蛇苺 第33

假痴不癲 | 33. 어리석은 척하되 미치지 않는다.

온객행은 주자서를 보내면서 지주에게 말했다.
“협각. 무슨 일이 생기면 죽여버릴 거야.”
지주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온공자. 무섭게 왜 그러는가?”
주자서가 온객행의 옆에 가깝게 붙어 서서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
“객행.”
온객행이 주자서를 빤히 보고 말했다.
“협각이 유서에게 반하면 어쩌지?”
지주가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 치고 말했다.
“나는 사람에게는 관심 없네.”
온객행이 지주를 쏘아보며 말했다.
“유서는 이제 사람이 아니란 말이야.”
지주가 온객행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사람이 아니더라도 사내는 싫어!”
온객행이 지주를 빤히 보다가 다시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유서도 사내는 싫다고 했는데….”
온객행이 주자서를 끌어안고 말했다.
“유서 안 가면 안 돼? 유서가 없으면 나는 못 버틸 것 같아.”
주자서가 온객행의 등을 쓸며 말했다.
“객행은 할 수 있어요. 제가 태평호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어깨에 뺨을 비비고 주자서를 놓아주었다.

온객행이 소매에서 짧은 검을 꺼냈다.
“이건 스승님의 비늘로 만든 현망검(玄芒劍)인데 아주 예리하니 조심하시오.”
주자서가 검을 받아 검집에서 검을 뽑아 보았다. 예리하게 벼려진 짧은 검은 근접전에 용이하다. 주자서가 눈썹을 찌푸리고 온객행을 보았다.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촉룡의 가호가 있는 물건이니 이것에 무언가 베이면 내가 알 수 있소. 유서는 나의… 나의 반려(伴侶)니까.”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이고 검을 요대에 꽂았다.
“한시도 몸에서 떼지 않겠습니다.”
온객행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응. 시간이 날 때마다 태평호로 갈게. 날아가면 두세시진 밖에 안 걸리니까.”
주자서가 온객행의 손을 잡고 말했다.
“객행. 너무 무리하지 마십시오. 저는 언제나 태평호에 있을 테니. 그대의 몸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시오.”
온객행은 주자서의 걱정이 기꺼워서 얼굴을 가깝게 붙였다. 주자서가 고개를 돌리고 헛기침하며 말했다.
“객행.”
온객행이 입을 앞으로 쭉 내밀고 문귀와 지주를 쏘아보았다.


문귀는 주자서를 태평호로 배웅하기 위해 구름 마차를 준비해 놓았다. 발의 능력이 사라지고 화사가 된 주자서는 이제 혼자서도 구름을 밟을 수 있게 되었다. 온객행은 북극문까지 나와 주자서가 구름 마차로 태평호로 향하는 것을 한참 보았다. 너무 멀어져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주자서가 날아간 쪽을 보고 연거푸 한숨을 쉬었다. 문귀가 온객행에게 말했다.
“유서는 정말 좋은 사람이군. 자네도 좀 배우게.”
온객행이 고개를 휙 돌려 문귀를 보고 말했다.
“유서라고 부르지 마시오. 나의 상공이니 무극형도 상공이라 부르시오.”
문귀가 얼굴을 구기며 말했다.
“상공? 어디의 상공인가?”
온객행이 다시 주자서가 날아간 쪽을 보고 말했다.
“나의 상공이오. 견연의 상공.”
문귀는 질린 기색으로 헛기침하고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이제 사라각에 머무를 필요가 없으니 거처를 천변당으로 옮기는 것은 어떠한가? 정전과도 가깝고 사당과도 가까워서….”
온객행이 몸을 돌려 사라각으로 향하며 말했다.
“싫소. 유서가 머물던 곳에 머물겠소.”
문귀가 온객행을 따라가며 말했다.
“천변당으로 옮기면….”

온객행이 발걸음을 멈추고 문귀를 보았다.
“옮기면?”
문귀가 팔짱을 끼고 말했다.
“적송자께서 천거하신 기룡(虁龍)께서 염화(染化)에 능한 것을 알고 있는가?”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문귀를 보았다. 문귀가 온객행에게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북극문과 천주서원을 잊는 사당의 그림은 기룡께서 그리셨네.”
온객행이 문귀의 어깨를 덥석 잡고 말했다.
“기룡께서는 어디 계시오?”
문귀가 어깨를 털어 온객행의 손을 뿌리치고 ‘하하하’ 웃으며 말했다.
“기룡께서는 아주 바쁘시네. 그러니까 천변당으로 거처를 옮기면 내가 잘 말씀드려보겠네.”
온객행이 분하다는 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문귀를 노려보다가 다시 몸을 돌려 사라각으로 향했다. 문귀가 온객행과 발걸음을 맞추고 말했다.
“천주서원에서 바치는 공물과 제사에 대한 내용을 먼저 숙지해두는 것이 좋겠군.”
온객행은 문귀를 힐끔 보다가 말했다.
“생각해보겠소.”
문귀가 온객행을 타박하며 말했다.
“뭘 생각한다는 말인가? 이건 꼭 해야 하는 일이네!”
온객행이 부루퉁하게 말했다.
“일 말고 거처 옮기는 것 말이오.”
문귀는 그저 ‘흠’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온객행은 다시 요대를 방문하게 됐다. 이번에는 현무로 오는 것이라 흑망이었을 때 입었던 옷보다 더 시커멓고 은실로 화려하게 수놓은 장포를 입었다. 머리 장식을 바꾸겠다고 하기에 온객행은 억지를 부려서 주자서가 골라준 용머리를 조각한 비녀만 했다. 주자서가 태평호로 떠난 이후로 온객행은 천도연에 참석하기 위해 너무 바빠서 태평호에 갈 수 없었다. 온객행은 기분이 좋지 않아 모든 일에 심드렁했다. 현무의 가신을 이끌고 온객행이 옥산에 도착하자 요대로 향하는 구름길이 활짝 열려 있었다. 근처에는 삼족오가 호위를 하고 있었고 요대로 향하는 길을 화사가 안내하고 있었다. 구름길 끝에서 요대로 들어오는 손님을 기린이 맞이하고 있었다. 온객행이 소매를 들어 인사하자 읍강과 희발도 소매를 들어 인사했다. 읍강이 말했다.
“견연. 환영하네.”
희발이 물었다.
“내자는 왜 데려오지 않았나?”
온객행이 불만스럽게 말했다.
“유서는 아직 등선하지 못해서….”
읍강이 눈썹을 찌푸리고 말했다.
“그런 일을 당했는데 설마 원군께서 뭐라고 하시겠나?”
온객행이 몸을 돌려 다시 나가려고 하자 문귀가 온객행을 막으며 말했다.
“안돼. 요대에서 태평호까지 어느 세월에 다녀오겠다는 것인가?”
희발이 소매를 들어 공수하고 말했다.
“미리 전했어야 하는데… 미흡했네.”
문귀가 온객행의 소매를 잡고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아닙니다. 당치 않습니다.”
온객행도 깊게 한숨 쉬며 문귀의 장단을 맞추었다.

등선한 신선에게도 등급이 있어서 막 등선한 수선인 온객행은 원래대로라면 남궁의 연회장에 초대되는 것이 맞았으나 그는 현무 대리였기 때문에 중궁의 연회장으로 들어갔다. 문귀는 중궁으로 향하는 회랑에서 온객행의 옷깃을 잡고 한 식경 정도 잔소리를 퍼붓고 온객행을 놓아주었다. 온객행은 한숨을 쉬며 천천히 걸어서 중궁으로 들어갔다. 적송자는 온객행보다 먼저 출발했기 때문에 이미 중궁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풍백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초록색 옷을 입은 하인이 온객행에게 다가와 그의 자리를 안내했다. 금모원군에게서 멀지 않은 분에 맞지 않는 자리에 온객행은 어찌할 바를 몰라 조금 허둥대고 있었다. 그때 주요가 온객행에게 다가와 인사했다.
“온공자.”
온객행이 고개를 돌려 주요를 보았다. 주홍빛의 장포를 둘러 입은 주요 옆에 금색실로 화려하게 수놓은 옷을 입은 고상이 입을 꾹 다물고 서 있었다. 온객행이 말했다.
“아상! 주요!”
주요가 웃으며 소매를 들어 인사하자 온객행도 소매를 들고 인사했다.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오랜만이네. 그동안 잘 지냈소?”
주요가 한숨을 쉬고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대체 천존께서는 무슨 생각으로 아상을 황룡으로 봉하신 것인지 모르겠어.”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주요가 고생이 많겠네.”
고상이 주요의 눈치를 보다가 온객행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유서는 어디 있소?”
온객행이 고상의 손길을 뿌리치고 말했다.
“버리고 갔으면서 왜 찾는가?”
고상이 온객행에게 소리를 빽 질렀다.
“무슨 소리야! 우리 아이를 내가 왜 버려!”
고상의 큰 소리에 주변에 있던 다른 신선들이 그들을 보았다. 주요가 웃으며 온객행에게 조아리자 온객행도 눈치껏 고개를 조아려 인사했다. 주요는 한참 고개를 조아리고 있다가 온객행에게 손을 펴서 중궁 남쪽에 있는 정원으로 안내하며 말했다.
“자리를 옮길까요?”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펼치고 말했다.
“따르겠습니다.”
그들은 다른 신선들의 눈총을 받으며 중궁을 나왔다.

고상은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안 버렸어. 우리 유서는 내 아이란 말이야.”
주요가 고상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그래. 진정해. 약속을 어겼으니 삼하궁으로 돌아가면 서책을 베껴 쓰도록 해.”
고상이 눈썹을 늘어뜨려 울상을 하고 말했다.
“이거는!”
주요가 고개를 흔들고 말했다.
“큰 소리 내지 않기로 했잖아.”
고상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알았어.”
고상이 고개를 획 돌려 온객행을 보고 씩씩대며 말했다.
“그래서! 우리 유서는 어디 있어?”
온객행이 입을 앞으로 쭉 내밀고 말했다.
“태평호에….”
주요가 눈썹을 찌푸리고 물었다.
“혼자?”
온객행이 고개를 흔들고 답했다.
“아니. 지주랑.”
고상이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망충! 그놈이랑?”
주요가 고상을 쏘아보며 말했다.
“아상! 정말….”
고상이 주요의 눈치를 보며 온객행의 소매를 붙잡고 말했다.
“왜? 왜 같이 안 있어? 설마 내쳤어? 온객행 이 나쁜놈.”
온객행이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미쳤어? 유서를 왜 내쳐?”
주요가 눈을 감고 고개를 흔들며 크게 한숨을 쉬었다.
“너희들 진짜….”
주요는 온객행과 고상의 말을 멈추고 신선으로서의 몸가짐과 예절에 대해 한참 잔소리를 했다.


구름마차를 타고 태평호에 도착한 주자서는 일단 백택을 조금 정리했다. 천교와 보살은 어디에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주자서가 내부를 정리하는 것을 구경하던 지주가 물었다.
“그냥 주극성에 있지 굳이 왜 사서 고생인가?”
주자서가 어깨너머로 지주를 보고 말했다.
“답답해서….”
지주가 주자서가 정리해 놓은 탁상에 걸터앉아 말했다.
“답답하면 뭐? 도망이라도 가려고 했나?”
주자서는 대답 없이 방을 치웠다. 지주가 코웃음 치며 말했다.
“어디 감히 화사가 주극성에서 도망친다는 말인가?”
주자서가 어깨너머로 지주를 보고 말했다.
“수선께 올려진 보고서에 주극성 축조(築造)와 배치(排置)에 관련된 내용이 있었소. 동쪽의 북극문 말고도 주극성에서 무당산으로 통하는 길은 남문, 서문, 수구문을 제외하고도 서넛은 더 있었습니다.”
지주가 주자서를 빤히 보고 말했다.
“그… 그런가?”
지주는 주극성과 천주서원에서 몇 갑자동안 살았지만 북극문 이외에 주극성으로 통하는 길이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지주가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글을 읽는 것과 같네.”
주자서가 몸을 돌려 지주를 보았다. 지주가 말을 이었다.
“글자만 안다고 뜻이 되는 것은 아니지. 같은 글자이지만 그 글자의 위치와 순서에 따라 뜻이 달라지는 것처럼 영력도 같은 것이지만 위치나 순서에 따라 전혀 다른 것이 될 수도 있어. 실체 하는 무엇인가 일 수도 아니면 그냥 허상일 수도 있지.”
주자서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자 지주가 말했다.
“이것도 아닌가?”

주자서가 작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저는 글 읽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풍류도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요.”
지주가 탁상에 팔을 괴고 말했다.
“근데 자네는 사람이었을 때 뭐 하는 사람이었나?”
주자서가 탁자로 가서 지주 앞에 앉으며 말했다.
“기병(騎兵)이었습니다.”
지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병사(兵士)였군.”
주자서가 부스스 웃으며 말했다.
“기병인데 말을 잃은 지 오래되어 죽기 전에는 정예병이었습니다.”
지주가 주자서를 보고 놀라며 말했다.
“정예병이었다고?”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는 도망치는 것을 제일 잘합니다.”
지주가 몸을 바로 하고 말했다.
“그럼 활을 쓰는가? 검을 쓰는가?”
주자서가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검을 씁니다.”
지주가 얼굴을 구기며 말했다.
“나는 몸 쓰는 것은 별로 안 좋아하는데….”
지주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말했다.
“나와보게.”
주자서가 실내를 보고 말했다.
“조금만 더 치우면 될 것 같은데 먼저 치워도 되겠습니까?”
지주가 눈을 굴리고 말했다.
“그래. 뭐 시간은 많으니까.”

지주는 재실 근처에 모아 놓은 불쏘시개 중에 길쭉하고 두꺼운 나뭇가지를 찾아 늘어놓았다. 측백나무 숲을 둘러보다 산의 정령인 계낭(溪囊) 몇이 재실 쪽을 보는 것을 발견했다. 지주가 다가가 말했다.
“너희는 왜 여기 있느냐?”
무리 중 가장 큰 아이가 나와 말했다.
“우리는 무지기를 모시는 계낭이오! 저 치는 주인께서 보살피던 아이인데….”
지주가 어깨너머로 재실을 정리하는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여기 살던 우사첩은 어디 갔소?”
계낭이 답했다.
“주인을 따라 삼하궁으로 가셨습니다. 화사의 아이가 돌아오면 잘 보살피라 하셨습니다.”
지주가 주자서 쪽으로 고갯짓하며 말했다.
“가서 보살피시오.”
계낭이 지주를 물끄러미 보더니 말했다.
“망충께서는 왜 여기 계십니까?”
지주가 불편한 기색으로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지주대인이라 부르게. 내가 저 화사의 스승이니.”
계낭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했지만 고개를 끄덕이고 재실이 있는 쪽으로 갔다.

주자서는 한참 만에 나와 지주에게 말했다.
“어찌 아이들에게 일을 시킨다는 말입니까?”
지주가 재실 주방에서 부산스럽게 밥을 준비하는 계낭을 보고 말했다.
“저들은 아이들이 아니라 산정(山精)이니 너보다 몇 갑자는 더 살았을 것이다.”
주자서가 눈썹을 찌푸리고 다시 주방으로 향했다. 지주가 주자서의 팔을 잡고 정원에 늘어놓은 나뭇가지를 보여주며 말했다.
“골라봐. 나와 검술을 겨뤄서 이기면 네가 원하는 것을 하나 들어주마.”
주자서가 지주의 팔을 뿌리치고 나뭇가지를 고르며 말했다.
“지주대인께서는 주방일을 하실 줄 아십니까?”
지주가 ‘하하하’ 웃으며 말했다.
“내가 알겠는가? 나는 생식을 선호하네.”
주자서가 나뭇가지 하나를 들고 말했다.
“제가 이기면 지주께서 아이들을 좀 도와주십시오.”
지주가 ‘허’하고 코웃음 치며 말했다.
“그래. 이기면 말이지.”
지주도 나뭇가지 하나를 들고 주자서와 마주 섰다.

주자서의 공격은 예리하고 삼엄했다. 지주가 뻗은 나뭇가지를 피하지 않고 그대로 들어와 빈틈을 공격했다. 주자서는 전장에서 오래 구른 티가 나는 공격을 했다. 지주가 주자서의 공격을 피하며 말했다.
“이게 검이었으면 너는 벌써 베였을 것이다.”
주자서가 지주의 빈틈을 공격하며 말했다.
“압니다.”
급작스럽게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는 공격을 막기 위해 지주는 어쩔 수 없이 영력을 사용했다. 지주가 나뭇가지를 내려놓고 말했다.
“너 꽤 하는구나?”
주자서가 지주의 거미줄이 붙은 나뭇가지를 흔들며 말했다.
“뭔가 그 전보다 감각이 더 민감해진 것 같습니다.”
지주가 주자서에게 다가가 말했다.
“시력이 나빠졌다고 했지?”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주가 주자서의 머리 위에 있는 관을 보고 피식 웃었다. 주자서가 지주의 가슴을 나무막대로 찌르며 말했다.
“제가 이긴 겁니까?”
지주가 눈을 굴리고 말했다.
“그렇다 치지 뭐. 계낭을 도와주라고?”
주자서는 지주가 늘어놓은 나뭇가지와 들고 있던 나뭇가지를 잘 정리하고 지주의 소매를 잡고 주방으로 이끌었다.
“지주대인께서도 같이 드세요.”
지주는 주자서를 돌보는 계낭에게 입하(立夏), 입추(立秋)라고 이름 붙였다.

이후에 백택 주변에 있던 계낭 몇이 더 백택 안으로 들어와 주자서를 모시는 것을 청했고 지주는 차례로 그들에게 절기(節氣)의 이름을 붙였다. 지주는 주자서의 무공 실력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영력을 모으는 방법을 무공에 빗대어 설명했다. 칼을 휘두르고 몸을 움직이는 것은 주자서에게 익숙한 것이었기 때문에 주자서는 몸에 영력이 쌓이기 시작했다. 지주는 주자서의 몸에 발의 영력 만큼의 힘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보통 영력을 쌓기 시작한 요괴와는 조금 시작점이 달랐고, 그릇이 크기 때문에 그 영력을 휘두르기 위해서는 조금 더 많은 영력이 필요하기도 했다. 주자서는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영력을 쌓았다. 지주도 항상 자기보다 영력이 높고 신분이 높은 요괴와 신선들 사이에서 긴장하고 있다가 태평한 태평호에 오니 마음이 편안했다. 이제 막 열흘 넘게 태평호에 있으면서 그들에게 위기란 주자서가 한 맛없는 밥 정도였다.


천도연이 지나고 사흘 뒤에 온객행이 찾아왔다. 구름 마차에 보물을 잔뜩 싣고 도착한 온객행은 부유각으로 갔다가 주자서가 부유각에 없는 것을 알고 조금 서운해하며 백택으로 들어왔다. 주자서는 재실 지붕 위에서 지붕을 수리하는 중이었다. 지주가 마당에 늘어져 있다가 온객행을 발견하고 말했다.
“현무 대리. 오랜만입니다.”
온객행이 주변을 둘러보다 지붕 위에 있는 주자서를 발견하고 놀라며 말했다.
“유서! 떨어지면 어쩌려고!”
온객행의 목소리를 들은 주자서가 자리에서 일어나 온객행을 보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객행!”
주자서는 들고 올라온 연장 도구를 정리하고 제계(梯階)를 밟고 내려왔다. 온객행이 안절부절못하며 팔을 뻗자 주자서가 웃으며 말했다.
“객행. 땀을 흘려서 더럽습니다.”
온객행이 거의 다 내려온 주자서의 허리를 붙잡고 말했다.
“그대에게 더러운 것은 아무것도 없네.”
주자서가 웃으며 온객행을 마주 안았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목덜미에 고개를 묻고 말했다.
“유서 너무 보고 싶었소.”
주자서가 웃으며 말했다.
“저도 보고 싶었어요.”

지주가 헛기침하고 말했다.
“어찌 오셨소? 백종절 준비로 바쁠 텐데?”
온객행은 지주의 말을 듣지 못했다는 듯 말했다.
“유서. 다시 주극성으로 가자. 내가 너무 힘들어서 못 버티겠어.”
뒤따라 들어온 문귀가 온객행이 가져온 선물을 마당에 내려놓고 말했다.
“진짜 더러워서 못 해 먹겠군.”
지주가 문귀에게 다가가 도우며 말했다.
“문귀 어르신. 상전은 한 분만 모시는 게 좋습니다.”
문귀가 온객행에게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저딴 게 상전이라니!”
주자서가 온객행의 품에서 나와 얼른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문귀에게 인사했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허리를 끌어안고 말했다.
“유서 제발… 다시 현악으로 가자.”
문귀가 소매를 들어 주자서에게 인사하며 말했다.
“그동안 별고 없었는가? 영력이 늘었군?”
그리고 지주를 보았다. 지주는 인사도 하지 않은 것이 생각나 얼른 소매를 들어 인사했다.
“제자가 훌륭하여 저는 한 것이 없습니다.”
주자서가 놀라서 지주 곁으로 다가가 말했다.
“아닙니다. 지주대인께서 잘 이끌어 주셨습니다.”

문귀가 몸을 바로 세우고 말했다.
“백종절까지 따로 틈을 만들 수 없을 것 같아 왔네.”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당의 외실로 가시겠습니까? 차를 준비하겠습니다.”
지주가 얼른 주방 쪽으로 향하며 말했다.
“내가 차를 준비할 테니 어서 사당으로 모시게.”
주자서가 손님을 정전으로 안내했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몸에 찰싹 붙어서 계속 우는소리를 했다. 주자서는 웃으면서 온객행의 투정을 받아주었다. 차를 마시던 문귀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여기가 수원대선께서 머무시던 사당이군. 지주 사당 구경 좀 시켜주게.”
지주가 계낭을 부르려다가 애절하게 주자서를 쳐다보고 있는 온객행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이곳은 측백나무가 많아 백택이라 부른다 합니다.”

문귀와 지주가 나가자 온객행은 얼른 주자서 옆으로 가서 주자서를 끌어안고 말했다.
“유서. 제발 나랑 같이 있어.”
주자서가 웃으며 말했다.
“객행. 그럼 태평호를 버려 둘까요?”
온객행은 입을 달싹이기만 하고 답하지 못했다. 주자서가 온객행의 손을 잡고 말했다.
“저를 상공으로 임명하셨잖아요. 태평호를 잘 돌보겠습니다.”
온객행이 눈썹을 늘어뜨리고 울상을 만들어 말했다.
“나를 돌봐주세요. 이제 태평호에게도 질투가 납니다.”
온객행의 말에 주자서가 ‘하하하’ 하고 웃었다. 온객행은 주자서가 크게 웃는 것을 보고 금방 기분이 좋아졌다. 조금 그을린 얼굴과 밝은 표정이 주자서가 얼마나 태평호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는지 말해주는 것 같아 온객행은 좋으면서도 싫었다. 주자서가 자리에서 일어나 온객행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객행. 부유각으로 갑시다.”
온객행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자서를 따라 외실을 나갔다. 온객행이 잡은 손을 흔들며 말했다.
“매일 같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주자서가 온객행에게 어깨를 붙이고 말했다.
“저도요.”
온객행은 전처럼 쉽게 다시 주극성으로 돌아가자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조금 침울해진 온객행을 보고 있던 주자서가 온객행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말했다.
“객행! 부유각은 객행의 소매 안에 있는 것이지요?”
온객행이 주자서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부유각에 도착한 주자서는 누각 위로 온객행을 잡아 끌며 말했다.
“그럼 서신을 주고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온객행은 잘 정리된 누각 탁자 위에 나무함을 발견했다. 온객행이 다가가 나무함을 열자 안에는 목간(木簡)과 천 자락이 들어 있었다. 온객행이 집어 들어 읽으려고 하자 주자서가 온객행의 손을 잡고 말했다.
“객행! 부끄러우니까 주극성에 돌아가면 읽어 보세요.”
볼을 빨갛게 물들인 주자서가 사랑스러워서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얼굴을 붙여 입술을 찾았다. 주자서는 온객행의 몸을 돌려 어깨에 팔을 두르고 그를 끌어안고 입을 맞췄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허리를 안고 이마를 맞대고 말했다.
“만나면 해주고 싶은 얘기가 정말 많았는데….”
주자서가 말했다.
“서신을 주고받으면 더 보고 싶어질까요?”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자 주자서가 부스스 웃었다. 온객행이 한숨을 쉬고 말했다.
“한 갑자는 정말 짧을 것 같았는데….”
주자서가 온객행을 끌어안고 어깨에 고개를 묻고 말했다.
“제가 길다고 했잖아요.”
온객행이 조금 울먹이는 소리로 말했다.
“응. 정말로.”

주자서가 온객행을 놓아주고 말했다.
“앞으로 보고 싶을 때마다 여기에 서신을 넣어 놓겠습니다. 객행도 전할 것이 있으면 이 나무함에 넣어주세요.”
온객행이 상자를 보고 말했다.
“너무 작아서 나는 못 들어가.”
온객행이 주자서를 물끄러미 보다가 말했다.
“화사라면 들어갈지도.”
주자서가 웃으며 말했다.
“너무 보고 싶으면 저도 보러 가겠습니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목덜미에 고개를 묻고 웅얼거리며 말했다.
“지금 나랑 가자.”
주자서가 한참 온객행을 안고 있다가 말했다.
“객행은 정말 현무가 되실 참입니까?”
온객행이 고개를 도리질하며 말했다.
“절대 싫어. 온종일 일만 해. 유서가 없으니까 쉴 시간도 없어.”
주자서가 온객행의 등을 쓸며 말했다.
“저는 여기 있는 것이 좋습니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놓아주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맞아. 유서가 다 맞아.”

주자서가 온객행의 뺨을 쓸며 말했다.
“객행. 호랑이 굴로 스스로 들어가는 미친 돼지가 돼서는 안 됩니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보고 물었다.
“뭐? 유서?”
주자서가 온객행을 의자에 앉히고 그의 양 뺨을 잡고 자기를 보게 한 뒤 말했다.
“현무가 되면 돌이킬 수 없어요. 어리석은 척하되 미쳐서는 안 됩니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나는 명성이나 권력 같은 것은 관심 없어요.”
주자서가 작게 한숨 쉬고 말했다.
“그런 말은 명성과 권력을 가진 뒤에 하는 겁니다. 촉룡처럼.”
온객행이 입을 앞으로 내밀자 주자서가 온객행의 뺨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객행. 제가 자신을 지킬 수 있을 때까지 조금 기다려 주세요. 도움이 되지 못하는데 짐까지 될 수는 없습니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허리를 끌어안고 말했다.
“유서는 짐이 아니야. 나에게 정말 큰 힘이 되는데….”
주자서가 팔을 둘러 온객행을 안고 말했다.
“저도 객행도 지킬 수 있을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제가 많이 노력하겠습니다. 객행이 겁이 나면 저에게 도망쳐 올 수 있도록.”
온객행이 고개를 들어 주자서를 보았다. 온객행이 눈썹을 늘어뜨리고 울상을 하자 주자서가 온객행의 입에 입술을 맞추고 말했다.
“조금 귀여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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