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毒樹毒果
독이든 나무의 열매에도 독이 있다.
하인들이 분주하게 자리를 정리하자 엽백의와 주구전도 천천히 일어났다. 이제 황제가 평락원의 사당에서 풍년제를 지낼 것이다. 황실의 사당이니 황실 종친만 참여할 것이다. 내일 하늘에 비는 제사는 또 누군가가 맡아서 지금부터 준비할 것이다. 주구전은 배를 내리면서도 일을 하고 있는 하인들에게 잔소리를 했다.
음식을 그렇게 놓으면 금방 상할 것이라던가 무슨 생선과 무슨 과일은 제사상에 올릴 수 없다는 그런 내용이다. 그 잔소리를 듣고 있는 하인들은 기분 나쁜 기색 없이 주구전의 말을 잘 따랐다. 온객행은 괜스레 주구전이 저 하인들 한테서는 무슨 소리를 들었을까 궁금했다. 오늘 봤던 귀족들과 하인들의 말을 잘 조합하면 조왕이 누구의 이름으로 강호에 관여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엽백의와 다 함께 천천히 배를 내리고 있을 즈음에 갑자기 관군이 들이 닥쳤다. 배안에서 내리던 하인들과 엽백의 일행은 휩쓸려서 배에서 내리지 못했다. 군관들이 배 주위를 포위하는 것을 본 엽백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인들과 엽백의 일행은 군관들에 의해 모두 갑판에 모였다. 아직 배를 정리하던 도중이라 아직도 치워지지 않은 상들과 의자가 많았다. 하인들이 웅성거리자 군관이 그들을 위협하며 그들을 조용하게 했다. 하인들은 겁을 집어먹고 벌벌 떨었다.
주구전이 군관에게 점잖게 무슨 일인지 물었지만 아마 주구전이 물었던 그 군관은 계급이 낮아 무슨 일이지 모를 것이다. 배를 내리는 귀족들을 구경할 때처럼 갑판 난간에 기대어 배 주변을 살펴보았다. 숭산에서 만났던 월기교위 유연이다. 유연은 귀비 유씨의 집안 장손으로 성정이 교만하고 사치스러운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그가 저렇게 깍듯이 대하는 것을 보면 아마 대화하고 있는 사람은 그보다 신분이 높은 사람일 것이다.
배 주변을 구경하고 있는 온객행 옆으로 주자서가 왔다. 그도 난간에 기대며 말했다. “뭘 보고 있소?” 온객행이 시선을 주자서에게 옮기며 말했다. “아서 해가 저물어서 그런가? 춥다.” 그리고 주자서에게 몸을 붙였다. 주자서는 기대오는 온객행을 뿌리치지 않고 고개를 돌려 작게 웃은 뒤에 말했다. “배를 내리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뭘까?” 온객행이 주자서의 팔에 매달리며 말했다. “나 같이 천한 것이 어찌 알겠어.” 온객행이 주자서를 보며 웃었다.
주자서는 조금 놀랐는지 온객행을 얼굴을 빤히 보았다. 그러더니 말했다. “노온, 세상에 천한 사람이 어디 있어.” 온객행이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부군 세속에서의 귀천은 나에게 있지 않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소?(58) 천하고 귀한 것은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야.” 온객행은 슬퍼졌다. 주자서가 온객행을 마주보며 말했다. “우리는 도를 닦는 사람들이니 만물에 귀천이 어디 있는가? 사람이 판단하는 기준으로 어떤 것은 유용하고 어떤 것은 유용하지 않다 하는 것은 모두 의미 없는 일이네.” 온객행은 주자서의 말에 당황했다. 알고 있는 말이고 여러 번 들어본 말인데 아서가 해주니 위로가 되는 것 같았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허리에 팔을 둘러 꼭 안았다. 뒤에서 군관이 헛기침을 하며 부르는 소리가 들리기 전까지 둘은 그렇게 안고 있었다.
다가온 관병이 그들의 신상에 대해 물었다. 온객행이 나서서 장명산 검선의 제자라는 신분을 밝혔고, 주자서도 주구전의 종손임을 밝혔다. 그 둘을 한참 위아래로 보던 군관은 난간에 기대지 말라며 다른 하인들이 모여 앉아 있는 갑판 가운데로 그 둘을 끌고 갔다. 엽백의와 주구전을 발견한 두사람은 그들 곁으로 가서 섰다. 온객행이 엽백의에게 말했다. “성문교위들이 모두 성안으로 들어 왔소.” 엽백의가 온객행의 말에 주변을 둘러보더니 앉아서 운기조식을 하기 시작했다. 온객행이 주변의 눈치를 보며 엽백의 근처를 호위했다.
주구전도 옆에 가서 엽백의가 앉아 있는 것을 몸으로 서서 가리며 주자서에게 평락원에 있을 때 했던 일들에 대해 말했다. 일각쯤 운기조식을 마친 엽백의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주구전에게 속삭였다. “짐(鴆).”(63) 주구전이 그 말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구전이 말했다. “무공이 높은 자가 있습니다.” 엽백의가 고개를 끄덕였다.
주구전은 품속에서 작은 병을 꺼내어 거기서 작은 환약을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주자서에게 주며 말했다. “군자산이다.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일단 먹도록 해라.” 주자서는 주구전의 말이 끝나자 마자 환약을 입에 넣고 삼켰다. 옆에서 보고 있던 온객행이 놀라 주자서의 팔을 붙잡았다. “아서!” 군자산은 장시간 무공을 흐트러트리는 독이다. 그것을 묻지도 않고 덥석 삼킨 것이다.
뒤 쪽에서 군관이 검선을 찾았다. 엽백의가 그에게 가면서 온객행을 불렀다. “쓸모 없는 놈아 따라오너라.” 그리고는 군관에게 온객행이 자신의 제자라고 소개했다. 군관은 별말 없이 두사람을 데리고 객실로 내려갔다. 객실로 들어가니 월기교위와 그보다 지위가 높은 군관이 앉아 있었다. 엽백의가 들어오자 지위가 높은 군관이 말했다. “저는 내조 효기교위 진광 이쪽은 월기교위 유연입니다. 그대가 장명산 상선이십니까?”
엽백의가 착잡한 표정으로 포권하며 인사했다. “그렇소, 내가 엽백의요.” 효기교위는 자리에서 일어나 엽백의에게 포권하며 말했다. “검선께서 부디 진모의 청을 들어주십시오.” 엽백의가 당황하여 주변을 살피자 옆에 앉아 있던 월기교위도 똑같이 일어나더니 엽백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렇게 엽백의와 진왕은 평락원에 있는 황제를 알현하러 갔다.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배위를 보니 아직도 하인들을 붙잡아 놓은 듯했다.
평락원 근처에 도착하자 그 앞에 서있던 내관이 엽백의를 붙잡고 서둘러 내실로 들어갔다. 엽백의는 내관의 손에 이끌려 들어가면서 온객행에게 말했다. “가서 물을 끓여 오거라.” 온객행은 엽백의의 말을 듣고 주방으로 가서 식수를 찾았다. 보통 독에 당하면 먹은 것을 게워내고 그 독이 무엇인지 알아낸 후에 해독을 하는 것이 순서이다. 온객행은 떡을 얻어먹은 어멈을 찾아 차 주전자에 따뜻한 물을 채워 내실로 향했다.
엽백의는 내관과 실랑이하고 있었다. 엽백의가 황제의 몸을 일으켜 구토를 하게 하기 위해 손가락을 입으로 넣어야 한다고 했더니 불경하다며 반대하는 것이었다. 엽백의가 오늘 꼭 초상을 치러야 하겠냐고 버럭 소리를 지르자 주변에 있던 내관들이 모두 땅바닥에 엎드렸다. 엽백의가 황제가 먹은 것을 게워낼 수 있게 돕고 온객행이 가져온 물을 마시게 했다. 그리고 기진맥진하여 누워있는 황제의 맥을 짚었다.
온객행은 황제가 게워낸 토사물을 보며 황제가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확인했다. 그 중에는 온객행이 얻어먹었던 음식도 있었다. 온객행은 어째서 배 위에서 주구전과 엽백의가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지 알 것 같았다. 엽백의가 맥을 짚고 한동안 갸웃거리더니 일어나 온객행에게 왔다. “투구꽃이다. 얼마나 먹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죽을 만큼은 아니다.” 투구꽃은 초오풀이라고 부르며 약용으로도 종종 사용되기 때문에 구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용량을 잘못하면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아주 숙련된 의원이 아니면 함부로 쓰지 않는 약초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어디에 섞인 것 같은데 무엇인지 알 수 없으니 네가 배로 돌아가서 비슷한 증상이 있는 자들을 찾도록 해라.”
엽백의의 말을 같이 듣고 있던 내관이 온객행에게 길을 안내하며 말했다. “마차를 준비할까요?” 엽백의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오늘 연회에 참석한 자들 중에 천자와 비슷한 증상이 있는 자가 있으면 안내하시오.” 그러자 내관이 엽백의를 붙잡으며 말했다. “그럼 폐하는 어찌 합니까?” 엽백의가 황제가 누워있는 침상을 보고 말했다. “이제 곧 정신이 드실 테니 무엇을 먹고 마셨는지 여쭈시오.” 황제의 시중을 들던 내관이 나와 말했다. “오늘 드시고 마신 것은 소인이 모두 기억하고 있사옵니다.” 엽백의가 내관과 대화하는 동안 온객행은 내실에서 나와 경공으로 훌쩍 지붕위로 올라갔다. 온객행을 따라오던 내관어 “온공자!” 하며 불렀지만 온객행은 멈추지 않고 배로 향했다.
온객행이 사뿐히 지붕에서 내려와 부두로 내려가자 주변을 호위하고 있던 군관이 온객행을 둘러쌌다. 온객행은 멀뚱히 서서 효기교위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효기교위의 허락으로 다시 승선했다. 객실로 가자 효기교위가 온객행에게 말했다. “무슨 일로 돌아오신 것이오?” 온객행이 말했다. “스승님께서 혹 황제폐하와 같은 증상의 환자가 없는지 살펴보고 오라 하셨소.” 효기교위는 옆에 앉아 있는 월기교위에게 뭐라 말하더니 월기교위가 일어나 온객행과 함께 갑판으로 나갔다.
하인들 중에는 여자가 많았는데 보통 음식을 나르거나 배에 탄 손님을 보필하는 어린 소녀들이 많았다. 아무래도 배이다 보니 실을 수 있는 물건들의 수가 정해져 있으니 무게를 줄이기 위해 아이들을 데려온 것 같았다. 남자들은 거의 대부분 배를 움직이는 선원이다. 이제 충년이 막 지난 것 같은 어린 아이들도 있었는데 주방에서 일하는 어멈에게 물으니 차를 준비하는 아이들이라고 했다.
주구전이 보이지 않아 주대인을 찾았다. 그는 하인들이 서 있는 곳 구석에 어떤 아이를 안고 있었다. 주자서는 옆에서 물에 적신 영견으로 아이를 열심히 닦아주고 있었다. 온객행이 다가가자 주구전이 허허 웃으며 말했다. “아이가 놀라 열이 있는 듯하니 걱정 마시지요.” 온객행이 아이 곁으로 다가가 아이의 맥을 짚었다. 아이는 열이 있는데도 맥이 천천히 뛰었다. 아이의 피부는 열이 올라 발갛게 익어 있었다.
온객행이 주변에 있는 하인들에게 물었다. “이 아이는 무슨 일을 하는 아이요?” 주구전 옆에서 아이를 걱정스럽게 보고 있던 어멈이 말했다. “상이는 술을 데우는 아이입니다.” 귀족들 중에는 냉증이 있어 찬 술을 마시지 못하는 이도 있으니 따로 술을 데우는 아이가 있었던 모양이다. 온객행이 상이를 주구전의 품에서 안아 들며 말했다. “대야와 마실 물을 준비해 주시오.”
온객행은 아이를 안아들고 먹은 것을 게워 내게 했다. 연약한 아이의 몸이 속을 게워내며 부들부들 떨렸다. 먹은 것이 많지 않았는지 아이의 뱃속에서 나온 내용물은 내용물이라고 할 만한 것도 별로 없었다. 온객행의 손속에 보고 있던 어멈이 울음을 터뜨렸다. 주구전이 어멈을 달래며 괜찮을 거라고 달래 주었지만 주변에 있는 하인들은 모두 겁에 질린 것 같다.
온객행이 처치를 마치자 다가온 주자서가 아이를 안았다. 주구전은 주자서의 손에서 영견을 뺐어 들고 아이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남이 보면 마지 제집 손자를 어르는 것처럼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아이를 간호했다. 아이를 안고 있는 주자서의 모습이 익숙하다. 주자서를 보고 있는 온객행의 팔을 붙잡은 월기교위가 그에게 조용히 물었다. “저 아이도?” 온객행은 주변을 살핀 뒤 월기교위와 함께 다시 객실로 내려갔다. 갑판위에 있는 사람들만 무슨 일인지 몰라 웅성거렸다.
온객행이 객실로 내려와 효기교위와 월기교위에게 황제의 상태를 이야기하는 동안 갑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소란스러웠다. 월기교위가 문 앞에 있는 군관 하나를 갑판으로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명소리가 들렸다. 놀란 온객행은 다시 갑판으로 나왔다. 주자서는 이제 막 정신이 든 것 같은 아이를 안고 있었고 주구전이 선원 한 명을 붙잡아 바닥에 처박아 놓았다.
주구전이 말했다. “이 자는 독술을 쓰는 자요!” 다시 보니 주변에 선원 몇 명과 하인 몇 명이 쓰러져 있었다. 온객행이 다가가자 바닥에 있던 선원은 입안에 게거품을 물었다. 주구전이 놀라 그의 목을 잡았지만, 선원은 이미 목숨이 끊어진 후였다. 온객행이 주변에 쓰러진 선원과 하인을 확인해 보았지만 모두 이미 죽었다. 주구전이 죽은 사람들의 몸을 살펴보았다. 겉으로 봐서는 어떻게 독에 당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군관들이 죽은 하인들에 대해 물었고, 그 하인들을 데려온 낭야왕도 역시 어떻게 된 일인지 추궁을 당할 것이다. 온객행이 의심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황제에게 먹인 독의 양이었는데 엽백의는 분명히 사람을 죽일 만큼의 치사량이 아니라고 했다. 독살을 하려고 벌인 일이 아닌 것이다. 지금 황제의 눈을 돌려야 하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온객행은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황제가 쓰러지자 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도성주변을 지키는 효기교위와 월기교위가 정주로 왔다. 그들은 낙양성 주변의 치안을 담당하는 군대인데 그들의 눈을 피해야할 누군가가 있다는 뜻일까?
갑판에 시신을 치우는 군관들과 그 시신들을 붙잡고 우는 선원과 하인들로 소란스러웠다. 주구전은 군관들이 시신을 옮기는 것에 참견하며 이리저리 돌아다녔고 주자서는 이제 깨어난 상이를 안고 있다. 주변에 상이만큼이나 어린 아이들 서넛이 그의 옷자락과 소매자락을 붙들고 울먹이고 있었다. 주자서는 그런 아이들을 익숙하게 달래고 있었다. “울지 말아라 아가야, 조부께서 나쁜 사람을 모두 데리고 가셨으니 이제 걱정할 것이 없다.” 그렇게 말하며 주자서가 자리에 앉자 아이들이 주자서에게 안겨왔다.
울먹이는 아이들을 보고 불안했는지 안겨 있던 상이가 큰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상이가 울자 다른 아이들도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주자서의 곤란한 기색을 읽고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다가가 울고 있는 상이를 안아 들었다. “꿈속에 성현께서 아이를 친히 안아 건네니 모두 천상의 기린아라오.”(59) 온객행의 알 수 없는 말에 상이가 신기하다는 듯이 울음을 멈추고 온객행을 보았다.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말했다. “아서 아이가 이렇게 많다니 나는 홀아비에게 시집을 간 거야?”
온객행의 말에 울고 있던 아이들이 하나 둘 시선을 온객행에게 던졌다. “너희들 기린아가 무슨 뜻인지 아니?” 온객행의 목소리에 훌쩍이던 아이들이 고개를 흔들었다.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지혜와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란 뜻인데 어찌 이리 울고들 계시오?” 하며 아이들의 뺨을 쓸었다. 주자서의 흰 옷을 눈물로 적시던 아이들이 금방 울음을 그쳤다.
군관이 온객행에게 다가와 상이를 데려가려고 했다. 온객행이 상이를 내려놓자 주자서가 다가와 아이의 손을 잡았다. “나으리, 상이는 아직 어려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저에게 하문하시지요.” 그걸 보고 있던 온객행이 군관에게 포권하며 말했다. “이 아이에 대해서는 내가 물어볼 테니 염려 마시지요.” 군관은 아까 주자서와 온객행이 정답게 서로에게 기대 난간에서 희롱하는 꼴을 보았던 터라 온객행에게 별로 신뢰가 가지 않았다.
군관의 꺼리는 기색을 읽은 주자서가 손을 잡은 아이에게 몸을 숙여 시선을 맞추며 말했다. “오늘 술을 데우면서 누구누구를 보았니?” 아이가 훌쩍이더니 대답했다. “술을 가져온 축오라버니랑 그 술을 나르는 언니들…” 주자서가 군관을 보았다. 군관이 아이에게 물었다. “술을 데우는 동안 누가 너와 함께 있었지?” 아이가 군관의 눈치를 보며 주자서에게 몸을 붙였다. “왕어멈.” 아이의 대답을 들은 군관이 다시 물었다. “선원들 중에 음식을 준비하는 곳에 발을 들인 자를 보았나?” 아이는 우물쭈물하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군관이 주구전이 시신을 옮기는 군관들에게 잔소리하는 쪽을 가리키며 물었다. “주대인께서 잡은 선원이 음식을 준비하는 곳에 발을 들인 적이 있느냐?” 아이는 군관의 목소리에 주눅이 들어 주자서의 품에 기대며 고개를 저었다. 주자서가 팔을 둘러 아이의 등을 쓸어주자 아이가 조금씩 훌쩍였다. 온객행이 끼어들어 군관에게 말했다. “왕어멈과 함께 있었다 하니, 가서 왕어멈께도 물어보시오. 어린 아이보다 그쪽이 더 잘 알지 않겠소.” 군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하인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군관이 다른 곳으로 가자 뒤쪽에 서있던 아이들도 모두 주자서에게 다가왔다. 자신들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는지 주변의 눈치를 보면서도 울지는 않았다. 주자서가 아이들에게 물었다. “오늘 상이 말고 술이나 차를 끓인 아이는 누구니?” 아이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이름을 불렀다. 주자서는 온객행에게 아이들의 맥을 짚게 했다. 체온이 조금 높을 뿐 특별할 것이 없어서 온객행은 괜한 걱정이라고 말했다.
주구전이 시신을 내리는 군관들에게 난간 너머로 하던 잔소리를 마치고 주자서에게 다가왔다. 주구전이 다가오자 주자서에게 붙어있던 아이들이 주구전에게 다가갔다. 주구전이 입을 열었다. “여기 있는 아이들은 모두 평락원에서 온 아이들이니 그리로 데려다 주어야 하겠구나.” 온객행이 평락원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오늘 밤에 풍년제를 지내는 것은 글렀으니 며칠 더 머무르실 겁니다.” 온객행의 말에 주구전 역시 고개를 돌려 평락원을 보았다.
시간을 알리는 보사가 해시를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경이오! 둥! 둥! 이경이오! 둥! 둥!” 배 위에 소란을 어느정도 정리한 효기장군과 월기장군은 곧 배에서 내렸다. 그의 부하들도 하나 둘 배에서 내렸다. 하지만 하인들이 배에서 내리는 것은 막았다. 밝게 불을 피워 배와 연결된 선창의 다리를 빼앗았다. 온객행은 효기장군을 따라 나갈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지금 다시 평락원으로 돌아가봐야 엽백의의 시중을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주구전은 아이들을 데리고 침실이 있는 객실 하나를 얻어 평상이며 바닥에 장식해 두었던 비단천을 깔고 아이들을 눕혔다. 그리고 자신도 그 아이들 옆에 누워 옛날 이야기를 했다. 주자서는 갑판에서 걷어온 천들을 아이들에게 덮어주며 주구전의 잠자리를 돌봤다. 온객행은 그런 주자서를 졸졸 쫓아다니며 그가 하는 일을 도왔다. 아직 밖에 남아 있는 하인들에게도 잠자리를 마련해준 뒤에 주구전이 있는 객실로 돌아왔다.
주자서는 잠든 아이들의 이불을 덮어주며 돌아다니다가 객실 한쪽에 벽을 기대고 앉았다. 온객행은 입은 장포를 벗어 주자서에게 둘러주고 옆에 앉았다. 주자서는 거절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온객행이 옆에 앉자, 장포를 펴서 둘이 같이 덮었다. “아서 오늘도 정말 일이 많았다. 그치?” 온객행의 말에 주자서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또 그 소리.”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기대며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 일이 많은 건 아서를 만나고 난 다음 부터야.” 주자서가 의심하는 눈초리로 온객행을 보았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무릎에 놓여있는 손을 위로 포개며 말했다. “어때? 오늘은 내가 조금 좋아졌어?” 주자서는 불편한듯 조심스럽게 손을 빼며 말했다. “일이 너무 많아서 잘 모르겠네.” 그리고는 팔짱을 끼고 눈을 감아버렸다.
온객행이 물었다. “아서, 이러다가 보름이 아니라 몇 년이 걸려도 어렵겠어.” 주자서가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러지 말고 어떤 사람에게 마음이 가는지 내게 말해줘.” 주자서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온객행이 몸을 좀 더 붙이고 주자서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놀란 주자서의 어깨가 튀었다. “노온.” 나지막이 불리는 소리가 좋아 온객행이 “으응” 하고 대답했다. 주자서가 말했다. “부드러운 얼굴에 단단한 마음 진중하고 예의바르도다”(60) 온객행이 주자서를 자기 품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고운 얼굴에 매끄러운 살결, 밝게 빛나는 눈. 아서 지금 누구를 부르는 거야?”
방 안쪽에서 아이를 토닥이던 주구전이 헛기침을 하며 눈치를 주었다. 뿌리치는 주자서를 놔준 온객행은 아쉬워서 주자서의 손을 잡았다. “아서 그럼 손만 잡고 잘게.” 잡는 손을 거절하지 않기에 온객행은 깍지를 끼어 잡았다. 자는 동안 어디 가지 못하도록. 주자서는 불편해 하면서도 손을 뿌리치지는 않았다.
(58) 장자 잡편 17. 추수
以道觀之 物無貴賤 以物觀之 自貴而相賤 以俗觀之 貴賤不在己
도의 관점에서 보면 만물에는 귀천이 없다. 그런데 사물의 관점에서 보면 모두 자기를 귀하게 여기고 서로 상대를 천시하고, 세속의 관점에서 보면 귀천이 나에 있지 않게 된다.
因其所有而有之 則萬物莫不有 因其所無而無之 則萬物莫不無
사람들이 각자 유용하다고 판단하는 기준에 근거하여 어떤 사물을 유용하다고 하면 만물이 모두 유용하지 않은 것이 없고, 사람들이 각자 무용하다고 판단하는 기준에 근거하여 어떤 사물을 무용하다고 하면 만물이 모두 무용하지 않은 것이 없게 된다.
(59) 두보 서경의 두 아들을 읊는 노래
孔子釋氏親抱送 幷是天上麒麟兒
꿈속에 공자와 석씨 아이를 친히 안아 건네 주니 모두 천상의 기린아(麒麟兒)라오.
(60) 굴원? 송옥? 초혼
弱顔固植 謇其有意些 부드러운 얼굴에 단단한 마음 바탕 아, 진중하고 예의도 바르도다.
靡顔膩理 遺視眄些 팽팽한 얼굴에 흐르듯 고운 살결 아득히 훔쳐보는 까만 눈동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