蛇苺 第9

美人計 | 9. 아름다운 여자를 이용하라.

작은 나룻배에는 온객행과 주자서 그리고 상인 몇 명이 타고 있었다. 선미(船尾) 부근에 있는 의자에 앉아 온객행은 장강(長江)을 보았고 주자서는 배에 탄 사람들을 경계했다. 그러다 주자서는 뱃삯으로 줄 돈이 없다는 것이 생각났다. 배에 타기 전에 확인했어야 하는데 그들의 옷차림을 보고 뱃사공이 확인도 하지 않은 것이다. 주자서가 안절부절못하는 기색을 눈치챈 온객행이 주자서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왜 그러시오?”
주자서가 고개를 돌려 온객행의 귓가에 속삭였다.
“혹 돈을 가지고 계시오?”
온객행이 몸을 세워 주자서를 보고 눈을 굴리더니 소매 춤에 손을 넣었다. 한참 휘적거리더니 작은 염낭을 꺼내 주자서에게 건넸다.

주자서는 염낭을 받아 열어 보았다. 안에는 작은 은정(銀錠)과 금주(金珠)가 들어있다. 주자서는 깜짝 놀라 염낭을 다시 닫아 온객행의 품속에 넣으며 말했다.
“이런 것 말고 동전은 없소? 두 사람이 탔으니 이문(二文; 20푼) 정도면 될 텐데….”
온객행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자 주자서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온객행이 뱃사공을 보고 말했다.
“많이 주면 좋은 것이 아니오?”
주자서가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혼란스러운 시기에 갑자기 돈이 많이 생기면 간자(間者)라는 의심만 사지요.”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동전(銅錢)이라면 동으로 만든 것을 말하는 것이오?”
주자서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온객행이 다시 소매에 손을 넣고 한참 휘적거리더니 백동(白銅)으로 만든 작은 면경을 꺼냈다. 주자서가 미간을 찌푸리며 온객행과 온객행의 소매를 번갈아 보자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부유각에 있는 물건은 대부분 가져올 수 있소.”
주자서가 온객행 손에 있는 백동 면경을 손에 들어보고 그 무게를 가늠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배가 하구에 닿아 선창에 배를 댔다. 사람들은 하나둘 내리면서 뱃사공에게 뱃삯을 치렀다. 주자서와 온객행은 제일 마지막에 내렸다. 온객행이 먼저 내리고 주자서가 뱃사공에게 면경을 내밀며 말했다.
“지금 수중에 돈이 없어 이것으로 뱃삯을 대신할까 하는데 괜찮겠소?”
뱃사공은 주자서가 내민 반질반질한 면경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좋아했다. 주자서가 소매를 들어 인사하자 뱃사공이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온객행이 배를 내리는 주자서의 손을 잡아 주었다.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말했다.
“슬슬 밥을 먹여야 하는데….”
주자서가 온객행을 힐끔 보고 말했다.
“어디 전당(典當)이라도 찾아 일단 돈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물끄러미 보고 말했다.
“그럴 것 없소. 무엇이던 돈에 맞추면 되는 것이오.”
주자서가 온객행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아까 말하지 않았소. 지금은 혼란스러운 시기이니 조심하는 것이 좋습니다.”
주자서가 자신의 허리춤에 달린 패옥을 풀고는 말했다.
“내가 전당에 다녀올 테니….”
온객행이 자신의 소매를 놓는 주자서의 손을 잡고 말했다.
“가 봅시다. 나는 전당에는 가본 적이 없으니 아주 좋은 구경을 하겠군요.”
주자서는 부스스 웃고는 온객행에게 손바닥을 펴서 길을 안내했다.


전당안은 매우 한산했고 전당 안쪽에 맡겨지고 팔려는 물건들이 아주 많았다. 흉년이 길어지는 바람에 귀족이고 평민이고 할 것 없이 사람들이 집에 있는 물건을 팔아서 겨우 끼니를 때우는 것 같다. 주자서는 점원이 있는 곳에 다가가서 손에 들고 있는 옥으로 만든 요패를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말했다.
“요패를 잠시 맡기고 싶은데….”
점원은 주자서와 온객행을 위아래로 보더니 작게 한숨을 쉬고 요패를 들어 올렸다. 티끌 하나 없는 하얀 옥은 보통 때였으면 상등품이다. 하지만 먹을 것이 귀한 요즘은 그렇게 큰돈이 되지 못했다.

점원이 요패를 내려놓고 말했다.
“요즘 이런 물건이 많아서 은 반냥 정도 밖에 쳐 드리지 못합니다.”
주자서가 놀라며 말했다.
“귀한 옥입니다. 제 가격을 주고 산다면 은 열 냥으로도 살 수 없는 물건인데 어찌….”
점원은 작게 혀를 차고 탁자 아래에서 산호와 금으로 만든 요패를 꺼내며 말했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지금은 이런 물건이 많아서 비싸게 쳐 드릴 수 없습니다.”
주자서가 크게 한숨을 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점원은 안쪽으로 들어가 작은 염낭에 돈을 가지고 나왔다. 은 반 냥은 백 문이었기 때문에 염낭이 아주 무거웠다. 주자서는 점원이 있는 자리에서 동전을 모두 세어보고 나서야 전당을 나왔다.

두 사람은 그 돈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사람들에게 물어 파양호의 곶에 있는 배를 고치는 선소(船所)를 찾았다. 선소에는 부서지거나 막 만들어진 배가 여기저기 보였다. 생각한 것만큼 사람이 많지는 않아 주자서는 두리번거리며 사람을 찾았다. 곧 근처에서 사람이 나와 온객행과 주자서를 반겼다. 주자서가 선소의 장인(匠人)에게 물었다.
“놀잇배를 사고 싶은데 당장 탈 수 있는 배가 있습니까?”
장인은 온객행과 주자서를 위아래로 보더니 말했다.
“관가의 허가가 있으십니까?”
주자서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냥 날이 좋아 배를 띄워 풍류를 즐길 것이니 그대가 염려하는 일은 없을 것이오.”
장인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두 사람을 데리고 배를 만드는 곳으로 갔다.

장인이 주자서에게 이런저런 것을 물었고 주자서는 대강 어림잡아 대답했다.
“장인이 물었다. 값은 어떻게 치르시겠습니까?”
주자서가 온객행을 힐끔 보고 말했다.
“금주로 하겠네.”
장인이 놀란 듯 주자서를 돌아보고 말했다.
“관에서 나오신 분이십니까?”
주자서가 머뭇거리자 온객행이 말했다.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주자서가 온객행의 소매를 붙잡고 고개를 흔들었다. 장인이 둘의 모습을 보고 한참 생각하더니 그들을 데리고 선소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갔다. 그곳에는 집채만 한 배가 몇 척 있었는데 장인이 그것들을 보여주며 말했다.
“모두 선금을 받고 만든 배들인데, 주인들이 찾아가지 않는 배입니다. 어차피 찾아가지 못할 테니 골라 보십시오.”
주자서가 장인에게 말했다.
“이렇게 큰 배는 너무 눈에 띄어서….”
주자서가 다시 말했다.
“내실이 있는 돛단배가 좋겠네.”
장인이 손바닥을 펴서 다시 곶으로 두 사람을 안내했다.

돛대를 중심으로 작은 내실이 있는 배는 고기를 잡는 배보다는 작았고, 나룻배 보다는 조금 컸다. 온객행과 주자서가 배에 올라타는 것을 본 장인이 물었다.
“선원이 필요하시면 알아봐 드릴까요?”
온객행이 손을 내젓고 말했다.
“아니오. 괜찮소. 유서. 나는 이 배가 좋은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주자서가 장인을 보고 말했다.
“값을 치르겠소.”
장인이 주자서가 내리는 것을 도와 그를 선소의 외실로 안내했다. 주자서가 온객행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손을 잡자, 주자서가 온객행의 손을 뿌리치고 말했다.
“염낭을 주시오.”
온객행이 작게 ‘하’하고 웃은 뒤에 품속에서 염낭을 꺼내 주자서의 손에 올려 주었다. 주자서는 염낭을 받고 장인과 함께 값을 치르러 갔다.

주자서가 다시 나왔을 때 온객행은 선수(船首)에 앉아 파양호를 보고 있었다. 주자서가 온객행에게 말했다.
“나는 뱃일은 아는 것이 없으니 알아서 하시오.”
온객행이 다시 배에 타려는 주자서의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
“걱정 마시오. 내가 몇 갑자 동안 물 위에 있었던 줄 아시오?”
주자서가 내실로 들어가자 어디서 났는지 포단 두 개와 화로가 있었다. 주자서가 어깨너머로 온객행을 힐끔 보고 말했다.
“소매에서 부유각은 꺼내지 못하는가 보오.”
온객행이 내실을 지나 선미(船尾)로 가며 말했다.
“부유각은 태평호에 매어 두고 싶어서 꺼내지 않는 것이오.”

주자서가 온객행을 보고 물었다.
“서신을 전할 수 있습니까?”
온객행이 키(舵)를 잡고 돛을 향에 ‘후’ 숨을 불며 말했다.
“벌써 아상이 보고 싶소?”
배가 천천히 움직였다. 주자서는 온객행의 말을 무시하고 포단에 앉았다. 온객행이 키를 놓고 일어나 장포를 벗어 주자서에게 주고 말했다.
“아직 한 시진 밖에 자지 못했으니 눈이라도 붙이시오.”
주자서가 온객행의 장포를 받아 들고 온객행을 보며 말했다.
“되도록 사람을 피해 가시오. 다른 배가 있을 때는 도술도 부리지 마시오.”
온객행이 주자서를 쏘아보며 말했다.
“정말 혹이 아니라 상전이네.”
주자서는 온객행을 보고 ‘쯧’하고 혀를 차고는 포단 위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고개를 기댔다.


해가 거의 다 졌을 때 강주(江州)에 닿았다. 온객행은 배를 잠시 멈추고 내실로 들어갔다. 주자서는 내실 벽에 기대어 온객행의 장포에 얼굴을 묻고 잠이 들어 있었다. 온객행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벌써 세 시진이 지났는데….”
온객행이 쪼그리고 앉아 주자서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유서.”
주자서는 온객행의 손길에 어깨를 튀며 놀란 얼굴로 일어났다. 온객행이 말했다.
“강주에 닿았는데 뭘 먹지 않아도 괜찮겠소?”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온객행의 옷에 얼굴을 묻었다. 온객행이 부스스 웃으며 말했다.
“불편하게 이렇게 앉아서 자지 말고 편히 누워 주무시오. 내가 이불을 꺼내주겠소”
주자서가 고개를 들어 장포를 온객행에게 건넸다. 온객행이 장포를 다시 입고 소매에서 얇은 이불을 꺼내 주자서에게 주었다. 그리고 작은 제등을 꺼내 불을 붙여 실내를 밝혔다. 주자서는 이불을 받더니 포단 위에 몸을 웅크리고 다시 잠이 들었다.

온객행은 주변에 배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물 안으로 들어갔다. 장강에는 많은 요괴들이 살고 있는데 검영(黔嬴)은 강주 근처에 살며 장강의 물안개를 피우는 파사(巴蛇)이다. 동정호의 서쪽에 있는 작은 서호의 온객행이 촉룡의 제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검영 덕분이다. 온객행은 오래전부터 검영이 사는 동굴로 들어갔다. 동굴은 누군가 살았던 흔적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온객행은 소매에서 연잎차함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어(蠃魚) 한 마리가 온객행을 발견하고 소매를 들어 인사했다.
“흑망공자.”

온객행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어에게 말했다.
“검영은 어디 가셨소?”
나어가 고개를 조아리고 말했다.
“주인께서는 중원절(中元節)의 일로 청룡이신 구망대선(句芒大仙)께 가셨습니다.”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탁자 위에 놓아둔 차함을 나어에게 건넸다. 나어는 두손으로 공손히 받았다. 온객행이 말했다.
“내가 스승님을 뵈러 가는 길에 잠깐 보러 왔습니다. 혹시라도 찾으시거든 태평호에 있겠다고 전해주겠소?”
나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온객행은 잠깐 검영이 지내는 곳을 둘러보고 나왔다. 청룡은 왜 검영을 굳이 따로 불러서 중원절의 일을 상의하는 것일까? 아니면 검영도 지켜보는 것이 지루해져 천궁으로 승천하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온객행이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을 때 배 근처에 고기잡이배가 보였다. 고기잡이배는 주자서의 배 옆을 조용히 지나 선착장으로 향했다. 온객행은 배가 저 멀리 보이지 않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배에 올랐다. 물을 흩어내고 내실 안으로 들어가니 포단을 바닥에 깔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웅크리고 누워 자는 주자서가 보였다. 온객행은 고상이 했던 말이 생각나서 봇짐 안에 들어 있는 연잎 떡을 꺼내 들고 주자서를 깨웠다.
“유서.”
주자서는 흠칫 놀라며 금방 일어났는데 온객행의 얼굴을 보고 작게 한숨을 쉬고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온객행이 연잎 떡을 주자서에게 내밀었다. 주자서는 떡을 받아 들고 앉아서 눈을 감고 있다가 연잎을 벗겨 떡을 먹었다. 온객행은 대나무 수통을 꺼내 물을 채워 주자서에게 건넸다. 주자서가 수통을 받지 않자 온객행은 수통을 화로에 기대고 소매에서 다구함을 꺼냈다. 찻주전자를 꺼내 물을 올리고 찻잔을 꺼내 화로 옆에 두었다.

주자서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떡을 먹었다. 온객행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유서. 혹시 어디 아픈가?”
주자서가 고개를 흔들고 아직 찻잎도 넣지 않은 찻주전자의 덥힌 물을 찻잔에 따라 마셨다.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다가가 앞섶을 벌리고 주자서가 화살을 맞았던 곳을 보았다. 이제 모두 아물어서 붉은 새살이 올라와 있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장포를 들춰 허벅지를 보려고 하자 주자서가 온객행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
“아픈 것이 아니오. 조금 피로한 것이니 괘념치 마소서.”
온객행이 주자서의 앞섶을 다시 잘 여며주며 말했다.
“아무래도 배를 빌리기를 잘한 것 같소.”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온객행이 찻주전자에 찻잎을 넣고 차가 우려지기를 기다렸다. 주자서가 온객행에게 기대 앉으며 말했다.
“조금 추운 것 같소.”
온객행이 안개가 깔린 장강을 보며 말했다.
“비가 올 것 같소.”
주자서가 고개를 쭉 빼고 바깥을 보며 말했다.
“이곳은 강주입니까?”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자서는 이불을 펼쳐 온객행과 나눠 덥고는 물었다.
“촉룡께서 계신 곳은 얼마나 멉니까?”
온객행이 주자서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말했다.
“종화산…. 북쪽에 있는 천산(天山)에 계시오. 장강을 거슬러 올라가 금사강(金沙江) 발원지인 천산이오”
주자서가 물었다.
“그럼 계속 장강을 따라 가면 되는 것이오?”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자서가 다시 물었다.
“얼마나 걸립니까?”
온객행이 고개를 돌려 장강의 수면을 보고 말했다.
“이레… 정도 걸리지 않을까요? 금사강의 상류는 절벽이 많아 배로 갈 수 없습니다.”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온객행은 안개를 해치고 밤새 배를 움직여 동이 터올 무렵 기춘현(蘄春縣)에 닿았다. 주자서는 배에 타고 난 이후로 계속 잤으면서 밤새 또 몇 시진 잠을 잤다. 온객행은 혹시 죽었나 싶어서 중간중간 그가 숨을 쉬는지 확인했다. 주자서가 선미로 나와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어디쯤 왔소?”
온객행이 키를 놓고 일어나며 말했다.
“형주 기춘이오.”
주자서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내실 벽에 걸린 제등에 불을 후 불어 껐다. 온객행이 배의 난간에 앉아 손을 물에 넣고 휘젓더니 커다란 물고기를 꺼냈다. 주자서가 물고기를 보고 말했다.
“물고기는 원 없이 먹겠습니다.”
온객행이 소매에 팔을 넣고 휘젓더니 작은 나무함을 꺼내 들고 말했다.
“현무께서 보낸 소금도 있으니 많이 드시게.”
온객행이 쪼그리고 앉아 생선의 내장을 손질했다.

손질한 내장을 강물에 버렸는데 사람의 얼굴을 한 물고기 몇 마리가 배 근처로 와서 온객행이 버린 내장을 먹었다. 주자서가 온객행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저…저것은 무엇이오?”
온객행이 소매에서 구리로 만든 냄비를 꺼내 손질한 물고기를 담고 말했다.
“소어(鳋魚)요. 그대는 참으로 요괴에 대해 아는 것이 없소.”
주자서가 선미에 앉아 키를 잡고 앉아 말했다.
“저런 것이 있는 줄도 몰랐소.”
온객행이 소금을 조금 넣고 어디에서 났는지 파 뿌리를 냄비 안에 넣으며 말했다.
“보통 사람 눈에는 잘 보이지 않소.”

주자서가 고개를 돌려 방금까지 소어가 있던 곳을 보고 말했다.
“그럼 난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오?”
온객행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유서. 애초에 사람과 요괴는 그 경계가 아주 모호하오.”
주자서가 온객행을 보고 물었다.
“그대도 사람이었소?”
온객행이 낮게 웃으며 말했다.
“벌써 잊었소? 나는 뱀이오.”
주자서가 ‘아’ 하고 작게 탄식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온객행은 화로 위에 냄비를 올려 두고 주자서가 누워있던 자리에서 포단을 가져와 화로 앞에 두고 앉았다. 주자서도 금방 내실로 들어와 온객행 옆에 앉았다.

둘이 물고기 탕을 거의 다 먹었을 때 누군가 뱃머리에 올랐다. 온객행이 고개를 돌려 뱃머리를 보자 검영을 모시는 나어가 서 있었다. 나어가 말했다.
“주인께서 흑망공자께 드릴 것이 있습니다.”
온객행이 자리에서 일어나 뱃머리로 나갔다. 나어는 품속에서 작은 함을 꺼내 온객행에게 내밀었다. 온객행이 그 함을 받자 나어는 공손하게 인사하고 강물 속으로 ‘풍덩’ 몸을 던졌다. 온객행은 나어가 건넨 함을 한참 보고만 있었다. 주자서가 그릇을 내려놓고 온객행에게 다가가 어깨너머로 온객행이 쥐고 있는 작은 함을 보았다. 온객행은 손을 들어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진주 두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온객행은 곧 울 것 같은 얼굴을 하더니 함을 닫아 품속에 넣고 다시 내실로 들어갔다. 주자서도 따라 들어가 내려 놓았던 그릇을 들고 남은 음식을 먹었다. 소금과 향채(香菜) 몇 개 더 넣은 것 뿐인데 탕은 아주 맛이 좋았다.


하나둘 떨어지던 빗방울이 거세게 기운을 바꾸었다. 돛을 내리고 온객행은 내실에 앉아 배를 움직였다. 나어가 왔다 간 이후로 말수가 급격하게 줄어든 온객행은 멍하니 비가 내리는 강의 수면을 보았다. 주자서는 내실에 앉아 화로를 쬐기도 하고 졸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묻고 싶은 것이 많았으나 눈치가 보여 주자서도 입을 닫고 있었다. 온객행은 뭔가 결심한 듯 주자서를 보고 입을 달싹였는데 그때 눈치 없이 주자서의 뱃속에서 커다란 ‘꼬르륵’ 소리가 났다. 온객행이 부스스 웃으며 말했다.
“밥을 세 번 먹여야 하는데… 자꾸 잊네요. 아상에게 이르지 마세요.”
주자서가 얼굴이 빨개져서 온객행을 보며 말했다.
“아… 아닙니다. 제가 계속 폐만 끼치네요. 그러지 말고 근처에 있는 포구에 선착하면 제가 가서 먹을 것을 좀 사 오겠습니다.”
온객행이 밖을 보고 말했다.
“이제 막 한양(漢陽)을 지나서 악양(岳陽)까지는 큰 포구가 없을 텐데….”

주자서가 품에서 동전이 든 염낭을 꺼내며 말했다.
“혹시 근처에 고기잡이배가 있으면 거기서 사는 것도 방법입니다.”
온객행이 시선을 주자서에게 옮기며 말했다.
“비가 와서 배가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 물건을 실어 나르는 배예요.”
주자서가 대나무 수통의 물을 마시고 말했다.
“하루 이틀은 굶어도 괜찮습니다.”
온객행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군영에서 취급이 별로 좋지 못했는가 봅니다.”
주자서가 고개를 숙이고 대답이 없었다. 온객행이 손을 내젓고 말했다.
“아, 이런. 또 실례를 범했습니다. 용서하세요.”
주자서가 고개를 흔들고 옆에 개어 두었던 이불을 폈다.

온객행이 물었다.
“세 시진 넘게 잤는데도 괜찮습니까? 동면(冬眠)하는 것처럼 자길래 조금 걱정했습니다.”
주자서가 부스스 웃으며 말을 따라 했다.
“동면….”
온객행이 시선을 다시 강물의 수면 위로 옮기고 말했다.
“동정호에 도착하면 혹시 도움을 구할 곳이 있는지 찾아보겠습니다. 구름 마차라도 타면 더 금방 탁음대선께 갈 수 있으니까요.”
주자서가 표정을 구기며 물었다.
“구름 마차요?”
온객행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동정호는 제 고향이니까요.”
주자서가 몸을 웅크리며 말했다.
“동정호는 연꽃이 유명하다 하던데 정말입니까?”
온객행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 제가 살았던 서호(西湖)는 하얀 연꽃으로 유명했어요.”
주자서는 대답 없이 무릎을 끌어안고 고개를 기댔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보며 말했다.
“악양에 도착하면 침상을 살까요?”
주자서의 작은 웃음소리가 조금 들리더니 금방 숨소리가 일정하다. 온객행이 다시 주자서를 보고 생각했다. ‘내상이 있다더니 정말 아픈 건가?’


동정호에 거의 다 도착해서 온객행은 별로 만나고 싶지 않은 요괴를 만났다. 현리(玄螭)는 장강과 동정호가 만나는 지점에 사는 검은 교룡(蛟龍)이다. 스스로 교룡이라 부르고 있다. 사실은 그녀도 온객행과 같은 동정호 출신 파사이다. 그녀는 화려하게 치장하는 것을 좋아하고 사치를 즐겨서 사람들 가까이에 살았다.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았기 때문에 사자형제도 종종 현리에게서 정보를 사고는 했다. 깜빡 조는 사이 커다란 배의 움직임에 휘말린 온객행이 선미로 나가 키를 잡았다. 커다란 배의 갑판에서 현리가 머리를 내밀고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흑망. 흑망. 이렇게 될 때까지 모르다니. 일부러 그런 거야?”
온객행이 작게 혀를 차고 말했다.
“자예(雌霓).”
현리가 ‘호호호’ 웃고는 말했다.
“어머! 그 이름을 기억하는 건 이제 너뿐일걸?”
현리가 선수로 훌쩍 뛰어 올라탔다.

내실을 지나 선미로 오면서 안에 웅크리고 있는 주자서를 보고 온객행을 보며 웃었다.
“그새 새로운 정인을 만든 거야?”
온객행은 작게 혀를 차고 말했다.
“응.”
주자서가 인기척에 부스스 일어나 선미를 보았다. 아름다운 여인이 온객행과 함께 그를 보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주자서가 일어나 소매를 모아 공손히 인사했다. 현리가 피식 웃으며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취향이 변하질 않네.”
온객행이 현리에게 말했다.
“스승님께 가는 길인데 도와줄 텐가?”
주자서를 위아래로 훑어보던 현리가 반색을 하고 온객행을 보며 말했다.
“그래? 나도 탁음대선께 부탁할 일이 있는데….”
온객행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스승님의 붉은 비늘이 가지고 싶은 거라면 그냥 가져가면 된다니까.”
현리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안되지. 안돼. 금모원군께서 나를 그렇게 가르치지 않으셨는걸.”

온객행이 고개를 들어 현리가 타고 있던 배를 보고 말했다.
“그럼 신세를 좀 져볼까?”
현리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 이런 작은 배로 어느 세월에 종화산에 도착하겠어.”
온객행이 주자서 쪽으로 턱짓하며 말했다.
“이건 저쪽 취향이야.”
주자서가 표정을 구기며 온객행을 보았다. 온객행이 손바닥을 펴서 현리를 향하게 하고 말했다.
“이쪽은 현리. 동정호의… 교룡.”
현리가 온객행을 보고 웃었다. 주자서는 얼른 소매를 들어 공수하여 인사했다. 온객행이 주자서 쪽으로 손을 들어 말했다.
“이쪽은 유서. 내 희첩(姬妾).”
공손히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있던 주자서가 고개를 번쩍 들어 온객행을 보았다. 현리가 고개를 꺾어 웃으며 말했다.
“어머. 정말 이름처럼 솜털같이 귀엽네.”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다가가 어깨에 팔을 두르고 말했다.
“우리 유서는 겁이 많고 다정하여 잘 속으니 잘 보살펴 주어야 하네.”
주자서는 당황한 얼굴로 온객행을 보다가 점점 얼굴이 빨개졌다.

현리가 웃으며 둘에게 손가락질하고 말했다.
“그래. 내가 잘 보살펴 주지. 둘 다.”
그리고 다시 훌쩍 배 위로 올라갔다. 온객행은 배 안에 있는 물건을 정리하고 선수로 나갔다. 멀뚱히 서 있는 주자서의 팔을 붙잡아 허리를 안고 훌쩍 커다란 배 위로 올라갔다. 갑자기 지면에서 멀어진 주자서가 온객행의 팔을 꼭 붙잡았다. 갑판 위에 누각에 있는 평상에 앉아 현리가 두사람을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나의 편연주(便姸舟)에.”
온객행이 주자서를 놔주고 일부러 크게 소매를 펄럭이며 인사했다.
“현리낭자께서 환대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주자서도 일단 장단을 맞추기 위해 허리를 깊게 숙여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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