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고산 아래에 잠시 머물다

次北固山下 王灣
차북고산하 왕만

당시삼백수 卷三 五言律詩 097
客路靑山外 行舟綠水前
길손은 푸른 산 바깥을 지나고 배는 짙푸른 물 위로 나아가네
潮平兩岸闊 風正一帆懸
물 불어 잔잔한 두 강둑은 드넓고 바람은 순풍이라 돛 하나만 올렸네
海日生殘夜 江春入舊年
밤의 끝에 바다에서 해가 솟아오르고 강은 이미 봄이라 한 해가 지나가네
鄕書何處達 歸雁洛陽邊
고향으로 보낸 서찰 어느 곳에 이르렀나 기러기 돌아가는 길에 낙양 지나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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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次(차): (잠시) 머물다. 멈추다.
  2. 北固山(북고산): 진강시鎭江市 북쪽 장강長江 가에 있는 산이다.
  3. 外(외): 하下로 쓰는 자료도 있다.
  4. 風正(풍정): 바람이 제대로 불다. 순풍.
  5. 殘夜(잔야): 곧 해가 뜨려고 하는 밤의 끝을 가리킨다.
  6. 江春入舊年(강춘입구년): 아직 새해가 되지 않았는데 강남은 벌써 봄이 왔다는 소식.
  7. 歸雁洛陽邊(귀안낙양변): 기러기가 소식을 전한다는 옛 이야기를 인용하여 북쪽으로 돌아가는 기러기가 고향인 낙양에 소식을 전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나타냄.
출처

王灣(왕만; 693~751) 자와 호 둘다 미상이다. 낙양 사람이다. 선천 연간에 진사가 되어 개원 초에 滎陽縣主簿(형양현주부)가 되었고, 《群書四部錄(군서사부록)》을 완성하는 문헌정리 사업에 참여하여 洛陽尉(낙양위)에 제수되었다. 《唐才子傳(당재자전)》에는 기무잠(綦毋潛)과 절친하였으며, 오초(吳楚; 양쯔강남쪽 지방)를 왕래하면서 많은 작품을 남겼다고 전한다. 《全唐詩(전당시)》에 10수의 작품이 실려 있다.

전당시에 작품이 10개나 실려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삶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다. 애초에 왕만이 남긴 시가 10개가 전부다. 따로 책을 내거나 하지 않아서 아마 소실된것으로 추정하는 듯 하다. 벼슬하는 동안의 기록을 제외하면 어디에서 태어났고 어디에서 죽었는지 생몰년도 조차도 확실하지가 않다. 그 중에도 차북고산하가 제일 유명한데 강남(양쯔강 남쪽지역)에 머무르면서 산과 호수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를 많이 썼다고 한다. 산수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그의 시풍은 후대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산하령에서는 20화에서 주자서가 온객행의 이름에 대해 말할때 나온다.

'客路靑山外 行舟綠水前'
이부분에서 여행객이 푸른산 바깥을 지나고 배가 물 위로 나아간다고 하는데 앞자를 따면 객행이다.

개인적으로는 견연의 연(衍)이라는 글자가 行사이에 氵(水)가 들어갔는데, 주자서가 생각한 구절을 보면 여행객이 푸른산 바깥을 지나며 배가 물을 지나간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연자를 풀어서 쓰면 가고 있는 사이에 물이 들어가니까 저 구절의 앞자를 따서 객행으로 지은것이 아닐까 하는 궁예를 하는것이다. 정말로 그런건지는 알수 없다. 왜냐면 난 알못이니까.

암튼 소소한 부분에서 주자서가 많이 배운 귀족이라는게 티가 나서 더 간질간질하고 도련님시절 주자서가 궁금해지는 것이다. 온객행이 무슨 말을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그러니 온객행이 죽고 못살지 진짜 죄많은 유죄남 주자서... 크아아아아아아 솔직히 34화부터는 온객행아 주자서 좀 놔줘라 싶은데 온객행이 안놔줘서 어영부영 해피엔딩도 새드엔딩도 아닌 뭐 그저그런 엔딩이 되버렸다. 그래서 내가 여직 하산을 못하고 있지... 나좀 나줘라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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