雨霖鈴 第17

17. 毒樹毒果
독이든 나무의 열매에도 독이 있다.

하인들이 분주하게 자리를 정리하자 엽백의와 주구전도 천천히 일어났다. 이제 황제가 평락원의 사당에서 풍년제를 지낼 것이다. 황실의 사당이니 황실 종친만 참여할 것이다. 내일 하늘에 비는 제사는 또 누군가가 맡아서 지금부터 준비할 것이다. 주구전은 배를 내리면서도 일을 하고 있는 하인들에게 잔소리를 했다.

음식을 그렇게 놓으면 금방 상할 것이라던가 무슨 생선과 무슨 과일은 제사상에 올릴 수 없다는 그런 내용이다. 그 잔소리를 듣고 있는 하인들은 기분 나쁜 기색 없이 주구전의 말을 잘 따랐다. 온객행은 괜스레 주구전이 저 하인들 한테서는 무슨 소리를 들었을까 궁금했다. 오늘 봤던 귀족들과 하인들의 말을 잘 조합하면 조왕이 누구의 이름으로 강호에 관여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엽백의와 다 함께 천천히 배를 내리고 있을 즈음에 갑자기 관군이 들이 닥쳤다. 배안에서 내리던 하인들과 엽백의 일행은 휩쓸려서 배에서 내리지 못했다. 군관들이 배 주위를 포위하는 것을 본 엽백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인들과 엽백의 일행은 군관들에 의해 모두 갑판에 모였다. 아직 배를 정리하던 도중이라 아직도 치워지지 않은 상들과 의자가 많았다. 하인들이 웅성거리자 군관이 그들을 위협하며 그들을 조용하게 했다. 하인들은 겁을 집어먹고 벌벌 떨었다.

주구전이 군관에게 점잖게 무슨 일인지 물었지만 아마 주구전이 물었던 그 군관은 계급이 낮아 무슨 일이지 모를 것이다. 배를 내리는 귀족들을 구경할 때처럼 갑판 난간에 기대어 배 주변을 살펴보았다. 숭산에서 만났던 월기교위 유연이다. 유연은 귀비 유씨의 집안 장손으로 성정이 교만하고 사치스러운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그가 저렇게 깍듯이 대하는 것을 보면 아마 대화하고 있는 사람은 그보다 신분이 높은 사람일 것이다.

배 주변을 구경하고 있는 온객행 옆으로 주자서가 왔다. 그도 난간에 기대며 말했다. “뭘 보고 있소?” 온객행이 시선을 주자서에게 옮기며 말했다. “아서 해가 저물어서 그런가? 춥다.” 그리고 주자서에게 몸을 붙였다. 주자서는 기대오는 온객행을 뿌리치지 않고 고개를 돌려 작게 웃은 뒤에 말했다. “배를 내리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뭘까?” 온객행이 주자서의 팔에 매달리며 말했다. “나 같이 천한 것이 어찌 알겠어.” 온객행이 주자서를 보며 웃었다.

주자서는 조금 놀랐는지 온객행을 얼굴을 빤히 보았다. 그러더니 말했다. “노온, 세상에 천한 사람이 어디 있어.” 온객행이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부군 세속에서의 귀천은 나에게 있지 않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소?(58) 천하고 귀한 것은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야.” 온객행은 슬퍼졌다. 주자서가 온객행을 마주보며 말했다. “우리는 도를 닦는 사람들이니 만물에 귀천이 어디 있는가? 사람이 판단하는 기준으로 어떤 것은 유용하고 어떤 것은 유용하지 않다 하는 것은 모두 의미 없는 일이네.” 온객행은 주자서의 말에 당황했다. 알고 있는 말이고 여러 번 들어본 말인데 아서가 해주니 위로가 되는 것 같았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허리에 팔을 둘러 꼭 안았다. 뒤에서 군관이 헛기침을 하며 부르는 소리가 들리기 전까지 둘은 그렇게 안고 있었다.

다가온 관병이 그들의 신상에 대해 물었다. 온객행이 나서서 장명산 검선의 제자라는 신분을 밝혔고, 주자서도 주구전의 종손임을 밝혔다. 그 둘을 한참 위아래로 보던 군관은 난간에 기대지 말라며 다른 하인들이 모여 앉아 있는 갑판 가운데로 그 둘을 끌고 갔다. 엽백의와 주구전을 발견한 두사람은 그들 곁으로 가서 섰다. 온객행이 엽백의에게 말했다. “성문교위들이 모두 성안으로 들어 왔소.” 엽백의가 온객행의 말에 주변을 둘러보더니 앉아서 운기조식을 하기 시작했다. 온객행이 주변의 눈치를 보며 엽백의 근처를 호위했다.

주구전도 옆에 가서 엽백의가 앉아 있는 것을 몸으로 서서 가리며 주자서에게 평락원에 있을 때 했던 일들에 대해 말했다. 일각쯤 운기조식을 마친 엽백의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주구전에게 속삭였다. “짐(鴆).”(63) 주구전이 그 말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구전이 말했다. “무공이 높은 자가 있습니다.” 엽백의가 고개를 끄덕였다.

주구전은 품속에서 작은 병을 꺼내어 거기서 작은 환약을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주자서에게 주며 말했다. “군자산이다.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일단 먹도록 해라.” 주자서는 주구전의 말이 끝나자 마자 환약을 입에 넣고 삼켰다. 옆에서 보고 있던 온객행이 놀라 주자서의 팔을 붙잡았다. “아서!” 군자산은 장시간 무공을 흐트러트리는 독이다. 그것을 묻지도 않고 덥석 삼킨 것이다.

뒤 쪽에서 군관이 검선을 찾았다. 엽백의가 그에게 가면서 온객행을 불렀다. “쓸모 없는 놈아 따라오너라.” 그리고는 군관에게 온객행이 자신의 제자라고 소개했다. 군관은 별말 없이 두사람을 데리고 객실로 내려갔다. 객실로 들어가니 월기교위와 그보다 지위가 높은 군관이 앉아 있었다. 엽백의가 들어오자 지위가 높은 군관이 말했다. “저는 내조 효기교위 진광 이쪽은 월기교위 유연입니다. 그대가 장명산 상선이십니까?”

엽백의가 착잡한 표정으로 포권하며 인사했다. “그렇소, 내가 엽백의요.” 효기교위는 자리에서 일어나 엽백의에게 포권하며 말했다. “검선께서 부디 진모의 청을 들어주십시오.” 엽백의가 당황하여 주변을 살피자 옆에 앉아 있던 월기교위도 똑같이 일어나더니 엽백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렇게 엽백의와 진왕은 평락원에 있는 황제를 알현하러 갔다.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배위를 보니 아직도 하인들을 붙잡아 놓은 듯했다.


평락원 근처에 도착하자 그 앞에 서있던 내관이 엽백의를 붙잡고 서둘러 내실로 들어갔다. 엽백의는 내관의 손에 이끌려 들어가면서 온객행에게 말했다. “가서 물을 끓여 오거라.” 온객행은 엽백의의 말을 듣고 주방으로 가서 식수를 찾았다. 보통 독에 당하면 먹은 것을 게워내고 그 독이 무엇인지 알아낸 후에 해독을 하는 것이 순서이다. 온객행은 떡을 얻어먹은 어멈을 찾아 차 주전자에 따뜻한 물을 채워 내실로 향했다.

엽백의는 내관과 실랑이하고 있었다. 엽백의가 황제의 몸을 일으켜 구토를 하게 하기 위해 손가락을 입으로 넣어야 한다고 했더니 불경하다며 반대하는 것이었다. 엽백의가 오늘 꼭 초상을 치러야 하겠냐고 버럭 소리를 지르자 주변에 있던 내관들이 모두 땅바닥에 엎드렸다. 엽백의가 황제가 먹은 것을 게워낼 수 있게 돕고 온객행이 가져온 물을 마시게 했다. 그리고 기진맥진하여 누워있는 황제의 맥을 짚었다.

온객행은 황제가 게워낸 토사물을 보며 황제가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확인했다. 그 중에는 온객행이 얻어먹었던 음식도 있었다. 온객행은 어째서 배 위에서 주구전과 엽백의가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지 알 것 같았다. 엽백의가 맥을 짚고 한동안 갸웃거리더니 일어나 온객행에게 왔다. “투구꽃이다. 얼마나 먹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죽을 만큼은 아니다.” 투구꽃은 초오풀이라고 부르며 약용으로도 종종 사용되기 때문에 구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용량을 잘못하면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아주 숙련된 의원이 아니면 함부로 쓰지 않는 약초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어디에 섞인 것 같은데 무엇인지 알 수 없으니 네가 배로 돌아가서 비슷한 증상이 있는 자들을 찾도록 해라.”

엽백의의 말을 같이 듣고 있던 내관이 온객행에게 길을 안내하며 말했다. “마차를 준비할까요?” 엽백의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오늘 연회에 참석한 자들 중에 천자와 비슷한 증상이 있는 자가 있으면 안내하시오.” 그러자 내관이 엽백의를 붙잡으며 말했다. “그럼 폐하는 어찌 합니까?” 엽백의가 황제가 누워있는 침상을 보고 말했다. “이제 곧 정신이 드실 테니 무엇을 먹고 마셨는지 여쭈시오.” 황제의 시중을 들던 내관이 나와 말했다. “오늘 드시고 마신 것은 소인이 모두 기억하고 있사옵니다.” 엽백의가 내관과 대화하는 동안 온객행은 내실에서 나와 경공으로 훌쩍 지붕위로 올라갔다. 온객행을 따라오던 내관어 “온공자!” 하며 불렀지만 온객행은 멈추지 않고 배로 향했다.


온객행이 사뿐히 지붕에서 내려와 부두로 내려가자 주변을 호위하고 있던 군관이 온객행을 둘러쌌다. 온객행은 멀뚱히 서서 효기교위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효기교위의 허락으로 다시 승선했다. 객실로 가자 효기교위가 온객행에게 말했다. “무슨 일로 돌아오신 것이오?” 온객행이 말했다. “스승님께서 혹 황제폐하와 같은 증상의 환자가 없는지 살펴보고 오라 하셨소.” 효기교위는 옆에 앉아 있는 월기교위에게 뭐라 말하더니 월기교위가 일어나 온객행과 함께 갑판으로 나갔다.

하인들 중에는 여자가 많았는데 보통 음식을 나르거나 배에 탄 손님을 보필하는 어린 소녀들이 많았다. 아무래도 배이다 보니 실을 수 있는 물건들의 수가 정해져 있으니 무게를 줄이기 위해 아이들을 데려온 것 같았다. 남자들은 거의 대부분 배를 움직이는 선원이다. 이제 충년이 막 지난 것 같은 어린 아이들도 있었는데 주방에서 일하는 어멈에게 물으니 차를 준비하는 아이들이라고 했다.

주구전이 보이지 않아 주대인을 찾았다. 그는 하인들이 서 있는 곳 구석에 어떤 아이를 안고 있었다. 주자서는 옆에서 물에 적신 영견으로 아이를 열심히 닦아주고 있었다. 온객행이 다가가자 주구전이 허허 웃으며 말했다. “아이가 놀라 열이 있는 듯하니 걱정 마시지요.” 온객행이 아이 곁으로 다가가 아이의 맥을 짚었다. 아이는 열이 있는데도 맥이 천천히 뛰었다. 아이의 피부는 열이 올라 발갛게 익어 있었다.

온객행이 주변에 있는 하인들에게 물었다. “이 아이는 무슨 일을 하는 아이요?” 주구전 옆에서 아이를 걱정스럽게 보고 있던 어멈이 말했다. “상이는 술을 데우는 아이입니다.” 귀족들 중에는 냉증이 있어 찬 술을 마시지 못하는 이도 있으니 따로 술을 데우는 아이가 있었던 모양이다. 온객행이 상이를 주구전의 품에서 안아 들며 말했다. “대야와 마실 물을 준비해 주시오.”

온객행은 아이를 안아들고 먹은 것을 게워 내게 했다. 연약한 아이의 몸이 속을 게워내며 부들부들 떨렸다. 먹은 것이 많지 않았는지 아이의 뱃속에서 나온 내용물은 내용물이라고 할 만한 것도 별로 없었다. 온객행의 손속에 보고 있던 어멈이 울음을 터뜨렸다. 주구전이 어멈을 달래며 괜찮을 거라고 달래 주었지만 주변에 있는 하인들은 모두 겁에 질린 것 같다.

온객행이 처치를 마치자 다가온 주자서가 아이를 안았다. 주구전은 주자서의 손에서 영견을 뺐어 들고 아이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남이 보면 마지 제집 손자를 어르는 것처럼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아이를 간호했다. 아이를 안고 있는 주자서의 모습이 익숙하다. 주자서를 보고 있는 온객행의 팔을 붙잡은 월기교위가 그에게 조용히 물었다. “저 아이도?” 온객행은 주변을 살핀 뒤 월기교위와 함께 다시 객실로 내려갔다. 갑판위에 있는 사람들만 무슨 일인지 몰라 웅성거렸다.

온객행이 객실로 내려와 효기교위와 월기교위에게 황제의 상태를 이야기하는 동안 갑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소란스러웠다. 월기교위가 문 앞에 있는 군관 하나를 갑판으로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명소리가 들렸다. 놀란 온객행은 다시 갑판으로 나왔다. 주자서는 이제 막 정신이 든 것 같은 아이를 안고 있었고 주구전이 선원 한 명을 붙잡아 바닥에 처박아 놓았다.

주구전이 말했다. “이 자는 독술을 쓰는 자요!” 다시 보니 주변에 선원 몇 명과 하인 몇 명이 쓰러져 있었다. 온객행이 다가가자 바닥에 있던 선원은 입안에 게거품을 물었다. 주구전이 놀라 그의 목을 잡았지만, 선원은 이미 목숨이 끊어진 후였다. 온객행이 주변에 쓰러진 선원과 하인을 확인해 보았지만 모두 이미 죽었다. 주구전이 죽은 사람들의 몸을 살펴보았다. 겉으로 봐서는 어떻게 독에 당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군관들이 죽은 하인들에 대해 물었고, 그 하인들을 데려온 낭야왕도 역시 어떻게 된 일인지 추궁을 당할 것이다. 온객행이 의심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황제에게 먹인 독의 양이었는데 엽백의는 분명히 사람을 죽일 만큼의 치사량이 아니라고 했다. 독살을 하려고 벌인 일이 아닌 것이다. 지금 황제의 눈을 돌려야 하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온객행은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황제가 쓰러지자 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도성주변을 지키는 효기교위와 월기교위가 정주로 왔다. 그들은 낙양성 주변의 치안을 담당하는 군대인데 그들의 눈을 피해야할 누군가가 있다는 뜻일까?

갑판에 시신을 치우는 군관들과 그 시신들을 붙잡고 우는 선원과 하인들로 소란스러웠다. 주구전은 군관들이 시신을 옮기는 것에 참견하며 이리저리 돌아다녔고 주자서는 이제 깨어난 상이를 안고 있다. 주변에 상이만큼이나 어린 아이들 서넛이 그의 옷자락과 소매자락을 붙들고 울먹이고 있었다. 주자서는 그런 아이들을 익숙하게 달래고 있었다. “울지 말아라 아가야, 조부께서 나쁜 사람을 모두 데리고 가셨으니 이제 걱정할 것이 없다.” 그렇게 말하며 주자서가 자리에 앉자 아이들이 주자서에게 안겨왔다.

울먹이는 아이들을 보고 불안했는지 안겨 있던 상이가 큰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상이가 울자 다른 아이들도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주자서의 곤란한 기색을 읽고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다가가 울고 있는 상이를 안아 들었다. “꿈속에 성현께서 아이를 친히 안아 건네니 모두 천상의 기린아라오.”(59) 온객행의 알 수 없는 말에 상이가 신기하다는 듯이 울음을 멈추고 온객행을 보았다.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말했다. “아서 아이가 이렇게 많다니 나는 홀아비에게 시집을 간 거야?”

온객행의 말에 울고 있던 아이들이 하나 둘 시선을 온객행에게 던졌다. “너희들 기린아가 무슨 뜻인지 아니?” 온객행의 목소리에 훌쩍이던 아이들이 고개를 흔들었다.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지혜와 재주가 뛰어난 사람이란 뜻인데 어찌 이리 울고들 계시오?” 하며 아이들의 뺨을 쓸었다. 주자서의 흰 옷을 눈물로 적시던 아이들이 금방 울음을 그쳤다.

군관이 온객행에게 다가와 상이를 데려가려고 했다. 온객행이 상이를 내려놓자 주자서가 다가와 아이의 손을 잡았다. “나으리, 상이는 아직 어려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저에게 하문하시지요.” 그걸 보고 있던 온객행이 군관에게 포권하며 말했다. “이 아이에 대해서는 내가 물어볼 테니 염려 마시지요.” 군관은 아까 주자서와 온객행이 정답게 서로에게 기대 난간에서 희롱하는 꼴을 보았던 터라 온객행에게 별로 신뢰가 가지 않았다.

군관의 꺼리는 기색을 읽은 주자서가 손을 잡은 아이에게 몸을 숙여 시선을 맞추며 말했다. “오늘 술을 데우면서 누구누구를 보았니?” 아이가 훌쩍이더니 대답했다. “술을 가져온 축오라버니랑 그 술을 나르는 언니들…” 주자서가 군관을 보았다. 군관이 아이에게 물었다. “술을 데우는 동안 누가 너와 함께 있었지?” 아이가 군관의 눈치를 보며 주자서에게 몸을 붙였다. “왕어멈.” 아이의 대답을 들은 군관이 다시 물었다. “선원들 중에 음식을 준비하는 곳에 발을 들인 자를 보았나?” 아이는 우물쭈물하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군관이 주구전이 시신을 옮기는 군관들에게 잔소리하는 쪽을 가리키며 물었다. “주대인께서 잡은 선원이 음식을 준비하는 곳에 발을 들인 적이 있느냐?” 아이는 군관의 목소리에 주눅이 들어 주자서의 품에 기대며 고개를 저었다. 주자서가 팔을 둘러 아이의 등을 쓸어주자 아이가 조금씩 훌쩍였다. 온객행이 끼어들어 군관에게 말했다. “왕어멈과 함께 있었다 하니, 가서 왕어멈께도 물어보시오. 어린 아이보다 그쪽이 더 잘 알지 않겠소.” 군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하인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군관이 다른 곳으로 가자 뒤쪽에 서있던 아이들도 모두 주자서에게 다가왔다. 자신들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는지 주변의 눈치를 보면서도 울지는 않았다. 주자서가 아이들에게 물었다. “오늘 상이 말고 술이나 차를 끓인 아이는 누구니?” 아이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이름을 불렀다. 주자서는 온객행에게 아이들의 맥을 짚게 했다. 체온이 조금 높을 뿐 특별할 것이 없어서 온객행은 괜한 걱정이라고 말했다.

주구전이 시신을 내리는 군관들에게 난간 너머로 하던 잔소리를 마치고 주자서에게 다가왔다. 주구전이 다가오자 주자서에게 붙어있던 아이들이 주구전에게 다가갔다. 주구전이 입을 열었다. “여기 있는 아이들은 모두 평락원에서 온 아이들이니 그리로 데려다 주어야 하겠구나.” 온객행이 평락원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오늘 밤에 풍년제를 지내는 것은 글렀으니 며칠 더 머무르실 겁니다.” 온객행의 말에 주구전 역시 고개를 돌려 평락원을 보았다.


시간을 알리는 보사가 해시를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경이오! 둥! 둥! 이경이오! 둥! 둥!” 배 위에 소란을 어느정도 정리한 효기장군과 월기장군은 곧 배에서 내렸다. 그의 부하들도 하나 둘 배에서 내렸다. 하지만 하인들이 배에서 내리는 것은 막았다. 밝게 불을 피워 배와 연결된 선창의 다리를 빼앗았다. 온객행은 효기장군을 따라 나갈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지금 다시 평락원으로 돌아가봐야 엽백의의 시중을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주구전은 아이들을 데리고 침실이 있는 객실 하나를 얻어 평상이며 바닥에 장식해 두었던 비단천을 깔고 아이들을 눕혔다. 그리고 자신도 그 아이들 옆에 누워 옛날 이야기를 했다. 주자서는 갑판에서 걷어온 천들을 아이들에게 덮어주며 주구전의 잠자리를 돌봤다. 온객행은 그런 주자서를 졸졸 쫓아다니며 그가 하는 일을 도왔다. 아직 밖에 남아 있는 하인들에게도 잠자리를 마련해준 뒤에 주구전이 있는 객실로 돌아왔다.

주자서는 잠든 아이들의 이불을 덮어주며 돌아다니다가 객실 한쪽에 벽을 기대고 앉았다. 온객행은 입은 장포를 벗어 주자서에게 둘러주고 옆에 앉았다. 주자서는 거절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온객행이 옆에 앉자, 장포를 펴서 둘이 같이 덮었다. “아서 오늘도 정말 일이 많았다. 그치?” 온객행의 말에 주자서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또 그 소리.”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기대며 말했다. “하지만 이렇게 일이 많은 건 아서를 만나고 난 다음 부터야.” 주자서가 의심하는 눈초리로 온객행을 보았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무릎에 놓여있는 손을 위로 포개며 말했다. “어때? 오늘은 내가 조금 좋아졌어?” 주자서는 불편한듯 조심스럽게 손을 빼며 말했다. “일이 너무 많아서 잘 모르겠네.” 그리고는 팔짱을 끼고 눈을 감아버렸다.

온객행이 물었다. “아서, 이러다가 보름이 아니라 몇 년이 걸려도 어렵겠어.” 주자서가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러지 말고 어떤 사람에게 마음이 가는지 내게 말해줘.” 주자서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온객행이 몸을 좀 더 붙이고 주자서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놀란 주자서의 어깨가 튀었다. “노온.” 나지막이 불리는 소리가 좋아 온객행이 “으응” 하고 대답했다. 주자서가 말했다. “부드러운 얼굴에 단단한 마음 진중하고 예의바르도다”(60) 온객행이 주자서를 자기 품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고운 얼굴에 매끄러운 살결, 밝게 빛나는 눈. 아서 지금 누구를 부르는 거야?”

방 안쪽에서 아이를 토닥이던 주구전이 헛기침을 하며 눈치를 주었다. 뿌리치는 주자서를 놔준 온객행은 아쉬워서 주자서의 손을 잡았다. “아서 그럼 손만 잡고 잘게.” 잡는 손을 거절하지 않기에 온객행은 깍지를 끼어 잡았다. 자는 동안 어디 가지 못하도록. 주자서는 불편해 하면서도 손을 뿌리치지는 않았다.


(58) 장자 잡편 17. 추수
以道觀之 物無貴賤 以物觀之 自貴而相賤 以俗觀之 貴賤不在己
도의 관점에서 보면 만물에는 귀천이 없다. 그런데 사물의 관점에서 보면 모두 자기를 귀하게 여기고 서로 상대를 천시하고, 세속의 관점에서 보면 귀천이 나에 있지 않게 된다.
因其所有而有之 則萬物莫不有 因其所無而無之 則萬物莫不無
사람들이 각자 유용하다고 판단하는 기준에 근거하여 어떤 사물을 유용하다고 하면 만물이 모두 유용하지 않은 것이 없고, 사람들이 각자 무용하다고 판단하는 기준에 근거하여 어떤 사물을 무용하다고 하면 만물이 모두 무용하지 않은 것이 없게 된다.

(59) 두보 서경의 두 아들을 읊는 노래
孔子釋氏親抱送 幷是天上麒麟兒
꿈속에 공자와 석씨 아이를 친히 안아 건네 주니 모두 천상의 기린아(麒麟兒)라오.

(60) 굴원? 송옥? 초혼
弱顔固植 謇其有意些 부드러운 얼굴에 단단한 마음 바탕 아, 진중하고 예의도 바르도다.
靡顔膩理 遺視眄些 팽팽한 얼굴에 흐르듯 고운 살결 아득히 훔쳐보는 까만 눈동자

雨霖鈴 第16

16. 花柳東風
꽃과 버들 그리고 봄바람.

등잔에 불을 끄고 주자서가 잠드는 것을 지켜본 온객행은 엽백의를 찾으러 밖으로 나갔다. 주구전의 말에 따르면 강호와 작당을 하고 있는 것은 진왕이 아니라 조왕인 것 같았다. 진왕 주변에도 의심스러운 사람이 많기는 했지만 일단은 엽백의를 장명산 밖으로 끌어낼 수 있게 만든 일에 대해 조사하는 것이 먼저다. 가벼운 경공으로 객실 지붕위로 올라간 온객행은 주변을 살피며 주방으로 갔다. 평소와 달리 주방에 불이 밝혀져 있어 조심스럽게 다가간 온객행은 남은 찬에 술을 마시고 있는 엽백의와 주구전을 만났다. “노인네 뱃속에 거지가 들어 앉아 있나?” 온객행의 말에 잔을 부딪히던 두 노인네가 온객행을 보았다.

엽백의가 말했다. “네 시조부에게 못하는 말이 없구나.” 그 말에 주구전이 얼굴을 찡그리며 한숨을 쉬었다. 온객행이 두 노인이 앉은 자리 옆에 쪼그리고 앉아 말했다. “아무래도 헛물을 켠 것 같소. 노야.” 엽백의가 잔에 술을 채우며 말했다. “비린 것을 찾고 서로 피를 빨려 하니,(53) 죄가 있는지 없는지도 구분하기 힘들구나.” 주구전이 술잔을 내려 놓으며 말했다. “엽선배 아무래도 남궁세가와 관련이 있는 것 같으니 어서 여기 일을 정리하고 양주로 돌아가 봐야겠습니다.” 엽백의가 술잔을 비우고 말했다. “하하하, 그게 너의 뜻대로 될 성싶으냐?” 주구전이 술잔을 채우며 다시 ‘어휴’하고 한숨을 쉬었다. 보고 있던 온객행이 물었다. “천자께서는 뭐라고 하시오?” 엽백의는 온객행을 힐끔 보고 고개를 저었다. 온객행은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다물었다.

그날 밤 온객행은 낭야왕의 배 안을 뒤졌다. 내일 낚시를 하며 연회를 하는 배 치고는 지키는 사람도 몇 없었고 배의 상태도 별로 좋지 않았다. 내부는 비어 아무것도 없었고, 누각에는 이런 저런 짐이 잔뜩 실려 있었다. 온객행이 짐을 뒤지자 대부분의 물건은 제남상단에서 구매한 물건 같았다. 그들은 그들이 판매하는 물품에 노란 종이를 붙여 인을 했는데 그 것이 짐 여기저기에 붙어 있었다. 내일 연회에 쓰일 식재료와 술이 대부분이었다. 배를 꾸미는데 쓰는 천과 비단도 몇 필 있었는데 이것은 삼백상단의 물건이다.

양주의 제일 큰손은 오(吳)에 태호파다. 삼백상단은 태호파가 운영하는 상단인데 오와 단양, 고장 신도지역은 예로부터 뽕나무가 많아 비단이 유명했다. 제남상단에서 구매한 것인지 아니면 직접 삼백상단에서 구매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짐에서 묘하게 강호의 냄새가 났다. 남궁세가도 태호파와의 관계를 중요시하고 있으니 아직 모르는 관계가 있을 것이다. 공의에서 진왕은 초무관이라는 기생집에 자주 드나 들었는데, 그곳은 화산파가 아니라 태호파와 관련이 있는 듯했다. 그곳을 호위하고 관리하는 곳은 화산파가 맞았으나 그들의 장부에는 태산파의 낙계(烙契)와 삼백상단의 날인이 있었다.

배를 지키는 사람들의 얼굴을 살펴본 뒤 온객행은 평락원으로 돌아왔다. 노야는 다른 처소에 머무르는지 객실로 돌아왔을 때는 주자서만 침상 위에서 자고 있었다. 천천히 침상 쪽으로 가서 보니 이불에 곱게 쌓여 잠든 주자서가 보였다. 온객행은 침대에 걸터앉아 잠든 주자서의 얼굴을 보았다.

시작은 장난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당황하고 놀라는 반응이 귀여워서 놀리려고 그랬다. 하는 행동이 군자 마냥 뻣뻣하고 아정한 것이 부럽기도 했다. 인상을 쓰고 있는 주자서의 미간에 손가락을 데어보았다. 얼굴을 조금 더 찡그리더니 고개를 돌린다. 온객행은 그것이 아쉬워 ‘아’하고 작게 탄식했다. 침상에서 일어나 평상을 보니 주자서의 옷과 신발이 보였다. 옷은 잘 개서 평상위에 올려 두고 온객행도 장포를 벗어 그 옆에 개어 두었다.

주자서의 신발을 들고 침상으로 가서 그 옆에 놓아주고 온객행은 신발을 벗었다. 몸을 말고 자는 주자서 주변에는 몸을 뉘일 곳이 많았다. 온객행은 주자서가 뒤척이는 소리에 숨까지 멈추고 그 것을 보다가 조심스럽게 이불 안으로 들어갔다. 팔을 굽혀 고개를 괴고 한참 주자서의 얼굴을 보다가 어떻게 잠들었는지 모르겠다.


이불 속에서 눈을 뜬 주자서는 따뜻한 벽에 머리를 기대고 있었다. 숨쉬기가 힘들어서 이불 밖으로 고개를 들었는데 배게 위에 사람의 머리가 보인다. 주자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자신의 몸 가짐을 추슬렀다. 왜 그렇게 했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했다. 이불을 걷어보니 온객행은 중의를 입고 있었고 주자서는 내의를 입고 있었다.

놀란 가슴을 쓸며 한숨을 쉬자 온객행이 추웠는지 주자서가 걷어낸 이불을 끌어 다가 덮었다. ‘이제 이불 안으로 들어오시겠다?’ 주자서는 누워 자고 있는 온객행을 빤히 보다가 조심스럽게 몸을 넘어 신발을 신었다. 온객행이 ‘끄응’ 잠투정을 했다. 평상 위에 곱게 개켜진 자기 옷과 온객행의 옷이 나란히 있었다.

으슬으슬한 아침공기에 주자서가 진왕이 지어준 옷을 다시 주워 입었다. 원래 입고 왔던 옷은 중명원 하인들이 빨아준다고 공의에 두고 왔기 때문에 다른 선택지도 없었다. 언제 일어났는지 온객행이 주자서가 옷 입는 것을 구경하며 입을 열었다. “아서 아직 밖이 어두운데 조금 더 자자.” 주자서는 대답하지 않고 물동이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주자서가 물을 길어 다시 객실로 들어오자 온객행은 옷을 다 입고 머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주자서 손에 들려 있는 물동이를 받아서 물독에 옮겨 담더니 대야에 물을 받아 수건을 적셨다. 주자서가 본인은 우물가에서 씻고 왔으니 어서 씻으라며 의자에 앉았다. 수건을 잘 짠 뒤에 그 물에 손과 얼굴을 씻은 온객행이 주자서 옆에 와 앉았다. “아서, 왜 그래…”

온객행이 울상으로 묻자 주자서가 말했다. “노온…, 나는 생각을 해보겠다고 했지….” 온객행이 주자서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초야부터 치렀다고 하면 되잖아.” 주자서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온객행은 주자서가 정말 서시가 아닐까 잠깐 생각했다. 온객행이 손가락으로 주자서의 미간을 문지르며 말했다. “아서 당연히 찡그린 얼굴도 너무 예쁘지만 나는 아서 웃는 얼굴이 더 좋아.” 온객행의 손을 뿌리친 주자서가 말했다. “노온, 내외가 유별하거늘 어찌…” 온객행이 ‘어휴’한숨을 쉬고 말했다. “알겠어 아서가 하라는 대로 할게. 그러니까 화내지 마.”

웃는 온객행의 얼굴에 한껏 누그러진 주자서가 말했다. “그대가 진심이라는 것은 알았으니, 내게 시간을 주시오. 그 전까지는 서로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지 입을 맞춥시다.” 그 말에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다가왔다. 주자서는 온객행의 얼굴을 밀어내며 말했다. “말을! 말을 맞추어 봅시다.” 아쉬운 듯 온객행이 입맛을 다시고 물었다. “그 시간이라는 것은 언제까지를 말하는 거야? 내일? 모레? 글피?”

주자서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나는 정을 나누어 본적이 없다고 말하지 않았소? 그러니 그보다는 시간이 더 필요하네. 달포를 주시게.” 온객행이 놀라며 말했다. “그렇게 오래? 안돼! 그 사이 다른 놈이 아서한테 수작질하는 꼴은 못 봐!” 주자서는 그런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도성에서 겪은 일 때문에 그러지도 못했다. 온객행을 흘끔 보고 말했다. “알겠네 그럼 보름은 어떠 한가?” 온객행이 눈썹을 늘어뜨리고 말했다. “보름이나? 나를 좋아하는데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린다 말이야?”

주자서가 앞섶에서 온객행이 준 요패를 꺼내며 말했다. “기다리지 못하시겠거든 정표를 다시 주시게.” 온객행은 정표가 든 주자서의 손을 양손으로 붙잡고 밀어 넣으며 말했다. “신첩이 부족한 것이니 성내지 마시어요 서방님.” 온객행의 말에 주자서가 다시 미간을 찌푸렸다. “아직 기러기도 주지 않았고, 합환주도 마시지 않았으니 우린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소.” 온객행이 버럭 말했다. “어제 한 침상에서 밤을 보냈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 아서!” 온객행의 소리에 맞춰 주구전이 어두운 표정으로 객실 안으로 들어왔다.


주구전은 온객행과 주자서의 얼굴으 돌아가며 빤히 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부산스러운 하인들의 움직임에 주자서는 주구전의 손에 이끌려 평락원 하인들을 도왔다. 객실에 홀로 남은 온객행은 침상에 벌렁 누워 눈을 붙였다. 인기척이 느껴져 눈을 떠보니 엽백의가 탁상 앞에 앉아 있었다. “온가야. 허튼 짓은 시작도 안 하는 게 제일 좋다.” 옆으로 돌아누워 고개를 괴며 온객행이 말했다. “노야는 걱정 말고 맡은 일이나 하시오.”

엽백의가 일어나 온객행이 있는 침상으로 왔다. “아무래도 정말 큰 일이 생길 것 같다.” 진지한 엽백의의 얼굴에 온객행이 몸을 일으켜 앉았다. 온객행은 어젯밤 하구에서 조사했던 낭야왕의 배에 대해 이야기했다. 엽백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당장 죽지는 않겠구나.” 라고 말한 엽백의가 온객행을 보았다. “허튼 짓은 시작도 안 하는 게 제일 좋다.” 같은 말을 두번이나 한 엽백의는 훌쩍 방을 나갔다. 온객행은 침상에서 일어나 엽백의가 나간 문을 보았다. 천자는 사시가 되기전에 집을 나설 것이다. 객실에서 나와 내원을 이리저리 기웃거리던 온객행의 눈에 저 멀리 외실 근처 사당에서 유생들의 일을 돕는 주자서가 보인다.

온객행은 할 일이 없어 근처를 어슬렁거렸다. 유교사원에서 보낸 도사와 유생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오늘 낮에 낚시를 하고 밤에 사당에서 제사를 지낼 모양이다. 그리고 내일 오전에 강 하구에 제단을 마련하여 백성들이 볼 수 있게 한번 더 풍년을 기원하고 구경하러 온 사람들에게 떡을 나누어 주겠지. 온객행은 떡이 먹고 싶어 주방으로 갔다.

그곳에는 주구전이 의자에 앉아 제사 음식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말에 맞춰 하인들이 찬합에 음식을 담았다. 아침 식사 전이었던 온객행은 주방 문간에 서서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을 구경하다가 떡을 찌는 시루를 지키고 있는 어멈에게서 시루에 붙은 떡고물을 얻어먹었다.

유교 사원에서 보낸 도사들은 모두 어디 가고 주구전이 앉아서 지시를 하는지 모르겠다. 외실에는 낚시를 하러 가기 위해 모인 귀족들이 모여서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몇은 평락원에서 지냈고 또 몇은 새로 온 것 같았다. 황제가 주관하는 풍년제는 정확히 말하면 내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두가 모이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 엽백의와 주구전을 부르지 않은 것을 보면 아마 간단히 조회를 하려는 모양이었다. 궁금할 이야기도 없으니 온객행은 외실에서 내실로 이어지는 근처에 있는 화원에서 꽃을 구경했다.

두견화일지 연산홍일지 꽃망울이 터진 분홍색의 꽃이 곱다. 그곳이 사당 근처였는지 도사들이 가지고 온 이런 저런 상자가 여기저기 쌓여 있었다. 상자를 유심히 보니 제남상단의 노란종이가 보였다. 이상한 일이었다. 유교사원에서 사용하는 물건은 대체로 관에서 허가한 상인들의 물건을 사용하는데 어째서 강호의 상단인 제남상단의 종이가 붙어 있는 것일까? 온객행은 별 생각없이 내원을 구경하며 걸었다. 가끔 유생들의 짐을 번쩍번쩍 들어 옮겨주는 주자서가 눈에 걸리면 자리에 멈춰서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조왕의 초대는 정말인지 아니면 그냥 놀리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어젯밤 황제가 엽백의와 주구전을 낚시대회에 초대한 것 같았다. 아침식사와 조회를 마친 귀족들이 하나 둘 황제에게 인사하고 평락원을 나갔다. 아마 하구에 가서 미리 준비할 것이 있는 모양이다. 조왕은 어디 갔는지 아침 일찍부터 보이지 않았고 진왕만 황제 옆에 앉아 있었다.

온객행은 주구전의 부름에 주방에서 음식을 나르는 것을 도왔다. 낚시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찬에 쓰인 물고기가 다양하다. 몇 종류는 익주나 양주에서만 잡을 수 있는 물고기도 있었다. 다과는 또 얼마나 소담하고 예쁜지 색색깔의 떡이 먹음직스러웠다. 아직 봄이 오지 않은 것 같은데 황제의 식탁에는 계절이 없는 듯했다.

주구전이 도사들과 유생들에게 한참 잔소리를 하고 있을 때 엽백의가 손에 짐을 들고 들어왔다. 엽백의는 주구전과 주자서를 불러 옷을 갈아 입혔다. 엽백의와 온객행이 입은 것과 비슷한 하얀 무명 옷이다. 저 노인네가 하는 일은 하나하나 다 이해할 수가 없지만 그래도 결과적으로 해가 되는 일을 하지 않으니 그냥 그러 한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주자서에게 다가가 ‘부군 시중을 들어드릴까요?’ 라고 물었다가 엽백의와 주구전에게 눈총을 샀다.

엽백의가 가져온 옷은 원래 온객행의 옷이었는지 주구전에게는 조금 작았고, 주자서에게는 조금 컸다. 주자서의 요대에 매인 주목 요패를 보자 온객행은 기분이 좋아졌다. 평락원을 나와서야 황제가 정말 정주에 왔구나 하는 것을 실감했다. 평락원 주변뿐만 아니라 저 멀리 보이는 성문 근처에도 계급이 높아 보이는 군관들이 보였다. 괜히 두리번거리는 온객행의 소매를 잡아 마차에 태운 것은 주자서다. 온객행과 주구전이 먼저 타고 온객행이 탄 다음에 주자서가 탔다.

하구까지는 마차로 이동해야 할 만큼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군관이 이미 준비한 마차를 거절하는 것도 모양이 이상하여 엽백의는 ‘흠’하고 시키는 대로 따랐다. 노야가 순순히 구는 것을 별로 본적 없는 온객행은 괜히 겁이 났다. 큰 일이 일어날 것 같다고 했으나, 오늘이 아니라는 말도 했으니 걱정할 것은 없었지만, 원래 세상 일이라는 것이 항상 뜻대로 되는 일은 없으니 말이다. 진왕과 황제를 태운 마차는 사시가 되자 마자 출발했으니 벌써 하구에 당도했을 것이다. 마차 안에 앉은 사람 중에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군관이 늘어선 거리를 구경하며 마차에 실려 하구에 도착했다.

황제는 이미 승선했는지 하구 주변이 조용했다. 평소에 부두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온객행이 마차에서 내리려고 하자 주자서가 온객행의 소매를 잡고 고개를 저었다. 주자서가 휘장을 열어 밖을 보니 이제 막 도착하기 시작한 귀족들의 마차가 보였다. 주자서는 마부에게 뭐라고 말하더니 다시 마차 안에 와서 앉았다. 부두근처에 나룻배를 대놓은 곳에 마차를 세우자 주자서가 주변을 살펴보며 내렸다.

온객행이 따라 내리려고 하자 주구전이 그를 막았다. 영문을 몰라 멀뚱히 앉아 휘장을 걷어 주자서를 보았다. 주자서는 저 멀리 황제가 탈 배 근처에 내관을 찾아 공손히 인사하더니 또 뭐라고 말했다. 내관이 주자서에게 인사하고 승선했다. 하나 둘 사람들이 모두 모였는지 배가 출항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조왕이 다급하게 내려와 주자서의 팔을 잡았다. 난처한 듯한 주자서의 모습에 온객행이 마차에서 내렸다.

주구전이 ‘쯧’하고 혀를 찼다. 온객행이 다가오는 것을 본 조왕이 말했다. “온공자께서도 오셨습니까? 자 어서 배에 오르시지요.” 온객행이 포권하여 인사하며 말했다. “조왕전하 스승님께서 아직 승선하지 않으셨는데 어찌 제가 감히…” 조왕이 주자서의 팔을 놓으며 말했다. “예를 거두시오. 상선께서는 어디 있소?” 온객행이 마차 쪽을 보자 조왕이 그쪽으로 갔다. 주구전과 엽백의도 조왕이 도착하기 전에 마차에서 내려 조왕에게 인사했다. 조왕의 안내를 받아 네 사람은 결국 황제가 탄 그 배를 타고 말았다.


황제는 갑판에 있는 제일 높은 누각에 올라 앉아 있었고 그 아래 진왕이 황제의 시중을 들었다. 귀족들은 그 근처에 자리를 하나씩 차지하고 앉아 데려온 하인들에게 낙시대를 걸게 했다. 새하얀 옷을 입은 그들은 짙은 색깔의 비단 옷을 입은 귀족들과 대비되었다. 황제는 정말로 낚시를 할 모양이었는지 배의 갑판에서 연회를 열었다. 악사들이 선실에서 하는 연주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조왕이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상황을 보고 받는 것으로 보아 이 연회는 황제가 조왕에게 시킨 일 같았다.

온객행이 귀족과 인사를 하고 있는 조왕을 보다가 엽백의를 곁눈질로 보았다. 하인이 가져온 낚시대를 받은 엽백의는 낚시대를 강으로 드리우기 전에 낚시 바늘을 뺐다. 그가 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주구전도 똑같이 낚시 바늘을 빼고 낚시대를 드리웠다. 하인들이 안주상을 담은 찬합을 가지고 갑판으로 올라왔다. 황제가 술잔을 들어 연회를 시작했다. 갑판에 나와 앉아 있던 귀족들이 모두 일어나 황제와 함께 술잔을 들었다. 엽백의와 주구전도 술잔을 들어 술을 마셨다. 황제는 물고기를 제일 많이 잡은 사람에게 상을 내리겠다 한다.

하나 둘 낚시대를 걸고 낚시를 시작하자 엽백의와 주구전도 술병을 들고 걸어 놓은 낚싯대 근처에 가서 앉았다. 주자서가 주구전의 시중을 드는 것을 본 온객행이 엽백의 옆으로 가서 공손히 무릎 꿇고 앉아 시중 드는 척을 하였다. 제일 첫 물고기는 이 배의 주인인 낭야왕 사마운이 잡았다. 손바닥 만한 붕어를 낚고 좋아하는 모습이 어색하다. 곧 상기상시 석중과 후장군 왕개도 그 뒤를 이었다. 온객행은 주변을 살피며 누가 누구와 관계하는지 보고 있었다.

숭산에서 만났던 태보는 황제 근처에 앉아 황제와 술을 마셨고, 태보와 함께 숭산에 왔었던 후장군 왕개는 유격장군의 좌장사인 사마헌과 상서령 배회와 이야기하고 있다. 서로 웃는 낯으로 이야기하는 그들이지만 평소에 어떤 사이인지는 잘 알지 못하니 최대한 갑판에 나와있는 사람들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해 두어야 했다.

두리번거리고 있는 온객행 옆으로 주자서가 다가와 찻잔을 내밀었다. 온객행은 그 찻잔을 받으며 기분이 좋아졌다. “아서. 이게 뭐야?” 주자서가 온객행의 옆에 앉으며 말했다. “벽라춘” 온객행이 잔을 들어 맛보았다. 부드러운 맛과 코끝에 남는 꽃향기가 일품이다. 잔을 비운 온객행이 주자서를 향해 웃었다. 주자서도 잔을 들어 목을 축였다.

물고기를 제일 많이 낚은 사람은 태보인 강상이었다. 엽백의와 주구전은 낚시바늘을 빼놓았으니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유시가 될 때까지 커다란 물동이 3개가 가득 찰 만큼 물고기를 잡았다. 황제가 매우 기뻐하며 태보에게 궤장을 상으로 내렸다. 황혼이 내려 앉을 즈음 황제가 탄 배는 정주 하구로 다시 돌아왔다. 엽백의와 주구전은 사람들이 모두 내릴 때까지 갑판에 앉아 술을 마셨다. 그 옆에서 주자서가 조용이 시중을 들었고 온객행은 배를 내리는 귀족들을 난간에 기대어 구경했다.

낭야왕 사마운은 술을 많이 마셨는지 비틀대며 후장군의 마차를 얻어 탔고, 금위군의 대장인 범무구는 본인이 데려온 위위 사필안을 들들 볶았다. 조왕은 마차에 타는 황제를 배웅했고 뒤늦게 배에서 내린 진왕에게 뭐라고 말을 하고 있었다. 조왕과 진왕의 사이는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고당부

高唐賦 宋玉
고당부 송옥

昔者楚襄王與宋玉遊於雲夢之臺 望高唐之觀 其上獨有雲氣 崒兮直上 忽兮改容 須臾之閒 變化無窮
옛날 초나라 양왕이 송옥과 운몽대에 노닐고 있었는데, 고당의 관을 바라보니 그 위에 구름이 홀로 있어 바로 치솟기도 하고 홀연히 모습을 고치며 순식간에도 끝없이 모습이 바뀌고 있었다.

王問玉曰 此何氣也
왕이 송옥에게 묻기를 저것이 무슨 기운인고?
玉對曰 所謂朝雲者也
송옥이 아뢰기를 朝雲(아침구름)이라 하는 것이옵니다
王曰 何謂朝雲
왕이 묻기를 무엇을 朝雲(아침구름)이라 하는고?
玉曰 昔者先王嘗遊高唐 怠而晝寢 夢見一婦人
송옥이 아뢰기를 '옛날, 선왕(懷王)께서 高唐에서 노니실 때 피곤하여 낮잠을 주무시는데 꿈에 어떤 부인이 나타나서 말하기를,
曰妾巫山之女也 爲高唐之客 聞君遊高唐 願薦枕席
"이 몸은 무산의 여자로서 이 고당에 들렀다가 듣건데 임금께서 고당에 노닌다고 하여 (찾아 뵙나이다.) 원컨데 잠자리를 돌보게 하여 주소서."

王因幸之 去而辭曰
왕이 정분을 소통하였다. (신녀가)자리에서 떠나면서 이르기를,
妾在巫山之陽 高丘之阻 旦爲朝雲 暮爲行雨 朝朝暮暮 陽臺之下
"이 몸은 무산의 남쪽, 고구의 북쪽에 있어 아침에는 아침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내리는 비 되어 아침마다 저녁마다 양대(陽臺)에 있나이다."
旦朝視之如言 故爲立廟 號曰朝雲
아침에 보니 (과연 그녀의) 말과 같은지라 그리하여 사당을 세우고 부르기를 조운묘(朝雲廟)라 하였다" 고 하옵니다.

王曰 朝雲始出 狀若何也
초회왕이 묻기를 : “조운이 처음 나왔을 때, 형상은 무엇과 같은가?”
玉對曰 其始出也兮 若松榯 其少進也 晣兮若姣姬 揚袂 鄣日而望所思 忽兮改容 偈兮若駕駟馬 建羽旗 湫兮如風 淒兮如雨 風止雨霽 雲無處所
송옥이 대답하기를 :“그녀가 처음 나왔을 때는, 무성하여 마치 우뚝 솟은 푸른 소나무와 같고, 잠시 지나면, 선명한데 자태가 우아하고 매혹적인 미녀와 같고, 그녀가 긴 소매를 걷어 올리고 햇빛을 가리면, 그녀가 생각하는 情人을 기다리는 것과 같았고 ; 잠시 후 또 모습을 바꾸면, 빠르기가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와 같았고, 또 높이 세운 羽旗(새의 깃털로 장식한 깃발)와 같았습니다. 서늘한 것이 마치 미풍(微风)과 같고, 처연(凄然)한 것이 마치 내리는 비와 같았습니다. 바람이 멈추고 비가 그치고, 구름과 안개가 흩어지면, 찾을 곳이 없습니다.”

王曰 寡人方今可以游乎
초회왕이 묻기를 “과인이 지금 유람하면 감상할 수 있는가?”
玉曰可
송옥이 말하기를 “할 수 있습니다.”
王曰 其何如矣
초회왕이 묻기를 “그곳의 형편은 어떠한가?”
玉曰 高矣顯矣 臨望遠矣 廣矣普矣 萬物祖矣 上屬於天 下見於淵 珍怪奇偉 不可稱論
송옥이 대답하기를 “그곳은 높고 험준하고 광활하며, 높은 곳에 의지하여 (조망)眺望하면 아주 먼 곳을 볼 수 있고, 동시에 넓고 끝이 없어, 만물이 마치 그곳에서 태어나는 것 같습니다. 그곳은 위로는 푸른 하늘에 접하고, 아래로는 심연(深渊)에 임하여, 진기(珍奇)하고 기이하고, 아름답고 웅대하여, 다 말하기 어렵습니다.”
王曰 試爲寡人賦之
초회왕이 말하기를 “그대는 잠시 과인을 위하여 이야기 해보세요.”
玉曰 唯唯
송옥이 말하기를 “예 알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惟高唐之大體兮 殊無物類之可儀比 巫山赫其無疇兮
그 고당관의 대체적인 형태는, 그것과 서로 비교할 수 있는 물건은 어떠한 물건도 없습니다. 무산이 성대하다 하더라도 그것(고당관)과 비교할 방법이 없고, 길은 구불구불하고 옆으로 비스듬히 올라갑니다.
道互折而曾累 登巉巖而下望兮 臨大阺之稸水 遇天雨之新霽兮 觀百谷之俱集
깎아지른 듯이 우뚝 선 바위에 올라가 아래로 내려다보면, 오직 길고 긴 산언덕 아래에 모인 깊고 깊은 담수(潭水)만 보입니다. 비가 온 후 하늘이 맑아지면 멀리 많은 하천이 합류하는 것이 보입니다.
濞洶洶其無聲兮 潰淡淡而竝入 滂洋洋而四施兮 蓊湛湛而不止
단지 파도가 용솟음치는 것이 보이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고, 하천의 물은 합류하여 넘실거리며 모여들고 있습니다. 물이 가득 차 사방으로 넘쳐흐르고, 모인 물은 깊은 못을 이루고 깊이를 측정할 수 없습니다.
長風至而波起兮 若麗山之孤畝 勢薄岸而相擊兮 隘交引而卻會
멀리서 바람이 불어오니 파랑(波浪)이 용솟음치고, 용솟음치는 파랑은 마치 산위에 붙어있는 높이 돌출된 밭 언덕과 같습니다. 큰 파도가 언덕을 때리고, 험한 곳에서는 부딪치고 거꾸로 흐르며 상류에 모여듭니다.
崒中怒而特高兮 若浮海而望碣石 礫磥磥而相摩兮 巆震天之石蓋
노한 파도가 모여서 솟구쳐 오르니, 마치 배를 타고 가면서 해변의 산을 보는 것 같습니다.자갈이 많아서 서로 부딪치니, 울려서 하늘을 놀라게 할 만한 소리가 납니다.
巨石溺溺之瀺灂兮 沫潼潼而高厲 水澹澹而盤紆兮 洪波淫淫之溶
거석(巨石)이 격류(激流)에 가라앉아 물속에서 숨었다 드러났다 하고, 물보라가 통통하며 높게 일어나고, 물결이 단단하며 출렁이고, 거대한 파도가 인인하며 넘실거립니다.
奔揚踊而相擊兮 雲興聲之霈霈 猛獸驚而跳駭兮 妄奔走而馳邁
물결이 솟구쳐 올라 서로 부딪치니, 구름처럼 일어나고 그 소리가 철썩철썩합니다. 맹수가 소리를 듣고 놀라서, 멋대로 내달리며 멀리 도망을 갑니다.

虎豹豺兕 失氣恐喙 鵰鶚鷹鷂 飛揚伏竄 股戰脅息 安敢妄摯
호랑이 표범 승냥이 코뿔소 같은 사나운 짐승들은, 평소의 기세를 잃어버리고 놀랍고 두려워 괴로워하고, 독수리 물수리 송골매 새매 같은 성질이 사납고 몸이 굳센 날짐승들은, 어떤 놈은 높이 날아오르고 어떤 놈은 엎드려 숨었습니다. 두 다리가 떨리고 숨조차 쉴 수 없는데, 어찌 감히 함부로 기고만장할 수 있단 말입니까?
於是水蟲盡暴 乘渚之陽 黿鼉鱣鮪 交積縱橫 振鱗奮翼 蜲蜲蜿蜿
그래서 물속의 동물도 모두 놀라서 수면으로 나와, 모래톱의 북쪽으로 기어 올라가 숨었고, 자라 양자강악어 드렁허리 줄철갑상어가, 뒤엉켜 종횡으로 드러눕고, 비늘을 펼치고 지느러미를 흔들며, 밀치락달치락하며 쉴 새 없이 구불구불 옮겨 다녔습니다.
中阪遙望 玄木冬榮 煌煌熒熒 奪人目精
산비탈에 서서 먼 곳으로 바라보면, 깊숙하고 고요한 수림(树林)이 겨울에도 여전히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광채(光彩)가 선명하여 눈부시게 하고, 사람의 눈길을 빼앗았습니다.

爛兮若列星 曾不可殫形 榛林鬱盛 葩華覆蓋 雙椅垂房 朻枝還會
찬란하기가 많은 별들이 하늘에 늘린 것과 같아, 완전히 묘사하기 어렵습니다. 개암나무 숲이 울창하고, 아름다운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꽃과 잎이 서로 가리면서 어울려 돋보이게 하였습니다. 쌍을 이룬 의나무(山桐)의 열매가 주렁주렁 달렸고, 가지와 잎이 구부러지고 늘어져 뒤엉켜있습니다.
徙靡澹淡 隨波闇藹 東西施翼 猗狔豐沛 綠葉紫裹 朱莖白蔕
부드러운 바람이 스치고 지나가니 나뭇잎이 움직이고 물결이 출렁이니, 물결 따라 나무그늘을 드리웠습니다. 나뭇가지가 새가 날개를 편 것처럼 사방으로 뻗어나가고, 유약(柔弱)하여 아래로 쳐지고 나뭇잎은 무성하였습니다. 붉은 줄기와 흰 꼭지, 푸른 잎에서는 자주색의 花房(꽃잎)을 드러냈다.

纖條悲鳴 聲似竽籟 淸濁相和 五變四會 感心動耳 廻腸傷氣
미풍(微风)이 불어 섬세한 가지를 움직이면, 간간이 비명(悲鸣)이 들렸는데, 마치 피리나 퉁소가 연주하는 노래 소리와 같았고, 소리는 맑고 탁한 것이 서로 어울려, 오음(五音)의 변화와 같았고 사방의 소리에 어울려 들렸습니다. 바람이 불어 나뭇가지가 내는 슬픈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감동되고, 사람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孤子寡婦 寒心酸鼻 長吏隳官 賢士失志 愁思無已 歎息垂淚
고아나 과부는, 그것 때문에 마음이 상하여 눈물을 흘렸습니다. 관리들은 관직을 버리고, 현토(贤土)들은 뜻을 잃었습니다. 끝없는 걱정으로, 사람들은 탄식하고 눈물을 흘리며 방황하였습니다.

登高遠望 使人心瘁 盤岸巑岏 振陳磑磑 磐石險峻 傾崎崖隤
높은 곳에 올라 먼 곳을 바라보니,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였습니다. 구불구불한 벼랑과 깎아지른 것 같은 산봉우리는, 가지런하게 나열되어 높이 우뚝 솟았습니다. 반석(盘石)은 험준(险峻)하고, 넘어질 것 같이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巖嶇參差 縱橫相追 陬互橫牾 背穴偃蹠 交加累積 重疊增益 狀似砥柱 在巫山下
산의 바위가 가파르면서 들쑥날쑥하고, 종횡으로 서로로 엇갈려 마치 서로 쫓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산기슭 아래에서는 바위가 옆으로 누워 도로를 막고 있고, 편벽한 곳 산중턱에서는 洞穴이 가는 길을 가로막았습니다. 산의 바위가 한꺼번에 쌓아올려져, 겹겹이 쌓여 높고 거대하게 보였습니다. 형상은 마치 황하의 砥柱石(지주석)처럼, 무산(巫山) 아래에 우뚝 솟아 있었습니다.
仰視山巓 肅何芊芊 炫燿虹蜺 俯視崝嶸 窐寥窈冥 不見其底 虛聞松聲 傾岸洋洋 立而熊經
우러러 산꼭대기를 보면, 추동(秋冬)의 산색(山色)은 이상하리만치 짙푸르고, 마치 무지개처럼 찬란하고 눈부셨습니다. 엎드려 산 아래를 보면, 어두컴컴하고 광활하여, 그것의 바닥은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간간이 송도성 (松涛声; 소나무숲에 바람이 불 때 마치 파도 소리처럼 나는 소리)만 들렸습니다. 힘찬 큰물이 경사진 언덕을 쳐서 무너뜨릴 것 같은데, 곰이 죽을 만큼 놀라 곧게 일어서서 나무에 기어 올라갔습니다.

久而不去 足盡汗出 悠悠怱怱 怊悵自失 使人心動 無故自恐 賁育之斷 不能爲勇
오래도록 감히 떠나지 못하고, 발바닥에서는 땀이 흘러내렸습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어찌할 바를 몰라서, 슬퍼하고 실망하였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놀라게 하여, 까닭 없이 두려워하였습니다. 설령 전국시대의 용사(勇士) 맹분(孟贲)이나 하육(夏育)의 결단이 있다하더라도, 용감함을 드러낼 수가 없었습니다.
卒愕異物 不知所出 縰縰莘莘 若生於鬼 若出於神 狀似走獸 或象飛禽 譎詭奇偉 不可究
바위가 기괴하고 위험하게 생겨 괴물이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 놀라고 두려워하였는데, 어디서 나왔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괴이한 돌이 숲처럼 서있는데, 마치 도깨비가 만들어낸 것 같고, 귀신이 만들어낸 것 같았습니다. 어떤 것은 달리는 짐승과 같았고, 어떤 것은 날아 오르내리는 새와 같았습니다. 변환(变幻)을 예측할 수 없고 특이하여, 일일이 바위의 괴이함을 연구하여 다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上至觀側 地蓋底平 箕踵漫衍 芳草羅生 秋蘭芷蕙 江蘺載菁 青荃射干 揭車苞并
고당관의 한 쪽에 올라가니, 땅은 평탄하였습니다. 산세형상(山势形状)은 마치 곡식 따위를 까불러 쭉정이 등을 골라내는 키의 뒷부분과 같이 앞은 넓고 뒤는 좁았으며, 꽃과 풀이 늘어서서 자라고 있었습니다. 추란채 (秋兰⋅茝; 궁궁이)⋅혜초(蕙草; 영릉향)와 강리(江离; 홍조류) 등의 꽃이 활짝 피어 있었고, 푸르고 푸른 전초(荃草)⋅사간(射干)⋅게동(揭车) 등 향초(香草)가 무리지어 자라고 있었습니다.
薄草靡靡 聯延夭夭 越香掩掩 眾雀嗷嗷 雌雄相失 哀鳴相號 王雎鸝黃 正冥楚鳩 姊歸思婦 垂雞高巢
뭉쳐서 자라는 풀은 서로 기대어 있고, 끊임없이 이어져 무성하였습니다. 짙은 향기가 먼 곳에까지 전해지고, 많은 새들이 슬피 울고, 암컷과 수컷이 서로가 짝을 잃고, 슬피 울며 서로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왕저 (王雎; 물수리)⋅황리(黄鹂; 꾀꼬리)⋅정명 (正冥)⋅초구(楚鸠; 산비둘기)⋅자규(子规; 두견새)⋅사부(思妇)와 수계(垂鸡)는, 모두 높은 곳에 둥지를 지었습니다.
其鳴喈喈 當年遨遊 更唱迭和 赴曲隨流 有方之士 羨門高溪 上成郁林 公樂聚谷
온갖 새들이 지지배배하며 울고, 온갖 새들은 떠들어 대며 즐겁게 놀았습니다. 여기저기서 호응하고 맞장구를 치니, 새소리가 노래처럼 되어 먼 곳까지 전해졌습니다. 법술(法術)이 있는 방사 (方士; 신선의 술법을 닦는 사람, 도사) 이문 (羡门)⋅고계(高溪)⋅상성(上成)⋅욱림(郁林) 등은, 산림 골짜기에 모여서 매우 흥겹게 음식을 먹고 있었습니다.

進純犠 禱琁室 醮諸神 禮太一 傳祝已具
순수한 한 가지 색의 가축으로 제사를 올리고, 아름다운 옥으로 장식한 궁실(宫室)에서 여러 신에게 기도를 하였습니다. 여러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천신 중에서 가장 존귀(尊贵)한 동황태일(东皇泰一)에게 공경(恭敬)하고 복을 빌었습니다. 축사(祝辞)는 이미 준비되었고, 축사를 읽는 것도 끝이 났습니다.
言辭已畢 王乃乘玉輿 駟蒼螭 垂旒旌 旆合諧
군왕은 기도가 끝난 후 비로소 옥여(玉舆)에 올라타고, 네 마리 창리(털이 푸른 큰 말)를 몰고 나는 듯이 달리는데, 수레에 걸려있는 늘어진 기치(旗帜)는, 깃발이 바람을 맞아 펄럭이니 그것은 왕자신분(王者身份)을 표시하는 깃발이었습니다.

紬大弦而雅聲流 洌風過而增悲哀 於是調謳 令人惏悷憯悽 脅息增欷.
거문고의 현을 튕기니 우아한 소리가 흐르고, 차가운 바람이 불고 지나가니, 슬픔이 더욱더 보태졌습니다. 그리하여 가락에 따라 노래하니, 사람을 슬프고도 처참하게 하였는데, 숨죽여 경청하니 슬픈 탄식을 더할 뿐이었습니다.
於是乃縱獵者 基趾如星 傳言羽獵 銜枚無聲 弓弩不發 罘罕不傾 涉漭漭 馳苹苹
그래서 수렵을 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말을 풀어 놓아 달리게 하니, 땅위의 인마의 족적은 마치 하늘의 별처럼 많았습니다. 수렵하는 사람에게 선왕의 명령을 전달하여, 나무막대기를 입에 물려 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활과 쇠뇌를 쏘지 아니하고, 그물을 펼치지 아니하였습니다. 인마(人马)는 망망한 수면을 건너고, 말은 풀이 자욱한 곳을 내달렸습니다.

飛鳥未及起 走獸未及發 弭節掩忽 蹄足灑血 擧功先得 獲車
무리의 새들은 날아오르기에 바쁘고, 野兽들은 도망가기에 바빴습니다. 사냥하는 수레와 말을 잠시 멈추었는데, 짐승의 발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짐승을 잡았기 때문이다). 먼저 큰 공을 세운 사냥꾼은, 이미 사냥한 짐승을 수레에 가득 채웠습니다.
王將欲往見之 必先齋戒 差時擇日 簡輿玄服
왕(초회왕)께서 장차 가서 신녀를 보고자한다면, 반드시 우선 목욕제계(沐浴齋戒)를 하여야 합니다. 좋은 때 좋은 날을 택하여, 수레의 수종을 줄이고 검은 의복을 입어야 합니다.
建雲旆 蜺爲旌 翠爲蓋 風起雨止 千里而逝 蓋發蒙往自會
수레 위에는 구름 문양이 있는 큰 깃발을 세우고, 무지개를 깃발로 삼고, 물총새의 깃털로 수레의 지붕을 장식하여야 합니다. 빠르기가 바람이 일어나고 비가 그치는 것과 같고, 천리 먼 길도 순식간에 지나갑니다. 군왕과 신녀가 서로 만나는 것은, 마치 몽매한 것을 일깨우는 것과 같습니다.
思萬方 憂國害 開賢聖 輔不逮 九竅通鬱 精神察滯 延年益壽千萬歲
군왕은 응당 천하의 사람들을 위하여 생각하여야 하고, 국가의 재난을 걱정하여야 합니다. 현명하고 재능 있는 신하를 임용하여 자기의 부족한 것을 채워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구혈(九穴; 몸의 아홉 개 구멍)이 뚫리고 울적한 마음이 맑아지고, 해마다 나이를 더하여 천만세를 살 것입니다.


병서 문선권십(竝序/文選卷十)에 수록된 송옥의 고당부이다. 중간의 신녀부의 내용이 있다. 옛글을 찾아보면서 알게된 점은 썼던거 또 쓰고 또 쓰고 또 쓰는 부분이 많다. 구절이 유명해지면 여기저기서 가져다 쓰기 때문에 반복되는 구절을 보고 시기를 추측할  수도 있다고 한다.

고당부의 내용은 송옥이 고당관에서 초나라 양왕과 신녀가 만난 이야기를 양왕의 아들 회왕에게 해주는 이야기이다. 진짜로 신녀를 만난것은 아니고 낮잠을 자다가 꿈속에서 무산 고당관이라는 곳에서 신녀와 만나 정을 나눈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다.
아침에구름이라던가 저녁의 비, 무산에 간다거나 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부분은 이 후로 여성과 남성이 정을 나누는 장면을 은유하는 대표적인 한자문화권의 표현이 된다. 운우지정 운우지락, 무산지정 등등등 해석은 이 블로그를 참고하였다.

고당관에 오르는 과정이나 그곳에서 보았던 동물들도 사실 어쩌면 어떤 은유가 아닐까 하고 다시 읽어보면 굉장히 야하다. 아니면 내가 그런식으로 대상화를 해서 읽어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노한 파도가 솓구쳐 오르거나 거석이 격류에 가라 앉거나 물결이 부딪혀 구름같이 철썩철썩 한다는 내용은 정말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고 그 당시의 성문화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니 아들이 애비의 경험에 대해 묻는 것이 어쩌면 그렇게 드문일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근데 송옥은 어떻게 아는걸까? 양왕이 낮잠에서 꾼 꿈인데 어떻게 저렇게 세세히 잘 알고 있을까? 같이 꾸기라도 한걸까? 개인적으로 송옥은 잘생겨서 모함을 받은 고사가 있을 정도로 네임드 미남이다. 그리고 굴원의 제자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그의 행적은 굴원만큼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뭔가 더 상상할 여지가 많고 양왕이랑 혹시 그렇고 그런 관계는 아니었을까 혼자 망상해본다.

이 글 내용중에 진지하게 받아들여져야 할 부분은 원문 부분 뿐이다. 나는 알못이기 때문에 덧붙여진 이얘기는 전부 잡설이란 뜻이다. 하지만 들어보세요.

신녀부

神女赋 宋玉(송옥)

楚襄王與宋玉游於雲夢之浦, 使玉賦高唐之事.
초회왕이 송옥과 운몽택 (호북성 남부에서 호남성 북부에 걸쳐서 있었다고 하는 대소택지) 가에서 유람하고, 송옥으로 하여금 고당지사(초회왕 운몽택에 있는 고당에서 무산신녀를 꿈속에서 만나 그녀를 총애하고 떠나갔다)를 읊게 하였다.

其夜 玉寢 夢與神女遇 其狀甚麗 玉異之 明日以白王
그날 밤, 송옥이 잠들고, 꿈에서 신녀와 서로 만났는데, 신녀의 용모는 지극히 아름다웠고, 송옥은 그것을 매우 이상히 여기고, 다음날 바로 꿈에 신녀를 만난 일을 초회왕에게 이야기 하였다.

王曰 其夢若何
초회왕이 묻기를 “그 꿈에서 어떠하였는가?”
玉對曰 晡夕之後 精神恍忽 若有所喜
송옥이 대답하기를 “황혼 이후, 나는 정신이 황홀하여, 마치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았습니다.
紛紛擾擾 未知何意 目色彷彿 乍若有記
마음이 어수선하였는데, 무슨 까닭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당 눈은 흐릿하여 잘 보이지 않았지만, 처음에는 전에 서로 알았던 것 같았습니다.

見一婦人 狀甚奇異 寐而夢之 寤不自識
꿈에서 여자(神女) 한 명을 만났는데, 생김새가 매우 기이하였습니다. 잠이 들어 꿈에서 그녀를 보았는데, 깨어나니 자세히 기억할 수 없었습니다.
罔兮不樂 悵然失志 於是撫心定氣 復見所夢
뜻대로 되지 않아 나는 마음이 즐겁지 않았고, 낙담하여 실의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나는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자신의 마음을 진정시키니, 눈앞에 다시 꿈속의 그 미녀가 나타났습니다.”

王曰 狀何如也?
초회왕이 묻기를 “그녀의 생김새가 어떠하였는가?”
玉曰 茂矣美矣 諸好備矣 盛矣麗矣 難測究矣
송옥이 말하기를 “풍만만하고 아름다웠으며, 여러 가지 좋은 것은 그녀의 몸에 다 갖추고 있었습니다. 요염하고 아름다웠는데, 그녀의 아름다움은 형용하기 어렵습니다.
上古既無 世所未見 瑰姿瑋態 不可勝贊
상고(商⋅周⋅秦⋅漢)시대에는 그녀와 비교할만한 사람이 없었고, 당대에도 보이지 아니하였고, 그녀의 요염한 자태와 아름다운 용모는, 어떻게 칭찬하려 하여도 다 칭찬할 수가 없습니다.
其始來也 耀乎若白日初出照屋樑 其少進也 皎若明月舒其光
그녀가 처음 나타났을 때에는, 빛을 발하는데 마치 태양이 집의 들보에 비추는 것 같았고, 그녀가 조금 가까이 다가왔을 때는, 깨끗하고 결백하여 마치 밝은 달이 광채를 방출하는 것 같았습니다.
須臾之間 美貌橫生 曄兮如華 溫乎如瑩 五色並馳 不可殫形 詳而視之 奪人目精
순식간에, 그녀의 아름다운 자태와 용모가 전부 드러났습니다. 얼굴빛이 환하게 빛나는 것이 꽃과 같았고, 온화하고 유순함이 마치 아름다운 옥과 같았습니다. 오색이 함께 발산하여,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다 그려낼 수가 없었습니다. 자세히 그녀를 보면, 광채가 눈을 부시게 하였습니다.
其盛飾也 則羅紈綺繢盛文章 極服妙采照萬方 振繡衣 被袿裳
그녀의 의복과 장신구는 매우 많고 아름다웠는데, 능라주단(綾羅綢緞)은 꽃무늬로 가득 채웠고, 가장 좋은 의복의 미묘한 색채는 온 사방을 비추었습니다. 그녀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의상의 먼지를 털고, 장포를 걸치고 치마를 입었습니다.
穠不短 纖不長 步裔裔兮曜殿堂 忽兮改容 婉若游龍乘雲翔
헐렁한 옷을 입으면 몸집이 작아 보이지 아니하고, 얇은 옷을 입으면 호리호리해 보이지 아니하였고, 발걸음은 경쾌하고 나긋나긋하여 광채가 전당을 밝게 비추었습니다. 홀연 자태를 바꾸니, 맟 움직이는 용이 구름을 타고 비상하는 것 같았습니다.
披服 侻薄裝 沐蘭澤 含若芳
그녀가 아름다운 덧옷을 입었고, 격식에 맞추어 알맞게 옅은 화장을 하였습니다. 향유를 바른 아름다운 머리카락에서는, 두약(杜若)의 향기를 내뿜고 있었습니다.
性合適 宜侍旁 順序卑 調心腸
그녀의 성격은 따뜻하면서도 안정되어 있어, 군왕을 모시는데 적당하였습니다. 그녀는 长幼尊卑의 예의를 알고 사람의 속마음을 잘 이해하는 말로 마음을 조절할 수 있었습니다.”

王曰 若此盛矣 試爲寡人賦之
초회왕이 말하기를 “신녀가 그처럼 아름답단 말인가? 당신이 시험 삼아 과인을 위해 한 번 그림을 그려보세요.”
玉曰 唯唯
송옥이 대답하기를 : “좋습니다. 좋습니다.”
夫何神女之姣麗兮 含陰陽之渥飾 披華藻之可好兮 若翡翠之奮翼
신녀는 얼마나 요염하고 아름다운가? 그녀는 천지간의 농염한 미색을 한 몸에 모았습니다. 그녀가 무늬가 화려한 옷과 장신구를 입고 걸치니 얼마나 몸에 맞고 아름다운지, 마치 물총새가 날개를 흔들며 고공을 나는 것 같았습니다.
其象無雙 其美無極 毛嬙鄣袂 不足程式 西施掩面 比之無色
그녀의 형모은 세상에 둘도 없고, 그녀의 미모는 세상에 비할 바가 없었습니다. 毛嫱(모장, 春秋시대 越나라 미녀)의 춤추는 소매가 온갖 교태를 부려도, 신녀와 비교하면 본받기에는 부족하고 ; 서시가 얼굴을 가리고 사람을 감동시켜도, 신녀와 비교하면 姿色(자색; 여자의 아름다운 용모)이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近之既姣 遠之有望 骨法多奇 應君之相
가까이 다가가 보면 요염하였고, 멀리 떨어져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았습니다. 骨相(체상; 체격과 용모)은 기이하여 예사롭지 않았는데, 군왕을 모시는 妃嫔(비빈)의 용모와 서로 어울렸습니다.
視之盈目 孰者克尙? 私心獨悅 樂之無量
그녀를 보면 눈에 가득한데, 어느 누가 그녀보다 나을 수 있단 말입니까? 나는 마음속으로 그녀와 좋아지고 싶었고, 그녀를 경모하는 마음은 짐작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交希恩疏 不可盡暢 他人莫睹 玉覽其狀
단지 애석하게도 그녀와 교왕이 드물었고 사랑이 데면데면하여, 그녀에게 속마음을 이야기 할 수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그녀와 만나지 않기를 바랐는데, 그러면 송옥만이 그녀의 자태를 실컷 볼 수 있을 것입니다.

其狀峨峨 何可極言? 貌豐盈以庄姝兮 苞溫潤之玉顔
그녀의 자태는 장엄하면서도 고귀하여, 어떻게 언어로 다 묘사할 수 있었겠습니까? 자태는 포동포동하고 단정하면서도 아름답고, 그녀의 얼굴은 곱고 윤이 나서 옥과 같았습니다.
眸子炯其精朗兮 瞭多美而可視 眉聯娟以蛾揚兮 朱唇的其若丹
눈동자는 분명하면서 빛이 나 생기가 넘치고, 아름다운 한 쌍의 큰 눈은 특별히 보기가 좋았습니다! 그녀의 눈썹은 살짝 굽었는데 마치 누에의 눈썹 같았고, 그녀의 입술은 붉었는데 마치 산뜻하고 아름다운 丹砂(단사; 짙은 붉은색의 광물)와 같았습니다.
素質干之醲實兮 志解泰而體閑 既姽嫿於幽靜兮 又婆娑乎人間
그녀의 소박한 본성은 순수하고 온후하며, 의지는 한적하고 평안한 것을 지향하고 몸은 조용하고 한적하였습니다. 그녀는 숨겨져 있는 심산선경(深山仙境)에서 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 인간세상에서 배회하고 있었습니다.

宜高殿以廣意兮 翼放縱而綽寬 動霧縠以徐步兮 拂墀聲之珊珊
고당전은 널찍하여 그녀의 마음에 꼭 맞았는데, 그녀가 마음껏 춤을 추거나 발길 가는 대로 거닐 수 있었습니다. 구름 같은 얇은 비단을 움직이며 천천히 걸어가니, 의상이 계단을 스치며 내는 소리가 사각사각하였습니다.
望余帷而延視兮 若流波之將瀾 奮長袖以正衽兮 立躑躅而不安
그녀는 오래도록 나의 침상휘장을 주시하였는데, 두 눈은 마치 秋水(추수; 맑은 물, 여자의 맑은 눈매)가 파란을 일으킬 것 같았습니다. 그녀가 긴 소매를 흔들어 옷깃을 정리하고, 우두커니 서서 배회하여 불안해하였습니다.
澹清靜其愔嫕兮 性沉詳而不煩 時容與以微動兮 志未可乎得原
그녀는 마음이 조용하고 온순하며, 성격은 침착하고 조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때때로 한적함에 스스로 만족하고 행동거지가 ,일정하지 않아, 사람들로 하여금 그녀의 마음을 꿰뚫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意似近而既遠兮 若將來而復旋 褰余帷而請御兮 願盡心之惓惓
그녀는 보기에는 마치 일부러 나와 가까워지려는 것 같았으나, 이미 멀리멀리 떠나 가버렸고, 마치 나를 향하여 걸어오려고 하는 것 같았으나, 다시 몸을 돌려 돌아갔습니다. 그녀가 침대휘장을 걷고, 침상에 올라와 나를 모실 수 있기를 청하였는데, 그녀는 간절한 성의를 표하였습니다.
懷貞亮之潔清兮 卒與我兮相難 陳嘉辭而雲對兮 吐芬芳其若蘭
다만 그녀는 꿋꿋하고 순결한 절개를 품고 있어서, 마지막에는 나와 같이 하는 것을 거절하였습니다. 그녀는 아름다운 말로 내가 묻는 말에 대답을 하였고, 신녀의 언사는 마치 두약(杜若)과 난초(蘭草)가 발산하는 짙은 향기와 같았습니다.

精交接以來往兮 心凱康以樂歡 神獨亨而未結兮 魂煢煢以無端
나와 신녀가 정신적으로 교제하고 왕래하여, 내심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즐거웠습니다. 그러나 비록 정신적인 교류는 있었지만 실질적인 결합은 없었고, 나는 무단히 고독하고 의지할 곳이 없다는 것을 느껴 마음이 산란하였습니다.
含然諾其不分兮 喟揚音而哀嘆 頩薄怒以自持兮 曾不可乎犯干
그녀가 일찍이 허락한 적이 있지만 결코 기꺼이 허락한 것은 아니었고, 그래서 소리 높여 슬피 탄식할 뿐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웃음 띤 얼굴을 거두고 약간 노기 띤 얼굴 드러내고 태도를 진중하게 하여, 매우 엄하고 침범할 수 없는 태도를 나타냈습니다.
於是搖佩飾 鳴玉鸞, 整衣服 斂容顔 顧女師 命太傅
이 때 신녀는 장신구를 흔들고, 옥으로 만든 방울을 울리며, 의복을 단정히 하고, 웃는 얼굴을 거두었습니다. 여사(女師)에게 돌아보며, 태부(太傅)에게 출발하도록 분부하였습니다.
歡情未接 將辭而去 遷延引身 不可親附
우리 둘은 친밀해지지 않았는데, 그녀는 이별을 고하고 떠나려하였습니다. 그녀는 몸을 끌고 물러나, 가까이 하기 어려웠습니다.
似逝未行 中若相首, 目略微眄 精彩相授 志態橫出 不可勝記
그녀가 가는 것 같았으나 가지 아니하여, 내심에는 마치 그리워함이 충만한 것 같았고 ; 그녀가 살며시 나를 한 번 쳐다보는데, 온갖 멋진 정기가 전해왔습니다. 감정과 자태를 남김없이 드러내었으나, 하나하나 다 묘사할 수가 없었습니다.
意離未絕 神心怖覆 禮不遑訖 辭不及究
그녀는 마음으로는 떠나고 싶었지만 차마 떠나지 못하고, 이로 인하여 마음이 불안하고 어수선하였습니다. 그녀가 황급히 떠나가는데 이별의 예의를 미처 다하지 못하였고, 이별의 말도 다 말하지 못하였습니다.

願假須臾 神女稱遽 徊腸傷氣 顛倒失據
나는 그녀가 좀 더 머무르기를 바랐으나, 신녀는 급히 떠나려고 하였습니다. 나는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뒤집어져 의지할 곳을 잃었습니다.
黯然而暝 忽不知處 情獨私懷 誰者可語? 惆悵垂涕 求之至曙
홀연히 밤이 깊었다는 것을 느끼고, 마음이 황홀하여 몸이 어느 곳에 있는지 알지 못하였습니다. 나의 衷情(충정;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참된 정)을, 누구에게 죄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낙담하여 눈물을 흘리며, 신녀를 찾다가 날이 밝았습니다.


신녀부는 송옥이 지었다고 하니까 그렇구나 하는데 후대의 사람이 지은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나도 들은거고 전공자가 아니니까 그냥 카더라 얘기. 하지만 운우지정이나 무산지정이 나오는 고당부의 경우는 확실하게 송옥이 지은것이다. 초나라 회왕은 쓸만한 인재 얘기는 하나도 안듣고 눈앞에 이익을 쫓다가 진소양왕에게 감금당해서 진나라에서 죽었다.

초나라는 굴원이나 장의, 송옥 같이 나라의 충성심이 깊은 충신이 많았는데 제대로 쓰이지 못하고 죽었다. 굴원은 초나라의 왕족이었을지도 모른다 왜냐면 성이 초나라의 왕씨성인 미씨 였다. 아! 송옥은 잘생긴 걸로 유명하다. 송옥이 굴원의 제자였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그것도 그냥 카더라인지 찐인지 모른다.

어디에 실린건지 한참 찾았는데 어디에도 안나오는거 보면 아마 초사에 실려 있을것 같다고 추측하기로 한다. 읽어보면 신녀를 표현하는 부분이 굉장히 생동감 넘치고 뭔가 그렇고 그런것 같다. 사구, 오언절구나 칠언절구의 경우에는 정해진 글자 수 안에서 운율과 음을 맞추기 위해 생략되고 절제된 분위기가 있는데 부는 정말 구구절절 쓰기때문에 더 풍부한 표현이 가능했던것 같다. 이 시는 이후에 후대의 시가에 등장하여 아름다운 여성을 표현하는 말들로 사용된다.

아름다운 여자는 결국 이렇게 대상화 되는것 말고는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없는 것은 정말 슬픈일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유교는 너무 손해인것 같다. 남자와 여자가 모두 동등한 기회를 가졌으면 군주들도 두배 쓸 수 있는 사람도 두배가 되는건데 어째서 여성을 멸시하고 천하게 여겼는지 모르겠다. 제자백가를 주도하던 놈들도 다 애미가 있었을텐데... 왜 스스로 애미없는놈들이 되었는지

해석은 여러 블로그를 참고하였다. 신녀부 전문이 나와 있는 곳은 이 곳뿐이다. 이분도 중국웹에서 찾으셨는지 본문이 간자체로 되어 있어서 내가 아는것만 한국에서 쓰는 번자체로 바꾸었다. 그래서 이게 원문이랑 맞을지 안맞을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예전엔 無와 无는 똑같이 없다는 뜻이니까.. 찐 신녀부에는 無가 아니라 无가 쓰였을지도.. 나는 알못이기 때문에 넘어가도록 하겠다.

회사부

懷沙賦 屈原(굴원)

乃作懷沙之賦。[一]其辭曰
그리고 나서 굴원은 〈회사(懷沙)〉라는 부(賦)를 지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陶陶孟夏兮 草木奔奔
햇볕이 따가운 초여름이라 초목도 무성하구나.
傷懷永哀兮 汩徂南土
쓰라린 마음에 영원한 슬픔 안고 유유히 흘러서 남쪽 땅으로 가련다.
瞬兮杳杳 孔靜幽黙
쳐다만 보아도 아득하고 멀어서 조용한 것이 소리조차 없구나.
鬱結紆軫兮 離愍而長鞠
답답하고 울적한 마음 시름에 겨우니 못내 괴롭다.
撫情效志兮 寃屈而自抑
정(情)을 억누르고 뜻을 헤아려 원통함을 삼키고 스스로 참네.
刓方以爲圜兮 常度未替 易初本廸兮 君子小鄙
모난 것을 깎아서둥굴게 만들어도 일정한 규범은 바꾸지 않는데, 근본(根本)이나 초지(初志)를 고치는 것은 군자(君子)가 얕보는 것이라.
章畫志墨兮 前圖未改 內厚質正兮 大人所盛
먹으로 분명히 그려 놓은 옛날의 설계는 고치지 않으며, 충정이 후덕하고 성질이 올바르기를 대인(大人)이 기리는 바요.
巧倕不斲兮 孰察其揆正
교수(巧倕)라도 자르지 않는데 누가 그 칫수의 바름을 알겠나?
玄文處幽兮 矇睡謂之不章 離婁微睇兮 瞽以爲無明
검은 무늬가 어두운데 놓이면 청맹과니는 불분명타 하고 이루(離婁)가 실눈을 뜨더라도 소경은 못 보는 줄로 여기지.
變白以爲黑兮 倒上以爲下
흰색을 바꾸어 검다고 하고 위를 거꾸로 아래라 한다.
鳳凰在笯兮 雞鶩翔舞
봉황(鳳凰)은 새장 속에 있는데 닭과 집오리는 나다니며 춤을 추네.
同糅玉石兮 槪面相量 夫惟黨人之鄙固兮 羌不知余之所藏
옥(玉)과 돌을 한 곳에 섞어 놓고 하나의 평미래로 재려고 하니 저 도당들의 비천함이여! 내가 가진 것의 값어치를 모른다.
任重載盛兮 陷滯而不濟
무거운/ 짐을 많이도 실어 바퀴가 빠져서 움직이질 않네.
懷瑾握瑜兮 窮不知所示
아름다운 보석을 품고 있지만 길이 막혔으니 보일 데를 모르겠다.
邑犬之群吠兮 吠所怪也 非俊疑傑兮 固庸態也
마을 개들이 떼지어 짖는 것은 이상한 사람 있어 짖는 것이고 영웅과 호걸을 비방하는 건 본래가 용렬해서 그렇다.
文質疏內兮 衆不知余之異采
무늬와 바탕은 안으로 갖췄으니 중인(衆人)들은 이채로운 걸 모르고
材朴委積兮 莫知余之所有
재목과 원목이 산처럼 쌓여 있어도 내 것인 것을 모르는 구나.
重仁襲義兮 謹厚以爲豊 重華不可迕兮 孰知余之從容
어짐(仁)이 겹치고 정의가 이어지고 근신과 온후함이 풍성하여도 순임금님은 만날 수 없으니 누가 나의 거동을 알아나 줄까?
古固有不竝兮 豈知其何故
옛적에도 성군(聖君)과 현신(賢臣)이 같이 나지 않는 그 까닭을 알기나 하랴?
湯禹久遠兮 邈而不可慕
탕(湯)과 우(禹)는 먼 옛날이야기 아득하여 생각할 수도 없다.
懲違改忿兮 抑心而自强 離愍而不遷兮 願志之有像
잘못을 뉘우치고 원한을 삭이고 마음을 억눌러서 스스로 참아 시름이 겨워도 변하지 않으리니 이 뜻을 본보기로 하리라.
進路北次兮 日昧昧其將暮
길을 나아가 북쪽에 다 닿으니 해는 뉘엿뉘엿 어두워진다.
舒憂娛哀兮 限之以大故
시름을 풀고 서글픔을 달래며 지나간 큰일들을 마감하리라.

亂曰:
요약하자면
浩浩沅湘兮 分流汩兮 脩路幽蔽兮 道遠忽兮
넘실거리는 원수(沅水)와 상수(湘水) 두 갈래로 굽이쳐 흐르고 닦아 놓은 길은 깊숙이 가리워져 멀고도 먼 길은 끝이 없네.
曾吟恆悲兮 永歎慨兮 世既莫吾知兮 人心不可謂兮
이렇게 읊조리며 슬퍼하며 길이 개탄하여도 세상에 이미 나를 알아주는 이 없으니 인심이란 말할 것도 없네.
懷情抱質兮 獨無匹兮 伯樂旣沒兮 驥將焉程兮
가슴에 품은 도타운 정은 비할 데 없이 우뚝하지만 백락(伯樂)이 이미 죽었으니 천리마를 어찌 알아보리오?
人生稟命兮 各有所錯兮 定心廣志 余何畏懼兮
인생은 천명을 받아 각기 제자리가 있거늘 마음을 정하고 뜻을 넓히면 내 무엇을 두려워하랴?
增傷爰哀 永歎喟兮
상심이 더하여 서럽게 울며 기다랗게 한숨을 쉰다.
世溷濁莫吾知 人心不可謂兮
세상이 혼탁하여 알아주는 이 없으니 사람의 마음을 일깨울 수 없구나.
知死不可讓兮 願勿愛兮
죽음을 물릴 수 없음을 알았으니 애석하다 여기지 말아라.
明以告君子兮 吾將以爲類兮
분명히 군자에게 고하노니 내 이제 충신의 본보기가 되리라!
於是懷石 遂自 沈汨羅以死
그리고는 마침내 가슴에 돌을 품고 멱라수(汨羅水)에 몸을 던져 죽었다.

屈原既死之後, 楚有宋玉, 唐勒, 景差之徒者, 皆好辭而以賦見稱;
굴원이 죽은 후 초나라에는 송옥(宋玉), 당륵(唐勒), 경차(景差)와 같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모두가 문학을 좋아하여 부(賦)로써 명성이 있었다.
然皆祖屈原之從容辭令, 終莫敢直諫. 其後楚日以削, 數十年竟為秦所滅.
그러나 모두가 굴원과 같이 완곡하고 함축적인 문체에는 능했으나 그들 중 누구도 감히 직간을 행하지 않아 결국은 초나라는 날이 갈수록 국세가 약화되어 굴원이 죽고 나서 몇 십년 후에 진나라에 멸망하고 말았다.
自屈原沈汨羅後百有餘年, 漢有賈生, 為長沙王太傅, 過湘水, 投書以弔屈原.
굴원이 멱라수에 몸을 던진 이래 100년여 년이 지나자 한나라에 가의(賈誼)란 사람이 장사왕(長沙王: 조조의 아들 조식이다.)의 태부가 되어 상수(湘水)를 지나다 제문을 지어 물속에 던져 굴원을 애도했다.
더보기
  1. 교수(巧倕) : 중국 고대 신화상의 인물로 요임금 밑에서 공공(共工-技術官)을 지낸 장인의 이름이다. 원래 이름은 수(垂)이나 재주가 비상하다고 해서 교(巧)를 붙여 교수라 칭했다. 해중(奚仲)은 수레를 교수는 배를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2. 矇瞍(몽수) : 몽(矇)은 눈동자가 있는 소경이고 수(瞍)는 눈동자가 없는 소경이다.
  3. 이루(離婁) : 눈이 밝아 100보 밖의 가는 털로 볼 수 있었다는 중국 고대 신화상의 황제(黃帝) 때 인물이다.
  4. 고(瞽) : 눈동자가 없어서 눈꺼풀이 위아래로 달라붙은 장님.
  5. 영(英)은 만인을, 준(俊)은 천인을, 호(豪)는 백인(百人)을, 걸(桀)은 십인(什人)을 능가하는 인물을 지칭한다.
  6. 백락(伯樂) : 춘추 때 진나라 목공 때 사람으로 말을 잘 감별했다.

개인적으로 초사를 좋아한다. 일단 시기적으로 이천년 이상 전이기 때문에 뭔가 상상의 여지도 많고 그때와 지금 사용하는 말이 다르기 때문에 해석의 여지도 다양하다 문장을 끝맺는 兮혜 라는 글자도 너무 귀엽다. 굴원과 송옥이 초사의 대표적인 인물이고 초사라고 하는 책의 대부분이 이 두사람이 지은것인데 실전된 부분이 많아 정확히 어떤 것을 굴원이 쓰고 어떤것을 송옥이 썼는지 알 수 없다고 한다.

굴원은 초나라의 왕족이었다고 한다. 미씨 였다고 하니, 시기적으로 봤을때 나중에 선태후가 되는 미씨와도 친인척 관계였을 수도 있다. 물론 굴원은 초나라의 홀대에도 끝까지 초나라를 지키려다 아무도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아 답답하여 목숨을 끊는다. 만약 회왕이 굴원을 말을 들어주었다면 진나라의 통일은 조금 늦어졌을까? 세상이 혼탁하여 알아주는 사람 없다는 내용은 굴원이 지은 대부분의 시를 관통하는 주제이다.

낙신부

洛神賦 曹植(조식)

黃初三年 余朝京師 還濟洛川
황초(黃初) 3년, 나(조식)는 입조후, 돌아가는 길에 낙천을 지났다.
古人有言 斯水之神 名曰宓妃
옛사람이 말하길 그 강에는 신이 있어, 이름이 복비(宓妃)라고 한다.

感宋玉對楚王神女之事 遂作斯賦 其辭曰
송옥(宋玉)이 초왕(楚王)과 신녀(神女)의 일을 대함과 같이 느끼는 바가 있어, 이에 이 부를 쓴다.

余從京域 言歸東藩
경사를 떠나 동녘으로 돌아가네
背伊闕 越轘轅 經通谷 陵景山日旣西傾
이궐산을 등지고 환원산 넘고 통곡을 지나 경산에 이르니 이미 해가 저물고
車殆馬煩 爾迺稅駕乎蘅皐
수레와 말이 지치었으매 물가에 수레를 쉬고
秣駟乎芝田 容與乎陽林 流眄乎洛川 於是精移神駭
지초 무성한 밭에서 여물을 먹이며 버들숲에 앉아 흘러가는 낙천을 바라보매 문득 정신이 산란하였네.

忽焉思散 俯則未察 仰以殊觀 覩一麗人 于巖之畔
홀연히 생각이 흩어져 굽어 보아도 보이지 않고 우러러 보아도 달랐는데, 바윗가에 서 있는 한 미인을 보았네.
迺援御者而告之曰 爾有覿於彼者乎 彼何人斯 若此之豔也
이에 어자를 불러 묻기를, 자네도 저 이가 보이는가, 저 이는 누구이기에 저토록이나 고운가

御者對曰 臣聞河洛之神 名曰宓妃 然則君王所見 無迺是乎
어자가 답하니 제가 듣기로 낙수의 신을 복비라 이르는 바 군왕께서 보신 이가 그 이가 아닐까 하나이다.
其狀若何 臣願聞之 余告之曰
그 모습이 어떠한지 소인도 궁금하다 이르매 내 답하기를

其形也 翩若驚鴻 婉若遊龍 榮曜秋菊 華茂春松
그 자태는 놀란 기러기처럼 날렵하고 노니는 용과도 같아 가을의 국화처럼 빛나고 봄날의 소나무처럼 무성하구나.
髣髴兮若輕雲之蔽月 飄颻兮若流風之廻雪
엷은 구름에 싸인 달처럼 아련하고 흐르는 바람에 눈이 날리듯 가벼우니
遠而望之 皎若太陽升朝霞 迫而察之 灼若芙蕖出淥波
멀리서 바라보니 아침 노을 위로 떠오르는 태양과 같고, 가까이서 바라보니 녹빛 물결 위로 피어난 연꽃과 같네.

襛纖得衷 脩短合度 肩若削成 腰如約素
섬려한 모습과 아담한 키마저 모두가 알맞고 적합하니 그 어깨는 일부러 조각한 듯 하고 그 허리는 흰 비단으로 묶은 듯하구나.
延頸秀項 皓質呈露 芳澤無加 鉛華弗御
길고 가녀린 목덜미에 절로 드러난 흰 살결은 향기로운 연지도 호사한 분도 바르지 아니하였구나.
雲髻峩峩 脩眉聯娟 丹脣外朗 皓齒內鮮
구름같은 머리를 높이 틀어올리고 그 아미는 가늘고 길게 흐르며 붉은 입술은 밖으로 빛나고 백옥같은 이는 입술 사이에서 곱구나.

明眸善睞 靨輔承權 瓌姿豔逸 儀靜體閑
눈웃음치는 눈동자는 아름답고 그 보조개가 능히 마음을 끄나니 그 맵시가 고와 이를 데 없고 거동이 고요하여 윤기가 흐르니
柔情綽態 媚於語言 奇服曠世 骨像應圖
그 부드러운 마음에 가냘픈 자태에 말투 또한 더욱 아름답구나. 기이한 복색은 지상에는 없으며 그 자태 그림과 같으니,

披羅衣之璀粲兮 珥瑤碧之華琚
찬연한 비단옷 에 귀에는 아름다운 귀걸이 달고
戴金翠之首飾 綴明珠以耀軀
금비취 머리장식에 밝은 구슬을 꿰어 몸치장하고
踐遠遊之文履曳 霧綃之輕裾
무늬 신 신고 얇은 명주치마를 끌며
微幽蘭之芳藹兮 步踟躕於山隅
그윽한 난초 향기에 묻혀 산모퉁이를 거니네.

於是忽焉縱體 以遨以嬉 左倚采旄 右蔭桂旗
이에 몸을 놓아 즐겁게 노니니, 왼쪽은 채색 깃발에 기대었고 오른편은 계수 깃발그늘에 가려졌구나.
攘皓腕於神滸兮 采湍瀨之玄芝 余情悅其淑美兮心振蕩而不怡
물가에서 흰 팔 걷고 여울가에서 현초를 캐는데, 내 뜻이 그 맑은 아름다움에 흠모되어 마음이 흔들려 편안치 않네.

無良媒以接懽兮 託微波而通辭 願誠素之先達兮 解玉佩以要之
좋은 매파가 없어말 전하지 못하여 잔물결에 부쳐 전하노니 사모하는 내 뜻을 알리고자 구슬 노리개를 풀어 바라네.
嗟佳人之信脩 羌習禮而明詩 抗瓊珶以和予兮 指潛淵而爲期
가인은 닦음에 정성되어 예를 익혔고 시에도 밝으니, 구슬을 집어 답하기에 깊은 연못을 가리켜 화답하였네.

執眷眷之款實兮 懼斯靈之我欺 感交甫之弃言兮 悵猶豫而狐疑
간절한 정을 지녔으나 그 속음을 두려워하니 정교보의 버림받은 말생각하고 슬퍼져 머뭇거리며 의심하네.
收和顔而靜志兮 申禮防以自持 於是洛靈感焉 徙倚傍徨
온화한 얼굴 거두고 뜻을 조용히 가지며 예의를 차려 자신을 지키니 이에 낙신이 느낀 바 있어 이리 저리 헤매는데
神光離合 乍陰乍陽 竦輕軀以鶴立 若將飛而未翔
광채가 흩어졌다 모이며 그늘이 되었다 밝아졌다 하니 날렵한 자태 발돋움하여 나는 듯 날지 않고
踐椒塗之郁烈 步蘅薄而流芳 超長吟以永慕兮 聲哀厲而彌長
향기 자욱한 길을 밟고 방향을 퍼트리니 길게 읊어 영원히 사모하니 그 소리 서러워 더욱 길어지네.

爾迺衆靈雜遝 命儔嘯侶 或戱淸流 或翔神渚 或采明珠 或拾翠羽
그리하여 갖은 신령들이 모여들어 서로 짝들을 부르게 하니 혹자는 맑은 물 속을 노닐고 혹자는 신령스런 물가를 날며, 혹자는 밝은 구슬을 찾고 혹자는 비취빛 깃털을 줍네.

南湘之二妃 攜漢濱之游女 歎匏瓜之無匹兮 詠牽牛之獨處
남쪽 상강의 두 비를 따르게 하고 한수가의 여신을 대동하니 포과성이 짝없음을 탄식하고 견우성이 홀로 삶을 읊조리네.

揚輕袿之倚靡兮 翳脩袖以延佇 體迅飛鳧 飄忽若神
아름다운 옷자락을 나부끼며 긴 소매 가려 물끄러미 서니 날렵하기가 나는 새 같고 표연하기가 신령과 같네.
陵波微步 羅襪生塵 動無常則 若危若安 進止難期 若往若還
물결을 밟아 사뿐히 걸으니 버선 끝에 먼지가 일고 그 몸짓 대중없으니, 위태한 듯 평안한 듯 나아가고 멈추어섬을 예측하기 어려워 가는 듯 돌아서는 듯 하네.

轉眄流精 光潤玉顔 含辭未吐 氣若幽蘭 華容婀娜 令我忘飡
돌아서 바라보니 옥같은 얼굴이 눈이 부시고 말을 머금어 내지 않으니, 그윽한 난초와 같아 꽃 같은 용모 눈부셔 식사를 잊게 하네.
於是屛翳收風 川后靜波 馮夷鳴鼓 女媧淸歌
이에 병예가 바람을 거두고 천후가 물결을 재우며 풍이가 북을 울리고 여와가 고운 노래를 부르니
騰文魚以警乘 鳴玉鸞以偕逝
문어를 띄워 수레를 지키고 옥방울을 울리며 더불어 가는구나.

六龍儼其齊首 載雲車之容裔 鯨鯢踊而夾轂
육룡이 머리를 맞대 공손히 수레를 끌고 고래가 뛰어올라 바퀴를 돌보며
水禽翔而爲衛 於是越北沚 過南岡紆素領
물새가 날아올라 호위하며 북쪽 물가를 넘어 남쪽 산을 지나네.

廻淸陽 動朱脣以徐言 陳交接之大綱
흰 고개를 돌려 맑은 눈동자로 바라보며 붉은 입술을 열어 천천히 만남의 일을 말하니
恨人神之道殊兮 怨盛年之莫當
사람과 신의 길이 다르매 아름다운 나날에 함께 하지 못함을 원망하네.

抗羅袂以掩涕兮 淚流襟之浪浪
비단 소매 들어 눈물을 가리나 눈물이 떨어져 옷깃을 적시니
悼良會之永絶兮 哀一逝而異鄕
좋은 만남이 영원히 끊어질 것을 슬퍼하며 한번 가니 다른 곳에 있음을 서글퍼 하네.
無微情以効愛兮 獻江南之明璫
미미한 정으로 다하지 못한 바 있어 강남의 빛나는 구슬을 바치고
雖潛處於太陰 長寄心於君王
비록 깊은 곳에 거할지라도 이 마음 긴히 군왕께 거하겠다 하네.

忽不悟其所舍 悵神宵而蔽光
문득 그 있는 곳 뵈지 않더니 섭섭히 사라져 빛을 가리네
於是背下陵高 足往神留 遺情想像 顧望懷愁
이제 돌아서 높은 곳 오르려 하니 발걸음은 가고자 하나 뜻이 머물려 하니 남은 정을 되새기며 돌아보며 탄식하네.

冀靈體之復形 御輕舟而上遡 浮長川而忘反 思緜緜而增慕
그 모습 되찾기를 바라며 작은 배를 몰아 강에 오르니, 아득한 강물에 배 띄우고 돌아갈 길 잊으나 생각은 연이어 그리움만 더하고
夜耿耿而不寐 霑繁霜而至曙
밤은 깊었는데 잠들지 못하고 엉킨 서리에 젖어 새벽에 이르노라.

命僕夫而就駕 吾將歸乎東路
마부에게 명하여 수레를 내게 하고, 이제 나는 동로로 돌아가려 하네
攬騑轡以抗策 悵盤桓而不能去
말고삐 잡아 채찍은 들었으나 그 마음 서운하여 돌아서지 못하네.

더보기
  1. 복비: 복희씨의 딸로 물의 신 하백의 부인이었는데 낙수를 건너다 물에 빠져 죽어서 여신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2. 송옥이 초나라 양왕에게 부왕인 회왕과 무산신녀와의 얘기를 들려주어 고당부(高唐賦)’와 ‘신녀부(神女賦)’를 짓게했다는 고사가 있다.
  3. 폐월(閉月): 침어낙안(浸魚落雁), 폐월수화(閉月羞花)의 원전, 여인의 아름다움을 형용. 침어,낙안,폐월,수화는 중국 고대의 사대미인 즉 서시(西施),왕소군(王昭君),초선(貂蟬) ,양귀비(楊貴妃)를 가리키는 말이다.
  4. 정교보: 주나라 사람, 한고대(漢皋臺,지금의 양양성/襄陽城 서북쪽 강가)를 지나다가 양자강의 수신인 강비의 두 딸을 만나 차고 있는 구슬을 보여달라고 속여 달아났는데 구슬도 여신도 사라졌다는 설화. ‘한고해패(漢皋解佩)’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5. 상강의 두 비: 아황(娥皇)과 여영(女英), 요(堯)의 딸이자 순(舜)의 아내, 남편이 죽자 강에 빠져 순절함.
  6. 포과성: 직녀(織女)가 던진 배틀 북이 변하여 별이 되었다는 별.
  7. 풍이(馮夷): 물의 신 하백(河伯)의 이름, 이 글의 여주인공인 복비의 남편.
  8. 여와(女媧): 전설적인 황제 복희의 아내 또는 누이. 중매쟁이들의 수호 여신.
  9. 耿耿(경경):①불빛이 깜박깜박함. (불빛이)반함 ②마음에 잊히지 아니함. 耿耿不寐(경경불매): 염려(念慮)되고 잊혀지지 않아 잠을 이루지 못함.

황초(黃初) 3년 입조(入朝)후, 조식이 봉지로 돌아가던 중 낙수(洛水)를 지날 때 낙신(洛神)의 이야기를 듣고 쓴 부(賦).

당나라 때 이선이 문선에 주석을 다는 과정에서 복비(복비는 하백의 아내로 아름답지만 음탕한 여신이다)는 조식의 형 조비의 황후인 문소황후를 가리킨다고 하면서 낙신부는 원래 이름이 감견부/감진부(感甄賦)였다가 조예가 이 작품을 본 후에 어머니의 명예를 위해서 이름을 바꿨다고 했다. 이미 조식이 문소황후를 흠모해서 쓴 시라고 너무 유명해져서 요즘엔 다들 그냥 그렇다고 하는것 같기도 하다.

이 시는 정말 매우 많이 유명해서 들어는 봤지만 읽어본것은 처음이었는데 왜 조조 삼부자를 삼조라고 부르며 그들의 작품을 문학적으로 높이 평가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냥 읽으면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많은데, 고대 신화부터 초사, 시경, 춘추, 예기에 이르기까지 꽤 많은 기본지식을 요구한다. 그리고 여신을 묘사하는 부분의 폐월(蔽月)은 흐린 달, 구름에 싸인 달, 가려진 달 등등 많은 뜻으로 해석되는데, 후세 삼국연의에서 초선을 묘사하는 단어로 사용되어 아직까지도 미녀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사자성어로 폐월수화(蔽/閉月羞花) 미모가 아름다워 달과 꽃도 부끄럽다는 뜻이다.

매우 길다. 원래 부(賦)라는 것이 서사시처럼 상황을 묘사하며 구구절절 길게 쓰는 시라고 한다. 이렇게 긴데도 운율을 맞춰서 썼다고 하니 조식은 문학적으로 재능이 많은 인물이었던 것은 틀림없다. 중국어 발음으로 읽었을때의 성조에 맞춰 썻다는데 그 당시 사용됬던 한(漢)어와 현대중국어는 많이 다를테니, 중알못인 나로써는 더 모를일이다.

전국시대부터 시작되서 한나라때 유행했다는데 이 부로 유명한게 조조 삼부자 조조, 조비, 조식이다. 그중에 조식이 남긴 부가 압도적으로 많은데 그 이유는 조비와의 패권 싸움에서 지고 여기저기 떠돌다 보니 그렇게 됬다. 그중에 이 낙신부는 조식이 남긴것중에 제일 유명한 것으로 조식이 썼다고 하는 칠보시는 판본마다 내용이 다르고 정말 조식이 썼는지 의혹이 많지만 낙신부는 조식이 남긴 조자건집에 남아있다.

자야가

子野歌

남북조시대의 동진(東晉) 대 오(吳:江蘇省 南京) 땅에 살던 자야라는 여자의 노래 음조가 애절하여, 그 곡조를 《자야가》라 하였는데 대부분이 남녀가 창화(唱和)하는 사랑의 노래이다. 이 곡에 따라 시인들이 지은 ⟨자야가(子夜歌)⟩ 42수, ⟨자야사시가(子夜四時歌)⟩ 75수가 ⟨악부시집(樂府詩集)⟩에 실려 전한다.


1

落日出前門 瞻矚見子度
해질 무렵 문 앞으로 나가 그대가 건너오는지 목을 빼고 바라보는데,
冶容多姿鬢 芳香已盈路
화장한 얼굴 어여쁜 몸매와 머릿결 향기는 이미 길가에 가득합니다.

2

芳是香所爲 冶容不敢當
꽃냄새는 향기 때문이지만 화장한 예쁜 얼굴은 본 모습이 아니지요.
天不奪人願 故使儂見郞
하늘이 나의 희망 빼앗지 않아 그대를 볼 수 있게 했지요.

3

宿昔不梳頭 絲發被兩肩
지난 밤에는 머리도 빗지 않고 실날 같은 머릿결은 양어깨를 덮었지요.
婉伸郞膝上 何處不可憐
낭군님 무릎에 살며시 누웠으니 사랑스럽지 않은 곳이 어디 있나요!

4

自從別歡來 奩器了不開
그대와 이별하고 나서부터 화장그릇 열지 않아,
頭亂不敢理 粉拂生黃衣
헝클어진 머릿결 다듬을 수 없었고 옛날 옷에서 나는 향내만 흩어집니다.

5

崎嶇相怨慕 始獲風雲通
그대와 이별에 기구한 신세를 원망하다가 마침내 천리 밖에서 들려온 그대의 소식,
玉林語石闕 悲思兩心同
옥림과 석궐의 은밀한 대화처럼 우리 두 사람은 서로 그리워하며 가슴아파했습니다.

6

見娘喜容媚 願得結金蘭
웃음을 머금고 기뻐하는 그대 얼굴 보니 그대와 더욱 부부가 되어 살고 싶지만,
空織無經緯 求匹理自難
마치 실이 없는 베틀과 같아 베를 짠다한들 천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지요.

7

始欲識郞時 兩心望如一
처음 님을 알고자 했을 때는, 두 마음이 하나같이 되기를 바래서,
理絲入殘機 何悟不成匹
실을 골라 짜다 만 베틀에 올랐지만, 한 필도 이루지 못할 줄 어찌 알았겠어요?

8

前絲斷纏綿 意欲結交情
그대에 대한 생각을 끊어 부부가 되려는 생각을 접었어요.
春蠶易感化 絲子已復生
하지만 봄이 되어 꿈틀되는 누에처럼 또다시 그리운 생각이 일어났어요.

9

今夕已歡別 合會在何時
오늘 저녁에 이미 헤어졌으니 언제나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明燈照空局 悠然未有期
밝은 등불은 허공을 비추는데 다시 만날 날은 아득하게 멀기만 하네요.

10

自從別郞來 何日不咨嗟
그대와 이별한 이후 날이면 날마다 하루종일 탄식만 했더니,
黃檗鬱成林 當奈苦心多
쓰디쓴 마음 자라서 황벽 숲을 이루어 나의 아픈 마음은 첩첩이 쌓여 되풀이 되곤 합니다.

11

高山種芙蓉 復經黃檗塢
높은 산에 심어 놓은 연꽃 보러 황벽나무 성채를 무수히 지나다녔지요.
果得一蓮時 流離嬰辛苦
마침내 연꽃을 얻었을 때는 방황하다가 마주친 고생이 더욱 새롭습니다.

12

朝思出前門 暮思還後渚
아침에는 문 앞에서 나가 그대 생각하고 저녁에는 돌아와 물가에 앉아 그리워합니다.
語笑向誰道 腹中陰憶汝
미소를 머금고 누구를 향해 말할까요? 가슴 속으로 몰래 당신을 생각하지요.

13

攬枕北窗臥 郞來就儂嬉
베게를 베고 북쪽 창문을 보고 누웠는데 그대가 오시니 내 마음 기뻐요.
小喜多唐突 相憐能幾時
조금 즐거워도 대단히 당돌해져요 서로의 사랑이 얼마나 갈까요?

14

駐箸不能食 蹇蹇步闈里
식욕이 떨어져 젓가락 내려놓고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규방으로 들어가,
投瓊著局上 終日走博子
그대 오는지를 옥으로 만든 쌍륙을 던지는데 공연히 하루종일 쌍육놀이만 합니다.

15

郞爲傍人取 負儂非一事
그대를 다른 여인에게 뺏기고 나니 어리석은 내가 버림받은 것은,
摛門不安橫 無復相關意
빗장을 지르지 않고 문을 열어 놓은 격이라 다시는 나를 쳐다보지 않는구려!

16

年少當及時 嗟跎日就老
내 나이 어렸을 때부터 그대와 혼인하려고 했는데 참으로 한스럽군요! 그러다가 늙어버렸으니,
若不信儂語 但看霜下草
그대가 진정 내 말을 못 믿겠거든 그저 서리 밑에서 자라는 풀을 보시면 됩니다.

17

綠攬迮題錦 雙裙今復開
나는 비단 겹치마에 녹색 허리띠를 두르고 있는데 겹치마를 다시 벗어던지고,
已許腰中帶 誰共解羅衣
이미 허리에 두른 허리띠를 풀어 님에게 허락했지만 나와 함께 내 비단 옷을 풀어헤친 사람은 누구였지요?

18

常慮有貳意 歡今果不齊
항상 염려스러운 일은 그대가 품고 있는 두 마음인데 오늘 과연 두 사람의 마음이 따로이니,
枯魚就濁水 長與清流乖
남자란 존재는 늘상 화류계의 여자를 넘보고 오래 같이한 나같은 정숙한 여인을 싫어하지요.

19

歡愁儂亦慘 郞笑我便喜
내 생각으로 상심하는 사랑하는 그대여 그대가 웃으면 나 또한 기쁩니다.
不見連理樹 異根同條起
연리지라는 나무를 보지 못했어요? 다른 뿌리가 자라 한 나무로 합쳐지는 것을.

20

感歡初殷勤 歎子後遼落
처음 만났을 때는 즐거운 마음에 은근하더니 시간이 지나나 냉담해지는 군요.
打金側玳瑁 外豔里懷薄
그렇게 많은 금비녀와 장신구들 모두 다른 여인에게 주었지요.

21

別後涕流連 相思情悲滿
헤어지고 나니 눈물은 그치지 않고 가슴 속에는 슬픈 마음 가득합니다.
憶子腹糜爛 肝腸尺寸斷
그대 생각에 속은 썩어 문드러지고 내 몸의 애간장은 마디마디 끊어집니다.

22

道近不得數 遂致盛寒違
그대가 돌아오기를 줄곧 기다리다가 결국은 원망하는 마음만 깊어지네요.
不見東流水 何時復西歸
그대는 보지 못하나요? 동쪽으로 흐르던 강물이 언제 다시 서쪽으로 돌아 흐를지.
+어? 이백의 장진주에도 이런 구절 나오지 않나?
君不見 黃河之水天上來 奔流到海不復回

23

誰能思不歌 誰能飢不食
누군들 그리우면 노래하지 않을 수 있으며 누군들 배고프면 먹지 않을 수 있겠어요?
日冥當戶倚 惆愴底不憶
날마다 해질녘에 문에 기대어 서면 어찌 가슴 저미게 님이 생각나지 않겠어요?

24

攬裙未結帶 約眉出前窗
치맛자락 부여잡고 미처 묶지 못한 채 짙은 눈화장으로 허둥지둥 창가에 다가섭니다.
羅裳易飄颺 小開罵春風
홀홀 부는 회오리바람에 치맛자락 날리니 조금 열린 문틈으로 불어오는 봄바람만을 탓합니다.

25

擧酒待相勸 酒還杯亦空
잔 들어 서로 권하니 술잔은 다시 들어 비웁니다.
願因微觴會 心感色亦同
원컨대 작은 술자리를 빌려 우리 두 사람의 마음 통하기를.

26

夜覺百思纏 憂歎涕流襟
저녁에 잠이 깨어 그대에 대한 오만가지 생각 흘러내리는 눈물은 내 옷깃을 적십니다.
徒懷傾筐情 郞誰明儂心
헛된 치정을 마음에 잔뜩 품었으니 나의 마음을 밝게 해주는 그대는 누구인가요?

27

儂年不及時 其於作乖離
소시적 당신을 알고부터 세월이 갈수록 당신과 사이는 더욱 멀어지고,
素不如浮萍 轉動春風移
평소에 부평초같은 인생이라 한 번 부는 봄바람에 마음이 돌아섭니다.

28

夜長不得眠 轉側聽更鼓
밤은 길고 잠은 오지 않아, 이리저리 뒤척이다 어느새 새벽북소리 들립니다.
無故歡相逢 使儂肝腸苦
아무리 생각해도 님을 만날 길 없으니 내 애간장만 타네요.

29

歡從何處來 端然有憂色
그대는 지금까지 어디 있다가 이제사 오는가요? 안색이 초췌하고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한데,
三喚不一應 有何比松柏
세 번이나 불러도 한 번도 대답하지 않으니 무엇이 당신을 무뚝뚝한 송백처럼 말없는 사람 만들었는데요?
子曰: “歲寒, 然後知松栢之後彫也.”
공자왈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뒤늦게 시듦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송백이란 소나무와 측백나무.

30

念愛情慊慊 傾倒無所惜
저는 아직도 당신을 사랑하고 있지만 마음 속으로는 아무런 미련도 없답니다.
重簾持自鄣 誰知許厚薄
몇 겹의 주렴으로 내 모습을 감추고 살았는데 후하거나 박하게 허락했는지 누가 알겠어요?

31

氣淸明月朗 夜與君共嬉
날은 맑고 달은 밝아 이 밤을 님과 더불어 같이 즐기나니,
郞歌妙意曲 儂亦吐芳詞
그대가 사랑 노래 불러주니 이 몸 역시 꽃 같은 노래 절로 나오네요.

32

驚風急素柯 白日漸微蒙
돌풍에 흰가지지에 몰아치니 쨍쨍한 해가 점점 가리워집니다.
郞懷幽閨性 儂亦恃春容
님께서도 그윽한 춘정을 품고 있듯이 이 몸 또한 꽃다운 얼굴 자신 있습니다.

33

夜長不得眠 明月何灼灼
기나긴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데 달빛은 어찌도 밝은가요?
想聞散喚聲 虛應空中諾
기꺼이 부르시는 소리 들리는 듯해 대답하는 소리만 허공에 울립니다.

34

人各旣疇匹 我志獨乖違
사람이란 모두가 배우자가 있는 법인데 어찌하여 나만 그렇지 못했을까요?
風吹冬簾起 許時寒薄飛
겨울바람 주렴 사이로 불어오니 그대의 허락은 찬바람과 함께 허공으로 날아가버렸군요.

35

我念歡的的 子行由豫情
이 몸이 그대 보면 기뻐서 미치겠는데 그대는 이 몸을 보아도 우물쭈물 거립니다.
霧露隱芙蓉 見蓮不分明
마치 짙은 안개에 숨은 연꽃 같으니 연꽃을 보려해도 보이지 않네요.

36

儂作北辰星 千年無轉移
저는 북극성이 되어, 천년이 지나도 움직임이 않겠어요.
歡行白日心 朝東暮還西
님은 하얀 해의 마음을 펼치시는지, 아침에는 동쪽에, 저녁에는 서쪽으로 돌아갑니다.

37

憐歡好情懷 移居作鄉里
그대 생각에 참을 수 없어 당신이 사는 마을로 이사해서,
桐樹生門前 出入見梧子
오동나무 문 앞에 심었더니 나들이 할 때마다 오동나무 열매를 봅니다.

38

遣信歡不來 自往復不出
제가 편지를 받고도 오시지 않으니 이제부터는 다시는 집 밖으로 나와 기다리지 않겠어요.
金銅作芙蓉 蓮子何能實
금동으로 연꽃을 만든다 한들 그대와의 혼인은 언제나 가능하겠어요?

39

初時非不密 其後日不如
처음에 빽빽하지 않는 곳이 없었는데 그 후로 날이 갈수록 예전 같지 않습니다.
回頭批櫛脫 轉覺薄志疏
머리빗에 빠진 한 무더기 머리카락 보고서 그제야 당신의 야박한 생각을 알게 되었어요.

40

寢食不相忘 同坐復俱起
잠 자면서도 밥 먹으면서도 당신을 잊지 못하고 같이 앉고 같이 일어났던 생활이,
玉藕金芙蓉 無稱我蓮子
마치 아름다운 연뿌리와 연꽃 같았는데 이제는 저를 부인으로 여기지도 않는군요!

41

恃愛如欲進 含羞未肯前
사랑을 믿고 앞으로 나가려다가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나아가지 못합니다.
朱口發艶歌 玉指弄嬌絃
붉은 입술로 사랑 노래 부르고 옥 같은 손가락으로 아름다운 악기를 탑니다.

42

朝日照綺錢 光風動紈素
아침 해는 차가운 창문을 덥히고 미풍은 흰 비단을 펄럭이는데,
巧笑蒨兩犀 美目揚雙蛾
미인은 그대 마음과 통해 미소 짓고 아름다운 눈동자 위로 양 눈썹 휘날립니다.


대부분의 내용이 여성이 남성을 기다리거나 버림받아 슬퍼하는 내용이다. 규방에 갇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기다리는 것 밖에 없었을테니 그 답답하고 슬픈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그녀들이 남자였다면 어디서 벼슬을 하던지 시가로 이름을 날렸을 것이다. 당시 여성에게 주어지는 운명이란 요즘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들이라 나로써는 그저 안타깝고 여성의 사회진출을 막는 유교라는 사상에 대한 증오와 혐오를 떨칠 수 없는 것이다.

그나마 기원전의 경우에는 글을 배울 수 있는 것은 여성뿐만아니라 고단한 일상을 살아가는 평민들에게도 낯선 것이어서 왕족과 귀족의 전유였지만 후에 주희(朱熹)라는 호로잡놈이 만든 신유학이 나타난 이후로의 여성멸시와 천대는 정말 눈을 뜨고 볼수가 없다. 공구(孔丘)의 경우 당시 잔인한 형벌과 문화에서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그랬다고하면 주희는 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하남자적 발상을 했는지 나로써는 알 수 없다. 예상컨데 못생기고 키작고 인기가 없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것뿐이다. 보통의 인셀남이 그러하듯.

고대 악부에 관심이 많고 관련 시가를 많이 남긴 당대(唐代)의 시인 이백도 이 시를 읽고, 자야사시가(子夜四時歌)라는 시를 지었는데 여성의 사계절에 대한 내용이다.

春歌 춘가

秦地羅敷女 采桑綠水邊
진씨 땅의 나부라는 여인이 푸른 물가에서 뽕잎을 따네.
素手靑條上 紅粧白日鮮
푸른 가지 위의 하얀 손과 햇살에 단장한 얼굴이 곱네.
蠶飢妾欲去 五馬莫留連
누에가 배고파 저는 갑니다 태수님은 나를 잡지 마세요.

夏歌 하가

鏡湖三百里 菡萏發荷花
거울 같은 삼백 리 호수에 연꽃이 봉오리를 터뜨리네.
五月西施採 人看隘若耶
오월에 서시가 연밥을 따니 보려는 이가 약야에 넘치네.
回舟不待月 歸去越王家
달뜨기 기다리지 않고 배돌려 월나라 궁전으로 돌아갔다네

秋歌 추가

長安一片月 萬戶搗衣聲
장안에는 한 조각 달 떠오르고 집집마다 다듬이질 소리 들리네.
秋風吹不盡 總是玉關情
가을바람 그치지 않고 불어오니 마음은 온통 옥관을 향하는구나.
何日平胡虜 良人罷遠征
어느 때에나 오랑캐를 평정하고 낭군님은 원정을 끝내고 오려나.

冬歌 동가

明朝驛使發 一夜絮征袍
내일 아침 역졸이 떠난다기에 하룻밤 사이에 솜옷을 지었네.
素手抽鍼冷 那堪把剪刀
바느질하는 하얀 손이 시린데 가위는 또 어떻게 잡을까?
裁縫寄遠道 幾日到臨洮
옷을 지어서 먼 길에 부치면 어느 날에나 임조에 당도할까?

자야오가(子夜吳歌)라고도 불린다. 당시삼백수에서 봤던 기억이 있는 시인데 이백의 시는 여성이 화자일때 그 섬세함이 좋다. 게다가 딱딱 떨어지는 운율과 소리는 괜히 시선이 아니구나 싶다. 잘보면 한국어 음차로도 종성이 얼추 맞는다 진짜 미친것 같다.

봄날의 바람

春望詞 薛濤
춘망사 설도

花開不同賞 花落不同悲
꽃 피어도 함께 바라볼 수 없고 꽃이 져도 함께 슬퍼할 수 없다.
欲問相思處 花開花落時
그리워하는 마음은 어디에 있나 꽃 피고 꽃이 지는 때에 있다.
攬草結同心 將以遺知音
풀 뜯어 동심결로 매듭을 지어 님에게 보내려 마음먹다가
春愁正斷絶 春鳥復哀吟
그리워하는 마음이 잦아질 때에 봄 새가 다시 와 애달피 운다.
風花日將老 佳期猶渺渺
바람에 꽃잎은 날로 시들고 아름다운 기약 아직 아득한데.
不結同心人 空結同心草
한마음 그대와 맺지 못하고 공연히 동심초만 맺고 있다.
那堪花滿枝 飜作兩相思
어쩌나 가지 가득 피어난 저 꽃 날리어 그리움으로 변하는 것
玉箸垂朝鏡 春風知不知
거울에 옥 같은 두 줄기 눈물 봄바람아 너는 아는지 모르는지

당나라 유명한 기생이었던 설도가 지은 봄날의 바람, 여기서 바람은 부는 바람이 아니라 소망하는 바람이다. 설도가 40세 즈음에 만난 시인을 짝사랑하며 지은 시라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없음을 사물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하나의 시가 아니라 총 4개로 이루어진 시다. 그래서 춘망사4수 라고도 부른다

여성이 쓴 시는 여태까지 전해지는 것이 적은데 설도의 시도 의외로 문선에 실려서 지금까지 전해진다. 유교하는 놈들의 선발기준을 알 수 없으니 그만큼 설도의 시가 문학적으로 뛰어난 작품임을 말해준다. 문학적 재능을 펼치지 못한 수많은 여인들을 생각하면 안타까울 따름이다. 아직도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 제일 슬프다.

雨霖鈴 第15

15. 騎虎之勢
호랑이를 타고 달리다.

네 사람은 객실에 앉아 아무 말이 없었다. 엽백의는 팔짱을 낀 채로 무언가를 생각하는 중이었고, 주구전은 화를 삭이는 중이었다. 주자서는 주구전의 눈치를 보며 온객행이 따라주는 차를 마셨다. 주구전이 주자서에게 무언가 말하려고 하자 엽백의가 눈을 뜨고 말했다. “진왕이 빌린 배가 낭야왕의 배가 맞느냐?” 주구전이 옆에 있다가 말했다. “연주와 서주에 황제폐하께서 타실 만한 큰 배는 낭야왕전하 아니면 제갈세가와 황보세가가 함께 운영하는 제남상단 말고는 없습니다. 지금 상황에 제남상단의 배를 빌려 타시지는 않을 겁니다.” 엽백의가 고개를 끄덕였다.

주구전이 물었다. “숭산에서는 아무 말이 없습니까?” 엽백의가 ‘흠’하더니 말했다. “여태 바둑돌만 보았으니 이제 대국을 두는 자가 누구인지 알아야지.” 엽백의의 말에 주구전이 한숨을 쉬었다. “조왕께서 자서가 아팠을 때 의원을 찾아 주셨습니다.” 엽백의의 한쪽 눈썹이 올라갔다. 엽백의가 물었다. “정주에 초대한 것이 조왕인가?” 주구전은 대답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엽백의는 진왕을 의심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진왕의 지저분한 비밀을 알게 되었지만 그것은 또 나중에 쓸 일이 있을 것이다. 엽백의는 ‘허’하고 헛웃음이 나왔다.

해질녘이 되어 그들은 황제의 부름에 불편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엽백의가 맨 앞에 서서 황제에게 인사를 하고 뒤를 따른 주구전과 주자서, 온객행이 그를 따라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들은 문에서 제일 가까운 쪽의 자리를 안내받아 각자의 상 앞에 앉았다. 엽백의와 주구전이 제일 앞에 있는 상에 앉았고 그 뒤에 있는 상에 주자서와 온객행이 함께 앉았다.

곧 검은색의 관리 옷을 입은 귀족들이 하나 둘 외실로 들어와 황제를 알현했다. 그들은 품계순으로 황제와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황제 바로 옆에는 조왕과 진왕이 앉았다. 얼마 뒤 음식과 함께 악사들이 들어왔다. 황제가 식사를 시작하자 음악이 연주되면서 밖에서 무희들이 들어왔다. 엽백의는 연회도 아닌 저녁식사에서 좋은 구경을 한다며 술잔을 들었다. 주구전은 무희를 한번 보고 뒤쪽에 앉은 주자서를 힐끔 보았다.

주자서는 무희가 들어오자 당황스러웠다. 그들이 입은 옷이 주자서가 입은 옷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밀려오는 치욕에 주자서는 고개를 푹 숙였다. 옆에서 주자서의 시중을 들던 온객행이 물었다. “아서 왜 그래?” 그리고는 주자서의 어깨에 팔을 둘러 그를 품으로 끌어당겼다. 주자서는 화가 나서 온객행이 뭘 하는 지도 몰랐다. 진왕이 일부러 그런 것이다. 주영의 생일때마다 진왕과 조왕은 여자아이의 물건을 선물로 보내왔다. 뭣 모르고 받은 꽃신을 신고 입궁하였다가 사람들의 눈총을 사는 줄도 모르는 그런 아이였다.

아이를 감싸던 기왕을 모욕하는 말을 어떻게 잊을까? 주자서를 떠보기 위해 일부러 이런 옷을 짓고 입힌 것이다. 주자서는 한숨을 깊게 내쉬고 황제 옆에 앉아 술잔을 드는 진왕을 보았다. 주자서와 진왕의 시선이 맞닿았다. 시선을 피하지 않고 바라보고 있던 주자서가 얼른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리는 주자서를 본 진왕은 마음에서 의심이 일었다. 혹시 저 아이가 주영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주자서가 정신을 차리니 온객행의 품에 기대고 있었다. 온객행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무희들의 춤을 보며 음식을 먹었다. 주자서가 품에서 벗어나 바로 앉자 온객행은 주자서의 어깨에 둘렀던 손을 내려 등을 문질렀다. 주자서는 바로 앉은 이후로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앉아 있기만 했다. 주변에 앉은 귀족들의 시선이 따갑다.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주자서는 모르고 싶었다. 해사하게 웃으며 온객행이 옆에서 음식과 술을 권했지만 주자서는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았다.

그것은 엽백의와 주구전도 마찬가지였는데 둘은 술잔을 기울이면서도 음식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황제가 식사를 마치자 악사와 무희들이 외실을 나갔다. 귀족들도 하나 둘 일어나 황제에게 인사하고 자신들의 처소로 가는 것 같았다. 외실을 나가는 그들이 힐끔힐끔 주자서를 보았다. 주자서는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사람들이 거의 다 빠져나간 후에 태보가 외실로 들어왔다. 주구전이 고갯짓으로 아는 척을 했다. 황제는 태보를 보더니 조왕과 진왕을 물렸다. 그들이 나가는 것을 보고 있던 엽백의도 일어나 황제에게 인사했다. 주구전과 온객행도 엽백의를 따라 일어났다. 온객행이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는 주자서의 팔을 잡아 일으켰다. 황제는 엽백의를 잡으며 말했다. “상선께 할 말이 있으니 잠시 기다리시오.” 황제는 주변에 있는 하인들도 모두 물렸다.

눈치를 보던 주구전이 나가려고 하자 황제가 내관을 시켜 문을 닫게 했다. 주구전은 당황하여 주위를 둘러보았다. 녹상서사 장화(張華)와 상서령 배회(裵會)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마음이 불안해진 주구전은 주자서를 찾았다. 주자서도 슬슬 상황이 보이는지 자세를 바로 했다. 주구전이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흔들자 주자서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태보가 입을 열기 전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온객행과 주자서를 발견하고는 내관을 불러 뭐라 말했다. 그 내관이 다시 황제에게 가서 뭐라고 말하자 황제는 그 둘에게도 물러가라 말했다. 공수하여 인사하고 나온 외실 앞에는 초조해 보이는 조왕과 진왕이 있었다.

주자서는 마음을 가다듬고 손을 모아 조왕과 진왕에게 인사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온객행도 주자서를 따라 공손히 인사했다. 진왕이 예를 거두라며 주자서의 팔을 잡았다. 주자서가 진왕의 손을 뿌리치기 위해 한걸음 뒤로 물러나 자세를 바로 했다. 조왕이 말했다. “주공자는 태보 강상선생과 안면이 있는가?” 주자서가 공손히 소매를 들어올려 대답했다. “숭산에서 한번 인사한적이 있습니다.” 조왕은 진왕을 힐끔 보고 말했다. “그래? 스승님께서 소림사에 다녀오셨는 줄은 몰랐네.” 진왕이 옆에서 거들었다. “형님 제가 저번에 유연과 다녀왔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때 스승님과 함께 소림사의 지주스님을 만났었습니다.”

조왕이 ‘흐음’ 고개를 끄덕이며 주자서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조왕이 말했다. “내일 낙수 하구에 배를 띄워 낚시를 할 예정인데 주공자도 함께 가시지요.” 주자서가 공손히 손을 모으며 말했다. “어찌 미천한 제가 나라의 제사에 관여할 수 있겠습니까?” 조왕이 ‘하하하’웃으며 말했다. “그대를 제사에 부르는 것이 아니오. 어디 감히… 하하하, 내일은 제사에 필요한 물고기를 낚는 연회이니 그대를 초대하는 것이오. 연세가 지긋하신 고관대작들 사이에 계시면 아주 보기 좋을 것 같으니 말이오.” 누가 들어도 희롱과 멸시가 담긴 말을 진왕이 거들었다. “미인이여 미인이여! 저녁에는 비 되고 아침에는 구름 되는가, 하룻밤 사이에 핀 매화같이…”(55) 조왕이 ‘하하하’하고 웃었다.

온객행이 뭔가 말하려고 하는 것을 주자서가 재빨리 막으며 말했다. “조왕전하, 진왕전하께서 어찌 미천한 제게 부탁을 하십니까? 하명하소서.” 그리고는 넙죽 온객행을 잡고 무릎 꿇었다. 진왕이 주자서가 하는 말에 피식 웃으며 뭐라고 말하려는 찰나 주자서가 헛기침을 했다. 주자서의 기침소리에 놀란 온객행이 품속에서 하얀 영견을 꺼내 주자서의 입가에 대주었다. 진왕이 고개를 돌려 ‘허’하고 웃은 뒤 말했다. “주공자께서 이리 허약하셔서 주대인의 걱정이 많겠소.” 주자서는 온객행이 준 영견에 대고 더 기침을 하느라 대답하지 못했다. 그것을 보고 있던 조왕은 아직 외실밖에 서있는 내관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이만 가서 쉬게.”


온객행이 주자서를 부축하여 인사하고 하인의 안내로 처음에 소개받았던 객실로 돌아갔다. 하인이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가자 주자서는 입에 대고 있던 영견을 탁상위로 내 팽개치며 의자에 털썩 앉았다. 크게 한숨을 쉬고 마음을 정리하려 하는데 온객행이 심각하게 옆에 앉아서 말했다. “아서, 대체 왜 조왕과 진왕이 너를 못살게 구는 거야?” 주자서도 알 수 없다. 본인이 주영인지 아닌지 떠보려고 저러는 것인지 아니면 원래 다른 모든 사람한테 다 저렇게 구는지 말이다.

주자서는 온객행을 마주보고 말했다. “괜히 그들과 상대하지 말게, 저들에게 사람 목숨은 장기말과 같으니 그냥 조금 당해주면 될 일이네.” 온객행이 눈썹을 늘어뜨리며 말했다. “하지만 이미 혼인한 사람을 이렇게 희롱하다니!” 주자서는 맥이 풀려서 ‘허’ 하고 웃었다. 주자서는 황제가 검선과 조부께 뭘 물으시려는 것인가 걱정이 되었다. 무엇보다 조왕의 움직임이 매우 수상하다. 지금 황제인 외숙과 다른 외숙 외당숙은 다 사이가 좋지 않았다. 황제는 의심이 많으니 잘못 움직이면 누명을 쓰고 참소 당해도 이상하지 않다. 황실내부사정에 대해 잘 모르는 주자서 눈에도 보인다면 다른 사람의 눈에도 보이는 일이다.

심각한 주자서의 표정에 온객행이 말했다. “아서? 아서 왜 그래…? 내가 가서 죽여 버릴까?” 온객행의 말에 놀란 주자서가 얼른 손을 가져다 온객행의 입을 막았다. 숨소리도 내지 않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벌떡 일어나서 문을 열어보았다. 다행이 날이 늦어 객실 들어오는 문 앞에 서있는 병졸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문을 닫고 다시 자리에 와서 온객행을 쏘아보며 말했다. “온객행! 여기 있는 사람들은 사람의 목숨이 세상에서 제일 쉬운 사람이라고 말 했어 안 했어?” 온객행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아서가 이름 불러주니까 좋다.” 주자서는 탁상을 주먹으로 ‘탁’치고는 온객행을 보았다. 온객행은 얼굴에 미소를 지우지 않고 말했다. “아서… 내가 죽을 까봐 걱정하는 거야?” 그리고는 ‘히히히’하고 웃으며 주자서의 팔을 잡아당겨 자기 앞에 있는 의자에 앉혔다. “서방님 걱정마시어요. 부군을 두고 먼저 가는 일은 없게 하겠나이다.” 주자서는 두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크게 한숨을 쉬었다.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몸을 붙이며 말했다. “아서… 아서는 지학이니까 내가 연장자네?” 주자서가 붙어오는 온객행을 밀어냈다. “형님이라고 불러봐, 그럼 내가 아서 말은 다 들어 줄게.” 주자서는 온객행 얼굴을 보고 생각하는 듯했다. 뭔가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는 것 같아 온객행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아서, 형님이라고 불러봐 그럼 아서가 하라는 대로 다 할 거야.” 주자서는 온객행을 형님이라고 한번 부른 후에 장명산 검선과 함께 다시 소림사로 돌아가라고 말할까 한참 생각했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정말 별일도 아닌 이 호칭문제로 주자서는 스스로 이렇게 갈등하게 될지 몰랐다. 한숨을 연거푸 쉬더니 주자서가 조용히 말했다. “노온…” 주자서의 팔에 기대 있던 온객행의 머리가 튀어 오르며 주자서를 보았다. “뭐? 아서? 방금 뭐라구?” 자꾸만 얼굴을 붙여 오는 온객행이 부담스러워 그를 밀어내며 주자서가 말했다. “노온.” 온객행은 못 들은 척 말했다. “아서 잘 안 들려, 좀 더 크게 말해줘.”


외실에 남은 엽백의와 주구전은 태보가 소림사에서 조사한 내용을 보고받는 황제의 이야기를 다 들었다. 다행히 소림사에서 둘이 조사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미리 말해 두었는지 황제는 별 말하지 않았다. 태보가 조사한 내용은 엽백의가 말한 바둑돌들의 일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연주와 기주, 서주 등지의 문파들의 관계도가 높았다. 낙양성의 북쪽과 동쪽은 제(濟)왕 사마경과 낭야왕 사마운의 봉지이다.

황하를 따라 북쪽에 위치한 그들은 선황제에게 역도를 처단할 수 있는 붉은 활을 하사 받은 황족들이다. 지금 황제와는 왕위 계승의 문제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황위 계승 당시의 상황을 잘 알지 못하는 주구전은 의례 고서에서 보았던 황족 간의 승계싸움이 있었겠거니 했다. 엽백의도 슬슬 태보의 보고가 질렸는지 원래 앉았던 자리에 가 앉아 술잔을 들었다. 태보가 보고를 마치자 황제는 엽백의와 주구전을 가까이 불렀다. “그대들 역시 나의 일에 힘을 쓰고 있다 들었다.”

주구전이 엽백의를 봤다. 엽백의가 황제에게 포권하며 말했다. “말은 바람이 일으킨 물결처럼 일정한 모습이 없고 행동에는 득실이 있다 합니다. 바람이 일으킨 물결은 쉽게 움직이고 득실은 쉽게 위태로우니 화가 치미는 것은 교묘한 말과 치우친 말 때문입니다.”(56)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천자께서 교묘한 말을 하는 자와 치우친 말을 하는 자를 찾으시겠다고 하면 제가 도와드릴 수 있으나, 누가 바람을 일으켰는지 물으시면 소인은 아둔하여 찾지 못할 듯합니다.” 황제가 엽백의를 쏘아보았다. 옆에 서있는 주구전만 안절부절 못했다.

황제는 엽백의의 뜻을 알았는지 한참동안 말이 없다 고개를 끄덕이고 엽백의와 주구전을 내보냈다. 하인의 안내를 받아 처소로 돌아오는 길에 주구전이 입을 열었다. “엽선배, 저는 아직도 개미와 파리가 무슨 냄새에 홀려 그리 모였는지 모르겠습니다.”(53) 엽백의가 ‘흠’하더니 말했다. “그대는 들어보지 못했나? 태자가 정해지지 않은 채 군주가 세상을 떠나는 일은…”(57) 주구전이 또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눈치를 보자 엽백의가 ‘흥’하고 코웃음 쳤다.

엽백의는 생각했다. 이 나라에는 망조가 이미 들었다고. 종친이 많은 황제는 권력이 분산되어 하나로 모으기 힘들다. 사공이 많으니 배가 산으로 간다. 군신의 관계는 혈육보다 생판 남남인 것이 나은 것이다. 유교의 충심은 엽백의가 이해하기 너무 어렵다. 강호의 협과 의리는 그보다 쉽다. 엽백의와 주구전은 처음에 와서 머물렀던 객실이 아니라 귀빈들이 머무는 별실로 안내받았다. 하인이 우려 놓은 귀한 차를 마시며 두 노인네는 각자 다른 생각에 빠졌다.


해시(亥時)를 알리는 북소리가 평락원 담 밖에서 들려왔다. 주자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대야에 물을 받고 관수했다. 화를 참느라 아무것도 먹지 않은 주자서의 뱃속이 시끄러웠다. 하루 이틀 굶는 일이야 사계산장에서는 없는 일도 아니었는데 그새 도성의 안락함에 익숙해진 것 같아 주자서는 오늘은 그냥 굶기로 했다. 언제 다가왔는지 관수를 마친 주자서의 얼굴을 온객행이 조심스럽게 수건으로 닦아주었다.

주자서는 온객행의 손에서 수건을 빼앗아 얼른 닦고 대야를 가지고 나가 내원에 버리고 왔다. 다시 물을 길어 대야를 채워주니 온객행이 손을 씻고 얼굴을 닦았다. 객실에는 침상이 하나 있었는데 주자서는 정주로 오는 내내 강바람에 추웠기 때문에 따뜻하게 침대에서 자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연장자이니 침상을 양보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해 평상을 살펴보았다. 이불로 덮을 만한 것이 없어서 주자서는 진왕이 지어준 옷을 덮고 자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주자서가 온객행의 눈치를 보며 장포를 벗었다. 중의까지 벗자 실내는 조금 추웠다. 주자서는 평상위에 옷을 깔고 그 위에 누웠다. 주자서가 옷을 벗는 것을 구경하던 온객행이 앉아 있던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주자서를 일으켜 앉혔다. “아서 왜 평상에서 자? 침상에서 자야지.” 그리고는 앉아있는 주자서를 번쩍 들어 침상위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는 이불을 펴서 잘 덮어주었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뺨을 쓸면서 말했다. “아서 오늘 정말 일이 많았다 그치?”

그때 주자서의 뱃속에서 우렁차게 꼬르륵 소리가 들렸다. 조금 부끄러워진 주자서가 이불안으로 숨으려고 하자 온객행이 품에서 모과 절임이 든 작은 대나무 함을 꺼냈다. “아서, 아까 아무것도 못 먹었지? 자 이거라도 먹어봐.” 온객행은 모과 절임을 집어 주자서의 입가에 대주었다. 주자서는 온객행이 나왔던 꿈이 생각나여 고개를 돌렸다.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아이요! 아서 배고프면 잠도 안 와! 그럼 주방에 가서 뭐 라도 얻어올까?” 주자서 입가에 댔던 모과 절임을 자기 입으로 가져가 먹더니 말했다. “이 모과 절임은 아서 입술이 닿아서 더 맛있어.” 주자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온객행을 보았다.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주방에 다녀올까요? 부군?” 주자서는 생각이 많았다. 온객행이 진왕을 막아줄 좋은 구실이긴 하지만 대체 어디까지 받아줘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 치는 자신과 혼인을 치룬 것처럼 구는데 정말 그래도 되는 건지 주자서는 괜히 불안했다. 이러다 정말 마음을 줘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온객행은 불안한 얼굴을 하는 주자서가 귀여워서 또다시 입을 맞추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손을 들어 어깨를 쓸자 흠칫 떠는 몸짓마저 사랑스럽다.

온객행은 주자서를 놀리고 싶어서 천천히 다가가 귓가에 속삭였다. “부군, 오늘이 저희 초야인가요?” 온객행의 말에 어깨를 들썩이며 몸을 움츠리는 주자서를 보고 온객행은 ‘히히히’하고 웃었다. 주자서는 머리를 흔들어 머리속의 잡생각을 털어내고 온객행을 마주 보았다. 주자서는 어느 시점에서 둘의 관계를 확실히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주자서는 온객행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노온. 그대에게 할 말이 있어.” 온객행이 손에 있던 모과 절임을 내려놓고 자신의 어깨를 잡은 주자서의 팔을 잡았다. “응”

주자서는 본인이 사계산장의 제자이며 주구전과는 친인척 관계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했다. “앞으로 계속 진왕전하께 신세를 지게 될지도 모르니… 내가 그대의 정인… 정인이 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대신에….” 온객행은 다 듣지도 않고 말했다. “아서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린 이미 혼인…” 주자서가 온객행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노온. 나는 진심이야. 그대의 마음에 대해서 진심으로 생각해 보겠다는 말을 하는 거야.”

온객행은 당황했는지 얼굴이 굳었다. “진왕전하께서는 내가 너와 정인이라 해도 본인이 원하면 언제든지 나를 취할 수 있는 사람이야.” 그 말에 온객행의 얼굴이 울상이 되었다. 주자서는 또 마음이 약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내가 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대신 나를 도와줘.” 온객행이 몸을 붙여 주자서의 어깨에 이마를 올려놓고 말했다. “응. 응. 아서가 원하는 거라면 뭐든….” 주자서는 온객행의 어깨를 흔들며 말했다. “노온. 흰소리 하지 말고 제대로 대답해.” 그러자 온객행이 주자서의 팔을 뿌리치고 말했다. “아서! 나는 계속 진심이었어.”

온객행의 말에 멋쩍어 진 주자서가 온객행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알겠어. 노온. 네 마음에 제대로 답할 수 있게 나도 잘 생각해볼게. 대신 내 정인인 척해줘.” 온객행이 눈썹을 한껏 내리며 말했다. “정인인 척?” 주자서는 온객행에게 자신의 목표는 양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황실의 일에 휘말려서 지금 이곳에 있는 것은 주자서가 바라는 일이 아니라고도 했다. “사실 난 정을 나눠 본적이 없어서 정인이 어떤 건지 잘 몰라.”

주자서의 말에 온객행의 얼굴에 미소가 돌아왔다. “그래? 아서 그럼 일단 정표를 주고받을까? 아서가 나를 좋아할 수 있도록 나도 노력할게.” 주자서는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니라고 말을 한다고 온객행이 이해할까 싶었다. 주자서는 앞섶에서 온객행이 준 요패를 꺼냈다. “네 정표는 이미 받았으니 내가 줘야지.” 주자서가 말하며 침상에서 일어나 평상에 펼쳐져 있는 옷으로 갔다. 그리고 소매에서 비단으로 만든 작은 영견을 꺼냈다.

그 영견에는 버드나무 잎이 어설프게 수놓아져 있었다. 이 영견은 경무장공주가 주영에게 직접 선물한 것이다. 모친은 수놓는 일이나 음식을 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으셨다. 글을 읽거나 쓰는 것 아니면 바둑을 두는 일을 좋아하셨다. 외조모께서는 수 놓는 일을 좋아하셔서 양안전에 놀러가면 항상 모친께 수를 놓는 것을 가르쳐 주셨다.

이 영견은 그 중에 외조모께서 제일 칭찬을 많이 받은 작품이다. 모친은 밝게 웃으며 내게 주셨다. 그 동안 어설프게 수놓은 향낭이며 주머니는 모두 부친께 드렸는데 제일 잘 만든 영견은 주영에게 주었다. 그 일을 아는 사람은 이제 모두 죽었다. 이 영견이 귀한 것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이제 주영 아니, 주자서뿐이다. 주자서는 그 영견을 온객행에게 내밀었다. 그대가 진심이라면 이 쪽에서도 진심을 보여주겠다는 각오다.


(55) 노동 有所思 그리움이 있어 짓다.
美人兮美人 不知爲暮雨兮爲朝雲 相思一夜梅花發
미인이여 미인이여! 알지 못하네 저녁에는 비 되고 아침에는 구름 되는가, 서로 그리워한 지 하룻밤 사이에 매화꽃 피니…

(56) 장자 내편 4인간세
言者 風波也 行者 實喪也 風波 易以動 實喪 易以危 故忿設 無由 巧言偏辭
말은 바람이 일으킨 물결처럼 일정한 모습이 없고 행동은 득실이 있다. 바람이 일으킨 물결은 쉽게 움직이고 득실은 쉽게 위태로워진다. 그 때문에 분노가 일어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없고 교묘한 말과 치우친 말 때문이다.

(57) 한비자집해 15 망징편
輕其適正 庶子稱衡 太子未定而主卽世者 可亡
왕위를 계승할 적자는 가벼이 대하고 서자도 적자와 대등하게 여기며, 태자가 정해지지 않은 채 군주가 세상을 떠나는 경우는 나라가 멸망할 수 있다.

雨霖鈴 第14

14. 問鼎輕重
솥의 무게를 묻다.

진왕을 따라 행렬을 호위하던 군관들은 온객행이 주자서의 머리를 만지는 것을 구경했다. 나풀거리는 얇은 장포를 입은 주자서는 마치 소녀가 단정한 심의를 입은 것 같았는데 온객행이 그의 머리를 올려주자 그 분위기가 더 묘했다. 하늘하늘한 얇은 옷깃 사이로 보이는 목덜미가 희고 가녀리다. 온객행은 군관들의 시선이 느껴지자 질투가 일어 기껏 공을 들여 묶은 머리를 다시 풀었다. 반으로 나눠 목덜미를 가리고 남은 머리를 느슨하게 묶어 흘러내리지 않게 했다.

영문을 모르는 주자서는 남이 머리를 만져주는 일에 나른하여 정신을 놓고 앉아 있었다. 그저 저에게 불어오는 바람을 온객행이 막아주어 덜 춥다고 생각했다. 주자서는 진왕이 왜 비단으로 만든 내의를 준비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한식이 지나 곡우가 지나면 금방 여름이다. 양주는 남쪽에 있어서 청명이 지나면 더운 날도 있었는데 도성은 그보다 북쪽인데다가 계속 강바람이 부는 길을 따라 이동하니 주자서는 추웠다.

진왕은 마차에서 쉬는 동안 한번도 마차 밖으로 나오지 않았는데 주구전은 그것도 의심스러웠다. 마차 안에는 엽백의가 눈을 감고 운기조식하고 있었다. 주구전은 옆에 앉아 눈치를 보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진왕의 하인들과 공의성에서 만난 사람들이 해준 이야기를 했다. 조왕은 황제가 본인을 태자 삼지 않은 일에 대해 불만이 많은 듯했다. 게다가 진왕에게 누명을 씌운 일에 대해 입조심을 시키지 않았는지 중명원에 있는 하인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중명원에서 지내는 동안 주구전이 진왕에 대해 들은 이야기는 그는 가끔 초무관이라는 기루에 가서 채미공자라는 사람의 월금을 들으러 가는 정도였다. 초무관이라는 기루는 그 뒷배에 화산파가 있는 것 같다는 소리를 들었다. 화산파 장문인 우달은 여색을 밝히는 것으로 유명했기 때문에 다들 초무관이 그렇고 그런 가게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진왕이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는 또 다른 일이다.

엽백의가 자세를 바로 하고 한쪽 눈만 힐끔 떠서 주구전을 보며 말했다. “황보세가, 개방, 화산파, 종남파…” 주구전이 말을 이었다. “남궁세가.” 엽백의가 고개를 끄덕였다. 양주는 도성에서 머니 엽백의가 그 곳까지 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단양파가 남궁세가의 지시로 움직였으니 이 일에 남궁세가가 관련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단양파가 그러했다면 남궁세가와 평소에 관계를 잘 유지하던 문파들은 모두 연루된 것이다.

양주 일대에서 남궁일가와 사이가 좋지 않은 문파는 손에 꼽혔다. 아주 작은 문파라 남궁세가에서 관심이 없거나 아니면 모르는 척 관계하지 않는 사계산장 정도였다. 일이 이렇게 크면 수습하기도 힘들고 하나하나 찾아서 벌하기도 곤란하다. 주구전은 양주를 떠나면서 이 일이 큰일 이기는 하나 분명 피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와서 상황을 겪어보니 그것이 아주 틀린 생각이었다는 것을 깨달었다. 주구전이 낮게 읊조렸다. “권력과 부귀를 가진 자들은 용처럼 다투고 영웅들은 호랑이처럼 싸운다 하니…”(53) 엽백의가 웃으며 말했다. “결국은 개미와 파리인 것을…”


진왕 일행은 중간중간에 늑장을 부려 신시(申時)가 거의 다 되어서야 정주성에 도착했다. 정주성 앞에는 병졸들이 성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확인했는데 딱히 막지는 않았지만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 지에 대한 것들을 물었다. 그렇게 지나다니는 사람을 붙잡고 묻는 통에 성안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길다랗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진왕의 일행을 이끄는 무관 하나가 말을 달려 정주성 앞으로 가더니 품속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보내주고 돌아왔다. 그리고 길을 바꿔 사람들이 기다리는 곳 옆으로 길을 내어 정주성 안으로 들어갔다.

온객행은 마차에 드리워진 휘장을 옆으로 치워 밖을 구경했다. 정주성에 들어가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 중에는 강호에서 유명한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네 마리의 말이 이끄는 누가 봐도 귀해 보이는 마차가 지나가자 다들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말을 타고 있던 무관들이 모두 말을 내려 어디로 인가 사라지고 마차는 사람이 많고 복잡한 길을 피해 평락원(平樂園)에 도착했다. 진왕이 탄 마차가 제일 앞에 멈추었다.

진왕이 내리자 진왕이 타고 있던 마차가 비키고 엽백의가 탄 마차가 문 앞에 멈췄다. 제일 바깥쪽에 앉아 있던 온객행이 마부가 계단을 내리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훌쩍 뛰어내렸다. 그리고 그 뒤에 주자서가 내리고 뒤따라 내리는 엽백의와 주구전의 손을 잡아 드렸다. 엽백의는 손을 뻗어오는 주자서의 모습을 처음 봤다는 듯이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흥’하고 코웃음 쳤다. 뒤에 내린 주구전은 주자서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

진왕이 엽백의를 발견하고는 활짝 웃으며 평락원 안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손님들이 머무는 객실로 안내를 받은 네 사람은 둥근 탁상에 모여 앉았다. 주구전은 엽백의에게 황제가 올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엽선배께서는 매년 한식 이후에 황제폐하께서 풍년제사를 지내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엽백의는 대답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구전은 혹여 황제를 만나면 엽백의의 몫까지 눈칫밥을 먹어야 하나 하고 걱정이 되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던 즈음 평락원이 소란스러워졌다. 주구전은 평락원에서도 하인들의 일을 참견하고 도우며 인심을 샀다. 갑작스러운 일도 아니었을 텐데 분주하여 주구전은 주자서도 데리고 나와 이것 저것 일을 돕게 했다. 거추장스럽게 긴 소매를 긴 끈으로 어깨에 걸어 뒤로 고정했다. 귀한 물건이 들어 있는 것이 확실한 무거운 함을 번쩍번쩍 들어 올려 하인들을 도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교사원에서도 사람을 보냈는지 흰색 옷을 입은 유생과 도사와 함께 섞여 이리저리 움직이니 주구전은 곧 주자서가 어디 있는지 찾을 수 없었다.

엽백의는 온객행의 시중을 받으며 객실에 있는 것 같았다. 또 언제 흥이 일어 떠날지 모르는 분이니 주구전은 미리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다 객실로 발걸음을 옮기는 하인을 발견하여 용무를 물으니 천자가 오셨으니 인사를 해야 한다며 객실에 이는 손님들을 외실로 불렀다. 주구전은 입고 있던 옷을 바로 하고 주자서를 찾았다.

저 멀리서 유생들의 짐을 들어 사당으로 옮기는 것을 발견한 주구전이 주자서를 불렀다. “자서야! 자서야 이리 오너라.” 저를 부르는 소리에 유생들에게 공손히 인사하고 주구전에게 갔다. 주구전은 다가오는 주자서의 뒤에 묶인 끈을 풀어 옷을 정리해 주고 끈은 소매안에 넣었다. 주자서의 등에 손을 올린 주구전이 그를 외실로 이끌면서 말했다. “너는 양주 회계 주가(周家) 종손이다.” 주자서가 주구전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외실에 들러 엽백의와 온객행을 데리고 주구전은 외실로 향했다.


진왕은 때를 잘 맞췄다고 생각했다. 주가 노인네가 평락원의 하인들을 구워 삶기 전에 부황을 만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진왕이 도착하고 한시진이 되기도 전에 황제의 일행이 평락원에 도착했다. 일부러 사람을 써서 시간을 맞춰 도착했기 때문에 진왕은 가져온 짐을 정리하는 척 평락원의 하인이 그를 부를 때까지 괜히 부산을 떨었다.

황제가 정주성에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은 진왕은 부러 평락원 대문 앞에 나가 황제를 알현했다. “진왕 황제폐하를 뵈옵니다.” 진왕의 인사를 시큰둥하게 받은 왕이 손을 들어 진왕을 일으켜 세웠다. 황제의 뒤에 있는 조왕이 진왕에게 말했다. “진왕은 예를 거두시게.” 황제가 내실로 발걸음하자 조왕은 그 뒤를 따르며 진왕을 보았다. 진왕은 머리를 끄덕 하더니 하인들을 시켜 객실에 기별했다.

주구전이 도착하자 내실 옆에 서있던 내관이 그들을 보더니 하인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그리고는 내실 안쪽을 향해 말했다. “장명산 검선 엽백의가 천자의 알현을 청합니다.” 주구전은 뒤쪽에 서있는 엽백의의 눈치를 보았다. 엽백의는 내키지 않는 다는 듯이 내실 문 앞으로 가서 섰다. 곧 문이 열리고 네 사람은 내실 안으로 들어갔다. 엽백의가 강호식으로 양손을 포권하여 황제를 향해 인사했다. “장명산 엽백의 천자를 뵈어 감격 무지합니다.” 뒤에 서있던 주구전과 주자서 온객행도 양손을 모아 공손히 고개를 조아리며 인사했다.

황제도 검선의 이름을 들어 본적이 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엽백의에게 다가와 말했다. “그대가 장명산 상선인가?” 엽백의가 손을 내리고 황제를 마주하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황제가 그의 곁에 있는 사람을 보자 엽백의가 입을 열었다. “여기 있는 이 자는 저의 손제자 온객행이고, 이쪽에 이 자는 양주에서 온 저의 사제 주구전입니다.” 주구전과 주자서는 엽백의의 소개에 소매를 들어 깊게 인사했다. 황제는 그들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엽백의를 탁상 쪽으로 이끌어 자리에 앉혔다. 황제는 병을 얻어 총기를 잃었다 했지만, 부러 집안의 일을 들춰내어 본인의 체면을 깎는 일은 하지 않았다.

황제는 아무도 관심 없는 날씨나 건강에 대한 일을 이것 저것 묻더니 그제야 주구전을 발견했다는 듯 그들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주구전은 자기 뒤에 서있는 주자서를 한번 흘끔 보고 가까이 다가갔다. 그들이 다가가자 옆에 조용히 앉아 있던 진왕이 나서서 말했다. “부황, 이들은 저의 객입니다. 상선께서 황하를 유람하시고자 하여 제가 초대하였습니다.” 진왕의 말을 들은 황제가 ‘흐흠’하고 그들을 보았다. 그리고 황제의 시선에 연한 쪽빛 옷을 입고 고개를 살짝 숙인 주자서가 들어왔다.

황제는 엽백의에게 던지던 시선을 멈추고 돌아서서 주자서를 다시 보았다. 황제가 주구전을 지나 주자서 앞으로 가서 섰다. 당황한 주자서는 황제가 가까이 오자 무릎을 꿇고 바닥에 머리를 조아렸다. 황제는 그런 주자서에게 직접 몸을 굽혀 팔꿈치를 잡아 일으키며 고개를 들라고 말했다. 주자서는 무릎을 꿇은 채로 천천히 고개를 들어 황제를 보았다. 주영의 외숙께서는 그동안 참 많이 늙으신 것 같았다.

황제는 주자서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허…헌아?” 주자서가 일어나자 황제는 주자서의 손을 잡고 그를 헌이라고 불렀다. 주자서는 기억하고 있다. 외조부께서 모친을 불렀던 이름을. 귀한 이름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던 모친의 이름이다. 주자서가 놀라 황제를 보자 황제는 주자서를 덥석 끌어안았다. 주자서는 어찌 할 수 없어 얌전히 황제의 품에 안겨 있었다. 주자서는 지금 그를 안고 있는 외숙께서 자신의 양친을 해쳤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사부님께서는 괜히 들춰서 마음을 괴롭히지 말라고 하셨지만 주자서는 궁금했다. 대체 무엇 때문에 모친께서 천륜을 끊고자 하셨고, 무슨 일 때문에 양친이 목숨을 잃었는지. 주자서는 화가 났다. 그러다 옆에 서있던 주구전과 눈이 마주쳤다. 주구전은 황제를 측은하게 보고 있었다. 그를 안타깝게 보고 있다. 만인지상 천자인 황제를 불쌍히 보고 있다. 주자서는 잠시 일었던 원망이 수그러들었다. 황제는 주자서를 붙들고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보이며 경무장공주의 아휘를 불렀다.

조왕은 눈치껏 방에 있던 하인들을 밖으로 내보냈다. 내관이 방문을 닫았고 엽백의와 온객행은 영문을 몰라 황제가 주자서를 붙잡고 우는 것을 보았다. 황제는 한참 울다 조금 진정이 되자 몸을 떼고 주자서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우리 헌이…. 헌아…. 이 오래비가 너를 많이 그리워하였다.” 주자서는 몸 둘 바를 몰라 황제가 하는 대로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서있었다. 황제는 주자서의 어깨를 쓰다듬더니 또 덥석 끌어안았다.

주자서는 주구전이 황산은장에서 이름을 찾겠냐고 물었던 것이 떠올랐다. 막상 외숙부를 보니 화가 났지만 원망이 수그러든 시점에서 다시는 황제를 보고싶지 않았다. 군신과 신하만 있고 부모와 자식이 없는 곳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 매일 먹을 것을 걱정하며 사는 것이 당장 목숨을 걱정하며 사는 것보다 좋았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던 주영은 우물에 빠져 죽었다. 저기서 황제를 측은하게 보고 있는 조부와 다시 사계산장으로 돌아가고 싶다. 사계산장 식구들이 그리웠다. 사계산장에 있는 동안 주자서는 단 한번도 낙양성의 종친을 그리워 한적이 없었기 때문에.

황제가 주자서를 놔주자 조왕과 진왕이 와서 주자서를 소개했다. “부황, 이 아이는 고모님이 아닙니다. 주대인의 종손 주자서에요.” 진왕이 황제를 부축해 의자에 앉히자 황제는 주자서에게 손짓하여 가까이 오라고 불렀다. 주자서는 조왕과 진왕의 눈치를 보다가 황제 옆에 서있던 조왕이 자리를 비켜주자 황제 곁에 다가가 섰다. “헌이가 아니란 말이냐?” 주자서는 황제 앞에 무릎 꿇고 공수하여 인사한후 말했다. “양주 회계 주가 종손 자서 황제폐하를 뵙습니다.”

주구전은 주자서가 하는 말을 듣고 조금 안심했다. 제 이름을 찾겠다고 하면 어쩌나 하고 노심초사하였는데, 주자서는 다행이 마음을 먹은 듯했다. 양친 얘기만 나오면 눈동자가 반질반질해지는 순한 주자서는 없고, 사계산장에서 수련할 때 보이는 단호하고 냉정한 주자서만 있었다. 황제는 주자서에게 양친에 대해 물었다. 주자서의 거침없는 대답에 정신이 들었는지, 황제는 자리에 고쳐 앉으며 진왕이 주는 차를 마셨다. ‘큼큼’ 목을 가다듬더니 피곤하다며 모두를 물렸다. 엽백의와 주구전이 다시 인사를 하고 주자서가 그들을 따라 나가려고 하자 황제가 주자서의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 양쪽에 서있는 조왕과 진왕을 역시 물러가라 말했다.

둘만 남은 평락원 내실에서 황제는 한참동안 차를 마셨다. 무릎을 꿇은 채로 황제 앞에 있던 주자서는 슬슬 다리가 저려 왔다. 주자서의 불편한 기색을 읽은 황제가 주자서에게 물었다. “양주에서 왔다고?” 주자서가 답했다. “예 폐하.” 황제는 몸을 숙여 주자서를 가까이 보았다. “올해 몇 살이지?” 황제가 물었다 주자서는 조부께서 진왕에게 말씀하신 대로 지학이라고 말했다.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거두지 않은 황제가 주자서의 생 연월일시를 물어왔다. 주자서는 당장 생각나는 것이 없어 온객행의 사주에서 연만 바꾸어 황제에게 답했다. 숨기는 기색 없이 답하는 주자서를 본 황제는 길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우리 영이가 살아 있었다면 너와 나이가 비슷했겠구나…” 황제의 한탄에 주자서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했다.

황제는 주자서를 떠보는 이야기를 하다가 경무장공주와 닮은 얼굴로 찬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이 가여워 밖에 있는 내관을 불러 주자서를 배웅하게 했다. 주자서는 절뚝거리며 일어나 공수하여 인사한 뒤에 내실에서 나왔다. 내실 밖에는 진왕과 조왕이 기다리고 있었다. 주자서가 나오자 그들은 내실 안으로 들어갔다. 주자서는 자신을 객실로 데려가는 내관의 눈치를 보며 조용히 따라 걸었다. 혹시 잘못하여 한숨이 나올까 싶어 숨소리를 조용히 하였더니 길을 가던 내관이 힐끔힐끔 뒤를 돌아보며 그가 잘 따라오는지 확인했다.


객실에 들어온 엽백의는 말없이 주구전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주구전은 마치 그런 시선이 항상 있었던 것처럼 태연하게 앉아 차를 마실 물을 끓였다. 온객행이 일어나 주구전의 시중을 들자 엽백의가 입을 열었다. “온가 네 놈이 아주 귀한 집 자식을 마음에 둔 듯하구나.” 엽백의의 말에 주구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온객행이 차주전자에 데운 물을 채우며 말했다. “노야, 내가 왜 온가요. 나는 주가에 시집갔으니 주가요.” 그 말에 주구전이 마시던 찻물을 뱉으며 사레가 들렸다.

엽백의가 웃으며 물었다. “네가 시집을 갔단 말이냐? 나는 사주단자를 받은 일이 없는데?” 그러자 온객행이 사레가 든 주구전의 등을 문지르며 말했다. “사주는 저희 내외가 알아서 잘 교환하였고 예단도 했고 맞절도 했으니 이제 초야만 치르면 됩니다.” 그 말에 주구전이 온객행의 손을 뿌리치며 얼굴을 보았다. ‘이놈이?’ 주구전의 표정을 보고도 해사하게 웃으며 온객행이 말했다. “이제 시조부님이라고 불러야겠네요. 시조부.” 온객행의 말에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하여 주구전은 가슴을 쳤다.

주자서가 내관의 안내를 받아 객실로 들어왔다. 객실 안에는 실실 웃으며 주구전의 시중을 드는 온객행과 가슴을 치며 온객행의 시중을 거절하는 주구전, 그리고 그 둘을 보며 ‘하하하’웃고 있는 엽백의가 그를 반겼다. 내관이 자리를 뜨자 엽백의가 주자서에게 말했다. “천하에는 크게 경계해야 할 일이 두가지 있으니 하나는 천륜이고 다른 하나는 인륜이다. 주가 네놈이 내 손제자와 인륜을 맺었으니…”(54)

주자서가 답지 않게 엽백의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어르신 아닙니다.” 주자서가 혼인을 부정하는 말을 하자 주구전의 시중을 들던 온객행이 말했다. “서방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기러기는 필요 없다니까?” 주자서가 당황하여 입만 벙긋 거리자 주구전이 온객행에게 소리를 빽 질렀다. “이게 지금 기러기의 문제냐!!” 엽백의는 주구전의 노기를 띈 목소리를 듣고도 ‘하하하’웃었다. 밖에서 몰래 엿듣고 있던 하인들만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였다.

(53) 채근담 후집 72
權貴龍驤 英雄虎戰 以冷眼視之 如蟻聚羶 如蠅競血.
권세가들은 용처럼 다투고 영웅들은 범처럼 싸우나, 냉정한 눈으로 이를 보면 마치 개미가 비린 것에 모여들고 파리가 다투어 피를 빠는 것과 다름이 없다.

(54) 장자 내편 4인간세
天下 有大戒二 其一命也 其一義也
천하에는 크게 경계해야 할 일이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천명이고 또 하나는 의리(인간사회의 규범)이다.

雨霖鈴 第13

13. 道有升降
길에는 오르고 내림이 있다.

목욕을 마치고 간단히 요기한 주구전과 주자서는 문을 활짝 열어놓은 객실에 앉아 있었다. 청명이 지난 공의는 날이 좋아 햇빛이 객실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따뜻한 기운이 돌자 나른 해진 주자서는 다시 침상에 가서 눕는 대신 주구전 옆에 앉아서 차를 마셨다. 자꾸 고개가 꺾이는 주자서의 어깨를 주구전이 이리저리 만져보며 말했다. “자서야 그새 좀 자란 것 같구나.” 중명원에서 지내는 동안 다른 때보다 잘 자고 잘 먹어서 그런지 키가 조금 큰 것 같았다.

이제 자라는 나이는 다 지난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주자서가 고개를 돌리고 크게 하품을 했다. 주구전이 허허 웃으며 주자서의 등을 쓸었다. 내원에 온객행이 들어온 것을 본 주구전이 ‘흠’ 하고 자리를 일어났다. 사내놈들이 서로 정다운 꼴을 보는 것 보다는 주방에서 일하는 어멈의 손주얘기를 듣는 편이 더 흥미로웠다. 주구전이 방을 나가자 주자서는 어디 가시냐고 묻지도 않고 탁상에 엎어져서 눈을 붙였다. 잠깐 눈을 붙였다 일어나면 나른한 기운이 가실 것 같았다.

온객행은 주구전이 객실을 나가면서 주변에 있던 하인들을 데리고 주방으로 가는 것을 보았다. 저 노인네는 돈 한푼 안들이고 사람마음을 사는 재주가 좋았다. 사계산장에서 수집한다는 정보는 보통 저런 식으로 모으는 모양이다. 주인보다 주인을 더 잘 아는 것은 보통 그 주인을 모시는 하인들이었으니 온객행이 돈으로 사서 모은 정보보다 더 수완이 좋을 것이다. 괜히 심통이 난 온객행은 열어놓은 객실문을 등지고 탁상에 앉아 엎드려 있는 주자서를 보았다.

자기 마음이 어떠 한지 아는지 모르는지 괜히 답답하여 부러 소리를 내며 탁상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그래도 고개를 들지 않는 주자서가 미워서 ‘큼큼’ 목을 가다듬으며 잔에 차를 따라 마셨다. 인기척을 느낀 주자서가 고개를 살짝 들어 보니 온객행이 언제 왔는지 흰 소매를 마구 펄럭이며 시끄럽게 차를 마셨다. 주자서는 그 모습이 모래목욕을 하는 참새 같아 살포시 웃었다. 그리고 고개를 옆으로 누이고 다시 눈을 감았다.

그 모습을 보고 마음이 답답해진 것은 온객행이다. 온객행은 탁상위에 놓여있는 요패를 보았다. 비싼 것은 받을 수 없다 하여 일부러 흔해 보이는 것 중에 귀한 것을 찾았다. 엽백의는 쓰지도 않을 패물을 잔뜩 장명산에 쌓아 두고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그러니 그것들을 장난감 삼아 가지고 놀았던 온객행은 보통사람보다 눈이 높았다.

귀한 것을 보는 안목도 좋았다. 상인이 꺼내서 보여준 것 중에 유독 붉은 나무로 만든 패가 있기에 물었더니 주목이라 했다. 은은하게 붉은 빛이 나는 이 나무는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 붉어 진다고 했다. 보석보다 훨씬 쌌지만 은은한 붉은 빛이 마음에 들어 그 패를 사다가 청금석을 갈아 무늬를 채운 것으로 화려한 매듭을 지어 흰색의 술을 달았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투박하여 그 값을 알기 어려운 이 물건은 대체 언제부터 이 탁상 위에 버려져 있었을까 괜히 서글퍼졌다. 고개를 기대고 잠든 주자서의 얼굴이 옥같이 고와서 괜히 주목 요패가 초라해 보였다. “한스럽고, 슬프다! 나를 버리고 헤어져 새 사람에게 가다니. 너무나 가난한 이에게서 모든 것을 앗아 가다니…”(52) 온객행이 말했다. 그리고 탁자에 있던 요패를 품속에 넣었다.

일각쯤 눈을 붙이고 있었던 주자서가 눈을 뜨자 온객행이 일어났다. 주자서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진왕전하께서 내일 정주로 가실 때 저희를 데리고 가신다 합니다. 온공자도 함께 가십니까?” 의연한 주자서의 행동에 온객행은 입을 앞으로 쭉 내밀더니 다시 자리에 앉았다. “주공자, 주공자도 부귀와 영화를 쫓는 부류의 사람이오?” 주자서는 뜻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혹 상선 어르신께 연락이 닿으면 진왕전하께서 정주에 있는 낙수 하구에서 배를 빌려 놓았다 하니 중천이 되기 전에 그리로 오시라고 전해 주시오.”

온객행은 몸을 돌려 주자서를 마주보고 말했다. “아서. 나는…, 나는 생각보다 속이 좁은 사람이었나 봐.” 침울해진 온객행의 표정을 보고 주자서가 웃으며 말했다. “온공자 혹시 무슨 일이 있었소?” 다정한 주자서의 목소리에 눈물이 나올 것 같은 온객행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주공자께서 미천한 저와 진왕을 두고 저울질하시는 중이시라면…” 온객행이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주자서는 ‘하하하’하고 크게 웃어 버렸다.

온객행은 더욱 울상이 되어 눈물이 찬 반질반질한 눈동자로 주자서를 보았다. 주자서가 온객행의 어깨를 손으로 툭툭 치며 말했다. “제가 어찌 장명산 상선의 제자이신 온공자와 천자의 아들이신 진왕전하를 두고 감히 저울질을 하겠습니까?” 주자서의 말에 어리둥절한 온객행이 말했다. “주공자는 진왕의 수청을 드는 것이 아니오?”

주자서는 도리어 당황하여 물었다. “제가요?” 온객행은 표현을 잘못한 것 같아 다시 물었다. “주공자는 진왕전하께 첩지를 받는 것이 아니오?” 주자서는 이놈이고 저놈이고 왜 자꾸 사람들이 별안간 자신을 시집안간 처녀처럼 취급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미간을 찡그린 주자서가 조용히 그 말을 되새겼다. “첩지…” 진왕이 정말 첩지를 주면 주자서는 받을 수밖에 없었다. 황자의 말을 거절할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주자서가 크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황자께서 취하시고자 하면 제가 어찌…” 눈을 내리 깔며 말하는 주자서가 처연하여 온객행은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았다. 그 말을 다 듣지도 않고 품 안에 안아버렸다. 주자서의 어깨에 얼굴을 묻으며 말했다. “아서 걱정하지 마! 내가 지켜 줄 거야. 아서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하지 않아도 괜찮아.” 주자서는 살면서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해준 이가 몇이나 될까 세어보았다.

양친과 사부님을 제외하면 꼽아지는 손가락이 하나도 없다. 이런 말을 온객행에게 들었다는 것이 아까워 주자서는 온객행을 밀어내었다. 밀어내는 주자서의 손을 꼭 잡은 온객행이 말했다. “사주는 우리가 이미 주고받았으니 되었고, 상견례는 노야와 주대인이 만났으니 생략해도 돼.” 그리고는 품에 아까 넣은 요패를 꺼내어 주자서의 손에 쥐여주었다. 주자서는 온객행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 것 알 수가 없어 얼떨결에 그 요패를 받고 말았다.

온객행이 옥 같은 얼굴로 해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서 이건 예단이야. 다른 납폐는 생략하고 일단 내 예단을 받아줘.” 주자서가 온객행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오…온공자? 진정하시오.” 그리고는 일어나 주자서를 일으켰다. 주자서 손에 쥐어진 요패를 들어 요대에 매달아 주었다. 주자서는 허리깨에 달리는 요패를 보고만 있다가 정신이 번쩍 들어 온객행의 손속을 물리며 말했다. “온공자!”

온객행은 주자서가 입고 있는 하인들의 옷과 요패는 어울리지 않아 아쉽다는 생각을 했다. 주자서가 요대에 매인 요패를 풀어 온객행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온공자 국법으로 사내는 사내와 혼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자 온객행은 또 울상이 되어 말했다. “우리는 강호에서 연을 맺었으니 국법은 필요 없어.” 온객행이 조르듯 말하자 주자서는 처음으로 요패를 자세히 보며 말했다. “온공자. 이렇게 귀한 것은 받을 수 없소.” 그리고 요패를 다시 온객행에게 내밀었다.

>온객행은 요패가 들려있는 주자서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주자서.” 온객행의 목소리에 주자서는 소름이 돋았다. 셀 수도 없이 불린 이름인데 온객행 입에서 나오면 낯설었다. 주자서가 아연하여 손을 뿌리치려고 하자 온객행은 눈썹을 한껏 내려 불쌍한 표정으로 주자서를 보았다. 주자서는 또 어리광을 피우는 사제가 떠올랐다.

이렇게 떼를 쓰는 아이는 따뜻한 기운이 눈을 녹이듯 하여야 한다고 생각했는데,(42) 온객행의 광증은 펄펄 끓는 물을 부어도 녹지 않을 것 같았다. ‘애초에 남색은 고칠 수 있는 병인가?’ 따위 생각을 하며 가만히 서 있는 주자서에게 온객행의 얼굴이 점점 다가왔다. 주자서가 ‘얼굴이 가깝네’ 라고 생각한 다음 온객행과 주자서의 입술이 맞부딪혔다. 그리고 기별없이 객실에 들어왔던 진왕이 둘이 입을 맞추는 것을 목격하고 말았다.


진왕은 하인을 시켜 만든 옷이 완성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그 옷을 들고 객실로 갔다. 가는 길에 주방 쪽이 시끄러워 가보았더니 무엇이 재미 있는지 주구전이 하인들과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하며 웃고 있었다. 저 노인네는 위 아래도 없는지 하인들이며 집을 지키는 병졸들과 친하게 지냈다. 이제 중명원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진왕보다 더 잘 아는 것 같았다. 딱히 여색을 탐하지도 않는지 어린 하녀들도 그를 어르신이라고 부르며 잘 따랐다.

진왕을 보면 고개를 조아리기 바쁜 하인들이 주구전에게 웃는 낯으로 이것 저것 챙기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저놈들의 상전은 진왕이 아닌 것 같았다. 진왕은 ‘쯧’혀를 차며 생각했다.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 인지…’ 진왕이 하는 일을 세세하게 아는 하인은 없으니 별로 걱정되지 않았지만 저 여우 같은 노인네는 그런 하찮은 것들을 주워 정보를 만드는 사계산장에서 온 자다. 다시 객실로 발걸음을 옮기며 정주로 갈 때 데려갈 하인들은 사가에서 데려와야 겠다고 생각했다.

객실 주변에 하인이 없기에 혹시 사람이 없나 하여 기별도 없이 들어간 객실안에서 주자서는 검선의 제자라는 놈과 입을 맞추고 있었다. 외모가 동한 것은 사실이었으나 잠시 가지고 놀아볼까 했던 장난감이 남에 손에 들려 있으니 괜히 탐이 났다. 입술을 뗀 온객행이 진왕을 발견하고 주자서 손에 들려 있던 요패를 주자서 앞섶에 밀어 넣었다. 주자서는 멀뚱히 서서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온객행이 진왕에게 포권하여 인사했다.

넋이 나간 주자서가 움직이지 않자 온객행이 직접 손을 모아 올려주고 등을 누르며 말했다. “주자서와 온객행 진왕전하를 뵙습니다.” 진왕이 ‘큼큼’ 목을 몇 번 가다듬고 탁상위에 옷을 올려 놓으며 말했다. 심술이 일어 온객행을 쏘아보며 말했다. “두 분께서 그런 관계인 줄은 진왕이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온객행이 배시시 웃었다. 진왕의 목소리에 정신이 든 주자서는 소매사이로 얼굴을 감추고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진왕은 코웃음 치며 말했다. “벼슬은 지조와 절개를 지키기 위해 받을 수 없고, 첩지는 온공자 때문에 받을 수 없는 것입니까?” 온객행은 본인의 처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기분이 좋아져서 자리에 앉아 진왕 차시중을 들었다.

주자서는 공수한 손도 내리지 못한 채로 서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씻겨 놓았더니 말간 얼굴이 괜히 더 예뻐 보여 진왕은 입안이 썼다. 진왕이 취하고자 들면 못 취할 것도 없었지만 당장 뒷배가 없어 아쉬운 진왕은 검선과 척을 지고 싶진 않았다. 흥이 깨진 진왕은 주자서에게 내일 정주로 갈 때 입을 옷이라며 가져온 옷으로 화두를 돌렸다. 주자서는 황공하다며 진왕이 가져온 옷을 힐끔 보았다.

무명천으로 만든 연한 쪽빛 장포, 흰색 중의와 내의였다. 연한 쪽빛 장포는 안이 다 비칠 정도로 얇다. 주자서는 이 옷이 자기 옷인 줄 알았지만 부러 진왕에게 물었다. “진왕전하의 은혜에 황공하옵니다. 이것은 조부의 옷입니까?” 진왕이 주자서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대의 옷이오.” 그러자 주자서가 무릎을 꿇고 넙죽 엎드려 말했다. “황공하옵니다 전하, 하지만 조부께서 헌 옷을 입으시는데 저 혼자 새 옷을 입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자 진왕이 일어나며 말했다. “주대인께서는 이미 입어보고 계시오.” 그리고는 인사도 받지 않고 자리를 나가버렸다. 주자서는 진왕이 나가고서도 한참을 차가운 바닥에 머리를 붙여 절을 하고 있었다.

온객행은 바닥에 넙죽 엎드려 절하고 있는 주자서 앞에 엎드려 절하며 말했다. “일배요!” 그리고 한번 더 절했다. “이배요!” 온객행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그가 하는 모습을 본 주자서가 일어났다. 온객행도 절을 다하고 일어서서 주자서 앞에 서서 말했다. “맞절 했으니 이제 어서 손을 씻자.” 주자서는 사계산장에서 사형이 장가들 때 하던 것을 보았기 때문에 온객행이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대충 알 수 있었다.

온객행은 마치 혼례를 치르는 것처럼 구는 것이다. 그러다 진왕이 들어오기 전에 입을 맞춘 것이 생각나 얼굴에 열이 올랐다. “온객행!” 온객행은 주자서가 제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기꺼워 “응” 하고 대답하며 주자서에게 몸을 가깝게 붙여왔다. 이미 한번 입맞춤을 당한 주자서는 온객행의 몸을 밀면서 말했다. “아직 기러기를 주지 않았으니 이 혼례는 무효요.” 그러자 온객행이 ‘하하하’웃으며 말했다. “그대가 주는 것은 무엇이든 좋지만, 아무것도 주지 않아도 좋아.” 온객행의 말에 주자서는 울 것 같은 표정을 했다. 온객행이 환하게 웃으며 주자서를 안아왔다. 온객행은 주자서가 뿌리칠 줄 알았지만 주자서는 뿌리치지 않고 온객행을 마주 안아왔다.

주자서는 온객행이 진왕을 거절할 좋은 구실이라고 생각했다. 이 치가 자기를 좋다고 말하는 이것이 진실이든 아니든 주자서를 해칠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무것도 주지 않아도 좋다니… 그에 비하면 진왕은 본인이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목덜미를 쥐어 숨통을 조여올 것 같았다. 주자서가 가진 모든 것을 쥐고 흔들며 더 많은 것을 요구할 것 같았다.

갑자기 힘이 쭉 빠진 주자서가 기대오자 온객행인 그것이 기꺼워 더욱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살짝 돌려 주자서의 목덜미에 대고 말했다. “근데 아서. 아서의 사주를 보면 아서는 지학(15세)이 아닌데 왜 주대인께서는 지학이라고 거짓말을 하신 거야?” 주자서는 뜨끔하여 온객행의 앞섶에 얼굴을 묻으며 웅얼거렸다. “조부께서 하시는 생각을 내가 전부 알 수 없네.” 온객행이 주자서의 등을 쓸며 말했다. “나는 이제 주가에 시집왔으니 말씀을 편히 하소서.” 주자서가 온객행의 품을 나오며 말했다. “아직 기러기를 주지 않았다니까.” 그러자 온객행이 주자서가 어려워하는 울상으로 말했다. “부군.” 그 말에 허탈해진 주자서는 그냥 웃어버렸다.


땅거미가 내려 앉자 주구전은 주방 어멈과 함께 찬합을 들고 객실로 돌아왔다. 주자서는 탁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고 온객행은 그 옆에 조신하게 앉아 주자서의 시중을 들고 있었다. 그의 시중을 거절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또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겠구나 생각한 주구전은 찬합을 내려놓고 저녁을 먹자고 했다. 어멈은 나가지 않고 그들과 함께 앉아서 밥을 먹으며 진왕과 조왕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두 사람을 어릴 때부터 돌보았던 어멈은 두사람의 관계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며 귀한 신분일수록 가족이 가족 같지 않다는 이야기를 했다.

주구전이 ‘허허허’하고 웃으며 고사이야기를 꺼내며 황실에서는 군왕과 신하만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어멈은 그런 어려운 이야기는 알지 못한다며 저녁 찬으로 나온 잉어의 살을 발라 주자서와 온객행의 밥그릇 위에 올려주었다. 그리고는 한식이 지나면 왕릉에서 제례를 마치고 황제가 공의의 중명원이나 정주의 평락원에서 풍년을 기원하는 풍년제를 지낸다고 했다. 중명원으로 오시기 전에는 항상 기별을 하셨는데 올해 없는 것을 보면 정주로 갈 것 같다고 말했다.

주구전은 주자서를 힐끔 봤다. 주자서는 어멈의 말에 별 감흥이 없는지 온객행이 조잘조잘 떠들어 대며 밥그릇 위에 올려주는 반찬을 먹었다. 주구전의 시선을 느낀 주자서가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주구전은 ‘저렇게 실없는 놈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을 하며 밥을 먹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난 주자서와 주구전은 진왕이 준비해준 옷을 입었다. 도톰한 무명천으로 만든 밝은 회색의 장삼에 검은색으로 옷깃을 덧대고 흰색 내의를 입었다. 푸른색 다회로 허리를 묶고 벼슬이 없어 관을 할 수 없으니 상투를 틀어 올려 영견으로 덮어 묶었다. 주구전이 옷 갈아입는 것을 도운 주자서는 그제야 진왕이 가져온 옷을 꺼내 보았는데 내의가 은조사로 짠 비단이었다.

사계산장에서 입던 낡은 내의를 입고 한참 고민하는 주자서를 보고 있던 주구전이 물었다. “무슨 일이냐?” 주구전이 주자서가 보고 있는 내의를 보고 물었다. “이 내의는 비단으로 만든 옷입니다.” 주구전은 직조물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 주자서가 하는 말을 듣고 천을 만져 보았다. 얇게 짠 이 옷감은 무명천과 질감이 비슷했지만 확실히 조금 차가운 느낌이 있었다. 주구전이 한숨을 쉬며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하인 한 명이 무명천으로 만든 내의를 가지고 들어왔다. “제가 입던 것이지만 빨아 놓았으니 깨끗합니다.” 하고 말한 하인은 주구전에게 인사하고 방을 나갔다.

주자서는 하인이 나가는 것을 보고 재빨리 옷을 갈아 입었다. 하인의 몸이 주자서보다 컸는지 겉에 입은 연한 쪽빛 장포 바깥으로 흰색 내의가 나와 주자서의 손을 가렸다. 정리하겠다고 소매를 털면 팔꿈치까지 훤히 보였다. 시간이 촉박하여 머리를 어쩌지 못한 주자서는 주구전이 옆에 서있는 하인에게 빌린 노란 머리 끈으로 대충 정리하여 반만 묶었다.

객실을 나와 내원을 지나 문밖으로 나오자 진왕이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진왕은 귀족이 제례를 지낼 때 입는 검은색 옷에 붉은색 깃이 달린 옷을 입고 기다란 장관을 썼다. 제사를 지내는 곳에 가는 것을 알고있었으면서 주구전과 주자서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은 것이다. 주구전은 주자서가 입은 연한 쪽빛 장포를 보았다. 자신이 입은 연한 회색이야 가난한 백성이 염색을 덜한 옷을 입은 것 치면 되지만 저렇게 시커먼 제사복을 입은 귀족들 사이에서 주자서의 옷만 눈에 튈까 걱정이 되었다.

진왕은 마차로 한시진이면 도착하는 거리라고 말하며 마차를 나누어 타고 정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알 수 없는 이유로 여러 번 멈춰서 쉬었는데 쉬는 도중에 엽백의와 온객행이 주구전의 일행에 합류하였다. 엽백의는 진왕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주구전이 타는 마차안에 훌쩍 들어가서 앉아 눈을 감았다.

온객행은 엽백의가 그러던 말던 마차에서 내려 쉬고 있는 주자서에게 다가와 그의 옷을 쓸며 말했다. “아서 입은 옷이 정말 날개 같다.” 그리고는 주자서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며 말했다. “머리는 왜 묶지 않았어? 이리와.” 주자서가 순순히 온객행에게 머리를 내어주자 둘이 하는 모습을 보고 있던 주구전은 맥이 풀렸다.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을 보고 있던 주구전은 혀를 ‘쯧’차고 엽백의가 있는 마차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52) 송옥 구변 九變
愴怳懭悢兮 去故而就新 坎廩兮貧士失職 而志不平 廓落兮羇旅而無友生
한스럽고 슬프다 옛 사람과 헤어져 새사람에게 가다니, 너무나 가난한 선비에게서 모든 것을 앗아가니 불평한 마음이 생겨나 멍하니 우뚝 서 있네, 벗도 없는 나그네 신세여.

雨霖鈴 第12

12. 好物不在多
좋은 물건이 반드시 많아야 할 필요는 없다.

주자서가 눈을 떴을 때는 사위가 어두웠다. 밖에서 지저귀는 새들의 울음소리가 시끄럽다. 하지만 사람들의 인기척이 없는 것을 보면 아주 이른 시간일 것이다. 주변을 살펴보니 아직도 중명원에 있는 듯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주자서는 신발을 신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평상에서 졸고 있는 주구전을 발견하여 주자서는 자신이 덮고 있던 비단 이불을 덮어 드렸다. 어떤 꿈을 꿨던 것 같은데 잘 기억나지 않았다.

꿈속에서 옛날 낙양성에서 양친을 뵌 것 같은데 또 그런 것 같지 않고 머리속이 복잡했다. 조왕을 보았을 때 느껴졌던 그 불편함과 답답함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선황제께서 승하하시고 난 이후로 진왕과 조왕은 자주 볼 일이 없었기 때문에 그가 아주 어릴 때 만났던 것 말고는 기억이 없다. 그 일도 이제 너무 오래전 일이라 희미하기만 했다. 뭔가 무거웠던 짐을 내려 놓은 것 같은 기분이 든 주자서는 일어나 기지개를 펴고 벗어 놓았던 옷을 찾아 입었다.

장지문이 살짝 열리더니 온객행이 살금살금 주변을 살피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밤새 밝혀 놓은 등잔이 꺼질 듯 말 듯하여 방안이 어두웠는데 탁상에 앉아 있는 주자서를 보고 숨을 ‘허’하고 들이 쉬며 손으로 입을 막았다. 옷을 다 입은 주자서가 다 꺼져가는 등잔의 불을 켜지 않은 다른 등잔으로 옮겨 불을 밝혔다. 온객행은 작게 한숨 쉬며 탁상에 앉아 다 식은 찻물을 찻잔에 따라 마셨다. 주자서는 침상 근처에 있는 화로 중에 탄이 제일 많이 남은 화로를 조부의 근처로 옮기고 그 위에 물을 끓이는 주전자를 올려 두고 탁상에 앉았다. “어디 들보 위에 다녀 오셨소?” 주자서가 물었다.

온객행이 찻잔을 내려놓고 주자서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내가 훔치고 싶은 것이 들보 위에 없는데?” 주자서가 ‘흠’ 하더니 말했다. “그럼 훔치고 싶은 것이 있긴 있다는 말이오?” 온객행이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자서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 어깨를 붙이고 주자서의 귀에 속삭였다. “엷은 구름에 가린 달처럼 아련하고 흐르는 바람에 눈이 날리듯 가벼우니….”(51)

온객행의 흰소리에 질린 주자서가 몸을 기울여 온객행과 거리를 벌리자 온객행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여태 침상에 들인 이들은 그대에게 이런 말을 해주지 않았는가 보오?” 주자서가 고개를 흔들면서 대꾸하지 않자 온객행이 말을 이었다. “멀리서 바라보니 아침 노을 위로 떠오르는 태양과 같고….” 주구전이 헛기침을 하면서 자리에서 돌아 누웠다. 주자서와 온객행은 주구전을 힐끔 보고 소리 없이 마주보고 웃었다.

주구전은 조금 더 눈을 붙이려고 했지만 온객행이 들어오는 바람에 별로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듣고 말았다. 주자서 저놈도 반정도 넘어갔는지 행동이 퍽이나 정답다. 주구전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주자서가 일어나서 주구전의 시중을 들었다. 주구전은 이미 옷도 다 입고 머리도 올려 묶은 주자서를 보고 한동안 생각하더니 옷을 벗기며 말했다. “자서야 너는 그냥 계속 아픈 편이 좋겠다.” 주구전의 손을 뿌리치지도 않고 하자는 대로 하고 있는 주자서를 보고 있던 온객행이 불쑥 물었다. “주대인께서도 아서의 침상에 오르셨습니까?” 주구전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주자서를 침상 쪽으로 밀어 눕히고 벗긴 옷을 정리하여 주자서의 발치에 두었다.

주구전은 침상에 걸터앉아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무래도 천자께서 뜻이 있으시니 우리는 그 장단에 좀 맞춰야 할 것 같구나.” 다시 침상에 누운 주자서에게 평상에 있던 이불을 가져와 덮어주며 온객행이 말했다. “아서, 이미 침상에 오른 이가 많으면 하나 더 추가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으니….” 그리고 침상으로 올라가려는 온객행을 막으며 주구전이 말했다. “온공자 엽선배께서 가시기 전에 일러 두신 것이나 시키신 일은 없습니까?” 온객행이 주구전의 손을 뿌리치며 침상에 걸터앉았다. 주구전을 한번 힐끔 본 온객행이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조왕의 측근 중에 독을 쓰는 자를 찾으라 하셨습니다.” 한숨을 쉬던 주구전이 그 말을 듣고 온객행을 보았다. 온객행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앉아서 입은 옷을 펄럭이며 정리했다.


중명원의 객실에서 주구전은 온객행과 아침을 먹었고, 주자서는 하인이 떠주는 죽을 받아먹었다. 혼자 먹으려는 것을 주구전이 눈치를 주어 그냥 그렇게 얌전히 침상에 몸을 기대고 하자는 대로 해주었다. 아프지도 않은데 아픈 척을 하려고 하니 좀이 쑤신 주자서는 몸을 이리 엎치락 저리 뒤치락댔다. 아침을 먹은 주구전은 온객행을 데리고 객실을 나갔는데, 객실에 혼자 남은 주자서는 혹시 누가 또 들어올까 싶어 눈치를 보며 침상위에 누워있었다.

할 것이 없어 심심한 주자서는 객실을 뒤져 온객행이 모서리를 찢었던 서책을 찾아서 읽었다. 이것은 삼국지 오서 중 비빈에 관련된 내용을 모은 것이다. 평소에 별로 관심있게 두었던 내용은 아니지만 이 책을 보니 주자서는 괜히 우울했다. 후대 역사서에 양친의 이름은 남게 될까? 나중에 사부님께서 양친의 장례는 나라에서 치러 주었다고 들었다.

부친의 시호는 베풀 선(宣)으로 서선공이며, 모친의 시호는 맞이 세(世)로 경세장공주이다. 주자서는 문득 자신에게도 혹시 시호가 있었을까 궁금하다. 다시 양주로 돌아가기 전에 양친이 묻히셨다는 곳에 향을 피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데 밖에서 하인이 기별했다. “진왕전하께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장지문이 열리고 진왕이 들어왔다. 주자서는 보던 책을 옆에 놓고 마치 방금 일어난 것처럼 자리에 앉았다. 진왕이 들어오자 주자서는 양손을 모아 얼굴에 붙이고 절하듯이 침상위에 바짝 엎드렸다. 진왕은 침상을 다가와 절하는 주자서를 친히 일으키며 말했다. “예를 거두게 몸은 좋아 졌는가?”

주자서는 손을 내리고 무릎 꿇은 상태로 대답했다. “진왕전하와 조왕전하의 은혜에 감복할 따름입니다.” 주자서의 말에 진왕이 웃으며 방금 주자서가 읽다가 내려 놓은 책을 집어 들며 말했다. “오서 비빈전이군.” 주자서가 고개를 조아리고 대답이 없자, 진왕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주대인께서는 출타하셨나?” 주자서는 오래 생각하지 않고 조부께서 하실 법한 말을 골라했다. “쓸모없는 소인을 걱정하시어 어제 의원께서 일러 주고가신 약재를 구하러 가셨습니다.” 진왕이 ‘흠’ 하고 들고 있던 책을 내려 놓았다.

한참 말없이 두 사람의 눈치를 보던 하인이 차를 준비하겠다며 방을 나갔다. 이제 방 안에는 주자서와 진왕 둘 뿐이다. 진왕이 주자서에게 물었다. “주대인께서 그대는 양주 단양 현승의 종손이라 들었는데 맞는가?” 주자서가 대답했다. “그러하옵니다.” 진왕이 다시 물었다. “문칙선생의 제자였다고?” 주자서가 또 똑같이 그러하다 대답하자 또 한동안 말이 없던 진왕이 물었다. “그대도 주역을 공부했는가?”

주자서는 곰곰이 생각하다 말했다. “소인은 부족하여 아직 괘도 전부 알지 못합니다.” 진왕이 다시 물었다. “흠… 그럼 벼슬에 뜻이 있는가?” 주자서는 진왕의 뜻을 알 수 없어 힐끔 진왕을 보았다. 두사람의 시선은 아주 잠깐 마주 닿았다 떨어졌다. 주자서는 생각이 많아졌다. 하지만 생각하는 시간이 길면 길어질수록 진왕은 그를 의심할 것이다. 벼슬에 뜻이 없다고 하면 주구전이 그를 유생이라고 소개한 것이 말이 안되게 되고, 그렇다고 뜻이 있다고 하여 벼슬을 준다면 그 벼슬을 받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다.

주자서가 머뭇거리자 진왕은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려 웃으며 주자서의 손을 잡았다. “주공자. 그대는 이제부터 내 사람이니 그대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이 진왕이 모두 주겠네.” 그리고는 주자서의 흘러내린 머리를 어깨 뒤로 넘겨주었다. 주자서는 조금 당황하여 고개를 들어 진왕을 보았다. 진왕은 사람 좋게 웃으며 잡고 있던 주자서의 손을 놓아주었다.

그리고 손을 어깨로 가져가 그 근처를 쓰다듬었다. 분위기가 묘해지자 주자서는 도성 근처에는 남색을 밝히는 자들만 있는 것인가 궁금해졌다. 진왕이 무엇이라 더 말하기 전에 갑자기 객실의 문이 열렸다. “아서! 이 요패는 어때? 이건 주단이라는 나무로 만든….” 온객행이 침상에 있는 주자서와 진왕을 보았다. 주자서는 진왕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온객행을 보기 위해 고개를 옆으로 꺾어 온객행을 보았고, 진왕은 그런 주자서를 웃으며 바라보았다. 온객행은 문을 열고 들어온 자리에 서서 한참 침상 쪽을 보고 입을 열었다 닫았다 하더니 곧 문을 닫고 나갔다.


온객행은 방을 나오자 마자 갑자기 머리로 열이 모이는 것을 느꼈다. 예전에 주구전에게 말했던 것처럼 마음만 가지면 몸은 얼마든지 나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주자서가 다른 남자와 한 침상에서 정답게 있는 것을 보니 답답하고 화가 치밀어서 숨쉬기가 곤란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한 맑은 얼굴로 진왕을 꿰어 내고 있는 주자서는 별로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또 그래서 더 좋았다. 아니 마음을 정할 수가 없었다.

뭔가 그 전까지는 손안에서 가지고 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자신이 주자서의 손바닥 위에 올라간 것 같았다.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크게 한숨을 쉬자, 객실로 걸어오던 주구전이 아는 척을 했다. “온공자 들어가지 않으시고 예서 뭐하십니까?” 온객행이 손을 내리고 가지고 온 요패를 주구전에게 주며 말했다. “남의 정사를 구경하는 취미는 없소.” 주구전이 요패를 받으며 되물었다. “저…정사??” 주구전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온객행은 훌쩍 경공으로 지붕위로 올라가버렸다. 주구전은 어안이벙벙하여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객실안으로 들어갔다.

객실안에 들어가니 진왕이 침상 앞에 서서 주자서에게 무언가 말하고 있었다. 주구전은 들고 있던 요패와 탕약재료를 탁상위에 올려 두고 손을 모아 공손하게 인사했다. “주구전 진왕전하를 뵈옵니다.” 진왕은 들어온 주구전을 한번 보고 뭐라뭐라 더 말하고 ‘하하하’웃었다. 그리고 탁상으로 걸어와 인사를 받아주었다. 그리고는 의자에 앉아 주구전에게도 앉기를 권했다.

주구전이 자리에 앉자 진왕이 말했다. “그대의 종손은 아주 강직한 자라서 쉽게 얻어지는 벼슬 자리는 내키지 않는가 보오.” 주구전이 침상 쪽을 흘끔 보며 말했다. “군자로써 지조와 절개를 잃으면 이름을 잃는다 하였으니 비록 보잘것없는 주가라도 어찌 그것을 흠모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무슨 말을 들었는지 주자서는 얼이 빠져서 침상위에 무릎 꿇고 앉아 있었다.

진왕이 주구전이 내려놓은 약재와 요패를 보더니 물었다. “약방에 다녀오시는 길인가 보오?” 주구전이 약재를 풀며 말했다. “아직 길이 낯설어 약방을 찾는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진왕이 풀어진 약재를 살펴보며 말했다. “이런 일은 하인들을 불러 시키면 되는 것을…” 주구전이 손사래 치며 말했다. “어찌 천한 제가 사람을 부리겠습니까? 여기서 일하시는 하인분들도 다 귀한집의 자제분들이신데.”

황자를 모시는 이들이니 노비라 할지라도 왠만한 평민보다 귀한 출신일 것이다. 그리고 주구전은 시장에 나간다는 핑계로 할 일이 있었으니 좋은 구실이다. 진왕은 약재에 대해 이것저것 묻더니 하인을 불러 주구전이 사온 약재를 달이게 했다. 그리고는 방을 나가며 주자서에게 몸을 보중하라는 당부를 했다. 진왕의 말에 주자서는 양손을 바닥에 붙여 넙죽 엎드려 절했다.

진왕이 나가고도 한참을 절하고 있던 주자서에게 주구전이 다가갔다. 주구전이 주자서의 어깨를 짚자 흠칫 떨더니 벌떡 일어났다. 어깨를 잡은 것이 주구전인 것을 본 주자서가 한숨을 크게 쉬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곧 얼굴을 들어 울상을 하며 주구전에게 말했다. “조부, 도성에는 남색이 유행입니까?” 주구전이 무슨 소리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하자, 주자서는 침상에 풀썩 누우며 말했다. “재주가 없어 벼슬이 싫으면 첩지라도 주겠다 합니다.”

주구전이 당황하여 되물었다. “뭣이? 첩지? 그 아녀자들이 윗머리 장식할 때 쓰는 그 첩지 말이냐?” 주자서가 이불에 얼굴을 파묻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구전은 놀란 얼굴로 침상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 “아니 용양군이 이리 많단 말이냐?” 진왕이 주자서를 보는 눈이 그런 것일 줄이라고는 상상도 못한 주구전은 정말 놀랐다. 이건 온객행이 주자서를 희롱하는 것보다 더 곤란한 일이었다.

주자서는 양주에 있을 때도 잘생긴 얼굴과 의젓한 행동으로 뭇 소녀들의 마음을 흔들었으니 그의 외모를 탐하는 자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소녀들이나 여인이 아니라 남자들이! 그것도 벌써 둘이나! 괜히 안쓰러워 누운 주자서의 등을 쓸며 말했다. “그것 말고 따로 더 하신 말씀은 없느냐?” 주자서가 고개를 들고 말했다. “저희는 진왕의 사람입니까?”

그러자 주구전이 ‘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중명원에 있는 동안은 어찌할 방도가 없으니 그리 해야지.” 그러자 주자서의 얼굴이 찡그리며 말했다. “그럼 저는 진왕의 첩지를 받습니까?” 주구전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너는 그러고 싶으냐?” 그러자 주자서가 일어나 손사래 치며 말했다. “싫습니다.” 고개까지 흔들며 말하는 주자서를 보자 주구전은 괜히 그를 놀리고 싶었다. 탁상 위에 올려놓은 요패를 고갯짓하며 말했다. “그럼 온가의 패옥은 받겠느냐?” 주자서는 이불에 얼굴을 묻고 고개를 더 흔들었다. 주구전이 그런 주자서를 보고 ‘허허허’ 웃었다.

주구전은 주자서에게 대충의 일을 설명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사계산장에서 자주 사용하는 방법으로 다른 사람에 빗대어 황실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주자서는 질문이 있었으나 함부로 묻지 않았다. 곧 하인들이 요기할 음식을 들고 주구전이 사온 탕약을 들고 객실에 들락날락했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감추는 기색 없이 엿듣는 하인들이 많았는데 그들이 듣기에는 주구전과 주자서는 양주의 친인척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들렸다.

주자서가 물었다. “당숙은 그럼 아직도 침상에 누워 계시나요?” 주구전이 답했다. “너의 백부가 약재를 구하러 갔으니 당분간은 자리를 보전하고 있을 것이다.” 주자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은 양주에 기별을 넣으러 황산은장에 가야겠다. 주자서가 말했다. “저는… 저는 양주에 언제 돌아가나요?” 주구전이 주변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우리 종손은 이 할애비와 도성을 더 구경하다 가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리고 ‘허허허’웃었다.


하인들이 보기에는 그저 사이좋은 할아버지와 손자 사이였다. 귀동냥으로 들은 이야기로는 소년은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조부와 둘이 살아왔다 했다. 그래서 그런지 말하지 않아도 남을 잘 돕고 깍듯했다. 몸이 약한 것인지 잠시 내원을 걸었다고 기침을 하며 쓰러지는 것을 보면 양주에서 도성까지 여행을 하면서 병을 얻은 것 같았다.

주대인은 밖에 나갔다 오면서 뭘 사왔는지 하인들을 빙 둘러 놓고 당과를 나누어 주시기도 했다. 도성에서는 흔해 빠진 당과지만 누가 하인들을 위해 부러 그것들을 사올까? 그러니 진왕이 내실에서 하인들을 닦달해도 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별로 없었다. 주대인이나 그 소년에 대해 별로 나쁘게 말하고 싶지도 않았을 뿐더러 정말 별로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진왕은 신경질 적으로 아랫것들에게 분풀이를 했다.

한식이 지난지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 황제는 공의나 정주에 가서 낚시를 할 것이다. 낚시에서 물고기를 많이 잡아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는데 진왕은 그곳에 주자서를 데려갈 참이었다. 하지만 조왕은 정확하게 어느 날짜에 어디로 가는지를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그래도 정명원 객실에 묶어 둔 주자서를 보았으니 진왕 모르게 그만 데려갈 수는 없을 것이다. 진왕은 낙양성에 있는 황후에게 서신을 보내 고모님께서 생전에 좋아하시던 것을 물었다. 진왕은 한참 어린시절을 떠올리며 고모께서 어떤 옷을 입으셨는지 어떤 모습이었는지 기억해 내려고 애썼다.

진왕은 유연이 말해주지 않았다면 주자서와 고모님을 연결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진왕은 명절때가 아니면 고모님을 자주 뵙지도 못했고 게다가 내종형제인 주영과도 그다지 친하지 않았다. 지금의 황제는 그들에게 크게 관심이 없었지만 조부이신 선황께는 주영을 아끼다 못해 매일 끼고 살았다. 게다가 기왕 사마영은 시간이 날때마다 그 아이를 데리고 낙양성 남궁 화원에서 보란듯이 선황께 예쁨을 받았다.

이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한 어린애가 잘 모르는 어려운 글자를 읽어대며 저를 보고 웃는 것은 꽤 거슬리는 일이다. 그 때 그 아이는 푸른색 옷을 입었었던 것도 같다. 얼굴은 기억나지 않아도 사마영과 같이 걷는 모습은 수도 없이 보았다. 그 둘은 푸른색 계열의 옷을 자주 입었던 것 같다. 진왕은 사람을 시켜 옅은 쪽빛의 옷을 짓게 했다. 유생들이 걸치는 유삼 같은 형태의 옷으로 부러 비치는 얇은 천을 사용하라고도 일렀다.

다음날 아침 일찍 진왕은 낙양에서 온 서신을 받았다. 당숙 장사왕(長沙王) 사마예(司馬乂)에게 온 서신이다. 서신에는 오늘 오후에 황제 일행이 정주로 떠난다는 내용이었다. 낙양에서 정주까지는 말로 두 시진을 달려야 도착하는 곳이기 때문에 황제가 만약 행렬을 이루어 간다면 하루가 꼬박 걸릴 것이다. 진왕은 서신을 화로에 던져 넣고 일어나 주자서가 있는 객실로 갔다.


하인에게 기별하고 안으로 들어가자 주구전이 차를 끓이고 있었다. 주구전은 어젯밤에도 주자서와 함께 보냈는지 평상위에 이불이 놓여 있었다. 진왕은 주자서가 결코 혼자서는 가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에 주구전에게 인사하며 말했다. “주대인, 기침하셨는지요.” 주구전이 하던 일을 멈추고 공손히 인사했다. 진왕은 그 점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흠잡을 곳이 별로 없다는 것은 이용해먹기 골치 아프기 때문이다. 주자서가 침상에서 일어나 절하려고 하기에 얼른 예를 거두라 말한 진왕은 탁자 앞에 앉았다. 주구전이 차주전자에 물을 따르고 진왕에게 차를 올렸다.

진왕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주대인, 제가 약속한 황하에 유람을 갈까 하는데 어찌 생각하십니까?” 주구전이 침상 쪽을 힐끔 보고 말했다. “아직 우리 아이가 아파서…” 진왕이 주자서 쪽을 보자 주자서는 다시 누웠는지 이불만 보였다. 진왕이 웃으며 말했다. “주대인 황하의 바람은 그리 차지 않습니다. 벌써 청명이 지나지 않았습니까.” 주구전의 난처한 기색을 읽은 진왕은 거절할 수 없게 말을 이었다. “제가 숙부인 낭야왕께 배를 빌려 놓았으니 가서 보시지요. 주공자는 제가 잘 보살피겠습니다.”

주구전은 주자서를 보살피겠다는 사람들이 제일 탐탁치 않아 곤란했다. 그래도 왕의 봉호를 가진 이에게 빌린 것이라면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주구전이 입을 열었다. “진왕께서 권하시니 저도 즐겁습니다. 다만 엽선배께 말을 전할 수가 없어서…” 진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것도 그러합니다. 제가 사람을 좀 풀어 연락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상선의 제자라는 분은 어디에…?” 진왕이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주구전이 말했다. “어젯밤부터 보이지 않으니 상선께 가지 않았을까요?” 진왕이 동의하며 일어났다. “두 분께서는 푹 쉬시고 내일 아침 일찍 마차를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는 주구전과 서로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객실을 나갔다.

하인을 따로 불러 두 사람의 목욕을 준비시켰다. 그리고 목욕시중을 드는 하인들에게 두사람의 신체 치수를 대강이라도 알아오게 시켰다. 일이 촉박했지만 돈을 좀 쓰면 시간을 맞추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산기상시에게 편지를 보내고 처리해야 할 일들을 처리하고 나니 벌써 오시가 넘었다. 잠시 내원을 거닐러 나갔는데 아랫것들 목욕하는 곳이 소란스럽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다 늙은 노인네와 어린 소년 하나 씻기는 일이 뭐가 저리 즐거운지 괜히 흥이 식은 진왕은 하인을 불러 기루에 갈 채비를 했다.


진왕이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인들이 주구전과 주자서를 데리고 부엌 옆에 있는 간이 욕탕으로 데려갔다. 주구전이 시중이 필요 없다며 사양하자 하인들이 그들에게 욕의를 입히고 욕탕에 밀어 넣었다. 주자서는 얇은 욕의를 입고 떨고 있다가 옆에 있던 하인의 손에 달랑 들려 탕 속에 몸을 담갔다. 물은 조금 뜨거웠는데 그래서 딱 좋았다. 주구전이 좋다며 양주에서 유행하는 시가를 읊으니 그의 머리를 감겨주던 하인들이 ‘까르륵’하고 웃었다. 주구전은 하인들과 농담을 하며 목욕을 했다.

주자서는 머리를 빗겨주는 손길에 나른하여 물속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목욕물을 먹었다. 그것이 귀여워 또 한바탕 웃었다. 다 씻은 두 사람을 객실로 데려다 놓은 하인들은 또 머리를 말려 주겠다며 서너 명이 그들 뒤에 붙어 머리를 말리며 머릿기름을 발라 주었다. 혹여 두 사람이 목욕후에 풍한이라도 들까 객실로 화로를 더 들고 들어왔다. 목욕을 하고 원래 입고 있던 옷을 입을 수는 없어서 하인들에게 옷을 빌려 입었다. 주구전은 흰색 장삼에 소매가 넓고 깃이 푸른색인 옷으로 예전 유학자들이 입는 옷을 입었고, 주자서는 중명원의 하인들이 입는 회색 호복을 입고 머리를 하나로 묶었다.

(51) 조식 낙신부
髣髴兮若輕雲之蔽月 飄颻兮若流風之廻雪
엷은 구름에 싸인 달처럼 아련하고 흐르는 바람에 눈이 날리듯 가벼우니….
遠而望之 皎若太陽升朝霞 迫而察之 灼若芙蕖出淥波
멀리서 바라보니 아침 노을 위로 떠오르는 태양과 같고, 가까이서 바라보니
녹빛 물결 위로 피어난 연꽃과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