蛇苺外傳 第2

竝戰 | 상황의 추이에 따라 아방(我方).

지주가 삼하궁의 신하로 가게 된 것은 하늘에서도 평범하게 있는 일은 아니라 한동안 신선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사방신과 오룡은 산천대제를 모시고 있기 때문에 서로 교류가 많았으나 그래도 각자 기본적인 영력 특성에 맞는 신하를 두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었다. 오룡의 수장이며 태양의 상징인 황룡이 거미를 신하로 맞이했다는 것은 과거 후토가 신분에 관계없이 신하를 천거한 것과 비슷했기 때문에 과거 후토를 모시던 신하들이 삼하궁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지주가 황룡의 신하가 된 것은 단순한 고상의 변덕이었다.

주극성에서 성대하게 치러진 하원(下元)은 수관(水管)을 응대하는 것으로,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하늘의 큰 행사였기 때문에 사령은 물론이고 오룡도 참석해야 했다. 긴 예식 절차가 끝나고 하늘에서 진군이 내려와 연회를 즐겼다. 예식에서 사용된 제악과 무용과는 또 다른 음곡(音曲)과 가무(歌舞)를 내놓았다. 수관은 주극성의 준비에 흡족하여 현무의 일을 하는 온객행을 크게 칭찬했다. 안타깝게도 온객행은 문귀와 서귀의 손에 이리저리 이끌려 다니며 수관을 보좌하는 신하들과 사방신, 오룡의 신하들에게 인사를 다니느라 수관의 칭찬을 하원이 다 끝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상석에서 가까운 곳에 오룡을 위해 마련한 자리 중에 가장 높은 곳에 고상이 앉아서 주요의 시중을 받았다. 주극성의 나흘마가 제사에서 사용한 예주(醴酒)를 내왔다. 달고 도수가 높지 않은 술이라 주요는 고상의 술잔을 채우고 말했다.
“황룡. 너무 많이 드시면 안 됩니다.”
고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술잔을 들어 마셨다. 옆에 앉아서 주요를 보고 있던 청룡이 말했다.
“상선. 수관께서 다시 삼원으로 돌아가실 때 인사를 드려야 합니다.”
주요가 고개를 끄덕이며 청룡을 보고 말했다.
“걱정 마세요. 황룡께서는 술이 세시니.”
뒤 쪽에 앉아 있던 적룡이 고상에게 다가와 말했다.
“황룡께서 술을 좋아하십니까?”
황룡이 다가온 적룡에게 자리를 권하며 말했다.
“전당군. 전당군도 드세요.”
그리고 술잔을 채워 전당군에게 건넸다. 적룡이 고상이 건넨 술잔을 받으며 옆에 앉고 말했다.
“저는 술을 잘하지 못하는데….”
청룡이 주요에게 눈치를 주며 말했다.
“전당군은 술버릇이 고약하니 너무 많이 주지는 마세요.”
고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기 술잔을 채웠다.

지주는 연회가 열리고 있는 의풍전 외실 덧문 밖에서 안으로 들이는 음식을 확인하고 있었다. 왜 이렇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방신과 사령에게 바치는 찬과 술의 종류가 조금 달랐다. 그것이 기호인지 아니면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지주는 즉저가 건넨 두루마리를 펼쳐 들고 소반 위에 준비된 음식과 술을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지주가 데려온 계낭은 기본적으로 지주를 따랐지만 즉저도 잘 따랐다. 즉저는 의외로 풍류를 즐기는 편이라 견문이 넓었기 때문에 연회에서 사용할 악사와 무희를 관리하는 일을 맡았다.

아무리 요괴라도 몇 시진 동안 계속해서 춤을 출 수 없고, 춤이 연주되는 음악과도 어울려야 하기 때문에 일손이 부족한 즉저에게 계낭을 보낸 참이다. 연회를 한다고 성의 수위(守衛)를 게을리할 수는 없어서 그 일은 적송자가 맡았다. 적송자는 요대를 방문한 일로 천존에게 벌을 받을 줄 알았지만 의외로 천존은 적송자와 뇌공에게 아무런 처벌도 하지 않았다. 적송자는 온객행이 일을 하는 것을 보고 한숨을 쉬며 대다수의 현무 일을 처리했고, 뇌공을 기억하는 도예는 그 전보다 상태가 많이 호전되어 기린은 요대로 돌아갔다.

수관은 해가 지기 시작하자 꽤 이른 시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석에서 일어나 연회에 모인 신선을 축복하고 하얀 빛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 신선들은 상석에 소매를 들어 조아리고 있다가 의풍전에 어둠이 찾아와서야 몸을 바로 했다. 온객행은 의풍전의 등롱을 밝히느라 외실을 나갔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령과 사방신의 신하들이 하나둘 의풍전 안으로 들어왔다. 흑룡은 백룡을 붙잡고 뭔가를 묻느라 바빴고, 백호는 수관이 가자마자 밖으로 나가 적송자를 찾았다. 주작은 봉황과 남쪽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응룡은 기와 린에게 잔소리를 들었다. 영귀가 밖으로 나와 연회 준비와 정리로 분주한 온객행을 찾아 도왔다. 적룡은 고상과 붙어서 술을 마셨고 주요는 청룡의 한탄을 들어주었다.
“이제야 좀 자리에서 벗어나나 했는데….”
주요가 고개를 끄덕이며 청룡의 어깨를 토닥였다.
“오광군. 제가 많이 돕겠습니다.”

청룡이 울먹이며 말했다.
“일손이 늘면 일이 줄어드는 것이 맞지 않습니까? 저도 차라리 어디 봉인되고 싶어요.”
주요는 이맘때 태평호에서 무엇을 했나 생각하며 미소 지었다. 청룡이 술잔을 기울이기에 주요가 술병을 빼앗고 차를 따라주며 말했다.
“오광군. 취하셨습니다.”
청룡이 주요가 치운 술병을 아쉬운 듯 보더니 말했다.
“이제 정월까지 별일이 없으니 오늘 좀 취하고 싶어요.”
주요가 작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정말 별일이 없어야 할 텐데요….”
청룡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적룡에게 다가갔다.
“전당군!”
적룡은 고상에게 들러붙어 고상의 얼굴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황룡. 제가 황룡을 사랑한다고 말씀드렸나요? 어려서 그런가? 보들보들하네요.”
그리고는 고상의 앞섶으로 손을 넣었다. 고상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전당군. 아상이라고 불러주세요.”
적룡이 웃으며 말했다.
“아상.”
주요도 고상에게 다가가 말했다.
“전당군! 농입니다. 받아드리시면 안돼요.”
청룡과 주요가 적룡과 고상을 떼어 놓았다. 신선들과 그의 가신들은 하나둘 의풍전을 떠났다. 정신이 멀쩡한 신선은 자신의 영지로 돌아갔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금귀자가 별각의 객실로 안내했다.


온객행이 대전의 상석에 늘어져 앉아 연회를 치우는 하인들을 보며 말했다.
“이 짓을 매년 한다는 말이야?”
화귀가 다가와 온객행을 일으키며 말했다.
“견연. 봉황과 주작께서 돌아간다고 하시니 어서 가서 인사하게.”
온객행이 얼른 몸을 일으켜 화귀를 따라 나갔다. 주작과 봉황은 온객행에게 준비를 잘했다며 칭찬했다. 주작이 의풍전을 보고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전당군이 취해서 큰일이네. 구망께서 같이 계시니 괜찮을 거야.”
온객행은 어떤 표정을 하면 좋을지 몰라 고개를 조아렸다. 봉황이 온객행의 어깨를 툭툭 치고 말했다.
“용케 내자를 태평호로 보낼 생각을 했군.”
온객행은 주자서의 얘기에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태평공은 지혜로워서 제가 항상 따르고 있습니다.”
주작이 주자서의 호칭에 ‘하하하’ 웃으며 말했다.
“태평공? 하하하 어울리는 이름이군.”
봉황이 같이 웃으며 말했다.
“자네 내자는 아직 하늘에서 부르는 이름이 없지?”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영력을 다루는 것이 능숙해지면 금모원군을 찾아뵈려고요.”
주작과 봉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작이 남쪽으로 향하며 말했다.
“천천히 돌아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아.”
봉황이 주작의 뒤를 따르며 말했다.
“너무 조급해 말게. 태평공은 발의 후손이니 걱정할 것 없어.”
온객행은 떠나는 주작과 봉황에게 소매를 들어 인사했다.

다음은 기린과 응룡이었다. 응룡은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한껏 풀이 죽어 술도 많이 마시지 않은 듯했다. 읍강이 응룡에게 말했다.
“너는 요대에 가서 정월까지 근신하도록 해라.”
응룡은 입을 쭉 내밀고 고개를 끄덕였다.”
희발이 웃으며 말했다.
“구망대선께 말씀드려야 하겠구나.”
응룡이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그동안 제가 대신!”
읍강이 응룡의 입을 찰싹 때리고 말했다.
“그 입! 경진! 그 입을 그냥!”
응룡은 맞은 입을 양손으로 가리고 울상을 했다. 희발이 응룡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린자께서 다 경진이 걱정되어서 그러는 것이에요. 알지요?”
응룡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기형….”
온객행이 그들에게 소매를 들어 인사했다. 읍강이 온객행의 소매를 잡아 일으키며 말했다.
“견연. 고생이 많아요. 내자는 잘 지냅니까?”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덕분에 태평호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희발이 말했다.
“저는 읍강과 떨어져 사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어요. 공무로 며칠씩 떨어져 있어도 죽을 것 같은데. 정말 대단합니다.”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도 죽을 것 같아요. 그래서 기룡께서 태평호를 그려 주셨어요.”
읍강이 놀라서 물었다.
“기룡께서 주극성에 계십니까?”
온객행이 작게 고개를 흔들고 말했다.
“태평호에….”
읍강이 물었다.
“계속 태평호에 계신 겁니까?”
온객행이 고개를 흔들고 말했다.
“아니요. 적송자께서 천거하셨습니다.”
희발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적송자께서….”
읍강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적송자를 요대로 모실 것을….”
희발이 동의하며 말했다.
“저도 풍백은 몇 갑자만에 뵈었으니까요.”
읍강과 희발이 온객행에게 소매를 들어 인사하고 요대로 향했다. 응룡도 소매를 들어 인사하고 그들의 뒤를 따랐다.


온객행은 의풍전으로 돌아오는 길에 밖에서 백룡과 흑룡을 만났다. 흑룡은 온객행이 온 줄도 모르고 백룡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있는 중이었다. 흑룡이 말했다.
“오윤왕께서는 그럼 소금을 어떻게 관리하십니까? 의외로 공물의 양이 적은데 원하는 곳이 많아서 어찌해야 할지….”
백룡이 곤란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말했다.
“각자 받는 공물은 좀 말하기가 곤란하군. 오순왕. 이런 이야기를 해도 괜찮겠는가?”
흑룡 옆에 서 있는 나어가 놀라서 백룡에게 물었다.
“이런 얘기는 다른 신선께 하면 안 되는 겁니까?”
백룡이 한숨을 쉬고 말했다.
“일단 나의 가신인 청어(靑魚)를 몇 분 보내주지. 그동안 왜 말하지 않았나?”
흑룡이 백룡의 소매를 잡고 물었다.
“대체 어디까지 말해도 되고 어디까지 말하면 안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청룡께서는 항상 바쁘시고 적룡께서는 주작과 함께 계시고 황룡께서는….”
흑룡이 황룡얘기를 꺼내자 백룡과 흑룡이 함께 한숨을 쉬었다. 백룡이 흑룡의 손을 잡고 말했다.
“잘하고 있네. 그대 정도면 아주 양호해.”
흑룡이 풀이 죽어서 말했다.
“중원이 지나고 스승님께 다녀왔는데 멍청한 짓을 했다고 혼이 났습니다.”
백룡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견연 얘기를 하지 그랬어.”
흑룡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했죠. 바보가 바보짓 한다고 혼나지 않으니까요.”
온객행이 헛기침하고 말했다.
“바보라 사형을 고생시켰습니다.”

백룡과 흑룡이 소매를 들고 인사했다. 백룡이 말했다.
“견연. 아주 훌륭했네. 주극성에는 훌륭한 가신이 많은 듯하네.”
저 멀리서 또 무슨 일을 수습하고 있는 문귀와 택귀를 본 온객행이 한숨을 쉬고 말했다.
“다행이지요. 저는 아직도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흑룡이 웃으며 말했다.
“여태 용케 도망가지 않고 버텼군.”
온객행이 눈썹을 늘어뜨리고 말했다.
“유서에게 못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잖아요.”
흑룡이 얼굴을 구기고 말했다.
“너는 나만 보면 유서 이야기군. 그만하게. 나는 만나 본 적도 없는데.”
온객행이 흑룡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아직 하지 않은 말이 얼마나 많은 지 아시오?”
백룡이 웃으며 말했다.
“오순왕께서 주극성에 머물면서 시달렸겠군.”
흑룡이 온객행에게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이 놈은 저보다도 아는 것이 없습니다.”
백룡이 웃으며 말했다.
“나는 이만 서쪽으로 가보겠네.”
흑룡이 백룡의 소매를 잡으며 말했다.
“오윤왕! 아직 물어볼 것이 많은데.”
백룡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겨울은 그다지 바쁘지 않으니 내가 북해에 들리도록 하겠네. 언제 북해로 돌아가는가?”

흑룡이 온객행을 보았다. 온객행은 옆에 서 있는 화귀를 보았다. 화귀가 깊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오순왕께 감사드립니다. 하원이 끝났으니 언제든지 돌아가셔도 괜찮습니다.”
흑룡이 백룡에게 물었다.
“오윤왕을 따라가도 될까요?”
백룡은 얼굴을 구기고 한참 흑룡과 온객행을 번갈아 보더니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백룡과 흑룡은 곧 서쪽으로 향했다. 화귀가 서쪽으로 사라지는 흑룡을 보고 말했다.
“오순왕 정도만 되도 좋겠는데….”
온객행이 ‘쯧’하고 혀를 차며 말했다.
“내가 지금 현무 하고 싶어서 여기 있는 겁니까?”
화귀가 의풍전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이틀 쉬고 싶으면 어서 정리하게.”
온객행이 투덜거리며 화귀의 뒤를 따르고 말했다.
“상전 대접이라도 해주던가.”
화귀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럼 상전답게 일을 하던가.”
온객행이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그럼 여태 내가 놀았소?”
화귀가 온객행을 쏘아보며 말했다.
“우리 상선에 비하면 넌 여태 놀았지!”
문귀가 다가와 말했다.
“왜 또 그러나. 아직 손님들 계시니 손님 가시고 나면 하게.”
화귀는 온객행을 보고 혀를 차며 의풍전 안을 치우는 서귀를 돕기 위해 자리를 떴다. 온객행이 약이 올라 씩씩대자 문귀가 말했다.
“왜? 또 안아줘? 용슬은 어디 갔나?”
온객행은 문귀를 노려보더니 발을 구르며 즉저가 있는 천연당으로 향했다. 오늘 사용한 제향품과 남아있는 재고를 맞추는 일이 남았다.


적룡과 고상은 너무 취해서 스스로 운신이 힘들었다. 청룡과 주요는 그들을 잘 수습해 별각에 마련된 객실에 머무르게 되었다. 청룡은 자신의 몸을 서슴없이 더듬는 적룡의 양손을 꼭 잡고 말했다.
“대선 정말 무례를 범했습니다.”
주요가 고상을 추슬러 안으며 말했다.
“우리 아상은 얌전한 편이었네요….”
청룡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곱게 자면 정말 좋은데 말이죠. 뭐가 기분이 좋았는지 평소에는 이렇게 많이 마시지 않는데….”
주요가 웃으며 말했다.
“오광군께서도 어서 가서 쉬세요.”
청룡이 적룡을 객실 안으로 밀어 넣으며 말했다.
“언제 삼하궁으로 돌아가십니까?”
주요가 잠깐 생각하고 말했다.
“황룡께서 정신을 차리시면 가야지요.”
청룡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돌아가실 때 저희도 같이 가려구요. 정월 준비는 하셨습니까?”
주요가 한숨을 쉬고 고개를 흔들었다. 청룡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조금 일찍 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주요가 미안한 듯 웃고 말했다.
“황룡께서 많이 부족하여 정말 죄송합니다. 태평호 밖을 나가본 적이 없는 아이라 순진하고 아는 것이 없어요.”
청룡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없는 것 보다는 낫습니다. 사고 쳐서 일을 늘리지만 않으면 다행이죠.”
주요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제가 많이 돕겠습니다.”
청룡도 고개를 조아리고 말했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청룡과 주요는 객실 안으로 들어가면서 아주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일몰 시간이 빨라지고 낙엽이 다 지고 입동이 지나 하원이다. 주자서는 그 전보다 몸이 축축 늘어지고 깜빡깜빡 조는 일이 많아졌다. 주자서는 온객행이 나오는 꿈이 좋아서 부유각에서 백택으로 거처를 옮기지 않았다. 보살이 설핏 잠든 주자서의 어깨를 잡아 흔들며 말했다.
“유서! 날이 추워지니까 옷을 더 입어야 하겠어.”
주자서는 눈도 뜨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입춘과 소설이 보살에게 다가와 말했다.
“엉가! 옷을 준비할까요?”
보살이 고개를 끄덕이자 계낭은 재실의 각고로 향했다. 계낭이 가져온 옷은 주요가 입던 피풍의로 하얀 비단에 하얀 족제비 털이 달려있다. 주자서의 몸에 피풍의를 둘러준 보살이 말했다.
“유서 겨울옷을 지어야 하겠어. 겨울에 입힐 것이 없네.”
천교가 재실로 들어오며 말했다.
“보보. 정전과 재실의 북창은 다 막았어. 부유각에도 덧문을 달아야 하는데. 유서. 수선께서 오시면 물어봐라.”
주자서는 눈을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천교가 주자서의 뺨에 손을 대고 말했다.
“화사가 된 지 얼마 안 돼서 동면을 할지도 모르겠네.”
보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군. 기룡께서는 어디 가셨는가?”
입하가 재실 안으로 화로를 가지고 들어오며 말했다.
“구강에 그림을 그리러 가셨어요. 청익강 쪽으로….”
입춘과 소설이 보살의 치마를 잡고 말했다.
“엉가. 저희가 따라가려고 했는데 그럴 필요 없다고 하셨어요.”
보살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 잘했다.”

주자서는 몽롱한 정신으로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천교와 보살의 잔소리를 들으며 저녁을 먹었다. 기룡께서는 어디에 가셨는지 날이 다 졌는데도 돌아오지 않으셨다. 그런 일은 종종 있었기 때문에 천교와 보살은 주자서를 얼른 부유각으로 보냈다. 보살이 주자서의 피풍의를 여미며 말했다.
“유서. 내일은 덧문을 달자. 수선께 말씀을 전하도록 해. 그 나무함으로.”
천교가 반응이 없는 주자서의 소매를 잡고 흔들었다. 주자서는 겨우 눈을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보살이 주자서의 턱을 잡고 말했다.
“유서! 내가 뭐라고 했어?”
주자서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덧문….”
보살이 혀를 차며 주자서의 턱을 놓고 말했다.
“이 상태로 덧문 어떻게 달래?”
천교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쩌지? 섣달과 정월은 더 추울 텐데… 유서. 정전으로 거처를 옮기자.”
주자서는 눈썹을 찌푸리고 고개를 흔들었다.
“안 돼요.”
천교와 보살이 주자서를 보았지만 주자서는 고개만 흔들 뿐 더 말하지 않았다. 천교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일단 오늘은 부유각에서 재우고 주극성으로 서신을 보내던지 하자.”
보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부유각에는 화로도 아직 안 가져다 놓았잖아. 휘장만으로는 밤에 추울 텐데.”

주자서는 결국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지 못했다. 함부로 부유각에 들어갈 수 없는 천교와 보살은 발을 동동 구르다 기룡을 찾아 부유각으로 들여보냈다. 보살이 쓴 서신을 나무함에 넣고 침상 위에 붉은 뱀으로 변한 주자서를 안고 나왔다. 기룡이 ‘허허허’ 웃으며 말했다.
“아주 예쁜 화사군.”
천교와 보살은 눈을 뜨지 못하는 주자서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정전 내실에 화로를 여러 개 가져다 놓고 비단 이불 속에 넣어 두었던 주자서는 저녁이 되어서야 다시 사람의 모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주자서를 놓고 밥을 먹이며 보살이 잔소리를 퍼부었다.
“영력도 못쓰는데 갑자기 밖에서 잠들면 어떡할래? 얼어 죽을 거야? 미련한 것.”
주자서는 천교와 보살의 잔소리에 익숙해진 터라 고개를 끄덕이며 콩죽을 먹었다. 주자서는 부유각으로 돌아가고 싶었으나 천교와 보살의 만류를 기룡이 거드는 바람에 백택 정전의 객실에서 비단 이불 여러 채를 덮고 잤다. 다음날 주자서는 더워서 잠에서 깼다. 밤새 객실에서 화로를 지켰는지 곡우(穀雨)가 화로 앞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주자서는 얼른 일어나 옷을 입고 곡우를 안아 침상 위에 눕혔다. 곡우는 금방 이불을 끌어안고 잠이 들었다. 아침을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온객행과 문귀가 구름 마차를 타고 태평호에 왔다.


백택 마당에서 탄을 만들고 있던 천교와 보살은 옷매무새를 어쩌지도 못하고 손님을 맞이해야 했다. 주자서는 온객행이 왔다는 소리에 서둘러 정전에서 나와 덥석 온객행에게 안겼다. 문귀는 기룡에게 인사하고 구름 마차에 싣고 온 선물을 두고 다시 주극성으로 돌아갔다. 입하와 입추가 선물을 정리하고 보살은 탄을 만드는 일을 계속했다. 천교는 얼른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온객행을 기룡에게 안내했다. 백택의 정전은 그 전과 달리 병풍과 벽 이곳저곳에 그림이 걸려있었다. 대부분 태평호의 풍경으로 우사첩과 계낭이 그려진 그림이 있었다. 온객행은 기룡에게 인사하고 그림을 조금 구경하다가 주자서를 데리고 부유각으로 향했다. 천교는 음식을 준비하느라 그들이 부유각에 간 줄도 모르고 정전에서 그들을 찾았다.

서둘러서 부유각으로 향한 천교는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얼굴을 감싸고 있는 주자서와 그런 주자서를 웃으며 달래고 있는 온객행을 발견했다. 천교가 놀라서 주자서에게 다가가 팔을 잡고 일으키며 말했다.
“유서? 무슨 일이야?”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아무 일도 아니오. 유서가 부끄러워서 그렇소.”
주자서가 손을 내리고 울상을 하고 말했다.
“수선. 정말 죄송합니다.”
천교는 영문을 몰라 새빨개진 주자서의 얼굴에 손등을 대고 말했다.
“유서. 어제 뱀으로 변해서 그래?”
온객행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주자서는 당황하여 천교의 소매를 잡았지만 천교는 아랑곳하지 않고 소매를 들어 공수하여 인사하고 말했다.
“유서가 동면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머리를 만지며 말했다.
“그래서 관을 안 했구나.”
천교가 소매를 내리고 말했다.
“부유각에 덧문을 달고 화로를 들이려고 하는데 어떡할까요?”
온객행이 천교를 보고 물었다.
“부유각에서? 그래서 기룡께서 내실로 들어온 것이군요?”
천교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동짓달부터는 날이 추워서 거처를 옮기고 싶었는데 유서가 싫어해서….”
주자서는 다시 얼굴이 빨개져서 말했다.
“그러니까 그건….”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기룡께서 그려주신 그림으로 내가 부유각에 올 수 있게 되어서 그렇소.”
천교는 속으로 날짜를 세어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 주자서를 보았다.
“수선때문에 거처를 안 옮긴 거군.”

천교가 얼굴이 새빨개진 주자서를 보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주극성으로 돌아가실 때는 날아가십니까?”
온객행이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이제 한 시진 밖에 걸리지 않으니 괜찮아요.”
천교가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그대도 태평호가 낫지요? 삼하궁은 어땠습니까?”
천교가 웃으며 말했다.
“저는 어디든 보살만 있으면 괜찮습니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빤히 보고 말했다.
“저도 어떤 느낌인지 좀 알 것 같아요.”
천교가 소매로 입을 가리고 ‘호호호’ 웃으며 말했다.
“덧문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계낭에게 가져오라고 할까요? 내실에 들어가 본지 너무 오래되어 어떤 이불을 덮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덧문은 선창에 가져다 놓으시오. 내가 달아 놓겠소. 이불은 걱정 마시오. 내가 비단 금침으로 바꾸어 두었으니. 화로도 하나는 내놓았는데 탄이 없소.”
천교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오늘 마침 탄을 만들고 있었는데 어찌 기별도 없이 오셨습니까.”
온객행이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내가 온다고 유서에게 말했는데….”
주자서는 다시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부유각 쪽으로 이끌며 말했다.
“나는 내일까지 머무를 예정입니다. 덧문과 탄을 부탁합니다.”
천교가 온객행을 보고 입을 달싹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 백택으로 향했다.

주자서는 온객행에게 추태를 부린 것이 떠올라 온객행을 마주 볼 수가 없었다. 온객행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주극성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떠들어댔다. 부유각에 도착하여 탁상에 있는 자리에 주자서를 앉히고 차를 내렸다. 온객행은 소매에서 벽봉을 꺼내 우리며 말했다.
“아상은 삼하궁에서 고생 중이오. 그래도 주요가 있으니 정말 다행입니다.”
고상의 이야기에 주자서는 조금 정신이 돌아와 온객행에게 말했다.
“아상께서는 잘 지내십니까?”
온객행인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잘 지낸다고 해야 할지 아니라고 해야 할지….”
주자서가 웃으며 말했다.
“주인께서 함께 계시니 별일 없을 것입니다.”
온객행이 찻잔에 차를 따르며 말했다.
“삼하궁의 주인은 고상이 아니라 주요 같소.”
주자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손에 따뜻한 찻잔을 쥐여주고 물었다.
“뱀으로 변하셨다구요?”
주자서가 다시 귀 끝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고개를 숙였다.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저도 파사일 때는 겨울잠을 잤습니다.”

주자서가 고개를 들어 온객행을 보고 물었다.
“얼마나 주무셨습니까?”
온객행이 주자서의 손을 잡고 말했다.
“몸을 따뜻하게 해주면 잠들지 않아요.”
그리고는 소매에서 커다란 상자를 꺼냈다. 주자서가 온객행이 탁상 위에 올려 놓은 상자를 보고 말했다.
“객행. 선물은….”
온객행이 상자의 뚜껑을 열어 안에 들어 있는 검은색 초피(貂皮; 담비 가죽) 피풍의를 꺼내 들었다. 주자서는 고관대작이나 장군이 입는 초피를 보고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온객행도 자리에서 일어나 주자서가 입고 있는 하얀 피풍의를 벗기고 가져온 초피 피풍의를 둘러주었다. 주자서는 얼떨떨하여 피풍의를 여미는 온객행의 손을 잡고 말했다.
“객행. 이렇게 귀한 것은 받을 수 없어요. 객행이 사용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온객행이 눈썹을 늘어뜨리고 울상으로 말했다.
“유서. 유서 주려고 일부러 가져온 것인데….”
주자서가 둘렀던 피풍의를 벗어 온객행에게 둘러주며 말했다.
“객행. 주극성은 춥지 않습니까? 객행께서 입으세요.”
온객행은 주자서의 걱정이 기꺼워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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