시기적으로 봤을때 나중에 선태후가 되는 미씨와도 친인척 관계였을 수도 있다. 물론 굴원은 초나라의 홀대에도 끝까지 초나라를 지키려다 아무도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아 답답하여 목숨을 끊는다. 만약 회왕이 굴원을 말을 들어주었다면 진나라의 통일은 조금 늦어졌을까? 세상이 혼탁하여 알아주는 사람 없다는 내용은 굴원이 지은 대부분의 시를 관통하는 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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