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蟬脫殼 | 12. 매미가 허물을 벗다.
주자서는 객실로 돌아가 의자에 앉아 상황을 정리해 보았다. 형님께서도 모친께서도 기산에서 살았던 때의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은 아니었다. 주자서의 기억에도 남은 것이 별로 없다. 다만 기산에 살 때는 형편이 좋아 밥 굶는 일은 없었던 것 같다. 주자서는 고초를 겪고 계실 것이 뻔한 모친을 생각하자 한숨이 나왔다. 그러다 자신을 유서라고 부르는 또 다른 모친이 생각나 품속에서 고상이 주었던 꽃 비녀를 꺼내 보았다. 작은 붉은 구슬을 모아 만든 이 비녀는 꽃이라고 하기 보다는 열매 같았지만 고상처럼 작고 귀여웠다. ‘보통 모친을 표현하는 말로 작고 귀엽다는 말을 하지는 않겠지만….’ 그러다 주자서는 낙읍에 계신 모친을 기억할 만한 물건이 없다는 것이 슬퍼졌다.
“비록 시들어 버린다 해도 어찌 속을 상하겠는가? 거칠어진 꽃향기와 더러워진 꽃잎이 서러워서지.” (3)
모친께서 좋아하던 구절이다. 음을 붙여 노래하시기도 하고 가끔 금(琴)을 타시기도 했다. 금을 타는 것을 좋아하셨는데 그것도 형편이 여의치 못해 금을 팔아버려서 이제는 희미한 기억 속에만 남아있다. ‘모친께서 그 노래를 부르실 때마다 시들지 않았다고 거칠어지지도 더럽지도 않다고 말씀드려야 하는데….’ 이제 주자서가 없으니 누가 모친을 위로해 드릴까? 주자서는 울컥 치미는 그리움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온객행이 객실 안으로 들어와 주자서가 앉아 있는 의자 옆에 앉고 말했다.
“주공자. 시간이 늦었는데 어서 잠자리에 드시오.”
주자서는 온객행이 자신을 챙기는 것이 꼭 고상 같아서 기꺼우면서도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주자서가 온객행을 보고 부스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온객행은 자연스럽게 일어난 주자서의 동다회를 풀고 장포를 받아 옷걸이에 걸었다. 내의 차림의 주자서가 신발을 벗고 침상 위로 올라갔다. 온객행이 이불을 펴서 주자서에게 덮어주었다. 주자서가 이불을 거절하며 말했다.
“날이 덥습니다.”
온객행이 다시 이불을 끌어 덮어주며 말했다.
“잊었는가? 따뜻하게 재워야 한다 했네.”
주자서가 온객행을 빤히 보고 물었다.
“온공자께서는 안 주무십니까?”
온객행이 얼굴을 붉히고 주자서의 시선을 피하며 물었다.
“그… 그건 무슨 뜻인가?”
주자서가 미간을 찌푸리고 온객행을 보다가 벌떡 일어나 온객행을 밀어내며 말했다.
“아니! 아니오. 그런 뜻이 아니라….”
온객행이 침상에 걸터앉아 주자서의 몸에 기대며 말했다.
“희첩의 일을 하겠다는….”
주자서가 침상 안쪽으로 몸을 옮기며 온객행의 말을 끊었다.
“아니오! 태평호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주무시는 것을 보지 못해서 물은 것입니다.”
온객행이 주자서와 시선을 맞추고 말했다.
“나는 아주 덥거나 춥지 않으면 잠이 잘 오지 않아서….”
주자서가 온객행을 빤히 보며 말했다.
“그… 그날은 나를 안고 주무시지 않았소?”
그리고는 얼굴이 붉어져 고개를 숙였다. 온객행은 그 모습이 귀여워서 몸을 더 붙여 어깨를 감싸 안고 말했다.
“사람의 온기가 좋아서 그랬소.”
주자서가 자신의 어깨를 감싸 팔에 닿은 손을 만지며 말했다.
“정말 피부가 서늘합니다.”
고생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매끈하고 고운 손이다. 주자서는 이런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놈에게 어째서 힘으로 이길 수 없는지 한참 고민하며 손을 쓸었다. 검을 잡는 손도 아니고, 활을 잡는 손도 아니고 그렇다고 글을 쓰는 손도 아니다.
온객행은 주자서에게 잡힌 손으로 주자서의 손을 잡고 부스스 웃었다. ‘정말 귀엽다. 아서는 어땠더라…?’ 두사람은 침상에 앉아 서로에게 기대서 손을 만지작댔다. 온객행은 주자서가 하는 행동이 귀여워서 주자서는 온객행의 손을 관찰한다고 그렇게 했다. 서늘한 온객행의 체온에 주자서는 졸음이 쏟아졌다. 태평호에서의 호사스러운 생활 덕에 며칠 걸었다고 벌써 피곤했다. 곧 주자서의 체중이 온객행에게 기대오더니 주자서의 고개가 온객행의 어깨에 툭 닿았다.
온객행은 웃음이 나와서 낮게 웃고 주자서를 침상에 잘 눕혔다. 온객행은 편연주에 있는 동안은 꼭 하루에 세번 밥을 먹이고, 적어도 두 시진은 따뜻한 곳에 재우겠다고 생각했다. 그것 말고 또 고상이 뭐라고 말했던 것 같은데 잘 기억나지 않았다. ‘아! 사나흘에 한번은 씻겨줘야 한다고….’ 온객행이 주자서의 목덜미 있는 쪽에 고개를 묻고 숨을 들이켰다. 사람의 살내가 난다. 요괴에게 있어 맛있는 냄새라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온객행은 알 수 없었다.
온객행은 자리에서 일어나 객실을 나왔다. 객실 밖에서 속닥이고 있는 망상 몇을 쫓아내고 현리의 객실을 찾았다. 객실 앞에 서서 온객행이 말했다.
“현리. 흑망이 부탁이 있어서 왔네.”
한동안 조용하다가 장지문이 벌컥 열리고 현리가 나왔다. 현리는 온객행을 보더니 뒤로 물러나 그에게 들어오라고 고갯짓했다. 온객행이 장지문을 닫고 객실 안으로 들어오며 물었다.
“사람은 어떻게 씻기지?”
현리가 ‘허’하고 헛웃음 짓고 온객행에게 자리를 권했다. 온객행은 자리에 앉아 객실 안을 보았다. 늘어져 있던 옷들을 모두 정리했는지 내부가 깔끔했다. 온객행이 병풍 대신 화려하게 수놓은 장포가 걸린 옷걸이를 보고 말했다.
“우리 유서도 저런 것을 입히면 좋아할까?”
현리가 온객행의 어깨를 손으로 두드리며 말했다.
“희첩으로 들였으니 여인의 옷을 입히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온객행이 자리에서 일어나 옷걸이에 걸려 있는 옷을 만지며 물었다.
“이것은 여인의 옷이야?”
온객행은 팔을 들어 자기가 입고 있는 소매를 들어 현리에게 보여주며 물었다.
“혹 내가 입은 옷도 여인이 입은 옷 같은가?”
현리가 온객행을 보고 웃으며 물었다.
“갑자기 그것은 왜 묻는 것인가? 여태 잘 입어 놓고.”
온객행이 다시 자리에 앉아 현리를 보고 말했다.
“요즘 사내들은 뭘 입나? 사내 옷은 가진 것이 없나?”
현리는 자신의 모습을 치장하려고 하는 온객행이 재미있어서 장단을 맞춰 주었다.
“많지는 않지만 없지도 않지.”
현리는 장지문을 열어 객실 밖으로 손짓했다. 온객행이 객실을 나와 현리에게 말했다.
“요즘은 여인과 사내가 입는 옷이 다른가?”
현리가 소매로 입을 가리고 ‘호호호’ 웃으며 말했다.
“다르지. 많이 다르지.”
그리고 옷감을 보관하는 화물칸으로 향했다. 온객행은 계단을 내려가기 전에 주자서가 있는 객실 쪽을 힐끔 보았다.
주자서는 더워서 잠이 깼다. 객실 안에는 평상 뒤쪽에 있는 작은 창호 문이 전부였기 때문에 주자서는 이불을 걷고 일어나 평상으로 가서 누웠다. 갑판 위로 올라가서 강바람을 좀 맞으면 좋을 것 같은데 온객행에게 들었던 망상의 이야기가 생각나서 객실 밖으로 나가는 것이 조금 두려웠다. 온객행은 어디에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객실 밖에서 소리가 나면 흠칫 놀라서 깨기를 반복하자 잠이 오지 않았다. 온객행이라도 있으면 갑판에 나가 보자고 할 텐데.
주자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손바닥으로 얼굴을 부쳤다. 그러다 일어나서 창호 문이 있는 쪽에 걸터앉아 밖을 보았다. 비가 오면 조금 시원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끈적한 바람이 들어와 몸에 들러붙었다. 주자서는 차라리 강물 속에 있는 편이 시원하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바닥이 보이지 않는 시커먼 강물이 두려워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래도 조금 시원한 강바람에 주자서는 창호 문에 기대어 눈을 붙였다. 객실의 장지문을 벌컥 여는 소리에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주자서의 몸이 창호 문밖으로 기운 것은 주자서가 설핏 잠이 들었던 탓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 ?’ 하는 사이에 몸이 뒤로 휙 넘어가 창호 문밖으로 떨어졌다. 뭘 잡을 새도 없이 주자서의 몸이 강물 속으로 ‘풍덩’ 빠졌다.
온객행은 주자서가 창호 문밖으로 몸을 던지는 것을 보고 덜컥 가슴이 내려앉았다. 재빨리 창호 문으로 다가가서 강물로 훌쩍 뛰어 들어갔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온기를 금방 찾아 허우적대는 주자서의 허리를 잡아챘다. 주자서는 놀랐는지 온객행을 밀어내다가 물 밖으로 머리가 나오자 숨을 크게 헐떡이며 온객행을 보았다. 자신을 잡은 것이 온객행이라는 것을 알아본 주자서가 온객행의 목에 손을 둘러 걸고 온객행의 목덜미에 밭은 숨을 몰아쉬었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몸을 안아서 갑판 위로 올라왔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껴안고 말했다.
“유서. 왜 그랬어? 내가 같이 있어 주겠다고 했잖아.”
주자서가 숨을 고르고 뭔가 말하려다 작게 기침을 했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목덜미에 얼굴을 비비며 말했다.
“유서. 안돼. 가지 마.”
주자서가 기침을 다하고 온객행의 어깨에 손을 올려 그를 밀어내며 말했다.
“놀라서… 놀라서 빠진 것이오. 내가 어디를 간다는 말이오?”
온객행이 몸을 떼고 주자서의 몸을 여기저기 살펴보며 말했다.
“어디 다친 곳은 없는가? 고상이 유서는 수영을 못한다고 했는데….”
주자서가 온객행의 손길을 물리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옷이며 머리가 물에 젖어 꼴이 엉망이었다. 젖은 옷을 입고 있어서 조금 덜 더운 것 같기도 했다. 온객행은 무심결에 주자서의 옷에 묻은 물기를 흩어주려고 하다가 물에 젖어 그의 속살이 다 비치는 내의를 보고 정욕이 일었다. 가느다란 몸을 비추는 젖은 옷이 야살스러워 온객행이 주자서를 빤히 보며 얼굴을 붉혔다. 주자서는 아는지 모르는지 소맷자락과 옷자락을 들어 물기를 짰다. 옷자락이 들리는 곳의 주자서의 맨 살이 하얗다. 온객행은 자기도 모르게 ‘꿀꺽’하고 침을 삼켰다. 주자서가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너무 더워서 강물에 들어가면 좀 시원할까 하였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차라리 옷을 벗고 있던지 해야지….”
그리고는 앞섶의 옷고름을 풀려는 것을 온객행이 주자서의 손을 덥석 잡아서 막았다.
“유서! 이… 이곳에서는 좀….”
주자서가 고개를 들어 빨갛게 달아오른 온객행의 얼굴을 보았다. 그제야 온객행의 흥분한 기색을 눈치챈 주자서가 불에 덴 듯 온객행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무슨!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오?”
온객행이 조금은 아쉬운 듯한 눈치로 주자서의 물기를 흩고 자신이 입고 있던 장포를 주자서에게 둘러주며 말했다.
“일단 객실로 돌아가서….”
주자서는 자신에게 장포를 둘러주는 온객행의 눈에 흰자위가 없는 것을 보았다. 주자서가 손을 들어 온객행의 뺨에 붙이고 얼굴을 가까이 보며 말했다.
“온공자?”
온객행은 자신의 뺨에 올려진 손의 온기가 좋아서 눈을 감았다 뜨고 주자서를 보았다. 온객행의 눈을 올곧게 바라보는 그 시선이 좋아서 온객행은 주자서를 당겨 안고 입을 맞췄다. 주자서가 고개를 돌리려고 하기에 손을 들어 그의 턱을 쥐었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양손을 한손으로 쥐어 잡고 입술을 핥고 입안에서 뜨거운 살덩이를 찾아 핥고 빨았다. ‘맛있어. 이 치를 씹어 먹으면 맛있을까?’ 같은 생각하며 그의 입안을 희롱했다.
주자서는 온객행에게 잡힌 손을 빼려고 손목을 비틀었다. 자신에게 붙어오는 온객행의 다리를 발로 차며 온객행이 밀어붙이는 힘에 밀리다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온객행은 멈추지 않고 기다란 혀로 주자서의 입안을 구석구석 핥았다. 주자서는 점점 숨이 차서 몸에 힘이 빠졌다. 주자서가 밀어내는 것을 멈추고 몸이 축 늘어지자 온객행은 아쉽다는 듯 주자서를 놓아주었다. 온객행은 팔을 둘러 그를 껴안았다. 주자서는 온객행의 손을 뿌리치려고 했지만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주자서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오… 온객행!”
온객행은 주자서가 부르는 이름이 좋아서 부스스 웃고 대답했다.
“응.”
주자서는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왔다. 눈물이 많고 겁이 많아서 싫다더니 어쩌면 요괴들은 이런 음란한 행동을 아무나하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주자서가 고개를 숙이고 숨을 고르자 온객행이 주자서의 목덜미에 입술을 붙였다. 주자서가 몸을 떼고 팔을 들어 온객행의 얼굴을 밀며 말했다.
“그… 그만!”
온객행이 낮게 웃으며 주자서의 손목을 잡고 말했다.
“지금 내 것이라고 표식을 하는 중이니 조금 참아 주시오.”
주자서는 정말 무언가를 참아내듯이 몸을 굳히고 눈을 꼭 감았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목덜미를 핥고 빨다가 이를 세워서 ‘앙’ 물었다. 주자서가 펄쩍 어깨를 튀며 ‘아!’ 신음했다. 온객행은 또 웃음이 나와서 주자서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웃었다. 주자서가 작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사람은 먹지 않는다더니 어찌….”
온객행이 주자서의 어깨에 이마를 기대고 조금 더 웃은 뒤에 답했다.
“그대는 맛있을 것 같아서.”
주자서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온객행이 고개를 들고 주자서를 마주 보며 말했다.
“그래도 너무 말랐군. 살을 찌워서 먹어야 하겠어.”
그리고는 주자서의 팔이며 몸을 이리저리 만져보았다.
주자서가 온객행의 손을 피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대체 뭘 하는 건지….”
주자서가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희첩의 일은 할 마음이 없습니다. 애초에 나는 여인이….”
온객행이 주자서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나도 알고 있네. 그대가 여인이었으면 희첩으로 들이지도 않았어.”
주자서가 고개를 휙 돌려 온객행을 보았다. 주자서가 방금 온객행이 목덜미에 깨문 자국을 손으로 문지르며 물었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요?”
온객행이 주자서의 등허리에 손을 얹고 그를 객실로 안내하며 말했다.
“흠.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사내를 좋아한다고?”
주자서가 자리에서 멈춰 온객행을 보고 물었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요?”
온객행이 귓속말을 하듯 주자서에게 얼굴을 붙이고 귓가에 ‘후’하고 바람을 불어넣었다.
주자서가 질색을 하며 온객행에게서 한발짝 떨어져서 말했다.
“무슨 뜻이오? 나를 희롱하겠다는 뜻이오?”
온객행이 다시 주자서에게 몸을 붙여 그를 객실로 이끌며 말했다.
“그대가 말하지 않았소? 희롱은 가서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 하라고.”
주자서가 표정을 구기며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내가 온공자를 좋아합니까?”
온객행이 눈썹을 늘어뜨리고 되물었다.
“그럼 싫은가?”
마침 갑판 위로 올라가는 망상이 온객행을 향해 인사했다. 주자서는 얼른 온객행 옆으로 가서 그의 소매를 잡고 몸을 붙였다. 온객행이 웃으며 주자서의 귓가에 속삭였다.
“싫은가?”
주자서는 뺨을 빨갛게 물들이더니 입을 달싹였다. 강물 위로 비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객실로 데려가며 말했다.
“아직 세 시진 동안 잠자지 않았으니 어서 가서 더 자게.”
주자서가 객실 앞에 있는 망상을 보고 온객행의 팔을 잡고 말했다.
“나는 희첩의 일은 하지 않을 것이오.”
온객행이 작게 코웃음 치고 객실 앞에 있는 망상에게 물러가라고 명령했다.
객실로 들어와 주자서는 온객행과 거리를 벌려 평상으로 갔다. 온객행은 평상 뒤에 열려 있는 주자서가 빠졌던 창호 문을 닫고 주자서의 팔을 잡아 그를 다시 침상 위에 올려놓고 말했다.
“유서. 아! 아니, 주공자.”
주자서가 자리에 누워 온객행을 올려보며 말했다.
“그냥 편한 데로 부르시오.”
온객행이 주자서를 마주 보고 웃으며 말했다.
“그럼 온부인이라고 부를까?”
주자서는 온객행이 덮어준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쓰고 등을 돌렸다. 온객행이 작게 웃고 말했다.
“다시 비가 오기 시작했으니 좀 더 자게. 아마 이 비는 오강(烏江)까지 우릴 따라올 모양이야.”
주자서에게 대답이 없다.
온객행이 침상에 걸터앉고 말했다.
“혹시 무서운 것이면….”
주자서가 이불을 내려서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지금 그대가 제일 무섭소.”
온객행이 주자서의 몸 위에 기대며 말했다.
“내가 무엇을 할 줄 알고 무섭다는 것이오?”
주자서가 침상 안쪽으로 몸을 옮기며 이불을 다시 뒤집어썼다. 온객행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편히 주무시오. 아무도 이 방으로 오지 못할 테니.”
주자서가 이불을 내려 어깨너머로 온객행을 보고 물었다.
“그 ‘아무도’는 그대도 포함이오?”
온객행은 낮게 웃으며 고개를 흔들고 몸을 돌려 탁자 위에 올려놓은 함을 보았다. 현리가 온객행과 그의 희첩을 위해 화물칸에서 한참 찾은 옷들이다.
현리는 온객행의 덩치를 보고 불평했다. 몸이 크면 옷감이 많이 들어간다고 한참 생색을 내더니 무명과 아마포로 만든 천을 꺼내 보여주었다. 여름에 입는 옷이라며 한참 자랑하던 현리가 엷은 쪽빛의 장포를 온객행에게 대보더니 말했다.
“이제 그 시커먼 옷 좀 그만 입고 좀 산뜻하게 입어보게.”
온객행이 자신의 소매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검은 옷은 고급품이 아닌가?”
현리가 코웃음 치고 말했다.
“그렇네. 너도 의외로 사치를 좋아했었지?”
온객행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사치?”
현리가 온객행의 머리 위에 올려진 은으로 만든 관을 보고 말했다.
“정말 너무 구식이다.”
온객행이 표정을 구기며 현리의 손을 뿌리쳤다. 현리는 망상을 불러 꺼낸 옷감으로 옷을 짓게 했다. 이리저리 대보고 맞을 것 같은 비단옷 몇 개와 머리 장식이 들은 함도 건네주었다.
망상 하나가 다가와 온객행의 몸에 줄자를 대고 이리저리 재 보았다. 현리가 온객행에게 말했다.
“너의 애첩은 어떡할까?”
온객행이 손에 들린 함을 옆에 있는 탁자 위에 올려놓고 팔을 앞으로 내밀어 앞에 있는 사람을 안는 것처럼 하고 말했다.
“이 정도였던 것 같은데?”
현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냥 네 옷 입혀.”
온객행이 팔을 내리고 현리에게 받은 함을 들고 말했다.
“그는 조금 작아.”
현리가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그는 사람 치고 크네.”
온객행이 현리를 보고 놀란 듯이 말했다.
“그가 크다고?”
현리가 온객행을 화물칸 밖으로 안내하며 말했다.
“그래. 나보다 다섯 치(寸)는 큰 것 같던데.”
온객행이 갸우뚱하며 함을 이리저리 들고 말했다.
“그런가? 그는 이렇게 한 품에….”
현리가 온객행을 올려보며 좀 질렸다는 기색으로 말했다.
“온객행. 정말로 그 사람을 좋아하려고?”
온객행이 현리를 보고 말했다.
“왜? 먼저 다가가는 것도 방법이라며.”
현리가 온객행 얼굴을 빤히 보다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겨우 한 갑자인데 괜찮겠어?”
온객행이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리고 말했다.
“그러네. 한 갑자. 한 갑자는 정말 짧다.”
온객행은 현리에게서 받아온 옷을 객실 안에 있는 함에 정리하고 옷걸이에 옷을 몇 개 걸어 놓았다. 현리가 그의 몸에 대어 보았던 엷은 쪽빛 장포도 걸었다. 온객행은 밝은 색의 옷을 입어 본 적도 없고, 더워서 아마포로 만든 천으로 만든 옷을 입어 본 적도 없다. 까슬까슬하고 뻣뻣하다. 금세 구겨지는 것이 평소에 입던 옷감과는 확실히 다르다. 온객행은 낯설어서 조금 망설이다가 옷을 갈아입는 것을 그만두었다.
요괴가 입는 옷은 보통 요괴의 본래 모습과 비슷한 모습으로 변하기 때문에 검은색이 섞인 색은 어차피 어둡고 칙칙하다는 소리밖에 들을 수 없다. 온객행도 현리처럼 한때 모습을 치장하는 것을 즐겼었는데 그때 어떤 이유로 치장하는 것을 멈추었는지 잊었다. 너무 까마득해서 그랬었나 싶을 정도다. 온객행은 현리에게 받은 머리 장식이 들은 함을 열어 구경하다가 밖에서 나는 기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온객행이 다가가 장지문을 열자 망상이 소반에 음식을 가지고 서 있었다. 온객행이 망상에게서 소반을 받아 들고 말했다.
“고맙습니다. 시중은 필요 없으니 가서 일 보십시오.”
망상은 힐끔 객실 안을 보다가 곧 소매를 들어 인사했다. 온객행은 선반을 탁상 위에 올려놓고 얼른 가서 장지문을 닫았다.
침상에 누워 있는 주자서가 훤히 보이는 것이 싫어서 온객행은 평상 뒤에 있던 병풍을 침상 앞에 세워 놓았다. 온객행이 병풍을 옮기는 소리에 주자서가 몸을 뒤척였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불렀다.
“유서. 아니 주공자. 일어나서 요기하세요.”
온객행이 마음에 드는 위치에 병풍을 세워놓고 침상에 걸터앉아 주자서의 어깨를 잡고 가볍게 흔들었다.
“주공자. 어서 일어나세요. 세 번 밥을 먹어야지요.”
주자서가 어깨에 올려진 손을 치우기 위해 손을 들었다. 주자서의 손목이 빨갛게 쓸려 있었다. 온객행이 놀라서 주자서의 손목을 잡고 작게 탄식했다.
“아! 어찌?”
그러다 갑판 위에서 주자서가 온객행을 뿌리치려고 몸부림치던 것이 생각났다. 주자서는 잡힌 손목이 불편한지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더니 돌아 누워 온객행을 보았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손목을 붙들고 울상이 되어있다. 주자서가 놀라서 물었다.
“온공자?”
주자서가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온객행은 반대쪽 손목도 손에 잡고 말했다.
“아… 미안… 미안하네.”
주자서는 그제야 자기 손목이 쓸린 것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걱정 마시오.”
온객행이 주자서의 손을 놓아주고 말했다.
“나… 나 때문에….”
주자서가 온객행이 놓는 손을 다시 잡고 말했다.
“온공자.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오. 그대는 내가 화살에 맞아 사경을 헤매는 것도 보지 않았소?”
온객행이 눈꼬리에 눈물을 달고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사람은 정말… 사람은 너무 쉽게 죽어.”
주자서가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아직 죽지 않았으니 그만하시오.”
그리고 손을 들어 흐르지 않은 온객행의 눈가를 쓸었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위로가 기꺼워 또 그를 와락 안아버렸다. 주자서와 함께 있으면 온객행은 종종 아니 꽤 자주 그를 품에 안고 싶어진다. 아무도 볼 수 없게. 온객행 혼자서만 보고 만질 수 있게.
주자서는 온객행의 등에 손을 올려 토닥이며 말했다.
“나에게 눈물이 많다더니….”
그리고 피식 웃었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놓아주고 주자서의 손을 다시 잡고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의 눈은 칠흑같이 새카맣다. 온객행이 ‘후’하고 숨을 불어넣자 주자서의 손에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붉은 자국이 사라졌다. 주자서가 온객행을 보고 작게 웃으며 말했다.
“고작 이런 일에 영력을 쓰셔도 괜찮겠습니까?”
온객행이 주자서를 마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아상 보다야 내 영력이 더 많으니 걱정 마시오.”
주자서가 온객행의 손에서 손을 빼고 말했다.
“그러니 다음부터… 아니, 다시는 그러지 마시오.”
온객행이 주자서가 있던 손이 아쉬워서 손바닥을 접었다 펴며 말했다.
“무엇을 말이오?”
그러다 왜 주자서의 손목에 그런 자국이 남았는지 떠올랐다. 온객행이 고개를 들어 주자서를 보자 주자서의 얼굴과 목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온객행은 무의식에 주자서의 목덜미로 손을 뻗어 어제 자기가 물었던 자국을 문질렀다. 빨갛게 물든 잇자국도 지워버릴까 하다가 그냥 두었다. 주자서는 서늘한 온객행의 손이 목덜미에 닿자 흠칫 놀라며 고개를 돌려 온객행을 마주 보았다. 온객행의 눈은 칠흑같이 새카맣다.
(3) 굴원 이소(離騷) 어려움을 만나다
비록 시들어 버린다 해도 어찌 속을 상하겠는가?
거칠어진 꽃향기와 더러워진 꽃잎이 서러워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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