借尸還魂 | 11. 죽은 영혼이 몸을 빌어 부활하다.
주자서는 다음 날 아침까지 눈을 뜨지 못했다. 현리가 맥을 짚을 줄 아는 망상(罔象)을 시켜 맥을 짚어 보았지만 딱히 아픈 것도 아니었다. 온객행은 안절부절못하며 현리를 닦달했다. 현리는 표정을 구기고 온객행을 보며 말했다.
“대체 왜 이렇게 법석을 떠는 거야? 누가 보면 정말 애첩이라도 되는 줄 알겠네.”
온객행이 주자서를 보던 시선을 돌려 현리를 쏘아보며 말했다.
“무슨 뜻인가?”
현리가 부루퉁한 얼굴로 주자서의 가슴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이 아이는 너의 그 하얀 연꽃보다는 강한 것 같으니 걱정 마시게.”
온객행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객실을 나가 버렸다.
주자서는 아침나절이 거의 다 지난 오시 즈음에 눈을 떴다. 목이 말라 자리에서 일어나 물을 찾았다. 객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주자서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찻주전자를 찾았다. 작게 한숨을 쉬고 객실의 장지문을 향하는데 곧 온객행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주자서가 온객행에게 뭔가 말하려고 입을 열었다. 온객행은 주자서에게 성큼 다가가 다짜고짜 와락 껴안았다. 당황한 주자서가 온객행의 어깨를 밀며 말했다.
“이게… 이게 무슨 짓이오?”
온객행이 주자서의 어깨에 고개를 묻고 말했다.
“유서. 정말 죽은 줄 알았어.”
주자서는 눈을 굴리며 말했다.
“그리 쉽게 죽지 않소.”
온객행이 고개를 흔들고 말했다.
“아니야. 사람은 너무 쉽게 죽어.”
주자서가 한숨을 쉬고 팔을 들어 온객행의 등을 쓸며 말했다.
“한 갑자는 살아 보려고 노력해보겠습니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놓아주고 얼굴을 마주 보며 말했다.
“한 갑자는 너무 짧다.”
온객행의 얼굴이 너무 울상이라 주자서는 말을 잇지 못했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의자에 앉히고 화로에 물 주전자를 올리고 말했다.
“앉아 있게. 밖에 비가 와서 날이 추우니 옷을 입는 것이 좋겠네.”
주자서가 자신이 입은 내의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옷을 찾았다. 온객행이 침상 옆에 있는 옷걸이에서 장포를 꺼내 들었다. 주자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온객행이 해주는 시중을 받았다. 소매에 팔을 끼우고 앞섶을 교차시켜 요대를 둘렀다. 온객행이 동다회를 가지고 와 묶어주며 말했다.
“유서. 정말 내 희첩이 될 생각은 없어?”
주자서가 한참 온객행이 끈을 묶는 것을 보다가 한발짝 뒤로 물러 서며 말했다. 주자서는 고개를 숙이고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리듯 말했다.
“무슨 뜻이오? 나는 겁이 많아서 싫다고 하지 않았소.”
온객행이 빨개진 주자서의 얼굴을 보고 말했다.
“겁이 많으면 달래주면 될 일이고. 나는 괜찮소. 조금 귀여울지도.”
온객행의 말에 주자서가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그리고 온객행이 주자서를 보고 웃었다.
주자서는 얼굴을 구기며 고개를 흔들었다. 온객행이 부루퉁한 표정을 짖고 물었다.
“그럼… 현리의 희첩이 되겠소?”
온객행은 주자서의 옷 앞섶을 쓸어 정리해주고 그를 의자에 앉혔다. 막 끓은 물을 찻주전자에 옮겨 담고 온객행이 말했다.
“일단 누군가의 희첩이 되면….”
주자서가 고개를 흔들고 온객행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그냥 호칭이 희첩이 되는 것이오? 아니면… 아니면….”
온객행이 주자서의 손에 찻잔을 들려주고 찻주전자를 들고 말했다.
“아니면?”
주자서는 다시 얼굴이 새빨개져서 말을 더듬었다.
“그… 그… 희첩의 일도 해야 하는 것이오?”
온객행이 주자서의 찻잔에 차를 따르며 말했다.
“희첩의 일? 희첩의 일이 뭐지?”
주자서가 찻잔으로 입을 축이고 입을 달싹일 뿐 말이 없었다. 객실 안으로 현리가 들어오며 말했다.
“희첩의 일이 무엇이겠어 잠자리 일이지.”
온객행이 고개를 돌려 현리를 보았다. 현리의 말에 주자서는 찻잔을 내려놓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의 귀 끝이 빨갛다.
현리 뒤에 망상이 소반에 음식을 들고 들어왔다. 현리가 손짓하자 망상은 탁자 위에 음식을 두고 객실을 나갔다.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말했다.
“희첩이 되면 희첩의 일도 하려구?”
주자서는 눈을 슬며시 들어서 온객행을 보더니 다시 손에 들린 찻잔을 보고 대답하지 않았다. 현리가 자리에 앉아 내려놓은 음식을 젓가락으로 집어 주자서 앞에 있는 앞접시에 올려놓고 말했다.
“유서. 밤일이라면 흑망보다는….”
온객행이 현리에게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자예! 제발. 그런 얘기는….”
현리가 주자서를 보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저렇게 부끄러워하니까 더 놀리고 싶잖아.”
온객행이 현리를 쏘아보며 말했다.
“괜한 얘기할 거면 나가서 일 보시게.”
온객행은 주자서의 안색을 살폈다. 현리가 음식을 집어먹고 한참 씹어 삼키더니 말했다.
“너는 천궁에 갈 수 있잖아. 가기 싫어서 안 가는 것뿐이지.”
온객행이 현리를 무시하고 주자서에게 말했다.
“꼭 희첩의 일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네. 그래도 일단 탁음대선께 여쭤보고 괜찮다고 하시면….”
현리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희첩이 아니라 정실로 들이게?”
온객행이 현리를 노려보며 말했다.
“자예.”
현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발의 후손이면 희첩은 좀 그렇지.”
온객행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현리의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자예. 오늘은 할 일이 없는가? 오늘 입은 옷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으니 가서 갈아입는 게 좋겠네.”
현리가 온객행의 손을 뿌리치고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말했다.
“뭐? 안 어울린다고?”
온객행이 현리의 머리 장식을 가리키며 말했다.
“머리 장식과 잘 안 어울리는 것 같아.”
현리가 소매를 들어 입은 옷을 살펴보더니 말했다.
“확실히… 날이 더워지니까 이제 붉은색은 그만 입어야 하겠어.”
온객행이 객실의 장지문을 열어 현리를 밀어 내보내며 말했다.
“꼭 입지 말란 법은 없네! 자색이나 분홍색은 어떠한가?”
현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객실을 나갔다.
“맞아. 자색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군.”
온객행은 현리가 나가자마자 장지문을 닫고 다시 탁상으로 가서 ‘휴’ 하고 한숨을 쉬고 앉았다.
주자서는 닫힌 객실 문과 온객행을 보고 눈을 굴리더니 젓가락을 들어 음식을 집었다. 주자서는 음식을 몇 개 집어먹어 보더니 곧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온객행이 찬을 집어 그의 앞접시에 놓아주며 말했다.
“그대의 정체가 밝혀지기 전까지는 누군가의 비호(庇護)를 받는 것이 안전하여 그러하네.”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온객행은 음식을 더 집어 주자서의 앞접시에 올려놓고 말했다.
“더 드시오.”
주자서가 작게 고개를 흔들고 말했다.
“괜찮습니다. 배고프지 않습니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앞접시에 올려 놓으려고 했던 음식을 자기 입으로 가져가 먹어보며 말했다.
“음… 확실히… 유서는 어떤 음식을 좋아하나?”
주자서가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음식을 가려서 먹을 만큼의 형편인 적이 없어서….”
온객행이 눈썹을 늘어뜨리고 주자서를 보며 말했다.
“유서….”
둘은 말없이 차를 조금 마시다가 음식을 담았던 식기를 소반에 정리했다. 온객행은 물 주전자에 물을 채워 화로에 올려 두고 소반을 들고 객실을 나왔다. 현리가 말한 대로 확실히 온객행은 원하면 삼원(三垣; 천궁)으로 갈 수 있는 영력을 가졌다. 지금 상황으로 미루어 봤을 때 섣불리 봉인을 풀었다가 힘을 봉인하고 있는 유서의 몸이 어떻게 될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황룡이 아니라 발을 찾아야 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탁음대선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계곤산을 찾아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온객행은 음식이 거의 다 남아있는 소반을 내려놓고 부엌에 있는 망상에게 물었다.
“이 음식은 누가 만든 것이오?”
망상이 손을 모아 공수하고 대답했다.
“모두 저희가 만들었습니다. 입에 맞지 않으셨습니까?”
온객행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니오. 아주 맛이 좋았소. 단지 단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으니 그의 몫을 조금 만들어서 내가 머무는 객실로 가져다줄 수 있겠소?”
망상이 소매로 입을 가리고 웃으며 말했다.
“사람이요? 주인께서 데려온 아이입니까?”
온객행이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니오. 내가 데려온 아이요.”
망상이 다시 소매를 들어 인사하고 말했다.
“무례를 범했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흑망공자.
온객행은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돌려 부엌을 나오려다 다시 망상에게 물었다.
“현리가 사람을 종종 데리고 옵니까?”
망상이 소매를 들어 붉어진 얼굴을 가리고 말했다.
“주인께서는 정인을 두는 것을 좋아하시니까요.”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소?”
망상이 소매를 내리고 말했다.
“주인께서 데려온 아이들은 주인께서 볼일이 끝나면 저희가 먹습니다.”
온객행이 멈칫하고 주변을 보았다. 망상은 물에 사는 귀신으로 사람을 유혹해서 먹는다. 그들을 하인으로 쓰려면 계속해서 그들을 먹일 사람이 필요했을 것이다. 온객행이 다급하게 덧붙였다.
“나의 객실에 있는 사람은 나의 희첩이니 먹으면 아니 되오.”
망상이 고개를 들어 온객행을 빤히 보고 물었다.
“사람을 희첩으로 들이셨습니까?”
옆에 있던 망상도 온객행을 이상한 눈으로 보았다. 온객행이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아… 그렇소. 그렇게 되었소. 그는 현리가 데려온 사내가 아니니 조심해주시오. 부탁드립니다.”
망상은 서로를 보고 한참 웅성거리더니 온객행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온객행은 객실에서 나와 현리를 찾았다.
현리는 갑판의 선미 바로 아래에 있는 가장 큰 객실을 사용한다. 온객행이 기별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현리가 거의 헐벗은 모습으로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흑망! 여인의 방에 기별도 없이 이게 무슨 무례인가?”
온객행이 얼른 장지문을 닫고 현리에게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유서를 희첩 삼겠다는 것이 망상의 밥을 준다는 뜻이었소?”
방안은 현리가 이리저리 널어놓은 옷들로 가득했다. 현리가 온객행의 주변에 있는 푸른빛이 도는 장포를 걸치고 말했다.
“망상은 오래 못 살잖소. 나는 우리 아이들과 백년해로 하고 싶은데.”
온객행이 현리를 보고 말했다.
“정인이라니! 사람들을 데려다 무슨 짓을 하는 것이오?”
현리가 면경이 있는 서안으로 가서 패물이 들어있는 함에서 머리 장식을 고르며 말했다.
“그들은 모두 갚을 수 없을 만큼 큰 빚을 진 자들이오. 목숨으로 갚았으니 오히려 내가 손해 아닌가?”
온객행이 탁상 옆에 있는 의자에 옷을 치우고 털썩 앉으며 말했다.
“유서는 나의 희첩이니 건드리지 마시오.”
현리가 피식 웃으며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퍽이나 그 사람이 마음에 들었나 봐? 그가 하얀 연꽃 대신이야?”
온객행이 얼굴을 구기며 말했다.
“자예. 그만하게. 그는 이미 죽었어. 그 누구도 누군가를 대신할 수는 없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장지문을 열었다. 현리가 온객행을 따라 나와 말했다.
“온객행. 아주 잘 알고 있네. 방금 그대가 한 말을 잊지 말게. 그는 이미 죽었어.”
현리는 온객행의 품속에서 검영에게 받은 작은 함을 꺼냈다. 함을 온객행의 눈앞에서 흔들더니 말했다.
“사람이 난 자리는 사람으로 채우는 것이라고,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더군.”
온객행은 고개를 돌려 작게 한숨을 내쉬고 객실을 나갔다.
현리는 방금 온객행에게서 빼앗은 함을 열어보았다. 아주 작은 진주 두 개. 천시원(天市垣)에서 산 별이다. 이 것을 나누어 가지고 있으면 죽어서 같은 별이 된다고 한다. 정말 그런 것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현리는 함에 담긴 진주를 쓸어 보았다. 조금 차갑고 텅 비어 아무런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 이것은 아마도 죽은 별일 것이다. 온객행은 주고 싶은 이가 없어서 쓸 수 없고, 현리는 주고 싶은 이가 너무 많아서 쓸 수 없다. 현리는 함을 닫아 방금까지 온객행이 앉아 있던 자리에 놓았다. 온객행의 하얀 연꽃이 그를 위해 몸을 던진 곳은 은하수(銀河水)였다. ‘바보같이….’ 현리는 작게 코웃음 쳤다. 하지만 어쩌면 조금은 부러웠을지도 모르겠다.
객실 앞 장지문에 서서 한참 생각을 정리하다 문을 열었다. 들어가서 보이는 곳에 주자서가 없어서 온객행이 작은 목소리로 그를 찾았다.
“유서?”
살짝 열린 창호 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습하고 차다. 비가 오는 장강에서 부는 바람은 차가웠다. 온객행이 다가가 창호 문을 닫고 객실을 나가 주자서를 찾았다. 주자서는 갑판에 있는 누각의 난간에 기대어 장강을 보고 있었다. 온객행이 입고 있던 장포를 벗어 주자서에게 둘러주며 말했다.
“유서. 바람이 차네.”
주자서가 온객행의 장포를 거절하며 말했다.
“더워서 나왔소. 이제 곧 유월인데 화로라니….”
온객행이 장포를 다시 둘러 입고 말했다.
“그럼 차를 어디에 끓인다는 말이오?”
주자서가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난간에 기대서 한참 장강을 보았다.
온객행이 말했다.
“현리가 부리는 수하들은 모두 사람을 먹으니 조심하는 것이 좋겠소.”
주자서가 고개를 휙 돌려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뭐요?”
온객행이 주자서를 마주 보며 말했다.
“망상은 사람을 먹는 물귀신이니 조심하시오.”
주자서가 온객행에게 몸을 붙이며 물었다.
“먹는다는 것이 대체 무슨 뜻이오?”
온객행이 붙어오는 주자서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정말 말 그대로 먹는다는 것이오. 그들은 사람을 먹지 않으면 말라 죽는다 하니.”
주자서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겁을 먹은 모습이 귀여워 온객행은 주자서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부스스 웃었다. 주자서가 온객행의 얼굴을 손으로 밀며 말했다.
“무슨 짓이오.”
온객행이 주자서의 손목을 잡고 그의 손을 치우며 말했다.
“나의 희첩이라고 말해 두었으니 괜찮을 거요.”
주자서가 온객행에게서 몸을 물리며 말했다.
“그것은 나에게 희첩의 일을 하라는 것이오?”
온객행이 주자서의 허리를 안고 말했다.
“희첩의 일이라….”
주자서는 벗어나기 위해 조금 더 몸부림을 쳤다.
온객행이 놔주지 않자 주자서는 오히려 힘을 축 늘어뜨리고 온객행에게 기댔다. 온객행은 그 몸짓이 기꺼워 웃음이 나왔다. 주자서가 말했다.
“나는 잘 모르겠소. 지금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온객행이 주자서를 더 가깝게 끌어안으며 말했다.
“여기 같이 있으니 아마 죽지는 않았을 것이오.”
온객행은 눈앞에 보이는 주자서의 목덜미에 입을 맞췄다. 별 생각 없이 한 행동이지만 묘하게 충족감이 차올라 조금 더 핥고 빨았다. 따뜻한 주자서의 체온에 입술이 홧홧했다. 주자서가 몸을 굳히자 온객행이 말했다.
“지금 내 것이라고 표식을 하는 중이니 조금 참아 주시오.”
주자서는 소름이 돋아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온객행이 하는 행위 때문인지 낮은 그의 목소리 때문인지 주자서는 알 수 없었다.
난간에 붙어서 남들이 보기에 명확하게 희롱하는 꼴인 두사람을 발견한 현리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너무 오래 봉인되어 있어서 발정기라도 온 거야?”
현리의 목소리에 고개만 돌려서 현리를 본 온객행이 주자서를 자기 몸으로 가리며 말했다.
“내 희첩으로 삼기로 했으니 상관 말게.”
주자서가 온객행의 어깨를 밀며 말했다.
“노… 놓아주시오.”
온객행은 조금 아쉬워서 빨갛게 달아오른 주자서의 귓가에도 입을 맞추고 놓아주었다. 주자서는 온객행이 놓아주자 소매를 높게 들어 붉은 얼굴을 가리고 현리에게 인사했다.
“현리낭자.”
현리가 주자서에게 다가와서 ‘킁킁’하고 냄새를 맡더니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정말 발정기가 온 거야?”
온객행이 얼굴을 구기며 말했다.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쓸데없는 소리 하려면….”
현리가 손을 들어 온객행의 말을 막고 주자서를 보았다. 주자서는 고개를 푹 숙이고 발끝을 보고 있었다.
현리가 고개를 숙여 주자서와 시선을 맞추며 말했다.
“발의 후손이라구?”
주자서가 놀라서 펄쩍 뛰며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서 공수했다. 현리가 물었다.
“어디 출신인가?”
온객행이 주자서의 소매를 잡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자예. 먼저 사과부터 하시게. 다짜고짜 영력을 쓰는 법이 어디 있나? 게다가 이 치는 영력도 없는데.”
주자서가 온객행 옆에 바짝 다가가 서며 말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하문하소서.”
현리가 고개를 기울여 주자서를 보며 말했다.
“좀 마음에 드는데?”
온객행이 주자서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말했다.
“그러지 말게. 우리 유서는 겁이 많고 다정해서 잘 속는다고 내가 말하지 않았나.”
현리가 온객행을 쏘아보며 말했다.
“겁이 많은 것 치고는 담담하네. 여기가 망상 소굴인 것을 알고도 태연하게 뱃놀이를 하는 것을 보면.”
그 말에 주자서가 온객행의 소매를 잡았다. 온객행은 내색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겠지만 현리는 그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흥’하고 코웃음 친 현리가 누각에 있는 평상에 가서 앉았다.
현리가 평상 양옆에 있는 의자를 권했지만 온객행은 주자서만 의자에 앉히고 옆에 찰싹 붙어서 현리를 노려보았다. 현리가 주자서에게 물었다.
“어디 출신인가?”
주자서가 양손을 모아 공수하려고 하자 현리가 손을 들어 그를 멈추고 말했다.
“예를 거두게.”
주자서는 고개를 끄덕이고 답했다.
“사례(司隸) 낙읍 출신입니다.”
현리가 고개를 흔들었다. 온객행이 말했다.
“그는 기산(岐山) 주가(周家)요.”
현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기산… 계곤산을 그렇게도 부르지.”
현리는 주자서를 잠시 보다가 말했다.
“어째서 모친의 성을 쓰시오?”
주자서가 고개를 숙이고 대답을 못하자 온객행이 주자서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다 그런 사정이 있어서 그러하오. 그의 모친은 그냥 평범한 사람이라 하였소. 그대가 말해준 것이 사실이라면 발의 후손은 모두 사람일 것이 아니오.”
현리가 말했다.
“그대의 모친은….”
온객행이 현리의 말을 자르고 말했다.
“아무래도 나는 탁음대선께 가서 여쭐 테니 그대는 금모원군께 가보는 것은 어떠 하오?”
현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원군께는 벌써 서신을 보냈으니 곧 기별이 올 것입니다.”
온객행이 고개를 흔들고 말했다.
“수원대선께서 이 일이 산천대제께 알려지면 곤란한 일이 생길 것이라고….”
현리가 온객행을 빤히 보며 말했다.
“이제 그대의 희첩이 아니오. 별로 상관없지 않나?”
주자서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말했다.
“나는 원군이니 대선이니 요괴니 하는 것을 잘 모르오. 하지만 지금 나에게 벌어지는 일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온객행과 현리를 보았다. 주자서가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나는 황제의 딸인 발의 후손인데, 발의 후손은 원래 모두 여인인 것이오?”
온객행이 주자서에게서 손을 떼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주자서가 고개를 돌려 현리를 보고 물었다.
“현리낭자께서는 저를 왜 도우십니까?”
주자서의 질문에 현리가 허탈하게 웃으며 답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대체 무슨 상관이라고.”
온객행이 주자서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유서, 그대의 몸에 발의 영력이 봉인되어 있네. 그래서 고상의 피를 그렇게 많이 먹었는데도 잘 낫지 않았던 걸세. 발의 영력이 다른 영력을 밀어내고 있어서.”
주자서가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나는 유서가 아니오. 기산의 주가 자서요.”
온객행이 입을 달싹이다 말했다.
“그래 자서. 알겠네. 그렇게 부르겠네. 모두 말해주겠네. 성내지 말게.”
현리가 온객행이 하는 모습을 보고 ‘하’하고 코웃음 치며 말했다.
“사람이 성내는 것이 뭐 무서운 일이라고.”
온객행이 현리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건 우리 두 내외의 일이니 삼자는 상관 말게.”
온객행의 말에 주자서와 현리가 동시에 온객행을 향해 고개를 돌려 얼굴을 구겼다. 주자서가 온객행이 잡은 소매를 뿌리치고 말했다.
“황룡을 찾는 것은 어찌 된 것입니까?”
현리가 대답했다.
“황룡을 찾으면 온객행보다 더 괴팍하고 못된 요괴의 희첩이 될지도 모를 일이오.”
주자서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온공자보다 더?”
주자서의 말에 현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대는 흑망의 과거를 모르오? 그대를 애지중지하는 이 모습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호호호”
주자서가 온객행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애지중지?”
온객행이 눈썹을 축 늘어뜨리고 주자서를 보며 말했다.
“비록 내가 세 번 밥을 먹이진 않았으나 따듯하게 잘 재워주지 않았소?”
주자서는 맥이 풀려서 다시 자리에 털썩 앉았다. 온객행은 다시 앉은 주자서의 곁에 서서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앞으로는 내가 밥도 잘 먹여 줄 테니 너무 성내지 말게.”
주자서는 고개를 들어 온객행을 보고 ‘허’하고 헛웃음 쳤다.
현리가 말했다.
“모친은 낙읍에 계시는가?”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낙읍 남쪽에 태곡관으로 들어가는 성문 밖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살았다. 사람의 이동이 항상 많은 곳이라 여러 가지의 일자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주자서의 부친께서는 환란에 참소를 당하여 역모의 죄를 뒤집어쓰게 되어 모친의 성을 쓰게 되었지만 솔직히 주자서의 기억에 부친은 없다. 너무 오래된 일이기도 하고 그가 모친과 재종형제를 따라 낙읍으로 왔을 때 주자서는 겨우 예닐곱살 먹은 어린 아이였다. 모친은 고된 일을 하시면서 형님과 주자서의 학업을 도울 정도로 박식하고 슬기로운 여인이었다. 형님께서 처와 당질을 데리고 낙읍에서 도망치려고 하지만 않았다면 아마 주자서도 사분군으로 끌려 나와 전장에 있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은 언제라도 징병을 피할 수는 없었겠다고 생각한다.
현리가 조금 생각하더니 말했다.
“이미 주자서의 몸에 발의 영력이 깃들었다면 발은 이미 죽었으니 찾아도 소용없겠군.”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주요가 유서의 몸에서, 아니 주공자의 봉인을 건드렸을 때 피를 토했다고 했네. 아마 힘을 봉인한 서왕모를 찾아뵙는 것이 맞는 것 같네.”
현리가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어차피 종화산이나 태연이나 지척에 있으니 먼저 촉룡을 뵙고 갔으면 좋겠는데….”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물었다.
“자서는 어떻게 하고 싶나?”
주자서는 대답 없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온객행이 주자서 앞에 쪼그리고 앉아 주자서의 손을 붙잡고 그를 올려보며 말했다.
“자서. 왜 그러나? 어디 아픈가?”
주자서가 손을 빼려고 하자 온객행이 손을 더 꽉 잡고 말했다.
“어디 불편한 곳이라도 있는가?”
주자서는 미간을 찡그리더니 말했다.
“그대가 제일 불편하오.”
온객행은 주자서의 말에 입을 달싹이다가 울상을 만들고 말했다.
“나는 사람을 먹지 않는데….”
그리고 어깨너머로 현리를 보았다. 현리가 온객행과 시선을 맞추면서 말했다.
“침상에서 뒹구는 것도 먹는 것으로 치면야….”
온객행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현리에게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자예. 제발 그런 얘기는 보통 남들과 하지 않네.”
현리가 주자서를 보고 물었다.
“정말 사내들끼리 정을 통하는 법에 대해 궁금하지 않은가?”
주자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말없이 갑판 아래로 내려갔다. 온객행이 현리를 쏘아보며 주자서의 뒤를 쫓았다.
“주공자! 주공자!”

0 comments: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