穿越 第9

無常鬼 | 무상귀

무구는 축 늘어진 필안의 몸을 뒤졌다. 무구와 필안은 형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귀곡에 들어와 이런 저런 일을 겪으며 서로를 의지했다. 따지면 필안은 무구의 은인이었다. 필안은 무구보다 머리가 좋았다. 사람을 부리는 것도 더 잘했다. 백무상과 흑무상의 이름을 얻었을 때도, 무구는 흑무상이 아니라 백무상이 되고 싶었다. 필안의 앞섶에서 전혼사갑이 나왔다. 곡주는 대체 어떤 변덕이 생겨서 이것을 찾아오라고 시킨 것일까? 아니면 귀곡에서 무슨 일을 벌이기 위해 자신들을 치운 것일 수도 있다. 백무상의 수하가 다가와 말했다.
“백명이 죽었습니다.”
무구가 고개를 들어 귀면을 쓴 잡귀를 보았다. 잡귀가 대답했다.
“양연입니다.”
무구는 전혼사갑을 품에 넣고 말했다.
“설비는 어디 있지?”
잡귀가 고개를 흔들었다. 무구는 자리에서 일어나 필안의 시체를 보았다. 이제 형제가 없으니 무상귀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설비와 새로운 개심귀 양연이 청성곡 입구에 닿자 잡귀 여럿이 나와 그들을 포위했다. 양연이 웃으며 말했다.
“히히히. 적사귀는 어디 있는가?”
잡귀 하나가 그들에게 다가와 말했다.
“곡주께서 찾으시오.”
설비가 혀를 차고 다시 물었다.
“적사귀도 오는가?”
잡귀가 고개를 흔들며 귀신들만 사용하는 샛길로 그들을 안내했다. 그들은 대전에 다 닿기도 전에 곡주와 만났다. 곡주 옆에는 적사귀와 식시귀가 서 있었고, 바닥에는 설비의 동생인 계가가 쓰러져 있었다. 설비가 다가가 계가를 끌어안았다.
“소가(小架)!”
곡주가 웃으며 말했다.
“아직 죽지 않았어요. 아주 끈질긴 자입니다.”
설비가 곡주를 노려보며 말했다.
“원하는 것이 뭐요!”
곡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를 아는 이는 내 마음에 근심이 있다하고, 나를 모르는 이는 무엇을 찾느냐 하네. 하늘이여, 이것은 대체 누구를 탓해야 한다는 말인가?”(6)
온객행의 말에 옆에 서 있던 식시귀가 피식 웃었다. 온객행이 보아를 보고 함께 웃었다. 적사귀가 바닥에 있는 설비에게 물었다.
“네가 백명을 죽였나?”
설비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그렇소!”
적사귀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 곡주에게 포권하고 자리를 떠났다.

온객행이 설비의 앞에 쪼그리고 앉아 말했다.
“무구가 돌아오면, 앞으로 그의 말을 잘 들으세요. 그와 함께 설단의 머리를 가져오는 겁니다. 그럼 제가 그대와 그대의 동생에게 악귀자리를 드리지요.”
설비가 식시귀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흑무상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온객행이 일어나며 말했다.
“앞으로는 설비가 아니라 계비겠군요.”
그리고 식시귀와 새로운 개심귀 양연과 함께 대전으로 향했다. 설비는 계가의 몸을 살펴보았다. 고문을 당한 것 같은데 죽을 만큼은 아니다. 백명 그 놈이 무슨 일을 꾸며 놓았던 것이다. 곡주는 그것을 어떻게 알고 계가를 찾아 냈을까? 새파랗게 어린 놈이 누구를 주물러서 어디서 그런 정보를 얻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온객행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어젯밤에 주자서가 처소로 돌아오지 않았다. 고상도, 유이도 목란도 그 누구도 돌아오지 않았다. 아침까지 잠을 한숨도 자지 못한 온객행의 기분은 최악이었다. 게다가 새벽 댓바람부터 설비가 돌아오는 바람에 박정부에 뭔가 물어볼 새도 없이 대전으로 왔다. 대전에 앉아 관자놀이를 누르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식시귀와 개심귀는 대전을 나갈 생각도 하지 않고 설단과 무구에 대해 떠들어댄다. 하인이 내온 차를 마시자 온객행이 평소에 좋아하지 않는 독이 들어 있다. 이 독은 치명적이지는 않지만 머리를 몽롱하게 했다. 온객행은 짜증이 나서 찻잔을 바닥에 내던지고 귀왕좌에서 일어났다. 한참 말을 하고 있던 개심귀와 식시귀가 무릎을 꿇었다. 온객행은 아무 말없이 다시 박정부로 향했다. 빨리 설단을 죽여 정리하고 주자서를 만나러 가고 싶었다.


주자서가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손목이 머리위에 묶여 축 늘어져 있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는지 손끝에 감각이 없었다. 몸에 힘을 주어 일어나자 좀 나아진 것 같다. 컴컴한 석실에 피워 둔 횃불로 공기가 매캐하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어딘가의 지하인 것 같다. 주자서는 무언가 말을 하려고 하다가 목이 깔끄러워 기침을 했다. 잘게 몇 번 기침을 했더니 점점 심해졌다. 그러더니 울컥 피가 솟구쳐올랐다. 바닥에 떨어지는 피를 보고 주자서의 다리가 풀썩 꺾이고 작게 신음을 뱉었다. 주자서가 막히는 목구멍을 열어 끙끙대는 소리를 내자 밖에서 잡귀 하나가 들어왔다. 주자서가 피를 토한 것을 보고 놀랐는지 금방 다시 밖으로 나갔다. 얼마 동안 조용하더니 밖에서 분주한 소리가 나고 희상귀와 목란 그리고 하인 몇 명이 들어왔다. 희상귀가 손짓하자 하인들이 주자서를 풀어주었다. 주자서는 자리에 풀썩 주저 앉았다. 다가가려는 목란을 희상귀가 막고, 어멈 한 명이 다가와 주자서의 맥을 짚었다. 어멈이 주자서의 얼굴과 눈을 살피고 다시 희상귀에게 다가가 무언가를 속삭였다. 희상귀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주자서의 팔을 풀었던 하인과 어멈이 다시 밖으로 나갔다.

희상귀가 말했다.
“귀하신 분을 이렇게 누추한 곳에…”
주자서가 희상귀를 보고 뭔가 말하려고 했다.
“주…주인…”
희상귀가 주자서에게 다가가 말했다.
“제가 어찌 주공자의 주인이 되겠습니까?”
그리고 주자서의 턱을 잡아 올렸다.
“내공도 없이 귀곡엔 어떻게 들어왔지?”
주자서가 작게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모…몰라요…”
희상귀가 주자서의 턱을 밀어 놓자. 주자서는 그 힘에 풀썩 바닥에 쓰러졌다. 희상귀가 인상을 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자는 정말 진왕의 시위인가? 그렇다면 어째서 반항조차 하지 않을까? 귀곡에서 뭔가를 알아내려고 했다면 분명히 누군가와 접촉했을 텐데, 망서는 박정부에 들어온 이후로 박정부의 인물 외에 그 누구도 만나지 않았다. 뭔가를 찾으러 왔다면 뒤지는 기색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하인들이 피하는 일을 찾아 도왔다. 정말 망서인가? 달에서 그를 보내 귀신들의 마음을 채운 것인가? 희상귀가 조용히 목란을 불렀다. 목란이 다가가 희상귀 앞에 무릎 꿇었다. 희상귀가 말했다.
“곡주께서는 그를 한담에서 찾으셨다고 하니, 한담에 가보자.”
목란이 뒤에 쓰러진 주자서를 힐끔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희상귀가 작게 코웃음을 치고 강리와 두형을 불렀다. 그들이 안으로 들어와 주자서를 눕히고 보살폈다. 박정부에서 망서를 싫어하는 자는 없다. 그게 문제였다.


온객행이 다시 텅 빈 처소로 돌아왔다. 장포를 벗어 아무렇게나 던져 놓고 주변을 둘러봤다. 온객행이 나간 사이에 혹시 주자서가 돌아오지 않았나 보았다. 이미 방 안에 들어오기 전에 사람의 기척을 읽지 못했으면서도 주자서를 찾았다.
“아서…”
주자서의 이름을 부르던 온객행이 처소 밖으로 나갔다. 박정부를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부엌에 앉아 일을 돕고 있는 유이를 발견했다.
“유이!”
유이가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나며 머리를 조아렸다.
“곡주.”
온객행이 조금은 날카롭게 물었다.
“염귀는 어디 있지?”
유이가 주변의 눈치를 보자 온객행이 유이의 소매를 잡아 밖으로 끌고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유이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온객행은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염귀는 어디 있어?”
유이가 바닥에 엎드리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주…주인님과 함께 계십니다.”
온객행이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희상귀는 어디 있지?”
온객행이 박정부 안에서 소란을 만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근처에 있던 어멈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자리를 피했다. 하인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모두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온객행이 다시 말했다.
“희상귀!”
벽선이 응접실 지붕에서 내려오며 말했다.
“희상귀께서는 한담에 계십니다.”
온객행은 벽선이 말을 마치자 마자 한담으로 향했다.

한담수옥의 입구에 닿은 희상귀가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왠만한 경공으로는 밖에서 들어올 수 없겠군.”
목란에게 고갯짓으로 한담의 아래를 가리켰다. 목란은 고개를 끄덕이고 훌쩍 한담으로 뛰어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첨벙’하고 물에 빠지는 소리가 나고 물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일각도 지나지 않아 목란이 옷을 들고 입구로 올라왔다. 목란은 손에 들린 옷을 희상귀에게 내밀며 말했다.
“주인, 이상합니다.”
희상귀가 목란이 내민 옷을 받아 들어 만져보았다. 희상귀는 알지 못하는 천이다. 얇고 투명하며 색도 진하다. 손으로 당겨보니 늘어나기까지 한다. 희상귀가 고개를 들어 목란을 보았다. 목란이 고개를 흔들어 물을 털어내고 말했다.
“내공도 없는 자가 함부로 내려가고 올라올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희상귀는 작게 한숨을 쉬며 다시 옷을 한담 안으로 던졌다.
“아무래도 그를 보내 주어야 하겠구나.”
목란이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온객행이 도착했을 때, 한담수옥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과 길이 엇갈렸나 싶다가 의심이 일어 한담 안을 들여다보았다. 한담 안에는 인기척이 없었다. 온객행은 안심이 되어 바닥에 주저 앉았다. 희상귀가 온객행을 해치는 짓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가 귀곡에서 살아남도록 도와준 그녀가 이제 와서 곡주까지 된 온객행을 배신할 리는 없다. 온객행은 머리를 감싸 쥐고 작게 신음했다. 악귀들을 갈아 치우는 것은 온객행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수월했다. 겁을 먹은 노곡주 덕에 귀곡의 악귀과 잡귀들은 해이해졌고, 덕분에 온객행은 노곡주를 쉽게 죽일 수 있었다. 곡주가 되고 나면 그 다음은 더 쉽다. 인간의 본성에서 탐욕은 지울 수 없는 것이라 그것을 잘 이용하면 온객행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다.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을 차치하고 주자서는 온객행이 가장 원하고 가지고 싶은 것이다. 모래를 쥔 것처럼 꼭 쥐면 쥘수록 빠져나가는 것이 더 많다. 온객행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박정부로 향했다. 희상귀는 곡주의 물음에 대답해야 할 것이다.

희상귀는 박정부에 들어오자마자 곡주가 바로 그녀의 뒤를 따라붙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희상귀는 춘매와 추국을 불러 목란에게 붙여주고 응접실로 가서 마음을 다잡았다. 무상귀에게 받은 서신을 두고 곡주를 기다렸다. 목란은 춘매와 추국을 데리고 지하감옥으로 향했다. 강리와 두형이 주자서를 보살피고 있었다. 주자서가 파리하게 질려서 쓰러져있다. 강리가 일어나 울먹이며 말했다.
“언니, 이상해요. 망서가 정신을 못 차려요.”
두형이 주자서의 얼굴을 젖은 천으로 닦으며 말했다.
“열도 없고, 맥도 정상인데 일어나지 못하는 게 이상해요. 기침을 하다가 피를 토했어요.”
목란이 주자서에게 다가가 뺨을 툭툭 치고 말했다.
“망서. 망서!”
주자서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지만 떠지지 않았다. 목란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시간이 없어.”
춘매와 추국이 주자서의 팔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목란이 주자서를 등에 업고 감옥을 나가며 말했다.
“망서는 사람으로 살아야 해.”
목란을 따라 나오던 강리와 두형이 그 말을 듣고 목란을 지나쳐 밖으로 먼저 나갔다. 춘매가 말했다.
“한담으로 나가는가?”
목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온객행이 다시 박정부에 도착했을 때, 박정부 내부는 한산했다. 하지만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는 온객행은 훌쩍 응접실 안으로 들어갔다.
“아서!”
희상귀는 상석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온객행이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희상귀의 양 옆에 있는 계손과 벽선을 제외하고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온객행이 고개를 꺾어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나이모 대체 무슨 일을 벌이고 계시는 거에요?”
희상귀가 온객행의 호칭에 작게 웃고는 자리를 권했다. 곧 유이가 온객행 몫의 차를 올리고 조용히 응접실을 나갔다. 온객행은 갓 내온 차에서 피어오르는 김을 보고 있다가 다가가 그것을 바닥에 던지며 말했다.
“염귀는 어디 있소?”
희상귀는 여상하게 앉아 차를 마셨다. 마치 방금 온객행이 한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 그러다 웃으며 말했다.
“설비가 돌아왔다고요? 아, 이제 계비라고 불러야 할까요?”
온객행이 희상귀에게 다가오자 옆에 서있던 계손과 벽선이 희상귀에게 더 바짝 다가가 섰다. 온객행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
“희상귀. 나는 인내심이 많지 않아요.”
희상귀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탁자에 있는 서신을 손에 들었다. 희상귀는 호갑투로 서신을 몇 번 쓸다가 온객행에게 건넸다. 온객행은 호갑투를 쓸어내리는 나부몽의 손에서 초조함을 읽었다.


설단은 갑작스럽게 돌아온 무구의 손에 이끌려 한담수옥으로 끌려 가고 있었다. 설단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목숨을 애원하기도하고 무구를 욕하기도 했다. 무구가 한담수옥이 있는 바위산 입구에 닿았을 때, 설비가 나타났다. 무구가 설단의 머리채를 바닥에 팽개치고 말했다.
“그래도 아들이라고, 아비를 구하러 오신게요?”
설비가 무구에게 말했다.
“무형, 내가 언제 무형을 서운하게 했습니까?”
무구가 ‘하하하’ 웃었다. 설단이 설비에게 다가가 말했다.
“비야! 아들아 이 아비를 구해다오!”
설비가 자신의 다리춤에 매달린 설단을 걷어 차며 말했다.
“아비? 누가 내 아비요? 내 아비는 그대가 죽이지 않았소?”
설비가 설단의 목을 움켜쥐며 말했다.
“나는 계(契)씨지 설(契)씨가 아니오.”
그리고 설단을 무구 쪽으로 던졌다. 무구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이제 계비라 불러야 겠군요.”
설비가 손을 모아 포권하며 말했다.
“새로운 무상귀가 되실 분이니 예를 거두세요.”
무구가 바닥에 널브러진 설단을 보며 말했다.
“한담에 떨어 뜨려 죽이려고 했는데, 이렇게 계비가 왔으니 놀이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요.”
무구의 말에 바닥에 엎어져 있던 설단이 일어나 한담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무구와 설비는 그를 따라가지 않았다. 설비가 말했다.
“이것은 무상귀의 자리를 놓고 하는 다툼입니까?”
무구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설마요. 필안은 죽었습니다.”
설비가 놀란 기색을 지우지 못하고 무구를 보았다. 무구가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탐욕이라는 것은 은인도 죽이게 하더군요.”
설비가 재빨리 다시 포권하며 말했다.
“새로운 무상귀를 뵙습니다.”
무구가 하하하 웃으며 훌쩍 뛰어 설단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설비도 그를 따라 바위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온객행은 희상귀가 건넨 서신을 다급하게 열어 보았다. 종이에 들어 있는 서신은 보통 부자이거나 귀족들이 사용하는 것이다. 서신을 펼치자 주자서를 닮은 그림이 그려져 있다. 얼굴이 구겨진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온객행은 자기도 모르게 서신을 쓸었다. 그리고 밑에 쓰여 있는 글을 읽었다. ‘진왕궁 기도위 주자서.’ 온객행이 고개를 들어 희상귀를 보았다. 희상귀는 다시 찻잔을 들고 말했다.
“설단이 그대에게 보내는 작별이오.”
온객행이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희상귀! 염귀는 어디 있소?”
희상귀가 차를 마시고 한참 뜸을 들인 뒤에 말했다.
“아행. 사람은 사람으로 살아야 해.”
온객행은 숨을 가쁘게 몰아 쉬더니 서신을 접어 앞섶에 넣고 응접실을 나가려고 돌아섰다.

희상귀가 자리에서 일어나 온객행의 뒷모습에 소리쳤다.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여도 바람이 그치지 않네. 그대의 바람은 어디로 불고 있는가?”(7)
온객행이 나가던 발걸음을 멈췄다. 희상귀가 상석에서 내려와 온객행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곡주. 스스로 약점을 만들지 마세요. 망서는 달에서 왔으니, 달에서 가장 안전합니다.”
온객행의 눈썹이 축 처져 울상이 되자 희상귀가 다가와 온객행의 뺨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아행.”
온객행이 나부몽의 손을 잡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한번만 아직… 아직…”
희상귀가 고개를 흔들었다. 온객행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 앉아버렸다. 희상귀가 깊게 한숨을 쉬고 다시 상석으로 돌아가 앉았다. 강리와 두형이 들어와 온객행을 부축해 응접실을 나갔다. 온객행은 넋이 나간 듯 눈초리에 눈물을 달고 하인들이 하는 대로 두었다.

온객행이 객실로 돌아오자 고상이 나타나 온객행을 부축했다. 온객행을 의자에 앉히고 차를 따라 그에게 마시게 했다. 아직 나가지 않은 강리와 두형에게 고상이 물었다.
“목란언니는?”
강리가 조금 울먹이며 말했다.
“아상… 망서가 이상해…”
고상이 강리의 어깨를 잡고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두형이 고상의 손을 잡고 말했다.
“맥도 호흡도 정상인데 눈을 뜨지 못 했어…”
강리가 소매로 눈물을 찍으며 말했다.
“사람은 사람으로 살아야 해.”
두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망서는 귀신이 아니니까.”
강리가 훌쩍이며 말했다.
“유이가 말한 것처럼 정말 달의 신이었나 봐. 우리 때문에… 우리 때문에…”
앉아 있던 온객행이 자리에서 일어나 물었다.
“목란은 어디로 갔지?”
고상이 온객행의 소매를 잡으며 말했다.
“주인!”
온객행이 고상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내가 보내 주고 싶어.”
두형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망서가 귀왕을 계속 찾았어요.”
두형의 말에 온객행이 울상이 되었다. 강리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한담으로 갔어요.”
두형이 강리를 날카롭게 보며 말했다.
“강리!”
고상이 두형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걱정 마! 주인이 보내주지 않으면, 내가 보내주고 올 게.”
그리고 온객행의 소매를 잡고 한담으로 향했다.

목란이 바위산 꼭대기에 거의 닿았을 때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주자서를 업고 있던 추국이 재빨리 몸을 숨기고 목란과 춘매가 주변을 살폈다. 무상귀 설단이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춘매가 목란을 보고 말했다.
“죽일까?”
목란이 기척을 숨기며 고개를 흔들었다. 설단은 정신이 없는지 그들의 기척을 읽지 못하고 달렸다. 목란이 고개를 들어 추국을 찾자 춘매가 그녀를 멈추며 한담으로 올라오는 돌계단을 가리켰다. 무구와 설비가 계단을 빠르게 올라오고 있었다. 목란과 춘매는 기척을 없애고 추국이 먼저 간 곳을 보았다. 추국은 기척을 없애겠다는 생각으로 조금 무리하게 몸을 움직여 한담 입구 근처에 있는 곳에 몸을 숨겼다. 설단도 뒤이어 무구와 설비가 보이자 추국은 조금 당황했다. 등에 업은 주자서를 바닥에 내려놓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무구와 설비는 설단을 잡아 죽일 생각에 흥분했는지 추국의 기척을 읽지 못한 듯했다. 설비가 설단의 길을 막았다. 무구가 천천히 설단에게 걸어가며 말했다.
“설형, 설형…”
설단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설비에게 다가가 매달리며 말했다.
“비야, 내 아들… 비야!”
무구가 웃으며 말했다.
“당신 아들 비는 필안의 손에 죽었소.”
설단이 설비에게 달려들어 그의 멱살을 잡았다. 설비는 비죽 웃으며 말했다.
“원수를 아비로 모시는 일은 별로 즐겁지 않았소.”
설비가 설단을 무구의 발치로 던졌다. 무구가 쓰러진 설단의 목을 쥐어 올리며 말했다.
“그리고 그 필안은 내가 죽였으니 이제 나도 설형의 은인이오.”
설단이 목에 잡힌 손을 잡아 뜯으며 칵칵거렸다. 무구가 얼굴을 붙이고 물었다.
“설형을 죽였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설형의 어디를 가져가야 할 것 같소?”
그리고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주자서는 온몸이 아파서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자기도 모르게 입에서 신음소리가 났다. 주자서가 힘겹게 눈을 떠 주변을 둘러보자 주자서는 땅바닥에 누워 있었다. 옆으로 돌아 누워 기침을 하자 입안에서 피 맛이 났다. 주자서는 얼굴을 찡그리고 몸을 일으켰다. 손목에 울긋불긋한 자국이 있었다. 주자서가 일어나 앉아 몸을 살펴보고 있는데, 누군가가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냐!”
주자서는 사람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주변을 보았다. 숲이 우거져 있어 잘 보이지 않았다. 주자서는 ‘끙’하고 한숨을 쉰 후에 기어서 사람의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갔다. 그곳에는 세사람이 있었는데, 그중 한 사람은 다른 사람 손에 목이 잡혀 축 늘어져 있었다. 주자서가 잘게 기침을 하며 일어나려고 애를 쓰자 누군가 다가와 그의 팔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넌 뭐야?”
주자서가 남자의 힘에 이끌려 자리에 일어섰다. 하늘과 땅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말했다.
“배고파.”
주자서의 말에 남자가 키득키득 웃으며 말했다.
“이건 또 어디서 굴러먹던 잡귀야?”
무구가 손에 들린 설단의 시체를 내던지고 주자서에게 다가왔다.

주자서를 위아래로 살펴보더니 말했다.
“넌 누구지?”
주자서가 뭔가 말하려고 입을 달싹였다가 다시 다물었다. 팔을 잡고 있는 남자가 주자서를 재촉하듯 흔들자 주자서가 말했다.
“아… 그러게요. 저는 누굴까요?”
주자서를 붙잡고 있던 설비가 짜증이 난다는 듯이 주자서의 목을 쥐자 온객행이 나타나서 소리질렀다.
“아서!”
주자서는 낯설지만 친근한 호칭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붉은 옷을 입은 남자가 그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설비, 지금 무슨 짓이지?”
설비가 기분 나쁘게 웃으며 주자서의 목을 쥐었다.
“아…이게 그 염귀?”
주자서는 설비의 손을 잡아 때려고 몸부림쳤다. 온객행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그는 염귀가 아니야. 애초에 귀신도 아니라고.”
설비가 주자서를 한담 쪽으로 끌고 가며 말했다.
“그렇다면 더욱 곡주께서 상관하실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무구가 ‘하하하’ 웃으며 한발짝 떨어져 설비와 온객행의 대치를 구경했다.

설비가 주자서의 몸을 더듬으며 말했다.
“대체 사내의 뭐가 좋다고 비역질을 하는지…”
주자서가 숨을 몰아쉬고 울먹이며 말했다.
“흑흑, 왜… 왜 이러세요…”
온객행이 설비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설비, 계가를 어디에 맡겨 두고 왔는지 잊었나?”
설비가 무구를 힐끔 보더니 말했다.
“이 자가 염귀가 아니면 곡주께서 왜 안달을 하실까?”
온객행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가?”
설비가 멈칫하며 소매에서 칼을 꺼내 주자서의 목덜미에 가져다 댔다. 주자서는 무구가 던진 것이 시체인 것을 알고는 겁에 질려 얼굴을 구기고 울기 시작했다.
“누구세요… 왜…왜…”
온객행은 울고 있는 주자서가 안타까워 자기도 모르게 눈썹이 축 처졌다. 그 표정을 보고 설비가 재미 있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정말 이 놈에게 푹 빠졌나보군.”
설비가 칼끝을 아래로 내려 주자서의 앞섶을 헤치자 무구가 헛웃음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주자서가 품에서 바르작대자 설비는 온객행을 보며 말했다.
“조금 동할지도…”
온객행이 눈을 치켜 뜨며 말했다.
“어서 그 자를 놔줘.”
주자서는 바들바들 떨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눈앞에 붉은 옷을 입고 애절하게 저를 쳐다보고 있는 남자는 익숙한 듯 낯설다. 그 순간 작은 암기가 날아들어 주자서를 겨누고 있는 칼을 떨어뜨렸다. 주자서는 칼이 떨어지는 것을 느끼자마자 눈을 감고 붉은 옷을 입은 남자를 향해 달렸다. 왜 인지 그는 주자서를 지켜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주자서는 칼이 무서워 눈을 꼭 감아버린 탓에 바로 앞에 한담의 입구를 보지 못했고, 그대로 한담에 몸이 빠지고 말았다.

(6) 시경 왕풍 黍離 늘어진 이삭
知我者 謂我心憂 不知我者 謂我何求 悠悠蒼天 此何人哉
나를 알아주는 자는 내 마음에 근심 있다 말하고 나를 모르는 이는 내가 무엇을 구한다 말한다네. 아득히 푸른 하늘이여 이것이 어떤 사람 탓인가!

(7) 한서열전 孔子出行 공자출행
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여도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봉양하고 싶어도 어버이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풍수지탄의 어원. 여기서 풍수는 이미 돌아가신 부모님을 뜻한다.

穿越 第8

急色鬼 | 급색귀

무상귀는 실로 오랜만에 박정부에 발을 들여 놓았다. 희상귀가 옆에 두는 아이들은 미색도 미색이지만 무공이나 머리가 비상한 자들이 많았다. 그들이 여인이 아니라 사내였으면 몇은 아마 악귀의 이름을 가졌을 것이다. 응접실에 들어가자 희상귀가 상석에 앉아 차를 마셨다. 여럿의 하인이 그 옆에서 그녀의 시중을 들고 있었는데, 무상귀에게 살기를 내뿜는 것을 숨기지 않는 고수들이다. 희상귀는 무상귀를 보고도 아무 말이 없다. 자리를 권하지도 않고 덩그러니 세워놓고 하인들에게 이것 저것 지시를 했다.

설단은 눈치를 보며 손을 모아 포권하여 인사했다.
“희상귀, 별래무양 하십니까?”
희상귀가 인상을 쓰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희상귀 옆에서 시중을 들던 하인들이 하나 둘 무상귀가 있는 곳으로 내려가 그를 포위했다. 설단이 ‘허’ 하고 헛웃음 치며 고개를 조아렸다.
“희상귀께서는 염귀에 대해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희상귀는 전혀 관심 없다는 듯 자신의 손가락에 호갑투를 끼우는 하인에게 차를 새로 내와야겠다며 작게 투정했다. 설단은 초조하고 불안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반응에 설단에 소매에서 서신을 꺼내고 말했다.
“이것이 염귀를 그린 그림이 맞는지요?”
설단이 서신을 내밀자 곧 희상귀 옆에 있던 하인이 다가와 서신을 받았다. 염귀는 하인이 가져온 서신을 받지 않고 새로 내온 김이 나는 차를 마시며 호갑투를 쓸었다.

작게 한숨을 쉰 희상귀가 말했다.
“무상귀는 필안과 무구가 어디 있는지 아시오?”
무상귀가 주변을 둘러보며 눈에 띄게 당황했다. 무상귀가 다시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그들이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희상귀가 고개를 흔들며 혀를 차고 말했다.
“사내들은 어찌 사람의 기분을 이렇게 모른다는 말입니까?”
무상귀가 고개를 들어 희상귀를 보았다. 희상귀가 입꼬리를 끌어 올려 웃으며 말했다.
“둘 중에 하나는 죽었을 테니, 다음은 자네 차례겠군.”
무상귀의 눈썹이 움찔했다.

나부몽은 희상귀가 된 이후로 무상귀를 하대한 적이 없다. 지위도 그러했고 연배도 그러했다. 그런 그녀가 일부러 하인들 앞에서 무상귀를 하대 한다는 것은 설단의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설단이 주변에 그를 포위하고 있는 여귀들을 힐끔 보고 말했다.
“희상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요?”
희상귀가 자리에서 일어나 설단을 내려보며 말했다.
“이리 아둔해서야… 무상귀라는 이름이 무색하네.”
나른하게 발걸음을 옮긴 희상귀는 더 말을 듣지 않고 기척 없이 응접실을 나갔다. 무상귀는 희상귀가 아직 보지 않은 자신이 가져온 서신을 한번 보고 희상귀가 나가는 길에 머리를 조아리며 이를 갈았다. 머지않아 누군가가 설단의 머리와 이름을 가지러 올 것이다.


주자서는 잠결에 목이 말라 물을 찾았다. 그가 작은 소리로 ‘무…물…’이라고 말하자 그를 안고 있던 몸이 일어나 곧 입에 찻잔을 대주었다. 주자서는 물을 마시고 눈을 떴다. 밝은 빛이 눈으로 들어오자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주자서는 다시 벌렁 뒤로 누워 머리를 감싸고 ‘끙’ 소리를 냈다. 옆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주자서가 실눈을 떠보니 내의만 입은 온객행이 주자서 옆에 앉아 그를 보고 있다. 주자서가 다시 눈을 감고 말했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아.”
온객행이 팔을 괴어 옆으로 누워 주자서의 얼굴을 쓸며 말했다.
“더 자.”
주자서가 옆으로 누워 온객행의 품에 얼굴을 묻으며 말했다.
“이게 숙취라는 걸까?”
다 잠긴 주자서의 목소리를 듣고 온객행이 낮게 웃으며 주자서를 품에 끌어안았다.

주자서가 살짝 한쪽 눈을 뜨고 온객행을 보았다.
“너는 괜찮아?”
주자서의 걱정이 기꺼워 온객행은 좀 더 웃고 대답했다.
“응.”
주자서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말했다.
“너 술이 세구나.”
온객행이 주자서의 등을 쓸며 말했다.
“어제 밥도 안 먹고 마셔서 그래.”
주자서가 웅얼거리며 말했다.
“맞아. 지금 엄청 배고파.”
온객행이 이불을 들춰 주자서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
“배고파?”
주자서가 대답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온객행이 부스스 웃으며 물었다.
“그럼 뭐 먹으러 갈래?”
주자서가 파르르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리고는 물었다.
“지금?”
온객행이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
“응. 내가 만들어 줄게.”
주자서가 다시 이불을 뒤집어쓰며 말했다.
“너 요리도 할 줄 알아? 완벽한 신랑감이네.”
온객행이 이불을 치우며 말했다.
“간단한 것만. 가자. 일어나.”

주자서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양손에 얼굴을 묻었다.
“우와, 혹시 내 머리 깨지지 않았어?”
온객행이 주자서의 몸을 돌려 신발을 신기고 자리에서 일으켰다. 주자서는 거의 온객행에게 기대다시피 일어나서 말했다.
“어… 나 토할 것 같아.”
온객행이 주자서의 등을 쓸며 말했다.
“일단 따뜻한 걸 먹으면 좋아질 거야.”
주자서는 온객행이 해주는 대로 가벼운 장포를 입고 처소밖으로 나갔다. 밖은 이제 막 해가 뜨기 시작했는지 아슴푸레하다. 바깥 공기를 마시니 좀 나아지는 것 같아 주자서가 몸을 바르게 하고 온객행을 따라 걸었다.

곧 도착한 주방에는 벌써 어멈 몇이 나와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얼굴이 익숙한 어멈이라 주자서가 아는 척을 했다. 뒤따라 들어온 온객행의 눈치를 보며 어멈들이 주자서를 반겼다. 온객행이 아궁이 하나를 차지하고 뭔가를 만들기 시작하자 어멈들도 각자 하던 일을 했다. 주자서는 아궁이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 얼굴을 손에 묻고 끙끙댔다. 어멈 하나가 꿀물을 타서 주자서에게 건넸다.
“망서, 술 마셨어?”
어멈의 물음에 힘겹게 고개를 든 주자서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네. 저는 술을 잘 못하나 봐요.”
그리고는 어멈이 건네는 따뜻한 꿀물을 마시고 ‘크으’ 소리를 냈다. 주자서가 하는 것을 보고 있던 어멈이 ‘호호호’ 웃고는 주자서의 어깨를 툭툭 치고 다시 자기 할 일을 찾아 했다. 주자서가 다 마신 꿀물 그릇을 들고 일어나 설거지 통에 넣고 옆에 있는 설거지까지 모두 하기 시작했다.

주자서가 일어나서 부엌일을 돕기 시작하자 곧 하나 둘 하인들이 들어와 일을 하기 시작했다. 원래 설거지를 하는 아이들이 들어와 주자서를 보고 웃으며 인사했다. 온객행이 국수 두그릇을 말아 주자서에게 갔을 때 주자서는 아이들과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아이들이 웃으며 주자서에게 말을 건네면 주자서는 다정하게 ‘응’, ‘그래’ 같은 말로 받아주었다. 주자서가 그릇을 들고 있는 온객행을 발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장포에 아무렇게나 젖은 손을 닦았다.

아이들이 서있는 온객행을 보고 눈치를 보자 주자서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염귀의 일을 하러 가야 하니까, 우리 또 만나자.”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지 않았다. 주자서는 이 아이들도 뭔가 들은 말이 있겠거니 하고 어수선한 마음으로 온객행에게서 그릇을 받아 부엌밖으로 나갔다. 밖에는 간이 탁자와 의자가 있었는데 주자서는 거기에 국수를 놓고 자리에 앉았다. 박정부의 하인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아침을 준비하는 것을 보다 주자서는 그릇을 들어 국수의 국물을 마셨다. 온객행이 어색하게 주자서 옆으로 와서 국수 그릇을 내려놓았다. 주자서가 자리에 앉은 온객행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맛있네.”
그리고 후룩후룩 국수를 먹었다. 온객행도 주자서를 보다가 국수를 먹었다.

먼저 국수를 다 먹은 주자서가 부엌 근처에서 일하는 하인과 어멈을 구경했다. 그들은 주자서를 보고 웃으며 인사하다가 뒤에 앉아 있는 귀왕을 보고 멈칫했다. 주자서는 일부러 내색하지 않고 손을 흔들거나 이름을 부르며 아는 척을 했다. 온객행도 다 먹었는지 젓가락을 내려놓고 주자서에게 말했다.
“오늘은 대전에 안 갈래.”
주자서가 고개를 획 돌려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네가 안 가면 나도 안 가도 되지?”
온객행이 자기가 먹은 그릇과 주자서가 먹은 그릇을 들고 일어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주자서는 온객행이 부엌에 들어갔다 다시 나오는 것을 보고 물었다.
“박정부 안에 있을 거야?”
온객행은 잠깐 생각하더니 주자서의 손을 잡고 일으키며 고개를 흔들었다.

주자서가 순순히 일어나며 물었다.
“오늘 뭐 할 건데?”
온객행이 곤란한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사음부에 갈 거야.”
주자서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아무리 들어도 진짜 싫은 이름이다.”
온객행이 말했다.
“그러니까, 너는 박정부에 있어.”
주자서가 온객행을 보고 물었다.
“그래도 돼?”
온객행이 주자서의 얼굴을 보고 부스스 웃으며 말했다.
“그럼 같이 갈래?”
주자서가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그건 싫어. 그냥 안가면 안돼?”
온객행이 주자서를 마주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손을 잡고 처소를 향해 걸었다.

두사람이 처소에 돌아오자 안에 고상과 목란이 있었다. 고상이 살갑게 다가와 인사하며 온객행의 시중을 들었다. 온객행이 씻고 옷을 입는 동안 주자서는 탁상에 앉아 목란과 실랑이를 했다. 대전에 가지 않으니 검은 장포를 입을 필요 없다는 주자서와 그래도 일단 염귀니까 입는 것이 좋다고 달래는 목란이다. 주자서가 목란에게 찻잔을 건네며 말했다.
“누님, 어차피 오늘은 계속 박정부에 있을 거니까 안 입어도 된다니까요.”
온객행이 준비를 마치고 탁자로 걸어와 목란에게 내민 찻잔을 마시고 말했다.
“입을 필요 없어. 목란, 오늘 염귀랑 같이 있게.”
목란이 대답없이 고개를 조아렸다.

주자서는 찻잔을 하나 더 꺼내 차를 따라 목란에게 내밀었다. 고상이 다가와 주자서가 내민 찻잔을 받고 말했다.
“주인, 그럼 오늘 망서랑 놀아도 돼요?”
주자서가 작게 한숨을 쉬고 다시 찻잔을 꺼내 차를 따라 목란에게 내밀었다. 온객행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주자서를 보았다. 주자서가 자리에서 일어나 온객행의 앞섶을 쓸고 말했다.
“오늘도 잘 생겼네.”
온객행이 부스스 웃고 주자서에게 얼굴을 붙이자 주자서가 온객행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왜 이래, 아상이 보잖아.”
온객행이 고개를 돌려 급하게 시선을 돌린 고상과 목란을 보고 ‘큼큼’ 헛기침을 했다. 주자서가 온객행의 손을 잡고 장지문으로 다가갔다.
“여기 있을 게. 다녀와.”
온객행은 주자서의 허리에 팔을 둘러 끌어안았다가 놔주었다. 그리고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거처를 나갔다.


온객행이 사음부에 도착했을 때, 이미 식시귀가 한바탕 휩쓸어 놓은 후였다. 온객행이 급색귀의 수하인 주요(周窯)를 급하게 찾았다. 주요는 그 모습이 아주 아름다웠는데, 그가 어릴 때 유자업에게 겁탈을 당한 적이 있다. 그래서 사내를 극도로 싫어하고 여인을 좋아했다. 아직 죽지 않은 헐벗은 급색귀의 곁에 기녀들이 잠자리 날개 같이 얇은 옷을 입고 흐느끼고 있었다. 온객행이 작게 혀를 차며 말했다.
“이들은 박정부로 데려가라.”
식시귀의 수하들이 들어와 그녀들을 데리고 나갔다. 곧 주요가 헐레벌떡 들어와 곡주 옆에 섰다.
“곡주!”

온객행이 상석으로 가서 앉으며 말했다.
“주요, 그대가 박정부 밑으로 들어가겠다고 하면 내가 급색귀의 자리를 주겠소.”
유자업이 엉금엉금 기어서 온객행의 발치로 가서 빌었다.
“곡주! 곡주! 당장 희상귀를 모시겠습니다. 희상귀를 모시게 되면 제가 제일 좋지요!”
온객행은 인상을 쓰고 유자업의 가슴을 발로 찼다.
“주요, 그대가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주요가 유자업에게 다가가 부채로 그의 살을 베었다. 온객행은 주요가 유자업의 살을 난도질하는 것을 조금 보다가 사음부를 나왔다. 보아가 온객행을 뒤따르며 말했다.
“설비(契飛)가 계가(契駕)의 일을 알고 있습니다.”
온객행은 고개를 끄덕이고 진광전으로 향했다.

적사귀는 오늘도 풀무질을 하고 있었다. 온객행이 다가가 과거 백명이 앉았던 작은 의자에 앉아 말했다.
“계가를 죽이셨습니까?”
적사귀가 흐르는 땀을 닦고 가죽부대에 든 물을 마시며 다가왔다.
“아직.”
적사귀가 온객행을 응접실로 안내하며 말했다.
“내게 독을 탔소.”
온객행이 적사귀를 앞서 걸으며 말했다.
“겨우 백명의 끄나풀 인걸요.”
길도가 ‘흠’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죽었소?”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상석에 가서 앉았다. 곧 하인이 김이 나는 차를 내왔다. 온객행은 내온 차를 한번 적사귀를 한번 보더니 살포시 웃고 차를 한입 마셨다.
“백명을 계가의 형이 죽였으니 상을 주어야 지요.”
적사귀가 가죽부대의 물을 꿀꺽꿀꺽 마시더니 말했다.
“목숨이면 되겠소.”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살아만 있으면 됩니다.”
적사귀가 고개를 끄덕이고 응접실을 나갔다. 온객행은 자리에 앉아 길도가 대접한 차를 모두 마시고 자리를 떠났다. 진광전을 나가는 온객행에게 잡귀 하나가 다가와 말했다.
“필안이 죽었습니다.”
온객행은 ‘흠’ 하고 말없이 대전으로 향했다. 온객행은 설단이 찾아올지 무구가 찾아올지 기대가 되었다.


희상귀는 오전에 돌아볼 일들을 모두 보고 여귀 하나에게 오늘 염귀가 박정부에 머무른 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부몽은 그동안 많은 사내를 보았지만 염귀, 아니, 여귀들 사이에서는 망서라고 불린다. 망서 같은 사내는 본적이 없다. 여자들 밖에 없는 공간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있는데다 다정하고 사려 깊었다. 함부로 여인의 몸에 손을 대지도 않고, 그렇다고 서슴없이 자신을 만지는 여귀들을 내치지도 않았다. 곡주가 데려온 자가 아니었으면 그를 기둥서방 삼겠다는 말이 나왔을 것이다.

정리해 놓은 장부는 어떤 정해진 방법이 있어, 하루정도 망서가 글을 읽을 줄 아는 여귀 몇을 붙여 알려 주었더니 희상귀가 더 신경 쓸 일도 없어졌다. 게다가 그는 연인을 배신한 자를 죽인다는 박정부주 희상귀에게 좋은 일을 한다고 했다. 나부몽은 희상귀가 된 이후 그런 소리를 처음 들어 보았다. 그것도 사내에게서. 그에게는 귀신 같지 않은 밝음이 있다. 귀신이 아니라 사람인 것이다. 일을 마치고 잠시 더위를 식히기 위해 다시 돌아온 응접실에는 무상귀가 놓고 간 서신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희상귀는 하인 몇을 불러 망서에게 장부를 확인받아 오라고 일렀다. 자리에 앉은 희상귀가 서신을 들었다. 부드러운 종이로 만든 서신은 강호의 것이 아니다. 무상귀는 염귀가 누구인지 궁금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희상귀가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망서는 관의 사람인가?’ 그리고 조심스럽게 서신을 열었다.

희상귀가 받은 서신에는 남자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자세히 보니 망서와 닮은 것 같기도 하다. 희상귀는 그림 아래에 쓰여진 글을 읽었다. 진왕궁의 시위 주자서. 진왕이라면 저 멀리 곤주에 있는 종친 중에 하나이다. ‘곤주에서 익주까지 사람을 보냈다고? 대체 무엇때문에?’ 희상귀는 기억을 더듬다 십수년 전 청성곡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마두를 처단한다는 이름으로 강호에서 귀곡을 공격한 일이다. 희상귀는 그 때 악귀의 이름을 얻었다. 전대 희상귀는 지금의 박정부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내였다. 청성곡 전투 때 많은 악귀가 죽어 나갔고, 나부몽은 운도 좋았고 머리도 좋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금의 귀곡주 온객행이 입곡했다. 노곡주가 아들인양 끼고 데리고 돌아다니는 동안 온객행은 마음 한구석이 이지러진 것 같았다. 그리고 노곡주가 죽은 날, 몇 날 며칠 그의 살가죽을 벗기는 온객행을 보며 희상귀는 그의 마음이 완전히 부서졌다고 생각했다.

희상귀는 아직 온객행과 망서가 함께 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들은 것 만으로도 곡주가 염귀에게 푹 빠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문제는 그것이 얼마나 갈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다. 희상귀는 서신을 펼쳐 잘 보이는 곳에 두었다. 곧 차를 내온 하인이 그 서신을 보았다. 희상귀는 호갑투를 쓸던 손으로 찻잔을 들어 차를 마셨다. 희상귀가 살포시 웃으며 차를 내온 하인을 칭찬했다.
“홍화씨구나.”
하인이 고개를 숙이다 탁자에 놓인 서신을 보고 움찔했다. 희상귀가 웃으며 말했다.
“마료(馬蓼)는 글을 읽을 줄 알았던가?”
하인이 고개를 조아리며 무릎을 꿇었다. 희상귀가 살포시 웃으며 말했다.
“시기가 안 좋았구나.”
희상귀는 소매를 들어 춘매(春梅; 매화)와 추국(秋菊; 국화)을 불렀다. 서신을 본 아이가 두사람에게 끌려 나가는 것을 보며 희상귀는 고민했다. ‘이 사실을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말하면 망서는 죽고 이 평화는 깨지겠지. 말하지 않으면?’ 희상귀가 웃으며 하인을 불렀다.
“가서 염귀를 데려와라.”
희상귀의 말에 하인이 머리를 조아려 인사하고 응접실을 나갔다. 희상귀가 차를 다 마시자 염귀가 고상, 목란과 함께 응접실로 들어왔다. 고상은 상석 근처에 있는 의자에 가서 앉으며
“나이모!”
라고 인사했고 목란은 양손을 모아 무릎 꿇고 조아렸다.


주자서는 고민을 하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양손을 모았다.
“주인!”
희상귀는 망서가 자신을 주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재미있어 웃었다.
“예를 거두세요.”
목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자서도 목란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희상귀는 탁자에 놓인 서신을 먼저 고상에게 보여주었다. 고상은 종이를 만져보더니 좋은 종이라며 좋아했다. 그리고 거기에 그려진 얼굴을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나이모? 망서를 그려 놓으시게요?”
희상귀가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고상이 아래에 쓰인 글자 중에 주자서의 이름을 읽고 좋아했다. ‘아상에게 누가 글을 가르쳤나?’ 고상이 종이를 들고 주자서와 목란에게 가서 보여주며 말했다.
“망서! 이것 봐, 너를 그린 거야.”
주자서가 서신을 받고 요리조리 돌려보며 말했다.
“이게 나라고?”
목란이 아래에 쓰인 글씨를 읽고 미간을 찌푸렸다. 고상이 글자에 손을 가져가며 물었다.
“망서 이건 어떻게 읽는 거야?”
주자서가 글자를 읽는다.
“진왕궁(晉王宮) 기도위(騎都尉). 기도위가 뭐야?”
주자서가 고상에게 물었다. 고상은 갸웃거리며 모른다고 대답했고 목란은 고개를 들어 희상귀를 보았다. 주자서도 목란을 따라 희상귀를 보았다. 희상귀가 웃으며 말했다.
“왕궁에서 오신줄은 몰랐습니다. 염귀.”

계손(溪蓀; 난초)과 벽선(碧鮮; 대나무)이 응접실로 들어왔다. 목란이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주인! 그는 기억을 잃었습니다.”
고상이 주자서의 손에서 서신을 빼앗아 희상귀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나이모?”
목란이 멀뚱히 서있는 주자서의 소매를 잡아당겨 자기 옆에 무릎 꿇렸다. 주자서는 목란이 시키는 대로 무릎을 꿇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영접실로 들어온 하인을 보았다. 두 사람은 박정부의 하인이 입는 옷이 아닌 잡귀의 옷을 입고 있었다. 그들이 곧 귀면을 벗고 희상귀에게 인사했다.
“주인.”
희상귀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이렇게 귀하신 분께서 저에게 무릎을 꿇다니...”
주자서가 고개를 들어 다가오는 희상귀를 보고 말했다.
“주인?”
희상귀가 호갑투로 주자서의 뺨을 툭툭 치더니 말했다.
“염귀는 알고 있나요? 사람의 기억이란 가끔은 만들어 지기도 한답니다.”
계손과 벽선이 주자서에게 다가와 그의 팔을 잡았다. 곧 하인이 다 식은 차와 얇은 천을 내왔다. 희상귀가 천을 적시며 말했다.
“염귀. 어서 말해보세요. 왕궁의 시위가 무슨 일로 귀곡에 오셨습니까?”
희상귀의 말에 고상이 작게 숨을 들이켰다.

목란이 희상귀를 보며 말했다.
“주인, 그는 정말 기억이 없어요. 그가 기억하려고 하면 피를 쏟으며 혼절합니다.”
희상귀가 ‘흠’ 하더니 주자서를 보았다. 주자서는 황망하게 응접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았다. 그들은 분명히 자기 얘기를 하고 있는데 주자서는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알 수가 없었다. 주자서가 목란을 보며 말했다.
“왕궁의 시위?”
목란이 주자서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망서 뭔가 기억나는 게 없는가? 내게 첩이라고 하지 않았나?”
주자서가 얼떨떨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게… 그러니까 누군가의 별궁에 있는 애첩의 화원에서…”
주자서는 순간 ‘아 좀 더 제대로 들어 둘 걸. 누군가가 말해줬는데, 왕의 별궁… 왕의 애첩의 화원…’ 주자서가 갑자기 인상을 쓰더니 몸을 부들부들 떨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작은 목소리로 주자서가 말했다.
“… 돈을 받으면 마라탕을 먹으러 가려고…”
희상귀가 인상을 쓰며 주자서의 턱을 잡아 올렸다. 주자서의 코에서 피가 주룩 흐르더니 곧 그의 눈이 뒤로 넘어가며 축 늘어졌다.

희상귀가 인상을 쓰고 목란을 보았다. 목란이 주자서에게 다가가 그의 얼굴을 어깨에 받치고 흐르는 코피를 소매로 닦으며 말했다.
“과거를 기억하려고 하면 항상 이렇습니다. 정말 그가 원해서 귀곡에 왔다면 왜 이렇게까지 했을까요?”
희상귀가 코웃음 치며 말했다.
“관리라는 자들은 언제나 사람을 장기말로 보는 자들이네.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으면 귀곡으로 들어올 수 없었겠지.”
고상이 서신을 들고 희상귀에게 다가왔다.
“나이모… 이거…”
희상귀가 고상에게 서신을 받으며 말했다.
“아직은 아니야. 걱정하지 마라. 곡주께는 내가 이야기하마.”
희상귀가 소매를 펄럭이자 계손과 벽선이 주자서를 질질 끌고 응접실 밖으로 나갔다. 목란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주인. 그는 정말 몰라요. 망서는…”
희상귀가 목란에게 손을 들며 말했다.
“그만. 거기서 더 말하면 너도 가두겠다.”
희상귀가 목란에게 다가가 그를 일으키며 말했다.
“너에게는 네가 꼭 해주어야 할 일이 있으니…”


온객행은 그날 해가 다 질때까지 설단도 무구도 보지 못했다. 온객행이 처소로 돌아오자 고상이 탁자에 앉아 있었다. 온객행이 다가가 물었다.
“아서는?”
온객행의 목소리에 흠칫 어깨가 튄 고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말했다.
“주인! 벌써 오셨어요?”
온객행이 장포를 벗으며 말했다.
“아서는 어디 갔어?”
고상이 온객행의 장포를 받아 옷걸이에 걸며 말했다.
“목란이랑 어디 간 것 같은데, 나도 기다리고 있었어요.”
온객행이 탁자에 앉아 찻잔을 집어 차를 따르며 말했다.
“그래? 유이는?”
고상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녁 가지러 가지 않았을까요? 유이가 저녁 담당이니까…”
온객행은 고개를 끄덕이며 차를 마셨다. 곧 유이가 헐레벌떡 찬합을 들고 처소안으로 들어왔다.
“아상! 망서가…”
고상이 잽싸게 다가가 유이의 입을 막으며 말했다.
“그래. 망서가 지금 나이모랑 대화 중이지.”
유이가 탁자에 앉아 있는 온객행을 발견하고 머리를 조아렸다. 고상이 찬합에서 음식을 꺼내 놓고 유이와 함께 방을 나가며 말했다.
“주인, 우리가 가서 망서를 찾아올 테니 기다려요!”
온객행은 차려진 음식을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상이 달려와 다시 온객행을 앉히고 말했다.
“주인! 잠깐만 기다려요. 내가 얼른 가서 데려올 게요.”
온객행이 미간을 찌푸리자 고상이 얼른 유이를 밖으로 밀어내며 말했다.
“금방 올거니까 먼저 드시고 계세요. 망서가 밥을 안 먹다니 말도 안되지.”

온객행은 고상이 나간 장지문을 한참 보고 있다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주자서가 오기 전까지 항상 혼자 쓰던 처소였는데, 이제는 탁자를 볼 때도 장지문을 볼 때도 침상을 볼 때도 주자서가 떠올랐다. 차려진 음식은 향신료를 듬뿍 넣어 매운 음식으로 모두 주자서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온객행은 젓가락을 들어 먼저 식사를 하려다 다시 내려놓고 주자서를 기다리기로 했다. 이제 그를 볼 때만이 아니라 생각할 때도 웃음이 난다. 예전에 모친께 물었다. 어째서 부친과 혼인하셨냐고. 모친께서 웃으시면서 말씀하셨다. ‘나를 웃게 해. 너희 부친은.’ 온객행은 참으로 오랜만에 부모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다 자신의 처지가 떠올라 슬퍼졌다. 그들을 위해서도 온객행은 멈출 수 없다.

穿越 第7

開心鬼 | 개심귀

대전의 단상 뒤에는 여러 개의 석실이 있다. 그 중 하나는 보물이 가득 들어 차 있고, 그 중 하나는 서적이 가득 차 있고 또 그 중 하나는 평범한 거처였다. 온객행이 노곡주의 살갗을 벗긴 곳이기도 하다. 노곡주는 온객행을 좋아했다. 무심한 얼굴에 잔인한 성정에 끝까지 몰아붙여도 끝까지 버텨내는 온객행은 확실히 다른 잡귀와는 달랐다. 시키는 일도 잘했지만 시키지 않은 일도 잘했다. 온객행이 귀왕이 된 날 밤, 노곡주가 고통으로 정신을 놓기 전에 말했다. 온객행은 그 누구보다 귀곡에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자신이 다음 귀곡주를 아주 잘 골랐 노라고. 온객행은 화가 나서 곡주의 혀를 잘랐던 것 같다. 온객행은 평상에 앉아 하인이 내오는 차를 보았다. 오늘은 또 무슨 독을 탔을까 기대가 되면서도 예상을 벗어 나지 않는 장난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온객행이 손을 들어 주자서를 불렀다. 문간에 망부석처럼 서 있던 주자서가 슬금슬금 다가왔다. 온객행의 손짓이 빨라지자 주자서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주자서가 다가오자 온객행은 주자서의 손목을 채서 자기 무릎에 앉혔다. 주자서가 작게 한숨을 쉬는 것을 듣고 온객행이 작게 웃었다. 차를 내왔던 하인이 온객행의 웃음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온객행은 하인을 보고 살짝 미간을 찡그리고 나가보라고 말했다. 느껴지는 기척으로는 석실 문 밖에 서 있는 호위라는 이름의 감시만 있는 것 같아 온객행이 주자서의 조면사를 벗기며 말했다.
“아서. 오늘은 말 할 마음이 들어?”
주자서가 밝아진 시야에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뭘?”
온객행이 얼굴을 가깝게 붙이며 말했다.
“입 안 무겁다더니, 거짓말.”
그리고 입술을 맞췄다. 주자서는 흠칫 몸을 굳히면서도 피하지 않았다. 온객행이 인상을 쓰고 입술을 떼며 말했다.
“왜 안 밀어내?”
주자서가 눈을 내리 깔며 말했다.
“무서워.”
온객행이 주자서를 품에 끌어안으며 말했다.
“뭐가?”
주자서는 한참 말이 없다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나도 죽일 거야?”
온객행이 몸을 떼고 주자서를 보았다.

주자서는 눈을 내리 깐 채로 온객행을 마주보지 않았다. 그게 짜증난 온객행이 주자서의 턱을 잡았다. 뭔가 말하려는 데 밖에서 잡귀 하나가 고했다.
“양연입니다.”
온객행이 작게 혀를 차고 조면사를 다시 주자서에게 씌워주었다. 조면사가 씌워지고 나서야 주자서는 온객행과 시선을 맞추었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허리를 끌어당겨 안고는 말했다.
“들어오게.”
양연이라는 자는 입이 양 옆으로 찢어져 모습이 흉악했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는 말이 없다. 양연은 문간에 멀지 않은 곳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온객행이 고개를 돌려 양연에게 말했다.
“양형은 참 속도 없소.”
양연이 부들부들 떨며 웃음을 참고 말했다.
“저라고 참고 싶기만 하겠습니까, 히히히.”
양손으로 입을 막은 양연이 고개를 살짝 들어 온객행을 보았다.

온객행은 조면사를 쓴 염귀를 보느라 양연에게 관심이 없어 보였다. 곧 밖에서 식시귀 보아가 기별도 없이 들어왔다. 식시귀가 된 보아는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 모르지만 적사귀보다 부리는 수하가 많아졌다. 이제 무상귀나 개심귀도 그를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온객행이 조면사 위로 주자서의 얼굴에 입을 맞추었다. 보아가 말했다.
“그게 염귀요?”
온객행이 크게 한숨을 쉬고 염귀를 놓아주며 말했다.
“두 사람 모두 백형에게 원한이 있지 않습니까?”
온객행이 자리에서 일어나 양연을 일으키며 말했다.
“마침 백형이 귀곡 밖에 있으니 아주 일이 쉽겠어요.”
온객행이 하인을 부르자 하인이 소반에 서신을 들고 들어왔다. 온객행은 서신을 들어 손에 몇 번 치더니 말했다.
“제가 이렇게까지 도와드렸는데… 안되면, 두분께서는 목숨을 내놓으셔야 할 겁니다.”
양연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히히히’ 하고 웃었다. 온객행도 ‘하하하’ 그들을 보고 마주 웃었다. 온객행은 서신으로 보아를 가리켰다가 고개를 흔들고 양연에게 서신을 주었다. 서신을 받은 양연이 받은 자리에서 서신을 펴 보았다. 고개를 끄덕이더니 온객행에게 포권하여 인사하고 보아와 함께 석실을 나갔다.

온객행이 다시 평상으로 돌아가 앉아 염귀를 끌어안았다. 딱딱하게 굳어 있는 주자서의 등허리를 쓸며 온객행이 말했다.
“염귀, 누가 보냈는지 말하지 않으면 나도 어쩔 수가 없어요.”
주자서가 온객행을 뿌리치며 말했다.
“정말이야.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 기억하려고 하면 머리가 너무 아파.”
주자서는 어젯밤에도 기억해내 보겠다고 한참 머리를 쥐어 뜯다가 또 코피를 쏟았다. 그 모습을 온객행도 모두 보았던 터라 뭐라고 더 다그칠 만한 것도 없었다. 맥이 풀린 온객행이 주자서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
“오늘은 목 안 말라?”
주자서가 온객행의 물음에 고개를 휙 돌렸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행동이 귀여워서 또 부스스 웃어버렸다. 주자서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나 보물이 가득한 방으로 주자서를 데리고 갔다. 주자서를 문간에 세워 두고 온객행이 무언가를 찾는 듯했다.

화려한 함(函)이 여기 저기 놓여있자 주자서도 호기심이 일어 온객행 근처로 가서 함을 열어 보며 구경했다. 어떤 함에는 금과 은으로 만든 화려한 비녀가 들어 있었고, 어떤 함에는 진주가 가득했다. 주자서가 자기도 모르게 온객행에게 말했다.
“너…아니, 귀왕은 엄청 부자구나.”
온객행이 어떤 함에서 무언가 찾아 주자서에게 다가와 말했다.
“부자라서 싫어?”
주자서가 고개를 흔들면서 다른 함에 들어 있는 패옥을 만지며 말했다.
“나랑 무슨 상관이야.”
온객행이 주자서의 허리춤을 잡아당기며 그의 요대에 무언가를 매달았다. 주자서가 고개를 돌려 허리에 매달린 것을 보았다. 자개와 마노로 만든 학으로 장식된 구리로 만든 병이다. 주자서가 병을 들어 보더니 고개를 들어 온객행을 보았다.
“이제 여기에 물을 담아 마셔. 원래는 술을 담는 용도인 것 같지만.”
주자서가 뚜껑을 열어 병을 들어 냄새를 맡아 보았다. 병 안에서는 술냄새가 났다.

주자서가 뚜껑을 닫아 허리춤에 달며 말했다.
“그냥 네가 마시는 차를 나눠 마시면 될 텐데… 뭘 이런 걸…”
온객행이 주자서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대전에서는 내가 주는 것 말고 다른 것은 먹으면 안돼.”
주자서가 입을 삐죽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며 말했다.
“아서, 우리 술은 같이 안 마셔봤네?”
주자서가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난 술 싫어.”
온객행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 왜?”
주자서는 왜 술이 싫은 지 생각해 보았지만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게. 왜 싫을까?”
온객행은 또 맥이 풀려 부스스 웃었다.
“그럼 오늘은 술을 마셔 볼까?”
온객행이 주자서의 등허리에 손을 올리고 그를 대전 밖으로 안내했다.
“도산부에는 좋은 술이 많아. 마침 주인도 없으니 딱 좋지.”
주자서가 온객행의 손에 이끌려 나가며 물었다.
“도산부? 불길한 이름이네.”
주자서의 말에 온객행이 ‘하하하’ 하고 웃었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허리를 안고 도산부의 담을 훌쩍 넘었다. 그 바람에 쓰고 있던 조면사가 들썩이자 주자서가 손을 들어 조면사를 잡고 물었다.
“근데 이건 언제까지 쓰고 있어야 하는 거야? 매두홍(埋頭紅) 같아.”
온객행이 주자서를 창고로 이끌며 말했다.
“그럼 나에게 시집 올래?”
주자서가 조면사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내가?”
온객행이 창고의 문을 열며 말했다.
“첩이었다며, 내가 정실로 맞아 줄게.”
주자서가 웃으며 말했다.
“정실?”
온객행이 실내에 있는 술 단지를 둘러보더니 단지가 놓여 있는 탁자 아래에서 흙이 묻은 단지를 꺼냈다. 주자서에게 한 병 주고 한 병 더 꺼내며 말했다.
“백명은 제일 좋은 술은 항상 여기에 숨겨 두거든. 이제 주인이 없으니 내가 마셔야지.”
그리고 주자서에게 그 병을 주고 다시 창고 밖으로 나가 주자서의 허리를 안고 훌쩍 지붕 위로 올라갔다. 주자서는 술단지를 안고 가만히 온객행에게 안겨 있었다. 온객행은 두 사람이 처음 만나 올랐던 높은 바위 위로 올라갔다. 이곳은 얕은 경공으로는 오를 수 없어 평소 귀신이 자주 오지 않는 곳이기 때문에 종종 온객행 혼자 술을 마시러 오는 곳이기도 했다. 산 끝에 걸린 해가 곧 질 모양이다. 황혼에 하늘이 붉다. 멀지 않은 곳에 막 차오르기 시작한 초승달이 지는 해의 뒤를 따른다.

온객행은 주자서를 놓아주고 자리에 털썩 앉아 주자서에게 손을 내밀었다. 주자서는 들고 있던 단지 중에 하나를 온객행에게 건네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조면사를 벗고 앉았다. 온객행은 진흙으로 봉해 놓은 단지를 조심스럽게 열었다. 주자서도 온객행이 하는 것을 보고 조심스럽게 단지를 열었다. 단지 안에서는 향긋한 꽃냄새가 났다. 온객행이 단지를 들어 입을 축였다. 잔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입가에 술이 흘러 입술이 번들거렸다. 멍하니 온객행의 입술을 보고 있다가 주자서가 시선을 돌리고 고개를 흔들었다. 소매를 들어 입가를 닦은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사는 것은 홀연히 떠나는 객과 같으니, 한말 술로 서로 나누며 즐기면 오롯이 충분하고 부족함 없네.”(4)
주자서가 온객행을 따라하듯 단지를 들어 술을 마셨다. 입가에 묻은 술을 소매로 닦으며 말했다.
“사람의 생명은 아침 이슬과 같으니, 인생은 홀연히 사라져 가고 마는 것. 그러니 생전에 맛있는 술과 좋은 의복을 입고 하루하루 즐겁게 지내는 것이 어떠 한가?”(5)
온객행이 술단지를 내려놓고 주자서를 보았다. 주자서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우와, 이 술 독하다.”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몸을 붙이며 말했다.
“너는 정말 정체가 뭘까?”
주자서가 허리춤에 달려있는 구리병을 꺼내 들고 말했다.
“그러게. 나도 궁금해.”
온객행이 주자서의 허리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나 또 반한 거 같아.”
주자서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두사람은 지는 해를 안주삼아 술을 마셨다.

주자서가 온객행의 손에 구리병을 들게 하고 단지를 기울여 술을 담았다. 술을 다 담고 나서 구리병을 다시 허리춤에 달며 말했다.
“나 술 싫지 않은 것 같아.”
온객행이 주자서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그래? 맛있어?”
주자서가 다시 단지를 들고 술을 마셨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입가에 흐르는 술을 보고 있다가 다가가서 핥았다. 주자서는 그게 재미있는지 술을 머금고 웃었다. 온객행이 입가를 지나 입술을 핥고 주자서의 입안에 들어 있는 술을 마시자 주자서가 온객행의 어깨를 밀면서 말했다.
“네 것 마셔.”
온객행이 얼굴을 붙여 주자서의 입술을 조금 더 핥다가 말했다.
“이게 더 맛있는 거 같아.”
주자서가 웃으며 말했다.
“술은 맛없는데, 너랑 마시니까 괜찮은 거 같아.”
온객행이 주자서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으며 말했다.
“그거 마음 주겠다는 소리야?”
주자서가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아니야. 아니야.”

주자서가 온객행의 얼굴을 손으로 밀면서 말했다.
“나는 첩이었나?”
온객행이 주자서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며 말했다.
“내 정실해.”
주자서가 다시 웃으며 말했다.
“기왕이면 나도 장가가고 싶었는데…”
온객행이 고개를 들어 주자서를 마주보며 말했다.
“그럼 내가 시집갈까?”
주자서가 온객행의 말에 고개를 꺾어 크게 웃었다.
“하하하.”
온객행이 울상을 꾸며서 말했다.
“왜? 나는 싫어?”
주자서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내가 너를 데려가면 우리 할머니 넘어가시겠네.”
온객행이 물었다.
“할머니? 할머니랑 살았어?”
주자서가 고개를 돌려 온객행을 보며 물었다.
“어? 뭐라고?”
온객행의 표정은 슬프기도 하고 또 기쁘기도 하고 복잡해 보였다. 그러더니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몸에 들러붙어 고개를 어깨에 기대고는 말했다.
“내가 아서에게 시집 갈게.”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나는 데릴사위가 되는 건가?”
이번엔 온객행이 ‘하하하’하고 웃었다. 주자서가 머뭇거리며 물었다.
“너희 부모님은 어디 계셔?”
온객행의 표정이 가라 앉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대답없이 하늘을 보고 있던 온객행이 하늘을 가리켰다. 주자서는 온객행이 가리킨 곳을 보고 있다가 온객행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말했다.
“시집살이는 안 하겠네.”
온객행이 주자서의 옆 얼굴을 보았다. 온객행은 물으려고 하다 말았다. 그가 묻지 않았으니 온객행도 묻지 않기로 했다. 다시 주자서의 허리를 더 바짝 끌어안았다.

주자서가 단지를 들어 술을 더 마시고 물었다.
“근데 하늘을 나는 거, 나는 못해?”
온객행이 주자서의 손목을 가져가 맥을 짚듯이 잡아 보았다. 느껴지는 기운에서 알 수 있다. 주자서에게는 내공도 내단도 없다. 온객행이 고개를 흔들었다. 주자서가 덤덤하게 결과를 받아들였다.
“그거 할 수 있으면 좀 멋있을 거 같아.”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얼굴을 붙이며 귓가에 속삭였다.
“누구에게 멋있게 보이고 싶어서?”
주자서가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나에게, 스스로에게. 너 정말 너무 매달린다. 내가 그렇게 좋아?”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어디에 가둬 두고 싶어. 아무도 못 보게. 나만 볼 수 있게.”
주자서가 몸을 떨며 말했다.
“우와, 그거 좀 섬뜩하다.”
주자서가 온객행에게 거리를 벌리며 말했다.
“생각만 해. 입밖으로 내지 마. 그건 진짜 싫다.”
온객행이 울상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안 할게. 근데 진심이야. 정말 그러고 싶어.”
주자서는 무릎을 끌어안고 한동안 대답이 없다.

주자서가 무릎에 고개를 기대 온객행을 보며 물었다.
“너는 내가 왜 좋아?”
온객행이 주자서의 고개에 맞춰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
“잘 생겼어.”
주자서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잘 생겼지. 또?”
온객행이 점점 얼굴을 붙이며 말했다.
“다정하고 재밌어. 너랑 있을 때는 다른 건 잘 생각이 안나.”
주자서가 눈을 굴리며 말했다.
“다정한 걸까? 재미있는 것도 잘 모르겠는데…”
온객행이 쪼그리고 앉은 주자서를 팔로 감싸 안으며 말했다.
“너무 좋아.”
주자서가 무릎에 얼굴을 묻고 어깨를 떨며 웃었다.
“그래?”
온객행이 고개를 숙여 드러난 뒷덜미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응. 뭐든 다 해주고 싶어.”
주자서는 작게 한숨을 쉬고 고개를 들었다. 어스름한 황혼 끝에 걸려 있던 상현달마저 진다. 주자서는 고개를 돌려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온객행을 향해 웃었다. 그 웃음은 어쩐지 억지로 만든 것 같기도 하고 슬픈 것 같기도 해서 온객행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양연은 자신의 입을 찢고 사술을 써서 웃음을 멈추지 않게 만든 백명을 찾아 죽였다. 백명은 원래 무공이 출중하지 못했기 때문에 귀곡을 나오면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얼마 없었다. 양연은 백명과 함께 있던 설비에게 물었다.
“곡주가 너를 잡아 죽이겠다고 사람을 풀었어.”
설비가 놀라며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요? 내가 이 곳에 백명을 데리고 온 것은 곡주가 시킨 일인데!”
양연이 ‘히히히’ 웃으며 말했다.
“곡주가 자네 동생을 잡고 있는 것은 아는가?”

설비가 크게 놀라며 말했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요?”
양연이 웃으며 말했다.
“진광전에 숨겨 놓은 것 까지는 좋았는데, 백명이 그 아이를 시켜 적사귀에게 독을 타게 했다더군.”
설비가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것 벌떡 일어나자 보아가 코웃음 치며 말했다.
“만약 적사귀 밑에서 살아 남는다면 그자도 이름을 받겠군.”
양연이 의아하다는 듯이 보아를 보았다. 설비가 보아에게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바보로 죽는 것보다, 바보로 사는 것이 낫지.”
보아가 양연에게 말했다.
“개심귀가 되었으니 주변에 둘 사람은 고르시오.”
그리고 자리를 떠났다. 설비가 보아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저놈도 속이 아주 시커멓구먼.”
양연이 웃으며 말했다.
“히히히. 귀곡에서 속이 까맣지 않은 자가 어디 있소? 히히히.”

설단은 잡귀가 가져온 목간을 읽다 부러뜨려 버렸다. 필안과 무구는 어디에 갔는지 요 며칠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개심귀는 설비를 잡으러 귀곡을 나갔다가 화를 당했다. 온가놈은 적사귀를 만났다고 했다. 그가 곡주의 자리에 앉고 이제 막 일년이 지났을 뿐인데, 벌써 고오와 황작, 그리고 백명이 죽었다. 그동안 제일 큰 세력을 가지고 있던 설단의 자리도 바람 앞에 등롱이 되고 말았다. 필안과 무구가 원해서 자신을 따르지 않는 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어디에 갔길래 둘 다 보이지 않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사라지기 전에 온가놈을 만났다면 무상귀의 자리를 놓고 싸우고 있을 텐데 그렇다면 어째서 자신을 찾아오지 않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무상귀는 하인을 시켜 박정부에 기별을 넣었다. 아쉬운 사람이 먼저 숙이고 들어가는 법이다. 나부몽은 출신이 귀족이었기 때문에 다른 귀신들이 함부로 할 수 없었다. 그녀는 보통 사내보다 배로 똑똑했기 때문이다. 힘의 균형이 깨지고 세태를 파악할 수 없을 때에는 일단 목숨을 부지하고 있으면 모든 것이 정리된 다음을 도모할 수 있는 것이다. 무상귀는 그녀가 새로운 염귀에 대한 정보를 마음에 들어 했으면 했다.


무릎에 고개를 묻고 주자서가 어눌하게 말했다.
“나는 진짜 대전에 있는 거 싫어.”
온객행이 주자서의 옆에 어깨를 붙여 앉고 말했다.
“응. 나도.”
주자서가 고개를 들고 다시 말했다.
“이… 이 매두홍 쓰는 것도 싫어!”
그리고 옆에 놓았던 조면사를 멀리 던졌다. 조면사는 주자서의 손 끝에서 나풀나풀 떨어져 다시 주자서의 발치로 돌아왔다. 주자서는 그것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아이 씨! 짜증나!”
하고 투정을 부렸다. 온객행이 조면사를 주워서 소매에 넣고 말했다.
“그래도 써야 해. 널 위한 거야.”
주자서가 입술을 앞으로 쭉 내밀고 말했다.
“나도 알아. 다 나를 위해서 그러는 거지?”
안고 있던 무릎을 풀어 앉고는 입고 있는 옷의 소매를 펄럭이며 말했다.
“이 옷도, 전부. 내 얼굴을 알아볼 수 없도록.”
온객행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주자서가 조금 훌쩍이며 말했다.
“나도 알고 싶어. 누가 나를 여기로 보냈을까? 귀왕, 여기는 지옥이야?”
온객행이 슬프게 웃으며 말했다.
“응. 여기는 지옥이야.”
주자서가 몸을 돌려 온객행을 덥석 끌어안으며 말했다.
“우리 도망가자.”
온객행이 ‘허’하고 웃으며 주자서를 마주 안았다. 주자서가 온객행의 몸을 흔들며 말했다.
“우리 도망가자. 너도 귀왕 그만하고, 나도 염귀 그만하고.”
온객행은 정말 그러고 싶어서 주자서를 더 꽉 끌어안았다. 주자서가 온객행의 어깨에 고개를 묻고 말했다.
“그럼 다 줄게.”
온객행이 주자서의 귓가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나도 그러고 싶어. 나도 도망가고 싶어.”

주자서가 온객행을 뒤로 밀었다. 온객행은 주자서가 하는 대로 뒤로 밀리다 결국 풀썩 바닥에 누웠다. 주자서가 온객행의 얼굴 옆에 팔을 놓고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이건 좀 새롭다.”
온객행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주자서가 입술을 붙여왔다. 주자서가 먼저 입술을 붙여 오는 것은 처음이라 온객행은 기분이 얼떨떨했다. 주자서는 온객행의 입술을 핥다가 입안으로 혀를 넣었다가 망설이더니 입술을 떼고 반응이 없는 온객행을 보았다. 온객행은 날이 어두워 주자서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이 아까웠다.

주자서가 온객행의 이마에 코에 뺨에 입술을 맞췄다. 온객행은 간지러워서 조금 웃었다. 주자서가 한참 입을 맞추다 입을 떼고 말했다.
“왜… 왜… 너는 기분 안 좋아?”
온객행이 팔을 들어 주자서의 얼굴을 붙잡았다. 주자서의 팔이 풀썩 꺾이더니 온객행 옆에 같이 누웠다. 주자서는 뺨을 온객행의 손에 기대며 말했다.
“얼른…”
온객행은 손에 잡힌 주자서가 사랑스러워서 주자서가 한 것처럼 이마에 코에 뺨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주자서도 간지러운지 입꼬리가 올라갔다. 온객행이 얼굴을 붙여 주자서의 입술을 소리가 나게 빨았다. 주자서의 입에서 작은 탄식이 터졌다. 온객행은 그 탄식마저 아까워서 얼른 입을 붙였다. 주자서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것을 가지고 싶다는 듯이 그의 입술을 입안을 탐했다.

온객행은 흥분해서 주자서의 입 주변은 물론 목덜미도 물고 빨았다. 주자서는 처음에는 조금 바르작대더니 곧 별 반응이 없었다. 그것을 허락으로 받아들인 온객행이 주자서의 앞섶을 잡아 벌리는 데도 주자서는 가만히 있었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몸 위에 올라타며 그의 앞섶에 손을 집어넣었다. 손끝에 닿는 맨 살에 기분이 좋아 온객행은 자기도 모르게 끙끙댔다. 그에 비해 아래에 누운 사람은 별 반응이 없어 온객행이 고개를 들어 주자서를 보았다.

주자서는 입술을 살짝 벌린 채로 잠이 들어 있었다. 온객행은 정염(情炎)이 일어 나쁜 마음이 들었다가 맥이 풀려서 주자서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아. 정말 너는 뭘까?”
온객행이 자리에 일어나 앉으며 누워 있는 주자서를 보았다. 온객행의 손속에 다 흐트러진 앞섶이 야하다. 온객행은 한참 주자서의 속살을 보고 있다가 앞섶을 다시 여며주었다. 주자서 옆에 놓인 주자서가 마시던 술동이를 집어 들었다. 거의 남지 않았다. 온객행은 자기 몫의 단지를 들어 목을 축였다. 그러다 누워있는 주자서를 일으켜 끌어안았다. 온객행은 아무리 몸을 붙이고 있어도 느껴지는 간극을 줄일 수 없어 답답하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안고 돌아왔을 때 박정부의 거처에는 고상과 목란이 있었다. 축 늘어진 주자서를 보고 놀란 두사람이 그에게 다가왔다. 온객행이 침상에 주자서를 조심스럽게 올려 놓자 고상이 주자서의 코 아래에 손가락을 대 보고는 목란을 향해 고개를 흔들었다. 온객행은 고상이 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가 ‘하’ 하고 코웃음 쳤다. 고상이 웃으며 말했다.
“주인, 망서가 벌써 싫어 지신 거예요?”
온객행이 침상에 있는 주자서의 장포를 벗기는 목란을 물리고 스스로 주자서의 옷을 벗겼다. 목란은 흐트러진 주자서의 앞섶을 보고 온객행과 주자서를 번갈아 보다가 받은 장포를 걸어 놓고 방을 나갔다. 고상이 온객행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주인, 망서는 귀신이 아니라 아직 귀곡을 잘 몰라서 그래요.”
온객행은 고상이 역성을 드는 것이 신기해 주자서의 몸에 이불을 덮고 고상을 보았다.

고상이 웃으며 말했다.
“아이, 주인. 망서 같은 애가 또 어디 있겠어요. 다정하고 박정부 하인들이랑 친하게 지내면서 건드리지도 않잖아요. 진짜 좋은 애예요.”
온객행이 침상에 걸터앉아 주자서의 뺨을 쓸며 말했다.
“알아. 나도.”
고상이 온객행의 시중을 들며 말했다.
“그니까 나중에라도 질리면 죽이지 말고 어… 어디 가둬 놔요.”
온객행이 웃으며 고상을 보았다.
“그런 건 싫데, 말하지 말고 생각만 하래.”
고상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온객행이 일어나 장포를 벗었다. 고상이 다가와 온객행의 장포를 받으며 물었다.
“주인, 망서도 주인 좋아해요. 말을 안 하는 것뿐.”
온객행이 침상위로 올라가며 말했다.
“알아. 나도.”
고상은 온객행의 장포를 옷걸이에 걸어 놓고 처소를 나왔다. 나오는 길에 보았던 망서를 보는 온객행의 표정은 고상이 처음 보는 것이라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 고상은 그저 주인이 망서를 계속 좋아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4) 고시십구수 중 세번째
人生天地間 忽如遠行客 斗酒相娯樂 聊厚不為薄
인생이 천지사이에 사는 것은 홀연히 멀리 떠나는 여객과 같다.
한말 술로 서로 나누면서 즐기면 애오라지 충분하고 부족함이 없도다.

(5) 고시십구수 중 열세번째
年命如朝露 人生忽如寄 不如飲美酒 被服紈與素
이 세상을 사는 사람 생명은 아침이슬과 같구나. 인생은 홀연히 사라져 가고 마는 것, 그렇지 못 할 바에 생전에 맛있는 술과 좋은 의복을 입고 하루하루 즐겁게 지내는 것은 어떠할까?

穿越 第6

黑白無常 | 흑백무상

주자서는 그날 조금 일찍 눈이 떠졌다. 평소와 다르게 주자서가 오늘은 온객행의 가슴을 베고 있었다. 혹시 불편할까 싶어 몸을 움직이자 온객행의 팔이 주자서를 감싸 안는다. 주자서는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와서 온객행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조금 웃었다. 온객행이 다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더 자.”
주자서가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날씨가 조금 더워져서 붙어 있는 것이 조금 더웠지만 주자서는 온객행이 하는 대로 두었다. 주자서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온객행은 나가고 없었다. 주자서가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펴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언제 왔는지 목란과 유이가 방안을 정리하고 있었다.

주자서가 일어난 것을 보고 목란이 다가와 그의 이마에 손을 대며 물었다.
“망서, 이제 괜찮은가?”
주자서가 목란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이가 다가와 말했다.
“곡주께서 내치시면 꼭 우리에게 와야 해요. 망서는 사람으로 살 수 있으니까, 우리가 도와 줄게요”
주자서가 신발을 신으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곡주가 나를 내쳐?”
목란이 주자서를 대야가 있는 쪽으로 데려가며 말했다.
“여태 곡주가 데려온 아이들은 모두 죽었네.”
주자서가 세수하다 말고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목란을 보았다. 유이가 주자서의 얼굴에서 떨어지는 물을 닦으며 말했다.
“망서 같은 사람은 처음이지만…”

목란이 작게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곡주의 변덕이 언제 끓어오를 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목란이 주자서가 입고 있는 얇은 장포를 벗기며 말했다.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곡주가 시키는 대로 하고 있어. 기회를 봐서 도망치게 해 줄게.”
주자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떨떠름하게 서 있었다. 유이와 목란이 옷을 가져와 주자서에게 입혔다. 주자서가 입혀지는 옷을 보며 말했다.
“아… 오늘은 이 옷을 입어야 해요?”
평소에 입는 가벼운 장포가 아니라 검은색 장포에 붉은 색실로 화려하게 수 놓은 옷은 그동안 주자서가 귀곡에 와서 입었던 옷들과는 질부터 달랐다. 유이가 붉은 색 얇은 천을 내오며 말했다.
“곡주께서 망서를 대전으로 들이라고 하셨어요.”
주자서가 목란을 보며 울상을 짓자 목란이 유이가 가져온 천으로 주자서의 얼굴을 덮으며 말했다.
“새신부처럼 아무것도 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하고 있게.”
유이가 주자서에게 씌워진 천을 다시 벗기며 그를 면경 앞에 앉혔다.

유이가 주자서의 얼굴에 연지를 바르며 말했다.
“망서는 살결이 정말 곱다.”
주자서가 설핏 웃으며 말했다.
“젊어서 그렇지. 잘 자고, 잘 먹으니까 좋아진 거야. 예전엔 피부과도 다녔었는데…”
목란이 인상을 쓰며 다시 되물으려는 유이를 멈췄다. 목란이 주자서의 머리를 틀어 올리며 말했다.
“앞으로는 입을 조심하는 것이 좋겠어.”
주자서가 고개를 들어 목란을 보며 물었다.
“누님?”
동곳으로 머리를 고정하고 은으로 만든 비녀를 꽂으니 귀한 대갓집 귀공자처럼 보였다. 그 모습에 목란은 오히려 입안이 썼다. 유이가 벗겼던 조면사(罩面紗)를 다시 씌우며 말했다.
“내가 아는 잡귀에게 부탁해 두었으니, 대전에 도착해서는 함부로 움직이지 말고 곡주 옆에 꼭 붙어 있게. 그게 곤란하면 절대 귀왕좌 근처를 벗어나지 말게.”
유이가 어디서 났는지 작은 은장도가 달린 요패를 주자서의 요대에 달아 주며 말했다.
“혹시 모르니까 일단 가지고 있어요.”
주자서가 묵직한 칼을 만져보았다. 칼집을 빼내 보니 날이 잘 벼려져 있다.

목란은 시야가 불편한 주자서의 소매를 잡고 그를 문 밖으로 이끌었다. 유이 역시 반대쪽 소매를 잡고 말했다.
“우리는 대전에 함부로 갈 수 없어서 같이 못 가니까 조심해요.”
주자서는 그제야 자신이 하고 있는 이 차림새가 정말 시집가는 새 신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란의 손에 이끌려 온객행에게 들려서 넘었던 박정부의 문을 보름만에 처음으로 넘었다. 박정부 근처가 소란스러웠다. 염귀를 구경하러 잡귀들이 몰린 것이다. 조면사를 쓰고 가마 같은 것에 앉혀진 주자서가 자신의 소매를 놓는 목란의 손을 잡았다.
“목란누님.”
목란은 주자서의 손을 잡아 빼고 주자서의 손을 두어번 두들긴 다음 말했다.
“망서.”
주자서는 정말 시집을 가는 아가씨의 마음이 되어 목란누님의 손을 놓고 싶지 않았다. 왠지 이 손을 놓으면 주자서가 알지 못하는 곳에 홀로 남겨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가마는 주자서를 기다려 주지 않고 어디로 인가 향했다. 주자서는 앉은 자리에서 몸을 틀어 점점 멀어지는 박정부를 보았다. 조면사에 가려져 새빨갛고 아렴풋한 목란과 유이를 보았다.

주자서는 살짝 고개를 숙이고, 유이가 달아준 요대의 은장도를 손에 쥐었다. 대전으로 가는 길 내내 잡귀들은 주자서에게 이런저런 말을 던졌다. 멸시와 희롱의 말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왜 인지 그들이 하는 말은 주자서가 아니라 박정부를 향한 말 같아서 화가 나고 답답했다. 왜 희상귀가 박정부의 하인들을 함부로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남자인 자신도 박정부의 옷을 입은 것만으로 이런 경멸과 모욕을 당하는데 하물며 소녀들은 어떨까? 말로만 당하면 다행일 것이다. 주자서가 착잡해하는 동안 가마는 대전에 도착했다. 온객행은 귀왕좌에 앉아 서신을 읽고 있었다. 근처에는 박정부에서 보았던 하인 몇 명과 귀면을 쓴 잡귀 몇이 보였다. 조면사 때문에 시야가 희미한 주자서가 가마에서 내리지 않고 있자 하인이 내려와 주자서를 일으켰다.

주자서가 자리에서 일어나 곡주 곁으로 갔다. 주자서는 키가 큰 편인데 관을 하여 주변에 있는 사람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다. 주자서가 검은색 옷을 입고 붉은 천을 쓰고 단상에 서 있으니 그 기운을 무시할 수 없었다. 하인들은 주자서의 소매를 놓고 다시 처음에 자신들이 있던 자리로 돌아가 버렸다. 주자서는 멀뚱히 귀왕좌 근처에 서서 주변을 보았다. 대전이라고 할 만큼 공간은 넓었지만 아무것도 없어서 황량했다. 온객행은 주자서가 온 것을 분명히 봤을 텐데 부르지 않는다. 그래서 주자서도 말없이 그렇게 계속 서 있었다. 주자서가 한참 손이 심심하다고 생각하던 차에 누군가가 대전 안으로 들어왔다. 그제야 온객행은 염귀를 발견했다는 듯이 염귀의 손목을 잡고 귀왕좌에 앉혔다.

주자서가 조면사 너머로 온객행을 보았다. 온객행은 서신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방금 들어온 흑무상과 백무상에게 인사했다.
“필안(必安), 무구(无救).”
그들은 온객행의 목소리에 무릎 꿇고 손을 모아 인사했다.
“곡주!”
온객행이 읽던 서신을 주자서의 손 위에 올려 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설형의 아들이 아주 말썽쟁이인 듯합니다.”
백무상과 흑무상이 서로를 보더니 다시 고개를 숙였다. 온객행이 단상을 내려가며 말했다.
“아니면 설형이 말썽인 걸까요?”
온객행이 점점 다가오자 그들은 무릎 걸음으로 물러나며 말했다.
“곡주! 하명하소서.”
온객행이 ‘하하하’ 웃으며 말했다.
“뭘 그렇게 겁을 내세요? 겁날 일을 하셨습니까?”
흑무상이 넙죽 엎드리며 말했다.
“설비는 설단의 아들이 아닙니다.”
온객행이 ‘하’하고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것을 모르는 잡귀도 있단 말입니까?”
백무상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
“진짜 설단의 아들은 제가 죽였습니다.”

온객행이 안타깝다는 듯이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무슨 원한으로 아들까지 죽이셨습니까?”
백무상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
“저희가 어떻게 흑백무상이 되었는지 잊으셨습니까?”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것을 어떻게 잊어요? 덕분에 한담 구경을 하였는데.”
백무상이 다시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설단의 머리를 가져오겠습니다.”
온객행이 뒤돌아 뒷짐을 지며 말했다.
“흠.”
흑무상 역시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지금 설단 옆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저 늙은 노인네일 뿐입니다!”
온객행이 발걸음을 다시 단상으로 옮기며 말했다.
“이걸 어쩐다…”
온객행의 작은 탄식에 흑무상과 백무상 모두 고개를 들었다. 온객행이 돌아서며 말했다.
“무상귀 자리는 하나 에요.”
흑무상과 백무상이 서로를 마주보았다. 온객행은 다시 발걸음을 돌려 귀왕좌로 올라가며 말했다.
“돌아가 보세요. 좋은 소식 기다리겠습니다.”
그리고 귀왕좌에 앉아 있는 염귀에게 몸을 붙여 앉았다.

주자서는 온객행의 낯선 모습이 겁이 나서 그를 뿌리치고 싶었지만, 여기로 오기 전에 목란이 해주었던 이야기가 생각이 나서 가만히 온객행의 품에 안겼다. 온객행의 손이 주자서의 허리를 감싸고 그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며 작게 한숨 쉬었다. 흑무상과 백무상은 그런 온객행의 모습을 힐끔 보더니 대전을 나갔다. 다시 텅 빈 대전 안에 하인 몇과 주자서, 온객행이 남았다. 주자서는 자기도 모르게 하얗게 손마디가 질리도록 서신을 꼭 쥐고 있었다. 온객행이 무릎에 다소곳이 올려진 손에 힘이 들어간 것을 보고 웃으며 주자서의 손을 잡았다. 온객행의 손은 평소와 다르게 조금 서늘해서 더 낯설었다. 주자서가 몸을 흠칫 떨자 온객행이 낮게 목소리로 웃었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귓가에 얼굴을 가져다 대고 속삭였다.
“아서, 뭘 겁내는 거야?”
주자서가 작게 고개를 흔들며 대답이 없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뺨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우리 염귀는 이렇게 겁이 많아서 어쩌지?”
주자서가 고개를 돌리려고 하자 온객행이 주자서의 턱을 잡아 돌리며 말했다.
“우리 염귀는 대체 누가 보냈을까?”
온객행은 조면사 너머로 흔들리는 주자서의 눈동자를 보고 조금 안심했다. 어쩌면 주자서는 온객행이 바라는 대로 아무것도 모를 수도 있다는 희망이 끓어올랐다가,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디 인지 깨닫고 화가 났다. ‘그럴 리 없지, 절대 그럴 리 없어.’ 온객행은 그렇게 생각하며 염귀의 얼굴을 놓아주었다. 그리고 다시 그의 어깨에 기대 눈을 감았다. ‘어떤 놈인지 몰라도 정말 대단한 놈이야. 누구인지 정말 궁금하군.’ 온객행은 굳어진 주자서의 몸이 마음에 안 들어서 일부러 허리를 더 끌어당겨 안았다. 주자서는 싫은 내색이 가득하면서 밀어내지 않았다. 그게 또 온객행의 마음을 화나게 만들었다.

온객행은 서신과 목책을 보며 귀왕이 하는 일을 했다. 주자서는 일부러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 보지 않기 위해 생각을 비웠다. 귀신이 하는 일을 알아서 좋을 것 없다고 생각했고, 지금 귀왕의 일을 하는 온객행은 주자서가 아는 어리고 여린 온객행과는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박정부의 여귀 하나가 염귀의 장부와 목간을 들고 왔다. 주자서는 손에 쥐어진 장부와 목간을 보고 차를 마시며 일하고 있는 온객행을 보았다. 작게 한숨 쉬고 귀왕좌 옆에 있는 작은 탁상에 장부와 목간을 놓았다. 온객행이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있다가 물었다.
“요즘 박정부는 어떠합니까? 염귀.”
주자서는 온객행이 묻는 것이 장부의 일인지 아니면 자신의 일인지 몰라서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 온객행은 또 유순한 주자서가 미워서 작게 ‘흥’ 코웃음 치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곡주 옆에 앉아서 마시지도 먹지도 못한 주자서는 짜증이 났다. 편히 있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뭘 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니라 답답하고 목이 말랐다. 귀면을 쓴 귀신들이 들어와 주자서가 모르는 말을 하고 나가면 온객행은 머리가 아프다는 듯이 관자놀이를 집고 한참 생각을 했다. 그러다 옆에 있는 하인을 불러 무언가를 지시하고 서신을 쓰기도 했다. 또 그러다 주자서를 끌어안고 어깨에 고개를 기대고 있다가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일을 했다. 고상이 찬합을 들고 음식을 가지고 왔을 때도 온객행은 별말없이 음식을 조금 먹다 말았다. 주자서 역시 조면사를 쓰고 먹기는 힘들어서 그냥 앉아만 있었다. 고상이 주자서에게 눈치를 주었지만 주자서도 딱히 고상을 도와줄 처지는 아니 라서 고상이 차라도 한잔 주기를 내심 바라고 있었다. 고상이 작은 경단을 주자서의 손에 쥐어 주며 말했다.
“망서! 주인 옆에 잘 붙어 있어.”
고상이 가려는 것을 소매를 붙잡아 주자서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상, 나 언제까지 여기 있어?”
고상이 주자서의 손을 뿌리치며 온객행 쪽으로 턱짓했다. 그리고 가지고 왔던 찬합을 정리해서 대전을 나갔다.

주자서가 손에 든 경단을 만지작거리기만 하고 입에 넣지 않고 있는 것을 본 온객행이 곁으로 다가와 주자서의 어깨에 팔을 둘러 안으며 물었다.
“왜 안 먹어?”
온객행의 목소리가 다정해서 주자서는 금방 억울해졌다. 주자서가 다시 대답없이 고개를 숙이자 온객행이 얼굴을 붙이며 물었다.
“왜? 배 안 고파?”
주자서는 작게 고개를 흔들었다. 온객행은 주자서가 풀이 죽은 것이 마음에 안 들어서 다시 물었다.
“왜 그래?”
주자서는 또 대답 없이 작게 고개를 흔들다 살짝 시선을 들어 온객행을 보았다. 조면사 너머로 온객행이 저를 보는 것을 느꼈는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목말라.”
온객행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전에서 주자서가 마실 수 있는 것은 없다. 대부분의 차나 물에는 독이 들었기 때문이다. 온객행은 ‘흠’ 하고 소리를 내고 주자서를 놔주었다. 주자서는 온객행이 다시 자기 자리로 가서 앉는 것을 보았다. 바로 옆에 놓인 찻잔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데도 온객행은 다시 서책을 읽기 시작했다.

대전 안으로 무상귀 설단이 들어왔다. 온객행은 주자서에게 더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주자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귀왕 옆에 털썩 앉았다. 주자서의 투정을 읽은 온객행이 올라가는 입꼬리를 찻잔으로 가렸다. 설단이 인사했다.
“곡주.”
온객행은 설단이 온 것은 관심이 없다는 듯 주자서의 허리를 안고 귀에 속삭였다.
“목말라?”
주자서가 단상 아래 있는 설단의 눈치를 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설단이 곡주의 눈치를 보며 입을 달싹였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자 설단이 입을 열었다.
“곡주,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온객행은 작게 인상을 쓰고 말했다.
“설형, 업이 이렇게 많아서야…”
무상귀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곡주, 무슨 말씀이신지?”
온객행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정말 아무것도 몰라서 그러십니까?”
그리고는 주자서의 손을 희롱했다. 꼭 쥐었다가 깍지도 꼈다가 쓸기도 했다. 남자의 손이라 작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온객행보다 크지도 않았다. 조금은 땀이 밴 듯 따뜻한 손이 귀여워서 온객행이 부스스 웃었다. 설단이 인상을 쓰며 주변을 둘러보자 온객행이 말했다.
“설형은 필안과 무구가 원해서 설형 밑에 있는 줄 아셨습니까?”
설단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곡주?”
온객행이 혀를 차며 작게 웃었다.
“전부 다 말로 해드려야 아시는 겁니까? 설단이 뭔가 깨달은 듯이 ‘아’하고 다시 고개를 조아렸다.

무상귀가 기분 나쁘게 웃으며 말했다.
“무상귀의 자리는 하나지요.”
그제야 온객행이 주자서의 손을 놔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래야 우리 설형이지요. 설비의 일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개심귀도 곧 바빠질 겁니다.”
무상귀가 더 깊게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곡주께서 필요한 일은 없으십니까?”
온객행이 무상귀 근처로 가서 서며 물었다.
“요즘 급색귀는 어디서 아이들을 데려옵니까?”
무상귀가 잠시 생각하더니 답했다.
“청성곡 아래에 포주에게서 삽니다.”
온객행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산다고요? 제가 들은 이야기와 다르군요.”
무상귀가 작게 고개를 흔들며 답했다.
“알아보겠습니다.”
온객행이 설단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설형, 이제 막 곡주가 된 제가 뭘 알겠습니까? 설형께서 가르쳐 주세요.”
설단이 억지로 입매를 끌어 올려 웃으며 말했다.
“네… 그렇습니다. 곡주.”
온객행이 단상을 오르며 말했다.
“이제 가 보세요. 바쁘신 분의 시간을 오래 뺏을 수야 없지요.”
무상귀가 작게 인사하고 급하게 대전을 나갔다. 온객행이 작게 한숨을 쉬며 귀왕좌에 털썩 앉았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손을 다시 잡으며 말했다.
“다시 박정부로 돌아 갈래?”
주자서가 고개를 들었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양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아서, 누가 보냈는지 말해. 그럼 내일부터는 여기 안 와도 돼.”
온객행은 조면사 때문에 주자서의 표정을 볼 수가 없었다. 오히려 잘 된 일이다. 표정을 보면 또 마음이 약해져서 주자서가 하자는 대로 모두 해주었을 것이다. 주자서가 대답이 없자 온객행이 주자서의 손을 끌어당기며 말했다.
“누가 보냈는지 말 안 하면 내일부터 매일 이렇게 내 옆에 둘 거야.”
주자서는 억울한 마음이 복받쳐서 조금 울먹였다.
“정말 몰라…”
온객행은 울먹이는 주자서의 목소리가 애달파서 와락 끌어안고 말했다.
“괜찮아. 아무것도 안 할 거야. 누구인지만 말해.”
주자서가 온객행을 마주 안으며 말했다.
“정말이야. 정말 누가 보내서 온 거 아니야. 나도 내가 왜 여기 있는지 잘 모르겠어.”
온객행은 주자서의 말을 믿고 싶었다. 그의 가슴은 이미 믿고 있는지도 몰랐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놔주며 말했다.
“그럼 내일부터 잘 부탁해.”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하인을 불렀다. 주자서는 온객행을 따라 일어나 그의 뒤를 따랐다.

대전에서 박정부로 돌아가는 길은 주자서 혼자 가마를 타고 왔을 때와 분위기가 달랐다. 사람의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 거리에 온객행과 주자서의 옷이 스치는 소리만 들렸다. 주자서는 양 옆에서 자신의 소매를 잡고 시중을 들고 있는 하인들은 어떻게 소리를 내지 않고 걷는지 궁금했다. 주자서는 하인들이 이끄는 대로 얌전히 끌려가서 박정부의 응접실에 도착했다. 온객행은 하인이 들고 있던 장부와 목간을 희상귀에게 돌려주며 앞으로 염귀는 대전에서 자신을 보좌할 것이라고 통보했다. 희상귀는 아쉬운 듯했으나 별 말 하지 않았다. 조면사를 쓰고 덩그러니 서 있는 주자서가 가엾어서 희상귀는 소매를 펄럭이며 염귀를 물러가게 했다. 온객행이 따라 나가려고 하자 희상귀가 차를 대접하며 온객행을 붙잡았다.

하인들이 주자서의 소매를 잡고 그를 거처로 데려갔다. 방안에 장지문이 닫히자 곧 조면사가 벗겨지고 목란의 얼굴이 나타났다. 주자서는 마음이 놓여서 그대로 목란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우는 소리를 했다.
“목란누님. 나 너무 목말라요.”
목란이 작게 웃으며 주자서의 등을 쓸었다.
“고생했네.”
유이가 얼른 차를 따라 가지고와 주자서에게 내밀었다. 주자서는 얼른 찻잔을 받아 마셨다. 평소에 쓰다고 생각했던 차가 달다. 주자서가 다 비운 찻잔을 다시 내밀며 말했다.
“유이. 나 한잔만 더 줘.”
유이가 웃으며 찻잔을 들고 다가왔다. 목란은 주자서가 입고 있는 검은색 장포를 벗겨 걸어 놓고 그를 탁자로 데려가 앉혔다. 주자서는 연거푸 차를 마시고 그제야 허기가 도는지 먹을 것을 찾았다. 유이가 차주전자를 내려놓고 나가면서 말했다.
“망서, 조금만 기다려요 내가 가서 음식을 가져올게요.”
주자서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같이 가자! 오늘 하루 종일 앉아만 있었어.”
목란이 주자서를 막으며 말했다.
“망서.”
유이가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고는 방을 나갔다.

주자서가 목란의 손에 다시 의자에 앉았다. 목란이 말했다.
“이제 너는 아무데도 못 가.”
주자서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 에요?”
목란이 주자서 옆에 앉아 작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곡주께서 주자서의 발을 묶었 노라고. 이제 곡주가 가는 곳 아니면 그 어느 곳도 혼자서 갈 수 없다고. 주자서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갑자기…갑자기 왜?”
목란이 주자서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망서, 정말 기억 나는 것이 없는가? 잘 기억해 보게.”
주자서가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대체 뭘 기억하라는 거에요. 정말 아무것도 기억이 안나는데…”
목란이 주자서의 손을 꼭 잡고 놓아주었다.

목란이 일어나자 주자서는 목란이 가려는 줄 알고 일어나서 목란을 붙잡았다.
“나는 첩이었데요. 아니, 첩이었던 것 같아요.”
목란이 주자서를 마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첩?”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지금 기억 나는 거는 그거 말고 다른 건 없어요.”
목란이 곰곰이 생각하며 말했다.
“남첩이었다는 거야?”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목란 역시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익주에서 남첩은 드물어. 알겠어. 내가 알아볼 게. 너무 걱정하지 마라.”
목란이 나가려고 하자 주자서가 망설이다 목란의 소매를 잡았다.
“누님. 가지 마세요. 혼자 있기 싫어요.”
목란이 소매를 털어 뿌리치며 말했다.
“나는 곡주 손에 죽고 싶지 않네.”
주자서가 웃으며 말했다.
“그런 거 아닌 거 알면서.”
목란이 주자서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아상을 불러 줄게. 아상까지는 뭐라고 못 하실 거야.”
주자서가 목란을 따라 나가자 곧 장지문 옆에 서 있던 다른 하인이 주자서를 막았다. 목란이 작게 혀를 차고 주자서를 보고 고개를 끄덕인 다음 방을 나갔다.

주자서는 온객행의 태도가 달라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오늘 아침까지만해도 같이 있어서 좋았는데 오늘은 대전에서 하루 종일 같이 있었는데 좋기는커녕 불편하고 낯설기만 했다. 주자서가 얼굴을 양손에 묻으며 크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배고파.”
뭔가 생각이 많았던 것 같은데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고 허기만 졌다. 곧 장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고 주자서는 유이가 밥을 들고 들어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허기가 져서 고개를 들 힘도 없는 주자서는 탁자에 머리를 기대고 엎어졌다. 주자서의 얼굴 앞으로 찬합이 놓여 지고, 그 찬합을 들고 온 사람을 보니 온객행이었다. 주자서가 온객행의 얼굴을 보고 인상을 쓰자 온객행이 ‘허’하고 웃으며 자리에 앉아 음식을 꺼냈다. 주자서가 고개를 반대로 돌려 엎드렸다. 온객행이 찬합을 바닥에 내려놓고 말했다.
“먹어.”
온객행이 젓가락질하는 소리가 들리고 가져온 음식에서 맛있는 냄새가 났다.

주자서가 힘겹게 고개를 들고 젓가락을 쥐었다. 그러다 고상이 생각나서 말했다.
“귀왕,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러운 사람이 누군지 알아?”
온객행은 주자서의 호칭이 마음에 안 들었는 지 대답없이 음식을 먹었다. 주자서가 앞접시에 음식을 덜며 말했다.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러운 사람은 말이야…”
온객행이 말했다.
“입이 무겁고 마음이 여린 사람.”
주자서가 음식을 덜다 말고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나는 입 안 무거운데…?”
온객행이 주자서의 말에 미소 지으며 말했다.
“허리가 가늘고 다리가 긴 사람?”
주자서가 접시와 젓가락을 내려놓고 허리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내 허리가 가늘어?”
온객행이 부스스 웃으며 물었다.
“나에게 사랑스러운 사람이고 싶어?”
주자서는 당황한 얼굴을 하더니 곧 얼굴이 빨개져서 대답이 없다. 두 사람은 말없이 음식을 먹었다.

穿越 第5

吊死鬼 | 적사귀

설비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박정부에 찾아오고 난 이후부터 귀곡에서 보이지 않았다. 온객행은 박정부의 여귀들이 그를 처리한 줄 알았다. 개심귀와 적사귀가 함께 일을 꾸미는 것이라면, 급색귀를 꼬드겨서 무상귀를 없애는 쪽이 더 이야기가 빠를 수도 있다. 온객행은 곰곰이 다음 수를 생각하며 주자서의 머리를 빗었다. 주자서는 서안 앞에 앉아 예의 희상귀가 새로 내준 장부를 매일매일 채워 넣고 있었다. 나름대로 어떤 법칙이 있는 것인지 붉은 색으로 칸을 나눠서 일별로 구분해 놓았다. 이런 것을 보면 이 치는 정말 어디서 글이나 읽던 서생일지도 모르겠다. 온객행이 불쑥 물었다.
“아서, 한담에 빠지기 전에 뭐 더 기억나는 거 없어?”
주자서가 서안에 찰싹 붙어서 집중하는 것인지 대답이 없었다. 온객행이 몸을 가까이 붙여 그의 어깨에 고개를 올려 놓자 주자서가 작게 한숨 쉬면서 말했다.
“애기야. 방해하면 안돼.”
주자서가 오늘 분의 숫자를 목간에 정리해서 적으며 말했다.
“아무것도 생각 안 나. 왜?”
그리고 고개를 돌려 등 뒤에 붙어 있는 온객행을 보았다.

온객행이 곰곰이 생각하더니 물었다.
“샤워(下卧; 아래에 눕다.)가 뭐야?”
주자서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뭐?”
온객행이 주자서의 허리에 팔을 감고 말했다.
“너가 하고 싶다고 했어. 샤워.”
주자서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기억 안 나는데… 근데 아마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닐 걸.”
온객행이 얼굴을 붙이며 물었다.
“그런 게 뭔데?”
주자서가 온객행을 흘겨보며 말했다.
“발랑 까져 가지고…”
온객행이 주자서의 등에 얼굴을 묻고 물었다.
“그래서 싫어?”
주자서가 다시 시선을 목간으로 돌리며 말했다.
“음…응. 조금…? 아마?”
온객행이 작게 웃으면서 말했다.
“조금만 싫어?”
주자서가 붓을 놓고 온객행을 밀어내며 말했다.
“또! 또, 형을 놀리지. 애기는 가서 귀왕의 일을 해.”
온객행이 주자서의 얼굴을 빤히 보더니 입을 앞으로 쭉 내밀고 눈썹이 축 처지더니 울상을 했다.

주자서가 그 얼굴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정말 애기네!”
주자서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온객행을 일으켜 세웠다. 주자서는 서안에 놓인 장부와 목간을 들고 온객행에게 말했다.
“나 주인한테 보고하고 올 테니까, 쉬고 있어.”
온객행이 주자서를 졸졸 쫓아가며 말했다.
“내일 가.”
주자서가 온객행의 팔을 토닥이며 말했다.
“애기는 기다리고 있어. 형이 가서 저녁도 가지고 올 게.”
온객행이 다시 입을 쭉 내밀자 주자서가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근데 목란누님이랑 유이는 어디 갔어?”
온객행이 주자서의 손을 잡고 말했다.
“내가 있을 때는 들어오지 말라고 했어.”
주자서가 인상을 쓰며 물었다.
“왜?”
온객행이 가깝게 다가서며 주자서의 등허리에 손을 올려 놓고 귓가에 속삭였다.
“네가 언제 마음 줄지 모르니까.”
주자서가 몸을 부르르 떨면서 말했다.
“진짜… 너는…”
주자서가 온객행을 올려 보며 말했다.
“너 나보다 키도 크네.”
온객행이 웃으며 주자서를 보았다.

주자서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 180넘는데 너는 키 몇이야?”
온객행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백팔십? 뭐가 백팔십이야?”
주자서가 웃으며 말했다.
“키, 신장! 이렇게 크니까 모델일도 했지.”
온객행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져가자 주자서가 재빨리 장지문을 열고 나가며 말했다.
“나 얼른 다녀올 테니까 쉬고 있어!”
온객행은 주자서를 잡는 것도 잊고 주자서가 한 말을 되 뇌였다.
“모델(模特; 모호할 모는 고서에서 간첩이라는 뜻으로 많이 사용된다.)?”
온객행의 머리 속이 시끄럽다. 세작(細作)이라는 뜻일까? 그렇다면 누구의? 주자서는 온객행이 박정부로 데리고 온 이후로 한번도 박정부 밖으로 나간 적이 없다. 만약 누군가의 세작이라면 목적이 대체 뭘까? 온객행이 낮게 목란을 불렀다. 곧 밖에서 목란이 안으로 들어왔다. 온객행이 없는 동안 주자서가 누구를 만나서 누구와 무슨 대화를 했는지 물었다. 작은 아이들부터 부엌과 홍화 밭의 어멈까지 그 수가 많다. 곧 고상이 찬합을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주인.”

고상이 찬합을 탁자 위에 내려 놓으며 말했다.
“오늘 개심귀가 귀곡 밖으로 나갔어요. 무슨 일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별로 좋은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온객행이 고상의 말을 듣고도 반응이 없자 고상이 찬합에서 음식을 꺼내며 말했다.
“아무래도 설비 그 놈을 따라 나간 것 같아요.”
온객행이 인상을 쓰며 물었다.
“설비가 죽지 않았어?”
그리고 목란을 보았다. 목란은 무릎 꿇고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 자가 데려온 잡귀는 모두 잡아 죽였지만 그는…”
온객행이 혀를 차며 고개를 돌리자 고상이 찻잔에 차를 따라 내밀며 말했다.
“아이, 주인. 걱정마세요. 설비 그 놈이 청성곡에 발을 들여 놓기만 하면!”
온객행이 찻잔을 받아 들며 고상을 보았다. 고상이 온객행의 눈치를 보며 음식을 권했다.
“주인. 어서 저녁 드세요. 배고프죠?”
온객행이 뭔가 먹을 생각이 없어 보이자 고상은 슬슬 눈치를 보며 목란을 일으켜 장지문으로 향했다.
“망서는 어디 갔어요? 망서나 찾으러 가야겠네.”
온객행은 비워진 찻잔을 탁자 위에 올려 놓고 주자서가 앉아 있던 서안으로 갔다.

방금 전까지 주자서가 사용했던 붓과 어제 썼다던 목간을 보았다. 붓으로 쓰는 것이 서툴다고 했다. 천축국의 숫자를 쓴다. 게다가 종종 그는 알 수 없는 말을 한다. 온객행이 생각에 잠겨 있는데 밖이 소란스러웠다. 온객행이 일어나 거처의 장지문을 열자 고상과 주자서, 목란과 유이가 장지문 앞에서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온객행이 문을 벌컥 열자 네 사람은 마치 잘못을 한 사람처럼 조용해지더니 고상과 목란, 유이가 주자서를 방 안으로 밀어 넣고는 자리를 피했다. 주자서가 다시 방 밖으로 나가려고 해서 온객행이 그의 어깨를 잡았다. 주자서가 잡힌 어깨를 한번 보더니 온객행에게 말했다.
“저녁은 같이 먹으면 좋잖아. 안 그래?”
온객행이 주자서의 손에 들려 있는 찬합을 빼앗아 들고 주자서의 손목을 잡고 탁자로 와서 의자에 앉혔다. 주자서가 순순히 온객행이 하는 데로 두었다.

온객행이 말이 없자 주자서도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왜 그래…?”
주자서가 작은 목소리로 묻자 온객행이 주자서를 마주 보았다. 처음 만났을 때 물에 흠뻑 젖어서 봤을 때와 비슷한 차가운 시선에 주자서가 몸을 웅크리며 말했다.
“왜? 왜 그래?”
온객행이 일어나서 주자서에게 다가왔다. 주자서가 놀란 듯 자리에서 일어나 거리를 벌리자 온객행이 작게 코웃음 치며 말했다.
“너 누구야? 누가 보냈지?”
주자서가 손을 앞으로 뻗어 온객행을 멈추며 말했다.
“모른다니까! 정말 몰라. 알겠어. 생각해 볼 게.”
주자서가 인상을 쓰며 머리에 손을 가져갔다. 주자서는 물에 빠지기 전의 상황을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분명히 막 더워지기 시작하는 햇살에 누군가의 별궁? 화원? 뒤죽박죽 머리속에서 정리되는 것이 없었다. ‘난간에 기대서 뭔가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누군가의 남총(男寵)이었나?’ 주자서가 작게 헐떡이며 머리를 부여잡자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다가와서 그의 어깨를 잡았다.

주자서의 머리속을 끈질기게 괴롭히는 무슨 기억이 있는데 주자서가 그 근처에 다가 가려고만 하면 뿌옇게 흐려진다. 주자서가 작게 신음하며 고개를 들자 주룩하고 그의 코에서 피가 흘렀다. 어깨를 잡고 있던 온객행이 놀라 주자서의 턱을 잡았다. 주자서도 곧 코피를 흘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는지 손으로 코피를 닦으며 말했다.
“나는 누군가의 첩이었나 봐.”
주자서가 희미하게 웃으며 온객행을 보다가 눈이 뒤집히며 풀썩 다리가 꺾였다. 온객행이 놀라서 쓰러지는 주자서를 품에 안았다. 온객행이 생각해보니 정말 이상하다. 맹파탕으로 정말 모든 기억을 잊을 수 있는 것일까? 온객행은 코피로 더러워진 주자서의 얼굴을 보았다. 피가 스미는 것이 싫어서 소매를 들어 코피를 닦았다. 닦이지 않고 더 스민다. 마치 사람을 죽이고 난 다음의 피처럼. 온객행은 피로 얼룩진 주자서의 얼굴을 보았다. 주자서의 얼굴은 피와 어울리지 않는다.


온객행은 진광전 안에 잡귀가 내온 차가운 차로 입을 헹구며 적사귀를 기다렸다. 곧 땀에 흠뻑 젖은 적사귀 길도가 들어왔다. 온객행이 심드렁하게 고갯짓으로 인사하며 말했다.
“길형, 오랜만입니다.”
적사귀가 잡귀에게 물을 부탁하며 온객행이 앉은 자리 옆에 털썩 앉았다.
“귀곡주께서 하찮은 진광전까지 어찌 발걸음 하셨습니까?”
온객행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전혼사는 어때요? 잘 만들어집니까?”
적사귀가 작게 한숨 쉬며 말했다.
“땔감을 구하는 게 제일 큰 일이지요.”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양연의 입을 찢어 놓은 것이 개심귀 백명이오?”
적사귀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런 일이 있었지.”
온객행이 찻잔을 다시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가 웃음을 멈출 수 없는 것 또한 개심귀가 한 짓이오?”
적사귀가 웃으며 말했다.
“웃음을 멈추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 무엇이라는 말이요?”
온객행이 심각한 척 목소리를 꾸며 말했다.
“요즘 귀곡에 제가 알지 못하는 독이 보여서 말입니다.”
그때 잡귀가 적사귀가 마실 물을 들고 나왔다. 온객행이 잡귀가 가져온 물을 빤히 보며 말했다.
“길형께서 물만 드신다는 것을 개심귀는 알고 있지요?”
개심귀가 손에 들린 물잔을 보고 다시 온객행을 보았다. 온객행이 고개를 들어 적사귀가 들고 있는 물을 힐끔 다시 보더니 말했다.
“백명이 어찌 개심귀가 되었는지 아시오?”

백명은 이전 개심귀의 심복이었다. 그는 전대 개심귀를 독살하여 그 자리에 앉았다. 개심귀는 무공이 높은 것은 아니었지만 입을 아주 잘 놀렸다.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요리조리 싸움을 피하며 다른 사람들을 이간질하는 것을 즐겼다. 그리고 그렇게 이간질하여 지금의 개심귀 자리도 얻게 된 것이다. 길도는 예나 지금이나 다른 사람의 관계는 관심 없었기 때문에 개심귀가 저의 무공을 이용하여 득을 보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애초에 길도에게 전 적사귀를 죽이라고 부추긴 것도 백명이다. 의심이라는 것은 대수롭지 않은 일도 두려워하게 만든다. 온객행은 귀곡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모든 일을 의심했다. 자신에게 주어지는 모든 것은 대가가 있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그 대가 없이는 아무것도 가질 수 없다. 온객행은 자리를 일어나며 길도를 떠 보았다.
“길형, 물은 끓여 드시는 게 좋습니다. 혹시 끓인 물의 색이 탁하면 생강을 드세요.”
적사귀가 자리에서 일어나 응접실을 나가는 온객행에게 물었다.
“내게 바라는 게 뭐요?”
온객행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말했다.
“전혼사의 완성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온객행은 그대로 나와 개심귀의 거처인 도산부(刀山府)로 향했다. 적사귀를 부채질해 놓았으니 이제 양연(楊然)을 꼬드기러 가야겠다.


주자서는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여기저기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선배들의 말에 따르면 천개정도 보면 그 중에 두세개는 원하는 배역이 아니어도 연락이 올 수 있다고 말이다. 간간이 들어오는 모델일로는 입에 풀칠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없는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서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그러다 아는 선배의 선배가 소개해준 작은 기획사에서 광고를 하나 찍었다. 그 동안 했던 일에 비해서 받은 금액이 너무 좋아서 주자서는 내심 그 기획사에서 계속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 기획사의 진대표를 만나기 전까지는. 진대표는 종종 주자서를 불러 밥도 사주고 모델이라면 좋은 옷을 입어야 한다며 고급 브랜드의 옷도 사주었다. 주자서는 너무 부담스럽다면서 옷은 받지 않고 밥만 얻어먹었는데, 그와 종종 일을 함께 했던 다른 모델들은 거리낌 없이 그 대표가 사주는 옷을 받았다.

몇 달치 생활비와 맞먹는 그 옷들이 탐이 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아무 조건이나 이유 없이 받고 싶지는 않았다. 주자서가 고고하게 군다며 동료 모델들도 그를 싫어했다. 밥을 먹자는 전화를 받고 받은 주소는 음식점이 아니었다. 가겠다고 말했으니 나타나지 않으면 실례일 것 같아 주자서는 무턱대고 바안으로 들어갔다. 진대표는 주자서가 들어오자 그를 자신의 옆에 앉히고 어깨에 팔을 걸고는 술을 따라 주었다. 주자서는 어색하게 웃으며 술을 거절하고 몸이 좋지 않다는 핑계를 대고 자리를 벗어나려고 했다. 진대표의 표정이 점점 딱딱하게 굳더니 주자서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너는 이 바닥에서 일하고 싶지 않은 거야? 이렇게 고고하게 굴면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주자서는 진대표의 말에 머리를 세게 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진대표가 주자서의 몸을 더듬으며 말했다.
“비싸게 굴어 봐야 달라지는 건 없어.”
주자서가 딱딱하게 얼어서 반응이 없자, 진대표는 주자서의 어깨에 있던 손을 내려 주자서의 등허리를 쓸었다. 주자서가 몸을 떨자 진대표는 웃으며 그에게 더 몸을 붙였다.
“반응이 귀엽네.”
진대표의 말에 주자서는 옆에 앉아 있던 다른 모델의 얼굴을 보았다. 그는 마치 이런 일은 항상 있는 일인 양 무관심하게 앉아 핸드폰을 했다. 바로 눈 앞에서 진대표가 동료를 희롱하고 있는데! 주자서는 작게 숨을 들이켜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옆에 앉아 있던 모델과 진대표가 그에게 뭐라고 말한 것 같은데,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주자서는 그 날 이후 핸드폰 번호를 바꾸고 금액에 상관없이 몸이 고단한 아르바이트를 했다. 주자서 인생 처음으로 직업 선택에 대해, 미래에 대해, 꿈에 대해, 회의감이 들었다. 그 회의감은 좌절감을 넘어 그를 절망하게 했다.


고상이 찬합을 회수하러 다시 방 안에 들어 갔을 때, 주자서는 온객행의 품에 곱게 안겨 있었다. 고상은 조심스럽게 기척을 지우고 찬합을 챙기러 다가갔는데, 주자서의 얼굴이 온통 피 칠갑이었다. 고상이 놀라며 주자서의 얼굴을 만졌다.
“망서! 망서! 왜 이래?”
온객행은 그제야 좀 정신이 들었는지 주자서를 번쩍 안아 침상 위에 올렸다. 고상은 주자서의 신발을 벗기고 이불을 펴서 잘 눕혔다. 대야에 물을 받아 영견에 물을 묻혀서 흘러내린 코피를 닦아냈다. 고상이 말없이 주자서의 시중을 드는 것을 본 온객행은 방을 나가버렸다. 온객행이 나가자 고상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벌써 질리신 건가…”
고상은 자리에서 일어나 유이를 찾았다.

주자서가 쓰러진 것을 안 유이가 법석을 떨어서 의술을 아는 어멈을 불러왔다. 어멈은 주자서가 남자인 것을 보고 조금 불편한 기색을 비치며 그의 맥을 짚었다. 어멈은 점점 알 수 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어멈은 사내를 진맥해본 적은 없어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냥 기혈이 조금 상했을 뿐이라고 했다. 유이가 기혈이 상했는데 왜 코피를 쏟냐며 어멈을 귀찮게 했지만 그 이상의 대답을 듣기는 어려웠다. 유이가 울상을 하고 고상에게 말했다.
“아상, 곡주님께 한번만 봐 달라고 부탁드리면 안될까?”
고상이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어쩌면 곡주가 그런 걸 수도 있어.”
유이가 놀라며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어디서 나타났는지 목란이 그들에게 말했다.
“질리신게지.”
고상과 유이가 목란의 얼굴을 보았다. 목란이 씁쓸하게 웃으며 한숨을 쉬었다.

온객행은 그날 밤 늦게까지 박정부로 돌아오지 않았다. 원래 누구를 거느리고 돌아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정말 온객행이 어디 있는지 찾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고상은 혹시 주인이 자기가 방 안에 있어서 나타나지 않는 것인가 싶어서 일부러 방안에 주자서 혼자 두었다. 혹시 또 마음이 바뀌어서 잘 해 줄까 싶어서 말이다. 그 전에 데리고 왔던 애들은 모두 살랑대고 애교를 부리는 애들이라 시끄럽고 거만했다. 여자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도 없는 사람도 있었지만 망서 같은 사람은 정말 처음이었다. 처음에는 사내라고 여자를 밝히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냥 다정한 사람이었다.

넘어지는 아이를 일으켜주고, 무거운 짐을 옮기는 노파를 돕는 사람이었다. 귀곡에서 사람은 흔하지 않다. 고상은 내심 망서가 주인의 마음을 잡아서 평생 같이 살아도 좋다고 생각했을 만큼 주자서는 좋은 사람이다. 장지문 밖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자 따뜻한 차를 가지고 유이와 목란이 다가와 고상 옆에 앉았다. 목란이 찻잔을 주며 차를 따랐다. 유이가 고상을 보고 말했다.
“망서는 정말 달의 신이 아닐까?”
고상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목란이 자기 찻잔에도 차를 따르고 주전자를 내려 놓으며 말했다.
“아상, 하늘을 봐. 오늘은 삭(朔)이야.”
셋은 나란히 장지문에 기대 차를 마시며 달도 없는 밤하늘을 구경했다.


어스름하게 새벽동이 틀 무렵, 온객행은 흠뻑 젖어서 처소로 돌아왔다. 온객행은 문 앞에 앉아 사이좋게 잠들어 있는 세사람을 보고 헛웃음이 나왔다. 주자서는 온객행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마음도 많이 산 듯했다. 온객행은 괜히 그들을 깨우기 싫어 창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에는 희미한 등롱이 타는 소리만 나고 숨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덜컥 겁이 난 온객행이 침상으로 다가가 누워있는 주자서의 코에 손을 가져다 댔다. 다행히 그는 숨을 쉬고 있다. 온객행은 침상 옆에 털썩 주저 앉아 주자서를 보았다. ‘너를 보낸 놈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대단한 놈이구나.’ 온객행은 웃음이 났다. 온객행이 웃는 소리에 주자서가 눈을 떴다. 바닥에 주저 앉은 온객행을 보고 이불을 걷고는 말했다.
“귀왕? 왜 거기 있어 이리와.”
온객행은 고개를 들어 주자서를 마주 보았다. 온객행이 움직이지 않자 주자서는 다시 풀썩 이불을 내리고 돌아 누우며 말했다.
“난 더 자겠어.”

온객행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자서의 몸 위에 올라탔다. 그제야 온객행의 몸이 젖은 것을 알게 된 주자서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왜 이렇게 젖었어?”
온객행은 주자서의 행동이 어디서부터 거짓인지 알 수가 없어 화가 났다. 주자서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얼른 옷부터 갈아 입어. 감기 걸리겠다.”
주자서가 귀왕의 겉옷을 벗기며 말했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손목을 잡고 주자서를 보았다. 주자서가 부스스 웃으며 말했다.
“밖에 비라도 오는 거야? 어디서 이렇게…”
온객행이 주자서를 끌어당겨서 입을 맞췄다. 주자서는 당황했는지 온객행을 밀어내더니 온객행이 그의 입술을 핥고 혀를 입안으로 집어넣자 온객행의 어깨를 꾹 잡아왔다. 온객행은 이런 행동도 모두 거짓인지 알 수가 없어서 화가 났다. 주자서가 숨이 모자랐는지 고개를 돌리며 숨을 몰아 쉬었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몸짓이 애틋해서 품에 끌어안았다. 주자서가 온객행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며 마주 안았다.
“귀왕.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온객행이 주자서의 귓가에 속삭였다.
“누구의 첩이었어?”
주자서 작게 웃으며 말했다.
“나 첩이었어?”
온객행이 주자서의 얼굴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누구의 첩이었는지 알아야 널 과부 만들어서 데려오지.”

온객행의 말에 주자서가 조금 더 웃고 말했다.
“너 때문에 나도 다 젖었어.”
주자서는 그렇게 말했지만 딱히 온객행을 밀어내지는 않았다. 그리고 온객행의 어깨에 얼굴을 비비더니 말했다.
“이불도 다 젖겠다.”
둘은 말없이 서로 안고 있었다. 주자서의 뱃속에서 커다란 ‘꼬르륵’ 소리가 났다. 주자서가 어깨를 들썩이며 작게 웃더니 말했다.
“나 어제 어떻게 잠들었지?”
온객행이 주자서를 놔주며 마주 보았다. 주자서가 젖은 머리카락을 온객행의 얼굴에서 떼어내며 말했다.
“우리 어제 저녁밥 먹었나?”
온객행은 주자서의 손을 잡아 손바닥에 입을 맞췄다. 주자서가 잡힌 손을 자기 입가로 가져가서 온객행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주자서가 한참만에 눈을 들어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반절쯤 준거 같아.”
온객행이 방금 주자서가 입을 맞춘 자신의 손을 보고 부스스 웃었다.
“겨우 반절?”
주자서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가진 건 마음뿐이니까, 아껴야지.”
온객행이 주자서와 시선을 맞추며 말했다.
“나는 다 준 것 같아.”
조금은 울상이 된 것 같은 온객행의 표정을 보고 주자서가 손을 들어 온객행의 뺨을 쓸며 말했다.
“그렇게 덥석덥석 다 주면 어떡해.”
온객행이 다시 주자서를 끌어당겨 안았다. 주자서가 온객행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너는 어쩌다 귀왕이 됐을까?”
주자서의 말에 온객행은 울컥 슬픔이 치밀었다. 온객행의 등이 떨리며 그가 훌쩍이자 주자서는 말없이 온객행의 등을 토닥였다. ‘어쩌다 너는 귀왕이 됐을까? 이렇게 여리고 어린데…’ 주자서는 온객행이 안타까워 찔끔 눈물이 났다. 어쩌면 반절보다 훨씬 많이 마음을 준 걸지도 모르겠다.

穿越 第4

長舌鬼 | 장설귀

온객행은 그날 밤 열에 들떠 조금 앓았다. 다행히 주자서는 겁을 먹었는지 처소로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고상은 염귀의 욕을 하며 귀왕의 시중을 들었다. 희상귀에게 상황을 알리자 내실 근처에 호위가 더 삼엄 해졌다. 어렴풋하게 사위가 밝아오는 새벽에 주자서는 처소로 돌아왔다. 주변에 하인이 많아 진 것을 보고 의아해하며 문 밖에 서 있는 목란에게 말했다.
“누님, 왜 밖에 계세요?”
목란이 주변의 눈치를 보며 주자서의 팔을 붙잡고 말했다.
“곡주가 안에 계시네.”
주자서가 얼굴을 찌푸리며 입을 달싹이자 목란은 그의 팔을 잡아 내실 안으로 밀어 넣으며 말했다.
“가서 곡주 곁을 지키시게. 우리 말고 다른 사람의 기척이 느껴지면 큰소리로 나를 부르세요.”
주자서가 목란의 소매를 잡으며 말했다.
“기척은 무슨 기척이요. 나는 그런 거 몰라요.”

방안으로 들어오는 소리에 침상 옆에 기대서 자고 있던 고상이 주자서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망서! 너 어디 있었어!”
고상이 작은 목소리로 주자서의 소매를 끌어당겨 침상 쪽으로 밀었다.
“주인이 아프단 말이야! 얼른 네가 가서 위로해드려.”
주자서가 고상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위로? 위로라니 무슨 소리야?”
주자서의 얼굴이 빨개진 것을 본 고상이 ‘허’ 하고 헛웃음을 치며 말했다.
“주인이 예뻐라 하니까 자꾸 기어오르는데 나한테는 어림도 없어.”
주자서가 얌전히 온객행이 누워있는 침대에 걸터앉아 그를 보았다. 정말 밤새 앓았는지 얼굴 색이 좋지 않았다. 주자서가 고상에게 물었다.
“왜? 왜 이렇게 된 거야? 그새 열이 다시 올랐어?”
주자서가 온객행의 이마에 손등을 올리며 말했다. 고상은 대야에서 젖은 영견을 주자서의 손에 쥐어 주고 대야를 들고 나가며 말했다.
“내가 올때까지 여기 있어. 어디 나가지 말고, 누가 기별 없이 들어오면 목란언니를 불러.”
주자서가 온객행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았어.”

주자서는 온객행의 얼굴을 수건으로 닦으며 말했다.
“정말 잘 생겼다.”
주자서의 목소리에 온객행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더니 눈을 떴다. 주자서는 온객행과 눈을 맞추며 말했다.
“귀왕? 정신이 들어?”
온객행은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더니 곧 잘게 기침을 했다. 주자서는 온객행을 일으켜 앉히며 그의 등을 쓸었다. 온객행이 인상을 쓰고 몇 차례 기침을 하더니 울컥 피를 토했다. 주자서는 손에 들고 있던 영견을 그의 입 앞으로 가져갔다. 주자서는 살면서 사람의 입에서 이렇게 울컥 피가 토해지는 것을 본적이 없는 것 같았다. 너무 놀라고 당황하여 손이 벌벌 떨렸다. 주자서가 안절부절 못하며 손을 떨자 온객행이 덥석 주자서의 손을 잡았다. 주자서는 그제야 정신이 들었는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모…목란누님…”
주자서가 일어나려고 하자 온객행이 주자서의 손을 끌어당겨 침상에 앉히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주자서가 온객행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앉으며 말했다.
“대체 뭐야… 지병이라도 있어? 병원에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온객행이 인상을 쓰자 주자서가 주변을 보더니 얼른 일어나 다 식은 찻물을 담은 찻잔을 가져와 온객행의 입에 대주었다. 온객행은 주자서가 가져온 찻물을 삼키지 못하고 다시 뱉었다. 찻잔이 시뻘건 핏물로 채워지자 주자서는 놀라서 찻잔을 놓치고 말았다. 온객행이 입고 있던 하얀 내의가 붉게 물들었다. 주자서가 당황하며 얼른 쏟은 찻잔을 치우고 온객행의 내의 앞섶을 잡아 벌렸다. 주자서의 행동에 온객행이 작게 웃었다. 주자서는 잠시 멈칫하더니 다시 귀왕의 내의를 벗기며 말했다.
“웃음이 나오냐? 이 바보야!”
주자서의 얼굴이 빨개졌다. 온객행은 순순히 내의를 벗고 다시 침상에 누웠다.

주자서가 이불을 덮어주고 핏물이 베인 내의를 빨래감을 모아두는 통에 던져 놓았다. 주자서가 귀왕의 장포가 걸려있는 옷걸이 근처에서 귀왕의 옷을 찾았다. 어떤 함에는 색색의 장포가 들어 있었고, 또 어떤 함에는 하얀 내의만 있었다. 주자서는 내의를 하나 들고서 침상으로 갔다. 주자서가 이불을 들추고 온객행에게 내의를 입혔다. 온객행이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차피 벗을 건데 뭘 입혀?”
주자서가 거칠게 귀왕의 앞섶을 여미면서 말했다.
“벗긴 뭘 벗어!”
온객행이 작게 웃다가 다시 기침을 했다. 주자서는 혹시나 또 피를 토할까 봐 이미 피가 잔뜩 묻은 영견을 찾아 그의 입 앞에 대주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기침만 나왔다. 주자서가 온객행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앉아 있는 게 좋겠어. 또 피를 토하다 질식하면 안되니까.”
주자서가 몸을 붙여 침상위에 있는 베개를 정리해 온객행을 앉히고 이불을 덮었다.

주자서가 온객행을 보고 물었다.
“혹시 살날이 얼마 안 남은 거야?”
온객행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왜? 살날이 얼마 안 남았으면 빨리 마음 주려고?”
주자서가 온객행의 팔을 밀며 말했다.
“너는 정말, 기운도 좋다.”
온객행이 이불 속에서 팔을 들어 주자서의 허리를 끌어당기며 말했다.
“살날이 얼마 안 남았으면 마음 줄 거야? 지금?”
주자서가 언짢은 표정을 하며 고민하자 온객행이 주자서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며 웃었다. 주자서는 웃는 귀왕의 등을 쓸면서 말했다.
“곧 죽는다고 하면…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너는 아직 살아 있으니까…”
온객행의 어깨가 떨리며 조금 더 웃었다. 주자서는 한참 망설이다가 말했다.
“너랑 입맞춘 거… 기분 좋았어.”
온객행은 주자서를 자기 품으로 끌어당기며 목덜미에 입을 맞췄다.

주자서가 불편한 기색을 지우지 못하고 바르작대자 온객행이 말했다.
“죽을 병 아니야. 맹파탕의 부작용이야.”
주자서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맹파탕?”
온객행이 주자서와 눈을 맞추고 말했다.
“귀곡에 들어오면 누구나 마시는 탕이야. 가장 집착하는 것을 잊게 해주지.”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나도 맹파탕을 마셔서 기억이 안나는 걸까?”
온객행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가장 집착하는 것을 잊게 하지 전부를 잊게 하지는 못해.”
주자서가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내가 정말 싫었나 보다. 전부 잃어버린 거 보면.”
주자서의 말에 온객행이 얼굴을 붙이며 말했다.
“나는 좋아해.”
온객행의 입술이 주자서의 입술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주자서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죽을 병이 아니라며…”
온객행이 주자서의 뺨에 입맞추고 말했다.
“기분 좋았다며…”
주자서가 양팔로 온객행을 와락 안으며 말했다.
“그니까… 왜 좋았을까? 나는 남자를 좋아했나?”
온객행이 주자서를 침상위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남자라서가 아니라 나라서 좋았던 건 아니고?”
주자서가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너 목소리도 진짜 좋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어깨에 고개를 묻고 또 부스스 웃어버렸다.


온객행이 앓아 누운 날 밤, 장설귀 황작(黃雀)이 자기가 거둔 수하 구빈(邱賓)에게 당해 죽었다. 곡주가 박정부에 새로 온 염귀를 귀여워한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었지만, 정작 귀여움 받은 염귀를 본 사람은 없다. 곡주가 일찍 박정부로 돌아간 것을 본 무상귀는 개심귀와 총신 흑무상, 백무상을 데려다 식시귀의 일에 대해 논의를 하고 있었다. 박정부는 귀곡 내에서도 그 입지가 조금 남달랐는데, 다른 귀신들과는 달리,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 거래하여 일정한 수입이 있었고, 일원이 모두 여인이라는 점은 어떻게 보면 약점 같지만 오히려 강점이었다. 귀곡에 흘러 들어오는 인간상은 무수했으나 귀곡에 닿은 이들 중에 기구한 사연 하나 없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뜻을 맞추어 단결하는 것은 귀곡에서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는데, 어쩐지 여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유대 하여 서로를 한덩어리로 묶었다. 그들은 귀곡의 대부분의 음식을 만들고 준비하며 잡귀들이 입는 옷과 귀면을 만드는 일도 했다. 박정부주의 허락없이 박정부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귀곡주 정도이다.

무상귀가 고심하고 있을 때, 밖에서 잡귀 하나가 헐레벌떡 들어와 말했다.
“무상야(無常爺)! 무상야! 장설귀 황작이 죽었습니다!”
무상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뭐라고? 황작이?”
잡귀가 숨을 고르며 말을 이었다. 황작이 데려온 구빈이라는 사내는 멀쩡한 사람을 인형처럼 만들어 부리는 자이다. 피리나 고금 같은 소리를 가지고 인형들을 조종하는데 그 인형을 보러 갔다가 화를 당했다고 한다. 무상귀가 다시 자리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
“쯧, 하필 이럴 때 황작 마저 가다니… 대체 온가놈이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 것인지…”
무상귀의 말에 개심귀가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황작은 이름만큼이나 소인배였으니 자기보다 그릇이 큰 관리에게 당한 것이겠지요.”
백무상이 말했다.
“노야(老爺), 구빈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괜히 들쑤시지 않으면 상관하지 않을 겁니다.”
흑무상이 거들었다.
“노야, 그는 정말 귀신입니다. 사람의 살을 열고 젖히며 독의 병리를 연구하는데 미친 놈입니다.”

무상귀가 짜증을 내며 말했다.
“그러니 화가 나는 것이지! 손에 쥐고 흔들 말이 점점 줄어 들지 않느냐!”
개심귀가 불편한 기색을 지우지 않으며 말했다.
“설형, 설형. 그것이 비단 설형만 그렇겠습니까? 곡주라고 다를까요?”
개심귀의 말에 무상귀가 탁상에 놓여있던 차를 마시며 말했다.
“새로 식시귀가 된 그 보아라는 자는 만나 보았소?”
개심귀가 다시 ‘하하하’ 웃으며 말했다.
“그 놈은 천치나 다름없으니 오히려 같이 일했다가 손해를 볼까 두려울 정도요.”
흑무상이 무상귀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노야, 저희가 데리고 일하던 아이들 중에 식탐이 많은 아이들이 모두 식시귀의 수하로 떠났습니다.”
무상귀가 작게 코웃음 치며 말했다.
“어차피 밥이나 축내는 버러지들이었으니 이 참에 잘 어울리는 우두머리를 만난게지.”
백무상과 흑무상이 무상귀의 눈치를 보며 시선을 교환했다. 개심귀가 그것을 눈치채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설형은 그럼 고민해 보시오. 나는 적사귀를 만나러 가야겠소.”
무상귀가 인상을 쓰며 개심귀가 나가는 것을 보았다.

개심귀는 적사귀 길도(姞徒)의 거처인 진광전(秦廣殿)앞에 도착해서 들어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다. 적사귀는 평소에 처소에 틀어박혀 얇은 금속을 가공하여 전혼사를 만드는 것에 몰두해 있다. 그는 식시귀처럼 주변에 귀신을 많이 두지 않는 악귀였으나 전혼사를 다루는 솜씨는 귀곡의 모두가 인정하는 고수였다. 개심귀는 지금의 적사귀가 전대의 적사귀를 죽일 때 같은 자리에 있던 사람이다. 길도 이전의 적사귀는 단순히 사람을 창에 줄줄이 꿰어 죽이는 사람이었는데, 길도가 적사귀가 된 이후로 진광전은 사람의 포를 뜨는 곳으로 바뀌었다. 잡귀 하나가 진광전에서 나와 개심귀에게 인사했다. 개심귀가 물었다.
“적사귀는 어디 있는가?”
잡귀는 대답없이 개심귀에게 대전 안쪽으로 손짓했다. 개심귀가 대문 안쪽을 잘 살피며 진광전 안으로 들어갔다.

적사귀는 풀무질을 하며 유리를 달구고 있었다. 저 온도에 도달하기 위해 길도는 사람의 뼛조각까지 모아서 태웠다. 음지에 있어 풀과 나무가 적은 귀곡에서 땔감을 찾는 것은 사람을 죽여 그 시체를 태우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적사귀가 풀무질을 멈추고 개심귀에게 물었다.
“백형, 무슨 일이오?”
개심귀가 근처에 있는 작은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자네는 벌써 온가놈에게 붙었는가?”
길도가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펴며 말했다.
“노곡주에 비하면 온가놈은 나의 일에 관여하거나 무기를 내어 놓으라고 법석을 떨며 볶아 대지 않으니 적사귀로서 그가 기껍지요.”
개심귀가 적사귀가 만들어 놓은 가는 실을 보며 말했다.
“고오가 죽었네. 황작도.”
적사귀가 근처에 있던 물단지에서 물을 퍼 마시며 말했다.
“황작은 몰라도 고오가 죽었다 구요?”
개심귀가 고개를 끄덕였다.
“설단이 또 난리를 쳤겠군요.”
개심귀가 ‘흥’하고 코웃음 치며 말했다.
“설단은 별로 걱정이 안되는데, 그 놈 아들은 좀 걸려.”
적사귀가 개심귀를 응접실로 안내하며 말했다.
“그래서 백형께서는 어쩌시려고 여길 오셨습니까?”
개심귀가 ‘히히히’ 웃으며 말했다.
“일단 살아 있으니 뭐든 해야지 않겠나?”
적사귀가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웃었다.


고상이 요기거리를 가지고 온객행의 처소에 다시 갔을 때, 온객행은 주자서를 껴안고 자고 있었다. 고상은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두 사람이 옷을 입고 있는지 확인한 다음에 ‘휴’ 하고 작게 한숨을 쉬고 탁자위에 찬합을 놓았다. 인기척을 느낀 주자서가 화들짝 놀라 깨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고상이 작게 웃으며 주자서에게 손가락질하며 속삭였다.
“왜 그렇게 놀라?”
얼굴이 빨개진 주자서가 허리에 감긴 온객행의 팔을 풀며 일어나 앉았다. 눈을 비비며 잠긴 목소리로 고상에게 물었다.
“지금 몇 시야?”
고상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몇 시? 지금 때를 묻는 거야? 사시(巳時)랑 오시(午時) 사이인데?”
주자서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그게 몇 신데?”
고상이 침상 쪽으로 슬금슬금 다가오며 말했다.
“몇 시 냐니? 무슨 소리야? 사시랑 오시 사이라고!”
주자서가 침상에서 내려와 신발을 신으며 말했다.
“사시는 언제고, 오시는 언제인데? 나 참. 밝은 거 보니 벌써 12시가 지난 거 아니야?”
고상이 주자서의 팔을 잡아당겨 찬합이 놓인 탁자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열 두 시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중천이 넘었다고!”
고상이 찬합에서 음식을 꺼내자 주자서는 웃으면서 꺼내 놓은 음식을 보았다.

주자서가 젓가락을 들어 음식에 손을 데려고 하자 고상이 주자서의 손을 때리며 말했다.
“주인님을 깨워야지!”
주자서가 고상이 때린 손을 잡고 말했다.
“아야! 너 정말 손 매운 거 알아?”
온객행이 침상에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
“아상.”
고상이 얼른 침상 쪽으로 가며 주자서를 흘겨보았다.
“네, 주인!”
고상은 온객행에게 신발을 신기고 부축하여 탁자로 데려왔다. 고상이 옆에 앉아 시중을 들려고 하자 온객행이 고상을 빤히 보았다. 고상은 다 식은 차주전자를 들더니 어서 가서 차를 내오겠다며 방을 나갔다. 주자서는 고개를 흔들며 찬을 집어먹었다. 온객행이 음식을 먹지 않고 빤히 쳐다보는 것을 느낀 주자서가 음식을 씹으면서 똑같이 온객행을 마주 보았다. 주자서가 눈을 굴리다 온객행에게 물었다.
“뭐?”
온객행은 말없이 자기 옆에 놓인 의자를 손으로 툭툭 쳤다. 주자서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젓가락을 놀려 찬을 집어먹었다. 온객행은 고개를 젖히고 한숨을 크게 쉬더니 탁자를 집고 일어나려다 휘청였다. 주자서가 놀라서 젓가락을 놓고 그를 부축했다.
“야!”
온객행을 다시 자리에 앉힌 주자서가 온객행이 손으로 툭툭 쳤던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진짜 너 몇 살이야? 사실은 세 살 아니야? 온삼세.”
주자서가 앞접시와 젓가락을 찾아 온객행의 손에 들려주고 다시 찬을 먹기 시작했다.

온객행은 주자서가 쥐어 준 접시와 젓가락을 다시 탁자에 놓고 말했다.
“입 맞췄으니까, 알려 줄게.”
주자서가 또 어깨를 흠칫 떨며 말했다.
“야! 밥은 좀 편하게 먹자! 진짜.”
온객행이 부스스 웃으며 얼굴을 가까이하자 주자서가 온객행의 얼굴을 밀며 말했다.
“귀왕이라며. 천 살은 드셨겠지. 온천세씨. 안 궁금해. 밥이나 먹어.”
온객행이 주자서가 밀어내는 손을 잡고 굳이 주자서에게 얼굴을 가까이 붙여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난 스물.”
주자서가 고개를 획 돌리고 온객행을 밀면서 말했다.
“야! 내가 형이잖아?”
온객행은 팔을 둘러 주자서를 다시 품 안에 안았다. 주자서가 온객행의 어깨를 밀면서 말했다.
“아니 어른들은 뭐하고 너 같은 어린애가 귀왕을 하고 있어?”
온객행이 주자서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고 말했다.
“애고 어른이고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겠어. 이 지옥에서.”
주자서가 밀어내는 것을 멈추고 말했다.
“귀왕이 엄청 젊네. 나보다 젊네?”
온객행이 주자서의 어깨에 고개를 비비자 주자서가 팔을 둘러 온객행의 등허리를 쓸며 말했다.
“그래, 그래. 애기 귀왕아… 우리 밥 먹으면 안될까?”
온객행이 고개를 들어 주자서를 보며 짐짓 근엄하게 말했다.
“그건 싫어. 귀왕 말고 다른 걸로 불러 봐.”
주자서가 몸을 돌려 젓가락을 다시 들고 말했다.
“그래. 애기야. 밥 먹자.”
주자서는 온객행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또 찬을 집어서 먹기 시작했다.

주자서와 온객행이 식사를 마치자 목란과 유이가 차를 들고 들어와서 시중을 들었다. 주자서와 온객행은 관수(盥漱)하고 옷을 갈아 입었다. 주자서는 예의 자기 옷이 맞는지 몇차례나 물었던 붉은 옷이 아니라 연한 회색의 장포를 입었고, 온객행은 고상과 비슷한 색의 보라색 옷을 입었다. 주자서가 온객행의 옷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입으니까 마치 남매 같네.”
고상이 웃으며 말했다.
“주인, 그럼 오라버니라고 불러드릴까요?”
온객행이 심드렁하게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그러던지.”
고상이 온객행에게 붙어 앉으며 말했다.
“오라버니.”
온객행이 고상을 보고 살포시 웃었다. 주자서가 유이가 건내 준 차를 마시면서 말했다.
“웃으니까 더 잘 생겼다.”
온객행을 보고 있던 고상이 ‘허’ 하고 웃으며 말했다.
“지금 나가라고 눈치 주는 거야?”
주자서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눈치는 무슨! 봐, 잘 생겼잖아. 그럼 못 생겼어?”
고상이 다시 시선을 온객행에게 옮기며 말했다.
“아이, 당연히 주인은 잘 생겼죠… 그런 뜻이 아니라…”
온객행이 고상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맞아. 나가라고 눈치 주는 거야.”
주자서가 마시던 차에 사레가 걸려 기침을 해댔다. 옆에 있던 목란이 주자서의 등을 두들겼다.

고상이 자리에 바로 앉으며 말했다.
“주인, 무상귀가 곧 찾아올 것 같은데 어떡할까요?”
온객행이 대답없이 차를 마셨다. 등을 두들기던 목란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황작이 죽었습니다.”
온객행은 ‘하’ 하고 코웃음 치고 답이 없다. 고상이 안달이 나서 말했다.
“개심귀가 적사귀를 찾아갔단 말이에요!”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걱정마라. 오늘은 별일 없을 것이다.”
고상이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
“주인!!”
온객행이 찻잔을 내려놓고 고상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걱정할 것 없다. 그들이 미치지 않고 서야 함부로 박정부에 들어오지 못 할 거야.”
고상이 주자서를 흘끔 보고 말했다.
“무상귀가 잡귀들에게 염귀가 누구인지 알아보라고 시켰어요.”

주자서는 온객행과 고상이 하는 이야기의 대부분을 알아듣지 못해, 오늘은 무슨 일을 하나 하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염귀의 이름이 나오자 고개를 돌려 온객행을 보았다. 온객행은 주자서를 보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
“어때? 잘 생겼어?”
주자서는 염귀에 대해 물어보려고 하다가, 목란과 유이의 눈치를 한번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잘 생겼어.”
고상은 ‘어휴’ 하고 한숨을 쉬었고, 목란과 유이는 입을 소매로 가리고 ‘호호호’ 하고 웃었다. 주자서는 내심 불안이 일었지만, 오늘은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고 하니 괜히 걱정을 사서 하지 않기로 했다. 온객행의 예상은 조금 빗나갔는데, 그날 저녁 박정부로 무상귀의 아들 설비(契飛)가 찾아왔다.


주자서는 처소에 앉아서 희상귀에게 새로 받은 장부에 오늘 분의 일 처리에 대해 적고 있었다. 기별없이 벌컥 문이 열리고 온객행이 들어왔다. 주자서는 붓을 들고 목간에 숫자를 적으며 누가 들어왔는지 보지도 않았다. 온객행은 주변에서 일하고 있던 목란과 유이를 내보내고 주자서의 곁으로 와서 앉았다. 주자서가 눈을 힐끔 들어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나는 붓을 쓰는 사람은 아니었나 봐, 글씨가 잘 안 써져.”
온객행이 몸을 붙여 앉으며 주자서의 허리를 쓰다듬었다. 주자서가 몸을 비틀며 말했다.
“어허! 나 지금 일 하잖아. 옷에 먹이 묻으면 지워지지도 않는다고.”
온객행이 주자서의 손에서 붓을 빼앗아 내려놓고 말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대로 해. 누가 들어오든 절대 얼굴을 보여선 안돼.”
주자서가 순순히 붓을 내려 놓고 온객행을 보며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누가 와?”
온객행이 주자서의 몸을 자신에게 밀착시키며 말했다.
“너 염귀에 염(艶)이 무슨 뜻인지는 알지?”
주자서의 얼굴이 온객행의 가슴에 부딪혔다.
“어…? 어어.”

온객행이 주자서의 몸을 들어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려 놓으며 말했다.
“말하지 마.”
그리고 주자서의 입술에 꾹 입을 맞췄다. 놀란 주자서가 온객행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뭔가 말하려는 데 밖에서 사람이 들어왔다. 온객행이 돌아가는 주자서의 얼굴을 턱으로 잡고 주자서의 눈을 보며 고개를 작게 흔들었다. 주자서는 요상한 자세가 되어 온객행 품에 있는 게 부끄러웠다. 게다가 그걸 남에게 보인다고 하니 열이 올라 얼굴이 터질 것 같았다. 주자서가 온객행의 어깨에 고개를 묻고 그를 끌어 앉자 온객행이 주자서의 등허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무슨 일이지?”
들어온 남자는 온객행을 보고 작게 얼굴을 찡그리고는 답했다.
“제가 설단과 같은 성씨를 쓰는 것은 그의 자식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목덜미에 고개를 묻고 답했다.
“흐음.”
주자서는 몸을 흠칫 떨고는 온객행의 어깨를 잡았다.

온객행은 어깨에 있는 주자서의 손을 자신의 허벅지로 내리며 말했다.
“무상귀 자리를 원하는가?”
설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지금 무상귀에게 세력이라고 불리울 만한 것은 흑무상과 백무상 뿐입니다. 고오와 황작의 죽음으로 귀곡의 판세가 바뀌었으니, 무상귀도 바뀔 때가 되었지요.”
주자서는 온객행의 허벅지에 올려진 손이 부끄러워서 자꾸만 바르작대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주자서의 몸이 들썩이자 온객행이 주자서의 허리를 안으며 말했다.
“설단이 많이 늙기는 했지.”
설비가 당황하며 말했다.
“곡주께서 염귀와 즐기고 계신데 제가 감히 방해를…”
온객행이 고개를 비스듬히 꺾으며 말했다.
“방해? 지금 자네가 나의 즐거움을 방해한 것을 걱정하는가? 이 곳은 박정부인데?”
설단이 뒷걸음질 치며 말했다.
“곡주께서는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박정부주께는 제가 잘 말씀드리겠습니다.”
온객행이 작게 웃으며 답했다.
“그 말, 희상귀가 들어 주길 바라겠네. 무상귀라도 되지 않으면 어찌 여귀들이 그대를 살려 두겠는가?”
설비가 작게 웃으며 답했다.
“허락으로 알고 처신하겠나이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뺨에 손을 가져가며 말했다.
“그래. 설단을 죽이면, 내가 그대를 무상귀라 불러주지.”
설비는 온객행의 말에 깊게 절하고 방을 나갔다.

장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마자 주자서는 마치 그동안 숨을 참았던 사람처럼 숨을 크게 들이켜고는 온객행을 밀어냈다.
“허!”
온객행이 다시 주자서의 몸을 끌어안으며 귓가에 속삭였다.
“아직 밖에 있을 수도 있잖아.”
주자서가 온객행의 귀를 잡고 속삭였다.
“이거 진짜 미친놈 아니야? 나…나는! 남들 앞에서…”
온객행이 주자서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알았어. 알았어.”
주자서가 다시 온객행의 귀를 잡고 말했다.
“나는 남들 앞에서 이러는 거 취미에 없어! 이 미친놈아!”
온객행이 낮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래. 설비 저놈은 입이 가벼우니 곧 염귀가 얼마나 나에게 귀여움을 받는지 귀곡 전체가 알게 될 거야.”
주자서는 고개를 뒤로 꺾고 거친 숨을 몰아 쉬었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드러난 목에 입을 맞추자 주자서는 인상을 쓰면서 온객행의 머리를 꼭 안았다.
“온삼세!”
온객행은 분명히 숨이 막힐 텐데도 주자서의 품에 얼굴을 묻고 웃었다.

穿越 第3

食屍鬼 | 식시귀

주자서의 일과는 별다를 것 없이 흘러갔다. 귀왕은 주자서가 지내는 곳에 와서 정말 잠만 자고 갔다. 항상 피곤한 기색이 가득한 그는 주자서의 가슴을 베고 잠들었다가 주자서가 깨기도 전에 나가곤 했다. 주자서의 경계가 무색하게 귀왕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마치 정말로 그의 마음을 비싸게 사줄 것처럼.

주자서가 받은 장부는 총 세권이었는데, 주자서는 나무조각과 붓을 빌려 가장 최근 장부에 적힌 숫자부터 다시 셈해보았다. 주자서가 고작 세 장 정도 확인을 한 것뿐인데 전부 틀린 것 투성이다. 주자서가 귀왕의 옷을 정리하는 유이를 보며 물었다.
“유이, 나 전에 염귀는 글을 읽을 줄 알았어?”
유이가 손을 멈추고 골똘히 생각하더니 말했다.
“잘 모르겠어요. 염귀는 박정부보다 급색귀가 머무는 사음부(邪淫府)에 계시는 날이 더 많았어요.”
주자서가 유이의 말에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사음부? 엄청 죄가 많아 보이는 이름이네.”
유이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희는 그 곳 근처에만 가도 벌을 받아요. 급색귀의 수하들 중에는 성벽(性癖)이 고약한 귀신들이 많아서…”
주자서가 손을 내젓고 말했다.
“그만, 그만. 별로 알고 싶지 않아.”

주자서는 붓을 놓고 머리를 감싸며 크게 한숨을 쉬었다. 유이가 일을 멈추고 주자서가 앉아 있는 서안으로 다가와 물었다.
“왜 그러시는데요?”
주자서가 목간에 적은 숫자들을 보여주며 말했다.
“한 장에 열 줄 남짓한 계산에 틀린 게 이렇게 많아.”
유이는 주자서가 쓴 글자를 보고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숫자요? 이게 숫자입니까?”
주자서는 삐뚤삐뚤하게 쓰인 글자가 부끄러워 다시 거두며 말했다.
“아! 나는 붓을 쓰는 사람은 아니었나 봐. 엄청 못쓴다.”
주자서가 멋쩍게 웃자 유이가 마주 웃으며 말했다.
“그런 숫자는 처음 봅니다.”
주자서가 자신이 쓴 목간을 자세히 보고 말했다.
“아니, 그 정도야? 이 정도면 알아 볼만 하지 않나…?”

언제 나타났는지 고상이 주자서의 뒤쪽에서 주자서가 쓴 목간을 보며 말했다.
“이건 어디 글자야? 중원의 글이 아닌 거 같은데?”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지, 이건 아라비아 숫자니까.”
고상이 주자서 옆에 앉아 목간을 빼앗아 들고 물었다.
“아라비아? 그게 뭐야?”
주자서가 다시 장부를 보며 말했다.
“중동의 나라들을 아랍이라고 부르잖아.”
고상이 목간을 서안 위에 던지며 말했다.
“중동? 중동은 또 어디야?”
유이가 고상에게 말했다.
“자살(紫殺), 장부의 계산이 맞지 않는데요.”
고상은 주자서가 보고 있는 장부에 눈을 가져가며 물었다.
“그래? 뭐 얼마나 안 맞는데?”
주자서가 물었다.
“근데 이 승(升)이라는 단위는 부피야 무게야?”
고상이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부피? 그게 뭔데?”
주자서는 고개를 흔들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는 장부를 다시 덮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유이, 목란누님은 어디 가셨어?”
고상이 주자서의 호칭에 ‘허’하고 웃었다. 유이가 답했다.
“목란언니는 대전에 시중을 들러 갔어요.”
고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그게 오늘 이구나.”
주자서가 눈을 가늘게 뜨고 고상을 보았지만 무슨 일인지는 묻지 않았다. 애초에 주자서는 박정부 밖을 나가지 않기로 다짐했기 때문이다. 주자서가 유이에게 다시 물었다.
“그럼 박정부주께서도 대전에 계셔?”
유이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주인님께서는 오늘 비단 염색하는 것을 보러 가셨어요.”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어디인데? 박정부 안이지? 가자.”
유이가 다가와 장부를 받아 들려고 하자 주자서가 괜찮다며 길을 안내하라고 재촉했다.

비단을 염색하는 곳에서는 매캐한 냄새가 났다. 커다란 솥이 있고 그 주변에서 천을 풀고 펴고 말리는 사람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홍화라고 해서 붉은 색만 있는 줄 알았는데 아주 밝은 노란빛의 천도 있다. 주자서가 하나 둘 걸리는 젖은 비단을 보고 ‘우와’ 하고 감탄하자 고상이 우쭐해서 말했다.
“비단뿐만 아니라 무명도 염색하는데 박정부 여귀들이 입는 저 빨간 옷은 다 여기서 염색한 거야.”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고상이 주자서의 소매를 잡아 끌며 희상귀가 있는 곳으로 갔다. 희상귀는 고상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고상에게 다가가 말했다.
“아상, 연기를 마시면 좋지 않아.”
그리고 주변에 하인이 주는 얇은 천을 고상의 얼굴에 씌워 주었다. 그리고 주자서를 발견한 그녀는 하인이 건넨 천을 그에게 주었다. 주자서는 들고 있던 장부를 옆구리에 끼고 얼른 천으로 코와 입을 막았다. 하지만 내심 ‘이걸로 뭐가 막아지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희상귀가 주자서에게 물었다.
“염귀. 장부는 벌써 정리했는가?”
주자서가 장부를 가져와 펼치며 말했다.
“주인, 장부에 틀린 점이 너무 많아요. 혹시 벌써 값을 치르셨습니까?”
주자서가 희상귀를 주인이라고 부르는 것을 힐끔 본 고상이 끼어들었다.
“전에 염귀는 글을 읽을 줄 모르니, 아마 급색귀가 가로 챈 거 에요!”
희상귀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을 응접실로 안내했다. 희상귀가 상석에 앉자 주자서가 쪼르르 그녀의 곁으로 가서 장부를 펼치며 말했다.
“주인, 아직 승(升)이라는 단위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정말 이 장부대로 값을 치르셨다면 손해가 아주 심해요. 여기 이게 받은 가격 같은데, 원래 대로 라면 세배는 더 받았어야 해요.”
희상귀가 주자서가 가져온 목간과 장부를 번갈아 보며 물었다.
“그대는 천축국(天竺國)의 숫자를 쓰는가?”
주자서가 당황하며 말했다.
“아 제가 어… 그러니까 서북출신이라서… 아마?”
희상귀가 주자서를 보고 코웃음 쳤다. 희상귀는 하인을 시켜 주판을 가져온 뒤 스스로 셈을 해보고 작게 코웃음 치며 주판을 내 던졌다.


온객행은 대전에 있는 식시귀와 급색귀를 보았다. 식시귀의 광증은 어떤 계기가 있어야 이는 것 같은데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온객행은 보아를 가까이 불러 귓가에 말했다.
“너는 지금부터 급색귀 곁에 가서 서라. 급색귀가 식시귀를 공격하면, 네가 상황을 봐서 식시귀를 죽여라.”
보아가 고개를 갸웃하며 온객행을 보자 온객행이 작게 짜증을 내며 말했다.
“너는 그냥 급색귀 옆에 서 있다가 식시귀를 죽이라고.”
보아는 이해되지 않았는지 멀뚱히 온객행을 보았다. 온객행이 턱짓으로 급색귀와 식시귀가 있는 곳으로 보아를 내려 보냈다. 보아가 내려가자 온객행이 박정부의 여귀들을 불렀다. 이 여귀들은 한 때 강호에서 이름을 좀 날렸던 무공이 높은 아이들로 일부러 급색귀의 취향에 맞춰 데려온 하인들이다. 옷도 염귀와 비슷하게 입혔다. 염귀가 생각 날 수 있게. 그 중에는 주자서의 시중을 드는 아이도 있다. 온객행이 얼굴이 익은 그 하인을 보고 심드렁하게 손짓하자 그들은 온객행의 곁으로 와서 차시중을 들며 그의 팔이며 다리를 주물렀다. 박정부의 여귀가 들어오자 유자업은 화색이 되어 하인들을 보았다.

온객행이 식시귀와 급색귀를 보고 말했다.
“고형, 고형. 아무리 광증이 일었어도 염귀를 먹으면 안되지.”
온객행의 말에 급색귀가 식시귀를 날카롭게 보았다. 식시귀는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급색귀가 무기로 사용하는 부채를 꺼내어 식시귀를 겨누며 말했다.
“식시귀! 너 염귀를 먹었어?”
식시귀는 대답 없이 급색귀를 물끄러미 보았다. 그의 눈에는 광채가 없어 꼭 죽은 사람의 눈 같았다. 식시귀는 순순히 인정했다.
“그런 가 보오.”
급색귀가 몸을 던져 식시귀를 공격했다. 귀곡의 대전안은 덩그렇게 놓인 귀왕좌를 빼면 황막하여 숨을 곳도 마땅하지 않았다. 보아는 급색귀의 곁에 서 있다가 식시귀와 급색귀 모두를 공격했다.

온객행이 작게 혀를 차며 보아를 불렀다.
“보아.”
보아가 싸움을 멈추고 온객행에게 다가왔다. 온객행이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무래도 너는 진짜…”
보아가 빠지든 말든 식시귀와 급색귀는 마치 서로를 죽일 것처럼 수십합을 겨뤘다. 하지만 식시귀의 무공은 십대 악귀 중에 가장 높았기 때문에 곧 식시귀의 손에 급색귀의 목이 잡혔다. 급색귀는 ‘컥컥’ 대며 말했다.
“고형! 고형, 염귀를 먹을 수도 있죠. 그냥 내가 아끼던 아이라서 아쉬워서 그랬소! 내가 잘못 했어!”
온객행은 다시 보아를 불러 귓가에 대고 말했다.
“식시귀를 죽이라고.”
보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귀왕좌가 있는 단상을 내려가 식시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급색귀는 보아를 한번 보고 보아와 합심하여 식시귀를 다시 공격했다.

온객행은 세사람이 싸우는 것을 보다가 차를 건네는 하인에게 말했다.
“너의 용독술을 한번 보자.”
하인은 온객행의 시중을 드는 척 그의 뒤로 가서 식시귀에게 암기를 날렸다. 암기를 눈치챈 식시귀가 온객행이 앉아 있는 귀왕좌를 보았다. 온객행은 여상하게 차를 마시며 차를 가져온 하인에게 내온 차가 맛이 좋다며 칭찬을 했다. 식시귀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점점 광증이 이는 것 같았다. 식시귀의 광증에는 여인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여귀가 입은 붉은 옷이 그의 눈동자에 번들거렸다. 그의 사연이 어떠한 지는 모르지만 그가 광증이 일면 오히려 일은 더 편하다. 온객행의 시중을 들던 아이들이 식시귀를 막아서며 대치했다. 온객행은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광채로 번득이는 식시귀의 눈빛을 보았다. 증오? 애증? 아니면 회한? 온객행에게 식시귀의 사정은 별로 관심 없다. 그저 귀곡을 없애 버리기 위해 필요한 쓰기 편한 장기 말이 필요 할 뿐이다.

온객행이 화사하게 웃으며 말했다.
“고형, 고형이 염귀를 없애는 바람에 내가 염귀를 대신할 귀신을 찾았어요. 얼마나 귀여운지 내 옆에 둬야지.”
온객행의 말에 식시귀가 비명을 지르며 온객행에게 달려 들었다. 온객행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귀왕좌에 앉아 그를 대신해서 싸우고 있는 박정부의 여귀들을 보았다. 무공 실력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다. 다행히 보고 있던 급색귀와 보아도 같이 달려 들기 시작했다. 식시귀도 급색귀도 보아도 박정부의 여귀들도 지친 것 같다. 온객행은 자리에서 일어나 손에서 굴리고 있던 호두를 던져 급색귀의 머리에 맞췄다. 급색귀가 맞은 머리를 감싸는 순간 온객행이 소매에 있던 작은 칼을 식시귀를 향해 던졌다. 그 칼은 식시귀의 목덜미를 뚫었다. 온객행의 암기를 본 박정부 여귀들은 곧 곡주가 서있는 단상위로 올라왔다. 온객행은 보아를 보고 식시귀 쪽으로 턱짓했다. 보아는 온객행의 눈치를 보더니 식시귀에게 다가가 머리와 몸을 분리했다. 온객행이 보아의 손에 들린 고오의 머리를 보고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그리고 보아에게 말했다.
“오늘부터 네가 식시귀로구나.”

새로 식시귀가 된 보아는 아주 바보는 아니었는지 며칠이 지나자 자신과 비슷한 몸집의 수하를 몇 두기 시작했다. 그는 광증도 없고, 시신만이 아니라 단순히 먹는 것을 좋아하는 자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적사귀의 수하들 심지어 무상귀의 수하들 중에서도 그의 밑으로 들어온 수하도 있었다. 보아가 식시귀가 된 다음날 개심귀와 무상귀가 온객행을 찾아와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다. 온객행은 어깨를 으쓱 하고 급색귀에게 물어 보라고 말했다. 급색귀가 뭐라고 떠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일로 급색귀는 무상귀에게 의심을 샀다. 급색귀와 세력이 비슷하거나 조금 작은 적사귀는 당장 걱정할 필요는 없다. 게다가 장설귀는 요즘 아주 흥미로운 수하를 곁에 두는 듯했다. 사람을 인형으로 만드는 자는 과거 황궁에서 의술을 연구하는 관리였다고 한다. 그가 만드는 인형은 의지를 잃고 사람을 먹는다고 한다. 장설귀는 스스로 자신을 잡아먹을 호랑이 새끼를 키우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저녁 늦게까지 무상귀의 쓸데없는 소리를 들은 온객행은 대전에 있는 처소로 보내진 자객 몇을 죽이고 박정부로 돌아왔다. 오늘은 하루 종일 머리가 무겁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온객행은 생각이 많아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처소에서 그를 반긴 것은 그가 보고 싶었던 염귀가 아니라 고상이었다. 고상이 들어오는 온객행에게 말했다.
“주인!”
고상이 온객행이 벗는 장포를 벗어 걸며 말했다.
“주인, 오늘도 여기서 주무시는 거에요?”
온객행이 방안을 둘러보는 것을 본 고상이 손 씻을 대야에 물을 채우며 말했다.
“망서는 나이모랑 있어요.”
온객행이 대야에 손을 씻으며 인상을 썼다. 고상이 다가와 그의 이마에 손을 대며 말했다.
“주인! 몸이 안 좋아요?”
온객행이 고상의 손을 물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고상은 영견에 물을 묻혀 온객행의 얼굴을 닦으며 말했다.
“주인, 망서는 대체 어디서 데려온 거예요?”
온객행은 대답 없이 중의도 벗어 버리고 침상으로 갔다. 고상이 침상 위에 이불을 펴고 온객행을 눕혔다. 이불을 잘 덮어주며 말했다.
“희상귀도 염귀가 마음에 들었나 봐요. 망서를 좋아하는 여귀들이 얼마나 많은 지 몰라요.”
온객행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어떤 여귀들이?”
고상이 온객행이 벗어 놓은 중의를 개면서 말했다.
“아니 좋아한다는 게 주인이 좋아하는 것처럼 그런 게 아니라…”

주자서가 광주리에 밀떡을 들고 목란과 유이와 함께 방안으로 들어왔다. 고상을 발견하고 활짝 웃으며 주자서가 말했다.
“아상! 이리 와서 같이 먹자.”
고상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자서가 들고 들어온 광주리 안을 보았다. 달래와 홍화 꽃잎을 섞어 부친 밀떡이었다. 주자서가 고상의 입에 하나 넣어 주며 말했다.
“먹어봐. 맵다. 맛있지?”
고상이 입에 들어온 밀떡을 먹으며 말했다.
“그러게 맵네? 근데 이렇게 먹어도 돼?”
주자서가 탁자에 광주리를 내려 놓고 말했다.
“잿물에 재기 전에 남은 데다 밀가루를 풀어서 달래랑 넣고 부친 건데 진짜 맛있어 그치?”
고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광주리 안에 있는 떡을 몇 개 더 집어먹었다. 유이가 말했다.
“원래 홍화는 먹으려고 심기도 했데요.”
주자서가 맞장구 치며 말했다.
“거기서 일하는 어멈이 어릴 때 많이 드셨데. 나는 매운 거를 좋아하는 것 같아.”
목란과 유이가 소매를 입으로 가리고 ‘호호호’하고 웃었다. 고상이 뭔가 생각났는지 밀떡 하나를 더 들고 침상에 가서 말했다.
“주인, 주인도 먹어봐. 정말 맛있어.”
주자서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뭐야? 벌써 왔어?”
온객행이 고상이 내민 밀떡을 보고 고개를 흔들며 돌아 누웠다. 고상은 그 밀떡도 입으로 가져가며 목란과 유이에게 눈치를 주었다. 주자서도 고상의 눈치를 읽고 말했다.
“아상! 밥 먹고 가. 내가 가서 가지고 올 게.”
하며 다시 방을 나가려는 데 고상이 주자서의 소매를 잡아당겨 방안으로 밀어 넣고 말했다.
“밥은 언니들이랑 부엌에서 먹을 테니까 너는 주인이랑 있어.”
주자서가 고상을 따라 나가며 말했다.
“그럼 가서 저녁을 가져와야 하잖아.”
고상이 주자서의 가슴팍을 밀며 말했다.
“여기 있으라고!”
장지문을 ‘탁’ 소리가 나게 닫고 나간 고상에게 서운해서 주자서가 입을 삐죽이고 다시 광주리를 놓은 탁자에 가서 앉았다.

주자서가 몸을 기울여 침상 쪽을 보자 귀왕이 옆으로 누워있다. 주자서는 대야에 있는 물에 손을 대충 씻고 귀왕에게 다가갔다.
“귀왕… 귀왕 벌써 자?”
귀왕은 보통 밤 늦게 와서 주자서에게 붙어 자다가 주자서가 눈을 뜨기 전에 사라지고 없었다. 주자서는 침상에 걸터앉아 귀왕의 이마에 손등을 대보았다. ‘귀왕도 아플 때가 있나?’ 미열이 느껴져 주자서가 손을 떼고 일어나려고 하자 귀왕이 주자서의 손을 잡았다. 귀왕이 눈을 슬며시 떠서 손을 보자 주자서의 손이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귀왕이 손을 끌어당기며 말했다.
“손이 왜 이래?”
엉거주춤하게 귀왕의 몸 위에 기댄 주자서가 손을 빼며 말했다.
“오늘 꽃 떡 만드는 걸 했거든. 냄새나?”
주자서가 손바닥을 킁킁대며 말했다. 귀왕이 몸을 일으켜 앉았다.

주자서가 일어난 귀왕을 다시 밀어 눕히려고 하며 말했다.
“미열이 있는 것 같으니까 좀 자. 밥은 먹었어?”
귀왕은 밀리지 않고 말없이 붉게 물든 주자서의 손끝을 보았다. 주자서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온객행이 주자서의 손을 다시 덥석 잡았다. 귀왕이 물었다.
“아파?”
주자서가 잡힌 손을 빼며 말했다.
“뭐가?”
온객행이 주자서의 손가락 끝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홍화를 맨손으로 따면 아리잖아.”
주자서가 몸을 굳히며 어색하게 ‘하하하’ 하고 웃었다.
“이정도는… 나보다 더 어리고 연약한 소녀들도 하는 일인데.”
귀왕이 주자서의 허리를 끌어당겨 안으며 말했다.
“너는 하지 마.”
주자서가 귀왕을 밀어내며 말했다.
“노는 것 보다 낫잖아. 매일 먹고 재워주는데. 이 정도는 괜찮아.”
귀왕이 주자서의 어깨에 고개를 묻고 말했다.
“그냥… 너는 하지 마. 아픈 건 하지 마.”

주자서가 어색하게 팔을 빼서 귀왕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왜 그래? 정말 아파?”
주자서가 팔을 풀고 온객행의 얼굴을 양손으로 잡았다. 눈 끝이 빨간 것이 꼭 울 것만 같았다. 주자서가 부스스 웃으며 말했다.
“무슨 귀왕이 이래.”
귀왕이 눈을 감으며 말했다.
“겨… 온, 온객행.”
주자서가 일어나 귀왕의 머리를 가슴에 안으며 말했다.
“네 이름은 온객행이구나.”
귀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자서가 말했다.
“나는 주자서야. 편견은 없는데, 지금 고민 중이니까. 좀 기다려.”
온객행이 팔을 들어 주자서의 허리에 감았다. 주자서가 또 작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다른 사람보다 많이 모자란 편이라 오래 기다려야 할 수도 있는데, 괜찮겠어?”

온객행이 고개를 들어 주자서를 보며 말했다.
“얼마나?”
온객행의 물음에 주자서가 고민하며 말했다.
“글쎄… 일주일…은 너무 짧고 보름도 그렇고… 한달?”
온객행이 주자서를 더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
“안돼. 그렇게 오래는 못 기다려.”
주자서가 온객행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비싸게 사준다며… 몸… 몸도 같이 줄 걸…? 아마?”
이번엔 온객행이 작게 웃었다. 주자서가 한탄하듯 말했다.
“어쩌면 이렇게 뺀 게 무색할 만큼 별볼일 없을 수도 있어.”
온객행이 주자서를 침상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그럼 일단 오늘 몸부터 주면 안돼?”
온객행이 주자서의 앞섶을 잡아 벌리자 주자서가 당황해서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야! 너 열 있다니까!”
온객행이 주자서를 눕히고 그 위에 올라타며 말했다.
“또 너라고 하지. 정말 혼나야겠어.”
그리고 벌어진 앞섶에 고개를 숙여 입을 맞췄다.

주자서가 온객행의 머리를 붙잡고 말했다.
“야! 너 몇 살인데 자꾸 그러는 거야?”
온객행이 부스스 웃으며 말했다.
“그러는 너는 몇 살인데?”
주자서가 몸부림 치며 말했다.
“난 스물 둘이야! 빨리 놔 봐. 내가 병수발을 들어주지.”
온객행이 고개를 들어 주자서를 빤히 보았다. 주자서가 고개를 뒤로 빼며 물었다.
“왜?”
온객행이 주자서를 놓아주며 말했다.
“너… 스물 둘이라고?”
주자서가 대야가 있는 쪽으로 가며 말했다.
“어! 내년에 졸업해. 등록금이 부족해서 휴학하면 그것도 못하겠지만…”
온객행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졸업? 휴학? 그게 무슨 소리야?”
주자서가 물을 묻힌 수건을 가져와 침상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뭐라구?”
온객행은 주자서를 보고 몇 번 눈을 깜빡이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주자서는 온객행을 침상에 밀어 눕혔다. 온객행의 이마를 수건으로 닦아주며 주자서가 물었다.
“그냥 열만 있는 거야? 아니면 다른 증상은 없어? 속이 메스껍다 거나 춥지는 않아?”
온객행이 순순히 주자서의 손에 침상에 누우며 고개를 흔들었다. 주자서가 다시 온객행의 이마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밥은 먹었어?”
온객행이 다시 고개를 흔들었다.

주자서가 일어나 조금 식은 찻물을 가져와 온객행에게 마시게 했다. 고분고분해진 것이 이상해서 주자서가 눈을 가늘게 뜨고 온객행에게 물었다.
“너… 몇 살이야?”
온객행이 눈을 감으며 말했다.
“나 아픈 것 같아.”
주자서가 온객행의 앞섶을 잡고 물었다.
“온객행. 너 몇 살이야?”
온객행이 웃으며 고개를 젓자 주자서는 약이 올라서 온객행의 앞섶을 쥐고 흔들었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손을 잡으며 불쑥 얼굴을 가깝게 붙이고 말했다.
“입맞춰주면 말해 줄게.”
주자서가 앞섶을 놓고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아니, 잠깐. 나는 말해줬잖아. 너무 엄청난 조건이 붙는 거 아닌가?”
이번엔 온객행이 주자서의 앞섶을 잡으며 몸을 붙여왔다.

주자서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잠깐! 나는 기억이 없으니까 이게 첫 키스잖아, 이런 건 싫어.”
온객행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첫키스? 그게 뭐야?”
주자서가 다급하게 말했다.
“다른 사람하고 처음으로 입맞추는 거. 내가 기억하는 범위에서 이게 처음이잖아.”
온객행이 주자서를 빤히 보며 말했다.
“나도 처음이야.”
주자서가 온객행을 흘겨보며 말했다.
“처음 좋아하네.”
온객행이 얼굴을 붙이며 말했다.
“정말이야. 망서, 네가 처음이야. 입맞추고 싶은 것도. 같이 있고 싶은 것도.”
주자서는 담백한 고백에 얼굴이 붉어졌다. 주자서가 작게 말했다.
“망서 아니라니까. 자서라고 부르라고.”
온객행이 작게 불렀다.
“자서.”
그리고 입술을 붙였다 뗐다.
“아서.”
주자서가 부스스 웃었다. 온객행이 다시 얼굴을 붙여 입술을 맞췄다. 입술을 핥다가 입 안으로 물컹 혀가 들어왔다. 치열을 훑고 입안을 휘젓는데 주자서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한참 둘이 입술을 맞대고 있는데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장지문이 열리는 소리에 주자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온객행을 밀어냈다.

밀린 온객행도 놀랐는지 번들거리는 입술로 일어난 주자서를 보았다. 주자서는 소매로 입술을 비벼 닦았다. 오히려 그래서 더 입술이 붉어졌다. 온객행은 침을 꿀꺽 삼키고 자리에서 일어나 주자서의 소매를 잡으려고 했는데 고상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인! 왜 일어나 있어? 얼른 누워요.”
주자서는 얼굴이 빨개져서 소매로 입술을 가렸다. 그 모습이 꼭 입을 가리고 웃는 여인 같아서 고상이 한 소리 했다.
“뭐야? 왜 그러고 있어?”
주자서는 고상의 목소리에 어깨가 튀더니 곧 방 밖으로 뛰쳐나갔다. 고상은 나간 주자서에게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뭐야! 대체 왜 그러는데?”
온객행이 다시 침상에 털썩 누우며 말했다.
“고상.”
고상이 온객행의 몸 위로 이불을 덮으며 말했다.
“주인 왜요? 내가 방해했어요?”
온객행이 고상을 보고 ‘허’하고 허탈하게 웃었다. 고상이 침대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주인, 망서에게 왜 잘해줘요? 그동안 데려온 애들은 더 야살스럽고 애교가 많은 애들이었잖아요. 쟤는 딱딱하고 딱히 단수(斷袖)도 아닌 것 같던데…”
온객행은 살포시 웃으며 대답이 없다. 고상이 물었다.
“설마 쟤는 안 죽일 거예요?”
온객행이 눈을 감으며 말했다.
“아상, 아서를 그렇게 부르면 안되지.”
고상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아…아서?”

주자서는 방에서 나와 얼굴을 양손에 묻었다. ‘엄청 기분 좋았어’ 이런 생각을 하며 크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나는 남자를 좋아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