趁火打劫 | 27. 불이 난 틈에 도둑질을 한다.
온객행은 반도원에서 열린 구름길을 내려오기 위해 어지간히 애를 써야 했다. 반도원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복숭아를 노리는 영혼이 매우 많았기 때문에 그들을 피해 다시 요대로 돌아오는 길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온객행은 자신에게 돌진하는 정신 나간 영들을 이리저리 피하며 혼탁한 구름 속에서 요대로 향하는 길을 찾아야 했다. 그러다 온객행은 주자서가 걱정되어 짜증이 일었다. 온객행은 구름 속에 물을 모아 주변에 두르고 다가오는 것들을 위협하다 구름 사이에 밖으로 통하는 틈을 발견했다.
고상은 요대의 중궁 천장에 있는 그림 속의 구름에서 나와 금모원군을 만났다. 금모원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생각보다 빨리 왔네. 누군가 될 줄은 알았지만 설마 너일 줄이야.”
고상이 다소곳이 손을 모으고 인사하며 말했다.
“황룡 하(夏), 금모원군을 뵙습니다.”
금모원군이 고상을 보고 말했다.
“그래. 앞으로 동왕공을 잘 모시도록 해라.”
고상이 고개를 힐끔 들어 금모원군을 보았다. 금모원군은 옆에 서 있는 양조에게 뭐라고 말하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 나른하게 용호좌 위에 기댔다.
양조가 중궁을 나가자 상석 옆에 서 있던 시동이 다가와 고상에게 말했다.
“황룡의 삼하궁(三河宮)으로 가 보시겠습니까?”
고상이 손을 내리고 시동에게 물었다.
“거기가 어디인데요? 저희 주인은 어디 계세요?”
시동이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산천대제께서는 동해에 계십니다.”
고상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이참! 내 주인은 태평호의 무지기란 말이예요.”
시동이 당황하며 무릎 꿇고 말했다.
“황룡. 통촉하소서.”
고상이 당황해 시동의 팔을 잡고 일으키며 말했다.
“주요는… 무지기는 어디 있어요?”
시동이 상석 쪽으로 힐끔 눈치를 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현악에 계십니다.”
고상이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소매를 들어 금모원군께 인사하고 현악, 무당산으로 향했다.
남쪽에서 천존의 명령을 받아 서둘러 온 주작과 적룡은 황룡이었던 후토의 모습을 보고 당황했다. 그래도 사람 꼴은 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너무 초라한 모습이라 보는 이가 오히려 민망했다. 적송자가 말했다.
“규산으로 데리고 가면 되네.”
주요가 후토를 보고 말했다.
“사람 가까이에 두면 위험하네. 그는 사람을 먹으니.”
적룡이 들고 있던 항아리의 천을 뜯어내자 후토는 소리를 지르다 항아리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적룡이 다시 천을 둘러 꼼꼼히 봉인하며 말했다.
“경계하겠습니다.”
주작이 소매를 들어 적송자와 주요에게 인사하며 말했다.
“누를 범했습니다. 현명을 부탁드립니다.”
주요 역시 소매를 들어 적송자에게 인사했다. 적송자는 인사하는 이들을 보고 있다가 신당으로 향하며 말했다.
“그럼 이 노인네는 먼저 가보겠네.”
주요가 자세를 바로 하고 주작을 보고 말했다.
“축융대선, 전당군. 저도 그럼 이만.”
주작이 주요를 붙잡으며 말했다.
“수원. 태평호의 화사가 승천했습니다.”
주요가 주작에게 다가가 말했다.
“승천? 아상이요?”
주작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천존께서 봉호를 내리셨소. 장강 강주에 검영이 북해 용왕으로 봉해졌습니다.”
주요가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강주의 검영이요? 흑망이 아니라요?”
적룡이 웃으며 말했다.
“천명을 받은 것은 검영과 흑망뿐이 아닙니다.”
주요가 적룡을 보고 물었다.
“그럼 흑망은…?”
신당에서 패하가 나오며 말했다.
“원군께서 뭐로든 봉하셨겠죠.”
주요가 뒤 돌아 패하를 보고 말했다.
“원군께서…? 그럼 요대에 있는 겁니까?”
주작과 적룡이 패하에게 인사하고 말했다.
“반도원에 있겠군요.”
패하가 주요에게 다가가 말했다.
“등선했으니 앞으로 종종 보겠군요.”
주요가 물었다.
“아상은… 화사는 어디에 있습니까?”
주작이 말했다.
“반도원에 함께 있지 않을까요?”
주요가 패하를 보고 물었다.
“발의 아이는요?”
패하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신당으로 들어오는 송문 앞에 서 있는 시위에게 갔다.
지주가 몸에서 뿜어냈던 실을 거두고 말했다.
“진정해. 진정해. 우리가 이럴 필요가 있나? 이름이 뭔가?”
주자서가 지주를 노려보며 말했다.
“아상은 어디 계시지? 무슨 짓을 한 거야?”
지주가 다가가자 주자서는 칼을 더 바짝 목에 가져 대며 말했다.
“아상께서는 어디 계시는가?”
지주가 혀를 차며 말했다.
“나야 모르지! 그것을 나에게 묻나?”
그러다 밖에서 지주에게 보고를 하던 시위가 인사하는 소리가 들렸다.
“오공공.”
주자서가 즉저의 호칭에 잠시 멈칫한 사이 지주가 주자서의 손에서 칼을 빼앗아 다시 주자서의 검집에 넣고 그를 무릎 꿇리며 말했다.
“고개는 들지 말고. 내 말이 끝나면 내게 인사하고 밖으로 나가서 시위 곁에 있게.”
주자서가 고개를 들어 지주를 보자 지주가 주자서의 머리를 누르며 말했다.
“고개 들지 말라고.”
즉저가 방 안으로 들어와 지주에게 말했다.
“사람이 하는 일은 믿을 수가 있어야지!”
지주가 주자서의 어깨를 툭 치자 주자서는 포권하여 인사하고 방을 나갔다. 즉저가 나가는 사람을 보고 물었다.
“무슨 일인가?”
지주가 침상에 걸터앉고 말했다.
“천주서원(天柱書院)의 일이네. 일단 황룡이 없어졌으니 보고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즉저가 탁상으로 가서 앉으며 말했다.
“대체 어디를 다녀온 거야? 현무께서는 또 어디 가셨나?”
지주가 짜증 내며 말했다.
“그걸 왜 내게 묻소?”
즉저가 혀를 차며 말했다.
“황룡 그 놈이 천존께 봉인 당했네. 이제 어디서 사람을 데려오지?”
지주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 고약한 취미생활 좀 나 모르게 하시오.”
즉저가 지주를 쏘아보며 말했다.
“자네야 뒷배가 있으니 아쉬울 것이 없지.”
지주가 자리에서 일어나 탁상으로 가서 앉으며 말했다.
“지금 그게 문제입니까? 천존께서 아셨으면 우리도 처벌을 피할 수 없어요.”
즉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전부 황룡에게 뒤집어씌우면 될 일 아닌가. 오히려 현무께서 공을 세우셨으니 이번에야 말로….”
지주가 차를 준비하며 말했다.
“우사께서 오셨어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즉저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발의 아이가 어디 갔을까?”
지주가 즉저를 보고 물었다.
“영력도 없고 그냥 사람 아니오? 그 치를 찾아서 어쩌려는 것인지….”
즉저가 지주를 보고 혀를 차며 말했다.
“현무께서 말씀하실 때 뭐 했나? 황룡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은 뒤집어씌우는 것이고 화풀이할 상대는 또 다른 이야기 아닌가?”
지주가 코웃음 치며 말했다.
“그러니까 그 고약한 취미생활 좀 나 모르게 하라니까요.”
즉저가 지주에게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 치는 흑망의 희첩이네.”
지주가 손을 멈추고 즉저를 보고 말했다.
“흑망의 희첩?”
즉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다행히 흑망 그 놈이 흑룡이 되지는 않았지만 뭐라도 쥐고 있는 것이 낫지 않겠나?”
지주가 코웃음 치며 말했다.
“그렇게 경계할 필요 없습니다.”
즉저가 장지문으로 향하며 말했다.
“자네야 뒷배가 있으니 아쉬울 것이 없지.”
지주가 즉저를 따라 나가며 말했다.
“천룡께서도 저의 뒷배가 아닙니까.”
즉저가 콧방귀를 끼며 말했다.
“내게 다 맡겨 놓고 대체 뭘 하고 다니는 건가?”
지주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뒷배가 있다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끈 떨어진 연이 되는 것은 항상 시간의 문제입니다.”
즉저가 고개를 돌려 지주를 보고 물었다.
“자네?”
지주가 즉저를 배웅하며 말했다.
“제가 영귀 어르신께 내쳐지면 나는 천룡 밖에 없어요. 아시죠?”
즉저가 웃으며 말했다.
“헛소리. 현무께서 계시는데 무슨 걱정인가?”
지주가 즉저에게 말했다.
“사람의 발로 도망쳤으니 멀리 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벌써 반나절이나 지났으니 모를 일이에요. 수색 범위를 서원 밖으로 넓히시죠.”
즉저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며 말했다.
“사람은 매일 자고 먹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을 테니 멀리 가지 못했을 거야.”
지주는 즉저를 잘 달래서 배웅하고 다시 별궁 안으로 들어오면서 문 앞에 시위 옆에 고개를 숙이고 서 있는 주자서의 팔을 잡아 별궁 안으로 들어갔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지주의 불평을 들은 주자서가 눈치를 보다 탁상이 있는 자리에 가서 앉아 지주가 내리다 만 찻물을 마셨다.
지주가 주자서를 보고 물었다.
“배가 고프겠군. 뭐라도 먹겠나?”
주자서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괜찮소. 나를 왜 도운 것이오?”
지주가 주자서 앞에 앉아 찻주전자에 물을 담으며 말했다.
“내가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아무래도 현무께서 원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야.”
주자서가 찻잔을 내려놓고 물었다.
“아상은 어디 계시오?”
지주가 찻잔에 차를 따르며 말했다.
“하늘로 승천했으니 지금쯤 어디 있는지 나야 모르지.”
주자서가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승천? 그게 무슨 소리요?”
지주가 찻잔을 들어 ‘후룩’ 마신 다음 말했다.
“네 몸에 있던 발의 영력이 사라졌네. 느끼지 못하겠는가?”
주자서는 지주의 말에 확실히 맥이 풀리고 고단한 느낌이 사라지고 몸에 힘이 들어간 것이 느껴졌다.
주자서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지주가 말을 이었다.
“발의 힘으로 승천했으니 못해도 신선이 됐을 것 아닌가?”
주자서가 다시 지주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자 지주가 물었다.
“너는 화사랑 무슨 관계인데 그렇게 화사를 찾는 것이냐?”
주자서가 표정을 구기고 입을 달싹이며 대답을 망설였다. 지주는 찻잔에 남은 차를 다 마시고 손을 내젓고 말했다.
“복잡한 사정이 있는 모양이군. 됐네. 별로 알고 싶지 않아.”
주자서가 고개를 숙이자 지주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나중에 천룡이나 지주를 벌한다고 하거든 좀 도와주게. 천룡이 벌을 받으면 나의 일을 누구에게 미루겠는가?”
주자서가 표정을 구기고 말했다.
“제가 뭐라고 돕는다는 말입니까? 일개 사람이라면서요?”
지주가 주자서를 지나쳐 침상으로 가 벌렁 눕고 말했다.
“그것도 그렇군. 난 좀 쉬어야 하겠으니 자네도 좀 쉬게.”
주자서가 장지문을 보고 물었다.
“오공공께서 다시 오지 않을까요?”
지주가 신발을 벗고 침상 위로 올라가며 말했다.
“지금 오공공 발등에 불이 떨어졌으니 여기 다시 올 여유가 생길지 모르겠군.”
그리고 이불을 펴서 덮었다. 주자서는 잠이 든 지주를 보고 있다가 탁상에 있는 차를 좀 더 마시고 평상으로 가서 몸을 뉘었다.
주자서는 생각했다. 어떤 일에 휘말린 것 같은데 주자서는 아직도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으니 답답했다. 몸에 있는 영력 때문에 생긴 일이니 영력이 사라졌으면 더 이상 주자서의 효용(效用)이 없어진 셈이다. 어젯밤에 객실에서 나와 주자서의 머릿속을 맴돌던 생각이 다시 머릿속을 채웠다. 돌아갈 곳이 없다는 것은 참 외로운 일이다. 제대로 작별 인사를 하고 싶었는데 얼떨결에 휩쓸려서 혼자만 멀리 쓸려온 느낌이다. 태평호에서 기연(奇緣)으로 만난 이들을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주자서는 조금 아쉬웠다. 아니 정말 조금일까? 요대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주자서는 본인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놓지 못했다. 하지만 무당산의 서원이라는 이 곳에 다시 살아 숨 쉬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니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그러다 자신의 처지가 생각나 마음이 답답해지는 것이다. 주자서는 휘몰아치는 생각에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주자서의 얼굴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지주와 함께 주자서를 호송했던 시위, 시위대장 그리고 즉저 정도이다. 일단 서원의 사졸로 잘 섞여 있다가 서쪽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서쪽은 산세가 험해 사람이 많이 살지 않아 숨어 살기 좋았다. 아니 좋다고 한다. 주자서는 아직 서쪽에 가본 적이 없다. ‘한 갑자… 오래 살 팔자가 아닌 줄 알았더니….’ 그 한 갑자를 함께하자던 이가 있었는데. 주자서에게 기나긴 한 갑자를 짧다며 아쉬워한 이가 있었는데. 혼자 버티려고 하니 버겁다. 그렇다고 두 분의 모친께서 주신 목숨을 버릴 수는 없어서 버티는 것이다. 전장에서 버텼던 것처럼. 주자서는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겠다고 평상에 앉아 있었다.
해가 져서 사위가 다 어두워질 동안 평상에 앉아 있던 주자서는 침상에 누워있는 지주를 향해 포권하여 인사하고 별궁을 나왔다. 순찰을 도는 다른 시위, 사졸과 섞여서 서원 이곳저곳을 떠돌다 동문의 번까지 서게 됐다. 주자서와 함께 번을 서는 사졸이 동문에 기대서며 말했다.
“나라에서 운영하는 서원이라 벌이가 좋다더니 기이한 일이 일어나 어디 무서워서 버티겠는가?”
주자서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정말 기이합니다.”
사졸이 주자서를 힐끔 보며 말했다.
“이곳으로 온 지 얼마 안 된 모양이군? 자네도 팔려 왔나?”
주자서가 고개를 숙이고 대답하지 않자 사졸이 다시 일어나 자세를 바로 하고 말했다.
“사람이 없어졌는데 찾는 이가 없으니 더 기이하지.”
주자서는 자신의 처지가 사졸이 말하는 것과 같아서 조금 우울해졌다.
주작과 적룡이 규산으로 향하고 패하와 함께 요대로 향하던 주요는 구름 속을 날고 있는 황룡과 마주쳤다. 고상이 주요를 발견하고 그의 품에 안겨 들며 말했다.
“주요!”
둘은 한참 안고 있다가 주요가 고상을 떼어내고 얼굴을 쓸며 말했다.
“아상. 어떻게 된 일이야?”
고상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주요. 나 황룡이 됐어. 그래서 화사인데도 빨갛지가 않았나 봐.”
주요가 고개를 돌려 패하를 쏘아보고 말했다.
“황룡?”
고상이 주요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며 말했다.
“응. 이제 주요가 하늘로 가면 따라갈 수 있어. 그렇지?”
주요가 다시 고개를 돌려 고상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이제 내가 아상을 따라가야 하겠는데?”
고상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 뭐 어떻게든 같이 있으면 되는 거지.”
주요가 고상을 품에서 놓고 패하를 보고 말했다.
“원군께서 알고 계시는 일이오?”
패하는 조금 놀란 얼굴을 하더니 말했다.
“저는 현악에서 일어나는 일 말고는 들은 것이 없습니다.”
주요는 고상을 보고 한숨 쉬며 말했다.
“이 어린 화사를 황룡자리에 앉혀 놓으면 그 뒷감당을 누가 합니까?”
패하가 다시 옥산으로 향하며 말했다.
“수원께서 바빠지시겠군요.”
주요도 고상을 데리고 다시 옥산으로 향했다.
날이 다 저물어 옥산에 도착했다. 청조의 안내로 다시 요대 안으로 들어온 주요와 고상은 금모원군을 배알(拜謁)했다. 요대에는 청룡과 백룡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청룡과 백룡이 고상에게 다가가 머리를 조아리며 인사했다.
“황룡을 뵙습니다.”
고상은 당황하여 소매를 들어 인사했다.
“어… 어….”
주요가 고상의 옆에 서서 소매를 들어 말했다.
“구망대선과 오윤왕(敖潤王)을 뵙습니다.”
고상이 주요를 힐끔 보고 따라서 고개를 숙였다. 청룡이 몸을 바로 세우고 품속에서 황룡의 인장을 꺼내 주요에게 건네고 말했다.
“삼하궁의 주인이 되셨으니 저희와 함께 가시면 됩니다.”
주요가 인장을 받아 한참 보고 있다가 그것을 고상에게 주며 말했다.
“아상. 아… 하천선(夏天仙).”
고상이 주요의 손에 들린 인장을 받아 살펴보며 말했다.
“천선은 무슨. 그냥 아상이라고 해.”
백룡이 고상을 보고 살포시 웃었다. 주요가 청룡과 백룡의 눈치를 보며 고상에게 다가가 귓가에 속삭였다.
“천존의 명으로 등선하는 이는 많지 않아.”
고상은 인장을 다시 주요에게 건네고 말했다.
“그래? 우리 태평호로 안가?”
청룡이 웃으며 말했다.
“태평호에는 주인이 생겼으니 저희와 삼하궁으로 가시지요.”
고상이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태평호의 주인은 주요인데….”
주요가 고상의 소매를 잡고 청룡에게 말했다.
“구망께서 먼저 가시지요.”
청룡이 고개를 돌려 원군에게 인사하고 중궁을 나갔다. 주요와 고상도 원군께 인사하고 청룡과 백룡을 따라 중궁을 나왔다.
깊은 물속으로 빠져나온 온객행은 뱀의 모습으로 변하여 수면 위로 올라갔다. 그가 도착한 곳은 이상하게도 요대가 아니라 태평호였다. 방금 온객행이 수면 위로 나오면서 만들어낸 물결이 태평호에 파동을 일으켰다. 하늘에 떠있는 보름달을 보고 온객행은 ‘벌써 미월이구나’ 했다. 달빛을 받은 온객행의 비늘은 그 전보다 더 푸르게 빛났다. 온객행은 그제야 자신의 모습이 더 이상 뱀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온객행은 물에서 나와 모습을 바꾸어 부유각으로 향했다. 부유각은 소령 선창에 매여 온객행이 떠나기 전과 같은 모습이다. 온객행은 부유각 내부를 살펴보고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여 백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백택에는 천교와 보살이 화로에 더덕을 굽고 있었다. 천교가 말했다.
“다들 어디 간 걸까?”
보살이 더덕을 뒤집으며 말했다.
“이렇게 실한 더덕은 진짜 오랜만이야.”
천교가 보살 옆에 쪼그려 앉으며 말했다.
“아상도 더덕 좋아하는데….”
온객행이 재실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아상은 귀한 몸이 되셔서 앞으로 보기 힘들거요.”
천교와 보살이 일어나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파사공자? 어찌 뭍에 나와 계십니까?”
온객행이 물었다.
“주요는 어디 있습니까?”
보살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주인께서 저희에게 어디 가신다고 말씀하고 가십니까?”
온객행이 다시 뒤돌아 나가려고 하자 천교가 온객행을 붙잡았다.
“파사공자! 더덕 드실래요?”
온객행이 뒤돌아 천교와 보살을 보고 말했다.
“이제 내가 태평호의 주인이오.”
그리고 모습을 용으로 바꿔 하늘로 날아올랐다. 천교와 보살이 문간으로 나와 날아가는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태평호의 주인이 바뀌었나?”
보살이 천교 옆에 서있다가 다시 더덕을 올려 놓은 화로로 가서 말했다.
“앗! 내 더덕! 좀… 탔어!”
온객행은 옥산으로 가려다 마지막에 고상이 주자서를 놓고 온 곳이 현악 금정이라는 것이 떠올라 현악으로 향했다. 태평호에서 현악까지는 거리가 멀지 않았기 때문에 해가 떠오를 즈음에 도착한 온객행은 현무를 모시는 천주서원으로 향했다. 산문에 도착한 온객행은 모습을 사람으로 바꾸어 사문을 지키고 있는 시위에게 물었다.
“지주는 서원에 있는가?”
온객행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포권하며 말했다.
“지주대인은 왜 찾으시오?”
온객행이 조금은 초조한 얼굴로 말했다.
“내가 부탁할 것이 있어 찾아왔소. 흑망이 왔다고 전해주겠소?”
시위는 온객행의 얼굴을 빤히 보고 움직일 낌새가 보이지 않자 온객행이 품속에서 염낭을 열어 은정을 쥐여주고 다시 말했다.
“지주대인께 흑망이 왔다고 전해주시오.”
그제야 시위는 은정을 손에 놓고 굴려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서원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당황한 얼굴의 지주가 나와 온객행을 반겼다.
“흑망! 진정하고 내 말을 들어보게.”
온객행이 눈썹을 찌푸리며 지주를 보자 지주가 온객행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서원 안으로 안내하며 말했다.
“내가 좀 더 신경을 썼어야 하는데 그새 도망갈 줄 어찌 알았겠는가?”
온객행이 지주의 팔을 뿌리치며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대체 아상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지주가 표정을 구기며 물었다.
“대체 그 화사가 뭐라고 다들 그러는 것인가?”
온객행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
“그 화사가 황룡이 되었으니 큰일 났군 협각(鋏角)”
지주가 당황하며 온객행의 입을 막고 소리쳤다.
“으악! 흑망! 제발. 언제 적 이름인가 조용히 좀 하게.”
그러더니 온객행을 놓아주고 다시 물었다.
“뭐라고? 황룡이 되었다고?”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유서는 어디 있나?”
지주가 온객행을 별궁으로 안내하며 말했다.
“화사가 황룡이 되었다고? 이거 큰일이군.”
온객행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우리 유서는 어디 있나? 발의 후손은 어디 있어?”
지주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흑망. 일단 차를 한잔하면서 내 얘기를 들어보면….”
그들이 별궁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 동문이 시끄러웠다.
즉저는 무당산 근처를 모두 수색했지만 발의 후손을 찾지 못했다. 초조해진 즉저는 일단 다시 서원으로 돌아가 현무께 상황을 보고한 뒤에 다시 수색을 하려고 했다. 동문으로 들어오던 즉저의 눈에 주자서가 동문 앞에서 번을 서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밤새 있었는지 조금 지친 기색을 한 주자서는 눈을 감고 있었는데 자는 것 같지는 않았다. 즉저가 코웃음을 치며 주자서에게 다가가 말했다.
“과연 등잔 밑이 가장 어둡군.”
주자서는 감고 있던 눈을 뜨고 태평호에서 온객행에게 두루마리를 건넸던 남자를 보고 놀라 바닥에 주저앉았다. 즉저는 주저앉은 주자서를 내려다보고 있다가 손을 들어 시위에게 그를 붙잡게 했다. 주자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붙잡으려는 시위를 공격했다. 주자서는 꽤 오랫동안 전장에서 굴렀기 때문에 시위 서넛을 상대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온종일 굶었던 터라 점점 몸에서 힘이 빠지는 것은 어찌 할 수가 없었다.
한창 대치하는 주자서와 시위를 보던 즉저가 혀를 차더니 시위를 물리고 말했다.
“너도 사람치고는 꽤 쓸만한가 보구나.”
주자서가 손을 모아 공수하고 말했다.
“오공공. 저에게 더 이상 발의 힘이 없으니 보내주십시오.”
즉저가 표정을 구기며 주자서를 보자 주자서는 무릎을 꿇고 말했다.
“보내주시면 다시 돌아오지 않겠습니다.”
즉저가 주자서에게 다가가 말했다.
“너를 보내주고 말고는 내가 정할 일이 아니다.”
즉저가 주자서의 앞섶을 잡고 그를 일으켜 세웠다. 시위가 다가와 주자서의 손에서 칼을 빼앗고 손을 등 뒤로 묶었다. 주자서가 즉저를 보고 몸부림치며 말했다.
“오공공!”
별궁에서 나온 지주가 즉저에게 다가가 물었다.
“천룡? 무슨 일이시오?”
즉저가 손이 묶인 주자서를 발치에 무릎 꿇게 하고 뒤돌아 지주를 보며 말했다.
“드디어 찾았어.”
지주 옆에 서 있던 온객행은 바닥에 무릎 꿇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낯이 익었다. 즉저는 지주 옆에 서 있는 온객행을 보고 눈에 띄게 당황하더니 말했다.
“그러니까… 흑망. 그러니까… 현무께서….”
무릎을 꿇고 숨을 몰아쉬고 있는 주자서에게 온객행이 다가가며 말했다.
“유서?”
주자서가 고개를 들어 온객행을 보았다. 온객행은 달려가 주자서를 끌어안고 말했다.
“유서. 유서….”
주자서는 다시 온객행을 본 것이 너무 반가워서 눈물이 조금 났다. 주자서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온객행을 불렀다.
“흑랑.”
온객행이 주자서를 놓아주고 얼굴을 보고 말했다.
“유서. 밥은 잘 먹었어? 잠은 잘 잤어? 왜… 왜 여기 있어?”
온객행이 묶여 있는 주자서의 손을 풀어주고 그의 어깨에 팔을 둘러 일으키며 말했다.
“유서. 배고프지? 어서 가서 밥을 먹자.”
주자서가 즉저의 눈치를 보며 온객행의 소매를 붙잡자 온객행이 즉저를 보았다.
즉저는 온객행을 보고 표정을 구기고 있다가 말했다.
“현무께서 그 사람에게 볼일이 있네.”
지주가 즉저에게 다가가 말했다.
“천룡. 일단 찾았다는 보고부터 하지. 흑망은 내가 별궁에서 대접하겠네.”
즉저가 지주를 보고 말했다.
“잘 할 수 있겠나? 흑망은….”
지주가 즉저를 신당 쪽으로 밀며 말했다.
“아무렴! 나도 일단은 가좌가 아닌가.”
즉저가 시위대장을 불러 뭔가를 지시하고 신당으로 향했다. 지주가 즉저를 노려보고 있는 흑망의 소매를 별궁으로 잡아 끌며 말했다.
“흑망. 일단 내 얘기를 들어보게.”
주자서도 멀어지는 즉저를 보고 있다가 온객행을 마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얼굴을 한참 보고 있다가 주자서의 손을 잡고 별궁으로 향했다. 지주가 주자서를 힐끔 보고 입을 벙긋거리며 말했다. ‘도와주게.’ 그제야 주자서는 자기 몸에 영력이 사라진 것이 떠올라서 온객행을 조금 밀어냈다. 온객행은 주자서가 미는 대로 밀리다가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유서. 유서는 정말 뭘 입어도 아름답군.”
주자서는 온객행의 흰소리에 아연하여 표정을 구겼다. 지주가 눈치껏 별궁 외실의 장지문을 열고 들어가며 말했다.
“오랜만에 아침 식사를 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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