蛇苺 第7

李代桃僵 | 7. 자두가 복숭아를 대신해 죽는다.

온객행은 찬합에 구리냄비를 넣고 고상을 데리고 부유각으로 향했다. 부유각으로 향하는 동안 고상에게 황제가 누구이고 발이 누구인지 설명해주었다. 온객행의 말을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던 고상이 말했다.
“정말 귀한 사람을 구했네…?”
온객행이 고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부유각에 도착해 온객행은 찬합을 들고 누각으로 올라갔다. 내실의 휘장이 모두 내려져 있고, 안에서 은은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 고상은 내실 안으로 들어가 탁자에 앉아 있는 주요와 유서를 보았다.

방금 들어온 고상을 보고 주요가 말했다.
“아상. 아무래도 그냥 보내 줄 수 없을 것 같다.”
고상이 화색이 되어 주자서 옆에 앉으며 말했다.
“그래? 그럼 유서는 화사가 되는 거야?”
주요가 자리에 앉은 고상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아상. 사내는 화사가 될 수 없어.”
고상이 고개를 갸웃하고 주요를 보더니 곧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곧 내실 안이 안개로 가득찼다. 곧 눈을 뜬 고상의 눈은 붉게 빛나고 있었다. 고상이 주요에게 물었다.
“어? 영력이 다 어디 갔지?”
고상이 주자서의 몸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말했다.

주요가 작게 한숨을 쉬고 손으로 얼굴을 부치자 곧 안개가 걷혔다.
“서왕모께서 말씀하시기를 그 영력은 그의 것이 아니라 발의 것이야.”
고상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주자서를 놓아주었다. 주자서는 주요와 고상의 대화를 알아들을 수 없어 입을 달싹였다. 주요가 주자서를 보자 주자서가 손을 들어 공수하고 말했다.
“주인. 저는 사람입니까?”
주요가 주자서를 한참 보다가 말했다.
“그것이… 나도 잘 모르겠다는 말이지.”
주자서가 고상을 힐끔 보고 다시 물었다.
“저는 화사가 되는 건가요?”
주요가 작게 고개를 흔들었다. 고상이 주요의 소매를 잡고 재촉하듯 물었다.
“아이참! 주요. 대체 뭘 그렇게 뜸 들이는 거야? 그냥 여기서 우리랑 같이 살면 되잖아요.”

주요가 자신의 소매에 있는 고상의 손을 잡고 말했다.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야. 그를 황룡 후토대선(后土大仙)에게 데리고 가야 하겠어.”
고상이 주자서를 보고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럼 유서는 후토대선이랑 살아?”
주요가 고상의 손을 토닥이며 말했다.
“그것은… 후토대선이 결정할 일이지.”
고상이 다시 주요를 보고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주요는 후토대선이랑 아는 사이야?”
주요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미간을 찌푸렸다.
“면식이 있긴 한데… 그는 오룡의 수장자리를 탐내다가 천선(天仙)을 죽이는 바람에 천궁에서 쫓겨났어.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잘 모르겠네.”
고상이 입꼬리를 당겨 어설프게 웃으며 물었다.
“그럼 황룡을 찾을 때까지는 태평호에서 살아도 돼?”
주요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즉저가 유서를 보았으니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

고상이 주요의 손을 맞잡고 물었다.
“왜? 아직 유서가 무엇인지 모르잖아.”
주요가 고개를 돌려 입구 쪽에 있는 휘장을 보고 말했다.
“누구처럼 엿듣는 못된 요괴의 희첩(姬妾)이라는 오해를 샀잖아. 파사에게 원한을 가진 영물은 많으니 그를 괴롭히러 올지 어찌 알겠어.”
고상이 고개를 돌려 입구를 보았다. 온객행이 휘장을 걷어 실내로 들어왔다. 주자서는 흠칫 몸을 떨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고상이 일어난 주자서의 허리를 안고 그의 배에 얼굴을 묻고는 말했다.
“싫어. 우리 유서는 내 것이야. 후토대선께 주기 싫단 말이야.”
그리고는 ‘으앙’하고 우는 소리를 냈다. 주자서는 당황하여 고상의 등을 쓸어 주며 소녀를 달래려고 안절부절못했다. 온객행은 손에 들고 있던 찻주전자를 탁상 위에 올려 놓았다.

온객행은 자리에 앉아 찻잔에 차를 따르고 주요에게 건네며 말했다.
“알 만한 자가 없소?”
주요가 온객행의 찻잔을 받으며 말했다.
“온객행. 그대는 천존께서 시키신 일이나 해결하고 오시게.”
온객행이 찻잔을 하나 더 꺼내 자기 앞에 두고 차를 따르며 말했다.
“촉룡께서는 알고 계실지도 모르오.”
주요가 찻잔을 내려놓고 온객행을 보았다. 작게 코웃음 친 주요가 말했다.
“천존의 일을 거절하려고?”
온객행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는 북쪽은 싫습니다. 춥잖아요.”
주요가 표정을 구기며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하! 추위를 타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차라리 너무 한미(寒微)한 자리라 성에 차지 않는다고 하게.”
온객행이 주요를 빤히 보더니 눈썹을 들썩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주요가 혀를 차며 말했다.
“봉인이 풀렸으니 이제 맞먹겠다는 것인가?”
온객행이 고개를 흔들며 차로 입을 축이고 말했다.
“설마요. 제가 종화산의 제자인 것을 잊으셨습니까? 저는 그저 지켜보는 것이 중요하지 이기거나 지거나 하는 일 따위에는 흥미가 없어요.”
주요가 고상을 보며 말했다.
“탁음대선(逴陰大仙)께 빈다고 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겠는가? 그는 흐르는 것 말고는 관심이 없으신데.”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상선, 스승님께 봉인이 풀린 것을 알리고 인사를 드리러 가야 하니 제가 가서 묻고 올까요?”
주요가 훌쩍이는 고상을 달래는 주자서를 고갯짓하며 말했다.
“혹이라도 달고 갈 텐가?”
온객행은 눈을 굴리고 말했다.
“아상은 저의 감시로 함께 왔으니 저와 함께 가는 것이 맞지요.”

주요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촉룡을 뵙고 나면 태연(太淵)으로 오게.”
온객행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왜요?”
주요가 다 마신 찻잔을 손안에서 굴리며 말했다.
“공공께서 금모원군과 함께 계시네.”
온객행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설마 공공께서도 고작 북해 용왕 자리를 탐내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주요가 대답 없이 온객행을 빤히 보았다. 온객행은 작게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어찌…?”
주요가 찻잔을 탁상에 내려놓고 일어나며 말했다.
“공공은 천궁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는 것이지 자리 따위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온객행이 깨달은 듯 ‘아’하고 탄식했다. 온객행도 찻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어쩌면 사람들의 전쟁이 꼭 사람들이 만든 것만은 아닐지도 모르겠군요.”
주요가 헛웃음 치고 내실을 나가려고 하자 온객행이 그를 붙잡으며 말했다.
“상선! 하방탕 드시고 가세요. 현무께서 보낸 소금을 넣고 끓여서 아주 맛이 좋습니다.”
내실을 나가려다 붙잡힌 주요는 온객행의 넉살에 맥이 빠져 ‘하하하’하고 허탈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고상은 앉아서 주요와 온객행이 하는 대화를 엿들으며 우는 시늉을 했다. 주자서는 다정해서 조금만 아프거나 우는 척을 하면 달려와서 달래 주었다. 평소에는 몸에 손을 대는 것을 그렇게 싫어했으면서 이럴 때는 만지고 치대도 모두 받아주었다. 고상이 울상으로 고개를 들어 주자서를 보자 주자서가 고상의 얼굴을 쓸어주며 말했다.
“주인… 울지 마세요.”
고상이 다시 얼굴을 주자서의 배에 묻고 말했다.
“아상이라고 부르겠다고 하면 그만 울게.”
주자서가 한참 대답을 망설이자 고상은 다시 ‘으앙’하는 우는 소리를 냈다. 주자서가 다급하게 고상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아상’이라 부르겠습니다. 아상. 울지 마세요.”
고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주자서를 놓아주었다. 주자서는 탁상에 놓인 찻잔에 차를 따라 고상에게 건네주었다.

고상은 주자서가 내민 찻잔을 받아 마시고 주자서의 팔을 당겨 의자에 앉히고 말했다.
“유서. 너는 내 아이야. 사람이던 요괴던.”
주자서가 부스스 웃으며 고상의 눈물에 붙은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말했다.
“아상. 이렇게 눈물이 많으셔서….”
고상이 주자서를 마주 보고 배시시 웃었다. 그때 온객행이 고상에게 말했다.
“아상. 하방탕을 먹자.”
주요는 입구 쪽의 휘장을 들어 올린 온객행을 지나쳐 밖으로 나갔다. 고상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자서의 소매를 잡고 휘장 밖으로 나갔다. 오늘은 보름이라 달이 밝았다. 하늘에 엷은 구름이 몇 점 떠 있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운치를 더욱 돋웠다. 주자서는 내실을 나가면서 온객행을 힐끔 보았다.

주요는 누각에 앉아 화로에 올려 둔 하방탕을 그릇에 담아 탁자 위에 올려 두었다. 고상은 주자서의 소매를 놓고 주요 옆으로 가서 앉으며 말했다.
“주요! 이렇게 같이 먹어도 괜찮겠어? 이건 천교랑 보살이 주요 먹으라고 남겨 둔 것인데….”
주요가 다가와 앉은 고상의 머리를 정리해 귀 뒤로 넘겨주며 말했다.
“나는 아상이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불러. 아상 좋아하지? 하방탕?”
주요가 특별히 조개를 두 개 담은 그릇을 고상에게 주며 말했다.
“우리 아상은 먹을 때가 제일 예쁘지.”
고상이 ‘히히히’ 웃으며 그릇을 받아들였다. 탁자 곁에 멀뚱히 서 있는 주자서 뒤로 온객행이 기척 없이 다가와 말했다.
“아상은 먹을 때 가장 조용하니까.”
온객행의 말에 주요가 소매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고상이 조개를 ‘후후’ 불다가 고개를 돌려 온객행을 보고 얼굴을 구겼다. 온객행은 그 모습이 귀여워 ‘하하하’ 하고 웃었다.

주자서는 누각 위에 서서 그 곳에 앉아 하방탕을 먹는 주요와 고상을 보았다. 그러다 기척 없이 나는 온객행의 목소리에 몸을 흠칫 떨고 몸을 조금 웅크렸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등허리에 손을 얹고 그를 탁자로 데려가 앉히고 자기도 주요 옆에 앉았다. 이미 덜어 놓은 그릇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온객행이 그릇 안에 있는 조개를 ‘후후’ 불며 말했다.
“오늘은 술이 없으니, 달빛에 취해야 하겠소.”
주요가 고상의 그릇에 조개를 더 얹어 주며 말했다.
“천룡을 대접하느라 남은 술이 얼마 없어. 칠석이 지나면 구기자가 열릴 테니 그때 또 담가야지.”
온객행이 조갯살을 후후 불어 주자서에게 내밀고 말했다.
“아깝게 됐네.”
주자서는 입 앞으로 온 조갯살을 또 안 먹을 수는 없어서 받아먹었다. 온객행이 하는 모습을 보고 있던 주요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정말 희첩으로 삼을 참이야?”
온객행이 주자서의 얼굴을 빤히 보더니 말했다.
“나는 겁이 많은 사람은 별로….”
주자서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고상이 국물을 ‘후룩’ 마시고 말했다.
“유서는 아직 아기라 겁이 많은 거야.”
고상의 말에 주요와 온객행이 ‘하하하’하고 웃었다.

고상과 주자서가 식기와 냄비를 정리했다. 온객행은 찻주전자에 물을 채워 차를 내리며 말했다.
“주요. 제가 종화산에 다녀올 동안 괜찮으시겠어요?”
주요가 태평호를 보며 말했다.
“왜 다시 돌아오려고?”
온객행이 주요에게 찻잔을 내밀며 말했다.
“이제 서호(西湖)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주요가 고개를 돌려 온객행을 보며 한숨을 쉬고 말했다.
“어휴. 흑망.”
온객행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저는 그 이름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주요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늘에서 부르는 이름을 어찌 할 수는 없으니까.”
온객행이 자기 몫의 차를 따르고 손에 찻잔을 쥔 채로 물었다.
“상수(湘水)로 돌아가시지 않습니까?”
주요는 참으로 오랜만에 고향의 이름을 들었다. 이제 고향에서 지낸 날보다 태평호에서 지낸 날이 더 길었다. 주요가 웃으며 온객행이 했던 말을 따라 똑같이 말했다.
“상수에는 아무것도 없네.”

온객행이 작게 한숨 쉬고 말했다.
“우왕(禹王)과 약속은 충분히 지키지 않으셨습니까?”
주요는 그 일이 너무 까마득하여 그 약속이 어떤 약속이었는지 잊었다. 그 약속에 대해 아는 사람은 모두 천궁으로 돌아가 세상의 일에 사람의 일에 관심을 끊어버렸다. 주요가 찻잔을 내려놓고 고개를 숙이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야… 아니야. 그런 것이 아니야….”
온객행은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주요는 울 듯 웃는 표정으로 물었다.
“어째서 신과 사람은 죽어서 같은 곳으로 가지 않을까?”
주요의 표정이 점점 울상이 되더니 조금 울먹이는 듯이 말했다.
“같은 곳으로만 갈 수 있다면 만날 수만 있다면 나락(奈落)에서라도 함께 할 텐데.”
온객행은 그 마음을 잘 알고 있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텅 빈 가슴을 채울 수 있는 것은 여태 주요도 온객행도 찾지 못했다.

말없이 그릇을 씻던 주자서가 불쑥 고상에게 물었다.
“아상. 우사첩께서는 언제 돌아오실까요?”
고상이 주자서가 씻은 그릇을 바구니에 옮겨 담으며 말했다.
“그러게 보통 사람이 사는 마을에 가면 뭐든 잔뜩 사 오니까 이레 걸릴 때도 있고, 열흘 걸릴 때도 있고, 보름 걸릴 때도 있고….”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한참 멀었네요.”
고상이 주자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고상이 고개를 들어 달을 보다 말했다.
“유서. 만약에 파사가 탁음대선을 만나러 종화산에 가면 말이야….”
주자서는 말없이 묵묵히 설거지를 했다. 고상이 한참 뜸을 들이다 말했다.
“나는 안 갈 거야.”
주자서가 설거지를 멈추고 고상을 보았다. 고상도 고개를 돌려 주자서를 보며 말했다.
“주요는 외로움을 많이 탄다구. 내가 같이 있어 줘야 해.”
주자서가 마지막으로 남은 그릇을 씻어서 바구니 안에 넣고 고개를 끄덕였다. 고상은 손에 들린 젖은 식기를 들고 다시 누각 위로 올라갔다. 온객행에게 건네니 온객행이 그릇이 담겨있던 함을 꺼내 와 식기들을 잘 닦아서 넣었다.

고상은 온객행과 주자서가 식기의 물기를 닦는 것을 구경하며 차를 따라 마셨다. 주요의 표정을 보니 또 쓸데없는 생각을 한 모양이다. 고상이 주요 옆에 앉아 머리를 풀고 말했다.
“주요. 머리가 다 엉망이 되었으니까 어서 매만져줘.”
주요가 얼른 웃는 얼굴을 꾸며 고상을 보고 말했다.
“그럴까?”
고상은 품속에서 나무로 만든 빗을 꺼내 주요에게 건네고 말했다.
“주요가 준 이 빗으로 빗으면 머리 결이 찰랑찰랑해.”
주요가 빗을 받아 들고 고상 머리에 있는 머리 장식을 조심스럽게 빼내고 말했다.
“동백나무로 만들어서 동백기름을 먹였거든.”
그리고 고상의 머리를 빗기 시작했다. 잘 빗은 후 가닥으로 나누어 땋고 올려서 금방 고상의 머리를 매만졌다. 고상이 다 정리한 식기 함을 난간 근처에 두는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종화산에는 언제 가?”
온객행이 자리에 앉아 주자서에게 차를 권하며 말했다.
“언제라도.”
주요가 고상에게 동백나무 빗을 돌려주었다. 고상은 빗을 받아 다시 품속에 넣고 온객행에게 물었다.
“얼마나 걸리는데?”
온객행이 잠깐 생각하더니 답했다.
“날아서 가면 사나흘 내로 도착할 거야.”
고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를 마시려고 찻주전자로 팔을 뻗고 있던 주자서를 일으켜 주요 앞에 앉히고 품에서 빗을 꺼내 주자서의 머리를 빗으며 말했다.
“주요. 내가 해보려고 했는데 잘 안됐어. 어떻게 하는지 보여줘 봐.”
주요가 고상을 보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상. 우리 아상.”
고상이 배시시 웃으며 주자서의 머리를 풀었다. 고상과 주요가 주자서의 머리를 붙들고 한참 법석을 떨자 온객행이 자리에서 일어나 누각 아래로 내려갔다. 온객행의 뒷모습을 힐끔 본 고상이 말했다.
“주요. 유서는 꼭 가야 해?”
주요가 주자서의 머리를 틀어 올려 상투를 틀고 말했다.
“잘 모르겠어. 사내를 지키고 싶은 마음은 없거든.”
고상이 다급하게 말했다.
“아이참! 유서는 다른 사내랑 달라! 내 아이 잖아요.”
주요가 ‘하하하’ 웃고 말했다.
“아상. 그의 정체가 탄로 나면 나도 파사도 지켜줄 수 없어. 어쩌면 계속 이동하는 것이 제일 안전할 지도 몰라.”

고상이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
“위험하다니? 왜?”
주요가 고상의 머리 위에 꽃 비녀를 하나 꺼내 주자서의 머리를 고정하고 말했다.
“아상. 그러니까 이제부터 내가 읽으라고 하는 것들은 읽어. 글을 깨치는데 한 갑자나 걸렸는데 사용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야?”
고상이 주자서의 앞으로 가서 주자서의 머리를 이리저리 돌려보고 말했다.
“예쁘다. 머리를 다 올리는 것도 나쁘지 않네.”
주요가 고상을 보고 고개를 흔들더니 주자서에게 물었다.
“유서. 너도 글을 읽을 줄 알지? 황제가 누구인지도 알고?”
주자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주요가 고상을 보며 말했다.
“자, 봐. 너의 아이도 아는데 네가 모르면 어떡해?”
고상이 입을 꾹 다물고 주자서를 쏘아보았다.

주요가 자리에서 일어나 고상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산천대제(山川大帝)께서 아시기 전에 황룡 후토대선을 찾아야 해.”
고상이 고개를 연신 끄덕이다 주요를 보고 말했다.
“근데 그 얘기를 왜 나에게 해?”
주요가 미간을 찌푸리며 고상의 어깨를 토닥이고 말했다.
“너의 아이이니 네가 지켜야지.”
고상이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나는 안 갈 건데?”
주요가 고상의 얼굴을 마주 보며 말했다.
“아상?”
고상이 주요가 했던 것처럼 주요의 어깨를 잡고 마주 보며 말했다.
“아이참! 걱정하지 마! 파사도 우리 유서를 아주 좋아하니까.”
주요가 고상을 보고 말했다.
“아상. 다시는 유서를 만날 수 없을 지도 몰라.”
고상의 눈동자가 한동안 흔들렸지만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는 얼굴을 꾸며낸 고상이 말했다.
“아니야! 우리 유서는 나를 좋아해서 나를 만나러 올 거야. 그렇지?”
그리고 고개를 비스듬히 숙여 주자서를 보고 방긋 웃었다.

주자서도 고상을 마주 보고 웃기는 했지만 과연 약속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이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주자서의 능력 밖의 일이었다. 애당초 주자서는 어디 갈 마음이 없었다. 주요가 작게 코웃음 치고 어깨너머로 주자서를 보며 말했다.
“유서. 그대가 발의 후예라면 다시는 사람의 세계로 갈 수 없을 것이오.”
주자서가 당황한 듯 눈을 크게 뜨고 주요를 보았다. 주요가 고상을 탁자에 앉히고 말했다.
“발의 능력은 강력한 양기(陽氣)이니 삼청(三淸)은 물론, 천선(天仙)들도 그대를 원할 것이오.”
고상이 작게 숨을 들이켜고 물었다.
“허! 삼청께서? 우리 유서가 그렇게 귀한 사람이야?”
그리고는 주자서에게 바짝 붙어 앉아 그의 소매를 잡았다. 주자서는 소매를 붙잡아 오는 고상의 손이 기꺼워 몸을 가까이 붙였다.

주요가 자리에 앉아 다정하게 붙어 있는 둘을 보고 웃고는 말했다.
“그래. 너무 귀해서 탈이지. 마침 때 좋게 파사의 봉인이 풀려서 다행이야.”
고상이 고개를 돌려 주자서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
“유서. 나를 잊으면 안돼. 혹시 나중에 천존께서 신선으로 삼아서 천궁에 가면 꼭 나를 데리러 와야 해.”
주자서가 고상의 손을 맞잡고 물었다.
“아상. 저는… 저는 사람입니까?”
고상이 주자서의 물음에 주요를 보았다. 주요는 한참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것은 황룡을 만나게 되면 알게 될 것이오.”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황룡…. 황룡?”
온객행이 다시 누각 위로 올라와 주요에게 두루마리를 건넸다. 주요는 그 두루마리를 고상에게 주었다. 고상이 두루마리를 들고 글자를 하나하나 차근차근 읽었다. 고상이 뜻을 모르는 글자가 많다며 불평하자 주자서가 옆에서 내용을 읽어 주었다. 고상은 두루마리를 주자서에게 줘버리고 주자서가 읽는 것을 들었다.

주자서는 두루마리를 읽으면서 분명히 그 뜻을 이해하는데도 내용에 기가 막혀 어리둥절했다. ‘벌써 한 갑자 동안이나 공석이었던 북해 용왕의 자리를 흑망에게 사여(賜與)하다니….’ 주자서가 고개를 들어 온객행을 힐끔 보았다. 그의 짙은 색 장포 때문에 자꾸만 낮에 보았던 커다란 뱀이 떠올랐다. 온객행이 찻잔을 보고 있던 시선을 들어 주자서와 마주하자 주자서는 어깨를 펄쩍 뛰며 시선을 피했다. 온객행은 낮게 웃으며 말했다.
“유서. 그렇게 겁먹을 것 없네. 나는 지네처럼 물지 않으니.”
온객행의 말에 주요가 작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그러게 저 지네를 어쩌지?”
고상이 주자서가 방금 다 읽은 두루마리를 들어 다시 온객행에게 주고 말했다.
“그럼 파사는 언제 가?”
온객행이 고상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왜 이렇게 나를 보내고 싶어 하는 거야? 지금 갈까?”
고상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니! 유서는 못 날잖아. 어떻게 가?”
온객행이 미간을 찌푸리고 주요를 보며 말했다.
“유서가 어디를 가는데?”

주요가 소매로 입을 가리고 웃으며 말했다.
“그대의 스승인 탁음대선께도 좋은 구경을 하게 해드려야지.”
온객행이 고상을 보고 말했다.
“아상. 너는 날 수 있잖아.”
고상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날 수 있지.”
주요가 온객행에게 말했다.
“아상은 안 간데.”
주요의 말에 주자서가 고개를 획 돌려서 고상을 보고 말했다.
“아상?!”
고상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자서의 어깨에 팔을 둘러 기대고 말했다.
“아이참! 우리 아가. 걱정하지 마. 온객행이 지켜줄 거야. 온객행은 흑룡이 될 몸이니까 걱정할 것 없어.”
온객행이 주요와 고상을 보고 주자서에게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나랑 사람이랑 둘이 가라고? 종화산에?”
주요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람은 밥도 잘 챙겨 먹여야 하고 잠도 잘 재워야 하고….”

온객행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요에게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주요! 그러지 말고 태평호에 두고 나 혼자 서둘러 다녀오는 것이 낫지 않겠소?”
주요가 ‘쯧’하고 혀를 차고 말했다.
“대신 나는 저 지네를 맡을 테니. 자네도 알지 않는가 저 지네의 세 치 혀가 우리를 태평호로 이끌었다는 것을.”
온객행은 뭐라고 말을 하려고 한참 입을 달싹이다가 크게 한숨을 쉬고 자리에 털썩 앉았다. 주자서는 자신의 어깨에 팔을 둘러 기댄 고상을 애처롭게 바라보았으나 고상은 이리저리 시선을 피했다. 온객행은 찻물로 입을 축이고 말했다.
“사나흘은 고사(姑捨)하고 보름도 더 걸리겠는데?”
주요가 긍정하듯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나도 보름 정도는 저 지네를 묶어 둘 방법이 있지.”
온객행이 주요를 힐끔 보고 코웃음 치며 말했다.
“사자형제를 부르게?”
주요가 온객행을 마주 보고 웃으며 말했다.
“나에게는 천도(天桃)만큼 귀하고 값진 것들이 많으니….”
온객행은 고개를 흔들며 고상을 보았다.

서왕모의 천도정원이 있는 옥산(玉山)에서 갓 태어난 화사(花蛇)는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영약이다. 고상을 살려준 것은 순전히 변덕이었다. 서왕모에게 부탁을 하려고 갔다가 결국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 아마 그때 서왕모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영력이 없는 보통의 사람이 천도를 먹으면 영혼이 타버린다는 것을. ‘그래서 내어주지 않았겠지.’ 온객행은 이유 없이 금모원군을 원망한 것 같아 부끄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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