蛇苺 第18

連環計 | 18. 고리를 잇는 방법.

산천대제가 다녀간 이후로 별궁 근처에는 그 전보다 더 많은 군병이 배치되었다. 별궁 내부이긴 하지만 동문에서 멀지 않은 주자서와 온객행의 객실은 그전에도 다른 곳보다 지켜보는 눈이 많았는데 지금은 그것보다 훨씬 많은 눈이 그들을 감시하고 있다. 보호라는 명목의 감시는 주자서의 행동 범위를 객실 내부로 한정하게 했는데, 깃털 갑옷을 입은 군관부터 푸른색 가죽 비늘갑옷을 입은 군관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그들의 눈이 신경 쓰여서 정언(井鄢; 화장실)에 다녀오는 것도 눈치가 보였다. 주자서는 그래서 전보다 더 안 마시고 더 안 먹었다. 딱히 몸을 움직이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라 그렇게 배가 고프지도 않아서 몸을 소홀히 하니 주자서는 잠이 많아지고 멍하게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런 주자서를 보고 있는 온객행만 애가 타서 온객행의 영력이 한껏 날이 서 있었다.

창호 문을 열어 그 앞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고개를 괴고 정원을 구경하던 주자서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딱히 큰 의미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 주자서는 좀 심심했다. 물론 산천대제가 다시 와서 난동을 부리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기는 했다. 산천대제께서는 주자서를 왜 황룡에게 데려간다고 했을까? 태평호에서 서왕모의 요대까지 오는 길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지만 이 사달의 이유를 모르니, 지금 주자서의 뒤통수를 뚫어져라 애절하게 쳐다보고 있는 온객행이 알아서 하겠지 싶은 생각으로 마음을 내려 놓았다. 온객행이 말하는 그들의 짧은 한 갑자는 주자서에게는 너무 고달프고 길어서 이번 생에는 장수할 팔자는 아닌가 싶기도 했다. 주자서는 살랑이는 바람과 함께 실려 온 작약의 향기가 좋아서 눈을 감았다. 그 향이 월계화와 비슷하여 낙읍의 모친이 떠올라 주자서는 또 다시 한숨을 쉬고 말았다. 온객행이 주자서 옆에 의자를 붙여 놓고 앉아 말했다.
“유서….”
주자서는 다시 눈을 떠서 옆에 앉은 온객행을 힐끔 보았다.
“유서 배고프지 않은가? 목마르지 않은가?”
유서는 작게 고개를 흔들고 다시 시선을 창호 문밖으로 던졌다. 창호 밖의 풍경에 갑옷을 입은 군병이 들어와서 주자서는 작게 혀를 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온객행은 안절부절못하더니 객실을 나갔다.

주자서는 심심하여 객실 내부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넓다면 넓고 좁다면 좁은 객실에는 사실 가구가 많지 않아서 조금 텅 빈 느낌도 들었다. 벌써 이틀이나 온객행과 함께 잠을 청했던 침상은 자세히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크기가 커서 주자서는 자기의 몸이 큰 것인지 온객행의 몸이 큰 것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생각하다 헛웃음 치고 고개를 흔들었다. 겨우 이틀인데 한 침상에서 같이 자는 것은 별일 아닌 일이 되어 버린 것이 우스웠다. 딱히 주자서가 걱정할 만한 일을 온객행이 하지도 않았고, 조금 서늘한 온객행을 끌어안으면 잠이 잘 왔기 때문이다. 몸이 고단하여 죽은 듯이 자는 일이 허다했던 군영의 생활을 생각하면 이 곳의 생활은 안락하다 못해 무료한데 마음이 그렇지 못했다. 내려 놓으려고 해도 자꾸만 치미는 이 불안한 마음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으니 한숨만 쉬는 것이다. ‘죄를 지은 것은 하늘인데 어찌 천벌은 내가 받고 있는지….’ 주자서는 열린 창호 밖을 슬쩍 보고 장지문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주자서는 장지문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장지문은 열리지 않았다. 딱히 걸쇠를 걸어 놓거나 문 앞이나 뒤에 뭔가를 가져다 놓은 것도 아닌데 열리지 않았다. 주자서는 작게 혀를 차며 말했다.
“온객행.”
그리고 조금은 화가 나서 탁자로 가서 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러다 창호 문으로 다가가 밖을 살펴봤다. 요대의 동문으로 나가는 곳에 군병이 교대를 하고 있는지 조금 부산스러웠다. 주자서는 창호 문에 걸터앉아 있다가 훌쩍 창호 문을 넘어 밖으로 나왔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동문으로 갔다. 동문에 서 있는 관병은 자기들끼리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지 주자서가 동문을 넘어 요대를 나가는데도 아무것도 묻지 않고 손을 흔들어주었다. 주자서는 공손히 소매를 들어 인사하고 옥산으로 나왔다.


온객행은 답답하게 별궁에 갇혀 있는 주자서가 걱정이 되어 금모원군께 다시 종화산으로 돌아가겠다고 고하려던 참이다. 별궁을 나와 남궁에 들어서자 사령(四靈) 봉황(鳳凰)과 응룡(鷹龍)이 온객행을 발견하고 인사했다.
“흑망. 오랜만이네.”
온객행이 소매를 들어 응룡과 봉황에게 인사했다.
“안시선(安市仙), 경진선(庚辰仙).”
응룡이 웃으며 말했다.
“그 이름 참 오랜만에 듣는군.”
봉황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취수와 약수를 건너러 왔나? 천존게서 북해 용왕 자리를 사하셨다며?”
응룡이 온객행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축하하네. 승천하겠군.”
봉황이 웃으며 말했다.
“용왕이 되면 자주 보겠네.”
온객행이 고개를 젓고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저는 원군께 부탁이 있어서 잠시 들른 것입니다.”
응룡이 눈썹을 찌푸리고 물었다.
“무슨 뜻인가? 자리를 거절할 생각인가?”

봉황이 온객행에게 가까이 다가가 손을 들고 속삭였다.
“요즘 하늘이 아주 시끄럽네. 천존께서도 원군께서도 걱정이 많으시네.”
온객행이 눈을 굴리고 말했다.
“어찌 미천한 저에게 용왕 자리를….”
응룡이 온객행을 동궁 쪽으로 이끌며 말했다.
“묻고 싶은 것이 많으니 자리를 옮기지.”
봉황이 맞장구를 치며 온객행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영귀(靈龜)와 기린(麒麟)은 만나보았는가? 그들은 요즘 그 북해 용왕 자리 때문에 아주 바쁘네.”
온객행이 아쉬운 듯 중궁을 바라보자 응룡이 그에게 말했다.
“장가 들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내자는 어떠한가? 정말 묻고 싶은 것이 많아.”
봉황이 거들었다.
“맞아! 대체 어떻게 한 것인가? 봉인된 동안 대체 무슨 짓을 한 건가?”
그리고는 호쾌하게 ‘하하하’ 하고 웃었다.


옥산의 복숭아나무 가지 끝에 복숭아가 탐스럽게 열려있다. 주자서는 복숭아를 구경하며 걷다가 작은 아이가 높은 가지에 있는 복숭아를 따려는 것을 발견했다. 주자서는 주변을 둘러보고 혹시 다른 사람이 있는지 확인했지만 아이는 혼자서 커다란 망태기에 복숭아를 따고 있었다. 주자서가 다가가 가지 끝에 있는 복숭아를 따서 아이에게 건넸다. 아이가 활짝 웃으며 복숭아를 받아 들고 말했다.
“파사. 감사합니다.”
주자서는 자신을 파사라고 부르는 것이 의아했지만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 말았다. 한동안 아이가 복숭아를 따는 것을 도왔는데 멀리서 아이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성령(成嶺)!”
아이가 커다란 망태기를 들려고 하자 주자서가 성령에게 물었다.
“들 수 있겠는가?”
망태기를 들어 아이의 등에 메 주려는 데 아이의 등에 아주 작은 검은 날개가 있었다. 성령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자서가 건네는 복숭아가 가득 든 망태기를 번쩍 들고 소녀를 불렀다.
“소린자(小憐姊)!”
아이는 소녀가 반가운지 그녀에게 달려갔다.

성령을 부른 소린이 주자서에게 다가와 말했다.
“누구신데 옥산에 계시오?”
주자서가 소매를 들어 공손히 공수했다. 뭐라고 소개하면 좋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소린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파사가 왜 옥산에 있느냐는 말이오!”
소린은 자신에게 다가온 성령의 어깨를 잡아 자기 뒤로 오게 하고 경계하는 기색으로 주자서를 노려보았다. 주자서를 노려보는 소녀의 기세가 대단하여 주자서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아… 나는 파사가 아니오.”
소녀가 말했다.
“그럼 이 파사의 기운은 무엇이오!”
주자서가 손을 내리고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아… 그러니까 나는….”
하늘에서 ‘푸드득’ 하고 새가 나는 소리가 나더니 앙소가 내려와 말했다.
“소린, 무슨 일이냐?”
소린이 앙소에게 달려가 그의 소매를 잡고 주자서에게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현조어르신, 파사가 들어왔어요.”

앙소가 주자서를 발견하고 놀라며 말했다.
“아! 흑망의 내자?”
소린이 앙소의 허리를 안고 두려워하는 기색으로 말했다.
“흑망?”
앙소가 소녀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아. 괜찮다. 괜찮아 저 자는 사람이니 무서워할 것 없다.”
성령이 주자서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사람?”
소린이 얼른 앙소의 품에서 나와 성령의 소매를 붙잡고 말했다.
“성령!”
아이가 웃으며 주자서에게 손가락질하고 말했다.
“시랑(豺狼)께서 사람은 맛있다고 그랬어.”
앙소가 아이를 붙잡고 말했다.
“성령! 안돼. 저것의 주인은 파사라서 먹으면 안된다.”
주자서는 조금 당황하여 얼굴을 굳히고 조금 뒷걸음질 쳤다. 저렇게 조그만 아이도 사람을 먹는다고 하니 확실히 요괴들이 있는 곳이구나 싶어서 주자서가 다시 소매를 들어 공수하고 말했다.
“저는 이만 별궁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앙소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원군의 허락 없이 요대에 들어갈 수 없네. 어떻게 나왔나?”
주자서는 주변을 둘러보며 나왔던 동문을 찾았다. 하지만 동문은커녕 건물도 보이지 않았다. 앙소가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요대에는 원군의 허락이 없으면 함부로 들어갈 수 없네.”
주자서는 조금 허탈하여 고개를 끄덕이고 앙소를 보았다. 앙소는 물끄러미 주자서를 보더니 말했다.
“나는 옥산을 지키는 일개 말단이라 요대에 들어갈 수 없네.”
성령이 앙소의 소매에 매달리며 ‘까르르’ 웃고 말했다.
“현조 어르신이 말단이래.”
소린이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오늘 천도(天桃)를 요대에 올리는 날입니다.”
앙소가 소린의 얼굴을 쓸며 말했다.
“그래. 오늘은 누가 가지고 들어가느냐?”
성령이 대신 답했다.
“희상랑(稀喪娘).”
앙소가 한숨을 쉬고 말했다.
“화사는 파사를 싫어하는데 어쩌나.”
주자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화사?”
앙소가 성령과 소린을 놓아주고 주자서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일단 부몽에게 말해보고 안되면… 그건 그다음에 생각합시다.”

주자서는 소령과 소린, 앙소와 함께 옥산 중턱에 있는 작은 마을로 들어갔다. 성령, 소린과 비슷해 보이는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복숭아를 담은 망태기를 들고 붉은 옷을 입은 여인에게 다가가자 여인은 망태기를 받아 안에 든 복숭아를 꺼내 이리저리 골랐다. 복숭앗빛의 연한 색의 옷을 입은 소녀들이 여인이 골라낸 복숭아를 옥으로 만든 쟁반에 담아 마을 중앙에 있는 신당(神堂) 같은 곳으로 가져갔다. 앙소가 붉은 옷을 입은 여인에게 말했다.
“부몽(浮夢).”
여인이 앙소를 발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현조. 여기까지 무슨 일인가?”
앙소가 손을 내젓고 말했다.
“자네까지 현조라 부르는가.”
여인이 살포시 웃더니 앙소의 옆에 서 있는 주자서를 발견하게 고갯짓을 했다. 앙소가 말했다.
“이쪽은….”
성령이 주자서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흑망의 내자래요.”
앙소가 얼른 성령의 입을 막고 다급하게 말했다.
“발의 후손이오!”
주자서를 쳐다보고 있던 여인의 시선이 한순간에 날카로워졌다. 앙소의 말에 그녀가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발의 후손?”

주자서는 이 여인도 고상과 같은 화사라고 하니 조금은 친밀한 마음이 들었다. 주자서는 눈치껏 소매를 들어 인사했다.
“기산 주가 자서라고 합니다.”
부몽이 다가와 주자서를 보더니 표정을 구기고 소매로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
“물비린내가 진동을 하는군.”
요대에서 청조에게 들었던 물비린내 소리를 다시 들으니 주자서는 조금 마음이 주눅 들었다. 주자서가 소매를 든 채로 부몽을 힐끔 보았다. 부몽이 앙소에게 시선을 옮기며 물었다.
“이 치가 왜 여기 있소?”
앙소가 곤란하다는 듯이 허리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그러니까 그것이 말이네….”

성령이 주자서의 소매를 잡아 내리더니 그의 손을 ‘앙’ 물고 말했다.
“희상랑. 우리가 먹으면 안 돼요?”
부몽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
“네가 그 아이를 먹으면 이번엔 옥산 전체가 쑥대밭이 될지도 모르겠구나.”
주자서가 아이를 꺼리는 기색을 보이지 않자 소린도 주자서에게 다가가 그를 만져보며 말했다.
“살아 있는 사람은 처음 봐요.”
아이들이 만지작거리는 것을 개의치 않고 주자서가 앙소를 향해 고개를 돌려 물었다.
“흑랑이 찾지 않을까요?”
앙소가 주자서의 호칭에 ‘하하하’ 웃더니 말했다.
“흑랑?”
부몽도 소매를 든 채로 점점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주자서는 아이들의 손에 이끌려서 분홍색 옷을 입은 소녀들이 복숭아를 가져다 놓는 신당으로 향했다. 그 곳에는 붉은 옷을 입은 여인이 한 명 더 있었는데 그 여인은 찬합을 여러 개 펼쳐 놓고 옥 쟁반 위에 올려진 복숭아를 이리저리 살펴본 뒤에 찬합에 넣었다. 여인이 아이들을 발견하고 말했다.
“성령, 소린. 복숭아는 모두 땄는가?”
성령이 여인에게 달려가 안기며 말했다.
“소이(俏姨)! 내가 사람을 주웠어.”
주자서는 성령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소나(俏羅)가 자리에서 일어나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사람이라고? 하지만…?”
부몽이 신당 안으로 들어오며 소나의 말을 끊고 말했다.
“소나. 요대로 가려면 얼마나 남았지?”
소나가 장지문 밖에 있는 해를 보고 시간을 가늠하더니 말했다.
“술시(戌時) 지나서 해 질 녘 즈음이니 아직 두 시진도 더 남았습니다.”
부몽이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그동안 이 사람을 어쩌지?”

소나가 주자서에게 다가와 그를 유심히 보더니 말했다.
“혹 고상을 아시오?”
주자서가 고상의 이름을 듣고 품속에서 고상이 주었던 꽃 비녀를 꺼내 들고 말했다.
“내 모… 은인(恩人)이시오.”
소나가 주자서의 손에 들린 꽃 비녀를 보더니 작게 탄식하며 꽃 비녀를 쓸었다.
“아상.”
주자서가 꽃 비녀를 건네고 말했다.
“고상을 아시오?”
소나가 비녀를 뺨에 대보더니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아상은 나의 누이동생이오.”
부몽이 소나에게 다가와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소나. 수원대선께서 잘 보살펴 주실 거야.”
소나가 울상을 만들어 부몽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고 말했다.
“화사가 어찌 물가에 산다는 말입니까?”

주자서가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에 고개를 돌리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상께서는 잘 지내고 계십니다.”
소나가 몸을 틀어 주자서를 마주 보고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우리 아상은 잘 지냅니까? 건강해요? 그 망할 파사가 괴롭히지는 않습니까?”
주자서는 그 망할 파사가 자신의 부군이라는 것은 말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며 답했다.
“수원대선께서 잘 보살펴 주고 계세요. 태평호는 조용해서 심심한 것이 제일 걱정이신 걸요.”
소나가 얼굴을 구기며 말했다.
“파사의 봉인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까?”
주자서가 앙소를 힐끔 보며 눈치를 보자 부몽이 다가와 소나를 달래며 말했다.
“봉인이 끝나면 다시 돌아올 것이다. 살아 있으니 언젠가는 만나지 않겠니.”
소나가 손에 들린 꽃 비녀를 보고 주자서를 보았다. 주자서는 꽃 비녀와 소나의 얼굴을 번갈아 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그 비녀는 저보다….”
소나는 주자서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비녀에 입을 맞추더니 머리에 꽂았다. 부몽이 소나의 머리카락을 넘기며 말했다.
“예쁘다.”
소나가 부몽을 마주 보고 웃었다.


온객행은 요대의 동궁에는 처음 와 보는 참이다. 이 곳은 금모원군이 부리는 사령이 지내는 곳으로 금모원군의 거처인 북궁과 서궁의 규모와 비교하면 조금 작았지만 남궁보다는 컸다. 이 곳은 요대에 있는 다른 전각과는 달리 호위나 병졸이 보초를 서지 않았는데 보통 사령은 이곳에서 지내는 날보다 각자가 수호하는 지역에 머무는 날이 많기도 했고 감히 요대까지 침범하여 사령을 공격한다 해도 그들을 이길 수 있는 존재는 손에 꼽혔기 때문이다. 응룡이 서툴게 이리저리 움직이며 차를 준비하자 온객행이 눈치껏 소매에서 다구를 꺼내 차를 내리며 말했다.
“올해 태평호의 연잎향이 좋습니다.”
응룡과 황룡이 자리에 앉아 온객행이 권한 찻잔을 들어 향을 맡고 말했다.
“정말 향이 좋군.”
황룡이 찻잔을 ‘후후’ 불며 말했다.
“기린께서 아주 곤란하게 됐어.”
응룡이 찻잔을 비우고 다시 온객행에게 찻잔을 내밀며 말했다.
“맞아. 백룡이랑 함께 발등에 불이 떨어졌겠군.”

온객행이 차로 입을 축이고 물었다.
“도예(檮杌)께서는 아직도 봉인되어 계십니까?”
응룡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요즘 정신이 다시 돌아오신 것 같던데 또 모르지. 그 노인네는 너무 오래 살았으니까.”
봉황이 헛웃음 치고 말했다.
“아무도 사흉이 되고 싶어 하지 않으니 그렇지. 공공이 혼돈(渾沌)이 된 지도 벌써….”
응룡이 작게 한숨 쉬고 말했다.
“공공은 그 자리를 즐기는 듯해서 다행이야.”
봉황이 응룡을 보고 말했다.
“공공은 원래 사람을 좋아했으니까.”
온객행이 응룡과 봉황의 찻잔을 채우고 물었다.
“황룡의 일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봉황이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
“그 치 이야기는 무엇 하러 꺼내는가 괜히 마음만 답답해지게.”
응룡이 찻잔을 들고 얼굴을 구기더니 말했다.
“대체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찾을 수가 없어서 말이야.”

온객행이 응룡을 보고 물었다.
“황룡을 왜 찾으십니까?”
봉황이 온객행을 말리며 말했다.
“흑망. 그만두게. 응룡이 어찌 천궁에 갈 수 없게 되었는지 그대도 알지 않는가.”
온객행이 응룡을 향해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경진선 무례를 범했습니다.”
응룡이 ‘쯧’하고 혀를 차고 온객행 쪽으로 손을 흔들며 말했다.
“예를 거두게. 그게 자네 잘못인가? 천존께서 왜 그를 사람의 세상으로 보내셨는지 모르겠어.”
봉황이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사람들의 세상은 어떠한가? 하늘만큼 어지러운가?”
온객행이 찻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법이니까요.”
응룡이 온객행에게 물었다.
“사람들의 세상에는 전쟁이 났다던데 이러다 하늘에서도 무슨 일이 나는 건지 모르겠어.”
봉황이 응룡에게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응룡! 경진선. 입을 조심하게.”
응룡이 봉황을 향해 코웃음 치며 말했다.
“들으라면 들으라고 하게. 내게 더 잃을 게 뭐가 있겠나?”

온객행은 다시 찻잔을 들어 입을 축이고 말했다.
“제가 내자 삼은 이가….”
봉황이 화색을 하며 온객행에게 몸을 붙이고 물었다.
“그래! 혼인을 했다고? 촉룡께서는 허락하셨는가?”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룡이 말했다.
“촉룡께서 허락하신다고 티를 내겠는가? 어떤 이와 했는가? 사람인가?”
온객행이 다시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발의 후손과 혼인했습니다.”
응룡이 찻잔을 내려놓고 온객행에게 가깝게 붙어 앉으며 말했다.
“뭐?! 발?”
봉황이 놀란 기색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온객행에게 다시 물었다.
“황룡의 딸 발 말인가? 그녀의 후손이라고?”

응룡이 온객행에게 물었다.
“진성현녀(辰星玄女)께서 아시는가?”
봉황이 응룡의 입을 막으며 말했다.
“경진! 그 입을 정말….”
응룡이 입을 손으로 가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온객행이 응룡과 봉황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진성현녀께서 발을 거두셨군요.”
봉황이 ‘쯧’하고 혀를 차며 응룡에게 말했다.
“자네는 별안간 귀도 얇고 입이 가벼우니 우환(憂患)이 끊이지 않는 것이네!”
응룡이 봉황을 쏘아보며 말했다.
“흑망이 북해 용왕이 되면 다 알게 될 일인데 뭘 그러나.”
온객행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저는 부족해서 용왕 자리는….”

응룡이 온객행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오늘이라도 취수와 약수를 넘어 승천하면 될 일 아닌가?”
온객행이 한숨을 쉬고 한참 뜸을 들이자 봉황이 물었다.
“왜? 무슨 문제가 있는가?”
온객행이 눈썹을 축 늘어뜨리고 울상을 만들어 조금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의 내자 몸에 발의 능력이 봉인되어 있는데 그것이 조금 깨진 것 같습니다. 그 힘을 내자가 견디지 못하면….”
그리고 품에서 영견을 꺼내 눈꼬리를 찍었다. 응룡이 온객행의 등을 쓸며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말해보게.”
봉황이 다시 자리에 앉아 물었다.
“혹 사내인가?”
온객행이 고개를 들어 봉황을 보고 물었다.
“혹시 아시는 것이 있으십니까?”
봉황이 온객행을 한참 쳐다보더니 고개를 작게 흔들고 말했다.
“아니네. 내가 말할 자리가 아니니 원군께 듣게.”
온객행이 일어나 봉황에게 무릎 꿇고 소매를 들어 공수하며 말했다.
“안시선. 제발 안시선. 우리 유서를 구해주십시오.”
봉황이 자리에서 일어나 온객행을 일으키며 말했다.
“흑망. 이러지 말게.”

응룡이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이름이 유서라고? 버들개지처럼 아주 귀여운 여인이겠군.”
온객행이 고개를 젓고 영견으로 눈꼬리를 찍고는 말했다.
“유서는 사내입니다.”
봉황이 온객행을 다시 의자에 앉히고 말했다.
“사내라고… 정말 봉인이 깨지면 영혼이 타버릴지도 모르겠군.”
온객행이 봉황의 소매를 붙들고 말했다.
“안시선. 제발 우리 유서를 살려주세요.”
응룡이 봉황을 보고 말했다.
“이건 우리가 어찌 할 수 있는 정도를 아득히 뛰어넘는군.”
봉황이 응룡을 마주 보며 말했다.
“그러게. 흑망 그대는 언제나 나를 놀라게 하는군.”

응룡이 온객행을 보고 물었다.
“그런데 중궁에는 왜 가는 길이었나?”
온객행이 말했다.
“유서가 별궁 안에 갇혀 있는 것이 답답한 것 같아서 천도연까지 종화산에 가있으려구요.”
봉황이 자리에 가서 앉으며 말했다.
“그래서 별궁에 호위를 늘린 거군.”
응룡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원군께는 안가는 것이 좋네. 지금 동왕공이 와서 아주 기분이 안 좋으셔.”
봉황이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동왕공은 대체 요대를 어떻게 찾으시는 걸까?”
응룡이 찻잔에 차를 따르며 말했다.
“싫어도 서왕모의 부군이시니까요.”
봉황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근데 오룡 하나 대동 안 하시고 뭐가 그렇게 급하셔서 혼자 오셨지?”
응룡이 온객행을 손가락질하고 말했다.
“발 때문이겠죠”
봉황이 고개를 흔들더니 말했다.
“복잡하군.”

온객행이 봉황을 보고 물었다.
“산천대제께서는 왜 발의 힘을 탐하십니까?”
응룡이 온객행의 질문을 듣고 ‘하!’ 하고 숨을 들이켰다. 봉황이 응룡을 보고 혀를 차며 그를 불렀다.
“쯧! 경진!”
온객행이 다시 영견을 들어 나지도 않은 눈물을 찍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래도 내자가 불편해하니 종화산으로 가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응룡이 봉황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래. 동왕공도 촉룡께는 뭘 못하시겠지.”
봉황이 깊게 한숨 쉬며 말했다.
“정말 못하셔야 할 텐데 말이야. 동왕공께서 촉룡을 도발하면 진짜 하늘이 뒤집어지는 일이 일어날 거야.”
온객행이 소매를 들어 응룡과 봉황에게 인사하려고 하자 응룡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같이 가세. 나도 원군을 뵙고 드려야 할 말이 있으니.”
봉황도 일어나 나가는 장지문을 열고 손바닥을 펴며 말했다.
“그래. 같이 가지.”
온객행이 응룡과 봉황을 따라 동궁에서 중궁으로 연결된 회랑으로 나왔다.

중궁에는 금모원군이 용호좌에 앉아 있고 그 옆에 있는 작은 의자에 산천대제가 앉아 있었다. 산천대제가 연신 금모원군에게 무언가 말을 하고 있었는데 주유가 고하여 들어온 응룡과 봉황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동왕공. 나는 일이 바쁘니 약속된 날에 다시 오세요.”
산천대제가 금모원군을 따라 급히 상석에서 내려오며 말했다.
“서왕모. 그러지 말고 내 말을 들어보게.”
금모원군이 고개를 돌려 산천대제를 쏘아보며 말했다.
“여태 듣지 않았습니까? 발의 아이를 데려가려면 흑망도 데려가세요. 탁음대선 앞에서 혼인을 치렀는데 어찌 없는 일 친다는 말입니까? 그럼 가서 탁음대선께 말하고 오세요.”
금모원군은 응룡과 봉황 뒤에 서 있는 흑망을 발견하고 고개 너머로 산천대제를 힐끔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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