蛇苺 第30

圍魏救趙 | 30. 위나라를 위협해 조나라를 구한다.

적송자는 대전의 중앙에 무릎 꿇고 있는 현무와 그의 가신을 보고 있다가 혀를 차며 말했다.
“즉저와 지주는 천궁으로 가서 눈을 바치고 오게.”
즉저와 지주가 자리에서 일어나 한숨을 쉬고 소매를 들어 인사하고 요대로 향했다. 택귀와 화귀가 다가와 현무를 부축했다. 적송자가 현무를 보고 말했다.
“나는 너의 스승의 스승이니 네가 싫어도 어쩔 수 없다.”
현무는 울상이 되어 적송자에게 말했다.
“우사! 정말 억울해요. 저는 단지….”
적송자가 손을 들어 현무의 말을 끊고 말했다.
“방법이 틀렸어. 그건 내가 아주 잘 알지.”
문귀가 다가와 무릎 꿇고 말했다.
“현무. 제가 동해까지 따르겠습니다.”
현무가 문귀의 소매를 잡아 일으키며 말했다.
“아니다. 나에게 내려진 처벌이니 너의 일이 아니다.”
택귀와 화귀도 무릎 꿇고 말했다.
“주인을 잘못 모신 것은 저희의 죄이니 거절하지 말아주십시오.”
현무가 혀를 차며 말했다.
“너희는 남아서 견연을 도와라.”
그리고 몸을 돌려 온객행을 보았다.

온객행은 자리에서 일어나 아직 엎드려 있는 주자서를 일으키고 옷을 털었다. 주자서가 온객행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현무가 되시는 겁니까?”
온객행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태평호로 돌아가야지 현무는 무슨.”
적송자가 온객행에게 다가와 말했다.
“원래 현무는 거북이랑 뱀 한 쌍이니 딱 좋군.”
온객행이 소매를 들어 인사하며 말했다.
“우사께서 농담이 지나치십니다. 이제 막 등선한 제가 어찌….”
적송자가 현무 쪽으로 고갯짓하며 말했다.
“저 치가 돌아올 때까지 잘 부탁하네.”
온객행이 고개를 들어 적송자를 보고 얼굴을 구기며 말했다.
“북쪽은 추워서 싫은데….”
현무가 다가와 온객행에게 소매를 들어 인사하며 말했다.
“내가 없는 동안 주극성을 부탁하네.”
그리고 품에서 아주 짙은 붉은색의 옥수(玉髓) 인장을 꺼내 온객행에게 내밀었다. 온객행은 인장을 받지 않고 소매를 들어 인사하며 말했다.
“현명대선. 제발 가지 마세요.”

현무가 온객행의 손을 잡아 인장을 건네고 말했다.
“내가 없는 동안 나의 아이들을 부탁하네.”
그리고 현무가 고개를 들어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산천대제께서 그대가 싫어서 그리 하신 것이 아니네. 무례를 저질렀군. 내가 사과하지.”
그리고 소매를 들어 인사했다. 주자서도 얼른 소매를 들어 공수하고 말했다.
“아닙니다. 예를 거두세요.”
현무가 몸을 바로 세우고 말했다.
“그대는 사람이니 견연을 도와주게. 천주서원은 나라의 대사를 결정하는 곳이기도 하니 사람과 부딪힐 일이 많네.”
주자서가 소매를 들어 공수하고 인사했다. 온객행이 현무에게 물었다.
“북쪽으로 안 갑니까?”
현무가 웃으며 말했다.
“그쪽은 걱정 말게. 자네 사형이 흑룡이 되었으니 어떻게 되겠지.”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형께서 버티실지 모르겠습니다.”
적송자가 말했다.
“장강의 물안개야 그 치가 없어도 피어오를 테니 걱정할 것 없네.”
현무가 적송자와 온객행에게 인사하고 대전을 나갔다. 택귀와 화귀가 현무의 뒤를 따랐다.

문귀가 온객행에게 다가와 소매를 들어 인사하며 말했다.
“일이 이렇게 됐으니 잘 부탁드립니다.”
온객행이 얼른 문귀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무궁형(無弓兄) 이게 무슨 일입니까?”
문귀가 웃으며 말했다.
“그 이름 참 오랜만에 듣네. 이제 자네가 싫어하는 흑망이라고 못 부르겠군.”
온객행이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견연이란 이름도 그렇게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적송자가 웃으며 말했다.
“넓게 보라. 아주 잘 어울리는데 무슨 소리인가?”
나흘마가 다가와 고개를 조아리고 온객행에게 말했다.
“수선. 소신은 석척(蜥蜴)이라 합니다. 주극성의 살림을 맡아 보고 있습니다. 천도연이 멀지 않아 검정(檢定)하고 과단(果斷)하셔야 할 일이 많습니다.”
온객행이 적송자에게 소매를 들어 말했다.
“모자란 파사가 우사께 가르침을 청합니다.”
문귀가 온객행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어허. 못해도 흑룡이라 하게. 어디 감히 현무 대리가 파사라는 말인가?”
온객행이 고개를 들어 문귀를 보고 말했다.
“등선하지 말걸 그랬소.”
적송자가 손사래 치고 말했다.
“그래. 그렇구나. 등선도 못한 요괴가 어찌 하늘의 일을 한다는 말이냐?”
적송자의 말에 온객행과 문귀가 웃음을 터뜨렸다.

현녀께 받은 벽을 보고 있던 주자서는 벽을 품속에 넣고 한숨을 쉬었다. 머릿속이 뿌옇고 열이 나는 것 같아 손을 들어 이마를 짚었다. 손에 닿는 살갗이 뜨거워서 주자서는 열을 좀 식혀보고자 손바닥으로 얼굴을 부쳤다. 주자서는 적송자의 시선을 느끼고 바로 손을 내리고 고개를 조아렸다. 그리고 슬쩍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온객행은 주자서가 잘 모르는 이들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누구라고 말했던 것 같은데 머릿속에 남은 것이 없었다. 주자서는 작게 한숨을 쉬고 흩어지려는 정신을 다잡았다. 한참 고개를 숙이고 버티고 있는데 누군가가 그의 팔을 잡았다. 주자서가 눈을 뜨고 고개를 들자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유서. 꼭 주극성에서 지내지 않아도 된데. 어서 태평호로 돌아가자.”
주자서는 태평호라는 말이 반가워서 부스스 웃었다. 그리고 시야가 점멸하더니 새카맣게 꺼졌다. 온객행은 자기 품에 기대오는 주자서가 사랑스러워서 마주 안았다. ‘태평호로 돌아가서 여태까지 있던 일을 잘 설명해주고 그의 가족을 데려와 함께 살아야지.’ 그런 생각을 했다. 온객행은 주변의 눈치를 보며 주자서를 추슬러 안았다. 축 늘어진 그가 온전히 기대오는 것이 기꺼워서 온객행은 그렇게 주자서를 안고 있었다.

온객행과 주자서를 보고 있던 적송자가 말했다.
“수선, 자네 내자 아픈 것 같은데?”
온객행이 주자서를 놓아주자 주자서의 고개가 뒤로 넘어갔다. 온객행이 놀라 다시 끌어안자 주자서의 다리가 풀썩 꺾였다. 온객행이 놀라서 말했다.
“유서! 유서 왜 이러는가?”
석척이 다가와 물었다.
“사라각(謝羅閣)에 거처를 마련할까요?”
문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습니다. 석척. 사라각을 정리하여 견연의 거처로 합시다.”
석척이 고개를 조아리더니 주변에 있던 나흘마에게 명령을 내렸다. 검은색 옷을 입은 나흘마가 종종걸음으로 대전을 바쁘게 나갔다. 온객행은 주자서를 품에 안고 뺨을 쓸며 말했다.
“유서… 왜 이러는가? 나는 말해주지 않으면 모르는 바보란 말이야.”
온객행이 애틋하게 구는 것을 보고 있던 적송자가 고개를 문귀를 보고 말했다.
“이 치를 구슬리려면 버들개지를 휘저으면 되겠군.”
문귀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자 온객행이 고개를 들어 둘을 노려보고 말했다.
“휘저어 보시오! 당장 종화산으로 가겠소.”

적송자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갑자기 촉룡은 왜 언급하는가?”
문귀가 온객행에게 다가가 주자서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농이네 농. 어찌 사람을 괴롭히겠는가? 어서 사라각으로 그대의 처(妻)를 옮기게. 그 곳은 대전과도 서원으로 나가는 북극문(北極門)과도 가까우니 잠시 지내는 거처로 사용하게.”
온객행이 문귀의 손을 뿌리치고 말했다.
“만지지 마시오!”
문귀가 조금 날카로운 온객행의 영력에 당황하며 말했다.
“온공자. 진정해. 의원을 불러주지.”
적송자가 온객행과 문귀를 보더니 혀를 차고 석척을 앞세워 대전을 나갔다. 문귀가 석척을 따라 나가는 적송자를 보고 말했다.
“우사께서 도우시면 그리 어려울 일도 없을 거야. 어서 가서 처를 간병해야 하지 않겠나?”
온객행이 주자서를 팔로 안아서 들어 올렸다. 문귀가 대전 밖으로 향하며 말했다.
“멀지 않아. 가는 길에 서귀(筮龜)를 부르세. 그는 사람의 의학을 알고 있어.”
온객행은 문귀를 따라 대전을 나갔다.


사라각은 주극성 동쪽에 위치한 전각 중의 하나로 주극성의 동문은 무당산의 천주서원과 연결되어 있었다. 동문인데도 왜인지 이름은 북극문이다. 문귀는 보초를 서고 있던 별주부(鼈主簿)에게 사라각으로 안내를 부탁한 뒤 남쪽 별각에 있는 서귀에게 향했다. 사라각에 도착하자 나흘마 여럿이 분주히 움직이며 내부를 정리하고 있었다. 나흘마가 다가와 별주부에게 물었다.
“내실 정리는 모두 마쳤으니 내실로 가시겠습니까?”
별주부가 온객행에게 포권하자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흘마는 몸을 돌려 장지문을 열고 내실로 향했고, 별주부는 외실 밖으로 나가 사라각 문 앞에 섰다. 내실에 도착한 온객행은 주자서를 침상 위에 올려 놓고 침상 주변에 있는 대야에 물을 채워 영견을 적셨다. 얼른 적신 영견으로 주자서의 얼굴이며 목덜미를 닦아주었다. 평소보다 주자서의 체온이 조금 더 뜨거웠는지도 모르겠다. 얼굴이 붉기에 부끄러운 줄 알았다. 온객행은 자기가 사람이 아니라 억울했다. 사람이었다면 미리 알 수 있었을까? 외부가 시끄럽더니 문귀가 서귀를 데리고 나타났다.

서귀가 침상에 누워있는 주자서의 맥을 짚었다. 손목에서도 느껴지는 열기에 서귀가 주자서의 앞섶을 잡아 벌리자 온객행이 놀라서 서귀의 손을 잡고 말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서귀가 온객행의 손을 뿌리치고 말했다.
“열이 너무 많이 나지 않는가?”
그리고 다시 주자서의 손목을 잡고 맥을 짚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이 치는 사람인가?”
온객행이 주자서의 앞섶을 다시 잘 여미고 그의 뺨에 물을 적신 영견을 대고 서귀를 쏘아보며 말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어제 반도를 먹였거든요.”
서귀가 다시 주자서의 얼굴을 보고 감긴 눈을 열어 보더니 물었다.
“근데 왜 요괴의 기운이 있는가?”
온객행이 방금 서귀가 만졌던 주자서의 눈을 조심스럽게 닦으며 말했다.
“화사가 피를 먹였어요. 살리려고.”
문귀가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승천했다던 그 화사의 피를 먹었나?”
서귀가 덧붙여 물었다.
“취한 것이 아니라 화사가 자발적으로 준 것인가?”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귀가 주자서의 손목을 놓고 자세를 바로 하고 앉으며 말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나도 잘 모르겠군.”
문귀가 온객행에게 물었다.
“그 화사가 황룡이 되었다던데 사실인가?”
온객행은 주자서에게 시선을 떼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얼굴과 손을 한참 닦다가 고개를 돌려 문귀를 보고 말했다.
“무극형! 요대의 지백을 불러주세요. 그는 유서를 진맥한 적이 있습니다. 그라면 알지도 몰라요.”
문귀가 고개를 끄덕이고 허둥거리며 내실을 나갔다.

서귀가 주자서를 유심히 보더니 말했다.
“어쩌면 요괴가 되려고 신열(神熱)이 오른 것인지도 모르겠어.”
온객행이 서귀를 보고 물었다.
“신열?”
서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황룡이 된 화사의 피를 마신 것이라면 그 화사도 보통 화사는 아닐 테니 사람이 요괴가 되는 것은 당연한데….”
온객행이 다시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아상의 피를 마신 것은 벌써 보름도 더 전의 일인데 왜 이제야….”
서귀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정확한 원인과 이유를 모르니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많지 않군. 그래도 열이 나는 것은 사람에게나 요괴에게나 좋지 않으니 옷을 벗겨 열을 식혀주게.”
서귀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온객행이 서귀를 따라 일어나며 말했다.
“어르신. 제발 우리 유서를 살려주세요.”
서귀가 뒤돌아 주자서를 보더니 온객행에게 물었다.
“이 치가 발의 후손인가?”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였다. 문귀가 다시 내실로 들어와 말했다.
“요대로 사람을 보냈으니 지백이 곧 올 거야.”
서귀가 문귀에게 가서 귓가에 뭔가를 작게 속삭였다. 온객행은 둘을 보고 있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주자서를 보았다. 침상에 걸터앉아 연신 주자서의 얼굴을 영견으로 닦으며 그를 불렀다.
“유서. 유서….”

문귀와 서귀가 내실을 나가며 말했다.
“견연. 열을 내리는 탕약을 올리라 할 테니 일단 열을 식혀주게.”
온객행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에게 다가가 말했다.
“제가 어서 가서 지백을 데려올까요?”
문귀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내가 금귀자(金龜子)를 구름 마차로 보냈으니 날이 지기 전에 올 거야. 너무 걱정 말게.”
서귀가 온객행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장서각에 가서 확인할 것이 있네. 가서 확인해보고 다시 오지.”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고 소매를 들어 인사했다. 서귀와 문귀도 온객행에게 인사하고 내실을 나갔다. 온객행은 다시 내실로 들어와 열에 들떠 숨을 몰아쉬는 주자서를 보았다. 온객행은 내실을 둘러보고 닫힌 장지문과 창호를 모두 열고 옷걸이 근처에 있는 병풍을 가져와 침상 앞에 두었다. 그리고 누워있는 주자서의 요대를 풀고 장포를 벗겼다. 주자서는 온객행의 서늘한 체온이 좋았는지 온객행의 품에 고개를 기댔다.

온객행은 이불을 걷고 주자서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고 말했다.
“유서… 내가 잘 할게. 날 떠나지 마.”
주자서는 온객행의 손에 얼굴을 비비다 이내 축 늘어졌다. 온객행은 하인이 탕약을 들고 들어올 때까지 주자서를 안고 있다가 하인의 기척에 주자서를 놓아주고 탕약을 받았다. 하인이 침상이 있는 쪽을 힐끔 보더니 물었다.
“수빙(水氷)을 준비할까요?”
온객행이 고민하다 고개를 젓고 물었다.
“지백은 아직 인가?”
하인이 고개를 흔들더니 금방 인사하고 내실을 나갔다. 온객행은 탕약이 담긴 소반을 들고 침상으로 갔다. 온객행은 협탁에 소반을 놓았다. 주자서의 어깨에 팔을 둘러 그를 일으키고 협탁에 있는 탕약 그릇을 들어 그의 입가에 가져갔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몸을 작게 흔들며 말했다.
“유서. 잠깐만 일어나 봐. 유서.”

주자서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지만 눈을 뜨지는 못했다. 온객행은 숟가락을 들어 후후 불어 주자서의 입가로 가져갔다. 주자서는 좀처럼 탕약을 삼키지 못했다. 입가에 흐른 탕약을 적신 영견으로 닦아낸 온객행은 애가 닳아 안절부절못하다가 탕약을 입에 머금고 주자서와 입을 맞췄다. 온객행은 기다란 혀로 탕약이 기도로 넘어가지 않게 약을 먹였다. 몇 번 입을 맞추자 탕약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주자서도 목이 말랐는지 탕약을 머금은 온객행의 혀를 찾아 빨았다. 온객행은 화들짝 놀라 입을 떼고 주자서를 보았다. 주자서는 입을 벌리고 있다가 입맛을 다시더니 입술을 혀로 축였다. 온객행은 정염이 일어 주자서에게 얼굴을 붙였다가 주자서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그를 끌어당겨 안았다. 표식을 하는 것처럼 그의 목덜미를 핥고 빨다가 주자서를 놓아주고 남은 탕약을 입에 넣어주고 눕혔다. 온객행은 주자서 옆에 앉아서 가끔 영견에 물을 적셔 주자서의 입술을 축여 주었다. 주자서는 축 늘어져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뭔가를 웅얼거리다가 숨을 헐떡였다. 온객행은 그런 주자서를 일으켜 앉아 등을 쓸어 주었다.


서귀가 중천이 넘어 사라각으로 들어왔다. 온객행은 서귀가 다가와 주자서를 진맥하는 것을 보았다. 서귀가 주자서의 뺨에 손을 대보더니 말했다.
“좀처럼 열이 떨어지지 않는군.”
온객행이 서귀의 소매를 잡고 물었다.
“장서각에서 확인하신다는 것은 확인하셨습니까? 서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람이 요괴가 되는 것들을 좀 찾아봤는데 말이야….”
온객행이 주자서의 입술을 축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사람은 신선이 되고자 하지 요괴가 되고자 하지 않아서 말이야. 죄를 지어 요괴가 된 사람이 대부분이네. 이 치는 그것에 해당되지 않지 않은가? 요괴가 은혜를 갚고자 요괴의 피를 바쳐 장수한 사람들의 내용도 있긴 했지만 흔하지 않은 일이네. 화사의 피를 얼마나 먹였나?”
온객행이 서귀를 보고 말했다.
“아상의 말로는 한 말 정도 먹였다고 한 것 같습니다. 사나흘… 거의 닷새 정도 일어나지 못했으니까요.”

서귀가 ‘흠’ 하더니 말했다.
“죽을 사람이었는데 살린 것일 수도 있겠군. 삼청(三淸)께서 별말 없는 것을 보면 하늘이 이 치에게 뭔가 잘못한 모양인데?”
온객행이 주자서의 손을 잡아 영견으로 닦으며 말했다.
“정전에서 만난 현녀께서도 스승님께서도 원군께서도 하늘이 유서에게 죄를 지었다고 하셨습니다.”
서귀가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그런 것이라면 너무 걱정 말게. 죽이기야 하시겠는가? 설사 죽는다 하더라도 삼원으로 가겠지.”
온객행이 울상을 하고 말했다.
“안 돼요. 아직… 아직 유서랑 아무것도 못 했는데 삼원에 가고 싶지 않아요.”
서귀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 치랑 뭘 하려고 그러나?”
온객행이 주자서의 얼굴을 보고 살포시 웃으며 말했다.
“구름이 많아 비가 오는 것도 밝게 뜬 가을밤의 달도 눈이 오는 산자락의 외로운 소나무도 봄비가 태평호를 채우는 것도 함께 보지 못했습니다.” (5)

서귀가 고개를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애정시를 내가 들어서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서귀가 탁자로 나와 지필묵으로 나뭇조각에 처방전을 쓰며 말했다.
“만약 신열이라면 열이 올랐다 내렸다 며칠 앓을 테니 따로 간병할 사람을 두는 것이 좋겠네.”
온객행이 병풍 옆에 서서 서귀를 보고 말했다.
“우리 유서가 낫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할 겁니다. 아무도 믿을 수 없어요.”
서귀가 ‘허허허’ 웃으며 말했다.
“석척에게 시급한 것부터 주극성과 천주서원의 일에 대해 보고하라 이르겠네.”
온객행이 표정을 구기고 탁상에 가서 앉았다.
“무슨 뜻입니까?”
서귀가 자리에서 일어나 처방을 적은 나무 조각을 내실 밖에 있는 나흘마에게 건네고 내실을 나가며 말했다.
“현명대선께서는 하루도 쉬지 않으셨네. 이참에 좀 푹 쉬다 오셨으면 좋겠어. 잘 부탁하네. 현무 대리.”
그리고 옆에 서 있는 나흘마에게 말했다.
“북해수(北海水)를 준비해 수선의 내자를 씻기게.”
나흘마가 고개를 조아리고 서둘러 내원으로 향했다. 온객행은 활짝 열어놓은 문간에 서서 서귀를 보고 말했다.
“우리 유서는….”
서귀가 어깨너머로 온객행을 보고 헛웃음 치고 말했다.
“열이 떨어지면 금방 깨어날걸세. 지백이 온다지? 그에게 묻게.”
온객행이 소매를 들어 서귀에게 인사했다.


해가 저물 즈음 구름 마차를 타고 무당산에 도착한 지백은 금귀자의 안내에 따라 북극문을 지나 주극성에 들어가 동쪽 별궁으로 향했다. 주극성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부가 어수선했다. 별궁은 별주부 몇이 호위를 서고 있었는데 금귀자와 지백이 나타나자 그들을 내실로 안내하며 말했다.
“수선께서 오래 기다리셔서 조금 날카로우니 조심하십시오.”
내원에 있던 나흘마가 지백을 발견하고 그들을 내실로 안내했다. 내실에 도착해 나흘마가 지백의 도착을 고하자 안쪽에서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내의만 입은 온객행이 나와 지백의 손을 잡았다.
“지백! 기다렸네.”
온객행은 지백의 손에 들린 의함을 대신 들고 그를 침상 쪽으로 이끌며 말했다.
“열은 조금 떨어졌는데 벌써 몇 시진째 정신을 차리지 못합니다.”
지백이 침상에 누워있는 주자서를 보았다. 온객행이 조금 흐트러진 주자서의 앞섶을 잘 여며 정리하고 말했다.
“서귀께서 진맥하셨는데 신열이 오른 것일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지백이 ‘아!’ 하고 자리에 앉아 주자서의 얼굴을 보고 맥을 짚었다.

지백은 한참 주자서의 손목을 붙들고 있다가 말했다.
“수선. 이미 사람의 맥이 아닙니다.”
온객행이 이상한 얼굴을 하고 물었다.
“지백… 유서가 혹시 요괴가 되는 것을 오래 사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면 어떡하지요?”
지백이 주자서의 손을 놓고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요괴가 되었다고 모두 오래 사는 것은 아닙니다.”
온객행이 지백의 손을 잡고 말했다.
“내가 반도를 먹였어요.”
지백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자서를 보았다. 한참 말이 없던 지백이 말했다.
“이제 막 요괴가 되었는데 반도까지 먹었으니 정말 신열이 오른 것일 수도 있고, 그동안 피로와 긴장이 쌓여서 탈이 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 저의 부족한 지식으로 알 수 없으나, 후자의 경우 푹 쉬면 좋아질 것입니다.”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내가 등선하는 동안 고생을 한 것 같소. 주요와 고상에게 부탁해 놓았는데 정말….”
지백이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황룡과 수원대선께서는 청룡과 백룡을 따라 삼하궁으로 가셨습니다.”
온객행이 입을 삐죽이고 말했다.
“자기 아이라 하더니 이렇게 버려 두고 말이야.”
지백이 온객행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황룡께서도 얼떨떨하셔서 겨를이 없으실 테니 수선께서 용서하세요.”
온객행이 지백을 보고 말했다.
“수선 주제에 어찌 천선께 무례를 범하겠습니까?”
지백이 의함에서 이런 저런 약초를 꺼내 온객행에게 건네고 말했다.
“열을 떨어뜨리는 해열 작용의 처방과 기를 돋우는 처방을 해드릴 테니….”
온객행이 지백의 곁에 붙어 서서 말했다.
“지백. 내가 한동안 주극성에 머무르게 될지도 모르는데 혹시 괜찮으면 여기에 와 있어 줄 수 있는가?”

지백은 놀라서 고개를 들어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수선?”
온객행이 지백이 꺼내 놓은 약재를 둘러보고 말했다.
“내가 원군께 청할 테니 그대만 괜찮으면 여기 와서 나를 도와주게.”
지백이 온객행에게 손을 모아 공수하며 말했다.
“수선. 제 처지가 좋지 못해 누가 될까 염려됩니다.”
온객행이 지백의 팔을 잡고 말했다.
“내 처지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알지 않습니까?”
지백이 고개를 들어 온객행을 힐끔 보고 말했다.
“이제는 좀 다르지 않습니까? 수선이 되셨다던데….”
온객행이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천존께서 사람과 혼인했다고 벌을 내리셔서….”
지백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부족한 약재에 대한 처방전을 천에 썼다. 온객행이 장지문 밖에 있는 하인에게 약재를 다릴 도구를 부탁하고 지백에게 다가가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현무 대리라니 차라리 다시 태평호에 봉인되는 편이 낫겠어.”
온객행의 말에 지백은 글자의 삐침을 잘못 썼다. 눈을 커다랗게 뜨고 저를 보는 지백을 보고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임시직이오. 임시직.”
지백이 붓을 놓고 온객행에게 소매를 들어 공수하고 말했다.
“수선. 저를 곤란하게 하십니까?”
온객행이 지백의 팔을 잡고 말했다.
“좀 같이 곤란합시다. 저라고 곤란하지 않겠어요?”
그리고는 서안에 가득 쌓인 죽간을 가리켰다.


주자서는 온객행이 먹여주는 탕약을 먹고 사라각에 있는 하인들과 지백의 정성스러운 보살핌으로 이틀 뒤에 정신을 차렸다. 아주 잠깐씩 정신이 돌아왔다 다시 죽은 사람처럼 축 늘어져서 잠을 잤기 때문에 온객행만 애가 타서 하인들과 지백을 들들 볶았다. 깨어난 주자서의 눈은 옥산의 화사처럼 붉은 색으로 변해 있었다. 온객행은 주자서가 겁을 먹을까 일부러 내색하지 않았다. 지백도 온객행의 눈치를 보고 별말 하지 않았다. 온객행의 몸 위에 몸을 반쯤 걸쳐 놓은 채로 서늘한 가슴을 베고 자던 주자서는 목이 말라서 잠에서 깼다. 어스름한 빛이 들어오는 것으로 봐서는 이제 막 날이 밝기 시작한 모양이다.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도 참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던 주자서는 고개를 들어 온객행을 보았다. 온객행은 주자서가 몸을 바르작대는 대도 그를 품으로 당겨 안을뿐 눈을 뜨지 않았다.

주자서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흑랑.”
온객행은 주자서를 가깝게 끌어안고 그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대답했다.
“유서.”
주자서가 몸에 힘을 주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온객행이 눈꺼풀을 반만 들어 눈을 뜨고 말했다.
“유서. 왜? 아파?”
주자서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물… 목이 말라요.”
온객행은 잠결에 침상 옆에 있는 협탁에 놓아둔 찻잔의 물을 마시고 주자서의 입을 맞췄다. 당황한 주자서는 온객행이 해주는 대로 입안에 들어온 물을 마셨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입술을 축이듯 혀를 내밀어 빨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 찻잔을 들어 찻물을 마시려고 했다. 주자서가 얼른 손을 들어 온객행의 찻잔을 빼앗아 들고 마시며 말했다.
“제가 할 수 있습니다.”
주자서가 물을 다 마시자 온객행이 입술을 붙여왔다. 주자서가 고개를 돌리자 온객행이 낮게 웃으며 말했다.
“유서. 나도 목말라.”
주자서는 열에 들떠 잠결에 수도 없이 온객행과 입을 맞췄던 것이 어렴풋이 생각나 부끄러워졌다. 주자서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자 온객행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자서의 양 뺨을 잡고 말했다.
“유서. 또 열이 오르는가?”
주자서는 뺨에 닿은 온객행의 손이 예전만큼 서늘하지 않아서 손을 들어 그의 손을 잡고 눈썹을 찌푸렸다. 온객행이 찌푸려진 주자서의 미간에 입을 맞추고 말했다.
“유서. 왜 그러는가?”
주자서는 고개를 흔들고 온객행의 손을 뿌리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침상을 내려왔다.


(5) 도연명(陶淵明) 四時 사시사철
春水滿四澤 夏雲多奇峰
봄에는 물이 가득해 사방에 연못이 여름에는 구름이 많아 기이한 봉우리
秋月揚明輝 冬嶺秀孤松
가을 달은 밝은 빛을 휘날리고 겨울 산자락에는 외로운 소나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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