長歌行
장가행 작자미상
푸르고 푸른 채마밭의 아욱 아침 해에 이슬 스러진다.
따뜻한 봄의 은택을 입어 만물은 생기가 넘치고
늘상 걱정하는 가을이 되면 빛나는 국화잎도 시든다.
백천도 동쪽으로 흘러 바다에 이르는데 나는 언제나 다시 서쪽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젊고 혈기 왕성할 때 힘써 일하지 않으면 늙어서는 헛된 삶을 슬퍼하리라!
흰 사슴을 타고 가는 신선 머리는 짧지만 귀는 어찌 그렇게 긴가?
우리를 인도하여 태화산으로 올라 영지버섯을 꺾고 적동을 얻었다.
주인집 대문에 당도해서 선약이 든 옥상자를 바쳤다.
주인께서 이 선약을 복용하면 신체는 날로 강건해지며
흰머리는 다시 검게 변하여 만수무강 하시리
높디 높은 산꼭대기의 정자에 구름 사이로 빛나는 별들
멀리서 바라보니 마음이 슬퍼진다. 나그네가 되어 부모님 생각에
수레를 몰고 북문을 나가 멀리서 낙양성을 바라본다.
남풍은 가시나무를 흔들고 어린 나뭇가지의 이파리가 흩날린다.
꾀꼬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날다가 꾀꼴 꾀꼴 희롱하면서 울어대고
서쪽으로 흐르는 강물을 망연히 바라보며 흐르는 눈물 갓끝을 적신다.
더보기
봄에 만물이 소생하고 아름다운 꽃이 피듯이 사람도 모름지기 한창 때에 즐기고 살아야 하고, 자칫 주저하다가 좋은 때가 다 가버리면 후회하게 된다고 하였다. 명성이나 부귀는 물론 장생불사를 추구하는 것까지도 부정하며 극도의 급시행락(及時行樂)을 주장하지만 그 이면에는 자신의 불우한 인생에 대한 비애를 담았다.
이 시는 곽무천(郭茂倩)의《악부시집》의 《상화가사(相和歌辭)·상화곡(相和曲)》에 실려있는 악부고제(樂府古題)다. 「《고시(古詩)》에서는 ‘장가 진정으로 격렬하네[長歌正激烈(장가정격렬)]이라 했고, 위문제(魏文帝)는 그의 《연가행(燕歌行)》에서 ’단가의 은미한 읊조림 길게 할 수 없구나![短歌微吟不可長(단가미음불가장)]라고 노래 불렀다. 또 서진(西晉)의 부현(傅玄)은 《염가행(艶歌行)에서 ‘문득 장가에다 단가를 잇는다[咄來長歌續短歌(돌래장가속단가)]라고 했다.」따라서 장가행이나 단가행은 노래의 길고 짧음을 의미하지 사람 수명의 장단을 뜻하지 않는다. 출처
상화(相和)란 앞 사람의 선창에 노래 혹은 악기 연주로 화답하는 노래 방식을 일컫는다. 이때는 현악기나 관악기가 사용된다. 상화가사(相和歌辭)는 상화라는 형식으로 가창되는 한대의 민간 가곡인데, 악부 기관에 채집되어 전해지게 되었다.
따라서 상화가사에는 한대 사회의 생활상과 의식 형태가 반영되어 있다. 위(魏)에 와서 조씨 삼부자[조조(曹操), 조비(曹丕), 조식(曺植)]가 애창해 직접 가사를 짓거나 개작해서 궁정 연악으로 사용하면서 점차 경전화(經典化)ㆍ귀족화되었다. 후대의 많은 문인이 상화가사에 대한 모의작을 많이 남겼다. ≪악부시집≫에는 18권이 전해진다. 출처
- 곤황(昆熿) : 꽃잎이나 이파리가 시들어 누렇게 됨.
- 태화(太華):섬서성 동단의 화산(華山)으로 오악 중 서악이다. 지금의 섬서성 화음현(華陰縣) 남쪽에 있는데 그 서쪽에 있는 소화산(少華山)과 구분하기 위해 태화(太華)라고 부른다.
- 람지(攬芝)는 ‘영지(靈芝)를 채취하다’는 뜻이고 적동(적동(赤幢)은배와 수레 위에 걸린 붉은 휘장으로 무지개를 비유했다.
- 초초(岧岧):(산과 같은 것이) 높은 모양.
- 개풍(凱風):부드럽고 따뜻한 바람으로 남풍이다. 《시경·패풍(邶風)·개풍(凱風》에「凱風自南(개풍자남)/산들바람 남쪽으로부터 불어와, 吹彼棘心(취피극심)/가시나무 새싹을 어루만지네」 라고 했다.
- 요요(夭夭):《시경·주남(周南)·도요(桃夭)》에 「桃之夭夭(도지요요)/싱싱하고 파릇한 복숭아나무, 灼灼其華(작작기화)/그 꽃이 활짝 피었네」라고 노래했는데 요요는 나무가 어리고 싱싱함을 뜻한다. 즉 혼기가 차서 복숭아꽃처럼 활짝 핀 처녀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 황조(黃鳥):속명으로 황리류(黃離留) 혹은 박서(搏黍)라고도 하는데 황앵(黃鶯) 즉 꾀꼬리다.
- 교교(咬咬):교교(交交)로 새가 우는 소리다. 《시경·진풍(秦風)·황조(黃鳥)》「交交黃鳥 止于棘(교교황조 지우극)/꾀꼴꾀꼴 꾀꼬리, 가시나무에 앉았네」라고 했다.
長歌行 曹植
장가행 조식
먹물은 푸른 소나무 연기에서 나오고, 붓은 교모한 토끼의 털로 만들어지네.
옛사람들은 새 발자국에 느낀 바 있어, 문자 모양이 바뀌게 되었네.
잔구(殘句) 한자 되는 진사도 움츠렸다 펼줄 아는데 도를 체득하려면 곤궁과 열달을 알아야하네.
長歌行 李白
장가행 이백
복사꽃 오얏꽃, 햇빛 따라 피어나 화려한 자태 제철 만나 빛난다.
봄바람이 만물을 흔들어 풀과 나무 모두가 무슨 말을 하려는 듯
마른 가지엔 시든 잎 없고 마른 샘도 맑은 물 뿜어낸다.
큰 힘이 온 천지를 움직이는 건 희화(羲和)가 채찍질을 멈추지 않아서지.
공명(功名)을 일찌감치 드러내지 못했으니 죽백(竹帛)일랑 장차 무엇에 쓰겠나.
도리(桃李)는 푸른 봄에 부지런히 꽃피우니 그 누가 해의 걸음 멈출 수 있으리.
부귀와 신선 우물쭈물하다가는 둘 다 놓치리.
쇠와 돌도 닳고 녹아져 흐르는 세월에 견디는 것 없네.
해와 달의 걸음에 뒤처질세라 애써 노래하고 술을 즐기네.
가을 서리는 인정도 없이 어느 틈에 포류(蒲柳) 같이 여린 몸에 엄습하노니.
동명의 드라마 때문에 검색 난이도가 너무 올라갔다. 모아둔 시가에 설명같은 것을 여기저기 찾아보니 조식과 이백 말고도 여러시대의 시인들이 같은 제목으로 많은 시를 남겼다. 그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단연 이백의 장가행으로 달과 술의 시인이라는 이미지에 걸맞게 달얘기와 술얘기가 나온다. 원작과는 조금 방향성이 다른것 같은 것이 인생의 무상함과 흘러가는 세월을 멈출 수 없음을 노래한것 같다. 뭐 아닐수도 있다 나는 알못이니깤ㅋ
조식의 장가행은 별로 유명하지는 않지만 시가의 첫줄에 나오는 송연묵의 생성 시기를 유추할수 있는 사료 정도의 위치이다. 조식은 장가행의 가장 유명한 구절인 '少壯不勞力 老大徒傷悲' 젊어서 노력하지 않으며 늙어서 고생한다는 내용이 주제이다. 뭔가 시가에서 느껴지는 희망과 포부가 보이는 것으로 보아 조비와의 패권 싸움으로 도성에서 쫒겨나기 전에 쓴것 같다. 정확하지는 않다.
찾아보기 전에는 장가행이라고 하기에 인생의 기나김을 노래하나 했는데, 딱히 그런 뜻은 아니고 당시에 민간에서 유행하던 노래의 한 형태라고 한다. 뉴에이지나 클래식처럼 하나의 음악 장르의 이름인 것이다. 선창하는 노래에 답가를 하는 방식이라고 하니 아마 누군가 첫부분을 부르면 그 다음에 뒷부분을 부르는 형식인것 같다. 첫부분이 젊어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어떡하느냐 라고 물으면 다음 부분에서 고달픈 인생의 슬픔을 노래한다. 사람 사는 세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것일까?
0 comments: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