隔岸觀火 | 29. 강 건너 불 구경.
지주를 데리러 온 문귀가 말했다.
“스승님께서 우사(雨師)를 태부로 모시라 하셨네.”
지주가 문귀를 보고 물었다.
“그럼 우리도 적송자를 태부로 모십니까?”
문귀가 머뭇거리며 말을 아끼자 지주가 한숨을 쉬고 말했다.
“스승님의 스승님이시니 원치 않아도 태부로 모시겠군요.”
문귀가 지주를 보고 물었다.
“현무께서 왜 그렇게 자리에 연연하시는지 모르겠어. 아무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일인 것 같은데….”
지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구망대선께서 너무 바쁘셔서 그렇지, 사방신에 오룡의 일까지… 어휴. 나는 하라고 해도 싫을 것 같은데.”
문귀가 혀를 차며 지주에게 말했다.
“현무께서 도움이 되고 싶으셔서 그렇지. 스승님께서 혼내고 가셨으니 기분이 안 좋으실 거야.”
지주가 문귀를 힐끔 보고 물었다.
“자네도 혼났나?”
문귀가 표정을 구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뿐이겠는가? 택귀(澤龜)와 화귀(火龜)까지 혼났지.”
지주가 낮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몸만 힘들고 말았으니 다행인 걸까?”
문귀가 지주를 보고 말했다.
“그러게 평소에 왜 그 즉저와 친하게 지냈나?”
지주가 혀를 차며 말했다.
“아이참! 사형! 천룡이요. 천룡. 같은 상전 모시는데 그렇게 미워해서 무슨 득이 있다고.”
문귀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 치는 너무 욕심이 많아.”
지주가 코웃음 치며 말했다.
“욕심이야 세월이 흐르면 별일 아닙니다. 저는 그 치가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 더 걱정이에요.”
문귀가 ‘하하하’ 웃으며 말했다.
“사람 좋아하는 이가 어디 있나?”
지주가 문귀의 소매를 잡고 주변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암튼 저는 현무께서 하시는 일을 전부 보고 했으니 그렇게 혼나지는 않을 겁니다.”
문귀가 말했다.
“그것은 또 모를 일이지만 너무 걱정 말게. 현무께서 벌 받는 것을 보고만 있으시겠는가?”
지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것도 걱정이지요. 무슨 벌을 누구에게 받으실지….”
대전(大殿)에 다다라 대전을 지키는 능리(鯪鯉)가 그들의 도착을 고했다. 문귀는 대전으로 들어가는 지주를 보고 말했다.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게. 모두 자네 탓이네.”
지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씁쓸하게 웃었다.
“제가 모자란 탓이지요. 제가 어리석은 탓이지요.”
지주는 대전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온객행은 영력으로 주자서의 머리를 말리고 하인이 가져다 놓았다는 머릿기름을 찾았다. 세목을 하고 노곤한 주자서는 졸음을 쫓아보고자 탁상에 앉아 차를 마셨다. 온객행은 방안 여기저기를 뒤지다 침상 옆에 협탁 위에 놓인 작은 도자기 병을 발견했다. 뚜껑을 열어 냄새를 맡아보니 수유(茱萸) 냄새가 났다.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다가가 병을 건네며 물었다.
“이것이 정발유(整髮油)입니까?”
주자서가 병을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냄새를 맡고 고개를 끄덕였다. 온객행은 그것을 손에 조금 덜어 주자서의 머리를 매만졌다. 온객행이 머리를 매만지기 시작하자 주자서는 정말 더 이상 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주자서가 연신 고개를 흔들어 잠을 떨치려 하자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고단하시오?”
주자서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저는 잠시 눈을 붙일 테니 지주대인께서 오시면 깨워주세요.”
그리고 탁상에 엎어졌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머리를 놓고 그를 일으키며 말했다.
“유서. 침상에 가서 주무세요. 지주가 온다고 해도 이 밤에 우리를 찾지 않을 테니 편히 주무세요.”
주자서는 별로 몸을 움직이고 싶지 않아서 웅얼거리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잠깐만 쉬면 됩니다.”
온객행은 다시 탁상에 엎어진 주자서를 보고 안절부절못했다. 그러다 주자서의 등에 늘어진 머리카락을 보고 다시 머릿기름을 손에 덜어 꼼꼼히 발랐다. 조금은 푸석하고 갈라진 머리카락이 안타까워서 온객행은 앞으로 씻길 때마다 머릿기름을 발라줘야 하겠다고 다짐했다. 반도원의 반도를 먹였으니 앞으로 수련을 시키면 점점 더 먹고 자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온객행은 주자서와 오래도록 같이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부풀었다.
주자서가 앉아 있는 의자 옆에 앉아서 주자서를 보고 있다가 아무래도 불편해 보이는 모습에 온객행은 주자서의 몸을 일으켜 품에 안았다. 주자서는 잠깐사이 깊게 잠이 들었는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온객행은 순간 조금 당황하여 주자서가 숨을 쉬는지 확인했다. 손가락을 간지럽히는 얕은 숨이 사랑스러워서 온객행은 주자서를 품에 안았다.
“유서. 정말 좋아해요. 나를 좋아해 주세요.”
온객행은 주자서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그를 들어 침상 위에 눕혔다. 신발을 벗기자 족건도 신지 않은 맨발이 나왔다. 온객행은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어찌….”
온객행은 고개를 돌리고 이불을 찾아 주자서의 몸을 덮어 가렸다. 감히 입은 옷을 벗길 수 없어서 그렇게 했다. 온객행은 주자서를 볼 때마다 일어나는 정욕을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정말 현리에게 물어볼걸 그랬어.’ 온객행은 침상 아래에 신발을 둔 곳에 앉아 잠이 든 주자서의 얼굴을 빤히 보았다. 고개를 괴고 보고 있다가 주자서의 뺨을 쓰다듬었다. 뒤척이지도 않고 자는 것이 정말 많이 고단했던 모양이다.
주서와는 이렇게까지 친밀하지 못했다. 주서는 온객행이 그저 뱀인 줄 알았다. 너무 오래 살아서 사람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는 그런 뱀인 줄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단양절에 장강에서 커다란 파사가 되었을 때 주서는 다른 사람들만큼이나 놀랐을 것이다. 주자서가 했던 말처럼 주서 역시 온객행이 집채만 한 뱀인 줄은 몰랐을 테니까. 비가 오는 날 사람의 기척을 읽지 못하고 밟힌 것은 온객행에게 조금은 치욕스러운 일이었다. 뱀인 그를 잘 보살펴준 주서를 만났으니 더는 치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해보니 비가 오는 날 물이 불어 위험한 서호에 주서는 왜 온 것일까?
뱀이라는 것을 주서에게 들킨 이후로 주서는 온객행이 저를 만지는 것을 꺼렸다. 체온이 높은 자신을 만지면 다칠까 상처받을까 항상 온객행을 대할 때 매우 조심했다. 온객행이 아픈 것이 끔찍이도 싫었던 주서는 대신 아프고 싶다고도 했었다. 함께 할 수 있다면 그 어떤 고통도 달가울 것이라고도 했었다. 온객행은 이제야 주서가 한 말의 뜻을 알 것 같았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얼굴을 보고 말했다.
“유서. 사랑해. 나를 사랑해 줘.”
온객행은 팔에 얼굴을 기대고 주자서를 보았다. 그러다 손을 들어 주자서의 눈썹을 코를 쓸어 보았다. 온객행의 손가락이 닿자 주자서는 얼굴을 살짝 찡그렸지만 금방 표정이 풀어졌다. 온객행의 손가락 끝에 조금은 뜨거운 그 체온이 기꺼워서 웃음이 나왔다. 조금 데인 것처럼 아린 것도 전부 좋았다.
주자서는 어떤 꿈을 꾸고 있다가 번쩍 눈을 떴다. 눈앞에는 온객행이 침상 위에 고개를 기대고 눈을 감고 있었다. 주자서는 너무 가까운 얼굴이 어색해서 몸을 뒤로 물렸다. 무슨 꿈을 꾸다 깼는데 무슨 꿈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게다가 밝혀 놓은 등잔의 불이 다했는지 객실 안이 어두웠다. 주자서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주자서는 잠깐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뜨고 눈앞에 있는 온객행의 얼굴을 보았다. ‘이 치는 나를 어떻게 하고 싶은 걸까? 한 갑자가 아니라 더 오래? 어떻게?’ 온객행의 자는 얼굴은 너무 애리애리하여 주자서는 괜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신선이 되었다고 하니 못해도 몇 백 갑자는 살았을 이의 얼굴이 참으로 어리다. 주자서는 자기도 모르게 작게 한숨을 쉬었다. 주자서의 한숨 소리에 온객행이 스르르 눈을 떴다. 서로를 한참 바라보고 있다가 온객행이 주자서를 향해 배시시 웃었다. 온객행의 얼굴이 너무 기뻐 보여서 주자서도 부스스 웃고 말았다.
주자서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몸을 뒤척였지만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물속에 빠진 것처럼 늘어지고 몸이 무거웠다. 주자서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온객행이 자리에서 일어나 침상에 걸터앉아 말했다.
“유서 왜 벌써 일어났어? 조금 더 자게.”
주자서가 ‘끙’ 소리를 내며 겨우 팔에 기대 몸을 일으키자 온객행이 주자서의 어깨에 팔을 둘러 그를 일으키며 물었다.
“유서. 왜 그래?”
주자서는 말을 듣지 않는 몸뚱이에 조금 화가 나서 입을 다물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주자서는 정말 오랜만에 몸이 아팠다. 마지막으로 몸이 아팠을 때가 언제인지 너무 까마득해 기억도 나지 않았다. 몸과 마음을 풀다 못해 늘어져서 풍한이라도 든 모양이다. 주자서는 낭패감에 또 한숨을 쉬고 말았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손을 잡고 물었다.
“유서. 왜 그러는가? 나는 바보라 말해주지 않으면 모르겠어.”
온객행의 말에 주자서가 작게 웃고 고개를 흔들었다. 온객행이 손을 들어 주자서의 뺨을 만졌다. 주자서는 뺨에 다가온 온객행의 서늘한 체온이 좋아서 그의 손에 고개를 기댔다. 온객행은 주자서가 눈을 감고 고개를 기대고 있는 것을 한참 보다가 주자서를 품에 끌어안았다.
“유서. 무서워서 그래? 겁이 났는가? 내가 곁에 있어 주겠네.”
주자서는 작게 웃더니 온객행의 품에 고개를 기대고 다시 잠이 들었다.
온객행은 날이 밝아 밖에서 하인이 기별을 할 때까지 침상 위에 주자서를 끌어안고 있었다. 하인이 장지문 밖에서 말했다.
“온공자. 주극성의 주인께서 부르십니다.”
온객행은 힘겹게 주자서를 놓아 침상 위에 잘 눕힌 뒤에 장지문 밖으로 나가 하인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주인이라 하면 현명대선께서 나를 찾으시는가?”
하인이 온객행에게 맞춰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발의 아이도 데려오라 하셨습니다.”
온객행이 표정을 구기고 말했다.
“그는 발의 아이가 아니라 나의 내자요.”
하인이 온객행을 빤히 보다가 당황한 듯 헛기침을 조금 하더니 말했다.
“아… 주인께서 온공자 내외를 뵙고자 하십니다.”
온객행은 하인이 자기와 주자서를 내외라고 부른 것이 기분 좋아 말했다.
“지금 당장 말이오?”
온객행이 하늘을 보고 말했다.
“이제 진시가 방금 지난 것 같은데 너무 이르지 않습니까?”
하인이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밤새 주극성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현녀께서 오셨습니다.”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의 내자는 아직 사람이라 자고 있으니 조금만 시간을 주게.”
하인이 고개를 들어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온객행은 하인의 재촉하는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이고 객실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온객행은 침상으로 가서 자는 주자서의 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유서. 유서 일어나보게.”
주자서는 표정을 일그러뜨리고 ‘끙’ 소리를 내더니 천천히 눈을 뜨고 온객행을 보았다.
“유서. 잠시 가보아야 할 곳이 있어.”
눈을 뜨고서도 주자서가 자리에서 일어날 기색이 보이지 않자 온객행이 주자서의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현무께서 우리를 부르시니 가 봐야겠어.”
주자서는 온객행이 일으키는 대로 일어나 앉아 멍하니 있다가 이불을 걷었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맨발을 보고 또 깜짝 놀라며 다시 이불을 덮어주고 말했다.
“유서! 잠깐… 잠깐 그대로 있게.”
그리고는 법석을 떨며 방안을 뒤져 족건을 찾아왔다. 온객행은 침상 위에 앉아 눈을 감고 있는 주자서를 보고 있다가 이불을 살며시 들어 주자서의 발에 족건을 신겼다. 다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정리해서 반으로 묶고 침상 아래 두었던 신발을 찾아 신겼다. 주자서는 그때까지도 눈을 뜨지 못하고 온객행이 하는 시중을 모두 받아주었다. 온객행은 휘두르는 대로 휘둘리는 주자서가 좋아서 신발을 다 신기고 일어나 주자서를 끌어안았다. 한참 끌어안고 있어도 밀어내는 기색이 없으니 온객행은 계속 그러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객실 밖에서 하인이 헛기침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온객행은 어깨너머로 장지문을 흘겨보다가 주자서의 어깨에 팔을 둘러 그를 일으켰다. 주자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서야 눈을 뜨고 몸에 힘을 줬다. 조금 빨갛게 달아오른 주자서의 뺨이 귀여워서 온객행이 그의 뺨을 쓸고 말했다.
“잠깐 다녀와서도 계속 고단하면 더 주무시게.”
주자서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온객행은 그대로 주자서를 데리고 나가려다 주자서가 입은 무명옷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를 평상 위에 앉히고 소매를 뒤져 옷을 찾았다. 현리에게 받은 옷 중에 주자서가 편연주에서 더울 때 입었던 아마포로 지은 옷을 꺼내 주자서에게 건네며 말했다.
“유서. 아무래도 그 옷은 격식에 맞지 않으니 이것으로 갈아입게.”
주자서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나 요대를 풀었다.
온객행이 놀라서 그의 손을 잡고 병풍으로 그를 데려가며 말했다.
“아이참! 유서!”
주자서는 온객행이 하는 대로 이리저리 끌려다니다 병풍 뒤에 가서 입었던 호복을 벗고 중의도 없이 내의 위에 연한 쪽빛 장포를 걸쳐 입었다. 주자서가 옷을 갈아입고 소매를 털며 나오자 온객행이 얼른 주자서에게 다가가 말린 연잎이 들은 백동으로 만든 함이 달린 요패를 요대에 걸어주며 옷매무새를 만져주었다.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유서. 겁먹을 것 없어. 그대의 일은 나의 일이니 내가 지켜주겠네.”
주자서는 고개를 들어 온객행을 보고 빙긋 웃었다. 온객행은 주자서를 보고 있다가 그의 얼굴을 잡고 입을 맞추려는 데 밖에서 하인이 다시 기별했다.
“온공자!”
온객행은 주자서와 이마를 맞대고 있다가 작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어서 다녀오자.”
그리고 주자서의 등허리에 손을 얹고 장지문으로 향했다.
별궁을 나와 송문을 거쳐 신당 정전에 다다르자 거북이 몇이 나와 온객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문귀가 말했다.
“흑망공자께서는 주극성 대전으로 가시지요.”
문귀 옆에 있던 나흘마가 주자서에게 다가왔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말했다.
“이건 무슨 뜻이오?”
문귀가 신당 안으로 들어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온객행을 보고 물었다.
“무슨 말씀이시오?”
나흘마가 문귀에게 포권하고 말했다.
“영귀 어르신께서 당부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문귀가 나흘마를 보고 말했다.
“스승님께서?”
나흘마가 고개를 조아리자 문귀가 발걸음을 다시 옮겨 온객행에게 다가와 말했다.
“흑망은 걱정 말게. 현무께서 발의 아이에게 물을 것이 있어 그러는 것이니.”
온객행이 문귀를 보고 말했다.
“아직 듣지 못하신 것 같으니 말씀드립니다. 저는 이제 흑망이 아니에요.”
문귀가 온객행을 보고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리자 온객행이 품에서 두루마리를 꺼내 문귀에게 건네고 말했다.
“태평호의 수선 견연이오.”
문귀가 두루마리를 펼쳐 읽어보더니 ‘흠’하고 다시 온객행에게 돌려주고 말했다.
“축하하네. 이름처럼 넓게 보시게.”
온객행이 표정을 구기자 문귀가 나흘마를 보고 말했다.
“장고(長股), 스승님께는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나흘마는 문귀에게 인사하고 송문 밖으로 나갔다. 문귀가 다시 신당 쪽으로 향하며 말했다.
“수선께서는 그럼 가시지요.”
온객행은 문귀의 뒤를 따라 신당에 걸려있는 편액 안으로 들어갔다.
주극성은 사방신의 성이기도 했기 때문에 그 규모가 컸다. 금모원군의 요대만큼은 아니지만 동해에 있는 동왕공의 궁전만큼 넓고 컸다. 하지만 현천상제의 조락 이후에 가신들이 많이 빠졌기 때문에 성안은 조금 어수선했다. 영귀의 제자였던 현명은 함께 수학한 이들을 등용했기 때문에 갈 곳이 없는 영귀의 제자들이 머물기도 했다. 현명은 수귀 답지 않은 호방한 성격으로 신선과 요괴는 물론 사람과도 인맥이 두터웠기 때문에 그가 현무의 자리를 청했을 때 그의 어린 나이나 조금 모자란 영력에도 불구하고 금모원군도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 산천대제 역시 호방한 현무와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는데 현무는 미색에는 취미가 없어서 둘 사이를 타락한 황룡 후토가 이어주고 있었다. 후토는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라에서 꽤 높은 관리직인 대부(大夫)가 되어 천주서원에서 역법(曆法)을 주관하고 계산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점을 치고 하늘을 연구하는 것은 궁궐에서는 아주 큰 대사(大事)였기 때문에 후토는 지식을 가지고 권력을 휘둘렀다. 부족한 영력을 채우기 위해서는 사람의 영혼이 아주 많이 필요했는데 사람들의 눈을 속여 취하기 위해서는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죽어 없어지는 전쟁이야 말로 아주 좋은 명분이었을 것이다. 후토를 먼저 찾은 것은 현무였는데 그는 처음에 후토를 숨겨줄 생각은 없었다. 그러다 후토가 사방신의 수장자리에 대한 이로운 조건을 일부러 흘렸고, 후토의 말에 구슬린 현무가 속아서 산천대제와 함께 일을 꾸미게 된 것이다. 규산에 봉인된 후토가 대부분의 죄를 뒤집어쓰겠지만 그렇다고 현무와 산천대제의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현무는 발의 아이에게 어느 정도 책임을 전가(轉嫁)할 속셈이었다. 물론 영귀가 그 속셈을 눈치채고 미리 빼돌려 주요에게 보내려고 했는데 즉저가 먼저 주자서를 찾는 바람에 일이 틀어진 것이다. 다행히 온객행이 와서 그것도 틀어졌다.
문귀는 뒤따라오는 온객행과 주자서를 힐끔 보고 말했다.
“지금 대전에 혜현녀(彗玄女)께서 천존의 별성으로 와 계십니다.”
주자서는 조금 늘어지는 듯하더니 온객행에게 조금씩 몸을 기대왔다. 온객행은 기대오는 주자서가 기꺼워서 문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주자서를 더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대전에 다다라 문귀가 능리에게 도착을 고했다. 곧 대전 안에서 나흘마가 나와 말했다.
“안으로 드시지요.”
주자서는 몸을 세우고 온객행의 팔을 잡고 말했다.
“말로 부탁할 수 있는 일은 말로 하세요. 저는 정말 괜찮습니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놓아주고 말했다.
“그 괜찮다는 말 정말 싫어. 안 하면 안돼?”
온객행의 투정에 부스스 웃은 주자서가 온객행의 등허리에 손을 올려 그를 대전 안으로 밀어 넣으며 말했다.
“말로 부탁하셨으니 노력해 보겠습니다.”
온객행이 소매를 털고 대전 안으로 들어갔다. 주자서도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온객행을 따라 대전 안으로 들어갔다.
붉은빛이 은은하게 도는 옻칠이 된 궁궐 내부는 날이 밝았음에도 어두웠는데 내부를 밝히는 촛대 마저 대전 중앙에서 쏟아지고 있는 햇빛을 제외하면 상석에 있는 것이 전부라 궁궐의 정전이라기 보다는 사람을 데려다 취조하는 관청 같았다. 건물을 받치는 기둥은 뱀의 모양으로 그것을 받치는 주춧돌은 거북이 모양이었다. 햇빛이 들어오는 데에 현무와 즉저, 지주가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고 상석에는 새하얀 두의(頭衣)를 쓴 사람이 앉아 있었다. 온객행이 소매를 들어 인사했다. 주자서도 온객행에게 맞춰 소매를 들어 고개를 숙이고 인사했다. 대전 내부는 아주 조용했는데 너무 어두워서 대전 안에 있는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 주자서는 고개를 숙이고 온객행의 곁에 바짝 붙어 섰다.
현무가 고개를 돌려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저는 발의 후손을 찾고자 한 것이지 후토를 도우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즉저가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후토에게 쫓기고 있는 발의 후손을 보호하기 위하여….”
상석에 있는 여인이 코웃음을 치고 말했다.
“그만. 후토가 발의 후손을 찾고 있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네.”
현무가 바닥에 조아리며 말했다.
“모두 저의 부덕함 때문입니다. 어찌 저의 허물의 죄를 솔정(率丁)에게 물으십니까?”
지주와 즉저가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고 말했다.
“현녀. 현무께서는 죄가 없으십니다. 모두 부족한 저희의 불찰입니다.”
현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그들에게 말했다.
“어찌 이것이 그대들의 죄겠습니까? 천존께서 그대들에게 벌을 내리시니, 현무는 한 갑자동안 주극성으로 돌아오는 것을 금하고 동해로 가서 목공(木公)을 모시세요. 천룡과 지주는 천존께 눈을 바치세요.”
현무가 고개를 조아려 인사했다.
“자비로우신 천존께 감은하옵니다.”
즉저와 지주도 현무를 따라 말했다.
“감은하옵니다.”
현녀가 다시 자리에 앉고 말했다.
“천존께서 현무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견연을 임시 현무의 자리에 봉하셨는데 어찌하겠소? 수선?”
온객행은 심드렁하게 서 있다가 깜짝 놀라며 무릎 꿇고 소매를 들어 말했다.
“저에게 너무 과분한 임무입니다. 어찌 이제 막 등선한 저에게 남분(濫分)한 책임을 지우십니까?”
주자서도 옆에 서 있다가 얼떨결에 같이 무릎을 꿇었다. 현녀는 코웃음 치더니 말했다.
“겨우 한 갑자도 못 버티겠습니까?”
온객행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
“현무께서 하시는 막중한 과업을 가신 하나 없는 제가 어찌 할 수 있겠습니까? 주극성에 계시는 그 어떤 가신들보다도 못난 제가 어찌… 부디 존명을 거두어 주소서.”
그리고 머리를 땅에 붙이고 넙죽 절했다. 주자서는 조금 멍하게 있다가 온객행을 따라 절했다.
현녀는 ‘흠’ 하더니 말했다.
“천존의 허락 없이 사람과 혼인한 것은 어찌 할 셈이오?”
온객행이 고개를 들어 현녀를 보고 말했다.
“그것은! 제가 내자를 맞은 것은 제가 아직 파사일때 천간을 구분하지 못했던 요괴의 치기를 벌하실 참입니까?”
현녀가 말했다.
“하늘의 법이 지엄(至嚴)하여 천존의 허락 없이 사람의 생애에 간섭해서는 안된다는 가장 기본적인 도리도 잊었다는 말이오?”
온객행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
“제가 유서와 아이를 낳을 것도 아닌데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온객행의 말에 현녀 잠깐 멈칫하더니 말했다.
“견연. 이것이 자손의 문제인가? 하늘의 법도에 대해 말하고 있네.”
온객행이 말했다.
“천존께서 원치 않으시는 일을 할 마음도 할 수 있는 방법도 없습니다. 유서는 저의 몫의 반도를 먹었으니 이제 그는 온전히 사람이 될 수도 없습니다.”
온객행의 말에 주자서가 고개를 들어 온객행을 보았다. 온객행이 다시 고개를 조아리고 말했다.
“벌을 내리시면 받겠습니다. 그 죄는 모두 저의 죄이니 저만 벌 하소서.”
주자서는 뭔가 말하려고 입을 달싹이다가 주변의 눈치를 보고 다시 머리를 조아려 절했다. 현녀가 말했다.
“그러니 한 갑자 동안 현무 노릇을 하시오. 벌이라고 칩시다.”
온객행이 고개를 다시 들고 현녀를 보며 말했다.
“현녀! 통촉하소서!”
현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상석에서 내려와 주자서 앞에 서서 말했다.
“발의 아이. 기산의 주가 자서는 들어라.”
주자서가 고개를 들어 현녀를 힐끔 보고 소매를 들어 공수했다. 현녀가 말했다.
“하늘이 너에게 죄를 지었으니 너의 소원을 한가지 들어주도록 하겠다.”
주자서가 고개를 들어 현녀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온객행은 얼른 주자서 곁으로 다가가 말했다.
“꼭 지금 당장 말해야 하는 것이 아니니 조심해서 말하게.”
주자서가 온객행의 말을 듣고 다시 현녀를 보고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소인에게 시간을 주소서.”
현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너는 발의 후손이니 네가 원하면 언제든 천궁에 머무를 수 있다. 지금 나와 가겠느냐?”
주자서가 고개를 들어 물었다.
“저희 모친께서는…?”
현녀가 고개를 젓고 말했다.
“사람의 생애가 끝나면 너희 모친께서도 올 것이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소매를 붙들고 말했다.
“유서?”
주자서가 온객행을 빤히 보다가 다시 소매를 들어 말했다.
“소인에게 시간을 주소서.”
현녀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그래. 시간은 많으니.”
현녀가 품에서 비취로 만든 벽(璧)을 건네고 말했다.
“그 벽에 너의 결정을 말하면 된다.”
주자서는 양손을 들어 현녀가 건넨 벽을 받았다. 현녀는 상석으로 올라가며 말했다.
“견연의 일을 적송자께서 도와주십시오.”
기둥 한쪽에 기대어 있던 적송자가 혀를 차며 나와 말했다.
“언제부터 아셨소?”
현녀가 상석에 서서 말했다.
“천존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고개를 들더니 새하얀 빛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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