攻戰 | 계책을 모의하여 견주다.
온객행이 돌아가고 며칠 동안 주자서는 괜찮은 듯하더니 다시 몸이 축축 늘어지기 시작했다. 섣달에 들어서자 더는 부유각에 있을 수 없어서 입하와 입추를 시켜서 주자서의 거처를 백택으로 옮겼다. 태호에 갔던 기룡은 무지기를 하나 데려왔는데 그는 그 무지기를 데리고 삼하궁으로 갔다. 기룡은 삼하궁으로 향할 때 화구함을 들고 가지 않았기 때문에 천교와 보살은 그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자서의 거처는 백택 정전의 서쪽에 있는 손님용 객실이었다. 주요가 태평호의 주인일 때는 여인들이 머무를 수 있도록 규방같이 꾸며진 곳이라 대부분의 방이 크지 않았다.
주자서는 소지품이라고 할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그가 머물기는 불편한 것이 없었다. 불편한 것이라면 주자서가 백택으로 처소를 옮긴 날 밤, 온객행이 백택을 휘저어 놓은 일 정도이다. 주자서의 상태를 보고 온객행도 납득할 수밖에 없었지만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주극성은 겨울에 일어나는 일을 관장하는 곳이기 때문에 겨울에 바빴지만, 현무가 해야 하는 일을 적송자와 온객행이 나누어서 했기 때문에 하원을 준비할 때처럼 바쁘지는 않았다. 천교와 보살은 온객행이 기룡의 그림을 통해 태평호에 올 수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거의 매일 찾아오는 줄은 몰랐다.
부유각에 있을 때는 자기도 모르게 정신을 놓고 있느라 끼니를 놓치는 일이 많았던 주자서는 백택으로 거처를 옮기고 난 이후에 잘 먹어서 갑자기 쓰러지거나 뱀으로 변하는 일은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은 주자서에게 참기 힘든 일이었지만 자꾸만 깜빡이는 의식을 어쩌지 못하니 마음이 답답했다. 모래 상자를 가져다 놓고 계낭에게 글자를 가르치다가 깜빡 정신을 놓고 있으면 입하나 입추가 와서 피풍의를 걸쳐주거나 화로를 근처에 가져다 놓았다. 의식이 점멸해도 춥다는 것을 느낄 수가 없어서 주자서는 언제 꺼질지 모르는 정신을 붙잡느라 온종일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입하는 주자서가 걱정되어 낮잠을 자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지만 기온이 올라가서 잠시나마 밖에 나갈 수 있는 시간을 잠으로 보내는 것이 아까워 그렇게 하지도 못했다. 혹시 몸을 많이 움직여서 체온을 올리면 좀 덜할까 싶어서 체술을 수련한 날은 밤에 반동으로 체온이 더 많이 떨어져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기도 했다. 천교와 보살에게도 사람에서 요괴가 된 주자서는 낯선 것이라 모두가 허둥대는 사이 해의 마지막 섣달이 되었다.
삼하궁으로 갔던 기룡은 무지기를 삼하궁에 두고 다시 돌아왔다. 기룡은 주자서를 제자로 받은 이후로 그에게 뭔가를 가르친 적이 없었는데 섣달이 다가와 날씨가 더 추워지자 정신을 못 차리는 주자서에게 운기 조식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운기 조식하는 동안은 어쩔 수 없이 영력을 사용하지만 그래도 운기조식을 하고 나면 몸에 영력이 강하게 깃들기 때문에 정신을 놓는 일이 덜할 것이다. 기룡이 주자서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너무 서두르지 마라. 너는 사람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아마 짐승으로 태어난 아이들 보다는 빨리 깨우칠 거야.”
주자서가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더운 것은 알겠는데 추운 것은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기룡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럴 수 있다. 감각이 조금 이상할 거야. 뱀과 사람은 많이 다르니까.”
기룡은 유사혈에 들러 주자서가 객실에서 지내면서 심심하지 않게 신선과 영력에 관련된 내용의 서책을 잔뜩 빌려왔다. 천교와 보살이 기룡에게 물었다.
“대체 뭘 주고 이렇게 많이 얻어 오셨습니까?”
기룡이 ‘허허허’ 웃으며 말했다.
“정전에 걸어 놓은 그림 중 하나를 표구해서 가져다줬더니 좋아하더구나.”
보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너무 많이 주지 마세요. 사자형제는 욕심이 많으니까요.”
천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요즘 현리께서 계시는 장강 쪽에 가 있는 줄 알았는데….”
기룡이 웃으며 말했다.
“현리 아들이 파(巴)에서 장사를 크게 한다더군. 사람들의 세상에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라 어수선해.”
보살이 기룡이 가져온 서책을 들고 주자서가 머무는 객실로 향했다. 천교가 기룡을 외실로 모시며 말했다.
“어르신. 오시는 길에 사람을 보셨습니까?”
기룡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날이 추워서 그런 것인지는 아니면 산세가 험해서 그런 것인지 구강까지 나가지 않으면 사람이 많지 않네.”
천교가 물었다.
“이곳까지 닿지 않겠지요?”
기룡이 ‘허허허’ 웃으며 말했다.
“너무 걱정 말게. 내가 있지 않은가?”
정전 내실에 있던 계낭이 다가와 기룡의 소매를 잡았다. 기룡이 곡우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얘는 그림에 재능이 있는 것 같은데 내가 가르쳐봐도 되겠는가?”
천교가 곡우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곡우가 하겠다고 하면 그렇게 하십시오.”
기룡이 천교를 보고 물었다.
“그러고 보니… 자네는 등선하지 않는가?”
천교는 웃으며 답하지 않았다.
뚱뚱한 솜옷을 입은 계낭 둘이 백택으로 들어가는 송문을 지키고 있었다. 온객행이 나타나자 계낭은 다소곳이 인사하고 문을 열었다. 온객행은 천천히 걸어 작은 연못의 다리를 지나 재실에 닿았다. 주방이 있는 재실에는 불이 밝혀져 있었는데 안쪽에서 계낭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온객행이 정전 남문에 닿자 입하와 입추가 정전에서 나오는 길이었다. 계낭이 온객행에게 인사했다.
“수선.”
온객행은 고개를 끄덕여 그들의 인사를 받고 정전 안으로 향했다. 입추가 온객행을 힐끔 보고 다시 입하를 보고 말했다.
“요즘 매일 오시네….”
입하가 재실로 향하며 말했다.
“수선께서 오시면 주인님이 좋아하시니까.”
입추가 입하를 따르며 말했다.
“사람이 요괴가 되는 일은 정말 큰 일인가 보오.”
입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게. 겨울을 잘 버티셔야 할 텐데.”
입추가 재실의 장지문을 열고 말했다.
“나는 오늘 인시에 번을 서야 해. 먼저 가서 쉬게.”
입하가 고개를 끄덕이고 재실 안쪽으로 향했다.
“그래. 나는 좀 자려고.”
안에 있던 계낭이 입하와 입추에게 차를 권했다. 입추는 자리에 앉아 차를 마셨고 입하는 차를 거절하고 계낭의 거처인 재실 객실로 향했다.
온객행은 정전의 신당 안으로 들어갔다. 신당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저번에 왔을 때보다 조금 더 어수선하게 여기저기 그림이 걸려 있었다. 기룡은 치우의 최후 이후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동안 그는 그림을 그리지 않은 것 같았다. 적송자의 천거로 주극성에 있을 때도 삼하궁으로 간 이후에도 그림을 그렸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그런 기룡이 태평호에 온 이후로 열 점 이상 그렸다. 인물은 그리지 않는 것으로 알았는데 우사첩과 계낭의 모습이 담긴 그림은 그들이 요괴라는 것을 모르고 본다면 평범하게 사람이 사는 모습 같았다. 온객행은 그림을 조금 구경하다가 주자서가 머무는 객실로 향했다. 주자서는 온객행을 기다리려고 했는지 평상에 기대어 온객행이 선물한 피풍의를 두르고 화로 앞에 쪼그리고 앉아 졸고 있었다. 짙은 색 피풍의에 쌓여 있는 주자서는 조금 자극적이라 온객행은 뺨이 달아올랐다. 주자서를 보살피는 계낭은 어디에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아마 늦었으니 어서 가서 쉬라고 주자서가 보냈을 것이다. 온객행이 다가가 주자서 옆에 쪼그리고 앉아 화로를 뒤적이며 말했다.
“유서. 왜 여기에 이러고 있어.”
온객행의 목소리에 흠칫 놀라서 깬 주자서가 온객행을 보고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객행. 기다렸어.”
온객행이 주자서의 뺨이며 목덜미를 만지고 말했다.
“오늘은 많이 차갑지 않네.”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온객행의 손을 잡아 그를 일으키고 침상으로 향하며 말했다.
“너무 졸리다. 객행은 피곤하지 않습니까?”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먼저 자도 괜찮은데….”
주자서가 온객행의 시중을 들며 말했다.
“매일 자는 모습만 보고 가시잖아요.”
온객행은 장포를 벗고 내의만 입고 침상에 앉았다. 주자서가 온객행의 옷을 옷걸이에 걸어 놓는 것을 보고 있다가 다가가서 도와주었다. 좀처럼 손에 익지 않는 모양이다. 그런 서툰 모습도 온객행은 너무 좋았다.
“유서. 도와줄게요.”
주자서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피풍의도 덮고 자겠습니다.”
살짝 들린 피풍의 안에 주자서는 내의만 입고 있어서 온객행은 깜짝 놀라 피풍의를 여몄다. 온객행이 허둥대며 주자서를 침상 위에 올려놓고 휘장을 내리며 말했다.
“화로를 가까이 가져와야 하겠어요.”
주자서는 피풍의를 벗어서 이불 위에 덮어놓고 말했다.
“초피는 정말 따뜻합니다.”
온객행은 평상 앞에 있는 화로를 침상 근처로 가져왔다. 계낭이 나가기 전에 새로 채워 놓았는지 이제 막 타기 시작한 탄이 보였다. 휘장을 들어 침상 위로 올라가 비단 이불을 덮고 이미 잠이 든 주자서를 보았다. 온객행은 이불 안으로 들어가 주자서를 꼭 끌어안았다. 주자서는 뭔가 말하려는 듯 입을 달싹였지만 금방 고른 숨을 내쉬며 잠이 들어버렸다. 온객행은 그런 주자서의 뺨이며 목덜미에 입을 맞추고 주자서를 보았다. 온객행은 보통 밤새 주자서를 보다가 다시 주극성으로 향했다. 주자서의 얼굴을 보면 돌아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수백 수천번씩 고개를 들어 온객행을 괴롭혔지만 결국에는 다시 주극성으로 돌아갔다. 온객행은 죄를 짓는 것이 무서워졌다. 천존께서는 원군께서는 온객행이 옥산에서 주서를 위해 말썽을 부렸을 때 왜 벌하지 않으셨을까? 온객행은 오랜만에 주서가 떠올랐다. 얼굴도 목소리도 떠오르지 않는 그가 이제 예전처럼 그렇게 밉지만은 않았다.
동정호의 파사로 태어난다고 해서 모두가 요괴가 되고 신선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만자는 매년 많은 자식을 낳았지만 모두 살아 남는 것은 아니었다. 온객행은 막 영력을 쌓기 시작했고, 막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사람의 모습도 다른 사람을 흉내 내는 것만 가능했다. 처음에는 서호에서 물고기를 잡는 어부의 모습이었다. 그다음에는 물가에서 빨래를 하는 아낙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아낙이 데려온 어린아이가 되기도 했다. 만자는 사람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온객행은 뱀의 모습으로 사람의 모습으로 여러 가지 모습으로 여기저기를 떠돌았다. 그러다 검영을 만나 촉룡의 제자가 되었다.
온객행이 동정호로 다시 돌아온 것은 만자의 명령 때문이었다. 서호의 교룡이 갑작스럽게 죽는 바람에 서호의 주인이 없으니 온객행이 그 자리를 떠안게 된 것이다. 아직 보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던 온객행은 불만이었지만 만자의 명령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주서를 만난 뒤에 온객행은 물가에 배를 띄워 놓고 시를 읊던 유생의 모습으로 주서를 만났다. 주서는 어쩌면 온객행이 사람이 아닌 것을 처음부터 알았을지도 모르겠다. 점점 자신을 닮아가는 온객행에게 주서는 항상 웃어주었다. 온객행이 주서에게 느낀 그 감정은 어쩌면 온객행이 바라는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주서가 죽고 난 뒤로 온객행은 매일 울었다. 그의 눈물은 비가 되어 중추(仲秋; 8월)에 시작된 비가 섣달까지 멈추지 않았다. 장강에, 구강에 홍수가 일어 많은 사람이 죽었다. 하늘에서도 그 비의 원인을 찾지 못했다. 온객행은 주서의 시체를 안고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영초를 찾으러 다녔다. 온객행이 영지초를 위해 곤륜산에 태금을 찾아갔을 때 공공이 그 비의 원인을 알게 되었다. 공공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온객행과 주서의 시체를 보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온객행은 이미 벌을 받고 있는 것 같았다.
일개 파사가 그렇게 오랫동안 하늘에서 비를 내리게 할 수는 없다. 공공은 온객행이 신선이 될 운명이라는 것을 알았다. 공공은 주서의 시신을 수습하여 서호 근처에 있는 양지바른 곳에 잘 묻어주었다. 온객행이 다시 서호로 돌아온다면 알아볼 수 있도록 사당도 세워 놓았다. 사람들에게 그곳은 백련당(白蓮堂)이라고 불렸다. 신위가 있어야 할 곳에는 그 어떤 위패나 신주가 없었는데 대신 하얀 연꽃의 봉우리가 놓여 있었다. 사람이 만질 수 없는 하얀 연꽃은 아주 오랫동안 피지 않다가 십 수년 전에 활짝 피었다. 그렇게 피어있던 하얀 연꽃은 현악에서 용이 승천한 이후로 사라졌다.
신선들에게 가장 큰 일인 상원(上元)은 하늘에서 천관이 내려와 세상에 복을 베푸는 날이다. 상원의 제사는 금모원군이 있는 태연의 요대에서 성대하게 치러지는데 그 준비를 위해 하원(下元)이 지나면 사령은 모두 요대로 돌아가서 그곳에서 지낸다. 그래서 갑작스러운 응룡의 방문은 온객행에게 조금 의외였다. 의풍전에서 상원의 제사에 관련된 내용을 읽고 있던 온객행은 문귀에게 이끌려 응룡을 맞이했다. 온객행은 응룡을 보고 소매를 들어 인사했다.
“경진선.”
응룡이 인사도 없이 손을 휘젓고 말했다.
“적송자께서는 어디 계시는가?”
온객행이 고개를 들어 문귀를 보자 문귀가 소매를 들어 조아리고 말했다.
“적송자께서는 뇌공께 가셨습니다. 겨울이 거의 끝나서 주극성은 좀 한가하니까요.”
온객행은 문귀를 보고 입을 삐죽였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전으로 안내하는 문귀의 소매를 잡고 응룡이 말했다.
“지금 매우 급하네. 주극성에서 당장 일을 도울 수 있는 가신을 보내주겠나?”
온객행이 응룡을 보고 물었다.
“경진선. 대체 무슨 일입니까?”
응룡이 입을 달싹이다가 말했다.
“원군께서 산천대제와 함께 천궁에 가셨는데 아무래도 상원까지 돌아오시지 못하는 모양이네.”
온객행이 눈썹을 찌푸리자 응룡이 말했다.
“나도 왜 그런지는 모르네. 벌을 받으시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일인지… 나도 사흘 전에 대려께서 말해줘서 알았네.”
문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마 산천대제께 내리는 벌을 같이 받고 계신 것이겠지요. 일단은 원군의 부군이시니….”
응룡이 혀를 차고 말했다.
“구망대선께서 지금 혼자 동쪽에 계시니 감히 부탁을 못 드리겠고 삼하궁은….”
문귀가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상원까지는 보름 넘게 남았는데… 이렇게 급하게 말입니까?”
응룡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원군께서 결정하셔야 할 일은 대려께서 천궁을 오가며 전하고 계시는데 대다수는 기린께서 맡아서 하고 계세요. 자잘하게 문서를 분류하거나 확인하는 일을 할 사람이 부족합니다.”
문귀가 온객행을 힐끔 보고 말했다.
“그런 일이라면 천룡을 보내드리지요. 천룡은 문안이 아주 빠릅니다.”
온객행이 문귀의 눈치를 보다가 말했다.
“경진선. 제가 가면 안됩니까?”
문귀가 표정을 구기고 온객행을 보았다. 응룡이 온객행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좋지. 그럼 주극성의 일은 누가 하나?”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주극성에는 훌륭한 가신이 많으니 별일 없을 겁니다. 대신 부탁을 하나만 들어주세요.”
문귀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흔들었다.
벌건 대낮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온객행이 주자서를 찾아 백택으로 들어왔다. 정전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쪼르륵 앉아 햇볕을 쬐고 있던 주자서와 계낭은 온객행이 백택의 남문을 넘어서야 온객행이 온 줄 알았다. 주자서가 활짝 웃으며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객행!”
온객행이 주자서의 팔을 잡고 계낭에게 물었다.
“천교와 보살은 어디 있는가?”
입춘이 온객행의 말에 재실을 향해 달려갔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유서. 정월까지 요대에 가서 지내자.”
주자서가 눈썹을 찌푸리며 온객행을 보았다.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상원까지 요대에 가서 일을 돕게 됐어요. 태연은 사시 따뜻하니 한결 지내기 편할 겁니다. 게다가 다른 화사도 함께 있으니 궁금한 것이 있으면 옥산으로 가서 물어보세요.”
주자서가 정전을 보고 말했다.
“스승님께 허락을….”
천교가 남문을 넘어 정전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기룡께서는 뇌공을 뵈러 가셨으니 한동안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
온객행이 고개를 갸웃하고 말했다.
“적송자께서도 뇌공을 뵈러 가셨는데….”
보살이 ‘흠’하고 말했다.
“치우께서 승하하신 것이 섣달이었으니까요.”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교가 주자서의 피풍의를 다시 여미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갑작스럽게.”
온객행이 말했다.
“필요한 것은 나중에 부탁드리겠습니다. 제가 주극성에 구름 마차를 빌려 놓았으니 지금 가겠습니다.”
주자서가 놀라서 말했다.
“지금?”
천교가 온객행을 잡고 말했다.
“날아가면 추워서 안 돼요.”
온객행이 주자서의 허리를 안고 말했다.
“제가 구름을 만들겠습니다.”
온객행이 소매를 몇 번 휘젓자 안개가 생기더니 곧 구름이 만들어졌다. 보살이 온객행의 구름을 보고 말했다.
“재주가 좋습니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구름 위에 태우고 말했다.
“유서 어때?”
주자서는 전과 달리 밟히는 구름이 낯설어서 어색했다. 보살이 주자서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그래도 이건 아니지. 너무 갑작스럽지 않습니까?”
온객행이 보살의 손을 치우고 말했다.
“제가 잘 보살피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천교가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유서. 괜찮겠어? 싫으면 말해.”
주자서는 온객행을 힐끔 보고 고개를 젓고 말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걱정 마세요.”
보살이 온객행을 쏘아보며 말했다.
“싫으면 싫다고 말해! 억지도 정도가 있지. 이렇게 갑자기.”
주자서가 고개를 흔들며 보살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아니요. 아닙니다. 좋아요. 같이 갈게요. 제가 없는 동안 태평호를 부탁드립니다.”
천교가 주자서의 뺨을 쓸고 말했다.
“우리 착한 유서. 걱정 마라. 춘절(春節; 음력 1월 1일)에 삼하궁에 다 같이 다녀오려고 했는데 유서는 상원 지나고 나서 가야겠다.”
보살이 입하와 입추를 불러 간단히 주자서의 짐을 챙기게 했다. 온객행은 주자서에게 다정하게 구는 천교와 보살에게 조금 질투가 나서 말했다.
“해가 지기 전에 가겠습니다.”
천교가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유서는 아직 완전히 화사가 된 것이 아니니 잘 먹여주세요.”
보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정 힘들면 부유각에 끼니를 챙겨 둘 테니 챙겨 먹이시오.”
온객행은 보살을 흘겨보더니 말했다.
“어째 점점 말이 짧습니다.”
보살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말했다.
“어디 마음이 불안해서 보낼 수가 있어야지.”
온객행이 보살을 보고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이오!”
보살이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내가 삼하궁에서 들은 것이 있어서 그러하오. 저번에 유서가 그대와 갔다가 죽을 뻔하고 화사가 되었는데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 생길 줄 안다는 말이오!”
온객행은 입을 달싹였지만 할 말이 없었다. 천교가 보살의 어깨를 살살 쓰다듬으며 말했다.
“보보. 걱정하지 마.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
주자서가 눈썹을 찌푸리고 천교와 보살을 보았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손을 잡고 말했다.
“그럴 일 없네. 내가 지켜주겠네.”
보살이 코웃음 치고 말했다.
“그래 어디 한번 잘 지켜보시오. 내가 지켜보겠소.”
온객행은 보살을 힐끔 쏘아보고 구름 위로 올라갔다. 정전에서 다급하게 입하가 작은 봇짐을 가지고 왔다.
“주인! 주인… 급하게… 급하게 챙긴 것이라 부족할 수 있으니 나무함에 필요한 것을 적어 서신을 남겨주세요.”
보살이 봇짐을 받아 주자서에게 안겨주고 말했다.
“다시 돌아오고 싶거든 옥산으로 가 있거라. 내가 희상랑에게 부탁해 놓으마.”
주자서가 어색하게 웃으며 소매를 들어 인사했다. 온객행은 입고 있던 장포도 벗어 주자서에게 둘러주고 서둘러 주극성으로 향했다.
주극성에 도착하자 구름 마차에 짐을 싣고 있는 문귀와 택귀가 보였다. 온객행은 주자서를 구름 마차에서 내려주고 급하게 사라각에 있는 태평호 그림을 가지러 갔다. 주자서는 봇짐을 안고 주극성의 하인들이 일을 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 문귀가 다가와 말했다.
“오랜만입니다. 태평공.”
주자서가 얼른 소매를 들어 고개를 조아리고 인사했다.
“문귀 어르신.”
택귀가 다가가 말했다.
“저희는 초면이지요?”
주자서가 택귀를 향해 고개를 조아렸다.
“저는 택귀 주휴(蟕蠵)라고 합니다.”
주자서가 말했다.
“택귀 어르신. 저는 태평호의 유서라 합니다.”
택귀가 코웃음 치며 말했다.
“수선의 내자라고 안 하십니까?”
주자서는 얼굴이 빨개져서 고개를 숙였다. 문귀가 택귀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택귀. 무례하게 무슨 짓인가?”
주자서가 소매를 들고 말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말씀 편히 하소서.”
택귀가 주자서를 빤히 보고 말했다.
“사람인지 화사인지 참으로 복잡합니다. 내 평생 처음 봤어요.”
문귀가 주자서에게 소매를 들고 말했다.
“태평공 이해하게. 택귀는 체면치레 하는 것을 안 좋아하거든.”
온객행이 나무함에 그림을 담아서 가지고 왔다.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다가가 말했다.
“택귀께서는 왜 여기 계십니까?”
택귀가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유서를 구경하러 왔지.”
온객행이 주자서를 몸으로 가리며 말했다.
“유서라 부르지 마시오! 어디 감히! 남의 집 내자의 이름을 함부로 부른다는 말이오?”
택귀가 웃으며 말했다.
“유서가 자신을 유서라 소개했으니 그렇게 부르는 것인데 왜 안된다는 말이오?”
문귀가 혀를 차고 말했다.
“그만 좀 하시오! 유서가 견연을 많이 안아 주시게.”
그리고 택귀의 소매를 잡고 정전으로 향했다. 온객행이 그들의 뒷모습에 대고 소리쳤다.
“배웅은 필요 없으니 먼저 가보시오!”
택귀는 뒤를 돌아보고 ‘하하하’ 하고 크게 웃었다.
주자서가 온객행의 팔을 붙잡고 말했다.
“많이 안아 주라니 무슨 뜻입니까?”
온객행이 주자서를 구름 마차로 데려가며 말했다.
“유서가 보고 싶을 때마다 울었더니 문귀께서 안아주겠다고 하셨거든요.”
주자서가 눈썹을 찌푸리자 온객행이 주자서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말했다.
“근데 직접 안아주는 것이 아니라 용슬이나 대전을 지키는 시위에게 권력을 남용하여 나를 안아주라고 시킵니다.”
주자서가 고개를 돌려 온객행을 보고 물었다.
“그래서… 안아줬습니까?”
온객행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니요. 남이 시켜서 안는 것은 좀….”
주자서가 온객행의 손을 꽉 잡고 말했다.
“싫어요.”
온객행이 당황해서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네? 싫어요?”
주자서가 고개를 숙이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이에게 안아달라고 하지 마세요.”
그렇게 말하는 주자서의 귀 끝이 빨갛다. 온객행은 질투를 하는 주자서가 귀여워서 빨갛게 익은 주자서의 귓가에 입을 맞추고 말했다.
“나는 유서가 안아주는 것이 제일 좋아요.”
주자서는 빨갛게 상기된 얼굴을 들어 주변을 보았다. 다행히 일이 바빠 그들에게 신경을 쓰는 하인은 얼마 없었다. 짐을 다 실은 구름 마차는 온객행이 몰아 요대로 향했다.
주자서는 구름 마차를 끌고 달리는 천마를 한참 구경하다가 바람을 많이 맞아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온객행은 요대에 도착해서야 주자서가 잠든 것을 알고 한참 법석을 떨었다. 영귀의 인사도 받지 않고 허둥대는 온객행을 보고 영귀가 말했다.
“유난이네. 유난이야.”
온객행은 주자서를 안고 남궁 동쪽에 있는 별궁으로 안내를 받았다. 이번에 그들이 머무는 곳은 제일 처음 요대에 왔을 때와는 다른 곳이었다. 별궁에는 온객행 이외의 손님도 많았는지 별원에 나와 있는 신선들이 많았다. 온객행은 주자서를 침상 위에 올려놓고 함께 온 청구에게 부탁했다.
“화로를 부탁해도 될까요?”
청구가 포권하고 말했다.
“차를 올리라고 할까요?”
온객행이 고개를 흔들고 당황하여 말했다.
“아니요. 유서는 추위를 많이 타서… 화로가 필요합니다.”
청구가 온객행을 보고 고개를 갸웃하더니 별 말없이 장지문을 닫고 객실을 나갔다. 온객행은 자기가 입고 있던 피풍의도 벗어서 주자서에게 덮어주었다. 온객행 방안을 둘러보고 평상 뒤에 있는 병풍을 가져다 침상 앞에 놓았다.
온객행이 병풍을 마음에 드는 위치에 놓았을 때 나흘마가 화로를 가지고 들어왔다.
“수선. 어떤 차로 하시겠습니까?”
온객행이 나흘마가 들고 들어온 화로를 침상 쪽으로 가져가며 말했다.
“화로를 하나 더 부탁해도 될까요?”
나흘마가 병풍 뒤로 사라진 온객행을 찾다가 가져온 다구를 탁상 위에 놓고 조용히 객실을 나갔다. 나흘마가 두 번째 화로를 들고 방문했을 때 주자서가 눈을 떴다. 온객행은 자리에서 일어나는 주자서를 끌어안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유서. 정말 미안해. 유서가 너무 신나 보여서 나도 신이 났었나 봐.”
주자서는 온객행의 등을 쓸고 말했다.
“아… 아닙니다. 제 불찰입니다. 저는 괜찮으니….”
온객행이 눈썹을 축 늘어뜨리고 주자서를 보았다. 주자서가 웃으며 말했다.
“천마(天馬)는 처음 봤습니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보고 물었다.
“갖고 싶어? 천마?”
주자서가 온객행을 보고 물었다.
“천마는 가질 수 있는 것입니까?”
온객행이 골똘히 생각하더니 말했다.
“기린께 부탁드려보겠습니다.”
주자서가 고개를 젓고 말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나흘마는 장지문 앞에서 서서 일각(一刻; 15분) 동안 헛기침을 했다. 온객행이 장지문을 열고 나와서 화로를 들고 침상으로 갔다. 나흘마는 병풍이 있는 쪽을 힐끔 보고 탁상 위에 동정 벽라춘을 올려놓고 병풍을 향해 인사하고 객실에서 나왔다. 주극성에 있는 나흘마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수선이 된 흑망의 내자. 달포 동안 주극성 사라각에서 지냈는데 몇 번 보지 못했다고 했다. 죄를 짓지 않고 사람에서 요괴가 된 자는 극히 드물었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일생을 살아온 나흘마는 태연에서 태어나 사람 한번 구경해보지 못했다. 요대에서 일하는 대다수의 요괴가 그랬다. 그들에게 사람이란 영력을 채우는 도구 혹은 신선을 미치게 하는 마약 같은 것이다. 그런 사람을 내자로 들여서 요괴로 만들다니 과연 촉룡의 제자는 비범하기 그지없다.
첫날의 야단법석이 무색하게 수선은 남궁의 동쪽 외실에서 가신 하나를 대동하고 요대의 일을 했다. 제향품과 재고 목록 정리인데 보통 기린께서 하시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수선과 가신의 거리감은 조금 이상했는데 황룡과 수원대선께서도 매우 친밀했기 때문에 ‘저들도 그렇구나’ 하고 넘겼다. 보통 수선 쪽에서 일을 별로 하고 싶어 하지 않았고 가신이 달래서 수선에게 일을 시켰다. 가신은 문서를 정리하고 보고하는 것이 익숙한 것 같았다. 희발께서는 수선이 올린 보고서를 읽으시고 칭찬하시며 수선께 천도를 하사하셨다. 나흘마는 수선과 가신이 천도를 나눠 먹는 것을 보고 외실에서 나왔다. 천도는 얻기 힘든 것이기 때문에 보통 나눠 먹지 않는다. 태평호에서는 종종 음식을 먹었다고 하니 ‘저들도 그렇구나’ 하고 넘겼다.
나흘마는 수선이 아침에 일찍 나와 우물가에서 설거지를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다가가 말했다.
“수선! 수선께서 어찌?”
수선이 웃으며 말했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침 식사를 정리하고 있었어요.”
나흘마가 아연하여 물었다.
“아침 식사요? 식사는 준비한 적 없는데요?”
수선이 찬합에 그릇을 정리하며 말했다.
“괘념치 마세요. 간단히 요기한 것입니다.”
나흘마가 조아리고 물었다.
“식사를 준비할까요?”
온객행이 손사래 치고 말했다.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입니다.”
나흘마는 직접 식사를 준비하는 수선은 살면서 처음 보았다.
수선의 가신이 수선의 내자라는 사실을 나흘마는 정월 초하룻날이 되어서야 알았다. 수선의 거처를 청소하는 누괵(螻蟈)이 객실에 사람이 없다는 것을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나흘마는 여태 수선의 내자는 객실에 머무는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가신이 어디 머무른다는 소리를 듣지도 못했다. 나흘마는 처음으로 수선이 데리고 다니는 가신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사내치고 곱게 생긴 얼굴에 몸이 가늘었다. 밥을 먹어야 하는데 먹지 못해서 그런 것일까? 보통 수선께서는 밝은 색 옷을 입으셨고 가신은 어두운 색 옷을 입었는데 다시 보니 맞춘 듯 짝으로 이루어졌다. 아름답고 화려한 신선을 많이 보아온 나흘마 눈에 수선의 가신은 특출 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떨어지지도 않았다. 몸가짐이 단아하고 조심스러운 것이 정말 수선을 주인 모시듯 하기에 가신인 줄 알았던 것이다. 수선은 매달리기도 하고 치대기도 했다. 다시 생각해보니 확실히 정인의 거리감이다.
상원이 얼마 남지 않아 요대의 모든 하인과 신하들이 바쁜 시기에 나흘마는 북궁에서 제사음식을 준비하는 것을 돕다가 수선의 내자가 화사라는 사실을 알았다. 동궁에서 일하는 나흘마는 예전에 수선의 내자를 동궁에서 본적이 있다고 했다. 영혼이 타고 있어서 얼마 살지 못할 줄 알았다고 했다.
“황룡이 되신 화사께서 자기 아이라고 하셨으니 아마 화사일 것입니다.”
옆에서 쌀을 찧던 나흘마가 물었다.
“화사인데 사내라니… 불길한 것 아닙니까?”
그릇을 나르던 누괵이 말했다.
“기이하긴 합니다. 불길한 것인지는… 천존께서 허락하셨으니 여태 살아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나흘마가 말했다.
“영혼이 타고 있었다면 어떻게 살아남은 걸까요?”
누괵이 아궁이에 올려 놓은 실패한 떡을 먹으며 말했다.
“원군께서 살려주신 것이 아닐까요?”
쌀을 찧던 나흘마가 말했다.
“그래서 천궁에 가셔서 벌을 받으시는 걸까요?”
동궁에서 일하는 나흘마가 말했다.
“원군께서는 너무 자애하셔서 탈입니다.”
주방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하인들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흘마가 말했다.
“원군께서 살리신 아이라면 불길하지는 않겠네요.”
누괵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을 나가며 말했다.
“그런데 화사는 원래 옥산에서 태어나는 것 아닙니까?”
누괵의 말을 들은 나흘마는 하던 일을 멈추고 서로를 쳐다보다가 화사에 대해 아는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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