蛇苺外傳 第6完

敵戰 | 서로 비등할 때 필요한 기묘한 계략.

기룡은 곡우에게 그림 그리는 방법을 가르쳤다. 계낭인 곡우는 용인 기룡만큼의 영력을 낼 수 없었기 때문에 기룡이 그린 그림처럼 신비한 도술이 깃들지는 않았지만 기룡의 기교는 모두 배웠다. 그 사이 여러 번의 가을이 지났다. 주자서는 스스로 사람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의 영력을 모았고 지주와 기룡에 이어 노유와 미원을 스승으로 모셨다. 하늘의 일은 매번 바뀌기도 하지만 또 항상 바뀌는 것이 아니라 크고 작은 일을 겪은 온객행은 주극성의 일에 익숙해졌다. 현명은 징계받았던 기간보다는 조금 먼저 주극성으로 돌아왔는데 그 이유는 산천대제가 자주 천궁에 보고를 하러 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산천대제는 황룡과의 일로 원래는 금모원군이 하던 땅의 일을 보고하는 일을 맡았다. 땅의 일을 보고 받는 진군과 현녀는 호락호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전처럼 남에게 일을 맡길 수 없었다. 현명이 돌아온 주극성은 그 전보다 일이 더 줄어서 온객행은 더 자주 오래 태평호에 머무를 수 있었다. 온객행이 주극성을 떠나는 날 천존께서 그에게 죄를 사하며 내린 천명은 매년 삼원(三元)에 참가하여 현무를 보좌하는 일이었다. 주자서 역시 요대와 삼하궁에 종종 불려가 시중을 드는 일을 해야 했다.

기룡은 곡우를 데리고 사람이 사는 세상을 여행하기 위해 떠났다. 기룡과 곡우가 떠나기 전에 곡우는 주자서에게 그림을 선물했다. 그 그림은 아주 막역해 보이는 두 공자의 뒷모습을 그린 것인데 그들은 태평호를 바라보고 있다. 주자서는 곡우가 선물한 그림이 마음에 들어 백택의 정전 사당에 그림을 걸었다. 온객행이 태평호로 돌아온 다음 해에 노유와 미원은 삼하궁으로 돌아가 등선했다. 삼하궁의 소부(少府)에 소속된 상서랑중(尙書郞中)이 되어 수원대선과 함께 황룡을 보좌했다. 종종 말도 없이 구름 마차나 천마를 보내 주자서를 삼하궁으로 불러 일을 시키는 일이 늘었다. 주자서는 스승님의 일이라 거절할 수 없었고, 이제 현무 대리가 아닌 온객행은 일개 수선이라 거절할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주자서를 따라 삼하궁에 가서 고상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그러면 생기는 일을 무마하기 위해 무례를 저지른 대선과 요괴에게 기룡이 두고 간 그림을 선물하다 보니 백택에는 곡우가 그린 그림 밖에 남지 않았다.


영월(令月; 음력 2월)은 상원이 끝나고 봄을 준비하는 달이라 하늘도 땅도 바쁘지 않은 달이다. 주자서는 오랜만에 동이 틀 때까지 침상 위에서 나오지 않았다. 영력이 쌓였다고는 하나 이제 막 화사가 된 주자서는 추위에 약했는데 겨울이 다가오면 백택으로 거처를 옮기거나 아니면 삼하궁에 가서 지내는 경우가 많았다. 올해는 삼하궁에 손님이 많아 주자서가 거절하여 태평호에 머물게 되었다. 부유각 내에는 주작에게서 선물 받은 화로가 있었는데 그 안에는 주작의 깃털이 들어 탄을 넣지 않아도 끊임없이 타올랐다. 주자서는 누워서 침상 아래 있는 타오르는 깃털을 물끄러미 보았다. 언제인가 중원인가 하원에 누군가를 돕고 받은 것이다. 온객행은 몸에 지닐 수 있는 봉황의 깃털을 원했던 것 같은데 주작의 깃털을 얻었다. 날이 춥지 않으면 주작의 깃털로 밥을 한다는 것을 주작이 아시면 어떨까 같은 생각을 하던 주자서는 부스스 웃고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부유각 내부는 온객행이 주극성에서 가져온 물건들로 조금 어수선했다. 주자서는 슬슬 온객행을 잘 구슬려서 거처를 백택으로 옮겨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신발을 신고 물을 받아 간단히 관수하고 병풍에 걸린 장포를 대충 걸쳐 입었다. 침상 곁에 있던 화로를 평상 근쳐로 옮겨서 물 주전자를 올렸다. 그동안 차를 마시는 일에 익숙해진 참이다. 온객행은 어디에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주자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온객행이 가져온 물건들을 살펴보았다. 크고 작은 함에 별자리에 관련된 서책도 있었고 옷과 비단도 있었다. 모두 어디에서 얻은 것인지 온객행이 신이 나서 설명해 주었지만 주자서는 별로 관심 있는 것들이 아니라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주자서가 찻잎을 찻주전자에 넣고 막 마시려는데 온객행이 부유각으로 들어왔다. 장지문을 열고 휘장을 걷고 들어오는 온객행은 족제비 털이 달린 하얀 피풍의를 입었다. 주자서가 고개를 돌려 온객행을 보고 웃었다.

온객행은 얼른 주자서 곁으로 와서 앉아서 주자서가 내린 차를 찻잔에 따르고 말했다.
“유서. 왜 벌써 일어났어?”
주자서가 차를 마시고 고개를 끄덕였다. 온객행이 차로 입을 축이고 말을 이었다.
“오늘은 오후에 비가 올 것 같아. 안개가 아주 많아. 주자서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온객행이 내실을 둘러보고 말했다.
“유서. 왜 등롱도 켜지 않았어?”
주자서가 찻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이제 켜지 않아도 잘 보입니다.”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 벌써? 우리 유서는 수재(秀才)인가 봐.”
주자서가 낮게 웃으며 말했다.
“비가 오면 오늘은 춥겠네요.”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조용히 차를 마셨다. 주자서가 다시 물었다.
“객행. 슬슬 거처를 백택으로 옮기는 게 어떻습니까?”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게. 예전에는 작은 줄 몰랐는데….”
주자서가 온객행의 팔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내실을 정리해서 여름에만 사용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손을 잡고 말했다.
“응. 아니면 부유각을 증축할까?”
주자서가 작게 고개를 흔들고 말했다.
“부유각은 부유각인채로 좋습니다.”
온객행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응. 나도. 나도 그래. 유서.”

주자서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그럼 오늘은 실내에서 정리를 좀 할까요?”
온객행이 주자서를 따라 일어나며 말했다.
“그럴까요?”
주자서가 피풍의를 찾아 둘러 입고 말했다.
“장지문을 열고 입하랑 입추를 불러서 같이 합시다.”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고 주자서의 피풍의를 여며주며 말했다.
“제가 백택에 얼른 다녀올 테니 여기 계세요.”
주자서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커다란 함은 혼자서 옮길 수가 없어서 주자서는 일단 작은 함부터 열어 종류별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어떤 함에는 장신구와 보옥이 들었고 어떤 함에는 찻잎이 들었다.

주자서는 찻잎이 들어 있는 함은 다구를 넣는 함 근처에 놓았다. 그렇게 정리하다 보니 내실은 전보다 조금 더 어수선했다. 서책을 찾아 책장 위에 올려 두면서 날을 잡아 백택에 있는 서책과 함께 정리하여 재실에 남아 있는 각고에 장서각을 만들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책장 위에 처음 보는 함을 발견했다. 주자서는 눈썹을 찌푸리고 잠깐 생각했다. 온객행이 가져온 물건 중에 주자서에게 설명하지 않은 물건은 거의 없었다.

온객행이 설명하지 않은 것은 보통 계낭이나 백택에서 자주 사용하는 물건들로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그 용도가 명확한 것들이다. 함에는 자물쇠가 달려 있었지만 잠겨 있지는 않았다. 주자서는 책장에서 함을 꺼내 탁상 위에 올려 놓고 함을 열었다. 함 안에는 죽간과 종이로 만든 화첩이 들어 있었다. 주자서는 대체 무슨 내용의 책이길래 자물쇠를 달아 보관했나 싶어서 죽간을 들어 제목을 보았다. 이상하게도 죽간은 보관 주머니도 씌워져 있지 않았고 제목도 없었다. 주자서는 조금 의아하여 바닥에 깔린 화첩을 꺼내 들었다. 화첩은 서피(書皮)를 비단으로 했는데 아주 질이 좋은 비단이었다. 종이가 아니라 어쩌면 비단에 그린 화첩일 지도 모르겠다. 이 화첩 역시 제목이 겉에는 어디에도 쓰여 있지 않았다. 주자서는 혹시나 보면 안되는 것인가 한참 고민하다가 화첩을 펼쳤다.


온객행은 입하, 입추와 함께 간단히 요기할 떡을 들고 부유각으로 향했다. 입하가 말했다.
“응룡께서 보내신 떡이 아주 맛이 좋습니다. 주인께서도 좋아하셨으면 좋겠어요.”
입추가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달지도 않고 안에 들어 있는 견과가 고소하여 아주 맛있습니다.”
온객행이 거들었다.
“입하, 입추도 많이 드세요. 단오 때 스승님께 다녀오면서 요대에 들러 또 부탁해 두겠습니다.”
입하가 물었다.
“단오 때 촉룡께 가시려구요?”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한동안 뵙지 않았으니 이번에 다녀오려고요.”
입추가 머뭇거리며 물었다.
“주인께서도 가십니까?”

입하가 얼굴을 구기며 입추를 보았다. 온객행은 금방 울상을 하더니 말했다.
“당연하지요! 스승님께서는 아직 유서가 화사가 된 것을 보지 못하셨으니 이번에 가서 여쭐 것이 아주 많습니다.”
입추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아… 그렇군요. 하지만 주인께서는….”
입하가 입추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촉룡께서는 뭘 좋아하십니까? 저희가 선물을 준비할까요?”
온객행이 손을 내젓고 말했다.
“아닙니다. 스승님께 드릴 선물은 제가 준비하겠습니다.”
부유각에 도착한 셋은 금방 선창을 지나 갑판에 발을 올렸다.

온객행이 휘장을 걷고 실내로 들어오자 주자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보고 있던 화첩을 다시 함에 넣고 함을 ‘쾅’하고 다급하게 닫았다. 얼굴이 새빨개진 주자서를 보고 온객행이 다가가 물었다.
“유서?”
주자서가 당황하여 몸을 돌리고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입추와 입하는 어서 가서 밥을 드세요.”
사시가 훌쩍 넘어 이미 다른 계낭과 밥을 먹은 입추와 입하는 주자서의 눈치를 보고 찬합을 탁상 위에 올려놓고 인사했다.
“저희는 그럼 물러가겠습니다.”
입하가 눈치껏 장지문을 닫고 입추와 백택으로 향했다. 정리하는 것을 마음먹었으니 백택도 조금 청소해 두어야 했기 때문이다.

입하가 입추에게 손바닥을 펴며 말했다.
“봐. 내 말이 맞지?”
입추가 입을 삐죽이며 품속에서 작은 꾸러미를 입하에게 건네고 말했다.
“입하. 너는 이런 눈치가 참 좋단 말이야.”
입하가 입추가 건넨 꾸러미를 열어 안에 들어 있는 사탕을 입에 넣고 말했다.
“대부분 수선과 주인께서 같이 쓰시는 물건인데 우리가 도와드리긴 힘들지.”
입추가 어깨너머로 부유각을 보고 말했다.
“설마 싸우시지는 않겠지?”
입하가 고개를 꺾어 ‘하하하’ 웃으며 말했다.
“싸움이 되기는 할까?”
입추가 따라 웃으며 말했다.
“하긴. 주인께서 항상 이기시니까.”
입하는 송문을 지키고 있는 계낭에게도 입추에게 빼앗은 사탕을 주었다. 입추는 아깝다는 듯 입하를 보고 말했다.
“아껴 드시게! 황룡께서 보내준 것이란 말일세.”


주자서는 입하와 입추가 내실을 나가는 것을 보고 있다가 다시 몸을 돌려 온객행을 마주 보고 말했다.
“온객행!”
온객행은 탁상 위에 올려 놓은 함을 물끄러미 보다가 그 옆에 있는 찬합을 열며 말했다.
“유서. 응룡께서 떡을 보내셨어. 어서 먹어봐. 별로 달지도 않고 아주 맛이 좋아.”
주자서가 다시 함을 열어 안에 들어 있는 화첩 하나를 꺼내 온객행에게 내밀며 말했다.
“이게 무엇입니까?”
온객행은 묘하게 낯익은 화첩을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펼쳐보았다. 예전에 현리가 보내준 춘화첩이다. 다른 점이라면 이 춘화첩에는 여인이 없다는 점이다.

온객행은 입을 벙긋거리다 말했다.
“이… 이것이 어찌 여기에….”
주자서가 내실에 있는 책장을 가리키고 말했다.
“책장 위에 자물쇠도 없이 있었습니다. 남이 보면 어쩌시려고 이런 것을 두셨습니까?”
온객행은 한참 춘화첩을 들여다보더니 주자서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유서. 우리 이건 아직 안 해본 것 같은데….”
주자서가 온객행의 손에서 춘화첩을 거칠게 빼앗고 말했다.
“온객행!”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유서. 화내지 마세요. 예전에 예부인께서 보내주신 겁니다. 왜 그… 우리가 아직 사내끼리 정을 어떻게 통하는지 모를 때에….”
주자서가 다급하게 다가가 온객행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주자서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입술을 꾹 다물고 화난 듯 부끄러운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온객행은 처음 보는 표정이라 배시시 웃어버렸다. 주자서가 온객행의 얼굴을 밀고 말했다.
“온객행! 입하와 입추가 부유각에 들락날락하는데 이런 것을 어찌 소홀히 관리하셨습니까?”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다가가 손을 잡고 말했다.
“소홀히 관리하다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때가 되면 꺼내서 말리고 얼마나 소중히 했는데요.”

주자서가 얼굴을 구기고 말했다.
“꺼내서 말려요?”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함 안에 있는 다른 춘화첩을 꺼내고 말했다.
“비단에 그린 그림이라 가끔 꺼내서 말려주지 않으면 상한다고 했거든요.”
주자서는 온객행이 들고 있는 춘화첩을 빼앗아 다시 함에 넣고 물었다.
“어디… 어디에? 누가… 직접 하셨습니까?”
온객행이 죽간을 꺼내 들고 말했다.
“혹시 화첩이 상할 수도 있으니 따로 죽간에 정리해서 적어 두었습니다.”
그리고는 꺼내든 죽간을 흔들었다. 주자서는 고개를 흔들며 깊게 한숨을 쉬었다.

온객행이 죽간을 펼쳐 읽으며 말했다.
“걱정 마세요. 제가 직접 적었으니 화첩이 소실되더라도 책이 있으면 됩니다.”
주자서는 얼른 온객행이 들고 있는 죽간을 빼앗아 둘둘 말아 다시 함안으로 집어넣고 뚜껑을 닫았다. 걸려 있는 자물쇠에서 열쇠를 빼서 함을 잠갔다. 주자서는 한참 함을 노려보다가 온객행을 보고 물었다.
“더 있습니까?”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다가가 허리를 끌어안고 말했다.
“뭐가 말입니까?”
주자서가 고개를 돌려 온객행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이런… 이런 것이 또 있느냐는 말입니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뺨에 입을 맞추고 웃으며 말했다.
“이런 것? 이런 것이 무엇입니까?”
주자서가 온객행의 턱을 잡고 말했다.
“온객행. 더 있어? 없어?”
온객행이 입을 앞으로 쭉 내밀어 주자서에게 뽀뽀할 것처럼 굴자 주자서가 온객행의 턱을 놓아주고 잠긴 함을 다시 책장 위에 올려 두며 말했다.
“제가 부족하여 수선께 음란한 화첩을 찾게 하였으니, 이것은 모두 저의 부덕함 때문입니다.”

온객행이 놀라서 주자서의 팔을 잡고 말했다.
“유서.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에요.”
주자서가 온객행을 보고 소매를 들어 고개를 조아리고 말했다.
“부족한 저를 내쳐 주소서.”
온객행이 주자서를 품에 끌어안고 말했다.
“아이참! 유서 그런 것이 아니에요. 처음에는 학습용이었고 지금은 그냥 참고용이에요.”
주자서가 고개를 들어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참고?”
온객행이 주자서를 다시 꼭 끌어안고 말했다.
“나는 유서를 만나기 전까지 이런… 정을 통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단 말이오.”
주자서는 부끄러워져서 온객행의 허리를 안고 온객행의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귓가에 입을 맞추고 말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유서가 나를 더 좋아했으면 좋겠기에….”
둘은 꼭 서로를 꼭 안고 한참 붙어서 있었다. 주자서가 물었다.
“이게 다 입니까?”
온객행이 주자서의 목덜미에 고개를 묻고 말했다.
“유서랑 해보고 싶은 것들은 따로 적어 두었어요. 어느 순간 잊은 것 같지만….”

주자서가 피식 웃고 물었다.
“어디 두셨습니까? 적어 두신 것은?”
온객행이 활짝 웃으며 주자서를 보고 물었다.
“해주게?”
주자서가 다시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고 온객행 어깨에 고개를 묻으며 말했다.
“봐서.”
온객행이 다시 주자서의 뺨에 목덜미에 입을 맞추고 웃으며 말했다.
“어서 찾아야 하겠다.”
주자서가 온객행을 놔주고 자물쇠의 열쇠를 온객행에게 건네며 말했다.
“아무튼! 앞으로는 꼭 열쇠로 잠가 두십시오.”
온객행이 주자서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말했다.
“왜? 어차피 우리 얘기도 아닌데. 내가 따로 적어 둔 것에는 유서와 내가 주인공이니까 그것은 각별히 유의해서 보관하겠소.”

빨갛게 뺨을 붉히면서도 입을 꾹 닫고 더 말하지 않는 주자서가 야속해서 온객행이 주자서의 입술을 맞췄다. 주자서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래서 어디 두셨소?”
온객행이 주자서를 놔주고 책장을 살피며 말했다.
“아주 중요한 내용이니 특별히 서귀께 부탁드려서 종이에 적어 두었소.”
온객행은 다시 함을 열어 살펴보더니 고개를 갸웃하고 그 주변을 찾았다. 주자서도 책장을 찾으며 말했다.
“종이로 된 책은 보지 못했는데요.”
온객행이 당황하며 말했다.
“어… 잠시 백택에 다녀오겠습니다.”
주자서가 온객행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주극성에서 온 짐은 모두 여기 두셨잖아요.”
온객행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온객행이 급하게 주극성으로 향하고 주자서는 혼자 남아서 부유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부유각의 정리를 대충 마치니 뉘엿뉘엿 해가 저물어갔다. 주자서는 온객행이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이 의아했지만 문귀에게 붙잡힌 거려니 생각하고 백택으로 발길을 돌렸다. 백택으로 들어가는 송문에 주자서는 알지 못하는 인영이 문을 지키는 계낭과 실랑이 중이었다.
“이곳은 사당으로 주인의 허락 없이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정중한 계낭의 거절에 아랑곳하지 않고 여인이 말했다.
“제발 살려주세요. 저를 도와주세요. 갈 곳이 없어서 찾아왔습니다. 이곳 사당의 주인께서 여인을 거두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왔어요.”
주자서는 여인의 말에 주요가 떠올랐다. 사람이 사는 곳에서 백택까지는 험한 산길을 지나거나 가파른 강물을 건너야 했기 때문에 여인의 행색은 별로 좋지 못했다. 여인은 한참 계낭과 실랑이하다가 뒤에 멀뚱히 서 있는 주자서를 발견하고 말했다.
“공자님! 제발 공자님 자비를 베푸세요.”

당황한 주자서가 말했다.
“어떤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곳에서 여인을 거두시던 주인께서는 승천하셔서 하늘에 계십니다.”
송문을 지키고 있던 계낭이 주자서에게 말했다.
“주인. 수선께서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인은 주자서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주인? 당신이 태평호의 주인입니까?”
주자서가 손사래 치고 말했다.
“아닙니다. 제가 어찌 감히… 저는… 저는….”
입하가 재실에서 나와 송문에서의 소란을 보고 다가가 말했다.
“태평공. 무슨 일이십니까?”
주자서가 입하를 보고 고개를 흔들었다. 여인이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태평공?”
입하가 주자서의 소매를 잡고 있는 여인과 주자서를 번갈아 보더니 여인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낭자. 이곳은 태평호의 사당인데 어찌 사람을 거둔다는 말입니까?”
여인은 주자서의 팔을 붙잡고 늘어지며 말했다.
“공자님 제발 저를 거두어 주세요. 저는 갈 곳이 없습니다.”

주자서가 곤란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자 입하가 말했다.
“낭자. 이곳은 사당이니 먼저 예를 갖추시지요.”
하고는 정전이 있는 쪽으로 여인을 안내했다. 여인은 앳되어 보이는 계낭을 살펴보더니 주자서의 팔을 잡고 정전으로 향했다. 주자서는 이 팔을 뿌리쳐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여인은 곡우가 그린 그림이 걸린 정전에 닿았다. 여인은 신위에 걸린 그림을 보고 한참 신당 내부를 살펴보더니 말했다.
“사당의 주인께서는 어디 계십니까?”
주자서가 여인에게서 팔을 빼며 말했다.
“수선께서는 잠시 주… 잠시 출타 중이십니다.”
여인은 계낭의 눈치를 보며 신위에 예를 올렸다. 주자서는 그녀가 절하는 것을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 여인은 신분이 변변치 못한 것인지 절하는 모습이 어색했다. 주자서는 조용히 정전에서 나와 재실로 향했다. 입추가 주자서를 발견하고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사람이요?”

주자서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수원대선을 찾으시는데….”
입추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이상합니다. 어떻게 찾아왔을까요? 수원대선께서 떠나신 지 벌써…”
입하가 여인을 정전에서 데리고 나왔다. 여인은 주자서를 발견하자마자 다시 팔에 매달렸다. 주자서는 갑자기 잡아 오는 손길에 놀라서 팔을 뿌리치려고 하다가 여인을 밀쳤다. 여인은 놀라서 바닥에 털퍼덕 주저앉았다. 주자서는 놀라서 여인에게 손을 내밀고 말했다.
“낭자. 정말 죄송합니다. 너무 놀라서….”
여인은 주자서의 손을 잡고 일어나더니 갑자기 주자서 품에 달려들어 훌쩍이기 시작했다. 주자서는 어찌할 바를 몰라 그 자리에 굳어버리고 말았다. 입하와 입추가 놀라서 말했다.
“낭자! 이게 무슨 무례입니까?”
입하와 입추가 여인을 떼어내기 위해 여인의 소매를 잡고 법석을 떨었다.


온객행이 주극성에서 문귀에게 욕을 잔뜩 얻어먹고 겨우 찾아온 서책을 소중히 가슴에 안고 백택에 도착했을 때 본 것은 주자서의 품에 어떤 여인이 안겨서 입하와 입추의 손길을 거절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 여인은 품에 안기다 못해 주자서의 허리를 안고 있었는데 온객행은 너무 놀라서 여인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그 손 놓으시오!”
주자서는 이미 반쯤 정신을 놓았는지 여인과 입하 입추가 하는 대로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었다.
“이… 이러지 마십시오. 낭자”
주자서를 붙들고 있던 여인은 온객행을 발견하고 입하와 입추를 보았다. 입하와 입추는 온객행을 향해 소매를 들고 말했다.
“수선. 그러니까… 이것은….”
온객행은 주자서에게 다가가 여인의 손을 떼어내고 말했다.
“그대는 누구인데 나의 사당에 계시오?”
여인은 온객행과 주자서를 번갈아 가며 보다가 이번엔 온객행에게 달려들었다. 온객행은 한발짝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무슨 일인지 말로 하시오.”

여인은 조금 당황한 듯 바닥에 주저앉아 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주인… 제발 저를 거두어 주세요.”
온객행이 얼굴을 구기며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이오? 그대는 사람이 아니오? 요괴의 밥이 되겠다는 뜻이오?”
여인이 고개를 번쩍 들어 온객행을 보고 물었다.
“여인을 거두어 준다는 태평호의 주인이 아니시오?”
온객행이 고개를 흔들고 말했다.
“그분은 하늘로 승천하셔서 더는 이곳에 계시지 않습니다.”
여인은 다시 소매를 들어 울면서 사정을 했다. 박복한 그녀의 사정은 안타까웠으나 온객행과 주자서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온객행은 여인에게 신당 객실을 내주고 며칠 융숭히 대접했다. 여인은 지내는 내내 주자서에게 들러붙었는데 냉정하게 거절하는 온객행보다 주자서가 다정했기 때문이다. 나흘 정도 지났을 때 여인은 객실에 있던 장신구와 비단옷을 가지고 도망쳤다. 온객행이 엉망으로 어질러진 객실을 보고 말했다.
“보통 사람은 다 이런가?”
주자서가 객실을 정리하며 말했다.
“어디서 듣고 온 걸까요?”

입하와 입추가 객실 안으로 들어가 정리하며 말했다.
“아… 노유께서 아끼시던 비단옷을 가져갔어요.”
온객행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천교가 고작 그런 일로 화내지 않을 겁니다. 그들은 이런 광경을 수도 없이 보았으니까요.”
주자서가 온객행을 보고 착잡하게 한숨을 쉬었다. 그 뒤로 몇 번이나 사람들이 백택에 찾아왔다. 사내도 있었고 여인도 있었다. 그들 중에는 송문을 지키는 계낭과 시비가 붙어 싸움을 거는 이들도 있었다. 참다못한 주자서가 검을 들자 그제야 그들은 물러갔다. 온객행과 주자서는 여러 가지로 고민해봤지만 다가오는 사람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온객행이 말했다.
“백택을 옮겨야 하겠습니다.”
주자서가 물었다.
“어디로 말입니까?”
온객행은 한참 생각하다 말했다.
“태평호 위로 옮깁시다.”
온객행이 으스대며 말했다.
“저는 이제 흑룡이니까요. 이 정도쯤이야 일도 아니지요.”
주자서가 고개를 젓고 말했다.
“물 위라고 사람이 찾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선창에는 기룡께서 타시던 배가 있잖아요.”


온객행은 며칠 뒤에 요대로 금모원군을 뵈러 갔다. 온객행이 요대에 다녀오는 사흘 동안 또 사람이 몇 찾아와서 백택에서 곡식을 훔쳐 달아났다. 온객행은 금모원군에게 앞으로 상원의 일을 돕겠다는 약속을 하고 보주(寶珠)를 얻어왔다. 그리고 그 보주로 태평호의 백택도 태연의 요대처럼 태평호의 물안개 위에 자리 잡게 되었다. 주자서는 선창에서 사라진 부유각을 찾으며 말했다.
“객행. 부유각은 어디 두셨습니까?”
온객행이 함을 들어 내실로 옮기며 말했다.
“나의 소매 속에, 유서가 말한 것처럼 여름에는 부유각에서 홍주와 하방탕을 즐깁시다.”
주자서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백택으로 옮긴 것이 아니라 부유각으로 옮긴 것이 되었네요.”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뭐 어찌 되었든 이제 지내는 공간이 많아졌으니 서실이랑 집무실도 따로 두고 싶어요.”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서쪽에 있는 작은 객실 몇 개를 정리하면 될 겁니다.”
온객행은 밖으로 향하며 계낭에게 서책을 내실 서쪽으로 옮겨달라고 부탁했다. 한창 내실을 정리하던 주자서가 급하게 온객행을 찾으며 말했다.
“객행! 그 함은 어디 두셨습니까?”
온객행이 옷을 정리에 함에 넣으면서 말했다.
“무슨 함이요? 오늘 옮긴 함이 한두 개입니까?”
주자서가 온객행에게 다가가 소매를 잡고 작게 속삭였다.
“열쇠가 달린! 자물쇠가 달린 함이요!”
온객행이 ‘아!’ 소리를 내고 급하게 함을 쌓아 놓은 사당의 남문 밖으로 달려갔다.

주자서가 온객행의 뒤를 따르며 물었다.
“그 종이로! 주극성에서 가져오신 종이로 만든 서책은 어디 두셨습니까?”
온객행은 가던 길을 멈추고 다시 내실로 들어가며 말했다.
“아!”
마침 입추가 열쇠가 달린 함을 가지고 오며 물었다.
“태평공. 이 함에는 열쇠가 있어 무엇이 들었는지 확인할 수 없습니다.”
주자서가 얼른 달려가 함을 받고 말했다.
“아… 어… 이 함은 그러니까….”
온객행이 정전 앞에서 우왕좌왕하자 주자서가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객행! 어서 가서 서책을!”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고 내실로 향했다. 주자서가 입추를 보고 말했다.
“그러니까 이 함은….”
입추가 빨갛게 달아오른 주자서의 얼굴을 보고 말했다.
“주인 또 열이 오르십니까? 함은 제가 옮기겠습니다. 어서 안으로 들어가세요.”
주자서가 함을 놓지 않고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이 자물쇠가 달린 함에는 아주 중요한 것이 들어 있으니 제가… 제가 하겠습니다.”
입추가 주자서를 보고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렇습니까? 그렇게 하십시오.”

蛇苺 尾註

미주목록

(1) 주돈이 愛蓮說 애련설; 연꽃을 좋아하는 노래. 4화
군자를 연꽃 은둔자를 국화 화려한 귀족을 모란으로 은유하였다.
予獨愛蓮之出於 泥而不染 濯淸漣而不夭 中通外直 不蔓不枝 香遠益淸 亭亭淨植 可遠觀而 不可褻翫焉.
나 홀로 연꽃을 좋아하니, 진흙에서 나왔으면서도 물들지 아니하고, 맑은 물결에 씻기어도 요염하지 아니하며, 줄기 가운데는 통하며 밖은 곧고, 덩굴 뻗지 않고 가지 치지 않으며,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으며, 우뚝이 깨끗하게 서있으며,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으나, 함부로 가지고 놀 수 없음이라.

(2) 태공망(太公望) 육도(六韜) 제5편 표도(豹韜) 49장 소중(少衆) 8화
以少擊衆者, 必以日之暮, 伏以深草, 要之隘路. 以弱擊强者, 必得大國之與, 鄰國之助
소수의 병력으로 다수의 적을 칠 경우에는 반드시 해가 질 무렵을 이용하여 초목이 우거진 곳에 깊숙이 잠복하였다가 좁은 길목에서 적을 요격해야 한다. 약한 나라로서 강한 나라를 치려면 반드시 강대한 다른 나라의 찬동과 이웃 나라의 원조를 얻는 것이 필요하다.

(3) 굴원 이소(離騷) 어려움을 만나다 12화
雖萎絶其亦何傷兮 哀衆芳之蕪穢
비록 시들어 버린다 해도 어찌 속을 상하겠는가?
거칠어진 꽃향기와 더러워진 꽃잎이 서러워서지.

(4) 장자(莊子) 외편(外篇) 제17 추수(秋水) 22화
南方有鳥,其名爲鵷鶵,子知之乎?夫鵷鶵發於南海而飛於北海,非梧桐不止,非練實不食,非醴泉不飲
“남쪽 지방에 새가 사는데, 그 이름을 봉황의 일종인 원추鵷鶵라 한다네. 자넨 알고 있는가? 그 원추라는 새는 남쪽 바다에서 출발해 북쪽 날아가는데, 오동나무가 아니면 머물지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도 않으며, 달디 단 샘물인 예천(醴泉)이 아니면 마시지 않는다네.”

(5) 도연명(陶淵明) 四時 사시사철 30화
春水滿四澤 夏雲多奇峰
봄에는 물이 가득해 사방에 연못이 여름에는 구름이 많아 기이한 봉우리
秋月揚明輝 冬嶺秀孤松
가을 달은 밝은 빛을 휘날리고 겨울 산자락에는 외로운 소나무 아름답다.

(6) 조식(曹植) 雜詩 잡시 31화
悠悠遠行客 去家千里餘
멀리 멀리 떠나온 나그네여. 집을 떠나 천리쯤 이로다.
出亦無所之 入亦無所止
밖으로 나와도 갈 곳이 없고 안에 들어도 머물 곳이 없네.
浮雲翳日光 悲風動地氣
뜬구름은 햇빛을 가리고 쓸쓸한 바람은 회오리를 일으키네.

(7) 시경 국풍 왕풍 君子陽陽 임은 즐거워라! 34화
君子陽陽, 左執簧, 右招我由房. 其樂只且.
임은 즐거워라, 왼손에 생황을 들고, 오른손으로는 나를 불러 방중 춤을 추시게 하신다 아, 즐거워라.
君子陶陶, 左執翿, 右招我由敖. 其樂只且.
임은 즐거워라, 왼손에 무우를 들고, 오른손으로는 나를 불러 오하 춤을 추시게 하신다 아, 즐거워라.

(8) 굴원 회사부(懷沙賦) 회왕을 그리며. 외전
鬱結紆軫兮 離愍而長鞠 撫情效志兮 寃屈而自抑
답답하고 울적한 마음 시름에 겨우니 못내 괴롭다.
정(情)을 억누르고 뜻을 헤아려 원통함을 삼키고 스스로 참네.
刓方以爲圜兮 常度未替 易初本廸兮 君子小鄙
모난 것을 깎아서둥굴게 만들어도 일정한 규범은 바꾸지 않는데,
근본(根本)이나 초지(初志)를 고치는 것은 군자(君子)가 얕보는 것이라.

자투리

주자서가 다음날 눈을 떴을 때 주자서는 온객행을 끌어안고 등에 얼굴을 대고 있었다. 온객행의 체온이 서늘하다고 해도 이렇게 끌어안고 있으면 점점 따뜻해졌다. 주자서는 온객행에게 둘렀던 팔을 풀려다 그에게 손이 잡혔다. 뒤돌아 누운 온객행이 주자서를 끌어안고 말했다. “유서 왜 벌써 일어났어?” 주자서가 고개를 들어 주변을 보고 말했다. “얼마나 잤습니까?” 다 잠긴 주자서의 목소리에 온객행이 주자서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웃더니 말했다. “아직 더 자도 되네.” 주자서는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다시 눈을 감았다. 온객행은 다시 일정해지는 주자서의 숨소리를 듣고 있다가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주자서는 눈썹을 찌푸렸지만 다시 눈을 뜨지는 않았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고 말했다. “유서.”


밤이 되어 편연주는 서주에 도착했다. 날이 더워 야시장이 크게 열렸는지 밤 중이었는데도 포구가 환했다. 현리는 서주에 알고 있는 상인을 만나야 한다며 잠시 편연주를 비웠다. 온객행은 스승님께 드릴 선물을 사기 위해 시장에 갔고 주자서는 객실에 남아 선잠을 자다 방금 깬 참이다. 더워도 너무 더웠다. 주자서는 이렇게 습한 더위는 너무 낯설어서 좀처럼 기운이 나지 않았다. 주자서는 침상에 잠깐 앉아 있다가 창호문을 열고 평상으로 자리를 옮겼다. 침상 옆에 있는 물이 담긴 대야를 가져와 족건을 벗고 바지를 걷어 대야 안에 발을 넣었다. 열린 창호문으로 습한 강바람이 불었다. 해가 다 저물어 어두운 방안에서 그러고 있다 주자서는 얕은 잠에 빠졌다.

온객행은 주자서가 당부한대로 동전이 담긴 주머니를 들고 장에 나와 동그란 물건을 골랐다. 탁음대선께서는 시작과 끝이 모호한 동그란 것을 아주 좋아하셨는데 아주 귀한 옥부터 돌까지 사물의 귀천을 두고 좋아하시는 것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사람이 만든 다양한 동그란 물건을 수집하셨는데 촉룡에게 사심을 사고 싶어서 그에게 금이며 보옥으로 만든 동그란 물건을 보내와도 촉룡께서는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이면 받지 않았다. 탁음대선께는 사람이 깎아 만든 돌로 만든 구슬도 보물이고 산호나 수정을 깎아 만든 구슬도 보물이었다. 온객행은 사람들이 날짜를 세기 위해 만든 역법(曆法)이 그려진 동그란 나무패와 달의 모양을 새긴 보자기도 샀다. 돌아오는 길에 구운 떡을 팔기에 유서가 생각나서 그것도 샀다. 같이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한 낮에 더위에 지친 그가 안타까워서 그럴 수 없었다.

온객행이 배에 도착했을 때 포구는 도착했을 때보다는 한산했다. 선창에서 배위로 오르는 길에 망상 몇이 야시장으로 향하는 것을 본 온객행이 염낭에 들어 있는 동전을 나눠줬다. 객실에 도착한 온객행은 조용히 장지문을 열어 주자서가 누워있을 병풍 너머의 침상을 봤다. 불도 밝히지 않은 어두운 객실안으로 창호문을 열었는지 포구의 불빛이 희미하게 방안을 비추고 있었다. 침상 위에 인영이 보이지 않아 방을 찾다가 평상 위에 흐트러진 옷차림으로 앉아 있는 주자서를 찾았다. 장지문이 닫히는 소리에 주자서가 고개를 들었다. 온객행이 탁상위에 뭔가 내려놓더니 주자서 옆에 앉았다. “유서.” 주자서가 옆에 앉은 온객행의 손을 잡아 들고 얼굴에 대며 말했다. “더워서 잠이 오지 않습니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목덜미에 손을 얹고 말했다. “오늘은 밥도 안 먹었는데….” 주자서가 온객행의 손에 얼굴을 묻고 말했다. “괜찮습니다. 배고프지 않아요.”


온객행이 정을 주는 사람마다 이렇게 문제가 생긴다. 촉룡의 제자 답게 물 흐르듯 구름 흐르듯 평범하게 요괴나 신선을 만나든지 아니면 평범한 사람을 만날 수는 없었던 것일까? 오히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옥황상제께 부탁해보면 될 일 아니던가. 저승에는 항상 일손이 부족하니 흑망이 저승가서 한자리 차지하여 대선이 된다면 불가능한 이야기도 아니다.

온객행에게 망상의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 주자서는 객실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았다. 누가 들어오면 흠칫 놀라 일어나 그 사람이 나갈 때까지 경계하고 등을 보이지 않았다. 그가 행동하는 것이 귀여워 망상들 사이에서는 일부러 사내를 놀려주려고 객실에 들락날락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온객행이 부탁한 대로 간을 조금 심심하게 하여 가져다주는 음식은 남기지 않고 곧잘 먹었다. 나중에 온객행이 망상의 놀이를 눈치채고 사내의 곁에 계속 붙어 있어서 그 놀이도 얼마 가지 못했다. 온객행은 틈이 날때마다 주자서에게 들러붙어 말했다. “내 것이라고 표식을 하는 중이니….” 그럼 주자서는 온객행을 쏘아보면서도 몸에 힘을 빼고 축 늘어져 온객행에게 안겨 있었다. 사실 온객행의 체온은 서늘해서 주자서 입장에서도 그가 다가오는 것이 꼭 나쁘지만은 않았다.


주자서가 찻잔을 들어 입가심을 하고 말했다. “나의 부군 후보는 온공자와 현리낭자뿐이오?” 온객행이 주자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한참 생각하더니 말했다. “유서. 매일 밥을 세번이나 먹어야 한다면 기왕이면 맛있는 것을 먹도록 하세.” 주자서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그대를 부군이라고 부르면 됩니까?” 온객행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말했다. “내가 어서 부엌에 가서 보아야 하겠네.” 주자서가 온객행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부군! 저는 그대의 희첩입니까?” 온객행이 주자서의 말에 웃으며 말했다. “그대가 그리 하고 싶으면 그리 하게.” 주자서가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냥 이렇게 하면 비호가 되는 것이오?”

온객행이 작게 ‘아’ 하고 탄식하더니 말했다. “고상이 준 꽃 비녀를 아직도 가지고 있나?” 주자서가 동전이 들은 염낭을 찾더니 그 안에서 영견으로 싼 꽃 비녀가 나왔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손바닥 위에 있는 꽃 비녀에 ‘후’ 하고 숨을 불자 비녀가 반짝반짝 빛났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머리에 꽂혀 있는 주요가 줬던 옥비녀를 빼서 영견 위에 올려놓고 방금 온객행의 기운이 묻은 꽃 비녀를 주자서의 머리에 꽂았다. 주자서가 머리를 매만지며 말했다. “이… 이것은 여인들이 하는….” 온객행이 주자서의 얼굴을 마주보고 웃으며 말했다. “아주 잘 어울리네.” 그리고는 얼른 객실을 나갔다. 주자서는 온객행이 나간 객실의 장지문을 한참 보고 있다가 조금 부끄러워져서 양손에 얼굴을 묻었다. 무슨 일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알 수 없는 주자서는 괜히 익숙하지 않고 쳐다보기도 부끄러운 현리보다는 온객행이 나을 것 같아서 그렇게 했지만 사내가 사내의 희첩이 되어 그 결말이 좋은 것을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불안했다. 누구는 군왕이 죽자마자 바로 숙청당했고, 누구는 군왕의 마음이 바뀌어 참형 당했고 또 누구는….


현리는 갑판 난간에 기대어 배를 내리는 온객행과 주자서를 보았다. 짙은 감색의 장포를 입은 온객행과 옅은 쪽빛 장포를 입은 주자서는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막역한 친우관계 같았다. 사람들의 세상에서는 해서는 안되는 것들이 많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일평생을 함께하는 것은 겨우 한 갑자를 사는 사람에게 정말 운이 좋은 일이다. 그런데 좋아하는 사람을 사람의 절반으로 한정하는 것은 정말 멍청한 짓이다. 부모와 자식을 중요시하는 문화는 잔인한 형벌을 멈추었지만 그만큼 잔인하게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을 통념이라는 굴레로 묶었다. 사람의 법을 정하는 자에게 사람이란 탐욕을 채울 도구에 불과하니 세상은 어지러울 수밖에 없다.

편연주가 정박한 곳은 안개가 짙어서 당장 100보(步)앞도 안보인다. 현리는 피식 웃으며 안개속으로 사라지는 온객행과 주자서를 보았다. 망상을 불러 포구에서 가장 큰 상단을 부르라고도 시켰다. 날이 흐린 날에는 흐린 만큼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보는 것이 가장 좋다. 나어와 망상이 포구에 나가서 데려온 상단은 가릉상인(嘉陵商人)으로 가릉강(嘉陵江)과 부강(涪江), 거강(渠江)을 오가며 물건을 수송하고 판매하는 상인이다. 이 일대는 강이 많고 강수량이 풍부하며 습해서 예전부터 면화(綿花)로 유명하였다. 그들이 판매하는 무명은 종류도 많고 품질도 다양했다. 현리가 그들의 물건을 모두 살펴보고 옷감부터 가공된 여러가지 물건을 샀다. 마음에 드는 옥 노리개를 쓰다듬고 갑판을 내려가 하선하는 상인을 배웅했다.

선창에서 온객행에게 기대서 올라오는 주자서가 보였다. 현리가 온객행을 보고 물었다. “무슨 일이야?” 주자서는 축 늘어져 있다가 겨우 소매를 들어 현리에게 인사했다. 온객행이 현리를 보고 말했다. “오늘 더운가?” 중천이 넘었지만 하늘은 흐렸다. 강물 위에는 아직도 물안개가 남아 있었다. 현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기산 출신이면 덥긴 하겠군.” 온객행이 주자서의 몸을 부축하며 말했다. “사람은 더우면 어떻게 해주어야 하는가?” 현리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나는 별로 안 더워서 모르겠는데?” 온객행이 걱정스러운 안색으로 주자서를 보았다. 현리가 코웃음 치며 말했다. “부채질이라도 해주던가.” 그리고 현리는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온객행은 주자서를 방으로 데려와 자리에 앉혔다. 겉에 입은 장포까지 땀에 젖어 있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장포를 벗겨 옷걸이에 걸고 작은 면포에 물을 묻혀서 그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주자서는 자신의 얼굴을 닦는 온객행의 손이 시원하여 그의 손을 잡고 빨갛게 달아오른 이마에 붙이고 말했다. “찜통 속을 걷는 것 같았습니다.” 온객행이 잡히지 않은 다른 손으로 주자서의 손을 닦으며 말했다. “쉬고 계시오. 밥을 먹어야 하는데….” 주자서가 고개를 흔들고 온객행의 손을 놓아주고는 일어났다. “지금은 한 숨 자는 것이 좋겠습니다.”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장강을 지나 진사강에 들어서면 좀 나아질 테니 조금만 참아 보시오.” 온객행은 침상에 털썩 쓰러지는 주자서를 병풍너머로 보다가 객실을 나왔다.

현리가 옷감을 고르며 해주었던 말이 생각나서 파의 시장에 가서 정표라는 것을 사주려고 했는데 저렇게 잔뜩 지치게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태평호보다 기온이 높고 조금 습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활동하기에 불편하거나 잠이 올만큼 높은 온도는 아니었는데, 사람과는 또 달랐던 모양이다. 온객행은 현리가 있는 방에 기별했다. “현리. 흑망이 부탁이 있어서 왔네.” 안에서 대답이 없기에 온객행은 벌컥 문을 열었다. 탁자에서 차를 마시고 있던 현리가 ‘쯧’하고 혀를 차며 말했다. “흑망. 여인의 방에 기별도 없이 이게 무슨 무례인가?” 온객행이 장지문을 닫고 탁자에 가서 앉고 말했다. “기별하지 않았나? 대답이 없어 그랬지.” 현리가 탐탁치 않게 온객행에게 차를 권하고 말했다. “왜? 또 뭐?” 온객행은 현리의 눈치를 보다가 차를 마시고 고개를 흔들었다. 현리가 ‘흠’ 하고 아무 말이 없자 온객행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 더 빨리 진사강으로 갈 수는 없나?”


주극성을 나란히 돌아본 온객행과 주자서는 그동안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서호의 이야기나 전장에서 있었던 일들 같은 묻지 않으면 하지 않을 이야기를 했다. 온객행은 현악에서 만난 이후로 묘하게 순종적인 주자서의 태도가 발의 영력을 잃어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상황에서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취한 행동이었다는 것을 주자서와 대화를 하면서 처음으로 알아챘다. 주자서는 온객행이 퍼붓는 애정이 정말 자기가 좋아서 였다는 것을 깨닫는 중이라 얼떨떨했다. 온객행은 주자서가 자기에게 버림받기 싫었다는 것이 기뻤고, 주자서는 정말 보잘것없는 자기를 대가 없이 좋아해주는 것이 기뻤다. 그러다 주자서는 온객행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어서 슬퍼졌다. 온객행은 곁에 있어 주기만 하면 된다고 말하지만 주자서는 여태 온객행이 자기를 위해 했던 일들을 떠올리며 정말 그걸로 충분한걸까 생각했다.


주자서가 내실로 들어와 지주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대인! 뭐하는 겁니까?” 지주가 상강을 놓아주고 말했다. “유서. 나 아이가 가지고 싶어.” 주자서가 얼굴을 구기고 말했다. “네?” 지주가 고개를 돌려 상강을 한참 보더니 말했다. “보살이 나의 아이를 낳으면 상강보다 더 예쁘겠지?” 주자서가 헛웃음 치고 말했다. “꿈 깨시오. 천교께 죽으시려구요?” 지주가 다시 상강을 끌어안고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나는 보살과 아이를 가지고 싶은데 천교는 왜?” 주자서가 지주를 못마땅한 얼굴로 한참 쳐다보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지주의 품에 안겨 있는 상강을 놓아주고 내실을 나가려는데 지주가 주자서의 소매를 붙잡았다. “천교는 왜?” 주자서가 지주를 보고 코웃음 치며 말했다. “그 눈치로 어찌 상전을 두 분이나 모셨소?”


고상이 옆에 서 있는 지주를 보고 말했다. “망충?” 지주가 얼른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황룡을 뵙습니다.” 고상이 망충의 멱살을 잡고 말했다. “너! 우리 유서를 어쨌어?” 망충이 당황하며 말했다. “아니… 황룡 잠시 제 말을 들어보세요.” 고상은 지주를 앞뒤로 흔들며 말했다. “내가 삼하궁에서 고생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다 너 때문이야! 이 나쁜놈!” 지주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당황하여 횡설수설하자 즉저가 다가와 고상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황룡. 지주는 지금 태평호에서 수선의 내자를 보살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고상이 즉저를 보고 눈썹을 찌푸리자 즉저가 탁자에 자리를 권하고 말했다. “태평호에 있다가 주극성에 하원의 일을 돕기 위해 잠시 온 것입니다. 지주가 가져온 홍주를 드셔보시겠습니까?” 고상이 지주를 놓아주고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태평홍주?” 고상은 앉아서 즉저가 따라준 술을 마셨다. “크하! 담근지 얼마 안 된 것이네? 하하하” 고상의 기분이 좋아진 것을 본 지주가 슬그머니 즉저 옆에 가서 앉고 말했다. “동짓달에 수확한 구기자로 담근 것이라 아직 술 맛이 제대로 들지는 않았습니다.”

고상이 술을 마시며 말했다. “오공공 덕분에 저는 이제 차를 아주 잘 내립니다.” 즉저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황룡께서 내려 주신 차는 맛이 일품이지요.” 고상이 즉저를 흘겨보며 말했다. “저번에 태평호에 와서 받아간 그… 진주로 만든 목걸이는 어디 두셨소?” 즉저가 고개를 조아리고 말했다. “제가 벌을 받는 중이라 저의 재산은 모두 주극성에 회수되었습니다.” 고상이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에이! 그 진주 목걸이는 주요가 제일 좋아하는 거였는데.” 지주가 고상의 술잔을 채우며 말했다. “남해는 진주로 유명하니 전당군께 부탁해보세요.” 고상이 지주를 흘겨보자 지주가 웃으며 말했다. “유서는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마십시오. 화사로 변한지 얼마 안되어서 아직 영력이 별로 없습니다만 차차 쌓으면 좋아질 겁니다.” 고상이 부루퉁하게 말했다. “유서를 삼하궁으로 데려와야 하겠어. 내 아기니까.” 즉저는 고상의 말에 펄쩍 뛰며 말했다. “황룡. 안 될 말씀입니다. 견연의 내자를 어찌 감히….”

평상에서 자고 있던 상강이 부스스 일어나 지주에게 다가가 칭얼댔다. 고상이 상강을 발견하고 말했다. “어? 계낭? 너 왜 여기 있어?” 상강이 고상을 발견하고 품에 안기며 말했다. “아상!” 아상이 상강을 안아 들고 말했다. “너… 좀 큰 거 같다?” 지주가 당황하여 상강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황룡. 무례를 용서하세요. 아직… 모르는 것이 많은 아이라서….” 상강이 지주에게 말했다. “스승님. 아상이에요. 아상은 뱀딸기가 많이 나는 곳을 알아요.” 고상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맞아. 작년에 많이 나서 꿀에 절여 뒀다가 중원에 원병에 넣어 먹었지.” 상강이 웃으며 말했다. “맛있었어요. 태평공은 모르는 것이 많아서 입하랑 입추가 고생이에요. 그래도 매일 같이 밥을 먹었어요. 매일 명절 같아요!” 고상이 웃으며 말했다. “매일 밥을 먹었어? 그래서 큰 건가?” 상강이 고상의 얼굴에 뺨을 붙이며 말했다. “스승님이랑 같이 있으면 매일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어서 좋아요.” 고상이 지주를 쏘아보며 말했다. “스승님?” 지주가 손사래 치고 말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것이….”

홍주를 마시며 상강의 이야기를 듣는 도중 다른 계낭도 일어나 고상에게 인사했다. 태평호에서 지낼 때 자주 만났던 이들이라 고상은 태평호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울컥 치밀었다. 고상이 상강에게 물었다. “나랑 같이 갈래?” 계낭이 지주의 눈치를 보자 고상이 지주를 째려보며 말했다. “너희 스승님께서는 너희가 선택하면 그렇게 해주실 거야.” 지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어색하게 웃었다. 계낭은 활짝 웃으며 고상에게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상강이 고상에게 말했다. “스승님도 저희와 함께 갑니까?” 고상은 못마땅하게 지주를 위아래로 보며 말했다. “그럴까?” 상강이 고상의 허리를 끌어안고 말했다. “아상. 보고 싶었어요.” 다른 계낭도 다가와 고상의 치마를 붙잡았다. 고상이 계낭의 팔을 토닥이며 지주를 보고 말했다. “말도 가려서 하고 옷도 입고 영력도 늘었네?”

즉저가 고상에게 말했다. “지주는 사람을 다루는 일을 아주 잘합니다. 가신으로 들이신다면 많은 일을 해낼 것입니다.” 지주가 즉저를 쏘아보며 말했다. “천룡!” 고상이 지주를 보고 말했다. “일을 잘한다고?” 밖이 부산스럽더니 주요가 조금 흐트러진 차림새로 고상의 장포를 들고 들어왔다. 고상의 몸에 장포를 둘러 입히고 말했다. “아상! 옷도 안 입고 정말!” 즉저와 지주가 소매를 들어 인사했다. 계낭도 주요를 발견하고 고개를 조아려 인사했다. 주요는 익숙한 기운과는 달리 달라진 모습에 그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고상이 웃으며 말했다. “주요. 태평호에 살던 계낭이야. 지주의 제자가 됐데.” 주요가 표정을 구기자 고상이 지주에게 다가가 어깨에 팔을 두르고 말했다. “나 망충을 가신으로 삼을래.” 주요가 즉저를 보자 즉저는 지주를 힐끔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며

원래는 미완이었던 유혼을 이어서 쓰려고 했는데 전혀 다른 얘기가 되어버린... 왜... 왜 이렇게 된걸까? 초반에는 스케일이나 그런게 이렇게 크지 않았다. 그래서 퇴고할때 초반 부분에 수정할 부분이 엄청 많다. 수많은 요괴와 신선의 이름은 산해경(山海經)과 도교의 신 이름을 참고했다. 위키페디아가 없었다면 정말 아무것도 못했을지도... 의외로 한글보다 영어로 자료가 많아서 조금 당황했다. 동양신화인데 어째서? 내가 그리스신화에 더 익숙한 거랑 비슷한걸까?

아직 회수하지 못한 떡밥이 많이 남아 있으므로 그 떡밥을 회수한 후에 이부분은 다시 수정할 예정이다. 지금 생각나는게 별로 없기 때문인 것은 모르는척 해달라. 일단 메모해둔 것을 먼저 좀 정리해야한다. 10편이 넘어가면 내가 쓰면서도 모두 까먹기 때문에 호칭이 계속 틀린다. 무엇보다 나는 주인공이름도 자주 바꿔쓰기 때문에 크아아아ㅠㅠ 구상중인 에필로그는 6편으로…

제목이 36계가 된것은 단순히 주자서가 무관이었기 때문이다. 27편정도 즈음에 내가 왜그랬을까 엄청 후회했다. 사실 그 즈음에 내가 구상한 스토리가 끝났다. 전장에서 구를대로 구른 조금 피폐한 인간상을 그리고 싶었는데 뭔가 실패한듯 캐붕 수준으로 주자서가 너무 순둥하다. 온객행도 내가 원했던 것만큼 능글맞지 못했다. 나는 자극적인 글에 질려버린 걸까? 악역마저 뭔가 심심하다.

초반 구상으로는 떡 먹는 것을 계획했던 것 같다. 온객행의 눈이 새카맣게 변한다 거나 막 주자서를 물고 빨고 했던 것은 온객행이 갑작스러운 영력 회복으로 진짜로 발정이 왔고 주자서의 경우도 발의 능력으로 양기가 쌓여서 그걸 발산해야 하는 그런 므흣한 상황을 염두하고 쓴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런 건 하나도 못썼다. 이정도면 진짜 병 아닌가? 고자는 병인가? 응. 병이겠지.

이런 메모가 남아 있지만...
W: 나만보면 얼굴이 빨개져서 도망가... 물론 그 모습도 귀엽지만 나는 나를 보고 웃어주었으면 좋겠어.
X: 익숙해지면 괜찮아 질 거야…
W: 익숙해지다니? 어... 자주 해도 되는거야?
X: 사람은 발정기가 없으니까
W: 뭐? 그럼 어떻게...?
X: 사람은 일년 애내 발정한다고 볼 수 있지.
W: 뭐?
X: 유서가 좋아했나?
W: 그럼 매일 해도 괜찮아?
X: 매일은 좀 힘들지 않을까...? 그래서 너를 위해 춘화첩을 준비했지.
온객행이 춘화첩을 받아들고 한참 탐독하더니 행위에 대해 더 자세히 물었다. 현리는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줄 모른다는 말을 조금 체감했다.

주자서는 빨갛게 변한 온객행의 손을 잡았다. 조금 부끄러웠지만 그 손을 입으로 가져가 입맞췄다. 온객행은 그 행동이 좋아서 주자서에게 더 몸을 가깝게 붙였다. 주자서가 조금 타박하는 투로 말했다. “이렇게 데이기도 하는 군요”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기대며 말했다. “매일 데이고 싶어” 주자서가 온객행의 손을 놓고 말했다. “예?”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팔을 둘러 안으며 말했다. “매일 만지고 싶어” 주자서는 부끄러워서 온객행을 마주 안아 그의 어깨에 고개를 기댔다.

이런 메모가 남아 있지만 내 기억으로 이거 둘 다 쓰는데 두시간 이상 걸린 것들이다. 머리속으로 엄청난 시뮬레이션을 수십차례 반복한 후에 꼴랑 100단어 나오는 것이다. 진짜 죽고 싶다. 참고로 I give you my body 구매했다. 지금 한국으로 오는 중. 어서 왔으면 좋겠다. 다이나 센세... 좋아합니다. 사랑해요. 센세의 제자가 되고 싶어요... 다이나 센세의 블로그도 탐독했다. 나도 워드 프레스로 갈아타고 싶다. 아니면 블로거...

굉장히 많은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초반 10화까지는 최대한 산하령에 나오는 캐릭터를 쓰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뭔가 어느 순간부터는 누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구분하지 않고 막 썼던것 같다. 등장인물이 너무 많아져버린... 일단 주요라는 캐릭터는 산하령의 급색귀를 모티브로 만든 캐릭터이기는 하다.

캐릭터의 이름과 신분등은 도교의 신과 동양의 별자리를 많이 참고했다. 황제와 발에 관한 신화는 어느 정도는 사실로 거기에 살을 조금 붙인 것이다. 황룡을 아주 몹쓸 하남자로 만든 이유는 개인적으로 유교에서 황제를 상징하는 것으로 사용된 황룡이 조금 거슬려서 그랬다. 모든 신이 남자인것도 말이 안되고 어쩌다보니 대선급 신선의 수장이 전부 여성이 된 것도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것이다.

서왕모와 동왕공의 신화 역시 기존에 존재하는 것을 여기저기서 찾아보고 끼워 맞춘것인데 일단 동왕공은 서왕모때문에 만들어진 신이기도 하고 서왕모에 비하면 역사가 고작 천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서왕모의 권력을 더욱 크게 묘사하였다. 애초에 서왕모는 고대이전 선사시대 모계사회일때 등장한 굉장히 오래된 신으로 천년즘음 전에 유교와 도교가 융성하던 시절 구색을 맞추기 위해 만들어진 동왕공 따위에 비견할 신이 아니라는 말이다.

뭔가 시대가 변하면서 반도원의 복숭아 조차도 옥황상제에게 허락을 받지 않으면 서왕모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설정이 후대에 붙었다는데 나는 무시했다. 어차피 옥황상제 역시 삼청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복숭아 과수원 운영 같은 자잘한 일에 신경쓸리 없다. 저승이나 제대로 지키면 다행.

하늘의 계급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확실하게 정리한 것이 없기 때문에 그냥 대충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천존이라는 유일신이 있고 그 아래 삼청이라고 하는 상공급의 신이 있고 그 아래 진군과 현군, 현녀가 있고 천존이 신선으로 봉한 천선이라는 계급이 있고 오래 살았거나 계급이 높아서 대선이 된 애들이 있고 서왕모의 옥산에 취수와 약수를 건너 반도원을 지나 등선한 신선, 수선, 지선 뭐 그런게 있고 그런 신선이 되고 싶은 요괴들이 있다 뭐 그런 설정이다. 나도 세세하게 나누지 못했다. 왜냐면 진짜 찐 알못이니까.

요괴 중에도 급이 있어서 적송자나 뇌공 풍백의 경우 신선은 아니지만 땅에서 거의 신으로 칭송받는 급의 요괴들은 대선과 비슷한 급으로 존경받는다. 그런 애들 중에 사흉이나 사죄가 되는 애들이 있다고 하자. 뇌공이 도예랑 아는 사이인것처럼. 신하들이나 요괴로 나오는 애들은 주로 한자어 이름을 많이 가져다 붙였다. 안타깝게도 다 기억하지 못한다. 천룡=즉저=오공공=지네, 지주=협각=거미, 섬여=개구리, 나흘마=두꺼비, 문귀=무궁=거북이, 석척=도마뱀, 용슬=물방개 금귀자=풍뎅이... 뭐 이런식인 것이다.

즉저라는 캐릭터에 대해 외전에 뭔가 쓸까하다가 악역에게 서사를 주는 것은 타당하지 못한것 같아서 그만 두기로 했다. 즉저가 제일 처음 신선들과 교류하게 된것은 후토가 신분에 관계없이 신하를 천거할 때였다. 즉저는 주요랑 비슷한 연배임에도 영력이 주요보다 많이 떨어진다. 즉저는 기회주의적인 면모가 강한 캐릭터로 주요와 미평의 관계를 후토에게 보고한 것이 즉저다. 그래서 주요도 즉저를 별로 안 좋아 한다. 당시 즉저는 주요를 위한다고 그렇게 한것이지만 결과적으로 미평이 후토에게 먹히게 된 원인을 제공하게 되었으니... 그래서 즉저도 주요에게 조금 미안한 감정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즉저는 온객행 일에 대해서는 온객행이 멍청한 짓을 한거라고 생각한다.

온객행이 이름이고 파사는 종족 흑망이 하늘에서 부르는 이름이고 후에 신선이 되면서 견연이 된것이다. 이런식으로 다 가져다 붙이자니 내가 다 기억을 못해서 잠깐 나오는 캐릭터는 그냥 종족으로 퉁쳐버린 것이다! 동물에 대한 지식이 짧아서 틀린것도 있고 어차피 주요 내용은 그런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후토... 메인빌런인 황룡은 뭔가 서사가 있긴 하지만 사실 크게 뭐가 없다. 힘빠지는 전개는 내가 알못이기도 하고 내가 후토에게 별 관심이 없어서 그랬던것 같다. 고상이 황룡이 되는 설정은 후토가 나오고 난 다음부터 계속 생각하고 있던 일이다. 대체 천존은 무슨 생각으로 그 어린애를 그 자리에 앉혀 놓았을까? 사실 나도 모른다. 아마 서왕모와 동왕공을 중심으로 반목하는 사방신과 오룡 사령이 반목할 시간이 없게 만드는 목적도 있었을 것이고 후토를 그냥 뒀던 이유도 후토를 모시던 요괴나 신선을 배척하지 않기 위해서는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삼청과 진군, 현녀에 대해서는 많이 쓰지 않았는데 일단 서왕모와 동왕공이 땅에서 가장 높은 신분으로 설정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동양의 별자리를 대입해서 몇몇 캐릭터를 만들려다가 내가 아는게 너무 부족해서 그냥 덮어버렸기 때문인것도 있다.

계절과 시간을 맞추는게 너무 어려웠다. 평소에 잘 사용하지 않는 음력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날짜의 명칭과 계절감이 조금 이상할 수 있다. 도교에는 삼월설(三元说)이 있는데, "천관은 상원에 은총을 베풀고, 지관은 중원에 죄를 용서하며, 수관은 하원에 재난을 막아준다 天官上元赐福,地官中元赦罪,水官下元解厄" 라고 한다. 그래서 상원, 중원, 하원에 복을 바라는 제사를 크게 지낸다. 그 외에 사계(四季)라고해서 입춘,입하,입추,입동을 가장 큰 명절로 보았다.

주자서의 모친은 현리와 잘 꽁냥대다 천궁으로 돌아가셨고, 주자서의 당질인 울녕은 그렇다. 조위녕을 모티브로 만든 캐릭터이다. 하지만 뭔가 고상이랑 만나지도 못하고 끝나버렸다. 미안.. 하지만 여기서 더쓰는건 좀.. 너무 질질 늘어지는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기때문에.. 물론 27,28화부터는 진짜 뇌절이지만 크아아아아아 하지만 너무 재밋었다고요 쓰는 내가 재밋으면 된거 아닌가? 현리는 뭐 항상 하던데로 사람들과 잘 어울려서 살고 있다. 주자서의 모친도 현리에게 후회로 바래지 않는 아주 찬란한 보석이 되었을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녀는 금실력이 매우 뛰어나서 후에 천궁에서 악사가 되지 않았을까.. 이것도 그냥 궁예

벌을 마치고 온객행이 태평호로 돌아가고 난 뒤로도 온객행과 주자서는 셔틀마냥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일을 했을 것이다. 아마 천존은 더 많은 신선들이 서로 교류하고 의지하거나 견제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고상을 황룡자리에 앉힌건 아닐까...? 이건 다 쓰고 난 다음에 그냥 가져다 붙인거다. 의외로 쓰면서 앞뒤가 맞아지는 그런 일이 발생한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으나 뭐 어찌 되었든 스토리가 맞아 떨어지면 된 것이다. 나는 그런걸 일일이 하나하나 세세하게 설정할 만큼 꼼꼼하지도 못하고 비축분 그게 뭐죠? 생각? 플롯 그게 뭐죠? 매일매일 백지에서부터 머리털을 뽑아가며 쥐어짠다. 뭔가 잔뜩 벌여놨는데 뭔가 놓친게 있는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드는건 어쩔 수 없다. 나중에라도 뭔가 더 쓰게 될까? 다음에 쓰게 되면 제발.. 제발.. 제발...

초반의 밝은 분위기를 끝까지 이어나가지 못한것이 제일 아쉽다. 뭔가 이런 스케일이 아니었던것 같은데 왜 이렇게 된걸까? 뭔가 산하령의 그 어느 부분도 제대로 나오지 않은것 같은 너무 오리지날리티 넘치는 글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그런가 써놓고 기억해야할 부분이 많아서 지금 퇴고하지 않으면 아마 영영 못할것 같은 불안감이 있다. 만약에 다음이 있다면 천교랑 보살얘기를 하고 싶다. 우사첩인데 어쩌다 주요를 모시게 된걸까? 어쩌다 태평호로 오게된걸까? 오기 전부터 둘이 그런 사이였는지 아니면 태평호에 오고 난 다음에 그렇게 된건지도 궁금하고 이 둘도 분명한 성애인데 어차피 고자인데 소녀들이 사랑하는 얘기도 써보고 싶다. 탐텀의 구분을 해보고 싶다 진짜.. ㅠㅠ

+어... 주자서의 재종형제는 왜 도망치려다 붙잡혀서 죽은걸까? 내 기억에 당질인 주울녕의 모친이 꼬드겨서 도망치려고 하다가 주울녕의 모친은 죽고 주자서의 재종형제는 전장으로 징병당했다는 내용을 구상했던것도 같은데...후기포함 총 36만자(공백미포함) 정도이다. 퇴고를 하면 늘어날지 줄어들지 벌렁벌렁... 후기만 2만자 하고싶은 얘기가 많은 저의 이 쓰잘대기 없는 것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질문대환영입니다. 하지만... 제가 과연 답할수 있을까요? ㅠㅠㅠㅜㅜㅠㅠ

蛇苺外傳 第5

敗戰 | 열세(劣勢)를 우세(優勢)로 바꾸다.

별궁을 지키는 여우와 삼족오는 남궁에서 별궁으로 이어져 있는 회랑과 동문으로 나가는 문에서 점호(點呼)를 하고 교대를 한 후에 한 시진마다 순찰을 돌았다. 문에서 회랑으로 회랑에서 문으로 잇는 길을 살피는 것인데 상원이 얼마 남지 않은 별궁에는 손님이 많아 별궁 근처는 항상 어수선했다. 지붕 위로 올라가 술을 마시는 이가 있는가 하면 별궁 내원에 있는 정각에서 금을 타거나 피리를 부는 이도 있었다. 그러면 그 소리를 듣고 신선들이 나와 정원에 앉아 차를 마시거나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먹거나 잠을 자지 않아도 되는 신선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낮에는 날이 좋아 풍류를 즐기는 신선이 있었고, 밤에는 달이 좋아 풍류를 즐기는 신선이 있었다. 신선과 가신이 항상 많이 나와 있고 서로의 거처에 초대하기도 했기 때문에 보통 장지문을 활짝 열어 놓은 곳이 많았는데 별궁 서쪽에 있는 장서각을 급하게 정리하여 객실로 만든 별각에 장지문은 항상 닫혀 있었다. 마치 사람이 하는 것처럼 동트기 전에 일어나 남궁 외실로 향하여 정무를 보고, 해가 지면 돌아와서 자시가 넘으면 등롱을 끄고 잠을 잤다. 서쪽의 별각은 다른 곳보다 조용했기 때문에 그 곳에서 보초를 서는 것은 다른 곳에서 번을 서는 것보다 인기가 있었다.

운이 좋게 서쪽에 번을 서게 된 삼족오는 별각 근처를 배회하다 별각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앉아 멀리서 들려오는 금소리를 듣고 있었다. 하늘에는 구름이 조금 있었지만 별을 가릴 정도는 아니라 삼족오는 별을 헤아리며 지금 해시쯤 되었겠구나 생각하며 고개를 괴었다. 다른 객실과 달리 혼자 동떨어져 있는 별각은 모두가 번을 서고 싶어 하는 거처였는데 듣기로는 주극성에서 요대를 돕기 위해 보낸 신선이라는 말도 있고, 이제 갓 등선한 새내기 수선이라는 말도 있고, 옥산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파사라는 말도 있었다.

삼족오는 누군가 들어가고 나가는 것을 본 적은 없었기 때문에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누군가의 기척을 읽은 삼족오가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흘마가 찬합을 들고 별각으로 오고 있었다. 삼족오가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나흘마가 고개를 조아려 인사하고 말했다.
“봉황께서 수선께 대향초(大香焦)를 보내셨습니다.”
삼족오가 고개를 끄덕이고 계단을 올라 장지문으로 가서 말했다.
“수선. 봉황께서 선물을 보내셨습니다.”

내부에서는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부딪히고 쓰러지는 소리가 나더니 작은 대화 소리가 들렸다. 삼족오는 눈썹을 찌푸리고 다시 말했다.
“수선. 괜찮으십니까?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삼족오의 말에 전보다 다급한 대화가 오갔다.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 주시오!”
수선의 목소리를 들은 삼족오는 눈을 굴리고 장지문 앞에 서 있는 나흘마를 보았다. 나흘마도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으니 삼족오를 빤히 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일각 정도 지나서 수선이 조금 흐트러진 옷차림새로 문을 열고 나왔다.

삼족오가 포권하고 말했다.
“수선. 봉황께서 선물을 보내셨습니다.”
나흘마가 고개를 조아리고 말했다.
“남방에서 보낸 공물 중에 대향초가 남아서 봉황께서 수선께 가져다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수선은 조금 상기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찬합을 받았다.
“고맙습니다. 아… 저희는 보통 해시에 잠자리에 드니 선물은 남궁에서 받아도 되겠습니까?”
나흘마가 고개를 조아리고 말했다.
“송구합니다. 그렇게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나흘마는 계단을 폴짝 뛰어 내려갔다.

온객행은 장지문 앞에 서 있는 삼족오를 보고 물었다.
“어… 언제부터 여기 계셨습니까?”
삼족오가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술시에 교대했으니 한 시진쯤 있었습니다. 주변에 별일 없었습니다.”
온객행이 삼족오를 보고 물었다.
“어… 문 앞에 계셨습니까?”
삼족오가 눈썹을 찌푸리고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니오?”
삼족오가 별궁 근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근처에 있었습니다. 외원과 내원이 조금 시끄럽지만 이 주변은 조용하고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온객행이 작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그… 그렇습니까? 고맙습니다.”
온객행은 찬합을 열어 안에 들어 있는 대향초를 보더니 두어개 떼어 삼족오에게 건넸다.
“그럼 고생하십시오.”
그리고 장지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갔다. 대향초를 받은 삼족오는 얼떨떨하여 손에 쥐어진 노란색 과일을 보았다.


장지문을 닫고 찬합을 들고 들어오는 온객행을 병풍 뒤에 서서 보고 있던 주자서가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온객행이 찬합을 탁상 위에 놓고 털썩 앉으며 말했다.
“봉황께서 대향초를 보내셨어요.”
주자서는 병풍에 걸어 놓은 장포를 꿰어 입고 끈으로 허리를 고정한 뒤 탁상으로 가서 찬합을 열었다. 찬합 안에는 샛노란 과일이 들어 있었다. 주자서는 처음 보는 것이라 물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온객행이 찬합 안에 있는 대향초를 꺼내 껍질을 깠다. 온객행이 하는 것을 보고 있던 주자서가 냄새를 맡고 말했다.
“과일입니까?”

온객행은 작게 자른 과육을 주자서의 입에 넣어주었다. 주자서는 온객행을 보고 입을 오물거리며 씹어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 앉았다. 온객행은 남은 대향초를 먹고 껍질을 탁상 위에 올려 놓으며 말했다.
“밖에 번을 서는 시위가 있어요.”
주자서는 얼굴이 빨개져서 말했다.
“어디…? 어디에요?”
온객행이 팔을 휘두르며 말했다.
“여기 별각 근처를 호위하는 모양입니다.”
주자서가 고개를 숙이고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들렸을까요?”
온객행이 고개를 흔들고 말했다.
“조용하고 아무 일도 없었다 합니다.”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다행입니다.”

온객행은 새빨개진 주자서를 한참 보고 있다가 자리를 옮겨 주자서의 옆에 앉아 목덜미에 입을 맞추고 말했다.
“계속합시다.”
주자서가 고개를 들어 장지문을 보고 말했다.
“오늘은….”
온객행이 주자서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주자서의 앞섶에 손을 넣고 말했다.
“이제 아무도 안 와.”
주자서가 온객행의 손을 잡고 말했다.
“밖에서 번을 선다면 서요. 밤새 누가 있다는 뜻이 아닙니까?”

온객행이 주자서의 턱을 잡아 자기를 보게 하고 윗입술을 핥고 살짝 물었다 놓고 말했다.
“조용히 하면 되지.”
주자서는 곤란한 얼굴을 하면서도 온객행을 뿌리치지는 않았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입술을 희롱하다 입술 근처에 나와 있는 혀를 희롱하고 빨았다. 주자서는 작게 콧소리를 내더니 온객행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한참 입술을 맞붙이고 있다가 온객행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자서의 손을 잡고 침상으로 가며 말했다.
“아주 조용히 하면 됩니다. 천천히 하면 돼요.”


축시가 넘어서 별궁으로 양조가 급히 들어왔다. 별각의 번을 서고 있던 삼족오는 자시에 교대를 하여 이번에는 여우가 번을 서고 있었다. 별각 내부의 등롱도 모두 꺼진 상태라 안에 있는 손님들은 잠자리에 든 것 같았다. 희미하게 내원에서 들리는 피리 소리를 들으며 별각의 근처를 걷고 있던 여우는 양조가 다가오는 기척을 느꼈다. 여우는 양조를 발견하고 포권하여 인사했다. 양조는 여우의 인사를 고개를 끄덕여 받고 장지문으로 향했다.
“견연! 급하게 전할 말이 있네.”
그리고 장지문을 벌컥 열었다. 안쪽은 등롱을 밝히지 않아 아주 어두웠다. 양조가 등롱을 찾아 불을 밝히자 침상 근처에 옷가지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양조가 침상에 있는 병풍으로 다가가 말했다.
“견연! 급하게 전할 것이 있네!”
온객행은 잠을 자고 있다가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에 떨어진 내의를 주워 입고 침상에서 나왔다.
“양조?”

양조가 온객행의 벗은 몸을 보고 놀라서 뒤돌아 탁상으로 가서 말했다.
“뭘 하고 있었기에 내의도 입지 않고 있나?”
온객행이 서둘러 옷을 입으며 말했다.
“그러는 양조 께서는 어찌 기별도 없이 이렇게
“원군께서 돌아오셨네! 어서 중궁으로 가지.”
온객행은 자기가 옷을 다 입자 근처에 함에서 새 옷을 꺼내 침상으로 가서 주자서의 시중을 들었다. 양조는 온객행이 병풍 뒤에서 법석을 떠는 것을 보고 있다가 혀를 차며 말했다.
“남궁 회랑에서 기다리겠네. 사령께서는 이미 중궁에 계시니 서두르게.”
양조는 장지문도 닫지 않고 서둘러 회랑으로 향했다.

주자서는 시중을 들어주는 온객행의 손을 잡고 말했다.
“객행. 급한 일인 듯하니 어서 가보십시오. 저도 남궁에 있겠습니다. 주자서는 온객행을 면경 앞에 앉혀 놓고 머리를 올려주었다. 온객행은 의관(衣冠)을 살피고 중궁으로 향했다. 주자서는 입던 옷을 마저 입고 머리를 빗고 관을 했다. 병풍 위에 걸린 옷과 침상에 널려 있는 옷을 대충 정리하고 등롱을 들고 별각을 나왔다. 별원에서 나는 음악 소리가 은은하게 들렸다. 하늘의 별을 헤아려보니 축시가 거의 끝나가고 이제 인시가 될 것 같다. 별궁을 나오자 남궁으로 향하는 회랑이 소란스러웠다. 정말로 무슨 일이 있는 것인지 남궁에 도착하자 요대의 일을 도왔던 신선 몇과 가신들이 모여 있었다.

주자서가 청구를 발견하고 다가가 소매를 들어 인사하고 물었다.
“청구. 무슨 일입니까?”
청구는 주변에 있는 시위에게 명령을 하느라 주자서에게 뭔가를 대답해줄 여유가 없었다. 청구가 주자서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주자서가 도착한 이후로도 신선의 가신 몇이 더 남궁으로 들어왔다. 청조가 모인 신선과 가신을 불러 놓고 말했다.
“원군께서 돌아오셨습니다. 조금 이른 시각이긴 하지만 상원 제례 준비를 지금부터 해야 하겠습니다.”
주자서는 온객행과 함께 정리했던 제향품 목록이 적힌 죽간책을 찾아 들고 청조를 따라 중궁으로 향했다. 중궁의 동쪽에 있는 재실에서 주자서는 나흘마와 노괵 몇을 따라다니면서 목록에 적힌 물품을 확인하고 기록하는 일을 했다.


급하게 중궁으로 향한 것치고 온객행은 중궁에 서서 다른 신선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입을 삐죽이고 있는 온객행을 발견한 응룡이 다가가서 말했다.
“견연. 일은 할 만 한가?”
온객행이 중궁 안으로 들어오는 현명을 보고 놀라서 응룡을 보고 물었다.
“현명대선께서 왜 여기 계십니까?”
응룡이 온객행 옆으로 가서 말했다.
“산천대제께서 여기 계시니 현명도 여기 와야지.”
온객행이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산천대제께서는 왜 요대에 계십니까? 동해에서 벌을 받고 계신 것이 아닙니까?”
응룡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천존께서 부르셨다는데 나도 정확히는 모르네. 소려께서 뭐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봉황이 온객행에게 다가가 물었다.
“견연. 내가 보낸 대향초는 받았는가?”
견연이 소매를 들어 인사하고 말했다.
“네… 저희 내외는 해시가 넘으면 잠자리에 드니 다음부터는 남궁에서 받겠습니다.”
봉황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아… 그렇군. 그렇게 하게.”
온객행이 말했다.
“태평공께서는 단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세요.”
응룡이 조금 질린다는 투로 말했다.
“그런가?”
봉황이 온객행을 보고 물었다.
“현리도 왔다고 하던데 만났나?”
온객행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니요. 아직. 남궁에서 연주할 악사를 데려왔다고 들었습니다.”
응룡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아무래도 제례를 일찍 시작할 모양이야.”

금모원군이 내실에서 나와 용호좌에 앉았다. 그 옆에 마련된 의자에 앉은 산천대제는 전보다 조금 젊은 모습이다. 천궁에서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금모원군과 산천대제 둘 다 표정이 별로 좋지 못했다. 신선이 모두 중궁으로 들어오고 난 이후에 금모원군 옆에 서 있던 대려와 소려가 천궁의 지시와 상원의 제례에 관련되어 결정된 사안에 대해 이야기했다. 제례에 참가하는 신선과 그렇지 않은 신선을 나누고 그렇지 않은 신선에게 제례의 진행을 배분했다.

온객행은 현무 대리로 참가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신선들의 자리를 안내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제례가 끝난 후 음복례(飮福禮; 제사에 쓴 술이나 음식을 나누어 먹음)가 끝나면 제기(祭器)를 치우는 일도 맡았다. 온객행은 요대에서 시중을 드는 신선이 입는 녹색 옷으로 갈아입고 섬여가 건네준 제례의 순서가 적힌 죽간을 받았다. 온객행은 녹색 옷을 입은 다른 신선들과 중궁 덧문에 모여 죽간을 읽었다. 순서를 확인하고 초대된 신선의 배치를 확인하니 벌써 시간이 많이 지나 있었다.

동이 트기 전까지 제례가 시작되지 않기 때문에 신선 몇은 기둥에 기대거나 난간에 걸터앉아 시간을 보냈다. 신선 하나가 동쪽 재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치가 흑망의 내자라는군.”
온객행은 놀라서 보고 있던 죽간에서 눈을 떼고 산선(山仙)을 보았다. 고개를 돌려 산선이 손가락질하고 있는 곳을 보니 주자서가 나흘마와 함께 커다란 상자를 옮기고 있었다. 크기와 모양을 보니 제기가 들어 있는 함 같았다. 주자서 주변으로 여러 명의 나흘마와 노괵이 상자를 옮기고 있었다.

중궁의 부엌은 동쪽 재실에 있으니 완성된 제사 음식을 제기에 담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것이다. 산선 옆에 있던 지선(池仙)이 말했다.
“화사라던데...?”
산선이 웃으며 말했다.
“화사인데 사내라니.”
지선이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사내라도 저 정도면 나쁘진 않군.”
산선이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나쁘지 않다니?”
지선이 말했다.
“낭창낭창하니 사내면 어떠한가?”
온객행은 지선에 말에 웃고 있는 신선들을 쏘아보고 죽간을 내려놓았다. 계단을 내려가 주자서에게 다가갔다.

주자서가 온객행을 발견하고 웃으며 말했다.
“객행!”
나흘마와 노괵은 온객행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고 주방으로 향했다. 온객행이 주자서가 들고 있는 상자를 대신 들고 주방으로 향했다. 주자서는 온객행의 팔을 잡고 말했다.
“제가 해도 됩니다. 객행은 바쁘지 않습니까?”
온객행은 고개를 젓고 말했다.
“잠깐 쉬는 중이라 괜찮소. 이렇게 무거운 것을 어찌 들었소?”
주자서가 웃으며 말했다.
“무겁지 않습니다.”
온객행은 중궁에서 맡은 일에 대해 말했다. 주자서도 다른 가신들과 함께 무슨 일을 했는지 온객행에게 말했다.

온객행이 주방에 상자를 내려놓자 노괵이 주자서에게 목간을 가지고 왔다. 주자서는 소매에서 죽간을 꺼내 목간과 맞춰보고 노괵이 건넨 목간을 부러뜨렸다. 노괵은 부러진 목간을 치우고 고개를 조아리고 주방을 나갔다. 나흘마가 다가와 주자서에게 말했다.
“제기 목록을 확인하셨으면 제례가 끝날 때까지 쉬셔도 좋습니다. 제례가 끝나면 다시 확인 필요하니 사시와 오시 사이에 제기를 보관하는 재실 창고로 와주십시오.”
주자서는 소매를 들어 나흘마에게 인사했다. 나흘마도 주자서에게 인사하고 바쁘게 주방을 나갔다.

주자서는 온객행을 다시 중궁의 정전으로 데려다주며 말했다.
“객행은 그럼 제례 내내 중궁에 계십니까?”
온객행이 입을 앞으로 쭉 내밀고 말했다.
“응.”
주자서가 웃으며 온객행의 옷매무새를 정리해주고 말했다.
“녹색 옷도 잘 어울리십니다.”
온객행이 앞섶을 쓸고 말했다.
“그래? 유서는 녹색이 좋은가?”
주자서가 고개를 흔들고 온객행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객행이 입어서 좋습니다.”
온객행은 배시시 웃으며 주자서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밖에서 그러지 말라고 했으면서….”

온객행의 투정에 고개를 어깨에 기대며 주자서가 말했다.
“여기는 아무도 없지 않소.”
온객행이 낮게 웃으며 말했다.
“없기는.”
그리고 고개를 돌려 중궁의 정전으로 들어가는 덧문에 있는 신선들을 보았다. 그들은 온객행의 시선에 놀라서 모두 고개를 돌렸다. 주자서가 고개를 돌려 정전을 보고 말했다.
“다들 녹색 옷을 입으셨군요.”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고 주자서를 남궁 쪽으로 밀며 말했다.
“일단 우리가 일했던 집무실에 계세요. 평상에서라도 좀 주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객행은 피곤하지 않으십니까?”
온객행은 주자서를 마주 보고 말했다.
“나는 유서랑 같이 있으면 피곤하지 않은데 중궁에 있으려고 하니 너무 피곤합니다.”
주자서가 낮게 웃으며 말했다.
“객행. 그래도 상원 덕에 우리가 같이 있을 수 있었잖아요. 저는 도움이 될 수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끌어안고 말했다.
“유서가 이렇게 일을 잘하는지 몰랐어요.”

주자서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온객행을 마주 안고 말했다.
“제가 도울 수 있게 해주세요. 객행 혼자 모두 짊어지려고 하지 마세요.”
온객행은 주자서의 어깨에 고개를 묻고 말했다.
“응.”
주자서가 온객행을 놔주고 어깨를 쓸며 말했다.
“제례가 끝나면 남궁 연회 때는 같이 있을 수 있어요.”
온객행이 주자서를 보고 양손을 잡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응. 중천이 되기 전에 제례가 끝날 테니 오시 전에만 중궁으로 오면 됩니다. 지금부터 자면 두 시진은 잘 수 있으니 어서 가세요.”
온객행은 말로는 어서 가라고 했으면서 주자서의 손을 쉽게 놓아주지 못했다.

중궁 입구에서 둘을 구경하던 신선은 정전에서 나온 섬여가 지시사항을 전달하고 있었다. 섬여가 남궁으로 향하는 회랑에 온객행을 발견하고 그를 불렀다.
“견연!”
온객행은 주자서를 놓아주고 다시 계단을 올라 중궁으로 향했다. 주자서는 온객행이 계단을 올라 섬여에게 지시를 받는 모습을 한참 보다가 온객행이 덧문 안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남궁으로 향했다.


주자서는 남궁에 도착해서도 별로 쉬지 못했다. 남궁의 연회 준비를 돕다 보니 벌써 사시가 훌쩍 넘었다. 주자서는 주안상을 정리하는 노괵에게 사정을 말하고 급하게 중궁으로 향했다. 주방에서는 제례가 끝났는지 녹색 옷을 입은 신선들이 중궁에서 제기를 들고나왔다. 섬여는 남은 음식을 찬합에 가지런히 담았고, 주자서는 나흘마와 노괵이 씻어 놓은 그릇을 천으로 잘 닦아 나무 상자안에 넣으며 제기를 확인했다. 그러다 온객행이 상을 들고 들어오면 주자서는 손을 멈추고 온객행을 향해 배시시 웃었다. 온객행은 저를 보고 웃는 주자서가 너무 좋았지만 같이 들어온 다른 신선이 주자서의 웃는 얼굴을 본다고 하니 화가 나서 조금 부루퉁하게 행동했다. 주자서는 아는지 모르는지 온객행이 상을 들고 들어 올 때마다 온객행에게 웃어 주었다. 온객행은 제사가 끝난 중궁 내부를 치우는 일을 도왔고 하늘에서 내려온 천관은 중궁의 정원을 지나 연회에 참가하기 남궁으로 향했다.

온객행은 중궁 내부가 정리되자마자 중궁의 재실로 갔다. 그곳에는 나흘마와 주자서가 남아서 제기를 확인하고 있었다. 나흘마가 말했다.
“모두 확인했습니다. 제향품 목록이 적힌 죽간은 남궁 외실에 두시면 제가 장서각에 반납하겠습니다.”
주자서가 소매를 들어 인사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온객행이 재실 각고의 문간에 서서 말했다.
“고생하셨습니다.”
나흘마는 온객행을 보고 소매를 들어 인사하고 각고에서 나갔다. 주자서가 각고에서 나와 문을 닫고 말했다.
“객행.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어서 남궁으로 가보세요. 천관께서 베푸시는 축복을 받아야지요.”

온객행이 고개를 흔들고 말했다.
“내 축복은 여기 있으니 남궁까지 갈 필요 없습니다.”
주자서는 온객행의 말에 ‘하하하’하고 크게 웃었다. 중궁을 정리하던 나흘마와 노괵이 그들이 있는 쪽을 보았다. 주자서는 얼른 입을 손으로 가리고 말했다.
“제가 객행의 축복입니까?”
온객행이 주자서의 허리를 끌어안고 말했다.
“응.”
주자서가 웃으며 온객행의 손을 잡고 남궁으로 이끌며 말했다.
“저를 위해 축복받고 오세요. 제가 빨리 영력을 쓸 수 있게 빌어주고 오세요.”
온객행이 주자서의 손을 잡고 중궁의 정원으로 이끌며 말했다.
“축복은 하늘로 올라가실 때 하니까 해가 질 때까지 우리 요대 정원을 구경하자.”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이고 순순히 정원으로 향했다.

요대의 하인들은 남궁의 연회 준비로 바빴고 신선과 신선의 가신들은 천관의 축복을 받기 위해 남궁에 있었기 때문에 중궁의 정원에는 회랑을 지키는 시위 몇만 있었다. 온객행은 주자서에게 부루퉁하게 군 것이 미안해서 말했다.
“유서는 내 눈에만 아름다운 게 아닌가 봐.”
온객행의 말에 눈썹을 찌푸린 주자서가 말했다.
“무슨 소리입니까? 중궁에서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온객행은 발걸음을 멈추고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유서, 웃는 모습은 나에게만 보여주세요.”
주자서가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객행. 무슨 소리예요?”
온객행이 주자서를 끌어안고 말했다.
“중궁에서 일하던 신선들이 모두 유서가 웃는 모습을 봐 버렸어요.”
주자서가 온객행의 등을 쓸고 말했다.
“제가 웃는 것이 싫으셨습니까? 힘내라고 그런 건데….”
온객행이 고개를 흔들고 말했다.
“아니. 아니. 너무 좋았는데 남들이 보는 것이 싫었소. 질투 납니다. 모두 찾아내서 눈을 도려내 버리고 싶어요.”

주자서가 깜짝 놀라 온객행을 놓고 말했다.
“객행!”
온객행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정말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 아니고… 물론 정말 그러고 싶긴 하지만….”
주자서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객행… 몸도 마음도 다 드리지 않았습니까? 저는 더 드릴 것이 없는데….”
온객행이 다시 주자서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유서 나는v바보라서 말해주지 않으면 몰라요. 내가… 혹시 내가 잘못하고 있으면 바로 말해줘야 해요.”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온객행의 등을 토닥였다.
“다 말씀드릴게요. 불안해 마세요. 객행 곁에 있겠습니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고 말했다.
“유서는 아무것도 못 했으면 좋겠어요. 나에게 전부 의지해줬으면 좋겠어요.”
주자서가 웃으며 말했다.
“저도 객행이 아무것도 못 했으면 좋겠어요. 제게 전부 의지해줬으면 좋겠어요.”
온객행이 낮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유서가 나를 책임져 줄 거에요?”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그럼요.”
주자서가 온객행을 놓아주고 얼굴을 잡아 입을 맞추고 말했다.
“불안증도 병이니 아프지 마소서.”
온객행이 얼굴을 붙이고 말했다.
“유서 나는 더 아픈 것 같아요.”
 

蛇苺外傳 第4

攻戰 | 계책을 모의하여 견주다.

온객행이 돌아가고 며칠 동안 주자서는 괜찮은 듯하더니 다시 몸이 축축 늘어지기 시작했다. 섣달에 들어서자 더는 부유각에 있을 수 없어서 입하와 입추를 시켜서 주자서의 거처를 백택으로 옮겼다. 태호에 갔던 기룡은 무지기를 하나 데려왔는데 그는 그 무지기를 데리고 삼하궁으로 갔다. 기룡은 삼하궁으로 향할 때 화구함을 들고 가지 않았기 때문에 천교와 보살은 그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자서의 거처는 백택 정전의 서쪽에 있는 손님용 객실이었다. 주요가 태평호의 주인일 때는 여인들이 머무를 수 있도록 규방같이 꾸며진 곳이라 대부분의 방이 크지 않았다.

주자서는 소지품이라고 할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그가 머물기는 불편한 것이 없었다. 불편한 것이라면 주자서가 백택으로 처소를 옮긴 날 밤, 온객행이 백택을 휘저어 놓은 일 정도이다. 주자서의 상태를 보고 온객행도 납득할 수밖에 없었지만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주극성은 겨울에 일어나는 일을 관장하는 곳이기 때문에 겨울에 바빴지만, 현무가 해야 하는 일을 적송자와 온객행이 나누어서 했기 때문에 하원을 준비할 때처럼 바쁘지는 않았다. 천교와 보살은 온객행이 기룡의 그림을 통해 태평호에 올 수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거의 매일 찾아오는 줄은 몰랐다.

부유각에 있을 때는 자기도 모르게 정신을 놓고 있느라 끼니를 놓치는 일이 많았던 주자서는 백택으로 거처를 옮기고 난 이후에 잘 먹어서 갑자기 쓰러지거나 뱀으로 변하는 일은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은 주자서에게 참기 힘든 일이었지만 자꾸만 깜빡이는 의식을 어쩌지 못하니 마음이 답답했다. 모래 상자를 가져다 놓고 계낭에게 글자를 가르치다가 깜빡 정신을 놓고 있으면 입하나 입추가 와서 피풍의를 걸쳐주거나 화로를 근처에 가져다 놓았다. 의식이 점멸해도 춥다는 것을 느낄 수가 없어서 주자서는 언제 꺼질지 모르는 정신을 붙잡느라 온종일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입하는 주자서가 걱정되어 낮잠을 자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지만 기온이 올라가서 잠시나마 밖에 나갈 수 있는 시간을 잠으로 보내는 것이 아까워 그렇게 하지도 못했다. 혹시 몸을 많이 움직여서 체온을 올리면 좀 덜할까 싶어서 체술을 수련한 날은 밤에 반동으로 체온이 더 많이 떨어져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기도 했다. 천교와 보살에게도 사람에서 요괴가 된 주자서는 낯선 것이라 모두가 허둥대는 사이 해의 마지막 섣달이 되었다.


삼하궁으로 갔던 기룡은 무지기를 삼하궁에 두고 다시 돌아왔다. 기룡은 주자서를 제자로 받은 이후로 그에게 뭔가를 가르친 적이 없었는데 섣달이 다가와 날씨가 더 추워지자 정신을 못 차리는 주자서에게 운기 조식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운기 조식하는 동안은 어쩔 수 없이 영력을 사용하지만 그래도 운기조식을 하고 나면 몸에 영력이 강하게 깃들기 때문에 정신을 놓는 일이 덜할 것이다. 기룡이 주자서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너무 서두르지 마라. 너는 사람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아마 짐승으로 태어난 아이들 보다는 빨리 깨우칠 거야.”
주자서가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더운 것은 알겠는데 추운 것은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기룡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럴 수 있다. 감각이 조금 이상할 거야. 뱀과 사람은 많이 다르니까.”
기룡은 유사혈에 들러 주자서가 객실에서 지내면서 심심하지 않게 신선과 영력에 관련된 내용의 서책을 잔뜩 빌려왔다. 천교와 보살이 기룡에게 물었다.
“대체 뭘 주고 이렇게 많이 얻어 오셨습니까?”
기룡이 ‘허허허’ 웃으며 말했다.
“정전에 걸어 놓은 그림 중 하나를 표구해서 가져다줬더니 좋아하더구나.”

보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너무 많이 주지 마세요. 사자형제는 욕심이 많으니까요.”
천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요즘 현리께서 계시는 장강 쪽에 가 있는 줄 알았는데….”
기룡이 웃으며 말했다.
“현리 아들이 파(巴)에서 장사를 크게 한다더군. 사람들의 세상에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라 어수선해.”
보살이 기룡이 가져온 서책을 들고 주자서가 머무는 객실로 향했다. 천교가 기룡을 외실로 모시며 말했다.
“어르신. 오시는 길에 사람을 보셨습니까?”
기룡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날이 추워서 그런 것인지는 아니면 산세가 험해서 그런 것인지 구강까지 나가지 않으면 사람이 많지 않네.”
천교가 물었다.
“이곳까지 닿지 않겠지요?”
기룡이 ‘허허허’ 웃으며 말했다.
“너무 걱정 말게. 내가 있지 않은가?”
정전 내실에 있던 계낭이 다가와 기룡의 소매를 잡았다. 기룡이 곡우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얘는 그림에 재능이 있는 것 같은데 내가 가르쳐봐도 되겠는가?”
천교가 곡우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곡우가 하겠다고 하면 그렇게 하십시오.”
기룡이 천교를 보고 물었다.
“그러고 보니… 자네는 등선하지 않는가?”
천교는 웃으며 답하지 않았다.


뚱뚱한 솜옷을 입은 계낭 둘이 백택으로 들어가는 송문을 지키고 있었다. 온객행이 나타나자 계낭은 다소곳이 인사하고 문을 열었다. 온객행은 천천히 걸어 작은 연못의 다리를 지나 재실에 닿았다. 주방이 있는 재실에는 불이 밝혀져 있었는데 안쪽에서 계낭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온객행이 정전 남문에 닿자 입하와 입추가 정전에서 나오는 길이었다. 계낭이 온객행에게 인사했다.
“수선.”
온객행은 고개를 끄덕여 그들의 인사를 받고 정전 안으로 향했다. 입추가 온객행을 힐끔 보고 다시 입하를 보고 말했다.
“요즘 매일 오시네….”
입하가 재실로 향하며 말했다.
“수선께서 오시면 주인님이 좋아하시니까.”
입추가 입하를 따르며 말했다.
“사람이 요괴가 되는 일은 정말 큰 일인가 보오.”
입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게. 겨울을 잘 버티셔야 할 텐데.”
입추가 재실의 장지문을 열고 말했다.
“나는 오늘 인시에 번을 서야 해. 먼저 가서 쉬게.”
입하가 고개를 끄덕이고 재실 안쪽으로 향했다.
“그래. 나는 좀 자려고.”
안에 있던 계낭이 입하와 입추에게 차를 권했다. 입추는 자리에 앉아 차를 마셨고 입하는 차를 거절하고 계낭의 거처인 재실 객실로 향했다.

온객행은 정전의 신당 안으로 들어갔다. 신당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저번에 왔을 때보다 조금 더 어수선하게 여기저기 그림이 걸려 있었다. 기룡은 치우의 최후 이후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동안 그는 그림을 그리지 않은 것 같았다. 적송자의 천거로 주극성에 있을 때도 삼하궁으로 간 이후에도 그림을 그렸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그런 기룡이 태평호에 온 이후로 열 점 이상 그렸다. 인물은 그리지 않는 것으로 알았는데 우사첩과 계낭의 모습이 담긴 그림은 그들이 요괴라는 것을 모르고 본다면 평범하게 사람이 사는 모습 같았다. 온객행은 그림을 조금 구경하다가 주자서가 머무는 객실로 향했다. 주자서는 온객행을 기다리려고 했는지 평상에 기대어 온객행이 선물한 피풍의를 두르고 화로 앞에 쪼그리고 앉아 졸고 있었다. 짙은 색 피풍의에 쌓여 있는 주자서는 조금 자극적이라 온객행은 뺨이 달아올랐다. 주자서를 보살피는 계낭은 어디에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아마 늦었으니 어서 가서 쉬라고 주자서가 보냈을 것이다. 온객행이 다가가 주자서 옆에 쪼그리고 앉아 화로를 뒤적이며 말했다.
“유서. 왜 여기에 이러고 있어.”

온객행의 목소리에 흠칫 놀라서 깬 주자서가 온객행을 보고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객행. 기다렸어.”
온객행이 주자서의 뺨이며 목덜미를 만지고 말했다.
“오늘은 많이 차갑지 않네.”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온객행의 손을 잡아 그를 일으키고 침상으로 향하며 말했다.
“너무 졸리다. 객행은 피곤하지 않습니까?”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먼저 자도 괜찮은데….”
주자서가 온객행의 시중을 들며 말했다.
“매일 자는 모습만 보고 가시잖아요.”
온객행은 장포를 벗고 내의만 입고 침상에 앉았다. 주자서가 온객행의 옷을 옷걸이에 걸어 놓는 것을 보고 있다가 다가가서 도와주었다. 좀처럼 손에 익지 않는 모양이다. 그런 서툰 모습도 온객행은 너무 좋았다.
“유서. 도와줄게요.”
주자서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피풍의도 덮고 자겠습니다.”
살짝 들린 피풍의 안에 주자서는 내의만 입고 있어서 온객행은 깜짝 놀라 피풍의를 여몄다. 온객행이 허둥대며 주자서를 침상 위에 올려놓고 휘장을 내리며 말했다.
“화로를 가까이 가져와야 하겠어요.”

주자서는 피풍의를 벗어서 이불 위에 덮어놓고 말했다.
“초피는 정말 따뜻합니다.”
온객행은 평상 앞에 있는 화로를 침상 근처로 가져왔다. 계낭이 나가기 전에 새로 채워 놓았는지 이제 막 타기 시작한 탄이 보였다. 휘장을 들어 침상 위로 올라가 비단 이불을 덮고 이미 잠이 든 주자서를 보았다. 온객행은 이불 안으로 들어가 주자서를 꼭 끌어안았다. 주자서는 뭔가 말하려는 듯 입을 달싹였지만 금방 고른 숨을 내쉬며 잠이 들어버렸다. 온객행은 그런 주자서의 뺨이며 목덜미에 입을 맞추고 주자서를 보았다. 온객행은 보통 밤새 주자서를 보다가 다시 주극성으로 향했다. 주자서의 얼굴을 보면 돌아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수백 수천번씩 고개를 들어 온객행을 괴롭혔지만 결국에는 다시 주극성으로 돌아갔다. 온객행은 죄를 짓는 것이 무서워졌다. 천존께서는 원군께서는 온객행이 옥산에서 주서를 위해 말썽을 부렸을 때 왜 벌하지 않으셨을까? 온객행은 오랜만에 주서가 떠올랐다. 얼굴도 목소리도 떠오르지 않는 그가 이제 예전처럼 그렇게 밉지만은 않았다.


동정호의 파사로 태어난다고 해서 모두가 요괴가 되고 신선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만자는 매년 많은 자식을 낳았지만 모두 살아 남는 것은 아니었다. 온객행은 막 영력을 쌓기 시작했고, 막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사람의 모습도 다른 사람을 흉내 내는 것만 가능했다. 처음에는 서호에서 물고기를 잡는 어부의 모습이었다. 그다음에는 물가에서 빨래를 하는 아낙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아낙이 데려온 어린아이가 되기도 했다. 만자는 사람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온객행은 뱀의 모습으로 사람의 모습으로 여러 가지 모습으로 여기저기를 떠돌았다. 그러다 검영을 만나 촉룡의 제자가 되었다.

온객행이 동정호로 다시 돌아온 것은 만자의 명령 때문이었다. 서호의 교룡이 갑작스럽게 죽는 바람에 서호의 주인이 없으니 온객행이 그 자리를 떠안게 된 것이다. 아직 보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던 온객행은 불만이었지만 만자의 명령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주서를 만난 뒤에 온객행은 물가에 배를 띄워 놓고 시를 읊던 유생의 모습으로 주서를 만났다. 주서는 어쩌면 온객행이 사람이 아닌 것을 처음부터 알았을지도 모르겠다. 점점 자신을 닮아가는 온객행에게 주서는 항상 웃어주었다. 온객행이 주서에게 느낀 그 감정은 어쩌면 온객행이 바라는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주서가 죽고 난 뒤로 온객행은 매일 울었다. 그의 눈물은 비가 되어 중추(仲秋; 8월)에 시작된 비가 섣달까지 멈추지 않았다. 장강에, 구강에 홍수가 일어 많은 사람이 죽었다. 하늘에서도 그 비의 원인을 찾지 못했다. 온객행은 주서의 시체를 안고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영초를 찾으러 다녔다. 온객행이 영지초를 위해 곤륜산에 태금을 찾아갔을 때 공공이 그 비의 원인을 알게 되었다. 공공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온객행과 주서의 시체를 보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온객행은 이미 벌을 받고 있는 것 같았다.

일개 파사가 그렇게 오랫동안 하늘에서 비를 내리게 할 수는 없다. 공공은 온객행이 신선이 될 운명이라는 것을 알았다. 공공은 주서의 시신을 수습하여 서호 근처에 있는 양지바른 곳에 잘 묻어주었다. 온객행이 다시 서호로 돌아온다면 알아볼 수 있도록 사당도 세워 놓았다. 사람들에게 그곳은 백련당(白蓮堂)이라고 불렸다. 신위가 있어야 할 곳에는 그 어떤 위패나 신주가 없었는데 대신 하얀 연꽃의 봉우리가 놓여 있었다. 사람이 만질 수 없는 하얀 연꽃은 아주 오랫동안 피지 않다가 십 수년 전에 활짝 피었다. 그렇게 피어있던 하얀 연꽃은 현악에서 용이 승천한 이후로 사라졌다.


신선들에게 가장 큰 일인 상원(上元)은 하늘에서 천관이 내려와 세상에 복을 베푸는 날이다. 상원의 제사는 금모원군이 있는 태연의 요대에서 성대하게 치러지는데 그 준비를 위해 하원(下元)이 지나면 사령은 모두 요대로 돌아가서 그곳에서 지낸다. 그래서 갑작스러운 응룡의 방문은 온객행에게 조금 의외였다. 의풍전에서 상원의 제사에 관련된 내용을 읽고 있던 온객행은 문귀에게 이끌려 응룡을 맞이했다. 온객행은 응룡을 보고 소매를 들어 인사했다.
“경진선.”
응룡이 인사도 없이 손을 휘젓고 말했다.
“적송자께서는 어디 계시는가?”
온객행이 고개를 들어 문귀를 보자 문귀가 소매를 들어 조아리고 말했다.
“적송자께서는 뇌공께 가셨습니다. 겨울이 거의 끝나서 주극성은 좀 한가하니까요.”
온객행은 문귀를 보고 입을 삐죽였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전으로 안내하는 문귀의 소매를 잡고 응룡이 말했다.
“지금 매우 급하네. 주극성에서 당장 일을 도울 수 있는 가신을 보내주겠나?”
온객행이 응룡을 보고 물었다.
“경진선. 대체 무슨 일입니까?”

응룡이 입을 달싹이다가 말했다.
“원군께서 산천대제와 함께 천궁에 가셨는데 아무래도 상원까지 돌아오시지 못하는 모양이네.”
온객행이 눈썹을 찌푸리자 응룡이 말했다.
“나도 왜 그런지는 모르네. 벌을 받으시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일인지… 나도 사흘 전에 대려께서 말해줘서 알았네.”
문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마 산천대제께 내리는 벌을 같이 받고 계신 것이겠지요. 일단은 원군의 부군이시니….”
응룡이 혀를 차고 말했다.
“구망대선께서 지금 혼자 동쪽에 계시니 감히 부탁을 못 드리겠고 삼하궁은….”
문귀가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상원까지는 보름 넘게 남았는데… 이렇게 급하게 말입니까?”
응룡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원군께서 결정하셔야 할 일은 대려께서 천궁을 오가며 전하고 계시는데 대다수는 기린께서 맡아서 하고 계세요. 자잘하게 문서를 분류하거나 확인하는 일을 할 사람이 부족합니다.”
문귀가 온객행을 힐끔 보고 말했다.
“그런 일이라면 천룡을 보내드리지요. 천룡은 문안이 아주 빠릅니다.”
온객행이 문귀의 눈치를 보다가 말했다.
“경진선. 제가 가면 안됩니까?”
문귀가 표정을 구기고 온객행을 보았다. 응룡이 온객행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좋지. 그럼 주극성의 일은 누가 하나?”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주극성에는 훌륭한 가신이 많으니 별일 없을 겁니다. 대신 부탁을 하나만 들어주세요.”
문귀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흔들었다.


벌건 대낮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온객행이 주자서를 찾아 백택으로 들어왔다. 정전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쪼르륵 앉아 햇볕을 쬐고 있던 주자서와 계낭은 온객행이 백택의 남문을 넘어서야 온객행이 온 줄 알았다. 주자서가 활짝 웃으며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객행!”
온객행이 주자서의 팔을 잡고 계낭에게 물었다.
“천교와 보살은 어디 있는가?”
입춘이 온객행의 말에 재실을 향해 달려갔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유서. 정월까지 요대에 가서 지내자.”
주자서가 눈썹을 찌푸리며 온객행을 보았다.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상원까지 요대에 가서 일을 돕게 됐어요. 태연은 사시 따뜻하니 한결 지내기 편할 겁니다. 게다가 다른 화사도 함께 있으니 궁금한 것이 있으면 옥산으로 가서 물어보세요.”
주자서가 정전을 보고 말했다.
“스승님께 허락을….”
천교가 남문을 넘어 정전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기룡께서는 뇌공을 뵈러 가셨으니 한동안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
온객행이 고개를 갸웃하고 말했다.
“적송자께서도 뇌공을 뵈러 가셨는데….”
보살이 ‘흠’하고 말했다.
“치우께서 승하하신 것이 섣달이었으니까요.”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교가 주자서의 피풍의를 다시 여미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갑작스럽게.”
온객행이 말했다.
“필요한 것은 나중에 부탁드리겠습니다. 제가 주극성에 구름 마차를 빌려 놓았으니 지금 가겠습니다.”
주자서가 놀라서 말했다.
“지금?”
천교가 온객행을 잡고 말했다.
“날아가면 추워서 안 돼요.”
온객행이 주자서의 허리를 안고 말했다.
“제가 구름을 만들겠습니다.”
온객행이 소매를 몇 번 휘젓자 안개가 생기더니 곧 구름이 만들어졌다. 보살이 온객행의 구름을 보고 말했다.
“재주가 좋습니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구름 위에 태우고 말했다.
“유서 어때?”
주자서는 전과 달리 밟히는 구름이 낯설어서 어색했다. 보살이 주자서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그래도 이건 아니지. 너무 갑작스럽지 않습니까?”
온객행이 보살의 손을 치우고 말했다.
“제가 잘 보살피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천교가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유서. 괜찮겠어? 싫으면 말해.”

주자서는 온객행을 힐끔 보고 고개를 젓고 말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걱정 마세요.”
보살이 온객행을 쏘아보며 말했다.
“싫으면 싫다고 말해! 억지도 정도가 있지. 이렇게 갑자기.”
주자서가 고개를 흔들며 보살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아니요. 아닙니다. 좋아요. 같이 갈게요. 제가 없는 동안 태평호를 부탁드립니다.”
천교가 주자서의 뺨을 쓸고 말했다.
“우리 착한 유서. 걱정 마라. 춘절(春節; 음력 1월 1일)에 삼하궁에 다 같이 다녀오려고 했는데 유서는 상원 지나고 나서 가야겠다.”
보살이 입하와 입추를 불러 간단히 주자서의 짐을 챙기게 했다. 온객행은 주자서에게 다정하게 구는 천교와 보살에게 조금 질투가 나서 말했다.
“해가 지기 전에 가겠습니다.”
천교가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유서는 아직 완전히 화사가 된 것이 아니니 잘 먹여주세요.”
보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정 힘들면 부유각에 끼니를 챙겨 둘 테니 챙겨 먹이시오.”

온객행은 보살을 흘겨보더니 말했다.
“어째 점점 말이 짧습니다.”
보살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말했다.
“어디 마음이 불안해서 보낼 수가 있어야지.”
온객행이 보살을 보고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이오!”
보살이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내가 삼하궁에서 들은 것이 있어서 그러하오. 저번에 유서가 그대와 갔다가 죽을 뻔하고 화사가 되었는데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 생길 줄 안다는 말이오!”
온객행은 입을 달싹였지만 할 말이 없었다. 천교가 보살의 어깨를 살살 쓰다듬으며 말했다.
“보보. 걱정하지 마.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
주자서가 눈썹을 찌푸리고 천교와 보살을 보았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손을 잡고 말했다.
“그럴 일 없네. 내가 지켜주겠네.”
보살이 코웃음 치고 말했다.
“그래 어디 한번 잘 지켜보시오. 내가 지켜보겠소.”
온객행은 보살을 힐끔 쏘아보고 구름 위로 올라갔다. 정전에서 다급하게 입하가 작은 봇짐을 가지고 왔다.
“주인! 주인… 급하게… 급하게 챙긴 것이라 부족할 수 있으니 나무함에 필요한 것을 적어 서신을 남겨주세요.”
보살이 봇짐을 받아 주자서에게 안겨주고 말했다.
“다시 돌아오고 싶거든 옥산으로 가 있거라. 내가 희상랑에게 부탁해 놓으마.”
주자서가 어색하게 웃으며 소매를 들어 인사했다. 온객행은 입고 있던 장포도 벗어 주자서에게 둘러주고 서둘러 주극성으로 향했다.


주극성에 도착하자 구름 마차에 짐을 싣고 있는 문귀와 택귀가 보였다. 온객행은 주자서를 구름 마차에서 내려주고 급하게 사라각에 있는 태평호 그림을 가지러 갔다. 주자서는 봇짐을 안고 주극성의 하인들이 일을 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문귀가 다가와 말했다.
“오랜만입니다. 태평공.”
주자서가 얼른 소매를 들어 고개를 조아리고 인사했다.
“문귀 어르신.”
택귀가 다가가 말했다.
“저희는 초면이지요?”
주자서가 택귀를 향해 고개를 조아렸다.
“저는 택귀 주휴(蟕蠵)라고 합니다.”
주자서가 말했다.
“택귀 어르신. 저는 태평호의 유서라 합니다.”
택귀가 코웃음 치며 말했다.
“수선의 내자라고 안 하십니까?”
주자서는 얼굴이 빨개져서 고개를 숙였다. 문귀가 택귀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택귀. 무례하게 무슨 짓인가?”
주자서가 소매를 들고 말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말씀 편히 하소서.”
택귀가 주자서를 빤히 보고 말했다.
“사람인지 화사인지 참으로 복잡합니다. 내 평생 처음 봤어요.”
문귀가 주자서에게 소매를 들고 말했다.
“태평공 이해하게. 택귀는 체면치레 하는 것을 안 좋아하거든.”
온객행이 나무함에 그림을 담아서 가지고 왔다.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다가가 말했다.
“택귀께서는 왜 여기 계십니까?”
택귀가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유서를 구경하러 왔지.”
온객행이 주자서를 몸으로 가리며 말했다.
“유서라 부르지 마시오! 어디 감히! 남의 집 내자의 이름을 함부로 부른다는 말이오?”
택귀가 웃으며 말했다.
“유서가 자신을 유서라 소개했으니 그렇게 부르는 것인데 왜 안된다는 말이오?”
문귀가 혀를 차고 말했다.
“그만 좀 하시오! 유서가 견연을 많이 안아 주시게.”
그리고 택귀의 소매를 잡고 정전으로 향했다. 온객행이 그들의 뒷모습에 대고 소리쳤다.
“배웅은 필요 없으니 먼저 가보시오!”
택귀는 뒤를 돌아보고 ‘하하하’ 하고 크게 웃었다.

주자서가 온객행의 팔을 붙잡고 말했다.
“많이 안아 주라니 무슨 뜻입니까?”
온객행이 주자서를 구름 마차로 데려가며 말했다.
“유서가 보고 싶을 때마다 울었더니 문귀께서 안아주겠다고 하셨거든요.”
주자서가 눈썹을 찌푸리자 온객행이 주자서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말했다.
“근데 직접 안아주는 것이 아니라 용슬이나 대전을 지키는 시위에게 권력을 남용하여 나를 안아주라고 시킵니다.”
주자서가 고개를 돌려 온객행을 보고 물었다.
“그래서… 안아줬습니까?”
온객행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니요. 남이 시켜서 안는 것은 좀….”
주자서가 온객행의 손을 꽉 잡고 말했다.
“싫어요.”
온객행이 당황해서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네? 싫어요?”
주자서가 고개를 숙이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이에게 안아달라고 하지 마세요.”
그렇게 말하는 주자서의 귀 끝이 빨갛다. 온객행은 질투를 하는 주자서가 귀여워서 빨갛게 익은 주자서의 귓가에 입을 맞추고 말했다.
“나는 유서가 안아주는 것이 제일 좋아요.”
주자서는 빨갛게 상기된 얼굴을 들어 주변을 보았다. 다행히 일이 바빠 그들에게 신경을 쓰는 하인은 얼마 없었다. 짐을 다 실은 구름 마차는 온객행이 몰아 요대로 향했다.

주자서는 구름 마차를 끌고 달리는 천마를 한참 구경하다가 바람을 많이 맞아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온객행은 요대에 도착해서야 주자서가 잠든 것을 알고 한참 법석을 떨었다. 영귀의 인사도 받지 않고 허둥대는 온객행을 보고 영귀가 말했다.
“유난이네. 유난이야.”
온객행은 주자서를 안고 남궁 동쪽에 있는 별궁으로 안내를 받았다. 이번에 그들이 머무는 곳은 제일 처음 요대에 왔을 때와는 다른 곳이었다. 별궁에는 온객행 이외의 손님도 많았는지 별원에 나와 있는 신선들이 많았다. 온객행은 주자서를 침상 위에 올려놓고 함께 온 청구에게 부탁했다.
“화로를 부탁해도 될까요?”
청구가 포권하고 말했다.
“차를 올리라고 할까요?”
온객행이 고개를 흔들고 당황하여 말했다.
“아니요. 유서는 추위를 많이 타서… 화로가 필요합니다.”
청구가 온객행을 보고 고개를 갸웃하더니 별 말없이 장지문을 닫고 객실을 나갔다. 온객행은 자기가 입고 있던 피풍의도 벗어서 주자서에게 덮어주었다. 온객행 방안을 둘러보고 평상 뒤에 있는 병풍을 가져다 침상 앞에 놓았다.

온객행이 병풍을 마음에 드는 위치에 놓았을 때 나흘마가 화로를 가지고 들어왔다.
“수선. 어떤 차로 하시겠습니까?”
온객행이 나흘마가 들고 들어온 화로를 침상 쪽으로 가져가며 말했다.
“화로를 하나 더 부탁해도 될까요?”
나흘마가 병풍 뒤로 사라진 온객행을 찾다가 가져온 다구를 탁상 위에 놓고 조용히 객실을 나갔다. 나흘마가 두 번째 화로를 들고 방문했을 때 주자서가 눈을 떴다. 온객행은 자리에서 일어나는 주자서를 끌어안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유서. 정말 미안해. 유서가 너무 신나 보여서 나도 신이 났었나 봐.”
주자서는 온객행의 등을 쓸고 말했다.
“아… 아닙니다. 제 불찰입니다. 저는 괜찮으니….”
온객행이 눈썹을 축 늘어뜨리고 주자서를 보았다. 주자서가 웃으며 말했다.
“천마(天馬)는 처음 봤습니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보고 물었다.
“갖고 싶어? 천마?”
주자서가 온객행을 보고 물었다.
“천마는 가질 수 있는 것입니까?”
온객행이 골똘히 생각하더니 말했다.
“기린께 부탁드려보겠습니다.”
주자서가 고개를 젓고 말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나흘마는 장지문 앞에서 서서 일각(一刻; 15분) 동안 헛기침을 했다. 온객행이 장지문을 열고 나와서 화로를 들고 침상으로 갔다. 나흘마는 병풍이 있는 쪽을 힐끔 보고 탁상 위에 동정 벽라춘을 올려놓고 병풍을 향해 인사하고 객실에서 나왔다. 주극성에 있는 나흘마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수선이 된 흑망의 내자. 달포 동안 주극성 사라각에서 지냈는데 몇 번 보지 못했다고 했다. 죄를 짓지 않고 사람에서 요괴가 된 자는 극히 드물었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일생을 살아온 나흘마는 태연에서 태어나 사람 한번 구경해보지 못했다. 요대에서 일하는 대다수의 요괴가 그랬다. 그들에게 사람이란 영력을 채우는 도구 혹은 신선을 미치게 하는 마약 같은 것이다. 그런 사람을 내자로 들여서 요괴로 만들다니 과연 촉룡의 제자는 비범하기 그지없다.

첫날의 야단법석이 무색하게 수선은 남궁의 동쪽 외실에서 가신 하나를 대동하고 요대의 일을 했다. 제향품과 재고 목록 정리인데 보통 기린께서 하시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수선과 가신의 거리감은 조금 이상했는데 황룡과 수원대선께서도 매우 친밀했기 때문에 ‘저들도 그렇구나’ 하고 넘겼다. 보통 수선 쪽에서 일을 별로 하고 싶어 하지 않았고 가신이 달래서 수선에게 일을 시켰다. 가신은 문서를 정리하고 보고하는 것이 익숙한 것 같았다. 희발께서는 수선이 올린 보고서를 읽으시고 칭찬하시며 수선께 천도를 하사하셨다. 나흘마는 수선과 가신이 천도를 나눠 먹는 것을 보고 외실에서 나왔다. 천도는 얻기 힘든 것이기 때문에 보통 나눠 먹지 않는다. 태평호에서는 종종 음식을 먹었다고 하니 ‘저들도 그렇구나’ 하고 넘겼다.

나흘마는 수선이 아침에 일찍 나와 우물가에서 설거지를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다가가 말했다.
“수선! 수선께서 어찌?”
수선이 웃으며 말했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침 식사를 정리하고 있었어요.”
나흘마가 아연하여 물었다.
“아침 식사요? 식사는 준비한 적 없는데요?”
수선이 찬합에 그릇을 정리하며 말했다.
“괘념치 마세요. 간단히 요기한 것입니다.”
나흘마가 조아리고 물었다.
“식사를 준비할까요?”
온객행이 손사래 치고 말했다.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입니다.”
나흘마는 직접 식사를 준비하는 수선은 살면서 처음 보았다.

수선의 가신이 수선의 내자라는 사실을 나흘마는 정월 초하룻날이 되어서야 알았다. 수선의 거처를 청소하는 누괵(螻蟈)이 객실에 사람이 없다는 것을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나흘마는 여태 수선의 내자는 객실에 머무는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가신이 어디 머무른다는 소리를 듣지도 못했다. 나흘마는 처음으로 수선이 데리고 다니는 가신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사내치고 곱게 생긴 얼굴에 몸이 가늘었다. 밥을 먹어야 하는데 먹지 못해서 그런 것일까? 보통 수선께서는 밝은 색 옷을 입으셨고 가신은 어두운 색 옷을 입었는데 다시 보니 맞춘 듯 짝으로 이루어졌다. 아름답고 화려한 신선을 많이 보아온 나흘마 눈에 수선의 가신은 특출 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떨어지지도 않았다. 몸가짐이 단아하고 조심스러운 것이 정말 수선을 주인 모시듯 하기에 가신인 줄 알았던 것이다. 수선은 매달리기도 하고 치대기도 했다. 다시 생각해보니 확실히 정인의 거리감이다.

상원이 얼마 남지 않아 요대의 모든 하인과 신하들이 바쁜 시기에 나흘마는 북궁에서 제사음식을 준비하는 것을 돕다가 수선의 내자가 화사라는 사실을 알았다. 동궁에서 일하는 나흘마는 예전에 수선의 내자를 동궁에서 본적이 있다고 했다. 영혼이 타고 있어서 얼마 살지 못할 줄 알았다고 했다.
“황룡이 되신 화사께서 자기 아이라고 하셨으니 아마 화사일 것입니다.”
옆에서 쌀을 찧던 나흘마가 물었다.
“화사인데 사내라니… 불길한 것 아닙니까?”
그릇을 나르던 누괵이 말했다.
“기이하긴 합니다. 불길한 것인지는… 천존께서 허락하셨으니 여태 살아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나흘마가 말했다.
“영혼이 타고 있었다면 어떻게 살아남은 걸까요?”
누괵이 아궁이에 올려 놓은 실패한 떡을 먹으며 말했다.
“원군께서 살려주신 것이 아닐까요?”
쌀을 찧던 나흘마가 말했다.
“그래서 천궁에 가셔서 벌을 받으시는 걸까요?”
동궁에서 일하는 나흘마가 말했다.
“원군께서는 너무 자애하셔서 탈입니다.”
주방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하인들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흘마가 말했다.
“원군께서 살리신 아이라면 불길하지는 않겠네요.”
누괵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을 나가며 말했다.
“그런데 화사는 원래 옥산에서 태어나는 것 아닙니까?”
누괵의 말을 들은 나흘마는 하던 일을 멈추고 서로를 쳐다보다가 화사에 대해 아는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四時 (음력+양력)

명절이나 시간, 때를 표현하는 방식으로는 음력을 조금 더 많이 사용하였고 양력(절기)은 농업이 중요시 되면서 부터 민간에서 쓰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농사일과 맞물려서 중요한 절기가 명절이 되어 세시풍속이 된 날들이 있고, 유교나 도교의 영향으로 명절이 된 날도 있다. 과거(16세기 조선)의달력을 보면 글로 써있는 데다 종이에 그려져 있기 때문에 아무나 구할 수 있는 물건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 사정은 그 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음력월 음력날짜 명절 절기 양력일자
정월 1월(孟春月) 1월 1일 입춘(立 春) 2월 4일경
맹춘월 1월 15일 상원 우수(雨 水) 2월 19일경
영월 2월(仲春月) 경칩(驚 蟄) 3월 6일경
중춘월 춘분(春 分) 3월 21일경
앵월 3월(季春月) 3월 3일 삼짇날 청명(淸 明) 4월 5일경
계춘월 곡우(穀 雨) 4월 20일경
여월 4월(孟夏月) 입하(立 夏) 5월 6일경
맹하월 소만(小 滿) 5월 21일경
우월 5월(仲夏月) 5월 5일 단오 망종(芒 種) 6월 6일경
중하월 하지(夏 至) 6월 21일경
서월 6월(季夏月) 소서(小 暑) 7월 7일경
계하월 대서(大 暑) 7월 23일경
상월 7월(孟秋月) 7월 7일 칠석 입추(立 秋) 8월 8일경
맹추월 7월 15일 중원 처서(處 暑) 8월 23일경
계월 8월(仲秋月) 백로(白 露) 9월 8일경
중추월 추분(秋 分) 9월 23일경
현월 9월(季秋月) 9월9일 중양절 한로(寒 露) 10월 8일경
계추월 상강(霜 降) 10월 23일경
양월 10월(孟冬月) 10월 15일 하원 입동(立 冬) 11월 7일경
맹동월 소설(小 雪) 11월 22일경
상월 11월(仲冬月) 대설(大 雪) 12월 7일경
중동월 동지(冬 至) 12월 22일경
계월 12월(季冬月) 소한(小 寒) 1월 6일경
계동월 12월 29일 섣달 그믐 대한(大 寒) 1월 21일경
각 월을 뜻하는 말도 굉장히 많은데 출신이나 지위에 따라 표현방식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다. 여태 찾은 내용으로는
  1. 一月: 정월(正月) 원월(元月) 조춘(肇春) 맹춘(孟春) 초춘(初春) 신춘(新春) 상춘(上春) 단월(端月) 건인(建寅) 왕월(王月) 목월(睦月) 태주(太蔟) 왕춘(王春) 정양(正陽) 양춘(陽春) 구정(舊正)
  2. 二月: 중춘(仲春) 여월(如月) 중양(仲陽) 영월(令月) 협종(夾鐘)
  3. 三月: 계춘(季春) 모춘(暮春) 도월(桃月) 앵월(櫻月) 혜풍(惠風) 가월(嘉月) 희월(喜月) 고선(故洗) 전춘(殿春)
  4. 四月: 여월(餘月) 중려(仲呂) 맹하(孟夏) 초하(初夏) 음월(陰月)
  5. 五月: 중하(仲夏) 고월(皐月) 유월(榴月) 포월(蒲月) 우월(雨月) 오월(午月) 동정(東井) 미음(微陰) 유빈(蕤賓)
  6. 六月: 계하(季夏) 차월(且月) 임종(林鐘) 서월(署月) 선우월(蟬羽月) 유월(流月)
  7. 七月: 상월(相月) 이칙(夷則) 맹추(孟秋) 상추(上秋) 신추(新秋) 난추(蘭秋) 난월(蘭月) 과시(瓜時) 오월(梧月) 오추(梧秋) 교월(巧月) 수추(首秋)
  8. 八月: 중추(仲秋) 장월(壯月) 남려(南呂) 계월(桂月) 중상(仲商) 엽월(葉月) 계추(桂秋) 청추(淸秋)
  9. 九月: 계추(季秋) 현월(玄月) 모추(暮秋) 계상(季商) 국월(菊月) 국추(菊秋) 양추(凉秋) 무역(無射)
  10. 十月: 양월(陽月) 응종(應鐘) 맹동(孟冬) 양월(良月) 소춘(小春)
  11. 十一月: 중동(仲冬) 황종(黃鐘) 상월(霜月)
  12. 十二月: 계동(季冬) 대려(大呂) 계월(季月) 궁동(窮冬) 극월(極月) 납월(蠟月)
보면 대체로 그 달에 있는 명절을 붙이는게 가장 일반적이고 그게 아니면 그 달에 많이 나는 작물 혹은 식물이나 봄,여름,가을,겨울의 시작과 끝을 표현하는 방식으로도 불린다. 게다가 양력에 익숙한 나는 음력으로 쓰다보면 그게 대체 언제인지 계절을 잘 가늠하기가 힘들고 또 그 당시의 날씨가 지금과 같았을지는 잘 모르기 때문에 두루뭉술 그냥 그러려니 하고 쓰는 것이다.

음력양력 변환은 이곳에서 하는데 이제 여기에 윤달이 들면... 아... 윤달ㅠㅠㅠㅠㅠ음력이 많이 사용되지 않게된 이유가 바로 이 윤달 때문이 아닐까? 의외로 윤달은 보너스 느낌인 달이라 예전부터 길하다고 여겨졌나보다.그리고 무엇보다 일주일이라는 시간 단위를 사용할 수 없다. 왜냐면 이건 19세기 후반에 서양에서 들어온 달력양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열흘(10일) 아니면 보름(15일)의 단위를 사용하는데 그게 아닌 경우 한국말이 너무 어렵고 낯설다. 그믐이나 여남은 날 같은 표현은 정말 살면서 들어본 적이 없는것 같다.
  1. 때를 부르는 말 정삭(正朔) → 정월 초하루
  2. 이틀이나 사흘 (이삼일)
  3. 사흘이나 나흘 (삼사일) → 사나흘
  4. 나흘이나 닷새 (사오일) → 너덧새
  5. 닷새나 엿새 (오륙일) → 대엿새
  6. 엿새나 이레 (육칠일) → 예니레
  7. 여드레나 아흐레 (팔구일)
  8. 아흐레나 열흘 (구십일)
  9. 열흘 조금 넘음 → 여남은 날
  10. 열닷새 → 보름
  11. 한 달의 끝 → 그믐
  12. 엊그저께(엊그제) → 바로 며칠 전
  13. 그끄저께(그끄제), 그저께(그제)[再昨日], 어저께(어제)[昨日], 오늘[今日], 내일[明日], 모레[再明日], 글피[三明日], 그글피, 닷새 뒤, 엿새 뒤

망과 삭의 경우도 그런데 망은 가득 찬 달이고 삭은 모두 기운 달이다. 망은 보통 절기의 시작이고 삭은 절기의 끝이다. 왜냐면 절기가 보통 보름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24절기 12달인 것이다.



時辰

시각을 나타내는 말은 더욱더 난해한데, 몇시라고 말할 수가 없다! 왜냐면 지금 사용하는 24시간 역시 19세기 중반 즈음에나 문헌에 등장한다. 애초에 과거에는 24시간 개념이 아니라 12시진 개념이었다. 그리고 시간을 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사치였기 때문에 보통은 해가 어디있는지 달이 어디 있는지 정도로 시간을 가늠하는 수준으로만 알고 살았던것 같다. 역법의 발달과 인구의 증가로 통행을 금지하는 시간이 생겨서 나라에서는 시간을 알리는 관직을 따로 두고 종을 치거나 북을 두드려서 시간을 알렸다고 한다.십이간지가 시간에 쓰이게 된 이유는 별자리와도 관계가 깊은데 십이간지는 각각의 동물이 뜻하는 하늘의 방위가 있어서 그 방위에 따라 시간이 생겨난 건 아닐까 궁예해본다. 십이간지는 뜻하는 것이 굉장히 많다.

지지 생초 방위 시간 음력 음양 오행 오경
자(子) 쥐(鼠) 0° (북) 23시–01시 11월 삼경
축(丑) 소(牛) 30° (북북동) 01시–03시 12월 사경
인(寅) 호랑이(虎) 60° (동북동) 03시–05시 1월 오경
묘(卯) 토끼(兎) 90° (동) 05시–07시 2월 -
진(辰) 용(龍) 120° (동남동) 07시–09시 3월 -
사(巳) 뱀(蛇) 150° (남남동) 09시–11시 4월 -
오(午) 말(馬) 180° (남) 11시–13시 5월 -
미(未) 양(羊) 또는 염소 210° (남남서) 13시–15시 6월 -
신(申) 원숭이(猿) 240° (서남서) 15시–17시 7월 -
유(酉) 닭(鷄) 270° (서) 17시–19시 8월 -
술(戌) 개(犬,狗) 300° (서북서) 19시–21시 9월 초경 (일경)

출처:지지 (역법)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蛇苺外傳 第3

勝戰 |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조건.

온객행이 선물로 가져온 초피 피풍의는 결국 주자서가 입게 되었다. 대신 주자서가 입고 있던 하얀 피풍의를 온객행이 입었다. 온객행은 갑판에 서서 계낭이 덧문을 옮기는 것을 보았다. 몇몇은 원래 백택에 살던 이들이고 몇몇은 태평호 근처에 있는 산에서 겨우 모습만 갖췄던 계낭이다. 말을 가려 하고 옷도 입었고 영력도 그전보다 커졌다. 온객행은 무슨 짓을 했기에 계낭이 저런 모습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입추와 입하가 화로를 가지고 선창에 서서 말했다.
“수선. 화로를 가져왔습니다. 승선을 허락해 주십시오.”
온객행은 계낭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계낭은 온객행의 허락을 받고도 조금 머뭇거리며 갑판에 발을 올렸다. 예전에 아무 생각 없이 부유각에 오르려고 했다가 물에 빠진 적이 있는 입하는 그 이후로 물을 조금 무서워하게 되었다. 입하와 입추가 내실로 들어가자 주자서가 밖으로 나왔다. 주자서는 온객행이 입은 피풍의의 족제비 털을 쓸며 말했다.
“구름 같습니다.”
온객행은 기분이 좋아져서 주자서의 허리를 안고 계낭이 가져다 놓은 덧문을 보고 말했다.
“덧문은 계낭에게 달라고 할까?”
주자서가 고개를 흔들고 말했다.
“아이들은 아직 작아서 힘드니 제가 하겠습니다.”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기대고 말했다.
“질투나.”
주자서는 온객행의 말에 웃음이 터졌다.

입추와 입하가 방안에서 옷가지와 이불을 가지고 나오며 말했다.
“가을에 사용하시던 것은 빨아서 넣어 둘까요?”
주자서가 온객행의 품에서 나와 계낭의 짐을 들고 말했다.
“아… 제가 하겠습니다.”
입추가 주자서의 손에서 빨랫감을 빼앗아 들고 말했다.
“주인!”
입하가 주자서에게 말했다.
“주인께서 하시면 일이 더 많아지니 그냥 저희가 하게 두세요.”
온객행은 조금은 차가운 계낭의 태도에 놀랐다. 주자서가 쩔쩔매는 것을 보고 있던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다가가 말했다.
“유서. 그런 일은 하인을 시키세요.”
주자서가 깜짝 놀라 손사래 치며 말했다.
“이들은 하인이 아닙니다.”
온객행은 주자서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계낭을 보았다. 입추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수선. 용서하세요. 저희가 몇 번이나 말씀드렸지만….”
온객행은 주자서를 한참 보았다. 남의 시중을 어색해하는 것치고 스스로를 돌보는데 서툴다. 온객행이 기룡의 그림으로 부유각에 오기 전에 보았던 어수선한 내실이 떠올랐다.

온객행이 낮게 웃으며 말했다.
“유서. 이들은 그대를 모시는 부하 같은 거예요.”
주자서가 고개를 돌려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부하?”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상관을 모시는 부하 된 도리로 어찌 수장께서 부족한 모습을 보이시는 것을 어찌 보고만 있겠습니까?”
주자서가 말했다.
“하지만….”
온객행이 계낭을 보고 말했다.
“앞으로는 주인이라 부르지 말고 태평공이라 부르도록 하게.”
계낭이 짐을 내려놓고 소매를 들어 공손히 인사했다.
“입추, 입하라 합니다.”
온객행은 계낭의 이름을 듣고 주자서를 힐끔 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너희 둘은 내가 없을 때 부유각에 승선하는 것을 허락할 테니 태평공을 부족함 없이 모시도록 하라.”
입추와 입하가 무릎을 꿇고 온객행에게 고개를 조아려 절했다.
“망극합니다.”
주자서가 계낭을 일으키며 말했다.
“객행. 저는 수선의 부하이니 이들도 수선의 부하가 되는 겁니까?”
온객행이 눈썹을 찌푸리고 말했다.
“유서가 왜 나의 부하입니까? 유서는 나의 부군이잖아요. 제가 유서의 예속(隸屬)이지요.”
계낭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자서에게 포권하고 말했다.
“태평공.”
주자서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추와 입하를 보았다.


입추와 입하는 온객행과 주자서가 부유각에 덧문을 다는 동안 내실의 휘장을 걷고 내부를 청소했다. 동지가 지나서 해가 빨리 지기 때문에 덧문을 다 달고 새로운 휘장을 달고 나니 날이 어둑어둑했다. 금방 저녁을 먹을 시간이었다. 보살이 백택에서 나와 선창 근처에서 빨래를 하는 계낭에게 말했다.
“날이 저물었으니 오늘은 그만하고 내일 해라. 빨래는 두고 가라. 내가 정리해서 재실에 가져다 놓으마.”
계낭은 고개를 조아려 보살에게 인사하고 백택으로 향했다. 보살이 부유각으로 가자 입추와 입하는 내실을 정리하고 있었고 주자서와 온객행은 누각 위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보살이 작게 코웃음 치고 말했다.
“수선. 저녁을 드시겠습니까?”
주자서가 자리에서 일어나 보살을 보고 말했다.
“보살. 와서 차를 드세요. 수선께서 주극성에서 가져오셨습니다.”
입추와 입하가 보살에게 조아리며 말했다.
“빨래는 저희가 정리하겠습니다.”
보살이 고개를 끄덕였다. 계낭은 부유각에서 나온 빨래와 계낭이 두고 간 빨래 더미를 순식간에 정리해서 백택으로 향했다.

보살이 선창에 서서 누각을 올려보자 주자서가 계단을 내려와 말했다.
“벌써 저녁을 먹을 시간입니까? 스승님께서는 어디 계십니까?”
보살이 백택 쪽을 보고 말했다.
“해 질 녘에 나가셨는데 곧 돌아오실 겁니다.”
주자서가 보살의 소매를 잡아 끌어 누각으로 향하며 말했다.
“보살은 차를 좋아하시니 드셔보세요.”
보살은 처음으로 온객행의 허락 없이 부유각에 승선했다. 보살은 주자서를 보고 있다가 온객행을 보았다. 온객행은 찻잔을 더 꺼내 차를 따르며 말했다.
“미원께서 차를 좋아합니까? 몰랐습니다.”
보살은 온객행을 한참 보다가 눈을 굴리며 말했다.
“허락 없이 승선한 것을 용서하십시오.”
온객행이 ‘하하하’ 웃으며 말했다.
“우리 유서를 보살펴주고 계시지 않습니까? 유서가 허락하면 언제든지 승선하실 수 있습니다.”
보살이 ‘흥’하고 코웃음 치자 온객행이 보살을 보고 말했다.
“유서가 허락하면 말입니다.”

주자서가 보살의 손에 찻잔을 쥐여주고 말했다.
“오늘 화로도 들였으니 탄만 잘 채워 놓으면 계속 부유각에서 지내도 괜찮겠지요?”
보살이 차로 입을 축이고 말했다.
“정월에는 정말 추울 텐데? 눈이 내린 적도 있어. 차라리 동면을 하는 건 어때?”
주자서가 온객행을 힐끔 보고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동면하고 싶지 않아요.”
보살이 피식 웃으며 주자서의 턱을 잡고 흔들며 말했다.
“너는 이런 것만 확실히 대답하더라.”
주자서는 보살의 행동이 익숙한 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부탁드립니다.”
온객행은 두사람의 친밀한 모습이 당황스럽고 언짢고 못마땅했다. 온객행이 자리에서 일어나 보살의 손을 떼 내고 말했다.
“보살. 그대는 상전이 누구인지 잊었는가?”
보살이 온객행을 물끄러미 보더니 말했다.
“저의 상전은 삼하궁에 수원대선이지요.”
온객행은 눈을 굴리며 주자서에게 바싹 붙어 앉고 말했다.
“유서는 수선의 부군이시니 그에 걸맞은….”

보살이 탁상에 고개를 괴고 말했다.
“온공자. 천교와 내가 수원 대선 밑에서 영력을 쌓는 다는 얘기 못 들었소?”
온객행이 주자서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말했다.
“들었소.”
보살이 주자서에게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이 모자란 것 때문에 등선도 미루고 여기 와있는데 뭐라구요?”
온객행이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그럼 가서 등선하시오.”
주자서가 온객행의 팔을 뿌리치고 보살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보살. 어디를 가신다는 말씀이십니까? 저는 아직도 모르는 것이 너무 많은데….”
보살은 말없이 주자서를 보고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백택으로 향했다. 주자서는 깜짝 놀라 보살을 따라가며 말했다.
“보살. 보살이 이해하세요. 객행은 조금 괴팍한 데가 있잖아요.”
온객행이 주자서를 따라가다가 멈춰서 말했다.
“유서!”
주자서가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객행. 천교랑 보살께서 저에게 얼마나 많은 도움을 주셨는지 아십니까? 두 분이 안 계셨다면 저는 입추를 넘기지 못하고 죽었을 거에요.”
객행이 따라오지 않자 주자서는 보살의 소매를 놓고 온객행의 손을 잡고 백택으로 향하는 보살을 따라갔다.


백택의 정전 외실에 저녁상이 준비되어 있었다. 밥과 소박한 찬으로 제일 상석에 기룡의 자리가 있고 그 아래에는 구분 없이 앉아서 밥을 먹었다. 기룡은 담백한 채소 반찬을 좋아했고 주자서는 물고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채소 반찬과 물고기는 항상 밥상에 올랐다. 계낭 몇이 기룡의 옆에 앉아서 기룡의 시중을 들며 밥을 먹었다. 기룡은 계낭이 귀여워서 그들의 밥그릇에 찬을 집어주며 ‘허허허’ 웃었다. 천교가 외실로 들어오는 보살을 발견하고 말했다.
“보보. 이리와.”
보살은 쪼르르 천교 옆으로 가서 밥을 먹었다. 보살을 따라잡은 주자서도 온객행을 데리고 외실로 들어왔다. 기룡께 소매를 들어 인사를 드리고 제일 아래에 있는 상에 앉아 밥을 먹었다. 멀뚱히 서 있는 온객행의 손을 잡아 옆에 앉히고 생선을 발라 온객행의 밥그릇에 올려주며 말했다.
“우리는 항상 이렇게 밥을 먹어요. 다복하니 좋지요?”
온객행은 주극성에 있으면서 이런 분위기에 낯설어진 것이 조금 억울해서 부루퉁한 표정으로 주자서가 골라주는 반찬을 먹었다. 주자서와 같은 상에 앉아 밥을 먹던 계낭이 주자서가 평소에 좋아하는 나물 반찬을 주자서 앞으로 밀어 놓고 배시시 웃었다. 주자서는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가며 오늘 있었던 일을 물었다.

조금 소란스러운 저녁을 마치고 계낭과 보살이 밥상을 치웠다. 기룡도 자리에서 일어나 커다란 물 주전자에 물을 끓였다. 주자서는 밖에서 번을 서는 계낭에게 솜옷을 입혀서 내보냈다. 입추가 옆에서 불평을 했다.
“산정이라 안 춥다니까요.”
주자서가 입추에게 말했다.
“내가 춥습니다. 보고 있는 내가 추우니까 밖에 나가는 아이들이라도 입혀주세요.”
입추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커다란 주전자가 끓자 수다를 떨고 있던 계낭이 기룡이 있는 화로 주변으로 갔다. 기룡은 능숙하게 연잎을 넣고 차를 우려서 계낭에게 나누어 주었다.
“태평호의 연잎은 아주 맛이 좋구나. 벌써 여름이 기다려지는군”
찻잔을 받은 소설이 말했다.
“연근도 좋아요. 엉가는 연근을 좋아해요.”
기룡이 소설을 보고 ‘허허허’ 웃으며 말했다.
“우리 소설은 보살을 좋아하는구나.”
천교가 소설 옆에 앉아 기룡에게 찻잔을 받고 말했다.
“그래도 우리 보보는 못 줘. 내거니까.”
소설이 천교에게 기대며 말했다.
“엉가도 좋아요.”
천교가 웃으며 말했다.
“나도 엉가였구나.”
기룡이 풀이 죽은 온객행에게 찻잔을 건네고 말했다.
“태평호는 정말 좋은 곳이야.”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주극성으로 안 갈래요.”
온객행의 투정에 기룡이 다시 ‘허허허’ 하고 웃었다.


보살은 부유각으로 돌아가는 주자서에게 탄이 들은 소쿠리를 건네고 말했다.
“한 번에 너무 많이 태우지 말고 재는 버리지 말고 모아둬야 한다.”
주자서가 웃으며 말했다.
“그 정도는 알아요.”
보살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
“아는 거면 똑바로 해.”
주자서는 고개를 끄덕이고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부유각으로 향했다. 온객행은 조금 떨어져서 계낭의 시중을 받다가 서둘러 주자서의 뒤를 따랐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손에 들린 소쿠리를 빼앗아 들고 말했다.
“유서를 태평호로 보내기를 잘한 것 같아.”
주자서가 온객행의 빈손을 잡고 말했다.
“여기에 객행만 있으면 완벽해요.”
온객행은 울적해져서 조금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극성은 너무 차가워. 다들 일만하고. 근데 정말 일이 끊이지 않아.”
주자서는 온객행이 안쓰러워 그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고 말했다.
“애쓰고 있다는 것 알고 있습니다. 영력은 세월이 쌓아주는 것이라 저는 객행이 돌아올 때까지 쓸모가 없을 지도 모르겠어요.”
온객행이 주자서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말했다.
“쓸모가 없긴. 너무 유용해서 탈이지.”
주자서가 온객행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말했다.
“익숙해지면 지금보다 여유가 생기겠죠.”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응. 하원 같은 연회를 매년 하다니 주극성에 있는 신선들은 다 미친 것 같아.”
주자서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모두 사람을 위한 일이니까 굽어살펴주세요. 수선.”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모든 일에는 균형이 중요하니까.”

부유각으로 돌아와 주자서는 화로에 불을 붙였다. 덧문을 달아 놓으니 확실히 휘장만 있었을 때와는 다르게 내실이 훈훈했다. 주자서가 등롱을 찾아 밝히는 사이 온객행은 누각 위에 있던 화로를 가져와 탄을 조금 더 넣었다. 내실의 장지문을 잘 고쳐 닫고 새로 걸어 놓은 휘장을 내렸다. 주자서가 다가와 온객행의 피풍의를 벗겼다. 주자서는 자기가 입은 피풍의도 벗어서 정리하려고 이리저리 씨름을 했다. 휘장을 다 내린 온객행이 다가가 주자서를 도왔다. 옷걸이에 나란히 장포를 걸어두고 침상 위로 올라갔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가슴을 베고 누웠다. 그전보다 조금 느려진 심장 소리가 주자서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온객행은 몸을 일으켜 주자서의 어깨와 팔을 만져보고 말했다.
“유서. 춥지 않아? 몸이 차가운데?”
주자서는 잠기운이 도는지 반쯤 감긴 눈을 하고 고개를 흔들었다. 온객행은 비단 이불을 더 끌어와 주자서에게 덮어주고 말했다.
“이러다가 또 뱀으로 변하겠어.”
주자서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차라리 겨울잠을 자는 것이 나을까요?”
온객행이 자리에서 일어나 침상 옆에 있는 함에서 이불을 꺼내고 말했다.
“안돼. 유서는 많이 먹어 두지도 않았잖아. 이렇게 말라서.”
온객행이 주자서의 몸 위로 이불을 하나 더 덮고 주자서를 끌어안았다. 주자서가 웃으며 말했다.
“전에는 정말 한 끼 못 먹는 날도 많았는데….”
온객행은 숨소리가 일정해지는 주자서를 한참 보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주자서는 뱀으로 변하지는 않았지만 좀처럼 깨어나지 못했다. 온객행이 느끼기에도 날씨가 추워진 것이 느껴졌다. 온객행은 화로에 탄을 채워 침상 근처에 옮겨 두고 털가죽을 꺼냈다. 주자서는 털가죽이 무거웠는지 몸을 뒤척이더니 다시 잠이 들었다. 온객행은 장지문 근처에 있는 휘장을 걷었다. 밖에서는 희미하게 날이 밝아 오고 있었다. 주전자에 물을 채워 끓이고 차를 내렸다. 부유각 밖에서 기척이 느껴지고 입하가 와서 인사를 했다.
“수선. 태평공. 기침하셨습니까?”
온객행은 장지문을 한쪽만 조심스럽게 열어 밖으로 나갔다.
“날이 추워서 일어나지 못하는데….”
입하가 찬합을 내밀고 말했다.
“노유께서 아침식사를 보내셨습니다.”
온객행이 웃으며 입하가 건넨 찬합을 받았다.
“고맙다고 전해드리게.”
입하가 소매를 들어 인사하고 말했다.
“기룡께서는 태호(太湖)에 가셔서 문안오지 않으셔도 된다고 태평공께 전해주십시오.”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고 내실로 들어갔다. 찬합 안에는 얕은 도자기 그릇 안에 연근과 견과류를 넣고 끓인 죽이 들어 있었다. 방금 끓였는지 그릇이 뜨거웠다. 온객행은 마음이 급해 침상으로 가서 주자서를 일으켰다.
“유서. 좀 먹고 자. 밥 먹자.”
주자서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이불을 끌어 덮었다.

온객행이 옷걸이에서 장포를 내려 주자서에게 둘러주며 말했다.
“유서. 먹고 난 다음에 더 자.”
주자서는 온객행의 어깨에 고개를 기댔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팔을 들어 옷을 입히고 그를 데려다 탁상 앞에 앉혔다. 온객행은 죽을 후후 불어 식힌 후 겨우 앉아 있는 주자서에게 죽을 먹였다. 절반 정도 죽을 먹고 나자 정신이 돌아오는지 주자서가 온객행에게 말했다.
“객행. 저는 이제 괜찮으니 객행도 드세요.”
온객행이 죽그릇을 내려놓고 말했다.
“아직 섣달도 아닌데 정월에는 어쩌지요? 정월은 더 추운데….”
온객행의 걱정하는 기색에 주자서가 온객행이 내려놓은 죽그릇을 들어 온객행 입 앞으로 가져가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너무 추워지면 거처를 백택으로 옮길 게요.”
온객행은 주자서를 물끄러미 보다가 주자서가 떠먹여 주는 죽을 받아먹었다.
“맛있어.”
그리고 배시시 웃었다. 식사를 마치고 주자서가 먹은 그릇을 치웠다. 주자서가 찬합을 들고 피풍의도 걸치지 않은 채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온객행이 주자서를 붙잡고 말했다.
“유서. 안돼. 밖은 추워.”
온객행이 주자서의 손에 들린 찬합을 빼앗아 들고 말했다.
“내가 할게.”

주자서가 온객행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객행. 객행은 손님인데 어찌…”
온객행이 눈썹을 늘어뜨리고 말했다.
“내가 유서에게 손님이야?”
주자서가 웃으며 말했다.
“아… 아닙니다. 그래도….”
온객행이 찬합을 장지문 앞에 놓고 말했다.
“밖이 따뜻해지면 같이 백택으로 갑시다. 나는 오늘 유시에는 주극성으로 돌아 가야 해요.”
주자서가 눈썹을 찌푸리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 벌써….”
온객행이 주자서의 손을 잡고 말했다.
“그래도 밤에는 만날 수 있으니까.”
주자서가 웃으며 말했다.
“객행은 뭘 하고 싶으세요?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은 다 해드리겠습니다.”
온객행은 주자서를 빤히 보다가 얼굴이 새빨개져서 고개를 흔들었다.
“아… 아니… 아직… 아직은 아니야.”
주자서가 온객행의 뺨에 손등을 대보고 말했다.
“객행? 열이 오르십니까? 아프세요?”
온객행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나는… 나는 괜찮소.”
주자서가 팔을 둘러 온객행을 끌어안고 말했다.
“객행. 미안합니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허리를 안고 말했다.
“유서가 왜 미안해. 내가 미안하지.”
주자서가 고개를 흔들고 말했다.
“투정 부려서 정말 미안해요. 나는 여기서 이렇게 잘 지내고 있는데 객행 혼자 주극성에서 애쓰고 있는 것 압니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고 말했다.
“나는 너무 좋았어. 유서가 나에게 투정 부려줘서 너무 좋았어.”
주자서가 웃으며 말했다.
“저까지 앙탈하면 어떡합니까.”
온객행이 주자서를 평상에 앉히고 말했다.
“유서. 앙탈은 나에게만 해.”
주자서는 피식 웃고 말했다.
“제가 또 누구에게 앙탈하겠습니까?”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응. 나에게만 해.”
주자서도 온객행의 손을 잡고 말했다.
“객행도 힘들면 말해주세요.”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였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뺨과 목덜미를 만지고 말했다.
“또 차가워졌어. 실내에서도 옷을 입고 있자”
그리고 피풍의를 둘러 주었다. 주자서가 작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섣달과 정월에는 더 춥다고 합니다. 정말 동면을 하는 것이….”
온객행이 고개를 흔들고 말했다.
“안돼. 유서는 동면을 준비하지 않았잖아. 무의식 상태에서 몸이 안 좋아지면 오히려 위험해.”
주자서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뺨을 잡고 말했다.
“유서 내 눈을 봐.”
온객행의 눈은 새카맣게 변해 있었다. 주자서는 온객행의 눈을 한참 보고 있다가 갑자기 깨어난 사람처럼 숨을 들이켰다.
“헉!”
온객행이 주자서를 끌어안고 말했다.
“영력이 늘기는 했네.”
주자서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이… 이것은…?”
요대에 갔을 때 금모원군이 주자서의 머릿속을 헤집어 놨던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헤집어 놨다고 하기보다 쓰다듬은 것 같은 느낌이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놔주고 말했다.
“놀랐지? 미안해. 영력이 얼마나 늘었나 보려고.”
주자서가 고개를 흔들고 물었다.
“늘었습니까?”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늘어나기는 했는데… 쓰려면 시간이 필요해.”
주자서가 물었다.
“지금 있는 것은 쓸 수 없나요?”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쓸 수 있기는 한데 금방 없어져 버릴 거야.”
주자서가 아쉬워하며 말했다.
“잠드는 것과는 조금 달라요. 갑자기 멈춘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 같습니다.”
온객행이 자리에서 일어나 화로를 평상 근처로 가져왔다.
“그래. 그래서 동면은 위험해. 언제 어디가 멈출지는 모르니까.”
주자서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이제 겨울에는 항상 이렇겠지요?”
온객행이 주자서의 손을 잡고 말했다.
“걱정 마. 유서의 일은 나의 일이니까.”
주자서가 온객행을 보고 웃으며 몸을 기댔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어깨에 팔을 둘러 그를 가깝게 끌어당겼다.
“나는 이제 뱀이 아닌가 보오. 예전만큼 안 힘들어.”
주자서가 물었다.
“객행은 동면하셨습니까?”
온객행이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했다.
“아주 예전에 아직 사람의 형태를 갖추지 못했을 때는 매년 했던 것 같소. 물소를 세 마리 정도 먹으면 두 달은 잘 수 있으니까.”
주자서가 놀라며 말했다.
“물소를 세 마리나…?”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화사는 작으니까 아마 사슴 한 마리면 충분합니다.”
주자서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한 마리를 한꺼번에 어떻게 먹습니까? 아직 먹지도 않았는데 벌써 질립니다.”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유서는 동면하면 안 돼요. 동면하고 싶으면 사슴 한 마리 정도는 드셔야 됩니다.”
주자서가 고개를 돌려 온객행을 빤히 보았다. 온객행이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리자 주자서가 웃으며 말했다.
“동면하면 잠자는 동안 객행을 못 만나잖아요. 그건 싫습니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말에 가슴이 울렁거려서 한동안 입만 벙긋거렸다.

온객행은 눈을 꼭 감고 주자서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유서가 잠들면 내가 몹쓸 짓을 할 것 같아서 두려워요.”
주자서가 눈썹을 찌푸리고 말했다.
“몹쓸 짓?”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그러니 동면하면 안 됩니다. 유서가 잠들면 아주 많이 몹쓸 짓을 할 거예요.”
주자서가 온객행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잠도 안자고 밥도 안 먹어도 됩니까?”
온객행이 눈을 뜨고 주자서의 목덜미를 핥고 빨았다. 주자서는 낮게 웃더니 말했다.
“잠자는 시간도 밥 먹는 시간도 너무 아깝소.”
온객행이 입을 떼고 말했다.
“그 시간 동안 뭘 하시게요?”
주자서는 한참 뜸을 들이다 말했다.
“객행이랑 같이 있고 싶어.”
온객행은 고개를 들어 주자서를 보았다. 주자서는 온객행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말했다.
“객행. 은애(恩愛)하오.”

온객행은 몇 번이나 봤던 올곧은 주자서의 시선이 좋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방금 온객행에게 사랑을 고백한 입술을 손끝으로 쓸었다. 입을 맞추고 입술을 핥았다. 맛있다는 표현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느낌이다. 온객행은 주자서를 더 맛보기 위해 그의 입을 열고 입안에 있는 살덩이 찾았다. 이리저리 피하는 살덩이를 따라 입안을 휘젓다가 입술을 핥고 깨물었다. 주자서는 온객행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온객행이 하는 것처럼 해보려고 온객행과 입술을 맞댔다. 온객행의 손이 주자서의 어깨를 지나 등을 타고 내려갔다. 주자서는 처음 느껴보는 자극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온객행은 차오르는 마음이 버거워서 숨을 쉴 수 없었다. 입을 떼고 숨을 몰아쉬며 주자서와 이마를 맞댔다. 온객행은 조금 웃음이 나왔다. 주자서가 온객행을 따라 웃으며 말했다.
“객행.”
온객행이 답했다.
“응. 유서.”
주자서가 온객행에게 몸을 가깝게 붙이며 말했다.
“객행이라면 몹쓸 짓을 해도 좋아.”
온객행은 주자서의 말에 작게 탄식하며 다시 얼굴을 붙여 입을 맞췄다.

蛇苺外傳 第2

竝戰 | 상황의 추이에 따라 아방(我方).

지주가 삼하궁의 신하로 가게 된 것은 하늘에서도 평범하게 있는 일은 아니라 한동안 신선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사방신과 오룡은 산천대제를 모시고 있기 때문에 서로 교류가 많았으나 그래도 각자 기본적인 영력 특성에 맞는 신하를 두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었다. 오룡의 수장이며 태양의 상징인 황룡이 거미를 신하로 맞이했다는 것은 과거 후토가 신분에 관계없이 신하를 천거한 것과 비슷했기 때문에 과거 후토를 모시던 신하들이 삼하궁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지주가 황룡의 신하가 된 것은 단순한 고상의 변덕이었다.

주극성에서 성대하게 치러진 하원(下元)은 수관(水管)을 응대하는 것으로,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하늘의 큰 행사였기 때문에 사령은 물론이고 오룡도 참석해야 했다. 긴 예식 절차가 끝나고 하늘에서 진군이 내려와 연회를 즐겼다. 예식에서 사용된 제악과 무용과는 또 다른 음곡(音曲)과 가무(歌舞)를 내놓았다. 수관은 주극성의 준비에 흡족하여 현무의 일을 하는 온객행을 크게 칭찬했다. 안타깝게도 온객행은 문귀와 서귀의 손에 이리저리 이끌려 다니며 수관을 보좌하는 신하들과 사방신, 오룡의 신하들에게 인사를 다니느라 수관의 칭찬을 하원이 다 끝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상석에서 가까운 곳에 오룡을 위해 마련한 자리 중에 가장 높은 곳에 고상이 앉아서 주요의 시중을 받았다. 주극성의 나흘마가 제사에서 사용한 예주(醴酒)를 내왔다. 달고 도수가 높지 않은 술이라 주요는 고상의 술잔을 채우고 말했다.
“황룡. 너무 많이 드시면 안 됩니다.”
고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술잔을 들어 마셨다. 옆에 앉아서 주요를 보고 있던 청룡이 말했다.
“상선. 수관께서 다시 삼원으로 돌아가실 때 인사를 드려야 합니다.”
주요가 고개를 끄덕이며 청룡을 보고 말했다.
“걱정 마세요. 황룡께서는 술이 세시니.”
뒤 쪽에 앉아 있던 적룡이 고상에게 다가와 말했다.
“황룡께서 술을 좋아하십니까?”
황룡이 다가온 적룡에게 자리를 권하며 말했다.
“전당군. 전당군도 드세요.”
그리고 술잔을 채워 전당군에게 건넸다. 적룡이 고상이 건넨 술잔을 받으며 옆에 앉고 말했다.
“저는 술을 잘하지 못하는데….”
청룡이 주요에게 눈치를 주며 말했다.
“전당군은 술버릇이 고약하니 너무 많이 주지는 마세요.”
고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 술잔을 채웠다.

지주는 연회가 열리고 있는 의풍전 외실 덧문 밖에서 안으로 들이는 음식을 확인하고 있었다. 왜 이렇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방신과 사령에게 바치는 찬과 술의 종류가 조금 달랐다. 그것이 기호인지 아니면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지주는 즉저가 건넨 두루마리를 펼쳐 들고 소반 위에 준비된 음식과 술을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지주가 데려온 계낭은 기본적으로 지주를 따랐지만 즉저도 잘 따랐다. 즉저는 의외로 풍류를 즐기는 편이라 견문이 넓었기 때문에 연회에서 사용할 악사와 무희를 관리하는 일을 맡았다.

아무리 요괴라도 몇 시진 동안 계속해서 춤을 출 수 없고, 춤이 연주되는 음악과도 어울려야 하기 때문에 일손이 부족한 즉저에게 계낭을 보낸 참이다. 연회를 한다고 성의 수위(守衛)를 게을리할 수는 없어서 그 일은 적송자가 맡았다. 적송자는 요대를 방문한 일로 천존에게 벌을 받을 줄 알았지만 의외로 천존은 적송자와 뇌공에게 아무런 처벌도 하지 않았다. 적송자는 온객행이 일을 하는 것을 보고 한숨을 쉬며 대다수의 현무 일을 처리했고, 뇌공을 기억하는 도예는 그 전보다 상태가 많이 호전되어 기린은 요대로 돌아갔다.

수관은 해가 지기 시작하자 꽤 이른 시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석에서 일어나 연회에 모인 신선을 축복하고 하얀 빛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 신선들은 상석에 소매를 들어 조아리고 있다가 의풍전에 어둠이 찾아와서야 몸을 바로 했다. 온객행은 의풍전의 등롱을 밝히느라 외실을 나갔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령과 사방신의 신하들이 하나둘 의풍전 안으로 들어왔다. 흑룡은 백룡을 붙잡고 뭔가를 묻느라 바빴고, 백호는 수관이 가자마자 밖으로 나가 적송자를 찾았다. 주작은 봉황과 남쪽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응룡은 기와 린에게 잔소리를 들었다. 영귀가 밖으로 나와 연회 준비와 정리로 분주한 온객행을 찾아 도왔다. 적룡은 고상과 붙어서 술을 마셨고 주요는 청룡의 한탄을 들어주었다.
“이제야 좀 자리에서 벗어나나 했는데….”
주요가 고개를 끄덕이며 청룡의 어깨를 토닥였다.
“오광군. 제가 많이 돕겠습니다.”

청룡이 울먹이며 말했다.
“일손이 늘면 일이 줄어드는 것이 맞지 않습니까? 저도 차라리 어디 봉인되고 싶어요.”
주요는 이맘때 태평호에서 무엇을 했나 생각하며 미소 지었다. 청룡이 술잔을 기울이기에 주요가 술병을 빼앗고 차를 따라주며 말했다.
“오광군. 취하셨습니다.”
청룡이 주요가 치운 술병을 아쉬운 듯 보더니 말했다.
“이제 정월까지 별일이 없으니 오늘 좀 취하고 싶어요.”
주요가 작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정말 별일이 없어야 할 텐데요….”
청룡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적룡에게 다가갔다.
“전당군!”
적룡은 고상에게 들러붙어 고상의 얼굴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황룡. 제가 황룡을 사랑한다고 말씀드렸나요? 어려서 그런가? 보들보들하네요.”
그리고는 고상의 앞섶으로 손을 넣었다. 고상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전당군. 아상이라고 불러주세요.”
적룡이 웃으며 말했다.
“아상.”
주요도 고상에게 다가가 말했다.
“전당군! 농입니다. 받아드리시면 안돼요.”
청룡과 주요가 적룡과 고상을 떼어 놓았다. 신선들과 그의 가신들은 하나둘 의풍전을 떠났다. 정신이 멀쩡한 신선은 자신의 영지로 돌아갔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금귀자가 별각의 객실로 안내했다.


온객행이 대전의 상석에 늘어져 앉아 연회를 치우는 하인들을 보며 말했다.
“이 짓을 매년 한다는 말이야?”
화귀가 다가와 온객행을 일으키며 말했다.
“견연. 봉황과 주작께서 돌아간다고 하시니 어서 가서 인사하게.”
온객행이 얼른 몸을 일으켜 화귀를 따라 나갔다. 주작과 봉황은 온객행에게 준비를 잘했다며 칭찬했다. 주작이 의풍전을 보고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전당군이 취해서 큰일이네. 구망께서 같이 계시니 괜찮을 거야.”
온객행은 어떤 표정을 하면 좋을지 몰라 고개를 조아렸다. 봉황이 온객행의 어깨를 툭툭 치고 말했다.
“용케 내자를 태평호로 보낼 생각을 했군.”
온객행은 주자서의 얘기에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태평공은 지혜로워서 제가 항상 따르고 있습니다.”
주작이 주자서의 호칭에 ‘하하하’ 웃으며 말했다.
“태평공? 하하하 어울리는 이름이군.”
봉황이 같이 웃으며 말했다.
“자네 내자는 아직 하늘에서 부르는 이름이 없지?”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영력을 다루는 것이 능숙해지면 금모원군을 찾아뵈려고요.”
주작과 봉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작이 남쪽으로 향하며 말했다.
“천천히 돌아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아.”
봉황이 주작의 뒤를 따르며 말했다.
“너무 조급해 말게. 태평공은 발의 후손이니 걱정할 것 없어.”
온객행은 떠나는 주작과 봉황에게 소매를 들어 인사했다.

다음은 기린과 응룡이었다. 응룡은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한껏 풀이 죽어 술도 많이 마시지 않은 듯했다. 읍강이 응룡에게 말했다.
“너는 요대에 가서 정월까지 근신하도록 해라.”
응룡은 입을 쭉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희발이 웃으며 말했다.
“구망대선께 말씀드려야 하겠구나.”
응룡이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그동안 제가 대신!”
읍강이 응룡의 입을 찰싹 때리고 말했다.
“그 입! 경진! 그 입을 그냥!”
응룡은 맞은 입을 양손으로 가리고 울상을 했다. 희발이 응룡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린자께서 다 경진이 걱정되어서 그러는 것이에요. 알지요?”
응룡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기형….”
온객행이 그들에게 소매를 들어 인사했다. 읍강이 온객행의 소매를 잡아 일으키며 말했다.
“견연. 고생이 많아요. 내자는 잘 지냅니까?”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덕분에 태평호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희발이 말했다.
“저는 읍강과 떨어져 사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어요. 공무로 며칠씩 떨어져 있어도 죽을 것 같은데. 정말 대단합니다.”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도 죽을 것 같아요. 그래서 기룡께서 태평호를 그려 주셨어요.”
읍강이 놀라서 물었다.
“기룡께서 주극성에 계십니까?”
온객행이 작게 고개를 흔들고 말했다.
“태평호에….”
읍강이 물었다.
“계속 태평호에 계신 겁니까?”
온객행이 고개를 흔들고 말했다.
“아니요. 적송자께서 천거하셨습니다.”
희발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적송자께서….”
읍강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적송자를 요대로 모실 것을….”
희발이 동의하며 말했다.
“저도 풍백은 몇 갑자만에 뵈었으니까요.”
읍강과 희발이 온객행에게 소매를 들어 인사하고 요대로 향했다. 응룡도 소매를 들어 인사하고 그들의 뒤를 따랐다.


온객행은 의풍전으로 돌아오는 길에 밖에서 백룡과 흑룡을 만났다. 흑룡은 온객행이 온 줄도 모르고 백룡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있는 중이었다. 흑룡이 말했다.
“오윤왕께서는 그럼 소금을 어떻게 관리하십니까? 의외로 공물의 양이 적은데 원하는 곳이 많아서 어찌해야 할지….”
백룡이 곤란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말했다.
“각자 받는 공물은 좀 말하기가 곤란하군. 오순왕. 이런 이야기를 해도 괜찮겠는가?”
흑룡 옆에 서 있는 나어가 놀라서 백룡에게 물었다.
“이런 얘기는 다른 신선께 하면 안 되는 겁니까?”
백룡이 한숨을 쉬고 말했다.
“일단 나의 가신인 청어(靑魚)를 몇 분 보내주지. 그동안 왜 말하지 않았나?”
흑룡이 백룡의 소매를 잡고 물었다.
“대체 어디까지 말해도 되고 어디까지 말하면 안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청룡께서는 항상 바쁘시고 적룡께서는 주작과 함께 계시고 황룡께서는….”
흑룡이 황룡얘기를 꺼내자 백룡과 흑룡이 함께 한숨을 쉬었다. 백룡이 흑룡의 손을 잡고 말했다.
“잘하고 있네. 그대 정도면 아주 양호해.”
흑룡이 풀이 죽어서 말했다.
“중원이 지나고 스승님께 다녀왔는데 멍청한 짓을 했다고 혼이 났습니다.”
백룡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견연 얘기를 하지 그랬어.”
흑룡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했죠. 바보가 바보짓 한다고 혼나지 않으니까요.”
온객행이 헛기침하고 말했다.
“바보라 사형을 고생시켰습니다.”

백룡과 흑룡이 소매를 들고 인사했다. 백룡이 말했다.
“견연. 아주 훌륭했네. 주극성에는 훌륭한 가신이 많은 듯하네.”
저 멀리서 또 무슨 일을 수습하고 있는 문귀와 택귀를 본 온객행이 한숨을 쉬고 말했다.
“다행이지요. 저는 아직도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흑룡이 웃으며 말했다.
“여태 용케 도망가지 않고 버텼군.”
온객행이 눈썹을 늘어뜨리고 말했다.
“유서에게 못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잖아요.”
흑룡이 얼굴을 구기고 말했다.
“너는 나만 보면 유서 이야기군. 그만하게. 나는 만나 본 적도 없는데.”
온객행이 흑룡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아직 하지 않은 말이 얼마나 많은 지 아시오?”
백룡이 웃으며 말했다.
“오순왕께서 주극성에 머물면서 시달렸겠군.”
흑룡이 온객행에게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이 놈은 저보다도 아는 것이 없습니다.”
백룡이 웃으며 말했다.
“나는 이만 서쪽으로 가보겠네.”
흑룡이 백룡의 소매를 잡으며 말했다.
“오윤왕! 아직 물어볼 것이 많은데.”
백룡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겨울은 그다지 바쁘지 않으니 내가 북해에 들리도록 하겠네. 언제 북해로 돌아가는가?”

흑룡이 온객행을 보았다. 온객행은 옆에 서 있는 화귀를 보았다. 화귀가 깊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오순왕께 감사드립니다. 하원이 끝났으니 언제든지 돌아가셔도 괜찮습니다.”
흑룡이 백룡에게 물었다.
“오윤왕을 따라가도 될까요?”
백룡은 얼굴을 구기고 한참 흑룡과 온객행을 번갈아 보더니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백룡과 흑룡은 곧 서쪽으로 향했다. 화귀가 서쪽으로 사라지는 흑룡을 보고 말했다.
“오순왕 정도만 되도 좋겠는데….”
온객행이 ‘쯧’하고 혀를 차며 말했다.
“내가 지금 현무 하고 싶어서 여기 있는 겁니까?”
화귀가 의풍전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이틀 쉬고 싶으면 어서 정리하게.”
온객행이 투덜거리며 화귀의 뒤를 따르고 말했다.
“상전 대접이라도 해주던가.”
화귀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럼 상전답게 일을 하던가.”
온객행이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그럼 여태 내가 놀았소?”
화귀가 온객행을 쏘아보며 말했다.
“우리 상선에 비하면 넌 여태 놀았지!”
문귀가 다가와 말했다.
“왜 또 그러나. 아직 손님들 계시니 손님 가시고 나면 하게.”
화귀는 온객행을 보고 혀를 차며 의풍전 안을 치우는 서귀를 돕기 위해 자리를 떴다. 온객행이 약이 올라 씩씩대자 문귀가 말했다.
“왜? 또 안아줘? 용슬은 어디 갔나?”
온객행은 문귀를 노려보더니 발을 구르며 즉저가 있는 천연당으로 향했다. 오늘 사용한 제향품과 남아있는 재고를 맞추는 일이 남았다.


적룡과 고상은 너무 취해서 스스로 운신이 힘들었다. 청룡과 주요는 그들을 잘 수습해 별각에 마련된 객실에 머무르게 되었다. 청룡은 자신의 몸을 서슴없이 더듬는 적룡의 양손을 꼭 잡고 말했다.
“대선 정말 무례를 범했습니다.”
주요가 고상을 추슬러 안으며 말했다.
“우리 아상은 얌전한 편이었네요….”
청룡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곱게 자면 정말 좋은데 말이죠. 뭐가 기분이 좋았는지 평소에는 이렇게 많이 마시지 않는데….”
주요가 웃으며 말했다.
“오광군께서도 어서 가서 쉬세요.”
청룡이 적룡을 객실 안으로 밀어 넣으며 말했다.
“언제 삼하궁으로 돌아가십니까?”
주요가 잠깐 생각하고 말했다.
“황룡께서 정신을 차리시면 가야지요.”
청룡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돌아가실 때 저희도 같이 가려구요. 정월 준비는 하셨습니까?”
주요가 한숨을 쉬고 고개를 흔들었다. 청룡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조금 일찍 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주요가 미안한 듯 웃고 말했다.
“황룡께서 많이 부족하여 정말 죄송합니다. 태평호 밖을 나가본 적이 없는 아이라 순진하고 아는 것이 없어요.”
청룡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없는 것 보다는 낫습니다. 사고 쳐서 일을 늘리지만 않으면 다행이죠.”
주요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제가 많이 돕겠습니다.”
청룡도 고개를 조아리고 말했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청룡과 주요는 객실 안으로 들어가면서 아주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일몰 시간이 빨라지고 낙엽이 다 지고 입동이 지나 하원이다. 주자서는 그 전보다 몸이 축축 늘어지고 깜빡깜빡 조는 일이 많아졌다. 주자서는 온객행이 나오는 꿈이 좋아서 부유각에서 백택으로 거처를 옮기지 않았다. 보살이 설핏 잠든 주자서의 어깨를 잡아 흔들며 말했다.
“유서! 날이 추워지니까 옷을 더 입어야 하겠어.”
주자서는 눈도 뜨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입춘과 소설이 보살에게 다가와 말했다.
“엉가! 옷을 준비할까요?”
보살이 고개를 끄덕이자 계낭은 재실의 각고로 향했다. 계낭이 가져온 옷은 주요가 입던 피풍의로 하얀 비단에 하얀 족제비 털이 달려있다. 주자서의 몸에 피풍의를 둘러준 보살이 말했다.
“유서 겨울옷을 지어야 하겠어. 겨울에 입힐 것이 없네.”
천교가 재실로 들어오며 말했다.
“보보. 정전과 재실의 북창은 다 막았어. 부유각에도 덧문을 달아야 하는데. 유서. 수선께서 오시면 물어봐라.”
주자서는 눈을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천교가 주자서의 뺨에 손을 대고 말했다.
“화사가 된 지 얼마 안 돼서 동면을 할지도 모르겠네.”
보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군. 기룡께서는 어디 가셨는가?”
입하가 재실 안으로 화로를 가지고 들어오며 말했다.
“구강에 그림을 그리러 가셨어요. 청익강 쪽으로….”
입춘과 소설이 보살의 치마를 잡고 말했다.
“엉가. 저희가 따라가려고 했는데 그럴 필요 없다고 하셨어요.”
보살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 잘했다.”

주자서는 몽롱한 정신으로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천교와 보살의 잔소리를 들으며 저녁을 먹었다. 기룡께서는 어디에 가셨는지 날이 다 졌는데도 돌아오지 않으셨다. 그런 일은 종종 있었기 때문에 천교와 보살은 주자서를 얼른 부유각으로 보냈다. 보살이 주자서의 피풍의를 여미며 말했다.
“유서. 내일은 덧문을 달자. 수선께 말씀을 전하도록 해. 그 나무함으로.”
천교가 반응이 없는 주자서의 소매를 잡고 흔들었다. 주자서는 겨우 눈을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보살이 주자서의 턱을 잡고 말했다.
“유서! 내가 뭐라고 했어?”
주자서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덧문….”
보살이 혀를 차며 주자서의 턱을 놓고 말했다.
“이 상태로 덧문 어떻게 달래?”
천교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쩌지? 섣달과 정월은 더 추울 텐데… 유서. 정전으로 거처를 옮기자.”
주자서는 눈썹을 찌푸리고 고개를 흔들었다.
“안 돼요.”
천교와 보살이 주자서를 보았지만 주자서는 고개만 흔들 뿐 더 말하지 않았다. 천교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일단 오늘은 부유각에서 재우고 주극성으로 서신을 보내던지 하자.”
보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부유각에는 화로도 아직 안 가져다 놓았잖아. 휘장만으로는 밤에 추울 텐데.”

주자서는 결국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지 못했다. 함부로 부유각에 들어갈 수 없는 천교와 보살은 발을 동동 구르다 기룡을 찾아 부유각으로 들여보냈다. 보살이 쓴 서신을 나무함에 넣고 침상 위에 붉은 뱀으로 변한 주자서를 안고 나왔다. 기룡이 ‘허허허’ 웃으며 말했다.
“아주 예쁜 화사군.”
천교와 보살은 눈을 뜨지 못하는 주자서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정전 내실에 화로를 여러 개 가져다 놓고 비단 이불 속에 넣어 두었던 주자서는 저녁이 되어서야 다시 사람의 모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주자서를 놓고 밥을 먹이며 보살이 잔소리를 퍼부었다.
“영력도 못쓰는데 갑자기 밖에서 잠들면 어떡할래? 얼어 죽을 거야? 미련한 것.”
주자서는 천교와 보살의 잔소리에 익숙해진 터라 고개를 끄덕이며 콩죽을 먹었다. 주자서는 부유각으로 돌아가고 싶었으나 천교와 보살의 만류를 기룡이 거드는 바람에 백택 정전의 객실에서 비단 이불 여러 채를 덮고 잤다. 다음날 주자서는 더워서 잠에서 깼다. 밤새 객실에서 화로를 지켰는지 곡우(穀雨)가 화로 앞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주자서는 얼른 일어나 옷을 입고 곡우를 안아 침상 위에 눕혔다. 곡우는 금방 이불을 끌어안고 잠이 들었다. 아침을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온객행과 문귀가 구름 마차를 타고 태평호에 왔다.


백택 마당에서 탄을 만들고 있던 천교와 보살은 옷매무새를 어쩌지도 못하고 손님을 맞이해야 했다. 주자서는 온객행이 왔다는 소리에 서둘러 정전에서 나와 덥석 온객행에게 안겼다. 문귀는 기룡에게 인사하고 구름 마차에 싣고 온 선물을 두고 다시 주극성으로 돌아갔다. 입하와 입추가 선물을 정리하고 보살은 탄을 만드는 일을 계속했다. 천교는 얼른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온객행을 기룡에게 안내했다. 백택의 정전은 그 전과 달리 병풍과 벽 이곳저곳에 그림이 걸려있었다. 대부분 태평호의 풍경으로 우사첩과 계낭이 그려진 그림이 있었다. 온객행은 기룡에게 인사하고 그림을 조금 구경하다가 주자서를 데리고 부유각으로 향했다. 천교는 음식을 준비하느라 그들이 부유각에 간 줄도 모르고 정전에서 그들을 찾았다.

서둘러서 부유각으로 향한 천교는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얼굴을 감싸고 있는 주자서와 그런 주자서를 웃으며 달래고 있는 온객행을 발견했다. 천교가 놀라서 주자서에게 다가가 팔을 잡고 일으키며 말했다.
“유서? 무슨 일이야?”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아무 일도 아니오. 유서가 부끄러워서 그렇소.”
주자서가 손을 내리고 울상을 하고 말했다.
“수선. 정말 죄송합니다.”
천교는 영문을 몰라 새빨개진 주자서의 얼굴에 손등을 대고 말했다.
“유서. 어제 뱀으로 변해서 그래?”
온객행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주자서는 당황하여 천교의 소매를 잡았지만 천교는 아랑곳하지 않고 소매를 들어 공수하여 인사하고 말했다.
“유서가 동면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머리를 만지며 말했다.
“그래서 관을 안 했구나.”
천교가 소매를 내리고 말했다.
“부유각에 덧문을 달고 화로를 들이려고 하는데 어떡할까요?”
온객행이 천교를 보고 물었다.
“부유각에서? 그래서 기룡께서 내실로 들어온 것이군요?”
천교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동짓달부터는 날이 추워서 거처를 옮기고 싶었는데 유서가 싫어해서….”
주자서는 다시 얼굴이 빨개져서 말했다.
“그러니까 그건….”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기룡께서 그려주신 그림으로 내가 부유각에 올 수 있게 되어서 그렇소.”
천교는 속으로 날짜를 세어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 주자서를 보았다.
“수선때문에 거처를 안 옮긴 거군.”

천교가 얼굴이 새빨개진 주자서를 보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주극성으로 돌아가실 때는 날아가십니까?”
온객행이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이제 한 시진 밖에 걸리지 않으니 괜찮아요.”
천교가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그대도 태평호가 낫지요? 삼하궁은 어땠습니까?”
천교가 웃으며 말했다.
“저는 어디든 보살만 있으면 괜찮습니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빤히 보고 말했다.
“저도 어떤 느낌인지 좀 알 것 같아요.”
천교가 소매로 입을 가리고 ‘호호호’ 웃으며 말했다.
“덧문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계낭에게 가져오라고 할까요? 내실에 들어가 본지 너무 오래되어 어떤 이불을 덮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덧문은 선창에 가져다 놓으시오. 내가 달아 놓겠소. 이불은 걱정 마시오. 내가 비단 금침으로 바꾸어 두었으니. 화로도 하나는 내놓았는데 탄이 없소.”
천교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오늘 마침 탄을 만들고 있었는데 어찌 기별도 없이 오셨습니까.”
온객행이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내가 온다고 유서에게 말했는데….”
주자서는 다시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부유각 쪽으로 이끌며 말했다.
“나는 내일까지 머무를 예정입니다. 덧문과 탄을 부탁합니다.”
천교가 온객행을 보고 입을 달싹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 백택으로 향했다.

주자서는 온객행에게 추태를 부린 것이 떠올라 온객행을 마주 볼 수가 없었다. 온객행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주극성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떠들어댔다. 부유각에 도착하여 탁상에 있는 자리에 주자서를 앉히고 차를 내렸다. 온객행은 소매에서 벽봉을 꺼내 우리며 말했다.
“아상은 삼하궁에서 고생 중이오. 그래도 주요가 있으니 정말 다행입니다.”
고상의 이야기에 주자서는 조금 정신이 돌아와 온객행에게 말했다.
“아상께서는 잘 지내십니까?”
온객행인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잘 지낸다고 해야 할지 아니라고 해야 할지….”
주자서가 웃으며 말했다.
“주인께서 함께 계시니 별일 없을 것입니다.”
온객행이 찻잔에 차를 따르며 말했다.
“삼하궁의 주인은 고상이 아니라 주요 같소.”
주자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손에 따뜻한 찻잔을 쥐여주고 물었다.
“뱀으로 변하셨다구요?”
주자서가 다시 귀 끝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고개를 숙였다.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저도 파사일 때는 겨울잠을 잤습니다.”

주자서가 고개를 들어 온객행을 보고 물었다.
“얼마나 주무셨습니까?”
온객행이 주자서의 손을 잡고 말했다.
“몸을 따뜻하게 해주면 잠들지 않아요.”
그리고는 소매에서 커다란 상자를 꺼냈다. 주자서가 온객행이 탁상 위에 올려 놓은 상자를 보고 말했다.
“객행. 선물은….”
온객행이 상자의 뚜껑을 열어 안에 들어 있는 검은색 초피(貂皮; 담비 가죽) 피풍의를 꺼내 들었다. 주자서는 고관대작이나 장군이 입는 초피를 보고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온객행도 자리에서 일어나 주자서가 입고 있는 하얀 피풍의를 벗기고 가져온 초피 피풍의를 둘러주었다. 주자서는 얼떨떨하여 피풍의를 여미는 온객행의 손을 잡고 말했다.
“객행. 이렇게 귀한 것은 받을 수 없어요. 객행이 사용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온객행이 눈썹을 늘어뜨리고 울상으로 말했다.
“유서. 유서 주려고 일부러 가져온 것인데….”
주자서가 둘렀던 피풍의를 벗어 온객행에게 둘러주며 말했다.
“객행. 주극성은 춥지 않습니까? 객행께서 입으세요.”
온객행은 주자서의 걱정이 기꺼워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蛇苺外傳 第1

混戰 | 상대가 혼란한 틈을 타서…

주요는 황룡이 부리던 가신 중에 제일 존재감이 없는 상강(湘江)의 훼룡(虺龍)이었다. 후토는 삼하궁 근처의 동정호 근처뿐만 아니라 장강의 지류에 있는 용들도 대다수 천거했다. 그의 호방한 성격과 풍치를 즐기며 노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 탓에 그를 따르는 이들은 항상 차고 넘쳤다. 주요는 주변에 있던 다른 훼룡을 따라 후토를 모시기 시작했다. 주요가 처음으로 후토를 만났을 때 후토는 주요를 포함한 훼룡에게 말했다.
“나도 훼룡으로 태어났으니 그대들도 등선하여 나를 도울 훌륭한 각룡(角龍)이 되시게!”
후토는 훼룡들에게 술을 직접 따라주고 함께 술을 마셨다. 주요는 밝게 빛나는 후토에게 마음이 사로잡혔다. 주요는 후토 같은 용이 되고 싶었다.

그런 후토가 이상해지기 시작한 것은 치우와의 전쟁이 끝난 후였다. 그 전투로 주요는 훼룡에서 교룡이 되었다. 그 전보다 더 많이 자주 사람들과 어울리게 된 후토는 사람들의 타오르는 생명력에 매료되었다. 찰나를 태워 불꽃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은 영력이 충만했다. 사람들의 상상력은 대단한 것이라 그들은 모르는 것에 대한 경외(敬畏)를 설화와 노래로 표현했는데 그 노래는 맞는 것도 있고 틀린 것도 있어서 종종 분란을 야기했다. 욕심이 생기고 계급이 생기고 나라가 생겨났다. 사람들은 잔인하고 격렬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다정하고 차가웠다. 그들의 믿음과 노래가 신선의 권력이 되었다.

주요는 후토가 사람의 여인과 사내를 취하는 것을 수도 없이 보았다. 후토의 말로는 여흥을 즐기는 것이라고 했지만 주요는 그 행위가 단순히 여흥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후토는 삼하궁으로 돌아오는 날이 점점 더 적어졌다. 다른 오룡과의 관계도 점점 더 소원해졌다. 후토 곁에서 그에게 간언(諫言)을 하던 많은 신선과 요괴들이 후토를 떠났다. 삼하궁은 예전만큼 떠들썩하지 않았다. 주요는 삼하궁에 남은 몇 안되는 요괴였다. 후토의 일을 도맡게 된 주요는 곧 서왕모의 명으로 옥산의 약수를 건너 수원이라는 이름을 얻고 등선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마에서 뿔이 자라기 시작했다. 용에게 있어 뿔이 자라는 일은 명예롭고 경사스러운 일이라 주요는 아주 오랜만에 땅에 있는 황룡을 만나러 갔다.


황룡은 동정호에 위도재(爲道齋)를 지어 놓고 사람과 요괴를 가리지 않고 매일 연회를 베풀었다. 그가 입고 마시고 사용하는 모든 것들은 삼하궁의 재산으로, 그가 땅으로 내려간 이후로 그에게 바쳐지는 공물이 늘어났기 때문에 위도재는 언제나 모든 물건이 많았다. 오랜만에 찾은 위도재에는 요괴뿐만 아니라 사람도 아주 많았다. 주요는 하인의 안내로 후토가 머물고 있는 별원으로 향했다. 위도재 안에 있는 커다란 연못은 삼하궁에 있는 것 못지 않게 아주 크고 아름다웠다. 하인이 주요에게 말했다.
“주인께서 곧 오실 겁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주요는 연못의 연꽃을 구경하며 후토를 기다렸다. 날이 다 질때까지 기다렸지만 후토는 주요를 만나러 오지 않았다. 주요가 작게 한숨을 쉬고 자리를 떠나려 는데 누군가 다가와 말했다.
“누구를 기다리고 계십니까?”
주요가 고개를 돌려 다가온 남자를 보았다. 남자는 소매를 들어 공수하더니 인사했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저는 미평(羋萍)이라 합니다.”
주요도 얼른 소매를 들어 인사했다.
“수원이라 합니다.”

미평이 몸을 바로 세우고 말했다.
“오늘은 후공을 만나 뵐 수 있을까 했는데 후공 대신 미인을 만났습니다.”
주요가 소매를 들어 얼굴을 가리고 말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미평이 웃으며 말했다.
“위도재에는 미인이 많다 들었는데 과연 사실입니다.”
주요는 미평의 말에 부끄러워져서 얼굴을 붉혔다. 미평이 연꽃을 보고 말했다.
“후공께서는 예전만큼 나라의 일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주요가 고개를 돌려 미평을 보았다. 미평이 한숨을 쉬고 말했다.
“답답하고 우울한 마음 시름에 겨워 괴롭다. 정을 억누르고 뜻을 헤아려 원통함을 삼키고 참는다. 모난 것을 깎아 둥글게 만들어도 이미 있는 규범은 바꾸지 않는데 근본이나 초지를 고치는 것은 군자를 희롱하는 것이라.” (8)
주요가 눈썹을 찌푸리고 미평을 보았다. 미평이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나의 쓸모가 다한 듯 하오.”
미평이 다시 소매를 들어 인사하고 몸을 돌렸다. 주요는 돌아선 미평의 뒷모습을 보고 있다가 그를 뒤따라 가서 소매를 잡고 말했다.
“소인 가르침을 청합니다.”
미평이 주요를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 주요가 소매를 놓고 공수하여 인사하고 말했다.
“견문(見聞)이 부족하여 미공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으니 주요, 가르침을 청합니다.”
미평은 조아리고 있는 주요를 보고 있다가 웃으며 말했다.
“낭자(娘子)께 도움이 된다면 저의 쓸모도 아주 없는 것은 아니겠지요.”

미평의 견식은 왠만한 요괴를 뛰어 넘는 것이라 주요는 어째서 후토가 미평을 만나주지 않는지 알 수 없었다. 미평과의 만남이 길어질수록 주요는 후토를 떠난 신선과 요괴들이 떠올랐다. 부러질지 언정 휘어지지 않는 올곧음은 후토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주요는 미평이 자신을 여인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딱히 정정하지 않았다. 이제 막 신선이 된 주요는 몸이 작았기 때문에 관을 하지 않은 주요의 모습은 이제 막 과년(過年)이 지난 소녀로도 보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위도재에서 만났다. 미평은 주요에게 사람들의 세상 이곳 저곳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주요는 미평의 학식을 뛰어넘어 미평이라는 사람 자체를 좋아했다. 미평 역시 재능 넘치는 꽃다운 주요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정하고 배려 넘치는 미평은 주요가 위도재를 찾는 주요 목적이 되었다. 주요는 후토에게 삼하궁의 보고를 마치고 별원으로 향했다. 그들은 별원의 서쪽에 있는 작은 정각에서 만나 시를 읊거나 금을 탔다. 주요는 미평에게 금을 타는 법을 배웠다.


옷차림새가 점점 여인 같아진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여인처럼 치장하는 주요는 곧 삼하궁에 있는 다른 요괴들에게 손가락질 받았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많이 두지는 않았지만 남자가 여자의 옷을 입는 것은 확실히 이상한 일이었기 때문에 요괴와 신선들은 주요를 두고 손가락질하거나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미평에게 푹 빠진 주요가 그것을 눈치 챈 것은 후토에게 삼하궁의 일을 보고할 때였다. 후토는 주요가 소반에 들고 들어온 죽간을 펼쳐보지도 않고 서안 위에 올려 놓고 말했다.
“주요, 왠지 공물이 줄어든 것 같은데?”
주요가 소매를 들어 공수하고 말했다.
“가뭄이 길어져 수확이 많지 않아 그렇습니다.”
후토는 ‘흠’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후토 옆에 있던 지선(池仙) 몇이 주요를 보고 킥킥댔다. 후토는 그들을 한번 쳐다보고 혀를 찬 뒤 주요에게 말했다.
“삼하궁에서 줄일 수 있는 것은 줄이고 위도재의 일을 우선으로 하게.”
주요가 고개를 조아리고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주요는 공손히 인사하고 별궁 외실을 나왔다. 주요가 작게 한숨을 쉬고 별원으로 향했다. 주요는 미평을 만날 생각에 주변을 살피는 것을 조금 소홀히 했는지도 모르겠다.

길에서 부딪힌 요괴는 파사였다. 파사는 동정호의 요괴로 이 근처에 숫자도 제일 많고 세력도 가장 컸다. 주요가 소매를 들어 사과했다. 파사는 주요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이게 누구야? 삼하궁의 무지기잖아?”
주요가 표정을 구기고 파사를 보았다. 주요가 몸을 치장하기 시작한 이후로 다른 요괴와 신선은 주요를 무지기라고 조롱했다. 주요는 그들과 분란을 만들고 싶지 않아 피했지만 가끔 이렇게 뜻하지 않게 부딪히는 일이 생겼다. 주요가 작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주의를 살피지 않아 무례를 범했습니다.”
파사는 기세가 등등하여 주요의 앞섶을 잡고 말했다.
“어디 정말 계집인지 사내인지 확인을 해볼까?”
주요에게 파사 따위는 힘으로도 지위로도 뒤쳐지지 않았다. 주요가 입술을 꾹 다물고 다음 행보를 고민할 때 뒤에서 미평이 나와 그들을 말리며 말했다.
“이게 무슨 짓이오? 그만 두시오.”
파사는 미평을 보고 코웃음 치며 말했다.
“어디 감히 인간따위가 끼어드느냐?”

미평이 당황하여 주요의 앞섶을 잡은 파사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말로 하시오! 야만스럽게 이게 무슨!”
주요는 자신을 감싸는 미평을 한참 보고 있다가 영력을 조금 써서 파사의 손을 뿌리쳤다. 파사가 손을 떼고 소리 질렀다.
“해보자는 것인가? 무지기 따위가 감히!”
미평은 파사의 말에 놀라서 주요를 보았다. 주요는 미평의 두려워하는 표정을 보고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주요는 미평과 파사를 번갈아 보다가 별원을 향해 내달렸다. 주요는 서쪽의 정각에 닿을 때까지 멈추지 않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정도로 뛰었다. 그러다 미평이 다시는 정각으로 오지 않을까 두려워서 삼하궁으로 향했다. 주요가 별원의 정각으로 가지 않으면 미평이 왔는지 오지 않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정호 파사의 우두머리 만자(萬子)가 찾아와 주요에게 사과했다. 그녀는 동정호에서 가장 오래된 파사로 모든 파사의 어머니이다. 그녀는 대선이 될 수 있을 만큼의 영력을 쌓았지만 동정호에서 자식들을 기르고 지키는 것 말고는 관심이 없는 뱀이다. 감히 신선에게 요괴가 대들었다며 많은 양의 비단과 장신구를 선물로 두고 갔다. 만자는 주요에게 사과하며 말했다.
“사내가 하는 일, 여인이 하는 일이 생긴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예절과 풍속이라는 이름으로 제한하는 것은 사람들이 하는 것으로 충분해요.”
주요는 착잡하게 웃으며 선물을 거절했지만 만자는 개의치 않고 선물을 삼하궁에 두고 갔다. 그 일 이후로 주요 곁에 주요를 모시는 파사의 여인들이 늘어났다. 주요의 재물을 탐한 이도 있었고 주요의 지식을 흠모하는 이도 있었고 주요를 이용하여 권력을 잡으려는 여인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주요의 겉모습을 비웃지는 않았다. 아주 사소하고 작은 배려가 주요를 위로했다.


주요는 오랜만에 위도재를 찾았다. 봄이 지나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벌써 몇 갑자 동안 천도연에 참가하지 않은 후토를 초대하기 위해 서왕모에게 부탁을 받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와야 했다. 주요는 얼른 보고를 마치고 다시 삼하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위도재에 올 때는 평소에 잘 입지 않는 어둡고 칙칙한 옷을 입어야 했다. 주요의 원래 모습은 하얀 백룡이었기 때문에 어둡고 칙칙한 옷을 입어도 은은하게 빛이 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은 그를 조롱하는 이들에게 구차한 구실이 되었다. 후토는 딱히 주요의 행색에 대해 별말 하지 않았다. 어쩌면 삼하궁에서 황룡의 일을 대신할 이가 주요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주요가 보고를 마치고 별궁의 외실을 나와 다시 삼하궁으로 향하려고 하는데 누군가 그를 불렀다.
“주요!”
삼하궁에 있는 이들은 주요를 모두 수원이라고 부른다. 주요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후토, 그리고 후토를 떠난 요괴와 신선들 정도이다. 주요가 뒤돌아 자신을 부른 이를 보았다. 미평이었다.

미평이 주요에게 다가갔다. 주요는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미공.”
미평이 주요에게 소매를 들어 인사하고 말했다.
“이제 저의 가르침이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주요는 생각하기도 전에 이미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 주요가 소매를 들어 인사하고 말했다.
“미공. 저는… 저는….”
미평이 주요에게 다가가 말했다.
“그 순간 놀랐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당신이 사람이던 요괴이던 신선이던… 무지기이던 아무 상관없어졌어요.”
주요가 소매로 얼굴을 가리고 말했다.
“미공. 저는….”
미평이 주요를 보고 말했다.
“나는 그대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어요.”

미평이 주요에게 다가가 말했다.
“미평은 그대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주요가 소매를 내리고 미평을 보고 말했다.
“미공. 저는 사람도 아니고 소녀도 아니에요.”
미평이 고개를 끄덕이고 주요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소녀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주요가 고개를 들어 눈썹을 찌푸리고 미평을 보았다. 미평이 주요에게 다가가 목젖을 쓰다듬고 말했다.
“그대는 미인이니까.”
주요는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숙였다.
“여인의 모습을 한 것이 이상했습니까?”
미평이 웃으며 말했다.
“그대는 미인이니 무엇을 해도 아름답습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것 그 어떤 것도 이상한 것은 없어요.”
주요는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흉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앞에 서 있는 미평을 덥석 끌어안았다. 미평은 주요를 마주 안고 웃으며 말했다.
“주요 보고 싶었어요.”

후토는 주요와 미평의 관계를 눈치채고 미평을 가까이 두기 시작했다. 미평은 후토가 듣기 싫은 소리만 골라서 했다. 듣기 싫은 것과는 별개로 미평의 말은 대체로 잘 들어 맞았기 때문에 못마땅해도 곁에 두었다. 그런 미평을 싫어하고 시기하는 무리가 생기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염절이 다가오고 있었다. 후토와 미평은 자주 북쪽으로 향했다. 주요는 삼하궁과 위도재의 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가끔 미평에게서 오는 서신이 주요가 위안을 삼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그렇게 후토도 미평도 위도재로 돌아오지 못했다.


주요는 현조에게 포박당해 순순히 천궁의 태미원(太微垣)으로 끌려갔다. 수많은 진군(眞君)과 현녀(玄女) 앞에서 주요는 후토의 죄가 까발려 지는 것을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주요는 후토가 그런 일을 하고 있는 줄도 몰랐다. 후토의 위도재를 부족함 없이 관리하기 위해 삼하궁의 살림이 궁핍해진 것은 당연한 이야기이다. 하늘의 제사와 연회를 치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보충한다고 주요는 정말 바쁘게 일했다. 만자가 두고 간 비단과 패물도 모두 위도재를 운영하는데 다 써버렸다. 변명도 하지 않는 주요를 보고 있던 금모원군이 주요의 변호를 했다. 주요는 우왕(禹王)의 영지에 봉인되었다. 주요는 우왕이 죽어 삼원에 들어서는 날까지 우왕의 신하로 살아야 한다는 벌을 받았다. 우왕의 영지에서 일하면서 주요는 그 전보다 더 사내를 미워하고 싫어하게 됐다. 우왕은 그런 주요에게 삼원으로 가면서 부탁했다. 여인들 만이라도 굽어살펴 주시라고. 사람을 보살펴 주시라고.


주요는 삼하궁 별원의 정각에서 현리가 데려온 여인의 금소리를 듣고 정말 오랜만에 미평에 관한 일을 떠올렸다. 그는 금을 타는 것을 좋아했지만 저 여인처럼 금을 잘 타지는 못했다. 여인의 노랫소리가 청아하다.
“비록 시들어 버린다 해도 어찌 속을 상하겠는가? 거칠어진 꽃향기와 더러워진 꽃잎이 서러워서 그렇지.” (3)
주요는 금소리가 반가워 여인에게 삼하궁의 연꽃을 내렸다. 사람의 목숨을 한번 지켜준다는 삼하궁의 연꽃은 보물이다. 연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사람보다 더 오래 건강하게 살 수 있다. 삼하궁 연꽃 선물은 여인보다 오히려 현리가 더 기뻐했다.

주요가 웃으며 말했다.
“종종 들러 주세요. 그대의 금소리는 정말 아름답습니다.”
현리가 소매를 들어 인사하고 말했다.
“상선께서 찾으시면 언제든지 오겠습니다.”
여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소곳이 인사했다. 그 모습이 낯이 익어 주요는 고개를 갸웃했다. 주요는 하인에게 시켜 현리와 여인에게 삼하궁에 드나들어도 좋다는 통행패를 주었다. 현리가 노란색 옥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말했다.
“요즘은 요대보다 삼하궁에 더 자주 오는 것 같습니다.”
주요가 웃으며 말했다.
“황룡께서 아직 서투르셔서 여유가 없어서 미안하네.”
현리가 고개를 흔들고 웃으며 말했다.
“저희야 어디서든 불러만 주시면 감사합니다.”
주요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현리. 가끔 태평호도 들러 보도록 해라.”
주요의 말에 여인이 고개를 들었다. 주요는 삼하궁으로 향하며 말했다.
“다음에는 황룡께서도 함께 올 수 있도록 노력해 보마.”
현리는 나가는 주요에게 소매를 들어 인사했다.


기룡은 천교와 보살을 데리고 태평호로 가서 그곳에 틀어박히고 말았다. 예전부터 사람이 많지 않았던 태평호의 천혜(天惠)자연은 기룡의 영감(靈感)을 자극했다. 원래도 일손이 부족하던 삼하궁에 주요 인력이 태평호로 빠지는 바람에 주요와 고상은 더욱 바빠졌다. 지주는 주자서를 가르치는 것을 그만두고 태평호에 살던 계낭 네댓을 데려와 삼하궁에서 일했다. 천교와 보살도 명절때에는 삼하궁으로 돌아와 손을 거들었다. 고상이 황룡의 일과 삼하궁에 익숙해지자 주요에게도 약간의 틈이 생겼다. 그럴 때마다 주요는 별궁의 정각에 앉아 연꽃을 보았다. 마지막으로 미평을 만났을 때 무슨 대화를 했는지 어떤 모습이었는지 그 기억이 바래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그 기억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것은 마음이 허전한 상태로, 좀처럼 채워지지 않는다. 주요는 이 만성적인 헛헛함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주요는 이 헛헛함이 사라지면 삼원으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주요가 찻잔을 들어 입을 축이고 고상의 기척에 깊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아상.”
고상이 연못 속에서 불쑥 나와 주요를 보고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주요….”
주요가 자리에서 일어나 연못으로 가서 고상을 보고 말했다.
“일은 다 하고 노는 거야?”
고상이 주요의 질문에 눈을 굴리며 말했다.
“그게… 그러니까… 잘 모르는….”
주요가 성큼 고상에게 다가가 주요의 앞섶을 잡고 쭉 끌어 올렸다. 아상이 주요의 손을 잡고 말했다.
“모르는 게 너무 많단 말이야. 그걸 어떻게 일일이 다 찾아?”
주요가 고상의 몸에서 물을 흩어내고 말했다.
“뭘 모르는데. 가서 보자.”
고상이 주요의 손을 잡고 황룡의 거처인 진헌당(進賢堂)으로 향하며 말했다.
“주요는 앉아서 쉬어. 내가 읽고 내가 쓸게.”
주요가 웃으며 말했다.
“요즘 글씨 잘 쓰더라.”
고상이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그렇게 많이 썼는데 안 늘면 그게 더 이상해.”
주요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떤 부분을 모르는 것인데?”
고상이 투덜대며 말했다.
“제례는 말이 너무 어려워. 아는 글자인데 다 뜻이 달라.”
주요가 고개를 흔들고 웃으며 말했다.
“또! 내가 읽으라는 것을 읽지 않았지?”
고상이 울상을 하고 말했다.
“그 책은 너무 재미없단 말이야!”
주요가 코웃음 치고 말했다.
“내 말은 다 잘 듣겠다고 하더니 다 거짓말.”
고상이 주요의 팔에 매달리며 말했다.
“아니야. 다 잘 들을 거야. 제악은 다 재미 있었어. 주요 나도 악기를 배워볼까?”

주요가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상 너 당헤는 어디 두고 혼자 있어?”
고상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말했다.
“그러게 당헤 어디 갔지?”
그들이 진헌당에 가까워지자 당헤가 고상에게 달려와 소매를 붙잡고 울며 말했다.
“황룡… 저를 버리고 어디를 다녀오신 것입니까? 아직 처리해야 할 사안이 한가득인데….”
당헤가 주요를 발견하고 소매를 들어 인사하며 훌쩍였다.
“대선… 살려주세요. 휴식시간을 방해한 것은 정말 죄송합니다.”
주요가 당헤의 어깨를 쓸고 말했다.
“당헤가 고생이 많아요. 울지 마세요. 가서 봅시다.”
당헤가 소매로 눈물을 닦고 주요를 외실안으로 안내했다. 고상이 뒤따르며 말했다.
“당헤는 맨날 울어.”
주요가 고상을 쏘아보고 말했다.
“너 때문이잖아!”
당헤 역시 억울한 얼굴로 고상을 보았다. 고상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목마르지? 차를 준비할까?”
삼하궁에 있는 신하들은 고상보다는 주요 쪽을 더 신뢰하는 편이다.


주자서는 조각배 위에 앉아서 먹을 갈고 있었다. 고요한 태평호에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강줄기 너머 보이는 산등성이가 운치 있다. 평소 풍류를 잘 모르는 주자서도 기룡을 스승님으로 모시고 난 이후 풍경을 즐기는 일에 취미를 붙인 참이다. 기룡이 붓을 들고 곰곰이 생각하다 종이 위에 황산의 능선을 그렸다. 잎이 다 떨어진 산은 또 그 나름대로의 우아한 멋이 있었다. 종이 위에 그려지는 황산을 구경하던 주자서가 다시 먹을 갈기 시작했다. 온객행이 보낸 먹이다. 기룡이 태평호로 온 이후로 온객행과 주자서는 나무함을 사용하는 일이 줄었다. 기룡이 선물한 태평호의 그림은 주자서가 보기에 빈 공간이 너무 많아서 아쉬웠지만 온객행은 극찬하며 좋아했다. 온객행이 그림을 받고 며칠 동안이나 주자서는 밤마다 만나는 온객행이 꿈 인줄 알았다. 온객행이 말해주지 않았다면 아마 아직도 밤마다 만나는 온객행이 꿈인 줄 알았을 것이다.

천교와 보살이 기룡을 모시고 온 날 주자서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입하와 입추는 계낭을 잘 통솔하여 수확을 마무리하고 있었고, 지주는 주극성에 일이 있어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하원 전까지는 손님을 맞이할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주자서의 안일한 예상을 뒤엎고 기룡이 천교와 보살을 대동하고 태평호에 나타났다. 기룡은 도착하자마자 허락도 없이 부유각의 누각에 올라 태평호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천교와 보살은 백택으로 들어가 입하와 입추를 부리며 사당을 정리하는데 바빴기 때문에 주자서 혼자 기룡의 시중을 들게 되었다. 기룡은 들고 온 화구함(畵具函)을 열더니 벼루를 여러 개 꺼내 놓고 먹을 갈기 시작했다. 주자서도 눈치껏 옆에 앉아 먹을 갈았다. 주자서가 먹을 가는 것을 보고 있던 기룡이 말없이 주자서에게 미소 짓고 종이를 꺼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기룡이 제일 처음 그린 그림은 부유각에서 보는 태평호의 전경이었다. 해가 다 져서 주자서가 얼른 내실에 가서 등롱을 밝혀오자 기룡이 말했다.
“다 됐다. 밥 먹으러 가자.”
주자서는 얼떨떨하게 등롱을 들고 기룡의 뒤를 따라 백택으로 향했다.

기룡은 백택의 정전에 머물며 그림을 그렸다. 기룡이 그림을 그리는 동안 천교와 보살은 홍주를 담그느라 정신이 없었다. 마당에 나와 있는 수많은 단지를 끓인 물로 닦고 계낭과 주자서가 따서 말려 둔 구기자와 새로 딴 구기자를 섞어 으깬 뒤 누룩을 조금 넣고 봉황에게 얻어온 흑당과 꿀을 섞었다. 기룡은 우사첩과 계룡이 술을 담그는 것도 그렸다. 주자서는 옆에서 먹을 갈기도하고 홍주를 만드는 마당에서 일손이 필요하면 가서 단지를 이리저리 옮기는 일을 했다. 지주가 태평호로 돌아오는 날이 점점 줄어들고 기룡이 태평호에 도착한지 이레 뒤에 하원까지 얼마 안 남은 날 갑작스럽게 온객행이 지주와 함께 태평호를 방문했다. 지주는 아끼는 계낭을 데리고 삼하궁으로 떠났다.
“이제 더 가르칠 것이 없다. 애초에 내가 가르친 건 별로 없었어. 잘 지내. 놀러올게.”
온객행도 기룡에게 인사하고 그림을 받은 뒤 금방 돌아갔다.

주자서가 아쉬워서 말했다.
“객행….”
온객행이 주자서의 손을 잡고 말했다.
“유서. 정말 급하게 온 거라 오래 못 있어.”
주자서가 말없이 온객행의 손을 놓지 못하자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유서. 나랑 같이 주극성에 갈까?”
주자서는 한참 고민하다 힘겹게 고개를 흔들었다. 온객행은 주자서를 품에 안고 말했다.
“미안해. 유서. 정말 미안해.”
주자서는 온객행을 놓아주고 웃으며 말했다.
“객행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언제든지 돌아오세요.”
온객행은 얼굴을 붙여 오다가 주변에 기룡과 우사첩을 보고 고개를 돌려 주자서를 꽉 끌어안았다. 주자서는 다른 사람이 보고 있는데도 입을 맞추지 못한 것이 아쉬워서 그날 저녁때까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다른 날보다 조금 일찍 부유각으로 돌아온 주자서는 장포도 벗지 않은 채로 침상 위에 벌렁 누웠다. 설핏 잠이 든 주자서를 일으키는 손길에 주자서가 눈을 떴다.
“…객행?”
온객행이 주자서의 장포를 벗기며 말했다.
“응. 왜 옷도 벗지 않고 자고 있어?”
주자서가 몸을 일으켜 눈을 비비고 말했다.
“아직 씻지도 않았는데….”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피곤하면 내일 씻어. 어서 누워.”
주자서는 온객행의 허리를 끌어안고 말했다.
“객행. 신선들은 대체 무슨 제사를 그렇게 많이 지내는 겁니까? 삼청더러 내려와서 지내라고 하세요.”
온객행이 웃으며 주자서와 같이 침상 위에 누웠다.
“유서. 그건 너무 불경한 얘기 아니야?”
주자서가 온객행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말했다.
“괜히 주극성을 나왔나 매일 후회해요.”
온객행이 주자서를 감싸 안고 말했다.
“그건 정말 잘한 것 같아. 난 현무가 될 마음이 없으니까. 유서가 있었다면 교활한 거북이들이 날 주극성에 붙잡아 놓으려고 무슨 짓이든 했을 거야.”
주자서가 웃으며 말했다.
“교활한 거북이라니… 뭔가 어울리지 않는 말이네.”

온객행이 주자의 몸을 토닥이며 말했다.
“미안해 유서. 얼른 자.”
주자서는 온객행을 꽉 끌어안고 눈을 감았다. 이 꿈이 깨지 않기를 바라면서. 다음날 주자서는 보통보다 조금 늦게까지 잠을 잤다. 주자서는 온객행 꿈을 꿔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뭔가 묘하게 정리된 부유각 내부도 기분 탓으로 쳤다. 며칠 계속 온객행 꿈을 꾼 주자서는 기분이 좋았다. 주자서는 꿈에서 만난 온객행에게 잔뜩 투정을 부릴 수 있어서 좋았다. 주극성에서 혼자 애쓰고 있는 온객행에게는 차마 할 수 없는 일이다. 주자서는 꿈에서 온객행을 보고 싶어서 점점 빨라지는 일몰시간에 맞춰서 잠자리에 들었다.

잠깐 잠이 깬 주자서는 은은한 등롱불에 저를 내려보고 있는 온객행을 보고 부스스 웃었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뺨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유서. 내일은 하원이라 못 와. 하원이 지나면 이틀 정도 쉴 수 있게 해준데.”
주자서가 부루퉁하게 말했다.
“겨우 이틀?”
온객행이 낮게 웃으며 말했다.
“맞아. 겨우 이틀. 내가 며칠동안 잠도 안자고 일했는데….”
주자서가 눈썹을 축 늘어뜨리고 말했다.
“우리 객행 고생해서 어쩌지?”
온객행이 주자서를 품에 안고 말했다.
“이렇게 매일 밤에 만나니까 살 것 같아.”
주자서가 눈을 감고 말했다.
“나는 꿈에서 말고 진짜 온객행이 보고싶어.”
온객행이 웃으며 주자서에게 얼굴을 붙여왔다. 주자서는 온객행의 뺨을 잡고 입술을 맞췄다.
“한 갑자는 정말 길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목덜미에 고개를 묻고 말했다.
“응. 너무 길어.”
주자서는 온객행을 꼭 끌어안고 다시 잠을 청했다.

하원이 지나고 이틀 뒤에 온객행이 태평호에 왔다. 주자서는 너무 반가워서 체면도 내려놓고 온객행을 보자마자 달려가서 덥석 끌어안았다. 같이 온 문귀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나는 그럼 이만 가보겠네.”
주자서는 온객행을 놓아주고 온객행과 함께 다시 주극성으로 향하는 문귀에게 소매를 들어 인사했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손을 잡고 부유각으로 향하며 말했다.
“주서에게 주려고 선물을 가져왔어.”
주자서는 웃으며 말했다.
“객행이 온 것이 저에게는 제일 큰 선물이에요.”
온객행이 가던 길을 멈추고 주자서를 끌어안고 말했다.
“유서 정말 좋아해.”
주자서도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객행 좋아해요.”
온객행이 주자서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고 말했다.
“이틀은 너무 짧다.”

주자서가 고개를 들어 온객행을 보고 눈을 깜빡였다.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입맞추고 말했다.
“내가 이틀 쉴 수 있다고 했잖아요.”
주자서가 온객행을 놓고 말했다.
“어… 언제요?”
주자서가 알기로는 온객행이 이틀동안 쉰다는 얘기는 꿈속에서 밖에 한적이 없었다. 요즘 온객행은 나무함에 뭔가 넣어 놓는 일이 줄어서 주자서는 내심 서운하던 참이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손을 잡고 부유각으로 향하며 말했다.
“내가 하원 전에 와서 말해줬잖아요. 침상 위에서.”
주자서가 가던 길을 멈추고 온객행을 보고 입을 벙긋거렸다. 온객행이 웃으며 주자서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말했다.
“기룡께서 그려 주신 그림으로 매일 밤에 만나러 왔잖아요. 유서.”
주자서의 얼굴이 점점 새빨갛게 변했다. 


(8) 굴원 회사부(懷沙賦) 회왕을 그리며.
鬱結紆軫兮 離愍而長鞠 撫情效志兮 寃屈而自抑
답답하고 울적한 마음 시름에 겨우니 못내 괴롭다.
정(情)을 억누르고 뜻을 헤아려 원통함을 삼키고 스스로 참네.
刓方以爲圜兮 常度未替 易初本廸兮 君子小鄙
모난 것을 깎아서둥굴게 만들어도 일정한 규범은 바꾸지 않는데,
근본(根本)이나 초지(初志)를 고치는 것은 군자(君子)가 얕보는 것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