穿越 第4

長舌鬼 | 장설귀

온객행은 그날 밤 열에 들떠 조금 앓았다. 다행히 주자서는 겁을 먹었는지 처소로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고상은 염귀의 욕을 하며 귀왕의 시중을 들었다. 희상귀에게 상황을 알리자 내실 근처에 호위가 더 삼엄 해졌다. 어렴풋하게 사위가 밝아오는 새벽에 주자서는 처소로 돌아왔다. 주변에 하인이 많아 진 것을 보고 의아해하며 문 밖에 서 있는 목란에게 말했다.
“누님, 왜 밖에 계세요?”
목란이 주변의 눈치를 보며 주자서의 팔을 붙잡고 말했다.
“곡주가 안에 계시네.”
주자서가 얼굴을 찌푸리며 입을 달싹이자 목란은 그의 팔을 잡아 내실 안으로 밀어 넣으며 말했다.
“가서 곡주 곁을 지키시게. 우리 말고 다른 사람의 기척이 느껴지면 큰소리로 나를 부르세요.”
주자서가 목란의 소매를 잡으며 말했다.
“기척은 무슨 기척이요. 나는 그런 거 몰라요.”

방안으로 들어오는 소리에 침상 옆에 기대서 자고 있던 고상이 주자서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망서! 너 어디 있었어!”
고상이 작은 목소리로 주자서의 소매를 끌어당겨 침상 쪽으로 밀었다.
“주인이 아프단 말이야! 얼른 네가 가서 위로해드려.”
주자서가 고상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위로? 위로라니 무슨 소리야?”
주자서의 얼굴이 빨개진 것을 본 고상이 ‘허’ 하고 헛웃음을 치며 말했다.
“주인이 예뻐라 하니까 자꾸 기어오르는데 나한테는 어림도 없어.”
주자서가 얌전히 온객행이 누워있는 침대에 걸터앉아 그를 보았다. 정말 밤새 앓았는지 얼굴 색이 좋지 않았다. 주자서가 고상에게 물었다.
“왜? 왜 이렇게 된 거야? 그새 열이 다시 올랐어?”
주자서가 온객행의 이마에 손등을 올리며 말했다. 고상은 대야에서 젖은 영견을 주자서의 손에 쥐어 주고 대야를 들고 나가며 말했다.
“내가 올때까지 여기 있어. 어디 나가지 말고, 누가 기별 없이 들어오면 목란언니를 불러.”
주자서가 온객행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았어.”

주자서는 온객행의 얼굴을 수건으로 닦으며 말했다.
“정말 잘 생겼다.”
주자서의 목소리에 온객행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더니 눈을 떴다. 주자서는 온객행과 눈을 맞추며 말했다.
“귀왕? 정신이 들어?”
온객행은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더니 곧 잘게 기침을 했다. 주자서는 온객행을 일으켜 앉히며 그의 등을 쓸었다. 온객행이 인상을 쓰고 몇 차례 기침을 하더니 울컥 피를 토했다. 주자서는 손에 들고 있던 영견을 그의 입 앞으로 가져갔다. 주자서는 살면서 사람의 입에서 이렇게 울컥 피가 토해지는 것을 본적이 없는 것 같았다. 너무 놀라고 당황하여 손이 벌벌 떨렸다. 주자서가 안절부절 못하며 손을 떨자 온객행이 덥석 주자서의 손을 잡았다. 주자서는 그제야 정신이 들었는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모…목란누님…”
주자서가 일어나려고 하자 온객행이 주자서의 손을 끌어당겨 침상에 앉히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주자서가 온객행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앉으며 말했다.
“대체 뭐야… 지병이라도 있어? 병원에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온객행이 인상을 쓰자 주자서가 주변을 보더니 얼른 일어나 다 식은 찻물을 담은 찻잔을 가져와 온객행의 입에 대주었다. 온객행은 주자서가 가져온 찻물을 삼키지 못하고 다시 뱉었다. 찻잔이 시뻘건 핏물로 채워지자 주자서는 놀라서 찻잔을 놓치고 말았다. 온객행이 입고 있던 하얀 내의가 붉게 물들었다. 주자서가 당황하며 얼른 쏟은 찻잔을 치우고 온객행의 내의 앞섶을 잡아 벌렸다. 주자서의 행동에 온객행이 작게 웃었다. 주자서는 잠시 멈칫하더니 다시 귀왕의 내의를 벗기며 말했다.
“웃음이 나오냐? 이 바보야!”
주자서의 얼굴이 빨개졌다. 온객행은 순순히 내의를 벗고 다시 침상에 누웠다.

주자서가 이불을 덮어주고 핏물이 베인 내의를 빨래감을 모아두는 통에 던져 놓았다. 주자서가 귀왕의 장포가 걸려있는 옷걸이 근처에서 귀왕의 옷을 찾았다. 어떤 함에는 색색의 장포가 들어 있었고, 또 어떤 함에는 하얀 내의만 있었다. 주자서는 내의를 하나 들고서 침상으로 갔다. 주자서가 이불을 들추고 온객행에게 내의를 입혔다. 온객행이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차피 벗을 건데 뭘 입혀?”
주자서가 거칠게 귀왕의 앞섶을 여미면서 말했다.
“벗긴 뭘 벗어!”
온객행이 작게 웃다가 다시 기침을 했다. 주자서는 혹시나 또 피를 토할까 봐 이미 피가 잔뜩 묻은 영견을 찾아 그의 입 앞에 대주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기침만 나왔다. 주자서가 온객행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앉아 있는 게 좋겠어. 또 피를 토하다 질식하면 안되니까.”
주자서가 몸을 붙여 침상위에 있는 베개를 정리해 온객행을 앉히고 이불을 덮었다.

주자서가 온객행을 보고 물었다.
“혹시 살날이 얼마 안 남은 거야?”
온객행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왜? 살날이 얼마 안 남았으면 빨리 마음 주려고?”
주자서가 온객행의 팔을 밀며 말했다.
“너는 정말, 기운도 좋다.”
온객행이 이불 속에서 팔을 들어 주자서의 허리를 끌어당기며 말했다.
“살날이 얼마 안 남았으면 마음 줄 거야? 지금?”
주자서가 언짢은 표정을 하며 고민하자 온객행이 주자서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며 웃었다. 주자서는 웃는 귀왕의 등을 쓸면서 말했다.
“곧 죽는다고 하면…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너는 아직 살아 있으니까…”
온객행의 어깨가 떨리며 조금 더 웃었다. 주자서는 한참 망설이다가 말했다.
“너랑 입맞춘 거… 기분 좋았어.”
온객행은 주자서를 자기 품으로 끌어당기며 목덜미에 입을 맞췄다.

주자서가 불편한 기색을 지우지 못하고 바르작대자 온객행이 말했다.
“죽을 병 아니야. 맹파탕의 부작용이야.”
주자서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맹파탕?”
온객행이 주자서와 눈을 맞추고 말했다.
“귀곡에 들어오면 누구나 마시는 탕이야. 가장 집착하는 것을 잊게 해주지.”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나도 맹파탕을 마셔서 기억이 안나는 걸까?”
온객행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가장 집착하는 것을 잊게 하지 전부를 잊게 하지는 못해.”
주자서가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내가 정말 싫었나 보다. 전부 잃어버린 거 보면.”
주자서의 말에 온객행이 얼굴을 붙이며 말했다.
“나는 좋아해.”
온객행의 입술이 주자서의 입술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주자서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죽을 병이 아니라며…”
온객행이 주자서의 뺨에 입맞추고 말했다.
“기분 좋았다며…”
주자서가 양팔로 온객행을 와락 안으며 말했다.
“그니까… 왜 좋았을까? 나는 남자를 좋아했나?”
온객행이 주자서를 침상위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남자라서가 아니라 나라서 좋았던 건 아니고?”
주자서가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너 목소리도 진짜 좋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어깨에 고개를 묻고 또 부스스 웃어버렸다.


온객행이 앓아 누운 날 밤, 장설귀 황작(黃雀)이 자기가 거둔 수하 구빈(邱賓)에게 당해 죽었다. 곡주가 박정부에 새로 온 염귀를 귀여워한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었지만, 정작 귀여움 받은 염귀를 본 사람은 없다. 곡주가 일찍 박정부로 돌아간 것을 본 무상귀는 개심귀와 총신 흑무상, 백무상을 데려다 식시귀의 일에 대해 논의를 하고 있었다. 박정부는 귀곡 내에서도 그 입지가 조금 남달랐는데, 다른 귀신들과는 달리,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 거래하여 일정한 수입이 있었고, 일원이 모두 여인이라는 점은 어떻게 보면 약점 같지만 오히려 강점이었다. 귀곡에 흘러 들어오는 인간상은 무수했으나 귀곡에 닿은 이들 중에 기구한 사연 하나 없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뜻을 맞추어 단결하는 것은 귀곡에서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는데, 어쩐지 여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유대 하여 서로를 한덩어리로 묶었다. 그들은 귀곡의 대부분의 음식을 만들고 준비하며 잡귀들이 입는 옷과 귀면을 만드는 일도 했다. 박정부주의 허락없이 박정부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귀곡주 정도이다.

무상귀가 고심하고 있을 때, 밖에서 잡귀 하나가 헐레벌떡 들어와 말했다.
“무상야(無常爺)! 무상야! 장설귀 황작이 죽었습니다!”
무상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뭐라고? 황작이?”
잡귀가 숨을 고르며 말을 이었다. 황작이 데려온 구빈이라는 사내는 멀쩡한 사람을 인형처럼 만들어 부리는 자이다. 피리나 고금 같은 소리를 가지고 인형들을 조종하는데 그 인형을 보러 갔다가 화를 당했다고 한다. 무상귀가 다시 자리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
“쯧, 하필 이럴 때 황작 마저 가다니… 대체 온가놈이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 것인지…”
무상귀의 말에 개심귀가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황작은 이름만큼이나 소인배였으니 자기보다 그릇이 큰 관리에게 당한 것이겠지요.”
백무상이 말했다.
“노야(老爺), 구빈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괜히 들쑤시지 않으면 상관하지 않을 겁니다.”
흑무상이 거들었다.
“노야, 그는 정말 귀신입니다. 사람의 살을 열고 젖히며 독의 병리를 연구하는데 미친 놈입니다.”

무상귀가 짜증을 내며 말했다.
“그러니 화가 나는 것이지! 손에 쥐고 흔들 말이 점점 줄어 들지 않느냐!”
개심귀가 불편한 기색을 지우지 않으며 말했다.
“설형, 설형. 그것이 비단 설형만 그렇겠습니까? 곡주라고 다를까요?”
개심귀의 말에 무상귀가 탁상에 놓여있던 차를 마시며 말했다.
“새로 식시귀가 된 그 보아라는 자는 만나 보았소?”
개심귀가 다시 ‘하하하’ 웃으며 말했다.
“그 놈은 천치나 다름없으니 오히려 같이 일했다가 손해를 볼까 두려울 정도요.”
흑무상이 무상귀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노야, 저희가 데리고 일하던 아이들 중에 식탐이 많은 아이들이 모두 식시귀의 수하로 떠났습니다.”
무상귀가 작게 코웃음 치며 말했다.
“어차피 밥이나 축내는 버러지들이었으니 이 참에 잘 어울리는 우두머리를 만난게지.”
백무상과 흑무상이 무상귀의 눈치를 보며 시선을 교환했다. 개심귀가 그것을 눈치채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설형은 그럼 고민해 보시오. 나는 적사귀를 만나러 가야겠소.”
무상귀가 인상을 쓰며 개심귀가 나가는 것을 보았다.

개심귀는 적사귀 길도(姞徒)의 거처인 진광전(秦廣殿)앞에 도착해서 들어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었다. 적사귀는 평소에 처소에 틀어박혀 얇은 금속을 가공하여 전혼사를 만드는 것에 몰두해 있다. 그는 식시귀처럼 주변에 귀신을 많이 두지 않는 악귀였으나 전혼사를 다루는 솜씨는 귀곡의 모두가 인정하는 고수였다. 개심귀는 지금의 적사귀가 전대의 적사귀를 죽일 때 같은 자리에 있던 사람이다. 길도 이전의 적사귀는 단순히 사람을 창에 줄줄이 꿰어 죽이는 사람이었는데, 길도가 적사귀가 된 이후로 진광전은 사람의 포를 뜨는 곳으로 바뀌었다. 잡귀 하나가 진광전에서 나와 개심귀에게 인사했다. 개심귀가 물었다.
“적사귀는 어디 있는가?”
잡귀는 대답없이 개심귀에게 대전 안쪽으로 손짓했다. 개심귀가 대문 안쪽을 잘 살피며 진광전 안으로 들어갔다.

적사귀는 풀무질을 하며 유리를 달구고 있었다. 저 온도에 도달하기 위해 길도는 사람의 뼛조각까지 모아서 태웠다. 음지에 있어 풀과 나무가 적은 귀곡에서 땔감을 찾는 것은 사람을 죽여 그 시체를 태우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적사귀가 풀무질을 멈추고 개심귀에게 물었다.
“백형, 무슨 일이오?”
개심귀가 근처에 있는 작은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자네는 벌써 온가놈에게 붙었는가?”
길도가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펴며 말했다.
“노곡주에 비하면 온가놈은 나의 일에 관여하거나 무기를 내어 놓으라고 법석을 떨며 볶아 대지 않으니 적사귀로서 그가 기껍지요.”
개심귀가 적사귀가 만들어 놓은 가는 실을 보며 말했다.
“고오가 죽었네. 황작도.”
적사귀가 근처에 있던 물단지에서 물을 퍼 마시며 말했다.
“황작은 몰라도 고오가 죽었다 구요?”
개심귀가 고개를 끄덕였다.
“설단이 또 난리를 쳤겠군요.”
개심귀가 ‘흥’하고 코웃음 치며 말했다.
“설단은 별로 걱정이 안되는데, 그 놈 아들은 좀 걸려.”
적사귀가 개심귀를 응접실로 안내하며 말했다.
“그래서 백형께서는 어쩌시려고 여길 오셨습니까?”
개심귀가 ‘히히히’ 웃으며 말했다.
“일단 살아 있으니 뭐든 해야지 않겠나?”
적사귀가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웃었다.


고상이 요기거리를 가지고 온객행의 처소에 다시 갔을 때, 온객행은 주자서를 껴안고 자고 있었다. 고상은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두 사람이 옷을 입고 있는지 확인한 다음에 ‘휴’ 하고 작게 한숨을 쉬고 탁자위에 찬합을 놓았다. 인기척을 느낀 주자서가 화들짝 놀라 깨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고상이 작게 웃으며 주자서에게 손가락질하며 속삭였다.
“왜 그렇게 놀라?”
얼굴이 빨개진 주자서가 허리에 감긴 온객행의 팔을 풀며 일어나 앉았다. 눈을 비비며 잠긴 목소리로 고상에게 물었다.
“지금 몇 시야?”
고상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몇 시? 지금 때를 묻는 거야? 사시(巳時)랑 오시(午時) 사이인데?”
주자서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그게 몇 신데?”
고상이 침상 쪽으로 슬금슬금 다가오며 말했다.
“몇 시 냐니? 무슨 소리야? 사시랑 오시 사이라고!”
주자서가 침상에서 내려와 신발을 신으며 말했다.
“사시는 언제고, 오시는 언제인데? 나 참. 밝은 거 보니 벌써 12시가 지난 거 아니야?”
고상이 주자서의 팔을 잡아당겨 찬합이 놓인 탁자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열 두 시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중천이 넘었다고!”
고상이 찬합에서 음식을 꺼내자 주자서는 웃으면서 꺼내 놓은 음식을 보았다.

주자서가 젓가락을 들어 음식에 손을 데려고 하자 고상이 주자서의 손을 때리며 말했다.
“주인님을 깨워야지!”
주자서가 고상이 때린 손을 잡고 말했다.
“아야! 너 정말 손 매운 거 알아?”
온객행이 침상에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
“아상.”
고상이 얼른 침상 쪽으로 가며 주자서를 흘겨보았다.
“네, 주인!”
고상은 온객행에게 신발을 신기고 부축하여 탁자로 데려왔다. 고상이 옆에 앉아 시중을 들려고 하자 온객행이 고상을 빤히 보았다. 고상은 다 식은 차주전자를 들더니 어서 가서 차를 내오겠다며 방을 나갔다. 주자서는 고개를 흔들며 찬을 집어먹었다. 온객행이 음식을 먹지 않고 빤히 쳐다보는 것을 느낀 주자서가 음식을 씹으면서 똑같이 온객행을 마주 보았다. 주자서가 눈을 굴리다 온객행에게 물었다.
“뭐?”
온객행은 말없이 자기 옆에 놓인 의자를 손으로 툭툭 쳤다. 주자서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젓가락을 놀려 찬을 집어먹었다. 온객행은 고개를 젖히고 한숨을 크게 쉬더니 탁자를 집고 일어나려다 휘청였다. 주자서가 놀라서 젓가락을 놓고 그를 부축했다.
“야!”
온객행을 다시 자리에 앉힌 주자서가 온객행이 손으로 툭툭 쳤던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진짜 너 몇 살이야? 사실은 세 살 아니야? 온삼세.”
주자서가 앞접시와 젓가락을 찾아 온객행의 손에 들려주고 다시 찬을 먹기 시작했다.

온객행은 주자서가 쥐어 준 접시와 젓가락을 다시 탁자에 놓고 말했다.
“입 맞췄으니까, 알려 줄게.”
주자서가 또 어깨를 흠칫 떨며 말했다.
“야! 밥은 좀 편하게 먹자! 진짜.”
온객행이 부스스 웃으며 얼굴을 가까이하자 주자서가 온객행의 얼굴을 밀며 말했다.
“귀왕이라며. 천 살은 드셨겠지. 온천세씨. 안 궁금해. 밥이나 먹어.”
온객행이 주자서가 밀어내는 손을 잡고 굳이 주자서에게 얼굴을 가까이 붙여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난 스물.”
주자서가 고개를 획 돌리고 온객행을 밀면서 말했다.
“야! 내가 형이잖아?”
온객행은 팔을 둘러 주자서를 다시 품 안에 안았다. 주자서가 온객행의 어깨를 밀면서 말했다.
“아니 어른들은 뭐하고 너 같은 어린애가 귀왕을 하고 있어?”
온객행이 주자서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고 말했다.
“애고 어른이고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겠어. 이 지옥에서.”
주자서가 밀어내는 것을 멈추고 말했다.
“귀왕이 엄청 젊네. 나보다 젊네?”
온객행이 주자서의 어깨에 고개를 비비자 주자서가 팔을 둘러 온객행의 등허리를 쓸며 말했다.
“그래, 그래. 애기 귀왕아… 우리 밥 먹으면 안될까?”
온객행이 고개를 들어 주자서를 보며 짐짓 근엄하게 말했다.
“그건 싫어. 귀왕 말고 다른 걸로 불러 봐.”
주자서가 몸을 돌려 젓가락을 다시 들고 말했다.
“그래. 애기야. 밥 먹자.”
주자서는 온객행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또 찬을 집어서 먹기 시작했다.

주자서와 온객행이 식사를 마치자 목란과 유이가 차를 들고 들어와서 시중을 들었다. 주자서와 온객행은 관수(盥漱)하고 옷을 갈아 입었다. 주자서는 예의 자기 옷이 맞는지 몇차례나 물었던 붉은 옷이 아니라 연한 회색의 장포를 입었고, 온객행은 고상과 비슷한 색의 보라색 옷을 입었다. 주자서가 온객행의 옷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입으니까 마치 남매 같네.”
고상이 웃으며 말했다.
“주인, 그럼 오라버니라고 불러드릴까요?”
온객행이 심드렁하게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그러던지.”
고상이 온객행에게 붙어 앉으며 말했다.
“오라버니.”
온객행이 고상을 보고 살포시 웃었다. 주자서가 유이가 건내 준 차를 마시면서 말했다.
“웃으니까 더 잘 생겼다.”
온객행을 보고 있던 고상이 ‘허’ 하고 웃으며 말했다.
“지금 나가라고 눈치 주는 거야?”
주자서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눈치는 무슨! 봐, 잘 생겼잖아. 그럼 못 생겼어?”
고상이 다시 시선을 온객행에게 옮기며 말했다.
“아이, 당연히 주인은 잘 생겼죠… 그런 뜻이 아니라…”
온객행이 고상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맞아. 나가라고 눈치 주는 거야.”
주자서가 마시던 차에 사레가 걸려 기침을 해댔다. 옆에 있던 목란이 주자서의 등을 두들겼다.

고상이 자리에 바로 앉으며 말했다.
“주인, 무상귀가 곧 찾아올 것 같은데 어떡할까요?”
온객행이 대답없이 차를 마셨다. 등을 두들기던 목란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황작이 죽었습니다.”
온객행은 ‘하’ 하고 코웃음 치고 답이 없다. 고상이 안달이 나서 말했다.
“개심귀가 적사귀를 찾아갔단 말이에요!”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걱정마라. 오늘은 별일 없을 것이다.”
고상이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
“주인!!”
온객행이 찻잔을 내려놓고 고상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걱정할 것 없다. 그들이 미치지 않고 서야 함부로 박정부에 들어오지 못 할 거야.”
고상이 주자서를 흘끔 보고 말했다.
“무상귀가 잡귀들에게 염귀가 누구인지 알아보라고 시켰어요.”

주자서는 온객행과 고상이 하는 이야기의 대부분을 알아듣지 못해, 오늘은 무슨 일을 하나 하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염귀의 이름이 나오자 고개를 돌려 온객행을 보았다. 온객행은 주자서를 보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
“어때? 잘 생겼어?”
주자서는 염귀에 대해 물어보려고 하다가, 목란과 유이의 눈치를 한번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잘 생겼어.”
고상은 ‘어휴’ 하고 한숨을 쉬었고, 목란과 유이는 입을 소매로 가리고 ‘호호호’ 하고 웃었다. 주자서는 내심 불안이 일었지만, 오늘은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고 하니 괜히 걱정을 사서 하지 않기로 했다. 온객행의 예상은 조금 빗나갔는데, 그날 저녁 박정부로 무상귀의 아들 설비(契飛)가 찾아왔다.


주자서는 처소에 앉아서 희상귀에게 새로 받은 장부에 오늘 분의 일 처리에 대해 적고 있었다. 기별없이 벌컥 문이 열리고 온객행이 들어왔다. 주자서는 붓을 들고 목간에 숫자를 적으며 누가 들어왔는지 보지도 않았다. 온객행은 주변에서 일하고 있던 목란과 유이를 내보내고 주자서의 곁으로 와서 앉았다. 주자서가 눈을 힐끔 들어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나는 붓을 쓰는 사람은 아니었나 봐, 글씨가 잘 안 써져.”
온객행이 몸을 붙여 앉으며 주자서의 허리를 쓰다듬었다. 주자서가 몸을 비틀며 말했다.
“어허! 나 지금 일 하잖아. 옷에 먹이 묻으면 지워지지도 않는다고.”
온객행이 주자서의 손에서 붓을 빼앗아 내려놓고 말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대로 해. 누가 들어오든 절대 얼굴을 보여선 안돼.”
주자서가 순순히 붓을 내려 놓고 온객행을 보며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누가 와?”
온객행이 주자서의 몸을 자신에게 밀착시키며 말했다.
“너 염귀에 염(艶)이 무슨 뜻인지는 알지?”
주자서의 얼굴이 온객행의 가슴에 부딪혔다.
“어…? 어어.”

온객행이 주자서의 몸을 들어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려 놓으며 말했다.
“말하지 마.”
그리고 주자서의 입술에 꾹 입을 맞췄다. 놀란 주자서가 온객행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뭔가 말하려는 데 밖에서 사람이 들어왔다. 온객행이 돌아가는 주자서의 얼굴을 턱으로 잡고 주자서의 눈을 보며 고개를 작게 흔들었다. 주자서는 요상한 자세가 되어 온객행 품에 있는 게 부끄러웠다. 게다가 그걸 남에게 보인다고 하니 열이 올라 얼굴이 터질 것 같았다. 주자서가 온객행의 어깨에 고개를 묻고 그를 끌어 앉자 온객행이 주자서의 등허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무슨 일이지?”
들어온 남자는 온객행을 보고 작게 얼굴을 찡그리고는 답했다.
“제가 설단과 같은 성씨를 쓰는 것은 그의 자식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목덜미에 고개를 묻고 답했다.
“흐음.”
주자서는 몸을 흠칫 떨고는 온객행의 어깨를 잡았다.

온객행은 어깨에 있는 주자서의 손을 자신의 허벅지로 내리며 말했다.
“무상귀 자리를 원하는가?”
설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지금 무상귀에게 세력이라고 불리울 만한 것은 흑무상과 백무상 뿐입니다. 고오와 황작의 죽음으로 귀곡의 판세가 바뀌었으니, 무상귀도 바뀔 때가 되었지요.”
주자서는 온객행의 허벅지에 올려진 손이 부끄러워서 자꾸만 바르작대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주자서의 몸이 들썩이자 온객행이 주자서의 허리를 안으며 말했다.
“설단이 많이 늙기는 했지.”
설비가 당황하며 말했다.
“곡주께서 염귀와 즐기고 계신데 제가 감히 방해를…”
온객행이 고개를 비스듬히 꺾으며 말했다.
“방해? 지금 자네가 나의 즐거움을 방해한 것을 걱정하는가? 이 곳은 박정부인데?”
설단이 뒷걸음질 치며 말했다.
“곡주께서는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박정부주께는 제가 잘 말씀드리겠습니다.”
온객행이 작게 웃으며 답했다.
“그 말, 희상귀가 들어 주길 바라겠네. 무상귀라도 되지 않으면 어찌 여귀들이 그대를 살려 두겠는가?”
설비가 작게 웃으며 답했다.
“허락으로 알고 처신하겠나이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뺨에 손을 가져가며 말했다.
“그래. 설단을 죽이면, 내가 그대를 무상귀라 불러주지.”
설비는 온객행의 말에 깊게 절하고 방을 나갔다.

장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마자 주자서는 마치 그동안 숨을 참았던 사람처럼 숨을 크게 들이켜고는 온객행을 밀어냈다.
“허!”
온객행이 다시 주자서의 몸을 끌어안으며 귓가에 속삭였다.
“아직 밖에 있을 수도 있잖아.”
주자서가 온객행의 귀를 잡고 속삭였다.
“이거 진짜 미친놈 아니야? 나…나는! 남들 앞에서…”
온객행이 주자서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알았어. 알았어.”
주자서가 다시 온객행의 귀를 잡고 말했다.
“나는 남들 앞에서 이러는 거 취미에 없어! 이 미친놈아!”
온객행이 낮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래. 설비 저놈은 입이 가벼우니 곧 염귀가 얼마나 나에게 귀여움을 받는지 귀곡 전체가 알게 될 거야.”
주자서는 고개를 뒤로 꺾고 거친 숨을 몰아 쉬었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드러난 목에 입을 맞추자 주자서는 인상을 쓰면서 온객행의 머리를 꼭 안았다.
“온삼세!”
온객행은 분명히 숨이 막힐 텐데도 주자서의 품에 얼굴을 묻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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