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ence

손이 젖는다. 손이 핏물에 젖는다. 그가 차가운 바닥으로 쓰러진다. 새하얗게 질려버린 창백한 얼굴, 희미한 불빛아래 더 밝은 머리카락. 말포이.

드레이코 말포이.

의식 없이 축 늘어진 몸을 끌어 당겨 안았다. 몸을 낮추고 주변을 살핀다. 바람소리, 수풀이 스치는 소리, 화염이 타는 소리, 사람들의 비명소리.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 사람이 있다. 살갗을 파고드는 명백한 인기척, 자신감에 가득찬 그 인기척에 몸을 더 움츠렸다. 들고있던 지팡이를 굳게 쥐고, 눈을 감으며 온전히 청각에만 집중했다. 누군가의 발이 차가운 진흙바닥에 닿아 만들어내는 철벅거리는 소리가 충분히 가까워 졌을 때, 론은 쥐고있던 지팡이를 더욱 세게 움켜쥔 뒤, 그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소리쳤다.

“스투페파이!”

주문이 그 사람에 닿기 전에, 론은 쓰러진 말포이를 어깨에 들어 메고 달리기 시작했다. 뒤쪽에서 들리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아니 알고 있지만, 알고 싶지 않은 저주들이 계속해서 외쳐졌고, 그 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론은 쉬지 않고 달렸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을 때까지 달렸다.

주변은 어느새 어두워졌다. 희미하게 보이던 화염의 꼬리도, 갈대도 없었다. 높게 솟은 나무들 사이로 가끔 비추는 달빛뿐이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려놓은 정신을 잃은 그 사람을 보았다. 죽은 사람처럼 아무런 표정이 없는, 고요하고 적막한 이 숲과 기분 나쁘게 잘 어울리는 말포이. 거칠게 몰아 쉬어지는 내 숨소리 이외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가슴을 뚫고 나올듯한 빠른 심장박동이 천천히 원래의 속도를 찾고, 숨을 고르고 나자, 천천히 뛰는 나의 심장소리사이로 말포이의 빠른 심장소리가 들렸다.

말포이를 들쳐 맸던 어깨가 젖었다. 손끝에 묻어나는 붉은 갈색 핏물. 적갈색 피.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내는 오직 단 하나의 소리. 일정한 간격으로 빠르게 뛰는 심장소리. 몸을 옮겨 말포이쪽으로 다가갔다. 망토를 벗겨냈다. 피에 젖은 망토가 찰박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가 입고있는 검은색 로브 역시, 검은색이 아니었으면 온통 적갈색이겠지. 겉옷을 조심스럽게 벗겨냈다. 손에 꽉 쥐어진 지팡이를 빼내어 뒷주머니에 넣었다. 벗겨내진 로브 안에 상처를 입은 왼쪽 어깨부터 퍼진 핏물이 가슴쪽까지 번져 흰색 셔츠를 물들이고 있었다. 셔츠를 상처부위에서 떼어내고, 있는 힘껏 상처부위를 압박했다. 무거운 숨이 말포이의 입을 빠져 나오고, 말포이의 온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누워있는 말포이 위로 몸을 옮기며, 그가 움직이지 않게 고정하고 상처부위를 압박했다. 지팡이를 들어 간단한 응급처치 주문과 혈액생성을 촉진하는 주문을 외웠다.

계속해서 떨리는 그의 몸을 고정하기 위해 한동안 그렇게 말포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손을 떼며 상처를 보았다. 상처가 치료되기 시작했고, 그의 떨림도 덜해졌다. 셔츠 사이로 들어 난 그는 야위었다. 말랐다. 상처를 떠난 론의 손이 천천히 말포이의 가슴쪽으로 움직였다. 천천히 위아래로 움직이는 살아있는, 숨쉬고 있는 그의 가슴아래로 튀어나온 갈비뼈가 느껴졌다. 얇은 셔츠 위로 느껴지는 그의 메마른 몸. 차가운 몸.

그가 숨을 쉬고 있다는 것, 살아 있다는 것. 너무나도 분명하고 확실한데, 나는 왜 자꾸 확인하고 싶은 걸까? 천천히 고개를 숙여 그의 가슴에 귀를 가져갔다. 일정한 간격으로 빠르게 뛰는 심장소리. 고요한 이 숲에, 들리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만들어 내는 너의 심장소리. 몸을 더 가까이 가져간다. 심장소리, 다른 사람이 내는 심장소리, 살아있는 사람의 심장소리, 아무리 당겨 안아도 희미한 너의 심장소리. 더 강하게, 더 힘차게 뛰어봐.

바닥에 쓰러진 말포이의 몸을 붙잡고 얼마나 있었을까, 따뜻해진 말포이의 온기에 모든 상황이 갑자기 현실을 채웠다. 몸을 돌려 말포이 옆에 누웠다. 차갑게 불어오는 바람에 숲이 진동한다. 나뭇잎이 스쳐서 만들어내는 날이 선 거친 소리가 우리의 심장소리를 덮는다. 말포이와 나의 심장소리를 덮는다.

언제쯤 끝이 날까. 거울 속에 알 수 없는 푸른 눈동자의 무표정한 빨간 머리 남자가 나를 마주한다. 거울 속에 이 남자는 누구일까?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너무나도 간단한 이 규칙, 쉽고 간단한데 나는 이해하고 싶지 않다. 망설인다. 어쩌면 이해 했는지도 모른다. 혼란스럽다. 모든 상황은 너무나도 확실해서 혼란스러울 수 없는데, 감정은 그 혼란을 넘지 못한다.

무뎌진다. 감정에 무뎌진다. 누군가의 죽음이 더 이상 예전만큼 슬프지 않다. 사람들은 모두 그를 잊는다. 쉽게 잊는다. 그 누군가가 왜 죽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잊혀진다. 그 사실을 아는 모든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 한다. 살아 있지 않으면 의미가 없으니까. 죽어간 이름없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한 사람이 될 테니까. 살아 남기 위해 감정에 무뎌진다.

거울 속의 남자의 손이 주근깨 가득한 가슴위로 옮겨지고, 심장이 있는 부근에서 손바닥을 댄다. 손바닥 사이로 느껴지는 심장소리. 눈을 감고 그 소리에 집중한다. 살아 있다. 살아 남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거울 앞에 서있는 감정 없는 푸른 눈동자를 만난다. 낮선 눈동자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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