打草驚蛇 | 36. 풀을 때려 뱀을 놀라게 한다.
바람이 차가워지기 시작해서 주자서는 계낭과 함께 구기자를 따러 갔다. 길이 없어 험한 산길을 요리조리 잘도 타는 계낭의 꽁무니를 겨우 따라잡고 있었다. 함께 나온 입춘이 말했다.
“보살께서 오시면 술을 담그겠네요. 저는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데….”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올해는 일손이 많으니 일단 많이 따서 말려 둡시다. 구기자는 말려서도 먹는다고 하니.”
입춘이 주자서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주인. 주인은 홍주를 좋아합니까?”
주자서는 아직 마셔보지 못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주자서가 가져온 망태기가 절반 정도 찼을 때 소설이 급하게 달려왔다.
“주인! 주인! 홍상… 홍상께서… 예부인께서 오셨어요.”
주자서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입춘이 주자서의 망태기를 받아 들고 말했다.
“주인 어서 백택으로 가보세요.”
주자서는 조금 허둥대다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아. 그래. 부탁합니다.”
소설이 숨을 몰아쉬며 다가와 주자서의 손을 잡았다. 주자서는 소설의 등을 쓸어주고 말했다.
“어디로 오셨습니까?”
소설이 크게 숨을 내쉬고 말했다.
“청익강… 쪽으로 오셨어요.”
주자서가 소설을 백택이 있는 쪽으로 이끌며 말했다.
“혼자 오셨습니까?”
소설이 고개를 흔들고 말했다.
“아니요. 손님이 엄청 많아요.”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입하는요? 입추는요?”
소설도 빠르게 백택으로 향하며 말했다.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어요. 예부인은 지주대인께서 맞으셨습니다.”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을 빨리했다.
백택에 거의 다 도착했을 즈음 입하가 불쑥 나타나 주자서를 멈췄다.
“주인. 그러고 가시게요?”
주자서가 입은 옷을 보았다. 평소에는 편한 호복을 입고 여기저기 쏘다녔기 때문에 얼룩과 흙먼지가 묻어 있어 손님을 맞기에는 부족했다. 입하가 주자서를 부유각으로 이끌며 말했다.
“일단 제일 좋은 옷으로 입으십시오. 머리는 제가 정리해 드릴 테니 어서 가서 갈아입고 오세요.”
주자서는 고개를 끄덕이고 입하가 시키는 대로 했다. 주자서는 부유각 내부에 있는 함을 뒤져서 온객행이 입었던 푸른색 비단 장포를 꺼내서 입었다. 요대를 하고 온객행이 주었던 백동 요패를 매고 갑판으로 나오니 선창에 입하와 입추가 서 있었다.
주자서가 선창으로 나오자 입추가 주자서의 옷매무새를 살피며 말했다.
“손님들은 정전에 모셨는데 같이 온 하인들은 어떡할까요?”
입하는 근처에 있는 나무 밑동에 주자서를 앉히고 머리를 매만지며 말했다.
“재실에 있는 객실은 치웠어?”
입추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아직 자는 애들도 있어.”
입하가 ‘흠’하고 말했다.
“어제 번을 선 애들이지?”
입추가 고개를 끄덕이고 주자서의 소매를 폈다.
“백택은 큰 줄 알았는데 좀 좁은 것 같아.”
입하가 주자서의 머리를 요리조리 돌려보고 주자서를 일으키며 말했다.
“주인. 백택을 증축하는 것은 어떠세요?”
주자서는 입하와 입추의 손에 이끌려 백택으로 향하며 말했다.
“필요하면 합시다.”
입추가 주자서를 쏘아보고 말했다.
“주인! 뭐든 다 좋다고만 하시면 어떡합니까?”
주자서가 웃으며 말했다.
“필요한 일이잖아요.”
입하가 한숨을 쉬고 말했다.
“손님이 올 줄은 몰랐어요.”
주자서와 입추도 동의하듯 작게 한숨을 쉬었다.
지주는 백로(白露)와 상강이 가져온 연잎차를 대접하며 말했다.
“예부인께서 직접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현리가 지주를 향해 코웃음 치며 말했다.
“협각. 왜 모르는 척이야?”
지주가 현리를 보고 말했다.
“자예! 진짜 좀 잊어라. 그 이름은 어떻게 하며 잊히는 건데.”
현리 옆에 서 있는 여인이 지주를 보고 물었다.
“대인께서 제 아들을 알고 계십니까?”
현리가 여인에게 찻잔을 건네며 말했다.
“주부인(周婦人). 저를 못 믿으세요? 자서는 여기 있으니 걱정 마세요.”
주부인이 현리를 보고 입꼬리만 당겨 웃었다. 지주가 현리와 여인을 번갈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곧 남문이 소란스럽더니 입하와 입추가 들어와 문을 열고 주자서가 정전의 외실로 들어왔다. 차를 마시고 있던 주부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자서에게 다가갔다. 주자서는 소매를 들어 인사를 하려다 누군가에게 안겼다.
“자서!”
주자서는 고개를 들어 주부인을 보았다.
“모친!”
주부인은 활짝 웃으며 주자서의 얼굴을 한참 쓸다가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죽지 않았구나. 살았구나.”
주자서가 주부인을 당겨 안고 말했다.
“모친. 불효를 저질렀습니다. 용서하세요.”
주부인은 고개를 흔들고 말했다.
“살았으니 됐다. 살아 있으니 됐어.”
주자서가 주부인의 얼굴을 보고 물었다.
“모친. 녕이는요?”
주부인이 크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북쪽 변방으로 징집을 당했어.”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이자 주부인이 주자서의 뺨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너는 걱정 마라. 내가 가르쳤으니 꼭 살아 돌아올 거야.”
주자서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주부인의 품에 고개를 묻었다.
주부인이 주자서의 어깨를 쓸며 말했다.
“너는 돌아올 수 없다. 군법이 지엄하여 돌아오면 나도 녕이도 위험하다.”
주자서가 주부인을 보고 말했다.
“모친. 여기서 같이 살아요. 제가 모시겠습니다.”
주부인이 고개를 흔들고 말했다.
“그럼 녕이가 돌아올 곳이 없잖니.”
주자서가 울상을 하여 금방 울 것 같은 표정을 하자 주부인이 주자서를 놓고 말했다.
“나는 내 아들을 울보로 키운 적 없다. 어찌 어미가 눈물을 보이지 않는데!”
주자서가 얼른 무릎을 꿇고 훌쩍이며 소매를 들어 주부인에게 인사했다.
“불효자 자서 모친께 인사드립니다.”
주부인은 주자서의 인사를 받고 다시 자리로 가서 앉았다. 주자서는 절을 하고 주부인이 앉은 옆자리로 가려다 입하와 입추에게 소매를 붙잡혀 상석에 앉혀졌다.
현리가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자서야. 너희 모친은 걱정할 것 없다. 내가 잘 모시도록 하마.”
주자서가 어리둥절하여 말했다.
“현리낭자께서 어찌….”
현리가 주부인과 어깨를 붙이고 말했다.
“주부인께서 금을 아주 잘 타는 것을 너도 알지?”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이자 현리가 주부인의 손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 귀한 손이 여태 험한 일을 했다니, 정말 안타까워서 가슴이 아파.”
그리고 주부인을 애틋하게 바라보았다. 주부인은 부끄러운 듯 웃으며 뺨을 붉히고 말했다.
“제가 가진 재주 중에 보잘 것 없는 것을 아껴 주시니 황송합니다.”
주자서가 자리에서 일어나 주부인이 앉은 의자 앞에 무릎 꿇고 말했다.
“모친 무슨 말씀이십니까?”
옆에 앉아 있던 현리가 주자서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주부인의 고금을 매일 들을 수 있다면 너를 양자로 들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주자서가 고개를 돌려 현리를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 주부인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예부인의 양자가 되면 새로운 신분을 가질 수 있으니 그렇게 해라.”
주자서가 고개를 흔들고 다시 주부인을 보았다.
“모친… 저는… 저는….”
현리가 주자서를 보고 놀란 기색으로 말했다.
“유서. 주부인께서는 사람이시네.”
주자서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모친… 저는….”
현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주자서를 일으키고 말했다.
“주부인. 자서가 아직 혼란스러운 것 같으니 제가 잘 타일러 보겠습니다.”
지주가 눈치껏 일어나 말했다.
“주부인. 백택을 둘러보시겠습니까?”
지주가 주부인과 계낭을 데리고 외실을 나갔다.
현리가 주자서의 소매를 놓고 말했다.
“너 미쳤어?”
주자서가 현리에게 말했다.
“모친께 말씀드리지 않으셨습니까?”
현리가 주자서에게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뭐라고 말해야 하는데? 구강에 요괴라고? 멀리하지 않으면 잡아먹을 거라고?”
주자서가 현리를 쏘아보며 말했다.
“모친을 드시게요?”
현리가 주자서를 보고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그러면 안 돼? 아주 잘 익은 홍시 같잖아. 사랑스러워.”
주자서가 현리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미쳤소! 모친은 사람이오!”
현리가 주자서의 손길을 뿌리치고 말했다.
“알아! 이번이 처음인 줄 알아?”
주자서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모친을… 모친을 어쩔 셈이오?”
현리가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아껴주고 사랑할 거야. 우리의 추억이 보석처럼 찬란하게.”
주자서가 고개를 들어 현리를 보자 현리가 주자서에게 가깝게 다가와 그의 턱을 잡고 말했다.
“너 따위가 뭘 알겠어. 고작 몇십년 산 미물 주제에.”
주자서가 현리를 밀어내고 말했다.
“모친께서는 발의 후손이시기 때문에 사람의 생이 끝나면 천궁에 머무르실 수 있습니다.”
현리가 눈썹을 찌푸리고 말했다.
“그렇네. 너희 모친도 발의 후손이지. 그것도 너처럼 반푼이가 아니라 제대로 된.”
주자서가 현리를 보고 말했다.
“모친께서 원하는 일이오?”
현리가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그거야 앞으로 그렇게 만들면 되는 것 아닌가?”
주자서가 고개를 흔들고 말했다.
“나를 찾았으니 낙읍으로 돌아가실 거요.”
현리가 의자에 나른하게 기대 앉고 말했다.
“그럼 따라가면 되지. 오랜만에 땅을 밟겠군.”
주자서가 현리를 보고 말했다.
“모친에게 강요할 셈이오?”
현리가 주자서를 보고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
“왜? 너희 서방은 그랬나 보지?”
주자서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무슨 뜻이오! 객행은 그런 적 없소!”
현리가 코웃음 치며 말했다.
“강제하고 강요하는 건 시간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지.”
주자서가 자리에 주저앉아 말했다.
“나는 말씀드려야 하겠소.”
현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왜? 어차피 죽어서 삼원에 가면 알게 될 텐데 왜?”
주자서가 머뭇거리다 말했다.
“모친을 속일 수는 없소. 내 처지를 말씀드리고 모친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현리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쓸데없긴.”
주자서가 현리를 보고 말했다.
“모친께서는 정직한 사람을 좋아해요. 저도 항상 정직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현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마음대로 해. 내가 말린다고 내 말을 들을 것도 아니잖아.”
주자서가 현리에게 무릎 꿇고 소매를 들어 말했다.
“현리낭자. 그러니 양자로 들이겠다는 말은 거두어 주세요. 저는 이미 모친이 두 분이나 계십니다.”
현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너의 다른 모친은 황룡이 되었다지? 정말 너는 모친 복이 넘치는구나.”
주자서는 바닥에 머리를 붙이고 조아려 절했다.
현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주자서를 일으키고 말했다.
“자서. 자네 모친을 내게 주게.”
현리가 주자서의 양손을 붙잡고 말했다.
“삼원에 가는 날까지 행복하게 해주겠네.”
주자서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것은 제가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 어떻게 제가 모친의 거취를 정한다는 말입니까?”
현리가 주자서의 손을 놓고 말했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너는 주건(周建)의 아들이니까.”
주자서가 놀라서 말했다.
“감히 모친의 이름을!”
현리가 주자서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나는 감히 그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그런 사이인 거야.”
주자서가 현리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저는 태평호에서 모친과 함께 살고 싶어요.”
현리가 주자서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낙읍은 멀지만 구강은 가까워.”
주자서가 눈썹을 늘어뜨리고 울상을 하자 현리가 말했다.
“나는 주건이 원하는 것은 뭐든 해줄 거야. 편연주를 버려야 한데도 그렇게 하겠어.”
현리가 주자서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말했다.
“어차피 너는 태평호를 떠날 수 없잖아. 너의 서방이 돌아올 때까지는.”
주자서가 말했다.
“모친께 말씀드렸습니까?”
현리가 주자서를 놓아주고 말했다.
“사람의 세상에서는 사내끼리 혼인 못한다며.”
주자서가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쉬었다. 현리가 웃으며 말했다.
“뭐가 더 충격일지 모르겠네. 요괴가 된 것일지 사내랑 혼인한 것일지.”
주자서는 정전의 내실에 무릎 꿇고 앉아 있다가 주부인이 들어오는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조금 휘청거렸다. 주부인이 다가와 주자서의 팔을 잡고 일으키며 말했다.
“자서야.”
주자서는 주부인을 상석에 모시고 그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 손을 잡았다. 주부인이 웃으며 주자서의 손을 맞잡고 말했다.
“이곳에서 잘 지냈나 보구나. 도망한다고 고생할 줄 알았는데….”
주자서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모친이 계시는데 양자로 가고 싶지 않아요.”
주부인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여기 계속 숨어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주자서가 한참 망설이자 주부인이 주자서의 뺨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네가 싫으면 그렇게 해라. 내가 너를 보러 이곳에 오마.”
주자서는 한참 망설이다가 손을 놓고 머리에 한 은관에 손을 가져갔다.
주부인은 주자서가 하는 것을 보고 있다가 주자서의 팔이며 어깨를 연신 쓸었다. 관을 고정한 비녀를 빼자 주자서의 머리가 흐트러져 내렸다. 주자서가 눈을 감고 말했다.
“모친. 저는 이제 사람의 세상에 갈 수 없어요.”
주부인이 주자서의 얼굴을 보고 말했다.
“자서?”
주자서는 눈물을 흘리며 눈을 뜨고 말했다.
“모친의 자서는 죽었어요.”
주부인은 새빨간 주자서의 눈을 보고 놀라서 말이 없었다. 주자서가 다시 고개를 숙이고 주부인의 손을 잡고 말했다.
“모친. 저는 이제 사람이 아니에요.”
주자서의 차가운 체온에 놀란 주부인이 흠칫 몸을 떨자 주자서는 주부인의 손을 놓고 눈물을 흘렸다.
“모친….”
주부인은 한참 눈물을 흘리는 주자서를 보고 있다가 조금은 서늘한 그의 손을 잡았다.
“자서?”
주자서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날이 어두워져 주자서는 내실 안에 있는 등롱을 찾아 밝혔다. 평상에 앉아 있는 주부인 앞에 무릎 꿇고 앉자 주부인이 주자서를 일으켜 평상에 앉히고 그의 어깨에 고개를 기댔다. 주자서는 주부인의 손을 잡고 자신에게 기대오는 주부인의 체온을 느꼈다. 조금은 뜨거울 지도 모르겠다. 주부인은 발의 이야기에 대해 대충은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발을 찾고 있던 후토에게 들켜 주자서의 부친은 참소를 당하여 죽었다. 후토가 그를 참소했다. 주부인도 아이를 낳고 많이 놀랐다고 했다. 주씨를 세습하는 그들은 항상 딸을 낳았기 때문이다.
아들이었던 주자서를 주씨 종친들은 불길하게 생각했다. 주자서가 싫다던 종친들이 돕지 않았다면 그들은 기산에서 후토에게서 도망칠 수 없었을 것이다. 주부인이 주자서의 손등에 비늘을 쓸고 말했다.
“너를 낳은 날 진성(辰星)을 보았어.”
주부인이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동생을 많이 낳아주려고 했는데….”
주자서가 벽옥을 꺼내 주부인에게 내밀고 말했다.
“모친의 소원이 제 소원이에요.”
주부인이 벽옥을 다시 주자서의 품에 넣고 말했다.
“너를 위해 써라. 나 역시 하늘의 죄에 동참했으니 받을 수 없어.”
주자서가 고개를 흔들고 말했다.
“모친의 죄가 아니에요.”
주부인은 주자서에게 팔을 둘러 안았다.
“너는 내 아들이야. 그것이면 됐다.”
내실의 장지문이 벌컥 열리고 조금 흐트러진 차림의 온객행이 주자서를 불렀다.
“유서!”
주자서는 고개를 돌려 온객행을 보았다. 여인과 부둥켜안고 있는 주자서를 발견한 온객행은 얼른 다가가 주자서를 여인에게서 떼어내고 말했다.
“이게! 이게 대체 무슨 짓이오?”
주자서가 당황하며 온객행을 말리고 말했다.
“객행.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여인도 온객행을 보고 놀랐는지 주자서의 소매를 당겨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그대는 누구인데 무례를 범하는가?”
주자서가 여인을 감싸기 위해 다가가자 온객행이 그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그대는 누구인데 나의 부군에게 무례를 범하시오?”
여인이 온객행을 빤히 보고 말했다.
“부군?”
주자서는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허둥대고 말했다.
“객행. 그러지 마시오.”
여인이 주자서의 소매에 있는 온객행의 손을 치우고 주자서를 끌어당기며 말했다.
“나는 내 아들을 혼인시킨 기억이 없소.”
온객행이 주자서와 여인을 번갈아 보더니 말했다.
“모친?”
온객행은 한참 두사람을 보고 있다가 한발짝 물러서 여인에게 무릎 꿇고 소매를 들어 절하며 말했다.
“존고(尊姑), 자부(子婦)가 인사드립니다.”
주자서가 온객행에게 다가가 그를 일으키려고 하자 주부인이 말했다.
“자서. 이게 무슨 소리냐?”
주자서는 온객행과 주부인을 번갈아 보다가 온객행 옆에 무릎 꿇고 소매를 들어 절하며 말했다.
“모친. 불효를 저질렀습니다.”
소란스러운 소리에 현리와 지주가 내실 안으로 들어왔다. 주부인은 놀라서 주자서를 감싸 안고 말했다.
“예부인. 잠시만 시간을 주십시오.”
현리는 온객행을 보고 조금 놀란 기색으로 말했다.
“온객행?”
지주가 눈치껏 현리의 소매를 잡아 내실을 나가며 말했다.
“저녁을 외실에 준비해 두었으니 준비가 끝나면 나와서 드십시오.”
지주가 장지문을 닫고 나가자 주부인이 주자서를 놓아주고 말했다.
“이 모습을 예부인께 보일 수는 없지 않느냐.”
주자서가 배시시 웃으며 주부인의 가슴에 고개를 기댔다. 주부인은 혀를 차고 주자서를 안고 등을 쓸었다. 온객행이 주부인을 보고 말했다.
“존고. 은관은 어디에 두셨습니까?”
주부인이 온객행을 빤히 보았다. 온객행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유서는 아직 영력을 잘 다루지 못해 은관을 해야 모습을 바꿀 수 있습니다.”
주부인이 주자서를 일으켜 세우고 말했다.
“자서. 이게 무슨 소리냐.”
주자서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요괴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주부인이 주자서의 말을 자르고 말했다.
“아니! 왜 저 치가 나를 존고라 부르는 것이냐?”
주자서가 입을 달싹이며 머뭇거리자 온객행이 다시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촉룡께서 허락하셔서 혼인을 치렀습니다. 제가 일이 바빠 부군께 소홀하였으니 불효를 저질렀습니다.”
주부인이 놀라서 주자서를 보고 물었다.
“촉룡? 촉음(燭陰)께서?”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이고 온객행을 일으키며 말했다.
“태평호의 수선이세요. 저를 계속 돌봐주셨습니다.”
온객행이 고개를 숙이고 주부인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제가… 제가 강요하여….”
주자서가 놀라서 온객행의 손을 잡고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객행! 객행은 그런 적 없어요.”
주부인이 평상으로 가서 앉자 주자서가 온객행의 손을 잡고 주부인 앞에 무릎 꿇었다. 소매를 들어 공수하고 말했다.
“모친. 수선께 인륜으로 다 갚지 못할 은혜를 입었습니다. 부디 내치라는 말은 하지 마소서.”
주부인은 온객행을 보고 한숨만 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온객행이 소매를 들어 공수하고 말했다.
“존고. 제가 많이 부족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은혜는 제가 유서에게 입었어요. 존고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저는….”
주부인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형제가 많지 않으니 네가 아이를 많이 낳았으면 했는데….”
온객행이 고개를 번쩍 들고 말했다.
“존고. 미자하의 샘물을 마시고 제가 낳겠습니다. 자식을 많이 낳아 드리겠습니다.”
주부인과 주자서가 온객행을 보고 얼굴을 구겼다. 주부인이 말했다.
“그래? 자손을 낳아 주겠다고?”
그러더니 ‘흠’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주자서가 자리에서 일어나 주부인에게 말했다.
“모친. 신선과 요괴의 자식은 삼청의 허락이 없으면 안 돼요.”
온객행이 주부인을 보고 말했다.
“제가 삼청께 아뢰겠습니다.”
주부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주부인은 온객행이 주자서의 머리를 매만지는 것을 보았다. 은관으로 머리를 고정하자 주자서의 붉은 눈과 비늘이 다시 사람의 것으로 바뀌었다. 주부인이 한숨을 쉬고 말했다.
“예부인께는 뭐라고 말씀드리지?”
온객행이 주부인에게 다가가 말했다.
“현리라면 걱정 마십시오.”
주부인이 온객행을 보고 물었다.
“예부인을 아시오?”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요. 저의 누이나 다름없습니다.”
주부인이 눈썹을 찌푸리며 주자서를 보았다. 주자서가 당황하여 말했다.
“모친. 그러니까… 예부인께서는….”
주부인이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예부인께서도?”
온객행이 주부인 앞에 앉아 주부인을 보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태평호에 사람은 모친뿐일 겁니다.”
주자서가 주부인의 손을 잡고 말했다.
“걱정 마세요. 모친께 아무 일도 없게 할 겁니다.”
주부인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영력을 더하면 나를 이길 성싶으냐?”
주자서가 잠깐 생각하더니 고개를 흔들고 말했다.
“스승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저는 요괴 먹잇감 정도라고 하십니다.”
주부인이 주자서의 얼굴을 쓰다듬고 말했다.
“그러면 안 되지. 먹잇감이라니? 그동안 수련을 게을리했느냐?”
주자서가 일어나 주부인의 손을 잡고 일으키며 말했다.
“지주대인께서 제 스승님입니다. 가서 인사드려요.”
주자서는 주부인의 손을 잡고 외실로 향했다. 그 뒤를 온객행이 따랐다.
외실에 가니 문귀가 언제 왔는지 자리에 앉아 현리가 내놓은 다과를 집어먹으며 푸념하고 있었다. 장지문이 열리고 주부인과 주자서가 들어왔다. 문귀는 고개를 들어 그 뒤에 있는 온객행을 보고 벌떡 일어나 손가락질하며 소리를 질렀다.
“견연! 너 이 자식! 말도 없이 미쳤어?”
지주가 문귀에게 다가가 그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문귀 어르신. 어르신 참으세요. 유서의 모친께서 와 계십니다.”
문귀가 주부인을 발견하고 ‘큼큼’ 목을 가다듬더니 소매를 들어 인사했다.
“부인.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주극성의 상시(常侍) 문귀 인사드립니다.”
주부인도 소매를 들어 공수하고 공손히 인사했다.
“기산 주가 건이라 합니다.”
온객행은 눈치를 보고 있다가 주부인의 소매에 매달려 말했다.
“모친. 제가 부군을 모실 수 없는 것도 다 문귀 때문이에요.”
문귀가 콧방귀 끼며 말했다.
“천존께서 사하신 일을 어찌 내 탓 하시오. 애초에 자네가….”
지주가 달려와 문귀의 입을 막고 말했다.
“주부인 시장하지 않으십니까? 식사하시지요.”
문귀가 지주를 보고 얼떨떨한 표정을 짓자 지주가 큰 소리로 말했다.
“문귀께서는 급한 일이 있으시군요. 제가 배웅하겠습니다.”
그리고는 문귀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주부인이 지주에게 말했다.
“자서의 스승님인지 몰라뵈었습니다.”
지주가 문귀와 나가며 말했다.
“문귀를 배웅하고 오겠습니다.”
탁상에 마련한 음식은 평소 주자서가 먹는 간소한 음식과는 조금 달랐다. 주자서가 찬을 보고 현리에게 말했다.
“현리 낭자께서 준비해 주셨군요. 감사합니다.”
현리가 주부인에게서 온객행을 떼어내고 자리를 권하며 말했다.
“그래. 너희 모친께서 꿩고기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었느냐?”
현리가 준비한 음식은 편연주에서 먹었던 음식과는 달리 담백하고 달지도 않았다. 주부인과 주자서가 오손도손 식사하는 것을 턱을 괴고 보고 있던 현리가 말했다.
“양자로 들여도 괜찮을 지도. 주부인이 낳았다 하니 자서도 예뻐 보이는군.”
온객행이 앞접시에 음식을 담아 주부인에게 권하며 말했다.
“무슨 소리야? 유서는 벌써 모친이 두 분이나 계시네.”
주부인이 눈썹을 찌푸리자 온객행이 고상에 대해 말했다. 주부인이 주자서의 뺨을 쓸고 말했다.
“우리 자서를 구해 주셨으니 정말 은인이구나. 인사를 드려야 할 텐데….”
온객행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천선이 되셔서 만나 뵙기 힘들 겁니다.”
주자서가 맞장구 치며 말했다.
“발의 힘으로 황룡이 되셨어요.”
주부인은 주자서의 얼굴을 한참 보더니 눈을 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주가 외실로 들어오며 말했다.
“수선, 자정 전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문귀가 삼청에 보고할 거라 하네. 임기를 늘리고 싶지 않으면 잘 생각하시게.”
온객행이 고개를 숙이고 양손에 얼굴을 묻고 우는소리를 했다. 현리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왜 등선은 왜 해서는.”
현리가 주부인의 시선을 눈치채고 웃으며 말했다.
“여기 수선은 오래전부터….”
주부인이 말했다.
“수선의 누이 이시니… 예부인께서도 신선이십니까?”
현리가 표정을 구기며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누이? 이거랑?”
그러다 자리에서 일어나 주자서를 쏘아보며 말했다.
“너? 네가 말했어?”
주자서가 고개를 흔들며 온객행을 보았다. 온객행이 현리를 보고 뚱한 표정을 짓자 현리가 말했다.
“이렇게 나오시겠다? 내가 보내준 화첩이 더 필요 없는 모양이지?”
온객행이 눈에 띄게 당황하며 머리와 손을 젓고 말했다.
“아니! 아니네. 그런 것이 아니네.”
주자서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온객행을 보았다. 그것을 본 현리가 온객행에게 물었다.
“뭐야? 아직도 안 했어?”
온객행이 현리의 입을 막으며 말했다.
“자예! 보통 그런 얘기는….”
주부인과 주자서는 그 둘이 실랑이하는 것을 보다가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
그날 저녁 온객행은 부유각에서 하룻밤 지내고 다음 날 아침에 주극성으로 돌아갔다. 문귀는 지주에게 말한 것과는 달리 딱히 온객행을 나무라지 않았다. 단지 내자를 너무 구속하려고 하면 좋지 않다는 말만 했다. 현리와 주부인은 태평호에 보름 정도 머물다 다시 구강으로 돌아갔다. 주자서의 당질인 주울녕(周蔚寧)은 징집되긴 했지만 나라에 전쟁이 없어 1년 동안 부역(賦役)을 살다 다시 낙읍으로 돌아왔다. 낙읍에서 주부인과 함께 주울녕을 기다린 현리는 그 둘과 함께 홍호로 돌아갔다. 온객행은 주극성에서 현무 노릇을 했고, 주자서는 태평호에 머물렀다. 사람들은 주자서를 태평공이라 불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