笑裏藏刀 | 24. 웃음 속에 칼을 감춘다.
온객행은 주서(周絮)를 좋아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사람의 유한한 시간이 마음에 걸렸다. 그에 대한 마음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 불안감은 더했다. 그러다 먹으면 신선이 될 수 있다는 복숭아, 반도가 떠오른 것이다. 금모원군의 반도원(蟠桃園)에 열리는 반도는 모두 주인이 정해져 있다. 금모원군의 요대는 금모원군의 거처이기도 하지만 땅의 신선이 하늘로 올라갈 때 반드시 거치는 관문이기도 했다. 반도원의 복숭아는 요대를 거쳐 하늘로 올라가는 길에 오르는 것이 가능한 신선에게만 허락된 것이다. 온객행은 금모원군을 만나기 위해 옥산에서 행패를 부렸다. 취수와 약수로 둘러싸인 옥산은 들어올 수 있는 존재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온객행의 횡포는 평화롭게 살고 있던 옥산의 화사와 삼족오는 물론 요대를 지키는 여우들에게 까지도 위협이 되었다. 커다란 뱀으로 변한 온객행은 옥산에 머물면서 삼족오와 여우를 못살게 굴었다. 그 과정에서 옥산의 복숭아나무 반 이상이 뽑혀 나갔다. 몇몇 오래된 화사들은 약수와 취수의 물길이 조금 바뀌었다고도 한다.
사흘동안 난리를 피웠지만 금모원군은 온객행을 만나주지 않았다. 온객행이 사학(肆虐)을 멈춘 것은 복숭아에서 태어나는 화사를 처음 봤기 때문이다. 보통 붉은 색에 검은색이나 흰색 반점이 생기는 화사들은 모두 복숭아에서 태어난다. 맨 처음에 화사가 되었던 이는 옥산의 복숭아가 아니라 반도원의 복숭아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그 이후로 화사는 복숭아에서 태어나 복숭아를 기르고 지키는 일을 한다고 했다. 그 화사는 다른 화사와는 달리 노란빛을 띄었다. 그 화사가 태어난 열매 역시 복숭아라고 하기보다는 귤이나 유자 같았다. 못생긴 열매에서 태어난 못생긴 화사가 측은하여 온객행은 행패를 멈추었다.
주서는 동정호 근처에 있는 절파고금(浙派古琴)을 수학하는 악사(樂士)였다. 그는 원래 익주(益州) 출신으로 원래라면 촉파(蜀派)에서 수학해야 했지만 자리가 나지 않아 형주(荊州)의 절파로 유학을 온 것이다. 대부분의 악사가 형주 출신인 절파에서 혼자 익주 출신으로 종종 불이익을 당하거나 고초를 겪었지만 주서는 언제나 웃는 얼굴이었다. 온객행은 문득 너무 오래 주서를 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지 않은 시간 중에 벌써 사흘이나 낭비했으면 그것으로 된 것이라고. 이제부터 더는 낭비하지 않으면 된 것이라고. 그가 다시 서호로 돌아갔을 때 주서는 아주 반갑게 그를 맞아주었다. 온객행은 다짐했다. 다시는 주서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그 이후로 온객행은 행복했다. 그의 긴 인생에서 처음으로 온객행의 마음을 채운 이가 나타난 것이다. 하얀 연꽃 같은 옷을 입고 사람들이 상상하는 하늘의 신을 노래하는 그는 사람인데 빛이 났다. 주서는 금을 타는 것을 좋아했는데 하늘의 신을 노래하는 가사를 붙여 금을 탈 때면 온객행은 그가 노래하는 하늘의 신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서를 만나기 위해 사람들의 세상으로 나온 온객행은 사람처럼 살았다. 먹고 마시고 웃고 울면서 점점 더 주서를 사랑했다. 청명이 조금 지나 마을이 어수선해졌다. 마을에 찾아온 법사는 마을의 기운이 요사스럽기 때문에 요괴를 퇴치해야 한다고 했다. 동정호 근처에는 항상 요괴가 많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법사의 말을 듣지 않았다. 하지만 법사가 나타난 이후에 마을에 큰 홍수가 나고 민심이 흉흉해지자 사람들은 요괴를 탓하기 시작했다.
법사는 사람들에게 웅황(雄黃) 가루로 만든 향낭을 만들어 팔며 말했다. 단양절 가장 밝은 중천에 요괴가 웅황 가루로 만든 술을 마시면 본래 모습으로 돌아간다고 말이다. 사람들은 웅황 가루가 든 향낭을 몸에 지니고 다니기 시작했다. 사실 웅황과는 크게 상관없이 영력이 부족한 요괴는 단양절이 되면 그 기가 약해져서 술을 마시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딱히 술을 마시지 않으면 크게 위험한 일이 없었기 때문에 온객행도 웃으며 주서가 건네는 향낭을 몸에 달았다. 한가지 온객행이 간과한 것이라면 웅황은 땅꾼이 뱀을 잡을 때 사용하는 독이라는 점이었다. 단양절 중천에 사람들이 모여 용 모양의 배를 띄웠다. 온객행은 주서와 함께 강가를 거닐었다. 주서는 흥이 올라 온객행에게 술을 권했고 한잔 정도는 괜찮을 것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한 온객행의 몸이 거대한 뱀으로 변하고 말았다. 온객행도 갑작스럽게 변화한 자신의 모습에 놀라 별수 없이 장강으로 몸을 숨겼다.
주서는 온객행과 함께 있었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질타(叱咤)받았다. 주서는 끝까지 온객행을 두둔했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들어주지도 믿어주지도 않았다. 그의 노온(老溫)은 사람을 절대 해치지 않는다고, 그의 노온은 홍수를 일으키지 않았다고. 온객행이 다시 영력을 회복해 사람의 모습이 되었을 때 주서는 옥에 갇혀 온객행을 만날 수 없었다. 주서를 찾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 온객행은 감옥에서 실려 나오는 시신들 속에서 주검으로 변한 주서를 찾았다. 그의 가느다란 몸에 난 상처를 하나하나 쓰다듬던 온객행의 비애(悲哀)는 살의(殺意)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서호 근처에 있던 마을이 물에 잠겼다. 서호의 장마는 눈이 내릴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그것을 보고 있던 공공이 온객행을 멈추고 벌한 것이다.
주서는 옥황상제(玉皇上帝) 앞에 무릎 꿇고 빌었다. 온객행의 죄를 대신해서 자신이 벌을 받겠다고 빌었다. 옥황상제는 그에게 은하수에 몸을 던질 것을 명했다. 별이 흐르는 강물에 빠진 사람은 다시는 환생할 수 없다. 주서는 옥황상제의 처분에 답했다.
“감은합니다.”
온객행의 죗값을 대신 지고 은하수에 몸을 던진 주서를 진성현녀가 거두었다. 태양 가장 가까이에 척박하고 외로운 진성에 그렇다 할 가신 한 명 없는 진성현녀가 주서를 가신으로 삼았다. 주서가 진성현녀의 가신이 되기 전에 그녀에게 부탁한 것이 한 가지 있는데, 진성현녀에게 빚이 있는 천존은 진성현녀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주서는 속세에서의 모든 기억을 버리고 다시는 땅의 일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서약(誓約)을 하고 진성사자(辰星使者)가 되었다.
주자서는 온몸이 타오르는 것 같은 열기를 버텨보고자 눈을 감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점점 하얗게 바래는 그의 의식을 더는 잡을 수 없어 그만 놓고 말았다. 주자서는 정신을 놓으면서 생각했다. ‘이게 마지막이구나… 흑랑께서 슬퍼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어쩌면 주자서는 온객행을 이미 좋아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주자서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작은 조각배 위에 앉아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강물 위에 크고 작은 배가 보였다. 주자서는 작게 한숨을 쉬고 은은하게 빛나는 강물을 보았다. 반짝이는 작은 별들이 모여 강이 되었다. 직녀가 견우를 만나기 위해 건너야 한다는 은하수가 이럴까? 강물로 손을 가져가는 주자서를 막은 것은 배에 함께 타고 있던 사람이었다. 온화하게 웃고 있는 그는 연꽃을 닮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주자서는 왜 그 옷이 연꽃을 닮았다고 생각했는지 알 수 없었다.
남자가 주자서에게 웃으며 말했다.
“노온은 잘 지내는가?”
주자서가 고개를 들어 남자를 보고 말했다.
“노온?”
남자가 고개를 숙이고 작게 웃으며 말했다.
“너는 그를 뭐라고 부르지?”
주자서는 한참 남자를 보고 있다가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흑랑.”
남자가 다시 고개를 들어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우리 여러 번 만났는데 기억하는가?”
주자서가 눈썹을 찌푸리자 남자가 말했다.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되네. 천존께서도 전부 들어주실 수는 없으셨겠지.”
주자서가 소매를 들어 공손히 인사했다.
“기산의 주가 자서. 인사드립니다.”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덕분에 현녀께서도 모두 내려 놓을 수 있게 되었네.”
주자서는 남자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어서 소매를 내리고 고개를 숙였다. 남자가 말을 이었다.
“받기만 원하는 자는 그에게 주고 있는 자를 참으로 쉽게 잊더군.”
남자가 한숨을 쉬고 말했다.
“노온은 다행히 받기만 원하지는 않았어. 앞으로 그를 잘 부탁하네.”
주자서가 고개를 들어 남자를 보고 말했다.
“제가 뭐라고 그를 부탁하십니까? 직접 하십시오.”
남자가 주자서를 보고 낮게 웃으며 말했다.
“그가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주자서가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남이 슬퍼하는 것을 즐기는 치가 어디 있소?”
남자가 조금 놀란 듯 주자서에게 말했다.
“그런가? 남의 슬픔을 즐기는 치는 아주 많은 줄 알았는데.”
주자서도 남자가 하는 말의 뜻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작게 코웃음 쳤다. 남자가 강물에 손을 담그며 말했다.
“그대의 영혼은 아직 이곳에 올 때가 되지 않았으니 돌아가는 것이 좋겠네.”
남자의 손에 담긴 강물이 반짝반짝 빛났다. 주자서가 그의 손을 보고 말했다.
“은하수 같습니다.”
남자는 ‘하하하’ 웃으며 말했다.
“그대는 알고 있는가 은하수의 기원(基源)을? 이 빛나는 별들이 무엇인지 아는가?”
주자서가 남자를 보고 말했다.
“별이 되고 싶은 혼령들이었겠지요. 땅에 있는 이들을 지켜보고자 하는 사람들이었겠지요.”
남자가 주자서를 보고 슬프게 웃으며 말했다.
“맞아.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기 위해 영혼을 태워 별이 되었지.”
남자가 손에 쥔 강물을 놓고 말했다.
“너는 영혼을 태워 별이 되고 싶을 만큼 사랑한 이가 있는가?”
주자서는 곰곰이 생각하다 말했다.
“모친을 위해서라면 그리 하겠소.”
남자가 잠시 강물을 들여다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그것은 자네 몫이 아니군.”
주자서가 남자를 보고 물었다.
“무슨 소리요?”
남자는 대답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자서를 내려보고 말했다.
“그대가 찾기를 바라겠네. 영혼을 태워 지키고 싶을 만큼 사랑하는 이를. 쉽지 않네. 모두 찾는 것도 아니네. 하지만 찾으려고 하면 누구든 찾을 수 있지.”
주자서가 고개를 들어 남자를 보았다. 남자는 인자하게 웃으며 주자서에게 말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끝났네. 나의 노온을 부탁한다는 말은 철회(撤回)하지. 대신 그대가 행복하기를 바라겠어.”
남자는 주자서에게 다가가 그의 이마에 손을 올려 놓았다. 남자의 손이 닿은 부분이 점점 뜨거워지더니 곧 주자서의 시야가 또 다시 새하얗게 바랬다. 주자서는 정신을 잃어가면서도 남자가 왜 마지막에 그에게 온객행을 부탁한다는 말을 철회했는지 알 수 없었다. 남자가 부탁했다면 주자서는 부채감으로 온객행을 받아 주었을 텐데.
온객행은 적송자의 팔에 매달려 울먹이며 말했다.
“유서에게 물비린내가 난다고 말했다구요. 우리 유서는 헤엄도 못 치고, 물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말입니다.”
적송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보았다. 주요는 온객행 옆에 앉아 고개를 흔들었고 공공과 뇌공은 심각한 대화를 하는 중이었고 금모원군과 청구는 어디에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적송자가 온객행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그래도 올 때 보니 자네가 뽑은 복숭아나무는 다시 잘 심었는지 옥산은 울창하던데?”
온객행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유서는 겁이 많아서 귀신이나 요괴를 무서워해요. 놀랄 때마다 저에게 붙어오는데 그의 체온이 너무 따뜻해서….”
적송자는 얼굴을 구기며 주요를 보았다. 주요는 못 볼 꼴을 봤다는 표정으로 온객행을 보며 혀를 찼다. 온객행은 한참 새로 얻은 내자의 사랑스러움을 자랑하다가 주안상에 머리를 처박고 곯아떨어졌다.
적송자가 주요를 보고 말했다.
“그럼 그 사람은 잊은 건가?”
주요가 온객행을 일으켜 자기 몸에 기대게 하고 말했다.
“난 자리를 채웠으니 그걸로 된 것 아닙니까?”
주요가 술잔을 들어 비우고는 말했다.
“원군께서는 대체 왜 이렇게 독한 술을 대접하는 걸까요?”
적송자가 금모원군이 앉아 있던 상석을 힐끔 보고 말했다.
“원군이 하려는 일에 딱히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네도 알지 않는가? 나와 뇌공에게 남은 원한이 있다는 것을.”
주요가 웃으며 말했다.
“적송자. 적송자. 어찌 아직도 모르십니까?”
적송자가 주요를 쏘아보며 술잔을 들어 비웠다. 주요가 온객행을 바닥에 잘 눕히고 말했다.
“적송자. 원한은 스스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제 내려 놓으세요.”
적송자가 주요와 자기 술잔에 술을 채우며 말했다.
“하하하. 수원. 정말 대선 같은 말을 하는군.”
주요가 술잔을 들어 적송자에게 보이며 말했다.
“적송자께서 원하시면 언제든지 그 은원은 관용의 계기가 됩니다.”
그리고 술잔을 들어 비웠다. 적송자 역시 술잔을 들어 비우고 말했다.
“나는 치욕을 잊을 수가 없어.”
주요가 슬프게 웃으며 말했다.
“적송자. 제 삶은 그 자체가 치욕입니다.”
적송자가 주요를 보고 슬프게 웃으며 말했다.
“용케 버티고 있군.”
주요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 모두 애써서 버티고 있지요.”
적송자는 술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아무래도 뇌공하고 좀 대화를 해야겠어.”
주요가 일어나는 적송자를 힐끔 보고 말했다.
“원군께서 부탁하시는 일을 거절하지 마세요. 이번 일에 책임을 지게 되시면 그 전보다 더 뒷방으로 가셔야 될 겁니다.”
적송자가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수원?”
주요가 고개를 들어 적송자를 보고 말했다.
“애초에 원망의 대상이 틀렸어요.”
적송자는 ‘허’하고 코웃음 치고 뇌공과 공공이 있는 자리로 갔다.
주요는 바닥에 웅크리고 자는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우리는?”
주요가 온객행의 뺨에 손을 올려 쓸었다. ‘처음 태평호에 왔을 때 온객행이 어떠했더라?’ 같은 생각을 하며 주요는 웃었다. 주요는 갑자기 고상이 많이 보고 싶었다. 태평호에 아직 돌아오지 않은 천교와 보살도 보고 싶었다. 적송자를 만난 김에 천교와 보살 얘기를 하여 그 아이들도 신분을 올려주는 것이 맞는 것 같아 주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적송자를 찾았다. 공공과 뇌공, 적송자가 대화하는 것을 보고 있던 주요는 참으로 오랜만에 대선 자리가 아쉬웠다. 평생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하였었는데 역시 아직도 깨우칠 것이 많이 남은 중생(衆生)인 것이다. 사실 주요는 대선으로 살았을 때보다 무지기로 살면서 소중한 것이 훨씬 많이 생겼다.
금모원군은 거처로 보낸 양조가 다시 남궁으로 들어오자 미간을 찌푸렸다. 옆에서 시중을 들던 섬여가 고개를 돌려 양조를 보고 눈치껏 청구를 동궁으로 보냈다. 양조가 금모원군에게 다가와 말했다.
“원군. 수원께서 데려온 화사와 발의 아이가 사라졌습니다.”
금모원군이 작게 한숨을 쉬자 양조가 말을 이었다.
“봉황께서는 아무래도 동왕공과 현무가 벌인 일 같다고 하십니다.”
금모원군이 혀를 차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섬여에게 말했다.
“섬여. 가서 독한 술을 가져와라. 오늘 남궁에서 모시는 손님들 중 단 한 명도 내일 중천까지 남궁을 떠나서는 안된다.”
섬여가 고개를 조아리고 상석에서 폴짝 뛰어 남궁의 내실로 향했다. 원군이 양조의 시중을 받아 동궁으로 향하며 말했다.
“지금 동궁에는 누가 있지?”
양조가 손님들의 눈치를 보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린자께서 계셨는데 희발께 가신 것 같습니다. 지금은 봉황 혼자 계십니다.”
원군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가서 대려와 소려를 불러와라. 천존께 급히 전할 것이 있다.”
양조가 포권하여 인사하고 북궁을 향해 뛰기 시작하자 원군이 그를 말리며 말했다.
“양조! 아니다. 내가 가는 것이 빠르겠다. 너는 어서 가서 쉬어라.”
양조가 멋쩍게 웃자 원군이 양조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내일 중천까지 모두 기력을 회복해 두어라. 너희는 그것을 가장 최우선으로 해라.”
양조가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네. 원군.”
훌쩍 날아 북궁에 도착한 금모원군은 대려와 소려를 찾았다. 대려가 금모원군의 기척을 읽고 처소에서 나와 인사하며 말했다.
“원군.”
금모원군이 대려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교견. 봉호(蜂虎)랑 다녀올 곳이 있다.”
대려가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원군. 봉호는 지금 번을 서고 있어요. 대정을 시키시지요.”
금모원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대정은 어디 있지?”
대려가 휘파람을 불자 중궁 쪽에서 청조가 날아왔다. 금모원군을 발견한 청조가 금모원군 앞에 착지하고 인사했다. 금모원군이 대려와 청조의 소매를 잡고 북궁의 외실로 향하며 말했다.
“너희는 삼원(三垣)으로 가서 천존과 진성현녀께 소식을 전하도록 해라.”
대려가 고개를 들어 청조를 보고 말했다.
“원군. 아직 청조는….”
금모원군이 청조를 보며 말했다.
“너는 능히 할 수 있다.”
청조가 결연한 표정으로 금모원군과 대려를 보며 말했다.
“네. 할 수 있습니다.”
원군이 대려와 청조를 하늘로 보내고 다시 남궁으로 돌아왔을 때, 공공과 온객행은 평상에 누워있었고 적송자와 뇌공, 주요만 탁상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원군이 나타나자 적송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금모원군에게 다가가 말했다.
“원군. 어디 다녀오십니까? 이제 막 술자리가 시작되었는데.”
금모원군이 적송자를 다시 자리로 안내하며 말했다.
“오늘은 정말 끝까지 마셔봅시다.”
그리고 곁에서 술 시중을 들고 있는 섬여를 시켜 술을 더 들이게 했다. 주요는 고개를 흔들며 금모원군에게 말했다.
“원군. 저희에게 이 술이 다 무슨 의미입니까? 하실 말씀이 있으면 어서 하세요.”
원군이 자리에 앉아 주요를 보고 말했다.
“수원.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있으니 그것은 잠시 미루도록 하지.”
주요가 적송자와 뇌공의 눈치를 보고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뇌공이 말했다.
“원군께서 한직이라고 하는데 오히려 한직이라도 됐으면 좋겠소.”
금모원군이 뇌공을 보고 말했다.
“뇌공. 왜 이제야 오셨어요. 저에게 오셨으면 제가 설마 뇌공을 홀대라도 할까 봐요?”
적송자가 코웃음 치고 말했다.
“요즘에는 사방신이니 사령이니 하는 것들이 판을 치니 우리가 뭘 할 수 있겠는가?”
금모원군이 미간을 찡그리고 말했다.
“어디 감히 사방신과 사령이 뇌공과 적송자께 무례를 범한다는 말입니까?”
뇌공이 ‘허허허’ 웃으며 말했다.
“아니네. 아니야. 무슨 무례를. 그냥 늙은이와 어울려 준 것이지.”
적송자가 뇌공을 쏘아보며 말했다.
“이 노인네는 술만 들어가면 뭐든 ‘허허허’ 하고 넘기지.”
금모원군이 적송자를 보고 말했다.
“요대의 이야기는 누구에게 듣고 오셨습니까?”
뇌공이 술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서왕모의 요대를 서왕모 허락 없이 찾을 수 있는 자가 누구이겠는가?”
적송자가 뇌공에게 술잔을 내밀며 말했다.
“그러게 내가 그때 동왕하고 혼인하지 말라고 했잖아.”
금모원군이 적송자가 하는 것처럼 뇌공에게 술잔을 내밀며 말했다.
“그도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어요.”
뇌공이 적송자와 원군의 술잔을 채우고 말했다.
“허허허. 그것은 내가 제일 잘 알지.”
금모원군이 적송자에게 말했다.
“적송자께서 혹시 괜찮으시면 우리 패하를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적송자가 술잔을 비우고 금모원군을 보며 말했다.
“영귀를?”
금모원군이 고개를 끄덕이고 술잔을 비웠다. 뇌공이 다시 술잔을 채우며 말했다.
“북쪽에 무슨 일이 있는가?”
금모원군이 술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현천상제가 조락(凋落)하신 이후로 일이 끊이지 않습니다.”
뇌공이 술잔을 들어 비우고 말했다.
“그 정도 인가?”
주요가 거들었다.
“지금 현무를 하고 있는 현명은 원래 동북에 살던 수귀(水龜)로 현무자리에 앉기는 좀 부족하긴 하지요.”
적송자가 술잔에 술을 채우며 말했다.
“아무래도 현천상제 후임으로 가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본인이 하겠다고 하니 시켜준 것이지.”
금모원군이 적송자를 보고 말했다.
“적송자께서 한다고 하셨으면 좋잖아요.”
적송자가 금모원군을 보고 말했다.
“시켜주겠는가? 나의 상전은 치우였는데?”
금모원군이 코웃음 치고 말했다.
“치우의 신하이시니 더욱 알맞은 자리가 아닙니까?”
뇌공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원군 우리는 우리를 따르는 가신도 한 명 없네. 언제적 치우인가?”
금모원군이 뇌공을 보고 말했다.
“가신이야 필요 없으시니 안 두신 것 아닙니까? 필요하시면 말씀하세요. 요대에 쓸만한 아이들이 많으니.”
적송자가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그럼 나는 패하의 가신이 되는 건가?”
금모원군이 ‘하하하’ 웃으며 말했다.
“설마요. 패하가 적송자의 제자가 되는 것이겠지요.”
적송자가 화색을 하며 물었다.
“서왕모. 패하를 내 제자로 들여도 좋다는 말인가?”
금모원군이 술잔을 채우며 말했다.
“우리 패하가 적송자 성에 차시면 그리하세요.”
적송자가 ‘허허허’ 웃으며 술잔을 들었다.
금모원군이 뇌공을 보고 말했다.
“뇌공께서도 아시지요. 도예께서 요즘….”
뇌공이 술잔을 멈추고 금모원군을 보았다. 금모원군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다행히 읍강과 희발을 기억하셔서 저희가 돌봐 드리고 있는데….”
적송자가 코웃음 치며 말했다.
“백룡과 백호는 뭐하고 그것을 기린이 한다는 말인가?”
금모원군이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적송자께서 잊으셨어요? 도예를 봉인한 것이 누구인지를?”
적송자가 ‘아’하고 작게 탄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뇌공이 말했다.
“그렇지 욕수는 백호로 봉해진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어쩔 수가 없었겠군.”
금모원군이 뇌공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기린은 사령의 수장이라 수장의 일로도 바쁜데 도예의 일로 묶여 있으니 좀처럼 요대에도 오질 못해요.”
뇌공이 ‘허허허’ 웃으며 말했다.
“도예가 나를 알아볼지 모르겠군.”
금모원군이 뇌공의 술잔을 채우며 말했다.
“당연히 기억하지요. 어찌 잊겠습니까? 필요하신 것은 말씀만 하세요. 서왕모가 돕겠습니다.”
뇌공이 술잔을 비우고 말했다.
“산천대제는….”
금모원군이 뇌공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저희 부군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설마 제가 죽이기라도 하겠어요?”
적송자가 원군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차라리 죽이게. 그 치는 오히려 죽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어.”
뇌공이 맞장구 치며 말했다.
“죽이는 것이야 어렵지 않지. 그 죄를 누가 감당하는 것인가의 문제 아닌가.”
금모원군이 웃으며 말했다.
“동왕공의 일이야 사방신과 오룡을 잘 다스리면 될 일입니다.”
뇌공이 금모원군을 힐끔 보더니 물었다.
“누구를 갈아 치우려고 그런 말을 하는가?”
금모원군이 술잔을 들어 입술을 축이고 말했다.
“제일 쓸모없는 것부터 치워야지요.”
적송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동왕공을 죽이자니까?”
주요가 소매를 들어 입을 가리고 웃으며 말했다.
“동왕공을 담금질하는 자들부터 치워야지요.”
적송자가 술잔을 내려놓고 주요를 보며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금모원군이 적송자와 뇌공의 술잔을 채우며 말했다.
“그러니 다음부터는 일을 하시기 전에 좀 알아보고 하십시오.”
뇌공이 눈썹을 찌푸리며 금모원군을 보았다. 적송자가 뭔가 말하려는데 주요가 손을 들어 그들을 멈추고 말했다.
“혹시 기억하십니까? 제가 왜 무지기가 되었는지?”
뇌공이 주요의 말에 고개를 꺾어 ‘하하하’ 하고 웃었다. 적송자 역시 ‘하하하’ 웃으며 말했다.
“그대가 어찌 무지기라는 말인가?”
주요가 금모원군을 보고 말했다.
“원군. 저는 놓아줄 준비가 된 것 같습니다.”
금모원군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 다행이구나.”
뇌공이 다시 술병을 들어 다른 이들의 술잔을 채우며 말했다.
“큰일이 일어나려 하는가?”
금모원군이 양손으로 술잔을 들고 말했다.
“세상이 조용하다 해도 수많은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는 법이지요. 그것의 크고 작음을 정하는 것은 하늘입니다.”
금모원군의 말에 적송자와 뇌공도 술잔을 들었다. 주요도 두 손으로 술잔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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