蛇苺 第8

反客爲主 | 8. 손님이 도리어 주인 노릇을 한다.

주요는 부유각에 고상을 남겨두고 혼자 백택으로 돌아갔다. 고상은 주자서 옆에 붙어서 계속 그에게 말했다.
“유서. 꼭 나를 보러 와야 해. 나를 잊으면 안돼.”
주자서는 고상의 말에 몇 번이나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지만 그것이 주자서의 뜻대로 될 리 없다는 것을 어느 정도 자각하고 있었다.

고상은 주자서의 손을 잡고 태평호를 보고 있던 온객행에게 가서 말했다.
“온객행. 우리 유서는 하루에 세 번 밥을 먹어야 하고, 적어도 두 시진은 따뜻한 곳에서 재워야 해. 세 시진 넘게 자는 것을 제일 좋아해. 사나흘에 한번은 씻겨줘야 하고, 살이 연해서 잘 찢어지니까 조심해야 해. 또… 또….”
주자서가 얼굴이 빨개져서 고상을 보고 말했다.
“아상….”
고상이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우리 유서는 단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까…. 아직 내상이 다 낫지 않았으니까 술도 안돼.”

주자서는 고상이 언제 자신의 기호(嗜好)를 눈치챘을까 싶었다. 태평호에서 정신을 놓고 지낸 날을 빼고도 벌써 열흘이 지났다. 열흘 동안 주자서도 고상에게 정이 많이 들어 있던 참이다. 정말로 가능하다면 이 일이 잘 마무리되어 그들이 말하는 주자서가 원래 있던 사람의 세상으로 돌아가 모친과 가족을 데리고 이곳에 와서 고상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기연(奇緣)으로 맺어진 천륜으로 모친이 두 분이 되었다.

온객행이 주자서에 대해 계속해서 말하는 고상을 보고 작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정말 그를 데리고 가는 것이 맞는 걸까? 오히려 더 위험한 일은 아닐까?”
고상은 하던 말을 멈추고 온객행을 보며 말했다.
“내가 약세일 때는 지형을 이용하여 잠복했다가 길목에서 적을 치는 거야. 내가 힘이 없으면 힘 있는 자의 원조를 얻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어.”(2)
고상의 말에 온객행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백택에 병서(兵書)가 있었나?”

고상이 주자서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유서가 알려줬어. 유서는 재미있는 얘기를 많이 알아.”
온객행이 주자서를 힐끔 보았다. 주자서는 고상이 저를 부르는 소리에 고상을 마주 보고 웃었다. 고상이 말을 이었다.
“탁음대선께서는 아주 좋은 원군(援軍)이야.”
고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온객행을 보았다. 온객행은 두 사람을 보고 피식 웃고 다시 시선을 태평호로 던졌다. 동쪽 끝이 어슴푸레하게 밝아 온다. 입이 가벼운 지네가 일어나기 전에 서둘러 떠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온객행은 갑판으로 나와 주자서가 내실에서 나오기를 기다렸다. 내실에서 고상이 분주하게 이것저것 챙겨서 봇짐을 쌌다. 온객행이 입는 옷가지 몇 개와 노잣돈으로 쓸 수 있는 패옥(佩玉) 몇 개, 며칠 전에 함께 연잎에 싸서 쪘던 떡에 대나무로 만든 수통도 챙겼다. 곧 내실 안으로 주요가 작은 상자를 들고 들어왔다. 고상과 주자서가 다가가자 주요가 상자를 열어 보여주며 말했다. 상자 안에는 작은 옥비녀가 들어 있었다.

주요는 주자서를 의자에 앉히고 머리에 꽂았던 고상의 꽃 비녀를 빼내고 옥비녀로 그의 머리를 고정하며 말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이 비녀를 부러뜨려라. 그렇게 하면 내가 바로 알 수 있다.”
고상은 주요가 건넨 꽃 비녀를 손에 들고 있다가 주자서의 손에 쥐여 주며 말했다.
“이것도 가져가. 나를 잊으면 안돼. 우리 아가.”
그리고 주자서를 와락 끌어안았다. 주자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상을 마주 안아주며 말했다.
“주인, 아상. 걱정 마세요.”

밖으로 나오자 온객행이 해가 뜨는 것을 보고 있다 고개를 돌려 말했다.
“사내는 싫으시다고 하셔 놓고는….”
주요가 주자서의 소매를 잡아 끌어 온객행 옆으로 밀며 말했다.
“너는 사내지만 발(妭)의 후손이니까.”
고상이 주자서의 팔을 잡고 늘어지며 말했다.
“유서. 내 아가. 꼭 다시 와야 해. 나를 보러 와야 해.”
온객행이 고상을 보고 작게 한숨 쉬고 말했다.
“나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사람의 일을 어찌 알 수 있겠어.”
온객행이 봇짐을 끌어안고 갑판에 서 있는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노력해볼게.”

고상이 주자서의 팔을 놓고 온객행의 양손을 잡으며 말했다.
“온객행. 우리 유서를 잘 부탁해요. 유서는 다정해서 잘 속으니까 잘 돌보아 줘야 해요.”
온객행이 주자서 옆에 붙어 서서 주자서를 보고 되물었다.
“그래?”
고상이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유서. 흑망공자 말 잘 들어. 좀 괴팍해도 아주 못돼진 않았어.”
고상의 말에 주요가 소매를 가리고 웃었다. 온객행이 고상을 쏘아보며 말했다.
“아상. 나에게 부탁하는 중이라는 것을 잊었어?”
고상이 축 늘어진 눈썹을 어쩌지 못하고 입만 당겨 웃으며 말했다.
“에이, 파사! 잘 부탁해요. 파사는 꼭 다시 돌아올 거잖아요. 그렇지?”
온객행이 부스스 웃으며 고상의 어깨를 토닥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주요가 온객행에게 물었다.
“물길로 가는가?”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주자서의 허리를 안았다. 주자서가 당황하여 온객행의 얼굴을 보았다. 온객행이 태평호로 발을 내딛고 말했다.
“이건 뭐 혹이 아니라 상전이네.”
고상도 태평호 물속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기회가 되면 꼭 기별(奇別)해.”
온객행은 한동안 태평호 물 위를 걷다가 물 안으로 들어갔다.


주자서는 몸이 잠기자 눈을 꼭 감고 허리에 두른 온객행의 팔을 꼭 잡았다. 온객행은 낮은 목소리로 웃더니 ‘첨벙’하고 물 안으로 들어갔다. 숨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정도가 됐을 때 주자서는 자신의 몸에서 손을 떼는 온객행의 손을 붙잡았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몸을 일으켜 세우고 말했다.
“이제 눈을 뜨셔도 됩니다.”
숨을 크게 들이 쉰 주자서가 눈을 떴다.

주자서는 조금은 어둑어둑한 동굴에 서 있었다. 온객행이 몸을 부르르 떨며 몸을 붙여오는 주자서에게서 손을 떼고 그의 몸에 있는 물을 영력으로 날려 주었다. 주자서를 요리조리 돌려보고 다친 곳이 없는지 살핀 온객행이 앞서 걷자 주자서가 온객행의 소매를 잡고 따라 걸었다. 한참 걷던 주자서가 물었다.
“여기는 어디 입니까?”
온객행이 잡힌 소매를 힐끔 보고 대답했다.
“물길.”

주자서가 어색하게 웃으며 온객행의 소매를 놓고 말했다.
“물길?”
온객행이 주자서의 어깨에 팔을 둘러 발 맞춰 걸으며 말했다.
“원래는 사람이 다닐 수 없는 길이나 급히 가야 하니 잠시 해화상(海和尙)의 길을 빌리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일단 동정호(洞庭湖)까지 조용히 갑시다.”
주자서는 고개를 끄덕이고 열심히 걸었다.

그러다 문득 궁금이 일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파양호(鄱陽湖)가 아니라 동정호까지 갑니까?”
온객행이 대답 없이 조금 걷다가 말했다.
“동정호까지는 너무 지나칠까요?”
주자서가 말했다.
“파양호 까지도 말을 달려 하루는 가야 하는데 걸어가면….”
온객행이 작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그렇군요. 일단 갈 수 있는데 까지 가봅시다.”
그리고 주자서를 놓아주고 앞서 걸었다.

그들은 말없이 꽤 오래 걸었는데 온객행은 중간중간 뒤를 돌아보며 주자서가 잘 따라오는지 확인했다. 둘은 두세시진 쉬지 않고 걸었다. 온객행은 중간중간 주자서가 가지고 있는 대나무 수통에 물을 채워 주었다. 그들이 선우산(仙禹山) 근처에 도착했을 즈음 온객행이 길을 멈춰 주자서에게 연잎에 싼 떡을 먹게 했다. 바닥이 젖어 있어 어디 앉기가 곤란하여 주자서는 들고 있는 봇짐을 등에 메고 떡을 먹었다.

주자서가 떡을 다 먹은 뒤에 수통의 물을 마시고 말했다.
“오르막이 아니어서 다행입니다.”
온객행은 주자서가 하는 것을 보고 있다가 말했다.
“주자서의 군영이 멀지 않은 곳에 있소.”
주자서가 익숙해진 어둠 속에서 온객행의 얼굴을 찾으며 말했다.
“무슨 뜻입니까?”
온객행이 한참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
“딱히 사람의 세상에 있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을 것 같긴 하오.”

주자서가 봇짐 안에 수통을 넣고 말했다.
“나를 보내주겠다는 뜻입니까?”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가깝게 다가서서 그의 얼굴을 보았다. 온객행의 눈은 칠흑같이 캄캄하였으나 어둠 속에서도 보였다. 주자서는 온객행이 변했던 검은 뱀이 생각나 뒤로 물러섰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려는 주자서의 팔을 잡아 일으킨 온객행이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일단 황룡을 찾은 후에 생각해봅시다.”
그리고 주자서의 소매를 잡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주자서는 사실 조금 지쳐 있었으나 그가 길을 서두르는 듯하여 발을 맞추고 있었다. 군영에 있을 때 온종일 행군하는 일은 목적지가 뚜렷했기 때문에 염탐(廉探)이나 잠복(潛伏)을 하는 것보다 쉬웠다. 주자서는 온객행이 군영의 이야기를 해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저 검은 뱀을 따돌리고 군영으로 돌아갈 방법은 없다. 선우산 아래 군영이 아직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주자서가 태평호에 있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주자서에게 말해주지 않았으니 주자서는 답답한 마음이 울컥 치밀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등허리에 손을 올려 붙어 걸으며 말했다.
“그대는 발(妭)에 대해 얼마나 아시오?”
주자서가 말했다.
“황제(黃帝)의 자손 중에 한명이라는 것 정도 밖에 모르오.”
온객행이 물었다.
“그대의 모친에 대해 알려주시오.”
주자서는 얼굴을 구기고 온객행의 얼굴을 찾았다. 온객행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대의 모친이 발의 자손이 아니라 발 본인일 수도 있는 것 아니오.”
주자서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럴 리 없소. 모친께서는 평범한 사람이오.”
온객행이 물었다.
“혹시 비나 구름을 싫어하지는 않으시오?”

주자서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러고 보니….”
온객행이 발을 멈추고 주자서의 몸을 돌려 얼굴을 마주 보고 말했다.
“발은 태양의 신이오. 비가 많이 오는 임우(霖雨; 장마)에는 분명히 본래의 모습을 드러냈을 것이오.”
주자서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본래의 모습이라니…?”
온객행이 얼굴을 좀 더 붙이며 말했다.
“황제의 자손이니 봉황이나 응룡(鷹龍)?”
주자서의 눈동자가 조금 흔들리더니 답했다.
“모친께서는 사람이오! 비가 오는 날이면 몸이 좋지 않아 쉬시거나 밖에 잘 나오지 않으셨지만 사람이오.”
온객행이 주자서의 어깨를 더 꽉 잡으며 물었다.
“그대 부친은 누구요?”

주자서가 몸을 뒤로 빼며 고개를 흔들자 온객행이 주자서를 놓아주며 말했다.
“반역으로 이름을 사용할 수 없어서 모친의 성을 쓰는 것이오?”
주자서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그렇소! 참소(讒訴)를 당하여 멸문당하였소. 모친께서는 겨우 나와 종형제를 데리고 도망하셨지만 얼마 가지 못해 형님께서도 전장(戰場)으로 끌려가 죽었소. 이제 나도 전장에서 죽었으니….”
주자서가 헐떡이고 울먹이더니 곧 바닥에 털퍼덕 주저앉아 흐느끼기 시작했다.

온객행은 주저앉아 우는 사람을 보고 있다가 다가가서 그의 팔을 잡아 일으키며 말했다.
“옷이 젖겠소. 일어나시오.”
주자서가 온객행의 팔을 뿌리치며 말했다.
“내가 전장에 나와 있는 8년 동안은 내 모친도, 당질도 안전했소! 내가 죽었으니 이제 지학이 넘은 내 당질도 전장으로….”
주자서는 말을 잊지 못하고 양손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온객행은 고개를 돌려 작게 혀를 찼다. 성급하게 괜한 것을 물었다. 황룡에게 데려다주고 나면 온객행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인데.

온객행은 쪼그리고 앉아 주자서의 어깨에 팔을 둘러 안고 다독이며 말했다.
“미안하오. 쓸데없는 것을 물었소.”
주자서는 온객행의 어깨에 얼굴을 기대고 조금 더 울었다. 주자서의 사정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부친의 성은 무엇이었는지 이제 기억도 나지 않는다. 8년 동안 집에 서신 한 자락 보내지 못했다. 사분군(死憤君)은 전사한 장수의 자제나 형제로 원수를 갚고자 하는 이를 모아 만든 군이다. 가장 최전선에서 가장 많은 일을 하는 군이다. 주자서는 형님 때문에 사분군이 되었다. 아마 그의 당질도 주자서 때문에 사분군이 될 것이다. 주자서는 문득 생각했다. 돌아가면 도망한 죄로 가족 모두가 참형(斬刑)을 받을 테니 돌아갈 수도 없다.

주자서는 온객행이 그를 보내준다 하여도 돌아갈 수 없다. 한참 온객행을 부둥켜안고 울던 주자서가 훌쩍이며 온객행을 놓아주었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얼굴에 눈물 자국을 손가락으로 지우며 말했다.
“겁쟁이에 눈물도 많아서 정말 이름같이 솜털 같은 분입니다.”
주자서가 온객행의 말을 무시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온객행도 따라 일어서며 말했다.
“오늘은 파양호까지 갑시다.”
그리고 주자서의 등허리에 손을 올려 그를 이끌었다. 주자서는 소매로 얼굴을 닦고 봇짐에서 수통을 꺼내 물을 마시고 온객행이 이끄는 대로 다시 걷기 시작했다.


파양호에 도착하여 온객행은 주자서의 허리를 안고 물 밖으로 나왔다. 이미 해가 져서 사위(四位)가 어둡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몸에 물을 흩어주고 사람이 사는 마을을 찾아 걷기 시작했다. 파양호 근처에는 크고 작은 마을이 많아서 마을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머무를 곳을 찾는 것은 또 다른 일이었다. 온객행이 성이 보이는 쪽으로 걷기 시작하자 주자서가 온객행을 멈추고 말했다.
“성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소.”
온객행이 주자서를 보고 물었다.
“노숙(露宿)을 하겠다는 뜻이오?”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이고 방금 나왔던 물가로 돌아갔다. 판판한 돌을 찾아 봇짐을 올려놓고 주변에서 땔감을 주워 능숙하게 불을 피웠다.

온객행이 불 근처로 다가가 말했다.
“뭔가 먹어야 하지 않소?”
주자서가 바닥에 털썩 앉고 봇짐에서 수통을 꺼내 온객행에게 건네며 말했다.
“하루 이틀은 굶어도 괜찮습니다.”
온객행이 주자서가 건넨 수통에 물을 채워 돌려주고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 물고기 두 마리를 잡아 나왔다. 작은 칼로 내장을 제거하고 손질한 물고기를 주자서가 피워 놓은 불 근처에 꽂아 놓고 주자서 옆에 앉았다. 온객행이 다 구운 물고기 한 마리를 주자서에게 내밀었다. 주자서는 물고기를 받아서 먹었다. 온객행은 남은 물고기 한 마리를 들어 주자서가 하는 것처럼 먹었다. 주자서가 금방 물고기를 다 먹고 일어나 근처에서 조금 큰 나무를 가져와 모닥불에 넣었다. 잘 마르지 않았는지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온객행이 ‘콜록콜록’하고 기침을 하며 연기를 걷어내자 주자서가 그를 멈추고 말했다.
“밤에는 모기가 많아 연기가 있는 편이 낫습니다.”
온객행이 연기를 모두 흩어내고 말했다.
“작은 미물이 내 근처에 오는 일은 없을 테니 걱정 말고 어서 주무시게.”
주자서는 다시 모닥불 앞에 앉아 무릎을 안고 머리를 기댔다. 온객행이 침상에서 발견했을 때처럼 기다란 몸을 동그랗게 말아서 작고 초라하게. 그 모습이 가여워서 온객행이 그의 옆에 다가가 앉았다. 주자서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주자서의 팔을 문질렀다. 그새 잠이 들었는지 온객행의 어깨로 주자서의 머리가 ‘툭’ 닿았다. 온객행은 하늘을 올려보았다. ‘세 시진 자는 것을 제일 좋아한다 했지.’ 같은 생각을 하며 주자서의 팔을 토닥였다. 주자서는 금방 온객행에게 몸을 기대왔다. 그 체온이 기꺼워 온객행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온객행은 저가 웃는 줄도 모르고 하늘의 별을 헤아렸다.

주자서는 한 시진 조금 넘게 자고 부스스 일어났다. 무엇인가에 기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자마자 몸을 바로 세우고 앉았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몸을 가깝게 붙이며 말했다.
“아직 한 시진 밖에 자지 못했으니 어서 더 주무시오.”
주자서는 온객행의 팔을 뿌리치고 조금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온공자께서는 안 주무십니까?”
온객행이 팔을 치우며 말했다.
“아주 덥거나 아주 춥지 않으면 잠이 잘 오지 않아서요.”
주자서는 태평호에 있을 때 온객행과 한 침상에서 잔 것이 떠올라 온객행을 의아하게 보았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빤히 보며 말했다.
“아상이 세 시진은 재워야 한다고 했는데….”
주자서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정말 아이 취급이라도 할 셈 입니까?”
온객행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나는 아상한테 혼나고 싶지 않아요.”
주자서는 꺼져가는 불씨에 주변에 놓았던 나뭇가지 몇 개를 던져 불을 살리고 말했다.
“그만 놀리십시오.”
온객행이 낮게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동정호까지 갈 수 있겠습니까?”
주자서가 물가를 보고 말했다.
“오늘도 해화상의 길로 갑니까?”
온객행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이렇게 걸어가기에는 조금 어려울 것 같으니 배를 빌려 갑시다.”

주자서가 고개를 돌려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배를 빌리다니요?”
온객행이 주자서를 마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성안에 들어 가려고 하는데….”
주자서가 하늘을 보고 시간을 가늠하더니 말했다.
“성안으로 들어가는 문은 오경이 지나야 열립니다. 이제 막 오경이 시작된 것 같은데 아닙니까?”
온객행이 하늘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모닥불 앞에 앉았다. 주자서를 보더니 말했다.
“뭘 더 드시겠소?”
주자서가 작게 고개를 흔들었다.

온객행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혹시 성이 난 것은 아니지요? 제가 미안하다 하지 않았습니까?”
주자서가 온객행을 쏘아보며 말했다.
“아닙니다. 감히 제가 어찌 흑망공자께 성을 낸다는 말입니까?”
온객행의 얼굴이 조금 굳어지고 둘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온객행이 작게 기침을 해서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그대도… 그대도 나의 못난 얼굴을 보았으니 비긴 셈 칩시다.”

주자서는 그제야 자기 어깨에 고개를 묻고 서늘한 눈물을 흘리던 온객행이 떠올랐다. 그때는 온객행이 산만한 뱀인 줄 몰랐을 때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나는… 나는….”
주자서가 고개를 흔들고 말했다.
“내가 멋대로 말한 것이니 심려치 마시오. 말하고 싶지 않으면 말하지 않아도 괜찮소. 지금 나의 형편이 남의 사정을 돌보아 줄 여력이 없어서 말이오.”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사람은 동이 터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평진(新平鎭) 성문 쪽으로 걸으며 온객행이 불쑥 물었다.
“주공자는 정말 사내요?”
주자서가 미간을 찌푸리고 온객행을 보며 말했다.
“무슨 뜻이오?”
온객행이 주자서 옆에 붙어 서며 말했다.
“발의 능력은 어머니에게서 딸로 전승되니 그대의 모친께 여식(女息)이 없다 했으니….”
하고 주자서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주자서는 표정을 구기고 말했다.
“사내요! 사내가 아니면 어쩔 셈이오?”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참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대가 여인이면 부인으로 맞고자 하는 천신이 아주 많을 것이오.”
주자서가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온객행에게 봇짐을 던졌다.
“사내라고 하지 않았소!”
온객행이 웃으며 봇짐을 받고는 말했다.
“알았소. 알았소. 성내지 마시오. 내가 잘못했소.”
그리고 주자서의 등허리에 손을 얹고 성문 쪽으로 걸어갔다.


한 시진정도 걸어 신평진에 도착했다. 온객행은 성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주자서의 옷을 자신의 옷으로 갈아입혔다. 푸른색 장포에 하얀 요대를 매고 가져온 패옥을 달았다. 키가 크고 훤칠하여 옷태가 나는 것이 어느 귀한 집 공자같이 보인다. 온객행이 주자서가 들고 있던 봇짐을 손에 두고 ‘후’하고 숨을 불었다. 곧 검은 연기와 함께 봇짐이 사라졌다. 주자서가 당황하여 ‘아!’ 하고 탄식하자 온객행이 주자서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걱정 마시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내게 말씀하시오. 내가 꺼내 줄 테니.”

주자서가 어깨를 털어 온객행의 손을 뿌리치고 말했다.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도술이라도 쓸 참이오?”
온객행이 넓은 소매를 펄럭여 주자서에게 보여주었다. 주자서가 표정을 구기자 온객행이 소매 안에 손을 집어넣어 수통을 꺼냈다. 주자서가 미덥지 않다는 듯 고개를 흔들고 성문 쪽으로 몸을 돌려 섰다.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붙어 서서 말했다.
“걱정 마시오. 그대의 군영은 나흘 전에 후퇴하여 지금 강주(江州)에 있으니.”
주자서가 고개를 휙 돌려 온객행을 보았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팔을 잡고 성문 쪽으로 걸어갔다.

꽤 그럴듯한 옷을 입고 있는 두 사람을 문지기는 잡지 않았다. 성안으로 들어서 포구(浦口)까지 난 시장을 구경했다. 온객행은 물건들을 이것저것 둘러보며 주자서에게 용도를 물었다. 주자서는 주변을 경계하며 온객행의 소매를 잡고 그의 뒤를 따랐다. 포구에 들어서자 사람도 가게도 더 많아졌다. 주자서는 온객행의 소매가 아니라 팔을 잡고 그가 가는 대로 이리저리 휘둘렸다. 포구에 도착하여 온객행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작은 돛이 달린 배를 보고 말했다.
“내실(內室)이 없는 배는 비가 오면 불편하겠지요?”
주자서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온객행에게 바짝 다가섰다.

온객행이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아 배를 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물었다. 주자서가 온객행의 팔을 당겨 말했다.
“이보게. 어찌 사람을 놀리는가?”
온객행의 질문을 받은 사람이 ‘허허허’ 웃으며 말했다.
“공자님들께서 풍류를 즐기실 배를 찾는 것이라면 대련자호(大蓮子湖)로 가보시지요.”
주자서가 소매를 들어 공수하고 인사했다. 그 사람도 마주 인사하고 자리를 떠났다.

주자서가 온객행을 보며 말했다.
“배를 사려면 관청의 허가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저자의 물건을 사듯이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온객행이 작은 고깃배를 턱짓하며 물었다.
“저렇게 작은 조각배도 허가가 필요하오?”
주자서가 포구를 둘러보며 말했다.
“고기를 잡는 배, 물건을 실어 나르는 배, 사람을 실어 나르는 배는 나라의 허가가 없으면 물 위에 띄울 수 없습니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부유각을 꺼낼까요?”
주자서는 온객행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자서가 포구에서 물건을 나르는 사람을 붙잡아 물었다.
“혹시 배를 고치는 곳이 어디 있는지 아시오?”
그 사람이 대답했다.
“신평진에는 없고 창강(昌江)을 따라 파양현(鄱陽縣)에 가시면 그곳에 있습니다.”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이고 배를 타는 곳을 물었다. 그 사람은 손짓으로 창강의 하구를 가리켜 그곳에 있다고 대답했다. 주자서가 소매를 들어 공수하여 인사하자 그도 고개를 꾸벅 숙이고 자리를 떠났다. 두사람은 파양현으로 가는 작은 나룻배에 몸을 실었다.


(2) 태공망(太公望) 육도(六韜) 제5편 표도(豹韜) 49장 소중(少衆)
以少擊衆者, 必以日之暮, 伏以深草, 要之隘路. 以弱擊强者, 必得大國之與, 鄰國之助
소수의 병력으로 다수의 적을 칠 경우에는 반드시 해가 질 무렵을 이용하여 초목이 우거진 곳에 깊숙이 잠복하였다가 좁은 길목에서 적을 요격해야 한다. 약한 나라로서 강한 나라를 치려면 반드시 강대한 다른 나라의 찬동과 이웃 나라의 원조를 얻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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