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령 25화

산하령 25화에 두사람의 대사 에 대한 고찰이다. 이 짧은 대화에 들어간 레퍼런스를 찾아보도록 하겠다. 4언율시라고 치면 각 구절마다 레퍼런스가 다르다.

天涯孤鴻 無根行客
세상 끝 외로운 기러기 갈 곳 없는 여행객
之手 坐看雲
그대 손을 잡고 앉아 떠도는 구름 바라본다.


주자서가 말한 부분에 대해 알아보자. 일단 이름얘기를 하면서 앞부분에 후술할 시들의 구절을 읊었다. 산하령의 시기적 배경이 언제인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당말기에서 송후기로 보는 사람이 많기떄문에 시대와 맞지않는 인용이 많은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어차피 무협이니 그냥 그러려니 하면 되는 것이다.
卜算子·黄州定慧院寓居作 蘇軾(소식)
복산자, 황주 정혜원 타향살이중 짓다.
缺月掛疏桐 漏斷人初靜
이지러진 달은 잎이 진 오동나무에 걸렸고 밤 깊어지니 사람들도 조용해 졌는데
時見幽人獨往來 縹緲孤鴻
누가 보랴 幽人(유인) 홀로 오가는 것 아득히 멀리엔 외로운 기러기 그림자
驚起卻回頭 有恨無人省
놀라 일어난 기러기 머리를 돌려 사람들 돌보지 않는 것에 한을 품고
揀盡寒枝不肯棲 楓落吳江冷
차가운 가지 골라 자려해도 내키지 않아 외롭게도 싸늘한 모래섬에 있느냐.
더보기

소식(蘇軾)은 원풍(元豐) 3년(1080) 2월 황주(黃州)로 좌천되어 원풍 7년까지 황주에 유배되어 있었으며 황주에 유배되어 있는 자기 자신을 외기러기에 비유하여 맑고 고상하게 살려고 애썼지만 결국에는 황주에 유배되어 있는 신세임을 한탄한 노래이다.
소식은 재능에 비해 출세운이 별로였는지 유배도 많이다니고 좌천도 많이 당했다. 이 시를 보면 참 착잡한 마음이 잘 담겨있는데 무엇보다 저 멀리 보이는 기러기도 아니고 그 기러기의 그림자다. 기러기도 되지 못해 겨우 바닥에 비추는 외로운 그림자 신세라는 뜻이다. 물론 주자서가 의미한게 이 부분이지는 나도 모르지만 만약 그렇다면 정말 크아아아 가슴이 찢어진다. 과몰입

  1. 卜算子(복산자) : 사패명(詞牌名)으로 복산자령(卜算子令), 백척루(百尺樓)등으로 불리며, 쌍조(雙調) 44자이다. 대표적 작품에는 육유의 복산자(卜算子·咏梅)가 있다.
  2. 定慧院(정혜원) : 지금의 호북성(湖北省) 황강현(黃崗縣) 동남쪽에 있다. 蘇軾이 황주에 유배 되었을 때 머물던 곳이다.
  3. 缺月(결월) : 이지러진 달. 그믐에 지는 달.
  4. 漏斷(누단) : 물시계가 끊어짐. 밤이 깊음을 말한다. 更漏(경루)는 밤 동안의 시간(五更)을 알리는 누수(漏水)이다.
  5. 初靜(초정) : 비로소 조용해지다.
  6. 幽人(유인) : 유거(幽居)하는 사람, 은사(隱士). 蘇軾(소식) 자신을 말한다.
  7. 縹緲(표묘) : 멀고 어렴풋하다. 가물가물하고 희미하다.
  8. 孤鴻(고홍) : 외기러기. 鴻은 큰 기러기(大雁).
  9. 回頭(회두) : 머리를 돌이킴. 자신을 돌아봄.
  10. 揀盡(간진) : 고르고 고르다.
  11. 寒枝(한지) : 차가운 겨울 나뭇가지.
  12. 楓落吳江冷(풍락오강랭) : 보는 바가 듣는 바에 미치지 못한 경우를 비유한 고사이다.

    당나라 정세익(鄭世翼)이 최신명(崔信明)의 ‘풍락오강랭(楓落吳江冷)’의 구절을 듣고 직접 만났을 때 그 나머지 시 구절을 읽어 보고 실망했다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吳江(오강)은 무창 일대를 지나는 장강(長江). 삼국시대에 오나라에 속하여 오강이라 했다. 동파전집에는 이 부분이 “寂寞沙洲冷(적막하고 차가운 모래섬이라네.)”로 되어 있다. 이 사(詞)는 전송사(全宋詞) 및 동파전집(東坡全集)에 실려 있으며 송(宋) 신종(神宗) 원풍(元豊) 5년(1082) 12월 경 지은 시로 소식이 황주에 유배되어 있을 때 지은 사이다.

출처
憶少年·別歷下 晁補之(조부지)
젊은날을 기억하며, 역하에서 이별하다.
無窮官柳 無情畫舸 無根行客
끝없는 길가의 버들, 무정한 그림배들, 떠돌이 나그네들
南山尚相送 只高城人隔
남산은 항상 서로를 보내 주는데, 단지 높은 성은 사람 멀어지게 하네.
罨畫園林溪紺碧 算重來 盡成陳跡
다채로운 그림같은 정원계곡 붉고 푸른데, 다시 올 때면 수려 경치는 흔적만 있겠지.
劉郎鬢如此 況桃花顏色
유우석도 이미 반백이 되 다욌으니, 어찌 다시 붉은 도화빛 얼굴이 될 수 있을까?
더보기
조부지(1053-1110), 본명은 오구(五九), 별명은 귀래자(桂來子)는 북송의 시인이자 작가로 소동파의 문객이었다. 그는 서예와 그림에 능하고 시와 시에 능하며 문학에도 능하다. 장뢰(張首), 황정견(皇庭廣), 진관(秦官)과 함께 수문사사(蘇门師師)로 불리며, 장뢰와 함께 조장(趙張)이라 불린다.

송사(宋詞)는 송나라의 가장 특징적인 문학 양식이며 매 수 곡조명이 있는데 이것을 ‘사패(词牌)’라고 부르고 격률에 따라 가사를 지은 것을 의성(依声)이라고 하였다. 송사는 멀리 시경(诗经)과 초사(楚辞)는 물론 한, 위, 육조의 시가(汉魏六朝诗歌)로부터 양분을 흡수하여 발전하였고 이후 명, 청(明清)의 희곡, 소설 등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출처1 출처2

왜인지 당시(唐詩)에 비해 떨어지는 인지도 때문에 검색난이도가 높다. 여기서 나오는 떠돌이 나그네들이란 구절을 사용했다. 이래저래 온객행이 정처없이 떠돌았다는 것을 잘 안다는 느낌으로 쓴것일까? 정말 말하지 않아도 전부 이해했다는 느낌도 들고 하필 이렇게 쓸쓸한 느낌이 나게 이름을 지은 온객행도 유죄다.

주자서가 많은 시중에 왜 하필 이별하는 시를 골랐을까? 지목숨 버리는거 제일 잘하는 주자서가 일부러 이 시를 골랐다는 것은 자기 스스로도 끝이 멀지 않았음을 어쩌면 직감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칠규삼추정 삼년동안 사는건데 온객행이랑 다니면서 이래저래 무공도 많이쓰고 온객행을 만난 시점이 주자서가 진왕을 떠나고 1년정도 지난 후라는 설정을 보면 주자서가 이미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정확히는 모른다 여러번 말하지만 나는 알못이니까


온객행이 말한 부분을 살펴보자. 온객행 역시 주자서의 이름을 가지고 운율을 맞춰보았다. 정말 염병천병이라고 할 수 있겠다

詩經 國風 邶風 擊鼓
시경 국풍 패풍 격고; 북소리
擊鼓其鏜 踊躍用兵 土國城漕 我獨南行
북소리 둥둥울리니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병기를 휘두른다.
도성에서 흙일을 하고 조읍에서 성을 쌓는데, 나는 홀로 남쪽으로 원정을 떠나노라.
從孫子仲 平陳與宋 不我以歸 憂心有忡
손자중을 따라가서 진나라와 송나라를 화평케했으나
나와 더불어 돌아갈 수 없으니 근심하는 마음으로 서글프다.
爰居爰處 爰喪其馬 于以求之 于林之下
여기저기 흩어져 지내다가 타던 말도 잃어버리고
이리저리 찾아 헤매다가 숲속에서 찾았네
死生契闊 與子成說 執子之手 與子偕老
생사를 같이하자고 그대와 다짐했고
그대의 손을 잡으며 백년해로 약속했지.
于嗟闊兮 不我活兮 于嗟洵兮 不我信兮
아아, 멀리 떨어짐이여!내가 같이 못함이여!
아아 약속함이여, 내가 약속을 지키지 못함이여!
더보기

격고는 5장(章)에 매장 4구(句)로 소서(小序)에 ‘주우(州吁)를 원망하는 시다’라고 했다. 군사를 동원하여 폭란을 일으킨 주우가 공손문중을 장수로 삼아 진(陳)과 송(宋) 두 나라를 평정케 하자 국인들이 그 무례함을 들어 원망했다. 후에 진나라와 힘을 합해 정나라를 정벌하려고 했다. 진나라는 위환공의 외가였음으로 위나라의 대부 석작(石碏)이 위후와 공모하여 주우를 유인하여 복양(濮陽)에서 살해했다.

  1. 부(賦)다. 스토리가 있는 시인 것이다.
  2. 鏜(당)은 북치는 소리다.
  3. 踊躍(용약)은 앉았다 일어났다하면서 치고 찌르는 모습니다.
  4. 兵(병)은 창 등의 병장기를 말하고 土(토)는 흙손일이고 國(국)은 나라의 도성으로 국내에서 도성을 쌓는 일에 노역하는 漕城(조성)은 지금의 하남성 복양시(濮陽市) 부근의 조(漕) 땅에 성을 축조하는 노역이다.
  5. 손(孫)은 성이고 자중(子仲)은 자로 당시 원정군의 장수다.
  6. 평(平)은 화(和)함이니 진(陳)나라와 송(宋)나라를 우호케 함이다.

    춘추은공(隱公) 4년, 위환공(衛桓公) 완(完)을 죽이고 스스로 군주의 자리에 오른 주우(州吁)가 외국에 무력을 과시하여 국내의 백성들에게 위엄을 보이기 위해 송(宋) ․ 위(衛) ․ 진(陳) ․ 채(蔡)의 군사를 빌려 정(鄭)나라를 쳤던 일을 말한다. 이는 ‘평화조약을 이미 맺어 전쟁이 끝났는데 왜 나를 데리고 돌아가지 않는가?’하고 서글퍼서 하는 말이다.

  7. 爰(원)은 于是(우시)로 위나라 사람이 전쟁에 나가 于是居處(우시거처) 즉 여기저기 居(거)하고 處(처)하다가 말을 잃어버렸다. 말을 찾아 숲속을 헤매며 대오를 잃고 위치를 이탈하여 전의를 상실한 마음을 노래했다.
  8. 契闊(계활)은 막혀서 멀다는 뜻이다.
  9. 成說(성설)은 혼인서약을 지켰다는 말로 즉 약속대로 혼인을 이루었음이다.
  10. 우차(于嗟)는 탄식하는 말이다.
  11. 활(闊)은 계활(契闊)로 멀리 떨어짐이고 활(活)은 같이 사는 것이다.
  12. 순(洵)은 약속을 지킴이다. 신(信)은 ‘펼 신(伸)’과 통한다.
출처

전쟁에 나간 처지를 한탄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그중에 온객행이 가져다 쓴 부분은 네번째 부분으로 평생을 약속한 아내를 그리워하는 부분이다! 아내를 그리워해?! 하지만 마지막까지 읽어보면 이 시 역시 비극으로 끝난다. 하고 싶은 것, 약속 한 것 그 어떤것도 지키지 못함을 한탄하는 내용인 것이다. 그래도 일단 인용구의 내용만 보면 손을 잡고 백년해로를 약속하자는 뜻이니 온객행은 주자서에게 뭔가 약속을 하고 싶었던 걸까? 앞으로는 헤어지지 말자는 그런 다짐일까?

幽窗小記 中 陳繼儒(진계유)
看庭前花開花落 望天上雲捲雲舒
앞뜰의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바라보며, 하늘의 흘러가는 구름을 음미한다.

아무리 찾아도 한국어로 된 출처를 찾을 수가 없다. 애초에 유창소기라는 것이 정말 진계유가 썻는지에 대해 의심이 많고 책의 서명은 육소형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이부분은 위키를 참조했다.) 비슷한 내용이 채근담에도 나온다. 채근담 후집의 내용을 보려고 한다. 채근담이라는 책 자체도 홍자성이라는 사람이 유명한 구절을 모아놓은 것에 지나지 않지만 그래도 일단 정확한 출처가 애매한 소창유기보다는 채근담쪽이 더 신뢰가 가는 레퍼런스이기 때문이다.

採根譚 後集 70
채근담 후집 70
寵辱不警, 閒看庭前花開花落.
영욕에 놀라지 않고 한가로이 뜰 앞에 피고 지는 꽃을 본다.
去留無意, 漫隨天外雲卷雲舒.
가고 머무름에 뜻이 없어 무심히 하늘 밖에 떠도는 구름을 바라본다.
晴空朗月, 何天不可翶翔而飛蛾獨投夜燭
하늘 맑고 달 밝으니 어디론들 못 날아갈까? 부나비는 어찌하여 촛불에 몸을 던지고
淸泉綠卉, 何物不可飮啄而鴟鶚偏嗜腐鼠
맑은 샘과 푸른 풀 먹고 마실 수 있건마는 올빼미는 굳이 썩은 쥐를 즐긴다.
噫! 世之不爲飛蛾鴟鶚者幾何人哉
아, 이 세상에 부나비와 올빼미 아닌 사람이 그 몇이나 될 것인가.

뭘 말하고 싶은걸까? 뭐 정해진 운명은 거스를 수 없다. 뭐 그런 뜻인걸까? 채근담은 매번 읽을떄마다 그 뜻이 바뀌기 때문에 가끔 읽고 있는데 그래서 소창유기에 나왔다는 저 구절이 묘하게 친근해서 찾아본 결과 채근담에서 찾게 된것이다! 유유히 흘러가는 시간과 같이 정해진 것을 바꿀 수는 없다 뭐 그런 의미인것 같다. 온객행이 하고 싶었던 말은 대체 무엇일까? 주자서와 온객행은 꼭 만날 운명이었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걸까?

백년해로를 약속하고 그 다음에 우리는 꼭 만날 운명이었어 뭐 그런 얘기를 돌리고 돌려서 말한건가? 주자서를 향한 온객행의 고백인걸까? 이걸 듣고 잔을 부딧히고 술을 마시다니 이건 뭐 거의 프로포즈에 응한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아님)


이 모든 내용은 이 게시글을 참고로 작성 되었다. 중문주의

0 comments: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