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 흙같이 어두운 벌판. 바람에 흩어지는 갈대들. 스치는 갈대 소리에 묻혀 진흙에 묻혀 둔탁해지는 발소리들. 이내 누군가의 악마의 화염으로 벌판은 이곳 저곳이 붉게 물들며 환해졌다. 여기저기서 용서 받지 못할 저주들이 쏟아졌고, 누가 적인지 누가 아군인지 분간하지 못한 채 그 안에 갇힌 사람들은 하나 둘씩 그 화염의 열기에 미쳐가는 듯 했다.
그레이 백의 거친 포효가 벌판을 울리고, 고통의 비명과 신음소리가 들려 왔다. 하지만 여전이 바람이 만들어 내는 갈대들의 스치는 소리에, 화염이 수풀을 먹어치우는 소리에, 그 누구의 위치도 정확히 할 수 없었다. 어느 순간 자기의 무리와 떨어진 드레이코는 정신없이 화염의 반대방향으로 달리고 있었다. 그 곳이 어느 쪽인지 볼 여유 조차 없었다. 뒤 쪽에서 들리는 언젠가 한번쯤 들었을 법한 익숙한 목소리의 날카로운 비명소리도 바람소리와 갈대가 만들어내는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는다고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되뇌며 어서 빨리 그 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갈대 숲을 헤치고 있었다.
“드레이코! 네가 하지 않으면, 네가 당하게 될 거야.”
날카로운 목소리에 드레이코의 지팡이를 쥐고 있는 손이 주체할 수 없이 떨렸다. 떨리는 지팡이를 양손으로 부여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죽음의 저주를 외쳤다. 그의 앞에서 삶을 구걸하던 방금 전까지 살아있던 이름 모를 그 누군가가 드레이코의 손에 차가운 바닥에 너부러졌다.
뒤쪽에서 망설이는 드레이코에게 야유 하던 죽음을 먹는 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일어났고, 그녀의 차가운 눈초리에 주변이 조용해졌다. 벨라트릭스는 천천히 드레이코에게 다가와 어린아이에게 칭찬 하듯이 드레이코의 뺨을 살짝 두드리며 미소를 지었다. 미소를 짖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드레이코는 이내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 달리기 시작했다. 뒤쪽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다른 죽음을 먹는 자들의 비웃음 소리가 귓가에 들리지 않을 때까지, 숨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더 이상 숨쉬기가 힘들어 질 때까지 온 힘을 다해 달렸다.
오늘 그의 손에 죽은 그 사람은 누구 였을까. 그가 죽었다는 사실을 그 가족은 알까. 그가 누구의 편이 였을까.
힘 풀려버린 다리에 아무렇게나 주저 않은 채로, 살기 위해 숨을 쉬기 위해 헛기침을 하며 숨을 고르는 드레이코의 머리 속에 방금 자기가 죽인 사람의 절망적인 표정을 생각했다.
‘이대로 숨쉬지 않으면 죽을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면서 본능적으로 숨을 고르기 위해 헛기침을 하는 자신의 모습에 역겹다는 듯이 비웃기 시작했다. 한참동안 그 자리에 앉아 헐떡대며 자신을 비웃었던 그의 웃음소리가 울부짖음이 되었다. 꽉 쥐어진 주먹으로 땅을 치며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소리를 질러대며 그렇게 울었다.
누구에 대한 분노일까. 누구의 잘못일까.
전투는 런던을 비롯한 영국 각지에서 벌어졌다. 주문을 막아준다는 말도 안 되는 물건들이 암시장에서 거래 되었고, 한때 그 누구도 그 아름다움과 웅장함에 대해 의심 같지 않았을 말포이 저택은 죽음을 먹는 자들의 의해 점점 빛을 바래갔고, 지하 던전에서 들려오는 비명에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렇게 드레이코가 집이라고 여겼던, 평생을 살았던 말포이 저택은 더 이상 있고싶지 않은 끔찍한 곳으로 변해갔다.
저택 서쪽의 가족 도서관 안에 자신을 가둔 채로 삶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죽음을 먹는 자 그 누구도 드레이코를 찾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에게 이미 말포이라는 이름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저 다크로드. 다크로드가 그들에게 줄 명예와 영원한 삶, 오직 그것만이 그들의 관심사였다. 어째서 의심하지 않을까. 다크로드가 승리를 거머쥐고 세상의 꼭대기에 섰을 때, 그가 약속했던 것들을 줄 것이라는 믿음에 왜 의심하지 않을까. 창 문턱에 자신의 몸을 기대며 바깥쪽 하늘을 쳐다봤다. 먹구름에 어두워진 하늘 사이로 중간중간 밝은 하늘이 보였다. 하지만 햇살이 뚫기에는 너무 두꺼웠을까, 다시 두터운 구름들 사이로 사라진다.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떨구며 손을 보았다. 살짝 드러난 손목 끝으로 뱀의 머리 끝이 보였다. 소매를 걷어 죽음을 먹는 자들의 표식을 보았다. 살갗 위에 새겨진 해골과 뱀의 눈이 자신을 감시하는 것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두려웠다. 잃을 까봐 두려웠다. 드레이코는 자신의 선택에 부모님이나 그 어떤 것도 개입하지 못할 것이라고 자신했었다. 그런 그가 부모님께 사랑한다는 말에 단 한번도 마음을 담지 않았던 그가, 그들의 자신에 대한 사랑에 대한 의심과 증오로 절대 개의치 않으리라고 자신했던 그가, 그들을 잃을까 봐 두려웠다. 그에게 남은 건 그들 뿐이었다. 그가 자랑스러워 했던 집안의 명예, 다크로드의 존재와 함께 산산이 흩어졌다. 그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이제 더 이상 의미 없어진 죽음을 먹는 자들의 표식과 매일 밤 소리 없는 눈물로 밤을 지새우는 드레이코 말고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앞으로 오지 않을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현실을 더욱 참을 수 없게 만드는 그의 어머니.
“루시우스가 돌아오면 글래드래그스에 가서 멋진 옷을 맞출 거란다, 너희 아버지는 나에게 항상 금색이 잘 어울린다고 하셨어. 내가 좋아하는 색은 연보라 색이긴 하지만 그래도 난 그가 나에게 어울린다고 했던 색을 입는 게 더 좋단다. 그리고 파티를 하는 거야. 너도 알다시피 외가의 친척 중 대다수는 영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살고 있으니, 초청을 하면 모두들 즐겁게 올 거야. 아니, 우리가 그곳으로 가도 좋을 거야. 한동안 너무 영국 안에만 있었던 것 같구나. 네가 어릴 적에 프랑스에 있는 바닷가 근처 별장에서 여름을 보내는걸 정말 좋아했는데, 혹시 기억하고 있니?….”
“드레이코! 다크로드께서 집안에 필요 없는 물건들이 너무 많다고 하시니, 창고 안으로 좀 치웠으면 좋겠구나.”
아버지가 일하시던 서재,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안락의자. 어머니가 시간을 보내시던 남쪽 선룸의 테이블,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연회실의 피아노. 현관 홀의 샹들리에는 빛을 잃었고, 짜증날 만큼 적막했던 회랑에 울려 퍼지는 비웃음과 찢어질 듯한 쾌락의 웃음소리, 그리고 삶을 구걸하는 자들의 우는 소리. 삶을 위해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들의 신음소리.
“너도 네 아버지처럼 망설이고 질질 끌다간 똑 같은 꼴을 면치 못할걸? 킬킬.”
접대실 맨 끝 중앙에 앉은 다크로드. 그리고 그 오른쪽 4번째 의자에 앉아있는 나.
그리고, 시작된 죽음을 먹는 자들을 위한 가면무도회.
하나 둘 들고있던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다. 자신을 숨기지 않고서는 온전히 미칠 수 없으니까. 이렇게 우리들의 축제가 시작된다.
한참쯤 뒤 돌아 보지 않고 달렸을까, 사람이 만들어 내는 소리가 희미해졌다. 잠깐 무거운 숨을 몰아 쉬며 숨을 고르고 주변을 살펴 봤다. 그리고 이내 뒤쪽에서 자신이 아닌, 혹은 바람이나 화염이 아닌 그 무언가가 움직여 갈대를 스치는 소리에 자신의 몸을 낮췄다. 몰아 쉬던 숨을 잡아두고, 지팡이를 꽉 쥐었다. 지팡이를 겨누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막 주문을 외우려던 순간.
저 멀리 서 바랜 불빛에 드레이코가 알고 있었던 색과 조금 다른 붉은색 머리카락의 남자가, 갑작스러운 드레이코의 존재에 놀란 듯 바쁜 발걸음을 급하게 멈춰 섰다. 만약 드레이코의 앞에 서있던 남자가 망설이지 않았다면, 혹은 붉은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드레이코는 용서 받지 못할 주문을 사용하는데, 주저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윽고 누군가의 지팡이 끝에서 붉은 색 불꽃 만들어 졌고, 곧 드레이코의 어깨에 맞았다. 어깨를 파고 드는 고통, 목을 벗어나려는 신음을 볼 안쪽의 살을 씹으며 삼키고, 붉은 머리의 어깨를 잡아당겨 몸을 낮췄다. 뒤쪽에서 가면을 쓴 사람 하나가 지팡이를 앞으로 드리우며 계속 가까워 졌다. 드레이코는 지팡이를 잡고 있던 손을 바꿔 다가오는 그 사람에게 죽음의 저주를 쏘았고, 가면 속에 숨겨진 그의 눈빛은 저주가 그의 심장을 관통할 때 조차 알 수 없는 광기가 빛을 바랐다.
차가운 진흙바닥에 철벅거리는 소리와 함께 영혼을 잃은 살덩이가 내 동그라졌다.
붉은 머리는 둔탁하게 바닥에 닿는 소리와 함께 나의 움켜쥠을 뿌리쳤다, 그리고 자신의 지팡이를 더욱 세게 붙들었다. 그리고 나의 눈을 바라보았다.
론.
론 위즐리.
제발 다시는 만나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는데, 내 선택에 후회하지 않도록, 제발.. 제발 다시는 만나지 않게 해 달라고 빌었는데…. 널 다시 보면, 지금까지 붙잡고 있던 이 모든 것을 그냥 놓아 버릴 것만 같아서, 주저하지 않을 같아서. 명예, 권력, 가족 이런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될 것 같아서. 여기까지 끌고 온 나 자신을 놓아 버릴 것만 같아서….
그가 나사이의 간격이 조금씩 벌렸다. 적막함. 텅 빔. 공허함. 반경 몇 미터 안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은 오롯이 바람과 화염이 만들어 내는 소리가 허전함을 메우려는 듯 했다. 얼마나 그렇게 서로를 보고 있었을까, 이내 그의 손이 내 가면에 닿는다. 그제야 어깨의 통증이 파고든다. 항상 현실은 이렇게 아프지.
그의 손 끝에서 벗겨진 나의 가면이 바닥에 닿고, 그의 어둠에도 빛을 바라는 너의 푸른 눈동자가 혼란스러움이 요동 친다. 참아보려고 했지만, 참지 못한 내 고통은 곧 목소리가 되어 내 입술을 떠나고, 짧은 신음소리와 무거운 숨소리에 너의 시선은 내 어깨로 향한다. 검은색 망토에 가려진 보이지 않는 저주의 상처가 내 의식을 먹어 치우려고 한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아일랜드 외곽으로 이동이 가능한 포트키를 손에 쥔다.
깊게 숨을 들이 마시고 너에게 마주선다. 주머니에서 포트키를 꺼내어 너에게 보인다.
Il s'agit de la Portoloin.
“포트키야.”
그는 그 자리에서 순간 얼었다. 무슨 뜻인지 의미를 찾으려는 듯. 너는 알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얼마나 더 버텨낼 수 있을까. 죽음을 먹는 자들의 본거지 까지 순간이동하기 위해선 마지막 남은 내 힘을 모두 모아야 하지만, 너를 여기에 남겨두고 갈 수는 없어.
Il vous mènera d'ici.
“여기서 벗어나게 해줄 거야.”
목적지에 대해 설명하려고 했지만, 포트키를 들고 있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얼어 있는 그의 손을 잡아당겨 손바닥 위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 지팡이를 든 손을 옮기려는 순간 그의 손이 내 손목을 잡았다.
Vous avez été blessé.
“너 다쳤어.”
또렷한 너의 목소리, 그날, 드레이코가 너에게서 사라진 날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너는 분명히 나에게 실망하고 화내야 하는데, 한다는 말이 고작 이거라니. 위즐리답네. 어차피 너의 기억 속에 나는 그냥 말포이일 뿐이니까.
Nous n'avons pas le temps pour cette.
“이럴 시간 없어”
너의 손을 뿌리치며 다시 지팡이를 포트키로 가져간다.
나는 살 거야. 나는 살고 싶어. 내가 선택한 것들을 바로잡기 위해 살 거야. 후회를 하더라도 나는 살아 남을 거야. 살아 남아서 네 옆에 설 수는 없겠지만, 멀리 서라도 널 지켜볼 수 있게 난 살아 남을 거야. 살고 싶어. 네가 나를 용서하는 날이 오길 바라며 살 거야. 너를 보면서 살 거야.
급하게 드레이코가 지팡이를 든 손목을 잡으며 론의 다른 쪽 손이 드레이코의 저주가 맞은 어깨를 강하게 잡았다. 갑자기 시야가 어두워지며 온몸이 휘청거리는 것을 느낀 드레이코는 입술을 힘껏 물며 목소리가 입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무거운 숨소리를 뱉어냈다. 점점 흐려져가는 의식을 부여잡으며 있는 힘껏 목소리를 내려고 했지만, 속삭임으로 밖에 나오지 않는 목소리가 바람소리에 묻혔다.
Idiot! quoi pensez-vous!
“멍청이! 무슨 짓이야!”
그렇게 드레이코의 몸이 천천히 힘을 잃어갔다. 저주가 맞은쪽 어깨에서 흘러내린 피가 팔을 따라 손끝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마지막 까지 몸을 세우기 위해 붙잡고 있던 힘이 빠지면서 앞으로 쓰러졌다.
faux, Vous êtes un idiot.
“틀렸어, 네가 멍청이야.”
친숙하고 부드러운 론의 목소리가 드레이코의 귓가를 스치며, 드레이코는 의식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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