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명, 침묵의 주문으로 묶여있는 이 공간에, 다른 사람은 들을 수 없는 나에게만 들리는 끊임없이 들려오는.
비명.
차가운 비가 세상과 닿아 만들어내는 둔탁한 소리가 사무실 안에 울린다. 이제 더 이상 추격해야 될 사람도, 우리를 추격할 사람도 남아있지 않다. 책상 위에 너부러진 죽음을 먹는 자들에 관한 파일들, 사진들, 위치를 알아내기 위한 주문서들. 이제 더 이상 필요 없어질 것들.
나는 제일 똑똑한 사람도 아니었고, 영웅으로 태어나지도 않았다. 내가 선택한 쪽이 이길 거라고 확신했고, 그리고 이겼다.
볼드모트의 위치를 추격하는 도중 말포이가 인질로 잡혔다. 불사조 기사단 내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흥분했고, 그에게서 볼드모트의 위치를 알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자부했다. 하지만 말포이는 입을 열지 않았다.
비명.
고통과 슬픔이 섞인 비명.
잠을 잘 수 없었다. 눈을 떠보니 누군가가 정말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 모두가 바삐 지하 던전 으로 향했다. 서둘러 방을 빠져나가려는 헤르미온느를 잠깐 세워 무슨 일인지 물었다. 지하 던전에 걸어놓은 침묵의 주문이 풀린듯 했다. 누굴까? 어차피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들어주지 않을 비명을 이렇게 처절하고 끊임없이 지르고 있을까?
다시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부산하던 바깥도 점차 조용해졌다. 여기 저기 뒤척였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바깥은 아직도 어두웠다. 잠이 들었던 걸까? 몸을 일으켜 앉았다. 어떤 생각이 계속 머리 속을 맴돌았지만 그게 어떤 건지 알 수 없었다. 또 머리 속에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천천히 옷을 입고 방을 빠져 나왔다. 발이 가는대로 이곳 저곳을 걸었다. 그리고 어느새 나는 지하 던전 입구로 발을 옮기고 있었다.
궁금했다. 누가 만들어낸 비명이었을지.
지하 던전은 조용했다. 침묵의 주문은 불편한 침묵을 만들어 낸다.
내가 내는 숨소리, 내가 입은 옷의 바스락거리는 소리, 내 발이 지하 던전 돌 바닥에 닿는 소리. 이런 소리들 사이로 내 머리 속에서 누군가가 비명을 지른다.
그 곳에는 주문이 새로 쓰여 진지 얼마 안된 곳이 있었다. 차가운 철문 사이로 누군지 보기 위해 시선을 옮겼다. 온몸 여기저기 찢기고 멍든 상처, 피로 물든 셔츠를 입은 사람이 천장에 연결된 쇠줄에 손목을 묶인 채 벽에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내가 선택한 쪽이 이길 거라고 확신했다.
내가 선택한 쪽은 내가 선택하지 않은 그 쪽과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용서 받지 못할 주문을 사용하여 죽음을 먹는 자들을 죽였다, 아무렇지도 않게 죽음을 먹는 자들을 고문했다. 그들도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나와 같은 보통의 평범한 사람이었을 그들을. 전쟁은 사람을 변하게 만든다. 처음에 가졌던 원래의 목적은 이미 잊혀 진지 오래. 지금당장 원하는 정보를 위해 잔인한 일들과 잔인하다고 느꼈을 일들이 무감각해진다. 이 전쟁을 끝내야 하니까.
인질들에 대한 고문에 대한 내 생각과 다른 기사단들의 생각은 달랐다. 다른 기사단들과의 마찰로 한동안 나는 모든 임무에서 제외 됐었다. 모두들 내가 약하다고 했다. 전쟁에서 약한 건 죽는다는 걸 의미한다고 했다. 상대쪽에서 사용한 방법이 유리하다면 망설이지 않고 사용한다. 그리고 전쟁을 끝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듯이 합리화 해버린다. 전쟁이 끝나야 하니까. 내가 사용하지 않으면 적이 사용한다. 그들이 죽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죽는다는 게, 지금 사는 것 만큼 고통스러울까?
지팡이를 가져가 철문에 자물쇠를 풀었다. 옆에 있던 촛대를 들고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갔다. 피로 물든 인질에게 다가갔고, 말포이가 있었다. 문 옆 테이블에 촛대를 놓고 그 옆에 의자에 앉았다. 말포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서로의 움직임을 찾고 있었을까, 한동안 그렇게 우리는 그 공간에 같이 있었다.
기사단은 그를 고문했다. 볼드모트의 위치, 죽음을 먹는 자들의 본거지, 그는 모두 알고 있었지만 말하지 않았다. 그가 슬리데린이었기 때문에 기사단은 그의 침묵에 의아해 할 뿐이었다.
매번 말포이를 볼 때마다 그는 점점 약해졌다. 침묵의 주문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는 주문에 묻힌 비명들과 함께 점점 사라졌다. 그렇게 내가 말포이를 발견한 첫날처럼 앉아 있는다. 그냥 앉아 있는다.
Quand sera-ce la fin?
"끝나기는 할까?"
말포이가 고개를 들었다. 여기저기 얼룩진 상처들과 멍으로 엉망이었다. 그의 눈동자가 차갑게 나를 향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는 사실을. 그 차가운 시선 뿌리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왜 감정하나 없는 공허함이 가득한 그 회색 눈동자를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었을까? 내 머리 속에서 질러대던 비명이 흐느낌으로 변했고, 내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다시 말포이를 찾아갔을 때 말포이는 더 이상 묶여 있지 않았다. 더러운 바닥에 피에 물든 채 쓰러져 있었다. 그는 힘들게 숨을 몰아 쉬고 있었다. 천천히 다가갔다. 내 손끝이 닿았을 때 그는 흠칫하며, 고개를 들었다. 잠깐 동안이지만, 숨겨뒀던 감정이 그의 눈동자에 아른거리다 이내 사라졌다. 두려움 이었을까?
Vient dire, si vous n'êtes pas, ils vont te tuer.
"그냥 말해, 그렇지 않으면 기사단은 널 죽일 꺼야."
말포이는 다시 바닥에 머리를 뉘이며 눈을 감았다. 나는 지팡이를 들어 간단한 치료주문을 몇 개 외웠다. 말포이의 숨소리가 한결 편해졌을 때 다시 말했다.
Vous n'avez pas besoin de dire toutes les choses. Vient dire, si vous n'êtes pas, ils vont te tuer.
"다 말하라는 아니야, 꼭 중요한 걸 말하라는 것도 아니야. 그냥 말해, 그렇지 않으면 기사단은 널 죽일 꺼야."
Quelle que soit dire, ils vont me tuer
"뭘 말해도 그들은 날 죽일 꺼야."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서 일까, 아니면 비명을 질러서 일까, 잔뜩 쉰 목소리로 속삭였다.
Étant mort, est-ce pire que maintenant? vivante?
"죽는다는 게, 지금보다 더 나쁘기는 한가?"
말포이는 코웃음을 치려고 했지만, 이내 마른 기침과 함께 피를 토했다. 그리고는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천천히 다가가 그가 몸을 일으키는걸 도왔다. 몸을 일으키고는 벽에 몸을 기댔다. 그리고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Weasley, Enfin vous avez un sentiment de mépris.
"위즐리, 드디어 어떻게 모욕하는 건지 배웠나 보군?"
Malfoy.
"말포이."
이미 말라붙은 피와 방금 토해낸 피가 입술 끝에 맺혀있었다. 내 손끝이 그 입술에 닿았을 때, 죽을 만큼 싫어했던 그의 웃음이 입술 끝에 걸렸다.
Nous savons, où votre siège social est. Votre doesnt côté avoir assez de temps.
"죽음을 먹는 자들의 본거지를 알아냈어. 너희 쪽이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야."
"..."
Vérité. Mon côté vous tueront. C'est la façon dont notre. Aucun d'entre eux ont été vivant.
"맞아. 기사단은 널 죽일 꺼야. 그게 기사단 방식이야. 고문했던 죽음을 먹는 자들 중에 산사람은 단 한명도 없어."
"..."
J'ai choisi mon côté, vous avez choisi votre camp. Quelles sont-elles différentes?
"내가 선택한 기사단, 네가 선택한 죽음을 먹는 자, 뭐가 다를까?"
엄지손가락으로 피를 닦아 내고, 나는 내 몸을 기울여 그의 볼에 키스했다. 마치 지니에게 키스하는 것처럼 가벼우면서 마음을 담아, 아니면 작별 인사처럼 조금 망설이듯이. 내가 다시 몸을 일으켰을 때, 말포이는 천천히 눈을 뜨며 말했다.
Nous avons pris de mauvaises décisions.
"우린 선택을 잘못했어."
무슨 뜻일까? 어떤 선택? 전쟁이라는 것이 이런 것인 줄 몰랐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 소중한 사람을 잃고, 소중한 사람을 잃게 하고, 잔인해지고, 감정에 무뎌지고,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어떤 것이 틀린 것인지 모든 시비가 구름 속을 헤매는 것처럼 불명확하게 하는. 왜 다 경험해보고 난 다음에야 시작한 쪽이든, 막으려는 쪽이든 결말은 모두 같을 거라고 미처 미리 생각하지 못했을까. 어차피 결말은 양쪽 모두에게 불행할 꺼라고는 왜 생각하지 않았을까.
말포이가 말한 그 선택이라는 것, 지금 걷고 있는 이 길 말고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이 나한테 있었던가? 애초에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정해진 길을 걷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다른 길이 있기는 했나?
밖에서 들리는 작은 인기척에 나는 문쪽을 향해 걸어갔다. 말포이가 말한 잘못된 선택의 대가를 우리는 곧 치룰 것이고, 그 선택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죽음을 먹는 자들의 본거지를 소탕한 이후로 볼드모트쪽의 세력이 급격하게 약화되어갔다. 헤르미온느와 다른 기사단들과 함께 사무실에 모여 인질들에 대한 처리문제에 대해 이야기 하게 되었다. 내가 선택한 쪽은 선이었다. 그리고 말포이가 선택한 쪽은 악이었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선과 악에 대한 경계는 점점 모호해졌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같아졌다. 헤르미온느는 기사단이 죽음을 먹는 자들을 고문했다는 사실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기를 바랬다. 그래서 인질들을 죽여온 것이고, 말포이도 그렇게 될 것이다. 헤르미온느가 천천히 말을 꺼냈다.
"이제 곧 볼드모트의 위치가 정확해 질 꺼야. 그러기 전에 지하던전에 있는 죽음을 먹는 자들부터 처리해야 해."
"아직 볼드모트의 위치가 정확하지 않아. 볼드모트를 죽인 후에 처리해도 늦지 않아."
그렇게 말포이에게 약간의 더 시간이 주어졌다.
그리고 볼드모트가 해리포터의 손에 죽었다.
천천히 내 책상에서 일어나 지하 던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헤르미온느의 손짓에 잠깐 멈춰 섰다. 그녀의 손이 내 어깨 위에 자리잡았다. 그리고 물었다.
"론, 할 수 있겠어?"
헤르미온느의 눈을 쳐 다 보았다. 예전에 알던 책 읽기를 좋아하고 친구들을 걱정하던 소녀의 눈은 지치고 공허했다. 고개를 끄덕이고 미소를 지으려고 시도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녀도 미소를 짓는데 실패했다. 나는 다시 내 발걸음을 지하 던전으로 옮겼다.
내가 말포이의 방에 들어 섰을 때 그는 벽에 기댄 체 눈을 감고 있었다. 그는 내가 왜 왔는지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내가 첫날 말포이의 방에 왔을 때처럼 그 의자에 앉았다. 말포이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Je ne veux pas mourir
"난 죽고 싶지 않아."
만약, 기사단이 지고, 죽음을 먹는 자가 이겼다면 어떻게 됐을까?
Que faire si..?
"만약..."
Si j'ai gagné, serait-il différent?
"만약 내가 선쪽이 이겼다면, 달라졌을까?"
말포이가 대신해서 내 질문을 끝내주었지만, 우리는 둘 다 대답을 찾지 못했다. 그가 산다고 해도 그에게 남겨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의 부모님도, 그가 항상 자랑했던 말포이의 명예도. 살게 된다면 잘못된 선택에 대해, 그리고 전쟁을 통해 잃어야 했던 것들에 대해 후회만 하며 살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살고 싶어 한다. 론은 조용히 목에 걸려있던 목걸이를 풀었다. 흰색 수정이 내 손바닥 위에 놓여졌다.
Si vous rejoignez notre côté, on vous donne un pendentif avec un cristal.
"기사단에 가입하면, 모두에게 흰색 수정이 달린 목걸이가 배급돼."
조심스럽게 수정을 목줄에서 분리하고 문 옆 테이블 위에 올려 두었다. 그리고 다시 말포이를 쳐다봤다. 말포이가 눈을 뜨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다시 흰색 수정을 쳐다보며 말했다.
L'ingestion du cristal de vous tuer avant que tourmenté.
"이 수정을 삼키면, 고문 당하기 전에 죽을 수 있어."
Je ne veux pas mourir.
"난 죽고 싶지 않아."
말포이는 천천히 자기 몸을 일으켜 내쪽으로 걸어왔다. 내가 앉아 있는 의자 바로 앞에 서서 차가운 손으로 내 얼굴을 자기 쪽으로 고정시켰다. 그리고 속삭였다.
Tu veux mourir.
"넌 죽고 싶지."
나는. 나는. 그럴지도. 머리 속에 울리는 이 비명소리, 죽게 되면 더 이상 들리지 않을지도 모르지. 나는 이긴 쪽에 서있는데, 너는 쓰러진 쪽에 서있다. 나는 내 삶에 의심을 갖는데, 너는 네 삶에 의심 갖지 않아. 매 순간 너는 살아있는데, 나는, 나는.
말포이의 눈 속에 감정들이 휘몰아 치고 있다. 그 동안 단 한번도 볼 수 없었던 삶을 향한 불꽃이 회색눈동자 속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내 눈 속에도 저런 불꽃이 있을까? 아니, 있었던 적이 있던가. 그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고, 상처로 거친 그의 입술이 내 입술에 닿았다. 차가운 손과 달리 따뜻하고, 살아 있는 그 입술로 나에게 키스했다. 천천히 고개를 들면서 그의 손이 내 얼굴을 떠났다. 그는 뒷걸음 치며 말했다.
Je veux mourir comme un magicien.
"마법사처럼 죽고 싶어."
quoi?
"뭐?"
Je suis un pur-sang. Je veux mourir par magie.
"난 순수혈통이야. 마법으로 죽고 싶어."
주머니에서 지팡이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다. 지팡이의 무게가 이렇게 무거웠던가. 내가 하지 않으면 누군가는 해야 할 일, 아니 꼭 내가 해야 할 일.
Je n'ai jamais utiliser la malédiction avant.
"난 죽음의 마법을 써 본적이 없어."
그는 코웃음 쳤다.
Tout comme les Weasley, tous les mêmes. Sraquer. Dire la malédiction.
"위즐리 답네, 그냥 다른 마법이랑 다를 거 없어. 지팡이를 겨누고 주문을 외우면 돼."
"..."
Weasley.
"위즐리."
"..."
죽이고 싶을 만큼 싫었다. 내 가족을 모욕하고 내 친구를 괴롭히는 그가 죽이고 싶을 만큼 밉고 싫었다. 그리고 지금 그가 나에게 자신의 죽음을 제의해온다.
Weasley, Je ne vais pas vous blâmer, Ne traînez pas.
"위즐리, 원망하지 않을 테니까, 더 이상 끌지마."
지팡이에 손을 가져갔다. 말포이의 회색 눈이 묽어졌다. 내 시야도 묽어진다.
Adana Kedavra.
"아다바 케다브라."
그가 바닥에 쓰러지기 전에 그의 몸을 내쪽으로 끌어당겨 안았다. 방금 전까지 살아 있었던 그의 몸은 차가웠다. 굳게 닫힌 눈꺼풀 사이에 물방울이 맺혀 있었지만 끝내 떨어지지 않았다.
죽을 때 까지 너는 말포이. 말포이는 울지 않는다더니, 정말 그는 울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대신 울고 있다.
얼마나 그를 붙잡고 있었을까, 천천히 테이블 위에 흰색 수정을 더듬어 찾는다.
그리고 삼킨다. 너를 안고 벽에 기댄다.
드디어 내 머리 속에서 내내 지르던 비명이 사라진다.
비명.
침묵의 주문으로 묶여있는, 다른 사람은 들을 수 없는 나의 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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