釜底抽薪 | 23. 솥 밑의 장작을 빼낸다.
고상은 어둠 속으로 빠져들어 가면서 주자서를 놓치지 않기 위해 그를 꼭 끌어안았다. 주자서는 평상에서 일어나려고 하다가 더 깊숙하게 그림자 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한참 아래로 떨어지던 둘은 그림자를 벗어나 검은 안개가 가득 찬 곳에 닿았다. 고상이 주자서의 몸을 이리저리 더듬으며 말했다.
“유서. 괜찮은가?”
주자서가 주변을 살펴보고 고상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아상께서는 괜찮으세요?”
고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보았다. 검은 안개가 걷히자 그들은 축축한 동굴 속에 있었다. 고상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물길?”
빛이 하나도 없어 어둑한 동굴 속에서 주자서는 보이는 것이 얼마 없어 고상을 가까이 안고 말했다.
“아상. 뭐가 보이십니까?”
고상이 눈을 감고 안개를 만들어 주자서와 자기를 감싸더니 말했다.
“어딘지 모르겠는데 해화상의 길인 것 같아. 유서, 나에게서 떨어지지 마라.”
고상이 만들어낸 안개에서는 은은하게 빛이 나서 그제야 주자서는 주변이 조금 보였는데 태평호에서 파양호에 갈 때 거쳤던 물길과 비슷한 동굴이었다.
고상은 잠깐 방향을 가늠하더니 물길을 걷기 시작했다. 주자서가 고상을 따르며 말했다.
“아상. 한 자리에 있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고상이 물길을 둘러보며 말했다.
“누군가 오고 있네. 숨는 것이 좋겠어.”
그리고 둘의 몸을 바위틈 사이에 숨기고 안개를 조금 더 만들어 둘을 가렸다. 고상이 한참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더니 말했다.
“여기 하수(夏水) 근처 같아.”
주자서가 몸을 움츠리며 말했다.
“하수?”
고상이 주자서의 입을 막고는 말했다.
“쉿!”
발소리가 들리고 검은 옷으로 무장한 이들이 횃불을 들고 동굴 안을 살폈다.
“여기 있을 것이다. 찾아라.”
고상이 미간을 찌푸리며 작게 말했다.
“사람?”
고상의 말에 주자서가 동굴 안에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옷과 무기를 보니 어느 귀한 집안의 사졸이나 호위 같았다. 군에서 사용하는 갑옷을 입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허리에 두른 가죽으로 만든 요대는 군병이 사용하는 것이었다. 군관이 그들이 쪼그려 앉아 숨어있는 틈까지 다가와 횃불을 이리저리 들춰보며 그들을 찾았다. 바로 앞에서 횃불을 흔드는 모습에 주자서가 몸을 뒤로 하자 고상이 그를 달래려는 듯 어깨에 팔을 둘렀다.
“분명히 여기라고 했는데 왜 보이지 않지?”
대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군관들에게 닦달했다. 곧 군관들이 들어온 쪽에 어떤 남자가 들어오더니 말했다.
“흠.”
대장이 그에게 인사하며 말했다.
“지주대인(蜘蛛大人). 저희가 찾았지만 보이지 않습니다.”
남자는 그들이 수색했다는 곳을 둘러보다가 고상과 주자서가 있는 틈을 보고 말했다.
“아주 예쁜 화사로군.”
고상이 혀를 차고 일어나며 안개를 걷었다.
“망충(網蟲).”
지주가 고상을 보고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화사.”
주자서가 고상 앞에 서며 말했다.
“그대들은 누구인데 해화상의 길에 계십니까?”
지주가 주자서를 보고 웃으며 물었다.
“네가 발의 후손인가?”
지주는 고상과 주자서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말했다.
“발의 후손이 왜 화사가 되었지?”
동굴을 수색하던 사람들이 고상과 주자서를 틈에서 끌어내어 지주 앞에 무릎 꿇게 했다.
고상이 지주를 보고 말했다.
“망충! 주인께서 알면 가만 두실 것 같아?”
지주가 고상에게 다가가 그녀의 턱을 손가락으로 들고 말했다.
“그러게. 무지기가 알기 전에 어서 해치워 버려야지.”
고상이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나를 건들기만 해봐! 내 몸에 그려진 진(陣)을 건들기만 해도 네놈들이 누구인지 밝혀내는 것은 일도 아니야!”
지주가 피식 웃으며 고상의 옷깃을 잡자 주자서가 몸부림을 치며 말했다.
“그만두시오! 어찌 여인을 욕보인다는 말이오!”
지주가 주자서를 보고 재밌다는 듯이 말했다.
“욕보여? 네 눈에는 이 뱀이 사람으로 보이나 보지?”
지주의 몸에서 가느다란 실이 뿜어져 나오더니 고상을 감쌌다. 주자서가 놀라서 고상을 보고 소리쳤다.
“아상!”
고상은 지주의 몸에서 나온 붉은 실에 휘감기더니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는 사람의 소리에서 점점 뱀이 내는 소리인 ‘쉭쉭’ 대는 소리로 바뀌었는데 지주의 실이 고상의 몸 안으로 녹는 것처럼 사라지더니 고상의 몸이 능소화 빛깔의 뱀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주자서는 ‘하!’ 하고 작게 숨을 들이켜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를 잡고 있던 군관들이 그를 놓아주자 주자서는 무릎 꿇고 뱀으로 변한 고상에게 다가갔다.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뱀을 만지자 뱀이 주자서의 손에 머리를 비볐다. 주자서는 얼른 뱀을 손안에 들고 말했다.
“이게… 이게 무슨 짓이오?”
지주가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겨우 화사 주제에 감히.”
주자서가 뱀을 조심스럽게 품에 안고 지주를 보고 말했다.
“나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오?”
지주가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발의 후손인데 왜 사내지?”
주자서는 조금 짜증이 난 기색으로 말했다.
“하늘이 하는 일을 내가 어찌 안다는 말이오!”
지주가 주자서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그것도 그렇네.”
그리고 군관에게 고갯짓하자 주자서를 놓아주었던 군관이 주자서를 일으켜 팔을 잡았다. 주자서가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원하는 것이 무엇이오?”
지주가 코웃음 치며 말했다.
“너 따위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 고작 사람 주제에.”
지주가 몸을 돌려 군관에게 지시하더니 금방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남은 군관들은 주자서를 데리고 물길을 걸어 밖으로 나왔다. 물길 밖은 물가 근처일 것이라는 주자서의 예상을 뒤 엎고 산에 있는 서원이었다.
군관들은 주자서를 감옥이 아니라 객실에 가뒀다. 주자서는 고상을 품속에 안고 그들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라 주었다. 물길에서 서원으로 오는 길에 보았던 군관들은 주인이 그들 대접을 잘했는지 위계질서도 있었고 지치거나 배를 곯은 기색이 없었다. 무기가 없는 주자서 혼자 당해낼 수 있을 만한 무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주자서는 일단 그들이 시키는 대로 따라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주자서가 대장으로 보이는 이에게 물었다.
“여기는 어디입니까?”
대장은 주자서를 품평하듯 위아래로 보더니 말했다.
“계집 같은 꼴을 해서는….”
주자서가 표정을 구기고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이오?”
군관의 대장은 주자서의 말을 무시하고 부하들에게 그를 지키라는 말을 하고 장지문을 닫았다. 주자서가 나가려고 하자 장지문 옆에 서 있던 군관이 그를 막았다. 주자서는 그들을 빤히 보다가 작게 한숨을 쉬고 얌전히 객실 안으로 들어왔다.
주자서는 침상 위에 안고 있던 작은 뱀을 놓아주고 그 아래 앉아서 뱀과 눈높이를 맞추고 말했다.
“아상께서도 뱀이셨군요.”
주자서가 뱀의 머리를 손가락 끝으로 문지르며 말했다.
“우리는 어쩌죠?”
뱀은 주자서가 쓰다듬어 주는 것을 한참 즐기다가 똬리를 틀었다. 주자서는 뱀에게서 시선을 떼고 객실을 둘러보았다. 이곳저곳에 놓인 서책과 죽간이 아니면 어느 귀족 집의 외실로도 보였다. 태평호 이후로 주자서는 참으로 분수에 맞지 않는 곳에 머무는 일이 많아졌다. 자리에서 일어나 혹시 무기로 쓸만한 것이 있을까 싶어 둘러보았지만 서신을 뜯는 날붙이 하나 없었다. 다시 침상으로 가서 똬리를 틀고 있는 뱀 옆에 앉아 말했다.
“사람이면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입니다.”
주자서는 작게 한숨 쉬고 뱀을 보았다. 뱀은 머리를 몸에 기대더니 곧 붉은 눈을 감았다. 주자서는 침상 위에 있는 이불을 펴서 뱀에게 덮어주고 죽간이 쌓여 있는 서안으로 가서 앉았다. 따로 보관하는 서책 같으니 읽어 보면 이곳이 뭐 하는 곳인지 알 수 있을까 싶어 주자서는 서책을 읽기 시작했다.
고상이 다시 눈을 떴을 때, 고상은 침상 위에 금침 위에 있었다. 해가 이미 졌는지 방안은 어슴푸레했다. 고상이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펴보자 주자서는 서안에 기대어 잠이 든 것 같았다. 고상은 천천히 침상에서 내려와 주자서에게 다가갔다. 서안을 타고 올라가자 주자서가 읽던 죽간이 보였다. 벌써 몇 개 읽었는지 서안 위에는 죽간 여러 책이 이리저리 놓여 있었다. 고상은 다른 기척을 읽고 얼른 주자서의 품속으로 들어갔다. 횃불을 들고 들어온 군관은 객실을 살펴보더니 서안에 앉아 고개를 괴고 잠들어 있는 주자서를 발견하고 말했다.
“야! 일어나라!”
주자서가 군관의 목소리에 어깨가 튀더니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이보시오. 내게도 이름이 있네. 어찌….”
군관이 주자서에게 다가가 그의 팔을 잡고 일으키며 말했다.
“주인이 오셨으니 일어나라!”
주자서가 일어나서 소매를 털며 옷매무새를 가다듬자 장지문을 열고 금색 옷을 입은 남자가 들어왔다.
금색 옷을 입은 남자가 들어와 상석에 가서 앉자 군관이 주자서의 팔을 잡고 그의 앞으로 가게 한 뒤에 무릎을 꿇게 했다. 주자서는 순순히 남자 앞에 무릎을 꿇고 소매를 들어 인사했다.
“기산의 주가 자서라 합니다.”
금색 옷을 입은 남자가 주자서를 한참 들여다보더니 혀를 차며 말했다.
“어찌 사내란 말이냐?”
주자서가 고개를 흔들고 말했다.
“하늘이 하시는 일을….”
남자가 주자서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나는 후토. 황룡이네.”
주자서가 고개를 들고 자기를 황룡이라 소개하는 남자의 얼굴을 보았다. 이제 막 장령(壯齡)에 들어선 남자는 인자하게 웃으며 주자서를 보았다. 주자서가 황룡을 보고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황룡…?”
황룡이 주자서에게 다가가 말했다.
“네가 발의 후손이라고?”
황룡은 주자서의 얼굴을 조금 더 보다가 그의 머리채를 잡고 말했다.
“감히 계집 주제에 나를 뛰어넘어?”
주자서가 잡힌 머리를 잡고 말했다.
“나… 나는….”
황룡이 주자서의 머리채를 쥐고 흔들며 말했다.
“네가 하늘에서 어떠한지 내 알 바 아니지만 땅에서까지 나를 능가하려 하느냐?”
주자서가 황룡의 손길이 이리저리 휘둘리며 말했다.
“무슨… 무슨 말씀….”
황룡이 주자서의 머리채를 거칠게 놓고 말했다.
“천존께서는 어째서 너 따위에게!”
주자서가 바닥에 고꾸라지자 황룡이 다가가 주자서의 몸을 발로 차며 말했다.
“산천대제께서 너의 힘을 갖고 나면 감히 누가 너 따위에게 관심을 두겠느냐? 감히! 감히!”
주자서는 몸을 동그랗게 말고 황룡의 발길질을 견뎠다.
내실 안으로 즉저와 지주가 들어왔다. 즉저가 말했다.
“그쯤 하시오. 산천대제께서 오고 계시는 중이니.”
황룡이 화를 삭이지 못하고 씩씩거리며 바닥에 누워있는 주자서에게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너의 공은 내가 가졌어야 마땅한데 어찌! 어찌!”
즉저가 탁상에 있는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영력을 빼앗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개 사람일 뿐이니 참으시오.”
황룡이 탁자로 가서 앉으며 말했다.
“요대의 일은 어떻게 되었소?”
지주가 바닥에 누워 있는 주자서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봉황 한 마리가 노망난 노인네 둘을 어찌 하겠습니까?”
즉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차피 천존께서는 노인네 노망으로 치실 테니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황룡이 주자서를 노려보며 말했다.
“어서 저것을 치우고 끊어냈으면 합니다”
즉저가 황룡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그리 될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지주가 객실을 둘러보고 뭔가 말하려고 할때 산천대제가 현명대선과 함께 객실 안으로 들어왔다. 즉저와 지주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조아려 인사했다. 현무가 소매를 들어 황룡에게 인사하며 말했다.
“후토.”
황룡도 자리에서 일어나 현무에게 인사했다.
“현명.”
산천대제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주자서를 발견하고 다가가며 말했다.
“발의 아이야.”
주자서가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 소매를 들고 고개를 조아려 인사했다. 주자서가 인사하는 모습을 본 현명이 ‘흥’하고 코웃음 쳤다. 산천대제가 주자서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그의 목덜미에 고개를 묻어 냄새를 맡더니 말했다.
“아… 발의 아이야.”
주자서가 몸을 바르작대며 품에서 나오려고 하자 산천대제가 주자서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끌어안고는 황룡에게 물었다.
“이… 이 영력을 어떻게? 어떻게?”
황룡이 산천대제를 보고 고개를 조아려 인사하고 말했다.
“팔주령은 가져오셨습니까?”
산천대제가 현무를 보자 현무가 소매에서 금동으로 만든 팔주령을 꺼내 탁상 위에 두었다.
산천대제가 주자서를 끌고 탁상으로 가서 팔주령을 손에 쥐었다. 산천대제가 현무와 황룡을 번갈아 보고 물었다.
“어찌하면 되는가? 어떻게 해야 발의 봉인을 풀 수 있지?”
현무와 황룡이 잠깐 시선을 마주했다 한숨을 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즉저가 소매를 들어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대제께서 직접 하셔야 합니다. 봉인을 푼 자에게 힘이 깃드니까요.”
산천대제는 팔주령을 주자서의 손에 쥐여 주더니 그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주자서는 조금 당황하여 대제의 팔을 잡고 말했다.
“동왕공. 이 방법은 아닌 것 같은데….”
현무가 대제의 소매를 잡고 주자서를 보며 말했다.
“이 치가 스스로 봉인을 풀 수 없으니 대제께서 직접 봉인을 깨신 뒤에 그 힘을 팔주령에 담으시면 됩니다.”
대제가 현무를 보고 물었다.
“봉인은 어떻게 깨는가?”
현무가 대제를 보고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일단 영을 들여다보시고 발의 힘을 찾으신 뒤에 부수면 됩니다.”
대제가 소매를 털어 현무의 손을 뿌리치고 말했다.
“그니까 그것을 어떻게 하냐는 말이네!”
황룡이 주자서를 빤히 보더니 말했다.
“이미 봉인이 깨어진 것 같으니 그냥 취하시지요.”
대제가 황룡을 보고 물었다.
“어떻게?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대제가 주자서의 앞섶에 고개를 박고 숨을 들이쉬더니 말했다.
“정말 충만한 영력이 느껴지는구나.”
황룡이 대제를 보고 낮게 웃으며 말했다.
“손으로 직접 꺼내시면 됩니다.”
그리고는 주자서의 등허리에 손을 대더니 그의 몸 안으로 황룡의 손이 들어가 주자서 몸 안을 헤집었다. 주자서는 ‘하!’하고 숨을 들이쉬고 고개를 들었다. 주자서의 눈과 입안에서 빛이 새기 시작하자 산천대제가 그의 얼굴을 붙잡았다. 주자서는 고개를 흔들어 얼굴을 붙여오는 산천대제를 밀어냈다. 곧 주자서의 품속에서 작은 뱀이 나와 주자서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산천대제가 놀라서 뱀을 잡아보려 했으나 잡지 못했다. 뱀이 주자서의 몸속으로 들어가자마자 주자서의 온몸에서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당황한 산천대제가 주자서를 놓아주자 주자서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뇌공과 한참 힘겨루기를 하던 읍강이 고개를 돌려 동궁을 보자 뇌공이 말했다.
“이제 나도 우습게 보이는가? 린?”
읍강이 고개를 돌려 뇌공을 보고 말했다.
“갑자기 왜 이러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뇌공이 ‘하하하’ 하고 크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원래 싸우는 것을 좋아하네? 나의 상전이 치우(蚩尤)였다는 것을 잊었나?”
읍강이 중궁을 보고 말했다.
“뇌공. 원군께서는 이런 일을 바라셔서 그리 하신 것이 아닙니다.”
뇌공이 뇌부(雷斧)를 휘둘러 벼락을 만들며 웃고 말했다.
“하하하. 뒷방 늙은이에게 무서운 것이 뭐가 있겠나? 어차피 나는 하늘로 올라가지도 못하니 그저 즐거우면 그만이지.”
읍강이 뇌공의 벼락을 피하자 곧 중궁에서 커다란 용이 나와 뇌공을 보고 말했다.
“뇌공께서 즐거우시면 수원이 어울려 드려야지요.”
주요를 본 뇌공이 모습을 사람으로 바꾸고는 말했다.
“수원. 그대가 왜 여기 있는가?”
주요 역시 용의 모습을 사람의 모습으로 바꾸고 말했다.
“원군께서 청하셔서 이렇게 왔습니다.”
읍강 역시 모습을 바꿔 동궁으로 향했다.
주요가 동궁으로 가는 읍강을 보고 뇌공에게 말했다.
“뇌공. 적송자께서는 이미 원군을 뵙고 계십니다.”
뇌공이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수원 그대가 있는 줄 알았으면 오지 않았네.”
주요가 공손히 고개를 조아리고 별궁 쪽으로 손바닥을 펴며 말했다.
“원군께서 기다리고 계시니 가시지요.”
뇌공이 한숨을 쉬고 별궁으로 향했다. 별궁에는 흠뻑 젖은 봉황과 청구, 양조가 원군 곁에 서 있었고. 그 앞에 적송자와 온객행이 대치하고 있었다. 적송자가 부루퉁하게 말했다.
“역시 촉룡의 제자 답군.”
온객행이 소매를 들고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제가 어찌 우사(雨師)께 무례를 범하겠습니까?”
적송자가 금모원군을 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요대에는 날짐승만 있으니 비가 오면 위험하다고.”
봉황이 몸에 물을 털어내며 말했다.
“적송자! 어찌….”
금모원군이 봉황의 말을 자르고 말했다.
“적송자. 우리 아이들 괴롭히는 일은 그만두세요. 날짐승만 있다니요. 적송자는 제가 무엇인지 잊으셨습니까?”
금모원군이 적송자를 쏘아보자 적송자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오랜만에 서왕모와 겨루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금모원군이 조금 날카로운 기색으로 말했다.
“하필 왜 이런 시기에 이러십니까?”
적송자가 양손을 펼쳐 보이며 말했다.
“나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난 정말 심심해서 놀러 온 것뿐이야.”
금모원군이 봉황과 양조 쪽으로 손을 펴고 버럭 소리질렀다.
“심심해서 우리 아이들을 괴롭힌다는 말입니까!”
주요가 금모원군에게 소매를 모아 인사하고 말했다.
“원군. 고정하소서.”
뇌공이 금모원군을 보고 말했다.
“원군 이렇게 화낼 일인가?”
금모원군이 뇌공을 쏘아보며 말했다.
“두분께서는 한직에 계시니 한가하셔서 좋겠습니다. 이렇게 한가하신 줄 알았으면 어서 찾아뵙고 도움을 청했어야 하는데!”
주요가 원군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원군. 이렇게 오셨으니 지금 하시지요.”
원군이 주요를 한참 보더니 표정을 바꿔 적송자와 뇌공을 보고 말했다.
“오랜만에 요대를 찾아 주셨으니 이 서왕모가 어찌 그냥 보낼 수 있겠습니까? 섬여!”
남궁 쪽에서 섬여가 폴짝 뛰어나와 말했다.
“원군.”
금모원군이 말했다.
“남궁에서 연회를 열어야 하겠다.”
섬여가 고개를 조아리고 남궁의 외실로 향했다. 남궁 외실에서 공공이 나와 적송자와 뇌공을 보고 소매를 들어 인사하며 말했다.
“적송자! 뇌공!”
뇌공이 공공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공공! 여기 있었는가?”
적송자가 금모원군의 눈치를 보며 주요에게 말했다.
“어서 흑망을 승천시키게.”
주요가 고개를 돌려 적송자를 보고 미간을 찌푸리자 적송자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원군이 원하는 것을 이루려면 저 치가 흑룡인 편이 쉽네.”
주요가 고개를 돌려 원군 옆에 서 있는 온객행을 보았다.
양조는 적송자의 비를 맞아 한동안 날 수 없었기 때문에 요대를 호위하는 군관들이 모두 여우로 바뀌었다. 삼족오를 통솔하는 양조는 원군에게 허락을 구하고 처소로 돌아갔다. 봉황 역시 원군과 손님들께 양해를 구하고 동궁으로 돌아갔다. 온객행이 주요를 보고 물었다.
“동궁에는 별일 없지요?”
주요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궁에 린자가 계신 것을 몰랐던 것 같아.”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원군께 뭘 부탁하셨소?”
주요가 온객행을 쏘아보며 말했다.
“왜?”
온객행이 주요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귀한 자리로 가시는 것 아니오?”
주요가 표정을 구기고 말했다.
“시끄럽네. 자네야 말로 원군께 부탁드려 어서 흑룡으로 승천하시게.”
온객행이 고개를 돌려 주요를 보고 말했다.
“제가요?”
주요가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말했다.
“일단 흑룡이 되는 편이 여러모로 편할 거야.”
온객행이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했다.
“흑룡이 되면 유서가 물비린내 난다는 소리는 안 듣겠지요?”
주요가 온객행을 마주 보며 표정을 구기자 온객행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흑룡의 내자에게 물비린내 난다는 소리는 안 하겠지요?”
주요는 어이가 없어서 고개를 흔들며 헛웃음 쳤다.
봉황이 동궁에 도착해서 외실을 지나 거처로 향하는데 읍강이 나와 봉황을 보고 말했다.
“큰일이네.”
봉황이 다 젖은 깃털을 털며 말했다.
“린자. 무슨 일입니까?”
읍강이 봉황의 소매를 잡아 객실로 잡아 끌며 말했다.
“누가 화사와 발의 후손을 데려갔어.”
봉황이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린자?”
읍강이 객실 안으로 들어가 방안을 살피며 말했다.
“그림자야. 그림자를 쓰는 자네.”
봉황이 눈을 감았다 뜨자 그의 눈이 황금색으로 빛났다. 방안을 둘러보던 봉황이 평상이 있던 자리로 가서 주변을 보고 말했다.
“현명?”
읍강이 봉황에게 다가와 그의 팔을 잡고 말했다.
“수원과 흑망이 알아서는 안 되네.”
봉황이 읍강을 보고 말했다.
“어찌?”
읍강이 봉황을 보고 말했다.
“일단 흑망을 흑룡으로 등선 시키고 난 다음에 알려도 늦지 않네.”
봉황이 한숨 쉬며 말했다.
“린자. 저는 적송자의 비를 맞아서….”
읍강이 고개를 끄덕이고 봉황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일단 이곳을 지키고 있게. 내가 희발에게 가보겠네.”
봉황이 읍강에게 말했다.
“패하께 말씀드리세요. 이 일에 현명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읍강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
“내가 모르겠는가?”
봉황이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서 움직이시죠.”
읍강이 봉황을 보고 작게 웃고는 고개를 끄덕이고 객실을 나갔다. 봉황은 방안을 둘러보다 평상 위로 올라가 벌렁 눕고 생각했다. ‘산천대제를 뭐 어떻게 하고 말일이 아니게 돼 버렸네….’
남궁의 연회에 자리를 안내받은 온객행과 주요는 자리에 앉아 태평호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적송자가 다가와 흑망에게 말했다.
“자네는 왜 여기 있나?”
온객행이 자리에서 일어나 적송자에게 공손히 인사했다. 온객행은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운 기색으로 말했다.
“원군께 부탁이 있어서….”
주요도 일어나 적송자에게 인사하고 말했다.
“이 치의 내자에게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적송자가 주요를 보고 물었다.
“이 치의 내자인데 자네는 왜 여기 있나?”
주요가 공공 쪽으로 눈짓하며 말했다.
“공공께서 나의 화사를 찾으시니 와야지요.”
적송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 화사가 왜 자네 화사인가? 파사를 감시하라고 붙인 것이 아니었나?”
주요가 온객행의 턱을 잡고 흔들며 말했다.
“이 파사도 제 파사입니다.”
온객행이 부스스 웃으며 말했다.
“수원께서 중매를 안 하셨으면 제가 어찌 내자를 얻었겠습니까.”
적송자가 주요와 온객행을 번갈아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태평호에서 잘 지내고 있었나 보군.”
주요가 적송자를 보며 말했다.
“우사께서는 하늘이 이 지경이 될 동안 뭐하셨소?”
적송자가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뒷방 늙은이인 내가 뭘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주요가 적송자를 흘겨보며 말했다.
“정말 무슨 부탁을 받고 오신 것은 아니지요?”
적송자가 공공과 대화하고 있는 뇌공을 가리키고 말했다.
“우린 진짜 심심해서 왔어. 이제 아무도 우리랑 교류하려고 하지 않으니까.”
주요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제가 모르겠습니까.”
온객행이 적송자와 주요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말했다.
“뒷방 늙은이들께서 오늘 흑망에게 주도(酒道)를 가르쳐 주셔야 하겠습니다. 요대의 술을 모두 마셔봅시다.”
적송자가 웃으며 말했다.
“흑망 그대는 어서 가서 취수를 건너고 오라니까.”
온객행이 적송자를 보고 말했다.
“아직 영력이 다 돌아오지 않았는데 제가 건널 수 있을까요?”
적송자가 온객행의 어깨에 팔을 둘러 어깨동무하고 말했다.
“내가 볼 때 나 등선할 때보다 더 기세가 좋아.”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제가요?”
적송자가 말했다.
“자네도 이제 꽤 나이가 있지 않나? 내자도 생겼으니 어서 등선 해야지.”
주요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네 내자가 흔한 사람은 아니니 어서 원군께 부탁드려 취수를 건너도록 해라.”
온객행이 남궁으로 들어오는 주안상을 보고 말했다.
“일단 술부터 마시면 안됩니까?”
적송자 역시 주안상을 보고 말했다.
“그것도 그렇군. 요대 나흘마의 솜씨는 하늘에서 유명하니까.”
온객행이 주요를 보고 말했다.
“주요. 알잖아요. 난 요대에서 환대를 받아본 적이 없소. 유서와 처음 왔을 때 내가 어디서 지냈는지 아시오?”
적송자가 어깨동무를 풀고 온객행을 주안상 앞에 앉히며 말했다.
“내가 들어줄 테니 말해보게.”
주요가 온객행에게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온객행. 자업자득이야. 네가 옥산에서 친 사고를 생각하면 별궁에 들인 것만으로도 환대야.”
적송자가 ‘허허허’ 웃으며 말했다.
“내가 모르는 일이 있었나 보군. 무슨 일이 있었나? 내게 털어 놔 보게.”
온객행이 주요를 쏘아보며 적송자 옆에 앉아 한탄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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