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經 國風 衛風 木瓜
시경 국풍 위풍 모과
내게 모과를 주기에 어여쁜 패옥으로 보답하였지.
굳이 갚자고 하기보다 길이 사이좋게 지내보자며.
내게 복숭아를 주기에 어여쁜 구슬로 보답하였지.
굳이 갚자고 하기보다 길이 사이좋게 지내보자며.
내게 자두을 주기에 어여쁜 옥돌로 보답하였지.
굳이 갚자고 하기보다 길이길 사이좋게 지내보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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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瓊)은 옥이 아름다운 것이요, 거(琚)는 패옥(佩玉)의 이름이다.
- 요(瑤) 아름다운 옥구슬이다.
- 구(玖) 역시 아름다운 옥구슬이다.
위의공(衛懿公)이 학에 너무 탐닉한 나머지 적족(狄族)의 침략을 막아내지 못하고 싸움 중에 죽었다. 위나라 사람들이 송환공의 도움으로 란을 피해 하수를 건너 조읍(漕邑)으로 들어갔다. 이에 제환공(齊桓公)이 3국의 제후와 군사들을 소집하여 각기 삼태기와 가래를 휴대하게 한 다음 위나라로 행군했다. 위문공 훼(燬)가 멀리까지 나와 제환공의 일행을 마중했다. 위문공은 그때까지 아직 삼베로 만든 군주의 의복과 비단으로 만든 관을 바꾸지 않고 상복으로 계속 입고 있었다.
제환공이 보고 측은한 마음을 금하지 못하고 위나라 도성을 어디에다 쌓아야하냐고 물었다. 문공이 초구(楚丘)를 정했으나 나라가 망해서 성을 세우는데 드는 비용을 감당할 길이 없어 바라만보고 있다고 대답했다.제환공은 그 날로 3국의 병사들에게 초구로 이동하여 위나라를 위하여 성을 쌓으라고 명했다. 다시 재목을 제나라에서 가져오게 하여 종묘를 모시는 사당을 짓게 하고 그 사당의 문에 위나라를 초구에 봉한다는 뜻의 ‘위봉(衛封)’ 이라는 현판을 달았다. 위문공이 제환공에게 위나라의 도성과 종묘를 모시는 사당을 세워준 은혜에 감격하여 〈모과(木瓜)〉라는 시를 읊어 노래했다. 출처
장자 가라사대 위나라가 땅 가에 큰 하수가 있어서 그 땅이 토박하니라. 그러므로 그 사람의 기운이 가볍고 떠있고, 그 땅이 평평하고 낮음이라. 그러므로 그 사람의 바탕이 유약하고, 그 땅이 비옥하고 기름져서 소비하고 밭 갈고 김매지 않느니라. 그러므로 그 사람들의 마음이 게으르니라. 그 사람들의 성정이 이와 같으면 그 성음이 또한 음탕하고 어지러우니라. 그러므로 그 음악을 들으면 사람으로 하여금 게을러지게 하여 사벽한 마음이 있느니라. 정나라 시도 이와 같으니라. 출처
공자가 정풍의 시를 깠는데, 장자 역시 위풍의 시를 깠다. 그래서 일까? 정풍과 위풍이 너무 내 취향이다.남녀가 서로 주고 받으며 부른 유행가라고 하는데 귀엽다. 애초에 시경이라는 책이 북방에서 유행하던 유행가를 모은 것이라고 어디서 읽은것 같다. 그래서 작자가 미상인 것이 많고, 당시에 일어났던 역사적인 사실이나 생활상을 잘 담고 있어서 좋은 사료가 되기도 한다고 했던것 같은데 대체 어디서 봤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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