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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고 분해서 하는 노래

悲憤詩
비분시 蔡琰(채염)

漢季失權柄 董卓亂天常 志欲圖篡弒 先害諸賢良
한말에 황제는 권력을 잃고 동탁이 세상을 어지럽히며
임금을 죽이고자 해서 먼저 어진 사람 모두 해쳤네

逼迫遷舊邦 擁主以自彊 海內興義師 欲共討不祥
임금 을러 옛 서울 옮기고 임금 세워 권력 오로지 했네
천하가 의로운 군사 일으켜함께 사악한 놈 치려했네

卓眾來東下 金甲耀日光 平土人脆弱 來兵皆胡羌
동탁 무리 동쪽으로 내려오니 금빛 갑옷 햇볕에 더욱 빛났네
현지 사람 모두가 허약하지만 들어온 병사는 모두 오랑캐 강족

獵野圍城邑 所向悉破亡 斬截無孑遺 尸骸相撐拒
들판 말 달리고 성읍 에워싸니 향하는 곳마다 모두 무너졌네
모두 베어버리고 남기지 않으니 시체와 해골 서로 부대꼈네

馬邊懸男頭 馬後載婦女 長驅西入關 迥路險且阻
말 옆구리엔 남자머리 걸고 말 뒤에다간 여자들 실었네
멀리 말 달려 서쪽 함곡관 드니 길은 험하고 험했네

還顧邈冥冥 肝脾為爛腐 所略有萬計 不得令屯聚
고개 돌려 보니 아득아득 애간장 끊어질 듯 하네
잡은 사람 만 명 헤아리는데 같이 모이지도 못하게 하네

或有骨肉俱 欲言不敢語 失意幾微間 輒言斃降虜
골육이 함께 있어도 말도 하지 못하네
조금이라도 기분에 들지 않으면 바로 욕하기를 “쳐죽일 포로놈아

要當以亭刃 我曹不活汝 豈敢惜性命 不堪其詈罵
칼로 죽일 테니 너희들 죽음 목숨이야”
목숨 어찌 아까우리오 욕짓거리 참기 어렵네

或便加棰杖 毒痛參並下 旦則號泣行 夜則悲吟坐
더러 몽둥이 휘두르니 독한 맘 고통과 함께 일어나네
아침이면 울며불며 끌려가고 밤이면 비통하게 주저앉았네

欲死不能得 欲生無一可 彼蒼者何辜 乃遭此厄禍
죽으려 하나 죽을 수 없고 살려 해도 살길 없네
아! 하늘이여 무슨 죄 지었기에 이런 재앙 내리시나요?

邊荒與華異 人俗少義理 處所多霜雪 胡風春夏起
오랑캐 땅 중원과 달라 사람들은 의리가 없네
머무는 곳 서리 눈발 많고 모진 바람 봄여름에도 일어

翩翩吹我衣 肅肅入我耳 感時念父母 哀嘆無終已
펄럭펄럭 내 옷깃 나부끼며 휘잉하며 내 귓전 들어오네
계절 돌아 부모 생각 간절하여 슬픈 애탄 끝이 없네

有客從外來 聞之常歡喜 迎問其消息 輒復非鄉里
중원에서 손님이 왔다 하면 그 말 듣고 언제나 들뜨지만
맞아 들여 소식 물어보면비통하네 고향 사람 아니네

邂逅徼時願 骨肉來迎己 己得自解免 當復棄兒子
꿈에도 바라던 바 이루어 골육이 나를 맞으러 왔네
나는 풀려날 수 있었지만 아이들은 버려야 하네

天屬綴人心 念別無會期 存亡永乖隔 不忍與之辭
하늘이 점지한 아이 헤어지면 다시 못볼 생각하니
살아서나 죽어서도 영원이 떨어지니 차마 작별인사도 못하는데

兒前抱我頸 問母欲何之 人言母當去 豈復有還時
아이 다가와 내 목을 껴안고는 묻기를 엄마 어디가요
사람들이 엄마 이곳 떠난다는데 언제 다시 돌아오시나요

阿母常仁惻 今何更不慈 我尚未成人 奈何不顧思
엄마는 항상 인자하셨는데 지금은 왜 이리 매정하신가요
나는 아직 어른이 되지 않았는데 절 버리고 가시면 어떡하나요

見此崩五內 恍惚生狂痴 號泣手撫摩 當發復回疑
이 꼴 보자니 억장이 무너지고 어질어질 미칠 것만 같네
울며불며 아이손 어루만지며 떠나려다 다시 돌아보며 머뭇머뭇

兼有同時輩 相送告離別 慕我獨得歸 哀叫聲摧裂
함께 잡혀온 사람들도 송별하며 이별하는데
나만 돌아가니 부러워하네 우는 소리 맘이 찢어지고

馬為立踟躕 車為不轉轍 觀者皆歔欷 行路亦嗚咽
말 또한 멈춰서서 머뭇거리고 마차도 떠나려 하지 않네
보는 사람 모두가 흐니끼며 길가는 사람도 모두 목이 메네

去去割情戀 遄征日遐邁 悠悠三千里 何時復交會
아! 애타는 정 끊어버리고 수레 달리니 날마다 멀어지네
머나먼 삼천리 길 언제나 다시 만나리오

念我出腹子 胸臆為摧敗
내 배로 낳은 아이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지네
既至家人盡 又復無中外 城郭為山林 庭宇生荊艾 白骨不知誰 縱橫莫覆蓋
집에 왔건만 사람은 없고 친척도 하나 없네
성곽은 산림으로 변하고 마당엔 가시 쑥만 자랐네
누군지 모를 백골들이 여기저기 나뒹구네

出門無人聲 豺狼號且吠 煢煢對孤景 怛吒靡肝肺
문을 나서도 인기척 하나 없고 이리 승냥이만 울어대네
우두커니 외로운 그림자 마주하니 나도 모르게 애간장 끊어지네

登高遠眺望 神魂忽飛逝 奄若壽命盡 旁人相寬大
산에 올라 사방 바라보니 정신은 각중에 멀리 날아간 듯 문득 목숨 끝난 듯하네
주위 사람들 마음 크게 먹으라 하네

為復彊視息 雖生何聊賴 託命於新人 竭心自勖勵
다시 한번 정신 차리려 하지만 살아간들 무슨 기쁨 있으리오
새로운 사람 만나 인생 맡겼으니 마음 단단히 잡고 애써야 하네

流離成鄙賤 常恐復捐廢 人生幾何時 懷憂終年歲
오랑캐 땅에서 괄시받았기에 다시 버려질까 늘 두렵네
남은 인생 얼마일지시름 품은 채 살아가리


채염(蔡琰 약 177년-?)의 원래 자(字)는 소희(昭姬)이다. 하지만 나중에 진(晉)나라가 세워진 후 개국황제의 부친인 사마소(司馬昭)의 이름과 같아지자 문희(文姬)로 바꿨다. 동한시대 진류어(陳留圉) 사람이다. 진류어란 지금의 하남성 기(杞)현에 해당한다.

채염은 16세 때는 명문의 후예인 하동(河東)의 위중도(衛仲道)와 혼인했다. 하지만 좋은 시절은 오래가지 못했고 결혼한 지 얼마 후 남편이 갑자기 사망했다. 문희는 남편을 잃고 자식도 없는 신세로 전락해 어쩔 수 없이 친정으로 돌아와야 했다. 동한 말기에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 천하가 크게 어지러워지자 동탁이 무력을 앞세워 수도인 낙양을 점령해버렸다. 채염은 동탁의 핍박을 받아 어쩔 수 없이 장안으로 이사해야 했다. 나중에 남흉노에 포로로 잡혀 흉노 좌현왕(左賢王)에게 시집갔다. 당시 채염의 나이 23세였다. 다행히 좌현왕은 문희를 몹시 아껴 자신의 왕비로 삼았고 채염은 남흉노에서 12년을 살면서 두 아들을 낳았다.

나중에 조조(曹操)가 정권을 잡은 후 자신의 옛 친구였던 채옹을 떠올렸다. 그가 사도 왕윤에게 억울한 죽음을 당한 뒤 후사(後嗣)가 없었고 혈육이라곤 딸 채염만 남은 것을 동정해 채염을 데려오고자 했다. 건안(建安) 8년 조조가 많은 금을 주어 좌현왕에게 사신을 파견했다. 좌현왕은 본래 채염를 보내고 싶지 않았지만 감히 조조에게 대항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문희를 돌려보내기로 했다. 이것이 역사적으로 유명한 ‘문희의 한나라 귀국’이다.

돌아오는 길에 문희는 한편으로는 고향을 찾아가는 기쁨과 다른 한편으로는 남편 및 아이들과 헤어지는 슬픔에 견디기 어려웠다. 이런 모순적인 정서 하에 창작한 것이 지금까지도 널리 인구에 회자되는 ‘호가십팔박(胡笳十八拍)’이다. 호가란 북방의 소수민족이 사용하던 악기 이름이다. 음악에 재능이 뛰어난 채염이 흉노 땅에 살면서 호가의 연주법을 배워 호가로 작곡을 한 것이다. 이때 채염의 나이 35세였다.

문희가 중원에 돌아온 후 조조의 주선 하에 둔전도위(屯田都尉) 동사(董祀)에게 세 번째 시집을 갔다. 동사는 예술적인 재능이 뛰어난 인물로 문희를 몹시 아끼고 사랑했다. 하지만 신혼의 단꿈이 채 가시기도 전에 군법을 어겨 사형에 처해질 처지에 놓였다. 문희는 사랑하는 남편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직접 조조를 찾아가 구해줄 것을 청했다. 사서에는 “문희가 한겨울에 헝클어진 머리에 맨발로 조조를 찾아가 머리를 조아리며 죄를 청했는데 그 소리가 분명하면서도 슬프고 처량해 보는 이들의 안색이 변했다”고 전한다. 조조도 문희의 청을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동사를 사면해주었다.

문희는 문학에도 빼어난 재주가 있었다. 부친인 채옹의 작품 400여 편을 기억해 다시 쓴 것 외에도 또 여러 수의 시가를 지었다. 후대에 채옹의 이름으로 전해진 작품은 모두 그녀가 정리한 것이라고 한다. 지금까지도 문희가 지은 시 중에 ‘비분시(悲憤詩)’와 ‘호가십팔박(胡笳十八拍)’이란 두 편의 시가 전해지고 있다.


그중 비분시를 소개한다. 여자의 인생에 남자만큼 불행한게 없다. 억지로 끌려간 오랑캐땅에서 본인의 의지가 아닌 또 누군가의 의지로 돌아왔지만 결국은 또 남자때문에 고생을한다. 지금도 그런데 전한시대인 그때는 얼마나 더했을까? 기구하고 슬프다. 채염은 능력도 뛰어났고 집안도 좋았기 때문에 서럽고 비통한 마음을 시로 남겨 아직까지 전해지기라도 했지 아무것도 아니었던 수많은 여자들은 이보다 얼마나 더 억울하고 비통한 삶을 살았을까? 대체 얼마나 더 이렇게 비참한 삶을 살아야 사람이 될 수 있는걸까?

의심 말라고 부르는 노래

莫相疑行 杜甫
의심하지 말하달라고 읊은 노래 두보

男兒生無所成頭皓白
남아로 태어나 이룬것 없이 머리만 희어지니
牙齒欲落眞可惜
치아가 빠지려 해 참으로 애석하네.
憶獻三賦蓬萊宮
저 옛날 봉래궁에 세 大禮賦(대예부) 바쳤던 일 생각하니
自怪一日聲輝赫
하루 아침 명성이 빛남을 스스로 괴이하게 여겼노라.
集賢學士如堵墻
集賢殿(집현전)의 학사들 담처럶 둘러서서
觀我落筆中書堂
내가 중서당에서 붓 들어 글 쓰는 것을 구경하였네.
往時文彩動人主
지난날에는 아름다운 문장으로 임금을 감동시켰는데
此日飢寒趨路傍
오늘날에는 굶주리고 헐벗으며 길가를 달리는구나.
晩將末契託年少
말년에 末契(말계) 가지고 소년에게 의탁하려 하나
當面輸心背面笑
얼굴 보면 마음 주다가도 얼굴 돌리면 비웃네.
寄謝悠悠世上兒
수많은 세상의 아이들에게 말하노니
不爭好惡莫相疑
좋아하고 싫어함을 다투지 말아 의심하지 말아다오.

더보기
  1. 莫相疑(막상의) : 서로 의심하지 말라.
  2. 봉래궁(蓬萊宮) : 당나라 장안에 있던 궁전의 이름.
    원래는 대명궁(大明宮)이었는데 고종(高宗) 때 이 이름으로 고쳤다 한다.
  3. 三大禮賦(삼대예부) : 세 편의 부(賦)로 〈朝獻太淸宮賦(조헌태청궁부)〉, 〈朝享太廟賦(조향태묘부)〉, 〈有事於南郊賦(유사어남교부)〉이다.
  4. 천보(天寶) 11년(752) 두보의 나이 42세 되던 해에 성대하게 제전(祭典)이 베풀어졌을 때 「삼대예부(三大禮賦)」를 지어 올려 본인의 가세(家世), 학문에 관한 의견을 피력하고 등용을 희망하였다.
    현종(玄宗)은 두보의 글을 높이 평가한 나머지 재상에게 그를 집현전으로 불러들여 시험을 치르도록 하였다. 그 뒤 두보에게 하서현위(河西縣尉)를 제수하였으나 받아들이지 않자 우위솔부주조참군(右衛率府冑曹參軍:무기고 관리)으로 임명하였다.
  5. 朝獻(조헌) : 제례(祭禮) 의절(儀節)의 하나이다.
  6. 往時文彩動人主(왕시문채동인주) : 명왕(明皇) 천보년간(天寶年間)에 태청궁(太淸宮)에 조헌(朝獻)하고 종묘에 제향하고 교제(郊祭)를 올리니, 두보(杜甫)가 이 때에 삼대예부(三大禮賦)를 지어 올려 현종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였다.
  7. 堵牆(도장) : 담.
  8. 晩將末契託年少(만장말계탁년소) : 말계(末契)는 나이가 많거나 지위가 높은 사람이 아랫사람과 교분을 맺는 일을 이르며 연소(年少)는 곽영의(郭英義)를 가리킨다.

이 시는 《杜少陵集(두소능집)》14권에 실려있다. 마지막 구인 '不爭好惡莫相疑'의 세글자를 따서 제목으로 삼은 것이다. 안록산의 난을 겪은 두보는 성도에 와서 살면서 成都尹(성도윤) 嚴武(엄무)의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永泰(영태) 元年(765) 엄무가 죽자, 5월에 30여세의 郭英乂(곽영의)가 성도윤이 되었다. 두보는 곽영예와 알던 사이였으나 뜻이 서로 맞지 않아 마침내 도성의 초당을 떠났는데, 이시는 그때 지은 것이다. 출처

봄에 내린 반가운 비

春夜喜雨 杜甫
봄에 내린 반가운 비 두보

好雨知時節 當春乃發生
좋은 비는 시절을 알아 봄이 되어 내리네
隨風潛入夜 潤物細無聲
바람 따라 몰래 밤에 들어와 소리 없이 촉촉히 만물을 적시네
野徑雲俱黑 江船火燭明
들길은 구름이 낮게 깔려 어둡고 강 위에 뜬 배는 불빛만 비치네
曉看紅濕處 花重錦官城
새벽에 붉게 젖은 곳을 보니 금관성에 꽃들이 활짝 피었네.

「춘야희우」는 761년 두보가 성도(成都)에서 지은 것이다. 당시 성도는 겨우내 가뭄이 들어 사람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러한 때에 만물을 흠뻑 적셔주고 만물을 소생시킬 봄비가 밤새 내리는 것을 보고 기쁜 마음에 이 시를 지은 것이다.

이 시는 예전부터 해석이 두가지로 갈렸는데, 하나는 오랜 가뭄 끝에 드디어 비가 내려 만물이 소생함을 기뻐하는 농민의 마음을 대변한 것이라는 것과, 때맞츄 비가 내렸으니 금관성의 봄에 꽃이 만개할 것이라는 기대를 담은 것이라는 설이다. 나는 뭐 고리타분한 틀딱들이 미주알고주알 떠들어댄 내용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전공을 할것도 아니고 누구비위를 맞출것도 아니므로.

내 개인적인 감상은 두보의 시는 대구가 참 좋다는 것과 음차를해도 느껴지는 운율아 좋다 정도? 사실 나는 두보가 내리는 비를 보고 이 시를 썼을것 같지는 않다. 이미 비가 내리고 난 후의 모습을 보고 쓴것 같은데 뭐 그거야 내 감상이니 별로 중요하지 않다.

모과

詩經 國風 衛風 木瓜
시경 국풍 위풍 모과

投我以木瓜 報之以瓊琚 匪報也 永以爲好也.
내게 모과를 주기에 어여쁜 패옥으로 보답하였지.
굳이 갚자고 하기보다 길이 사이좋게 지내보자며.
投我以木桃 報之以瓊瑤 匪報也 永以爲好也.
내게 복숭아를 주기에 어여쁜 구슬로 보답하였지.
굳이 갚자고 하기보다 길이 사이좋게 지내보자며.
投我以木李 報之以瓊玖 匪報也 永以爲好也.
내게 자두을 주기에 어여쁜 옥돌로 보답하였지.
굳이 갚자고 하기보다 길이길 사이좋게 지내보자며.

더보기
  1. 경(瓊)은 옥이 아름다운 것이요, 거(琚)는 패옥(佩玉)의 이름이다.
  2. 요(瑤) 아름다운 옥구슬이다.
  3. 구(玖) 역시 아름다운 옥구슬이다.

위의공(衛懿公)이 학에 너무 탐닉한 나머지 적족(狄族)의 침략을 막아내지 못하고 싸움 중에 죽었다. 위나라 사람들이 송환공의 도움으로 란을 피해 하수를 건너 조읍(漕邑)으로 들어갔다. 이에 제환공(齊桓公)이 3국의 제후와 군사들을 소집하여 각기 삼태기와 가래를 휴대하게 한 다음 위나라로 행군했다. 위문공 훼(燬)가 멀리까지 나와 제환공의 일행을 마중했다. 위문공은 그때까지 아직 삼베로 만든 군주의 의복과 비단으로 만든 관을 바꾸지 않고 상복으로 계속 입고 있었다.

제환공이 보고 측은한 마음을 금하지 못하고 위나라 도성을 어디에다 쌓아야하냐고 물었다. 문공이 초구(楚丘)를 정했으나 나라가 망해서 성을 세우는데 드는 비용을 감당할 길이 없어 바라만보고 있다고 대답했다.제환공은 그 날로 3국의 병사들에게 초구로 이동하여 위나라를 위하여 성을 쌓으라고 명했다. 다시 재목을 제나라에서 가져오게 하여 종묘를 모시는 사당을 짓게 하고 그 사당의 문에 위나라를 초구에 봉한다는 뜻의 ‘위봉(衛封)’ 이라는 현판을 달았다. 위문공이 제환공에게 위나라의 도성과 종묘를 모시는 사당을 세워준 은혜에 감격하여 〈모과(木瓜)〉라는 시를 읊어 노래했다. 출처

張子曰衛國, 地濱大河, 其地土薄. 故 其人氣輕浮, 其地平下. 故 其人質柔弱, 其地肥饒, 不費耕耨. 故 其人心怠惰. 其人情性 如此則其聲音 亦淫靡. 故 聞其樂 使人懈慢而有邪僻之心也. 鄭詩 放此
장자 가라사대 위나라가 땅 가에 큰 하수가 있어서 그 땅이 토박하니라. 그러므로 그 사람의 기운이 가볍고 떠있고, 그 땅이 평평하고 낮음이라. 그러므로 그 사람의 바탕이 유약하고, 그 땅이 비옥하고 기름져서 소비하고 밭 갈고 김매지 않느니라. 그러므로 그 사람들의 마음이 게으르니라. 그 사람들의 성정이 이와 같으면 그 성음이 또한 음탕하고 어지러우니라. 그러므로 그 음악을 들으면 사람으로 하여금 게을러지게 하여 사벽한 마음이 있느니라. 정나라 시도 이와 같으니라. 출처

공자가 정풍의 시를 깠는데, 장자 역시 위풍의 시를 깠다. 그래서 일까? 정풍과 위풍이 너무 내 취향이다.남녀가 서로 주고 받으며 부른 유행가라고 하는데 귀엽다. 애초에 시경이라는 책이 북방에서 유행하던 유행가를 모은 것이라고 어디서 읽은것 같다. 그래서 작자가 미상인 것이 많고, 당시에 일어났던 역사적인 사실이나 생활상을 잘 담고 있어서 좋은 사료가 되기도 한다고 했던것 같은데 대체 어디서 봤던 걸까?

해와 달

詩經 國風 邶風 日月
시경 국풍 패풍 일월

日居月諸 照臨下土 乃如之人兮, 逝不古處 胡能有定 寧不我顧.
저 하늘 해와 달은 오늘도 이 세상을 비추건만 어찌하여 우리 님은 옛날과는 다르게 차가울까요?
어찌해야 님의 마음잡을까요? 나를 돌아보지 않으니.
日居月諸 下土是冒 乃如之人兮 逝不相好 胡能有定 寧不我報.
저 하늘 해와 달은 오늘도 이 세상을 비추건만 어찌하여 우리 님은 나를 좋아하지 않을까요?
어찌해야 님의 마음잡을까요? 내게 말도 하지 않으니.
日居月諸 出自東方 乃如之人兮 德音無良 胡能有定 俾也可忘.
저 하늘 해와 달은 오늘도 동녘에 떠오르건만 어찌하여 우리 님은 따뜻한 말 한마디 하지 않을까요?
어찌해야 님의 마음잡을까요? 당신을 잊을 수 없으니.
日居月諸 東方自出 父兮母兮 畜我不卒 胡能有定 報我不述.
저 하늘 해와 달은 오늘도 동녘에 떠오르건만 아버님 어머님 그이는 나와 살지 않겠다 하네요.
어찌해야 님의 마음잡을까요? 내게는 차갑게만 하니.

더보기
  1. 日居月諸(일거월제)는 해와 달을 부르면서 호소함이다.
  2. 지인(之人)은 위장공(衛莊公)을 가리킨다.
  3. 서(逝)는 발어사(發語辭)다.
  4. 고처(古處)는 자세하지 않으나 혹자는 옛날 정리로 대함을 이른다고 했다.
  5. 호·녕(胡·寧)은 모두 어찌이다.
  6. 모(冒)는 덮음이요, 보(報)는 답하거나 대꾸함이다.
  7. 덕음(德音)은 말을 곱게 함이요, 무량(無良)은 그 실상이 추한 것이다.
  8. ‘비야가망(俾也可忘)’은 “ 정녕 나를 잊을건가요? ”라 말한 것이다.
  9. 축(畜)은 기름이요, 졸(卒)은 마침이니 지아비에게 버림을 받으니 부모님이 나를 기르심이 끝나지 못했음으로 탄식했다.
  10. 아마도 우환(憂患)과 질통(疾痛)이 극에 달하면 자연스럽게 부모님를 부르는 것은 사람의 지극한 정리다.
  11. 술(述)은 따름이니, 불술(不述)은 도리를 따르지 않는 것이다.

장강이 썼다고 추정되는 시중에 하나이다. 송의 주희(朱熹)는 패풍(邶風) 중《燕燕》,《終風》,《柏舟》,《綠衣》,《日月》등 다섯 수가 그녀의 작품이라고 추정했다. 모시정의에서 이 시에 대한 역주를 보자. 출처

之人 指莊公也. 逝는 發語辭. 古處 未詳, 或云以古道相處也
지인은 장공을 가리킴이라. 서는 발어사라.
고처는 자세하지 아니하니 혹자는 옛 법도로 서로 처신한다고 함이라.
胡寧, 皆何也. 莊姜 不見答於莊公. 故 呼日月而訴之.
호와 녕은 다 어찌함이라. 장강이 장공에게 답을 보지 못하니라.
그러므로 해와 달을 부르면서 하소연함이라.
言日月之照臨下土久矣 今乃有如是之人而不以古道相處,
말하건대 ‘일월이 아래 땅을 비춰 임한지 오래 하거늘,
이제 이와 같은 사람이 옛 법도로써 서로 처하지 아니하니,
是其心志回惑 亦何能有定哉 而何爲其獨不我顧也.
그 마음과 뜻이 미혹한 데로 돌아감이 또한 어찌 정함이
(후회하여 본처에게 돌아가겠다는 마음의 결정이) 있으리오마는
어찌 그 홀로 나를 돌아보지 않는고.’ 하니,
見棄如此而猶有望之之意焉 此詩之所以爲厚也.
버림을 당함이 이와 같으면서도 오히려 바라보는 뜻을 두었으니
이 시가 이로써 두터운 바가 되니라.
제장공(齊莊公)의 딸인 장강(莊姜)은 위풍 석인에서도 나온다. 장강은 아들을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위장공(衛莊公)에게 냉대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춘추전국시대의 제나라와 위나라의 관계를 잘 모르지만 위장공이 장강을 멀리한 이유는 어쩌면 정치적인 이유였을 지도 모르겠다. 더 자세한 내용은 이 포스트를 참고하자.

소리를 길게 끌어 하는 노래

長歌行
장가행 작자미상

靑靑園中葵 朝露待日晞
푸르고 푸른 채마밭의 아욱 아침 해에 이슬 스러진다.
陽春布德澤 萬物生光暉
따뜻한 봄의 은택을 입어 만물은 생기가 넘치고
常恐秋節至 焜黃華葉衰
늘상 걱정하는 가을이 되면 빛나는 국화잎도 시든다.
百川東到海 何時復西歸
백천도 동쪽으로 흘러 바다에 이르는데 나는 언제나 다시 서쪽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少壯不勞力 老大徒傷悲
젊고 혈기 왕성할 때 힘써 일하지 않으면 늙어서는 헛된 삶을 슬퍼하리라!

仙人騎白鹿 髮短耳何長
흰 사슴을 타고 가는 신선 머리는 짧지만 귀는 어찌 그렇게 긴가?
導我上太華 攬芝獲赤幢
우리를 인도하여 태화산으로 올라 영지버섯을 꺾고 적동을 얻었다.
來到主人門 奉藥一玉箱
주인집 대문에 당도해서 선약이 든 옥상자를 바쳤다.
主人服此藥 身體日康彊
주인께서 이 선약을 복용하면 신체는 날로 강건해지며
髮白復更黑 延年壽命長
흰머리는 다시 검게 변하여 만수무강 하시리
岧岧山上亭 皎皎雲間星
높디 높은 산꼭대기의 정자에 구름 사이로 빛나는 별들
遠望使心思 遊子戀所生
멀리서 바라보니 마음이 슬퍼진다. 나그네가 되어 부모님 생각에
驅車出北門 遙觀洛陽城
수레를 몰고 북문을 나가 멀리서 낙양성을 바라본다.
凱風吹長棘 夭夭枝葉傾
남풍은 가시나무를 흔들고 어린 나뭇가지의 이파리가 흩날린다.
黃鳥飛相追 咬咬弄音聲
꾀꼬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날다가 꾀꼴 꾀꼴 희롱하면서 울어대고
佇立望西河 泣下沾羅纓
서쪽으로 흐르는 강물을 망연히 바라보며 흐르는 눈물 갓끝을 적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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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만물이 소생하고 아름다운 꽃이 피듯이 사람도 모름지기 한창 때에 즐기고 살아야 하고, 자칫 주저하다가 좋은 때가 다 가버리면 후회하게 된다고 하였다. 명성이나 부귀는 물론 장생불사를 추구하는 것까지도 부정하며 극도의 급시행락(及時行樂)을 주장하지만 그 이면에는 자신의 불우한 인생에 대한 비애를 담았다.

이 시는 곽무천(郭茂倩)의《악부시집》의 《상화가사(相和歌辭)·상화곡(相和曲)》에 실려있는 악부고제(樂府古題)다. 「《고시(古詩)》에서는 ‘장가 진정으로 격렬하네[長歌正激烈(장가정격렬)]이라 했고, 위문제(魏文帝)는 그의 《연가행(燕歌行)》에서 ’단가의 은미한 읊조림 길게 할 수 없구나![短歌微吟不可長(단가미음불가장)]라고 노래 불렀다. 또 서진(西晉)의 부현(傅玄)은 《염가행(艶歌行)에서 ‘문득 장가에다 단가를 잇는다[咄來長歌續短歌(돌래장가속단가)]라고 했다.」따라서 장가행이나 단가행은 노래의 길고 짧음을 의미하지 사람 수명의 장단을 뜻하지 않는다. 출처

상화(相和)란 앞 사람의 선창에 노래 혹은 악기 연주로 화답하는 노래 방식을 일컫는다. 이때는 현악기나 관악기가 사용된다. 상화가사(相和歌辭)는 상화라는 형식으로 가창되는 한대의 민간 가곡인데, 악부 기관에 채집되어 전해지게 되었다.
따라서 상화가사에는 한대 사회의 생활상과 의식 형태가 반영되어 있다. 위(魏)에 와서 조씨 삼부자[조조(曹操), 조비(曹丕), 조식(曺植)]가 애창해 직접 가사를 짓거나 개작해서 궁정 연악으로 사용하면서 점차 경전화(經典化)ㆍ귀족화되었다. 후대의 많은 문인이 상화가사에 대한 모의작을 많이 남겼다. ≪악부시집≫에는 18권이 전해진다. 출처

  1. 곤황(昆熿) : 꽃잎이나 이파리가 시들어 누렇게 됨.
  2. 태화(太華):섬서성 동단의 화산(華山)으로 오악 중 서악이다. 지금의 섬서성 화음현(華陰縣) 남쪽에 있는데 그 서쪽에 있는 소화산(少華山)과 구분하기 위해 태화(太華)라고 부른다.
  3. 람지(攬芝)는 ‘영지(靈芝)를 채취하다’는 뜻이고 적동(적동(赤幢)은배와 수레 위에 걸린 붉은 휘장으로 무지개를 비유했다.
  4. 초초(岧岧):(산과 같은 것이) 높은 모양.
  5. 개풍(凱風):부드럽고 따뜻한 바람으로 남풍이다. 《시경·패풍(邶風)·개풍(凱風》에「凱風自南(개풍자남)/산들바람 남쪽으로부터 불어와, 吹彼棘心(취피극심)/가시나무 새싹을 어루만지네」 라고 했다.
  6. 요요(夭夭):《시경·주남(周南)·도요(桃夭)》에 「桃之夭夭(도지요요)/싱싱하고 파릇한 복숭아나무, 灼灼其華(작작기화)/그 꽃이 활짝 피었네」라고 노래했는데 요요는 나무가 어리고 싱싱함을 뜻한다. 즉 혼기가 차서 복숭아꽃처럼 활짝 핀 처녀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7. 황조(黃鳥):속명으로 황리류(黃離留) 혹은 박서(搏黍)라고도 하는데 황앵(黃鶯) 즉 꾀꼬리다.
  8. 교교(咬咬):교교(交交)로 새가 우는 소리다. 《시경·진풍(秦風)·황조(黃鳥)》「交交黃鳥 止于棘(교교황조 지우극)/꾀꼴꾀꼴 꾀꼬리, 가시나무에 앉았네」라고 했다.

長歌行 曹植
장가행 조식

墨出青松之煙 筆出狡兔之翰
먹물은 푸른 소나무 연기에서 나오고, 붓은 교모한 토끼의 털로 만들어지네.
古人感鳥跡 文字有改判
옛사람들은 새 발자국에 느낀 바 있어, 문자 모양이 바뀌게 되었네.
尺蠖知屈伸 體道識窮達
잔구(殘句) 한자 되는 진사도 움츠렸다 펼줄 아는데 도를 체득하려면 곤궁과 열달을 알아야하네.


長歌行 李白
장가행 이백

桃李待日開 榮華照當年
복사꽃 오얏꽃, 햇빛 따라 피어나 화려한 자태 제철 만나 빛난다.
東風動百物 草木盡欲言
봄바람이 만물을 흔들어 풀과 나무 모두가 무슨 말을 하려는 듯
枯枝無醜葉 涸水吐淸泉
마른 가지엔 시든 잎 없고 마른 샘도 맑은 물 뿜어낸다.
大力運天地 羲和無停鞭
큰 힘이 온 천지를 움직이는 건 희화(羲和)가 채찍질을 멈추지 않아서지.
功名不早著 竹帛將何宣
공명(功名)을 일찌감치 드러내지 못했으니 죽백(竹帛)일랑 장차 무엇에 쓰겠나.
桃李務靑春 誰能貰白日
도리(桃李)는 푸른 봄에 부지런히 꽃피우니 그 누가 해의 걸음 멈출 수 있으리.
富貴與神仙 蹉跎成兩失
부귀와 신선 우물쭈물하다가는 둘 다 놓치리.
金石猶銷鑠 風霜無久質
쇠와 돌도 닳고 녹아져 흐르는 세월에 견디는 것 없네.
畏落日月後 強歡歌與酒
해와 달의 걸음에 뒤처질세라 애써 노래하고 술을 즐기네.
秋霜不惜人 倏忽侵蒲柳
가을 서리는 인정도 없이 어느 틈에 포류(蒲柳) 같이 여린 몸에 엄습하노니.


동명의 드라마 때문에 검색 난이도가 너무 올라갔다. 모아둔 시가에 설명같은 것을 여기저기 찾아보니 조식과 이백 말고도 여러시대의 시인들이 같은 제목으로 많은 시를 남겼다. 그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단연 이백의 장가행으로 달과 술의 시인이라는 이미지에 걸맞게 달얘기와 술얘기가 나온다. 원작과는 조금 방향성이 다른것 같은 것이 인생의 무상함과 흘러가는 세월을 멈출 수 없음을 노래한것 같다. 뭐 아닐수도 있다 나는 알못이니깤ㅋ

조식의 장가행은 별로 유명하지는 않지만 시가의 첫줄에 나오는 송연묵의 생성 시기를 유추할수 있는 사료 정도의 위치이다. 조식은 장가행의 가장 유명한 구절인 '少壯不勞力 老大徒傷悲' 젊어서 노력하지 않으며 늙어서 고생한다는 내용이 주제이다. 뭔가 시가에서 느껴지는 희망과 포부가 보이는 것으로 보아 조비와의 패권 싸움으로 도성에서 쫒겨나기 전에 쓴것 같다. 정확하지는 않다.

찾아보기 전에는 장가행이라고 하기에 인생의 기나김을 노래하나 했는데, 딱히 그런 뜻은 아니고 당시에 민간에서 유행하던 노래의 한 형태라고 한다. 뉴에이지나 클래식처럼 하나의 음악 장르의 이름인 것이다. 선창하는 노래에 답가를 하는 방식이라고 하니 아마 누군가 첫부분을 부르면 그 다음에 뒷부분을 부르는 형식인것 같다. 첫부분이 젊어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어떡하느냐 라고 물으면 다음 부분에서 고달픈 인생의 슬픔을 노래한다. 사람 사는 세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것일까?

매미

蟬 李商隱(이상은)
매미

本以高難飽 徒勞恨費聲
본성이 청고하여 배부르기 어려운데, 부질없이 힘쓰며 한스럽게 소리만을 허비한다.
五更疏欲斷 一樹碧無情
오경에 소리 잦아들어 끊어지려 하는데, 한 그루 나무는 푸르러 무정하기만 하다.
薄宦梗猶汎 故園蕪已平
낮은 벼슬이라 물 위의 나뭇가지처럼 떠돌아다니니, 고향의 전원은 이미 황폐했으리.
煩君最相警 我亦擧家淸
번거롭게도 그대는 나를 가장 잘 일깨워주지만 나 역시 온 집안이 청빈하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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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本以高難飽 : 매미가 높은 나무에 서식하며 이슬을 먹고 삶을 말한 것으로, 李商隱이 자신의 고결함을 중의적으로 표현하였다. 한나라 趙曄(조엽)의 《吳越春秋(오월춘추)》 〈夫差內傳(부차내전)〉에

    秋蟬登高樹 飮淸露 隨風撝撓 長吟悲鳴 自以爲安
    “가을 매미가 높은 나무에 올라 맑은 이슬을 먹고, 바람에 따라 흔들리며 오래도록 노래하고 슬프게 울며 스스로 편안하게 여긴다. ”라고 하였다.

  2. 박환(薄宦)은 낮은 벼슬이며, 채유범(梗猶汎)은 나무가 물 위를 떠다니는 것으로, 지방의 낮은 벼슬아치로 여러 곳을 이직하여 다닌다는 뜻이다. 《戰國策(전국책)》에는 진(秦)나라로 가려는 맹상군(孟嘗君)을 만류하며 소진(蘇秦)이 들려준 이야기가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臣來 過於淄上 有土偶與桃梗相與語 桃梗謂土偶人曰 子西岸之土也 埏子以爲人 至歲八月 降雨下 淄水至 則汝殘矣 土偶曰 不然 吾西岸之土也 土則復西岸耳 今子 東國之桃梗也 刻削子以爲人 降雨下 淄水至 流子而去 則子漂漂者將何如耳

    “제가 오다가 치수(淄水)가를 지나는데 흙 인형과 복숭아 나뭇가지가 서로 말하고 있었습니다. 복숭아 나뭇가지가 흙 인형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서쪽 언덕의 흙이니 그대를 빚어 사람으로 만들었지만 일 년 중 8월에 이르러 비가 내려 치수가 닥쳐오면 그대는 부서지고 말 것이다.’라고 하니, 흙 인형이 말하기를 ‘그렇지 않다. 나는 서쪽 언덕의 흙이니, 부서지면 서쪽 언덕의 흙으로 돌아가면 그뿐이다. 그러나 지금의 그대는 동쪽 나라의 복숭아 나뭇가지, 그대를 깎아 사람으로 만든다 하여도 비가 내려 치수가 닥쳐오면 그대를 떠내려가게 하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그대는 물 위에 표류하며 장차 어디로 갈 것인가.’라고 하였습니다.”


이상은에 대한 소개는 이 게시글을 참고하길 바란다. 출처는 동양고전DB 당시삼백수 卷三 五言律詩 156 蟬 이다. 이 시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은 벽무정(碧無情)이다. 파랗게 무정하다라는 표현인데 현대적인 감각으로도 시적이고 절묘한 표현이다. 무정하다라는 말을 색깔로 표현한 이 시는 유독 한시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매미라는 제목이다.

이 시는 이상은이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기 위해 쓴 시이다. 자신을 매미에 비유하여 자신의 처지에 상관없이 뜻을 펼치겠다는 포부를 초반에 그리고 그 포부를 꺽으려는 장애물인 말단 관직에 있는 고단한 삶을 한탄하는 내용으로 끝맺었다. 이 시는 유명한 고사 한 구, 유명한 싯구 한 구절, 들어가지 않은 이상은 고유의 창작이란 점도 당시의 자유로움을 보여주기도 한다.

한시에서 매미는 참 여러가지 의미를 가지는데 보통 이슬만 먹는다고 해서 청렴하고 고고한 이미지라고 한다. 그래서 자신을 매미에 빗대어 설명하는 사람도 많고 매미날개같은 얇은 옷을 입은 야살스러운 여인을 표현하기도 한다.

제목없음

無題 李商隱(이상은)

당시삼백수 卷四 七言律詩 210 無題
昨夜星辰昨夜風
어젯밤 별들이 총총하고 바람 불 적에
畫樓西畔桂堂東
화루(畫樓)의 서편 계당(桂堂)의 동편이었지
身無綵鳳雙飛翼
몸에는 채색 봉황의 두 날개 없지만
心有靈犀一點通
마음은 신령한 무소뿔의 흰 줄처럼 하나로 통했지
隔座送鉤春酒暖
나뉘어 앉아 송구(送鉤)놀이할 때 봄 술은 따뜻했고
分曹射覆蠟燈紅
패 갈라 사복(射覆)놀이할 때 등잔불이 붉었는데
嗟余聽鼓應官去
아, 경고(更鼓) 소리 듣고서 입조(入朝)하기 위해 가야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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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영서(靈犀)는 신령한 짐승이다.

    《南州異物志》(남주이물지)에 이르기를 “서(犀)는 신리(神異)함을 지니고 있어서 뿔로써 그 신령함을 드러낸다.[犀有神異 表靈以角]”고 하였다. 구설에는 무소의 뿔 속에 하얀 실 같은 것이 있어서 그것이 대뇌를 지나 뿔의 양 끝을 이어준다고 한다. 여기서는 두 마음이 서로 통하는 것이 마치 양 끝이 서로 통하는 무소뿔 같음을 말한 것이다.

  2. 送鉤(송구) : 옛 놀이의 하나로 장구(藏鉤)라고도 하는데, 고리를 보내어 그것을 감추게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술을 마실 때 즐기는 유희로 이를 통해 벌주를 먹이기도 하였다.

    주처(周處)의 《風土記》(풍토기)에
    義陽臘日飮祭之後 叟嫗兒童爲藏鉤之戲 分爲二曹 以校勝負……一鉤藏在數手中 曹人當射知所在
    “의양(義陽)에서는 섣달에 음복한 후에 노인들과 아이들이 장구(藏鉤)놀이를 하는데, 두 조로 나뉘어 승부를 가린다.……고리 하나를 여러 사람의 손 가운데 감추어두고 상대편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맞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3. 分曹(분조)는 조(組)를 나눈다는 뜻이다.
  4. 射覆(사복?사부?) 역시 고대의 놀이로 두건이나 그릇에 물건을 넣어두고 그것을 맞히게 하는 것이다.
  5. 蠟燈(납등)은 蠟燭(납촉; 밀랍으로 만든 초)이다.
  6. 鼓(고)는 늦은 밤 시간을 알려주는 북 소리, 更鼓(경고)를 가리킨다.
  7. 聽鼓應官(청고응관)은 백관이 경고가 울리는 것을 듣고 入朝(입조)하는 것이다. 옛날에는 卯時(묘시), 즉 새벽 5시에서 7시 사이에 입조하였다.
  8. 蘭臺(난대)는 秘書省(비서성)을 지칭하는데, 도서와 秘籍(비적)을 관리하던 곳이다. 唐(당) 高宗(고종) 龍朔(용삭) 연간에는 비서성을 난대라고 불렀다. 이때 시인은 비서성 正字(정자)를 맡고 있었다.
  9. 斷蓬(단봉)은 轉蓬(전봉)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는데, 마른 쑥이 바람에 날리는 것을 말한다.
당시삼백수 卷四 七言律詩 212 無題 二首之一
來是空言去絶蹤 月斜樓上五更鐘
다시 온다는 빈말을 남긴 뒤 발길을 끊으시니 달 기운 누대 위에서 오경의 종소리 듣는다.
夢爲遠別啼難喚 書被催成墨未濃
꿈속에서 멀리 떠나보낼 때 우느라 불러보지도 못했건만 편지도 급히 서둘러서 먹빛도 진하지 못하구나.
蠟照半籠金翡翠 麝熏微度繡芙蓉
촛불은 금비취 휘장에 반쯤 가려져 있는데 사향은 연꽃 휘장 너머로 은은히 스며온다.
劉郎已恨蓬山遠 更隔蓬山一萬重
유랑(劉郎)은 봉래산이 멀다고 한탄했지만 봉래산 보다 만 겹 멀리 떨어져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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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五更(오경)은 황혼부터 새벽까지의 저녁을 5등분하여 甲夜, 乙夜, 丙夜, 丁夜, 戊夜 또는 一更, 二更, 三更, 四更, 五更 등으로 지칭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막 동이 틀 무렵을 뜻한다. 一更이 지날 때마다 종이나 북 등을 쳐서 시간을 알렸으므로, ‘오경종’은 저녁의 마지막 종소리, 즉 밤을 꼬박 새웠음을 뜻한다.
  2. 金翡翠(금비취) : 비취새가 그려진 장막을 뜻한다. 금색 실로 비취새 문양을 수놓은 장막의 일종으로, 잠잘 때 촛불의 빛을 가리기 위해서 사용하였다.
  3. 麝熏(사훈)은 사향을, 繡芙蓉(수부용)은 부용꽃을 수놓은 장막을 지칭한다. 微度(미도)는 장막을 통과하여 향기가 은은하게 넘어오는 것을 의미한다.
  4. 劉郎(유랑) : 당나라 때 남자를 郎(랑)이라고 불렀다.

    東漢(동한) 永平(영평) 연간에 劉晨(류신)이 阮肇(완조)와 함께 천태산에서 약초를 캐다가 우연히 桃源洞(도원동)의 선경에 들어가 선녀를 만나서, 반년을 살다 돌아오니 자손이 칠세대가 지난 후였다. 그 뒤 다시 도원동을 찾아가려 했으나 종전의 길이 묘연하여 찾을 수 없었다는 전설이 전하는데, 남조시대 송나라의 劉義慶(유의경)이 지은 《幽明錄》유명록에 실려 있다.

  5. 惠然肯來(혜연긍래): 즐거운 마음으로 온다는 뜻으로, 《詩經》 〈邶風 終風〉시경 패풍 동풍의

    ‘하루내내 바람불고 또 흙비가 내리지만 순순히 즐겨 오기도 한다.[終風且霾 惠然肯來]’에서 인용한 구절이다. 후대에 손님의 내방을 환영하는 말로 쓰였다.

  6. 膠漆(교칠) : 아교와 옻칠로 우애가 두터움을 일컫는 말이다.
당시삼백수 卷四 七言律詩 213 無題 四首其二
颯颯東風細雨來 芙蓉塘外有輕雷
살랑 동풍 불며 가랑비 내리더니 연꽃 핀 연못 너머로 가벼운 우레 소리
金蟾齧鏁燒香入 玉虎牽絲汲井迴
두꺼비 향로 닫혀 있어도 향 넣어 사르고 범 장식 도르래의 줄로 우물물 길을 수 있건만
賈氏窺簾韓掾少 宓妃留枕魏王才
가씨(賈氏)는 주렴 너머 미소년 한연(韓掾)을 엿보았고 복비(宓妃)는 재주 있는 위왕(魏王)에게 베개 남겨주었건만
春心莫共花爭發 一寸相思一寸灰
꽃 핀다고 다투듯 춘심(春心) 내지 말지어다 한 조각 그리움이 한줌 재되고 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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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颯颯(삽삽)은 바람 부는 소리를 나타낸 의성어이다.
  2. 芙蓉塘(부용당)은 남조(南朝)의 악부(樂府)와 당시(唐詩) 가운데 남녀가 만나는 곳으로 항상 언급되는 장소이다.
  3. 輕雷(경뢰)는 사마상여(司馬相如)의 〈長門賦(장문부)〉에 “우레 소리 우르릉 울리니 님의 수레 소리 닮았네.[雷殷殷而響起兮 聲象君之車音]”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
  4. 金蟾(금섬)은 두꺼비 모양의 香爐(향로)를 말한다.
  5. 鏁(쇄)는 鎖(쇄)와 같은 말로 여기서는 향로에 태울 향을 넣을 수 있는 여닫이 장치를 말한다.
  6. 玉虎(옥호)는 물을 길을 수 있는 도르래 장치인데, 특히 도르래 장치에 조각된 호랑이 장식을 들어 말한 것이다.
  7. 牽絲(견사)는 도르래에 달린 줄을 말한다.
  8. 賈氏(가씨)는 賈充(가충)이고, 韓掾(한연)은 한수(韓壽)를 가리킨다. 少는 젊고 아름다운 모습을 말한다. ≪世說新語(세설신어)≫ 〈惑溺(혹닉)〉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인다.

    진(晉)나라 한수(韓壽)는 용모가 뛰어났는데 사공 가충(司空 賈充)이 그를 불러 자신의 하급관리[연:掾]로 삼았다. 가충(賈充)이 모임을 가질 때마다 가충(賈充)의 딸이 주렴 너머에서 한수(韓壽)를 엿보며 마음에 들어 하였다. 그 후 자신의 하녀를 그의 집에 보내 연락을 주고받다가 급기야는 한수(韓壽)의 집에서 정을 나누게 된다.
    한수(韓壽)에게서는 남과 다른 좋은 향내[奇香(기향)]가 났는데, 서역에서 온 이 향은 황제가 가충(賈充)에게 내려준 것으로 가충(賈充)의 딸이 몸에 지니고 있다가 한수(韓壽)에게 준 것이었다. 이 향 때문에 둘 사이가 탄로나 가충(賈充)은 딸을 한수(韓壽)에게 시집보냈다.

  9. 전설에 따르면 ‘宓妃(복비)’는 원래 복희씨(伏羲氏)의 딸로 낙수(洛水)에 빠져죽어 낙수의 신(神)이 되었는데, 조식(曹植)의 〈洛神賦(낙신부)〉에도 그 기록이 보인다.

    ‘魏王(위왕)’은 조식을 가리킨다. 이 구절에서 인용한 고사는 ≪文選(문선)≫ 〈洛神賦(낙신부)〉의 이선(李善) 주(注)를 따른 것이다. 이선(李善)의 주(注)에 따르면 복비(宓妃)는 조비(曹丕)의 황후 견후(甄后)를 가리킨다.
    견후(甄后)는 견일(甄逸)의 딸로, 조식(曹植)이 그녀와 결혼하려 했는데 조조(曹操)가 조식(曹植)의 형 조비(曹丕)에게 시집보낸다. 조식은 그녀를 잊지 못해 침식을 잊을 지경이었다. 후에 조정에 들어가니 황제 조비가 동생 조식에게 견씨의 금대침(金帶枕) 등을 보여주자 조식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이때는 이미 황후 견씨가 세상을 떠난 후였으므로 조비는 금대침(金帶枕)을 조식에게 주었다.
    자신의 봉지(封地)로 돌아가다 낙수(洛水)를 건너게 되었는데 그날 꿈에 견씨가 나타나 ‘저는 본래 당신께 마음을 주었는데 그 마음이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이 베개는 제가 처녀 때부터 가지고 있다 시집가서도 썼던 것입니다. 전에 五官中郞將(오관중랑군=조비)에게 드렸는데 이제 당신께 드립니다.’라고 하였다.

당시삼백수卷四 七言律詩 215 無題
相見時難別亦難 東風無力百花殘
서로 만나기 어렵더니 헤어지기 또한 어려워 동풍은 힘 없건만 온갖 꽃 시들게 하네.
春蠶到死絲方盡 蠟炬成灰淚始干
봄 누에는 죽어서야 실을 다 뽑아내고 초는 닳고서야 눈물을 처음으로 멈추는구나.
曉鏡但愁雲鬢改 夜吟應覺月光寒
새벽에 거울 들여다보며 풍성한 머리 변한 것을 걱정하고 밤에 읊조리다가 달빛이 차가워짐을 깨닫는다네.
蓬萊此去無多路 靑鳥殷勤爲探看
봉래산을 예서 가려해도 길이 없으니 파랑새야, 살짝 날아가서 엿보아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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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東風(동풍) : 春風(춘풍)을 말한다.
  2. 絲(실 사)와 思(생각 사)는 같은 음으로 동음어이다. 봄누에가 죽어야 실을 토하는 것이 끝나듯, 굳건한 애정 역시 죽어서야 끝남을 비유하였다.
  3. 淚(누,루)는 촛농과 눈물을 뜻하는 중의어이다. 이 구절 역시 초가 다 타서 재가 되어야 촛농이 마르듯, 애정이 변하지 않음을 비유하였다.
  4. 雲鬢(운발)은 젊은 여인의 구름과 같은 검은 머리를 형용한다.
  5. 改(개)는 용모가 초췌하게 바뀌었음을 말한다.
  6. 蓬萊(봉래) : 蓬山(봉산)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봉래는 동해의 선산인데 여기서는 애인이 있는 곳을 지칭한다.
  7. 靑鳥(청조) : 西王母(서왕모)에게 소식을 전해주던 전설상의 神鳥(신조)인데, 여기서는 소식을 전해주는 사람을 말한다.
당시삼백수 卷四 七言律詩 217 無題 二首之二
鳳尾香羅薄幾重 碧文圓頂夜深縫
봉황꼬리 무늬의 향라(香羅) 얇게 몇 겹을 치고 푸른 무늬, 둥근 장식의 장막을 깊은 밤에 꿰맨다.
扇裁月魄羞難掩 車走雷聲語未通
달 모양의 부채는 부끄러움을 다 가리지 못하였고 수레 소리 우레 같아 대화를 나누지 못하였지.
曾是寂寥金燼暗 斷無消息石榴紅
촛불 다 탄 적막한 어둠 속에서 보냈었는데 석류 붉게 핀 시절에도 소식조차 없구나.
斑騅只繫垂楊岸 何處西南待好風
그대의 반추마는 수양버들 언덕에 매어 있는데 어디서 서남풍 불어오기 기다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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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鳳尾(봉미)는 봉황의 꼬리 깃털로 여기서는 뛰어나게 아름다운 문양을 지칭한다.
  2. 香羅(향라)는 가벼운 고급 비단을 미화한 말이다.
  3. 碧文圓頂(벽문원정)은 녹색 무늬에 둥근 장식을 단 비단 장막을 지칭하는데, 혼례를 치를 때 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4. 縫(봉)은 장막을 깁거나 또는 여미는 것으로 해석한다. 밤 깊어 이 장막을 깁거나 여민다는 것은 연인과의 만남을 기대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5. 扇裁月魄(선재월백) 여자가 사용하는 부채로, 달 모양을 본뜬 것을 지칭한다.

    月魄(월백)은 달이 기울어 빛나지 않는 부분이나 달 자체를 지칭하기도 한다. 혹 도가에서 해는 양이므로 魂(혼)으로 칭하고, 달은 음이므로 魄(백)으로 칭했다는 설도 있다. 班睫妤(반첩여)의 〈怨歌行(원가행)〉에 “재단하여 합환선을 만드니, 동글동글 밝은 달과 같네. [裁爲合歡扇 團團似明月]”라고 하였다.

  6. 雷聲(뇌성)은 마차가 달릴 때 나는 소리를 천둥 소리에 비유한 것이다. 石榴紅 : 여름 5월 즈음 석류꽃이 필 시기를 뜻한다.
  7. 語未通(어미통)은 마차와 수레 소리 때문에 서로의 정을 확인할 수 있는 대화를 나누지 못하였음을 뜻한다.
  8. 金燼暗(금신암): 등촉이 꺼져 어두워짐을 뜻한다. 金燼(금신)은 燈花(등화) 즉 불꽃이 타는 심지이다.
  9. 石榴紅(석류홍): 여름 5월 즈음 석류꽃이 필 시기를 뜻한다.
  10. 斑騅(반추): 청색과 백색이 섞인 준마를 지칭한다.
  11. 何處西南待好風(하처서남대호풍) : ‘어느 곳에서 서남쪽에서 불어오는 좋은 바람을 타고 그대의 품에 날아갈 수 있을까.’라는 뜻이다.

    조식(曹植)의 〈七哀詩(칠애시)〉에 “부침이 각자 형세가 다르니, 어느 때 만나 함께할 수 있을까. 원하노니 서남풍이 되어, 길이 그대의 품에 들고 싶어라.[浮沈各異勢 會合何時諧 願爲西南風 長逝入君懷]”라고 하였다.

당시삼백수 卷四 七言律詩 218 無題 二首其二
重帷深下莫愁堂 臥後淸宵細細長
겹겹으로 휘장 깊이 드리운 막수(莫愁)의 방 잠자리 든 뒤 깊은 밤은 길기도 해라.
神女生涯原是夢 小姑居處本無郎
무산신녀(巫山神女)의 생애는 원래 꿈이었고 소고(小姑)의 거처엔 본래 임이 없었지
風波不信菱枝弱 月露誰敎桂葉香
바람과 물결은 마름 가지 연약한 걸 알지 못하고 누가 시켜 달과 이슬이 계수나무 잎을 향기롭게 했던가?
直道相思了無益 未妨惆悵是淸狂
그대 향한 그리움 아무리 무익해도 상관없어요 슬픈 가운데 애정에 눈멀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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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莫愁(막수): 원래는 고악부(古樂府)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이다. 남조(南朝)시대 악부(樂府)로 양(梁) 무제(武帝) 소연(蕭衍)이 지은 〈河中之水歌(하중지수가)〉(〈河中曲(하중곡)〉이라고도 한다)에

    河中之水向東流 洛陽女兒名莫愁 莫愁十三能織綺 十四采桑東陌頭 十五嫁爲盧家婦 十六生兒字阿侯 盧家蘭室桂爲梁 中有鬱金蘇合香……
    “황하 강물 동쪽으로 흐르네, 막수(莫愁)라는 이름의 낙양 여자 있었지, 막수는 열셋에 비단 짤 수 있었고, 열넷에 동쪽 길머리에서 뽕잎 땄네, 열다섯에 시집가 노씨 집안 아낙 되었고, 열여섯에 아이 낳아 아후(阿侯)라 했네, 노씨 집은 난초향 나는 방에 계수나무 서까래에다, 집안에는 울금과 소합 향내 가득하네.
    ” 라고 보이는데, 미인이기도 해서 아름다운 여자라는 의미도 포함돼 있다.

  2. 淸宵(청소)는 고요하고 깊은 밤을 말한다.
  3. 細細長(세세장)은 밤이 긴 것을 말한다. 이 말속에는 수심(愁心)이 오래간다는 의미가 함축돼 있다. 細細(세세)는 강조하는 말로 쓰였다.
  4. 神女(신녀): ‘神女’는 초(楚) 양왕(襄王)과 꿈속에서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나눈 무산신녀(巫山神女)를 말한다.

    송옥(宋玉)의 〈高唐賦 幷序(고당부 병서)〉와 그 속편(續篇) 〈神女賦 幷序(신녀부 병서)〉에 보인다.

  5. 小姑居處本無郎(소고거처본무랑): 이 구절은 남조(南朝)시대 악부(樂府) 〈神弦歌(신현가) 淸溪小姑曲(청계소고곡)〉의 “小姑 사는 곳, 님 없이 홀로 있네. [小姑所居 獨處無郎]”에서 왔다.
  6. 淸狂(청광) : 욕심이 없고 미친 사람 비슷한 상태이다. 여기서는 치정(癡情)의 뜻으로 끝까지 애정을 지킨다는 의미로 썼다.

이상은(李商隱, 원화 7년(812년) 또는 원화 8년(813년)~대중 12년(858년))은 중국 당나라의 관료 정치가로 두목(杜牧)과 함께 만당(晩唐)을 대표하는 한시인이다. 자는 의산(義山), 호는 옥계생(玉谿生) 또는 달제어(獺祭魚)이다.
이상은의 시는 화려하고 때로는 관능적이며, 때로는 상징적이다. 특히 연애시에서 이상은 시의 특색이 발휘된다. 그는 애정시 방면에서 독보적인 경지에 올랐고 사랑에 빠진 남녀의 심리를 섬세하게 읽어냈다는 평을 받는다.
무제(無題)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작품을 포함해 이상은은 아예 제목을 짓지 않거나 혹은 간단히 시구에서 빌리는 정도로 제목을 붙였는데, 만당시의 경향인 유미주의를 보다 더 추구하여 암시적이고 상징적인 수법을 구사하고, 몽롱하며 환상적이고 관능적인 독특한 세계를 구축하였다.
그 주제는 대개 '파국'으로 끝나버린 '불륜'의 연애의 회상, 감미로운 꿈 같은 청춘의 기억의 서술이다. 당연히 그 내용은 몹시 애수를 띠지만 그것을 우아한 시구나 댓구, 고전의 인용으로 장식하여 탐미주의의 경지에 이르고 있다. 출처

당나라 이상은은 두목과 함께 만당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李杜(이두)라고 불린다. 당대(唐代)시인은 워낙 유명한 사람이 많고 또 한시의 최대 번성기라고 할 수 있을정도로 사용하는 문체나 소재가 매우 다양하다. 유독 애정시를 많이 쓴 이상은은 후대에도 영향을 많이 끼쳤는데 대부분의 유교적 해석이 그러하듯 뜻대로 보지 않고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끼워맞추어 쇄락해가는 당나라와 연관지어 그의 애정시를 사회적 통찰로 바꿔버렸다. 유교하는 애들은 다들 좀 인셀이었는지 왜들 그렇게 정치나 사회랑 연관 못시켜서 안달일까? 순수하게 사람이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점을 부정하려고 한다. 다른 한시와 마찬가지로 유명한 시가들을 인용한 구절이 많기때문에 기본지식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7언율시이고 만당시기의 작품이기 때문에 시경이나 초사처럼 직관적인 뜻 유추가 어려운 부분이 별로 없다.

사실 처음으로 이상은의 시를 접한 것은 신조협려에 나온것이다. 양과가 소용녀와 자신의 처지를 촛불에 비유할 때, 황약사가 죽은 부인을 그리워하며 읊고 서재에 걸어둔 대련을 떠올리는 부분에 나오는 시이다.
“봄 누에는 죽음에 이르러서야 실이 다하고, (春蠶到死絲方盡) 촛불은 제 몸을 다 살라서야 눈물을 그치네. (燭炬成灰淚始干)”
이 구절은 후대의 시나 문학 작품에서도 종종 인용될 뿐만아니라 봄누에와 촛불이라는 단어에 애틋한 서사를 부여한 시이기도 하다.그 나라에서는 의무교육과정에 포함되어 있어서 현대에도 자주 사용되는 구절이라고 한다. 해석및 참고는 출처를 참고해주세요.

원망의 노래

怨歌行 班婕妤
원가행 반첩여

新裂齊紈素 皎潔如霜雪
제(齊) 땅에서 난 흰 비단 새로 잘라내니 희고 깨끗함 서리와 눈 같구나.
裁爲合歡扇 團圓似明月
마름질하여 합환선(合歡扇) 만드니 둥근 모양 밝은 달과 같네.
出入君懷袖 動搖微風發
임의 품속과 소매 드나들며 움직일 때마다 서늘한 바람 일으킨다오.
常恐秋節至 凉飇奪炎熱
항상 두려운 것은 가을철 이르러 시원한 바람이 더위 빼앗아 가면,
棄捐篋笥中 恩情中道絶
대나무 상자 속에 버려져 은혜로운 정 중도에 끊어질까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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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가행(怨歌行)은 '원망의 노래'라는 뜻으로 여름 한 때 주목을 받던 부채가 가을이 되니 버려진다는 내용이다. 이 시에 나오는 추풍선(秋風扇)이라는 말은 쓸모가 없어진 물건이나 총애를 잃은 여자의 비유로 많이 쓰인다.

첩여 반씨(婕妤 班氏 B.C 48~2)는 한성제(漢成帝)의 후궁이며 유명한 시인이다. 반씨는 처음에 입궁하여 비교적 지위가 낮은 소사(少使)에 머물다가 총애를 받아 금방 첩여(婕妤)에 책봉되었다. 그녀는 성제와의 사이에 두 아들을 낳았으나 얼마 되지 않아 모두 죽고 말았다. 반첩여는 초기에는 매우 총애를 받는 후궁이었으나, 젊고 아름다운 조비연(趙飛燕)과 그 여동생이 후비로 입궁하면서 점점 실총(失寵)하게 된다. 조비연 자매는 그녀와 허황후(許皇后)를 제거하기 위해 성제에게 허씨와 반씨가 후궁들과 성제를 저주하고 있다고 무고하였고 이 때문에 허황후는 폐위되었다.

반첩여도 모진 고문을 당했으나 결백을 주장하여 결국은 혐의가 풀리고 금까지 하사받았다. 혐의는 풀렸지만 반첩여의 신세는 그 옛날 총애를 한 몸에 받던 때와 같지 않았다. 결국 또다시 모함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반첩여는 자신을 귀여워하던 왕정군 태후를 모신다는 이유로 궁을 나가 장신궁(長信宮)으로 떠나버렸다. 반첩여는 장신궁에 머물며 자도부(自悼賦), 도소부(搗素賦), 원가행(怨歌行) 등 세 편의 시를 지었는데 그 중에 원가행만이 오늘날까지 전한다.

후에 한성제가 붕어하고 곁에서 모시던 조합덕이 죄를 물을까 두려워 자살하자 황위는 정도태후의 손자인 유흔에게 돌아갔다. 장안성으로 다시 돌아온 부태후는 처음엔 겸손했지만 새황제의 권력을 내세워 점점 본색을 들어내기 시작했다. 황태태후가 된 부태후는 태황태후 왕정군을 무시하고 그 일가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그러나 서로 간의 세력다툼으로 입은 피해가 너무 심했기에 서로 한 걸음씩 양보해 서로를 견제하는 쪽으로 머물게 되었다. 부태후는 평소에 왕정군을 힘없는 늙은이라며 대놓고 괄시를 했으며 힘있는 자에게 약한 왕정군은 아무 말도 못했다.

부태후의 권력이 절정에 달할 무렵, 생각지도 못한 복병을 만났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손자인 황제였다. 한애제는 자신의 몸종이었던 미남자 동현을 사랑하게 되었다. 이에 부태후는 불같이 반발했고 한애제 또한 할머니 밑에서 간섭당하며 살아야 하는 것에 염증을 느끼고 서로 대립하기 시작했다. 한애제는 동현을 대사마의 장군에 올린 것은 물론 그의 일가에 파격적인 벼슬을 주기에 이르렀다.

황궁에 할머니와 손자간의 싸움은 서로를 중병에 이르게 만들었고 먼저 병으로 세상을 떠난 부태후를 뒤따라 한애제도 붕어하고 만다. 이때 왕정군은 황제의 옥쇄를 움켜줘고 급히 왕망을 불러 대사마의 직위에 올리고 중산왕의 아들 유연을 새황제에 올리고 죽은 부태후와 그때까지 살아있던 황태후 조비연, 동현의 세력을 일순간에 숙청했는데 아둔했던 그녀에게 이러한 비상한 책략을 내놓은 것은 바로 장신궁에서 왕정군을 곁에 모시던 반첩여였다. 한성제가 아끼던 조비연은 황태후, 황후, 서민으로 신분으로 추락하다 결국 강요 못이겨 자살했으나 반첩여는 홀로 한성제의 능묘를 지키며 그의 추억하는 것으로 일생을 보냈다고 한다.

장가행이나 단가행이 인생의 길고 짧음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유행하던 장단의 이름인것 처럼, 어쩌면 원가행 역시 당시에 유행하던 장단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알못이기 때문에 정확하게는 모른다.

어부사

漁父辭 屈原(굴원)

屈原旣放 游於江潭 行吟澤畔 顔色樵悴 形容枯槁
굴원이 이미 쫓겨나 강가와 물가에 노닐고 못가에서 시를 읊조리고 다니는데, 얼굴색은 초췌하고모습은 수척해 보였다.
漁父見而問之曰, 子非三閭大夫與
어부가 그를 보고 묻기를, ‘그대는 삼려대부가 아니십니까?
何故至於斯
무슨 까닭으로 이 지경에 이르셨습니까?’ 하니,
屈原曰 擧世皆濁 我獨淸 衆人皆醉 我獨醒 是以見放
굴원이 말하기를, ‘세상이 다 혼탁한데 나 홀로 깨끗하고 모든 사람이 다 취해 있는데 나 홀로 깨어 있다. 이런 까닭에 추방을 당했다.’ 하니
漁父曰 聖人不凝滯於物 而能與世推移
어부가 말하기를, ‘성인은 세상 사물에 얽매이지 않지만 세상을 따라 변하여 갈 수 있어야 합니다.
世人皆濁 何不淈其泥而揚其波
세상 사람들이 모두 탁하면 어찌 진흙탕을 휘저어 물결을 일으키지 않으며,
衆人皆醉 何不飽其糟而歠其醨
뭇 사람이 모두 취해 있거늘 어찌하여 술지게미를 먹고 박주(薄酒;물탄 술)를 마시지 않으십니까?
何故 深思高擧 自令放爲
어찌하여 깊이 생각하고 고결하게 처신하여 스스로 쫓겨남을 당하게 하십니까?’ 하니
屈原曰 吾聞之 新沐者 必彈冠 新浴者 必振衣
굴원이 말하기를, ‘내가 듣건대 새로 머리를 감은 사람은 반드시 관을 털어서 쓰고, 새로 목욕한 사람은 반드시 옷을 털어서 입는다고 하였소.
安能以身之察察 受物之汶汶者乎
어찌 맑고 깨끗한 몸으로 더러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겠소?
寧赴湘流 葬於江魚之腹中
차라리 상수에 몸을 던져 물고기 뱃속에 장사를 지낼지언정
安能以皓皓之白 而蒙世俗之塵埃乎
어찌 결백한 몸으로서 세속의 티끌과 먼지를 뒤집어 쓸 수 있겠소?’ 하니
漁父 莞爾而笑 鼓枻而去 乃歌曰
어부는 빙그레 웃고서, 노를 두드리고 떠나가면서, 이렇게 노래하기를
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고,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으리라.’ 하고는
遂去不復與言
마침내 떠나가고 다시는 대화가 없었다.

사기 굴원전에 이르기를 초나라의 왕족이었던 굴원은 그의 친척이었던 회왕의 신임을 받아 젊은나이에 좌도라는 중책을 맡고 있었다. 법령입안때 궁정의 정적인 상관대부와 충돌해 중상모략으로 면직당하고 회왕과 멀어지게 된다. 굴원은 제(齊)와 동맹해 진(秦)을 대항해야한다고 주장했으나 진의 장의와 내통하고 있던 상관대부와 왕의 애첩때문에 아무도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왕은 제와 단교하고 진에게 기만당해 진의 포로가 되어 객사한다.

회왕이 죽기도전에 아들인 경양왕(頃襄王)이 즉위하고 회왕의 막내아들이자 회왕의 애첩의 아들인 자란(子蘭)이 재상이 되는데 굴원은 회왕을 객사하게 한 자란을 백성들과 함께 비난하다 또 다시 모함을 받아 장강(長江) 이남의 소택지(沼澤地)로 추방된다. 어부는 이때 쓴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다. 후세에 창작됬다는 의심이 있기도 한데 일단 굴원이 남긴 시중에 가장 유명한 것이기에 일단은 굴원의 작품으로 친다.

굴원의 작품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중에 하나는 그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왕과 왕실을 비난하면서도 그 충정을 꺽지 않았기 때문이다. 굴원이 태어난 시대의 초나라는 이미 그 세가 많이 기운 상태였다. 회왕이 그의 말을 들었다고 해서 과연 진나라에게 망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부정부패가 심했고, 좀 괜찮은 관리나 책사는 모두 주변국에 빼앗긴 상태다. 굴원은 왕족으로써 문인으로써 지조와 절개를 지켰다. 개인적으로 초나라 최대 아웃풋이라 칭한다. 특히 마지막에 어부가 읊는 노래는 굴원이 진흙탕에 발을 씻느니 목숨을 던지리라 마음먹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결국 돌을 안고 상수에 몸을 던진다.

단오는 음력 5월 5일로, 원래는 굴원의 죽음을 애도하는 날이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단오절이라고 하여 몸을 깨끗이하고 풍년제를 지내는 날인데, 중국에서는 굴원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상수에 물을 저어 물고기들이 굴원의 시신을 먹지 못하도록하고 쌀을 대신 뿌려 물고기밥을 줬다고 한다. 정확하게 멱라수 어느 위치에서 몸을 던졌는지는 모르나 그가 사망한 날은 백성들에 의해 기억되고 기록되어 아직도 중국에서는 굴원을 기리며 단원절에 粽子(종자; Zongzi)를 먹는다. 한국에서도 굴원을 기리고자 망개떡처럼 잎사귀에 싼 떡을 먹었다고 한다.

아름다운 사람

詩經 國風 衛風 碩人
시경 국풍 위풍 석인; 아름다운 사람

碩人其頎 衣錦褧衣
저 미인 키도 크고 날씬한데 비단에 엷은 홑옷 입었네.
齊侯之子 衛侯之妻
제후의 따님이며 위후의 아내요,
東宮之妹 邢侯之姨 譚公維私.
동궁의 누이며 형후의 처제요 담공의 처형이시네.
手如柔薺 膚如凝脂 領如蝤蠐 齒如瓠犀
손은 부드러운 띠싹 같고 살결은 기름처럼 보드랍고 목은 흰 나무벌레 같고 이는 박씨처럼 하얗고요.
螓首蛾眉 巧笑倩兮 美目盼兮.
매미같은 이마에 나방같은 눈섭 곱게 웃으니 보조개 지고 예쁜눈은 흑백이 또렷하네.
碩人敖敖 說于農郊
훌륭하신님 날씬하시고 도성 밖에 머물러 사신다네
四牡有驕 朱幩鑣鑣 翟茀以朝
수레 끄는 네 필 말은 장대하고 붉은 끈을 감은 재갈은 아름답고 꿩깃 덮개 덮고 조정에 간다네.
大夫夙退 無使君勞
대부들은 일찍 물러나며 임금님을괴롭히지 말자고 하셨다네.
河水洋洋 北流活活
강 물은 넘실거리고 북쪽으로 콸콸 흘러가고,
施罛濊濊 鱣鮪發發 葭菼揭揭
물 깊은 곳에 고기 그물 던지면,잉어 붕어때가 파닥거리고, 큰 갈대작은 갈대자랄데로 자라있네.
庶姜孼孼 庶士有朅
꾸미고 따라온 여인들 곱기도 하고 수행 관원들도 늠름하게 전송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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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碩人(석인)은 장강(莊姜)을 말하고 頎(기)는 훤칠하게 키가 큰 모양을 뜻한다.
  2. 錦(금)은 문채가 있는 옷이고, 褧(경)은 홑옷이니, 錦衣(금의)에 褧衣(경의)를 더한 것은 문채가 더욱 드러나기 때문이다.
  3. 東宮(동궁)은 태자가 거처하는 궁궐이니 제(齊)나라 태자 득신(得臣)이다.
  4. 석인은 태자와 같은 모친의 소생으로 매우 귀한 신분임을 말한 것이다. 뒤에 태어난 여자 형제를 妹(매)라 하고 妻(처)의 姊妹(자매), 즉 처제나 처형을 姨(이)라 하고 형부나 자부를 私(사)라 한다.
  5. 띠풀이 처음 난 것을 荑(이)라 하는데, 부드럽고 새하얀 것을 말한 것이다.
  6. 凝脂(응지)는 기름이 차가운 기운에 엉긴 것이니, 하얗게 빛나는 살결을 말한 것이다.
  7. 領(영)은 줄기이다.
  8. 蝤蠐(추제)는 하얗고 긴 나무굼뱅다.
  9. 瓠犀(호서)는 하얀 박속에 박힌 씨로 미인의 고르고 반듯하게 밝힌 하얀 치아를 뜻한다.
  10. 螓(진)은 그 이마가 넓고 아름다운 작은 매미로 미인의 이마를 말하고 蛾(아)는 누에이니, 그 눈썹이 가늘고 길며 동그랗게 구부러졌음을 뜻한다.
  11. 倩(천)은 보조개가 아름다운 것이고, 盼(반)은 눈동자의 흑백이 분명한 것이다.
  12. 敖敖(오오)는 키가 훤칠하고 아름다운 모양이다.
  13. 說(세)는 머무러 유숙함이다.
  14. 農郊(농교)는 도성 밖 근교다.
  15. 四牡(사모)는 수레를 끄는 네 마리의 말이고 驕(교)는 말이 씩씩한 모양이다.
  16. 幩(분)은 말의 재갈을 장식하는 천으로 주분은 군주되는 사람이 달 수 있는 장식이다.
  17. 적(翟)은 翟車(적거)이니, 부인이 타는 수레는 꿩깃으로 수레를 장식한다.
  18. 茀(불) 부녀자들이 타는 수레의 앞뒤를 가리는 포장이다.
  19. 夙退(숙퇴)은 일찍 물러감이다.
  20. 大夫夙退(대부숙퇴) 無使君勞(무사군로)는 대부들은 일찍 조회을 끝내고 퇴궐함으로 해서 위후(衛侯)가 새로 얻은 어여쁜 부인과 함께 지낼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21. 하수(河水)는 제(齊)나라의 서쪽과 위(衛)나라의 동쪽으로 흐르다가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바다로 들어가간다.
  22. 洋洋(양양)은 성대한 모양이요, 活活(괄괄)은 물이 세차게 흐르는 모양이다.
  23. 鱣魚(전어)는 용과 흡사하고 노란색의 머리에, 예리한 입이 턱 아래에 있으며, 등 위와 배 아래에 모두 껍질이 있으니, 큰 것은 천근이 넘는 것도 있다.
  24. 鮪(유)는 전어와 흡사한데 작고 색은 청흑색이다.
  25. 發發(발발)은 기가 성한 모양이다.
  26. 菼(담)은 갈대인데 , 또한 荻(적)이라고도 한다.
  27. 揭揭(걸걸)은 기름이다.
  28. 庶姜(서강)의 서(庶)는 무리이니 장강을 따라온 몸종들을 뜻한다.
  29. 孽孽(얼얼)은 화려하게 치장한 모양이고 庶士(서사) 역시 장강을 호위하기 위해 따라나선 무사들이다.
  30. 朅(흘)은 씩씩한 모양이다.
위의 내용은 모시전을 인용한 것이다. 출처

이 시는 부(賦)로 제장공(齊莊公)의 딸 장강(莊姜)이 위장공(衛莊公)에게 시집갈 때의 모습을 노래한 시가다. 위장공은 위무공(衛武公)의 아들로 기원전 757년에 즉위하여 735년에 죽은 위나라의 군주다. 위장공이 자식을 낳지 못한 장강을 멀리하고 다른 부인을 얻어 총애하자 위나라 국인들이 그것을 안타깝게 생각해서 이 노래를 지어 불렀다. 춘추좌씨전에도 내용이 나오는데 다음과 같다. 출처

衛莊公娶于齊東宮得臣之妹 曰莊姜.
위장공이 제나라 동궁득신(東宮得臣)의 누이를 아내로 맞이하였으니 그가 장강이다.
美而無子 衛人所爲賦碩人也 又娶于陳 曰厲嬀
미인이었으나 아들이 없으니, 위나라 사람이 그를 가엾게 여겨 석인을 지었다.위장공이 또 진(陳)나라에서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그가 여규(厲嬀)이다.
生孝伯 早死 其娣戴嬀 生桓公 莊姜以爲己子 公子州吁 嬖人之子也
효백(孝伯)을 낳았으나 일찍 죽었고,여규의 동생 대규(戴嬀)가 환공(桓公)을 낳으니, 장강은 환공을 자기의 아들로 삼았다. 공자주우(公子州吁)는 폐인(嬖人;첩)의 아들이다.
有寵而好兵 公弗禁 莊姜惡之
장공은 첩을 총애하여 그아들이 병사를 좋아하는데도 금하지 않으니, 장강이 그를 미워하였다.

후에 다른 해석을 한 사람들은 석인을 덕있는 사람으로 바꾸었는데 당시 상황이나 쓰여진 배경을 봤을 때, 석인을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해석하는게 개인적으로 제일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덕있는 사람이라고 해석한 이유는 시경 국풍 패풍의 녹의; 푸른 옷에 나오는데, 이 시는 위장공이 첩에게 빠져 정실부인인 장강을 돌보지 않아 첩보다 빛나고 정숙한 현부인인 장강의 쓸쓸함을 노래한 것이다. 장강이 정말 대단한 미모였다고 생각하는게 얼마나 예뻣길래 시경에 장강을 주제로 한 시가 2개나 있을까? 게다가 다른 두 나라에서! 석인은 위풍에 있지만 녹의는 패풍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에 나오는 구절이 후대에 미인을 표현하는 관용어로 많이 사용 되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螓首蛾眉(진수아미)이다. 진수는 솜털이 보송보송 난 참매미의 몸통같은 이마를 가리키고, 아미는 누에나방의 더듬이처럼 가늘고 길게 굽어진 예쁜 눈썹을 뜻한다. 그 모습이 초승달을 닮아 아미월(蛾眉月)이라고도 불리며 미인을 뜻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요즘의 미의 잣대로 생각하기에 매미같은 이마는 뭐고 누에나방 같은 눈썹은 뭘까 싶다. 초승달같은 눈썹 하면 좀 무슨 뜻인지 알겠는데 매미같은 이마는 대체 뭘까?

우림령

雨霖鈴 柳永(유영)
빗속에 울리는 매미소리

寒蟬淒切 對長亭晚 驟雨初歇.
가을매미 슬피 울고 저녁 무렵 이별하는 곳에 소나기 막 그쳤다.
都門帳飲 無緒方留戀處 蘭舟催發
도성문 밖 장막의 술자리는 기분 내키지 않고 아쉬움에 미련 남는데, 배는 가자고 재촉한다.
執手相看淚眼 竟無語凝噎
두 손 마주잡고 젖은 눈 바라보다 끝내 말 한마디 못하고 목이 메인다.
念去去 千里煙波 暮靄沉沉楚天闊
멀리 가려니 천리 물안개 길, 저녁 안개 자욱한 남쪽 하늘 아득하다.
多情自古傷離別 更那堪 冷落清秋節
예로부터 다정하면 이별이 아프다 했는데, 어찌 견딜까 이 적막하고 쓸쓸한 가을을
今宵酒醒何處 楊柳岸 曉風殘月
오늘 밤 마신 술은 어디에서 깰까? 버드나무 언덕? 새벽바람 부는 희미한 달빛 아래에서 겠지.
此去經年 應是良辰好景虛設
이제 가면 여러 해가 지나 좋은 시절 아름다운 경치도 모두 부질 없으리라.
便縱有千種風情 更與何人說
헤아릴 수 없는 연정 있다해도 이 마음을 누구에게 말할까?

雨霖鈴(우림령)은 사패이름으로 당(唐) 교방곡(敎坊曲) 명이었으나 후에 사패명이 되었다. 우림령만(雨霖鈴慢)이라고도 하며 쌍조 103자이다. 유영이 처음으로 지었으며 당 현종이 양귀비를 애도하기 위하여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주로 이별의 슬픔을 노래한 내용이다.


유영은 변변한 벼슬을 지내지 않아, 생졸년이 정확하지 않다. 대략 987년 출생하여 1053년 전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래 이름은 삼변(三變)이었는데 후에 영(永)으로 개명했고, 자(字)는 기경(耆卿)이다. 북송 시기 새롭게 대두한 시민 계층의 정서를 반영한 만사(慢詞)를 창작하여 이후 송사(宋詞)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으며 매우 대중적인 사 작가였다. 민간 문학의 생명력과 활기를 송사에 도입했고, 도시의 풍물을 묘사하거나 나그네의 향수를 토로하는 등 다양한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 작품집으로 《악장집(樂章集)》이 전한다.

유영은 사(詞)에 능했는데, 사(詞)는 중국의 당 대에 만들어져 송 대에 융성한, 속곡(俗曲)에 맞추는 시가 문학이다. 사는 시와 비슷한 운문으로, 당 중엽에 민간에서 발생해 송대에 가장 번성했던 문학 양식이다. 민간 가요의 가사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장단이 일정치 않아 ‘장단구(長短句)’라 고도 하며, 초기에는 가창할 수 있었던 근체시의 변형이라고 여겨 ‘시여(詩餘)’라고 부르기도 했다.

사는 음악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사를 창작할 때 일정하게 정해진 악보인 사조(詞調)에 가사를 채워 넣는 방식으로 지어져서, 사를 짓는 것을 두고 가사를 소리에 맞추어 메운다는 뜻의 ‘전사(塡詞)’, 혹은 ‘의성(依聲)’이라 했다. 사는 시와는 달리 음악과 긴밀한 관계였으므로 유희적 성격이 매우 강했다. 따라서 그 내용도 술, 여색, 애정, 희롱에 대한 것이 많았고, 서정적이고 감상적인 특성이 강해 깊고 섬세한 내면을 완곡하고 함축적으로 표현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처음에는 문사들에게 그리 환영받지 못한 장르였지만, 당나라 말엽에 이르러 문인들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 송대에는 공전의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등려군이 이 가사에 음을 붙여서 부른 노래가 상간루안이다. 젖은 눈을 바라보다라는 뜻의 노래.



목란가

木蘭歌 | 목란의 노래

喞喞復喞喞 木蘭當戶織 不聞機杼聲 惟聞女歎息
찰그락 찰그락 또 찰그락 찰그락 목란(木蘭)이 문간에서 베를 짜는데 베틀 소리 안 들리고 들리는 것이라곤 그녀의 탄식 소리.
問女何所思 問女何所憶
'얘야, 무슨 생각하느냐? 무슨 걱정 하느냐?'
女亦無所思 女亦無所憶 昨夜見軍帖 可汗大點兵
'소녀는 생각하는 것도 없어요. 걱정하는 것도 없어요. 지난밤에 내려온 군첩(軍貼)을 보니 임금님(可汗)이 군사를 부른답니다.
軍書十二卷 卷卷有爺名 我爺無大兒 木蘭無大兄 願爲市鞍馬 從此替爺征
군첩(軍貼)이 모두 열두 권(卷)인데 그 군첩 속에는 아버지도 들었어요. 아버지는 큰아들이 없고 목란(木蘭)이는 오라비가 없으니 내가 시장(市場)에 가 말안장을 사 가지고 아버지를 대신해서 출정(出征)을 하겠어요.’
東市買駿馬 西市買鞍𩎐언지천 南市買轡頭 北市買長鞭 旦辭爺孃去 暮宿黃河邊
동쪽 시장에 가서 준마(駿馬)를 사고 서쪽 시장에 가서 말안장을 사고 남쪽 시장에 가서 말고삐를 사고 북쪽 시장에 가서 긴 채찍을 사서는 아침에 부모님께 하직을 하고 저녁에는 황하 옆에서 잠을 잡니다.
不聞爺孃喚女聲 但聞黃河流水聲濺濺 旦辭黃河去 暮宿黑山頭
부모님이 부르는 소리 들리지 아니하고 들리는 것이라곤 출렁이는 황하의 물결소리 아침에 황하(黃河)를 떠나 저녁에는 흑산(黑山)에서 묵습니다.
不聞爺孃喚女聲 但聞燕山胡騎聲啾啾 萬里赴戎機 關山度若飛
부모님이 부르는 소리 들리지 아니하고 연산(燕山)에서 들리는 것이라곤 호기(胡騎)가 말달리는 소리. 시기(時機)에 맞추어 만리(萬里) 밖에 나아가 나는 듯이 관산(關山)을 넘으니
朔氣傳金析 寒光照鐵衣 將軍百戰死 壯士十年歸
싸늘한 기운은 쇠종소리 가르고 차가운 달빛은 철갑을 비춥니다. 장군(將軍)도 백전(百戰)에서 죽었는데 장사(壯士)는 십 년만에 돌아왔죠.
歸來見天子 天子坐明堂 策勳十二轉 賞賜百千强
돌아와 천자(天子)를 뵈오니 천자(天子)는 명당(明堂)에 앉아서 훈작(勳爵)을 내리는데 십이 등급에서 으뜸이고 내리는 물품은 백천(百千)가지가 넘었습니다.
可汗問所欲
임금님(可汗)이 소원을 물으시니,
木蘭不用尙書郞 願借明駝千里足 送兒還故鄕
‘목란은 상서랑(尙書郞)이 필요 없어요. 천리(千里)를 달리는 명타(明駝)나 빌려주시어 고향(故鄕)으로 보내 주셔요.’
爺孃聞女來 出郭相扶將 阿姊聞妹來 當戶理紅妝 小弟聞姊來 磨刀霍霍向猪羊
부모(父母)는 딸이 돌아온단 소) 리 듣고, 성(城)밖까지 나아가 마중을 합니다. 언니는 동생이 돌아온단 소리 듣고,문간에서 몸단장을 합니다. 남동생은 누이가 돌아온단 소리 듣고, 칼을 슥슥 갈아서 돼지 양을 잡습니다.
開我東閣門 坐我西閣牀 脫我戰時袍 著我舊時裳
동각문(東閣門)을 열어 놓고 서각(西閣) 침상(寢牀)에 걸터앉아 전투복(戰鬪服)을 벗어 던지고 옛날의 평복으로 갈아입고는
當窗理雲鬢 對鏡貼花黃 出門看火伴 火伴皆驚惶
창문 앞에서 구름 같은 머리 빗고 거울 앞에서 노란 꽃을 꽂았습니다. 문을 나서서 전우(戰友)들을 바라보니 전우(戰友)들이 모두 다 깜짝 놀랐습니다.
同行十二年 不知木蘭是女郞
‘12년 동안이나 같이 다녔지만 목란(木蘭)이가 여잔 줄은 미쳐 몰랐소.’
雄免脚撲朔 雌免眼迷離 兩免傍地走 安能辨我是雄雌
숫토끼 발걸음 촐싹거리고 암토끼 두 눈을 깜빡이면서 두 토끼가 나란히 뛰어가면은 그 누가 자웅(雌雄)을 가려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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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즐즐(喞喞) : 베틀이 움직이는 소리.
  2. 군첩(軍貼) : 징병 통지서.
  3. 카칸(可汗) : 몽고나 돌궐족 유목민의 추장이나 국왕을 일컫는 말임금.
  4. 십이권(十二卷) : 실제로 12권이라는 뜻이 아니고 많다는 의미.
  5. 야량(爺孃) : 부모님. 야(爺)는 아버지, 량(孃)은 어머니.
  6. 천천(濺濺) : 물이 세차게 흐르는 소리.
  7. 흑산(黑山) : 하북성 임유(臨楡) 부근에 있다는 산.
  8. 연산(燕山) : 하북성 계현 동남쪽 약 35km 지점에 있는 산. 흑 산(黑山)과 연산(燕山)은 멀리 북방(北方)에 있는 산이라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9. 호기성추추(胡騎聲啾啾) : 오랑캐의 기마병(騎馬兵)이 달리는 시끄러운 소리. 추추(啾啾)는 시끄러운 소리의 의성어.
  10. 만리부융기(萬里赴戎機) : 작전시기에 맞추어 만리밖에 나아가. 이 구절은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의 민요풍(民謠風)이 아니어서, 후세 사람들, 특히 당 나라 때 윤필(潤筆)한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11. 천자(天子) : 황제(皇帝).
  12. 명당(明堂) : 천자(天子)가 정무(政務)를 보는 궁전(宮殿). 이곳에서 개선용사(凱旋勇士)들을 접견했다.
  13. 책훈십이전(策勳十二轉) : 당(唐) 나라 제도에 12등급의 훈작(勳 爵)이 있었다. 제일 으뜸인 것이 상주국(上柱國).
  14. 상서랑(尙書郞) : 대신(大臣)급의 높은 벼슬.
  15. 명타(明駝) : 낙타(駱駝).

    당(唐) 나라에서는 역참(驛站)마다 명타(明駝)라는 낙타를 두었는데, 이 낙타는 하루에 능히 천리(千里)를 달린다 한다. 국경지대의 긴급한 군사작전이 아니면 사용할 수가 없었는데, 목란(木蘭)이 고향(故鄕)으로 급히 가고 싶어 카칸(可汗)에게 이를 빌려달라 했다.

  16. 곽곽(霍霍) : 칼 같은 것을 날카롭게 가는 소리의 의성어.
  17. 화반(火伴) : 전쟁터에서 같이 싸우던 전우(戰友).

중국 남북조 때 지은 시가이나 작자는 미상이고 시산(匙山)선생 역(譯)이다. 중국의 대 혼란기였던 위진남북조시대 때 북위 왕조의 이야기로 추측한다. 중국 북방 이민족이 북위의 변경을 침입하자 북위정권은 징집령을 내렸고, 징집대상에 어린 남자동생을 제외하고 장정이 없어 병이든 아버지가 끌려가게 되었다. 목란은 남장을 하고 아버지를 대신하여 징집에 응해 12년동안 전쟁터를 전전하며 수많은 전공을 세운다. 그동안 그녀는 여인이라는 것을 들키지 않고, 그녀가 무공을 세워 황제를 알현하고, 황제가 주는 벼슬도 마다하고 집으로 달려가 가족을 만난다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오래된 이야기인 줄 정말 몰랐다.

당시 상황을 생각하면 여인이라는 것을 숨기는 것이 녹록치 않았을텐데 별일 없던거 보면 목란이라는 여성자체가 남성 못지 않게 건장하고 전쟁터의 상황이 녹록치 못해 남과 여를 구분하지 못할정도로 참담했을 것이라고 상상해본다. 전쟁터에서 그녀가 여인이라는 것을 들켰을 것이라고 상상만해도 벌써부터 여러가지 걱정이 물밀듯 생기는데다 그녀가 고향에 돌아 와서야 그녀가 여인이라는 것을 동료들이 알았다고 하니, 그녀의 10년 넘는 고생이 너무 안타깝고 슬프다. 여성으로써 남자들이 강요하고 원하는 아름다움이 아닌 고강함을 보여주는 목란의 지강한 모습은 당시 충직이라는 이름으로 황제를 모시던 대다수의 남자들이 해내지 못한 것이다.

당연히 상서랑이라는 벼슬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가 남자가 아니라 여인이라는 것을 밝힌 것도 겨우 고향에 돌아와서 인것도 당시 시대상을 보았을때, 그녀가 황제앞에서 자신의 신분을 드러냈으면 그녀는 영웅임에도 황제를 기만한 대역죄인이 되어 형장의 이슬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부조리와 차별, 멸시를 그녀는 알았을 것이다. 알고도 그렇게 한 것이다. 이런 여인이 있는데도 과거의 그 유독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성별은 여성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위진남북조시대 이후로도 몇천년동안.. 사실 현재까지도.

고시십구수

古時十九首

其一首
行行重行行 與君生別離
가고 가고 또 가고 가시군요. 당신과 함께 살다가 이별하여
相去萬餘裏 各在天一涯
서로 떨어져 만 여리가 되군요. 서로가 하늘 끝자락에 있음에야!
道路阻且長 會面安可知
길은 험하고 멀어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없네.
胡馬依北風 越鳥巣南枝
호마는 북풍을 타고 달리는데 월조는 남쪽 가지에 둥지를 트네.
相去日已遠 衣帶日已緩
서로 떨어져 있는 날은 길어만 가는데 나의 허리띠는 날마다 느슨해집니다.
浮雲蔽白日 遊子不顧返
뜬 구름은 밝은 태양을 가로 막아 있고 떠난 사람은 돌아오지 못하는데.
思君令人老 歲月忽已晩
임을 그리워하면서 늙어갈 것인데 세월은 홀연히 지나갑니다.
棄捐勿複道 努力加餐飯
돌아올거나 기대는 마음 그만두고 제 찬반을 더하고 노력하여야겠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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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생별리(生別離) : 사별(死別)의 대어(對語)로 초사(楚辭)에「슬프기로는 생별리(生別離) 만큼 슬픈 것은 없다.」고 하였다.
  2. 호마(胡馬) : 중국 북쪽 호북(湖北) 지방의 말.
  3. 의북풍(依北風) : 북풍(北風)이 부는 쪽으로 머리를 돌려 호지(胡地)를 그린다는 뜻.
  4. 월조(越鳥) : 지금의 중국 절강성(浙江省) 일대를 근거지로 했던 월나라의 새.
  5. 소남지(巢南枝) : 남쪽으로 뻗은 가지에 집을 짓는다. 즉 월(越) 나라를 그린다는 뜻.
  6. 의대완(衣帶緩) : 옷의 띠가 헐거워 짐. 근심걱정으로 몸이 여위었음을 뜻한다.
  7. 부운폐백일(浮雲蔽白日) : 뜬구름이 태양을 가리는 것. 멀리 떠난 사람 의 행방을 몰라 마음이 답답한 느낌을 말함.
  8. 가찬반(加餐飯) : 식사를 보다 많이 하여 몸을 보양(保養)함. 자애(自愛)하라는 뜻.
其二首
青青河畔草 鬱鬱園中柳
푸르고 싱그러운 호반의 풀 울창하고 무성한 정원의 버드나무
盈盈樓上女 皎皎當窗庸
아름답고 예쁜 누각위의 여성 창가에 기댄 희고 아름다운 모습
娥娥紅粉妝 纖纖出素手
단아하고 정갈하게 화장하였구나. 가늘고 예쁜 섬섬옥수 내밀고 있네.
昔爲娼家女 今爲蕩子婦
옛날에는 창가의 여인이었지만 지금은 탕자의 부인이 되었네.
蕩子行不歸 空床難獨守
탕자의 행방은 돌아오지 않아 알 수 없고 빈 침상을 혼자 지키기가 어렵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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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河畔(하반) : 강변, 강가.
  2. 盈盈(영영) : 자태가 아름다운 모양.
  3. 皎皎(교교) : 새하얗고 밝다.
  4. 탕자(蕩子) : 즉 유자(遊子)다. 밖으로 나돌아다니는 남자를 칭한다. 앞서의 창가녀(倡歌女)와 대칭하는 말로 일반적으로 쓰는 타락한 남자를 폄하해서 쓰는 말이 아니다.
其三首
靑靑陵上柏 磊磊澗中石
푸르고 무성한 언덕위의 측백나무 겹겹이 쌓여 있는 산간의 돌
人生天地間 忽如遠行客
인생이 천지사이에 사는 것은 홀연히 멀리 떠나는 여객과 같다.
斗酒相娛樂 聊厚不爲薄
한말 술로 서로 나누면서 즐기면 애오라지 충분하고 부족함이 없도다.
驅車策駑馬 遊戲宛與洛
느린 말을 채찍질 하여 남양과 낙양에서 놀리라.
洛中何鬱鬱 冠帶自相索
낙양의 시내는 어찌 이리 화려한가? 의관과 속띠를 메고 서로 가고 오는구나.
長衢羅夾巷 王侯多第宅
길고 큰 길과 좁은 길이 사이를 있는데 왕과 제후의 저택이 많고도 많도다.
兩宮遙相望 雙闕百餘尺
양 궁전이 서로 사이 두고 바라보고 양 궁전 누대는 높이가 100여척구나.
極宴心意娛 戚戚何所迫
연회를 마음껏 즐기면 근심걱정이 어찌 가까이 오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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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완현(宛縣) : 지금의 하남성 서남부 남양시(南陽市)다.
  2. 양궁(兩宮) : 후한 말 낙양에는 4키로 정도의 거리를 두고 남궁과 북궁이 있었다.
  3. 磊磊澗中石(뇌뢰간중석) : 돌이 겹겹이 쌓인 무더기
  4. 磊(뢰,뇌) : 돌무더기
  5. 澗(간): 계곡의 시내
  6. 衢(구) : 네거리
  7. 戚戚何所迫(척척하소박) : 무엇 때문에 근심에 쫓기는가?
  8. 척척(戚戚) : (근심 걱정으로)슬퍼하다.

    不戚戚於貧賤不汲汲於富貴(불척척어빈천불급급어부귀):'빈천(貧賤)함을 근심하지 않고, 부귀(富貴)에 급급(汲汲)하지 않는다'라는 뜻으로, 가난과 부귀(富貴)에 초연(超然)한 마음 자세를 나타낸다.

其四首
今日良宴會 歡樂難具陳
오늘의 이 같은 좋은 연회 환락을 자세히 말하기 어렵네. 
彈箏奮逸響 新聲妙入神
쟁을 퉁기는 소리 들으면 새로운 소리 기묘하여 신의 경지에 이른 듯하고.
令德唱高言 識曲聽其真
높은 덕을 가진 자가 노래를 하면 곡을 만든 자는 그 진의를 자연히 알 수 있다.
齊心同所願 含意俱未申
마음을 단정히 하여 같은 곳을 바라보지만 품은 뜻은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는구나.
人生寄一世 奄忽若飆塵
인생이 한 평생을 사는 것은 홀연히 바람에 날리는 먼지와 같다.
何不策高足 先據要路津
어찌하여 자기의 높은 뜻을 발휘하지 못하고 우선 요로의 사람에게 의존하지 못하는가?
無爲守貧賤 坎可長苦辛
어찌 빈천을 뚫지 못하고 고통을 길게 가지고 가려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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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箏(쟁) : 쟁(箏) 또는 고쟁(古箏)은 중국 전통 현악기의 이름으로, 목재로 된 긴 장방형의 현악기이다. 전국 시대부터 있었고, 진나라 때 널리 퍼졌다.
  2. 奄忽(엄홀) : 갑자기 사라지다.
  3. 飆塵(표진) : 폭풍속의 먼지.
  4. 高足(고족) : 발이 빠른 말.
  5. 要路(요로) : 권력자, 정치상 좋은 위치.
  6. 津(진) : 지위.
其五首
西北有高樓 上與浮雲齊
저 집 서북쪽에 높은 망루가 있구나, 올라보면 위가 뜬구름만큼 높디높다.
交疏結綺窗 阿閣三重階
짜서 새긴 꽃무늬 아름다운 비단 휘장 큰 전각에 삼층 망대가 있구나.
上有弦歌聲 音響一何悲
위에서 가야금 타고 노랫소리 들려오는데 소리의 울림이 어쩜 저리 슬프게 들릴꼬.
誰能爲此曲 無乃杞梁妻
누가 이렇듯 능숙하게 곡을 만들었는지 제나라의 기양의 처 (맹강여) 아니라면 야.
淸商隨風發 中曲正徘徊
음악소리 가을바람 타고 울리는데 곡 중은 일률적이다가 끊일 듯 변한다.
一彈再三嘆 慷慨有餘哀
한번 퉁기고 다시 3번 탄식 하니 북받쳐 원통해 더욱 슬퍼하는 모습.
不惜歌者苦 但傷知音希
노래하는 사람 고통은 애석해 하지 아니하고 곡의 참뜻 알아주는 사람 없음을 슬퍼하는 구나.
願爲雙鴻鵠 奮翅起高飛
한 쌍의 홍곡이라도 되고 싶은 것일까 한껏 날개를 펼쳐 하늘 높이 날고 싶은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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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투조(透彫) : 금속, 목재 따위의 재료를 도려내어서 모양을 나타내는 고대 중국의 조각 기법 중의 하나.
  2. 사각추(四角錐) 모양의 지붕을 올린 누각.
  3. 기량의 처 (맹강여) : 기량은 춘추 때 제나라의 대부로 용맹한 장수였다.
  4. 제장공(齊莊公 : 재위 기원전 553-548년)이 거(莒)나라를 쳐들어갈 때 종군하여 용맹하게 싸우다 전사했다. 기량의 처가 그의 시신을 10일 동안이나 부둥켜 앉고 통곡하다가 강물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 그녀의 슬픈 통곡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여 성벽까지 무너뜨렸다는 전설이 되었다.
  5. 지음(知音) : "백아절현(伯牙絶鉉)"의 고사(故事)다."지음(知音)"은 마음까지 통할 수 있는 "절친한 친구"를 뜻한다.

    옛날 중국 춘추시대에 진(晉)나라에 거문고의 달인 유백아(兪伯牙)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자신이 태어난 초(楚)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된 백아는 공향을 찾아 달 밝은 밤에 달빛을 바라보며 거문고를 뜯었다. 그때 나무꾼 종자기라는 사람이 자신의 거문고 소리를 몰래 엿듣고 있었다. 백아가 달빛을 생각하며 거문고를 타면 종자기는 달빛을 바라보았고, 백아가 강물을 생각하며 거문고를 뜯으면 종자기도 강물을 바라보았다. 종자기는 거문고의 소리만 듣고도 백아의 속마음을 읽어 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의형제를 맺고 헤어졌다.이듬해 백아가 다시 고향땅을 찾았을 때 종자기는 죽고 없었다. 백아는 친구의 무덤을 찾아가 마지막 최후의 한 곡을 뜯고 거문고 줄을 끊어버렸다. 그리고 다시는 타지 않았다. 이 세상에 자기 거문고 소리를 제대로 들어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 지음(음을 알다.)이 절친한 친구를 뜻하는 말이 되었다.

  6. 鴻鵠(홍곡) : 큰 기러기와 고니.
其六首
涉江采芙蓉 蘭澤多芳草
강물을 건너 연꽃을 따고 싶은데 난초 무성하고 호수에는 향기로운 풀꽃들이 피어있다.
采之欲遺誰 所思在遠道
저 꽃을 따서 누구에게 주려는 걸까? 나의 사랑하는 사람 먼 길에 있는데.
還顧望舊鄉 長路漫浩浩
돌이켜 고향 쪽을 바라보니, 끝도 없이 길고 넓은 길 아득하다.
同心而離居 憂傷以終老
같은 마음 두 사람 떨어져 지내고 있으니 근심 걱정이 쌓이고 종래는 늙어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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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芙蓉(부용) : 연꽃, 연(蓮)의 중국 이름.
  2. 芳草(방초) : 향기롭고 꽃다운 풀.
  3. 漫浩浩(만호호) : 한없이 넓고 크다. 너무 멀다는 뜻.
其七首
明月皎夜光 促織鳴東壁
8월대보름의 달은 밝게 빛나고 귀뚜라미가 동쪽 서재 벽 밑에서 울고 있다.
玉衡指孟冬 眾(衆)星何歷歷
북두칠성의 손잡이에 해당하는 다섯째별은 초겨울을 가리키고 하늘의 뭇별은 찬란히 비춘다.
白露沾野草 時節忽復易
맑은 이슬의 계절 이슬이 들판의 초목을 적시고 시절은 거침없이 가을로 바뀌어 간다.
秋蟬鳴樹間 玄鳥逝安適
가을 매미는 다시 나무속에서 울고 있는데 제비는 원래대로 돌아갔다.
昔我同門友 高擧振六翮
옛 동문들도 계절이 변화하는 것 같이 지금 출세하여 행세께나 하고 살아간다.
不念攜手好 棄我如遺跡
동문들은 이미 손잡고 의리로 사귀었던 일은 잊어버리고 우리들을 길에 남겨진 발자국처럼 버리고 떠나갔다.
南箕北有鬥 牽牛不負軛
8월의 밤하늘 남에는 뭇별(箕星)이, 북에는 북두성(北斗星) 견우성이라 해도 마차를 끄는 멍에가 걸려있지 않는 것은 아니다.
良無盤石固 虛名復何益
진실로 반석과 같은 견고한 의리가 없다면 친구라는 허명만으로는 어찌 도움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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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促織(촉직) : 귀뚜라미
  2. 옥형(玉衡) : 북두칠성 가운데 다섯 번째 별로 큰곰자리고 맹동(孟冬)은 해(亥) 방위로 서북쪽을 가리킨다.
  3. 백로(白露) : 일 년 중 찬이슬이 내려서 가을다운 기운을 더해 준다는 날.

    이십사절기(二十四節氣)의 하나로 처서(處暑)와 추분(秋分) 사이에 있다. 춘분점을 기준으로 하여 태양이 황도(黃道)의 75도(度)에 이르는 때로, 양력 9월 중순경이다.

  4. 沾(첨,점) : 젖을 ‘점’
  5. 玄鳥(현조) : 제비
  6. 남기북두(南箕北斗) : 유명무실하다는 뜻으로 남기성(南箕星)은 키는 키지만 까붐질을 못하고 북두성은 국자이지만 국을 뜨지 못한다는 뜻이다.

    시경 소아(小雅), 대동(大東) 마지막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維南有箕 不可以簸揚(유남유기 불가이파양)
    남쪽 하늘의 기성은 키 같다고 하나 곡식을 까불 수 없고
    維北有斗 不可以挹酒漿(유묵유두 불가이읍주장)
    북쪽 하늘의 북두성 국자 같다고 하나 국 떠서 마실 수 없네.

  7. 牽牛不負軛(견우불부액) : ‘牽牛(견우)’는 소가 끈다는 뜻이나 견우성에는 실제로 멍에(軛)가 필요없으니 유명무실 하다는 뜻.
其八首
冉冉孤生竹 結根泰山阿
연약하고 외롭게 살아가는 한그루 대나무 태산의 언덕 땅속깊이에 뿌리 내리려한다.
與君爲新婚 兎絲附女蘿
당신과 처음 혼인하게 되었는데 토사가 여라에게 얽힌 형상이었네.
菟絲生有時 夫婦會有宜
토사라는 풀도 살아가는 시절이 있듯이 부부가 서로 만나는 것도 마땅한 시기가 있는 법.
千里遠結婚 悠悠隔山陂
당신과는 아득히 먼 천릿길 떨어져 결혼을 하게 되었건만 우린 멀고 아득히 떨어져 우리 사이 수많은 산맥으로 막혀있네.
思君令人老 軒車來何遲
당신생각에 이제 몸 늙고 쇠약 해 가는 것 느끼는데 오겠다는 마차는 오기가 어찌 이리 더딘 것인지요,
傷彼蕙蘭花 含英揚光輝
혜란화도 마음이 아픈지 피운 꽃 아름다운 모습 속으로 숨기고 있누나.
過時而不采 將隨秋草萎
누구도 저 꽃 꺾지 않고 그대로 세월만을 지나면 진정 이대로 가을 풀로 시들고 말 것이겠지요.
君亮執高節 賤妾亦何爲
당신이 고귀한 절조를 굳게 지키신다고 하시면 소첩도 언제까지나 기다릴 수밖에는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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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冉冉(염염) : 연약함.
  2. 兔絲(토사) 새삼, 메꽃과의 한해살이 덩굴성 기생식물. 여씨춘추(呂氏春秋)에 의하면 토사(菟絲)는 뿌리가 없고 그 뿌리는 땅에 박혀있지 않는 복령(茯苓)이라고 하였다.
  3. 女蘿(여라) : 이끼. 습기가 많은 음지에서 자라는 선태식물.
  4. 山陂(산피) : 산과 언덕.
  5. 軒車(헌거) : 마차.
  6. 蕙蘭(혜란) : 난초의 한 종류.
其九首
庭中有奇樹 綠葉發華滋
뜰에 진귀한 나무가 하나 있는데 녹색 잎들 사이 윤기 흐르는 꽃이 피어 있네.
攀條折其榮 將以遺所思
작은 가지를 휘어잡아 활짝 핀 꽃을 손으로 꺾어 이것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낼까 하도다.
馨香盈懷袖 路遠莫致之
꽃향내는 나의 품에도 옷자락에도 가득 차 넘치는데 저 사람과는 길이 멀어 이 꽃을 보낼 수 없구나.
此物何足貴 但感別經時
이 꽃이 아무리 귀하다 해도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사랑하는 마음만 보낼 뿐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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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發華滋(발화자) : 꽃이 만발하게 핀 모양.
  2. 攀條(반조) : 나뭇가지를 당기다.
  3. 馨香(형향) : 꽃 향기.
  4. 此物何足貴(차물하족귀) 但感別經時(단감별경시) : 꽃을 보내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으니 이별한 시간의 그리움을 보내고 싶다.

其十首

迢迢牽牛星 皎皎河漢女
은하를 사이에 두고 까마득 저쪽은 견우성이 있고 은하 이쪽에는 밝게 빛나는 직녀성이 있네.
纖纖擢素手 札札弄機杼
직녀는 아름답고 고운 흰 손으로 (베 짜는)북을 놀리고 사각 사각 소리를 내어 재빠르게 베를 짠다.
終日不成章 泣涕零如雨
종일 베를 짜지만 견우성 생각으로 좀처럼 성과는 없고 눈물만 비 오듯 쏟아진다.
河漢清且淺 相去復幾許
은하는 맑고 수심 또한 얕은데도 서로 다시 만나기 얼마가 되었든가.
盈盈一水間 脈脈不得語
찰랑찰랑 은하는 물길이 강물 되어 말 한마디 없이 서로 바라만 볼 뿐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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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迢(초) : 멀다.
  2. 皎(교) : 달빛, 밝다.
  3. 河漢女(하한녀) : 직녀성.
  4. 杼(저) : 북, 베틀의 북.
  5. 칠석전설(七夕傳說)

    불교에서 전래하여 음력 7월 15일은 백중일이 되었고 7월7일은 칠석날이 되었다. 여기에는 중국에서 전래 해온 직녀(織女) 견우(牽牛)의 전설이 있다. 칠석전설은 시초는 중국이다. 중국의 직녀(織女) 견우(牽牛)의 전설과 바느질을 잘 할 수 있도록 바라는 걸교전(乞巧奠: 칠석 날 밤에 여자들이 견우성과 직녀성에게 길쌈과 바느질을 잘 하게 해 달라고 재주를 비는 의식)의 행사가 서로 섞여 전해진 것이라고 한다.
    직녀와 견우는 부부인데 일은 하지 않고 놀기만 하여 일 년에 한번만 만날 수 있도록 천제에 의하여 강제되었다한다. 이것은 유교적사상의 색채가 농후한 이야기로 보이기도 한다. 옛날 농민이 매일 ‘일’ ‘일’ 하면서 매일을 일만 하는 농민을 불쌍히 여겨 하루정도 음식을 만들어 먹고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중국의 후한(後漢:1C~3C)에 만들어 진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其十一首
回車駕言邁 悠悠涉長道
마차 방향 돌려 정처 없이 나아가고 있자니 멀고도 먼 아득한 길 한없이 지나간다.
四顧何茫茫 東風搖百草
사방을 돌아보면 넓고 넓어 끝이 없는데 동풍(춘풍)이 불어와 풀과 꽃을 흔들고 있다.(새해의 소식은 전한다)
所遇無故物 焉得不速老
마주치는 곳 보이는 건 옛날 내가 본 것 하나 없으니 어찌해서 늙어 가는 것 빠르지 않다고 말 할까?
盛衰各有時 立身苦不早
인생에는 성하고 쇠하는 시기가 정해져 있기 마련인데 성공하여 세상에 이름을 올리는 것 늦어지니 괴롭구나.
奄忽隨物化 榮名以爲寶
만물은 홀연히 돌고 도는 섭리로 죽고 마는 법인데 (죽기 전에 속히)명성과 명예를 드높이 올리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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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駕言邁(가언매) : 말을 몰아 떠나다. ‘言’은 어조사.
  2. 東風(동풍) : 봄 바람. 오행사상에서 동은 봄.
  3. 人生非金石(인생비금석) : 인생은 쇠나 돌이 아니니 영구하지 못하다.
其十二首
東城高且長 逶迤自相屬
동쪽 성벽은 높고 길어 구불구불 계속해 간다.
回風動地起 秋草萋已綠
회오리바람은 땅을 흔들 정도이고 가을 풀은 아직은 여름의 진 푸른색이 그대로이다.
四時更變化 歲暮一何速
그러나 사계절은 번갈아 변하고 세모가 닥치는 것도 참으로 빠르구나!
晨風懷苦心 蟋蟀傷局促
버려진 신하는 괴로운 마음을 품고 재능 있는 선비는 움츠려 기죽어 있다.
蕩滌放情志 何爲自結束
나는 그런 생각 깨끗이 씻고 내 맘대로 살기를 원하노니 그 무엇이 내 몸을 속박할 것 있겠는가!
燕趙多佳人 美者顔如玉
연과 조나라에는 미인이 많기도 한데 미인의 얼굴은 옥같이 아름답다 구나.
被服羅裳衣 當戶理淸曲
비칠 듯 얇은 비단옷 두르고 문 앞에 기대 맑은 곡을 연주하네.
音響一何悲 弦急知柱促
그 음향이 하나하나 무슨 슬픔 있는지 현을 좁혀 소리를 빠르게도 높게도 한다.
馳情整巾帶 沈吟聊躑躅
이 소리를 듣고 만감이 교차하여 의장을 고쳐 매고 깊은 한숨 내쉬며 가는 길을 멈춘다.
思爲雙飛燕 銜泥巢君屋
한 쌍의 나는 제비가 되어 진흙을 입에 물고 그대의 처마 밑에 살고 싶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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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東城(동성) : 낙양의 동성(東城).
  • 逶迤(위타) : 구불구불함. 迤(타): 잇닿을 타. 서로 이어져 맞닿다.
  • 晨風(신풍) : 새매. 고시 16수에 비슷한 표현이 있다.

    亮無晨風翼(양무신풍익) 焉能凌風飛(언능능풍비)
    실로 매의 날개도 없거늘 어찌 바람 타고 날아갈 수 있을까?

  • 蟋蟀(실솔) : 귀뚜라미. 《爾雅(이아)》에 이르기를 “蟋蟀(실솔:귀뚜라미)을 蛩(공)이라 한다.” 하였다.
  • 蟋蟀傷局促(실솔상국촉) : ‘蟋蟀(실솔)’이라는 시에는 재능을 발휘하지 못한 아픈 마음을 읊고 있다.
  • 蕩滌(탕척) : 더러운 것을 없애고 정(定)하게 함.
  • 柱促(주족) : 안족(雁足) 현악기의 줄을 받치고 있는 ㅅ모양의 받침목. 일명 주(柱).
  • 思為雙飛燕(사위쌍비연) : 고시 5수에는 같은 느낌의 표현이 있다.

    願為雙鴻鵠(원위쌍홍곡), 奮翅起高飛(분시기고비).
    원컨대 한 쌍의 기러기와 고니 되어 날개를 떨치며 높이 날아갔으면.

  • 巾帯(건대) : 머리 띠.
  • 躑躅(척촉) : 배회하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 其十三首
    驅車上東門 遙望郭北墓
    마차를 달려 낙양의 상동문에 이르니 멀리 성곽의 북쪽 북망산에 묘지가 바라보인다.
    白楊何蕭蕭 松柏夾廣路
    백양나무는 어째서 저리 쓸쓸히 슬프게 서 있는 것인가? 송백나무 묘지로 가는 길 양옆에 무성하다.
    下有陳死人 杳杳卽長暮
    저 땅속에는 옛날 죽은 사람 누워있고 어둡고 어두운 속에서 길고 긴 잠에 들어 있구나.
    潛寐黃泉下 千載永不寤
    그들은 황천 국에 말없이 잠들어 있고 천년이 지나도 깨어나지 못하는구나.
    浩浩陰陽移 年命如朝露
    사시사철 음양의 변화는 끝이 없이 지속되건만 이 세상을 사는 사람 생명은 아침이슬과 같구나.
    人生忽如寄 壽無金石固
    인생은 홀연히 사라져 가고 마는 것 수명은 금석과 같이 불변한 것이 아니구나.
    萬歲更相送 賢聖莫能度
    만년을 지내오는 사이 사람은 반드시 죽어 서로 헤어지 것 아무리 성인 현인이라 해도 운명은 피해 갈 수 없는 것.
    服食求神仙 多爲藥所誤
    불노장생의 선약을 복용하고 장생하기를 바란다 해도 모든 사람들은 그 약 잘못 먹어 신체를 잃고 만다.
    不如飮美酒 被服紈與素
    그렇지 못 할 바에 생전에 맛있는 술과 좋은 의복을 입고 하루하루 즐겁게 지내는 것은 어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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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上東門(상동문):낙양 성동면 삼문의 하나. 가장 북쪽에 있는 문.
    2. 郭北(곽북): 낙양성 북쪽의 북망산 위에 있는 성.
    3. 蕭蕭(소소) : 쓸쓸하다.
    4. 杳杳即長暮(묘묘즉장모) : 아득한 긴 어둠이 계속되다.
    5. 浩浩(호호) : 넓고 큰 모양.
    6. 服食(복식) : 선약을 복용하다.
    7. 紈與素(환여소) : 희고 고운 비단옷.고시 3수에는 다음과 비슷한 문장이 있다.

      人生天地間(인생천지간) 忽如遠行客(홀여원행객)
      인생은 천지간에 홀연 멀리 떠나는 나그네 같다네.

    其十四首
    去者日以疏 生者日已親
    떠난 사람은 그날로 멀어지고 새로 만나는 사람은 그날로 친해진다.
    出郭門直視 但見丘與墳
    성문을 나와 밖을 바라보니 오직 보이는 건 구릉과 묘지뿐.
    古墓犁爲田 松柏摧爲薪
    오래된 묘는 가래에 갈려 밭이 되고 송백은 잘려 장작이 되고 말았다.
    白楊多悲風 蕭蕭愁殺人
    백양나무에는 쓸쓸한 추풍이 불어 닥치고 소소한 소리를 내니 사람을 슬프게 하는 구나.
    思還故里閭 欲歸道無因
    고향 마을 그리운 생각이 미치나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길이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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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生者日已親(생자일이친) : '來者日已親'으로 되어있는 본도 있으나 문선에 실려 있는 것에 따른다.
    2. 犁(리) : 쟁기질하다.
    3. 摧(최) : 꺾다, 부러뜨리다.
    其十五首
    生年不滿百 常懷千載憂
    태어나 백년을 살지 못하는데 항상 천년의 근심을 품고 있다.
    晝短苦夜長 何不秉燭遊
    낮은 짧고 밤은 길어 괴로워하는데 어찌 촛불을 밝히고 밤을 낮처럼 즐기지 않으리.
    爲樂當及時 何能待來茲
    즐거움을 위해서는 바로 지금 하자꾸나! 어찌 능히 내년을 기다릴 손가?
    愚者愛惜費 但爲後世嗤
    어리석은 자는 쓰는 것을 아까워 하니 오직 후세의 비웃음이 될 뿐이다.
    仙人王子喬 難可蜿等期
    불노 장생하는 선인인 왕자교와 삶을 함께 같이 하기는 어려운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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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生年(생년) : 사람이 사는 햇수
    2. 千歲憂(천세우) : 천 년 후까지도 살려는 걱정.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인생의 본질적인 걱정.
    3. 秉燭(병촉) : 촛불을 손에 듦.
    4. 當及時(당급시): 마땅히 때에 미쳐야 함. 때를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뜻.
    5. 來玆(래자) : 장래, 앞으로 올 날.
    6. 愛惜(애석) : 아깝게 여기다.
    7. 塵世嗤(진세치) : 진세는 속세. 치는 비웃는 것.
    8. 王子喬(왕자교) : 주나라 영왕의 태자인 진을 가리킨다. 笙(생:중국의 악기)을 잘 불어 봉황의 울음소리를 냈으며, 낙수 주변에서 도사 부구공을 만나 숭고산에 들어가, 후에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其十六首
    凜凜歲云暮 螻蛄夕鳴悲
    춥고 매서운 한해가 저물고, 귀뚜라미 저녁에 울어대니 슬퍼진다.
    凉風率已厲 遊子寒無衣
    서늘하던 바람 돌연히 사납게 불어오고 멀리 떠나 있는 사람은 추위에 입을 것도 없을 텐데.
    錦衾遺洛浦 同袍與我違
    비단이불 낙포로 보내는 남편 있다고 하든데 같은 부부인데도 우리와는 다르구나.
    獨宿累長夜 夢想見容輝
    혼자 숙소에서 긴 밤을 보낼 텐데 드디어 남편의 용모를 꿈속에서 보는 구나.
    良人惟古歡 枉駕惠前綏
    남편은 옛날 생각에 기뻐하고 마차를 끌고 맞으러 나에게로 와 손잡이 건네준다.
    願得常巧笑 攜手同車歸
    원한다면 언제나 좋은 웃음 웃어주고 손 붙잡고 같은 마차로 돌아가잔다.
    旣來不須臾 又不處重闈
    이미 동승했는가 하는 순간 이미 가시고 없는데 다시는 이 침실에서 함께 할 수 없겠구나.
    亮無晨風翼 焉能凌風飛
    날이 밝자 아침바람 타고 날개도 없이 어찌 바람을 뚫고 날라 가셨단 말인가?
    眄睞以適意 引領遙相睎
    이리저리 걸어보면 갈망하는 마음 잦아질까? 목을 빼어서 멀리 바라보기만 한다.
    徒倚懷感傷 垂涕沾雙扉
    문간에 기대서서는 그리움만 더하는데 흐르는 눈물이 양쪽 문지방을 적시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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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凜凜(늠름) : 차디차다.
    2. 螻蛄(누고) : 땅강아지.
    3. 涼風(양풍) : 서늘한 바람.
    4. 游子(유자) : 나그네. 여기서는 남편을 말함.
    5. 洛浦(낙포) : 중국 신장 유오이자치구 화전지구에 있는 현(縣).
    6. 容輝(용휘) : 환한 얼굴.
    7. 枉駕(왕가) : 枉臨(왕림), 남이 자기 있는 곳으로 찾아오는 일을 높여 이르는 말.
    8. 晨風(신풍) : 새매.
    9. 眄睞(면래) : 뒤돌아보다.
    10. 雙扉(쌍비) : 두 짝 사립문.
    其十七首
    孟冬寒氣至 北風何慘栗
    지독한 겨울추위가 찾아왔구나! 북풍은 어찌 이리 지독히 추운 것인가.
    愁多知夜長 仰觀眾(衆)星列
    근심걱정으로 울적하여 견딜 수 없는 긴 긴 밤 밤하늘을 쳐다보니 별이 지천으로 열 지어 있다.
    三五明月滿 四五蟾兎缺
    십오야(三五)의 밝은 달은 만월이 되었는데 이십일(四夜五夜)이 되면 두꺼비가 옥토끼를 먹어 기울게 되겠지,
    客從遠方來 遺我一書劄
    멀리서 온 손님이 나에게 한 장의 편지를 건네주었네.
    上言長相思 下言久離別
    처음은 언제나 잊지 않겠다고 시작하여 끝에는 이별이 길어지겠다고 쓰여 있다.
    置書懷袖中 三歲字不滅
    나는 이 편지를 품속 고이 숨겨 지니고 삼년이 흘러도 한자도 잊어버리지 않았다.
    一心抱區區 懼君不識察
    마음속에는 한자 한자 남편을 그리워하는 여자의 여린 마음인데 그것을 알아주지 못할까 걱정되어 견딜 수가 없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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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孟冬(맹동) : 초겨울, 음력 시월을 달리 일컫는 말.
    2. 慘慄(참률) : 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끔찍함.
    3. 三五明月滿(삼오명월만) : 3x5=15, 보름을 말함, 보름이면 밝은 달이 가득찬다.
    4. 四五蟾兔缺(사오섬토결) : 4x5=20, 스무날.
    5. 蟾兔(섬토) : 달 속에 있다는 금두꺼비와 옥토끼(달의 별칭). 금두꺼비와 옥토끼가 사라지니 달이 기운다는 뜻.
    6. 客從遠方來(객종원방래) : 고시19수 중 제18수에도 동일한 구절이 있다.

      客從遠方來(객종원방래), 遺我一端綺(유아일단기)
      객이 먼 곳에서 와서 비단 한 자락을 전해주었네.

    7. 上言長相思(상언장상사) 下言久離別(하언구리별) : 위에는 너무 그립다고 말하고 아래에는 만날 날이 멀다고 말하네.

      악부상(樂府上)에도 이와 비슷한 구절이 나온다. 음마장성굴행(飮馬長城窟行) 中
      上有加餐飯(상유가찬반), 下有長相憶(하유장상억)
      위에는 밥 잘 먹으라 하고는 아래에는 오래오래 잊지말자고 하였네.

    其十八首
    客從遠方來 遺我一端綺
    손님이 멀리서 와서 나에게 한필(약11m)의 비단을 건네주네.
    相去萬餘里 故人心尙爾
    서로 떨어져 만 여 리 아직도 옛 마음 그대로 당신에게 있도다.
    文彩雙鴛鴦 裁爲合歡被
    문채는 한 쌍의 원앙새를 넣어 바느질하여 이불을 만들고 져.
    著以長相思 緣以結不解
    잠옷에는 장상사를 하고 끝자락에는 결불해를 하여 야물게 기워.
    以膠投漆中 誰能別離此
    아교로 옻 칠 해 둔다면 누구가 감히 이를 떼어낼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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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故人(고인) :고시(古時)에서 때로는 친구로 쓰지만 여기서는 남편.
    2. 綺(기) : 비단.
    3. 著(저) : 나타나다.
    4. 膠(교) : 아교.
    5. 漆(칠) : 옷, 옷나무.
    6. 合歡被(합환피) : 남녀가 함께 자며 즐기는 의미의 도안이 있는 비단, 여기서는 원앙이 그려져 있다.
    其十九首
    明月何皎皎 照我羅床緯
    밝은 달 어찌 저리 교교할꼬! 나의 침대 위 얇은 명주 천 칸막이를 비추고 있네.
    憂愁不能寐 攬衣起徘徊
    멀리 떠나 있는 남편을 생각하니 걱정되어 잠 못 이루고 옷자락 걷어 올려 주변을 배회하여 본다.
    客行雖雲樂 不如早旋歸
    오직 여행하는 것 당신은 즐겁다 말하겠으나 하루빨리 돌아오는 것이 무엇에 견주리오.
    出戶獨彷徨 愁思當告誰
    이런 생각에 밖으로 나와 방황하고 있을 뿐인데 이런 쓸쓸한 마음 누구에게 말한다오.
    引領還入房 淚下沾裳衣
    머리를 길게 뽑아 보고는 되돌아 방으로 들 수밖에 없으니 눈물이 흘러 옷을 듬뿍 적시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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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明月何皎皎(명월하교교) : 고시 7수와 유사한 표현이다.

      明月皎夜光(명월교야광),促織鳴東壁(촉직명동벽)
      8월대보름의 달은 밝게 빛나고 귀뚜라미가 동쪽 서재 벽 밑에서 울고 있다.

    2. 旋歸(선귀) : 가다가 다시 되돌아 옴.
    3. 引領還入房(인령환입방) : 목을 길게 빼고 보다가 방으로 들어오다. 고시 16수에 비슷한 표현이 있다.

      眄睞以適意(면래이적의),引領遙相希(인령요상희)
      이리저리 걸어보면 갈망하는 마음 잦아질까? 목을 빼어서 멀리 바라보기만 한다.


    고시(古詩)는 중국 고전시(古典詩)의 명칭으로 통한다. 고시(古詩)는 시대에 따른 명칭과, 시체(詩体)에 따른 명칭의 2가지의 의미를 가진다. 시대에 따른 명칭으로는 육조시대(北魏가 華北을 統一한 439년부터 隋가 중국을 재통일하는 589년까지)의 위(魏:220年 - 265年).진(晋:265년 - 420년)이전의 시를 말하고, 시체(詩体)로는 당(唐(618년-907년)에 들어 근체시(近体詩)가 성립하고부터는 근체시(近体詩)가 성립하기 이전의 시(詩)를 말한다. 여기에 소개하는 고시십구수(古詩十九首)는 漢代(기원전202년-220년)에 작시한 일련의 작자미상(作者未詳)의 오언시(五言詩)이다.출처

    《문선》(文選)은 중국 남북조 시대에 남조(南朝) 양(梁)의 소명태자(昭明太子)가 편찬한 시문선집(詩文選集)이다. 소명문선(昭明文選)이라고도 한다. 춘추 시대(春秋時代)에서 양대까지의 131명의 대표적 문인의 시(詩)·부(賦)·문장 약 800편의 작품을 시·부·조(詔)·논(論) 등 37개 장르로 나누어 수록하였으며, 그 중 시가 가장 많아 전체의 반수를 차지하고, 작자를 시대별로 보면, 진인(晋人)이 가장 많다.
    수(隋)로부터 당(唐)에 이르러 주(注)가 작성되었으나, 당의 이선(李善)의 주가 뛰어났으며, 현재는 원래의 30권에 이선의 주까지 합쳐서 60권이 되었다. 수당 이전의 대표적인 문학 작품 대부분을 망라하였다. 그리고 이 작품에 수록된 작품뿐 아니라 소명태자 자신이 지은 서문(序文)도 육조(六朝) 문학사론으로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중국 고전문학을 연구하는 자들에게는 필독서로 꼽히고 있다.
    이 글 역시 문선을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당나라때 시 좋은거 정말 많지만 시대적 여러적 이유로 사용 할 수 없을때 언제 어느시대든 꺼내써도 이상하지 않은 시가들이다. 게다가 서정적이고 표현이 다양해서 요즘까지도 회자되고 이후의 시가에 막대한 영향을 끼진 시가들 뿐이다. 원래는 60수 이상 전해졌는데 진시황의 분서갱유를 격고 열 아홉수만이 전해진다고 한다. 유독 여성이 화자인 시가 많은 것으로 봐서 작자가 여성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근심을 만나다

    離騷 屈原
    이소 굴원

    一
    帝高陽之苗裔兮 朕皇考曰伯庸
    고양(高陽;중국의 전설에 나오는 오제(五帝)의 하나인 전욱(顓頊)을 말한다) 임금님의 후예인 나의 아버지는 백용(伯庸)이다.
    攝提貞于孟陬兮 惟庚寅吾以降
    섭제격(攝提格; 고갑자(古甲子)의 하나. 간지(干支)의 인(寅)에 해당한다.) 해 바로 첫 정월달 경인(庚寅) 날에 나는 태어났다.
    皇覽揆余于初度兮 肇錫余以嘉名
    아버님께서는 처음에 내 모습을 보시고 나에게 좋은 이름을 내려 주었다.
    名余曰正則兮 字余曰靈均
    정칙(正則)이는 이름에 자(字)는 영균(靈均)이라 했다.
    紛吾旣有此內美兮 又重之以脩能
    나는 이렇게 큰 미덕과 또한 뛰어난 능력을 겸하여 태어났다.

    扈江離與辟芷兮 紉秋蘭以爲佩
    천궁과 어수리로 몸을 덮었고 추란(秋蘭)을 엮어서 허리에 찼다.
    汩余若將不及兮 恐年歲之不吾與
    나는 늦을까 서둘렀으나 세월이 나와 같이 아니할까 두렵다.
    朝搴阰之木蘭兮 夕攬州之宿奔
    아침에는 비산(阰山)의 목련꽃을 뜯고 저녁에는 섬마을의 숙근초를 캔다.
    日月忽其不淹兮 春與秋其代序
    일월(日月)은 쉬지 않고 빨리도 가서 봄과 가을이 어느새 바뀐다.
    惟草木之零落兮 恐美人之遲暮
    초목이 시들어 떨어져 버리니 젊은 이 몸도 늙을까 겁난다.
    不撫壯而棄穢兮 何不改乎此度
    젊은 사람 돌보지 않고 늙은이 버리지 않으니 어찌 이런 일 안 고치나?
    乘騏驥以馳騁兮 來吾道夫先路
    천리마를 타고 달린다면 내가 앞장서서 길을 안내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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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양(高陽) : 중국의 전설에 나오는 오제(五帝)의 하나인 전욱(顓頊)을 말한다. 초나라는 전욱의 후예가 세운 나라이며 굴원의 선조는 초무왕(楚武王 : 재위 BC741-690)의 아들인 웅하(熊瑕)로 굴성을 사성받아 굴씨들의 시조가 되었다. 이에 굴원이 자기의 조상을 전욱이라고 했다.
    2. 섭제(攝提) : 섭제격(攝提格). 고갑자(古甲子)의 하나. 간지(干支)의 인(寅)에 해당한다.

      간지(干支)는 처음에는 날(日)을 표시하는 데에만 사용하다가, 한대(漢代) 이후에 비로소 해(年)와 달(月)을 표시하는 데에도 사용하였다. 이 구절(句節)을 간지(干支)로 표시하면 인(寅)의 해와 인(寅)의 달이 되며, 다음 구절의 경인(庚寅)의 날과 묘한 일치를 보인다.

    3. 영균(靈菌) : 영(靈)은 선(善), 균(均)은 평(平)의 뜻이다.
    4. 강리(江離) : 천궁을 말하며 향기가 덜한 풀이다.
    5. 지(芷) : 어수리를 뜻하며 향초의 뿌리다.
    6. 인추란(紉秋蘭) : ‘추란을 엮어서’라는 뜻으로 실제로 이런 복장을 했다기보다는 자기의 정신수양을 우화적으로 한 표현이다. 자기는 청렴결백(淸廉潔白)하다는 의미다.
    7. 목란(木蘭) : 목련꽃. 목련과에 속하는 꽃의 일종.

      그 껍질을 벗겨 향료로 쓰는데 껍질을 벗겨도 말라죽지 않는다. 목련꽃과 숙근초의 강인한 특성으로 작가의 굳은 절개를 상징한다.

    8. 미인(美人) : 굴평(屈平) 자신을 말한다. ‘젊은 이 몸이’.
    9. 승기기이치빙혜(乘騏驥以馳騁兮) : 기(騏), 기(驥) 두 글자 모두 천리마(千里馬)로 현신(賢臣)을 상징한다. 즉 ‘임금이 현신을 임용하여 치적을 높이시려 한다면’ 의 의미다.

    二

    昔三后之純粹兮 固衆芳之所在
    옛날 삼후(三后; 하우(夏禹), 상탕(商湯), 주문(周文) 등, 하상주(夏商周) 세 왕 조를 창건한 세 왕)의 순수한 미덕은 진실로 많은 꽃향기를 지녔다.
    雜申椒與菌桂兮 豈維紉夫蕙芷
    산초나무가 있었고 균계(菌桂)나무도 있었으니 어찌 혜초나 어수리만 꿰었겠는가?
    彼堯舜之耿介兮 旣遵道而得路
    저 요순(堯舜; 고대의 성군)의 빛나는 공덕은 처음부터 바른길로만 따라 나아갔다.
    何桀紂之猖披兮 夫唯捷勁以窘步
    걸주(桀紂; 고대의 폭군)의 부끄러운 일이야 어찌할 수 없지만 오로지 지름길만 따라서 허둥거리다가
    惟黨人之偸樂兮 路幽昧以險隘
    제 잇속만 차리는 무리들 때문에 길은 어둡고 험하게만 되었으나
    豈余身之憚殃兮 恐皇輿之敗績
    어찌 이 몸의 재앙만을 걱정했기 때문이었겠는가? 임금님의 수레가 엎어질까 두려워
    忽奔走以先後兮 及前王之踵武
    앞뒤로 분주하게 뛰어 다니며 선왕들의 발자취를 따르려고 했지만
    荃不察余之中情兮 反信讒而齌怒
    임금님은 나의 충정 살피지도 않으시고 오히려 소(讒訴; 참소)를 믿으시고 노했다.

    余固知謇謇之爲患兮 忍而不能舍也
    바른 말이 내 몸에 해로운 걸 알지만 차마 그만 두지 못했던 이유는
    指九天以爲正兮 夫唯靈脩之故也
    저 하늘에 맹세도 했었지만 다만 훌륭한 그분 때문에
    曰黃昏以爲期兮 羌中道而改路
    황혼(黃昏)까지 가자고 기약했는데 중도에서 길을 바꾸셨으니
    初旣與余成言兮 後悔遁而有他
    처음에 나와 한 언약을 뒤에 가서 파하고 딴 데에 마음을 두셨다.
    余旣不難夫離別兮 傷靈脩之數化
    나는 그런 이별을 언짢다곤 하지 않지만 훌륭한 분의 변덕에는 마음이 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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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삼후(三后) : 하우(夏禹), 상탕(商湯), 주문(周文) 등, 하상주(夏商周) 세 왕 조를 창건한 세 왕을 말한다.
    2. 신초여균계(申椒與菌桂) : 산초나무와 균계나무. 두 가지 모두 향목 (香木)이다.
    3. 기유인부혜지(豈維紉夫蕙芷) : 삼후(三后)는 한 두 사람의 총신(寵臣-혜초.어수리)에게만 정치를 전임시키지 않고 널리 현신(賢臣-산초나무, 균계나무)을 두루 임용했다는 의미다.
    4. 요순(堯舜) : 중국 상고시대의 전설적인 성군의 대명사다.
    5. 걸주(桀紂) : 걸(桀)은 하(夏)의 마지막 임금이고 주(紂)는 은(殷=商)의 마지막 임금이다.

      두 임금 모두 나라를 망친 폭군이었다. 성군과 폭군이 따라간 정도(正道)와 사도(邪道)를 대조하여, 굴원이 모셨던 초회왕(楚懷王) 웅괴(熊槐)가 마땅히 취할 바를 말했다.

    6. 전(荃) : 분꽃과의 향초. 임금을 의미한다.
    7. 영수(靈脩) : 훌륭한 분. 천성과 재능이 훌륭하다는 의미. 여기서는 초회왕을 지칭한다.

    三
    余旣滋蘭之九畹兮 又樹蕙之百畝
    나는 난초를 구원(九畹)에 퍼지게 했고 또 혜초(蕙草) 백 이랑을 심었다.
    畦留夷與揭車兮 雜杜衡與芳芷
    유이(留夷)와 게거(揭車)를 두둑으로 나누고 두형(杜衡)과 어수리를 섞어서 심었다.
    冀枝葉之峻茂兮 願竢時乎吾將刈
    가지와 잎이 무성하길 바랐고 때를 맞추어서 베려고 했다.
    雖萎絶其亦何傷兮 哀衆芳之蕪穢
    비록 시들어 버린다 해도 어찌 속을 상하겠는가? 거칠어진 꽃향기와 더러워진 꽃잎이 서러워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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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구원(九畹) : 원(畹)은 밭 12 이랑(畝). 구원(九畹)이니 108 이랑이다. 한 이랑은 약 170평.
    2. 유이여게거(留夷與揭車) : 유이(留夷)는 작약의 일종이고 게거는 잎이 노랗고 흰 꽃이 피는 식물이다.
    3. 두형(杜衡) : 향초(香草)의 일종. 유이(留夷), 게거(揭車), 지(芷), 두형 (杜衡)과 같은 식물을 심었다는 말은 정신수양에 더욱 힘썼다는 의미다.
    4. 기지엽지준무혜(冀枝葉之峻茂兮) : ‘ 가지와 잎이 무성하길 바랐다.’ 이 구절의 의미는 힘써 수양을 닦아 성과를 얻으려했는데, 그렇게 되지 못하고 ‘임금에게 버림받아 시들어 버렸다.’ 그러나 이것은 아깝지 않으나 당인(黨人)들의 참언(讒言)으로, ‘더럽혀지는 것’ 이 서럽다는 의미다.

    四
    衆皆競進以貪婪兮 憑不厭乎求索
    사람들은 다투어 재물을 탐하여 만족할 줄 모르고 계속 구한다.
    羌內恕己以量人兮 各興心而嫉妬
    제 소가지로 남을 가늠하면서 제각기 마음 속에 질투심을 갖는다.
    忽馳騖以追逐兮 非余心之所急
    바쁘게들 이리저리 쫓아다니지만 내가 급히 해야 할 일은 아니다.
    老冉冉其將至兮 恐脩名之不立
    앞으로 점점 늙어 갈 터인데 조촐한 명성도 못 이룰까 두렵다.
    朝飮木蘭之墜露兮 夕餐秋菊之落英
    아침에 목련에서 떨어지는 이슬을 마시고 저녁에는 추국(秋菊)에서 지는 꽃잎을 먹었다.
    苟余情其信姱以練要兮 長顑頷亦何傷
    진실로 나의 마음이 미쁘고 결곡하기만 하다면 얼굴이 오래도록 창백한들 어찌 마음이 상하겠는가?
    擥木根以結芷兮 貫薛荔之落蕊
    남목(擥木) 뿌리를 어수리로 묶고 벽려(薛荔; 들꽃)의 떨어진 꽃술 꿰어서 걸었다.
    矯菌桂以紉蕙兮 索胡繩之纚纚
    혜초를 엮어서 균계(菌桂)를 바로 하고 잔디 줄기 이어서 꼬아 둘렀다.
    謇吾法夫前脩兮 非世俗之所服
    나는 옛날 어진분의 본을 땄기에 세상 사람들의 옷을 입지 않았다.
    雖不周於今之人兮 願依彭咸之遺則
    비록 지금의 사람에겐 맞지 않지만 팽함(彭咸; 은나라 현신으로 왕에게 간했으나 듣지 않아 자살함.)의 유칙(遺則)은 따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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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장함함역하상(長顑頷亦何傷) : 함함(顑頷)은 영양실조로 창백해진 얼굴을 말한다. 청결한 음식만을 대함으로 행실의 결백(潔白)함을 의미한다. 고관대작이야 영양실조에 걸릴 리가 없음이다.
    2. 벽려(薜荔) : 승검초와 타래붓 꽃.
    3. 색호승지이리(索胡繩之纚纚) : 호승(胡繩)은 잔디 풀로 엮은 끈. 이 구절은 향초(香草)를 가지고 옷 을 꾸민다는 의미로, 결백을 상징한다.
    4. 팽함(彭咸) : 은(殷) 나라 때의 현신(賢臣)으로 왕에게 간했으나 듣지 않았음으로 물에 뛰어 들어 죽었다.

    五
    長太息以掩涕兮 哀民生之多艱
    눈물을 닦으며 길게 탄식하는 이유는 백성들의 고난이 애처러워서였지!
    余雖好脩姱以鞿羈兮 謇朝誶而夕替
    내가 비록 결곡하고 조심한다 했지만 아침에 바른 말씀 올렸다가 저녁에 쫓겨났다.
    旣替余以蕙纕兮 又申之以攬芷
    혜초의 띠를 둘렀다고 쫓아내더니 어수리를 캐간 일도 나쁘다고 했다.
    亦余心之所善兮 雖九死其猶未悔
    그러나 내 마음은 여전히 선해서 비록 아홉 번 죽는다 해도 후회는 않겠다.

    怨靈脩之浩蕩兮 終不察夫民心
    훌륭하신 분의 호탕함이 원망스러워 백성들의 마음을 끝까지 살필 수 없게 되었다.
    衆女嫉余之蛾眉兮 謠諑謂余以善淫
    많은 여인들은 예쁜 내 눈썹을 시새워 어이없이 나를 음란하다고 욕한다.

    固時俗之工巧兮 偭規矩以改錯
    진실로 세상의 목수들이란 그림쇠와 곱자를 엇대어 바꿔가면서
    背繩墨以追曲兮 競周容以爲度
    먹줄을 비켜놓고 굽혀서 쫓아 다투어 비위맞추는 일을 법도로 삼는다.
    忳鬱邑余侘傺兮 吾獨窮困乎此時也
    울적한 마음으로 멍청히 서서 나 홀로 이때에 곤란을 당하지만
    寧溘死以流亡兮 余不忍爲此態也
    차라리 당장 죽어 사라진다 하더라도 이러한 작태는 참을 수 없다.
    鷙鳥之不群兮 自前世而固然
    지조(鷙鳥)가 무리짓지 않음은 원래 옛날부터 그랬왔었고
    何方圓之能周兮 夫執異道而相安
    모난 것과 둥근 것이 어찌 맞을 수가 있겠으며 가는 길이 다른데 서로가 어찌 편하겠는가?
    屈心而抑志兮 忍尤而攘詬
    마음을 굽히고 뜻을 억눌러서 꾸짖음을 물리치고 더욱 참고 있음이라.
    伏淸白以死直兮 固前聖之所厚
    결백한 몸으로 죽는 일은 옛 성인(聖人)들의 한결같은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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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중여질여지아미혜(衆女嫉余之蛾眉兮) : 당인들이 굴평(屈平)을 시샘하여 임금에게 참소(讒訴)한 것을 남녀의 관계로 비유했다.
    2. 경주용이위도(競周容以爲度) : 당인들이 상도(常道)를 굽혀 임금 의 뜻에만 애써 영합한다는 의미다.
    3. 지조(鷙鳥) : 소리개 같은 맹금류(猛禽類)의 새. 뜻이 강직(剛直)한 사람을 의미한다. 굴평(屈平)은 자신을 지조로 비유하고 당인(黨人)들은 뭇 잡새에 비유했다.
    4. 하방원지능주혜(何方圓之能周兮) : 목수(工巧)가 나무에 구멍을 뚫어 장부를 맞출 때 네모난 장부는 동그란 구멍에 맞지 않는다는 의미로 굴평(屈平) 자신은 당인들과 뜻을 같이 할 수 없었음을 말한다.

    六
    悔相道之不察兮 延佇乎吾將反
    길을 잘못 살핀 행위를 뉘우치면서 우두커니 서서 돌아갈 일 생각한다.
    回朕車以復路兮 及行迷之未遠
    나는 수레를 돌려서 돌아가련다. 헤메며 다닌 길은 그리 멀지 않으니
    步余馬於蘭皐兮 馳椒丘且焉止息
    난초옆 물가에서 말을 몰아 초나무 언덕에 이르러 멈추어 쉰다.

    進不入以難尤兮 退將復脩吾初服
    나아가 들어가지 못하고 어려움만 더 했으니 물러나와 옛날 내 옷을 손본다.
    製芰荷以爲衣兮 集芙蓉以爲裳
    마름과 연꽃으로 저고리 짓고 부용(芙蓉) 모아 바지 만든다.
    不吾知其亦已兮 苟余情其信芳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그뿐 나의 진실한 충정은 향기로울 뿐이다.
    高余冠之岌岌兮 長余佩之陸離
    나의 갓 우뚝하게 만들고 나의 노리개는 눈부시고 기다랗다.
    芳與澤其雜糅兮 唯昭質其猶未虧
    향기와 악취가 서로 섞이고 얽혀도 하얀 바탕에서 아직은 이지러지지 않았다.
    忽反顧以遊目兮 將往觀乎四荒
    문득 고개를 젖혀 둘러보면서 이제 사방 끝을 구경나간다.
    佩繽紛其繁飾兮 芳菲菲其彌章
    노리개는 주렁주렁 예쁘게 꾸며 있고 향기는 물씬 물씬 더욱 피어난다.

    民生各有所樂兮 余獨好脩以爲常
    사람들은 제각기 락(樂)이 있다지만 나는 항상 결백을 홀로 좋아한다.
    雖體解吾猶未變兮 豈余心之可懲
    이 몸이 갈갈이 찢겨진다 해도 어찌 내가 마음을 고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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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회상도지불찰혜(悔相道之不察兮) : 나아가 임금에게 충성(忠誠)을 다 하려고 했으나, 오히려 참소를 당해 쫓겨났으니, 자기의 불찰을 뉘우치며 차라리 물러나 유유자적한 생활로 들어가리라.
    2. 난고(蘭皐), 초구(椒丘) : 향초(香草)와 향목(香木)을 들어 정신주의(精神主義)의 뜻을 표현했다.
    3. 제기하이위의혜(製芰荷以爲衣兮) : 기(芰)는 수초의 일종인 마름이고 하(荷)는 연꽃이다. 기하로 저고리를 만들다.
    4. 부용(芙蓉) : 연꽃의 별칭.
    5. 방여택기잡유혜(芳與澤其雜糅兮) : 방여택(芳與澤)은 향초와 향목의 향기와 빛깔. 굴평(屈平) 자신의 고결한 인격에 비유했다.
    6. 홀반고이유목혜(忽反顧以遊目兮) : 은퇴했다가, 아무래도 이 세상을 잊을 수가 없어, ‘고개를 젖혀 둘러보면서’ 사방 끝으로 현명한 임금을 찾아 나서리라.
    7. 수체해오유미변혜(雖體解吾猶未變兮) : 체해(體解)의 의미는, 옛날 중국(中國)에서는 지해(支解)라고 해서 팔 다리를 찢어 죽이는 거열형이라는 형벌을 말한다.

    七
    余嬃之嬋媛兮 申申其詈予
    내 누님 여수(呂嬃)가 걱정되어 거듭해서 나를 나무란다.
    曰鯤婞直以亡身兮 終然夭乎羽之野
    이르기를, ‘곤(鯤)은 고지식해서 몸을 망치고 끝내는 우산(羽山) 들에서 요절(夭折)했다.
    汝何博謇而好脩兮 紛獨有此姱節
    너는 어찌 올곧고 결백하다 하면서 이런 미뿐 절개만 홀로 고집하느냐?
    薋菉葹以盈室兮 判獨離而不服
    납가새, 조개풀, 도꼬마리가 방안에 가득한데 홀로 멀리 하면서 어찌 걸치지를 않느냐?
    衆不可戶說兮 孰云察余之中情
    집집마다 찾아가 말할 수도 없는데 누가 너의 충정을 헤아리겠느냐?
    世並擧而好朋兮 夫何煢獨而不予聽
    세상에선 끼리끼리 붕당(朋黨)을 짓고 있는데 어쩌자고 외톨박이 신세로 내 말을 안 듣느냐?’
    참고
    1. 곤(鮌) : 하(夏)나라의 시조 우왕(禹王)의 아버지로 요임금에 의해 하수의 치수를 맡았으나 실패하자 우산(羽山)으로 끌려가 처형되었다. 요임금으로부터 선양받아 임금이 된 순이 아들 우(禹)에게 명하여 하수의 치수를 맡겼다. 우가 각고의 노력 끝에 하수의 홍수를 다스리자 순임금은 우에게 임금의 자리를 선양했다.
    2. 자록시이영실혜(薋菉葹以盈室兮) : 자(薋)는 납가새, 록(菉)은 조개풀, 시(葹)는 도꼬마리, 이 세 가지 풀은 모두 악초(惡草)로 여긴다. 조정(朝廷)의 못된 당인들을 지칭한 말이다.
    3. 숙운찰여지중정(孰云察余之中情) : 굴평이 사방 끝을 찾아 나서려 하는 목적은 그의 충정을 알아주는 지기(知己)를 찾기 위함인데, 누님은 오히려 굴원이 행위는 헛된 일이 될 뿐이니 고향의 중인(衆人)들과 어울려 사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고 타이르고 있다.

    八
    依前聖以節中兮 喟憑心而歷玆
    옛 성인에게 나의 올바름을 판정 받고자 한숨 쉬며 이런 뜻을 품고
    濟沅湘以南征兮 就重華而陳詞
    원수(沅水)와 상수(湘水)를 건너 남쪽으로 가서 중화(重華는 순(舜) 임금의 호(號)님 앞에 나아가 말씀 올렸다.

    啓九辯與九歌兮 夏康娛以自縱
    계(啓; 하우(夏禹)의 아들)는 구변(九變)과 구가(九歌)를 노래했지만 계의 아들 태강(太康)은 제멋대로 놀면서
    不顧難以圖後兮 五子用失乎家巷
    화난도 앞일도 돌아보지 않아서 다섯 아우들조차도 집을 잃고 헤매게 만들었다.
    羿淫有以佚畋兮 又好射夫封狐
    예(羿유궁국(有窮國)의 임금)는 방탕하고 사냥이나 하면서 큰 여우 쏘기만을 좋아했었다.
    固亂流其鮮終兮 浞又貪夫厥家
    원래 도리를 어기면 망하는 법 한착(寒浞)이 그의 아내를 빼앗아갔다.
    澆身被服强圉兮 縱欲而不忍 日康娛而自忘兮
    요(澆; 예의 아내와 한착의 사생아)는 그 몸에 굳센 힘을 가지고 욕심부리며 절제하지 않고 날마다 즐기면서 자신을 잊었다네.
    夏桀之常違兮 乃遂焉而逢殃
    걸(桀)은 언제나 무도하더니 드디어는 재앙을 당했으며,
    后辛之菹醢兮 殷宗用而不長
    은주(殷紂)는 비간을 죽여 소금에 절였음으로 은(殷)나라의 사직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湯禹儼而祗敬兮 周論道而莫差
    탕(湯)과 우(禹)는 근엄하게 공경했으며 주(周)나라의 임금은 도리를 지켜
    擧賢而授能兮 循繩墨而不頗
    현인들을 등용하여 법도에 따르니 치우침이 없었다.
    皇天無私阿兮 覽民德焉錯輔
    하늘을 공경하고 사심(私心)이 없어서 사람의 덕을 보고 도울 사람을 내리셨다.
    夫維聖哲以茂行兮 苟得用此下土
    대체로 거룩하고 훌륭한 사람만이 진실로 이 천하를 얻었다.
    瞻前而顧後兮 相觀民之計極
    고금의 흥망성쇠를 더듬어 가며 사람경영의 극치를 살펴서 보니
    夫孰非義而可用兮 孰非善而可服
    의(義)가 아닌데 그 누가 천하를 다스리겠으며 선(善)이 아닌데 그 누가 백성을 거느리겠는가?
    阽余身而危死兮 覽余初其猶未悔
    이 몸이 위험에 빠져 당장 죽는다 해도, 초지(初志)를 지켜 후회하지는 앓으리라!
    不量鑿而正枘兮 固前脩而菹醢
    구멍을 안 재고 장부를 맞추려다 옛 현인이 소금에 절여져 죽은 일도 있었다.
    增歔欷余鬱邑兮 哀朕時之不當
    흐느껴 울어도 마음이 울적한 이유는 마음에 안 맞는 세월이 서러워서다.
    欖茹蕙以掩涕兮 霑余襟之浪浪
    혜초(蕙草)를 추려서 닦는 눈물이 주루루 흘러서 내 옷깃을 적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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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원상(沅湘) : 원수(沅水)와 상수(湘水)로 동정호의 남쪽에서 흘러들어 오는 두 강. 상수(湘水)의 지류인 소수(瀟水)는 구억산(九嶷山)에서 발원하는데, 순임금이 이곳으로 순행하다가 죽자 그 뒤를 따라 두 부인이 상수에 빠져 죽었다. 사람들은 두 부인을 상군(湘君)과 상부인(湘夫人)으로 불러 상수의 신으로 제사지냈다.
    2. 취중화이진사(就重華而陳詞) : 중화(重華)는 순(舜) 임금의 호(號). 이 구절은 굴원이 실제로 여행했다는 말이 아니라, 다음 구절에 나오는 여행(旅行)과 마찬가지로 상상 속에서 한 여행을 표현했다.
    3. 계(啓) : 하우(夏禹)의 아들로 하나라의 두 번째 임금이다. 산해경(山海經)에 계(啓)는 하늘로 올라가 구변(九變)과 구가(九歌) 두 가지의 음악을 얻어 왔다고 했다.
    4. 하강(夏康) : 하(夏)나라의 임금 태강(太康)으로, 계(啓)의 아들이다. 태강은 놀이를 좋아했는데 그가 사냥을 나갔을 때, 유궁국(有窮國)의 왕 예(羿)가 그 의 길을 막아 돌아오지 못하고 왕위(王位)를 잃고 말았다. 그로 인해서 그의 다섯 아우도 집을 잃었다.
    5. 예(羿) : 유궁국(有窮國)의 임금. 하나라의 태강(太康)을 폐위 시키고 정권을 잡았지만 재상 한착(寒浞)을 신임하고 자기는 놀러만 다녔다. 한착(寒浞)은 가신 봉몽(逢蒙)을 시켜서 사냥 나갔다가 돌아오던 예(羿)를 중도에서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았다.
    6. 요(澆) : 한착(寒浞)과 예(羿)의 아내 사이에 낳은 아들이다. 요(澆)는 하나라 임금 상(相-太康의 조카)을 죽이고 놀이를 다니다가 상(相)의 아들에게 살해 당했다.
    7. 후신지저해혜(后辛之菹醢兮) : 저해(菹醢)는 소금에 절인다는 뜻이다. 고대 중국의 잔인한 형벌 중의 하나로 사람을 죽여 그 뼈와 살을 소금에 절여 신하들에게 나누어주어 먹게 하여 경계의 수단으로 삼았다. 은(殷)나라의 마지막 왕 주(紂)가 현인 비간(比干)을 죽여 그 시신으로 젖을 담궜다고 했다.
    8. 탕우(湯禹) : 하나라 마지막 왕 걸왕(桀王)을 죽이고 상나라를 세운 탕임금과 순임금에게서 선양받아 하나라를 세운 우임금을 말한다.
    9. 주론도이막차(周論道而莫差) : 여기서의 주(周)는 주나라의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을 가리킨다. 주나라의 기초는 문왕에 의하여 닦여졌는데 그의 아들 무왕이 은주(殷紂)를 멸하고 주나라를 창건했다.
    10. 첨전이고후혜(瞻前而顧後兮) : 고금의 흥망성쇠를 살펴본다는 뜻으로 즉 첨전고후(瞻前顧後)란 전국시대의 인물인 굴원에게는 하은주(夏殷周) 3대의 역사를 살펴본다는 말이다. 인간이 천명(天命)을 받들어 왕업을 이루는 경영의 극치(極致)를 살펴본다는 의미다.

    九
    跪敷衽以陳辭兮 耿吾旣得此中正
    옷 자락을 헤치고 꿇어앉아 아뢰고 그 가운데에서 올바름을 환하게 얻었다.
    駟玉虯以乘鷖兮 溘埃風余上征
    네 마리의 옥규(玉虯)가 이끄는 예(鷖)를 타고서 먼지를 일으키며 하늘로 오른다.
    朝發軔於蒼梧兮 夕余至乎縣圃
    아침에 창오산(蒼梧山)을 출발했더니 저녁에 현포(顯圃; 곤륜산)에도착했다.
    欲少留此靈琑兮 日忽忽其將暮
    이 신령스런 문간에 잠깐 머물려고 했는데 날은 점점 저물어 갔다.

    吾令羲和而弭節兮 望崦嵫而勿追
    나는 희화(羲和; 마부)를 시켜 해를 늦추어 엄자산(崦嵫山; 해가 지는 곳) 앞에서 멈추게 했다.
    路曼曼其脩遠兮 吾將上下而求索
    길은 까마득히 멀기도 한데 나는 오르내리며 지기(知己)를 찾았다.
    飮余馬於咸池兮 總余轡乎扶桑
    함지(咸池; 해가 목욕한다는 연못)에서 내말에게 물을 먹이고 말고삐를 부상(扶桑; 해가 떠오르는 뽕나무)에 매어두고
    折若木以拂日兮 聊逍遙以相羊
    약목(若木; 해가 들어가는 곳)을 꺾어 해를 쫓아버린 후 서성이며 잠간 동안 거닐었다.
    前望舒使先驅兮 後飛廉使奔屬
    망서(望舒; 달의 여신)를 앞세워 길잡이 삼고 비렴(飛廉)은 뒤에서 쫓아오게 하고
    鸞凰爲余先戒兮 雷師告余以未具
    란황(鸞凰; 파란 봉황)은 나를 위해 호위하고 있는데도 뇌사(雷師;번개의 신)는 나에게 준비가 덜되었다고 한다.
    吾令鳳鳥飛騰兮 繼之以日夜
    내가 봉황을 시켜 높게 날게 하여 낮과 밤을 이어가며 달리게 하자.
    飄風屯其相離兮 帥雲霓而來御
    회오리바람이 모였다가 흩어지더니 구름과 무지개 이끌고 마중나왔다.
    紛總總其離合兮 斑陸離其上下
    얼키며 풀리며 우르르 몰리다가 오르내리며 주르르 흩어진다.
    吾令帝閽開關兮 倚閶闔而望予
    제혼(帝閽)에게 문을 열라는 내 명을 듣고도 창합문(閶闔門)에 기대어 멀뚱히 처다만 본다.
    時曖曖其將罷兮 結幽蘭而延佇
    때는 어둑어둑 하루가 끝나 가는데 난초를 묶어 갖고 멀거니 섰다.
    世溷濁而不分兮 好蔽美而嫉妬
    세상은 혼탁하여 분간할 수 없고 미덕은 가리고 시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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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옥규(玉虯),예(鷖) : 규(虯)는 뿔이 없는 용이고 옥(玉)은 미칭이다. 예(鷖)는 봉황의 한 종류다. 공중을 비행하기 위하여 이것들로 하여금 수레를 끌게 한다는 뜻이다.
    2. 조발인어창오혜(朝發軔於蒼梧兮) : 창오(蒼悟)는 창오산(蒼梧山), 즉 구억산(九嶷山)을 말한다.

      구억산은 호남성 남쪽 상수(湘水)의 지류인 소수(瀟水)의 발원지(發源地)이며 순임금을 장사지낸 곳이다. 굴원이 순임금을 찾아가 자기의 처지를 하소연한 후에 하직하고 천제(天帝)를 알현하기 위하여 떠난다는 뜻이다.

    3. 현포(顯圃) : 곤륜산(崑崙山)에 있는 천제(天帝)가 일구는 밭.

      곤륜산(崑崙山)은 중국 최고 최대의 산맥으로, 히말라야 산맥 부근의 산악지대를 말한다. 고대 중국인들이 신령스러운 산으로 여겼으며 많은 전설(傳說)이 여기에서 나왔다.

    4. 희화(羲和) : 해를 태운 수레를 부린다는 신화 상의 마부(馬夫).
    5. 엄자산(崦嵫山)은 감숙성(甘肅省) 천수현(天水縣) 서쪽에 있는 산으로 해가 들어가는 곳.
    6. 함지(咸池) : 해가 목욕한다는 연못.
    7. 부상(扶桑) : 신령스러운 상상(想像)의 뽕나무로 그 밑에서 해가 나온다고 했다.
    8. 약목(若木) : 곤륜산(崑崙山) 서쪽 끝머리에서 자란다는 나무로 해가 들 어가는 곳이다.
    9. 망서(望舒) : 달을 태운 수레를 부린다는 신화상의 달의 여신.
    10. 비렴(飛廉) : 평호, 병예. 황제때의 풍백의 이름. 머리는 참새처럼 생겼고 한쌍의 뿔이 돋아 있으며 몸은 사슴과 비슷하다. 뱀의 꼬리에 몸에는 표범의 무늬가 있다.
    11. 란황(鸞凰) : 털빛이 푸른 신령스러운 상상의 새로 봉황의 다른 말이다.
    12. 뇌사(雷師) : 천둥의 신.
    13. 제혼(帝閽) : 천국(天國)의 수문장(守門將).
    14. 창합문(閶闔門). 천국(天國)의 대문.
    15. 세혼탁이불분혜(世溷濁而不分兮) : 속세(俗世)뿐만 아니라 천국(天國)의 수문장도 남의 아름다움을 시샘하여 문을 열어 주지 않는다.

    十
    朝吾將濟於白水兮 登閬風而緤馬
    아침에 나는 백수(白水; 오색물줄기중 하나)를 건너려고 낭풍산(閬風山; 곤륜산)에 올라 말을 매어놓고
    忽反顧以流涕兮 哀高丘之無女
    뒤를 돌아보니 눈믈이 흐른다. 높은 이 산에 미인이 없어 슬퍼서다.
    溘吾遊此春宮兮 折瓊枝以繼佩
    춘궁(春宮)에 이르러 노닐고 있다가 옥(玉)가지를 꺾어서 노리개에 이었다.
    及榮華之未落兮 相下女之可詒
    초목(草木)의 꽃들이 떨어지기 전에 이를 선사할 미인을 찾아야겠다.

    吾令豊隆乘雲兮 求宓妃之所在
    나는 풍륭(豊隆)에게 구름을 타고 가서 복비(宓妃)가 있는 곳을 알아보라했다.
    解佩纕以結言兮 吾令蹇脩以爲理
    노리개의 끈을 풀어 정표를 삼아서 건수(蹇脩)에게 내 중매를 부탁했다.
    紛總總其離合兮 忽緯繣其難遷
    얼키며 풀리며 우르르 몰리더니 갑자기 어긋나서 나가기가 어렵구나.
    夕歸次於窮石兮 朝濯髮乎洧盤
    저녁에 돌아와 궁석산(窮石山)에서묵고 아침에 유반강(洧盤江; 엄자산에서 흐르는 물)물로 머리를 감았다.
    保厥美以驕傲兮 日康娛以淫遊
    아름답다 뽐내며 교만하게 굴면서 날마다 음유(淫遊)하며 놀기만을 즐긴다.
    雖信美而無禮兮 來違棄而改求
    비록 곱다고는 하지만 예의(禮儀)가 없으니 내버려두고 달리 찾아야겠다.
    覽相觀於四極兮 周流乎天余乃下
    사방을 끝까지 둘러보고는 하늘을 돌아서 지상으로 내려왔다.

    望瑤臺之偃蹇兮 見有娀之佚女
    높다란 옥루대(玉樓臺)를 바라보니 유융씨(有娀氏) 가인(佳人)이 보이는구나.
    吾令鴆爲媒兮 鴆告余以不好
    짐새에게 중매서라 했더니 짐새는 고하기를 좋지 않다고 한다.
    雄鳩之鳴逝兮 余猶惡其佻巧
    숫 비들기 울어대며 나서겠다고 하지만 방정맞은 그놈이 나는 싫었다.
    心猶豫而孤疑兮 欲自適而不可
    마음은 망설이고 홀로 의아해 하지만 스스로 찾아가서 볼 수도 없어
    鳳凰旣受詒兮 恐高辛之先我
    봉황(鳳凰)이 폐백 들고 이미 갔으니 고신씨(高辛氏)가 나보다 앞서갈까 두렵다.

    欲遠集而無所止兮 聊浮遊以逍遙
    멀리 날아가려해도 머물 곳이 없으니 허공에 올라가 거닐어 본다.
    及少康之未家兮 留有虞之二姚
    소강(少姜)이 미처 장가들기 전에 유우씨(有虞氏)의 두 미녀를 맞아야겠다.
    理弱而媒拙兮 恐導言之不固
    떳떳치 못한데다 중매를 서두르니 얘기가 잘 안 될까 두렵구나.
    世溷濁而嫉賢兮 好蔽美而稱惡
    세상이 혼탁하여 현인을 시샘하니 미덕은 감추기를 좋아하고 악덕을 기린다.
    閨中旣以邃遠兮 哲王又不寤
    규중(閨中)은 너무 깊고도 멀어서 슬기로운 임금님은 만나지 못했다.
    懷朕情而不發兮 余焉能忍與此終古
    가슴 속에 품은 나의 충정을 나타내지 못했는데 내 어찌 세상 사람들과 길이 어울리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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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백수(白水):곤륜산(崑崙山)에서는 오색(五色)의 강물이 흐른다고 했는데 백수(白水)는 그중 하나다.
    2. 낭풍산(閬風山):곤륜산(崑崙山)은 3 층으로 되어 있는데, 아래는 번동(樊棟), 가운데 낭풍(閬風), 위는 층성(層城)이라 했다. 천제(天帝)의 밭 현포(顯圃)가 있는 곳이다.
    3. 애고구지무녀(哀高丘之無女):고구(高丘)는 낭풍산(閬風山), 여(女-美人)는 지기(知己) 또는 현군(賢君).
    4. 춘궁(春宮) : 동방의 신(神) 청제(靑帝)가 사는 궁전.
    5. 풍륭(豊隆) : 구름의 신(神).
    6. 6. 복비(宓妃) : 중국 상고시대 삼황(三皇)의 하나인 복희씨(伏羲氏)의 딸.

      낙수(洛水)에서 익사(溺死)했는데 이 강의 신(神)이 되었다고 했다. 낙수(洛水)는 하남성 낙양(洛陽) 부근을 흘러 황하(黃河) 남안으로 흐른다.

    7. 건수(蹇脩) : 복희씨(伏羲氏)의 신하.
    8. 궁석산(窮石山): 감숙성(甘肅省) 산단현(山丹縣) 서남쪽에 있는 지금의 기련산(祁連山)이다.
    9. 유반강(洧盤江) : 감숙성(甘肅省) 엄자산(崦嵫山)에서 흘러내리는 강.
    10. 보궐미이교오혜(保厥美以驕傲兮):복비(宓妃)는 자신의 미모에 취하여 교만하게 굴었다는 뜻이다.
    11. 유융씨(有娀氏) : 옛날 유융국(有娀國) 임금에게 언니는 간적(簡狄)이라 하고 동생은 건자(建疵)라 하는 아름다운 두 딸이 있었다. 부왕(父王)은 요대(瑤臺-玉樓臺)를 지어 두 딸이 여기서 살게 했다. 언니 간적(簡狄)은 은(殷)나라의 조상인 설(契)을 낳았다.
    12. 짐(鴆) : 독조(毒鳥)로 깃털에 독이 있는데, 이 깃털로 독주(毒酒)를 만들어 독살하거나 사약으로 사용했다.
    13. 고신씨(高辛氏) : 중국 상고시대 오제(五帝)의 하나로 제곡(帝嚳)이다.

      전설에 의하면 유융씨(有娀氏)의 딸 간적(簡狄)을 비(妃)로 맞았다. 중매(中媒)를 새에게 부탁하는 것은 간적(簡狄)이 요대(瑤臺)에 있을 때 상제가 제비를 시켜 알(卵)을 보냈는데 간적(簡狄)이 알을 삼켜 태기가 있어 설(契)을 낳았다고 했다.

    14. 소강(少康) : 하(夏)나라의 임금 상(相)의 아들이다.

      상(相)이 한착(寒浞)의 아들 요(澆)에게 피살을 당했을 때, 소강(少康)은 유우국(有虞國)으로 피했 다. 유우국(有虞國) 임금은 그의 두 딸을 아내로 주었다.

    15. 규중(閨中) : 부녀자들이 거처하는 곳으로 복비(宓妃) 이하의 부녀자들 을 의미한다. 여인을 찾는다는 사실은 실은 슬기로운 임금을 구한다는 뜻이다.

    十一
    索瓊茅以筵篿兮 命靈氛爲余占之 兩美其必合兮 孰信脩而慕之 思九州之博大兮 豈唯是其有女
    경모(瓊茅)풀과 대쪽 점대를 찾아 영분(靈氛; 점쟁이)에게 나를 위해 점을 치라 했다. 이르기를, ‘두 미녀(美女)는 꼭 합쳐지겠으나, 누가 그대의 결백을 사모하리요. 생각컨대 구주(九州) 땅은 넓고 넓으니 어찌 이곳에만 미녀(美女)가 있겠는가?’
    曰勉遠逝而無狐疑兮 孰求美而釋汝 何所獨無芳草兮 爾何懷乎故宇
    또 이르기를, ‘의심하지 말고 힘을 내어 멀리 떠나요. 미남(美男)을 찾고 있는 사람이 어찌 그대를 노치겠소? 세상 어디에서나 향기로운 풀이야 있는 법 어찌 그대는 고향만 생각하는가?’
    世幽昧以眩曜兮 孰云察余之善惡
    캄캄한 세상에 비치는 빛은 눈이 부신데 누가 나의 선악을 살필 수 있겠는가?
    民好惡其不同兮 惟此黨人其獨異 戶服艾以盈腰兮 謂幽蘭其不可佩
    사람들의 싫고 좋음은 같지 않다 하지만 유독 특이한 이런 당인(黨人)들은 산쑥을 허리에 채우지만 난초(蘭草)는 두를 수 없다.
    覽察草木其猶未得兮 豈程美之能當
    초목조차 제대로 못 살피는 주제에 구슬이 곱다는 사실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蘇糞壤以充幃兮 謂申椒其不芳
    거름을 주어 향낭(香囊)을 채우고도 산초나무는 향기롭다고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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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모(瓊茅) : 신령스러운 풀이름으로 주로 점복을 치는데 사용하기도 했고 또 제사를 지낼 때 술을 거르는데 사용하는 풀로써 초나라가 주왕실에 바치는 공물이었다.
    2. 영분(靈氛) : 길흉(吉凶)을 점치는 사람.
    3. 구주(九州) : 우임금이 중국의 전국을 9개의 주로 나누었다. 여기서는 초 (楚) 나라 이외의 온 천하를 의미함.
    4. 애(艾): 냄새가 나쁜 산쑥으로 향기가 좋은 향초에 반대됨을 비유했다.

    十二
    欲從靈氛之吉占兮 心猶豫而狐疑
    영분(靈氛)의 길점(吉占)을 따르고는 싶지만 마음은 망설이고 주저하게 된다.
    巫咸將夕降兮 懷椒糈而要之
    무함(巫咸; 상나라의 점쟁이)이 저녁에 내려온다니 산초와 고운 쌀을 가지고 가서 물어봐야겠다.
    百神翳其備降兮 九疑繽其並迎
    저녁 때가 되어 백신(百神)이 휩쓸며 강림하니 구억산(九嶷山; 순임금이 죽은 곳) 신령들이 몰려와 마중한다.
    皇剡剡其揚迎兮 告余以吉故
    무함(巫咸)은 번쩍번쩍 영겁한 기운 내며 나에게 길한 까닭 말해 주면서
    曰勉陞降以上下兮 求矩矱之所同
    이르기를, ‘하늘로 오르고 땅으로 내려서 법도가 같은 임금을 찾아보게나.

    湯禹儼而求合兮 摯咎繇而能調
    탕(湯)과 우(禹)는 근엄하게 현신(賢臣)을 구하더니 지(摯; 은나라 탕왕(湯王 )의 신하)와 구요(咎繇; 하나라 우왕(禹王)의 신하)가 나와 함께 잘도 어울렸다.
    苟中情其好脩兮 又何必用夫行媒
    진실로 그대가 결백을 좋아한다면 어찌 또 중매가 필요할까?
    說操築於傅巖兮 武丁用而不疑
    열(說)은 부암(傅巖)에서 길을 닦더니 무정(武丁)이 기용하고 의심치 않았다.
    呂望之鼓刀兮 遭周文而得擧
    여망(呂望; 주나라의 삼공)은 식칼을 든 백정(白丁)이었지만 주문왕을 만나서 일어섰다.
    甯戚之謳歌兮 齊桓聞以該輔
    영척(甯戚; 제나라 상경)은 소를 치며 노래를 불렀는데 제환공이 듣고 보좌(輔佐)로 삼았다.
    及年歲之未晏兮 時亦猶其未央
    나이가 더 들기 전에 세월이 더 늦어지기 전에 해야지!’

    恐鵜鴂之先鳴兮 使夫百草爲之不芳
    때까치가 먼저 울까 두려워하는 이유는 온갖 꽃들이 말라붙어 향기를 내지 않을까 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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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무함(巫咸) : 상나라 태무제 중종(中宗)의 대신으로 별의 위치와 모습을 보고 점을 쳤다.

      지금의 강소성 소주시(蘇州市) 오(吳) 출신이다. 태무제 때 나라의 정치가 불안하여 제후들이 명을 따르지 않았다. 이척(伊陟)과 함께 태무제를 보좌하여 상나라의 정치를 일신시키자 제후들의 다시 귀의해왔다. 천문과 산술에 밝은 무함이 별을 관측하여 많은 별에 이름을 붙였다. 저서에 성경(星經)이 있었으나 일실되고 『무함성명(巫咸星名)』이라는 책은 지금까지 전한다. 지금의 강소성 상숙시(常熟市) 우산(虞山)에 아들 무현(巫賢)과 함께 무덤이 있다.

    2. 구억산(九嶷山) : 지금의 호남성 남쪽 경계에 있는 창오산(蒼梧山)으로 순임금이 순수나갔다가 죽어 묻힌 곳이다. 하늘의 신령들이 초(楚)나라 땅에 내려오니 그 곳 명산의 신령들이 마중을 한다는 뜻이다.
    3. 지(摯)와 구요(咎繇) : 지(摯)는 은(殷)나라의 시조 탕왕(湯王) 의 신하로 이름은 이윤(伊尹)이고. 구요(咎繇)는 하(夏)나라 시조 우왕(禹王)의 신하다.
    4. 열(說) : 부열(傅說)을 말한다.

      하나라의 무정제(武丁帝)가 즉위하여 쇠락해진 은나라를 부흥시키려고 하였으나 자신을 보좌해줄 사람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3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정사는 총재(冢宰)에게 맡겨놓고 나라의 기풍을 유심히 살폈다. 무정제가 꿈속에서 성인을 만났는데 그 이름을 열(說)이라고 했다. 무정제는 꿈에서 본 열의 모습을 대신과 관리들 속에서 찾았으나 발견할 수 없었다. 이에 백관들에게 나라 밖에서 찾아보게 했는데 드디어 부험(傅險)이란 곳에서 열을 찾아냈다. 열은 죄를 짓고 노역에 끌려 나가 부험에서 길을 닦고 있었다. 무정제가 보고 “ 바로 이 사람이 내가 꿈속에서 본 사람이다.” 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와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과연 성인이었다. 이에 열을 등용하여 재상으로 삼으니 은나라는 훌륭히 다스려졌다. 무정제는 열을 부험이라는 곳에서 찾았다하여 그를 부열(傅說)이라고 불렀다.

    5. 여망(呂望) : 주문왕(周文王)에게 등용된 후에 문왕의 뒤를 이어 서백의 자리에 오른 무왕(武王)이 은(殷)나라의 폭군 주(紂)를 쳐서 주(周)나라를 세울 때 종군하여 큰공을 세워 주나라의 창업공신인 삼공의 한 사람이 되었다.

      삼공은 제나라에 봉해전 태공 여망, 노(魯)나라에 봉해진 주공(周公) 희단(姬旦), 연(燕)나라에 봉해진 소공(召公) 희석(姬奭)이다. 여망은 이름이고 강태공(姜太公), 태공망(太公望)이라는 호칭을 갖고 있다.

    6. 영척(甯戚) : 기원전 7세기 경 춘추시대(春秋時代) 위(衛)나라 사람으로 집이 가난하여 짐수레를 끌며 입에 풀칠을 하다가 제(齊)나라로 가서 소를 기르며 소뿔을 두드리며 노래하자 이를 기이하게 여긴 제환공(齊桓公)이 재상 관중(管仲)에게 명하여 맞아들이도록 한 후에 상경(上卿)의 벼슬을 주었다.
    7. 제결(鵜鴂) : 때까치다.

      때까치가 우는 계절은 여름(음력 5월) 또는 가을(음력 7월)이라 하는데 추분(秋分) 전에 때까치가 울면 초목(草木)이 모두 시든다고 했다.


    十三
    何瓊佩之偃蹇兮 衆薆然而蔽之
    내 옥노리개는 예쁘고 고운데 뭇 사람들이 감추고는 숨기려고 한다.
    惟此黨人之不諒兮 恐嫉妬而折之
    저 믿지 못할 무리들이 시샘하며 부러뜨릴까 두렵다.
    時繽紛其變易兮 又何可以淹留
    세월은 어지럽게 변해 가는데 어찌 또 머물겠는가?
    蘭芷變而不芳兮 荃蕙化而爲茅
    란초(蘭草)와 어수리는 변하여 향내 안 나고 분꽃과 혜초(蕙草)는 변하여 억새풀이 되었다.
    何昔日之芳草兮 今直爲此蕭艾也
    옛날에 향기롭던 그 풀들이 어찌하여 지금은 쑥덤불이 되었는가?
    豈其有他故兮 莫好脩之害也
    그 이유는 다른 데 있음이 아니라 결백을 좋아해서 해꼬지를 당해서다.
    余以蘭爲可恃兮 羌無實而容長
    나는 난초(蘭草)를 굳게 믿었었는데 실하지는 못하고 덩치만 크다.
    委厥美以從俗兮 苟得列乎衆芳
    아름다움을 버리고 시속(時俗)을 쫓아 많은 꽃들 가운데 슬그머니 끼었다.
    椒傳佞以慢慆兮 樧又欲充夫佩幃 旣干進而務入兮 又何芳之能祗
    산초나무는 아첨만 알았지 절제가 없고 수유나무 또한 향낭(香囊)이나 채우고는 등용되길 바라고 노력했으니 향내 따위야 어찌 아랑곳하겠는가?
    固時俗之流從兮 又孰能無變化
    원래 시속(時俗)은 유행 따라 가는데 누가 또한 변하지 않겠는가?
    覽椒蘭其若玆兮 又況揭車與江離
    산초나무, 란초(蘭草)조차도 이러한데 게거(揭車)나 천궁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惟玆佩之可貴兮 委厥美而歷玆
    이 노리개는 몹시 귀하나 아름다움을 버렸기 때문이다.
    芳菲菲而難虧兮 芬至今猶未沫
    향기는 옅고 얇으나 지지 않으니 지금도 그 냄새는 없어지지 않았다.
    和調度以自娛兮 聊浮遊而求女
    도량을 넓혀서 스스로를 즐기며 허공에 떠돌아다니며 미녀(美女)만을 구한다.
    及余飾之方壯兮 周流觀乎上下
    내가 꾸민 꽃다발이 향기를 뿜어낼 때 천상과 천하를 두루 돌아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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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전혜화이위모(荃蕙化而爲茅) : 전(荃)은 분꽃으로 향초이고 모(茅)는 억새풀로 향기가 없는 풀이다. 잘못된 정치로 악화된 민심을 향기로운 분꽃이 향기 없는 억새풀로 변한 일에다 비유했다.
    2. 살(樧) : 수유나무로 혹은 쉬나무라고도 한다. 낮은 산지에서 자라며 크기는 약 10∼20m이다. 꽃은 8월에 피고 흰빛이 돌며 산방상 원추꽃차례에 달린다. 꽃이삭에 털이 빽빽이 난다. 열매는 삭과로 10월에 붉은색으로 익는데, 둥글며 끝이 뾰족하다. 종자는 검고 타원형이다. 종자는 기름을 짜서 해충구제·등유로 이용하였고 새의 먹이로도 사용한다. 관상 가치가 있으며 밀원식물로도 좋고 목재는 기구재나 건축재로 사용한다. 분포지는 한국과 중국 등지다.
    3. 우황게거여강리(又況揭車與江離) : 게거(揭車)나 천궁(江離)은 향기로운 풀이지만 산초나무나 난초(蘭草)에 비하면 그만 못하다. 위의 구절은 굴평(屈平)이 즐겨 찾는 풀에 비해 향기가 부족하다는 뜻으로, 전에는 동지였던 주변의 변절자들을 풍자했다.

    十四
    靈氛旣告余以吉占兮 歷吉日乎吾將行
    영분(靈氛)이 이미 나에게 길점(吉占)을 일러주었으니 길일(吉日)을 택하여 길을 떠난다.
    折瓊枝以爲羞兮 精瓊爢以爲粻
    옥가지를 꺾어서 반찬을 삼고 옥열매를 찧어서 양식을 삼는다.
    爲余駕飛龍兮 雜瑤象以爲車
    나를 위하여 비룡(飛龍)을 부려주오. 옥돌과 상아로 수레를 꾸며주오.
    何離心之可同兮 吾將遠逝以自疏
    떠나간 마음이야 어찌 어울릴 수 있겠는가? 내 이제 멀리 떠나 스스로 피하리.

    邅吾道夫崑崙兮 路脩遠以周流
    내가 가는 길은 저 곤륜산(崑崙山)을 돌아서 돌고 돌아 아득히 머나 먼 길이다.
    揚雲霓之晻藹兮 鳴玉鸞之啾啾
    구름 무지개 깃발 올려 햇빛을 가리고 옥란(玉鸞)의 방울소리 시끄럽게 울리며
    朝發軔於天津兮 夕余至乎西極
    아침에 은하수를 출발해서 저녁에 서극(西極)에 닿았다.

    鳳凰翼其承旂兮 高翶翔之翼翼
    봉황(鳳凰)은 공손히 깃발을 받쳐들고 훨훨 높이 날아 가지런히 뒤를 따른다.
    忽吾行此流沙兮 遵赤水而容與
    홀연히 사막을 지나서 적수(赤水; 오색강의 하나)를 쫓아 조용히 노닐다가
    麾蛟龍使梁津兮 詔西皇使涉予
    교룡(蛟龍)을 불러 다리를 놓게 하고 서황(西皇 오제중 소호(少皥 ))의 안내로 강을 건넜다.

    路脩遠以多艱兮 騰衆車使徑待
    길은 멀고멀어 고생이 많겠기에 따르는 수레들을 지름길로 보내며
    路不周以左轉兮 指西海以爲期
    왼편으로 부주산(不周山; 곤륜산 근처의 전설의 산 )을 돌아 서해(西海)에서 만나기로 기약했다.

    屯余車其千乘兮 齊玉軑而並馳
    천 대나 되는 수레들은 줄을 대어 이어서 옥바퀴도 나란히 잘도 달렸다.
    駕八龍之婉婉兮 載雲旗之委蛇
    굴레 멘 팔용(八龍)이 말을 잘 들어 꽂아 논 구름깃발을 펄럭이며 달린다.
    抑志而弭節兮 神高馳之邈邈
    뜻을 억눌러 천천히 가려해도 넋은 막막한 곳으로 높이 달려만 간다.
    秦九歌而舞韶兮 聊假日以愉樂
    구가(九歌)를 노래하고 구소(九韶)를 춤추며 애오라지 한가한 날을 즐겨본다.

    陟陞皇之赫戱兮 忽臨睨夫舊鄕
    밝은 해가 빛나는 하늘로 날라 오르는데 홀연히 옛 고향이 내려다보인다.
    僕夫悲余馬懷兮 蜷局顧而不行
    마부도 슬퍼하고 말도 그립다 하여 머뭇머뭇 돌아보며 나아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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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란(鸞)은 수레의 횡목(橫木)에 다는 방울이다. 여기서는 란새의 울음소리를 대용으로 삼았다. 란은 봉황(鳳凰) 새의 일종이다.
    2. . 적수(赤水) : 곤륜산(崑崙山)에서 흘러내리는 오색 강의 하나로 남해(南海)로 빠져나간다.
    3. 서황(西皇) : 오제(五帝)의 한 명으로 소호(少皥)의 별칭이다. 소호는 금 (金)씨로 오행설(五行說)에 의하면 금(金)은 서방(西方)에 해당된다.
    4. 부주산(不周山) : 곤륜산(崑崙山)의 서북쪽에 있는 신화상의 산이다.

      물의 신 공공(共工)과 불의 신 축융(祝融) 간에 시비가 붙어 싸움이 벌어져 싸움에 진 공공은 제 성질을 못 참아 부주산(不周山)에 박치기 했다. 그로 인해 땅이 기울어져 난리가 났다. 물이 들끓어 홍수가 나고, 덩달아 흥분한 괴수들이 사람들을 해쳤다. 사람을 만든 여와가 분주히 물을 퍼내어 인명을 구출하는 한편 괴수를 퇴치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고장난 하늘 구멍에 오색 돌을 갈아 메워서 고치고, 기울어진 땅을 바로잡기 위해 바다에 사는 거북이에게 네 다리를 얻어 그것으로 사방의 땅을 고여 바로잡았다. 그러나 서두르는 바람에 중국의 서북쪽은 높고 동남쪽은 우묵하게 낮은 이유가 되었다.

    5. 구가(九歌)는 우(禹)임금 때의 음악이고 구소(九韶)는 순(舜)임금 때의 음악(音樂)이다. 훌륭한 음악이라는 의미다.
    6. 복부비여마회혜(僕夫悲余馬懷兮) : 마부(馬夫)와 말을 들어서 자기의 심정(心情)을 토로했다. 조국(祖國)과 인간세계를 차마 떠날 수가 없었던 굴평의 심정이다.

    十五
    亂曰
    노래 끝에 이르기를
    已矣哉國無人莫我知兮 又何懷乎故都
    나라에 사람 없어 나를 알아주지 않는데 어찌 또 고향을 그리워하랴?
    旣莫足與爲美政兮 吾將從彭咸之所居
    아름다운 정치를 함께 할 수 없으니 이제 나는 팽함(彭咸)이 사는 곳으로 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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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란(亂) : 끝 노래. 시가의 대요(大要)를 말하고 끝을 맺는 노래.


    이시는 굴원이 쓴 시중에서 가장 긴 시로 375구 2500자에 달하는 대 서사시이다. 보통 부(賦)라고 불리는 것들이 굉장히 긴데, 아마 이렇게 구구절절 쓰는 형태가 갖춰진건 굴원 이전인것 같다. 이 부로 유명한 분들이 위나라의 조씨 삼부자.. 이소(離騷)라는 뜻은 한자만 보자면 근심을 만난다는 뜻이지만, 요즘 사용되는 가장 대중적인 뜻으로 해석하면 이별 할때 이(離)에 소란스럽다 할때 소(騷)다, 소란스러움을 떠난다는 뜻도 가능하다. 굴원이 처음으로 한수 북방으로 귀양 갔을때 지은 것이라고 많이 알려져 있다.

    사마천 역시 사기에서 굴원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중에 이소를 가장 걸작으로 뽑았다. 미인을 읊지만 음탕하지 않고, 원망과 비난을 담았지만 반란의 내용이 아니며, 굴원의 결말이 충절을 지켜 팽함과 같은 결말을 맞이 했다는 점에서 당시 유학자들에게 굴원은 선망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이소는 선지식으로 알아야 하는 것이 많은데 일단 구가와 그밖에 기본 고대 역사를 알아야 한다. 사용되는 글자중 장자나 노자에서 나오는 구절도 보이며 나오는 신들의 이름과 지역은 산해경에서 본적이 있는 익숙한 이름들이다. 중국의 신화는 조선이 망하기 전까지 주류의 신화였기 때문에 한국문화에 잔재가 많이 남아 있다. 근데 뭐 거의 천년 이천년이 넘은 잔재(?)이기 때문에 이걸 더이상 중국에서 왔다고 해야하나 싶긴하다.


    제목이「근심을 떠나다.」이나 역자에 따라서는 「애타는 걱정에 걸리다, 근심에 걸리다. 애타는 호소」 또는「불평불만(不平不滿)」이라고도 하는데 보통은 「애타는 호소」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굴원(屈原)이 첫 번째로 한수(漢水) 북방으로 귀양갔을 때에 지은 작품으로 여겨진다. 낭만주의 시가 중에서 가장 걸작으로 꼽히는 이 작품은 굴원의 대표작으로 모두 375구 2500 자에 달하는 중국의 고대 서정시 가운데 제일 긴 작품이다. 굴평의 위대한 인격과 고결한 감정이 잘 묘사되어 있다.

    사마천『사기(史記)』 중 『굴원가생열전(屈原賈生列傳)』에서 『이소(離騷)』에 대한 평 보기
    屈平疾王聽之不聰也, 讒陷之蔽明也, 邪曲之害公也, 方正之下不容也, 故懮愁幽思而作 ⟨離騷⟩. ⟨離騷⟩者, 猶離懮也. 夫天者, 人之始也; 父母者, 人之本也. 人窮則反本, 故勞苦倦極, 未嘗不呼天也; 疾痛慘怛, 未嘗不呼父母也. 屈平正道直行, 竭忠盡智以事其君, 讒人間之, 可謂窮矣, 信而見疑忠而被謗, 能無怨乎? 屈平之作 離騷, 盖自怨生也. ⟨國風⟩好色而不淫. ⟨小雅⟩怨誹而不亂, 若⟨離騷⟩者, 可謂兼之矣.

    『이소(離騷)』는 근심스러운 일을 만났다는 뜻이다. 대저 하늘은 사람의 시초이며, 부모는 사람의 근본이다. 사람이 궁지에 이르면 근본을 돌이켜보는 까닭에 힘들고 피곤할 때에 하늘을 찾지 않을 수 없으며, 질병으로 고통스럽고 참담해지면 부모를 찾지 않을 수 없다.
    굴원은 올바른 도리를 곧게 실천하여 충성을 다 바치고 지혜를 다 발휘하여 그 임금을 섬겼는데, 도리어 군주와의 사이가 이간질 당하여 궁지에 처하게 되었다. 신의를 지켰으나 의심을 받았고, 충성을 바쳤으나 비방을 당하니, 어찌 원망스럽지 않겠는가? 굴원이 지은 『이소(離騷)』는 본디 이런 원망으로부터 이루어진 시가다.

    『국풍(國風)』은 미인을 읊으면서도 음탕하지 않았고, 『소아(小雅)』는 원망과 비난을 담고 있으나 반란의 내용이 아니었다. 그러나『이소(離騷)』는 그 두 가지를 다 겸했다. 위로는 제곡(帝嚳)을 칭송하고 아래로는 제환공(齊桓公)을 말하고 있으며 그 중간에는 상탕(商湯)과 주무왕(周武王)에 대해 기술하여 그것으로써 세상일을 풍자했다.
    도덕의 넓고 높음과 나라의 흥망성쇠의 인과관계를 밝혀 모두 자세히 드러나게 했다. 문장은 간략하나 자세하고, 정신은 정결하며 행동은 청아하다. 문장은 비록 작은 것까지 세세하게 묘사했으나 뜻하는 바는 지극히 크고 깊으며 예로 든 것은 모두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지만 의미하는 바는 심오하다.

    그의 정신은 고결했음으로 그는 즐겨 그 자신을 향초(香草)로 비유했다. 그는 올곧은 삶을 살았기에 죽어서도 소인배들에게 용납되지 않았다. 몸은 진흙 구덩이 속에 있으나 마치 매미가 더러운 오물 속에서 허물을 벗어 새로운 몸으로 태어나듯이 세속의 먼지구덩이 밖으로 헤엄쳐 나와 더러운 세상의 떼에 물들지 않았다. 그는 청백하고 고결하여 진흙 속에 있어도 결코 물들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에 그의 지조를 추측해 본다면 그는 해와 달과도 빛을 다투는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다.

    『왕은 한쪽 말만 듣고 시비를 가리지 못하고, 아첨하는 무리들은 왕의 총명을 가로막고, 사악하고 비뚤어진 무리는 공명정대한 사람을 해치고, 단정하고 정직한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는 세태를 굴원은 애통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우수와 근심으로 인하여 『이소(離騷)』를 썼다. 『이소(離騷)』는 ‘근심스러운 일을 만났다.’는 말이다.』 -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