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ap

크리스마스 파티가 한창인 말포이 저택의 연회장에 잔잔한 왈츠를 넘어 여자아이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람들의 시선이 방금 막 땅바닥으로 내쳐져 눈물방울을 하염없이 쏟아내는 곱실거리는 갈색머리를 가진, 찢어질 듯한 울음소리를 만들어내는 여자아이에게 쏠렸다. 그리고 그 앞에 주먹 쥐어진 양손을 몸에 바싹 붙인 채로, 방금 넘어진 그 여자아이를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열심히 노려보고 있는 금발의 소년이 있었다.

여자아이의 엄마처럼 보이는 갈색머리의 부인이 나타나 그 아이를 안아 들었다. 금발의 소년 옆으로 당황한 듯한 표정이 역력한 나시샤가 어렵게 그 부인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듣던 데로, 정말 훌륭한 아드님을 두셨군요.”

조용하고 침착하면서 상황을 정확히 비꼬는 그녀의 말이 루시우스의 귓가를 울렸다. 그녀의 목소리에 연회장은 단숨에 침묵으로 휩싸였다. 두 걸음에 거리를 좁혀 그 부인 앞에 선 루시우스는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로지부인, 제 아들의 무례함을 넓은 아량으로 용서해 주십시오...”

갈색 머리의 부인의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고개를 들어 루시우스를 아래로 내려 보았다. 그리고 사과를 받아줄 마음이 없는 듯, 돌아서려는 찰나, 루시우스가 숙였던 고개를 들며 미처 끝내지 못한 말을 끝냈다.

“하지만, 이 넓은 홀을 가득 채울만한 우렁찬 목소리를 가진 따님께서는 확실히 듣던 데로, 숙녀답군요.”

루시우스의 말에 돌아섰던 로지부인의 시선이 다시 그녀 앞에 선 금발의 남자에게 갔다. 얼어 붙을 것만 같은 날카로운 회색 눈동자가 그녀의 초콜릿 갈색 눈동자를 단숨에 얼렸다. 로지부인의 뺨이 붉어졌다.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루시우스는 나시샤의 드레스를 붙잡고 겁에 질려 서있는 아들을 어깨에 조심스럽게 손을 올려 놓으며 아들의 바라 보았다. 아들을 바라보는 그는 평소와 달라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눈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천천히 드레이코의 손을 잡고 서재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람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나시샤가 멈추었던 음악을 다시 연주하게 하고, 천천히 로지부인에게 다가서며 용서를 구했다. 다시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연회장을 메우기 시작했고, 나시샤는 방금 두 사람이 나간 문 쪽으로 시선을 한번 주고는 다시 로지부인의 불평에 집중했다.

서재를 향하는 내내 루시우스의 손에 쥐어진 작은 손이 쉬지않고 움직였다. 살짝 눈 끝으로 축 쳐진 금발소년의 어깨에 눈이 간 루시우스는 한숨을 삼켰다. 화가 나기도 하지만, 실망이 더 컸다. 삼켜진 그 한숨에는 드레이코에 대한 애틋한 루시우스의 마음 역시 녹아 있었다. 화내며 잔소리하고, 억울해 하며 울며 어리광을 피우는, 보통 평범한 아버지와 아들이 그 어느 때보다 부러운 루시우스였다. 서재 문 앞에 도착한 루시우스는 잡고 있던 작은 손을 놓고 문고리를 돌려 문을 열었다. 그리고 아이의 등에 손을 얻으며 방안으로 이끌었다. 천천히 망설이는 걸음으로 서재 안으로 들어선 부자는 그렇게 한동안 문 앞에 서있다가. 루시우스는 문득 방안에 한기를 느끼고, 벽난로 앞으로 다가가 불을 붙였다. 그리고 그 옆 안락의자에 앉으며 아직 문 앞에 서있는 드레이코를 보았다. 양손을 앞으로 가져와 바쁘게 움직이며 고개를 푹 숙이고 긴장한 모습을 숨기지 않았다. 그 모습에 올라가는 입 꼬리를 이성으로 내리 누르고 헛기침으로 드레이코의 시선을 샀다.

“어깨 펴고, 똑바로 서라.”

루시우스의 말에 드레이코의 표정이 굳어지며, 어깨가 긴장했다. 몸을 곧게 펴며 루시우스의 시선을 피하지 않는 드레이코의 비를 잔뜩 머금은 먹구름 눈동자가 루시우스의 마음을 찢었다. 아무 말 없이 그렇게 둘은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다. 루시우스는 시선을 벽난로의 불꽃으로 옮기며 손짓했다. 그 손짓에 드레이코는 몸을 움직여 벽난로 앞에 있는 의자에 몸을 낮췄다. 꼿꼿이 허리를 세우고 양손을 무릎에 가지런히 모은 채로 루시우스의 행동을 살폈다. 루시우스는 기다렸다. 평소라면 그가 의자에 와서 앉기 전에 그는 그가 원하는 대답을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그렇게 또 고요하게 시간이 흘렀다.

“드레이코?”

금발 소년의 시선이 벽난로의 타오르는 화염에서 얼음같이 찬 눈동자로 옮겨졌다. 그는 꿰뚫는 듯한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말포이를 모욕하는 걸 참을 수 없었어요. 그 아이가 저에 대해 모욕했다면 참았을 거에요. 하지만, 말포이를 모욕하면, 전 참지 않아요.”

그의 목소리는 확신에 가득 차 있었고, 그의 신념이 묻어 나왔다. 자랑스러움, 명예로움, 자신감. 그는 말포이였다. 루시우스는 그의 대답에 만족 했지만, 더 이상 그를 야단칠 마음이 없었지만, 그는 말포이로써 그의 아들을 완벽한 말포이로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그의 행동은 비록 상대방이 잘못 했어도, 남자답지 못한 행동 이었다.

“그녀는 너보다 훨씬 어리고, 약한 여자 아이였어.”

루시우스의 말에 드레이코의 표정이 찡그려 졌다. 사실 이 싸움은 그 여자아이가 먼저 시작한 것이었다. 드레이코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드레이코에게 포도 알을 던지는 예의를 모르는 아이였다. 계속되는 무시에 화가 난 그 아이가 뱉어낸 모욕은 드레이코라는 이름대신 말포이라는 이름으로 뱉어져 나왔고, 그 점을 참을 수 없는 말포이는 끝내 자신의 감정을 누르지 못했다. 그런데, 그 여자아이의 편을 들어주는 루시우스에게 점점 서운하면서 화가 났다. 무릎 위에 가지런히 놓여진 작은 손이 꽉 쥐어지는 것을 본 루시우스는 다시 시선을 벽난로로 옮겼다. 그렇게 다시 둘만의 시간이 묻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시샤가 천천히 서재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손님들을 주인 없이 내버려 두는 것은 루시우스 답지 않았고, 또 그 뜻은 드레이코가 자신의 잘못을 아직 인정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바쁜 걸음에 거칠어진 숨결을 문 앞에서 몰아 쉬고 천천히 문을 열었다. 벽난로 앞, 안락의자에 몸을 뉘인 지쳐보이는 듯한 루시우스와, 양손을 무릎에 올려놓고 곧은 자세로 소파에 앉아 있는 드레이코를 보고 눈썹을 치켜 올렸다.

나시샤의 도착을 눈치챈 루시우스는 고개를 들어 그의 아내를 바라보았다. 평소와 다른 상황에 질문 가득한 표정으로 천천히 걸음을 루시우스에게 옮기는 나시샤를 보다가, 루시우스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시샤는 그의 급작스러운 움직임에 잠깐 멈춰 섰다가, 그에게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드레이코는 루시우스의 움직임에 고개를 들어 어머니가 들어 오는 것을 보았다. 나시샤가 루시우스에게 거의 닿았을 때, 루시우스의 손이 나시샤의 뺨에 닿았다.

“찰싹”

루시우스의 손에 닿은 뺨이 붉게 물들었고, 나시샤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루시우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걸어 왔던 길을 돌아 거칠게 서재 문을 닫으며 나갔다. 루시우스의 시선이 큰소리를 내며 닫힌 문에서 드레이코에게 향했다.

드레이코는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그제야 깨달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루시우스 앞으로 걸어 왔다. 루시우스 앞에서 눈을 꼭 감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끝내, 루시우스가 원하는 대답을 했다.

“잘못했어요. 아버지.”

“말포이는 여자에게 손들지 않아. 누가 먼저 건, 누가 잘못 했건. 서쪽 도서관. 네가 용서 받을 만큼 충분한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 할 때까지.”

루시우스의 말에 드레이코는 천천히 발걸음을 목적지로 옮겼다. 그리고 어둡게 가라 앉은 먹구름이 비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드레이코의 작은 어깨가 가라 앉는 것을 뒤에서 지켜보던 루시우스는 힘들게 한숨을 삼켰다. 한동안 그렇게 서서 아들이 나간 문을 쳐다보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나시샤의 하얗고 가는 손이 루시우스의 어깨에 닿았다. 루시우스는 스스로가 언제 숙였는지 알 수 없는 고개를 들어 깊은 바다색 눈동자를 만났다. 그녀는 루시우스를 이해하고 있을까. 그녀의 입술이 루시우스의 뺨에 닿고, 그는 몸을 돌려 그녀와 마주 선다. 그녀는 방금 자신의 입술이 닿았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은 말포이와 어울리지 않아요.”

그녀의 말에 잠깐이나마 현실의 무게가 덜어진 것 같았다. 하지만 곧 그를 짓누르는 그의 이름은 그를 더 힘들게만 할 뿐이었다. 한숨 섞인 미소를 지어 보이며 루시우스는 자기 손이 닿았던 그녀의 뺨을 쓰다듬으며 그녀의 허리에 손을 둘렀다. 나시샤는 그의 손바닥에 키스하며 엷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가끔은, 너무 힘들어요. 원하는 만큼, 필요한 만큼 다 주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요.”

“나 역시…. 아버지를 용서 할 수 있을 것 같아….”




햇빛이 따사롭게 비치는 오후, 아서와 빌, 찰리, 론이 밖에 나와 울타리를 고치고 있었다. 고사리 같은 작은 손으로 형을 돕는 론이 마냥 기특하기만 아서는 집중해서 못을 고르는 론의 머리를 흐트렸다. 아서의 손길에 고개를 든 론의 얼굴에 행복한 웃음이 가득했다. 멀리서 프레드와 조지가 간식을 들고 뛰어 왔다. 아서는 쌍둥이에게 손짓하며, 빌과 찰리에게 자신이 있는 곳으로 오라고 손짓했다. 둘은 들고 있던 연장들을 손에서 천천히 내려놓으며 손을 털고 둘은 무슨 이야기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웃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아서는 울타리 밖에 있는 론이 다시 울타리 안으로 들어 올 수 있게 비스듬하게 걸쳐져 있는 나무를 들어 올려 론이 그 곳을 지날 수 있게 해주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울타리에서 멀지 않은 언덕 위에 커다란 나무가 있었다. 햇살이 좋아, 굳이 그늘을 찾을 이유는 없었지만, 꽤 오랜 시간 밖에 일을 하느라 꽤 더웠던 아서는 쌍둥이들 쪽을 향해 손을 휘휘 저으며, 언덕 위를 가리켰다. 쌍둥이는 오던 길을 살짝 틀어 언덕 쪽으로 향했다. 론은 곧 쌍둥이가 있는 쪽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아서는 뒤쪽에 걸어오고 있는 찰리와 빌을 기다리기로 결심하고 연장 통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미 론이 가지런히 정리해둔 연장 통은 아서가 더 이상 손댈 곳이 없었다. 자기 방을 이렇게 깨끗하게만 정리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론의 머리를 스치고, 아서는 점점 가까워지는 빌과 찰리의 목소리에 다시 고개를 들어 언덕에 서있는 나무를 바라 보았다.

아서가 나무 아래 도착했을 때, 쌍둥이들은 근처에 있는 그루터기에 머리를 마주하고 무엇인가를 열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론은 쌍둥이가 들고 온 바구니에서 아직 자기에겐 좀 큰 듯한 담요를 바닥에 깔고 있었다. 어찌나 열심히 했는지, 아서가 그 곳에 도착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뒤쪽에서 느긋하게 따라오던 빌이 담요와 사투하는 론을 보고는 머리를 휘휘 내저으며 론을 도왔다. 빌의 도움에 그제야 머리를 들어 아서와 찰리의 도착을 눈치챈 론은 그들을 향해 크게 웃어 보였다. 아서는 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쌍둥이가 가져온 바구니를 담요 위로 옮겼다.

빌이 쌍둥이를 담요로 끌고 오는 동안 아서는 바구니 안에 내용물을 확인했다. 샌드위치와 우유, 오렌지 주스가 단정하게 담겨 있었다. 안쪽에 있는 컵을 꺼내 들며, 샌드위치를 꺼내 들었다. 간식으로 먹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워 보였지만, 꽤 지쳐있던 아서는 그냥 하나 꺼내 들어 베어 물었다.

옆에 있던 빌 역시, 샌드위치를 하나 꺼내 들어 먹으려는 순간, 찰리가 뺏어 들었다. 빌은 찰리의 팔을 툭 치며 짜증을 내고는 다시 바구니 안에 있는 샌드위치를 꺼내 들었다. 언제 왔는지 쌍둥이도 바구니에서 하나씩 꺼내 들고 먹기 시작했다. 담요를 펼치는데 너무 힘을 쓴 론은 담요위에 축 늘어져 있다가 이내 다들 하나씩 샌드위치를 들고 먹는 것을 보고는 바구니쪽으로 기어왔다.

“어? 없네?”

샌드위치를 먹으며 고쳐 나간 울타리 쪽을 바라보고 있던 아서는 바구니에 약간 묻힌 론의 목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쌍둥이가 바구니 안쪽으로 론의 머리를 집어 넣으며 웃기 시작했다. 론은 쌍둥이의 손을 뿌리치려고 발버둥 치다가 바구니 안쪽으로 머리를 박았다. 안쪽에 들어있던 그릇이 달그락 거리는 소리와 함께 론이 쌍둥이를 향해 소리쳤다.

“하지마!”

아서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면서 아서는 쌍둥이에게 손을 휘휘 내저었다. 쌍둥이는 계속 킬킬 거리며 론의 몸을 누르고 있었다.

“엄마가 네건 일부러 빼고 안 넣은 거야.”

“넌 아까 지니랑 같이 간식 먹었자나! 넌 안 먹어도 돼”

“네가 어디 있는지도 모를걸?”

쌍둥이의 말에 론은 더 화가 났는지 아까 보다 더 크게 소리치며 짜증냈다. 보다 못한 찰리가 프레드? 조지? 쌍둥이들 중 한명을 밀쳐냈다. 보다 못한 빌이 론의 몸을 일으키며 쌍둥이들을 완전히 밀쳐냈다. 똑바로 앉은 론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 올라 있었다. 잔뜩 찡그린 얼굴로 쌍둥이쪽을 쳐다보다가 자리를 박차고 집쪽으로 뛰어갔다. 아서는 달려가는 론을 보다가 다시 쌍둥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정말 그래?”

조지는 어깨를 들썩이며, 프레드를 바라봤다. 프레드의 얼굴에 뭔가를 아는 듯한 미소가 떠오르자, 조지는 참고 있던 웃음을 뱉어 내며 담요 위를 굴렀다. 프레드도 조지를 따라 구르며 웃었다. 상황이 파악되지 않은 아서는 헛기침을 하며 쌍둥이의 어깨를 잡았다. 프레드는 누워서 아까 열심히 바라보고 있던 그루터기 쪽을 향해 손가락질 했다. 그리고 다시 아서의 얼굴을 보았다. 아서는 눈살을 찌푸리며 쌍둥이를 바라보다가, 론이 뛰어간 쪽을 봤다. 이제 막 집에 도착한 론은 문 앞에서 숨을 고르더니 머리를 쓸어 내리며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로 들어서자, 갓 구운 쿠키의 달콤한 냄새가 온 집안을 채우고 있었다. 거실쪽으로 걸어가, 테이블에 놓여있는 바구니 안에 머핀을 하나 집어 들고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귓불과 뺨이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고개를 들어 안락의자에서 몸을 앞 뒤로 천천히 흔들며 책을 보고 있는 퍼시쪽으로 시선을 한번 힐끔 주고는, 털썩 소리를 내며 소파에 주저 앉았다. 그리고 다시 손에 들린 머핀에 집중했다. 부엌에서 들리는 몰리의 목소리에 퍼시가 고개를 들어 론에서 지니로 시선을 옮긴 다음 책을 소파쪽으로 던지며 부엌쪽으로 걸어갔다.

금방 머핀을 다 먹어 치운 론은 테이블 위에 다시 손을 가져가며 지니가 앉아있는 바닥으로 내려 앉았다. 지니는 바쁘게 조각난 것들을 실에 꿰고 있었다. 익숙한 조각들에 론이 지니가 꿰어놓은 줄을 하나 들어 올렸다. 체스의 말 머리가 색깔별로 엇갈려 꿰여 있었다. 말이 놓여야 할 체스보드는 깨어진 다른 조각들로 인해 잔뜩 긁혀 있었다. 이미 많이 낡고 닳은 데다, 작아서 잘 사용하지 않았지만, 론에게 있어 소중한 것이었다. 론에게 처음이라는 경험은, 부모님께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미 형들이 다 했을 테니까. 체스는, 그런 론을 다른 형제와 다르게 만들어 주는 특별한 것이었고, 그리고 그 특별한 것을 함께한 그 체스세트는 론에게 중요했다. 그리고 그게 깨어졌다. 망가졌다. 흩어졌다.

멍하게 꿰어진 줄을 바라보다가, 지니가 고개를 들어 나머지 다 꿰어진 조각들을 들어 올리며 론을 향해 미소 지었다. 지니는 특별했다. 7남매 중 유일한 여자아이, 게다가 막내. 원하는 것, 뭐든지 쉽게 가질 수 있었다. 론은 평범했다. 7남매 중 마지막 아들, 첫째로 태어나거나, 재능 있거나, 똑똑하거나, 재미있거나…, 어느것 하나 그에게 해당되지 않았다. 그는 원하는 것을 가지기 위해 항상 최선을 다해야 했다. 론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들고있던 줄을 바닥에 내려 놓고 천천히 지니의 얼굴과 마주했다. 그렇게 웃는 지니의 얼굴을 얼마나 바라봤을까, 론의 바닷물이 흘렀다.

“찰싹”

한 순간에 사라진 지니의 미소, 론의 행동에 놀란 듯, 빨갛게 물드는 뺨에 손을 가져가 올리며 론을 보았다. 론의 뺨을 타고 흐른 굵은 눈물이 턱을 타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론의 표정은 알기 힘들었다. 참지 못할 만큼 화가 나보였지만,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벌써 후회한다는 눈물이 지니를 더 혼란스럽게 했다. 어린 지니가 이해하기엔 너무 많은 감정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아니, 특별한 지니가 이해하기엔 평범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론을 지니는 이해 할 수 없다.

작지만, 살이 맞닿는 소리에 허겁지겁 거실로 발걸음을 돌린 몰리와 퍼시의 눈에 바닥에 앉아 있는 두 명의 빨간 머리 아이가 보였다. 소녀는 뺨에 손을 댄 채로 얼어 버린 듯 앞에 있는 소년을 바라보았고, 소년은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 할 수 없는지 훌쩍이고 있었다. 거실로 막 들어선 두 사람은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몰리가 바닥에 주저 앉은 아이들에게 다가가기 전에 론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 계단을 서둘러 올라갔다. 계단 위를 울리던 발소리가 방문이 열렸다 닫히는 ‘달칵’ 소리와 함께 온 집안에 정적이 흘렀다.

몰리는 그제야 지니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붉게 물든 뺨. 몰리는 놀라서 지니를 안아 올리며 말했다.

“무슨 일이니? 지니? 론이…?”

몰리의 목소리에 참았던 숨을 돌리며 지니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무언가 대답을 하려고 했지만 곧 울음소리에 묻혔다. 몰리는 지니가 꿰어놓은 조각들과 잔뜩 긁혀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어버린 낡고 작은 어린이용 체스세트를 바라보았다.

밖에서 있던 이야기를 아서로부터 전해들은 몰리는, 쌍둥이들을 야단쳤다. 아이들을 야단칠 때 아서는 항상 아이들의 편이 되어주려고 했지만, 이번 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쌍둥이가 잘못 했다. 몰리와 아서는 놀랐다. 론은 단 한번도 먼저 누군가를 때리거나 괴롭히는 아이가 아니 였는데, 갑자기 밀려드는 아들과의 거리감에 두 사람은 두려워 졌다. 혹시 그들이 론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론의 행동에 놀란 건 아서와 몰리 뿐이 아니었다. 빌과 찰리, 프레드 조지 역시 놀랐다. 론은 평범한 아이였다. 사실 가족 중에 가장 있는 듯 없는 듯 한 아이였다. 먼저 다가와 돕고, 양보할 줄 아는 착한 아이였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나 보다.

그렇게 방 안에 론을 가둔지 딱 하루 만에 지니가 론의 방문 앞에 섰다. 아서와 몰리는 지니를 바라보며 쓴 미소를 지어 줬다. 지니 역시 웃어 보이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몰리는 지팡이를 들어 걸어 잠긴 문을 열었다. 침대 옆 바닥에 굽힌 다리를 가슴쪽으로 바짝 끌어 당겨 쪼그리고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론의 머리가 열린 문소리에 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미 얼굴에 울음이 가득한 지니가 긴장한 모습으로 문 앞에 서 있었고, 그 뒤에 몰리와 아서가 서있었다.

지니는 천천히 발걸음을 론에게로 향했다. 론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론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참고 있던 눈물을 터트렸다. 있는 힘껏 큰소리로 울던 지니가 헐떡이며 숨을 고르더니, 힘들게 입을 열었다. “오빠, 내가 미안해.” 그리고는 다시 얼굴을 론의 어깨에 묻으며 울기 시작했다. 지니의 팔이 론의 어깨에 둘러 졌을 때, 이미 론의 눈에는 눈물이 잔뜩 고여 있었다. 지니의 알아듣기 힘든 하지만 론에게 가장 필요했던 그 말이 론의 감정을 다시 휘저었다. “아니, 내가 미안.” 무릎을 감싸고 있던 손을 들어 작은 동생의 몸에 휘두르고 같이 엉엉 울기 시작했다.

몰리와 아서가 부둥켜 앉아 우는 아이들에게 닿았을 때, 눈물에, 감정에 잠긴 론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그들은 후회했다.

“잘못했어요.”

론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그 방에 있던 사람은 모두 들을 수 있었다. 그의 작은 목소리에 가장 먼저 귀 기울였던 적이 있었던가, 몰리와 아서는 후회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그 다짐이 얼마나 갈지는 자신 없었지만, 그들은 다짐했다.

0 comments: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