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扇 第7

常恐秋節至 항상 두려운 것은 가을철 이르러

온객행은 들썩이는 주서의 몸을 감싸 안고 그를 달래 보려고 했다. 울다가 혼절이라도 할까 온객행은 계속해서 주서의 귓가에 속삭였다.
“아서. 진정해. 괜찮아.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온객행은 한참을 달래느라 객실의 등롱이 꺼지는 것도 몰랐다. 주서가 조금 진정되었을 때 온객행이 말했다.
“아서. 정말 미안해. 내가 너무 무례했지? 미안해.”
주서는 대답없이 온객행의 앞섶을 조금 더 세게 움켜쥐었다. 온객행은 할 수만 있다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고 싶었다.
“아서. 나는 신의상단 셋째아들 온객행이야. 나는 형제들 중에 제일 못나서 벼슬도 없고, 아마 상단을 잇지도 못할 거야.”
주서는 조용히 온객행이 하는 말을 들었다.
“나는 황실이니 귀족이니 그런 것들은 별로 관심이 없어.”
온객행의 말에 주서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온객행은 그 몸짓이 반가워서 말했다.
“아서도 지위나 신분은 상관없지?”
온객행은 대답을 바라고 물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주서를 좀더 가깝게 추슬러 안고 말했다.
“부친께서는 모친이 돌아가시고 조금 이상해지셨어. 명예나 권력 같은 것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이었는데… 언제 수단에서 목적으로 바뀌신걸까?”

신의상단은 주자서도 들어본 이름이다. 조황후의 당질과 혼약을 맺고 내전에 있는 모든 후궁에게 선물을 보낸 적이 있기 때문이다. 평소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 부태후와 조황후에게서 아무런 트집도 잡히지 않았던 것은 양도 양이었지만 부태후와 조황후의 취향을 적절히 맞추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주첩여가 받은 선물은 후궁들이 모두 나누어 가지고 난 후에 남은 묵은 차와 아무도 원하지 않은 색깔의 비단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주첩여가 가진 것들 중에 가장 품질이 좋았다. 온객행은 주자서가 생각한 것 보다 훨씬 대단한 집의 자제였다. 그의 집에서 길을 잃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 일지도 모르겠다. 귀동냥으로 들었던 신의상단의 재력이 사실이라면 온택에서 별탈없이 빠져나온 것 만으로도 운이 좋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물론 금방 다시 잡혔지만. 주자서는 온객행이 하는 말을 듣고 있다가 문득 자신이 죽은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축축해진 온객행의 앞섶을 놓고 주자서는 몸을 바로 하고 온객행을 보았다. 온객행은 품에서 떨어지는 주자서를 놓아주고 웃으며 말했다.
“아서. 울지 마. 내가 잘못했어.”

주자서는 자신의 뺨에 닿은 온객행의 손에 얼굴을 잠시 기댔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눈앞에 있는 온객행을 보았다. 손을 들어 축축해진 온객행의 옷깃을 쓸었다. 잘생긴 얼굴과 잘 어울리는 푸른색 비단. 머리를 장식한 은으로 만든 관 역시 아주 잘 어울렸다. 주자서도 한 때 이런 얼굴을 한 적이 있었다. 출신 상관없이 능력을 가장 중요시한 부친 덕분에 주자서는 서출임에도 다른 형제자매와 허물없이 어울릴 수 있었다. 주자서는 지금 자신의 모습이 어떨지 궁금했다. 황궁에서 매일 원치 않아도 봐야 했던 면경 속의 서부인은 주자서가 아니었다. 창백하게 야위고 구부정한 여인은 빈말로라도 미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주자서는 면경 속에서 보았던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온객행이 보고 있을 까봐 부끄러워졌다. 주자서는 고개를 숙이고 소매를 들어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
“달 모양의 부채로는 부끄러움을 다 가리지 못하니….(3)
그러다 주자서는 여태 온객행에게 보인 추태가 떠올라 얼굴이 달아올랐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몸에 팔을 둘러 끌어안고 말했다.
“나는 여기서 서남풍 불어오길 기다린다오.(3)
주자서는 다정한 온객행의 답변에 자기도 모르게 온객행의 품에 들어가고 싶어 졌다. ‘서남풍 되어 당신의 품으로 날아가게요.’(4)주자서는 온객행을 밀어내고 넙죽 엎드려 말했다.
“온공자께서 베푸신 은혜를 갚을 길이 없습니다. 하오나 저는 이미 혼인한 몸으로 온공자의 마음에 답해드릴 수 없습니다.”
주자서는 그동안의 친절이 어쩌면 온객행이 주자서를 여인이라고 착각한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온객행이 그동안 자신을 희롱한 것이라며 주자서의 멱살을 쥐어도 주자서는 할 말이 없었다. 주자서의 행동은 충분히 오해의 소지가 많았다. 매달리고 의지하는 무르고 멍청한 여인의 억지를 받아준 온객행은 어떻게 보면 피해자였다. 그런데도 온객행은 되려 미안하다며 몇차례나 주자서에게 사과했다.

주자서는 자신의 행동이 부끄럽고 죄송스러워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말했다.
“온공자께 큰 폐를 끼쳤습니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팔을 잡아 그를 일으키며 말했다.
“아서. 무슨 소리야 아니야. 폐라니.”
주자서가 고집스럽게 온객행의 시선을 피하자 온객행이 말했다.
“아서는 나에게 아무런 폐도 끼치지 않았어. 내 마음대로 이리저리 휘두르기만 했는걸.”
주자서는 고개를 흔들고 말했다.
“온공자. 주서는 저의….”
온객행이 주자서의 양 뺨을 손으로 잡았다. 주자서가 당황하여 말을 멈춘 사이 온객행이 입을 맞춰왔다. 주자서가 온객행의 어깨를 밀고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온공자! 저는 여인이 아닙니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말에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아서. 그게 무슨 소리야. 여인이라니? 아서가 왜 여인이야?”
주자서가 고개를 돌려 온객행을 보았다. 온객행은 다시 얼굴을 붙여 주자서에게 입술을 붙이며 말했다.
“노온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계속 할 거야.”
주자서는 손을 들어 온객행의 얼굴을 밀며 말했다.
“온공자! 잠시만요. 잠시만.”
온객행은 주자서의 말을 듣는 척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입술을 붙여왔다. 주자서는 조금 짜증이 나서 버럭 소리쳤다.
“노온!”
온객행은 주자서의 뺨에 입을 맞추더니 주자서를 놓아주고 말했다.
“응. 아서.”

주자서는 온객행과 거리를 조금 벌리고 말했다.
“노온. 잠시만요.”
온객행은 소란으로 바닥에 떨어진 피풍의를 털어 주자서에게 둘러주고 말했다.
“아서. 내가 미안해. 내가 너무 성급했던 것 같아.”
주자서는 눈썹을 구기며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신의상단의….”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는 대를 잇거나 상단을 잇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그런데 아서는 벌써 혼인을 했어?”
주자서는 조금 멍한 얼굴로 온객행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온객행의 눈썹이 축 쳐져서 울상을 하고 주자서에게 물었다.
“누구랑?”
주자서는 한참 입을 달싹이다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온객행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물었다.
“죽었어?”
주자서가 온객행을 보고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온객행이 다시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상관없네.”
주자서는 웃는 온객행의 얼굴에 손을 올렸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손에 고개를 기대더니 눈을 감았다. 주자서는 눈썹을 찌푸리고 온객행의 뺨을 꼬집었다. 온객행이 깜짝 놀라 주자서의 손을 잡고 말했다.
“아야! 아서!”
주자서는 소매를 걷어 온객행에게 팔을 내밀고 말했다.
“꼬집어 보시오.”
온객행은 자신의 뺨을 잡고 주자서가 내민 팔을 한참 보더니 다시 소매를 내려주고 주자서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아서. 심통이 나서 그래?”

주서가 직접 걷어 올린 소매 사이로 보인 팔뚝은 온객행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하얗고 가늘다. 온객행은 혹여나 잘못 만지면 부러질까 조심스럽게 소매를 내리고 주서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혹시 화가 났는지 물었다. 주서는 그동안 보았던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뭔가를 정확히 바라보는 기색이 없던 눈동자에 광채가 희미하게 보였다. 어쩌면 그의 정신이 돌아오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온객행은 한쪽에 밀어 두었던 이불을 다시 펴서 주서를 눕히고 말했다.
“아서. 몸이 피곤해서 그래. 마차로 이동하느라 제대로 쉬지 못했잖아.”
주서는 온객행이 하는대로 고분고분 말을 듣다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온객행?”
온객행은 주서가 부르는 이름이 좋아서 웃으며 말했다.
“응. 아서가 불러주니 더 좋다 그 이름.”
주서는 침상에 걸터앉은 온객행의 얼굴을 양손으로 더듬더니 몸 이곳저곳을 더듬었다. 온객행이 주서의 손을 잡고 그를 멈추며 말했다.
“아서! 이러지 마. 난 지금 엄청 참고 있단 말이야. 내가 아서에게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온객행의 말에 주서의 예쁜 눈썹이 찡그려졌다. 그 모습이 귀여워 온객행은 부스스 웃었다.

주서가 온객행에게 물었다.
“여기… 여기가 어디입니까?”
온객행은 주서를 다시 침상 위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준 뒤 피풍의까지 덮어주고 말했다.
“여긴 이주야. 우리 촉경에 가고 있잖아.”
주서는 고개를 숙이고 온객행이 한 말을 되새겼다.
“이주….”
온객행은 고개를 숙인 주서를 보고 있다가 탁자 위에 꺼진 등롱을 보았다. 밖에서 희미하게 들어오는 빛으로 주서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조금 아쉬웠다. 온객행은 신발을 벗고 침상 위로 올라갔다. 그 전에 했던 것처럼 이불을 덮고 있는 주서를 끌어안고 자려는데 주서의 몸이 뻣뻣하게 굳어 있다. 온객행은 주서의 머리에 고개를 기대고 그의 등허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서. 나 너무 졸려.”
주서는 한참 온객행의 품에서 바르작대다가 온객행의 가슴에 고개를 기대고 잠이 들었다. 온객행은 주서의 행동이 귀여워서 주서의 이마에 입술을 꾹 눌러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고 주서를 가깝게 끌어안았다.

다음날 아침 주자서가 먼저 눈을 떴다. 푹 자고 일어나니 멍했던 정신이 돌아오는 기분이다. 주자서는 고개를 들어 자신을 안고 있는 온객행을 보았다. 꿈인 줄로만 알았는데 아니었다. 죽은 줄로만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주자서는 그동안 온객행에게 보였던 추태가 떠올라서 눈을 꼭 감고 ‘끙’하고 신음했다. 온객행이 정말로 실존하는 인물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주자서는 여태까지 죽음을 눈앞에 둔 죄인에서 행동거지가 수상한 남자가 되어버렸다. 주자서도 딱히 죽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살아 있다는 것에 조금은 안도했다. 그러다 여태 온객행에게 했던 매달리는 행동이 떠올라 땅속으로 꺼지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주자서는 잠깐 자신이 베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망각한 채로 뺨을 비비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주자서의 머리 위로 낮게 웃는 소리가 났다. 주자서는 이불을 슬쩍 내리고 고개를 들었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아서. 벌써 일어났어?”
주자서는 다정한 온객행의 아침 인사에 되려 죄스러워졌다. 온객행만은 속이고 싶지 않았는데 주자서에 대해 이미 다 알고 있는 나찰인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밖에서 하인이 기별을 하고 들어왔다. 주자서는 온객행과 한 침상에 누워 있는 것이 부끄러워 눈을 꼭 감아 버렸다. 나부몽이 탕약을 탁자위에 올려 놓고 말했다.
“공자. 탕약입니다.”
나부몽의 목소리에 주자서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온객행이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주서를 침상에 눕히고 말했다.
“부몽. 강주로 가는 배는 어떻게 됐어?”
나부몽이 꺼져가는 화로에 탄을 채우고 찻물을 올리며 말했다.
“신의상단의 화물선인데 크기가 커서 객실도 있습니다. 가주께서 준비하신 길이라 거절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서도 탕약 덕분인지 조금 회복한 것 같아. 오늘은 언제 출발해?”
나부몽이 객실의 창문을 열고 해를 가늠하더니 말했다.
“어서 준비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온객행이 침상에서 일어나 탁자위에 올려 놓은 탕약을 들고 주서에게 다가가 말했다.
“아서. 일어났어?”
나부몽은 침상 위에 이불더미를 물끄러미 보다가 작게 한숨을 쉬고 객실을 나갔다. 온객행이 나가는 나부몽에게 말했다.
“부몽. 간단히 요기할 것 좀 준비해줘. 배 위에서 먹을게.”
나부몽은 온객행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고 장지문을 닫았다.

온객행이 침상의 이불을 걷으며 말했다.
“아서. 일어나. 아무도 없어.”
주서는 눈을 뜨고 객실을 둘러보더니 천천히 침상에서 일어났다. 온객행은 항상 하던대로 탕약을 한술 떠서 후후 불어 주서의 입 앞으로 가져갔다. 주서는 온객행을 한참 보고 있다가 온객행이 들고 있는 탕약 그릇을 빼앗아 들고 후후 불어 마셨다. 온객행은 주서가 자의로 뭔가를 먹거나 마시는 것을 본적이 없는 터라 기뻐서 말했다.
“아서, 뭐 먹고 싶은 것 없어? 뭐든 말해 봐.”
주서는 고개를 흔드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온객행은 아쉬웠지만 더 말하지 않고 주서에게 입힐 옷을 골랐다. 온객행은 주로 밝은 색깔의 옷을 골라서 주서에게 입혔는데, 하얀 옷을 입고 있는 주서는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같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내의가 살짝 비치는 회색 중의를 보고 온객행은 괜히 부끄러워져서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아서. 남쪽으로 내려와서 그런가? 조금 덥지 않아?”
그 사이 탕약을 모두 비운 주서는 침상에서 내려와 신발을 신고 있었다. 온객행이 놀라서 주서에게 다가가 말했다.
“아서. 내가 도와 줄게. 그동안 계속 내가 신겨 줬잖아.”
주서가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말했다.
“이제… 이제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온객행이 크게 당황하며 주서의 내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아서?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었는데….”

주서는 온객행이 골라 놓은 옷이 걸린 병풍 쪽으로 이동하더니 온객행이 고른 옷을 보고 있다가 입기 시작했다. 온객행이 주서의 시중을 들기 위해 병풍으로 다가가자 주서가 다급하게 손을 내젓고 말했다.
“온공자! 혼자 할 수 있습니다.”
온객행은 주서의 말을 무시하고 다가가 어설프게 걸친 얇은 회색 중의를 매만지며 말했다.
“아서. 아침부터 내 입맞춤을 원하는 거야?”
가까워진 거리에 딱딱하게 굳어버린 주서가 손을 들어 다가오는 온객행을 밀며 말했다.
“노온. 노온! 혼자 할 수 있습니다.”
온객행은 병풍에 걸려있는 장포를 둘러주고 소매를 정리해 주었다. 검은색 요대를 허리에 두르느라 온객행은 주서를 품에 안고 있었다. 등 뒤로 매듭을 짓고 앞으로 정리했다. 온객행이 주서의 앞섶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말했다.
“아서. 오늘은 조금 서둘러야 하니까.”
온객행의 시선에 들어온 주서의 목덜미와 뺨이 빨갛다. 온객행은 혈색이 좋아진 주서의 모습을 보고 조금 마음을 놓았다가 빨갛게 달아오른 그를 보고 정욕이 일었다. 그를 보는 것만으로 시선이 데이는 기분이다. 온객행은 저도 모르게 주서에게 얼굴을 가깝게 붙였다. 주서는 온객행의 가슴에 가지런히 손을 올리고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노온. 서두르신다고….”
온객행은 아쉬워서 주서의 귓가에 작게 한숨 쉬고 말했다.
“응. 어서 가지 않으면 배를 놓칠지도 몰라.”

온객행은 정신이 있는 주서를 너무 오랜만에 마주해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마차에 탈 때는 항상 끌어안고 있었기 때문에 온객행은 마차에 타자마자 자연스럽게 주서의 어깨에 팔을 둘러 안았다. 주서는 온객행의 행동에 조금 경직되기는 했지만 뭐라고 더 말하지는 않았다. 낭수의 포구는 물줄기의 시작점이라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신의상단의 커다란 배가 포구를 차지하고 짐을 싣고 있었다. 선창에서 화물선으로 이어진 다리 위로 수레와 말이 보였다. 마차에서 내린 온객행에게 나부몽이 말했다.
“지금 선적을 하고 있어서 조금 기다리셔야 합니다.”
온객행이 마차에서 내리는 주서를 부축하며 말했다.
“그래? 강주(江州)로 먼저 간다고 했지?”
나부몽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강주에서 짐을 내리고 다시 짐을 싣고 장강을 따라 촉경으로 갑니다.”
온객행이 마차에서 내린 주서의 옷매무새를 만지며 말했다.
“같은 배로 가는가?”
나부몽이 고개를 젓고 말했다.
“강주에서 싣는 짐은 많지 않아서 아마 아닐 겁니다.”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고 물었다.
“얼마나 걸리겠는가?”
나부몽이 온객행과 주서를 배로 안내하며 말했다.
“이틀이면 도착합니다.”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고 주서를 부축하며 말했다.
“아서 강주에는 가보았어?”
주서는 온객행이 한 말을 듣지 못한 듯했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낭수의 포구를 보았다.

온객행은 배에 타자마자 상갑판에서 선장을 만났다. 이번엔 주서도 곁에 두었다. 주서는 배의 난간에 기대어 낭수를 보았다. 강바람에 주서가 입은 옷이 휘날린다. 그 모습이 위태로워 온객행은 나부몽에게 주서에게서 눈을 떼지 말라는 명령을 했다. 나부몽은 하인을 시켜 여우털 피풍의를 가져오게 시켰다. 주서가 입은 옷은 나풀거려 예쁘기는 했지만 강바람을 맞기에는 얇아 보였다. 나부몽이 주서에게 피풍의를 둘러주자 주서가 거절하며 말했다.
“아. 괜찮습니다.”
나부몽은 주서의 거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피풍의를 둘러주며 말했다.
“한증이 있으니 몸을 따뜻하게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주서가 피풍의를 여미는 나부몽을 보고 말했다.
“그렇습니까.”
나부몽은 전보다 힘이 들어간 주서의 목소리에 조금 마음을 놓았다. 나부몽이 주서의 곁에 서며 말했다.
“공자께서는 변덕이 심하고 쉽게 실증을 내는 분이시니 조금만 더 어울려 주십시오.”
주서가 나부몽을 힐끔 보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선장과 온객행이 상단의 거래 물품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나부몽은 차를 내렸고 주서는 그 옆에 앉아 점점 멀어지는 이주의 포구를 구경했다.

강바람이 세차다. 돛이 높게 올라가고 선원들이 배위로 올라와서 뱃일을 시작했다. 온객행은 나부몽을 힐끔 보더니 선장과 하던 대화를 잠시 멈추고 말했다.
“부몽. 아서랑 같이 객실로 가 있는 것이 좋겠어.”
온객행의 말을 들은 선장이 주서를 힐끔 쳐다봤다. 나부몽은 앉아 있는 주서를 부축해서 갑판아래 선미에 있는 객실로 이동했다. 온객행이 선장을 보고 다시 장부를 펼쳤다. 화물의 확인을 하인에게 부탁하는 것으로 온객행이 꼭 해야 할 일들을 얼추 마쳤다. 선원을 관리하고 배로 짐을 실어 나르는 것은 장안에서도 종종 했던 일이었기 때문에 어려운 것은 없었다. 단지 조금 거슬리는 것이 있다면 선원들이 힐끔힐끔 주서를 쳐다보는 것 정도다. 온객행은 빠르게 마무리하고 객실로 향했다. 선장은 온객행에게 뭔가 묻고 싶은 것이 있는 눈치였지만 온객행은 모르는 척하고 재빨리 자리를 떴다. 온객행이 객실에 들어서자 세찬 강바람이 온객행의 뺨을 스쳤다. 주서가 창문을 열고 강물을 구경하고 있었다. 벌써 강물 끝에 해가 걸렸다. 나부몽이 객실의 등롱을 밝히며 온객행에게 인사했다.
“시장하시지 않습니까? 다과만 드시고….”
나부몽이 객실을 나가며 말했다.
“저녁을 준비할 테니 잠시 기다리십시오.”
온객행이 나부몽을 보고 말했다.
“부몽. 고마워.”

온객행이 창밖을 보고 있는 주서에게 다가가 말했다.
“아서.”
주서는 고개만 돌려 어깨너머로 온객행을 힐끔 보고 말했다.
“온공자.”
온객행은 주서에게 뒤로 다가가 안으며 말했다.
“왜 또 온공자야.”
주서는 어깨에 기댄 온객행의 고개를 피하며 말했다.
“노온! 노온.”
온객행은 아쉬워서 주서의 목 뒷덜미에 입을 맞췄다. 주서가 몸을 부르르 떠는 것이 귀여워 온객행은 웃었다. 주서는 고개를 돌려 장지문을 보고 말했다.
“호위하는 분은…?”
온객행이 주서의 허리를 잡고 말했다.
“밥을 먹어야지. 아서는 뭐 좀 먹었어?”
주서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돌려 화로 쪽으로 향했다. 온객행은 주서의 피하는 기색을 읽고 조금 서운해졌다. 객실의 창문을 닫고 주서가 앉은 의자의 팔걸이에 걸터앉아 주서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말했다.
“아서. 갑자기 왜 그래?”
주서가 찻잔에 차를 따라 온객행에게 건네고 말했다.
“제가 뭘 말입니까?”
주서가 건네는 찻잔을 받아 입을 축인 온객행이 말했다.
“뭔가… 뭔가 달라. 전에는 좀 더… 아서는 좀 더….”

주서가 불편하다는 듯 헛기침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화로를 불쏘시개로 뒤적이며 말했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온객행은 주서가 앉아 있던 의자에 앉아 주서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뭔가 전에는 좀 더 친밀했던 것 같은데… 아서….”
온객행은 멀어지려는 주서를 끌어당겨 허리를 안았다. 주서는 딱히 벗어나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마주 안지도 않았다. 온객행은 괜히 서운하여 주서의 가슴에 머리를 비비고 말했다.
“아서. 부끄러워서 그래? 괜찮아.”
주서는 온객행의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나부몽이 기별도 없이 장지문을 열고 들어와 탁자에 찬합을 올려 놓고 말했다.
“공자. 와서 요기하세요.”
주서는 당황하여 온객행의 팔을 잡아당겼다.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아서! 정말 왜 그래? 부몽에게는 한 침상에 있는 것도 여러 번 보였는데 왜 이제 와서 내외하는 거야?”
온객행의 말에 주서는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런 주서의 모습을 본 나부몽이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뭘 이제 와서 부끄러워하십니까.”
주서는 고개를 푹 숙이고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
“그동안 정말 폐가 많았습니다.”
나부몽은 다시 밖으로 향하며 말했다.
“한증에 좋은 약이 아니라 정신에 좋은 약인가 봅니다.”

주서는 전과 달리 음식을 거부하지 않고 잘 먹었다. 자신이 먹을 수 있는 양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듯 전보다는 많이 먹었지만 보통 사람과 비교하면 턱없이 적은 양이다. 온객행은 끊임없이 주서에게 음식을 권했다. 온객행의 끈질긴 권유가 지겨웠는지 주서가 말했다.
“속을 게워 내는 것은 큰 일이라 더 먹고 싶지 않습니다.”
주서의 말을 들은 온객행은 놀라서 더는 음식을 권하지 않았다. 온객행은 탕약에 내장의 기를 보하는 약재를 추가했다. 온객행이 영견에 물을 묻혀 주서의 얼굴을 닦아주며 말했다.
“아서. 나에게 좀 더 의지해도 좋아. 응? 아서?”
주서는 온객행의 손에 있는 영견을 빼앗아 협탁 위에 올려 놓고 대야에 물을 받아 얼굴을 씻고 닦았다. 주서가 얼굴을 닦으며 말했다.
“노온. 저는 괜찮습니다.”
온객행은 주서를 빤히 보았다. 방금 씻어서 맑은 얼굴이 예뻐서 온객행은 웃으며 얼굴을 붙였다. 주서는 불편한 기색을 비치며 온객행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노온. 날이 늦었으니 어서 주무세요.”
온객행이 주서의 허리춤을 끌어당겨 안고 말했다.
“아서, 벌써 피곤해?”
주서는 온객행에게 벗어나기 위해 조금 몸부림치다가 금방 포기하고 작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매우 피곤합니다.”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주서를 침상 쪽으로 끌고 갔다. 주서는 온객행을 멈추고 말했다.
“노온! 노온! 이 곳은 노온께서 지내시는 객실이니 저는 이만….”
온객행은 주서에게 얼굴을 붙이고 물었다.
“아서는 이만?”
주서는 눈동자를 굴리더니 장지문을 열고 들어오는 나부몽을 보고 말했다.
“저는 하인들이 지내는 곳에서….”
온객행은 표정을 구기고 말했다.
“안돼. 아서는 벌써 두번이나 도망쳤잖아.”
주서는 온객행의 대답에 입을 달싹이다 다물어 버렸다. 온객행은 주서를 침상 근처에 세워놓고 피풍의를 벗겼다. 주서가 탈의하는 것을 돕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나부몽이 말했다.
“공자께서 남을 돌보는 일에 재능이 있는 줄 미처 몰랐습니다.”
온객행이 주서의 옷을 옷걸이에 걸고 말했다.
“남을 돌보는 일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아서를 돌보는 일을 잘하는 거야.”
나부몽은 콧방귀를 끼더니 화로에 찻물을 올렸다. 온객행이 침대의 휘장을 걷더니 이불을 보고 말했다.
“부몽! 이주에서 산 이불을 어디 두었지?”
나부몽이 객실을 나가며 말했다.
“제가 가져오겠습니다.”
온객행은 얼른 피풍의를 내의만 입고 있는 주서에게 둘러주고 화로 앞에 의자에 앉히며 말했다.
“아서, 춥지는 않아?”
주서는 작게 고개를 흔들고 찻잔을 들어 방금 끓은 차를 마셨다. 온객행이 옆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아서는 숙차를 좋아한다고 했지?”
주서는 작게 고개를 끄덕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온객행은 나부몽이 가지고 들어온 이불을 침상 위에 깔았다. 주서를 데려다 신발을 벗기고 눕힌 다음 이불을 덮어주며 말했다.
“아서. 성급하게 굴지 않을게. 아서가 나를 좋아할 수 있도록 노력할 거야.”
주서가 눈썹을 찌푸렸다. 온객행은 낮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주서의 눈썹을 쓸고 말했다.
“나는 아서가 아주 많이 좋으니까 아서도 나를 좋아해줬으면 좋겠어.”
주서가 눈을 가늘게 뜨고 온객행을 보고 물었다.
“좋아한다는 것은 대체 무슨 뜻입니까?”
온객행은 한참 고민하다가 화로에 탄을 채워 넣고 있던 나부몽을 슬쩍 보고 말했다.
“그러니까… 자꾸 보고 싶고… 같이 있고 싶고….”
온객행이 더 말하려고 하는데 나부몽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공자!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리고 서둘러 객실을 나갔다.

나부몽의 행동을 보고 있던 주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이불로 몸을 가리며 말했다.
“온공자. 저는… 저는….”
온객행이 당황하며 말했다.
“아서! 아서! 아니야. 아서가 원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야.”
주서가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제가 원하지 않는 것이요?”
온객행은 주서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서의 뺨을 쓸고 말했다.
“응. 아서가 원하지 않는 것은 안 해.”
그리고 주서에게 입을 맞췄다. 주서가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온공자….”
온객행은 부스스 웃고는 주서를 안고 말했다.
“아서. 일부러 그러는 거야?”
그리고는 주서의 목덜미에 또 입을 맞췄다. 주서는 뭔가 말할 것처럼 숨을 헐떡이다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온객행은 주서의 등허리를 쓸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아서가 가지 말라고 하면 안 갈게.”
주서는 온객행의 얼굴을 한동안 빤히 쳐다보더니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린 주서의 목덜미가 빨갛다. 온객행은 몸을 돌려 평상에 이불을 펴고 말했다.
“나는 여기서 잘 테니까 혹시라도 무서워지면 말해. 아서. 언제든지 부르면 갈게.”
온객행이 등롱불을 끄면서 보았던 주서의 표정은 부끄러운 듯 슬퍼 보여서 온객행은 한참 고민했다. 탁자에 있는 등롱을 마지막으로 객실에 어둠이 내려 앉았다. 온객행은 평상에 잠시 누워있다가 일정해진 주서의 숨소리를 듣고 침상으로 다가갔다. 어둠에 익숙해진 온객행의 시야에 보이는 주서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온객행은 주서에게 손을 뻗었다가 거둬드렸다. 강물이 흐르는 소리 사이로 온객행의 한탄이 나지막이 들렸다.
“어떻게 해야 아서가 나를 원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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