蛇苺 第13

反間計 | 13. 반간은 반드시 중심에 둔다.

주자서는 온객행이 가져온 옷들을 살펴보더니 아마포로 만든 엷은 쪽빛의 장포를 중의도 없이 입었다. 은은하게 비치는 내의가 야살스러워서 온객행은 한참 달아오른 뺨을 식혔다. 영문을 모르는 주자서는 망상이 가져온 죽을 비웠다. 찐쌀과 연밥을 넣고 간을 하지 않고 끓인 담백한 죽이었다. 주자서는 오랜만에 조금 배가 찰 만큼 식사를 했다. 주자서가 찻잔에 차를 따르며 물었다.
“이것은 제가 산 찐쌀로 만든 것입니까?”
온객행이 주자서의 머리 장식을 바꿔준다며 함을 뒤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자서는 고개를 끄덕이고 소반에 먹은 그릇을 치우고 일어났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따라 일어나며 말했다.
“그냥 두시오. 내가 하겠소.”
주자서는 소반을 들고 서서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너무 객실에만 있어서 심심하니 구경이라도 갑시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손에서 소반을 빼앗아 들고 말했다.
“망상이 있는 부엌에 가겠소?”
주자서가 표정을 구기고 한참 망설이더니 온객행을 힐끔 보고 말했다.
“혼자 다니는 것이 아니면 괜찮을 것 같은데….”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아! 내가 같이 가 주겠소. 아니 나와 함께 갑시다.”
주자서는 온객행을 대신해서 장지문을 열었다.

온객행은 부엌에 소반을 가져다주고 망상에게 아주 맛있었다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주자서도 옆에 서서 소매를 들어 공수하고 인사했다. 망상은 온객행 옆에 서 있는 주자서를 보고 소매를 들어 ‘까르르’ 웃었다. 주자서는 온객행에게 좀 더 붙어 서서 부엌을 나왔다. 두 사람은 배의 여기저기를 함께 둘러봤다. 현리에게 부탁할까 하다가 또 흰소리를 할 것 같아서 둘이 편연주를 둘러보았다. 객실 바로 아래층에는 부엌과 화물칸이 있었고 그 아래층은 노를 젓는 하갑판이 있었다. 배는 아주 큰 편이라 비가 와서 조금 출렁이는 장강의 흐름에도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는 듯했다. 그것이 현리의 능력인지 아니면 배의 성능인지 알 수 없다.

온객행이 물었다.
“유서는 이렇게 큰 배를 타본 적이 있는가?”
주자서가 노를 젓는 나어를 보고 온객행에게 속삭이듯 물었다.
“저들도 사람을 먹습니까?”
온객행이 살포시 웃고 말했다.
“유서. 걱정할 것 없어. 유서에게서 나의 냄새가 많이 나니까 함부로 먹지 못 할 것이오.”
주자서가 온객행을 보고 표정을 구기더니 소매를 들어 ‘킁킁’ 냄새를 맡고 말했다.
“냄새?”
온객행이 주자서의 등허리에 손을 얹어 그를 객실이 있는 층으로 인내하며 말했다.
“사람이 맡을 수 있는 냄새가 아니니 걱정 말게.”
온객행은 주자서의 목덜미에 얼굴을 붙여 숨을 들이마시고 말했다.
“아주 좋은 냄새만 나.”
주자서가 온객행을 못마땅하게 보며 간격을 벌렸다.


둘이 객실로 돌아왔을 때 객실 앞 장지문에 망상이 서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망상이 말했다.
“흑망공자. 금모원군의 별성(別星) 청조(靑鳥)께서 오셨습니다.”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고 갑판을 올라가는 계단을 보고 말했다.
“갑판에 계시는가?”
망상이 작게 고개를 흔들고 말했다.
“밖에 비가 와서 사랑(舍廊)에 계십니다.”
온객행이 선미를 보고 말했다.
“길을 안내하게.”
망상이 소매를 들어 고개를 조아리고 돌아서서 사랑으로 향했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그가 물어서 생긴 잇자국 주변을 핥고 입을 맞췄다. 주자서가 놀라서 바르작대며 앞서 걸어가는 망상을 가리키고 말했다.
“어찌! 어찌!”
온객행이 낮게 웃고 말했다.
“희첩 말고 부인 하시오.”
주자서가 온객행의 얼굴을 손으로 밀어내며 말했다.
“희첩이든 부인이든 마음대로 하시오.”

온객행이 자신의 얼굴을 밀어내는 손의 손목을 잡아 손바닥에 입을 맞추고 말했다.
“그럼 아상이 나의 처모(妻母)가 되는 건가?”
주자서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손목을 빼려고 하자 온객행이 순순히 손목을 놓아주고 말했다.
“그대가 말한 대로 앞으로는 주의하겠소.”
온객행이 주자서를 보고 눈꼬리를 접어 웃었다. 주자서는 눈이 감기기 전에 보았던 온객행의 눈에 흰자위가 없어서 온객행의 얼굴을 빤히 보고 물었다.
“왜 자꾸 천곽(天廓)이…?”
온객행이 다시 눈을 떠서 주자서를 보았을 때에는 다시 흰자위가 보였다. 주자서가 고개를 갸웃하며 미간을 찌푸리자 온객행이 손을 들어 그의 미간을 쓸고 말했다.
“청조는 미남을 좋아하니 조심하는 것이 좋겠소.”
주자서가 고개를 흔들었다.

망상이 사랑 앞에 도착해 작게 기침하여 기별하고 말했다.
“주인. 흑망공자께서 오셨습니다.”
안에서 현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라 이르게.”
망상이 사랑의 장지문을 열고 온객행에게 손짓했다. 온객행은 주자서를 놓아주고 소매를 털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주자서가 고개를 들어 외실 안쪽을 힐끔 보았다. 안에는 현리와 밝은 파란색 옷을 입은 창백한 미인이 앉아 있었다. 온객행이 소매를 들어 미인에게 인사했다.
“흑망. 청조를 뵙습니다.”
청조는 고개를 돌려 온객행 뒤에 있는 주자서를 보고 눈썹을 찡그렸다. 현리가 청조의 불편한 기색을 눈치채고 말했다.
“대정자(戴胜姊) 제가 서신에서 설명하지 않았었나요?”
청조가 자리에서 일어나 주자서에게 다가가 말했다.
“네가 발의 후손이냐?”
주자서가 고개를 조아리고 답했다.
“기산(岐山) 주가(周家) 자서(子舒), 청조께 인사드립니다.”
청조가 주자서의 턱을 쥐고 들어 올려 그의 얼굴을 보고 말했다.
“정말 사내잖아?”
온객행이 다급하게 덧붙였다.
“저의 내자(內子)입니다.”

청조는 그제야 온객행을 발견했다는 듯이 표정을 구기고 말했다.
“흑망이 아닌가. 벌써 봉인이 풀렸나?”
온객행이 청조를 보고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자애로우신 천존께서 죄를 사하여 주셔서 망극할 따름입니다.”
청조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천존께서….”
청조는 주자서를 놓아주고 다시 앉아 있던 자리로 가서 앉았다. 현리가 청조의 눈치를 보며 온객행과 주자서에게도 자리를 권하고 차를 준비했다. 청조가 한참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
“이렇게 물비린내가 잔뜩 묻어서 어찌 원군께 데려간다는 말이냐?”
현리가 온객행을 힐끔 보고 말했다.
“흑망이 오랫동안 봉인되어 있어 아직 영력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니 청조께서 이해하세요. 에이, 대정자(戴胜姊) 오랜만에 만났는데 서왕모께서는 강녕하십니까?”

청조가 고개를 돌려 현리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별일이야 있겠는가? 요즘 통 얼굴을 비추지 않아서 조금 걱정하시더구나.”
현리가 청조의 찻잔에 차를 더 따르고 말했다.
“올해 단오절에는 부리는 사람들 때문에 일이 있어서 찾아뵙지 못했는데 백종절(百種節)에는 꼭 가서 찾아뵐 것입니다. 원군께 드리려고 우사금(藕絲錦; 연꽃으로 짠 비단)을 준비해 놓았는 걸요.”
청조가 살포시 웃으며 말했다.
“우사금을? 원군께서 좋아하시겠구나.”
온객행은 청조의 눈치를 보며 옆에 앉아 있는 주자서의 손을 잡았다. 주자서는 차가운 온객행의 손에 흠칫 놀랐다가 그것이 온객행의 손인 것을 보고 온객행을 흘겨보았지만 뿌리치지는 않았다.

청조가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이 아이는 내가 원군께 데려가야겠다.”
온객행이 당황하여 말했다.
“유서는….”
현리가 온객행의 말을 자르며 그를 쏘아보고 말했다.
“그 아이는 흑망이 혼인하려고 데려온 아이라서 먼저 촉룡께 가려고 했는데….”
청조가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혼인?”
현리가 찻물로 입을 축이고 말했다.
“태평호의 수원대선께서 중매를 하셔서….”
청조가 현리를 보고 말했다.
“주요가?”
청조가 다시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주요는 사내를 싫어하는데 어찌?”
주자서는 자신을 훑어보는 청조의 시선이 부끄러워서 뺨을 붉히고 고개를 숙였다. 청조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그는 아직 사람이 아닌가?”

현리가 온객행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촉룡께서 허락하시면 원군께 부탁드려서 반도(蟠桃)를 먹이려고 했죠.”
청조가 현리를 보고 코웃음 치며 고개를 흔들었다.
“반도가 그리 쉽게 얻어지는 것인가?”
현리가 청조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대정자, 수원대선께서 중매하였는데도 그러합니까?”
청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주요가 중매했으면 정말 모를 일이기는 하네.”
그리고 온객행을 못마땅하다는 듯이 보고 말했다.
“어찌 뱀의 내자가 된다는 말인가?”
현리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돌렸다.
“대정자. 원군께서 이 아이를 어찌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이 있습니까?”
청조가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쉬고 말했다.
“나도 잘 모르겠네. 발의 아이이니 원하면 천궁으로 들일 수는 있으나 과연 견딜 수 있을지….”
그리고 주자서를 보았다.

주자서가 고개를 들어 청조와 시선을 맞췄다. 청조가 주자서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말했다.
“사내라서 태양의 힘을 버티지 못 할 텐데.”
주자서가 손을 올려 공수하고 물었다.
“저에게 봉인된 이 힘을 다시 원군께서 거둘 수는 없는 것입니까?”
청조가 재미있다는 듯 입꼬리를 끌어 올리고 말했다.
“형평성에 맞지 않네. 원군께서 발의 힘을 갖게 되면 산천대제께서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현리가 부루퉁하게 말했다.
“산천대제께서 희첩 삼겠다고 하시겠지요 그 힘이 탐나서.”
청조가 고개를 끄덕이며 온객행을 보았다.
“그렇네. 탁음대선 제자의 내자인 편이 낫지.”
주자서가 잠시 생각하더니 물었다.
“탁음대선께서 발의 힘을 거두어 주실 수는 없습니까?”
청조가 놀란 듯 주자서를 한참 보더니 말했다.
“그 분께서 뭔가에 관심을 가지는 일이 있던가?”
온객행이 주자서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제자의 일이니 들어는 주실 겁니다.”
청조가 온객행을 보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버들개지가 퍽 마음에 든 모양이지?”
그리고 주자서를 보았다.

한참 주자서를 뚫어져라 보던 청조가 작게 탄식하며 말했다.
“너… 너는?”
그리고 고개를 휙 돌려 현리를 보았다. 현리가 어리둥절하여 청조를 보자 청조가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그럼 먼저 촉룡을 뵙고 태연으로 오게. 원군께 소식을 전하겠네.”
현리가 청조를 따라 일어나며 말했다.
“대정자, 오랜만에 오셨는데 어찌 그냥 가십니까? 제가 모은 것들을 봐주세요.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외실을 나가며 온객행에게 눈짓했다. 온객행이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 주자서를 일으켜 공수하여 인사했다. 청조는 그 둘이 인사하는 것도 받지 않고 현리와 함께 외실을 나갔다.


온객행이 자리에 다시 앉아 찻물을 마시고 말했다.
“서왕모의 휘하에 있는 자들은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주자서가 온객행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찻잔을 들어 마시고 말했다.
“뱀의 내자….”
온객행이 의자를 좀 더 가깝게 옮겨 어깨가 닳을 만큼 붙어 앉은 뒤 말했다.
“뱀의 내자는 싫은가? 그럼 내가 사람에게 시집을 가볼까?”
주자서가 부스스 웃으며 말했다.
“온공자께서 제 처가 되시겠다고요?”
온객행이 주자서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고 물었다.
“정실로 맞아 줄 텐가?”
주자서는 온객행을 밀어내며 말했다.
“농은 그만하시오. 발의 힘을 옮기려면 어찌해야 하오?”
온객행이 주자서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말했다.
“글쎄….”

온객행은 주자서의 어깨에 기대어 있다가 말했다.
“자모하(子母河)의 샘물을 마셔볼까?”
주자서가 고개를 돌려 온객행을 보고 물었다.
“자모하?”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서량여국(西梁女國)에 가면 아이를 수태(受胎)할 수 있게 해주는 샘물이 있는데….”
주자서가 온객행의 손을 뿌리치고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요? 대체!”
온객행이 놀라서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그 물을 마시면 사내도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주자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온객행!”

온객행이 고개를 들어 일어난 주자서를 보고 눈썹을 늘어뜨리고 말했다.
“유서. 왜 그러나? 성내지 말게.”
주자서가 얼굴이 새빨개져서 온객행에게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지금 나 더러 아이를 낳으라는 것이오?”
온객행이 자신에게 뻗어진 손을 잡고 말했다.
“그대가 딸을 낳으면 발의 힘은 자연스럽게 그 아이에게….”
주자서가 온객행의 입을 막고 말했다.
“그만! 제발 그만하시오.”
온객행이 자신의 입을 막은 주자서의 손을 양손으로 잡고 주자서를 보았다. 주자서는 화를 삭이는 듯 얼굴을 잔뜩 구기고 눈을 감고 있었는데 온객행은 그 모습도 귀여워서 웃음이 나왔다. 주자서가 눈을 뜨고 자기를 쏘아보는 것도 좋았다.

온객행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주자서의 허리를 안고 그의 어깨에 고개를 기댔다. 주자서는 온객행의 입에서 손을 떼고 온객행의 어깨를 밀어냈다. 마침 온객행의 시선에 주자서의 목덜미에 난 잇자국이 보여서 온객행은 그곳에 또 입을 맞추고 낮게 웃었다. 주자서가 크게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차라리 희첩의 일을 하겠소. 아이를 낳으라니 미쳤소? 나는 사내요.”
온객행이 주자서를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
“사람은 사내면 아이를 못 낳는가?”
주자서는 온객행의 말에 맥이 빠져서 온객행이 하는 대로 그의 품에 힘을 쭉 빼고 기댔다.

“그대가 싫으면 내가 낳아주겠네. 아… 그러면 소용이 없나?”
온객행은 주자서의 목덜미에 뺨을 비볐다.
“내가 무엇이든 해주겠네. 그대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주자서가 온객행의 몸을 밀어내며 말했다.
“그럼 일단 좀 떨어지시오. 제발 다른 이가 있을 때는 이러지 마시오.”
온객행은 주자서를 더 꼭 안으며 말했다.
“지금은 다른 이가 없지 않은가?”
주자서가 온객행의 어깨에 이마를 기대더니 ‘하아’ 하고 깊게 한숨을 쉬고 고개를 흔들었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놓아주고 말했다.
“아. 밥을 먹어야지.”
온객행이 주자서의 손을 잡고 그를 밖으로 이끌며 말했다.
“유서. 오늘 두 번째 밥을 먹으러 갑시다.”
주자서는 온객행에게 소매가 붙들려 이리저리 휘둘려 부엌으로 향했다.

부엌에서는 음식을 준비하는 망상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그들이 하는 음식은 대체로 달고 기름진 과자였다. 온객행이 망상이 하는 음식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말했다.
“우리 유서는 단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구석에서 앉아있던 망상이 온객행에게 다가와 말했다.
“흑망공자님. 오늘은 탕을 준비했는데 객실에서 드시겠습니까?”
온객행이 망상이 들고 있는 도자기 냄비를 보고 말했다.
“좋습니다. 제가 가지고 가지요.”
망상은 냄비에 뚜껑을 덮고 말했다.
“반주향 정도 끓이시면 됩니다. 꿩고기로 경단을 만들어 넣었어요.”
온객행이 주자서를 불러 냄비를 들게 하고 소매에서 작은 함을 꺼내 망상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것은 올해 태평호에서 새로 딴 연잎으로 만든 차인데 맛보시오.”
망상이 차 함을 받아서 들고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주인님께서는 쓴 차는 즐기지 않으셔서….”
온객행이 주변을 둘러보다 벽에 걸어 놓은 약초 중에 감초를 찾아 건네며 말했다.
“감초와도 아주 잘 어울립니다. 올해 만든 것이라 향이 좋으니 좋아할 거예요.”


둘은 객실로 돌아가 탕을 나누어 먹었다. 온객행이 먹은 식기를 치우려고 잠깐 부엌에 간 사이에 객실 안으로 청조와 현리가 들어왔다. 차를 마시고 있던 주자서가 자리에서 일어나 소매를 들어 공수했다. 청조는 객실을 둘러보더니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흑망은 어디 갔지?”
주자서가 고개를 숙이고 대답을 하지 않자 현리가 청조에게 자리를 권하며 말했다.
“버들개지 먹인다고 뭘 찾고 있겠죠. 아직 사람이라 챙겨줘야 하니까.”
청조가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 앉았다. 주자서는 마시던 차를 버리고 새로 물을 올린 뒤 온객행이 두고 나간 차 함에서 연잎차를 찻주전자에 담았다. 청조가 차를 내리는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어찌 사내가 된 것이지? 너의 운명은 분명 여인이었을 텐데.”
주자서가 청조를 보고 눈을 굴리며 말했다.
“사람인 제가 어찌 하늘이 하는 일을 알 수 있겠습니까?”
현리가 주자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대정자, 왜 그러시는데요? 뭐가 잘못되었습니까?”
청조가 작게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어찌 그에게 천강(天江)의 기운이 있는가?”
현리가 고개를 돌려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천강?”
기별도 없이 객실의 장지문이 열리고 온객행이 들어왔다.

온객행이 작은 대나무 바구니를 들어 올려 주자서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유서, 이 원병(圓餠)은 고기로 속을 채웠다고 하네. 하나….”
그리고 탁자에 앉아 있는 청조와 현리를 발견하고는 얼른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청조, 현리.”
청조는 온객행을 보고 ‘흥’하고 코웃음 친 후에 자리에서 일어나 객실을 나갔다. 현리가 청조를 따라 나가며 말했다.
“청조께서 가시니 어서 배웅하게.”
온객행은 들고 온 바구니를 탁자에 놓고 주자서의 소매를 잡아 현리를 뒤따르며 말했다.
“청조께 부탁드립니다. 부디 원군께서 우리 유서를….”
청조가 갑판으로 향하던 길을 멈추고 뒤돌아서 온객행을 보며 말했다.
“원군께 또 부탁을 하겠다는 것인가?”
온객행이 공수하고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제가 무례를 범했으니, 달게 벌을 받겠습니다.”
청조가 주자서를 위아래로 보고 말했다.
“이번에는 위협이 아니라 정말 부탁이 맞는가?”
온객행이 자리에 무릎을 꿇고 넙죽 엎드려서 말했다.
“저의 죄를 부디 저의 내자에게 지우지 마소서.”
주자서는 온객행이 하는 것을 보고 있다가 눈치를 보고 따라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청조는 ‘허’하고 헛웃음을 치고는 다시 몸을 돌려 갑판으로 향했다.

온객행은 고개를 살짝 들어 청조가 갑판 위로 올라가는 것을 확인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자서의 팔을 잡아 그도 일으켜 객실로 향했다. 주자서가 갑판을 보며 물었다.
“배웅하지 않아도 괜찮은 것이오?”
온객행이 자신의 장포와 주자서의 장포를 털며 말했다.
“방금 하지 않았소. 배웅. 청조는 남이 조아리는 것을 좋아하니 이 정도면 됐습니다.”
온객행이 객실로 돌아와 주자서에게 찻잔을 건네고 말했다.
“이제 곧 파(巴)에 도착하는데 유서는 그곳에 가본 적이 있습니까?”
주자서가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신 후 고개를 흔들었다. 온객행이 찻잔을 들어 입을 축이고 말했다.
“그 곳은 흐린 날이 많아서 제대로 구경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주자서가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구경? 우리가 지금 유람하는 중입니까?”
온객행이 찻잔을 쥔 주자서의 손을 잡고 말했다.
“뭐… 겸사겸사.”

주자서가 온객행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촉룡께서는 발의 힘을 거두어 줄 수 있습니까?”
온객행이 주사서가 뿌리친 손을 아프다는 듯 쓰다듬으며 말했다.
“탁음대선께서는 지켜보는 것 말고는 관심이 없으셔서…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이고 또 한숨을 쉬었다.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어깨를 붙이고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다 괜찮을 것입니다.”
주자서가 온객행을 흘겨보더니 부스스 웃어버렸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어깨에 팔을 둘러 안고 마주 보며 말했다.
“웃으니까 더 잘 생겼습니다.”
주자서가 온객행에게 몸을 기대며 말했다.
“이런 분인지 미처 몰랐습니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빤히 보고 물었다.
“이런 분이라니…?”
주자서가 찻주전자를 들어 자신의 찻잔과 온객행의 찻잔을 새로 채우고 말했다.
“태평호에 계실 때는 좀 더 조용하지 않으셨습니까?”
온객행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내가 시끄럽습니까?”
주자서가 차를 마시고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건… 아닌가?”
온객행이 주자서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고 말했다.
“한 갑자는 짧은 시간이니까 그 동안 잘해봅시다.”
주자서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희첩에서 부인으로 지위가 올랐으니 제가 뭘 드려야 합니까?”
온객행은 한동안 주자서를 빤히 보더니 말했다.
“마주 안아 주시오.”
주자서가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네?”
온객행이 주자서의 몸을 돌려 그를 끌어안고 말했다.
“밀어내지 말고, 마주 안아주시오.”
주자서는 가만히 안겨 있다가 팔을 들어서 온객행의 등을 감쌌다. 온객행은 주자서에게 더 안기고 싶어서 몸을 밀다가 의자 뒤로 넘어지는 주자서를 잡아주었다.

주자서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대의 무게는 내가 감당할 수 없으니 너무 기대지 마세요.”
온객행이 주자서를 다시 품에 끌어안으며 말했다.
“싫어요. 나는 울보라 기대고 싶어요.”
온객행의 어깨로 주자서가 끄덕이는 몸짓이 느껴졌다. 온객행은 그 작은 몸짓이 사랑스러워서 주자서를 더 가깝게 끌어안았다.
“유서.”
주자서가 낮게 웃으며 말했다.
“온공자께서는 정말 울보입니다. 그동안 어찌 참으셨습니까?”
온객행이 주자서의 어깨에 뺨을 비비고 말했다.
“안 참았소.”
주자서가 온객행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아상께서 달래 주었습니까?”
이번엔 주자서의 어깨로 온객행이 끄덕이는 몸짓이 느껴졌다. 주자서가 낮게 웃으며 말했다.
“여기에 모친이 안 계시니 이제 제가 부군을 달래야 하겠네요.”
온객행이 주자서의 호칭에 ‘하하하’하고 웃었다. 온객행이 웃는 소리가 좋아서 주자서도 같이 웃었다.


객실 밖에서 누군가 기별했다. 망상이 현리가 골라준 옷감을 지은 옷을 가지고 들어왔다. 주자서는 탁자 위에 놓인 푸른색의 옷감을 쓸어 보았다. 그동안 고상과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입혀 주었던 옷은 대부분 비단이었다. 주자서는 비단을 입을 수 없는 신분은 아니었으나 신분을 숨기고 있는 신세인지라 형편이 여의치 못해 무명옷을 주로 입었다. 사분군에 들어오고 나서도 가슴 부분에 화살을 막기 위해 덧대는 비단이 아니면 구경하기 힘든 물건인데 평생 봐야 할 비단을 모두 모아 보는 것처럼 많았다. 주자서가 덮고 잔 이불도 아마 비단이었을 것이다. 주자서는 덮고 자던 이불을 만져보려고 침상으로 갔다. 침상 앞에 언제 가져다 놓았는지 병풍이 보인다. 온객행은 망상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옷 갈아입는 것을 도와주겠다는 그들을 얼른 객실 밖으로 내쫓았다. 온객행이 병풍 뒤에 침상에 가서 앉은 주자서를 부르며 말했다.
“유서. 이리로 와서 보게.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입어보시오.”

온객행은 제일 위에 놓인 푸른 장포를 들어 주자서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입어 보겠소?”
주자서가 웃으며 말했다.
“제 옷입니까? 온공자의 옷이 아닌가요?”
주자서가 온객행에게 다가가 그의 소매를 들고 물었다.
“이 옷은 이제 덥지 않으십니까?”
온객행이 파란 장포를 내려놓고 겉옷을 벗으며 말했다.
“그럼 이 옷으로 바꿔서 입을까요?”
주자서가 파란 장포를 들어 온객행이 옷 입는 것을 도왔다. 온객행이 장포를 입고 돌아서자 푸른색이었던 장포가 감색으로 짙어 졌다. 주자서가 온객행의 앞섶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강물 같습니다.”
온객행이 소매를 들어 보며 물었다.
“싫은가?”
주자서가 온객행을 보며 말했다.
“제가 입을 것도 아닌데 온공자 마음에 들어야지요.”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그대 마음에 들면 내 마음에도 드네.”
주자서는 온객행이 하는 말의 어디까지가 장난인지 점점 더 알 수가 없어 답답했다. 온객행의 말에 가슴이 울렁이는 것이 짜증 나면서도 싫지 않아서 궁색한 변명거리를 찾아야 했다. 주자서가 온객행의 시선을 피하며 얼굴을 빨갛게 물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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