蛇苺 第15

瞞天過海 | 15. 하늘을 속이고 바다를 건너다.

온객행은 가져온 함을 열어서 그 안에 들어 있는 것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촉룡은 이미 모두 보았으면서도 얼굴에 미소를 띠고 들어주었다. 촉룡이 온객행에게 말했다.
“고맙구나. 사람들은 정말 재미있는 생각을 해.”
온객행이 고개를 조아리고 말했다.
“부족한 제자가 스승님을 기쁘게 할 방법이 겨우 이런 것이라 송구합니다.”
촉룡이 ‘하하하’ 웃으며 말했다.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아도 네가 오면 충분히 기쁘다.”
온객행이 주변에 있는 함을 정리해서 들고 촉룡이 앉아있는 자리 아래에 있는 동굴로 들어갔다. 촉룡이 현리를 보고 말했다.
“오늘도 비늘을 줍겠느냐?”
현리가 촉룡의 앉은 자리 주변을 보고 말했다.
“감사합니다. 탁음대선.”
그리고 주변을 다니며 주자서 눈에는 희미하게 보이는 것을 주웠다. 주자서가 멀뚱히 산꼭대기에 앉아 있는 촉룡을 보았다. 촉룡은 눈을 감고 있었는데 온객행과 현리는 마치 그가 전부 다 보고 있다는 듯이 행동했다.

촉룡이 주자서에게 말했다.
“아자(兒子). 하늘이 너에게 죄를 지었구나.”
주자서가 눈을 깜빡이며 촉룡을 보았다. 주자서는 주변을 두리번거려 아무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야 촉룡이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주자서가 얼른 소매를 들어 공수하고 말했다.
“기산의 주가 자서, 촉룡을 뵙습니다.”
촉룡은 주자서 쪽으로 얼굴을 가깝게 붙이고 말했다.
“모든 일은 균형이 중요하지. 순환을 깨뜨려서는 안된다.”
주자서는 촉룡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어서 고개를 조아리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촉룡이 주자서와 거리를 벌리고 말했다.
“온객행을 잘 부탁하네.”
주자서는 눈을 굴리며 생각했다. ‘누가 누굴 부탁한다는 말인지….’

온객행이 동굴에서 나와 촉룡과 주자서가 대화하는 것을 보고 말했다.
“스승님.”
그리고 주자서 곁으로 다가와 주자서의 손을 잡고 말했다.
“스승님 이치는 제가….”
촉룡은 고개를 하늘로 들더니 곧 자기 자리로 돌아가 둘을 내려보며 말했다.
“나의 허락이 필요해서 오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고 소매를 들어 공수하고 말했다.
“유서의 몸에 있는 발의 능력을 거두어 주셨으면 합니다.”
촉룡이 눈썹을 찡그리고 말했다.
“발의 힘을? 내가?”
온객행이 말했다.
“금모원군께서도 산천대제께서도 거두실 수 없는 힘인 것으로 압니다.”
촉룡이 고개를 젓고 말했다.
“아니다. 거둘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거두어서는 안되는 것이지.”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그러니 촉룡께서 거두어 주십시오.”
촉룡은 한참이나 대답이 없었다. 현리가 작은 나무함을 들고 촉룡에게 와서 인사했다.
“탁음대선의 자애함에 망극합니다.”
촉룡은 현리를 향해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현리는 나무함을 들고 다소곳이 인사했다. 그리고 타고 온 돛단배가 있는 곳으로 갔다.

촉룡이 한참 동안 생각하고 온객행에게 말했다.
“발의 힘은 이미 주인이 정해졌으니 내가 거둘 수 없다.”
온객행이 소매를 내리고 물었다.
“하지만 상선!”
촉룡이 고개를 흔들고 온객행을 보고 물었다.
“정말 저 사람을 내자 삼겠느냐?”
온객행은 촉룡이 과거에 관해 묻는 것을 눈치챘다. 과거에 그를 버리고 이 사람을, 주자서를 선택해도 괜찮은 것이냐고 묻는 것이다. 온객행은 주자서를 만나고 주서를 생각하는 일이 많이 줄었다. 그에게 미안한 감정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는 죽었고 다시 돌아올 수도 만날 수도 없다. 온객행은 그와 하지 못해서 후회했던 것을 주자서와 모두 해보고 싶었다. 그게 비록 한 갑자일지라도. 온객행은 한참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내자 삼겠습니다.”
그리고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주자서를 보았다. 주자서는 고개를 힐끔 들어 온객행을 마주 보았다. 촉룡은 둘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 고개를 동쪽으로 돌렸다. 온객행은 작게 한숨을 쉬고 소매를 들어 촉룡께 인사했다. 주자서도 온객행을 따라 인사했다.


배의 선미 난간에 기대어 있던 현리가 온객행과 주자서를 발견하고 말했다.
“촉룡께서는 뭐라고 하시는가?”
온객행이 주자서의 허리를 안고 승선하며 말했다.
“발의 힘은 이미 주인이 있다 하시네.”
현리가 주자서를 힐끔 보고 말했다.
“유서가 태양신이 된다는 말이야?”
주자서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별안간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하나도 모르겠소. 도통 수수께끼 같은 말뿐이니.”
현리가 주자서를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촉룡께서도 거두시지 않는 이유가 있으시겠지. 하늘에서 또 권력 싸움 같은 것이 나면 안 되는데 말이야.”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람의 세상이 시끄러워진 것도 하늘이 시끄러워서 그런 것이겠지.”
현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부루퉁한 표정으로 현리와 온객행의 대화를 듣고 있는 주자서를 발견하고 현리가 웃으며 말했다.
“촉룡께서는 혼인을 허락하셨는가?”
온객행이 주자서의 손을 잡고 말했다.
“촉룡께서 허락하지 않으신다고 내가 못 할 것 같나?”
현리가 ‘허’하고 헛웃음 치고 말했다.
“촉룡께서 그걸 모를 리 없지.”

온객행이 촉룡이 앉아 있는 산꼭대기를 보고 말했다.
“내게는 스승님뿐이니 스승님 가까이에서 혼례를 치르고 싶었네.”
주자서가 온객행을 보고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혼례?”
현리가 내실로 들어가 커다란 함을 가지고 나오며 말했다.
“자 여기. 내가 혼례복을 준비했지.”
그리고 함을 열었다. 안에는 검은색 비단에 훈(纁; 분홍)색 깃을 달고 붉은색으로 화려하게 수 놓인 장포가 들어 있었다. 주자서가 혼례복을 보고 온객행의 손을 뿌리치고 말했다.
“정말로 혼례를 치른다는 말은….”
현리가 장포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조금 구식일지도 모르겠어. 요즘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혼례를 치르는 지 본 적이 없거든.”
그리고 장포를 들어 주자서의 어깨에 걸쳤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이리저리 보더니 말했다.
“유서는 정말 뭘 입어도 다 잘 어울리는군.”
현리가 온객행에게도 혼례복을 걸치고 말했다.
“아직 때가 좋지 못하니 내일 아침에 하도록 하지.”
온객행이 하늘을 보고 별을 헤아리더니 말했다.
“사시(巳時)가 좋겠어.”
현리가 고개를 끄덕이고 물었다.
“밥 안 먹이나? 곧 재워야 하지 않아?”
온객행이 주자서의 등허리에 손을 얹고 그를 내실로 안내하며 말했다.
“그러네.”

주자서는 평상에 앉아 온객행과 현리가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찐쌀로 죽을 끓이는 것을 보았다. 현리가 죽에 말린 대추를 넣으려고 하자 온객행이 현리를 말리며 말했다.
“현리. 유서는 단 것을 안 좋아한다니까.”
현리가 평상에 넋을 놓고 앉아 있는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안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익숙하지 않은 것이네.”
온객행이 얼른 끓고 있는 죽을 작은 그릇에 옮겨 담고 말했다.
“유서는 많이 먹지 않으니 나머지는 그대 다 드시게.”
현리가 대추를 넣더니 곧 소매에서 작은 항아리를 꺼내 꿀을 넣고 말했다.
“잘 먹지 않으니 저렇게 꼬챙이처럼 말랐지.”
온객행이 죽을 ‘후후’ 불어 식혀서 주자서에게 건네고 어깨너머로 현리를 흘겨보며 말했다.
“이 꼬챙이는 내 꼬챙이니 신경 끄게.”
주자서는 온객행에게 받은 죽을 한참 보고 있다가 평상 옆에 있는 협탁에 올려 놓았다. 온객행이 다시 죽그릇을 들어 ‘후후’ 불며 말했다.
“너무 뜨거운가?”
주자서는 온객행을 빤히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실을 나가 선미로 향했다. 온객행이 죽그릇을 들고 주자서를 따라 나갔다.

주자서는 선미에 있는 키에 가서 앉아 하늘을 보았다. 서쪽으로 이지러진 달이 지는 것을 보아 벌써 자정이 넘은 시간인 것 같았다. 주자서는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시간의 흐름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벌어지고 있는 이 일에 분명히 주자서도 관련이 있는 듯 보이는데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가 없었다. 처음에 희첩의 이야기를 꺼냈을 때 온객행은 분명히 그런 시늉을 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갑자기 혼인이라니. 게다가 장가 드는 것도 아니고 시집을 가다니. 주자서는 황당해서 헛웃음이 나왔다. 온객행이 곧 죽을 ‘후후’ 불어 주자서의 입 앞에 숟가락을 내밀었다. 주자서는 시선만 들어 온객행을 보고 고개를 돌렸다. 온객행이 주자서 옆에 난간에 기대 앉고 한참 더 죽을 식히고는 말했다.
“유서 뭐라도 먹어야지.”
주자서가 한숨 쉬고 말했다.
“혼인이라니 무슨 소리요?”
온객행이 다시 죽을 떠서 주자서의 입 앞에 대고 말했다.
“한술 뜨게.”

주자서가 온객행의 손에 있는 죽그릇과 숟가락을 뺐어 들고 말했다.
“그냥 시늉만 하기로 한 것이 아니었소?”
온객행이 눈썹을 축 늘어뜨리고 말했다.
“유서… 내가 그렇게 싫은가?”
주자서가 죽을 한 술 떠먹고 말했다.
“지금 이게 좋고 싫고 의 문제입니까? 혼인은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인데 어찌 이런 식으로?”
그리고 죽을 한술 더 떴다. 주자서가 먹는 것을 보고 마음을 놓은 온객행이 난간에 몸을 기대고 앉아 말했다.
“나는 조금 진심이 됐는지도 모르겠어.”
주자서는 말없이 죽을 다 먹고 죽그릇을 내려 놓았다. 온객행이 소매에서 대나무 수통을 꺼내 주자서에게 건네며 말했다.
“그대는 내가 좋아할 만한 점이 아주 많은 사람이네.”
주자서가 수통의 물을 마시고 말했다.
“시늉이 아니라는 뜻이오?”
온객행이 고개를 돌려 주자서를 한참 보고 답했다.
“사실 잘 모르겠어.”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이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럼 언제든지 내치시오. 마음에 안 들면.”

온객행이 주자서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말했다.
“지금 부인을 박대하라는 말이오?”
주자서가 온객행의 팔을 뿌리치며 말했다.
“나는 부인을 한다고 한적 없소.”
온객행이 입을 앞을 내밀고 말했다.
“희첩이든 부인이든 마음대로 하라고 하지 않았소?”
주자서가 몸부림을 멈추고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희첩인 편이 소박 맞기 좋은 것 같소.”
온객행이 주자서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고 말했다.
“희첩도 하고 부인도 하시오.”
주자서가 온객행의 얼굴을 손으로 밀었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밀어내는 손을 잡고 말했다.
“내가 부인을 희첩 총애하듯 예뻐해드리리다.”
주자서가 ‘쯧’하고 혀를 차고 말했다.
“희첩의 일이던 부인의 일이던 나는 그런 일은 하지 않을 것이오.”
온객행이 주자서의 어깨에 있는 손을 내려 그의 허리춤을 잡고 말했다.
“그대가 원치 않는 일은 나도 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주자서의 목덜미에 고개를 묻었다. 주자서는 바르작대다가 곧 반항을 멈추고 얌전히 안겼다.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이오?”
주자서의 물음에 온객행이 낮게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시오. 내 부인이 되면 그대의 일은 나의 일이 되는 것이니.”
주자서가 온객행의 몸에 기대며 말했다.
“도통 그 나의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말이오.”
온객행은 부스스 웃더니 눈앞에 보이는 주자서의 목덜미를 핥고 빨았다. 마치 표식을 하는 것처럼.

온객행에게 기대오는 몸이 축 늘어지더니 무거워졌다. 선잠이 든 주자서를 일으켜 세우고 내실에 있는 평상에 눕혔다. 이불을 찾아 잘 덮어주고 내실에 있는 제등을 선미로 가지고 나와 걸었다. 현리가 온객행을 따라 나오며 말했다.
“그렇게 마음대로 불을 꺼도 되는 건가? 여기 나도 있는데.”
온객행이 현리를 힐끔 보고 말했다.
“어둠 속에서 더 많이 보이지 않습니까? 저는 그런데….”
현리가 ‘흥’하고 코웃음 치고 난간에 기대어 앉았다.
“버들개지가 혼인은 싫다 하는가?”
온객행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다정한 사람이라 잘 속는다고 말씀드렸잖아요.”
현리가 온객행을 빤히 보며 말했다.
“정말 속이는 것인가?”
온객행은 주자서에게 했던 말을 똑같이 해주었다.
“사실 잘 모르겠어.”
현리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이번에는 그대가 먼저 다가가게. 그대의 하얀 연꽃이 그대에게 했던 것처럼.”
온객행이 고개를 숙이고 조금은 슬픈 표정으로 웃었다.
“그는 정말 감연(敢然)했어.”
현리가 하늘의 별을 보며 말했다.
“응. 사람들은 참 감연해.”
온객행이 현리의 옆에 어깨를 붙여 앉고 말했다.
“힘들지 않은가?”
현리의 눈이 조금씩 젖었다.
“모두 기억하네. 그들의 기억은 하나하나 모두 보석 같지. 후회 따위로 색이 바라지 않는 보석.”
온객행은 고개를 끄덕이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흐르려는 눈물을 참아보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다. 달이 진 밤하늘의 별이 밝기 때문이다.


주자서는 다음 날 아침 조금 일찍 눈이 떠졌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둘러봤지만 내실 안에는 사람이 없었다. 선미 쪽에서 현리가 휘장을 걷고 들어와 함이 쌓인 곳에 가서 무엇인가를 찾았다. 주자서가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인사했다.
“현리낭자. 좋은 아침입니다.”
현리가 어깨너머로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벌써 일어났는가? 흑망이 뭐라고 했지? 세 시진은 자야 한다 하던데 조금 더 자게.”
주자서가 자리에서 일어나 현리에게 다가가 말했다.
“낭자께서도 소인을 어린아이 취급이십니까?”
현리가 작은 함을 들고 일어나 말했다.
“그럼. 어린 아이이지.”
현리는 함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말했다.
“이건 우리 아이들이 시집갈 때 내가 해주는 것인데.”
함 안에는 금으로 만든 머리 장신구가 들어 있었다. 주자서가 손을 내젓고 말했다.
“현리낭자께서는 이미 갚을 수 없을 만큼 너무 많은 것을 해주셨는데 이런 귀한 것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현리가 ‘하하하’ 웃으며 말했다.
“내게 은혜를 입은 것은 아는가?”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리가 고개를 돌려 장식을 보며 말했다.
“그럼 이건 흑망에게 주는 것으로 하지.”

주자서는 현리가 하는 대로 가만히 앉아서 혼례복을 입고 머리를 올렸다. 현리가 주자서의 머리를 매만지며 말했다.
“여인들이 하는 것처럼 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말게. 시집가는 사내는 그대가 처음이 아니니.”
주자서가 시선을 힐끔 들어 현리를 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온객행이 혼례복을 입고 주자서에게 다가오자 현리가 말했다.
“신랑 신부는 혼례 전까지 서로를 보지 않는 것이 좋네.”
온객행이 발걸음을 멈추고 머뭇거리더니 곧 휘장을 걷고 내실을 나갔다. 온객행은 밖으로 나가 작변(爵弁)을 쓰고 손을 씻을 물과 대야, 합환주를 준비했다. 촉룡은 감았던 눈을 뜨고 세상을 보고 있었다. 온객행은 촉룡께 가서 혼례를 올릴 것을 고했지만 촉룡은 대답이 없었다. 온객행도 딱히 대답을 바라고 한 것이 아니라 금방 다시 돌아와서 혼례를 준비했다. 주자서는 온객행이 날이 더울 때 부쳐줬던 깃털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현리의 도움을 받아 배에서 내렸다. 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작은 탁자를 두고 그 위에 작은 대야와 술잔이 있었다.

주자서가 배에서 나오자 온객행이 장포를 털고 탁자 앞에 가서 주자서를 맞이했다. 주자서는 들고 있던 깃털 부채를 온객행에게 건넸다. 온객행은 부채를 받아 탁자 위에 놓고 주자서의 손을 잡았다. 주자서의 손을 잡고 그를 탁자로 이끌어 물을 담은 대야에 함께 손을 씻었다. 영견으로 손을 잘 닦고 탁자에 있는 잔을 나눠 들었다. 곧 현리가 다가와 잔에 물을 담았다. 둘은 물로 입을 헹구고 현리가 따라주는 합환주를 마셨다. 그리고 촉룡이 있는 쪽을 향해 절을 했다. 다음은 사례가 있는 쪽으로, 그다음은 태평호가 있는 쪽으로 절을 했다. 절을 마치고 일어난 두사람이 서로를 향해 맞절하고 혼례의 의식이 끝났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손을 잡고 말했다.
“잘 부탁합니다.”
주자서는 촉룡이 그에게 했던 말이 떠올라서 시선을 들어 촉룡을 보았다. 촉룡은 혼례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무심하게 동쪽을 보고 있었다. 주자서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현리와 온객행, 주자서는 다시 촉룡에게 이별을 고하고 태연으로 향했다.


온객행은 주자서를 먹인다고 찐쌀을 꺼내 죽을 끓이고 있었고, 주자서는 현리가 골라주는 옷을 입어 보고 있는 중이었다. 혼례복을 계속 입고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자서가 원래 입고 있던 옷은 여름옷이라 고도가 높은 옥산에서 입기에는 조금 추웠다. 현리가 주자서에게 옷을 입혀주려고 하자 주자서가 손을 들어 거절하고 자기가 입었다. 현리가 주자서가 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가 말했다.
“그렇게 입으니까 꼭 흑망 같다. 검은색도 잘 어울리네.”
주자서가 소매를 들어 보고 현리에게 물었다.
“그렇습니까?”
온객행이 주자서를 부르며 말했다.
“유서. 와서 밥 먹게.”
주자서가 탁자로 가서 앉자 온객행이 죽을 그릇에 떠서 건넸다. 은은하게 비치는 검은 장포를 입은 주자서는 너무 야살스러워서 온객행이 부루퉁한 표정으로 현리에게 말했다.
“이런 옷은 너무… 너무!”
현리가 주자서 옆에 앉아 죽 그릇에 죽을 퍼 담고 말했다.
“너무 뭐? 잘 어울리지? 너한테 맞춘 옷이라 그런지 소매가 기네.”
주자서는 긴 소매가 불편했는지 몇 번 털더니 팔꿈치가 훤히 보이게 하고 죽그릇을 들고 먹었다. 온객행이 놀라서 주자서 옆에 앉아 소매를 올리고 말했다.
“내의도 입지 않았어? 어찌 이렇게….”
주자서는 온객행의 시중은 아랑곳하지 않고 죽을 먹었다.

현리가 ‘흥’하고 코웃음 치며 말했다.
“입었네! 입었어. 손도 못 대게 하더군. 지조와 절개가 넘치는 부인을 두셨어. 흑망.”
온객행은 주자서 옆에 앉아서 그의 허리를 안고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현리가 질색을 하고 말했다.
“발정이라도 하는가 흑망. 여기 나도 있네.”
온객행이 고개를 들어 현리를 보고 말했다.
“언제 마지막으로 열락(悅樂)이 왔었는지 기억도 안 나네. 열락이 오면 어떻지?”
주자서가 죽그릇을 내려놓고 말했다.
“두 분께서는 꼭 밥 먹는데 그런 이야기를 나누셔야 하겠습니까?”
온객행이 주자서가 내려놓은 죽그릇에 숟가락을 들어 주자서 입 앞으로 가져가며 말했다.
“유서. 많이 먹게. 어서 살을 찌워야 내가 잡아먹을 것이 아닌가?”
주자서가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사람은 안 드신다면서요.”
현리가 고개를 꺾어 ‘하하하’ 웃으며 말했다.
“내가 저번에 말하지 않았나? 침상에서 뒹구는 것도….”
주자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현리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내실 밖으로 나갔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뒤따라 나가며 현리에게 말했다.
“자예! 제발.”
현리가 억울하다는 듯이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흑망. 이번엔 그대도 거들지 않았는가?”


태연으로 향하는 배의 키는 현리가 잡았는데 종화산에서 태연까지는 거리가 멀지 않았기 때문에 중천이 조금 넘어 태연에 도착했다. 금모원군인 서왕모는 옥산(玉山) 꼭대기에 있는 태연(太淵)이라는 호수에 있는 요대(瑤臺)라고 불리는 궁궐에서 산다. 그녀의 옥산은 복숭아나무로 가득한데 한창 철인 복숭아가 나무 여기저기에 달려 있었다. 이 복숭아들은 태연에서 천궁으로 가는 길에 있는 반도원(蟠桃園)의 반도(蟠桃)는 아니다. 반도는 모든 병을 고치고 죽지 않는 몸을 만들어 준다. 보통 사람이 먹으면 등선할 수 있을 정도로 영약이다. 옥산의 천도는 반도 만큼은 아니지만 영력의 힘을 끌어 올려 수련을 도왔기 때문에 삼족오가 옥산 주변을 맴돌며 지키고 있다. 현리가 삼족오를 발견하고 키를 놓고 일어나 소매를 들어 인사했다.
“앙소(仰韶)! 현리가 왔습니다.”
삼족오가 내실 지붕에 내려앉아 말했다.
“현리! 이게 대체 얼마 만이야? 단오절에 왜 오지 않았어?”
현리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사람들하고 좀 일이 있었어요.”
앙소가 선미로 내려와 말했다.
“어디 다치지는 않았지? 너도 어서 승천해서 우리와 함께 살면 좋잖아.”
현리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는 아직 사람들하고 사는 게 좋아요.”
앙소가 ‘하하하’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무슨 일로 온 거야? 이 배는 대체 뭐야?”
앙소가 배를 둘러보며 말했다.

온객행이 휘장을 걷고 내실에서 나와 인사했다.
“흑망. 현조(玄鳥)를 뵙습니다.”
앙소가 표정을 구기고 현리를 보았다. 현리가 온객행에게 고갯짓하고 말했다.
“앙소, 나도 원군께서 시킨 대로 하는 거예요.”
온객행이 물었다.
“현리. 그게 무슨 소리야?”
현리가 두 사람에게 손을 들어 내젓고 말했다.
“나에게 묻지 마시오. 금모원군께서 모두 대답하실 테니 내게 묻지 마시오.”
앙소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원군께서 다 뜻이 있으셔서 그리 하셨겠지….”
앙소가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이번에도 부탁을 하러 왔는가?”
온객행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앙소가 허리에 찬 검으로 손을 가져가며 말했다.
“정말 부탁인가? 저번처럼 위협이 아니고?”
현리가 옥산에 배를 올려 놓고 말했다.
“청조께서도 아시는 일이니 걱정 마시오.”
앙소가 온객행을 경계하며 말했다.
“어디 쉽게 잊히는 일이어야지. 그때 뽑힌 복숭아나무가 몇 그루인지 아느냐?”
온객행이 고개를 숙이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결례를 범했습니다.”
앙소가 ‘흥’하고 웃으며 말했다.
“결례인 것을 안다니 다행이군.”
현리가 앙소에게 물었다.
“공공께서도 태연에 계신다고 들었는데 맞습니까?”
앙소가 온객행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말했다.
“그래. 상류에게 일을 맡겨 놓고 오셨다는데 벌써 달포가 지났군.”

온객행이 내실 휘장 안으로 손을 쑥 집어넣더니 주자서의 손을 잡아 밖으로 잡아 끌었다. 주자서는 내실 안에서 휘장을 붙잡고 까만 날개가 달린 남자를 보고 있었다. 깃털로 만든 갑옷을 입은 남자의 발은 새의 발 같아서 조금 겁이 났다. 갑자기 밖으로 끌려 나온 주자서는 머뭇거리다가 온객행의 손을 뿌리치고 소매를 들어 인사했다.
“기산의 주가 자서, 현조께 인사드립니다.”
주자서의 인사를 얼떨떨하게 받은 현조가 현리를 보고 말했다.
“사람이 아닌가?”
현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발의 후손이오.”
현조가 다시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사내가 아닌가?”
주자서는 저 질문에 이제 헛웃음이 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주자서가 피식 웃자 온객행이 주자서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말했다.
“저의 내자입니다.”
현조가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내자? 혼인했단 말인가? 자네 봉인이 풀린 지 얼마 안 되지 않았나…?”

하늘에서 구름이 내려오더니 그 구름을 사뿐히 밟고 청조가 내려와 말했다.
“흑망. 원군을 뵙는 것이 순서가 아닌가?”
앙소와 현리가 청조에게 인사하고 배에서 내렸다. 온객행은 청조에게 인사하고 주자서의 허리를 안고 구름 위로 올랐다. 온객행은 마치 구름을 밟을 수 있는 것처럼 밟고 서 있었지만 주자서는 밟히는 것이 없어서 온객행의 목에 팔을 둘러 안았다. 청조가 현리에게 말했다.
“현리. 고생했다. 너는 이제 그만 가도 좋다. 중원(中元) 때 보자.”
현리가 소매를 들어 인사하며 말했다.
“대정자. 필요한 것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기별하세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청조가 입꼬리를 끌어올려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였다. 앙소도 청조에게 인사하고 다시 하늘로 날아올랐다.

청조가 고개를 돌려 꼭 붙어있는 온객행과 주자서를 보고 ‘흥’하고 코웃음 친 후에 구름길을 걸었다. 주자서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것을 멈추지 못했는데 온객행이 구름길을 걷기 시작하자 곧 구름 사이로 노금과 삼족오가 날아와 온객행을 경계했다. 온객행은 예상했던 일이라 별로 놀라지 않았지만 주자서는 하늘을 나는 날개 달린 그들을 보고 조금 놀란 듯했다. 평소에 볼 수 없는 광경이기는 해서 온객행도 주자서를 더 가깝게 끌어안았다. 구름길 끝에 다다르자 청조와 비슷하게 생긴 여인 둘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요대(瑤臺) 입구에 내려놓고 인사했다.
“흑망 대려(大鵹)와, 소려(小鵹)를 뵙습니다.”
주자서도 온객행을 따라서 소매를 들어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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