蛇苺 第32

假途滅虢 | 32. 길을 빌려 괵(虢)을 멸하다.

온객행은 정전으로 향하는 길에 현무의 거처인 천계당(天雞堂) 옆에 있는 천변당(天弁堂)을 수리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불안해졌다. 주극성에 지내는 동안 절대로 사라각에서 나오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사당의 관료들과 인사했다. 천도연이 멀지 않아 요대에서 정식으로 현무와 현무의 가신을 초대하는 서신을 영귀께서 직접 들고 찾아왔다. 천도연은 등선한 신선들에게 금모원군께서 옥산의 천도를 베푸는 연회로 신선이 금모원군의 천도를 먹으면 영력이 높아지기 때문에 참가하고 싶은 이들이 많았다. 문귀는 온객행 옆에 서서 두루마리에 쓰인 주극성의 신하들 중에 천도연에 참가할 수 있는 이들을 골라내는 중이었다. 영귀가 온객행을 보고 물었다.
“할 만 한가?”
온객행이 표정을 구기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말했다.
“영귀 어르신….”
영귀가 온객행의 표정을 보고 손을 들어 온객행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자네는 아주 잘하고 있는 것이네. 삼하궁은 지금 아주 난리야.”
온객행은 고상이 생각나서 피식 웃었다.

문귀가 두루마리를 온객행에게 내밀며 말했다.
“요대에서 초대한 신하의 숫자와 주극성에서 천도연에 참가할 수 있는 신하의 숫자를 잘 보고 누가 얼마나 많이 천도연에 참가했는지도 모두 기록해 놓았으니….”
온객행이 두루마리를 받지 않고 말했다.
“문귀께서 알아서 하십시오.”
문귀가 온객행을 쏘아보며 말했다.
“현무의 인장이 필요한 일이네.”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천계당에 가져다 놨으니 필요할 때 꺼내쓰시오.”
문귀가 온객행의 팔을 때리고 말했다.
“견연! 몸에 지니라고 몇 번을 말했는가?”
그러더니 영귀께 인사하고 서둘러 천계당으로 향했다. 온객행은 맞은 팔을 쓰다듬으며 입을 삐죽였다. 영귀가 온객행을 보고 물었다.
“자네 내자는 요즘 괜찮은가?”
온객행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우리 유서는….”

적송자가 석척과 함께 정전의 외실로 들어왔다. 영귀와 온객행이 자리에서 일어나 적송자에게 인사했다. 적송자가 팔을 내젓고 말했다.
“예를 거두게.”
석척이 얼른 적송자의 자리를 만들어 시중을 들었다. 적송자는 아는 것이 많았기 때문에 사실상 주극성 대부분의 일을 적송자가 처리하고 있었다. 온객행은 천주서원에 관련된 일과 현무의 날인이나 직인이 필요한 일들을 겨우 해내고 있을 뿐이다. 석척은 현무를 모시듯 살뜰히 적송자를 모셨다. 적송자는 과거 치우를 모실 때 함께했던 신하와 전우를 찾아 천거했다. 대부분 나이가 많고 경험이 많은 요괴들이었기 때문에 주극성은 조금은 여유를 되찾았다. 영귀가 자리에 앉아 적송자에게 말했다.
“스승님께서 계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적송자가 ‘허허허’ 웃으며 석척이 내민 찻잔을 들고 말했다.
“현무를 가르치게 될 줄 알았는데 말이야.”
영귀가 온객행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여기 있지 않습니까?”

적송자가 차를 마시고 온객행을 보며 말했다.
“나도 촉룡은 무섭네. 그 분은 정말 얼마나 강할지 상상도 안돼.”
온객행도 찻잔에 차를 따르며 말했다.
“저도 새로운 스승을 모실 마음은 없습니다.”
적송자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나도 이런 제자는 별로….”
영귀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현명은 동해에서 산천대제를 모시고 있으니 아마 조금은 깨닫는 것이 있겠지요.”
적송자가 웃으며 말했다.
“현명은 일은 아주 잘했던 것 같네. 일손이 조금 부족한 정도였지.”
영귀가 온객행에게 물었다.
“후토의 잔당은 어찌 처리했나?”
온객행이 차를 마시며 영문을 모른다는 표정을 짓자 적송자가 혀를 차며 말했다.
“서귀와 지백이 고생 중이네.”
적송자가 온객행을 쏘아보며 말했다.
“너는 어째….”
문귀가 외실로 헐레벌떡 들어오며 말했다.
“견연! 앞으로 인장은 내가 가지고 있겠네.”
문귀가 적송자를 발견하고 소매를 들어 인사했다. 적송자가 팔을 휘젓고 말했다.
“문귀 자네가 정말 고생이 많아.”

즉저가 소반에 죽간을 잔뜩 쌓아 외실로 들어왔다. 눈을 바친 즉저는 눈을 검은 천으로 가리고 있었는데 원래도 시력이 좋지 못했기 때문에 눈을 바치기 전과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현무가 책임을 지고 동해로 쫓겨났기 때문에 즉저와 지주의 처벌이 크지 않을 수 있었다. 석척이 다가가 소반을 받자 즉저가 소매를 들고 인사하며 말했다.
“백종절 제례(祭禮) 때 삼원에 바칠 제악(祭樂)과 문무(文舞)를 정리했습니다.”
적송자가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나는 풍류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니 이것은 자네가 힘써주게.”
온객행이 자리에서 일어나 석척이 들고 있는 소반 위의 죽간을 펼쳐보고 말했다.
“저도 잘 모르는데….”
문귀가 즉저의 소매를 잡아 일으키고 말했다.
“그동안 천룡이 맡아 해왔으니 걱정하지 말게.”
온객행이 즉저를 물끄러미 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 석척에게서 소반을 받아 서안에 옮겨 두었다. 영귀가 적송자에게 말했다.
“원군께서 우사 어르신을 특별히 초대하셨으니 꼭 천도연에 와주세요.”
적송자가 놀라며 말했다.
“내가?”
영귀가 웃으며 말했다.
“운사(雲師)께서도 오신다고 하셨으니 꼭 와주세요.”
적송자가 말했다.
“풍백(風伯)이? 그럼 가야지.”

영귀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저는 뇌공께 가봐야 해서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적송자가 일어나 영귀를 배웅하며 말했다.
“뇌공은 힘들 거야. 도예를 두고 가려고 하지 않을 테니.”
영귀가 씁쓸하게 웃으며 소매를 들어 인사하고 외실을 나갔다. 적송자가 석척에게 물었다.
“천도연에 가려면 미리 해 두어야 할 일이 있는가?”
석척이 빠르게 적송자 곁에 가서 작은 목소리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문귀가 온객행의 팔을 잡아 서안 앞에 앉히고 말했다.
“너는 오늘 천도연에 갈 명부(名簿)를 만들기 전까지는 사라각 근처도 못 갈 줄 알게.”
적송자가 외실을 나가며 말했다.
“천도연에 가려면 좀 바빠지겠어. 나는 먼저 가보겠네.”
온객행과 문귀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즉저도 적송자를 향해 소매를 들어 인사했다.

적송자가 나가자 외실의 분위기가 조금은 이상해서 문귀가 온객행과 즉저를 보고 말했다.
“과거는 과거이니 마음에 담아두지 말게. 앞으로 계속 얼굴 봐야 하는데 괜히 불편할 필요 없지 않은가?”
온객행이 즉저를 힐끔 보고 작게 코웃음 쳤다. 문귀가 온객행의 팔을 때리며 말했다.
“견연!”
온객행이 문귀의 손을 피하며 말했다.
“아이참! 무극형 원래 이렇게 폭력적이셨습니까? 세상 아정(雅正)하신 무극형은 어디 가셨소?”
문귀가 온객행에게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천룡은 주극성에서 오랫동안 일해온 훌륭한 가신이네. 만약에 너희 둘이 싸우면 난 천룡의 편이니 그런 줄 알게.”
즉저가 조금 놀란 듯 고개를 들어 문귀를 힐끔 보았다. 문귀가 즉저를 서안 앞에 있는 의자에 앉히고 말했다.
“천룡. 그대는 주극성의 신하들에 대해 잘 알 테니 이 모자란 놈을 좀 도와주시오.”
천룡이 고개를 들어 무귀를 보고 답했다.
“맡겨주십시오.”

온객행이 투덜거리며 서안 앞에 가서 앉고 말했다.
“그러니 모자란 놈에게 시키지 말라는 말이오.”
문귀가 외실을 나가며 혀를 차고 말했다.
“오늘 사라각으로 돌아가고 싶으면 얌전히 시키는 대로 하게.”
온객행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요!”
문귀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며 말했다.
“그럼 천룡을 사라각으로 데려가던지. 명부는 오늘 안에 마무리하게.”
문귀가 나가자 온객행이 자리에 털썩 앉았다. 즉저는 서안 위에 올려진 문귀가 정리한 신하들의 두루마리를 보았다. 온객행이 작게 한숨 쉬고 말했다.
“일단 천도연에 한번도 참석한 적 없는 신하와 공을 세운 신하를 나눠서 생각해봅시다.”
즉저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최근에 주극성에서 등선한 신하는 많지 않으니 무엇을 기준으로 삼을지는 생각해 보셨습니까?”
온객행이 고개를 흔들자 즉저는 작게 한숨을 쉬고 주극성에서 그동안 포상을 어떻게 했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주자서는 내원에 앉아 지주가 낮잠 자는 것을 보았다. 이 치는 주자서가 영력을 쌓는 것에 대한 것을 알려주기 위해 온 것이라고 했는데 처음 만난 날부터 벌써 사흘 동안 지주는 먹고 자기만 했다. 외실 왼편에 있는 객실에 머무는 지주가 주자서에게 영력에 관련되어 해준 말은
“영력은 세월이 쌓아주는 것이네.”
정도이다. 아직도 멀리 있는 것이 잘 보이지 않았고 청각은 날카롭고 예민했지만 말로 표현하는 것이 서툰 주자서는 내원에 앉아서 근처에서 들리는 소리에 집중하여 거리를 가늠하는 것을 연습했다. 주자서는 내원과 외실에서 일하는 나흘마의 기운과 온객행, 지주의 기운이 다르다는 것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고 예전만큼 하인들의 움직임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지주가 뒤척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목이 마르군. 차를 준비해라.”
주자서가 주변을 둘러보고 지주를 보았다. 지주가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차 마시자고.”
주자서가 어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주방에 들어온 주자서를 보고 하인이 놀라며 말했다.
“마님!”
주자서가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마님?”
하인이 두 손을 모아 공손히 조아리며 말했다.
“마님. 필요하신 것이 있으시면 내원과 외실에 있는 하인에게 하명하시면 됩니다.”
주자서가 당황하며 말했다.
“저… 저는 마님이 아닌데….”
주자서가 먹고 마시는 것의 대부분은 온객행이 직접 시중을 들었기 때문에 주자서는 대부분의 하인을 잘 알지 못했다. 온객행의 시중도 어색한 주자서는 하인들이 자신에게 조아릴 때마다 황황(遑遑)했다. 그들이 두꺼비라는 소리를 들은 이후로 주자서는 그들이 귀엽고 가여워서 한번도 하인 부리듯 부려본 적이 없었다. 얼른 다가가 하인의 소매를 잡아 일으킨 주자서가 말했다.
“예를 거두세요. 저는 마님이 아닙니다.”
하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자서를 보자 주자서가 ‘큼’ 하고 헛기침하고 말했다.
“지주대인께서 차를 찾으셔서 왔습니다.”
하인이 다시 고개를 조아리고 말했다.
“외실에 차를 준비할까요?”
주자서가 당황하며 말했다.
“아… 아니요. 어떻게… 제가….”
하인이 얼른 일어나 소반에 다구를 준비했다. 주자서는 곁에 서서 하인이 하는 것을 허둥대며 보고 있다가 하인과 함께 내원으로 나왔다.

하인이 내원에 내놓은 탁상 위에 소반을 올려놓고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끓인 물을 가져올까요? 화로를 가져올까요?”
주자서는 하인의 소매를 잡아 일으키며 말했다.
“아…”
지주는 내원 돌난간에 벌렁 누워 있다가 몸을 일으켜 주자서가 쩔쩔매는 것을 보고 있다가 코웃음 치며 말했다.
“차 한번 얻어 마시기 힘들군.”
하인은 허둥대는 주자서를 의자에 앉히고 다시 주방으로 가서 물을 끓였다. 여러 곡절 끝에 주자서가 내린 차를 마신 지주는 인상을 쓰고 말했다.
“정말 더럽게 맛없군. 자네는 다예(茶藝)라는 말도 들어본 적 없는가?”
주자서가 풀이 죽어 고개를 숙였다. 지주가 찻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차를 마시는 것은 단순히 목을 축이는 것이 아니네. 특징, 색, 맛, 향, 느낌을 경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지주가 주자서가 찻주전자에 넣은 찻잎을 보고 말했다.
“벽봉(碧峰)이군. 먼저 모양을 보고, 색을 본 다음에 우린 차의 색을 보고 맛을 보고 향을 느끼는 거지.”
그러더니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영력을 쌓는 것도 이것과 같아. 영력의 존재를 알고 크기를 가늠하고 흐름을 느낀 다음에….”
지주가 도자기 찻잔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찻잔에 담는 것처럼 담는 거야.”

주자서가 표정을 구기며 지주를 보자 지주가 한숨을 쉬고 자리에서 일어나 주자서가 내린 차를 한잔 따라 주자서에게 권하며 말했다.
“자 마셔봐.”
주자서가 찻잔을 들어 입을 축였다. 지주는 주자서가 차를 마시는 것을 보고 주자서가 우린 차를 모두 내원에 버리고 다시 차를 내렸다. 지주는 주자서의 찻잔을 빼앗아 안에 든 차를 버리고 자기가 내린 차를 따라주며 말했다.
“자 마셔봐. 내가 내린 건 더 맛있을 거야.”
주자서는 찻잔을 들어 입을 축였다. 주자서가 내린 차보다 조금 더 향기로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큰 차이는 아니었기 때문에 덤덤한 주자서의 반응에 지주가 혀를 차며 말했다.
“이 방법은 아닌 것 같군.”
주자서가 찻잔을 내려놓고 지주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지주대인.”
지주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사래 치며 말했다.
“미안해 말게. 덕분에 내가 이렇게 편히 지내지 않는가? 되도록 오래 내 제자가 되어주게.”
주자서가 눈썹을 찌푸리고 지주를 보자 지주가 말했다.
“이게 얼마 만에 쉬는 것인 줄 아는가? 자네는 꼭 상전은 한 분만 두게.”

지주가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말했다.
“내가 가르치지 않아도 자네는 그릇이 커서 영력이 모일 거야.”
주자서가 대답 없이 고개를 숙였다. 지주가 주자서 곁에 가깝게 붙어 앉으며 말했다.
“자네는 너무 말이 없어. 그건 좋지 않아. 궁금하면 물어보게.”
주자서가 고개를 들어 지주를 보고 입을 달싹였다. 지주가 답답하다는 듯이 주자서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말하라니까! 괜찮아.”
주자서가 한참 망설이다 물었다.
“눈을 바치셨다 들었는데….”
지주가 눈을 깜빡이며 주자서를 보다가 ‘하하하’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그렇지 천존께 눈을 바쳤지 하지만 나는 거미라 홑눈이랑 겹눈이 있거든 홑눈을 바쳐서 겹눈이 남았지. 천룡은 겹눈밖에 없어서 눈을 바치기는 했지만 뭐 있으나 없으나 별반 다르지 않는 눈이었으니 상관없지. 벌이라고 하지만 그냥 명분이야. 천존께서 무슨 생각이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주자서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눈이 없는데 어찌 보입니까?”
지주가 주자서의 어깨에서 손을 떼고 탁상에 고개를 괴고 말했다.
“아… 거기서부터? 흠…”
주자서가 주눅이 들어 고개를 숙이자 지주가 자세를 바로 하며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괜찮아! 모르면 배우면 되지. 너는 사람이었으니까 배움이 빠를 거야.”


온객행은 해가 질 무렵에 즉저에게 사정하여 잠깐 사라각에 들렸다. 명부만 내놓으면 된다고 했던 문귀는 또 어디서 일을 잔뜩 만들어서 온객행의 서안 위에 올려 놓았다. 일 처리를 위해 참고해야 하는 것들은 모두 의풍전에 있었기 때문에 다시 돌아가 봐야 했다. 온객행은 입을 잔뜩 내밀고 서둘러 사라각으로 왔다. 지주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주자서만 내원에 앉아 온객행의 죽간을 읽고 있었다. 온객행이 얼른 주자서에게 다가가 그의 등을 끌어안고 말했다.
“유서. 보고 싶었어.”
주자서는 깜짝 놀라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객행!”
온객행이 주자서 옆에 앉아 주자서가 보고 있던 서간을 보고 물었다.
“뭘 보고 있었는데 내가 온 줄도 몰랐어?”
주자서가 얼른 서간을 치우고 말했다.
“서안에 있던 서책을 읽어 보았습니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품에 끌어안고 말했다.
“전부 재미없는 내용이지? 밥은 먹었어?”
주자서가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온객행이 주변을 둘러보고 물었다.
“지주는?”
주자서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찾아볼 것이 있으시다고 장서각에 가셨습니다.”
풀이 죽은 주자서의 얼굴을 잡고 온객행이 물었다.
“왜? 무슨 일 있었어?”
주자서는 고개를 작게 흔들었다. 온객행이 눈썹을 늘어뜨리고 울상을 하자 주자서가 고개를 들어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제가 잘 몰라서….”

온객행이 주자서의 손을 잡고 말했다.
“유서는 몰라도 돼. 내가 다 알아서 할 게.”
주자서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탁상 위에 올려놓은 죽간을 잘 말아 들고 일어나 온객행을 내실로 이끌며 말했다.
“오늘도 서간을 읽으십니까?”
온객행이 주자서의 팔에 매달리며 말했다.
“아니. 오늘은 의풍전에 다시 가야 해. 유서도 같이 갈래?”
주자서가 고심하는 것을 보고 있다가 즉저가 생각난 온객행이 말했다.
“아니야. 일하러 가는 건데 유서가 있으면 일 못해.”
주자서가 다시 고개를 숙이고 머뭇거리자 온객행이 말했다.
“유서는 쉬고 있어.”
주자서가 온객행의 손을 잡고 말했다.
“저도… 저도 뭔가 도움이 되고 싶어요.”
온객행은 주자서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유서는 내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 아주 큰 도움이야. 유서가 주극성에서 제일 중요한 일을 하고 있어. 유서가 아니었으면 나는 도망가버렸을 거야. 차라리 봉인되는 것이 낫지.”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태평호에는 언제 갑니까?”
온객행이 주자서를 보고 물었다.
“태평호에 가고 싶어?”
주자서가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주인이랑 아상께서는 어디 계십니까?”
온객행이 주자서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주자서를 침상 쪽으로 끌고 가며 말했다.
“너를 버리고 간 주요랑 아상은 왜 찾아?”
주자서가 온객행의 팔을 뿌리치고 온객행의 양손을 잡고 말했다.
“객행. 말씀드렸잖아요. 저를 버리고 가신 것이 아닙니다.”
온객행이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버리고 간 거야. 다음에 만나면 잔소리를 퍼부어야지.”
주자서가 온객행의 손을 잡고 흔들며 그를 불렀다.
“객행.”
온객행이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나도 태평호로 돌아가고 싶어. 여긴 너무 답답해.”
온객행의 말에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나흘 후면 천도연인데 유서도 같이 가자. 주요랑 아상도 올 거야.”
주자서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지주대인께서 말씀하시기를 등선한 신선만 갈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어찌 감히….”
온객행이 입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다.
“유서가 안 가면 나도 가고 싶지 않아.”
주자서가 온객행에게 다가가 그를 안고 말했다.
“고작 하루 아닙니까.”
온객행이 주자서의 허리를 안고 말했다.
“나는 한순간도 떨어져 있고 싶지 않아.”
주자서가 웃으며 말했다.
“저도 같이 의풍전에 갈까요?”
온객행이 한참 망설이다 말했다.
“의풍전에 즉저가 있어.”
주자서가 온객행의 어깨에 뺨을 비비고 말했다.
“괜찮습니다. 저는 이제 사람이 아니잖아요.”
온객행이 주자서의 어깨를 잡아 떼어놓고 말했다.
“유서! 즉저는 요괴도 먹는다구. 특히 유서처럼 예쁘고 사랑스러운 화사라면 즉저에게 한 입감도 안되니까 조심해야 해.”
주자서가 눈을 굴리며 말했다.
“한 입감….”

온객행이 주자서를 끌어당겨 안고 말했다.
“나도 유서가 도와줬으면 좋겠는데… 지금 하는 일은 많이 알면 알수록 주극성에서 떠나기 힘들어서 그래.”
주자서가 온객행의 품에서 나와 온객행을 보고 물었다.
“그럼 객행은 어떡합니까?”
온객행이 배시시 웃으며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나야 사고를 쳐서 벌을 받고 쫓겨나면 되지.”
주자서가 온객행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객행! 나도 그대가 다치고 아픈 것은 싫습니다.”
주자서의 말에 온객행이 헤벌쭉거리며 웃었다. 주자서는 온객행의 표정을 보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저는 객행이 있는 곳에 있으면 어디든지 상관없어요.”
온객행이 놀란 얼굴로 주자서를 보다가 얼굴을 붙여오자 주자서가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객행. 부탁이 있습니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뺨에 입을 맞추고 말했다.
“입 맞춰 주면 뭐든 들어드리리다.”

주자서가 고개를 돌려 온객행을 마주 보고 있다가 눈을 감고 온객행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주자서가 먼저 다가와 입을 맞춘 것은 처음이라 온객행은 낮게 웃으며 주자서의 얼굴을 잡았다. 주자서는 온객행과의 입맞춤이 점점 익숙해지는지 가끔 온객행의 입술을 핥거나 입안에서 그의 혀를 밀어내기도 했다. 그러면 온객행은 그 작은 변화에 흥분해서 주자서를 한참 괴롭혔다. 이마를 맞붙이고 온객행이 말했다.
“하아. 현리에게 서신을 보냈는데 소식이 없어.”
주자서가 온객행의 손을 뿌리치고 말했다.
“서신을 보내셨습니까?”
온객행이 주자서의 허리를 끌어안고 그의 가슴에 고개를 기대며 말했다.
“그럼. 내가 보낸다고 했잖소.”
주자서가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손에 묻고 말했다.
“객행. 정말….”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주극성에 그대가 나의 반려라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는데 왜 부끄러워 하시오? 혹시 내가 부끄럽습니까?”
주자서가 대답 없이 깊게 한숨을 쉬자 온객행이 고개를 들어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유서?”
주자서가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손부채질하며 말했다.
“하인들이 저를 뭐라고 부르는지 아십니까?”
온객행이 고개를 갸웃하고 주자서를 보고 물었다.
“나흘마가?”
주자서는 허리를 감싼 온객행의 팔을 떼어내고 온객행을 탁상에 앉히며 말했다.
“마님이래요.”

온객행이 웃음을 참으며 주자서의 눈치를 보자 주자서가 온객행을 쏘아보며 말했다.
“나를 부인이나 내자라고 부르는 것은 그만두시라 말씀드렸는데….”
온객행이 얼굴에 웃음을 지우기 위해 노력하며 주자서의 팔을 잡고 말했다.
“아이참! 내가 그렇게 부른 것이 아니오. 남들이 유서 이름을 함부로 부르게 둘 수는 없지 않소?”
주자서가 온객행의 팔을 뿌리치고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왜 안됩니까?”
온객행이 주자서의 손을 잡고 말했다.
“그럼 유서는 외갓집 부인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시오?”
주자서가 온객행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부인이라 부르지 마시오!”
온객행이 웃으며 주자서의 손을 다시 잡았다.
“알겠소. 알겠소. 내가 부인하리다. 부군이라 부르면 되겠습니까? 부군?”
주자서가 온객행의 부름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 차라리 부하로 삼으시오. 서리(胥吏)나 아전(衙前)같이 낮은 직책도 상관없습니다.”
온객행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어찌 그런 미천한 일을 시키라는 말이오? 상공(相公)하시오. 상공.”
주자서가 온객행의 말에 코웃음 치고 말했다.
“어디의 상공이요 대체?”
온객행이 주자서를 끌어당기며 말했다.
“나의 상공이지요.”

주자서가 온객행에게 가만히 안겨 있다가 말했다.
“저는 태평호로 가면 안됩니까?”
온객행이 한참 생각하고 말했다.
“혼자서?”
주자서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더 꼭 끌어안고 말했다.
“싫어. 내 옆에 있어.”
주자서가 온객행의 등을 쓸며 말했다.
“객행. 나는 이곳에서 아무 쓸모가 없어요. 태평호로 가도 쓸모가 없는 것은 마찬가지겠지만 여기 있으면 너무 많은 분들께 누(累)가 됩니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목덜미에 얼굴을 비비고 말했다.
“싫어….”
온객행이 물었다.
“누구야? 누가 그런 말을 했어?”
주자서가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객행….”
온객행이 주자서의 양쪽 어깨를 잡고 말했다.
“누구야? 대체 누가 그런 쓸데없는 말을 한 거야? 유서가 얼마나 중요한데. 정말이야. 나에게 유서가 제일 중요한 일이란 말이야.”

주자서가 온객행의 얼굴을 잡고 말했다.
“주극성에서 매일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은 저뿐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렇게 계속 누를 끼칠 수는 없어요.”
온객행이 주자서의 손목을 잡고 말했다.
“누가 아니야. 나는 유서가 더 기대줬으면 좋겠어.”
주자서가 온객행을 보고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제 우리 둘만의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온객행은 주자서의 말이 기쁘면서도 슬펐다.
“우리 둘….”
주자서가 온객행의 뺨을 쓸고 말했다.
“꼭 주극성에 머물지 않아도 된다 하셨습니다. 저를 보러 태평호로 오세요.”
온객행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싫어… 가지 마. 천도연이 끝나면 가… 아니 중원(中元)이 끝나면 가.”
주자서가 웃으며 온객행의 눈가를 쓸고 말했다.
“객행께서는 태평호의 수선이시니 제가 객행을 대신해서 태평호를 지키고 있으면 안됩니까?”
온객행이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나의 상공이니까?”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온객행의 뺨을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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