抛磚引玉 | 2. 돌을 던져서 구슬을 얻다.
백택은 측백나무숲에 있는 커다란 사당으로 무지기의 사당이었다. 주요는 예전에 태평호의 신으로 모셔진 적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주 왕래하며 사당을 지어주었다. 처음에는 작은 움막 같은 집이었다가 사람이 하나둘 늘어나자 제대로 기와를 올린 사당이 되었다. 사람이 기거할 수 있을 만큼 커진 뒤에 무지기는 그곳에 살면서 신령한 약초를 모아 사람들을 돕기도 하였고, 아픈 사람들을 보살피며 과거 우왕(禹王)에게 한 약속을 아직도 지키고 있는 중이다. 그는 원래 상수(湘水)에 수원대선(水源大仙)이었는데 어떤 죄를 짓고 이곳 태평호에 유폐(幽閉)되었다. 그의 죄가 무엇인지 아마 온객행은 알지도 모르겠다.
고상은 백택의 남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 소리쳤다.
“무지기!”
정전의 장지문이 벌컥 열리고 그 안에 있던 주요가 고상을 쏘아보며 말했다.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잖아!”
화가 난 것 같은 주요의 목소리에 고상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에이, 주요! 화내지 말고 일단 들어봐.”
주요가 고상에게 자리를 권하고 찻잔을 꺼내 고상에게 내밀었다. 고상은 찻주전자를 들어 주요의 찻잔과 자신의 찻잔을 채우고 앉아 입을 축였다. 주요가 고상을 빤히 보자 고상이 다시 방긋 웃으며 말했다.
“주요, 주요! 여태 사내에게 여인들을 빼앗겼잖아요.”
주요가 인상을 쓰며 고상을 노려보았다.
“에이, 주요! 그니까 이 사내를 이용해서 여인을 낚으면 되잖소.”
고상의 말에 주요의 얼굴이 풀어졌다.
“사내의 생김새가 나쁘지 않으니…”
주요가 손을 앞으로 내젓고는 말했다.
“아상, 아상. 그만.”
고상이 턱을 괴며 말했다.
“주요, 그 사내는 내게 은혜를 입었으니 내 말을 들어줄 거예요.”
주요가 고개를 흔들며 작게 코웃음 쳤다.
“사람은 요괴를 두려워해. 요괴라면 사람을 잡아먹고 탐욕을 부추긴다고 생각하지.”
고상이 자리에 바로 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요는 찻잔을 비워 내려놓고 말을 이었다.
“사람에게 불리는 이름은 언제라도 바뀌는 법. 사람들이 나를 부르는 이름은 또 몇인가?”
고상은 양손으로 손가락을 꼽아보더니 갸웃거리다 손을 내려놓고 ‘히히히’하고 웃었다.
사내는 또 며칠간 사경(死境)을 헤매다가 화사가 준 피를 마시고 조금 나아졌다. 온객행은 가끔 들러 그의 입을 젖은 영견으로 축여주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침상에 누워 살아있는 것의 숨소리를, 살고자 하는 숨소리를 듣고 있으면 그것이 온객행에게 위안이 되었다. 저 미물은 무엇 때문에 저렇게 살고자 하는 것일까? 목숨이란 무엇인가? 수백 번 수천 번 물었던 질문에 대답은 아직 찾지 못했다. 온객행은 내실의 휘장을 드리워 실내를 어둡게 하고 사내가 사경을 헤매는 동안 내실 안에서 사내의 숨소리만 들었다. 그러다 고상이 찾아와 사내에게 피를 먹이면 고상에게 사람을 요괴로 만들 참이냐며 잔소리를 했다.
온객행은 문간의 휘장을 걷어 고상이 들어올 수 있게 했다. 고상은 어두운 실내를 보고 한참 잔소리를 하다 가져온 찬합을 내려놓고 사내가 누워있는 평상으로 갔다. 온객행은 가져온 찬합을 열어 보았다. 복숭아가 가득 담겨 있었다. 주요가 보낸 것이다. 복숭아를 들어 향을 맡아 보았다. 올해는 초여름에 비가 많이 오지 않아 복숭아의 색이 더 빨갛고 향긋하다. 고상이 사내의 이불을 매만지며 말했다.
“자서야 어찌 눈을 뜨지 못하느냐.”
고상은 온객행이 알려준 사내의 이름을 퍽 다정하게 부른다.
고상은 또 손가락을 물어뜯어 사내의 입안으로 피를 떨어뜨렸다. 온객행이 혀를 차며 말했다.
“너무 많이 먹이면 사람도 요괴도 아니게 되니 조심해야 한다.”
고상이 ‘흥’하고 코웃음 치며 말했다.
“이미 사람도 요괴도 아니오. 자서는 사람인데 이 영력은 어디에서 난 것이지?”
온객행이 주자서가 누운 평상으로 다가가 말했다.
“하늘의 누군가가 겁을 사는 것일지도 모르니 그쯤 하게.”
고상이 고개를 들어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선인(仙人)이 겁을 사는 것이면, 나는 정말 대단한 사람에게 은혜를 입힌 것이네?”
고상은 몸을 숙여 주자서의 가슴에 머리를 대고 그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말했다.
“기왕이면 서왕모(西王母)의 아이였으면 좋겠다.”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왜? 고향인 옥산(玉山)으로 돌아가려고?”
고상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럼 정말 좋겠다. 히히히.”
주자서는 고상이 다녀간 날 늦은 저녁에 정신이 돌아왔다.
어두워진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주자서는 곧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불이 스치는 소리가 들릴 만큼 실내는 조용했다. 휘장으로 겹겹이 감싸진 실내에는 사람의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주자서는 작게 한숨을 쉬고 다시 자리에 누웠다. 군영에서 그를 찾고 있을 것이다. 군영에서 도망하였다고 하면 그와 같은 여(閭)에 속한 자들이 오제령(伍制令)으로 연형(蓮刑)으로 처벌을 받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분군(死憤軍)에 포함된 자들은 서로의 처지를 잘 알고 있어 덮어주려고 할 것이다. 주자서는 터져 나오는 깊은 한숨을 막을 수가 없었다. 어둠 속에서 불쑥 나타난 남자가 물었다.
“기껏 살려주었는데, 어찌 한숨이시오?”
주자서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목소리가 들리는 쪽을 보았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으로도 인영을 찾을 수 없어 고개를 숙이고 대답하지 않았다. 남자는 주자서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의 얼굴을 빤히 보았다. 주자서는 고개를 들어 남자의 얼굴을 보았다. 표정이 없는 남자의 얼굴은 조금 무섭기까지 했는데 주자서는 닿았던 시선을 얼른 돌리며 말했다.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곳은 어디입니까?”
남자는 또 한참 주자서를 빤히 보다가 말했다.
“태평호.”
주자서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진 것을 본 온객행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실을 나갔다.
‘어떻게 태평호까지 오게 되었을까?’ 주자서가 소속된 군영은 선우산(仙寓山) 바로 아래 있다. 여신(餘燼; 패잔병)을 쫓다 황산(黃山)까지 닿은 모양이다. 군령(軍令)을 어겼으니 돌아가면 또 벌을 받겠구나 생각했다. 차라리 죽었으면 전사자(戰死者)가 될 수 있었을까? 그렇게 되었으면 고향에 있는 모친과 당질은 죄를 받지 않을 수 있을까? 주자서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남자는 곧 어디서 가져왔는지 복숭아를 가져와 얼기설기 깎아 주자서에게 내밀었다. 주자서는 한참 내민 복숭아를 보다가 받아먹었다. ‘그래, 벌써 복숭아가 나는구나.’ 같은 생각을 하며 입에 넣은 복숭아는 달고 향긋하다. 언제인가 군영에서 허기를 달래기 위해 먹었던 복숭아는 시고 떫었다. 이렇게 달고 맛있는 복숭아를 언제 먹었었는지 이제는 그 기억이 까마득하다. 주자서는 남자가 주는 대로 복숭아 하나를 모두 먹었다. 남자는 주자서가 복숭아를 먹는 것을 또 빤히 보다가, 영견에 물을 묻혀 주자서의 손을 닦아주었다. 또 한참 평상 앞에 앉아 주자서를 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흠’하고 방을 나갔다.
영문을 모르는 주자서는 어둠에 익숙해진 눈으로 방안을 살펴보았다. 귀족이 풍류를 위해 잠시 기거하는 거처인 모양이다. 주자서는 이불을 걷어 상처를 보았다. 입고 있는 하얀 장포를 걷어 허벅지를 보았다. 바지는 어디에 갔는지 바로 맨 살이 보인다. 겉으로 보이는 상처는 거의 다 아물었는지 피딱지가 앉아 있었다. 주자서는 앞섶을 풀어 어깨의 상처를 보았다. 상처는 거의 아물어 있었다. 주자서는 다친 어깨를 들려다 ‘윽’ 소리를 내고 어깨를 잡았다. 딱히 뼈를 다친 것 같지는 않은데 팔을 들 수가 없었다. ‘큰일이다.’ 상처를 입었으니 군영에 돌아가면 그 처지가 곤란할 것이다. 주자서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느라 자신의 상처가 고작 며칠 새에 나을 수 있는 상처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간과(看過)했다.
온객행은 오랜만에 물 안으로 들어갔다. 태평호 안에는 해화상(海和尙; 물의 요괴)이 몇 있는데 그중 사자헌(沙子軒)과 사자상(沙子尙)은 형제이다. 그들은 지식에 대한 욕심이 많아 사람과 요괴, 신선 할 것 없이 떠도는 소문과 각종 지식을 모아 그들이 사는 유사혈(流沙穴)에 잔뜩 모아두고 내킬 때마다 꺼내 본다. 그들이 축적한 지식은 그 양이 방대하여 상선이나 원군(元君)이 찾기도 하였다. 온객행은 가져온 찬합에서 복숭아를 꺼내 사자헌에게 건넸다. 사자헌은 복숭아를 요리조리 둘러보더니 말했다.
“천도(天桃)가 아닌가? 어디에서 구했나?”
온객행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주요는 서왕모께서 아끼는 대선(大仙)이었지요.”
사자상이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 상수에서 후토를 만나지 않았다면….”
온객행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
사자헌과 사자상은 복숭아를 보기만 하고 먹지는 않았다. 온객행이 그들을 빤히 보자 사자상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선조를 구할 것도 아니고 등선할 것도 아니니 오래 살아 무엇 하겠는가?”
사자헌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이 죗값으로 또 몇 갑자를 더 살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소.”
온객행이 작게 웃었다. 사자상이 말했다.
“곧 끝나겠군.”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자헌이 물었다.
“이것은 작별의 선물인가?”
온객행은 뜸을 들이다 대답했다.
“뭐… 겸사겸사.”
사자헌이 자리에서 일어나 차를 준비했다. 사자상이 말했다.
“길어질 이야기인가?”
온객행은 눈을 굴릴 뿐 대답하지 않았다. 사자헌이 말했다.
“천도로는 차 한잔 정도의 시간밖에 살 수 없네.”
사자상이 거들었다.
“그렇군. 그렇다면 뜸 들이지 말고 어서 시작하는 것이 좋을 거야.”
온객행은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 입을 열었다.
날이 밝아 고상이 부유각으로 갔을 때 주자서는 막 잠에서 깨어난 참이었다. 고상은 몸에 물기를 다 털지도 않은 채로 실내에 들어가 주자서에게 말했다.
“자서! 일어났구나.”
그리고는 주자서의 몸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몸을 살폈다. 주자서는 작게 신음을 흘렸지만 고상은 개의치 않았다. 고상이 주자서에게 물었다.
“자서 좀 일어나봐, 걸을 수 있겠어? 다리에 상처는 다 나았나?”
고상은 주자서의 이불을 걷고 장포를 걷으려고 했다. 주자서는 놀라서 고상의 손목을 붙잡고 말했다.
“주인! 남녀가 유별한데 어찌…”
고상은 활짝 웃으며 주자서의 어깨를 토닥였다.
“뭘 이제 와서 내외하는 거야? 너를 씻기고 입힌 것은 나인데. 귀여운 것.”
그리고는 옷을 걷어 상처를 살폈다. 주자서는 얼굴이 빨개져서 옷으로 몸을 가리려고 했다. 고상이 말했다.
“이상하게 빨리 낫지 않네. 보통 하루 이틀이면 다 나아야 하는데.”
그러더니 주자서의 앞섶을 벌려 어깨에 있는 상처를 보았다. 그리고 그 근처를 눌러보았다.
“윽!”
주자서가 신음하자 고상은 놀라서 손을 떼고 말했다.
“아직도 아프단 말이야? 정말 이상하네.”
고상은 평상에 걸터앉고 말했다.
“너는 이제 내 아이이니, 음… 이름을 뭐라고 할까?”
주자서가 어깨를 매만지며 말했다.
“제 이름은 이미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저는 주자서입니다.”
고상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주자서는 죽었어.”
주자서가 고개를 들어 고상을 보았다. 고상이 주자서의 얼굴을 마주 보고 말했다.
“내가 네가 입고 있던 찰갑을 너희 군영 근처에 두고 왔어.”
주자서가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어… 어찌!”
고상이 주자서에게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네가 내 피를 얼마나 많이 마셨는 줄 알아? 아마 너의 반은 이미 화사(花蛇)가 되었을지도 모르겠군.”
주자서가 넋이 나간 얼굴로 입을 달싹이자 고상이 주자서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말했다.
“내가 너의 어미가 되어줄 터이니 걱정 말아라. 내 아이야.”
주자서가 몸을 움츠리며 말했다.
“내게는 이미 모친이 계시오.”
고상은 주자서에게 고개를 기대며 말했다.
“그래, 그래. 내가 너의 모친에게도 후하게 사례(射禮)하마.”
주자서는 고상의 말에 역시 입만 달싹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곧 내실로 들어온 온객행이 보고 작게 혀를 찼다.
“아상, 어찌 천륜을 이런 식으로 맺는다는 말이냐?”
저 남자는 고상을 상전이라고 말했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하대를 한다. 고상이 자리에서 일어나 남자에게 말했다.
“파사공자, 그러지 말고 여기 음… 청강하 근처에는 버들이 많으니 유서(柳絮)라고 부를까? 이제 막 요괴가 되었으니 솜털처럼 귀엽지. 유서야?”
주자서는 고상의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숙이고 이불을 더 끌어 덮었다. 고상이 ‘히히히’하고 웃으며 말했다.
“우리 유서 맥 좀 짚어봐. 또 누가 알아? 나보다 먼저 신선이 될지?”
남자는 평상으로 다가와 걸터앉고 주자서의 손목을 잡았다. 남자의 손은 방금 찬물에서 나온 사람처럼 차가웠다. 남자의 손길에 주자서가 움찔하자 고상이 주자서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우리 유서, 괜찮아. 겁먹을 것 없다.”
주자서는 자기보다 한참이나 어려 보이는 소녀가 자신을 아이 어르는 듯이 하는 것이 못마땅했으나 달리 다른 방법이 없어 가만히 있었다.
남자가 주자서의 손목을 놓아주고 말했다.
“정말 영력이 있네. 어쩌면 아상 너보다 더 소질이 있는지도 모르겠어.”
남자는 고개를 숙인 주자서의 얼굴을 좀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상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천도는 어디에 뒀어? 내가 유서 주려고 어젯밤에 가져다 놨는데….”
온객행이 탁상에 가서 앉으며 말했다.
“유사혈에 가져다줬어.”
고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말했다.
“온객행! 귀한 천도를 사자(沙子)형제에게 전부 다 줬단 말이야?”
온객행이 차를 준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상이 탁상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
“대체 뭘 물으려고 천도를 가져다 준거야? 그건 주요가 나에게 준 천도였으니까 어서 말해!”
온객행이 차를 따르며 말했다.
“사람이 천도를 먹으면 어찌 되는지 물었지.”
고상이 온객행이 따라준 차로 입을 적시고 말했다.
“그러게. 사람은 영력이 있는 경우가 드무니 천도를 먹으면 어떻게 되는데?”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고상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영력을 담을 곳이 있어야 깃드는 것이니까.”
고상이 온객행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물었다.
“그래서? 그래서?”
온객행이 찻잔을 들어 차를 마셨다. 온객행이 뜸을 들이자 고상이 온객행의 팔을 붙잡고 흔들며 그를 재촉했다. 온객행이 찻잔을 내려놓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
“영력을 담을 그릇이 없으면 사람 몸속에 남은 영력이 사람의 영혼을 태울 수도 있다는데?.”
고상이 고개를 돌려 평상에 누워있는 주자서를 보았다.
“영혼이 탄다고? 안 되는데….”
온객행이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사람의 영혼이 타면 먼저 육신이 쇠하고 그다음에 정신이 흩어진다는데… 흠.”
고상이 주자서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육신이 쇠하고… 정신이 흩어져?”
주자서는 온객행과 고상을 보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고상이 침상에 걸터앉아 말했다.
“벌써 화사(花蛇)가 된 건가…? 너무 빠른데?”
고상이 주자서의 얼굴을 양손으로 쥐고 들어 그의 눈을 보았다. 보통 사람에서 요괴가 되면 가장 먼저 그 눈동자가 동물의 것으로 바뀐다. 고상은 주자서의 얼굴을 요리조리 돌려보았지만 주자서의 눈동자는 사람의 눈동자였다. 고상이 주자서의 얼굴을 놓아주고 말했다.
“내 피를 마셨으니 화사가 돼야 하는데….”
고상의 말에 주자서가 표정을 구기며 되물었다.
“피를 마시다니….”
온객행이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아무래도 그 치는 원래 사람이 아니었던 걸지도 모르겠어.”
주자서가 얼굴을 구기고 말했다.
“사람이오. 평생 사람이었소.”
고상이 주자서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온객행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주요에게 물어봐야 하겠어. 우리 중에 제일 오래 살았잖아.”
온객행이 낮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다 잡아먹겠다고 하면?”
주자서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고상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내가 다 수를 써 놓았지.”
그리고 주자서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호이(好餌).”
온객행이 미간을 찌푸리자 고상이 웃으며 말했다.
“여인을 낚을 좋은 미끼!”
온객행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미끼?”
고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주요에게 여인을 데려다 줄… 주요가 뭐라고 했는데 무엇이더라… 아! 그래. 기둥서방!”
고상의 말에 온객행이 고개를 꺾어 ‘하하하’하고 웃었다. 주자서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번쩍 들어 고상을 보았다. 하지만 역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고상의 손길을 부담스러워하는 주자서를 위해 온객행은 자신이 입던 옷을 몇 개 추려 주자서에게 입혔다. 잘 먹지 못해 많이 말라 있었지만 자리에서 일어나자 꽤 신장이 컸다. 흰색 내의와 중의를 입히고 그 위에 짙은 푸른색 장포를 입혔다. 옷을 다 입히자 금방 고상이 들어와 주자서의 머리를 빗겼다. 고상이 불평을 하며 말했다.
“나는 머리를 잘 매만지지 못해. 이런 건 주요가 정말 잘하는데….”
온객행이 함에서 비단 끈을 가져와 주자서의 머리를 대충 반으로 묶으며 말했다.
“백택까지는 어찌 가시겠소? 그대의 유서는 아직 물에 들어가면 안될 것 같은데….”
주자서는 두 사람이 하는 대로 두었다. 아무래도 주자서는 죽은 것이 맞는 것 같았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하나도 이해할 수 없다. 오히려 죽었다고 생각하니 이 곳이 지옥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부터 들었기 때문이다.
고상이 불평하며 말했다.
“부유각을 백택이 있는 선창에 대면 되잖아! 칠석이 지나면 징계도 끝나는데 슬슬 뭍으로 나오는 것이 어떠하오?”
고상의 말에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상은 주자서를 탁상으로 데려가 앉히고 차를 따라주며 말했다.
“너는 내 아이니까, 내 말을 잘 들으면 된다.”
고상은 주자서의 얼굴을 요리조리 뜯어보며 말했다.
“일단 생김새는 나쁘지 않은 것 같으니 좀 먹여서 살을 찌워야겠다.”
그렇게 말하고는 주자서의 뺨을 툭툭 쳤다.
“사람의 여인들은 이런 얼굴을 좋아하나?”
고상이 주자서의 얼굴을 빤히 보자 주자서는 부끄러워져서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고상이 ‘까르륵’ 웃으며 말했다.
“내 눈에는 귀여운데? 이제 막 트기 시작한 버들개지 같아. 히히히.”
온객행은 고상이 주자서에게 하는 행동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행동하면 유서가 아상 너를 좋아하게 될지도 몰라.”
고상이 온객행을 힐끔 보고 말했다.
“유서는 나의 아이이니 나를 제일 많이 좋아해야지.”
주자서가 고상을 힐끔 보고 입꼬리를 끌어당겨 웃었다.
주자서가 웃는 것을 본 고상이 주자서의 얼굴을 양손에 가두고 말했다.
“방금 그거 뭐야? 웃으니까 더 귀여워. 유서 어서 더 웃어봐.”
주자서가 얼굴을 찌푸리며 고상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하자 고상은 영력을 조금 사용하여 주자서의 얼굴을 바로 했다.
“유서! 어미의 말을 들어야지.”
주자서가 작게 숨을 들이켜고는 힘겹게 웃는 얼굴을 만들었다. 고상은 인상을 쓰고 말했다.
“이게 아니야! 방금처럼 웃어보란 말이야!”
고상이 윽박지르자 옆에 있던 온객행이 다가와 고상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아상, 그는 사람이야. 다른 미물과는 달라.”
고상은 순순히 주자서를 놓아주고 입을 내밀고 씰룩이며 말했다.
“대체 뭐야! 정말 짜증나.”
고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곧 내실을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풍덩’하고 물에 빠지는 소리가 났다. 온객행은 내실 밖으로 나가 저 멀리 사라지는 고상의 모습을 보았다. 고상의 실증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으나, 그녀가 데려온 미물 중에 사람은 매우 새로운 것이었다. 온객행은 멀뚱히 앉아 있는 주자서를 보며, 저 사람도 고상이 버린 작은 미물들처럼 본인이 거둬 드려야 하는 것인지 고심했다. 주자서는 아는지 모르는지 조용히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그 모습이 조금 눈에 익어 온객행은 당황스러웠다. 분명 처음 보는 사람인데 어째서 주자서에게서 그가 그리워하는 사람의 모습을 찾게 되는 것일까? 그의 이름과 닮은 유서라는 이름 때문일까?
온객행은 주자서에게 찻잔을 권하고 자리에 앉았다. 두 사람은 앉아서 방금 고상이 사라진 휘장 너머의 태평호를 보았다. 온객행의 고향인 서호(西湖)에서 그와 함께 이렇게 앉아서 차를 마셨던 기억이 났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연꽃잎차를 만드는 백련잎을 곧 따겠구나. 그는 백련(白蓮)처럼 새하얀 옷을 입는 것을 좋아하였는데.’ 온객행과 주자서가 동시에 찻잔을 들어 차를 마셨다. 둘은 오래전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조용히 앉아서 차를 마시며 태평호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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