蛇苺 第17

關文捉賊 | 17. 문을 닫아걸고 도적을 포획하라.

온객행이 주자서가 받은 처방전의 약초를 구하기 위해 객실을 나와 별원으로 나오자 별궁을 나가는 문 앞에 검은 깃털의 군관이 서 있었다. 온객행은 그들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가 코웃음 치고 별궁 정원에 있는 풀들을 보며 약초를 찾았다. 군관들은 온객행이 정원에 들어가 풀숲을 헤치는 것을 보고 못마땅한 얼굴을 하고 고개를 내저었다. 온객행이 지백이 적어준 처방전의 약초의 절반 정도를 찾았을 때 기척이 너무 많이 느껴져서 일어나 별궁으로 들어오는 입구를 보았다. 그 곳에는 요대에서 일하는 푸른 옷을 입은 여우와 검은 깃털 갑옷을 입은 삼족오 여러 마리가 별원을 구경하고 있었다. 온객행은 그들의 시선이 자신이 아니라 별원을 향한 것이 기분 나빠 표정을 구기고 고개를 돌려 그들이 보고 있는 쪽을 보았다.

주자서는 식기와 다구를 정리하고 객실 내부를 구경했다. 이 곳은 그동안 머물렀던 곳들 보다는 조금 허름했는데 그동안 머물렀던 곳이 분수에 맞지 않게 과하다고 생각하던 참이라 주자서는 조금 마음이 놓였다. 날이 저무는지 내부가 어둑하여 주자서는 보이는 창호 문을 열었다. 구름 위에 있는 궁궐에 있는 것 치고는 평범한 바깥 풍경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자리에 앉아 별궁의 정원을 구경했다. 그러다 온객행이 한참 돌아오지 않는 것이 이상하여 밖으로 나가는 장지문을 살짝 열었다. 주자서가 머무는 객실은 다른 별궁의 건물들과는 조금 거리가 있고 바로 앞에 작은 정원이 있었다. 머리만 밖으로 내밀어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다른 사람이나 혹은 보았던 깃털 갑옷을 입은 이들의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아 주자서는 장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온객행이 작은 바구니를 들고 이리저리 풀숲을 들추는 것이 보이는 곳까지 나와서 정원의 돌난간에 앉았다. 온객행은 구름 같은 회색 장포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풀숲을 헤쳤다. 뭘 찾는지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바구니를 놓고 쪼그리고 앉아 풀을 캤다. 주자서가 주변에 있는 꽃나무를 보고 생각했다. ‘뭘 찾는 거지?’ 오뉴월에 피는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모란은 벌써 다 질 때가 된 것 같은데 크고 아름답게 피었다. 작약의 진한 향기가 가득한데 벌과 나비가 보이지 않아 조금 서운했다. ‘언제 마지막으로 꽃을 구경했더라.’ 삶이 고단하여 꽃을 즐길 여유도 없이 살았다. 살았던 집의 울타리에 월계화를 심었던 것 같은데 꽃을 만지려고 하다가 가시에 찔린 당질의 손가락을 쓸어주었던 기억이 났다. ‘녕(寧)이는 징집이 되었을까?’ 이제 막 관을 올렸을 당질 생각에 주자서는 한숨을 쉬었다. 주자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혹시 월계화는 없는지 별원을 거닐었다.

월계화 같이 생긴 꽃을 발견하여 쪼그리고 앉아 꽃을 살펴보는데 온객행이 다가왔다. 저녁노을에 본 온객행의 얼굴은 조금 붉어서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주자서가 자리에서 일어나 장포를 털고 말했다.
“이 화원에는 계절이 없는 듯합니다. 국화와 모란이 함께 핀 것은 처음 보았어요.”
온객행이 주자서의 팔을 잡아 객실로 향하며 말했다.
“왜 나와 있는가? 안에 있지 않고?”
주자서는 아쉬운 듯 보고 있던 꽃을 향해 고개를 돌리다 별궁으로 들어오는 문간에 모여 있는 군관들을 보았다. 다시 고개를 돌려 온객행에게 몸을 붙이고 물었다.
“혹시 여기 있는 분들도 사람을 드시오?”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바구니를 건네고 어깨에 팔을 두르며 뒤쪽을 노려보고 말했다.
“육신을 먹으면 다행이오. 저들은 혼령을 먹으니 더 위험하지.”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혼령이 먹히면 어떻게 됩니까?”
온객행이 다시 고개를 돌려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글쎄. 세상에서 사라지는 거라고 하던데.”
주자서는 그게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 몰라서 고개를 끄덕였다.

주자서가 온객행이 채집한 약초를 보고 물었다.
“이것은 다 무엇입니까?”
온객행이 객실의 장지문을 열고 주자서를 먼저 들여보낸 후 어깨너머로 여우와 삼족오를 흘겨보고 문을 닫았다. 온객행이 주자서가 탁자 위에 올려 놓은 바구니 안에서 나무뿌리와 잎사귀 같은 것을 대야에 가지고 가서 씻더니 도자기 그릇을 꺼내 화로 위에 올렸다.
“유서가 아프니까 달여 먹이려구.”
주자서가 표정을 구기고 말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약까지 먹어야 할 정도로 아프지 않아요.”
온객행이 하던 일을 멈추고 약초를 보고 서 있는 주자서에게 다가가 말했다.
“유서.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해주게. 흑랑은 모자라서 말해주지 않으면 모르는 바보니까.”
주자서가 시선을 들어 온객행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흑랑께서 모자란다고 하시면 저는 대체….”
온객행이 주자서의 허리를 끌어안고 말했다.
“분에 넘치지. 나의 유서는.”
주자서는 당황해서 온객행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고 밀어낼까 말까 고민하다가 온객행의 등에 손을 얹어 토닥이며 말했다.
“저는 정말 괜찮습니다. 아프면 꼭 아프다고 말씀드릴게요.”
온객행이 주자서의 어깨에 고개를 묻고 고개를 끄덕였다.

간단히 저녁을 먹고 온객행이 달여준 탕약까지 마신 주자서는 대야에 세수를 하고 겉에 입은 장포를 벗어 옷걸이에 걸었다. 객실을 다시 둘러보니 침상만 하나 있고 평상도 없고 딱히 몸을 뉠만한 곳이 없었다. 주자서가 중의를 벗을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데 온객행이 다가와서 주자서가 중의를 벗는 것을 도왔다. 주자서가 옷을 벗고 침상에 걸터앉아 말했다.
“흑랑께서는 어디서 주무십니까?”
온객행이 장포를 벗고 주자서 옆에 가서 앉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조금 피곤한 것 같기도 하오.”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거의 이레 동안 안 주무셨으니까요.”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고 고개를 돌려 주자서를 보았다. 주자서가 팔에 고개를 괴고 생각하더니 말했다.
“번(番)을 설까요? 먼저 주무시겠습니까?”
온객행이 고개를 돌려 조금은 작은 침상을 보고 말했다.
“조금 붙어서 자면 같이 잘 수 있을 것 같은데… 유서는 피곤하지 않은가?”

주자서가 몸을 일으켜 침상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신발을 벗고 침상 위로 올라갔다. 온객행도 입고 있던 중의를 벗어 옷걸이에 걸어 두고 침상에 걸터앉아 신발을 벗었다. 주자서는 침상 안쪽으로 깊숙하게 들어가 몸을 옆으로 뉘었다. 온객행이 조금은 주저하는 듯 침상 위로 올라오자 주자서가 온객행을 쏘아보며 말했다.
“희첩의 일은 하지 않을 것이오.”
온객행이 바로 누우며 말했다.
“유서가 원하지 않으면 나도 원하지 않는다니까.”
그리고 이불을 끌어 덮고 보란 듯이 양손을 얌전히 가슴 위에 올려 두었다. 주자서는 온객행이 하는 것을 한동안 보고 있다가 눈을 굴리고 등을 돌려 누웠다. 온객행이 고개만 돌려 주자서의 등을 보았다.

등만 보는 것이 조금 서운해서 온객행이 몸을 옆으로 누이고 주자서의 등을 끌어안았다. 주자서가 화들짝 놀라더니 온객행의 몸을 팔꿈치로 밀며 말했다.
“무슨 짓이오?”
온객행이 주자서의 등에 뺨을 비비고 말했다.
“부유각에서 했던 것처럼 그러면 안 되겠는가?”
주자서는 온객행의 몸을 밀어내는 것을 멈추고 잠깐 생각하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온객행은 그 허락이 기꺼워서 주자서의 목덜미에 고개를 묻고 주자서를 품에 가두어 안았다. 주자서는 처음에는 불편한 듯 몸을 굳히고 좀 바르작대더니 작게 한숨을 쉬고 잠을 청했다. 주자서의 숨소리가 점점 일정해지고 몸이 부드러워졌다. 주자서의 체온이 살짝 올라가서 온객행에게 조금 뜨겁다고 느껴질 정도가 되었을 때 온객행도 스르르 잠이 들었다. 사람의 체온은 따뜻하고 마음을 달래주어서 온객행의 마음을 조금씩 채운다.


다음날 아침 온객행이 눈을 떴을 때 주요가 주자서에게 주었다는 비녀가 눈에 들어왔다. 조금 푸른빛이 도는 옥으로 만들어진 비녀는 조금 짧았는데 그동안 머리를 매만져주지 않아서 조금 흐트러져 있었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몸에 두르고 있던 팔을 들어 옥비녀를 주자서의 머리에서 빼냈다. 주자서의 머리카락은 금방 흐트러져 내렸다. 온객행은 푸석하게 갈라진 주자서의 머리끝을 보면서 머릿기름을 얻어 발라줘야지 하는 생각을 하며 다시 눈을 감았다. 온객행의 목덜미에 느껴지는 주자서의 숨결이 간지러워서 온객행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온객행은 이불을 끌어 주자서에게 덮어주고 다시 팔을 둘러 주자서를 품에 안았다. 주자서는 잠깐 잠에서 깬 것처럼 몸을 뒤척이다 몸을 웅크리고 온객행의 내의 앞섶에 뺨을 비볐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몸짓이 사랑스러워 낮게 웃고 말았다.

주자서는 뺨에 닿아오는 옷감의 감촉이 익숙한 거친 것이 아니라 잠깐 꿈을 꾸는 줄 알았다. 조금은 서늘한 옷감에 뺨을 비비다 온객행의 낮은 웃음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주자서가 고개를 들어 자기를 안고 있는 온객행을 보고 뺨을 빨갛게 물들였다. 온객행은 일어난 주자서를 다스 추슬러 안고 말했다.
“유서. 조금 더 자게. 우리는 손님이니 더 자도 괜찮아.”
온객행은 속으로 ‘손님이라 하기보다는 볼모에 더 가깝지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조금 더 웃었다. 주자서는 잠이 덜 깼는지 온객행이 하는 대로 가슴에 고개를 기댔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아 말했다.
“이… 이것은.”
온객행이 주자서를 다시 자리에 눕히며 말했다.
“아니네. 희첩의 일이 아니라 그냥 잠을 자는 일이네.”
주자서는 맥이 풀려서 온객행의 팔을 베고 누워 말했다.
“밤 시중이 필요한 것이라면 여인을 구하십시오.”

온객행이 주자서의 가슴에 팔을 올려놓고 말했다.
“현리에게 물어볼 걸 그랬소.”
시원한 온객행의 체온에 다시 스르르 눈이 감긴 주자서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뭘 말이오?”
온객행이 주자서의 뺨에 귓가에 입을 맞추고 작게 속삭였다.
“사내들끼리 어떻게 정을 통하는지 말이야.”
주자서는 한동안 가만히 온객행 품에 안겨 있다가 찬물을 뒤집어쓴 사람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온객행에게 버럭 소리 질렀다.
“온객행!”
온객행이 고개를 팔에 괴고 주자서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응. 유서가 불러주니 더 좋군. 그 이름.”
주자서가 온객행을 넘어 침대에 걸터앉아 신발을 신으며 말했다.
“앞으로는 제가 바닥에서 자겠습니다.”
온객행이 몸을 돌려 주자서의 허리를 안고 말했다.
“찬 바닥에서 어찌 잔다는 말인가?”
주자서가 허리에 매달려 오는 온객행의 손을 잡아떼며 말했다.
“차라리 찬 바닥이 마음이 편할 것 같습니다.”
온객행이 자리에서 일어나 양손에 다 잡히는 주자서의 허리를 잡고 말했다.
“유서 자네 정말 너무 말랐군.”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신발을 신고 탁상으로 가서 찻주전자에 물을 올리고 화로에 불을 붙였다.

주자서가 흘러내린 머리를 정리하며 물었다.
“비녀는 어디 두셨습니까?”
온객행이 침상으로 다가와 머리맡에 두었던 옥비녀를 꺼내 주자서의 머리를 매만지며 말했다.
“목덜미를 가리는 것이 좋겠어요.”
주자서는 고개를 끄덕이고 별말 없이 온객행이 해주는 대로 했다. 온객행도 어제 벗어 놓은 옷을 찾아 중의를 입고 요대를 메고 장포를 둘러 입었다. 주자서는 대야를 찾아 물동이에 물을 채우더니 세수를 하고 옷을 입었다. 온객행이 은은하게 비치는 검은 장포를 주자서에게 둘러주며 말했다.
“이 옷은 정말 너무 야살스러운 것 같네.”
주자서가 얼굴을 구기며 말했다.
“예?”
주자서는 소매를 들어 하얀 중의를 은은하게 비치는 장포를 보았다. 원래 온객행의 몸에 맞춘 옷이라 소매가 길어 잘 정리하지 않으면 금방 주자서의 손을 덮었다. 그렇다고 또 너무 많이 소매를 털면 팔꿈치까지 훤하게 속살이 보였다. 주자서는 살면서 야살스럽다는 소리도 처음 들어 봤지만 옷을 다 입고 있는데 그러니 더욱 황당했다. 주자서가 고개를 흔들며 온객행에게 말했다.
“흑랑께서는 참 취향이 독특하시오.”
주자서가 다회(多繪)로 옷을 잘 추슬러 매고 탁상으로 가서 아직 찻잎을 넣지 않은 끓인 물을 마셨다.

온객행은 뺨을 붉히며 주자서를 빤히 보고 있다가 불쑥 물었다.
“혹 유서는 차를 즐기지 않는가?”
주자서는 조금 뜨끔하여 온객행을 보고 작게 고개를 흔들었다. 온객행이 소매에서 작은 나무함 몇 개를 꺼내 놓고 말했다.
“내가 가진 차는 모두 생차라 그러한가? 향을 맡아보고 골라보게.”
그리고 냄비를 꺼내 찐쌀을 넣고 죽을 끓였다. 주자서는 마셔도 탈이 나지 않는 물만 마셔도 다행인 생활을 너무 오래 해서 고상하게 차 맛을 즐기는 것이 어떤 것이었는지 잊어버렸다. 원래 차를 즐길 만큼 좋은 형편도 아니었고, 가끔 운이 좋으면 감잎이나 모과로 만든 차를 마셨지만 그것도 형편이 좋을 때 이야기였다. 모친께서 덜 여문 월계화를 따다가 말려서 차로 마시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주자서가 고개를 돌려 온객행에게 물었다.
“월계화도 차로 마시는 것을 아시오?”
온객행이 죽이 담긴 그릇에 껍질을 깐 연실을 넣고 말했다.
“알지요. 어혈을 풀어주어 여인에게 좋은 차입니다.”
주자서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습니까?”
주자서는 모친께서 알고 그렇게 하셨는지 아니면 정말 좋아하셨는지 알 수 없어서 죄스러워졌다. 조금 풀이 죽은 주자서의 기색을 눈치챈 온객행이 물었다.
“월계화를 좋아합니까?”
주자서가 온객행이 늘어놓은 차함의 뚜껑을 열어 향을 맡아보며 말했다.
“제가 아니라 모친께서.”
온객행이 고개를 갸웃하고 말했다.
“아상이 월계화를 좋아한다구요? 몰랐습니다.”
주자서가 얼굴을 구기고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 모친 말고 진짜 모친 말이오. 낙읍에 계시는.”
온객행이 주자서 옆에 어깨를 붙여 앉고 말했다.
“아. 찾아뵈어야 하는데. 유서의 몸이 다 나으면 찾아가 뵙시다. 그리고 태평호에서 같이 살아요.”
주자서가 고개를 돌려 온객행을 마주 보고 물었다.
“그리 하시겠습니까?”
모친과 함께 태평호에 산다면 주자서가 그리던 공상에 조금은 가까워질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고개를 기울이더니 물었다.
“제가 다 나아요? 제가 어디 아픕니까?”

온객행이 그릇에 죽을 퍼 담고 입으로 ‘후후’ 불며 말했다.
“후우. 발의 영력을 다른 데로 옮겨야지요. 그러다 봉인이 깨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요.”
어제 금모원군께서 주요가 봉인을 깨뜨렸다고 했다. 주자서의 영력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혼을 본 것이라면 발의 영력까지 닿지 못했을 텐데 어쩌다 봉인을 건드리게 된 걸까? 주자서가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쉬더니 물었다.
“봉인이 깨지면 어떻게 됩니까?”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그릇을 내밀고 말했다.
“유서. 걱정 마세요. 내가 그대의 일은 나의 일이라고 했잖아요.”
주자서는 온객행의 다정한 목소리에 위로가 되어 부스스 웃으며 말했다.
“나의 일인데 어째 제가 제일 모르는 것 같습니다.”
주자서가 온객행에게서 그릇을 받아 숟가락을 들었다. 온객행이 자기 몫의 그릇을 퍼 담아 ‘후후’ 식히며 말했다.
“촉룡께서는 틀린 말은 하지 않으시니 걱정 마세요.”
둘은 탁상에 마주 앉아 조용히 죽을 먹었다.


주자서가 식사를 거의 마쳤을 때에 밖이 소란스러웠다. 온객행은 먹던 그릇을 내려놓고 표정을 구기며 장지문으로 다가갔다. 온객행이 장지문에 닿기도 전에 장지문이 벌컥 열리고 새하얀 머리의 노인이 하얀 깃털 옷을 입고 들어와 소리쳤다.
“발의 후손은 어디 있느냐?”
온객행이 소매를 들어 공수하여 인사하고 말했다.
“흑망. 산천대제를 뵙습니다.”
산천대제는 온객행의 인사도 받지 않고 탁상 근처에 앉아 있는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아자(兒子). 네가… 네가 발의 아이구나.”
주자서는 인사를 하고 있는 온객행을 힐끔 보고 일어서서 소매를 들어 공손히 인사하며 말했다.
“기산의… 아… 흑망의 내자 유서(柳絮). 산천대제를 뵙습니다.”
주자서의 소개에 산천대제가 주자서에게 다가가는 것을 멈추고 온객행을 보고 표정을 구겼다.
“흑망의 내자?”
문밖에서 공공이 다급하게 객실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동왕공(東王公), 동왕공 일단 제 말을….”

산천대제가 온객행에게 다가가 말했다.
“너는 촉룡의 제자가 아니었던가? 어찌 발의 아이를 내자로 들였지?”
온객행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스승님께서 허락하셔서 종화산에서 가약(佳約)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주자서를 보고 얼굴을 붉혔다. 산천대제가 눈을 가늘게 뜨고 온객행을 보다가 성큼 걸어서 주자서의 손목을 낚아채 밖으로 끌고 나가며 말했다.
“어찌 발의 아비인 황룡의 허락도 없이 혼인을 한다는 말인가? 그런 법도 들어본 적이 없네.”
주자서는 산천대제에게 끌려 나가면서 온객행의 소매를 잡았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따라 나가며 말했다.
“대제. 유서는….”
주자서가 남궁에서 별궁으로 이어지는 문 앞까지 끌려 나가서야 금모원군이 모습을 드러냈다. 중궁에서 보았던 파란 옷을 입은 여인과 검은 깃털 갑옷을 입은 여인이 산천대제의 길을 막았다. 산천대제가 금모원군을 보고 말했다.
“서왕모. 이것은 무슨 뜻인가?”
금모원군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동왕공. 그 아이도 희첩으로 두시려고요?”

산천대제가 주자서의 손목을 놓고 말했다.
“부인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전부 오해예요.”
금모원군이 ‘하’하고 헛웃음 치고 말했다.
“남에 것을 그렇게 탐하셔서 그 자리를 어찌 보전하시려고 그러십니까?”
산천대제가 표정을 구기고 말했다.
“부인께서 계시는데 제가 무슨 걱정입니까?”
금모원군이 눈을 굴리며 고개를 흔들고 말했다.
“사방신은 어쩌시고 혼자 오셨어요?”
산천대제가 그제야 자신이 금모원군의 요대에 혼자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는 지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말했다.
“그들은 각자 맡은 일이 바빠서….”
금모원군이 산천대제의 말을 끊고 말했다.
“격년에 한번 보는 것도 저는 벅찹니다. 이렇게 마음대로 찾아와서 저의 궁을 어지럽히시면 저라고 어찌 가만히 있겠습니까?”

산천대제가 금모원군을 힐끔 보고 다시 주자서의 손목을 잡고 말했다.
“아무튼 이 아이는 제가 데려가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금모원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게 하세요.”
온객행이 주자서를 품에 안고 말했다.
“원군!”
금모원군이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그 아이는 흑망의 내자이니 흑망도 같이 데리고 가셔야 하겠네요.”
산천대제가 주자서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아가. 내가 너의 아비에게 데려다주마. 나와 가자.”
주자서가 고개를 돌려 온객행을 보았다. 산천대제가 주자서의 턱을 잡아 쥐고 말했다.
“내가 너에게 지금 말하고 있지 않느냐!”
온객행이 산천대제 앞에 넙죽 엎드려 큰 소리로 말했다.
“산천대제께서 어찌 흑망의 내자를 함부로 범하십니까?”
온객행의 목소리에 주변에서 소란을 지켜보던 크고 작은 신선들이 하나둘 별궁으로 몰려 들었다. 산천대제는 온객행의 말에 당황하여 주자서를 놓아주고 말했다.
“흑망! 그게 무슨 소리인가? 내가 어찌?”
주변에 있던 신선이 표정을 구기며 속닥였다. ‘동왕공은 손버릇이 안 좋으시지….’ 주변에 있던 다른 신선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는 분위기가 되자 산천대제는 당황한 듯 금모원군에게 다가갔다.

금모원군이 푸른 옷을 입은 여인과 검은 깃털 갑옷을 입은 여인에게 말했다.
“청구(靑丘), 양조(陽鳥) 너희들이 나의 못난 부군을 중궁까지 모셔야겠다.”
그리고 산천대제를 쏘아보고 고개를 돌려 중궁으로 향했다. 청구가 산천대제에게 다가가 말했다.
“동왕공. 원군께서 말씀하신 대로 따르시지요.”
양조가 작게 코웃음 치며 말했다.
“발의 아비에게 데려가시겠다니. 마치 황룡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는 것 같습니다?”
공공이 산천대제를 부축하며 말했다.
“양조, 그게 대체 무슨 말인가? 황룡이 어찌 감히 다시 하늘과 내통한다는 말이야?”
산천대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공공의 부축을 받으며 별궁을 나갔다. 청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황룡이 요대에 발을 붙이는 순간이 마지막 숨을 쉬는 순간일 것입니다.”
공공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황룡에게 원한이 있는 자가 어찌 청구뿐이겠는가?”
양조가 웃으며 말했다.
“서왕모께서 황룡이 사라지길 원하셨다면 황룡이 아직까지 살아있을 수 있었을까요?”
산천대제가 불편한 듯 헛기침을 했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품에 안고 별궁을 나가는 산천대제를 보았다. 산천대제는 나가다가 고개를 돌려 온객행의 앞섶을 잡고 떨고 있는 주자서를 보았다. 그의 눈에 일렁이는 탐욕이 보여 온객행은 헛웃음이 났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몸에 팔을 두르고 그의 귓가에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유서. 괜찮아. 내가 있잖아.”
온객행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별궁 문을 나가는 산천대제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온객행은 만약 필요하면 당장 주자서를 데리고 종화산으로 망명도주(亡命逃走)할 생각이다. 촉룡께서는 세속에 관심이 없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만큼 자신의 지켜보는 일이 소중하신 분이라 자기 일을 방해받는 것을 싫어하셨다. 촉룡께서는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고 간섭하시는 것을 싫어하시니 저들이 계속해서 스승님을 괴롭히면 스승님께서도 가만히 있지 않으실 것이다. 과거 공공께서 촉룡의 힘을 도발했다가 천궁에서 쫓겨나 사흉이 된 것을 안다면 함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주자서를 붙잡았던 하얀 깃털 옷을 입은 남자의 눈은 심욕(心慾)과 야욕(野慾)으로 가득 차 있었다. 주자서와 그의 동료를 사지(死地)로 몰아넣은 장수의 눈과 같은 눈이다. 주자서는 손이 떨리는 것을 감추기 위해 온객행의 앞섶을 더 꼭 쥐어 잡았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귓가에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유서. 괜찮아.”
온객행의 목소리에 안심이 되는 것이 터무니없고 기가 막혀서 주자서는 헛웃음이 나왔다. 주자서는 작게 숨을 헐떡이다 ‘컥컥’ 대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등을 쓸며 말했다.
“유서. 괜찮아.”
주자서가 좀처럼 진정하지 못하자 온객행이 주자서의 뺨을 손에 가두고 말했다.
“유서.”
주자서는 온객행의 손을 잡고 눈을 감고 진정하려고 애썼다.

공포감으로 휩싸인 주자서의 마음이 자꾸만 주자서의 의식을 점멸하게 만들었다. 온객행은 헐떡이는 주자서가 가여워 이마를 붙이고 주자서의 이름을 부르다 주자서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한동안 입을 맞추다 주자서의 숨이 조금 멈추자 온객행은 입술을 떼고 말했다.
“유서. 내가 아프면 꼭 이렇게 해줘야 해.”
그리고 다시 입술을 붙였다. 또 한참 입술을 맞붙이던 온객행이 주자서가 축 늘어지자 그를 놓아주었다. 주자서가 작게 숨을 몰아쉬며 온객행을 보았다.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봐. 이렇게 하면 금방 안 아파.”
주자서는 지금 이 상황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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