雨霖鈴 第30

30. 埋骨不埋名
뼈는 묻어도 이름은 묻을 수 없다.

호화로운 객잔에서 하룻밤을 지낸 주자서와 온객행은 다음날 아침 일찍 제왕이 아침을 먹는 곳에 불려 갔다. 제왕은 주자서를 주영이라고 부르기로 마음먹었는지 그를 영이라고 부르며 상냥하게 굴었다. 주자서는 불편해하면서도 제왕을 거절하지 못하고 그가 하자는 대로 마구 휘둘렸다. 커다란 배를 몇 척 빌려 양산 습지를 건너고,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복양에 도착했다.

제왕과 귀족들 사이에서 함부로 말을 탈 수 없어 허름한 수레를 타고 이동했는데, 행렬이 멈추자 온객행과 주자서는 행군을 하던 군병들 사이에서 멀뚱히 서있다가 막사를 치는 사람들을 돕고 죽을 얻어먹었다. 얼마 안 있어 장순이 동군을 이끌고 그들과 합류했다. 온객행을 거칠게 다뤘던 제왕의 심복인 하후장군이 주자서를 찾았다. 주자서는 온객행을 데리고 복양성에 있는 객잔으로 불려가 원하지도 않는 술을 마시며 제왕과 어울렸다.

제왕은 주자서에게 객실을 내어주며 편히 쉬라고 말한 뒤에 자신의 객실로 갔다. 온객행은 하루 종일 귀족의 눈치를 보며 행동하느라 밤에는 진이 다 빠졌다. 주자서는 여상하고 적절하게 잘 대처하며 온객행을 챙겼다. 주자서의 행동은 오히려 온객행에게 이질감을 느끼게 했다. 온객행은 점점 주자서와 마음에 거리가 생기는 것 같았다.

주자서가 영견에 물을 묻혀 온객행에게 내밀자 온객행은 겨우 팔을 들어 영견을 받았다. 영견을 펴서 얼굴에 덮어 놓고 있자 주자서가 와서 영견으로 온객행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노온 힘들어서 그래?” 온객행이 침상에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아서 우리는 언제까지 제왕전하와 함께 하는 거야?” 주자서가 영견을 대야 위에 얹어 놓고 침상으로 가서 앉으며 말했다. “그러게, 어떡하면 좋을까?”

온객행이 주자서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며 말했다. “아서 우리 도망갈까?” 주자서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노온.” 온객행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서 나는 거북해서 힘들어.” 주자서가 온객행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노온, 그러면 혼자서 갈래?” 온객행이 주자서의 얼굴을 한참 보더니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니, 아서랑 같이 갈래.” 주자서는 얼굴에 미소를 띄운 채로 온객행을 마주 안으며 말했다. “그래, 노온.” 온객행은 주자서의 허리를 끌어안았는데 그렇게 해도 주자서가 잡히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주자서의 손바닥 위에 있는 줄 알았는데, 손가락 끝에 겨우 걸쳐 있다.

제왕의 행렬은 이틀 후에 개봉성에 도착했다. 제왕이 개봉성에 도착하자 하남태수가 제왕을 반겼다. 그의 옆에는 예주의 영천태수 역시 함께 있었다. 영천태수는 제왕에게 회남왕 사마윤의 서신을 전달했다. 제왕은 회남왕의 서신을 받고 흡족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내용은 알 수 없으나, 제왕이 동평호에서 했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개봉성은 온객행과 주자서가 주구전을 만났을 때와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일단 성의 안과 밖에 거지가 별로 없었고 성을 드나드는 사람의 숫자도 적었다. 개봉성에 있는 8개의 문 중에 열려 있는 것은 모두 4개로 하남군이 삼엄하게 문을 지키고 있었다. 제왕은 태수와 장군들을 부른 간소한 석찬에 온객행과 주자서를 불렀는데, 그곳에서 제왕은 주자서를 자신의 당질이라고 소개했다.

온객행은 고개를 들어 주자서를 보았다. ‘푸르고 푸른 그대 옷깃 아득하고 아득한 내마음이여.’(10) 고운 비단 옷을 입고 관을 한 주자서는 정말 제왕의 당질처럼 보였다. 그와 비슷한 옷을 입고 관을 하고 있는 제 모습이 너무 우습다. 제왕에게 술을 받고 가지런히 양손으로 술잔을 받아 든 주자서의 모습을 웃는 얼굴로 보고 있던 온객행은 주자서가 제왕에게 인사하고 술잔을 넘기는 것을 끝까지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아버렸다.

온객행은 자조했다. ‘나는 지금 이곳에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온객행은 고개를 떨구고 작게 헛웃음 지었다. 석찬이 마무리되고 제왕은 주자서를 데리고 태수와 장군들에게 그를 소개했다. 온객행은 제왕에게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표정을 꾸민 주자서를 보고 있다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잡으면 떠날 수 없을 것 같아서, 온객행은 그를 거절할 수 없을 것 같아 말없이 객잔을 나왔다. 성을 지키는 군병에게는 동군의 막사로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온객행은 숭산으로 향했다. 온객행은 스스로가 어수선하게 길에서 벗어나 있는 동안 엽백의가 그를 대신해 무언가를 찾았기를 바랬다.


온객행은 조금 무리해서 쉬지도 않고 숭산으로 향했다. 사흘정도 걸릴 길을 이틀만에 도착했다. 소림사는 안에서 문을 걸어 잠갔는지 산문에는 아무도 없었다. 온객행이 산문의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스님이 대답했다. 온객행은 장명산의 제자가 스승님을 찾으러 왔다고 말하고 소림사 안으로 들어왔다. 소등시간이 지난 후라 소림사 내부는 어두웠지만 소란스러웠다.

자운당이 아니라 방장실로 안내받은 온객행이 안으로 들어가자 안에는 지주와 엽백의 주구전 그리고 초무관에서 만났던 소년이 엽백의의 옷을 입고 있었다. 온객행이 소년을 손가락질하며 엽백의를 보자 엽백의가 소년에게 말했다. “못난아, 인사해라. 네 사형이다.” 제갈왕과 온객행의 얼굴이 구겨져 서로를 보았다. 주지가 ‘큼큼’ 목을 가다듬더니 말했다. “오늘 이천 이궐관에 예장왕과 초은왕이 도착했네. 그리고 정주성의 월기교위와 진사왕 사마예는 농성중이네.”

온객행이 주지에게 말했다. “청주의 제왕과 양주의 회남왕도 곧 도착할 것입니다.” 주구전이 말했다. “그들이 도착하면 바로 낙양의 도위로 들어가겠군.” 주지가 말했다. “도위 중에 낭야왕을 따르지 않는 자는 숭산에 있는 환원관뿐입니다.” 엽백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면 그들은 선문관으로 오겠군.” 주구전이 온객행의 소매를 잡아 그를 앉히고 마시던 차를 권했다. 온객행은 조금 식은 차를 마시고 말했다. “제왕전하께서 낭야왕 사택의 사병을 모두 방면하였습니다. 낭야왕을 도울 후발부대는 없습니다.”

주구전이 입을 달싹이는 것을 보던 엽백의가 온객행에게 물었다. “네 모과는 어디두고 너 혼자 왔느냐?” 온객행이 찻잔을 내려 놓으며 말했다. “무릇 한나라의 임금이 먹는 음식과 같은 음식을 먹는 신분인자는 그 은택이 삼족까지 미치는데 하물며 귀한집의 자식인 그야 말할 것도 없습니다.”(93) 주구전이 옆에서 작게 탄식하며 말했다. “진왕을 만난 것이오?” 온객행이 주구전을 보며 말했다. “진왕이요? 제왕전하와 함께 있습니다.” 주구전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청주 제(濟)왕 말이오?”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구전은 안심한듯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야기를 마치고 지객당으로 돌아가는 온객행은 하늘에 떠있는 휘영청 밝은 달을 보았다. ‘보름이 되었는데 나는 네 대답을 듣지도 않고 도망쳐버렸네.’

오경이 끝나는 종이 울리고 온객행은 눈을 떴다. 오랜만에 엽백의와 같은 하얀 무명옷을 입었다. 입고 온 비단옷은 곱게 개어 주자서의 봇짐 안에 넣어 놓았다. ‘그가 혹시라도 돌아오면…’ 같은 생각을 하면서 그렇게 했다. 온객행은 자리에 앉아 운기조식을 한 후에 스님의 부름을 받고 설법이 끝난 대웅보전으로 향했다. 대웅보전에는 소림사를 떠나지 못한 강호인들이 삼삼오오모여 있었다. 곧 엽백의와 공동산의 제자들 그리고 주구전이 들어왔다. 주구전은 들어온 뒤에 대웅보전의 문을 닫았다.

지주가 향로 앞에 나와 운을 띄웠다. “그대들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정변의 이유를 아시오?” 지주의 말에 잠시 조용했던 대웅보전이 다시 웅성거렸다. 엽백의가 주지에게 다가가 고갯짓으로 인사하고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관은 무림의 일에 상관하지 않고, 무림은 관의 일에 상관하지 않는다.”(3)

엽백의의 목소리는 내공이 담겨있어 대웅보전 안에 있는 모두가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청명에 그대들에게 물었소. 무림맹에 관여한 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지.” 엽백의의 말을 들은 각 문파의 장문과 장문후계들은 눈치를 보며 입을 다물었다. 엽백의는 대웅보전 안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보며 뜸을 들이다 내부가 완전히 조용해지자 말을 이었다. “이 엽모는 강호를 어지럽히는 자를 처단하겠다 그대들과 약속하였으니 오늘 이자리에서 무림맹이 무엇이고 그들이 어떤 권모술수로 황실을 희롱하고 정변을 일으켰는지 말하고자 하오!”

엽백의의 말이 끝나자 공동파의 제자 당량(唐諒)이 나와 입을 열었다. “공동산은 과거 오랫동안 마교인 명교와 대립하였소. 명교가 스러져 그 명성이 바랜 것이 오래전인데 어찌하여 그들의 삿된 용독술이 중원을 어지럽히고 있단 말이오?” 당량의 말이 끝나자 제갈왕(諸葛往)이 그들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장명산의 제자 제갈왕 강호의 대인들 앞에 참회하고자 합니다.”

소년의 얼굴을 알아본 조경이 앞으로 나와 그에게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저놈은 마교인 독갈의 일원이오!” 소년이 조경을 보며 말했다. “그렇소! 나는 남방 마교 분파의 일원이었소. 나와 모친에게 독갈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것은 태호파의 조경이오!” 제갈왕의 눈에 다시 눈물이 고였다. 조경은 당황하며 말했다. “아니오! 그게 무슨 말이오? 나는 그대의 모친을 알지 못하오!”

엽백의가 끼어 들어 조경에게 물었다. “그대는 초무관에 월금을 잘 타는 채미공자(囆微公子)를 모르오?” 채미공자의 이름이 나오자 태산파와 화산파의 장문인 오래자와 우달이 크게 동요했다. 태산파의 장문 오래자가 그에게 물었다. “조경! 태산파의 낙계(烙契)를 가지고 무슨 일을 벌인 것이냐?” 화산파의 장문인 우달이 나와 조경의 소매를 붙들고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 아이들은 모두 어디 있는가? 내가 아끼는 아이들로 골라 보냈는데 모두 무사한가?”

엽백의가 우달에게 말했다. “그대의 아이들이 초무관의 기녀를 말하는 것이라면 그들은 모두 죽었네.” 우달이 엽백의의 말을 듣고 털썩 주저 앉아 기녀의 이름을 불렀다. 태산파의 장문 오래자가 조경의 앞섶을 잡고 말했다. “이제 어서 낙계(烙契)를 돌려주시게! 내가 숭산에 온 이유는 그대에게 낙계를 받기 위함이네.” 조경이 오래자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오형, 모두 오해입니다. 상선, 모두 오해에요.”

제갈왕이 일어나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조경 네놈이 문성왕을 시켜 내 모친을 해쳤느냐?” 문성왕의 이름이 나오자 대웅보전안은 다시 시끄러워졌다. 엽백의가 일어나 사람들에게 자리에 앉기를 권하고 말했다. “조경 네놈이 할말이 많은 것 같으니 어디 들어 보자.” 조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히 포권한 뒤 말했다. “강호의 대협, 소협! 모두 오해입니다. 어찌 정체도 알 수 없는 소년의 말을 믿고 저를 모함한다는 말입니까?”

엽백의가 코웃음 치며 조경에게 말했다. “이 모든 일은 그대가 익주에서 명교의 용독술이 적힌 두루마리를 찾은 이후의 일이 아니오?” 조경이 당황하여 엽백의를 보고 말했다. “상선께서 무슨 말씀을 하는 것인지 조경은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옆에 잠자코 앉아 있던 고숭이 조경에게 물었다. “둘째야, 둘째 너는 청성곡의 일에 대해 어떻게 알게 된 것이냐? 서국공께서 나와 아우들에게 말해주었을 때 너는 그 자리에 있지 않았는데 대체 어떻게 알았지?”

조경이 웃으며 말했다. “형님께서 말씀해주셨습니다. 잊으셨습니까?” 고숭이 조경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아니다. 나는 너에게 말하지 않았다. 너는 그때 다섯째 동생과 함께 먼저 떠나지 않았느냐!” 고숭의 말에 다섯째동생인 심신의 부친 심구응(沈邱鷹)이 일어났다.

온객행은 강호의 문파 장문과 후계가 서로 엉겨 붙어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을 보고 웃음이 나왔다. 그 웃음은 처음에는 아주 작았으나 종국에는 아주 커져서 대웅보전 안에 있는 모두가 들을 수 있었다. 온객행은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모두 청성곡의 일은 잊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봅니다.”

온객행의 말에 조경과 고숭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시선을 돌려 온객행을 보았다. “청성곡은 예로부터 산세가 험준하고 깊어 사람들의 발길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 곳에 물난리요? 돌림병이요? 어떻게 그 누구 하나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못하셨습니까?”

넙죽 엎드려 있던 제갈왕이 일어나 온객행의 말을 이었다. “청성곡은 조경이 명교의 두루마리를 찾은 곳입니다. 명교의 용독술을 사용하기 시작한 곳은 바로 그 곳이에요!” 온객행이 미간을 찌푸리며 제갈왕을 보았다. 제갈왕이 말했다. “조경은 막 발견한 두루마리를 모친께 읽게 하고 그것을 청성곡에 시험하게 했습니다. 그 일로 모친은 두 눈을 잃었습니다.”

조경은 제갈왕의 말에 허허 웃으며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어찌 강호의 대협들 앞에서 거짓을 고하느냐! 기루에서 웃음을 팔던 자의 말을 어찌 믿는다는 말이오?” 조경의 말에 엽백의가 말했다. “그대는 나의 제자가 기루에서 웃음을 팔던 자라는 것을 어찌 아시오?”

엽백의의 말에 고숭이 다가와 조경의 멱살을 잡았다. “둘째야! 이게 모두 사실이냐?” 조경은 당황하며 온객행에게 따졌다. “그대는 누구인데 청성곡의 일을 알고 있는 것이오? 어찌 그대의 말을 믿는다는 말이오?” 온객행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엽백의가 말했다. “그 아이는 내가 청성곡에서 거둔 아이요.”

엽백의의 말에 조경이 엽백의를 보며 말했다. “말도 안돼! 청성곡은 그날 밤…” 온객행이 조경의 말을 이었다. “그렇소. 청성곡의 사람들은 그날 밤 모두 독에 중독되어 죽었거나 화살에 맞아 죽었지.” 온객행이 조경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그 화살은 문성왕의 화살이었소?”

조경이 제갈왕을 보며 말했다. “채미공자는 어디있는가? 이 모든 일은 채미공자가 조왕전하와 벌인 일이오. 나와는 상관없소.” 엽백의가 작게 한숨 쉬었다. 제갈왕은 조경에게 달려들며 말했다. “네놈이 죽였잖아!” 온객행은 사람들이 뭉쳐져 싸우는 모습을 보고 크게 웃었다.

온객행이 물었다. “부모의 원수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89) 온객행의 목소리에 엽백의가 그를 잡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온객행이 말했다. “거적을 깔고 방패를 베개 삼으며,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그와 같은 하늘 아래에 살지 않으며, 조정이나 시장에서 만나면 무기를 가지러 돌아갈 것 없이 그 자리에서 싸우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크게 ‘하하하’하고 웃었다. 엽백의는 온객행의 입에서 유경(儒經)의 구절이 나온 것을 듣고 코웃음 쳤다. 모과만 온객행에게 홀린 것이 아니라 온객행도 모과에게 단단히 홀린 듯하다.

온객행은 조경에게 다가가 포권하며 말했다. “그대는 이 온모의 부모를 죽인 원수이니 오늘 이자리에서 내가 부모의 원한을 풀겠소.” 그리고 조경을 공격했다. 엽백의는 조경을 잡고 있던 제갈왕을 끌어당겼다. 제갈왕은 온객행과 마찬가지로 조경을 공격하려고 했다. 엽백의가 조용히 말했다. “아직 너의 차례가 아니다. 조금 기다려라.” 엽백의의 말에 제갈왕이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엽백의는 고개를 젓고 그에게 자리를 권했다.

아직 관을 올리지 않은 온객행의 실력은 엽백의가 자랑할 만한 것이라 조경과 온객행의 싸움은 허무하게 끝났다. 간단한 권법도 제대로 막아내지 못하는 조경은 악독한 독술을 사용하려고 했으나 제갈왕에 의해 그것도 저지되었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조경을 보던 엽백의가 온객행에게 말했다. “큰 원망은 풀어주어도 반드시 남는 원망이 있다.(15) 네가 무위에 머무르며 세상의 규범을 잊고 외물을 잊으면 모든 일은 혼돈한 도와 같다.”(49)

온객행은 주자서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몸을 잊고 총명을 버려라.(49) 앞으로 오는 세상은 기다릴 수 없고, 지나간 옛날은 따라갈 수 없다.’(84) 온객행이 작게 읊조렸다. “원한이 나를 망친 것인가? 내가 원한으로 나를 망친 것인가?” 온객행은 눈물이 났다. 온객행이 생각한 복수는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 그랬다. 온객행은 누군가를 탓하고 싶었지만 떠오르는 것은 주자서 한 사람이었다.

‘주자서는 대체 나에게 무슨 짓을 했길래 나를 이렇게 나약하게 만들었을까?’ 온객행은 주자서가 많이 보고 싶었다. 그에게 묻고 싶었다. 너도 양친의 복수를 포기했을 때 이런 기분이었느냐고. 이 세상에 혼자 남겨진 사람 같았냐고. 그래서 그렇게 당장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나 보다. 온객행의 복수는 너무 허무하게 끝났다.

조경은 소림사의 계율원에 갇히면서 계속해서 소리를 질러 댔다. 조경은 낙양성에 조왕과 낭야왕이 있으니 강호에서 그를 함부로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와 의형제를 맺은 문파의 장문과 장문후계도 그에게 등을 돌렸다. 고숭은 그에 대한 배신감을 갈무리하지 못하고 눈물을 보였다. 그리고 남궁세가의 소각주 남궁하는 모두들 앞에서 그들이 황산은장을 통해 낭야왕과 조왕에게 정보를 팔았다고 했다.

조왕은 황산은장과 삼백산장을 일부러 경쟁하게 만든 것이다. 황제의 의심병을 조왕이 물려받은 것이다. 낙양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아는 것이 없던 각 문파의 사람들은 주지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그들은 또다시 일어난 정변에 넌더리가 났다. 이제 겨우 황폐해진 논밭을 일궈 사람이 사는 땅이 되었는데 또다시 황족이 벌이는 환란에 가담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 둘 자리에 앉아 서로를 다독였다.

온객행은 탈력하여 서있던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다. 온객행이 고개를 돌려 잔뜩 젖은 제갈왕의 얼굴을 보았다. 엽백의가 온객행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복수하는 사람은 원수가 미워도 원수가 사용한 칼을 부러뜨리려 하지는 않는다.(94) 그 역시 너와 같이 뜻하지 않은 재앙을 만났을 뿐이다.” 온객행은 고개를 숙이고 조금 더 울었다.

엽백의는 온객행의 모습에 조금 놀랐다. 오늘 조경을 죽이겠다고 달려들 줄 알았는데 온객행의 모과가 그의 모난 구석을 잘 채워준 모양이다. 엽백의는 온객행을 울고 있는 제갈왕 옆에 두고 당량에게 갔다. 당량이 포권하여 엽백의에게 인사했다. “공동파 당량, 상선을 뵙습니다.” 온객행이 그의 팔을 잡고 말했다. “예를 거두게.” 초무관에서 온객행이 제갈왕에게 받아온 독을 조사한 것이 공동파다.

공동파는 과거에 명교와 대립하면서 독술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많았기 때문에 초무관의 독을 보자마자 그것이 명교의 용독술이며 사람을 해치기 위한 것임을 바로 알아보았다. 자순사태와 용진대사가 공동파의 일을 확인하고 떠났으니 조경이 마교의 사술을 사용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 되었다. 모두 지나고 보니 무림맹이라고 할 것도 없이 조경과 화산파, 태산파가 조왕의 이름으로 혼란을 일으킨 것이다.

조경과 화산파의 장문 우달은 계율원에 개방의 장로들과 함께 갇혔고, 태산파의 장문 오래자는 파문을 요청하는 서신을 연주로 보냈다. 오래자는 파문이 허가되면 소림사로 출가할 예정이다. 남궁세가를 제외한 형주와 양주의 문파는 모두 돌아갔다. 조경이 죽지 않는다고 해도, 다시 강호로 발을 붙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조경의 거취는 낙양에서의 정변이 끝나고 결정하기로 했다. 강호의 일은 이렇게 끝났지만 황실의 일은 이제 막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객당에 앉은 엽백의, 주구전, 온객행 그리고 제갈왕은 소림사의 찬을 먹으며 요기했다. 입맛이 없는지 모두 젓가락질이 느리다. 엽백의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허리춤에 달려있는 호리병을 열어 술을 마셨다. 주구전이 그에게 눈치를 주자 옆에서 보고 있던 온객행이 엽백의의 호리병을 낚아채 마시며 말했다. “우리는 도를 닦아도 중놈은 아니니 술은 마셔도 되는 것 아니오?” 주구전은 온객행의 말에 ‘허’하고 헛웃음이 나왔다.

온객행이 마신 호리병을 제갈왕에게 건네자 제갈왕은 엽백의의 눈치를 보며 술을 마셨다. 온객행이 제갈왕에게 물었다. “너 나이가 몇이냐?” 온객행의 말에 제갈왕이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 “너는 몇인데 반말이야?” 온객행이 제갈왕에 손에 들려 있던 호리병을 빼앗으며 말했다. “사형한테 이게 무슨 버릇이야?” 제갈왕이 얼굴을 구기며 말했다. “누가 내 사형인데?”

온객행이 호리병에 든 술을 한 모금 더 마시고 엽백의에게 돌려주며 말했다. “아니 노야 어디서 이런 것을 주웠소?” 엽백의가 크게 한숨 쉬며 말했다. “그러게 말이다. 제자복이 지지리도 없지, 너보다 더한 놈이 있을 줄 어찌 알았겠느냐?” 엽백의의 말에 온객행이 표정을 구겼다. “나 같은 놈이 뭐가 어때서 그러시오?” 엽백의는 혀를 차며 호리병을 비웠다.

주구전이 옆에서 셋을 보고 있다 갑자기 훌쩍이기 시작했다. 놀란 엽백의가 말했다. “주가야 갑자기 왜 눈물바람이야?” 주구전이 소매 끝에 눈물을 찍으며 말했다. “우리 자서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혼자 있을 텐데, 안타까워 어쩌나…” 주구전의 말에 엽백의가 온객행을 보았다. 온객행은 작게 한숨 쉬고 고개를 숙였다. 엽백의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너, 모과는 어디에 두고 왔어?” 온객행은 대답없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렸다.

어리둥절한 제갈왕이 엽백의에게 물었다. “상선, 모과는 왜 찾으시오?” 제갈왕의 물음에 주구전이 더 크게 훌쩍였다. “아이요! 우리 자서는 어떡하나… 흑흑.” 엽백의는 주구전의 속셈이 보여 뭐라고 할까 하려다 말고는 제갈왕에게 말했다. “주대인의 모과를 온가놈이 잃어버린 모양이다.” 제갈왕은 더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주구전과 엽백의를 번갈아 보다가 고개를 흔들며 방을 나가 온객행을 쫓아 갔다.

엽백의가 주구전에게 말했다. “어떻게 할 셈이냐?” 주구전이 우는 척을 관두고 엽백의에게 말했다. “오늘 날이 저물면 맹진으로 가볼까 합니다. 그 곳에 조경이 숨겨둔 물자가 있다고 하니 그것들을 잘 쥐고 있다가 자서가 오면 도우려구요.” 엽백의가 코웃음 치며 말했다. “그래서 네 종손은 정체가 대체 뭐냐?” 주구전이 곤란하다는듯 멋쩍게 웃자 엽백의가 관두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구전이 물었다. “언제 갈까요?” 엽백의가 뒤로 돌아 주구전을 보며 말했다. “내가 거길 왜 가냐? 네 종손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갔다가 무슨 일을 당하려고?” 주구전이 자리에서 일어나 엽백의의 소매를 잡으며 말했다. “엽선배, 가서 보시면 다 알게 됩니다.” 엽백의는 아닌 척했지만 주자서의 정체가 궁금해서 그러겠다고 말하고 방을 나갔다. 주구전은 밖으로 나가는 엽백의를 배웅하면서 돌계단에 정답게 붙어 앉아 있는 온객행과 제갈왕을 보았다.

주구전은 온객행을 떠보기 위해 온객행에게 다가갔다. 온객행 손에 들려 있는 영견을 본 주구전이 깜짝 놀라며 그 영견을 빼앗아 들었다. “온공자! 이것을 왜 그대가 가지고 있소?” 온객행은 쓰다듬던 영견이 주구전의 손으로 들어가자 놀라서 일어나 손을 내밀며 말했다. “주대인, 그것은 아서가 저에게 준 정표이니 제가 들고 가는 것이 맞습니다.” 주구전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자서가 이걸 그대에게 주었단 말입니까?”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영견을 내 놓으라고 손을 흔들었다.

제갈왕이 보고 있다 옆에서 ‘자서가 대체 누구요?’라고 물었지만 대답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주구전은 손에 든 영견을 한번 더 자세히 본 뒤에 온객행의 손 위에 올려 놓았다. ‘온가놈이 언제 어떻게 우리 자서를 꼬신거지?’ 주구전이 눈을 흘기며 온객행을 보자 온객행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주대인, 저도 아서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정표로 주었으니 걱정 마세요.”

주구전이 물었다. “자서가 그걸 받았단 말이오?” 온객행은 버들잎 영견을 다시 품속에 집어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구전은 온객행을 한참 보고 있다가 주저하듯 말했다. “오늘 밤에 맹진으로 갈 겁니다.” 온객행이 주구전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왕이 주구전에게 물었다. “주대인 맹진은 저도 갑니까?” 주구전이 제갈왕을 보며 말했다. “제갈공자께서 도와주신다면 일이 훨씬 수월할 것입니다.”

제갈왕이 고개를 끄덕이자 온객행이 그의 어깨를 잡아 숙이며 말했다. “제갈공자 예를 갖추세요.” 그리고 주구전에게 말했다. “주대인, 제 사제에게 말을 높이실 필요 없습니다. 편히 말씀하세요.” 제갈왕이 온객행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나는 사제 하겠다 한적 없소.” 온객행이 그의 어깨를 다시 잡고 숙이며 말했다. “사형은 인내심이 많지 않으니 사제는 조심하는 것이 좋겠네.” 제갈왕은 온객행이 잡은 어깨를 잡고 한참 소리를 지르다 주구전에게 말했다. “주대인 말씀을 낮추세요. 저 같은 놈에게 말을 높이실 필요 없습니다.” 제갈왕의 다급한 목소리에 주구전은 ‘허허허’웃었다.


저녁을 먹은 주구전은 주지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다녀오겠다는 뜻을 전하고 지객당으로 돌아왔다. 지객당 안에는 준비를 마친 엽백의와 온객행 그리고 제갈왕이 있었다. 그들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즈음에 소림사에서 나와 태곡관을 지나 이궐관으로 향했다. 이궐관은 초은왕과 예장왕의 깃발이 꽂혀 있었다. 그들은 벌써 낙양으로 진군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주구전이 엽백의에게 말했다. “낙양성으로 이미 들어간 모양인데요?” 이궐관을 지키는 병사들의 태도가 엄숙하다.

엽백의가 물었다. “맹진까지 어떻게 가는 것이 좋겠는가?” 주구전이 이궐관 근처의 병사들의 동태를 보며 말했다. “맹진까지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관도로 내려가더니 성문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엽백의는 당황하여 움직이지 않았고 온객행은 주구전을 따라 훌쩍 관도로 내려갔다. 제갈왕이 엽백의에게 물었다. “상선은 왜 안가세요?” 엽백의는 제갈왕을 보고 혀를 찼다. 그리고 관도로 내려가며 말했다. “못난이, 참으로 말이 많구나.” 제갈왕이 입을 앞으로 쭉 내밀며 말했다. “못난이라 부르지 마시오! 내 이름은 상선이 짓지 않았소?” 엽백의가 ‘허허허’ 웃으며 말했다. “그랬지…”

주구전은 문 앞으로 가서 뭐라고 한참 말하더니 곧 문 안쪽에서 사람이 나왔다. 주구전은 나온 사람의 손을 붙잡고 한참이나 뭔가 말했다. 엽백의가 다가오자 주구전이 그를 소개하며 말했다. “엽선배, 이 아이는 사계산장의 소강입니다. 소강아 어서 장명산 검선께 인사드리거라.” 서소강은 엽백의를 향해 포권하여 인사했다. “사계산장 서소강, 장명산 상선을 뵙습니다.” 엽백의가 고개를 끄덕이며 주구전을 보았다. ‘저 노인네는 정말 어디까지 보이는 것일까?’ 성안으로 들어온 엽백의와 일행은 서소강이 머물고 있는 거처로 갔다.

서소강이 상석에 엽백의를 모시고 주구전의 시중을 들며 앉았다. 온객행과 제갈왕은 눈치껏 서소강에게 자신들을 엽백의의 제자라고 소개했다. 주구전이 말했다. “네가 왔구나. 누군가 올 줄은 알고 있었다만, 소강이 네가 올 줄은 몰랐구나.” 서소강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임해에는 올해 비가 제때 와서 아주 바뻐요. 주사숙.” 주구전은 서소강의 말에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래 어서 자서를 데리고 돌아 가자구나.”

서소강이 입을 달싹이자 엽백의가 물었다. “그대는 주(周)공자를 만나 보았소?” 서소강이 공손히 포권하며 말했다. “상선, 말씀 낮추세요. 예, 만나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는 지금 주(朱)공자입니다.” 엽백의가 되물었다. “주(朱)공자? 그가 서선공의 아들이란 말이냐?” 서소강이 주구전의 눈치를 보았다. 엽백의가 알고 있는 주(朱)씨 중에 황족과 가장 가까운 주씨는 서선공 주희밖에 없다.

장공주를 닮았다는 소리를 들은 주자서가 서선공 주희의 아들이라는 것은 생각해보면 그렇게 떠올리기 어려운 일은 아니다. 조용히 앉아 듣고 있던 제갈왕이 온객행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물었다. “주자서가 주대인의 모과요?” 온객행은 작은 목소리로 제갈왕에게 속삭였다. “아서는 내 모과요.” 온객행의 속삭이는 소리에 주구전과 서소강이 온객행을 보았다.

(93) 장자 잡편 24 서무귀 徐无鬼
夫與國君 同食 澤及三族 而況父母乎?
무릇 한 나라의 임금이 먹는 음식과 같은 음식을 먹는 신분이 되면, 그 은택이 삼족(三族)에까지 미칠 것인데, 하물며 부모의 행복이야 말할 것도 없습니다.

(94) 장자 잡편 19 달생 達生
復讎者 不折鏌干 雖有忮心者 不怨飄瓦.
〈예를 들면〉 복수하려는 사람도 〈원수는 미워하지만〉 원수가 살인에 사용하였던 막사(鏌邪)나 간장(干將)을 미워하여 그것을 부러뜨리려 하지 않습니다. 또 비록 남을 해치려는 마음을 가진 자라 할지라도 바람에 날려 떨어진 기왓장을 원망하지는 않습니다.

雨霖鈴 第29

29. 引而不發
활시위를 당길 뿐 놓지 않는다.

주자서는 온객행이 덮어준 장포를 적시며 온객행에게 말했다. “나는 헤엄을 칠 줄 아는데 왜 나를 밀어 낸 거야?” 주자서의 말에 온객행이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아서! 아서를 구하려고 손을 뻗은 것이지 어찌 내가 그대를 밀어낸다는 말이야?” 주자서는 입술이 파래져서는 온객행을 쏘아보며 말했다. “자네가...!” 그리고는 뒤쪽에 서있는 장양의 불편한 기색을 보고 입을 꾹 다물었다. 온객행은 괜히 억울하여 앉아 있는 주자서에게 팔을 둘러 앉았다. “왜 그래 아서, 나는…, 나는 아서가 걱정되어서….” 주자서는 온객행의 손길을 물리치고 풍막으로 가서 앉았다.

둘이 하는 얘기를 듣고 있던 장양이 어색하게 다가와 말했다. “주공자께서 물에 빠져 많이 놀라신 것 같으니 어서 별원으로 돌아갑시다.” 그리고는 뱃사공이 있는 배의 뒤쪽으로 갔다. 온객행은 주자서가 물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것을 보고 마음이 덜컥 내려 앉았다. ‘이제 이 치가 없으면 나는 못살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풍막에 있는 주자서에게 다가가 술상 앞에 털썩 앉은 온객행이 넋을 놓고 주자서를 보고 있자 주자서는 고개를 획 돌려버렸다.

몸을 말고 떨고 있는 주자서가 가엽고 불쌍하여 온객행은 일어나 주자서 옆에 가서 앉았다. 온객행을 피하려고 거리를 벌리는 주자서의 발을 잡아 신발을 벗기고 족건을 벗겼다. 찬물에 발끝이 빨갛게 곱아 있었다. 온객행은 손으로 주자서의 발을 문지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주자서는 온객행이 하는 것을 보고 있다가 발을 빼려고 했으나 온객행이 고개를 들어 그를 보자 작게 한숨을 쉬고는 그냥 내버려 두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선착장에 도착했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발에 물을 털어낸 신발을 신기고 일으켜 세웠다. 주자서 옆에 붙어 있느라 온객행의 옷도 많이 젖어 있었다. 장양은 하인을 시켜 얼른 마차를 불러왔다. 마차에 타서 다시 태수의 저택으로 가는 내내 주자서와 온객행은 어깨를 붙이고 앉아 있었으면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옆에서 장양이 눈치를 보며 태안에 대해 이것저것 말했지만 듣는 사람은 없었다.

태수의 저택에 도착하자 마자 장양은 재빨리 마차에서 내려 하인들에게 목욕물을 받아 놓으라고 지시했다. 주자서와 온객행은 한참 마차에서 내리지 않고 있다가 온객행이 주자서의 어깨에 손을 둘러 일으켜 세웠다. 젖어 있는 온객행과 주자서를 발견한 하인들이 하나 둘 그들 곁으로 와서 그들을 별채로 안내했다. 둘은 하인들의 시중을 받으며 따로 목욕했다. 온객행은 시중을 받으면서도 한참 생각했지만 주자서가 왜 자신에게 화를 냈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이후로 주자서는 예의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무언가를 고심하는 것 같았는데 온객행이 답답하여 크게 한숨을 쉬자 머리를 빗던 하인이 온객행에게 불편한 것이 있는지 물었다. 온객행은 고개를 흔들며 작게 웃어 보였다. 목욕을 마치고 어쩔 수 없이 다시 비단 옷을 입게 된 온객행은 마음이 착잡했다. 그가 왜 태산에 왔는지, 무엇 때문에 장명산을 나왔는지 모두 잊고 싶다. 주자서가 말한 것처럼 모두 내려놓고 싶다. 주자서만 옆에 있어준다고 하면 정말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서 온객행은 두려웠다.

바로 옆방에 있지만 왠지 찾아가면 안될 것 같았다. ‘혼자 있게 해주고 싶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방이 있는 쪽 벽에 있는 의자에 앉아 생각했다. “거적을 깔고 방패를 베개 삼으며,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그와 같은 하늘 아래에 살지 않으며, 조정이나 시장에서 만나면 무기를 가지러 돌아갈 것 없이 그 자리에서 싸우는 것이다.”(89) 누구인지 알면 그렇게 할 텐데 온객행은 그럴 수도 없었다. 주자서는 알면서도 왜 피하는 것일까? 주구전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 기세가 무엇이든 복수를 하겠다는 마음이었던 것 같은데 대체 주구전이 뭐라고 말했길래 주자서는 저렇게 고요할 수 있는 것일까?

온객행은 동요하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바르게 앉았다. 태산파가 어떻게 알지 못했을까? 냥야왕 봉지 지척에 있는 이곳은 확실히 낭야왕이 데려다 쓰기에 의심을 사기 좋은 곳이기는 했다. 화산파 모두가 초무관과 관련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숭산에 남아 있는 태산파의 무리만 관련이 있는 것이다. 주구전과 엽백의의 말을 추리면 현재까지 무림맹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문파는 태호파와 화산파, 개방이다. 제남상단을 운영하는 황보세가와 제갈세가는 아마 양주의 삼백상단과 같이 낭야왕의 자금줄일 것이다. 주구전이 처음에 의심했던 문파들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그 노인네는 태산파가 아니라 태산태수를 만났다. 황실의 일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사위가 어두워졌지만 온객행은 등잔도 밝히지 않고 의자에 앉아서 생각하고 있었다. 하인이 밖에서 온객행을 불러도 대답이 없어서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하인이 의자에 앉아 있는 온객행을 보고 놀라며 물었다. “온공자. 벌써 술시가 넘었는데, 어찌 등롱도 밝히지 않으셨습니까? 요기하실 찬을 가져왔습니다.” 그리고는 찬합을 내려놓고 방에 불을 밝혔다. 온객행이 의자에서 일어나 하인에게 물었다. “주공자는 어디 있습니까?” 하인은 찬합에서 찬을 꺼내 놓으며 말했다. 별채에서 나오지 않으시고 저녁도 드시지 않으셨습니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온객행이 하인이 내려놓은 찬을 다시 찬합에 넣으며 말했다. “소란이 있어서 조금 놀란 것이니 심려치 마세요. 제가 가보겠습니다.” 하인은 온객행이 찬합을 들고 나가자 뒤를 따라 나가며 말했다. “온공자, 그럼 음식을 좀 더 가져올까요?” 온객행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닙니다. 충분해요. 부족하면 제가 주방으로 가겠습니다.” 하인이 웃으며 말했다. “오늘 장부인께서 송화가루로 과줄을 만들었습니다. 혹시 드시겠다고 하면 제가 주공자 방으로 가져다 드릴게요.”

온객행은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과줄 말고 저번에 선화선생께서 오셨을 때 먹었던 모과 절임이나 좀 가져다주세요. 아주 맛있었습니다.” 하인이 웃으며 그러겠다고 말하고 방을 나갔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방문 앞에 서서 망설이다가 웃는 얼굴을 꾸며서 “아서” 라고 부르며 방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에는 안색이 파리한 주자서와 주회가 있었는데 둘 다 말없이 앉아만 있었다. 온객행이 찬합을 두 사람이 앉은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주가주께서는 날이 늦었는데 어찌 아직도 여기에…” 온객행이 찬합에서 음식을 꺼내며 눈치를 주자 주회는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그럼 생각해보시오, 주(朱)공자.” 그리고 인사도 받지 않고 방을 나가버렸다. 온객행이 주자서 옆에 앉아 주자서의 손에 젓가락을 쥐어 주며 말했다. “아서 뭐 라도 좀 먹어봐. 안색이 너무 안 좋다.”

주자서는 젓가락을 내려 놓으며 말했다. “이제 자네까지 내게 이래라저래라 할 참인가.” 온객행이 웃으며 주자서의 앞접시에 찬을 놓고 말했다. “어찌 소첩이 부군께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습니까?” 눈꼬리를 접어 올리며 아양을 떨자 주자서가 온객행을 힐끔 보고 부스스 웃었다. ‘온종일 바람 몰아치듯 하다가도 나를 보고 웃네.’(90) 온객행은 그렇게 생각하며 주자서에게 이것 저것 음식을 집어 주었다.

주자서는 온객행을 보며 물었다. “노온, 그대는 식사했는가?” 온객행은 주자서가 걱정하는 것이 기꺼워 고개를 흔들자 주자서는 몸을 돌려 온객행에게 앞접시를 내밀었다. 온객행은 내밀어진 앞접시를 보고 있다가 ‘아’하고 입을 벌렸다. 주자서는 헛웃음 짓더니 접시위에 올려져 있는 경단을 집어 온객행의 입에 넣어 주었다. “아서가 주니까 더 맛있다.” 다정하게 음식을 먹고 있자 밖에서 하인이 기별하고 안으로 들어왔다.

대나무로 엮은 작은 찬합에 과일 절임이 들어있었다. 하인은 다 먹은 찬합을 정리하여 공손히 인사한 뒤 방을 나갔다. 주자서는 대나무 찬합을 열어보고는 다시 부스스 웃었다. 온객행이 찬합에서 모과 절임을 하나 들어 주자서의 입 앞으로 가져가자 주자서는 모과 절임과 온객행을 한참 보더니 말했다. “사이 좋게 지내자는 것인가 아니면 갚으라는 것인가?”(28)

온객행은 벌어진 주자서의 입안으로 모과 절임을 밀어 넣으며 말했다. “아서는 나에게 빚진 것이 없는데 무엇을 갚는다는 말이야? 굳이 갚겠다면…” 하고 말끝을 흐리자 주자서가 얼굴을 붉혔다. 온객행은 붉어진 주자서의 뺨을 쓸고는 말했다. “아서 나는 매 순간 진심이야.” 온객행을 마주보고 있던 시선이 밑으로 떨어졌다. 온객행은 손을 주자서의 뺨에서 치우고 모과 절임을 집어먹었다. 연주의 모과 절임은 사례의 모과 절임보다 쓰다.


주구전이 숭산에 도착했을 때 사례의 상황은 주구전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지 않았다. 제(濟)왕 사마경이 역도를 처단한다는 의미로 청하에 군대를 배치했다. 낭야왕의 사병은 모두 온 것이 아니다. 과연 그가 청하를 버리고 사례를 완전히 점령할지, 아니면 다시 청하로 돌아갈지는 알 수 없다. 지금의 상황에서 그가 다시 청하로 돌아간다면 후에 황제가 죄를 물어 그의 봉호를 없애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돌아가지 않는다면 그는 모반을 꼭 성공시켜야만 했다.

만약 그가 모반에 성공한다면 황제의 아들인 조왕과 진왕은 목숨을 보전하기 힘들 것이다. 그것을 눈치 챘는지 진왕은 다른 사람이 시킨 것도 아닌데 제 발로 식건전에 들어가 황제의 수발을 들고 있다고 했다. 주구전은 사계산장에서 온 서신을 보고 나서야 진왕이 발빠르게 움직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남궁세가가 줄을 대고 있는 곳이 조왕이 아니라 진왕이었던 모양이다.

양주의 예장왕 사마치와 형주의 초은왕 사마위가 형주 양양에 닿았고, 양주 건업의 회남왕 사마예의 군대가 벌써 예주 여남에 닿았다. 아마 사나흘내로 그들은 사례에 닿을 것이다. 낭야왕의 측근 중에 황족을 상대할 만한 병력을 가진 자는 없었고 낭야왕의 봉지인 청하는 제(濟)왕 사마경이 지키고 있다. 이미 판은 기울기 시작했다.

소림사는 황실의 권력다툼에 끼어들지 않기 위해 강호의 문파들을 가둔 채로 숭산의 문을 걸어 잠갔다. 그 안에 갇힌 이들도 그렇게 한 줄 모르게 모든 일은 아주 은밀히 진행되었다. 그들의 문파에는 사례에 정변이 일어나 길이 막혀 갈수 없다고 미리 서신을 보내 두었고, 개방에는 특별히 회주 여희가 직접 개봉으로 향했다. 개방의 방주가 아주 멍청한 사람이 아니라면 정변이 일어나기 전에 낭야왕과의 관계를 끊으려고 할 것이다.

부산한 소림사의 대웅보전 밖에 서서 엽백의와 주구전은 그동안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구전은 태산에서 들었던 낭야왕의 사병에 관한 이야기를, 엽백의는 그가 독갈을 조사하면서 만났던 채미공자와 소년의 일을 이야기했다. 주구전이 물었다. “엽선배, 무고의 일은 어찌 하시겠습니까?” 엽백의가 주구전의 말에 한숨을 쉬었다. “그 비어 있는 제단을 다들 무슨 이유로 찾는지 모르겠구나.”

주구전이 맞장구 치며 말했다. “그것을 낭야왕이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강호에서 원하는 것인지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엽백의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아무래도 낭야왕은 그 곳의 이름이 무고(武庫)인 것에 이끌려 그곳을 찾는 것 같고, 강호는 그 안에 있는 사술에 욕심이 나서 찾는 것 같다.”

주구전이 물었다. “그 소년은 어디 있습니까?” 엽백의가 대웅보전 옆에 있는 고루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주구전이 고개를 들어 고루를 보자 고루 지붕 위에 작은 인영이 보였다. 주구전이 다시 물었다. “어찌 하시겠습니까?” 엽백의가 말했다. “내 이미 제자로 들였으니 방법이 없다.” 주구전이 놀라 엽백의에게 되물었다. “예? 제자요?” 엽백의는 주구전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훌쩍 지붕 위로 올라가 소년 곁에 섰다.

소년은 몸을 쪼그리고 앉아 낙양이 있는 쪽을 보고 있다. 엽백의가 그에게 물었다. “너는 어찌하고 싶으냐.” 소년은 엽백의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네 모친이 네게 한 말을 알려주마.” 소년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엽백의를 보았다. 엽백의는 소년이 몸을 돌려 그를 볼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다가 말했다. “모르는 것이 가장 좋다.(80) 너는 천륜을 끊고, 하고자 하는 일을 하면 된다.” 금방 울상이 된 소년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엽백의가 말했다. “내가 너의 그 작은 머리통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거라고 생각한다면 너는 나를 잘못 본 것이다.” 소년이 엽백의를 쏘아보았다. “허튼 짓은 시작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 엽백의는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제자라고 있는 놈들이 하나같이 허튼 짓을 한다고 목숨을 내놓으니 이것은 모두 내가 오래 산 죄인 것인가?”

그리고는 소년 옆에 털썩 앉아 허리춤에서 호리병을 꺼내 들었다. “그대 들어보지 못하였는가? 황하의 물이 바다로 흘러가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을. 이 술로 만고의 시름을 씻어 내리라. 다만 영원히 취하여 깨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91) 엽백의가 호리병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 소년에게 호리병을 내밀었다. 소년은 호리병을 받아 한 모금 마시고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노인네가 참으로 말이 많소.” 소년의 말을 들은 엽백의가 고개를 꺾어 ‘하하하’하고 웃었다. 그는 정말 제자복이 지지리도 없었다.


청하에 도착한 제(濟)왕은 낭야왕 사택의 노비문서를 찾아 불태웠다. 그 양이 어찌나 많았던지 문서는 재가 될 때까지 하루 종일 탔다고 한다. 사병으로 남은 자들은 낭야왕의 곳간을 털어 고향으로 돌려보냈고 낭야왕의 식솔들은 제왕의 사가로 호송하였다. 제왕은 회남왕 사마윤이 출정한다는 소식을 듣고 남하하였다. 연주자사는 제왕과 함께 청하로 가지 않았는지 다 늦은 저녁에 태산태수의 집으로 와서 그에게 제왕을 원조하라 명령했다.

출정을 준비하기 시작하자 장순의 저택은 분위기가 엄숙하였다. 주(朱)가주도 제왕의 출정 소식을 듣고 바삐 낙릉으로 돌아갔다. 장순은 온객행과 주자서를 외실로 불러 한참이나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그대들은 숭산에 있는 주대인께 가려고 하는 것이니 그렇다면 이 태수와 함께 동평으로 함께 갑시다.” 주자서는 태안성을 떠날 수 있다면 어떻게 가든 상관없다는 듯이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그들이 떠난 다는 것을 알게 된 장양이 장순을 졸라 그들과 함께 동평으로 향하게 됐다.

아침 일찍 장부인은 장양을 배웅한다는 핑계로 나와 주자서의 손을 붙들고 한참 울었다. “또 언제 볼 수 있을까요 주공자.” 장부인이 영견으로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주자서는 곤란하다는 듯이 아무 대답도 못하고 그렇게 손이 붙들려 서있었다. 남들이 보면 꼭 멀리 가는 아들을 배웅하는 것 같아 애절했다.

말을 타고 있던 장순이 결국 말에서 내려 장부인을 달래며 말했다. “이번 일이 끝나면 양이와 같이 사계산장에 다녀오세요. 그럼 또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장부인은 장순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고 울다가 장순의 말에 화색이 되어 물었다. “그리해도 되겠습니까?” 태수가 부인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주공자를 잘 보살펴준 은인들이니 제가 직접 가서 고마움을 전할 수 없는 것이 아쉽습니다.”

장부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은인이지요. 그렇게 합시다.” 그리고는 주자서에게 다가와 그를 꼭 안아준 후에 놓아주었다. 옆에 서있던 장양이 모친에게 다가가자 장부인은 장양의 손도 꼭 쥐고 ‘주공자를 잘 부탁한다.’라고 말한 뒤에 그 역시 꼭 안아 주었다. 장순과 장양은 다시 말을 탔고, 온객행과 주자서는 태수가 준비해준 마차에 탔다. 태안성을 빠져나오자 온객행과 주자서가 탄 마차 뒤로 곡식을 실은 수레와 동군이 줄줄이 이어졌다. 성문이 닫히는 해시전에 동평에 들어온 장순의 일행은 객잔에서 쉬고 있는 제(濟)왕을 만났다.

제(濟)왕이 쉬고 있는 곳은 공교롭게도 온객행과 주자서가 머물렀던 객잔으로 높은 누각에서 제왕이 동평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갑옷으로 무장한 상태였는데 그의 갑옷은 전장을 많이 누빈 것처럼 낡아 있었으나 관리가 아주 잘 되어 있었다. 서 있는 자세나 풍채에서 그의 기백을 느낄 수 있었다. 온객행은 여태 보았던 황족과는 조금 다른 사마경의 모습에 조금 놀랐다.

장순이 진영과 함께 누각에 올라 제왕에게 인사했다. “태산태수 장순 제(濟)왕전하를 뵙습니다.” 그의 뒤에 서있던 동군의 대장과 부대장 진영도 무릎 꿇고 인사했다. 온객행과 주자서는 진영의 뒤에서도 조금 떨어져서 고개를 숙이고 그들을 따랐다. 온객행은 굳이 제왕을 만날 필요는 없었으나 그의 모습에 궁금증이 일어 따르게 되었다. 주자서는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온객행이 혹시나 무슨 일을 벌일까 걱정되어 그를 따랐다.

장순이 뒤에 따라온 온객행과 주자서를 보고 그들을 어떻게 소개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제왕이 동평호에서 시선을 장순에게 옮겨 말했다. “장태수는 예를 거두세요.” 그리고는 그에게 자리를 권하며 앉았다. 그리고 돌아서는 길에 온객행과 주자서에게 시선이 꽂혔다. 제왕은 그들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다가와 말했다. “그대들은 고개를 들어 본왕를 보시오.” 온객행이 힐끔 눈을 들어 사마경을 보았다.

사마경은 온객행이 아니라 주자서를 보고 있었다. 온객행은 또 낙릉의 주(朱)가 얘기가 나오겠구나 하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주자서가 한참 머뭇거리다 고개를 들자 사마경이 작게 숨을 들이켰다. 놀란 기색이 역력한 제왕이 물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주자서는 자기 발끝을 보며 우물쭈물했다.

옆에 있던 온객행이 공수하며 말했다. “제왕전하, 양주 사계산장의 제자 온객행입니다.” 주자서도 소매를 들어 공수하며 말했다. “사계산장의 제자 주자서 제왕전하를 뵈옵니다.” 사마경은 인상을 쓰더니 작게 탄식하며 말했다. “사계산장…” 그는 별말 없이 발길을 돌려 제일 상석에 가서 앉았다. 그가 손짓하자 하인들이 술을 들고 들어왔다.

제왕은 태수에게 청하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말했다. 낭야왕은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터무니없는 이자를 받아 그들을 노비로 만들어 사병을 키웠다고 했다. 태수는 기주에서 도망친 사람들이 종종 태산까지 내려와 살았기 때문에 낭야왕의 폭정이 얼마나 심했는지 얼추 알고 있는 듯했다.

제왕은 옆에 서있던 군관을 시켜 금으로 장식된 상자를 가져와 그 안에 들어있는 붉은 활(弓矢)을 보여주며 말했다.(50) “본왕은 이번 길을 오를 때 선황께서 주신 이 붉은 활과 붉은 화살을 처음으로 꺼내 보았네.” 상자 안에는 핏빛의 활과 화살 두 묶음이 들어 있었다. 역적을 처단한다는 붉은 활(彤弓; 동궁)이다.

제왕이 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역도가 나라를 어지럽히니 구벌지법으로 그를 벌하겠다.”(92) 장순과 그의 부하들도 제왕과 함께 잔을 들었다. 제왕은 자리에 앉은 사람과 모두 눈을 맞추고서 잔을 들어 비웠다. 잔을 들었던 사람들도 모두 비장하게 술을 마셨다. 평소에 술을 잘 마시지 않는 주자서도 한번에 잔을 모두 비웠다. 제왕은 장순과 진영 그리고 주자서를 제외한 모든 무관과 하인을 물렸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보자 주자서는 입꼬리를 끌어올려 작게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온객행의 불안한 눈동자가 흔들리자 주자서는 온객행의 손을 잡고 다시 눈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서있던 장양이 온객행의 소매를 붙들어 재촉했다. 누각을 내려오자 누각으로 올라가는 길을 군관이 지켰다. 갑옷이나 신발을 보니 하급무관은 아닌 것 같았다.

온객행이 한숨을 쉬자 장양이 그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온공자, 가서 황주를 사서 막사로 돌아갑시다.” 온객행이 장양을 보며 말했다. “막사로 돌아간다니요? 태수께서는 이곳에 제왕전하와 함께 머무르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자 장양이 호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찌 부하들이 바람을 먹고 이슬에 잠을 청하는데 수장(首將)된 자로써 지붕아래 호강하겠습니까? 그렇게 하면 대체 누가 따른다는 말입니까?” 온객행은 장양의 말에 조금 웃음이 났다. 벼슬하는 귀족 중에도 사람이 있었나 보다. 그들은 사람의 목숨을 가볍게 보기에 사람이 아닌줄 알았는데. 온객행은 장양을 도와 객잔에서 노주를 잔뜩 사서 수레에 싣는다고 한참 법석을 떨었다.

동군의 대장과 그의 부하들 그리고 온객행은 동평성 남문에서 장순을 기다리고 있었다. 해시가 넘어 성문을 드나들려면 군부(軍符)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일각쯤 기다리자 번화가에서 걸어 나오는 장순이 보였다. 온객행은 옆에 주자서가 보이지 않아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나으리, 우리 아서는 어디 있습니까?” 장순은 온객행을 미안한 기색으로 한참 보다가 말했다. “온공자는 다시 객잔으로 가보세요. 주공자는 아직 그곳에 있습니다.” 온객행은 장순과 동군의 대장, 부대장에게 공손히 인사하고 훌쩍 경공으로 지붕위로 올라갔다. 장양이 놀라며 온객행을 불렀지만 온객행은 몇 걸음 가지 않아 객잔에 도착했다.


객잔에 도착하여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군관이 그를 막았다. 온객행은 방금 노주를 싣던 곳에서 자신을 보지 못했냐고 한참 사정했지만 군관은 기억나지 않는다며 그를 들여보내 주지 않았다. 슬슬 조바심이 나던 온객행이 군관을 공격하려는데 뒤에서 주자서가 나왔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보고 반가워서 “아서.” 라고 부르자 주자서 뒤에 있던 군관이 나와 온객행을 무릎 꿇리며 말했다. “감히 어느 안전(案前)인줄 알고 함부로 부르느냐.”

온객행이 황망하여 주자서를 보자 주자서가 군관에게 말했다. “하후(夏侯)장군님 그러지 마십시오.” 주자서가 온객행에게 다가가 그를 부축하자 장군이 그에게 무례를 저질렀다며 무릎 꿇었다. 주자서는 당황하여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하후장군님께서 이렇게 할 필요 없는 사람입니다. 예를 거두세요.” 하후장군이 일어나자 주자서는 온객행을 데리고 객잔 안으로 들어갔다.

온객행은 자신을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던 군관과 방금 자신을 함부로 한 하후장군을 쏘아보며 주자서의 뒤를 따랐다. ‘어느 안전이긴 우리 부군 안전이지.’ 따위의 생각을 하며 주자서를 따라간 온객행은 호화로운 객실에 앉아 주자서가 따라주는 차를 마시며 주자서가 말할 때까지 기다렸다. 찻주전자의 차를 다 마실 동안 주자서는 여상하게 차를 마시며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온객행이 ‘큼큼.’ 하고 목을 가다듬자 주자서가 그를 힐끔 보고 다 식은 찻물을 마셨다. “아서…?” 대답이 없어 애가 탄 온객행이 여러 번 주자서를 부르자 그제야 온객행의 부름에 얼굴을 마주한 주자서가 말했다. “왜 부르시오. 온공자.” 온객행이 의자를 주자서 곁으로 붙여 앉으며 말했다. “아이, 아서 왜 또 온공자야.” 어깨에 기대오는 온객행의 머리를 거부하지 않은 주자서는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주자서의 팔을 쓸어도 보고 손도 잡아 보았지만 주자서는 온객행이 하는 대로 그냥 두었다.

온객행이 말했다. “아서, 모두 내려놓자고 했잖아.” 주자서가 답했다. “응. 노온.” 온객행이 말했다. “아서가 내려놓고 싶지 않으면 내려놓지 않아도 괜찮아.” 그리고는 품속에 넣어두었던 버들잎 영견을 꺼내 들었다. “그래도 이 영견은 돌려주지 않을거야.” 그동안 만지고 쓸어서 조금은 때가 탄 영견을 보던 주자서가 부스스 웃으며 허리춤에 달려있는 옥패를 보았다. “노온, 주단으로 만든 요패는 어쨌어?”

온객행은 생각했다. ‘어디에 두었더라’ 옥패를 주겠노라 마음먹고 어디에 두었던 것 같은데 기억나지 않았다. “갑자기 왜? 옥패가 마음에 안 들어?” 주자서가 옥패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는…나는…” 주자서가 말을 못 잇자 온객행은 몸을 세워 주자서를 보았다.

주자서의 눈동자가 반질반질하다. “나는 옥이랑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야.” 온객행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아서?” 주자서의 표정이 무너지는 것이 안타까워 온객행이 팔을 둘러 주자서를 안았다. 마주안아 오는 손이 기꺼워서 온객행은 주자서의 어깨에 대고 작게 탄식했다. 주자서가 입을 열었다. “노온, 내가 옛날 얘기를 해줄까?” 온객행이 주자서를 놔주고 얼굴을 마주보며 말했다. “응, 아서.”

주자서는 숨기지도 않고 그냥 전부 말해버렸다. 그날 밤, 서선공이 잡혀가던 날 밤의 일을 경세장공주가 천륜을 끊던 그날 밤의 일을. 온객행은 알고 있었으면서도 괜히 멀어진 것 같아 주자서의 손을 잡았다. 맥을 짚는 것처럼 손을 가져와 양손으로 잡았다. ‘역시 너는 귀한 신분이었구나. 나처럼 떠도는 신분이었으면 좋았을 걸, 그럼 정말 네 말 대로, 네가 하라는 대로, 너를 위해 모든 걸 다 내려놓을 수도 있었는데…’

온객행은 주자서의 손을 놓으며 주자서를 보았다. “아서는 이름을 찾고 싶어?” 주자서는 한참 망설이다 대답했다. “아니.” ‘그렇게 망설여 놓고 아니라고 하다니 아서는 거짓말을 참 못하네.’ 온객행이 살포시 웃자 주자서도 따라 웃었다.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온객행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두사람은 말없이 앉아 있었다. 온객행이 물었다. “그럼 이제 어떡해?” 주자서가 한숨 쉬며 대답하지 못하자 온객행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왕전하는 알고 계셔?”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온객행이 물었다. “그럼, 이번엔 누굴 닮았데? 부친? 모친?” 온객행의 말에 주자서가 ‘하’하고 웃었다. 온객행이 말을 이었다. “서선공이야? 아니면 경세장공주?” 주자서는 양친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온객행을 쏘아보며 말했다. “내가 어떻게 아는가? 나는 양친을 닮은 줄도 모르고 살았는데.”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어깨를 붙여 앉으며 말했다. “아이, 아서 화내지 마.”

주자서가 고개를 기울여 온객행을 빤히 보며 말했다. “그대는 양친을 많이 닮았는가?” 온객행은 말을 잃었다. 온객행은 부모님이 어떻게 생겼었는지 이제 거의 기억나지 않았다. 온객행의 어두워진 표정을 읽은 주자서가 그의 뺨에 손을 대며 말했다. “노온?” 온객행은 주자서 앞에서 울고 싶지 않았다. 온객행은 웃음을 가장해 말했다. “그럼 닮았지. 아서는 못 들어 봤어? 씨도둑질은 못한데…” 꾸며낸 웃음이 무색하게 온객행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온객행의 표정이 실패했는지 주자서가 떨리는 그의 몸을 안아 왔다.

(91) 이백 장진주 將進酒
君不見 黃河之水天上來 奔流到海不復回
그대 보지 못하였는가? 황하의 물이 하늘로부터 내려와 바다로 흘러가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을.
但願長醉不願醒, 呼兒將出換美酒 與爾同銷萬古愁
다만 영원히 취하여 깨어나지 않길 바랄뿐, 아이 불러 가지고 가 좋은 술과 바꿔 오게 하여 그대와 함께 만고의 시름을 씻어 내리라

(92) 춘추좌씨전 九罰之法 구벌지법이란 천자의 토벌죄에 해당하는 제후가 범한 아홉 가지의 죄를 말한다.
  1. 시강능약(恃强凌弱): 자기가강함을 믿고 약자를 능멸하는 것
  2. 잔해민중(殘害民衆): 백성을 이유 없이 해치는 것
  3. 사염별국(欺壓別國): 거짓말로 이웃 나라를 위협하는 것
  4. 인민이산(人民離山): 정치를 잘못하여 백성들을 뿔뿔히 흩어지게 만드는 것
  5. 불복종명령(不服從命令): 왕명에 불복하는 것
  6. 살해친인(殺害親人): 제후가 친족(親族)을 죽이는 것
  7. 모시군장(謀弑君長): 군주를 시해하거나 시해를 모의하는 것
  8. 위반정령(違反政令): 정령을 위반하는 것
  9. 내란화위패인륜(內亂和違悖人倫): 내란을 일으키고 패륜(悖倫)을 행하는 것

雨霖鈴 第28

28. 彼一時此一時
그때는 그때이고 지금은 지금이다.

엽백의가 소림사로 돌아와 온객행을 찾았다. 지객당 안을 뒤졌지만 주구전의 종손과 온객행은 털끝 하나 보이지 않았다. 엽백의는 혀를 차며 속으로 주구전의 종손이 온가 놈에게 단단히 홀렸다고 생각했다. 엽백의가 데려온 소년은 기세가 얼마나 매몰차고 날카로운지 자꾸 도망을 가려고 하기에 자운당 안에 있는 기둥에 매어 놓았다. 어찌나 독한 지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고 마시지도 않았으나 그 기세가 전혀 수그러들지 않았다. 주지가 걱정이 되어 몇 번이고 엽백의에게 다른 곳에 가둬 둘 것을 청했지만 엽백의는 듣지 않았다. 저 상태라면 저 놈은 스스로를 해 할 수도 있다.

주지에게 도성의 상황에 대해 듣고 남아있는 문파들의 거취를 결정하는 자리에서 뜻밖의 이야기가 나왔다. 주지는 사계산장에서 받은 서신을 보여주며 양주 임천의 예장왕 사마치와 형주 강릉에 초은왕 사마위가 도성으로 출정 중이라는 소식이다. 엽백의는 사계산장 놈들이 참으로 발빠르게 움직였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정확하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엽백의는 사례가 쑥대밭이 되겠구나 싶었다.

그날 저녁 설법을 마친 후 지주와 회주, 아미사태와 곤륜산에서 온 용진대사가 대웅보전에 남아있었다. 엽백의는 용진대사(勇進大師)를 보고 포권하여 인사하며 말했다. “장명산의 엽백의 용진대사를 뵙습니다.” 용진대사는 엽백의에게 웃으며 예를 거두라고 했다. 그는 벌써 5번의 윤회를 거친 라마이다. 엽백의는 그가 왜 이 먼 중원까지 노쇠한 몸을 이끌고 홀로 방문했는지 궁금했다.

모두 자리에 앉자 자순사태가 라마를 대신하여 입을 열었다. 그가 이곳까지 온 것은 최근 천마교의 분파인 ‘독갈’이라는 세력이 토번과 충돌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서남에 본거지가 있는 독갈이 그 먼 서북까지 활동을 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그들과 맞춰 보니 채미공자는 마교(魔敎) 내부에서의 입지가 높지 못했던 모양이다. 아무래도 중원 출신의 교주를 두지 않는 마교 입장에서 세가 점점 커지는 채미공자는 안중정(眼中釘)이었을 것이다. 엽백의가 채미공자가 관의 손에 죽었다고 말하자 그가 죽은 줄 몰랐던 사람들은 모두 놀랐다. 아무래도 채미공자는 목숨을 노리는 사람이 아주 많았던 것 같다.

법주 몇과 개방의 장로가 대웅보전으로 들어왔다. 개방 장로들은 엽백의가 있는 곳으로 와서 공손히 인사했다. 개방 장로가 눈치 없이 먼저 자리에 앉으려고 하자 옆에 서있던 법주 혜고(惠顧)가 그를 말렸다. 주지가 제일 상석에 용진대사를 모시고, 그 아래에 엽백의와 자순사태가 앉았다. 회주와 법주는 그 양 옆으로 늘어서 앉으며 개방 장로들은 대웅전 중앙에 앉았다. 주지가 입을 열었다. “개방 장로들께서는 지금 개봉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아는 것이 있습니까?”

여장과 해백은 서로 얼굴을 보고 눈치를 보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엽백의는 ‘흥’하고 코웃음 쳤다. 주지는 차분하게 다시 물었다. “낭야왕께 무엇을 약속 받으신 것입니까?” 여장과 해백은 크게 놀라며 갑자기 넙죽 엎드렸다. 엽백의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우물의 물은 강의 물을 침범하지 않는 법인데.”(3) 여장이 덜덜 떨면서 말했다. “저희는 알지 못하는 일입니다. 방주가 낭야왕에게 무엇을 약속 받고 그리 움직이는 것인지는 정말 알지 못합니다.”

엽백의가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손바닥으로 하늘이 가려질 줄 알았느냐! 어서 사실을 고하라!” 여장과 해백은 서로를 한참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연주 동에 땅을 받기로 했습니다! 개방의 본거지는 본래 기주로 북쪽인데 그곳은 선비족과 이민족의 침입이 잦아 세가 클 수 없어 중원에 본거지가 필요하여 그리 했습니다.” 엽백의가 웃으며 말했다. “빌어먹으며 떠도는 것들이 본거지가 왜 필요하다는 말이냐?”

주지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누더기를 걸치고 고행을 한다 한들, 어리석음에서 오는 번뇌를 어찌 할까.”(86) 앉아 있던 사태와 대사도 염주를 굴리며 낮게 불경을 읊조렸다. 엽백의가 말했다. “토끼가 죽으면 토끼를 잡던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 하거늘, 어찌 이리 어리석어!” 관은 가만히 앉아서 개방이 세를 불리는 것을 보고만 있을 리 없다. 게다가 개방이 기주에서 선비족과 계속 다투지 않으면 선비족을 견제할 세력이 없어지기 때문에 낭야왕은 개방에게 약속한 것을 지킬 수 없었다.

엽백의는 혀를 차며 어떻게 개방 안에 이렇게 쉬이 보이는 수마저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없는지 한탄했다. “그대들은 개방의 형제들을 사지로 내 몰고 있다는 것을 아는가?” 엽백의가 말을 마치자 여장과 해백은 고개를 들고 엽백의에게 애원했다. “저희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방주에게 뜻이 있어 그리 하는 줄 알았습니다.” 개방의 방주라는 놈은 퍽이나 권력에 욕심이 있는 놈인 모양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개방형제들 사이는 언제나 돈독하였는데 장기말처럼 쓰고 버리다니 이것은 강호의 도가 아니다.

엽백의는 개방과 다른 문파들의 관계에 대해서도 물었다. 겁을 잔뜩 집어먹은 여장과 해백은 엽백의가 묻는 것에 술술 대답했다. 개방은 처음부터 낭야왕의 일에 깊게 관여할 마음은 없었던 것 같다. 그들은 정말 중원으로 진출하기 위한 거점이 필요 했을 뿐이다. 오랜 전란으로 그 숫자가 늘어난 개방은 그들을 좀 더 체계적으로 관리하려고 했던 것 같다.

가업이 없고 친척도 친구도 받아주지 않아 먹고 살 방법이 없거나, 너무 늙거나 어려서, 병이 들거나 장애가 있어서 어디 소속되지 못하고 떠돌다 모인 오합지졸을 무슨 수로 통제하고 지휘한다는 말인가? ‘이번에 방주자리에 앉은 놈은 거지가 될 팔자가 아니었던 건가?’

엽백의는 남궁세가와의 관계도 물었다. 개방은 남궁세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남궁세가는 그 정보를 황산은장을 통해 낭야왕에게 전하는 것 같다고 했다. 엽백의는 황산은장에서 취급하는 정보가 진왕의 손으로 들어가는 것을 중명원에서 확인했다. 남궁세가가 완전히 동떨어진 또다른 세력을 지지하고 있다면 당장 시급한 일은 아니다. “그대는 무고에 대해 들어 본 일이 없소?” 여장과 해백은 고개를 들어 놀란 기색을 숨기지도 않았다.

허술한 그들의 반응에 엽백의는 ‘흥’하고 코웃음 치고 말았다. 낭야왕 역시 무고에 관심이 있는 모양이다. 온객행이 말한 그 무고라는 것은 대체 무엇이기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단 말인가? 무고 안은 이미 비어 있는 것을. 개방 장로들은 덜덜 떨면서 부정하거나 혹은 잘못을 빌었다. 개방의 일이 밖으로 세어 나가서는 안된다. 엽백의는 주지를 시켜 주변을 떠도는 거지들을 모두 잡아오라고 시켰다. 주지는 밖으로 나가면서 도감을 불러 개방 장로들을 계율원에 가두라고 지시했다.


엽백의는 대웅보전 밖에 있는 승려에게 부탁해 자운당에 묶어 놓은 소년을 데려왔다. 소년은 많이 지쳤는지 승려들이 그의 팔을 놓자 바닥에 풀썩 주저 앉았다. 엽백의가 다시 자리에 앉자 자순사태가 입을 열었다. “그대는 독갈이라는 마교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소?” 소년은 기운이 없어 제대로 앉아 있지도 못했으면서 자순사태를 노려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자순 사태가 말을 이었다. “그 세력이 사람들을 미약에 중독시켜 사람들을 해치고 악을 일삼는 것을 아시오?” 소년은 대답하지 않고 눈만 부라렸다. 엽백의가 작게 혀를 차자 소년이 엽백의를 보고 말했다. “모친께서 남기신 말이 무엇이오?” 엽백의는 자신이 마시고 있던 차를 소년에게 가져가 마시게 하며 말했다. “묻는데 대답을 잘 하면 알려줄 것이다.” 소년은 엽백의가 주는 찻물을 허겁지겁 마시고는 엽백의를 보았다.

소년의 눈빛을 보고 착잡해진 엽백의가 말했다. “내가 너를 속여서 어찌 하겠느냐? 자순사태와 용진대사 앞에서 내가 맹세하마.” 소년은 자기 앞에 앉아 있는 여인과 노인의 정체를 몰랐는지 엽백의의 말에 그들을 날카롭게 쳐다보았다. 자순사태가 다시 물었다. “그대 청성곡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아시오?” 소년은 자순사태의 말에 웃었다. 그가 갑자기 미친듯이 웃자 자순사태는 당황하여 미간을 찌푸리며 엽백의를 보았다.

엽백의는 한숨을 작게 쉬고 말했다. “네게 성을 물려주지 않은 아비가 태호파의 조경이 아니냐?” 힘없이 웃고 있던 소년의 웃음이 멈추고 다시 날카로운 시선이 엽백의에게 꽂혔다. “그자가 무고를 찾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무고라는 말에 자순사태와 용진사태가 조용히 서장어로 대화했다. 그들은 무고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듯했다. 엽백의는 다시 소년을 어르며 말했다. “그는 악독한 짓을 많이 하였으니 내가 반드시 벌할 것이다. 너는 두려워 말고 묻는 말에 대답해라.”

소년은 엽백의의 말에 코웃음 치며 말했다. “모친이 아니었으면…, 내가 아니었으면 조경 따위는….” 엽백의가 답답하여 소년을 재촉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채미공자가 조경을 도왔다는 말이냐?” 소년은 채미공자의 이름이 나오자 금방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었다. 자순사태가 그 모습을 보고 작게 한숨 쉬며 말했다. “그가 찾고자 하는 것은 무고가 아닙니다. 그곳은 천마교의 전신인 명교의 제단입니다.”

엽백의가 자순사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소, 그곳에는 사람의 백골과 파사어, 서장어로 쓰인 두루마리가 보관되어 있을 뿐입니다.” 용진대사가 물었다. “상선께서는 그곳에 가 보신적이 있습니까?” 엽백의가 대답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년이 숨을 고르고 말했다. “조경이 가져온 용독술의 두루마리를 모친과 제가 해독했습니다.” 용진대사가 물었다. “명교의 용독술을 해독했다는 말이오?” 소년이 말을 이었다. “그렇소. 하지만 그것은 일부일 뿐 그것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그것과 함께 쓰인 두루마리가 필요합니다.”

그 말에 용진대사와 자순사태가 다시 조용히 서장어로 대화했다. 그들의 대화를 알아듣는 것인지 소년이 불쑥 말했다. “그렇소, 그것을 해독하기 위해 사람들을 속여 실험했소.” 자순사태와 용진대사는 경악하며 그에게 물었다. “그럼 청성곡의 일 역시 그대들의 소행이오?” 소년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나는 분명히 사용해선 안된다고 하였소! 당시 두루마리를 막 발견해서 읽어 보았을 뿐이었소 그런데… 그런데….” 엽백의가 대충 상황이 짐작되어 말했다. “누군가가 그대와 그대의 모친을 강요하였군.” 소년의 얼굴이 무너지더니 엉엉 울었다. 엽백의는 소년의 어깨를 감싸 토닥여 주었다. 소년은 엽백의의 어깨에 고개를 묻고 한참을 울었다.

울음을 그친 소년은 기력이 쇠하여 곧 실신하였다. 엽백의는 그를 바닥에 눕히고 자순사태와 용진대사를 보았다. 그들은 한동안 말없이 소년을 보고 있다가 곧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한숨을 쉬었다. 자순사태와 용진대사는 독갈의 수장인 채미공자가 사라졌으니 더 이상 숭산에 머무를 이유가 없었다. 그들은 실신한 소년의 거취를 두고 한참 고민했다.

엽백의가 말했다. “이 아이는 제가 데리고 있다가 이 아이가 원하면 곤륜산으로 보내겠습니다.” 엽백의의 말에 용진대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죄의 고통은 수레가 바퀴 자국을 따르는 것과 같으니….”(87) 자순사태가 말했다. “복호사에서도 그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엽백의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순태사와 용진대사는 다음날 말도 없이 훌쩍 소림사를 떠났다. 엽백의는 고루 지붕위에 서서 멀어져가는 아미파와 고승을 바라보았다. ‘다투지 않고 움직이지 않으며 휘저을 것이 없는 아라한에게 생사는 없다.’(35) 서로 닦는 도가 달라도 그 방향은 같다. 무궁한 도의 길에 항상 홀로 인 것 같던 엽백의의 마음이 가벼웠다.

소년은 며칠을 앓고 나서야 겨우 눈을 떴다. 엽백의는 무심하게 소년을 간병하며 도성의 동태를 살폈다. 소년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야 엽백의가 장명산 검선인줄 알았다. 당황한 소년의 얼굴을 보고 엽백의는 ‘하하하’ 웃었다. 소년은 엽백의에게 모친의 일을 궁금해하면서도 눈치를 보느라 말을 꺼내지 못했다. “눈치도 볼 줄 아는 놈이었구나?” 엽백의의 말에 소년이 쏘아보았다. “아주 버르장머리가 없으니 앞으로 너를 못난이라 부르겠다.” 소년이 빽 소리 질렀다. “싫소! 내가 왜 못난이오!”

그 기세가 아주 죽은 것은 아니라 엽백의는 속으로 안심하였다. “지난 일을 얼마나 많이 아파하였는가, 하지만 세상은 그대로 찬 강물을 베고 있네.”(88) 소년이 엽백의를 보았다. “너는 제갈씨니, 이름으로 왕(往)은 어떠 한가?” 소년은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엽백의는 ‘허허허’ 웃었다. 먼저 간 친우가 이렇게 다른 연이에게 이름을 지어 주었던 것도 같다.


침상에서 천천히 일어난 온객행과 주자서는 조용히 아침을 준비했다. 주자서가 먼저 관수하고 온객행이 그의 시중을 들었다. 주자서는 그새 시중이 익숙해졌는지 온객행이 몸을 이리저리 더듬어 대도 가만히 있었다. 장포를 걸치고 요대를 매고 온객행이 준 옥패를 달았다. 온객행은 주자서가 단 옥패를 한참 쓰다듬다가 놓아주었다. 곧 하인들이 주자서와 온객행을 아침식사가 준비된 외실로 불렀다.

주자서는 외실로 가는 길에 온객행에게 말했다. “노온, 오늘은 어디 가지 말고 내 옆에 있게.” 온객행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자 주자서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말했다. “그대도 일단 사계산장의 제자로 되어 있으니 함부로 행동하지 말라는 뜻이네.” 가깝게 다가와 속삭이는 주자서가 귀여워 온객행이 주자서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부군이 원하시는데 소첩이 어찌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주자서가 온객행을 밀어내며 말했다. “노온, 나는 곧 떠날 생각이네.” 온객행이 아쉬운 듯 주자서를 놔주고 말했다. “어디로?” 주자서가 옷 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조부께 돌아가야지. 어디 다른 곳 갈 곳이 있는가?” 온객행이 주자서의 팔에 매달리며 말했다. “하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낙릉에 가보고 싶지 않아?” 주자서가 미간을 찌푸리며 온객행을 보았다. 온객행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활짝 웃었다.

주자서는 온객행을 뿌리치고 빠른 걸음으로 외실로 향했다. 온객행이 그를 ‘아서’라고 부르며 따라갔다. 그들은 외실로 가는 길에 장양을 만났다. 온객행이 포권하여 인사하자 장양도 두사람에게 기침하셨냐며 살갑게 인사했다. 온객행은 오늘도 비단옷이 아닌 무명옷을 입고 있었는데 주자서도 더 이상 뭐라고 말하지 않았다.

외실에 들어서자 장순을 포함하여 세사람이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두 사람 중 한사람은 만약 주자서가 조금 살찌고 늙었다면 저렇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닮아 있었다. 온객행이 인사하는 것도 잊고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당황해하자 주자서가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온객행은 공손히 손을 모으고 인사했다. “사계산장 제자 온객행 인사드립니다.”

장순이 그들에게 자리를 권하며 말했다. “이쪽은 낙릉의 주가문(朱家門)의 가주 주회(朱徊), 그리고 이쪽은 소가주 원중(元仲)입니다.” 아들은 외척 했는지 주자서를 닮지 않았는데 주회는 주자서의 아버지라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제 이미 인사를 마친 주자서는 그들에게 공손히 인사하고 자리에 앉았다.

온객행만 당황하여 멀뚱히 서있자 장양이 그를 식탁으로 밀어 앉히며 옆에 앉았다. “온공자, 시장하지 않습니까? 어제 저녁도 드시지 않으셨잖아요.” 온객행은 자리에 앉고서도 주자서와 주회를 번갈아 가며 보았다. 주자서가 조용히 “노온.” 하고 부르자 온객행은 주회에게 붙어 있던 시선을 어렵게 옮겨 주자서를 보았다. 주자서가 온객행에게 고개를 흔들자 온객행은 미련이 남아 주회를 힐끔 보고 고개를 숙였다.

아침으로는 담백한 죽과 나물이 찬으로 올라왔다. 장순은 정성스럽게 죽을 떠서 손님들에게 먼저 올리고, 장양에게도 죽그릇을 떠준 뒤에 자신의 죽그릇을 떴다. 조용히 시작된 아침식사는 묘하게 긴장감이 흘렀는데 어젯밤에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알지 못하는 온객행과 장양은 어색한 분위기를 모면해보고자 쓸데없는 말을 지껄였다. 온객행은 주로 아침 식사로 나온 음식에 대한 칭찬이었고, 장양은 아직 주자서가 태안을 둘러보지 못했으니 오늘 함께 태안을 둘러보는 것을 청하는 내용이다.

조용히 죽을 먹으며 듣고 있던 장순이 죽그릇을 내려놓자 장양의 말이 멈추고 혼나기라도 할 것처럼 어깨가 튀었다. 하지만 장순은 장양을 지그시 바라보더니 아주 좋은 생각이라고 그를 부추겼다. 그리고는 주자서에게 물었다. “주공자께서 연주에 오신 것은 처음이니 서둘러 돌아가시지 말고 두루두루 둘러보고 가는 것은 어떻습니까?” 주자서가 조용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조부께서 기다리고 계시니 서둘러야 할 것 같습니다.”

주자서의 말에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주회가 물었다. “조부라 하심은…?” 주자서는 수저와 죽 그릇 모두 내려놓고 대답했다. “사계산장의 태사부이기도 하신 종조부 주구전 대인입니다.” 주회가 큰소리로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어찌 주대인이 그대의 조부가 된다는 말이오?” 주자서는 작게 한숨을 쉬고 입을 다물어버렸다.

옆에서 보고 있던 장순이 주회를 말리며 말했다. “이보게, 문암(文庵) 진정하게 이러지 않기로 하지 않았나.” 주회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자서에게 다가와 말했다. “그대가 어찌 주(周)가의 종손이 된다는 말인가? 자네가 어찌!” 주자서는 아무 말도 없이 주회가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

온객행은 주(朱)가의 성질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냥 듣고만 있는 주자서가 안타까워 말을 거들려고 했다. 그러자 불쑥 주자서가 온객행의 손을 잡았다. 주자서의 행동이 기꺼워 주회가 주자서에게 뭐라고 말하든 상관없어진 온객행은 주자서에게 잡힌 손을 꼭 겹쳐 잡았다.

주회는 한참 말하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발을 구르더니 외실을 나가 버렸다. 옆에 앉아 안절부절 못하던 주원중은 곧 그의 아버지를 따라 나갔다. 주회가 나가고 한참동안 아무도 말이 없었다. 장순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영아. 아니 주공자.” 장순의 말에도 주자서는 고개를 들지 않고 죄인처럼 앉아만 있었다. 온객행은 잡힌 손을 더 꼭 쥐었다.

옆에 앉아 있던 장양이 장순의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럼 제가 두 분을 동평까지 배웅하겠습니다.” 장순은 장양의 말에 인상을 쓰며 말했다. “양이 네가 참견할 일이 아니다. 먼저 물러가거라.” 장양은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장순에게 인사하고 외실을 나갔다. 온객행도 장양을 따라 나가고 싶었지만 또 주자서를 이곳에 혼자 두고 싶지는 않았다. “주공자께서 이해하세요. 문암은 그저 잃은 줄 알았던 질자를 만나게 되어 기쁜 것 뿐입니다. 그대에게 무언가를 강요할 생각은 없소.”

주자서가 작은 목소리로 반박했다. “저는 주가주의 질자가 아닙니다.” 장순이 혀를 차며 말했다. “주공자.” 주자서가 다시 입을 꾹 다물자 장순은 답답했는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주공자, 부모의 원수와는 같은 하늘 아래 살지 않으며 만나면 그 자리에서 싸우는 것이라 하였는데 어찌 이리 모질게 굴어요.”(89) 주자서는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제가 몸을 버리고 총명을 버리면, 세상의 규범이나 혼돈은 결국 같은 것이 됩니다.(49) 모친께서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주자서가 고개를 들어 장순을 보자 장순도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장순도 곧 일어나 외실을 나갔다.

결국 외실에는 손님인 온객행과 주자서 둘만 남았다. 밖에 있던 하인들이 와서 그릇을 치우는 동안에도 주자서는 자리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온객행이 일어나 주자서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아서 우리 도망갈까?” 주자서가 ‘하’하고 헛웃음 지으며 말했다. “온객행, 지금 너는 사계산장의 제자인 것을 잊지 마.” 온객행은 주자서의 팔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예, 예, 사형…. 아니 사제인가?” 주자서가 온객행을 밀어내며 말했다. “온객행!” 온객행 웃는 낯으로 주자서를 보자 주자서도 곧 부스스 웃어버렸다.


장순은 공무를 보러 나가서 집에 없다. 외실 밖을 서성이던 온객행에게 동전을 받았던 하인중에 하나가 다가와 주회와 주원중이 별채에서 그들을 기다린다는 말을 했다. 하인의 말에 겨우 웃음이 피었던 주자서의 얼굴이 다시 가라 앉았다. 온객행은 하인에게 장도련님이 어디 있는지 물었다. 그는 내원에 장부인과 함께 있다고 했다. 허락없이 내원으로 들어갈 수 없어 온객행과 주자서는 외실과 내원을 잇는 작은 화원에서 가지 끝에 매달린 노란 꽃을 감상했다. “아서 여기 봐 산수유 꽃이 피었어.” 온객행의 말에 바닥을 보고 있던 주자서가 시선을 옮겨 온객행이 가리킨 산수유나무를 보았다. “우리가 이 집에서 마셨던 차가 새콤하고 달았는데 산수유차 인가 봐.” 온객행은 가지 끝을 잡고 코끝으로 가져와 꽃향기를 맡았다.

나무에 코를 대고 킁킁대는 온객행을 보고 주자서가 밝게 웃었다. “아서 향이 정말 좋다. 북쪽에도 봄이 오네.” 주자서가 동의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장부인을 만나고 나오는 장양이 보였다. 주자서가 공손히 인사하려고 소매를 모으자 온객행이 뒤를 돌아 장양을 보며 말했다. “장공자!”

장양은 온객행과 주자서를 발견하고 웃으며 그들에게 포권해 인사했다. “온공자, 주공자.” 온객행이 그의 팔을 잡아 끌며 말했다. “장공자, 내가 어제 태안성을 둘러보았는데 길을 알지 못해 많이 헤맨 것 같으니, 오늘 그대가 안내를 해주게.” 장양이 웃으며 말했다. “태평호는 가보았나요? 마차를 타고 가면 한시진이면 도착하는데 그곳의 물은 아주 맑고 깨끗하답니다.”

온객행이 그를 대문으로 이끌며 말했다. “어서 가서 봅시다. 풍광이 좋은 곳이라면 당연히 주루도 있겠지요?” 장양이 앞장서며 말했다. “그럼요 어제 마신 건황주는 마음에 드셨습니까? 청주의 황주도 좋지만 연주의 건황주도 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인을 시켜 마차를 준비하게 했다. 주자서는 온객행과 장양을 따라 나오면서도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혹시라도 낙릉에서 온 손님이 있는지 살폈다.

다행히 그들은 불편한 손님을 만나지 않고 태수의 저택을 나와 태평호로 향했다. 가는 길에 마차의 휘장을 열어 거리를 구경하며 갔다. 주자서는 조금 신이 났는지 장양에게 태안성에 대해 이것 저것 물었다. 사람은 얼마나 사는지, 무엇이 많이 나고 무엇을 많이 먹는지 그런 평범한 이야기를 물었다. 온객행은 주자서가 왜 그런 것을 묻는지 몰랐다. 아마도 그가 그리워하는 누군가가 이곳을 스쳐갔겠구나 생각했다.

동평호 주변에는 산수유 나무가 많이 있었다. 그것을 구경하러 나온 사람들은 평민부터 귀족까지 다양했다. 사람이 많은 것이 보통의 일인지 지나치는 사람들 모두가 신분을 개의치 않고 여기저기 자리를 펴고 앉아 군음식을 먹었다. 그 모습을 보니, 시장기가 오른 온객행이 장양에게 물었다. “이 근처에 호수를 즐길 수 있는 곳은 없소?”

장양이 온객행의 팔을 잡고 호숫가에 있는 선착장을 향하며 말했다. “배를 빌려 배 위에서 마십시다. 오늘은 내가 한턱 내겠소.” 온객행이 장양의 팔을 토닥이며 말했다. “장공자! 어찌 그런 서운한 말씀을 하십니까? 이곳을 소개해 주셨으니 당연히 술은 제가 사야지요.” 둘은 아웅다웅하며 술상이 차려져 있는 작은 돛단배 하나를 빌렸다. 사공이 붙어 있는 이 배는 사람이 열명은 더 탈 수 있을 만큼 넓은 배였다.

풍막 아래 고즈넉하게 차려진 간소한 술상에 나란히 앉자 사공이 배를 밀어 수심이 깊은 곳으로 이동했다. 막대를 집어 이동하는 것을 보니 호수의 수심은 그렇게 깊은 것 같지는 않았다. 호숫가에서 조금 떨어지자 고기를 잡는 배가 보였다. 장양이 온객행에게 술잔을 권하며 말했다. “온형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온형이 아니었으면 자당께 불효를 행할 뻔했어요.” 온객행이 장양의 술잔을 부딪히며 말했다. “장공자께서 그럴 리 없지요, 그럴 리 없어.”

온객행과 장양은 웃으며 술잔을 비웠다. 주자서는 미간을 찌푸린 채 두사람을 보고 앉아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뱃머리로 가서 앉았다. 온객행은 주자서가 이동하는 것을 보고 있다가 술잔에 다시 술을 채웠다. “온종일 몰아치듯 바람 같다 가도, 나를 보고 웃네. 나를 놀리며 즐거워하니 내 마음 서글퍼라.”(90) 온객행은 주자서가 있는 쪽으로 잔을 들어 올리고 한번에 술잔을 비웠다. 장양이 온객행이 하는 것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온형은 주공자와 막역한 사이인가 보오.” 온객행이 고개를 꺾어 ‘하하하’ 웃었다. “그렇소. 막역하다 마다. 하하하.”

온객행은 장양과 술을 마시면서 계속 힐끔힐끔 주자서가 있는 곳을 보았다. 주자서는 뱃머리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더니 호수 물에 손을 담가 보기도하고 멍하니 앉아 있기도 했다. 임해에는 큰 호수가 없고 몇 년간 구강이 가물었다고 하니 이렇게 큰 물을 즐기는 것은 아마 처음이리라. 주자서가 하는 모습이 귀여워서 온객행은 피식 웃었다.

장양이 온객행에게 몸을 붙이며 말했다. “온형 아무리 생각해도 주공자는 주가주(朱家主)의 아들인 것 같소.” 장양의 말에 온객행이 다시 ‘하하하’하고 웃었다. 온객행의 반응에 황망하게 그를 보던 장양이 덧붙였다. “이번에도 아니란 말이오?” 온객행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장공자. 주공자의 양친께서는 양주의 회계 출신인데 왜 자꾸 그러시오.” 장양이 주자서를 보며 말했다. “정말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 저렇게 닮을 수 있단 말이오? 온형은 씨도둑질은 못한다는 소리 못 들어 보았소?” 장양의 말에 온객행이 더 크게 웃었다.

‘하하하’ 온객행의 웃음 소리에 뱃머리에 앉아 있던 주자서가 일어났다. 그때 뱃사공이 뭘 어떻게 했는지 배가 크게 흔들리더니 ‘풍덩’ 소리와 함께 주자서가 물에 빠졌다. 번쩍 정신이 든 온객행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뱃머리로 가서 주자서를 끌어 올렸다. 주자서는 당황했는지 온객행의 손을 밀어냈다. 온객행이 “주자서!” 라고 부르자 주자서가 온객행의 손을 잡았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손이 잡히자 마자 그를 쭉 끌어 올렸다. 끌어 올려진 주자서는 기침을 심하게 하고 몸을 심하게 떨었다. 입하가 멀지 않았으나 이 곳은 북쪽인 연주였다. 주자서가 몸을 감싸며 떨자 온객행은 주자서의 앞섶을 잡았다. 젖은 옷을 벗기려고 하자 주자서가 몸부림쳤다. 장양이 뒤에서 다가와 물었다. “주공자 괜찮으시오?” 그 말에 온객행은 주자서의 앞섶을 놓았다. 그리고 입고 있던 장포를 벗어 주자서에게 둘러 주었다. 그리고 사공에게 말했다. “뱃머리를 돌리시게.”

(86) 법구경 도장품
雖雖剪髮 長服草衣 沐浴踞石 奈癡結何
벌거벗고 삭발하고 누더기를 걸치고 온몸을 돌로 닦는 고행을 해도, 어리석음에서 오는 번뇌를 어찌 고칠 수 있으랴.

(87) 법구경 쌍요품
心爲法本 心尊心使 中心念惡 卽言卽行 罪苦自追 車轢于轍
마음은 모든 법의 근본이고 마음은 주인도 되고 심부름꾼도 되나니, 마음 속으로 악을 생각해 그대로 말하고 그대로 행하면 죄의 고통 따르는 것이 수레가 바퀴 자국 따르는 것 같으리.

(88) 유우석(劉禹錫) 서새산에서 회고하다. 西塞山懷古
人世幾回傷往事 山形依舊枕寒流
인간 세상 지난 일을 얼마나 많이 아파했는데, 산세는 예전 그대로 찬 강물을 베고 있네.

(89) 공자가어
子夏 問於孔子曰 居父母之仇 如之何
자하(子夏)가 공자에게 물었다. “부모의 원수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孔子曰 寢苫枕干 不仕 弗與共天下也 遇於朝市 不返兵而鬪
공자가 대답하였다. “거적을 깔고 방패를 베개 삼으며,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그와 같은 하늘 아래에 살지 않으며, 조정이나 시장에서 만나면 무기를 가지러 돌아갈 것 없이 그 자리에서 싸우는 것이다.”

(90) 시경 국풍 바람 終風
終風且暴 顧我則笑 謔浪笑敖 中心是悼.
온종일 바람 몰아치듯 하다가도 나를 보고 웃네. 나를 놀리며 즐거워하니 내 마음 서글퍼라.

雨霖鈴 第27

27. 淸濁倂呑
맑은 것과 탁한 것을 함께 삼킨다.

선화선생 장횡은 제일 상석에 앉아 사람들의 인사를 받았다. 별원에 자주오는 것은 아닌지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일어나 공손히 인사했다. 이 자리에는 내원에 있는 여인들도 모두 부른 자리였기 때문에 이 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장순의 친인척일 것이다. 온객행과 주자서도 공손히 손을 모으고 선화선생께 예의를 갖췄다. 장횡이 둘에게 물었다. “주공자께서는 사계산장의 주가이시고, 그 옆에 계신 분도 사계산장의 제자입니까?” 온객행은 주구전이 한 말이 생각나서 그렇다고 답했다. “저는 온객행이라 합니다.” 장횡은 고개를 끄덕이며 “온공자.” 하고 인사하였다.

장횡이 모두의 인사를 받자 하인들이 음식을 내오기 시작했다. 장횡은 하인들이 들고 들어오는 음식을 하나씩 집어 접시에 놓았다. 어른이 손대지 않은 음식은 먹을 수 없으니 아랫사람을 배려하는 것이다. 음식이 하나 둘 식탁 위로 오르고 장횡이 음식을 입에 대자 상석에서부터 아래로 사람들이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온객행과 주자서는 손님이었으므로 집안의 주인인 장순과 장부인 바로 옆에 앉았는데 처음에 봤던 장부인과 지금 본 장부인은 묘하게 주자서를 더 닮아 있는 것 같았다. 장부인과 주자서 사이에 장양을 세우면 세사람이 부모자식간이라 해도 믿을 것 같았다.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시선을 떼지 못하자 주자서는 주변의 눈치를 보다가 온객행의 팔을 꼬집었다. ‘앗’하고 소리를 내버리는 바람에 음식을 먹던 사람들이 온객행을 보았다. 장횡이 헛기침을 하고는 온객행에게 음식이 입에 맞는지 물었다. 음식은 대체로 담백했으나 향신채가 듬뿍 들었는지 맛이 농후했다. 대체로 채소 위주의 찬이었으나 호수가 가까이 있으니 생선 요리도 있었다. 생선에 끼얹은 새콤한 소스가 아주 맛이 좋았다. 온객행이 음식을 칭찬하자 장횡이 호쾌하게 웃었다.

법도대로 하자면 음식을 먹으면서 대화하는 것은 옳지 않았으나, 선화선생은 손자와 손녀가 귀여웠는지 그들의 생활에 대해 이것 저것을 다정하게 물었다. 식탁에 앉아 있는 다른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웃어른의 말에 귀 기울이며 한 두 마디씩 덧붙이다 보니 꽤 떠들썩하고 즐거운 석반이다. 장순의 아들은 벼슬을 준비하고 있었고 그의 누이는 얼마 전에 시집을 갔다. 장양에게는 어린 누이가 하나 더 있었는데, 혼기가 찬 손녀를 보내고 싶지 않아 들어오는 혼서를 거절하고 있다고 한다.

온객행은 그들의 집안일에는 관심이 없어 찬을 먹다가 새콤한 생선요리를 집어 주자서의 앞 접시 위에 올려 놓았다. “아서, 먹어봐 정말 맛있어.” 주자서는 익숙하게 온객행이 골라주는 찬을 잘 먹었다. 장횡은 흥을 이기지 못해 하인에게 술동이를 들이게 했고 온객행은 곧 맑은 건황주를 들고 건배를 하고 있었다. 주자서는 술잔을 받아 놓고도 조금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입술만 축이고 많이 마시지 않았다. 양산에서 마셨던 노주와 달리 탁하지 않고 달지 않아 술술 넘어갔다. 찬이 하나 둘 치워지고 그 자리를 꿀에 절인 과일이 채웠다.

이경이 시작되는 소리를 듣고서야 석반은 끝이 났다. 바로 옆에 있는 서원으로 돌아가는 장횡을 손자와 손녀들이 배웅하고 온객행과 주자서는 장순과 장부인을 따라 내실로 들어갔다. 두사람이 앉자 하인들이 차를 내왔다. 탁자 없이 배치된 의자를 멀뚱히 보고 있는 온객행과 주자서에게 장순이 자리를 권했다. 장부인은 내실로 들어온 이후로 주자서에게 눈을 떼지 못했다. 저녁을 먹으면서 그런 기색이 하나도 없었는데 장부인의 표정은 슬프기도 하고 또 기쁘기도 해서 아름다운 얼굴과 함께 신비해 보였다.

장부인은 주자서를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주자서에게 다가왔다. “이름이 자서….” 주자서가 장부인에게 맞다고 대답했다. 장부인이 주자서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사람(子) ‘자’에 집오리(舒鳧; 서부)할 때 ‘서’를 쓰시오?” 주자서는 잡힌 손을 보고 장순을 보았다. 장순은 마시던 차를 내려놓고 말했다. “장부인께서는 서선공의 종자매라오.” 장순의 말을 들은 주자서가 잡힌 손을 겹쳐 잡았다. 온객행은 갑자기 서선공의 이름이 나와서 조금 당황했다.

‘서선공이 낙릉 형림 출신인가?’ 장부인의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온객행은 봐서는 안될 것을 본 것 같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주자서와 장부인은 온객행이 일어난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손을 붙들고 애절하게 굴었으며, 장순 역시 온객행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온객행은 장순과 장부인에게 인사하고 내실을 나왔다. 주자서의 정체는 주자서에게 단둘이 있을 때 직접 듣고 싶었다.


온객행은 내원에 있는 작은 정원을 구경하며 별채로 향했다. 산 바로 아래 있는 태안성의 바람이 따뜻하다. 봄이 만연한 것이다. 달도 반이나 차서 상현달이 되었다. 서선공의 일가족은 모두 죽었다고 했다. 경세장공주는 저택의 대문에 목을 맸고, 그의 아들은 우물에 빠져 죽었다고 했다. 대외적으로는 그런 것이고 소문으로는 아마 경세장공주가 본인이 목숨을 끊기 전에 아들에게 모진 짓을 한 것이라 했다. 어떤 곡절로 그렇게 했는지는 황제만 알고 있다. 무고에 관련된 보고를 하고 얼마 있지 않아 벌어진 일이니 서선공 일가가 몰살당한 것은 무고와도 관련이 있어 보였다.

주자서가 서선공의 종자매를 닮았다? 경세장공주를 닮았다고도 했다. 주자서는 우물에 빠져 죽었다는 서선공의 아들일까? 진회장과 서선공이 함께 무고를 찾아 다녔다는 것은 그의 의형제들과 사계산장 밖에 알지 못했다. 온객행도 고숭이 말해 주어서 알았다. 서선공이 도성에서 화를 당하고도 그와 함께 무고를 조사했던 다른 문파들은 조사했지만 사계산장만은 조용했다. 사계산장은 청성곡의 일도 나중에 알았다고 했다. 고숭이 사계산장을 보호하기 위해 일부러 말하지 않은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자 온객행은 웃음이 났다. “하하하.”

그가 소리 내어 웃자 근처에서 바쁘게 움직이던 하인들이 그를 보았다. 온객행이 말했다. “지혜와 수단은 여러 갈래에서 오지만, 큰 뜻은 방향을 트는 법이 없다. 어찌하여 아첨꾼들은 얼굴을 바꿔 교만함을 품었는가?(85) 하하하.” 온객행은 하인들의 눈초리를 피해 훌쩍 지붕 위로 뛰어올랐다. 그러다 비단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다가 목숨을 잃을까 두려워졌다.

온객행의 목숨은 헐값이다. 척매(斥賣)된 목숨사이에 끼어 있다 제때 팔리지도 못했다. 만약 몰랐으면 놓아줄 수 있었을까? 차라리 영영 못하는 일이라면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온객행은 지붕에 누워 서쪽으로 지는 결월(缺月)을 보았다. 이지러진 달이다. 달은 다시 차오르기라도 하지, 온객행은 이지러진 자신의 귀퉁이를 어디에서 채워야 할지 몰랐다.

온객행은 하인들의 눈을 피해 주자서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가 들고 온 봇짐과 벗어 놓은 옷이 보였다. 주자서가 잠을 잤을 침상위에 주자서의 옷을 안고 누웠다. ‘너는 이름을 찾으면 가족들이 많아 지겠구나.’ 온객행은 주자서의 옷에 얼굴을 비볐다. “나는 이름을 찾아도 아무도 없는데.” 온객행은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옷감으로 눈을 꾹 눌렀다. 그러고 있으니 조금 나아진 것 같다.

언제 잠들었는지 다시 눈을 떴을 때 온객행은 반듯하게 누워 곱게 이불을 덥고 있었다. 누군가가 그의 신발과 겉옷을 벗겨 눕힌 것 같았다. 온객행은 몸을 뒤척이다 옆에 누워있는 주자서를 발견했다. 온객행은 웃기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여 한참 얼굴을 보고 있으니 어둠에 익숙해진 온객행의 눈에 짓무른 주자서의 눈이 보였다.

안타까워 만지지도 못하고 얼굴 앞에서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자 주자서의 눈썹이 아래로 쳐지더니 금방 울상이 되었다. “아서… 왜 그래? 울지 마…. 아서.” 온객행의 목소리를 듣고 감겨 있던 주자서의 눈이 뜨였다. 눈물이 이미 잔뜩 고여 눈동자가 반질반질했다. 주자서는 몸을 일으켜 앉았다. 온객행도 따라 앉으며 주자서의 몸에 팔을 둘렀다. “아서, 왜 그래?” 어둠속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주자서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져 그의 턱 끝에 고였다. 떨어지려는 눈물을 온객행은 저도 모르게 손으로 훔쳤다.

온객행은 묻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묻지 않았다. “아서는 오늘 잠 못 이루는 밤인가 봐.” 주자서의 팔을 쓸며 말하자 주자서가 바스스 웃었다. 서글픈 표정으로 웃으려고 하는 것이 또 애처롭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머리를 어깨에 기대게 하고 말했다. “아서 내가 옛날 얘기를 해줄까?” 온객행은 주자서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그의 팔을 토닥이며 말을 이었다.

아주 작은 마을에 사는 아이는 하루 종일 마을 사람들을 따라다니며 자기 하기 좋은 일만 했다.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이 어색했던 아이는 언제는 밭일을 하는 사람을 언제는 약초를 캐는 사람을 따라다녔다. 아이는 똑똑해서 다른 아이들보다 글을 깨치는 것이 빨랐는데 어느 날은 약초를 캐는 사람들을 따라 갔다가 모르는 글자가 쓰인 동굴을 발견했다. 어른들을 불러 무슨 글자인지 물었지만 아무도 몰랐다.

다음날 마을에 공부를 많이 했다는 학자가 찾아와 이상한 글자가 쓰여 있는 동굴로 안내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 학자는 동굴에 쓰여 있는 글자를 알지 못했다. 그렇게 사람들이 하나 둘 찾아오게 되었고 한참 지나 그 글자의 뜻을 아는 사람이 나타났다. 마을 사람들은 그 학자를 융숭하게 대접했고 그 학자는 그 글자가 동굴의 문을 여는 열쇠라고 했다. 학자는 사람들을 모아 그 동굴의 문을 결국 열었다. 열지 말아야 할 그 동굴이 열렸다.

그 동굴은 저승에서 이승으로 나오는 귀문이었는데 그 문을 통해 많은 악귀가 세상에 나왔다. 악귀들은 제일 먼저 작은 마을을 도륙했다. 사람의 피가 비가 되어 내리는 것 같은 참상에도 마을의 아이는 살아남고 말았다. 온객행은 말을 멈추고 주자서에게 물었다. “아서, 그 아이는 어떡해야 할까?” 주자서는 잠이 들었는지 대답이 없었다. 온객행은 주자서를 눕히고 그 옆에 누웠다. 이불을 잘 덮어주고 팔을 괴고 주자서를 보며 다시 물었다. “아서 대체 그 아이는 뭘 해야 할까?”


다음날 아침 온객행은 아주 늦게까지 잠을 잤다. 온객행이 일어났을 때는 벌써 해가 중천에 떠있었다. 그동안 주자서의 방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는지 하인 하나 없이 고요했다. 온객행은 주자서가 누워 있던 자리에 팔을 뻗어 기지개를 켜고 그대로 대자로 누워 생각했다. 기왕 태산까지 왔으니 태산파를 떠보는 일을 해야지. 주구전이 한번 휩쓸고 갔을 테니 더 정신이 없게 해야 한다.

온객행은 자리에서 일어나 어제 입었던 비단 옷이 아니라 동평호에서 구한 무명옷을 입고 방을 나왔다. 별채를 정리하던 하인이 와서 온객행에게 아는 척을 했지만 온객행은 하인은 본 척도 하지 않고 그대로 훌쩍 경공으로 담을 넘었다. 당황한 하인들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온객행은 일단 표국이나 전당을 찾았다. 동평호에서 얻은 패물을 처리하고 개중에 귀해 보이는 것 몇 개를 조경의 이름으로 태호파에 보냈다. 서신에는 촉(蜀)이라고 써서 보냈다.

태산은 높고 험준했다. 가늘게 늘어선 계단이 끝도 없이 보였다. 온객행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일부러 험준한 절벽이 있는 곳으로 산을 올랐다. 해가 지기전에 태산파의 산문에 도착한 온객행은 큰소리로 사람을 불렀다. “장명산 검선의 제자 온객행 태산파에게 배움을 청합니다!” 그리고는 길 중앙에 앉아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검은색과 흰색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우르르 나와 온객행 앞에 섰다. “소협은 누구인데 태산에서 소란입니까?” 온객행이 일어나 포권하며 말했다. “장명산의 온가 객행 태산파에게 한 수 배우고자 합니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그들을 공격했다. 오래자가 숭산에 묶여 있는 것을 알고 있는 온객행은 오랜만에 몸을 잔뜩 움직이니 마음이 상쾌했다.

일각쯤 있다 흰머리가 성성한 노인이 나와 온객행을 말렸다. “온공자, 장명산과 태산은 척진 것이 없는데 무슨 억하심정으로 저희를 곤란하게 하십니까?” 온객행이 싸움을 멈추고 몸을 바로 세우자 주변에 있던 태산파 제자들이 그를 더욱 경계했다. 온객행은 사뿐사뿐한 걸음으로 노인에게 다가가 포권하며 말했다. “기생집의 사람을 사면서 원한 하나 사지 않을 것 같으셨습니까?”

태산파의 장로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온공자! 그게 무슨 소리요! 태산파가 연주의 한미한 문파인 것은 사실이나 도교를 따르며 도의 명성에 누가 되는 일을 하지 않았거늘 어찌 천인공노한 말을 하시오!” 온객행이 말했다. “그대는 태산파가 초무관을 도와 기왕전하를 해친 일을 모르시오?” 온객행의 말에 노인은 핏대를 세우고 말이 안된다며 소리를 치다가 풀썩 쓰러졌다. 주변에 있던 태산파 제자들이 그를 ‘스승님!’ 이라고 부르며 달려가 부축했다.

온객행은 주구전이 말한 태산이 태산파가 아니었음을 눈치챘다. 태산파는 아직 낙양에서의 일도 모르는 눈치였다. 주구전이 태산에 온 이유는 순전히 태수의 부대장인 진영 때문이란 것을 깨닫자 온객행은 훌쩍 뒤돌아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태산파 제자들이 그를 불러 세웠지만 온객행은 멈추지 않았고, 태산파의 경공으로는 온객행을 따라갈 수도 없었다. 의도치 않게 태산파를 휘저어 놓았으니 이제 제남상단의 차례다.


밤이 다 늦어서야 태안성에 도착한 온객행은 태수의 집으로 갔다. 이번엔 담을 넘지 않고 대문을 넘어 들어갔다. 하인들은 온객행을 보고 어디를 다녀오셨냐는 둥 요기는 하셨냐는 둥 소세할 물을 길어 놓겠다는 둥 살갑게 말을 붙였다. 온객행은 너스레를 떨며 태안을 구경하고 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묵직한 염낭을 열어 동전을 나눠주며 말했다. “우리 아서는 밤에 잠을 잘 못 자서 제가 꼭 옆에 있어야 해요, 그러니 제 사정을 좀 봐주세요.”

웃는 얼굴로 동전을 쥐어 주며 상냥하게 굴자 하인들도 웃으며 그러냐 물었다. 그리고는 미주알고주알 오늘 집안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말했다. 주자서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장순과 함께 관청에 갔다가 미시쯤 돌아와서 제음서원을 돌아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유시 즈음에 도착한 낙릉에서 온 손님들과 함께 외실에 있다고 했다. 온객행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니 곧 삼경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도 외실에 있단 말입니까?” 온객행은 서쪽으로 거의 다 기울어진 달을 보며 말했다.

하인들은 온객행의 말에 동의하면서 오늘 낙릉에서 온 손님들이 얼마나 장부인과 장도련님을 닮았는지 이야기했다. “낙릉 가주라는 분은 정말 장도련님 아버지라도 믿겠어요. 어쩜 그렇게 닮으셨는지.” 그러자 옆에서 제등을 들고 가던 하인이 말을 덧붙였다. “장도련님보다는 오히려 주공자를….” 사람들의 눈초리에 말을 끝맺지 못한 하인이 멋쩍게 웃었다. 온객행도 그저 따라 웃으며 주자서의 방으로 들어갔다. 주자서의 방에는 선객이 있었는데 여태 떠들어 댔던 장순의 아들 장양이다.

장양은 온객행을 보자 자리에서 일어나 호쾌하게 포권하여 인사했다. “온공자.” 온객행도 똑같이 포권하여 인사했다. “장공자.” 둘은 말없이 서있다가 장양이 앉아 있던 탁자에 가서 앉았다. 주자서를 기다리는 것 같아 온객행이 물었다. “아서를 기다리시오?” 온객행이 주자서를 부르는 호칭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장양은 온객행을 쏘아보며 말했다. “두 분은 대체 어떤 사이시기에 서로 퍽이나 정답게 부르십니다.” 온객행이 ‘하하하’ 웃으며 놓여있는 차주전자에서 차를 따르며 말했다. “장공자, 장공자 언짢아 하지 마세요. 저는 아서와 동문에 동창이니 당연히 정답지요.” 장양은 온객행이 건내 준 찻잔을 받아 마셨다.

온객행이 본인 분의 차를 따르며 말했다. “혹 제가 답해 드릴 수도 있으니 무슨 일인지 말씀해보세요.” 다정한 온객행의 목소리에 경계심이 사그라드니 장양이 온객행 가까이 몸을 숙이며 말했다. “온공자는 주공자의 정체를 아시오?” 온객행이 모르겠다는 눈치로 고개를 흔들자 장양이 크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온공자, 아무래도 주공자는 나의 형제인 듯하오.” 온객행은 헛웃음이 나와 참지 못하고 ‘하하하’하고 웃어버렸다. 장양은 또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잔뜩 경계심을 세우고 말했다. “무엇이 재미 있단 말이오! 모친의 부정을 내가 어찌 묻는다는 말이오!”

온객행은 손을 들어 장양의 팔뚝을 쓸며 말했다. “장공자, 장공자, 이리 둔한 사람을 보았나.” 온객행이 다정하게 그를 타이르자 장양이 다급하게 물었다. “그럼 아니라는 말이오? 모친의 혼외자가 아니라는 말이오?” 그 말에 온객행은 고개를 꺾어 ‘하하하’하고 웃었다. 이 순진한 도련님은 그게 무슨 큰일이라고 이렇게 세상이 망할 것 같은 표정으로 주자서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주자서와 닮은 얼굴에 모질게 굴 수 없어 온객행이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장공자 걱정 마세요. 장부인께서는 부정을 저지르실 분이 아닙니다. 장공자께서 제일 잘 알고 계시잖아요.” 장양은 온객행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온객행이 그를 자리에서 일으켜 어깨에 팔을 두르고 그를 문간으로 데리고 가서 내쫓으려고 하는데 주자서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정답게 어깨동무하고 있는 온객행과 장양을 번갈아 보더니 공손하게 손을 들어 인사하려는 것을 장양이 주자서의 팔을 붙들고 예를 거두라고 했다. 장양은 온객행을 한번 보고 고개를 끄덕인 다음 두사람에게 인사하고 방을 나갔다. 장양이 나간 쪽을 보고 있던 주자서가 온객행에게 고개를 홱 돌리고 물었다. “이건 또 무슨 허튼 짓이오?”

온객행은 서있는 주자서의 팔을 잡아 의자에 앉히고 방금까지 제가 마시던 찻잔에 차를 따라 주자서 손에 쥐어 주고는 말했다. “아서, 허튼 짓이라니? 장공자께 오해가 있으니 풀어야지. 아서.” 주자서가 차를 마시고 짧게 물었다. “오해?” 온객행은 의자를 끌어 다가 주자서 옆에 바싹 붙어 앉아 말했다. “장공자는 글쎄, 아서가 배다른 형제 인줄 알잖아. 하하하.” 온객행의 말에 ‘흠’ 하고 자리에서 일어난 주자서는 입고 있던 비단 장포를 벗고 대야에 담긴 물에 손을 씻고 얼굴을 닦았다. 온객행은 주자서가 벗어 놓은 비단 장포를 잘 걸어 놓고 물었다. “아서 낙릉에서 온 손님들은 누구야?” 주자서는 잠시 멈칫 하더니 얼굴을 마저 다 닦고는 대답이 없었다.

온객행이 물었다. “제(濟)왕전하는 움직일 것 같아?”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왕전하께서는 이미 평원태수와 함께 제남으로 이동하고 계시네.” 태안에서 제(濟)왕의 봉지까지는 산이 험준하여 말을 하루 종일 달려야 겨우 도착하는데 그가 벌써 제남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마치 소식을 듣자마자 출정을 결정했다는 소리처럼 들렸다. “아서, 도성에서 주대인께 연락이 없었어?” 주자서가 고개를 저었다.

정말로 없는 것인지 아니면 온객행에게 말해줄 수 없다는 것인지 모르는 온객행은 그냥 주자서가 하는 말은 다 믿기로 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주자서를 데려다 맥을 짚고 말했다. “아서 운기 조식은 하고 있어?” 주자서가 온객행에게 잡힌 손을 빼며 말했다. “도무지 겨를이 생기지 않네….”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아서, 걱정 마. 무슨 일이 있으면 아서쯤이야 내가 지켜줄 수 있어.” 주자서는 미간을 찌푸리고 온객행을 쏘아보며 말했다. “앓고 있는 병이 있어 회복의 차도가 느린 것이니 천천히 돌아 올거요.”

온객행이 깜짝 놀라 주자서의 손목을 다시 채어 맥을 짚으며 말했다. “앓고 있는 병이라니? 아서, 정말 많이 아픈 거야? 아서?” 주자서의 맥은 어제 푹 쉬어서 어느 정도 정돈되어 있었고, 바닥에 깔린 내공은 전보다는 그 기운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주자서의 맥이 평소보다 조금 빠른 것 같아 온객행이 손을 들어 주자서의 이마에 가져갔다. 열은 없었지만 주자서의 얼굴이 조금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아서 왜 얼굴은 붉히고 그래, 나도 부끄러워지려고 하잖아.” 온객행의 말에 온객행의 손길을 뿌리친 주자서가 말했다. “내공이 돌아오면 자네부터 흠씬 패 줄 참이네.” 온객행은 그 말에 또 크게 ‘하하하’ 웃었다.

주자서는 자기 방으로 돌아갈 마음이 없어 보이는 온객행에게 계속 눈치를 주었다. 온객행은 주자서가 그러던 말던 주자서가 손과 얼굴을 씻은 물을 내다 버리고 그 곳에 물을 받아 관수하고 옷을 벗었다. 주자서가 온객행의 옷을 보더니 물었다. “노온, 태수께서 준비해 주신 옷은 어디에 두고 그걸 다시 입었어?” 온객행이 내의차림으로 침상에 다가와 앉아 신발을 벗으며 말했다. “아서 내 신분으로 비단 옷을 입으면 길에서 비명횡사하기 딱 좋아.” 주자서가 침상 안쪽으로 들어가 자리를 내주었다.

온객행은 몸을 옆으로 기대 눕고 팔을 괴어 주자서를 보았다. “아서는 비단 옷을 입고 살 팔자였나 봐. 무명옷을 입었을 때보다 훨씬 멋있어.” 주자서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멋있는 게 뭐가 중요해.” 온객행이 주자서의 뺨에 손을 가져가며 말했다. “중요하지 아서, 내가 이렇게 홀렸잖아.” 주자서가 미간을 찌푸리고 고개를 돌려 온객행의 손을 피하며 말했다. “또 그 소리!”

온객행이 주자서의 턱을 잡아 얼굴을 돌려 눈을 마주보며 말했다. “아서, 보름까지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주자서는 온객행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한참 마주 보고 있다가 주자서가 온객행의 손을 피해 몸을 돌려 누웠다. 온객행은 주자서에게 이불을 잘 덮어주고 한참 그의 옥침관을 보다 잠이 들었다.

또 주자서의 목덜미에 얼굴을 처박고 자고 있던 온객행은 주자서보다 먼저 눈이 떠졌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혹시 또 엽백의가 와 있나 싶어서 방안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이제 막 해가 뜨기 시작해 사위가 밝아 오고 있었다. 온객행은 팔자 좋게 다시 주자서의 목덜미에 고개를 기대고 눈을 붙였다. 일각도 되기 전에 주자서의 몸이 굳어 지는 것이 느껴졌다. 온객행은 아직도 수줍어하는 주자서가 귀여워 눈을 뜨지 않고 팔을 걸어 품으로 끌어당겼다. ‘흡’하는 숨을 들이켜는 소리와 함께 주자서의 몸이 온객행의 몸에 밀착되었다.

온객행은 잠투정을 하는 척 주자서의 목덜미에 입술을 비볐다. 온객행은 주자서가 바로 뿌리칠 줄 알았지만 의외로 주자서는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밖에서 하인의 인기척이 날 때까지 주자서는 그렇게 온객행 품에 안겨 있었다. 온객행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의 머리속이 궁금했다.

더 꼭 안으며 얼굴을 비비자 주자서가 말했다. “노온, 그 아이는 모든 것을 내려 놓아야 하네”(34) 온객행은 한동안 그게 무슨 말인지 생각하다 주자서가 자기가 해주었던 이야기에 대해 말하는 것을 알았다. 다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그대의 영견을 가지고 가는 것처럼?” 주자서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영견은 그대가 가지고 가시게. 옥패는 내가 가지고 갈 테니.” 온객행이 고개를 들어 주자서를 보았다.

주자서는 몸을 돌려 온객행을 보며 말했다. “노온, 마음을 내려놓아. 그 마음은 내가 지고 갈 테니.” 이 치는 언제부터 알고 있었을까? 온객행은 서러워져서 주자서의 가슴에 얼굴을 대고 조금 울었다. 온객행이 훌쩍이는 소리를 듣고 주자서가 가슴위에 놓인 온객행의 손을 토닥였다. 온객행은 생각했다. 누가 나를 이렇게 달래 주었더라. 모친이 나를 뭐라고 불렀더라 ‘연아(衍兒)…연아….’ 그래 그렇게 불렀던 것 같다. ‘나의 이름은 연이었던가?’


엽백의와 소녀는 채미공자의 몸을 양지바른 곳에 잘 묻고 비석은 세우지 않았다. 파사에서는 사람을 돌 아래 묻는다 하니 엽백의는 소녀가 무덤 앞에 앉아 펑펑 우는 것을 둔 채로 크고 작은 돌을 모아 무덤을 덮었다. 저 멀리 해가 밝아 오고 있었다. 엽백의는 불쑥 소녀에게 물었다. “네가 연(演)이냐?” 소녀는 짓무른 눈으로 엽백의를 쏘아보며 말했다. “그건 왜 물으시오?”

소녀의 목소리가 낮아 진 것을 눈치챈 엽백의가 물었다. “그 옷과 치장은 너의 의취(意趣)냐?” 소년은 벌떡 일어나 몸을 휘감고 있던 장식을 떼어 내고 말했다. “아니오.” 소년이 엽백의에게 물었다. “모친을 해친 것은 당신이오?” 엽백의가 한참 뜸을 들이며 대답했다. “그러려고 했으나 너무 늦었다.” 소년의 눈에 다시 눈물이 차오르자 엽백의는 당황하여 말했다. “너의 모친께서 남기신 말이 있다.” 소년이 엽백의를 보았다.

엽백의가 말이 없자 소년이 버럭 소리쳤다. “무엇이오!” 엽백의는 한참 생각하다 말했다. “너 아주 버르장머리가 없구나. 어디 어른에게 큰소리야!” 소년은 비죽 웃더니 엽백의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기루에서 자란아이에게 버르장머리가 어디 있소?” 엽백의는 수긍하며 소년에게 말했다. “일단 나와 가자.” 소년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엄마가 뭐라고 말했어!” 엽백의는 혀를 ‘쯧쯧’차며 소년에게 말했다. “온가보다 더한 놈도 있구나.”

소년이 엽백의를 노려보자 엽백의가 부스스 웃으며 말했다. “이리도 제자 복이 없을까…. 꼬맹이 너 이름이 무엇이냐.” 소년은 어디서 그런 기세가 나왔는지 엽백의에게 다시 소리쳤다. “뭐라고 말했는지 어서 말해!” 엽백의가 달래듯 소년에게 말했다. “그래, 그래. 알았다. 이름이 무엇이냐?” 소년은 한참 더 노려보더니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갈연(蝎演).”

엽백의가 ‘허허허’웃으며 말했다. “이번엔 갈씨군. 너의 아비의 성이 갈씨냐?” 소년은 많이 지쳤으면서도 눈에 힘을 풀지 않고 대답했다. “나의 부친은 조씨요.” 엽백의가 웃으며 말했다. “어찌 성도 물려주지 않은 놈을 부친이라 부르느냐? 너는 오늘부터 제갈(諸葛)씨다. 이름은 차차 생각해보자.” 스스로를 갈연이라고 말한 소년은 곧 서있던 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밤새 울고 악을 썼으니 얼마 남지 않은 내력이 바닥난 것이다. 엽백의는 스스로에게 제자복이 지긋지긋하게 없다고 불평을 하며 쓰러진 소년을 안고 숭산으로 향했다.

(85) 조식 영회시
智巧萬端出 大要不易方. 如何誇毘子 作色懷驕腸.
지혜와 기료(祈療)는 여러 갈래에서 나오지만 큰 뜻은 방향을 트는 법이 없다. 어찌하여 아첨꾼들은 얼굴 바꿔 교만함을 품고 있는가?

雨霖鈴 第26

26. 德蕩乎名 知出乎爭
덕은 명예로 어지러워지고, 지식은 다툼에서 나온다.

사흘 동안 쉬지 않고 걸어 양산박에 다다랐다. 태산으로 가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습지로 봄에는 물이 많지 않아 땅이 드러난 곳이 많았다. 호수에는 아침부터 물고기를 잡는 어부들과 이동하는 나룻배가 여기저기 보였다. 태산 바로 아래 있는 동평성으로 가려면 이 습지를 건너야 했다. 아직 이른 시간이었는지 나루터에는 배가 별로 없었다. 몇 일 동안 씻지도 못하고 열심히 걸은 두 사람의 행색은 별로 좋지 못해 뱃사공이 그들의 승선을 몇차례 거부했다.

어쩔 수 없이 두사람은 나루터에 앉아서 배가 많아질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주자서는 그동안 온객행에게 많이 익숙해졌는지 선창에 앉아 온객행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온객행은 주자서가 매고 있던 봇짐을 안고 나룻배가 하나 둘 모이는 것을 보았다. 주인 없이 부두에 매여 있던 배들의 주인이 하나 둘 모이고, 호수너머 동평에서 짐을 실어 나르는 배도 보였다.

두사람이 정답게 앉아 있는 것을 보던 어떤 늙은 뱃사공이 온객행에게 물었다. “자네 혈육은 안색이 좋지 않은데 어디 아픈 것인가?” 나룻배를 젓던 노인이 머리에 쓴 갈대로 짠 쓰개를 벗으며 온객행에게 물었다. 온객행은 고개를 숙여 눈을 뜨지 않는 주자서를 한번 보고 늙은 뱃사공에게 답했다. “많이 걸어 기진한 것입니다. 어르신.”

온객행의 말에 노인이 두 사람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물었다. “어디까지 가는가?” 저 멀리 습지너머 보이는 산은 태산의 산맥 중에 하나인 대채산(大寨山)이다. 온객행이 손을 들어 이제 막 잦아들기 시작한 안개사이에 있는 산을 가리켰다. 뱃사공은 고개를 돌려 온객행이 손가락질 한 곳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태산으로 가는 손님이군.” 온객행은 뱃사공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뱃사공이 물었다. “어디에서 왔소?” 온객행은 주자서에게 시선을 잠깐 옮겼다가 말했다. “숭산에서 왔소.” 노인은 대화가 끝날 때까지 눈을 뜨지 못하는 주자서를 한참 보다가 배에 타라고 손짓했다. 온객행이 뱃삯을 흥정하려고 하자 노인이 웃으며 말했다. “뱃삯은 그대들의 이야기로 받겠소.” 온객행이 눈을 가늘게 뜨고 노인을 보았다.

온객행이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이자 노인이 말했다. “내가 주(朱)가에 진 빚이 있으니 갚는 걸로 칩시다.” 온객행이 까닭을 모르겠다는 듯 혼란스러운 얼굴을 하자 노인 역시 당황하여 물었다. “그 공자는 주(朱)가의 공자가 아니오?” 노인이 주자서를 보며 말했다. 온객행이 “주(朱)씨요? 주(周)씨가 아니라요?” 노인은 익숙하게 선창에 배를 매고는 말했다. “낙릉의 주(朱)가 공자가 아니오?”

온객행은 주자서의 어깨를 흔들어 깨웠다. 주자서는 미간을 찡그리더니 금방 눈을 떴다. 눈을 뜨고는 앞에 배를 묶어 놓은 사공과 온객행을 번갈아 보며 눈을 굴렸다. 온객행이 말했다. “아서… 아서는 낙릉 주가 사람이야?” 주자서는 얼른 고개를 돌려 온객행을 보았다. 뱃사공이 온객행을 거들었다. “낙릉 형림에 주가가 아니오? 가주와 아주 많이 닮았구려.”

주자서는 공손히 공수하며 뱃사공에게 인사했다. “어르신 저는 양주에서 온 주자서라 합니다.” 뱃사공은 크게 놀라며 말했다. “양주에서 왔단 말이오? 기주 낙릉의 주가가 아니오?” 주자서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르신 저는 양주 회계 사람입니다.” 온객행이 말했다. “태어난 곳이 그런 것이지 평생 임해에서 살았잖아.” 주자서가 온객행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뱃사공은 자신이 무례를 범했다며 뱃삯을 받지 않고 그들을 동평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주자서는 주구전과 만난 뒤에 그에게 노잣돈을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다며 순박하게도 염낭을 펼쳐 들어 있는 동전을 모두 사공에게 보여 주었다. 사공은 그럴 수 없다며 받지 않았다. 온객행은 주자서가 돈을 사용하는 것이 서툰 것을 눈치챘다. 아마 양주에서는 직접 돈을 쓸 일이 많지 않았을 것이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염낭을 뺏고는 뱃사공에게 말했다. “아서가 배를 그냥 탈 수 없다 하니 이 근처에서 하듯이 나룻배를 한번 건너는데 내는 닷푼을 두사람의 몫으로 열푼이오.” 그리고 염낭에서 동전 열개를 세서 뱃사공의 손에 올려 놓았다.

온객행은 배가 드나드는 것을 구경하면서 사람들이 값을 치르는 것도 보았기 때문에 뱃사공은 온객행에게 받은 돈을 수긍했다. 나룻배 한번 타는데 닷푼은 꽤 비쌌지만 양산에서 동평까지는 백리가 넘으니 아주 터무니없는 가격은 아니었다. 양산박은 물의 높낮이가 일정하지 않아 어디는 얕고 어디는 깊다 한다. 그러니 보통의 호수를 건너는 것보다는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았다.

온객행은 배에 타기 전에 나루에 나와 있던 사람들에게서 뱃사공의 몫까지 요기할 것을 사고는 배에 탔다. 뱃사공은 다른 배들과 부딪히지 않게 천천히 배를 몰아 수심이 깊은 곳을 향했다. 온객행과 주자서는 배 가운데에 햇빛을 피할 수 있게 갈대로 엮어 놓은 풍막 아래에 앉아 사공이 노를 젖는 것을 보았다.

주자서는 또 온객행의 어깨를 베고 스르르 잠이 들었다. 주자서가 잠이 많아 진 것이 불안하여 온객행은 자고 있는 주자서의 손목을 가져다 몇 번이고 맥을 짚었다. 바닥에 잔잔히 깔려 있는 내공은 올라올 기미가 보이지 않고 오랫동안 걸어서 많이 지쳐 있었다.

길 중간에 멈춰 온객행이 사온 음식을 먹을 때도 주자서는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온객행만 애가 타서 몇 번이고 권했지만 주자서는 고개를 흔들며 거절했다. 풍막에 기대 자고 있는 주자서에게 겉에 입은 호복을 벗어 덮어주었다.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하는 모습을 보고 사공이 말을 붙였다. 사공은 처음에 주자서를 잘못 알아본 것이 미안했는지 온객행과 주자서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 캐묻지 않았다.

온객행은 처음에 사공이 꺼낸 그 낙릉 형림의 주가에 대해 물었다. 형림은 그렇게 큰 마을은 아니지만 주(朱)씨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이라고 했다. 순박하고 착한 사람들이라 어려운 사람을 잘 도왔고 선조가 북방 출신이라 대체적으로 무공이 높고 호방하다고 한다. 북방에서 침략하는 이민족을 막아내어 큰 공을 세우고 부마가 된 사람도 있다고 했다.

온객행이 추임새를 넣자 사공은 신이 나서 말을 이었다. 지금 태산 태수의 부인이 낙릉의 형림 출신이라고 했다. 주(朱)가의 여식은 아름답기로 유명하여 주가와 사돈을 맺은 자들 중에 기주와 청주에서 크고 작게 벼슬을 하고 있는 자들이 많다고 했다. 그리고 주자서를 힐끔 보더니 사공은 그가 태수의 아들인 장공자와 아주 많이 닮았다고 했다.


반나절을 배를 타고 도착한 동평은 황혼으로 붉었다. 주자서와 온객행은 뱃사공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태산 바로 아래 있는 태안성까지는 이제 이틀 정도 산을 넘으면 도착이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만류를 꺾고 동평호수가 보이는 비싼 객잔에 방을 잡았다. 약간 돈이 모자라서 어쩔 수 없이 한방을 쓰게 된 주자서는 온객행에게 불평했지만, 온객행이 사람을 시켜 목욕통을 준비하자 금방 입을 닫았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자 그동안의 피로가 사라지는 것 같았다. 부지런히 몸을 씻고 주자서의 시중을 들었다. 주자서는 노곤했는지 온객행이 머리를 감겨주자 몇 번이나 물에 얼굴을 처박고 목욕물을 마셨다. 온객행이 웃으며 목욕통에 고개를 기대게 하자 작게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귀여워 온객행이 소리 내어 웃자 주자서는 잠시 깼다가 다시 잠에 빠졌다. 온객행은 물이 차가워질까 서둘렀다.

깨끗이 씻은 후 더러워진 낡은 옷을 입을 수는 없어서 온객행이 객잔에 있는 점원에게 돈을 얹어 부탁한 옷을 입었다. 중의 없이 간단히 내의와 장포로 이루어진 옷을 입은 온객행은 점원에게 동평 안에 포목점이 있는지 물었다. 점원은 난처한듯 포목점은 태안성에 가야 있다고 했다. 옷을 짓는 장인도 없다 했다. 보통 포목점에서 산 옷감으로 집에서 지어 입는 것이 흔했기 때문이다. 온객행은 감사의 인사를 하고 오수전 몇 개를 손에 쥐어 주며 간단히 요깃거리를 부탁했다. 음식의 가격보다 많은 돈을 받은 점원인 신이 나서 음식과 함께 차를 내왔다. 얇은 옷을 입고 평상에 앉아 졸고 있는 주자서에게 음식을 권하자 주자서는 거절하지 않고 잘 먹었다.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물었다. “아서, 이제 이틀 뒤면 태산 태안성이야. 이제 어디로 누구에게 가는지 나에게 말해줘도 괜찮지 않아?” 주자서는 찬을 집어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온객행에 찻잔에 차를 따라 주자서에게 건네며 말했다. “아서 주대인께서 태산에 누굴 만나라고 하셨어?” 주자서는 온객행이 내민 차를 마시고 말했다. “태산 동군의 진부대장.” 온객행은 그렇게 낮은 지위의 사람은 잘 알지 못했다. 태산 태수인 장순이라면 몰라도 말이다.

온객행이 “그렇구나.” 하고 흐리터분하게 반응하자 주자서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진부대장님은 스승님의 친우셔.” 온객행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자 주자서가 찻잔을 내려 놓으며 말했다. “스승님은 오래전에 도성에서 유학하셨는데, 그때 함께 수학했던 동창이라 하셨어.”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주대인께서 서신이나 인장을 남기지 않았는데 그분을 찾아 간다고 너를 아실까?” 주자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온객행이 지적한 점에 대해 생각했다.

간단히 요기한 두사람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주자서는 이제 같은 침상에서 함께 자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이불을 펴고는 온객행이 누울 공간을 놓고 안쪽으로 들어가 먼저 누웠다. 주자서는 침상에 눕자마자 금방 잠이 들어 버렸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이불을 잘 정리해준 뒤에 객실 아래에 있는 주루로 향했다.


노야에게 받은 은전이 얼마 남지 않아 여비를 벌려면 호구를 하나 잡아야 했다. 기루에는 사람이 많았는데 이 객잔은 호수가 잘 보이도록 높은 누각을 지어 두었다. 게다가 날씨가 많이 풀려 밤에도 많이 쌀쌀하지 않았다. 비단 피풍의를 걸친 귀족들이 그 곳에 앉아 시를 읊는 것을 본 온객행이 난간에 기대어 입을 열었다. “주당들은 각각 호수에 앉아, 긴 바람 큰 물결 일어도, 술을 실어오는 배를 멈출 수는 없네. 나는 긴 표주박 가지고 파구에 앉아 사방 주객께 술을 따르며 시름 흩어지게 하려 하오.”(83)

온객행을 보고 있던 비단 옷을 입은 공자 하나가 온객행을 칭찬하며 난간으로 다가왔다. 온객행은 공손이 손을 모아 인사하고 본인을 태호파의 온요라고 소개했다. 귀족들은 그가 무공뿐만 아니라 학문에도 조예가 깊다며 술을 대접했고 온객행은 술을 얻어 마시며 지금 낙양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한 것을 흘렸다. 그들은 꽤 높은 집안의 자제들인지 낙양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 대략적인 부분은 알고 있었다. 귀비가 자신의 아들을 미약으로 해쳐 참수당했다는 이야기다.

맞는 부분도 있고 틀린 부분도 있지만 대략적인 흐름은 얼추 맞았다. 이들이 알고 있다는 것은 제(濟)왕이 낭야왕의 낙양행을 알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런데 왜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일까? 남중랑장의 죽음을 아직 모르는 것인가? 아직 장례를 치렀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는 것을 보면 황궁에서 아직 사마흠의 시신을 내놓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가 죽은 것을 덮고 싶어 하는 것일까?

온객행은 귀족들을 떠보며 그들이 하고 있는 패물을 눈 여겨 보았다. 주자서는 날이 밝으면 바로 떠나고 싶어 할 것이고, 이 치들은 점원에게 턱턱 내어놓는 은자를 보면 패물 몇 개 없어 졌다고 크게 상관할 자들도 아니었다. ‘아마 성현의 길을 걷는다는 호화로운 유람을 하는 자들 일 테니….’ 아랫것을 대하는 태도가 퍽이나 거만하다. 온객행이 옆에서 비위를 맞춰주자 온객행의 손에도 은정이 쌓였다. 온객행은 맥이 풀려 귀족들이 하는 대로 두었다.

그 중에 가장 상석에 앉은 공자가 자신을 녹수 석가(石家)로 소개하였다. 석가의 씀씀이가 사치스러운 것이 산기상시 석중의 친 인척인 것 같다. 그는 자신이 매고 있던 산호 요패를 풀어 온객행에게 주며 말했다 “이것은 저 멀리 동영에서 온 산호로 만든 것이오. 이것을 가지고 낙양성으로 이 석모를 찾아오면, 내가 그대를 천거하겠소.” 온객행은 머리를 조아리고 두손으로 그 요패를 받아 들었다. 산기상시를 하고 있는 것은 석중이지 그대가 아닌데 벼슬도 없는 나부랭이가 무슨 수로 온객행을 천거를 한다는 말인가? 온객행은 속으로 귀족들을 비웃으며 술을 마셨다.

알고 있는 시가를 몇 개 읊고 연거푸 술잔을 기울이자 벌써 몇은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 이들이 마시는 즉묵노주는 청주에서 많이 마시는 황주로 탁하고 맛이 달다. 그리 독한 술은 아니지만 이들은 온객행이 객잔으로 들어섰을 때부터 벌써 한 두 시진동안 노주를 데워 마셨으니 취기가 많이 올랐을 것이다. 온객행은 바로 옆에 앉아 있던 귀족을 부축하는 척, 그의 허리춤에 달려 있던 요패를 끌러 소매에 숨겼다. 점원에게 그를 넘겨주고 또 다른 귀족을 부축하는 척 다가가 패물을 슬쩍했다.

모양이 화려한 것은 장식용이다. 하지만 빛이 은은하고 손때가 탄 것은 물질적 가치를 차치하고도 귀중한 것이다. 온객행은 태안성에 도착하여 눈 여겨 보았던 패물을 태호파로 보낼 생각이다. 조경의 이름으로 도착한 물건은 나중에 문제가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다.

이미 흙탕물이 되어버린 물 속에 숨는 것은 오래전에 진흙이 되어버린 온객행에게는 아무 일도 아니었다.(75) 두둑하게 한바탕 챙긴 온객행이 객실로 올라가 주자서의 옆에 몸을 뉘였다. 그들은 술을 많이 마셨으니 내일 중천까지는 눈을 뜨지 못 할 것이다. 아정하신 주자서는 아마 또 새벽같이 일어나 길을 재촉할 것이다. 온객행은 잠이 든 주자서의 얼굴을 한번 쓸어보고 눈을 감았다.

어슴푸레한 빛에 이미 옷을 다 입은 주자서가 온객행을 깨웠다. 눈을 비비며 일어난 온객행에게 젖은 수건을 주고 벗어 놓은 장포를 가져와 입혔다. 아침이 이른 주자서는 자고 일어나면 다시 기운이 채워진 것처럼 길을 재촉한다. 중의 없이 내의 위에 걸친 장포가 주자서의 몸을 비춘다. 어떻게 보면 가냘픈 것 같은데, 또 다시 보면 건장하다. 허리춤에 매인 옥패가 흔들 거리는 것이 색스럽다.

투박하게 하나로 올려 묶은 머리를 풀어 잘 빗고 흰색의 긴 끈으로 반만 묶어 내렸다.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빗을 주자 주자서는 한숨을 쉬고는 온객행의 머리를 빗겨주고 똑같이 머리를 묶어 주었다. 두 사람은 일출하는 시간에 맞춰 방 값을 치르고 점원에게 넌지시 양주 오(吳)에 태호로 간다고 말을 흘렸다. 주자서는 행동을 조심하는 것으로 알고 온객행의 말에 장단을 맞춰 주었다. 두사람은 이틀 뒤 태안성에 도착했다.


태산의 태수 장순은 공정하기로 유명했는데 그의 집안은 대대로 유교학자 집안이었다. 그의 일족은 태산에서 제음서원을 운영하였는데 과거 남방의 나라가 망하기 전까지 그 곳에서 많은 유생들이 망국에서 벼슬을 했다. 지금이야 나라가 망해서 그 명성이 덜하지만 그들의 선조 중 한 명이 과거 육경을 수정 집필하여 세운 비석은 유학자들이 태산을 찾게 했다.

태산의 성 주변, 기주와 청주의 사정은 또 달라서 시도 때도 없이 세금을 뜯어내는 기주에서 사람들이 많이 내려와 살고 있었다. 그러니 바로 지척에 있는 평원 태수나 연주 자사에게 장순은 눈엣가시였다. 그래서 출신과 능력에 비해 관직이 낮았다. 주자서는 태안성에 도착하자 마자 관청으로 가 진부대장을 뵙기를 청했다.

그들이 온객행과 주자서의 출신에 대해 묻자 주자서는 한참 망설이다 사계산장이라는 이름을 내놓고 말았다. 한 시진 정도 관리들이 정무를 보는 정실에 앉아 찻물을 들이켰다. 정실은 아주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물건들은 낡았지만 아주 잘 손질되어 있었다. 바깥이 소란스럽더니 곧 정실안으로 무장을 한 무관이 들어왔다. 주자서와 온객행은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자서는 소매를 들어서 온객행은 포권하여 들어온 관리에게 인사했다.

무관은 그들에게 예를 거두라고 말한 뒤 상석으로 가서 앉았다. 두사람이 고개를 들자 보사가 가지고 들어온 차를 마시던 무관의 시선이 주자서에게 박혔다. 그는 차를 마시다 말고 찻잔을 다시 내려 놓고는 일어나 주자서에게 다가왔다. “영아?” 주자서는 당황하여 고개를 바닥에 조아렸다. 온객행은 주자서를 보며 말했다. “영아?” 곧 뒤로 무관이 한 명 더 들어왔다. 그는 자신이 동군의 부대장 진영이라고 소개했다. 온객행은 고개를 돌려 주자서의 몸을 일으키는 무관을 턱짓하며 “태산 태수…님?” 이라고 물었다. 그러자 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온객행은 태산 태수 장순을 다시 보았다. 그는 주자서의 뺨을 쓰다듬으며 눈시울이 붉어 졌다. 주자서도 장순에게 눈을 떼지 못했다. 두 사람은 아는 사이였던가? 온객행은 당황하여 옆에 있는 진영을 보았다. 진영은 마치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한숨을 쉬고는 주자서와 온객행이 차를 마시고 있던 탁자에 가서 앉으며 말했다. “사람이 정결하면 욕보이기 쉽고, 스스로를 아끼는 자는 손쉽게 쓰러뜨릴 수 있으며, 남에게 차마 못할 짓을 하지 못하는 자는 스스로에게 못할 짓을 한다 했습니다.(47) 태수께서는 잊으셨습니까?” 온객행도 눈치를 보다가 진영 옆에 가서 앉았다. 장순이 주자서를 탁자로 데려와 자리를 권하고 스스로 앉으며 말했다. “남에게 차마 할 수 없어 스스로에게 못할 짓을 하셨지….” 온객행을 제외한 세 사람의 분위기가 침울하게 가라 앉았다. 탁자에 앉은 네 사람 중에 사정을 모르는 것은 온객행 뿐이다.

주자서는 눈가가 붉어졌지만 울지는 않았다. 그리고 숭산에서 보았을 때 낯설었던 그 알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주구전이 해준 이야기를 했다. 낭야왕과 조왕이 작당을 하고 황제를 식건전에 감금한 것과 기왕을 미약에 중독시켜 죽인 것까지.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말한 적 없으니 모두 주구전이 말해준 것이다. 대체 어디서 주워서 조각을 맞춘 것인지 상황이 모두 맞아 떨어졌다. 장순은 주자서의 말을 듣고도 한참 주자서의 얼굴만 보았는데 온객행은 그것이 매우 불쾌했다.

온객행은 일부러 목을 가다듬고 차를 마시며 주자서에게 좀 더 가깝게 다가가 앉았는데 침울한 주자서는 온객행이 그의 팔을 쓰다듬어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말을 모두 전한 주자서가 일어나 장순과 진영에게 인사했다. 온객행도 얼떨결에 같이 일어나 인사했다.

인사를 마치고 나가려는 주자서를 잡은 것은 장순이 아니라 진영이었다. “주(朱)공자. 그대를 만나고 싶어하는 이가 많네.” 주자서는 공손히 소매를 올리고 답했다. “앞으로 오는 세상은 기다릴 수 없고, 지나간 옛날은 따라 갈 수 없습니다. 저는 복은 깃털보다 가벼움을 알고, 재앙은 땅덩이보다 무거운 것을 알고 있으니 저에게 중하(重荷)를 지우지 마소서.”(84)

이름을 찾겠다던 기세는 어디로 갔을까? 주자서는 평온한 얼굴로 장순과 진영에게 한번 더 절했다. 장순은 눈물을 참지 못하고 주자서의 팔을 붙들고 훌쩍이기 시작했다. 주자서와 진영의 표정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온객행은 무의식적으로 주자서의 손을 찾아 잡았다. 맥을 짚어 볼 때처럼 잡힌 손은 차게 질려서 주먹을 꽉 쥐었다. 또 그 표정이다. 차라리 울어버렸으면 나았을까?


온객행과 주자서는 결국 관청의 정실을 떠나지 못했다. 장순과 진영이 업무를 모두 마칠 때까지 탁자에 앉아 차를 마셨다. 장순은 연주자사에게 서신을 보냈다. 연주 자사는 지금 청주에 있는 제(濟)왕과 함께 있으니 낭야왕의 일도 알게 될 것이다. 그가 청하를 그냥 둘지 아니면 어떤 일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태산태수는 허가 없이도 청하를 공격할 마음이 등등했다. 일을 하던 진영은 얼마 뒤 말없이 정실을 나갔다. 날이 저물자 장순은 온객행과 주자서를 데리고 본인의 사가로 갔다.

장순의 집은 제음서원 바로 옆에 있는 저택이었는데 들어보니 태수의 저택이 아니라 제음서원 별원으로 불리는 것 같다. 안으로 들어가니 규모에 비해 사람이 굉장히 많았는데 모두 행동이 깍듯하고 다정했다. 두 사람은 작은 별채에 나란히 있는 방으로 안내받았다. 온객행이 주자서와 함께 방에 들어가려고 하자 하인이 온객행을 막았다. 온객행은 당황하여 주자서를 불렀지만 주자서는 온객행을 한번 보고 고개를 젓고는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온객행은 밖에서 한참 “아서! 아서야 아서!” 라고 불러 댔지만 지나가던 하인들의 눈총만 샀다.

그날 저녁 온객행과 주자서는 내원으로 저녁식사를 초대받았다. 내원이라 함은 외가의 남자가 함부로 출입할 수 없는 곳인데 의아하여 온객행이 여러 번 다시 묻자 하인은 웃으며 대답하지 않고 그에게 갈아 입을 옷과 소세할 물을 가져와 시중을 들었다. 온객행은 죽기전에 입어 볼 수 있을까 싶었던 얇은 비단 옷을 입고 관을 했다.

면경에 보이는 저 남자는 어디 권문세가의 공자처럼 보였다. 온객행이 별채에서 나오자 밖에 이미 나와 기다리고 있던 주자서와 만났다. 주자서는 짙은 푸른색의 비단 옷을 입고 머리를 올렸는데 원래 그런 옷을 입은 사람처럼 아주 잘 어울렸다. “아서…. 내가 오늘 아서에게 좋아한다고 했던가?” 주자서는 하인의 눈치를 보고 온객행의 팔을 밀며 말했다. “자네는 오늘 입을 열지 말게.”

온객행은 넓은 소매를 흔들어 절하는 것처럼 앞으로 모으고는 말했다. “저 미인 키도 크고 날씬한데 비단에 엷은 홑옷 입었네.(9) 어떻게 이 모습을 보고 찬양할 수 없단 말입니까.” 온객행은 주자서를 부군이라고 부를까 하다가 하인들의 눈치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주자서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온윤한 옥돌 같으신 온공자와 같겠습니까?”(40) 주자서의 말에 온객행이 ‘하하하’하고 호탕하게 웃었다.

두사람은 내원 밖에 횃불을 밝혀 준비된 식탁에 앉아 집주인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 오늘 저녁을 함께 할 사람이 아주 많았는지 자리가 매우 많았다. 자리에 이미 앉아 있는 사람들은 온객행과 주자서를 흘끔거렸다. 주자서를 보고 수근대는 사람들이 많았다. 온객행은 괜히 기분이 나빠 수근 거리는 사람들을 쏘아보았다. 태수가 들어오고 태수 옆에 주(朱)씨 장부인이 함께 들어왔다. 장부인은 주가의 여식이 아름답다는 소문을 증명이라도 하듯 기품 있고 단아했다.

자리가 하나 둘 차고 장순의 아들 장양(張壤)이 내원으로 들어왔을 때 온객행은 그의 얼굴을 보고 놀라 자빠질 뻔했다. 장양은 주자서와 아주 비슷하게 생겼는데 선이 굵고 몸이 두툼했다. 그는 태산파에서 수학했다고 했는데 확실히 단련된 내공이 느껴졌다. 온객행은 고개를 돌려 주자서를 보았는데 주자서는 눈을 굴리며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하긴 자기 얼굴은 저보다 남들이 더 많이 볼 테니,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왜 장양과 주자서를 번갈아 보며 속닥대는지 장본인들은 알지 못할 것이다.

한참 시선을 굴리던 주자서와 눈이 마주쳤다. 온객행은 주자서를 보고 눈꼬리를 접어 웃었다. ‘낯선 사람들의 시선 보다는 그래도 내가 낫지?’싶은 얼굴로 마주하자 주자서도 어색하게 입꼬리를 끌어 올려 웃어 주었다. 온객행은 괜히 마음이 간질간질했다. ‘오늘 이 밥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나는 네 편이야.’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네가 누구든 나는 네 편이야. 아서.’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치올랐지만 곧 제음서원의 선화선생(宣龢先生) 장횡(張宖)이 나타나서 꿀떡 삼켜버리고 말았다. 온객행은 아쉬워서 주자서에게 시선을 떼지 못했다.

(83) 원결 병서(幷序) 石魚湖上醉歌 석어호에서 취하여 노래 부르다.
酒徒歷歷坐洲島 長風連日作大浪 不能廢人運酒舫 我持長瓢坐巴丘 酌飮四座以散愁.
주당들은 제각기 호숫가 섬에 앉았네, 긴 바람 연일 큰 물결 일으켜도, 우리의 술 실어오는 배를 멈출 수는 없네, 나는 긴 표주박 가지고 파구에 앉아서, 사방 주객들에게 술 따르며 시름 흩어지게 한다오.

(84) 장자 내편 4 인간세
來世 不可待 往世 不可追也
앞으로 오는 세상은 기다릴 수 없고, 지나간 옛날은 따라갈 수 없네.
福輕乎羽 莫之知載 禍重乎地 莫之知避.
복은 깃털보다도 가벼운데 그것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을 줄 모르며, 재앙은 땅덩어리보다도 무거운데 피할 줄 모르는구나

雨霖鈴 第25

25. 黃河千年一淸
황하가 천년에 한번쯤 맑아질지도 모르겠다.

온객행이 주구전의 방에서 나와 자신의 방으로 가려고 하는데 객잔을 나가는 주자서가 보였다. 온객행은 주자서가 떠나는 줄 알고 그를 붙잡기 위해 따라갔다. 주자서는 무슨 생각인지 개봉성이 있는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길에는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있었고 잠자리를 찾는 사람들도 있었다. 굳게 닫힌 개봉성의 문을 보고 걸음을 멈춘 주자서는 한참 문 위에 ‘남문’이라고 쓰여 있는 현판을 보았다. 온객행은 최대한 기척없이 주자서의 옆에 가서 섰다.

온객행이 물었다. “아서…주자서는 아서의 이름이 아니야?” 온객행의 목소리에 주자서가 고개를 돌려 그를 봤다. 작게 코웃음친 주자서가 말했다. “누구나 버린 이름 하나쯤은 있지 않은가? 온객행은 그대의 이름이 맞는가?” 온객행이라… 온객행은 이 이름을 가지게 되었더라… 장공이 읊었던 시가 절절 해서 그랬던가? ‘동산에 숨어사는 이조차 괴롭히니, 멀어지는 나무처럼 나그네 떠나가고 (遠樹帶行客; 원수대행객) 외로운 어느 곳에는 석양이 비추리라.’(78) 아니면 신세가 나그네 같아 그랬던가?

온객행은 이전에 어떤 이름이었는지 잊었다. ‘어머니가 뭐라고 부르셨더라… 아버지께서 뭐라고 부르셨던 것 같은데…’ 그가 가졌던 옛날의 그 이름을 불러줄 사람은 이제 없다. 온객행이 말했다. “어찌 버린 이름인데 다시 찾으려 하시오.” 주자서가 푸스스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어떻게 잊은 이름인데, 그 이름을 찾으려 하는가? 이 미련한 사람아.’ 온객행은 주자서의 곡절을 모두 알지 못해도 이름을 버리는 과정이 즐겁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은 안다. 자신의 이름이 잊혀지는 과정 역시 순탄치 못했으므로.

온객행은 주자서의 손을 잡았다. 덜 마른 옷을 입고 있으니 손이 차다. “아서, 오늘은 비를 많이 맞았으니까 푹 쉬어야 해.” 그리고 주자서를 객잔으로 끌고 갔다. 주자서의 방에 들어가 그가 옷을 벗는 것을 돕고 침상위에 누워 이불을 덮은 것까지 본 후에 온객행은 주저하며 주자서의 방을 나왔다. 온객행은 주자서가 주구전의 말을 듣지 않고 이름을 찾겠다고 하면 그를 도와줄 생각이다. 주자서가 이유를 말해주지 않아도 온객행은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난 온객행은 주자서의 방으로 갔다. 주자서는 비를 맞아 피곤했는지 자고 있었다. 괜히 단잠을 깨우고 싶지 않아 온객행은 주구전의 방으로 가서 아침 인사를 했다. 주구전은 온객행을 의아하게 보며 말했다. “자서가 아직도 자는 모양이지?” 온객행을 뜨끔하여 주구전과 함께 객실을 나와 아래에 있는 주루로 갔다.

간단하게 요기할 만한 아침을 주문한 온객행은 주구전에게 차를 올리며 말했다. “주대인, 아서의 이름은 찾으면 안되는 것입니까?” 주구전은 온객행의 말을 듣고도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허허허’ 웃으며 말했다. “공연히 크기만 하여 스스로 부숴버린 것을 어찌 다시 찾는다는 말입니까?”(79) 온객행이 비워진 주구전의 찻잔을 다시 채우며 말했다. “선생은 참으로 큰 것을 쓰는 데 졸렬하시오.”(79) 주구전이 온객행의 말에 크게 ‘하하하’ 하고 웃었다.

온객행은 주자서가 일어나기 전에 주구전을 떠서 주자서가 찾으려고 하는 이름이 무엇인지 떠보려고 했다. 이 노인네가 말하는 모양새를 보니 쉽게 알려주지는 않을 모양이다. “공연히 크다 하시면, 혹 사마씨요?” 주구전이 혀를 차며 말했다. “온공자. 아직도 자서가 마음에 드시오? 나는 아서를 장명산으로 시집 보낼 마음이 없소.”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시조부, 잊으셨습니까? 제가 사계산장으로 시집가는 것이에요.” 주구전이 양손을 뻗어 흔들며 말했다. “어찌 사계산장으로 시집을 오신다는 말입니까? 양주 회계로 가셔야지요.” 온객행이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인 다음 웃는 얼굴로 주구전을 빤히 보았다. 주구전의 두꺼운 낯짝이 당황이 물드는 것을 본 온객행은 기분이 좋아졌다.

온객행은 별 말 아닌 흰소리를 하는 것처럼 공의와 정주에서 보았던 낭야왕의 군대 이야기도 했다. 야숙을 하며 고생한 이야기에 끼워 넣으니 딱히 일부러 숨기려고 하는 말 같지는 않았다. 주구전은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낙양에 황후와 낭야왕이 있고, 지금으로서는 그들을 막을 만한 세력을 가진 이는 남쪽에 있는 양주 건업에 회남왕 사마윤, 양주 예장왕 사마치, 형주 강릉에 초은왕 사마위 정도이다. 그들은 아직 도성의 상황을 알지 못할 수도 있다.

온객행이 주구전에게 물었다. “위나라는 비어 있습니까?”(76) 주구전은 처음에 알아듣지 못한 듯 한참 생각하더니 말했다. “위나라가 그러하면 조나라는 어디이고 제나라는 어디인가?” 온객행은 ‘휴’하고 한숨을 쉰 뒤에 주구전에게 말했다. “지금 위의 도성이 비었으니 이제부터 제나라와 조나라를 찾아야지요.” 주구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주자서가 내려올 때까지 둘은 간단히 요기하고 앉아서 말없이 차를 마셨다. 해가 중천이 다 되어서야 주자서가 객실에서 나왔다. 어젯밤에 또 울었는지 눈가가 빨갛다. 주구전에게 다가가 인사한 주자서가 온객행의 옆자리에 앉았다. 주구전은 점원을 불러 주자서가 요기할 음식을 주문했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붉은 눈가가 애처로워서 영견에 물을 적셔 눈가를 쓸어 주었다. 주자서는 미간을 찌푸리고는 온객행의 손속을 뿌리치고는 고개를 돌려 버렸다.

애가 탄 온객행이 주자서의 팔뚝에 들러붙으며 말했다. “아서 왜 그래? 눈이 다 부었잖아. 어젯밤에 잘 잤어?” 다정한 온객행의 목소리에도 주자서는 답이 없다. 주자서가 대충 요기를 하고 세사람은 객잔을 나왔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일과 낙양에 일어난 일을 한꺼번에 생각하느라 머리속이 시끄러웠다. 그리고 이 사건에 태산파를 어떻게 엮어야 그들을 모두 죽일 수 있는지 생각했다.


소림사에 머물고 있는 조경은 마음이 급하다. 도성으로 낭야왕이 군대를 데리고 들어왔다. 황제는 감금되었고, 아마도 조경이 맹진과 맹주에 숨겨놓은 물자들을 마음대로 가져다 썼을 것이다. 낭야왕과 거래하는 일에 대해 아는 자는 조경이 부리는 자중에 많지 않았기 때문에 손해가 막심할 것이다. 독갈에게 독살을 성공한 뒤에 치러야 하는 대금도 아직 다 지불하지 못했는데 숭산에 갇혀 있는 동안 사마운 그 놈이 조경의 돈으로 생색을 내는 중이다. 조왕은 어째서 그런 치를 가까이 두는지 알 수 없었다.

일단 조왕이 순조롭게 황위에 앉으면 그 다음에 무고의 열쇠를 찾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 조왕이 벼슬을 준다 하면 조경은 삼백상단을 정리하고 그렇게 할 요량이었다. 진왕과 낭야왕이 끼어 들기 전까지는 말이다. 남궁세가의 가주는 이미 양주로 돌아갔는데 어째서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사람들을 숭산에 묶어 두는지 주지의 저의가 너절하다. 황실의 태보는 이미 돌아갔고 이곳에 그들이 남아 있는 것은 다 그 장명산 검선이라는 놈 때문이다. ‘그와 청성곡에 연이 있었던가?’ 조경은 수하를 시켜 채미공자에게 서신을 보냈다. 이미 도성을 빠져나간 것 같으니 다른 사람 손에 잡히지만 않으면 된다.

조경의 생각과는 달리 채미공자는 이미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는 중이었다. 엽백의가 그를 찾았을 때 채미공자는 이미 크게 부상을 입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녀의 상처를 보니 강호의 것은 아니었다. 엽백의가 말했다. “그대는 어찌하여 스스로 노예를 자처하는가?” 채미공자는 사람들이 아는 것과는 다르게 여성이었다. 짙은 색의 장포를 입고 윤건을 썼다. 키가 크고 늘씬하여 갓 벼슬에 오른 젊은 공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녀는 엽백의의 말에 크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그 누구의 노예인 적이 없소! 나는 그 누구의 노예로 죽지 않을 것이오.” 엽백의가 쓰러져 있는 그녀에게 다가가 맥을 짚었다. 어지러이 찢긴 경맥은 그녀의 숨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말했다. 엽백의는 그녀를 가엾이 여겨 그녀의 몸을 바로 한 뒤에 물었다. “그대의 독이 청성곡에 닿았는가?”

그녀는 울컥 피를 토해 내더니 가는 숨을 몰아 쉬었다. 엽백의는 그녀가 피에 질식하지 않게 앉힌 다음 등을 쓸어 주며 말했다. “사막에서 난 채미충은 그 독이 아주 위험하다 들었네. 그대의 독이 청성곡에 닿았는가?” 그녀는 엽백의의 얼굴을 보고 미친 듯이 웃으며 말했다. “그대 들어보지 못했소? 모르는 것이 가장 좋고, 모르는 것을 안다고 하면 병이라는 것을.”(80) 그리고 또 피를 울컥 쏟아 내더니 엽백의에게 몸을 기댔다.

엽백의가 그녀의 몸을 부축하며 말했다. “내게 말해주면, 그대가 원하는 것 한가지를 들어 주겠소.” 생명이 꺼져가는 눈동자에 불이 들어왔다. 그녀는 엽백의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우리 연이…우리 연이를 찾아 주시오. 천륜을 끊고… 하고 싶은 일을…” 그녀는 말을 멈추고 기침을 했다. 엽백의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또 연이인가.’ 엽백의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의 입가에 귀를 가져다 댔다.

그녀는 온몸에서 숨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헐떡이면서도 엽백의의 질문에 대답했다. 아마도 그 연이라는 아이가 그녀에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일 테니. 엽백의는 이미 숨을 거둔 채미공자를 안고 해가 다 질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겨우 알고자 하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허무했다. 엽백의는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가고자 했던 곳이 어디였는지, 그것이 왜 궁금했는지.

지평선 너머로 황혼을 넘어 그에게 다가오는 이가 있다. 소녀는 엽백의가 안고 있는 시신위에 작은 몸을 다 덮고 서럽게 울었다. 엽백의는 실로 오랜만에 눈물을 쏟을 것 같았다. 사위가 캄캄하게 변할 때까지 엽백의와 소녀는 보는 이가 없다는 것을 핑계삼아 채미공자의 시신을 안고 울었다. 둘 다 죽은 사람이 그리워서 울었다.


객잔에서 나온 주구전은 개봉성 앞에 들어선 좌판에서 헌 옷을 사서 주자서와 온객행을 갈아 입히고는 말했다. “주자서. 신중히 하도록 해라.(77) 우리는 진왕의 사람이다.” 주자서가 대답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온객행이 생각한 것과 다르게 주구전은 소림사로 향했고, 주자서는 가고자 했던 태산으로 향했다.

주구전은 헤어지면서 최대한 마을과 관도는 피하고 신변에 대해 알리지 말라고 일렀다. 온객행을 보면서도 함부로 장명산 검선의 이름을 꺼내지 말라는 주의를 들었다. 주자서는 소림사로 향하는 주구전에게 공손히 절하고 주구전은 그런 주자서에게 한참 잔소리를 한 뒤에 날이 어둑어둑 해진 뒤에 출발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라면 단연 밤에 움직이는 것이 좋았다.

온객행은 주자서와 으슥한 숲길을 걸으며 물었다. “아서, 우린 태산에 왜 가는거야?” 주자서는 축 쳐져서 대꾸도 하지 않고 걸었다. 답답해진 온객행이 주자서의 어깨에 팔을 걸자 그 팔을 뿌리치며 주자서가 말했다. “태산 태수를 만나고 낙릉으로 갈거요.” 온객행이 다시 주자서 곁에 몸을 붙이고 서서는 물었다. “낙릉? 낙릉에는 왜?”

낙릉은 제(濟)왕 사마경의 봉지인 청주 제남과 냥야왕의 봉지인 기주 청하와 아주 가까웠다. 만약 제(濟)왕이 낭야왕의 출정을 모른다면 비어 있는 청하를 공격해 낙양을 구할 수도 있다.(76) 하지만 낭야왕이 황제를 가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를 시해하여 스스로 즉위하려 든다면 낭야왕의 봉지는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그는 다른 황족과 달리 그의 식솔을 아끼는 자일까?

주자서가 답했다. “전할 것이 있소.” 짙은 색의 낡은 호복을 입고 머리를 높게 묶은 주자서는 머리를 내린 것보다 어려 보였다. 헤진 옷깃 사이로 보이는 목덜미가 희다. 온객행은 만져보고 싶다는 충동을 누르고 대신 그의 손을 잡아채 맥을 짚어 보았다. 소림사에서 개봉까지 오며 고생한 것 때문이지 공자산의 독성이 잘 빠지지 않았다. 그의 내공은 희미하게 바닥에 깔려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걱정이 된 온객행이 말했다. “안되겠어, 오늘 부터라도 운기조식을 하도록 해.” 주자서는 온객행의 손을 ‘탁’하고 뿌리친 뒤에 길을 갔다. 온객행은 우는 소리를 하며 주자서의 뒤를 따랐다. “아서, 아파. 많이 아프다구.” 주자서는 온객행이 그러거나 말거나 길을 갔다.

제등 없이 이제 막 차오르는 희미한 달빛에 밤길을 가려고 하다 보니 주자서는 종종 발을 헛디뎠다. 온객행은 그럴 때마다 주자서를 놀리며 그의 허리를 잡아 챘다. 온객행의 손속을 뿌리치려고 하다가 숲길에서 얽혀 구른 후로는 주자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온객행의 도움을 받았다. 주자서의 허리춤을 더듬거리다 손에 옥패가 걸린다. 온객행은 기분이 좋아져서 주자서의 허리를 꼭 안고 경공으로 훌쩍 황하 근처까지 왔다.

정주에서 태산까지 흐르는 황하는 물길이 자주 바뀌어 그 주변이 거칠고 쓸쓸했다. 몇 년 전에도 봄에 큰 홍수가 나서 주변 일대가 범람해 사람이 많이 죽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올해는 봄에 비가 많이 오지 않아 강물이 많이 말라 있었다. 그래도 또 언제 갑자기 물이 불어날지 알 수 없으니 사람들은 황하 근처에 집을 짓지 않았다.

황하를 따라 걸으면서 온객행은 생각했다. 만약 주자서가 제(濟)왕을 떠보러 가는 것이라면 태호파를 도운 태산파를 주물러서 그들에게 알아 낼 수 있는 정보를 캐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태산파의 오래자는 개방과 오래된 악연이 있고, 개방은 낭야왕에게 무언가를 약속 받고 그를 돕고 있다.

삼백상단과 제남상단의 물건이 함께 있던 것으로 봐서 아마 그 지역에 있는 세가들의 지원을 등에 업고 낭야왕은 사병을 늘린 것 같았다. 예주와 서주는 옛날부터 비옥한 농토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곳에서 각 주의 자사와 마음을 먹고 둔전을 했다면 그 병력은 지금 낙양성에 있는 병사가 전부가 아닐 것이다.

곡식을 심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고, 낙양성을 지키는 군대의 규모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제(濟)왕을 떠서 청하를 치게 하려는 것인가? 하지만 고작 강호인의 말을 듣고 황족인 사마경이 사병을 움직여 줄까?


강의 지평선이 어스름이 밝아 온다. 온객행은 주자서가 꽤 많이 지쳐 있는 상태인 것을 알고 있다. 점점 느려지는 발걸음이 그랬고 그의 거친 숨결이 결정적이다. 온객행은 가던 길을 멈추고 바닥에 털썩 주저 앉았다. “아서! 나는 힘들어서 더 못 가겠어!” 주자서가 발걸음을 멈추고 바닥에 앉아 있는 온객행을 보았다.

온객행이 일출이 시작된 지평선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서 벌써 해가 뜰 만큼 오래 걸었는데 쉬었다가 가자.” 주자서 역시 걷고 있던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쉬었다. 온객행이 자리에서 일어나 강주변에 높게 자란 갈대를 꺾어 바닥에 깔았다. 해가 들면 햇빛을 가릴 만한 작은 관목 옆에 자리를 잡은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손짓하며 불렀다. “아서! 이리 와서 같이 쉬자.”

온객행이 만들어 놓은 자리가 썩 마음에 들었는지 별말 없이 온객행 옆에 와 앉고는 봇짐을 풀었다. 봇짐 안에는 주구전이 챙겨서 넣어준 쑥떡과 호리병이 있었다. 온객행은 호리병에 들은 것이 물인 것을 알고는 아쉽다며 한참 불평을 했고 주자서는 정말 많이 지쳤었는지 떡을 먹으면서도 눈이 감겼다. 해가 지기 시작해서 해가 뜰때까지 서너 시진을 가끔 쉬면서 걸었으니 피곤할 만하다. 그래도 그가 그렇게 오래 걸을 수 있는 체력이 있다는 것은 그의 무공실력이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가늠케 했다.

온객행은 주자서가 손에 든 떡을 내려놓고, 주자서가 앉아 있는 몸 뒤에 팔을 넣어 머리를 어깨에 기대게 했다. 주자서는 저항없이 스르르 온객행에게 기댔다. 온객행은 만족한 얼굴로 일출을 감상하며 방금 전 주자서 손에 들려 있었던 떡을 먹었다. 온객행은 평소에 쑥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지금 먹는 이 쑥떡은 아주 맛이 좋았다.

온객행은 잠깐 잠이 들었다 깼는데 그 사이 언제 누웠는지 주자서는 온객행의 가슴을 베고 있었다. 몸 뒤에 넣었던 팔은 주자서의 어깨를 덮고 있었다. 날이 밝아 햇빛이 따뜻하다. 하지만 두사람이 앉은 자리는 관목에 가려져 햇빛이 주자서의 얼굴에는 닿지 않았다. 팔을 괴고 자고 있는 주자서를 구경하고 있는데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이곳은 사람들이 다니는 길과 멀지는 않으나 갈대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곳이었는데 이런 곳에서 사람을 만날 줄은 몰랐던 온객행이 몸을 굳혔다.

온객행이 몸을 일으켜 앉자 주자서도 정신이 들었는지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렸다. 수풀을 헤치고 나타난 것은 젊은 남녀로, 찰싹 붙어서 서로를 희롱했다. 온객행이 두사람이 이곳에 온 의도를 눈치채고 비몽사몽한 주자서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일어나 앉으려던 주자서의 얼굴이 온객행의 가슴에 폭삭 부딪혔다. 주자서는 고단한지 따뜻한 온객행의 가슴을 베개삼아 다시 잠이 들어 버렸다.

온객행과 주자서를 발견한 남녀는 잠깐 놀란 듯하더니 얼굴을 붉혔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추슬러 안으며 말했다. “노한 파도가 솟구쳐올라 서로 부딪치니, 구름이 일어나고 그 소리가 철썩 철썩.”(81) 그리고는 가슴깨에 있는 주자서의 얼굴을 손으로 어루만졌다. 주자서가 잠든 것을 알지 못하는 남녀는 빤히 온객행이 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온객행의 얼굴이 주자서의 얼굴로 향하자 찬물을 맞은 것처럼 ‘하’ 하고 숨을 들이켜고는 갈대를 헤치고 사라졌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뺨에 얼굴을 붙인 채로 ‘하하하’하고 웃었다 온객행의 웃는 소리에 잠이 깬 주자서는 자신이 온객행의 품에 얼굴이 잡힌 채 안겨 있는 것이 의아하여 온객행을 밀어냈다. “뭐가 그리 즐거운가.” 잔뜩 잠긴 주자서의 목소리에 또 한참 ‘하하하’하고 웃은 온객행이 말했다. “아서, 이 곳은 남녀가 서로 몸을 섞어 찌는 곳인가 봐. 하하하”(82)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표정을 구긴 주자서가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온객행도 조금 더 소리 내서 웃은 다음에 주자서의 봇짐을 들고 일어났다. 해가 중천에 있는 것을 보니 대낮일 것이다. 두사람은 금방 자리를 털고 일어나 길을 태산으로 가는 길을 재촉했다.


황하의 강변을 따라 걷는 것은 별로 좋지 못한 선택이었다. 해를 가려 줄 그늘이 없어 뒤통수가 뜨겁고 이마에 땀이 맺혔다. 주자서도 온객행과 상황이 별로 다르지 않아 양쪽 뺨이 빨갛게 익어서 이마와 콧잔등에 땀이 맺혀 있었다. 열심히 소매로 얼굴을 찍으며 걷고 있는 주자서의 기세가 대단하여 온객행은 감히 멈추자는 소리를 못했다.

열심히 걸어 사례 하남지역을 넘어 연주에 들어섰다. 연주에 들어서자 종종 마주쳤던 부대의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낭야왕이 원하는 만큼의 숫자가 모두 낙양성에 모였다는 말이다.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으니 낭야왕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 다른 황족들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주구전이 챙겨준 음식과 물은 동이 난지 오래 되어 온객행은 주자서와 함께 근처에 있는 작은 촌락으로 들어갔다. 대부분의 사람이 농사를 짓는 농민으로 여러 사람이 논에 실을 묶어 놓고 모를 심고 있었다. 이제 슬슬 정리가 되어가는지 몇몇 사람은 논에서 나와 신발을 신으며 술을 마셨다. 온객행이 그들에게 다가가 공손히 말하자 농민들은 경계하는 기색 없이 주자서와 온객행을 집으로 초대했다.

추레한 두사람의 행색에 떠도는 난민인 줄 알았는지 그들은 퍽 살갑게 그들을 대접했다. 온객행은 주자서를 동생으로 소개했고 그들은 농민들의 선의로 하룻밤을 묶어 갈 수 있게 되었다. ‘아서’라고 부르며 동생을 곰살 맞게 챙기는 온객행을 주자서는 별 말없이 하자는 대로 따랐고 온객행은 집안 곳곳을 둘러보며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했다. 싹싹한 그의 행동에 온객행은 술까지 얻어 마셨다.

둘이 머무르기로 한 낡은 방에는 침상이 하나 밖에 없어 어쩔 수 없이 둘은 한 침상에 몸을 뉘였다. 주자서는 꽤나 익숙해졌는지 금세 잠이 들었다. 온객행은 자기 마음도 몰라주고 아무렇지도 않게 잠들어버린 주자서가 야속하기도 하고 사랑스러워서 몸을 완전히 돌려 누워 주자서의 몸을 껴안았다.

주자서는 불편한듯 인상을 쓰며 뒤척이더니 온객행의 체온이 마음에 들었는지 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 온객행은 주자서가 먹은 군자산에 혹시 무슨 문제가 있어서 이렇게 내력을 회복하는 일이 오래 걸리는 것인가 걱정되었다. 독을 먹은 것이 이레가 다 되어 가는데 차도가 보이지 않는다. 주구전을 만났을 때 어떤 독인지 물어봤어야 한다고 후회하면서 온객행도 수마에 빠졌다.

(78) 왕유 送綦毋潛落第還鄕 과거에 낙방하여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무잠을 전송하며
遂令東山客 不得顧採薇. 旣至金門遠 孰云吾道非.
동산에 숨어사는 이조차도 고사리 캐며 살지 못하게 하였구나
장안에 온 뒤 금마문(金馬門)은 멀어졌지만누가 우리 길을 그르다 할 것인가
遠樹帶行客 孤城當落暉. 吾謀適不用 勿謂知音稀.
멀어지는 나무들 나그네 데려가고 외로운 어느 성엔 석양이 비추리라.
우리 계획이 어쩌다 쓰이지 못했을 뿐 지음(知音)이 적다고는 말하지 말게나.

(79) 장자 내편 1 소요유
非不呺然 大也 吾爲其無用 而掊之
공연히 크기는 하지만 아무 쓸모가 없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부숴 버리고 말았다.
莊子曰 夫子固拙於用大矣
장자가 말하였다. 선생은 참으로 큰 것을 쓰는 데 졸렬하다.

(80) 노자 도덕경 71장 知不知上 不知知病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 가장 좋다. 앎의 부족함을 모르는 것은 병이다.

(81) 송옥 고당부 회왕과 신녀가 고당관에 올라 사랑을 나눈 이야기.
奔扬踊而相击兮 云兴声之霈霈. 猛兽惊而跳骇兮 妄奔走而驰迈.
물결이 솟구쳐올라 서로 부딪치니, 구름처럼 일어나고 그 소리가 철썩철썩합니다. 맹수가 소리를 듣고 놀라서, 멋대로 내달리며 멀리 도망을 갑니다.

(82) 춘추좌씨전 위나라 선공(宣空)과 서모 이강(夷姜)의 이야기; 손윗사람과 간음하는 것을 蒸(찔증)이라 한다.

雨霖鈴 第24

24. 三年不蜚不鳴
새가 삼 년 간을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다.

기왕의 시신이 발견된 날 저녁에 내관이 지붕에 올라 혼을 불렀다. 기왕의 장포가 지붕에 걸려 낙양성에 기왕의 죽음을 알린 것이다. 황제는 기왕의 시신을 발견하고 그의 시신을 붙들고 하염없이 울다가 혼절했다고 한다. 황제가 기왕을 아낀 것은 사실이었는지 황제는 기왕의 시신을 동궁에 안치했다. 부친이 아들의 상주가 될 수 없어, 조왕이 상주가 되었다. 동궁에 설치된 빈소에서 상복을 입고 머리를 푸르고 곡을 하는 조왕의 모습은 보는 이도 탄식하게 만들었다. 호상소는 녹상서사 장화와 장사왕 사마예가 맡았다. 그들은 각 부처에 상을 알리고 동궁을 방문하는 조객을 대접했다.

아비보다 먼저 죽은 자식은 불효자였으므로 예법대로 상을 치를 수도 없었다. 기왕의 시신은 발견된 다음날 아침 바로 대렴(大殮; 입관)하였다. 그리고 그날 낭야왕의 사병이 도성으로 들어왔다. 모든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낭야왕은 황후와 진왕을 석방하고 귀비 유씨에게 죄를 물어 참수하였다. 금위군의 대장군인 범무구(範戊救)는 저항도 하지 않았다. 낭야왕에게 반기를 들었던 남중랑장 사마흠은 사망하였고 유격장군 사마량은 옥에 갇혔다. 사마흠과 사마량은 낭야왕 사마운에게 재종형제다. 사마헌은 좌장사직을 내려놓고 다시 문성왕이 되었다. 황제는 대전 뒤에 있는 식건전에 감금되었다.

사계산장에서 받은 서신에는 파사어도 아니고 만주어도 아닌 글자 들이 쓰여 있었다. 주자서는 한참 그것을 보더니 다시 접어서 봉투 안에 넣었다. 온객행이 물었다. “아서 무슨 내용이야? 양주로 돌아 오래?” 주자서는 온객행을 물끄러미 보더니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렸다. 온객행이 엽백의를 만나고 대부분의 그의 인생을 함께 했지만 노야의 입에서 외출을 자제하라는 소리는 처음 들었다. 엽백의는 온객행이 그 말을 듣지 않을 것도 알고 있고, 그가 가르친 무공으로 온객행이 강호에서 위험에 빠질 일도 많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일은 강호만의 일이 아니다. 온객행은 주자서에게 물었다. “아서 왜 태산에 가야 한다고 했어?” 사계산장의 서신을 받은 주자서는 한참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온객행의 질문을 듣지 못했다는 듯 아무것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주자서는 오경이 끝나는 종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기침하여 주지를 찾아 갔다. 온객행은 방을 빠져나가는 인기척에 잠이 깨서 서둘러 옷을 입고 주자서의 뒤를 따라갔다. 방장실로 향하는 주자서의 발걸음은 거침이 없어서 그를 따라가기 위해 온객행은 훌쩍 경공을 썼다. 주자서는 따라온 온객행을 한번 흘끔 보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해가 어스름하게 뜨기 시작한 새벽은 아직 어두웠다. 하지만 방장실 내부에는 등롱이 켜져 있다. 주자서는 조용한 목소리로 공손하게 아침인사를 했다. 주지는 방문을 열고 나와 두사람을 맞이했다. 방장실 내부에는 회주와 처음 보는 노승, 그리고 아미파의 자순사태가 있었다. 주지는 주자서를 기다린 것처럼 그에게 자리를 권했다.

사계산장에서 보내온 서신에는 그들이 양주 일대에 있는 문파에 대한 자료였다. 오랫동안 얼굴을 보았던 문파도 있었고 새로 생긴 문파도 있었다. 하지만 서신에는 태호파와 화산파 그리고 개방의 분타 중에 하나인 복주에 관련된 내용만 있었다.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태호파와 남궁세가의 관계는 대외적인 것과 달리 그다지 좋지 못한 것이어서 태호파는 도성에 직접 자신들의 상품을 납품하고 싶어 했다. 남궁세가는 황산은장을 통해 태호파가 도성으로 진출하는 것을 막았다. 태호파의 재화는 낭야왕에게 있어 사병을 불리는 좋은 수단이 되었을 것이다.

태호파는 화산파를 시켜 합비 일대의 비옥한 땅이 있는 곳의 치안을 어지럽혔다. 남궁세가의 본거지가 있는 황산은 낙양으로 가기 위해 합비를 꼭 거쳐야 했는데 그 지역 일대가 위험하자 어쩔 수 없이 장강을 끼고 형주로 돌아서 갈 수밖에 없었다. 남궁세가의 눈을 가리고 삼백상단이 합비를 통해 낭야왕의 봉지가 있는 기주로 자금을 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치안이 불안한 합비 일대의 농민들을 사병으로 모집하였으면 그 수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낙양성에 낭야왕의 사병이 들어왔다는 것을 알고 있던 주지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사계산장은 이런 정보를 알고 있으면서 왜 말하지 않았을까? 주구전이 숭산으로 올 때 이들은 합비가 아니라 악양을 거쳐서 왔다. 다 알면서 장단에 맞춘 것인지 아니면 다른 속셈이 있는 것인지, 주지는 사계산장 같은 문파가 제일 어려웠다. 속을 알 수 없어 계속 사람을 살피게 만든다. 다행히 지금은 그들과 같은 편이므로 살필 것이 적다. 숭산은 사계산장을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다.

온객행이 주자서와 주지의 말을 듣고 입을 열었다. “태호파가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조용히 눈을 감고 명상하는 것처럼 앉아 있던 자순 사태가 입을 열었다. “하늘에서 칠보가 비처럼 내려도 사람의 욕망은 다 채울 수 없네.”(74) 노승이 입을 열었다. “앵속을 이용하여 사람을 노예처럼 부리는 것은 파사의 방식입니다. 최근 천마교의 분교 중 하나인 독갈이라 불리는 세력이 천마교 내부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자순사태가 말을 이었다. “그들은 익주 건령에 본거지를 두고 사람들을 잡아다 독을 실험한다 합니다. 청성산에서 있었던 일은 그들이 범인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온객행이 자순 사태를 보았다. 자순 사태는 온객행의 얼굴을 빤히 보더니 말했다. “온객행….” 노승 역시 온객행의 얼굴을 보다가 무언가 깨달었는지 자순사태에게 물었다. “견곡주의 양아들 여옥(如玉)에게 아들이 있지 않습니까?” 자순 사태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장명산 상선의 제자여. 그대 혹 견씨가 아니오?” 노승의 입에서 여옥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온객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인사도 하지 않고 방장실을 나갔다. 노승이 그를 붙잡기 위해 뒤따라 나갔지만 방장실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온객행은 ‘독갈(毒蝎)’이라는 이름을 들어 본적이 있다. 갈고리 같은 칼 끝에 전갈의 독을 발라 사람을 해쳤다. 그들의 독술은 중원의 것과는 달라서 암암리에 찾는 이가 많다고 들었다. 게다가 그들은 중원의 말을 쓴다. 만약 채미공자가 독갈의 일원이라면 초무관에서 독으로 사람들을 조종하거나 죽일 수 있었을 것이다. 독갈은 중원에서 멀리 있으니 원망으로 사람들을 해쳤을 리 없다. 누군가가 시킨 것이다. 누가 그들의 독술을 알아보고 그들을 중원으로 끌어들인 것일까? 온객행은 대웅보전의 서쪽에 있는 고루 지붕에 누워 해가 뜨는 것을 보았다.

설법이 끝나자 대웅보전에서 스님들이 쏟아져 나왔다. 주자서도 있다. 소림사에서 입는 회색의 법복이 아니라 하늘하늘한 흰색 무명옷은 눈에 띄었다. 주자서는 대웅보전 주변을 배회하다 지객당으로 향했다. 온객행은 어제 주자서가 태산으로 가겠다고 하던 것이 생각나 고루에서 훌쩍 뛰어내려 주자서의 뒤를 따랐다. 온객행이 지객당에 닿았을 때 주자서는 어젯밤 온객행이 멀리 던져 놓은 봇짐을 들고 나오는 중이었다.

온객행을 발견한 주자서는 잠시 멈칫 하더니 그를 지나 산문으로 향했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 “노야가 외출하지 말라고 했어. 태산에 가겠다면 나에게 이유를 말해.” 주자서가 온객행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그럼 자네도 청성곡의 이야기를 해볼텐가?” 주자서의 입에서 청성곡의 이름이 나오자 온객행은 온몸에서 힘이 쭉 빠지는 것 같았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소매를 붙잡고 바닥에 털썩 주저 앉자 이번엔 주자서가 놀라 온객행에 다가와 물었다. “노온 왜 그러는가?” 온객행은 무얼 말해야 할지 몰라 한참 입을 달싹이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주자서는 아무 말도 없는 온객행을 보다가 소매를 빼고 다시 산문으로 향했다. 온객행은 주자서를 부를까 하다가 감히 그렇게 하지 못했다. 소리를 내면 말이 아니라 울음이 나올 것 같다.

바닥에 주저 앉아 있는 온객행을 발견한 심아는 들고 있던 찬합을 내려놓고 그를 일으켜 객실 안으로 들어갔다. “온공자 무슨 일입니까? 괜찮아요?” 온객행은 심아의 부축을 뿌리치고 제 발로 걸어서 객실에 있는 의자에 가서 앉았다. 심아는 내려놓은 찬합을 가져와 열며 말했다. “아직 요기하지 않았지요? 주방에는 사람이 많아 제가 찬을 좀 챙겨 왔습니다. 그런데 주공자는 어디 갔습니까?” 그리고는 객실안을 두리번거렸다. 온객행은 ‘끙’ 앓는 소리를 낸 후에 심아가 탁상위에 올려 놓은 찬을 집어먹었다.

주자서가 태산으로 간다 하였으니 무공도 없는 몸으로 고생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요기도 하지 않았고 수중에 돈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심아만 옆에서 안절부절 못하였다. 지객당을 나가기도 전에 훌쩍 경공으로 날아오른 온객행의 눈에 이제 산문을 넘은 주자서가 보였다. 훌쩍 뛰어 그의 곁으로 가서 서니 주자서가 몸을 뒤로 빼며 말했다. “이러지 마시오.”

온객행은 양손을 앞으로 들어 흔들면서 말했다. “아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주자서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나를 붙잡으러 온 것이 아니오!” 온객행은 억울하다는 듯이 뒷짐을 지고 서서 말했다. “당신이 길 위에 먼지라면 저는 흐린 물속의 진흙이에요. 당신 마음이 열리지 않는 다면 소첩은 어디에 기대야 할까요?”(75) 주자서가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우린 이제 그런 사이가 아니니 희롱은 그만 두시오.” 온객행이 품속에서 옥패를 꺼내며 말했다. “아직 보름이 지나지 않았으니 대답은 신중히 하시오.” 그리고는 주자서의 하얀 요대를 끌어당겨 옥패를 달았다.


공의성에 닿자 온객행이 생각했던 대로 분위기가 살벌했다. 성을 드나드는 사람도 많지 않았고 성문 먼 곳까지도 병졸이 늘어서 있었다. 온객행은 관도를 통해 태산으로 가는 것은 이미 틀렸다고 생각했다. 관도를 통해 쉬지 않고 걸어도 이레는 걸리는 길을 관도가 아닌 길로 가야 하니 정말 고생이다. 운이 좋으면 주구전을 만날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도성에서부터 시작되는 평야는 태산까지 이어져 있다. 곡우가 지나 모를 키우거나 씨를 뿌리는 사람들이 많으니 눈을 피해 움직이기가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례의 지역에 대해 잘 모르는 주자서를 잘 달래 온객행은 일단 정주로 향했다. 낙양에서 멀어질수록 사병의 숫자가 눈에 띄게 줄었다. 온객행은 낭야왕에게 위나라를 포위해서 조나라를 구하려는 세력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했다.(76) 그들은 부지런히 걸어 다음날 정주에 도착하였다.

정주에도 주둔하고 있는 군병이 많아 온객행과 주자서는 성에 들어갈 수 없었다. 정주는 성밖에도 번화했기 때문에 두 사람은 허름한 객잔에서 하룻밤을 머무른 뒤에 개봉으로 향했다. 주자서는 온객행이 여비를 사용하는 것이 고마웠으나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관도에서 꽤 거리가 있는 작은 길을 걸으면서도 도성으로 향하는 작은 부대 몇 개를 만났다. 온객행은 걸으면서도 흰소리를 멈추지 않았는데 주자서는 질려 하는 기색이 만연하였으나 내색하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쓰는 중이었다. 두사람은 서로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었으나 묻지 않았다. 온객행은 표정 없는 주자서가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밤이 늦어 또 다시 야숙하게 된 두사람은 익숙하게 각자 할 일을 찾아 했다. 온객행은 근처에 있는 마을에 가서 먹을 것과 불씨를 구해왔고, 주자서는 두사람이 잘 수 있는 자리를 찾아 장작을 주웠다. 온객행이 오면 모닥불을 피우고 다가오는 들짐승을 경계하며 쉬는 것이다. 온객행은 얻어온 밀떡을 주자서와 나눠 먹고 근처에 있는 돌에 기대어 하늘을 보았다. 달이 없는 밤하늘은 별이 밝다.

다음날은 아침부터 날이 흐렸다. 비가 쏟아 지기 전에 최대한 많이 이동해 두고 싶었던 온객행은 주자서의 호리낭창한 허리를 안고 나무의 가장 높은 곳을 밟았다. 얼마 가지 않아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점점 굵어지기 시작했다. 숲에서 비를 피할 곳을 찾다가 폐가를 발견했다. 폐가 근처에 있는 밭에는 풀이 무성하다. 사람이 안 산지 오래 되어 객이 많았다. 먼저 온 객을 내쫓을 수는 없어 온객행과 주자서는 처마 끝에 서서 내리는 굵은 빗방울을 구경했다. “오늘은 하루 종일 올 모양인데? 아서.” 온객행이 말했다. “그러네.” 주자서가 답했다.

온객행은 비가 오는 날을 좋아하지 않는다. 비는 잊고 싶은 것들을 다시 상기시켰다. 다들 오래된 일이라고 하지만 온객행에게는 아직도 진행중이다. 노야는 허튼 짓 하지 말라고 했지만 정말로 청성곡 사건의 실체를 아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을까? 온객행은 그럴 수 없다. 기필코 복수하여 청성곡의 묘비가 있는 곳에 그 자의 살가죽을 벗겨 제를 지낼 것이다. 그게 몇이 되었건 신분이 어떻건 온객행은 분이 풀릴 때까지 그렇게 하리라고 마음먹었다.

온객행은 어깨를 잡아오는 손길에 놀라 벌떡 일어났다. 주자서는 당황한듯 온객행을 보며 말했다. “노온 괜찮아? 안색이 좋지 않네.” 온객행은 어색하게 웃으며 주자서의 허리를 안았다. 어깨에 고개를 걸쳐 놓고 말했다. “아서, 나는 비를 무서워해. 오늘 밤은 잠 못 이루는 밤일 것 같아.” 주자서가 웃으며 말했다. “밤이라면 아직 멀었는데 미리 걱정이시오.” 주자서는 온객행의 등에 손을 올려 그를 쓰다듬었다. 뿌리칠 것 같았는데 또 뿌리치지 않는다. 주자서는 이렇게 정말로 그가 위안이 필요할 때는 그를 뿌리치지 않는다.


다음날 개봉에 도착한 온객행과 주자서는 역시 성안에 들어가지는 못했다. 통행패나 성안에 살고 있는 사람의 입증 없이는 들어 갈 수 없었다. 웃긴 것은 개방에 소속된 증표로 허리에 매는 끈을 묶은 거지들은 자유롭게 통행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내리던 비는 오다 그치기를 반복하여 두사람은 흠뻑 젖어 있었다. 내공이 흩어진 주자서는 입술이 파랗게 질려 덜덜 떨기 시작했고 온객행은 야숙에 지쳐 피곤한 상태였다.

성 앞에 있는 차를 파는 노점에 앉아 몸을 녹였다. 어떡하나 생각하는 온객행을 두고 주자서가 벌떡 일어나 사람들 속으로 걸어갔다. 온객행은 당황하여 찻값을 치르는 것도 잊고 주자서를 따라갔다. 노점상이 뒤에서 마구 욕을 해댔다. 사람들 속에서 주구전이 허허허 웃는 얼굴로 걸어 나왔다. 온객행은 자기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주구전은 쫄딱 젖은 주자서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어깨를 쓰다듬었고 온객행을 발견하고는 그에게 다가왔다. “온공자! 온공자도 이렇게 함빡 젖어서는….” 주구전은 온객행에게 마구 욕을 해대던 그 노점상으로 다시 돌아가 따뜻한 차를 주자서 손에 쥐어 주며 말했다. “어찌 여기 있어?” 주자서는 품에 안고 있던 봇짐 안에서 살짝 젖은 서신을 주구전에게 내밀었다. 아마도 사계산장에서 온 서신일 것이다. 주구전은 봉투를 열어 안에 있는 서신을 읽었다. 빗물에 조금 번져 있었지만 읽는 데에는 문제가 없는듯 주구전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자서가 주구전에게 물었다. “조부, 기왕전하께서 등하 하셨습니다.” 주자서의 목소리는 울먹이고 있었다. 기왕의 죽음이 왜 저렇게 서러운 것일까? 주구전은 놀라서 물었다. “낙양에서의 빈례가 기왕전하의 등하란 말이냐?” 주자서는 눈초리에 눈물을 달고 고개를 끄덕였다. 주구전은 손에 들려 있던 찻잔의 차를 마시고 탁상에 올려 놓으며 다시 물었다. “어찌…어찌…기왕전하께서…?” 눈꼬리에 달려 있던 눈물은 결국 흘러 넘쳐서 주자서의 얼굴을 적셨다.

온객행은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주자서의 옆에 앉아 그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아서, 울지마.” 고개를 숙인 주자서의 눈에서 떨어진 물방울은 주자서의 소매를 적셨다. 주구전은 둘이 하는 모습을 보고만 있다가 한숨을 ‘어휴’ 하고 쉰 다음 온객행에게 물었다. “온공자 대체 무슨 일이오?” 온객행이 말했다. “기왕전하는 이미 대렴했어요. 이미 장사(관을 묻음)지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주구전이 탄식하며 말했다. “아니 그런 법도가 어디 있는가?” 온객행은 고개를 끄덕여 주구전의 말에 동의를 표하며 말했다. “주대인께서는 혹 앵속을 아시오?” 주구전은 눈에 띄게 놀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저 반응은 앵속이 무엇인지, 그 앵속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도 다 알고 있는 눈치였다. 대체 이 노인네는 언제부터 알고 있었던 것일까? 주구전은 더 묻지 않고 앉아서 차를 마시며 생각에 잠겼다.

주자서는 소매로 눈물을 닦고는 주구전에게 말했다. “조부, 제가 이름을 찾으려 하면 어찌 해야 합니까?” 주구전은 눈을 뜨지 않은 채로 고개를 젓고 말했다. “신중히 하였느냐? 남의 선을 말할 때는 자랑하듯 하고, 남의 악을 말할 때는 스스로 그 악을 뒤집어쓴 듯이 해야 한다 했다.”(77) 주자서는 주구전의 말을 듣고 또 한참 눈물을 쏟다가 말했다. “저는… 저는 모친과 유교의 덕으로 살지 않기로 약속했습니다.”(49) 주자서의 말에 주구전이 눈을 뜨고 눈썹을 찌푸리며 주자서를 보았다. 그는 금방이라도 주자서와 함께 울 것 같은 표정을 하다가 이내 다시 눈을 감고 마음을 정리하는 것 같았다.


온객행은 두사람이 대화할 수 있도록 요기거리를 사온다는 핑계로 자리를 피했다. 이름을 찾겠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갑자기 뜬금없이 무슨 소리인가 싶다가 온객행은 조왕과 진왕이 일부러 주자서를 괴롭히는 것이 생각났다. 마치 아주 오래 전부터 알던 사람들처럼. 누굴 닮았다고도 했다. 고모님? 진왕의 고모라면 몇 년 전에 사고로 사망한 경무장공주일 것이다. 주자서가 왜 장공주를 닮았을까? 황제의 자식 중에는 기왕을 제외한 서자는 없다.

애초에 황제가 용양군이 아닐까 하는 소문이 날 정도로 황제는 여색을 멀리했다. 황후는 황제가 되기 전에 맞이한 정실이었고, 귀비는 전쟁 중에 얻은 첩이다. 황제로 등극한 후 이미 아들이 셋 있었으므로 후처를 들이지 않았다. 그러니 주자서가 황자일 리는 없다. 하지만 황자 못지 않은 높은 신분일 가능성도 없지는 않았다.

장공주의 아들이라 하던가 아니면 봉지를 하사 받은 군왕의 사생아라 하던가 사마씨의 황족은 어디를 가나 차고 넘치기에. 온객행이 한참을 돌아 다시 찻집으로 돌아왔을 때 주자서는 여전히 울고 있었다. 주구전은 단호한 기색으로 그를 나무라고 있었다. 주자서의 옆으로 가서 역성을 들자 주구전이 ‘하’ 하고 헛웃음을 지었다.

주구전은 찻값을 치르고 개봉성 밖에 있는 낡은 주점에 방을 잡았다. 주거지와 가까이 있어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정겹다. 사람들의 소란스러운 소음에 목소리를 감춘 온객행과 주구전이 대화했다. 온객행은 초무관에서 있었던 일과 엽백의가 ‘독갈’이라는 마교 집단에 대해 알아보러 갔다는 말을 하였다. 주구전은 태산파와 화산파 뒤에 있는 세력이 삼백 상단이며 그 중 조경이라는 자가 가장 의심스럽다는 말을 했다.

그는 진회장과 함께 서국공과 무언가를 찾으러 다닌 이후로 무공이 크게 늘었으며 그를 견제하는 사람들은 모두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다고 했다. 그의 양부, 그의 정인 그리고 신분이 미천한 그의 양친마저. 온객행은 주구전에게 청성곡의 이야기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으나 주구전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본인이 선뜻 청성곡의 이야기를 꺼냈다.

“진회장은 서국공과 헤어진 이후에 악양파는 물론이고 함께 서국공을 따랐던 사람들을 모두 경계했네. 청성곡의 소식을 듣고 바로 가지 못했던 것도 그들 중에 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네. 사계산장도 넉넉치 않은 살림이었기에 내가 대신 가서 청성곡을 살폈지만 이 노인네에게 무슨 재주가 있겠는가 소흥주 한단지에 청성곡 모두의 혼을 부르는 수밖에.”

청성곡을 수습한 이가 주구전이었다. 온객행은 다급하게 주구전에게 물었다. “혹 아무것도 보지 못하셨습니까?” 주구전은 의아 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무엇이 말인가?” 온객행이 물었다. “화살…화살에 맞은 시신이 있었습니까?” 주구전은 놀라며 온객행에게 말했다. “그것이 화살에 맞은 흉터였군. 흉터만 있을 뿐 어떻게 그런 흉터가 났는 지 알 수 없었네, 자네가 화살이라 하니 그런 것 같네.”

온객행이 다시 물었다. “화살이 없었단 말입니까?” 주구전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화살은커녕 날붙이도 없었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시일이 많이 지난 후라 시신의 형태가 온전하지 않았네, 게다가 우기가 지난 후라 날이 더워 부패가 심했네. 토사물에 휩쓸려 죽은 것이 아니라는 말인가?”

관가의 짓이다. 어떤 강호의 문파도 익주 산골짜기에 한달도 안되는 기간 안에 시신을 처리할 수 있는 곳은 없다. 익주에 있는 문파는 대체로 가파른 산에 막혀 서로 자주 왕래하지 않았고 중원에 상관하기를 꺼려했기 때문에 청성곡의 일은 익주에 가장 나중에 알려졌다. 아니면 알려지지 않도록 관가에서 수를 쓴 것이다.

무고의 일을 알고 있는 것은 서국공과 문성왕 사마헌이다. 사마헌이 낭야왕 사마운에게 말했을 수도 있다. 그러니 사마운의 입에서 무고의 열쇠를 찾는 다는 말이 흘러나오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무고를 열고 싶어하는 사람은 태호파 조경이 분명하다.

(74) 법구경 佛陀品 불타품 186

天雨七寶 欲猶無厭 樂少苦多 覺者爲賢
하늘이 칠보를 비처럼 내려도 사람의 욕망은 다 채울 수 없다. 즐거움은 잠깐이요. 괴로움이 많다고 지혜 있는 사람은 깨달아 안다.

(75) 조식 칠애시

君若清路塵 妾若濁水泥, 君懷良不開 賤妾當何依.
당신이 만약 맑은 길 위의 먼지라면 첩은 흐린 물속의 진흙이에요. 당신의 품이 열리지 않는다면 천첩은 어디에 기대야 할까요?

(76) 사기 손자오기열전 囲魏救趙(위위구조) 위나라를 포위해서 조나라를 구하다.

전국시대 위나라는 강대국으로 성장하여 조나라를 쳐들어 간다. 조나라는 제나라에 구원을 요청했고 제나라는 청에 응한다. 위나라와 제나라 조나라는 국경을 마주하는 나라들로 제나라의 병법가 손빈은 조나라를 돕는 대신 조나라 정벌을 위해 출정한 위나라의 수도 안읍을 공격한다. 제나라의 군대는 갑작스러운 공격에 허겁지겁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77) 공자가어 標題句解孔子家語 상편 14 辯政, 정치를 변론함

子曰 勤之愼之, 言人之善 若己有之 言人之惡 若己受之 故君子無所不愼焉
“부지런히 하고 신중히 하라. 남의 선을 말할 경우에는 자기가 그 선을 소유한 듯이 하고 남의 악을 말할 경우에는 자기가 그 악을 뒤집어쓴 듯이 해야 한다. 그러므로 군자는 신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