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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題 李商隱(이상은)

당시삼백수 卷四 七言律詩 210 無題
昨夜星辰昨夜風
어젯밤 별들이 총총하고 바람 불 적에
畫樓西畔桂堂東
화루(畫樓)의 서편 계당(桂堂)의 동편이었지
身無綵鳳雙飛翼
몸에는 채색 봉황의 두 날개 없지만
心有靈犀一點通
마음은 신령한 무소뿔의 흰 줄처럼 하나로 통했지
隔座送鉤春酒暖
나뉘어 앉아 송구(送鉤)놀이할 때 봄 술은 따뜻했고
分曹射覆蠟燈紅
패 갈라 사복(射覆)놀이할 때 등잔불이 붉었는데
嗟余聽鼓應官去
아, 경고(更鼓) 소리 듣고서 입조(入朝)하기 위해 가야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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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영서(靈犀)는 신령한 짐승이다.

    《南州異物志》(남주이물지)에 이르기를 “서(犀)는 신리(神異)함을 지니고 있어서 뿔로써 그 신령함을 드러낸다.[犀有神異 表靈以角]”고 하였다. 구설에는 무소의 뿔 속에 하얀 실 같은 것이 있어서 그것이 대뇌를 지나 뿔의 양 끝을 이어준다고 한다. 여기서는 두 마음이 서로 통하는 것이 마치 양 끝이 서로 통하는 무소뿔 같음을 말한 것이다.

  2. 送鉤(송구) : 옛 놀이의 하나로 장구(藏鉤)라고도 하는데, 고리를 보내어 그것을 감추게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술을 마실 때 즐기는 유희로 이를 통해 벌주를 먹이기도 하였다.

    주처(周處)의 《風土記》(풍토기)에
    義陽臘日飮祭之後 叟嫗兒童爲藏鉤之戲 分爲二曹 以校勝負……一鉤藏在數手中 曹人當射知所在
    “의양(義陽)에서는 섣달에 음복한 후에 노인들과 아이들이 장구(藏鉤)놀이를 하는데, 두 조로 나뉘어 승부를 가린다.……고리 하나를 여러 사람의 손 가운데 감추어두고 상대편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맞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3. 分曹(분조)는 조(組)를 나눈다는 뜻이다.
  4. 射覆(사복?사부?) 역시 고대의 놀이로 두건이나 그릇에 물건을 넣어두고 그것을 맞히게 하는 것이다.
  5. 蠟燈(납등)은 蠟燭(납촉; 밀랍으로 만든 초)이다.
  6. 鼓(고)는 늦은 밤 시간을 알려주는 북 소리, 更鼓(경고)를 가리킨다.
  7. 聽鼓應官(청고응관)은 백관이 경고가 울리는 것을 듣고 入朝(입조)하는 것이다. 옛날에는 卯時(묘시), 즉 새벽 5시에서 7시 사이에 입조하였다.
  8. 蘭臺(난대)는 秘書省(비서성)을 지칭하는데, 도서와 秘籍(비적)을 관리하던 곳이다. 唐(당) 高宗(고종) 龍朔(용삭) 연간에는 비서성을 난대라고 불렀다. 이때 시인은 비서성 正字(정자)를 맡고 있었다.
  9. 斷蓬(단봉)은 轉蓬(전봉)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는데, 마른 쑥이 바람에 날리는 것을 말한다.
당시삼백수 卷四 七言律詩 212 無題 二首之一
來是空言去絶蹤 月斜樓上五更鐘
다시 온다는 빈말을 남긴 뒤 발길을 끊으시니 달 기운 누대 위에서 오경의 종소리 듣는다.
夢爲遠別啼難喚 書被催成墨未濃
꿈속에서 멀리 떠나보낼 때 우느라 불러보지도 못했건만 편지도 급히 서둘러서 먹빛도 진하지 못하구나.
蠟照半籠金翡翠 麝熏微度繡芙蓉
촛불은 금비취 휘장에 반쯤 가려져 있는데 사향은 연꽃 휘장 너머로 은은히 스며온다.
劉郎已恨蓬山遠 更隔蓬山一萬重
유랑(劉郎)은 봉래산이 멀다고 한탄했지만 봉래산 보다 만 겹 멀리 떨어져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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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五更(오경)은 황혼부터 새벽까지의 저녁을 5등분하여 甲夜, 乙夜, 丙夜, 丁夜, 戊夜 또는 一更, 二更, 三更, 四更, 五更 등으로 지칭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막 동이 틀 무렵을 뜻한다. 一更이 지날 때마다 종이나 북 등을 쳐서 시간을 알렸으므로, ‘오경종’은 저녁의 마지막 종소리, 즉 밤을 꼬박 새웠음을 뜻한다.
  2. 金翡翠(금비취) : 비취새가 그려진 장막을 뜻한다. 금색 실로 비취새 문양을 수놓은 장막의 일종으로, 잠잘 때 촛불의 빛을 가리기 위해서 사용하였다.
  3. 麝熏(사훈)은 사향을, 繡芙蓉(수부용)은 부용꽃을 수놓은 장막을 지칭한다. 微度(미도)는 장막을 통과하여 향기가 은은하게 넘어오는 것을 의미한다.
  4. 劉郎(유랑) : 당나라 때 남자를 郎(랑)이라고 불렀다.

    東漢(동한) 永平(영평) 연간에 劉晨(류신)이 阮肇(완조)와 함께 천태산에서 약초를 캐다가 우연히 桃源洞(도원동)의 선경에 들어가 선녀를 만나서, 반년을 살다 돌아오니 자손이 칠세대가 지난 후였다. 그 뒤 다시 도원동을 찾아가려 했으나 종전의 길이 묘연하여 찾을 수 없었다는 전설이 전하는데, 남조시대 송나라의 劉義慶(유의경)이 지은 《幽明錄》유명록에 실려 있다.

  5. 惠然肯來(혜연긍래): 즐거운 마음으로 온다는 뜻으로, 《詩經》 〈邶風 終風〉시경 패풍 동풍의

    ‘하루내내 바람불고 또 흙비가 내리지만 순순히 즐겨 오기도 한다.[終風且霾 惠然肯來]’에서 인용한 구절이다. 후대에 손님의 내방을 환영하는 말로 쓰였다.

  6. 膠漆(교칠) : 아교와 옻칠로 우애가 두터움을 일컫는 말이다.
당시삼백수 卷四 七言律詩 213 無題 四首其二
颯颯東風細雨來 芙蓉塘外有輕雷
살랑 동풍 불며 가랑비 내리더니 연꽃 핀 연못 너머로 가벼운 우레 소리
金蟾齧鏁燒香入 玉虎牽絲汲井迴
두꺼비 향로 닫혀 있어도 향 넣어 사르고 범 장식 도르래의 줄로 우물물 길을 수 있건만
賈氏窺簾韓掾少 宓妃留枕魏王才
가씨(賈氏)는 주렴 너머 미소년 한연(韓掾)을 엿보았고 복비(宓妃)는 재주 있는 위왕(魏王)에게 베개 남겨주었건만
春心莫共花爭發 一寸相思一寸灰
꽃 핀다고 다투듯 춘심(春心) 내지 말지어다 한 조각 그리움이 한줌 재되고 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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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颯颯(삽삽)은 바람 부는 소리를 나타낸 의성어이다.
  2. 芙蓉塘(부용당)은 남조(南朝)의 악부(樂府)와 당시(唐詩) 가운데 남녀가 만나는 곳으로 항상 언급되는 장소이다.
  3. 輕雷(경뢰)는 사마상여(司馬相如)의 〈長門賦(장문부)〉에 “우레 소리 우르릉 울리니 님의 수레 소리 닮았네.[雷殷殷而響起兮 聲象君之車音]”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
  4. 金蟾(금섬)은 두꺼비 모양의 香爐(향로)를 말한다.
  5. 鏁(쇄)는 鎖(쇄)와 같은 말로 여기서는 향로에 태울 향을 넣을 수 있는 여닫이 장치를 말한다.
  6. 玉虎(옥호)는 물을 길을 수 있는 도르래 장치인데, 특히 도르래 장치에 조각된 호랑이 장식을 들어 말한 것이다.
  7. 牽絲(견사)는 도르래에 달린 줄을 말한다.
  8. 賈氏(가씨)는 賈充(가충)이고, 韓掾(한연)은 한수(韓壽)를 가리킨다. 少는 젊고 아름다운 모습을 말한다. ≪世說新語(세설신어)≫ 〈惑溺(혹닉)〉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보인다.

    진(晉)나라 한수(韓壽)는 용모가 뛰어났는데 사공 가충(司空 賈充)이 그를 불러 자신의 하급관리[연:掾]로 삼았다. 가충(賈充)이 모임을 가질 때마다 가충(賈充)의 딸이 주렴 너머에서 한수(韓壽)를 엿보며 마음에 들어 하였다. 그 후 자신의 하녀를 그의 집에 보내 연락을 주고받다가 급기야는 한수(韓壽)의 집에서 정을 나누게 된다.
    한수(韓壽)에게서는 남과 다른 좋은 향내[奇香(기향)]가 났는데, 서역에서 온 이 향은 황제가 가충(賈充)에게 내려준 것으로 가충(賈充)의 딸이 몸에 지니고 있다가 한수(韓壽)에게 준 것이었다. 이 향 때문에 둘 사이가 탄로나 가충(賈充)은 딸을 한수(韓壽)에게 시집보냈다.

  9. 전설에 따르면 ‘宓妃(복비)’는 원래 복희씨(伏羲氏)의 딸로 낙수(洛水)에 빠져죽어 낙수의 신(神)이 되었는데, 조식(曹植)의 〈洛神賦(낙신부)〉에도 그 기록이 보인다.

    ‘魏王(위왕)’은 조식을 가리킨다. 이 구절에서 인용한 고사는 ≪文選(문선)≫ 〈洛神賦(낙신부)〉의 이선(李善) 주(注)를 따른 것이다. 이선(李善)의 주(注)에 따르면 복비(宓妃)는 조비(曹丕)의 황후 견후(甄后)를 가리킨다.
    견후(甄后)는 견일(甄逸)의 딸로, 조식(曹植)이 그녀와 결혼하려 했는데 조조(曹操)가 조식(曹植)의 형 조비(曹丕)에게 시집보낸다. 조식은 그녀를 잊지 못해 침식을 잊을 지경이었다. 후에 조정에 들어가니 황제 조비가 동생 조식에게 견씨의 금대침(金帶枕) 등을 보여주자 조식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이때는 이미 황후 견씨가 세상을 떠난 후였으므로 조비는 금대침(金帶枕)을 조식에게 주었다.
    자신의 봉지(封地)로 돌아가다 낙수(洛水)를 건너게 되었는데 그날 꿈에 견씨가 나타나 ‘저는 본래 당신께 마음을 주었는데 그 마음이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이 베개는 제가 처녀 때부터 가지고 있다 시집가서도 썼던 것입니다. 전에 五官中郞將(오관중랑군=조비)에게 드렸는데 이제 당신께 드립니다.’라고 하였다.

당시삼백수卷四 七言律詩 215 無題
相見時難別亦難 東風無力百花殘
서로 만나기 어렵더니 헤어지기 또한 어려워 동풍은 힘 없건만 온갖 꽃 시들게 하네.
春蠶到死絲方盡 蠟炬成灰淚始干
봄 누에는 죽어서야 실을 다 뽑아내고 초는 닳고서야 눈물을 처음으로 멈추는구나.
曉鏡但愁雲鬢改 夜吟應覺月光寒
새벽에 거울 들여다보며 풍성한 머리 변한 것을 걱정하고 밤에 읊조리다가 달빛이 차가워짐을 깨닫는다네.
蓬萊此去無多路 靑鳥殷勤爲探看
봉래산을 예서 가려해도 길이 없으니 파랑새야, 살짝 날아가서 엿보아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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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東風(동풍) : 春風(춘풍)을 말한다.
  2. 絲(실 사)와 思(생각 사)는 같은 음으로 동음어이다. 봄누에가 죽어야 실을 토하는 것이 끝나듯, 굳건한 애정 역시 죽어서야 끝남을 비유하였다.
  3. 淚(누,루)는 촛농과 눈물을 뜻하는 중의어이다. 이 구절 역시 초가 다 타서 재가 되어야 촛농이 마르듯, 애정이 변하지 않음을 비유하였다.
  4. 雲鬢(운발)은 젊은 여인의 구름과 같은 검은 머리를 형용한다.
  5. 改(개)는 용모가 초췌하게 바뀌었음을 말한다.
  6. 蓬萊(봉래) : 蓬山(봉산)으로 되어 있는 본도 있다. 봉래는 동해의 선산인데 여기서는 애인이 있는 곳을 지칭한다.
  7. 靑鳥(청조) : 西王母(서왕모)에게 소식을 전해주던 전설상의 神鳥(신조)인데, 여기서는 소식을 전해주는 사람을 말한다.
당시삼백수 卷四 七言律詩 217 無題 二首之二
鳳尾香羅薄幾重 碧文圓頂夜深縫
봉황꼬리 무늬의 향라(香羅) 얇게 몇 겹을 치고 푸른 무늬, 둥근 장식의 장막을 깊은 밤에 꿰맨다.
扇裁月魄羞難掩 車走雷聲語未通
달 모양의 부채는 부끄러움을 다 가리지 못하였고 수레 소리 우레 같아 대화를 나누지 못하였지.
曾是寂寥金燼暗 斷無消息石榴紅
촛불 다 탄 적막한 어둠 속에서 보냈었는데 석류 붉게 핀 시절에도 소식조차 없구나.
斑騅只繫垂楊岸 何處西南待好風
그대의 반추마는 수양버들 언덕에 매어 있는데 어디서 서남풍 불어오기 기다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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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鳳尾(봉미)는 봉황의 꼬리 깃털로 여기서는 뛰어나게 아름다운 문양을 지칭한다.
  2. 香羅(향라)는 가벼운 고급 비단을 미화한 말이다.
  3. 碧文圓頂(벽문원정)은 녹색 무늬에 둥근 장식을 단 비단 장막을 지칭하는데, 혼례를 치를 때 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4. 縫(봉)은 장막을 깁거나 또는 여미는 것으로 해석한다. 밤 깊어 이 장막을 깁거나 여민다는 것은 연인과의 만남을 기대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5. 扇裁月魄(선재월백) 여자가 사용하는 부채로, 달 모양을 본뜬 것을 지칭한다.

    月魄(월백)은 달이 기울어 빛나지 않는 부분이나 달 자체를 지칭하기도 한다. 혹 도가에서 해는 양이므로 魂(혼)으로 칭하고, 달은 음이므로 魄(백)으로 칭했다는 설도 있다. 班睫妤(반첩여)의 〈怨歌行(원가행)〉에 “재단하여 합환선을 만드니, 동글동글 밝은 달과 같네. [裁爲合歡扇 團團似明月]”라고 하였다.

  6. 雷聲(뇌성)은 마차가 달릴 때 나는 소리를 천둥 소리에 비유한 것이다. 石榴紅 : 여름 5월 즈음 석류꽃이 필 시기를 뜻한다.
  7. 語未通(어미통)은 마차와 수레 소리 때문에 서로의 정을 확인할 수 있는 대화를 나누지 못하였음을 뜻한다.
  8. 金燼暗(금신암): 등촉이 꺼져 어두워짐을 뜻한다. 金燼(금신)은 燈花(등화) 즉 불꽃이 타는 심지이다.
  9. 石榴紅(석류홍): 여름 5월 즈음 석류꽃이 필 시기를 뜻한다.
  10. 斑騅(반추): 청색과 백색이 섞인 준마를 지칭한다.
  11. 何處西南待好風(하처서남대호풍) : ‘어느 곳에서 서남쪽에서 불어오는 좋은 바람을 타고 그대의 품에 날아갈 수 있을까.’라는 뜻이다.

    조식(曹植)의 〈七哀詩(칠애시)〉에 “부침이 각자 형세가 다르니, 어느 때 만나 함께할 수 있을까. 원하노니 서남풍이 되어, 길이 그대의 품에 들고 싶어라.[浮沈各異勢 會合何時諧 願爲西南風 長逝入君懷]”라고 하였다.

당시삼백수 卷四 七言律詩 218 無題 二首其二
重帷深下莫愁堂 臥後淸宵細細長
겹겹으로 휘장 깊이 드리운 막수(莫愁)의 방 잠자리 든 뒤 깊은 밤은 길기도 해라.
神女生涯原是夢 小姑居處本無郎
무산신녀(巫山神女)의 생애는 원래 꿈이었고 소고(小姑)의 거처엔 본래 임이 없었지
風波不信菱枝弱 月露誰敎桂葉香
바람과 물결은 마름 가지 연약한 걸 알지 못하고 누가 시켜 달과 이슬이 계수나무 잎을 향기롭게 했던가?
直道相思了無益 未妨惆悵是淸狂
그대 향한 그리움 아무리 무익해도 상관없어요 슬픈 가운데 애정에 눈멀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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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莫愁(막수): 원래는 고악부(古樂府)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이다. 남조(南朝)시대 악부(樂府)로 양(梁) 무제(武帝) 소연(蕭衍)이 지은 〈河中之水歌(하중지수가)〉(〈河中曲(하중곡)〉이라고도 한다)에

    河中之水向東流 洛陽女兒名莫愁 莫愁十三能織綺 十四采桑東陌頭 十五嫁爲盧家婦 十六生兒字阿侯 盧家蘭室桂爲梁 中有鬱金蘇合香……
    “황하 강물 동쪽으로 흐르네, 막수(莫愁)라는 이름의 낙양 여자 있었지, 막수는 열셋에 비단 짤 수 있었고, 열넷에 동쪽 길머리에서 뽕잎 땄네, 열다섯에 시집가 노씨 집안 아낙 되었고, 열여섯에 아이 낳아 아후(阿侯)라 했네, 노씨 집은 난초향 나는 방에 계수나무 서까래에다, 집안에는 울금과 소합 향내 가득하네.
    ” 라고 보이는데, 미인이기도 해서 아름다운 여자라는 의미도 포함돼 있다.

  2. 淸宵(청소)는 고요하고 깊은 밤을 말한다.
  3. 細細長(세세장)은 밤이 긴 것을 말한다. 이 말속에는 수심(愁心)이 오래간다는 의미가 함축돼 있다. 細細(세세)는 강조하는 말로 쓰였다.
  4. 神女(신녀): ‘神女’는 초(楚) 양왕(襄王)과 꿈속에서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나눈 무산신녀(巫山神女)를 말한다.

    송옥(宋玉)의 〈高唐賦 幷序(고당부 병서)〉와 그 속편(續篇) 〈神女賦 幷序(신녀부 병서)〉에 보인다.

  5. 小姑居處本無郎(소고거처본무랑): 이 구절은 남조(南朝)시대 악부(樂府) 〈神弦歌(신현가) 淸溪小姑曲(청계소고곡)〉의 “小姑 사는 곳, 님 없이 홀로 있네. [小姑所居 獨處無郎]”에서 왔다.
  6. 淸狂(청광) : 욕심이 없고 미친 사람 비슷한 상태이다. 여기서는 치정(癡情)의 뜻으로 끝까지 애정을 지킨다는 의미로 썼다.

이상은(李商隱, 원화 7년(812년) 또는 원화 8년(813년)~대중 12년(858년))은 중국 당나라의 관료 정치가로 두목(杜牧)과 함께 만당(晩唐)을 대표하는 한시인이다. 자는 의산(義山), 호는 옥계생(玉谿生) 또는 달제어(獺祭魚)이다.
이상은의 시는 화려하고 때로는 관능적이며, 때로는 상징적이다. 특히 연애시에서 이상은 시의 특색이 발휘된다. 그는 애정시 방면에서 독보적인 경지에 올랐고 사랑에 빠진 남녀의 심리를 섬세하게 읽어냈다는 평을 받는다.
무제(無題)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작품을 포함해 이상은은 아예 제목을 짓지 않거나 혹은 간단히 시구에서 빌리는 정도로 제목을 붙였는데, 만당시의 경향인 유미주의를 보다 더 추구하여 암시적이고 상징적인 수법을 구사하고, 몽롱하며 환상적이고 관능적인 독특한 세계를 구축하였다.
그 주제는 대개 '파국'으로 끝나버린 '불륜'의 연애의 회상, 감미로운 꿈 같은 청춘의 기억의 서술이다. 당연히 그 내용은 몹시 애수를 띠지만 그것을 우아한 시구나 댓구, 고전의 인용으로 장식하여 탐미주의의 경지에 이르고 있다. 출처

당나라 이상은은 두목과 함께 만당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李杜(이두)라고 불린다. 당대(唐代)시인은 워낙 유명한 사람이 많고 또 한시의 최대 번성기라고 할 수 있을정도로 사용하는 문체나 소재가 매우 다양하다. 유독 애정시를 많이 쓴 이상은은 후대에도 영향을 많이 끼쳤는데 대부분의 유교적 해석이 그러하듯 뜻대로 보지 않고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끼워맞추어 쇄락해가는 당나라와 연관지어 그의 애정시를 사회적 통찰로 바꿔버렸다. 유교하는 애들은 다들 좀 인셀이었는지 왜들 그렇게 정치나 사회랑 연관 못시켜서 안달일까? 순수하게 사람이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점을 부정하려고 한다. 다른 한시와 마찬가지로 유명한 시가들을 인용한 구절이 많기때문에 기본지식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7언율시이고 만당시기의 작품이기 때문에 시경이나 초사처럼 직관적인 뜻 유추가 어려운 부분이 별로 없다.

사실 처음으로 이상은의 시를 접한 것은 신조협려에 나온것이다. 양과가 소용녀와 자신의 처지를 촛불에 비유할 때, 황약사가 죽은 부인을 그리워하며 읊고 서재에 걸어둔 대련을 떠올리는 부분에 나오는 시이다.
“봄 누에는 죽음에 이르러서야 실이 다하고, (春蠶到死絲方盡) 촛불은 제 몸을 다 살라서야 눈물을 그치네. (燭炬成灰淚始干)”
이 구절은 후대의 시나 문학 작품에서도 종종 인용될 뿐만아니라 봄누에와 촛불이라는 단어에 애틋한 서사를 부여한 시이기도 하다.그 나라에서는 의무교육과정에 포함되어 있어서 현대에도 자주 사용되는 구절이라고 한다. 해석및 참고는 출처를 참고해주세요.

秋扇 第8

凉飇奪炎熱 시원한 바람이 더위 빼앗아 가면

주자서가 눈을 떴을 때, 침상에 고개를 괴고 자고 있는 온객행의 얼굴이 보였다. 주자서는 혹시나 또 꿈인가 싶어서 온객행의 뺨을 쓸어보았다. 작은 목소리로 불러 보았다.
“노온.”
온객행은 눈을 뜨지 않았다. 주자서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아쉬워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주자서의 한숨소리에 온객행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온객행이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응. 아서….”
주자서는 온객행에게 그 이름이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야 할까 생각하다 나부몽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변덕이 심하고 쉽게 실증을 내는 사람….’ 강주에서 동정호까지 장강을 따라 가면 사흘이 걸린다. 동정호에서 포양호까지 말을 달리면 하루면 도착이다. 어떻게 해도 멀기만 했던 장강의 물줄기 위에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서 마음이 두근거렸다. 그러다 정말로 돌아가도 괜찮을까 걱정이 되었다. 황궁에서는 주첩여를 찾고 있을까? 육궁에서 후궁이 목숨을 내던지는 일은 많지는 않았으나 없지도 않았다. 부태후는 드디어 눈엣가시가 사라졌다고 생각할까? 주자서는 신세를 한탄하느라 온객행이 눈을 뜬 줄도 몰랐다.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물었다.
“아서. 무슨 생각해?”
주자서는 온객행의 목소리에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온공자!”
온객행은 주자서의 호칭에 눈썹이 축 처졌다. 주자서는 괜히 미안해서 눈썹을 손으로 쓸고 말했다.
“노온.”
온객행이 배시시 웃었다. 주자서는 자신의 말 한마디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얼굴이 귀여워서 온객행의 얼굴을 마주보고 부스스 웃어버렸다. 온객행이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보더니 말했다.
“아서, 왜 벌써 일어났어? 아직 해가 뜨지도 않았는데.”
온객행은 자리에서 일어나 침상에 걸터앉아 일어나면서 흘러내린 이불을 주자서의 어깨에 둘러주었다. 주자서는 침상 곁에 놓인 화로에 불이 꺼진 것을 보고 말했다.
“노온, 추운데 왜 여기서….”
온객행이 주자서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붙어 앉아 말했다.
“보고싶어서… 아서가 보고싶어서.”
주자서는 온객행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서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꿈에서까지 제가 보고 싶으십니까?”
온객행이 고개를 주자서 쪽으로 기대며 말했다.
“응. 계속 보고싶어. 아서가 가지 말라고 했잖아. 나는 여기 있어. 아서.”
주자서는 온객행에게 보였던 추태가 떠올라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나부몽이 간단한 음식을 가지고 객실로 들어왔다. 나부몽은 침상에 나란히 앉아 졸고 있는 온객행과 주서를 발견했다. 이미 다 꺼진 화로와 등롱을 보고 작게 한숨 쉰 나부몽은 탁자에 찬합을 내려놓고 부산을 떨었다. 온객행은 나부몽이 화로에 탄을 채워 넣는 소리에 눈을 떴다.
“부몽. 언제 왔어?”
나부몽은 얼른 화로에 찻물을 올려놓고 탁자에 찬합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침을 준비했습니다.”
온객행은 주서를 놓아주고 크게 기지개를 켜더니 탁자로 가서 찬합을 열어보았다. 주서도 온객행이 일어나는 기척에 금방 눈을 떴다. 온객행은 벗어 놓았던 장포를 걸치고 주서의 환복시중을 들었다. 주서가 작은 목소리로 거절을 했고, 온객행은 주서의 거절에 아랑곳하지 않고 주서의 몸 이곳 저곳을 더듬으며 시중을 들었다. 나부몽은 온객행이 다른 사람에게 졸라대며 귀찮게 하는 것을 처음 보았다. 평소 타인에게 별로 큰 관심이 없는 온객행은 주서에게서 뭘 보고 있는 걸까?

온객행이 주서에게 골라 입히는 옷은 원래는 온객행의 옷이다. 계절별로 명절별로 매해 새로 짓는 옷은 온객행이 입을 때도 있고, 한번도 입지 않을 때도 있다.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온객행의 취향에 맞게 색깔도 소재도 다양하다. 주서는 온객행이 골라준 밝은 벽색(碧色)옷을 입었다. 언젠가 온객행이 너무 수수해서 입지 않겠다고 했던 무늬 없는 옷이다. 온객행은 자꾸만 흐트러지는 주서의 등허리에 손을 얹어 자세를 바로잡았다. 주서가 똑바로 몸을 세우면 온객행보다 한 치(약 3cm)정도 작다. 살짝 고개를 숙이면 눈이 마주치고 귓가에 입을 가져가 무언가를 속삭이기 딱 알맞다. 온객행은 주서의 등 뒤에 서서 요대에 말려 들어간 장포를 정리하고 허리를 안고 귓가에 속삭였다.
“아서는 벽색이랑 잘 어울려.”
온객행의 목소리에 주서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주서의 목덜미와 귀 끝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온객행은 주서의 반응에 기분이 좋아서 주서의 허리에 팔을 둘러 안고 어깨에 고개를 묻으며 말했다.
“아서는 정말 너무 사랑스럽다.”
온객행의 말에 차를 준비하고 있던 나부몽이 크게 헛기침을 했다. 온객행은 주서를 탁자로 데려가 앉히고 찬합을 열어 음식을 꺼냈다. 갓 내린 찻주전자를 탁자 위에 올려놓은 나부몽이 온객행을 도왔다. 나부몽은 식사가 끝날 때까지 온객행이 주서를 희롱하는 것을 구경했다.

다 먹은 찬합을 정리해서 나부몽이 객실에서 나갔다. 금방 선장과 이주의 행수(行首)가 기별했다. 온객행은 그들을 방 안으로 들이는 대신 자신이 장지문을 열고 나갔다. 온객행은 주서를 혼자 객실에 두고 싶지 않아서 나부몽이 돌아 올때까지 객실 앞에 있다가 주서를 부탁하고 갑판으로 향했다. 나부몽이 객실 안으로 들어왔을 때, 주서는 창문을 조금 열고 낭수의 물줄기를 구경하고 있었다. 나부몽은 혹시 주서가 한증으로 또 앓아 누울까 걱정이 되어 일부러 크게 한숨을 쉬고 화로에 탄을 조금 더 채워 넣었다. 주서는 나부몽의 한숨소리에 창문을 닫고 평상에 가서 앉았다. 나부몽은 그래도 조금은 정신을 차린 듯한 주서를 두루두루 자세히 보며 상태를 살폈다. 온객행의 거리감은 남이 보기에 조금 민망한 것이었으나 그렇다고 이 배에서 온객행을 나무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나부몽은 한참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강주는 처음이십니까?”
주서는 나부몽의 질문을 듣고서도 한참동안 대답이 없었다. 나부몽이 힐끔 주서를 보자 주서는 작게 고개를 흔들었다. 나부몽이 말했다.
“촉경에는 왜 가는 줄 아십니까?”
주서는 이번에도 대답이 없다. 나부몽은 끓고 있는 찻물을 찻주전자에 옮겨 담고 주서에게 찻잔을 내밀며 말했다.
“혼약자를 데리러 갑니다.”
나부몽이 다시 주서를 보았다. 주서는 작게 고개를 끄덕일뿐 별말 하지 않았다. 주서는 여전히 묻지 않는다. 묻지 않으니 나부몽 역시 답해줄 수 없다.

강주로 향하는 내내 주서는 전보다 훨씬 상태가 좋아졌다. 일어나 앉아 있는 시간도 길었고 거동하는 것에도 크게 어려움이 없었다. 온객행은 주서를 데리고 배의 이곳 저곳을 다녔다. 실은 짐들의 대부분은 관중에서 나는 특산물로 파촉에서는 귀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온여옥이 온객행을 촉경으로 보낸 이유는 촉경에서 유학하고 있는 조위녕을 데려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으나, 파촉에 주문해둔 혼례물품을 공수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주문 물품의 대금을 돈이 아닌 물건으로 치렀기 때문이다. 파촉은 예로부터 비단이 유명했기 때문에 혼례복부터 예단과 폐물로 사용할 곳이 많았다.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확인목록에 온객행은 주서와 함께 보낼 시간이 줄어서 마음이 바빠졌다. 주서는 전과 다르게 온객행을 찾거나 온객행에게 매달리지 않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온객행만 더 애가 닳아서 틈만 나면 주서에게 몸을 붙였다. 온객행의 손은 항상 주서의 몸 어디인가에 붙어 있었다. 지금도 차를 마시는 주서의 등허리를 쓸고 있는 온객행의 손이 너무나 당연해서 오히려 보고 있는 나부몽이 민망했다. 주서도 나부몽의 시선을 눈치챘는지 몸을 이리저리 틀어 보았지만 온객행은 불편하냐며 주서의 어깨에 팔을 둘러 품에 안았다. 또 품에 안았다. 주서는 전과 달리 온객행과 거리를 두고 싶은 것 같았다. 눈만 마주치면 들러붙어 오는 온객행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고민하는 기색이다. 주서가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며 거절과 거절을 거듭해야만 그제야 온객행은 주서를 품에서 놓아주었다. 나부몽은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온객행이 눈치를 주면 객실밖으로 쫓겨났다.

갑판 난간에 기대어 저 멀리 보이는 강주를 보고 있던 나부몽에게 선장이 다가와 물었다.
“셋째공자의 손님은 대체 누굽니까?”
나부몽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그것이 왜 궁금하시오?”
선장이 말했다.
“여인입니까? 사내입니까?”
나부몽은 선장의 질문에 고개를 돌려 선장을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 선장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몸짓도 그렇고 말도 잘 안하고 입은 옷도….”
나부몽은 눈동자를 굴리며 생각해보았다. 자기 스스로도 몇 번이나 주서의 몸짓이 여인 같다고 생각해왔던 터라 선장을 나무라기도 난처했다. 나부몽은 목을 가다듬기 위해 헛기침을 몇 번하고 말을 할 것처럼 입을 열었다 그냥 다물어버렸다. 선장이 답답한지 나부몽에게 말했다.
“누구인지는 상관없으니 여인인지 사내인지나 말해보시오.”
나부몽은 선장을 빤히 보다가 다시 시선을 강주로 던지며 말했다.
“셋째공자께 물으시오.”
선장이 주저하며 말했다.
“그러다 미움이라도 사면….”
신의상단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온가의 셋째공자에 대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주서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묻지 못했다. 온객행의 부를 시샘했던 귀족집 자제의 가문이 갑자기 쇠하여 유배를 가거나 장안에 다니던 서원에서 온객행을 괴롭히던 학자들이 하나둘 좌천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온가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꽤 높은 벼슬에 있는 첫째공자나 둘째공자보다 할 수 있으면서도 아무것도 안 하는 셋째공자를 더 무서워했다. 나부몽이 웃으며 말했다.
“조심하시오. 내 기억으로 셋째공자께 미움을 샀던 이중에 편히 살고 있는 이는 없으니.”
선장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근처에 있던 선원들에게 정박(碇泊)할 준비를 하게 했다.

강주는 장강의 여러 물줄기가 만나는 곳이라 포구가 굉장히 컸다. 온객행은 배를 내리기 전에 물품을 다시 한번 확인하기 위해 화물을 싣는 하갑판으로 내려갔다. 주서는 온객행 옆에 서서 배 이곳 저곳을 구경했다. 배가 선창에 다리를 내릴 때까지 온객행은 이주의 행수와 장부를 보며 싣고 온 물건들에 대한 시세에 대해 대화했다. 해가 지기 전에 배가 강주에 닿았다. 날이 어두워지면 귀중한 물품이 대부분인 상단의 물건을 하역(荷役)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기 때문에 하루 더 이주에서 타고 온 배에서 머무르게 되었다. 강주의 행수가 보낸 호위와 아침에 하역을 도울 하인들로 조금은 한산했던 배가 북적북적했다. 이주와 강주의 행수에게 상단의 일을 일임하고 온가주에게 받았던 물품 목록을 확인한 온객행이 서둘러 객실로 향했다. 온객행은 너무 오래 주서를 혼자 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강주에 닿았으니 이제 온객행을 알아보는 이들이 적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주서와 함께 강주의 시내를 돌아볼 생각으로 마음이 부풀었다. 온객행이 객실로 들어오자 나부몽과 탁자에 앉아서 차를 마시던 주서가 고개를 돌려 온객행을 보았다. 온객행이 활짝 웃으며 탁자로 다가가 주서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말했다.
“아서! 나 보고 싶었어? 내일은 강주를 둘러보자.”
나부몽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여유가 있으시겠습니까?”
온객행이 주서의 옆자리에 앉아 주서가 마시던 찻잔을 빼앗아 입을 축이고 말했다.
“여유가 없으면 만들면 되지. 장강에 닿았으니 노(櫓)꾼이라도 부르지 뭐.”
나부몽이 콧방귀를 끼고 말했다.
“요기는 하셨습니까? 저녁을 준비할까요?”
온객행이 주서를 보고 말했다.
“아서. 저녁은 먹었어?”
주서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온객행이 주서에게 몸을 기대며 말했다.
“나는 아직 안먹었는데…. 혼자 먹기 싫으니까 아서가 도와줘.”
온객행의 말에 주서는 역시 대답없이 작게 고개만 끄덕였다. 나부몽은 인사도 하지 않고 장지문을 열고 주방으로 향했다.

주자서는 온객행이 배 안에서 이리저리 움직이고 일하는 것을 보고 그가 실존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조금 실감했다. 주자서를 보살펴주는 온객행과 상단의 일을 하는 온객행은 주자서가 알고 있는 감각과는 조금 달라서 낯설기까지 했다. 주자서는 혹시나 방해가 될까 객실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온객행은 주자서를 떼어 놓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그렇다고 나부몽이 아닌 다른 호위를 두어 주자서를 속박하려고 하지는 않아서 계속 온객행 곁에 있었다. 정박을 하고도 배에서 내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오늘 밤도 배에서 머무를 것 같다. 주자서는 온객행이 곁에 있는 것이 좋은 것인지 싫은 것인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온객행의 거리감은 주자서를 확실하게 불편하게 했지만 주자서가 머릿속을 헤매고 있을 때, 그를 다독이고 붙잡아준 것 역시 온객행이었다. 온객행의 옷깃에 얼굴을 묻고 잘못을 고백했던 것이 생각났다. 온객행은 주자서가 했던 말을 모두 들었을까? 주자서가 무슨 짓을 했는지 누구인지 알게 되면 온객행은 뭐라고 말할까? 그러다 벌써 몇번이나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누구라도 상관없다고….’ 주자서의 나약한 마음이 온객행에게 매달리고 싶어했다. 혼약자를 데리러 간다고 한다. 관을 했으니 혼례를 올리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온객행이 혼례를 치르고 나면 주자서는 어디든 갈 수 있을까? 언제쯤 온객행의 흥미가 떨어질까? 혼례를 치르고 나면 주자서를 놓아줄까? 주자서는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매달리고도 싶었다. 부질없고 순진한 주자서가 되어 온객행에게 매달리고 의지하고 싶었다.

잠자리에 들고도 한참 동안 주자서는 자신이 뭘 하고 싶은 것인지 알 수 없어 꿈속을 헤맸다. 주서를 좋아한다고 했다. 보고 싶고 만지고 싶다고 했다. 그러다 침상에서 주자서에게 올라타 그의 몸을 만지던 온객행이 떠올랐다. 사람의 온기가 그리웠던 것은 사실이다. 어쩌다 온객행의 연심이 주자서를 향하게 되었을까? 주자서는 다 부서지고 망가진 자신을 좋다고 하는 온객행이 안타까워 한숨이 나왔다. 뺨에서 따뜻한 손길이 느껴졌다. 주자서는 자기도 모르게 그 손에 뺨을 비비며 말했다.
“노온….”
뺨을 어루만지던 손길이 주자서의 입술에 닿았다. 주자서는 ‘노온’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계속 입을 맞추겠다는 온객행의 맹랑한 엄포가 생각나 웃음이 났다. 주자서는 따뜻했던 온객행의 품이 그리워서 말했다.
“원컨대 서남풍이 되었으면 좋겠어요.(4)”
그리고 뺨을 어루만지는 손을 잡아 얼굴을 묻었다. 온객행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여기서 서남풍 불어오길 기다린다오.(3)”
주자서는 눈을 떠서 방금 그 말을 한 것이 정말 온객행인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꿈을 꾸는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몸이 너무 고단하여 잠이 들어버리고 말았다. 주자서는 참으로 오랜만에 꿈도 꾸지 않고 편안하게 잠들었다.

나부몽이 아침 일찍 온객행을 깨우러 객실에 들어왔다. 평상을 보았으나 온객행은 없었다. 나부몽은 작게 고개를 흔들며 침상을 보았다. 침상 곁에 엎어져 주서를 바라보고 잠든 온객행을 보고 나부몽은 헛웃음이 나왔다. 온객행이 옷걸이에 걸어 놓은 장포를 들고 온객행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살짝 두드리고 말했다.
“공자. 일어나세요. 곧 하역합니다.”
온객행이 고개를 들어 나부몽을 보았다.
“벌써?”
나부몽은 가져온 장포를 온객행에게 둘러주며 침상 위에 맞잡은 온객행과 주서의 손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통금이 막 풀렸습니다. 가서 장부만 맞춰 보시면 됩니다.”
온객행은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맞잡은 손을 쓸어 어루만지다 주서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나부몽이 얼굴을 구기는 것을 본 온객행이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내가 다녀오는 동안 아서를 잘 보고 있어.”
온객행은 주서에게 이불을 잘 덮어주고 일어나며 말했다.
“보기만 해. 만지지 마.”
나부몽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어서 다녀오십시오.”

내려야 할 짐이 많았기 때문에 온객행은 주서가 깨어날 때까지 돌아오지 못했다. 주서는 간단히 죽으로 요기를 하고 온객행이 골라 놓은 옷을 입었다. 나부몽은 혼자 할 수 있다 하기에 주서가 혼자 옷 입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가 답답해서 다가가 옷 매무새를 정리해주었다. 나부몽이 주서의 요대에 구겨진 앞섶을 정리하는데 온객행이 객실 안으로 들어왔다.
“아서!”
가깝게 붙어 서있는 나부몽과 주자서를 발견한 온객행의 표정이 조금 이상하게 변했다. 온객행이 나부몽과 주서를 떨어뜨려놓고 말했다.
“부몽!”
나부몽은 얼른 찻잔에 차를 따라 온객행에게 건네고 말했다.
“배에서 내리십니까? 강주를 둘러보신다고요?”
나부몽의 말에 온객행이 주서를 보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아서. 강주는 처음이야?”
온객행은 주서의 등허리에 손을 올려 그를 객실 밖으로 이끌며 말했다.
“오늘은 날씨가 아주 좋으니까 강주를 구경하자.”
온객행과 주서는 이주에서 타고 온 배에서 내렸다.

온객행은 강주에 도착해서 신의상단의 지점과 점포들을 둘러보며 주서를 데리고 여기저기를 쏘다녔다. 장안과 달리 온객행을 아는 이가 없어서 주서에게 더 친밀하게 굴었을 지도 모르겠다. 온객행은 폐물로 줄 여인의 장신구를 이리저리 살펴보며 주서에게 말했다.
“아서. 이것 좀 봐.”
장인이 미리 주문해둔 물건을 가지러 간 사이 온객행과 주서는 점포 안에 비치된 금은보옥으로 만든 장신구를 구경했다. 온객행이 옥으로 만든 머리 장식을 보며 말했다.
“포감(蒲甘; 미얀마)의 비취는 색이 정말 맑고 투명한 것 같아. 이렇게 선명한 자색의 자옥(紫玉)은 처음 봐.”
주서가 온객행이 가리킨 옥으로 만든 장신구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온객행은 비단끈으로 묶은 주서의 머리를 매만지다가 주서의 손을 잡고 옥으로 만든 관이 있는 곳으로 이끌고 가서 말했다.
“아서.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말해.”
주서는 온객행의 말에 살포시 웃더니 작게 고개를 흔들었다. 말없이 온객행이 이것저것 고르는 것을 보고 있던 주서는 한 켠에 놓인 금으로 만든 각선(却扇)을 보았다. 혼례때 신부가 얼굴을 가리는 부채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한참 부채를 보고 있던 주서는 작게 한숨을 쉬고 온객행에게 다가가 말했다.
“노온. 밖에서 기다려도 될까요?”
온객행이 주서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안돼. 아서는 보석에는 흥미가 없구나.”
주서는 대답없이 고개만 작게 끄덕였다. 온객행이 주서의 요대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정말 마음에 드는 것이 없어? 요패라도 하나 사 줄게.”
주서는 고개를 흔들며 한발짝 뒤로 물러났다. 온객행은 그게 또 서운하고 아쉬웠다. 곧 장인이 들어와 온가에서 주문한 물건들을 하나 둘 꺼내 설명하기 시작했다.

온객행은 가주에게 받은 폐물목록이 적힌 장부를 펼쳐 장인이 가져온 물건들을 확인하고 있었다. 주서는 옆에 앉아 온객행이 확인하는 것을 가만히 앉아 보고 있다. 한 책이 넘는 장부를 모두 확인하는 동안 주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온객행은 장인과 잠시 물건을 확인하러 가는 척하면서 주서에게 줄 하얀 벽옥으로 만든 비녀를 하나 샀다. 마음 같아서는 금이나 은으로 만든 진귀한 장신구를 온객행의 취향에 맞춰 주문하고 싶었지만 주서는 뭘 주어도 받아주지 않을 것 같아서 가장 수수하고 단아한 것으로 골랐다. ‘주서는 관례를 올렸을까? 비녀만 살 게 아니라 관을 샀어야 할까?’ 온객행은 검게 옻칠한 상자 속에 비녀를 보고 웃었다. 온객행은 품속에 비녀가 든 상자를 넣었다. 그 이후로도 비단을 주문한 포목점에 들렸다. 강주뿐만 아니라 가주(嘉州)에도 주문한 물건이 있었기 때문에 가주에 도착하면 문수(汶水)를 따라 촉경으로 갈 예정이다. 온여옥은 온객행에게 촉경에서 조위녕을 데리고 장안으로 오는 것과 온상의 혼례까지 얌전히 있을 것을 조건으로 일엽선을 온객행에게 주겠다고 약속했다. 온상의 혼례까지는 시간이 있으니 여유롭게 장안으로 돌아가서 일엽선을 받으면 배를 타고 주서와 황하를 유람할 생각이다. 온객행은 머무는 객잔으로 향하며 말했다.
“혼례는 내년 여월(餘月; 4월)인데 벌써부터 이렇게 서두를 필요가 있나 싶어.”
뒤에 서있던 나부몽이 말했다.
“장안으로 돌아 가실 때는 육로로 가십니까?”
온객행이 고개를 돌려 나부몽을 보고 말했다.
“몰라. 조가에게 물어봐야겠지.”
나부몽이 온객행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객잔에 도착해서 간단히 요기한 온객행 일행은 각자의 객실로 돌아갔다. 온객행이 주서의 객실에 화로를 들고 들어가며 말했다.
“아서. 이곳은 남쪽이라 화로를 내놓지 않았나 봐.”
주서는 온객행이 들고 들어온 화로에 손을 쬐고 고개를 끄덕였다. 온객행은 화로에 찻물을 올리고 행장함(行裝函)에서 검은색 피풍의를 꺼내 주서에게 둘러주었다.
“아서. 춥지? 밤바람은 차다.”
그리고 주서가 열어 놓은 창문을 닫았다. 주서는 온객행이 가져온 화로 곁에 쪼그리고 앉아 물이 끓는 찻주전자를 구경했다. 온객행이 다가가 주서를 일으켜 의자에 앉히고 말했다.
“아서. 힘들어? 피곤해? 잘까?”
주서는 한동안 찻주전자를 보고 있다가 고개를 돌려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노온께서도 가서 쉬십시오.”
온객행이 차를 내리며 말했다.
“동정호에서 멀지 않아서 아주 좋은 흑차를 얻었어. 아서는 숙차를 좋아하지?”
주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온객행이 준 찻잔을 탁자에 내려놓고 온객행을 보았다. 온객행이 주서에게 다가가 등허리에 손을 얹고 말했다.
“아서?”
주서가 온객행의 손을 잡고 말했다.
“노온께서도 피곤하지 않으십니까? 어서 가서 쉬세요.”
주서의 걱정이 기꺼워 온객행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응. 아서. 오늘은 정말 많이 돌아다녔다. 아서도 피곤해?”
주서는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놓았다. 온객행은 주서의 객실을 나가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지만 주서는 계속해서 온객행을 밀어냈다. 온객행은 주서가 잠이 들면 다시 돌아올 요량으로 일단 객실을 나갔다. 온객행은 객실을 나가면서 주서의 객실 장지문과 창문에 호위를 두었다.

주자서는 온객행의 혼례를 위한 물품을 고르는 것이 기쁘면서도 쓸쓸했다. 조가와 맺는 척분이니 온객행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이루어질 혼인이다. 온객행이 혼인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다시 장안으로 돌아가는 것이 너무 두려웠다. 주자서는 어서 온객행의 흥미가 떨어져 나가기를 주자서를 향한 마음이 돌아서기를 기다렸다. 온객행은 주자서가 밀어내도 밀리지 않는다. 밀리지 않으면 당기는 것도 방법이다. 전부 줘 버리면 금방 질려버릴까? 주자서는 장포와 중의를 벗어 옷걸이에 걸어 놓고 구리로 만든 면경 앞에 앉았다. 어두워진 실내에 면경 속 아른거리는 모습은 가냘프고 볼품없어서 주자서는 눈을 질끈 감았다. 주자서는 벌써 마음 속으로 온객행을 놓아주자고 몇 번이나 다짐했다. 그 다짐은 온객행의 얼굴을 볼때마다 무너지고 무뎌진다. 주자서는 자신의 마음을 알 수 없어서 이번엔 머릿속이 아니라 가슴속을 헤맨다. 처음에는 그냥 그리워할 수 있는 대상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닥치니 정말 그리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을까 겁이 났다. 당장 옆에서 보고 만질 수 있었는데 그럴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답답하고 마음이 아프다. 차라리 온객행이 원하는 대로 휘둘렸으면 좋았을까? 주자서는 익숙한 한숨을 내쉬었다. 뺨에 느껴지는 따뜻한 손길, 주자서는 또 같은 꿈을 꾼다.
“노온….”
주자서는 뺨을 어루만지는 손에 얼굴을 묻고 가는 한숨을 내쉬었다.
“노온….”
주자서의 뺨에 닿는 숨이 간지럽다. 뺨에 느껴지는 이 감촉은 아마도 입술인 것 같다. 주자서는 부끄러워서 얼굴을 묻은 온객행의 손으로 고개를 돌려 손바닥에 입을 맞췄다.
“노온….”

온객행은 손에 입을 맞추는 주서가 사랑스러워서 팔을 둘러 주서를 끌어안았다.
“아서. 정말 좋아해.”
주서의 숨소리는 금방 평온해졌다. 온객행의 심장이 주서의 입술이 닿은 손바닥에서 뛰는 것 같았다. 잠결에 온객행은 자기도 모르게 침상 위로 올라갔는지도 모르겠다. 신발도 벗지 않고 그대로 주서를 끌어안고 자고 있는 모습을 온객행을 깨우러 온 나부몽이 보았다. 나부몽은 온객행을 어떻게 깨워야 하나 침상 앞에 서서 고민하고 있다가 주서와 눈이 마주쳤다. 나부몽은 주서를 한참 보고 있다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아… 기침하셨습니까?”
나부몽의 목소리에 주서의 목덜미에 고개를 처박고 자고 있던 온객행이 웅얼거리며 말했다.
“아직… 무슨 일이야?”
온객행의 잠긴 목소리에 주서가 몸을 움츠리며 온객행을 밀어냈다. 주서의 바르작대는 몸짓에 온객행이 주서를 더 가깝게 끌어안았다. ‘윽’ 하는 주서의 신음소리에 온객행의 눈이 반짝 떠졌다. 고개를 돌려 침상을 내려보고 있는 나부몽을 보고 온객행이 말했다.
“어… 왜?”
나부몽이 눈을 굴리며 말했다.
“가주로 향하는 배의 선장이 찾아왔습니다. 장안에서 전령을 보냈습니다. 주문 목록을….”

온객행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부몽을 보고 말했다.
“부몽. 고마워. 금방 나갈게.”
나부몽은 온객행의 말을 듣고 별말 없이 객실을 나갔다. 온객행은 끌어안고 있던 주서를 놓아주고 침상에 걸터앉았다. 주서도 곧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온객행이 주서를 보고 말했다.
“아서. 그러니까….”
주서가 침상아래 있는 신발을 신으며 말했다.
“잠결에 잠자리를 착각하셨나봅니다.”
온객행이 주서의 시중을 들며 말했다.
“아니… 그러니까 그게….”
주서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옷걸이가 있는 쪽으로 걸어가 옷을 입었다. 온객행도 일어나 주서를 따라가며 말했다.
“이거는… 내가….”
주서는 말없이 묵묵히 중의를 입었다. 온객행이 주서를 멈추고 말했다.
“아서. 아니야 오늘은 이 옷 말고….”
온객행이 회백색의 얇은 무명 옷을 꺼내 주서에게 입히며 말했다.
“강주는 아직 날이 차지 않으니까….”
주서는 말없이 온객행의 시중을 받아주었다. 온객행은 내의가 다비치는 얇은 중의를 입히고 요대를 매준 뒤 조금 두꺼운 장포를 입혔다. 온객행이 옷걸이에 걸어 둔 피풍의로 손짓하며 말했다.
“추우면 피풍의를 두르면 되니까….”
주서는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고 고개를 끄덕였다. 주서가 옷을 갈아입는 온객행의 흘러내린 머리를 정리해주었다. 온객행은 어제 사두었던 옥비녀가 떠올라서 주서를 면경 앞에 앉혔다.

지금 그리고 그때

Now and then Beatles


I know it's true
It's all because of you
And if I make it through
It's all because of you

And now and then (Ah-ah)
If we must start again (Ah-ah)
Well, we will know for sure
That I love you

I don't wanna lose you, oh no, no
Abuse you or confuse you
Oh no, no, sweet darlin'
But if you have to go (Go), away (Ah-ah-ah)
If you have to go, well you the reason...

Now (Now) and then (And then)
I miss you (I miss you)
Oh, now (Now) and then (And then)
I want you to return to me
'Til you return to me

I know it's true
It's all because of you
And if you go away
I know you could never stay

Now (Now) and then (And then)
I miss you (I miss you)
Oh, now (Now) and then (And then)
I want you to return to me
Now (Now) and then (And then)
I miss you (I miss you)
Oh, now (Now) and then (And then)
I want you to return to me
Now (Now) and then (And then)

내 살아 생전 비틀즈 신곡이 나오는걸 보고 죽을 줄은 몰랐지.. 살아있길 잘했다.

秋扇 第7

常恐秋節至 항상 두려운 것은 가을철 이르러

온객행은 들썩이는 주서의 몸을 감싸 안고 그를 달래 보려고 했다. 울다가 혼절이라도 할까 온객행은 계속해서 주서의 귓가에 속삭였다.
“아서. 진정해. 괜찮아.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온객행은 한참을 달래느라 객실의 등롱이 꺼지는 것도 몰랐다. 주서가 조금 진정되었을 때 온객행이 말했다.
“아서. 정말 미안해. 내가 너무 무례했지? 미안해.”
주서는 대답없이 온객행의 앞섶을 조금 더 세게 움켜쥐었다. 온객행은 할 수만 있다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고 싶었다.
“아서. 나는 신의상단 셋째아들 온객행이야. 나는 형제들 중에 제일 못나서 벼슬도 없고, 아마 상단을 잇지도 못할 거야.”
주서는 조용히 온객행이 하는 말을 들었다.
“나는 황실이니 귀족이니 그런 것들은 별로 관심이 없어.”
온객행의 말에 주서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온객행은 그 몸짓이 반가워서 말했다.
“아서도 지위나 신분은 상관없지?”
온객행은 대답을 바라고 물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주서를 좀더 가깝게 추슬러 안고 말했다.
“부친께서는 모친이 돌아가시고 조금 이상해지셨어. 명예나 권력 같은 것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이었는데… 언제 수단에서 목적으로 바뀌신걸까?”

신의상단은 주자서도 들어본 이름이다. 조황후의 당질과 혼약을 맺고 내전에 있는 모든 후궁에게 선물을 보낸 적이 있기 때문이다. 평소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 부태후와 조황후에게서 아무런 트집도 잡히지 않았던 것은 양도 양이었지만 부태후와 조황후의 취향을 적절히 맞추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주첩여가 받은 선물은 후궁들이 모두 나누어 가지고 난 후에 남은 묵은 차와 아무도 원하지 않은 색깔의 비단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주첩여가 가진 것들 중에 가장 품질이 좋았다. 온객행은 주자서가 생각한 것 보다 훨씬 대단한 집의 자제였다. 그의 집에서 길을 잃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 일지도 모르겠다. 귀동냥으로 들었던 신의상단의 재력이 사실이라면 온택에서 별탈없이 빠져나온 것 만으로도 운이 좋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물론 금방 다시 잡혔지만. 주자서는 온객행이 하는 말을 듣고 있다가 문득 자신이 죽은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축축해진 온객행의 앞섶을 놓고 주자서는 몸을 바로 하고 온객행을 보았다. 온객행은 품에서 떨어지는 주자서를 놓아주고 웃으며 말했다.
“아서. 울지 마. 내가 잘못했어.”

주자서는 자신의 뺨에 닿은 온객행의 손에 얼굴을 잠시 기댔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눈앞에 있는 온객행을 보았다. 손을 들어 축축해진 온객행의 옷깃을 쓸었다. 잘생긴 얼굴과 잘 어울리는 푸른색 비단. 머리를 장식한 은으로 만든 관 역시 아주 잘 어울렸다. 주자서도 한 때 이런 얼굴을 한 적이 있었다. 출신 상관없이 능력을 가장 중요시한 부친 덕분에 주자서는 서출임에도 다른 형제자매와 허물없이 어울릴 수 있었다. 주자서는 지금 자신의 모습이 어떨지 궁금했다. 황궁에서 매일 원치 않아도 봐야 했던 면경 속의 서부인은 주자서가 아니었다. 창백하게 야위고 구부정한 여인은 빈말로라도 미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주자서는 면경 속에서 보았던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온객행이 보고 있을 까봐 부끄러워졌다. 주자서는 고개를 숙이고 소매를 들어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
“달 모양의 부채로는 부끄러움을 다 가리지 못하니….(3)”
그러다 주자서는 여태 온객행에게 보인 추태가 떠올라 얼굴이 달아올랐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몸에 팔을 둘러 끌어안고 말했다.
“나는 여기서 서남풍 불어오길 기다린다오.(3)”
주자서는 다정한 온객행의 답변에 자기도 모르게 온객행의 품에 들어가고 싶어 졌다. ‘서남풍 되어 당신의 품으로 날아가게요.’(4)주자서는 온객행을 밀어내고 넙죽 엎드려 말했다.
“온공자께서 베푸신 은혜를 갚을 길이 없습니다. 하오나 저는 이미 혼인한 몸으로 온공자의 마음에 답해드릴 수 없습니다.”
주자서는 그동안의 친절이 어쩌면 온객행이 주자서를 여인이라고 착각한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온객행이 그동안 자신을 희롱한 것이라며 주자서의 멱살을 쥐어도 주자서는 할 말이 없었다. 주자서의 행동은 충분히 오해의 소지가 많았다. 매달리고 의지하는 무르고 멍청한 여인의 억지를 받아준 온객행은 어떻게 보면 피해자였다. 그런데도 온객행은 되려 미안하다며 몇차례나 주자서에게 사과했다.

주자서는 자신의 행동이 부끄럽고 죄송스러워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말했다.
“온공자께 큰 폐를 끼쳤습니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팔을 잡아 그를 일으키며 말했다.
“아서. 무슨 소리야 아니야. 폐라니.”
주자서가 고집스럽게 온객행의 시선을 피하자 온객행이 말했다.
“아서는 나에게 아무런 폐도 끼치지 않았어. 내 마음대로 이리저리 휘두르기만 했는걸.”
주자서는 고개를 흔들고 말했다.
“온공자. 주서는 저의….”
온객행이 주자서의 양 뺨을 손으로 잡았다. 주자서가 당황하여 말을 멈춘 사이 온객행이 입을 맞춰왔다. 주자서가 온객행의 어깨를 밀고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온공자! 저는 여인이 아닙니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말에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아서. 그게 무슨 소리야. 여인이라니? 아서가 왜 여인이야?”
주자서가 고개를 돌려 온객행을 보았다. 온객행은 다시 얼굴을 붙여 주자서에게 입술을 붙이며 말했다.
“노온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계속 할 거야.”
주자서는 손을 들어 온객행의 얼굴을 밀며 말했다.
“온공자! 잠시만요. 잠시만.”
온객행은 주자서의 말을 듣는 척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입술을 붙여왔다. 주자서는 조금 짜증이 나서 버럭 소리쳤다.
“노온!”
온객행은 주자서의 뺨에 입을 맞추더니 주자서를 놓아주고 말했다.
“응. 아서.”

주자서는 온객행과 거리를 조금 벌리고 말했다.
“노온. 잠시만요.”
온객행은 소란으로 바닥에 떨어진 피풍의를 털어 주자서에게 둘러주고 말했다.
“아서. 내가 미안해. 내가 너무 성급했던 것 같아.”
주자서는 눈썹을 구기며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신의상단의….”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는 대를 잇거나 상단을 잇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그런데 아서는 벌써 혼인을 했어?”
주자서는 조금 멍한 얼굴로 온객행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온객행의 눈썹이 축 쳐져서 울상을 하고 주자서에게 물었다.
“누구랑?”
주자서는 한참 입을 달싹이다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온객행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물었다.
“죽었어?”
주자서가 온객행을 보고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온객행이 다시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상관없네.”
주자서는 웃는 온객행의 얼굴에 손을 올렸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손에 고개를 기대더니 눈을 감았다. 주자서는 눈썹을 찌푸리고 온객행의 뺨을 꼬집었다. 온객행이 깜짝 놀라 주자서의 손을 잡고 말했다.
“아야! 아서!”
주자서는 소매를 걷어 온객행에게 팔을 내밀고 말했다.
“꼬집어 보시오.”
온객행은 자신의 뺨을 잡고 주자서가 내민 팔을 한참 보더니 다시 소매를 내려주고 주자서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아서. 심통이 나서 그래?”

주서가 직접 걷어 올린 소매 사이로 보인 팔뚝은 온객행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하얗고 가늘다. 온객행은 혹여나 잘못 만지면 부러질까 조심스럽게 소매를 내리고 주서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혹시 화가 났는지 물었다. 주서는 그동안 보았던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뭔가를 정확히 바라보는 기색이 없던 눈동자에 광채가 희미하게 보였다. 어쩌면 그의 정신이 돌아오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온객행은 한쪽에 밀어 두었던 이불을 다시 펴서 주서를 눕히고 말했다.
“아서. 몸이 피곤해서 그래. 마차로 이동하느라 제대로 쉬지 못했잖아.”
주서는 온객행이 하는대로 고분고분 말을 듣다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온객행?”
온객행은 주서가 부르는 이름이 좋아서 웃으며 말했다.
“응. 아서가 불러주니 더 좋다 그 이름.”
주서는 침상에 걸터앉은 온객행의 얼굴을 양손으로 더듬더니 몸 이곳저곳을 더듬었다. 온객행이 주서의 손을 잡고 그를 멈추며 말했다.
“아서! 이러지 마. 난 지금 엄청 참고 있단 말이야. 내가 아서에게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온객행의 말에 주서의 예쁜 눈썹이 찡그려졌다. 그 모습이 귀여워 온객행은 부스스 웃었다.

주서가 온객행에게 물었다.
“여기… 여기가 어디입니까?”
온객행은 주서를 다시 침상 위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준 뒤 피풍의까지 덮어주고 말했다.
“여긴 이주야. 우리 촉경에 가고 있잖아.”
주서는 고개를 숙이고 온객행이 한 말을 되새겼다.
“이주….”
온객행은 고개를 숙인 주서를 보고 있다가 탁자 위에 꺼진 등롱을 보았다. 밖에서 희미하게 들어오는 빛으로 주서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조금 아쉬웠다. 온객행은 신발을 벗고 침상 위로 올라갔다. 그 전에 했던 것처럼 이불을 덮고 있는 주서를 끌어안고 자려는데 주서의 몸이 뻣뻣하게 굳어 있다. 온객행은 주서의 머리에 고개를 기대고 그의 등허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서. 나 너무 졸려.”
주서는 한참 온객행의 품에서 바르작대다가 온객행의 가슴에 고개를 기대고 잠이 들었다. 온객행은 주서의 행동이 귀여워서 주서의 이마에 입술을 꾹 눌러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고 주서를 가깝게 끌어안았다.

다음날 아침 주자서가 먼저 눈을 떴다. 푹 자고 일어나니 멍했던 정신이 돌아오는 기분이다. 주자서는 고개를 들어 자신을 안고 있는 온객행을 보았다. 꿈인 줄로만 알았는데 아니었다. 죽은 줄로만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주자서는 그동안 온객행에게 보였던 추태가 떠올라서 눈을 꼭 감고 ‘끙’하고 신음했다. 온객행이 정말로 실존하는 인물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주자서는 여태까지 죽음을 눈앞에 둔 죄인에서 행동거지가 수상한 남자가 되어버렸다. 주자서도 딱히 죽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살아 있다는 것에 조금은 안도했다. 그러다 여태 온객행에게 했던 매달리는 행동이 떠올라 땅속으로 꺼지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주자서는 잠깐 자신이 베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망각한 채로 뺨을 비비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주자서의 머리 위로 낮게 웃는 소리가 났다. 주자서는 이불을 슬쩍 내리고 고개를 들었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아서. 벌써 일어났어?”
주자서는 다정한 온객행의 아침 인사에 되려 죄스러워졌다. 온객행만은 속이고 싶지 않았는데 주자서에 대해 이미 다 알고 있는 나찰인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밖에서 하인이 기별을 하고 들어왔다. 주자서는 온객행과 한 침상에 누워 있는 것이 부끄러워 눈을 꼭 감아 버렸다. 나부몽이 탕약을 탁자위에 올려 놓고 말했다.
“공자. 탕약입니다.”
나부몽의 목소리에 주자서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온객행이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주서를 침상에 눕히고 말했다.
“부몽. 강주로 가는 배는 어떻게 됐어?”
나부몽이 꺼져가는 화로에 탄을 채우고 찻물을 올리며 말했다.
“신의상단의 화물선인데 크기가 커서 객실도 있습니다. 가주께서 준비하신 길이라 거절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서도 탕약 덕분인지 조금 회복한 것 같아. 오늘은 언제 출발해?”
나부몽이 객실의 창문을 열고 해를 가늠하더니 말했다.
“어서 준비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온객행이 침상에서 일어나 탁자위에 올려 놓은 탕약을 들고 주서에게 다가가 말했다.
“아서. 일어났어?”
나부몽은 침상 위에 이불더미를 물끄러미 보다가 작게 한숨을 쉬고 객실을 나갔다. 온객행이 나가는 나부몽에게 말했다.
“부몽. 간단히 요기할 것 좀 준비해줘. 배 위에서 먹을게.”
나부몽은 온객행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고 장지문을 닫았다.

온객행이 침상의 이불을 걷으며 말했다.
“아서. 일어나. 아무도 없어.”
주서는 눈을 뜨고 객실을 둘러보더니 천천히 침상에서 일어났다. 온객행은 항상 하던대로 탕약을 한술 떠서 후후 불어 주서의 입 앞으로 가져갔다. 주서는 온객행을 한참 보고 있다가 온객행이 들고 있는 탕약 그릇을 빼앗아 들고 후후 불어 마셨다. 온객행은 주서가 자의로 뭔가를 먹거나 마시는 것을 본적이 없는 터라 기뻐서 말했다.
“아서, 뭐 먹고 싶은 것 없어? 뭐든 말해 봐.”
주서는 고개를 흔드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온객행은 아쉬웠지만 더 말하지 않고 주서에게 입힐 옷을 골랐다. 온객행은 주로 밝은 색깔의 옷을 골라서 주서에게 입혔는데, 하얀 옷을 입고 있는 주서는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같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내의가 살짝 비치는 회색 중의를 보고 온객행은 괜히 부끄러워져서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아서. 남쪽으로 내려와서 그런가? 조금 덥지 않아?”
그 사이 탕약을 모두 비운 주서는 침상에서 내려와 신발을 신고 있었다. 온객행이 놀라서 주서에게 다가가 말했다.
“아서. 내가 도와 줄게. 그동안 계속 내가 신겨 줬잖아.”
주서가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말했다.
“이제… 이제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온객행이 크게 당황하며 주서의 내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아서?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었는데….”

주서는 온객행이 골라 놓은 옷이 걸린 병풍 쪽으로 이동하더니 온객행이 고른 옷을 보고 있다가 입기 시작했다. 온객행이 주서의 시중을 들기 위해 병풍으로 다가가자 주서가 다급하게 손을 내젓고 말했다.
“온공자! 혼자 할 수 있습니다.”
온객행은 주서의 말을 무시하고 다가가 어설프게 걸친 얇은 회색 중의를 매만지며 말했다.
“아서. 아침부터 내 입맞춤을 원하는 거야?”
가까워진 거리에 딱딱하게 굳어버린 주서가 손을 들어 다가오는 온객행을 밀며 말했다.
“노온. 노온! 혼자 할 수 있습니다.”
온객행은 병풍에 걸려있는 장포를 둘러주고 소매를 정리해 주었다. 검은색 요대를 허리에 두르느라 온객행은 주서를 품에 안고 있었다. 등 뒤로 매듭을 짓고 앞으로 정리했다. 온객행이 주서의 앞섶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말했다.
“아서. 오늘은 조금 서둘러야 하니까.”
온객행의 시선에 들어온 주서의 목덜미와 뺨이 빨갛다. 온객행은 혈색이 좋아진 주서의 모습을 보고 조금 마음을 놓았다가 빨갛게 달아오른 그를 보고 정욕이 일었다. 그를 보는 것만으로 시선이 데이는 기분이다. 온객행은 저도 모르게 주서에게 얼굴을 가깝게 붙였다. 주서는 온객행의 가슴에 가지런히 손을 올리고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노온. 서두르신다고….”
온객행은 아쉬워서 주서의 귓가에 작게 한숨 쉬고 말했다.
“응. 어서 가지 않으면 배를 놓칠지도 몰라.”

온객행은 정신이 있는 주서를 너무 오랜만에 마주해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마차에 탈 때는 항상 끌어안고 있었기 때문에 온객행은 마차에 타자마자 자연스럽게 주서의 어깨에 팔을 둘러 안았다. 주서는 온객행의 행동에 조금 경직되기는 했지만 뭐라고 더 말하지는 않았다. 낭수의 포구는 물줄기의 시작점이라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신의상단의 커다란 배가 포구를 차지하고 짐을 싣고 있었다. 선창에서 화물선으로 이어진 다리 위로 수레와 말이 보였다. 마차에서 내린 온객행에게 나부몽이 말했다.
“지금 선적을 하고 있어서 조금 기다리셔야 합니다.”
온객행이 마차에서 내리는 주서를 부축하며 말했다.
“그래? 강주(江州)로 먼저 간다고 했지?”
나부몽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강주에서 짐을 내리고 다시 짐을 싣고 장강을 따라 촉경으로 갑니다.”
온객행이 마차에서 내린 주서의 옷매무새를 만지며 말했다.
“같은 배로 가는가?”
나부몽이 고개를 젓고 말했다.
“강주에서 싣는 짐은 많지 않아서 아마 아닐 겁니다.”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고 물었다.
“얼마나 걸리겠는가?”
나부몽이 온객행과 주서를 배로 안내하며 말했다.
“이틀이면 도착합니다.”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고 주서를 부축하며 말했다.
“아서 강주에는 가보았어?”
주서는 온객행이 한 말을 듣지 못한 듯했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낭수의 포구를 보았다.

온객행은 배에 타자마자 상갑판에서 선장을 만났다. 이번엔 주서도 곁에 두었다. 주서는 배의 난간에 기대어 낭수를 보았다. 강바람에 주서가 입은 옷이 휘날린다. 그 모습이 위태로워 온객행은 나부몽에게 주서에게서 눈을 떼지 말라는 명령을 했다. 나부몽은 하인을 시켜 여우털 피풍의를 가져오게 시켰다. 주서가 입은 옷은 나풀거려 예쁘기는 했지만 강바람을 맞기에는 얇아 보였다. 나부몽이 주서에게 피풍의를 둘러주자 주서가 거절하며 말했다.
“아. 괜찮습니다.”
나부몽은 주서의 거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피풍의를 둘러주며 말했다.
“한증이 있으니 몸을 따뜻하게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주서가 피풍의를 여미는 나부몽을 보고 말했다.
“그렇습니까.”
나부몽은 전보다 힘이 들어간 주서의 목소리에 조금 마음을 놓았다. 나부몽이 주서의 곁에 서며 말했다.
“공자께서는 변덕이 심하고 쉽게 실증을 내는 분이시니 조금만 더 어울려 주십시오.”
주서가 나부몽을 힐끔 보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선장과 온객행이 상단의 거래 물품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동안 나부몽은 차를 내렸고 주서는 그 옆에 앉아 점점 멀어지는 이주의 포구를 구경했다.

강바람이 세차다. 돛이 높게 올라가고 선원들이 배위로 올라와서 뱃일을 시작했다. 온객행은 나부몽을 힐끔 보더니 선장과 하던 대화를 잠시 멈추고 말했다.
“부몽. 아서랑 같이 객실로 가 있는 것이 좋겠어.”
온객행의 말을 들은 선장이 주서를 힐끔 쳐다봤다. 나부몽은 앉아 있는 주서를 부축해서 갑판아래 선미에 있는 객실로 이동했다. 온객행이 선장을 보고 다시 장부를 펼쳤다. 화물의 확인을 하인에게 부탁하는 것으로 온객행이 꼭 해야 할 일들을 얼추 마쳤다. 선원을 관리하고 배로 짐을 실어 나르는 것은 장안에서도 종종 했던 일이었기 때문에 어려운 것은 없었다. 단지 조금 거슬리는 것이 있다면 선원들이 힐끔힐끔 주서를 쳐다보는 것 정도다. 온객행은 빠르게 마무리하고 객실로 향했다. 선장은 온객행에게 뭔가 묻고 싶은 것이 있는 눈치였지만 온객행은 모르는 척하고 재빨리 자리를 떴다. 온객행이 객실에 들어서자 세찬 강바람이 온객행의 뺨을 스쳤다. 주서가 창문을 열고 강물을 구경하고 있었다. 벌써 강물 끝에 해가 걸렸다. 나부몽이 객실의 등롱을 밝히며 온객행에게 인사했다.
“시장하시지 않습니까? 다과만 드시고….”
나부몽이 객실을 나가며 말했다.
“저녁을 준비할 테니 잠시 기다리십시오.”
온객행이 나부몽을 보고 말했다.
“부몽. 고마워.”

온객행이 창밖을 보고 있는 주서에게 다가가 말했다.
“아서.”
주서는 고개만 돌려 어깨너머로 온객행을 힐끔 보고 말했다.
“온공자.”
온객행은 주서에게 뒤로 다가가 안으며 말했다.
“왜 또 온공자야.”
주서는 어깨에 기댄 온객행의 고개를 피하며 말했다.
“노온! 노온.”
온객행은 아쉬워서 주서의 목 뒷덜미에 입을 맞췄다. 주서가 몸을 부르르 떠는 것이 귀여워 온객행은 웃었다. 주서는 고개를 돌려 장지문을 보고 말했다.
“호위하는 분은…?”
온객행이 주서의 허리를 잡고 말했다.
“밥을 먹어야지. 아서는 뭐 좀 먹었어?”
주서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돌려 화로 쪽으로 향했다. 온객행은 주서의 피하는 기색을 읽고 조금 서운해졌다. 객실의 창문을 닫고 주서가 앉은 의자의 팔걸이에 걸터앉아 주서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말했다.
“아서. 갑자기 왜 그래?”
주서가 찻잔에 차를 따라 온객행에게 건네고 말했다.
“제가 뭘 말입니까?”
주서가 건네는 찻잔을 받아 입을 축인 온객행이 말했다.
“뭔가… 뭔가 달라. 전에는 좀 더… 아서는 좀 더….”

주서가 불편하다는 듯 헛기침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화로를 불쏘시개로 뒤적이며 말했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온객행은 주서가 앉아 있던 의자에 앉아 주서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뭔가 전에는 좀 더 친밀했던 것 같은데… 아서….”
온객행은 멀어지려는 주서를 끌어당겨 허리를 안았다. 주서는 딱히 벗어나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마주 안지도 않았다. 온객행은 괜히 서운하여 주서의 가슴에 머리를 비비고 말했다.
“아서. 부끄러워서 그래? 괜찮아.”
주서는 온객행의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나부몽이 기별도 없이 장지문을 열고 들어와 탁자에 찬합을 올려 놓고 말했다.
“공자. 와서 요기하세요.”
주서는 당황하여 온객행의 팔을 잡아당겼다.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아서! 정말 왜 그래? 부몽에게는 한 침상에 있는 것도 여러 번 보였는데 왜 이제 와서 내외하는 거야?”
온객행의 말에 주서는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런 주서의 모습을 본 나부몽이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뭘 이제 와서 부끄러워하십니까.”
주서는 고개를 푹 숙이고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
“그동안 정말 폐가 많았습니다.”
나부몽은 다시 밖으로 향하며 말했다.
“한증에 좋은 약이 아니라 정신에 좋은 약인가 봅니다.”

주서는 전과 달리 음식을 거부하지 않고 잘 먹었다. 자신이 먹을 수 있는 양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듯 전보다는 많이 먹었지만 보통 사람과 비교하면 턱없이 적은 양이다. 온객행은 끊임없이 주서에게 음식을 권했다. 온객행의 끈질긴 권유가 지겨웠는지 주서가 말했다.
“속을 게워 내는 것은 큰 일이라 더 먹고 싶지 않습니다.”
주서의 말을 들은 온객행은 놀라서 더는 음식을 권하지 않았다. 온객행은 탕약에 내장의 기를 보하는 약재를 추가했다. 온객행이 영견에 물을 묻혀 주서의 얼굴을 닦아주며 말했다.
“아서. 나에게 좀 더 의지해도 좋아. 응? 아서?”
주서는 온객행의 손에 있는 영견을 빼앗아 협탁 위에 올려 놓고 대야에 물을 받아 얼굴을 씻고 닦았다. 주서가 얼굴을 닦으며 말했다.
“노온. 저는 괜찮습니다.”
온객행은 주서를 빤히 보았다. 방금 씻어서 맑은 얼굴이 예뻐서 온객행은 웃으며 얼굴을 붙였다. 주서는 불편한 기색을 비치며 온객행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노온. 날이 늦었으니 어서 주무세요.”
온객행이 주서의 허리춤을 끌어당겨 안고 말했다.
“아서, 벌써 피곤해?”
주서는 온객행에게 벗어나기 위해 조금 몸부림치다가 금방 포기하고 작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매우 피곤합니다.”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주서를 침상 쪽으로 끌고 갔다. 주서는 온객행을 멈추고 말했다.
“노온! 노온! 이 곳은 노온께서 지내시는 객실이니 저는 이만….”
온객행은 주서에게 얼굴을 붙이고 물었다.
“아서는 이만?”
주서는 눈동자를 굴리더니 장지문을 열고 들어오는 나부몽을 보고 말했다.
“저는 하인들이 지내는 곳에서….”
온객행은 표정을 구기고 말했다.
“안돼. 아서는 벌써 두번이나 도망쳤잖아.”
주서는 온객행의 대답에 입을 달싹이다 다물어 버렸다. 온객행은 주서를 침상 근처에 세워놓고 피풍의를 벗겼다. 주서가 탈의하는 것을 돕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나부몽이 말했다.
“공자께서 남을 돌보는 일에 재능이 있는 줄 미처 몰랐습니다.”
온객행이 주서의 옷을 옷걸이에 걸고 말했다.
“남을 돌보는 일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아서를 돌보는 일을 잘하는 거야.”
나부몽은 콧방귀를 끼더니 화로에 찻물을 올렸다. 온객행이 침대의 휘장을 걷더니 이불을 보고 말했다.
“부몽! 이주에서 산 이불을 어디 두었지?”
나부몽이 객실을 나가며 말했다.
“제가 가져오겠습니다.”
온객행은 얼른 피풍의를 내의만 입고 있는 주서에게 둘러주고 화로 앞에 의자에 앉히며 말했다.
“아서, 춥지는 않아?”
주서는 작게 고개를 흔들고 찻잔을 들어 방금 끓은 차를 마셨다. 온객행이 옆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아서는 숙차를 좋아한다고 했지?”
주서는 작게 고개를 끄덕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온객행은 나부몽이 가지고 들어온 이불을 침상 위에 깔았다. 주서를 데려다 신발을 벗기고 눕힌 다음 이불을 덮어주며 말했다.
“아서. 성급하게 굴지 않을게. 아서가 나를 좋아할 수 있도록 노력할 거야.”
주서가 눈썹을 찌푸렸다. 온객행은 낮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주서의 눈썹을 쓸고 말했다.
“나는 아서가 아주 많이 좋으니까 아서도 나를 좋아해줬으면 좋겠어.”
주서가 눈을 가늘게 뜨고 온객행을 보고 물었다.
“좋아한다는 것은 대체 무슨 뜻입니까?”
온객행은 한참 고민하다가 화로에 탄을 채워 넣고 있던 나부몽을 슬쩍 보고 말했다.
“그러니까… 자꾸 보고 싶고… 같이 있고 싶고….”
온객행이 더 말하려고 하는데 나부몽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공자!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리고 서둘러 객실을 나갔다.

나부몽의 행동을 보고 있던 주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이불로 몸을 가리며 말했다.
“온공자. 저는… 저는….”
온객행이 당황하며 말했다.
“아서! 아서! 아니야. 아서가 원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야.”
주서가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제가 원하지 않는 것이요?”
온객행은 주서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서의 뺨을 쓸고 말했다.
“응. 아서가 원하지 않는 것은 안 해.”
그리고 주서에게 입을 맞췄다. 주서가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온공자….”
온객행은 부스스 웃고는 주서를 안고 말했다.
“아서. 일부러 그러는 거야?”
그리고는 주서의 목덜미에 또 입을 맞췄다. 주서는 뭔가 말할 것처럼 숨을 헐떡이다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온객행은 주서의 등허리를 쓸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아서가 가지 말라고 하면 안 갈게.”
주서는 온객행의 얼굴을 한동안 빤히 쳐다보더니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린 주서의 목덜미가 빨갛다. 온객행은 몸을 돌려 평상에 이불을 펴고 말했다.
“나는 여기서 잘 테니까 혹시라도 무서워지면 말해. 아서. 언제든지 부르면 갈게.”
온객행이 등롱불을 끄면서 보았던 주서의 표정은 부끄러운 듯 슬퍼 보여서 온객행은 한참 고민했다. 탁자에 있는 등롱을 마지막으로 객실에 어둠이 내려 앉았다. 온객행은 평상에 잠시 누워있다가 일정해진 주서의 숨소리를 듣고 침상으로 다가갔다. 어둠에 익숙해진 온객행의 시야에 보이는 주서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온객행은 주서에게 손을 뻗었다가 거둬드렸다. 강물이 흐르는 소리 사이로 온객행의 한탄이 나지막이 들렸다.
“어떻게 해야 아서가 나를 원할까?”

秋扇 第6

動搖微風發 서늘한 바람 일으킨다오.

주자서는 잠에서 깼다. 한참 전에 잠에서 깼지만 무서워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날은 아직 어두운지 시야가 어둡다. 지금 있는 곳이 어디인지, 때는 언제인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주자서가 타고 있는 이 커다란 배는 주자서를 또 어떤 지옥으로 데려가는 걸까? 주자서는 이불을 머리 끝까지 끌어 덮고 몸을 작게 말았다. 이대로 사라진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주자서는 이불을 매만지는 손길에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따뜻한 손이 이불 속으로 불쑥 들어왔다. 주자서는 깜짝 놀라서 쓰고 있던 이불을 걷고 일어났다. 침상에 팔을 괴고 잠이든 온객행이 팔을 더듬어 이불을 찾았다. 벌써 계추월이라 했다. 고개를 돌려 화로를 보았다. 새하얀 잿빛 사이로 희미한 불빛이 연약하다. 주자서는 덮고 있던 이불을 펴서 온객행에게 덮어주고 침상을 내려왔다. 조금 기다리니 어슴푸레하게 객실의 내부가 보였다. 등롱은 이미 다 타버렸는지 객실 안은 어둡다. 주자서는 화로 안에 불이 완전히 꺼지기 전에 탄을 채워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조금 허둥대고 서둘렀는지도 모르겠다. 객실을 나가는 장지문 근처를 찾다가 협탁 위에 놓여있던 소반을 떨어뜨렸다.

소반이 떨어지는 소리에 온객행이 일어났다. 온객행은 벌떡 일어나 침상을 확인하더니 다급하게 탁자 위에 놓여있는 등롱의 불을 밝혔다. 주자서는 온객행이 하는 행동을 보고 있다가 밝아지는 시야에 조금 눈쌀을 찌푸렸다. 장지문 앞에 서 있는 주자서를 보고 온객행은 한달음에 다가와 주자서의 팔을 잡았다.
“아서! 어디가?”
조금 다급해 보이는 온객행의 모습에 주자서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주자서는 많은 위기를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회피해왔다. 이번에도 그러기를 바라며 주자서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온객행은 주자서를 와락 끌어안더니 말했다.
“아서. 가지 마. 어디에 가려고… 나도 데려가.”
주자서가 어디에 가는지 묻는 이는 참으로 많았으나 데려가 달라는 이는 없었다. 주자서는 웃음이 나왔다.

이 사람은, 온객행은 정말 주자서가 만들어낸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주자서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사람이다. 주자서는 온객행을 마주 안고 말했다.
“제가 어디에 갈 줄 알고 데려 가라 하십니까.”
온객행이 주자서의 목덜미에 뺨을 비비고 말했다.
“어디든. 아서. 어디든 데려가. 극락이던 나락이던 아서가 가는 곳에 갈래.”
주자서는 온객행의 등을 쓸며 말했다.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도착하거든 은하수에서 다시 만나길 기약합시다.(5)”
온객행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싫어. 아서. 지금 나랑 여기 있어.”
주자서는 온객행의 말에 웃음이 났다. 부질없을 것 같던 이런 유치한 위안이 너무나 반가워서 웃었다. 그러다 온객행의 말처럼 지금 여기에 온객행과 같이 있는 것도 나쁘지 않아서 대답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로 답할 수 없는 것은 주자서의 고집일지도 모르겠다. 주자서는 온객행에게 거짓말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등허리에 손을 올려 그를 침상으로 이끌었다.
“아서. 아직 날이 밝지 않았으니 조금 더 쉬는 것이 좋겠어.”
온객행은 주자서 옆에 앉아서 주자서의 손목을 잡아 맥을 짚었다. 온객행의 눈썹이 울상이 되는 것을 본 주자서가 손을 들어 온객행의 눈썹을 쓸었다. 온객행은 양손으로 주자서의 손을 잡고 말했다.
“아서. 말하고 싶지 않으면 안해도 괜찮아. 대신 싫은 것만 말해줘. 내가 아서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
주자서는 눈썹을 쓸던 손을 내려 온객행의 뺨을 만져보았다. 조금은 차가운 뺨. 보기 좋게 살이 차오른 뺨. 주자서는 그 뺨이 부러워서 쓸어보다가 손을 내렸다. 온객행의 뺨에서 내려온 주자서의 손도 온객행의 손에 잡혔다.

크고 따뜻한 손. 주자서는 고개를 숙여 잡힌 손을 보았다. 그러다 어디에 잡힌 것이 싫어서 조심스럽게 손을 놓았다. 온객행은 그런 주자서를 침상 위에 잘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아서. 내가 여기 있을게. 조금 더 자.”
주자서가 몸을 반쯤 일으켜 일어나며 말했다.
“노온. 저는 괜찮으니 가서 쉬세요.”
온객행이 고개를 젓고 말했다.
“아서랑 같이 있을래.”
주자서는 다 꺼진 화로를 보고 이불을 들추며 온객행에게 말했다.
“그럼 추우니 이리로 오세요.”
온객행은 주자서를 물끄러미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탁상으로 가서 등롱의 불을 껐다. 온객행은 다시 침상으로 돌아와 침상에 기대 앉아 이불째 주자서를 끌어안았다.

온객행은 이불을 들추는 주자서의 내의만 입은 몸을 보고 정욕이 끓었다. 그러다 서늘하고 가는 손목에 느껴졌던 미미하고 연약한 혈맥이 떠올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탁자로 가서 등롱을 껐다. 주서를 위해 꺼내 놓은 이불은 겨울에 덮는 이불이다. 솔직히 온객행은 춥다기보다 더웠다. 이불까지 모두 끌어안아도 주서는 한 품에 안긴다. 온객행은 그게 또 안타까워서 주서의 어깨에 뺨을 비볐다. 주서는 품에 안겨 또 한참 온객행의 얼굴을 보다가 잠들었다. 주서는 온객행의 얼굴에서 무엇을 보고 있을까? 온객행은 주서의 마음이 자신과 같기를 바라며 주서를 더 가깝게 끌어안았다.

침상에 기대 잠이든 온객행은 누군가 어깨를 두드리는 느낌에 눈을 떴다. 나부몽이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옹성에 도착했습니다. 이주(利州)까지 마차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나부몽이 시선을 내려 온객행의 품에 있는 주서를 보고 말했다.
“이주에서 촉경까지 물길로 가는데 괜찮을까요?”
온객행은 주자서의 몸에 팔을 두르고 나부몽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더니 턱짓으로 나부몽을 내쫓았다. 나부몽은 표정을 구기고는 탁자 위에 올려 놓은 찬합을 가리키고는 말했다.
“짐을 내리느라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그래도 중천이 되기 전에는 출발하셔야 합니다.”
온객행은 또 고개만 끄덕이고 턱짓했다. 나부몽이 고개를 흔들며 온객행을 흘겨보고 말없이 객실을 나갔다. 온객행은 가슴에 얼굴을 기대고 있는 주서를 추슬러 안으려다 이불이 조금 흘러내렸다. 주서는 흘러내린 이불때문에 추웠는지 온객행 쪽으로 몸을 더 웅크렸다.

밖이 조금 소란스러워지고 날이 더 밝아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을 때 온객행은 어쩔 수 없이 주서를 흔들어 깨웠다.
“아서. 아서.”
주서는 온객행의 목소리에 눈꺼풀을 파르르 떨더니 눈을 살짝 떴다. 고개를 들어 온객행의 얼굴을 확인하고 나서야 눈을 뜬 주자서가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온객행은 침상에 있던 이불을 주서에게 둘러주고 일어나 탁자의 찬합을 확인했다. 시간이 지나 찬합의 음식은 모두 식어 차가웠다. 온객행은 차가운 음식을 한증이 있는 주서에게 먹이고 싶지 않아서 옷걸이에 걸어 두었던 주서의 옷을 침상으로 가져갔다. 주서의 환복 시중을 다 들고 나서 여우털 피풍의를 둘러 준 뒤에 객실을 나왔다. 나부몽이 선창에서 온객행과 주서를 발견하고 다가와 말했다.
“아직 오시가 되지 않았으니 한시진 정도 여유가 있습니다.”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고 물었다.
“마차는 어디에서 출발하지?”
나부몽이 답했다.
“옹성 남문으로 나가 천태산(天台山)을 넘어 이주로 향합니다.”
온객행이 주서를 보고 물었다.
“아서, 배고프지? 간단히 요기하고 마차로 이동할건데 괜찮아?”
주서는 말없이 온객행의 소매만 꼭 붙잡았다.

옹성을 나와 마차를 타고 이동한지 얼마 안돼서 금방 날이 저물었다. 산길이었기 때문에 평소 날이 어두워지면 금방 사람의 발길이 끊어지는 길이다. 온객행은 이주로 향하는 길 근처에 있는 작은 마을에 허름한 객잔에서 하룻밤 머무르기로 했다. 객실도 나뉘어 있지 않은 아주 작은 객잔이었는데 다행히 손님이 없어 온객행의 일행이 머무르기에 불편하지 않았다. 주서는 온객행이 준비해준 귀한 식재료의 음식보다 소박하고 담백한 음식을 조금 더 잘 먹었다. 온객행은 잘 먹는 주서가 예뻐서 주서의 그릇에 이것 저것 음식을 올려 주었다. 옆에서 보고 있던 나부몽이 말했다.
“공자님께서도 어서 드시지요. 내일 아침에는 해가 뜨기 전에 출발할 예정이니 일찍 주무세요.”
온객행이 밥을 먹으며 말했다.
“그리 서둘러서 무엇 하는가?”
나부몽은 눈을 가늘게 뜨고 온객행을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객잔을 나갔다. 온객행은 주서와 함께 앉아서 느긋하게 밥을 먹고 함께 가는 호위와 하인들에게 주서를 소개시켜주고 나서야 객실로 향했다. 객실이라기 보다는 그냥 침상이 있는 방이다.

온객행은 주서가 두르고 있는 피풍의를 벗겨 침상 위에 두고 이불을 폈다. 주서가 신발을 벗는 것을 돕고 침상에 눕는 것까지 도운 온객행은 피풍의를 다시 펴서 주서의 몸에 덮어주었다.
“아서. 방이 작아서 화로를 들일 수 없어. 춥지는 않지?”
주서는 온객행이 하는 것을 보고 있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온객행이 몸을 돌려 방을 나가려고 하자 주서가 자리에 일어나 앉아 온객행을 불렀다.
“노온.”
온객행은 오랜만에 들은 주서의 목소리가 반가워서 다시 침상으로 다가가 걸터앉으며 말했다.
“응. 아서. 왜?”
주서는 이불 밖으로 손을 뻗어 온객행의 소매를 잡았다. 주서가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노온.”
온객행은 기분이 좋아져서 말했다.
“아서. 가지 말고 여기서 같이 있을까?”
주서는 말없이 한참 온객행의 얼굴을 보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온객행은 마음이 울렁거려서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랐다. 방안은 조용해서 밖에서 들리는 풀벌레 소리밖에 나지 않았다. 온객행은 혹시나 쿵쿵거리는 자신의 심장소리가 들릴까 봐 부끄러워졌다. 주서가 말했다.
“노온. 가지마.”

온객행은 주서의 행동이 사랑스러워서 어깨를 끌어당겨 안고 말했다.
“아서. 나는 아무데도 안가. 걱정 마.”
주서는 양팔을 들어 온객행을 마주 안고 온객행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고개를 끄덕였다. 주서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노온. 여기 있어.”
온객행이 답했다.
“응. 아서. 나 여기 있어.”
주서는 고단했는지 금방 숨소리가 일정해졌다. 잠이 든 주서를 다시 침상에 잘 눕히고 온객행은 그의 뺨을 쓸었다. 그러다 다시 손목을 들어 맥을 짚었다. 조금 나아졌을까? 온객행의 의술로 알 수는 없으나 처음 만났을 때보다는 조금 잘 잡히는 혈맥이 반가웠다. 온객행은 조금 망설이다 신발을 벗고 침상 위에 올랐다. 같은 이불을 덮는 것은 부끄러워서 객잔의 얇은 이불을 잘 덮어주고 피풍의를 나누어 덮었다. 침상이 조금은 작을지도 모르겠다. 주서와 더 가깝게 붙어 있을 수 있는 구실이면 조금 불편한 잠자리도 나쁘지 않다. 온객행은 모로 누워서 주서의 몸에 팔을 둘렀다. 일정한 주서의 숨소리를 들으며 온객행도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아주 이른 시간에 온객행의 일행은 길채비를 시작했다. 온객행은 먼저 일어나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주서에게 옷을 입히고 시중을 들었다. 그런 온객행의 모습을 보고 있던 나부몽이 코웃음을 쳤다. 온객행은 아랑곳하지 않고 주서의 곁에 달라붙어서 그의 시중을 들었다. 피곤했는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주서를 먼저 마차에 실어 놓고 온객행은 시장이 있는 마을을 지나가게 되면 비단 이불을 한 채 사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객잔에 대금을 치르고 다시 길을 출발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을 때, 저 멀리 산 끝에 떠오르는 해가 걸려 있었다. 나부몽이 온객행에게 물었다.
“어제 어디서 주무셨습니까?”
온객행이 고개를 휙 돌려 나부몽을 보고 말했다.
“그건 왜 물어?”
나부몽이 눈을 굴리며 말했다.
“두 분이 같이 계시면 번을 한군데만 서면 되지 않습니까?”
온객행이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나부몽을 한참 본 다음 얼른 마차에 올라탔다.

이주까지 가는 길은 대부분 산길이었는데 가는 길에 낭수의 발원지가 있다. 낭수의 발원지를 조금 지나면 배를 띄울 수 있기 때문에 온객행은 배를 타고 갈 생각이었다. 곤히 자고 있는 주서를 마차 안에 잘 눕혀 놓고 온객행이 마차 밖으로 나와 나부몽 옆에 앉으며 말했다.
“얼마나 더 가야 뱃길로 갈 수 있을까?”
나부몽이 말을 몰며 말했다.
“멀지는 않은데 짐을 다 가지고 탈 수 있을만한 큰 배는 띄우지 못 할 겁니다.”
온객행이 풍경을 구경하며 말했다.
“그래?”
나부몽이 마차의 내부를 힐끔 보고 말했다.
“이제 침수도 같이 드시니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것입니까?”
온객행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런 것 아니야.”
나부몽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런 것이 무엇입니까?”
온객행이 팔을 들어 턱을 괴고 말했다.
“아서는 나를 좋아할까? 모르겠어.”
나부몽이 표정을 구기며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마음도 확인하지 않고 몸부터 취하셨습니까?”
온객행은 놀라서 바로 앉아 나부몽의 팔을 툭 치고 말했다.
“헛소리! 미쳤어? 취하긴 뭘 취해!”
온객행은 나부몽을 한참 흘겨보다가 다시 휘장을 열고 마차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다음 마을에 도착할 때까지 마차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주자서는 마차에 실려 어디로 인가 가고 있다. 정신이 들때마다 입은 옷을 확인했다. 언제는 온객행이 있었고, 또 언제는 없었다. 주자서는 온객행이 사라질까 봐 온객행의 소매를 붙잡았다. 그의 소매를 만지고 있으면 온전히 혼자인 것 같지 않아 마음이 놓였다. 이 길의 끝에 목적지에 닿으면 온객행은 주자서에게 어떤 판결을 내릴까? 매달리고 의지하는 무르고 멍청한 중생에게 어떤 형벌을 선고할까? 주자서는 몸이 너무 고달파서 오래 생각을 할 수도 없었다. 자꾸만 감기는 눈을 어쩌지 못하고 주자서는 또 잠이 들었다. 이번에는 또 어떤 악몽을 꿀까? 혹여나 꿈에 온객행이 나온다면 어쩌면 그 꿈은 악몽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같은 생각을 했다.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 아니에요.’ 주자서는 생각했다. ‘죄를 짓고자 그리 한 것이 아니에요.’ 어줍잖은 변명이라는 것은 주자서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들키지 않았으니 다행이지만 들켰으면 관동에 전쟁이 일어났을 지도 모를 일이다. 황실을 기만한 죄는 구족을 멸한다 했다.

주자서가 입궁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황궁에 피바람이 불었다. 선황의 황후와 귀비의 싸움으로 황실은 선황의 건강이 나빠지기 전부터 흉흉했다. 그런 사정을 알 수 없는 주자서는 그럴듯한 뒷배를 가졌음에도 황후와 귀비 모두의 눈총을 샀다. 결국 황후와 귀비 모두 부태후에 의해 숙청당하고 부태후는 황실 최고 자리에 군림했다. 지금 황제자리에 앉아 있는 유흔도 결국 부태후의 꼭두각시일 뿐이다. 아름답지도 않고 꾸미지도 않으며 바느질도 제대로 못하고 여인이 하는 일은 하나도 제대로 하는 것이 없는 주자서는 부태후에게 눈엣가시였다. 황후와 귀비를 모두 숙청하는 바람에 부태후 다음으로 육궁의 어른이 된 주자서는 바닥에 바짝 엎드려 부태후가 죽으라면 죽는 시늉을 해가며 조용히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부태후가 죽고 나면 황제에게 부탁하여 선황의 무덤을 지키게 해달라고 할 참이었다. 환갑을 넘긴 부태후보다 먼저 하늘의 심판을 받으리라고는 생각치 못한 주자서는 억울하다 못해 화가 났다.

온객행의 품에서 눈을 뜬 주자서는 온객행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마차가 산길을 달리는 소리가 너무 커서 온객행의 심장고동이 잘 들리지 않았다. 주자서는 자신이 하는 행동이 무례한 행동이라는 것은 자각이 있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게다가 온객행은 모두 받아주었다. 주자서가 원하는 대로 말하고 주자서가 원하는 대로 행동한다. 현실에 이런 사람은 없겠지 싶어서 주자서는 웃음이 났다. 주자서는 스스로가 이렇게 매달리고 의지하는 사람이었는지 몰랐다. 여태 그래 본 적이 없어서 더 그랬다. 황궁에서의 하루하루는 너무 고단하여 하루에서 수십번씩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주자서를 괴롭혔다. 주자서는 내심 알고 있었다. 황궁의 족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죽음뿐이라는 것을. 주자서는 정신이 들때마다 만나는 온객행에게 응석을 부렸다. ‘원컨대 서남풍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멀리 바람이 되어 당신의 품으로 날아가게요.(4)’ 주자서는 서남풍이 되어 온객행의 품으로 날아가고 싶었다.

온객행은 이주에 도착하자마자 의원을 찾았다. 주서에게 갑작스러운 여행은 무리였을까? 주서는 마차를 타고 오는 길에서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풍경을 보며 여행을 하면서 마음을 채우면 낫지 않을까 했던 온객행의 생각이 틀렸던 것일까? 나부몽은 주서가 몸뿐만 아니라 마음에도 병이 든 것 같다고 했다. 너무 섣불리 마음을 고치려고 하다가 몸을 망친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이주에서 제일 유명한 의원을 객잔으로 불러 주서를 진맥하게 했다. 증상은 장안에서부터 익히 들어왔던 내장손상, 한증, 그리고 기혈의 울결(鬱結)이다. 주서의 상태를 살핀 의원이 온객행을 이상한 눈으로 보고 말했다.
“잘 먹지 못한 것 같은데….”
온객행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잘 먹지 못합니다. 위장에 병이 있는 것 같은데 또 그것은 아니라고 하니….”
의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울결은 꼭 몸의 이상으로만 생기는 병이 아닙니다.”
그리고 누워있는 주서를 힐끔 보았다.

온객행이 의원의 소매를 붙들고 말했다.
“제발 살려주시오. 천금이 들어도 낼 수 있으니 고쳐만 주시오.”
온객행의 간곡한 부탁에 의원이 곤란하다는 듯 말했다.
“병자가 스스로 살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것 같은데 제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온객행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의원을 붙잡고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살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니?”
의원은 가지고 왔던 물건을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온객행이 의원을 따라 객실을 따라 나가며 물었다.
“의원님 제발 우리 아서 좀 살려주시오.”
장지문을 닫고 나와서야 의원이 다시 입을 열었다.
“마음의 병은 제가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부탁하셔도 방법이 없습니다. 병의 원인을 알아야….”
온객행은 의원의 소매를 놓고 고개를 숙였다. 말해주고 싶어도 아는 것이 없었다. 의원이 온객행에게 말했다.
“이해합니다.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있겠지요. 그러니 저는 더더욱 고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손상되었던 내장은 그나마 기운을 회복한 것 같으니 한증에 좋은 약을 처방해 드리겠습니다.”
온객행은 의원이 목간에 적어준 처방전을 들고 한참 객실 밖에 서 있었다.

나부몽이 의원의 처방전을 가지고 약방에 다녀오는 동안 온객행은 주서가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그동안 미뤄두었던 것을 묻기로 했다. 주서를 괴롭게 하는 것이 대체 무엇이기에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인지 알아야 했다. 나부몽이 약방에서 약을 지어와 탕약을 가지고 객실로 올때까지 주서는 눈을 뜨지 못했다. 온객행은 침상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 주서의 손을 잡고 그에게 어떻게 물어야 할지 고민했다. 주서가 어서 깨어 났으면 하는 마음과 깨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온객행을 괴롭게 했다. 나부몽이 소반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탕약을 가지고 들어왔다. 침상 옆에 있는 협탁에 소반을 올려 놓은 나부몽이 온객행에게 물었다.
“촉경으로 계속 가십니까?”
주서의 얼굴을 바라보던 온객행이 고개를 돌려 나부몽을 보았다.
“가야지. 부친께 약속했으니.”
나부몽이 주서를 보고 말했다.
“주공자는 어쩌시겠습니까?”
온객행이 깊은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일단은 이야기를 해보려구.”
나부몽이 고개를 끄덕이고 소반에서 탕약이 든 그릇을 온객행에게 건네고 말했다. 식기전에 얼른 드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온객행이 주서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흔들며 그를 깨웠다.
“아서. 아서 일어나봐.”
나부몽은 주서가 눈을 뜨는 것을 확인한 후에 온객행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객실을 나갔다.

주서는 온객행이 떠주는 탕약을 별말 없이 먹었다. 탕약 한 그릇을 비우는 동안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온객행이 다 마신 탕약 그릇을 다시 소반 위에 올려 놓고 영견으로 주서의 입가를 닦았다. 주서는 온객행의 얼굴을 한참 보고 있다가 말했다.
“노온. 왜 아무것도 묻지 않으십니까?”
온객행이 영견을 소반 위에 올려 놓고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아서. 나는 아서가 아픈 것이 싫어.”
주서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노온. 저는 괜찮아요.”
온객행이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흔들었다. 주서는 고개를 숙이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온객행이 주서의 손을 잡고 말했다.
“아서. 나는 아서가 누구라도 상관없어. 이제 상관없어.”
주서는 한참 온객행의 손을 만지작거리더니 입을 달싹였다. 주서는 몇번이나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답답한 온객행이 주서에게 뭔가 물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주서가 온객행을 끌어안았다. 온객행이 당황하여 말했다.
“아서?”
주서가 온객행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작은 목소리로 웅얼댔다. 온객행은 좀 더 자세히 듣기 위해 주서의 어깨를 잡아 떼어놓으려고 했다. 주서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온객행에게 몸을 붙였다. 온객행은 주서를 밀어내려다 같이 침상에 털썩 누워 버렸다. 온객행이 팔을 집어 일어나려고 했지만 주서가 더 발버둥을 치는 바람에 온객행은 얼떨결에 주서의 몸 위에 올라타고 말았다. 민망해진 온객행이 자신의 등허리에 있는 주서의 손을 잡아 침상에 내리 누르며 말했다.
“아서! 아서. 진정해!”
온객행 아래에서 보이는 주서의 얼굴은 억울한듯 조금은 화나 보였다. 온객행은 처음보는 표정이라 신선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좀더 자세히 보려고 얼굴을 가깝게 붙였다. 주서의 얼굴은 가깝게 보아도 질리지 않았다.

주서의 숨결이 가깝게 느껴졌다. 온객행이 입을 벌리면 그의 숨결을 삼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온객행은 주서의 얼굴을 보고 있다가 입술을 붙였다. ‘어떤 맛이 날까?’ 주서의 입술은 탕약의 맛이 났다. ‘그 탕약에 감초가 들어 있었을까? 달다.’ 입술을 핥고 입 안을 맛보려고 하는데 주서가 고개를 돌렸다. 온객행은 아직 맛보지 못한 입안이 아쉬워서 손을 들어 주서의 턱을 잡았다. 온객행은 주서의 놀라는 얼굴도 귀여워서 부스스 웃어버렸다. 주서는 예쁜 눈썹을 찌푸리더니 온객행을 불렀다.
“노온?”
온객행은 주서의 뺨에도 입을 맞추고 다시 입술을 찾았다. 주서의 턱을 잡고 있던 손이 점점 내려가 옷깃을 잡았다. 옷을 갈아 입고 이불을 덮어 줄때마다 보았던 그의 속살이 궁금했다. 처음 만났을 때 보았던 목덜미의 발진이 거의 없어졌으니 몸에 난 발진도 많이 없어졌는지 확인해 봐야겠다. 온객행은 정욕이 끓어 넘치는 기분이 들었다. 주서의 손목을 누르고 있던 손으로 주서의 얼굴을 잡으려고 하는데 주서가 풀린 손으로 온객행을 밀어냈다. 주서는 온객행에게서 벗어나려고 몸을 돌리고 고개도 돌려버렸다. 온객행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서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아서?”

주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앞섶을 양손으로 쥐고는 온객행에게 말했다.
“저… 저를 벌하러 오신겁니까?”
온객행이 영문을 몰라 주서에게 물었다.
“아서? 그게 무슨 말이야?”
주서는 온객행과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조금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를 벌하시려고….”
주서는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온객행은 가슴이 철렁하여 얼른 주서의 얼굴을 양손에 쥐었다.
“아서. 아니야… 미안해. 잘못했어. 울지 마.”
주서는 울음을 참는듯 보이더니 온객행이 일어나서 주서를 품에 안자 조금 크게 훌쩍였다. 온객행이 주서의 등을 쓸며 말했다.
“놀랐어? 미안해….”
주서는 온객행의 앞섶을 잡고 훌쩍이며 말했다.
“일부러…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온객행은 주서가 한 말을 좀 더 자세히 듣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주서는 계속 중얼거리며 말했다.
“속이려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온객행은 주서가 한 말 중에 대다수를 알아듣지 못했다. 온객행이 제대로 들을 수 있는 부분은 ‘일부러 속인 것이 아니다.’ 온객행은 주서의 등을 쓸며 생각했다. ‘누구를 속였다는 거지? 나를? 나는 주서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데…?’

주자서는 다가오는 온객행의 행동에 너무 놀랐다. 심판을 하러 온 나찰인줄 알았는데 주자서를 벌하러 온 것이다. 주자서는 온 힘을 다해서 온객행을 밀어보았지만 좀처럼 밀리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보고 몸을 돌려보려고 해도 온객행의 손에 잡힌 몸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 주자서는 억울하고 화가 났다. 하늘에서도 주자서가 주첩여인줄 아는 것일까? 왜 주자서를 벌하는 나찰의 모습이 사내인 것인가? 주자서는 원해서 여인의 모습을 하고 산 것이 아닌데, 하늘까지 자신을 황궁의 볼품없는 서부인 취급한다는 것에 분통이 터졌다. 화가 났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이것이 벌이라면 주자서는 달게 받아야 하는 것일까?

주자서의 손목을 누르고 있던 손이 얼굴 근처를 맴돌더니 점점 내려와 앞섶을 잡았다. 주자서는 가슴에 닿은 손의 느낌에 소름이 돋아서 풀린 손을 들어 있는 힘껏 뿌리쳤다. 주자서는 온객행에서 벗어나 보려고 몸부림쳤지만 겨우 모로 누울 수 있었다. 온객행은 언제 주자서를 겁탈하려고 했냐는 듯이 다시 다정하게 주자서를 다독였다. 주자서는 온객행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정말로 벌을 받고 있는 걸까? 주자서는 온객행이 등을 쓸어주는 느낌에 감정이 북받쳐올라 울어버렸다.
“일부러…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닙니다. 누이가 원치 않는 곳에 시집 가는 것이 싫었어요. 저는 어차피 서출이니 대를 이을 필요도 없어서 그랬습니다. 잘못했어요. 누군가를 속이려고, 황실을 속이려고 주가를 기만하려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주자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주첩여, 서부인의 굴레에서 벗어나 다시 주자서가 되고 싶을 뿐이다.

(5) 이백 월하독작 달빛아래 홀로 술을 마시다.

잊혀진 시간들

被遺忘的時光 蔡琴(채금)

是誰 在敲打我窓 是誰 在了動琴弦
누가 내 창문을 두드리고 있나요? 누가 거문고를 연주하고 있나요?

那一段 被遺忘的時光 漸漸地 回升出我心坎
그 잊혀진 시간들이 점차 내 마음 속에 떠올라요

是誰 在敲打我窓 是誰 在了動琴弦
누가 내 창문을 두드리고 있나요? 누가 거문고를 연주하고 있나요?

記憶中 那歡樂的情景 慢慢地 浮現在我的腦海
기억 속의 그 즐거운 모습들이 천천히 내 머릿 속에 떠올라요

那緩緩飄落的小雨 不停地打在我窓
천천히 흩날리는 빗방울이 끊임없이 나의 창을 두드리고

只有那沈默無語的我 不停地 回想過去
나는 홀로 조용히 끊임 없이 옛 생각에 잠겨요.

是誰 在敲打我窓 是誰 在了動琴弦
누가 내 창문을 두드리고 있나요? 누가 거문고를 연주하고 있나요?

記憶中 那歡樂的情景 慢慢地 浮現在我的腦海
기억 속의 그 즐거운 모습들이 천천히 내 머릿 속에 떠올라요.

최근에 무간도를 정주행했다. 뭔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져서 이어지는 부분이랑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지만 그래도 각각의 영화의 완성도가 참 좋아서 더 씁쓸했다. 이제 그 나라에서 이런 작품은 나올 수 없겠지. 막 홍콩이 반환되고 혼란했던 그 시기와 스토리가 잘 연결이 되서 더 많이 여운이 남는것 같다. 정주행하면서 느낀 것은 아! 나는 1편이랑 3편만 봤어구나 왜지? 그리고 정말 많은 배우가 나왔었구나... 처음 봤을 때는 그냥 음 친숙한 얼굴이군 싶었던 사람들이 모두 엄청 유명한 배우들이었다. 진도명이라던가 황추생이라던가... 진도명은 계속해서 작품활동을 이어 나가시는것 같은데 참 볼만한게 없다. 공산당 홍보물 너무 많은거 아닙니까? 뭐 그런것 밖에 못하니까 그러시는 거겠지만 아직도 그나라에서 랑야방 나온게 제일 신기하다.

秋扇 第5

入君懷袖 그대의 품속, 소매 드나들며

온객행은 나부몽이 기루의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매우 화가 났다. 기루에서 만났던 기예를 파는 이들에게 하듯이 주서를 대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대체 그들과 주서가 다른 점이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정작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없어서 온객행은 한동안 나부몽을 쳐다보고 얼굴을 찌푸렸다. 오히려 나부몽이 온객행의 반응에 조금 당황한 눈치였다. 나부몽은 찬합에서 음식을 꺼내 탁자에 올려놓고 침상을 보았다. 온객행은 나부몽이 주서를 보는 시선이 기분 나빠졌다. 음식을 모두 꺼내 놓은 나부몽이 침상으로 가려 하는 것을 막은 온객행이 말했다.
“부몽, 여기는 나에게 맡기고 가서 어서 요기해.”
나부몽은 온객행의 다정한 말에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얼굴을 살폈다. 나부몽은 곧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인사한 후에 방을 나갔다.

나부몽이 장지문을 닫고 나가자 온객행이 얼른 침상으로 다가가 주서를 보았다. 주서는 고개를 숙인채로 눈을 꼭 감고 있었다. 온객행은 조심스럽게 주서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물었다.
“아서. 왜 그래? 졸려?”
온객행의 목소리에 눈을 번쩍 뜬 주서는 온객행의 얼굴을 보고 희미하게 웃었다.
“노온.”
주서가 부르는 목소리가 애달파서 온객행이 침상에 앉아 주서를 마주보고 말했다.
“아서. 너무 피곤해? 뭐라도 먹어야지.”
온객행은 침상 옆에 가지런히 놓인 신발을 주서에게 신기고 그를 침상에서 일으켰다. 주서는 온객행이 하는 대로 시중을 받으며 온객행을 빤히 보았다. 탁자에 주서를 앉힌 온객행은 얼른 옆에 앉아서 앞접시에 음식을 담았다. 온객행이 하는 것을 보던 주서가 물었다.
“노온. 여기는 극락(極樂)일까요? 나락(奈落)일까요?”
온객행은 영문을 몰라 웃으며 답했다.
“나는 아서랑 극락에 가고 싶어. 우리 나락에는 가지 말자.”
온객행의 대답에 주서가 부스스 웃었다. 온객행도 주서를 따라 웃었다.

다시 온택에서 온객행을 부른 것은 온객행이 장원으로 돌아오고 사흘 뒤였다. 가주가 온객행을 찾는 기간이 짧아지고 빈도가 늘었다. 나부몽은 온객행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고 조금 긴장했다. 나부몽이 말했다.
“손님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온객행은 한참 말없이 가주의 서신을 보고 있다가 말했다.
“이틀 뒤에 올 테니 떠날 채비를 해.”
나부몽이 온객행을 보고 물었다.
“어디로 가시게요?”
온객행이 다시 표정을 꾸며 웃으며 말했다.
“어디든. 부친이 나를 부르지 못하는 곳으로.”
나부몽은 걱정이 되어 말했다.
“공자, 그것은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습니다.”
온객행이 나부몽의 팔을 토닥이며 말했다.
“부몽은 걱정할 것 없어. 나 없는 동안 아서를 잘 부탁해. 처소를 객실에서 내원으로 옮기는 것도 좋겠어.”
나부몽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확실히 객실에는 눈이 너무 많습니다.”
온객행이 옷매무새를 가지런히 하고 방을 나가며 말했다.
“내가 이틀 안에 돌아오지 않으면 함양성에 가 있어. 평안은장에 내 이름으로 돈을 맡겨 놓았으니 필요한 만큼 써도 좋아.”
나부몽이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평안은장에요? 가주께서 아시면….”
온객행이 고개를 흔들고 웃으며 말했다.
“부몽, 부몽. 너무 걱정 마. 나의 소중한 영매께 부탁한 일이니 부친께서 아실 일은 없어.”
나부몽은 겸연쩍은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장안성으로 떠나는 온객행을 배웅했다.

주자서는 자신에게 다정하게 구는 온객행을 볼때마다 마음이 술렁였다. 꿈을 꾸는 것인지 아니면 이미 죽은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다시 황궁에 갇힌 줄 알았는데 운신이 가능하여 둘러본 처소는 황궁과는 달랐다. 다시 잘 살펴보니 시위나 시비들의 옷차림도 보았던 것들과 조금씩 달랐다. 주자서는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온객행의 모습을 보는 일에 집중했다. 혹시라도 꿈이라면 깨어났을 때, 그를 좀 더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것이 아니라면 주자서는 죄가 많아 극락에는 갈 수 없을 테니 나락으로 가기 위해 하늘이 그를 심판하는 지도 모르겠다. 주자서는 아직 자신에 대해 온객행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온객행은 그런 주자서를 다그치거나 나무라지 않는다. 주자서는 온객행의 관대함을 이용하고 있다. 온객행이 주자서에 대해 알게 되면 나찰과 같은 모습으로 변해 주자서를 심판하려고 기다리는 것일까? 주자서는 익숙한 한숨을 가늘게 내쉬었다. 온객행과 함께 끼니를 잘 챙기니 몸에 힘이 붙었다. 날이 갈수록 몸은 편해지는데 마음이 무겁다.

토끼털을 두른 얇은 피풍의를 두르고 주자서는 창가에 앉아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다. 온객행은 주자서가 추위를 타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스스로를 숨기는 일은 그 누구보다 자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주자서는 보잘 것 없는 재주도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니 조금 우울해졌다. 해가 다져서 객실 안으로 기별없이 하인이 들어왔다. 등롱을 켜고 주자서가 몇 술 뜨지 못한 차갑게 식은 음식을 찬합에 넣어 인사도 없이 객실을 나갔다. 장원의 소등시간이 지나서 온객행이 나부몽이라고 소개한 시비가 와서 주자서의 처소를 내원으로 옮겼다. 주자서는 나부몽을 따라가는 내내 고개를 숙이고 다른 하인들의 시선을 피했다. 나부몽은 내원을 나오는 문에서 가장 가까운 사랑채에 있는 처소로 주자서를 안내했다. 처소 안에는 방금까지 사람이 있었던 것처럼 화로가 준비되어 있었고 찻물이 끓고 있었다. 주자서는 온기가 반가워 자기도 모르게 처소안에 들어가자마자 화로 곁으로 가서 몸을 녹였다. 주자서가 하는 것을 보고 있던 나부몽이 차를 준비하며 말했다.
“중추월인데도 춥습니다. 밤에 주무실 때 탄을 꼭 확인하고 주무십시오.”
주자서는 대답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온객행을 찾았다. 주자서가 무엇인가 찾는 기색을 눈치챈 나부몽이 물었다.
“무엇을 찾으십니까?”
주자서는 어깨를 튀며 깜짝 놀랐다. 주자서는 부끄러워져서 또 고개를 숙이고 고개를 흔들었다. 나부몽은 더 묻지 않고 침상의 잠자리를 확인하더니 내실을 나갔다.

주자서는 한참 화로를 보고 있다가 창가로 가서 창문을 열려다 말았다. 올해 중추월은 다른 때보다 더 추운 것 같다. 아니면 벌써 날이 많이 지나 중양절이 가까울 지도 모르겠다. 중양절에 황제는 종남산(終南山) 남오대(南五臺)에 올라 유명한 시인들을 불러 시를 짓게 하고 국화주를 하사했다. 남오대는 불가의 성지이기 때문에 불교에 심취한 부태후가 항상 참가했고, 부태후가 가면 조황후 역시 가야했기 때문에 중추절이 지나고 나서 중양절이 될때까지 황궁의 육궁은 조용했다. 그래서 주자서는 아직도 황궁에 있는 줄로만 알았다. 주자서는 꿈이라면 최대한 깨지 않기를 바랬고 나찰이 심판을 하는 것이라면 기다리기로 했다. 심판이 끝나기 전에 더 많이 보고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주자서는 생각했다. 그것으로 그동안 거짓말로 황궁과 사람을 속인 것에 대한 벌을 받을 때 위안을 삼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주자서는 다시 화로 앞으로 가서 쪼그리고 앉았다. ‘나찰에게서 도망칠 수 있을까? 언제 바스러질지 모르는 이 몸둥이로?’ 주자서는 자조했다. 주자서는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정언(井鄢; 화장실)에 다녀온다는 핑계로 먹은 것을 자주 게워냈다. 하루에 한끼도 과분한 그의 몸이 음식을 거부하는 것은 처음이 아니다. 주자서는 한눈에 보아도 귀한 음식들이 낭비되는 것 같아 죄스러웠다.

나부몽은 추위를 타면서도 창문을 열어놓는 주서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한증이 들어서 몸을 따뜻하게 해주어야 한다는 소리를 들은 온객행이 담비털로 피풍의를 준비했다. 나부몽은 경을 칠일 있냐며 온객행에게 한참 잔소리를 하고 자신이 겨울에 입는 토끼털로 만든 얇은 피풍의를 꺼내 둘러 주었다. 주서에게 조금 짧은 하얀 피풍의를 둘러주니 볼수록 참으로 여인 같다. 몸짓이나 말투도 그렇다. 소등시간이 되어 등롱을 끄러 다시 내실로 들어온 나부몽이 본 것은 화로 앞에 쪼그리고 앉아 고개를 무릎에 괴고 졸고 있는 주서의 모습이었다. 탄을 확인하고 자라고 했더니 탄을 보며 자려고 했던 모양이다. 화로안에 얼마 남지 않은 탄은 붉고 검기보다 잿빛이었다. 나부몽은 크게 한숨을 쉬고 입구 근처에 두었던 탄 바구니를 가져가 화로에 탄을 채워 넣었다. 나부몽이 객실에서 부산을 떠는 소리에도 주서는 일어나지 않았다.

나부몽은 가져온 제등에 등롱을 넣고 주서에게 다가가 말했다.
“주공자. 날이 늦었으니 침수(寢睡)하십시오.”
주서는 나부몽의 목소리에 스르르 눈을 떴다. 아주 자고 있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나부몽이 다시 말했다.
“주공자. 침상에서 주무세요.”
나부몽의 목소리에 주자서가 몸을 바로 하고 일어나서 말했다.
“저는 괜찮으니 어서 가서 주무세요.”
나부몽은 주서가 침상에 눕는 것을 보고 나가고 싶어서 말없이 버티고 서서 주서를 보았다. 주서는 다시 시선을 내려 나부몽이 채워 놓은 화로의 탄을 보았다. 나부몽은 주서가 뭘 보고 있나 싶어서 화로를 보았다. 탄이 빨갛게 타는 것이 보일 뿐이다. 조용한 내실에 탄이 타는 소리가 난다. 주서는 일각 넘게 미동도 하지 않고 서서 화로를 보았다. 나부몽은 기다림에 조금 지쳐서 작게 헛기침했다. 주서는 나부몽이 아직도 거기 있는지 몰랐다는 듯 놀란 얼굴로 나부몽을 보고 말했다.
“어서 가서 주무세요.”
나부몽이 고개를 흔들고 말했다.
“소등시간이 지났으니 어서 침상에 드십시오.”
주서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천천히 몸을 침상 쪽으로 움직였다. 나부몽은 화로를 침상 가까이에 옮겨 놓고 장지문 근처에 놓아둔 제등을 들었다. 주자서는 침상에 걸터앉아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다. 나부몽은 조금 답답해져서 다시 제등을 내려놓고 다가가 피풍의를 벗기고 신발도 벗겼다. 이불을 펴서 주서에게 잘 덮어주고 휘장도 내렸다. 나부몽은 어린아이를 돌보는 기분이 들어서 피식 웃었다. 피풍의를 옷걸이에 잘 걸어 두고 침상에 드리워진 휘장을 한번 더 확인한 뒤 나부몽은 제등을 들고 내실을 나갔다.

온객행은 다행히 이틀 뒤에 마차를 타고 천수장원으로 돌아왔다. 온객행이 장원을 비운동안 주서는 온객행을 찾는 기색이 역력했다. 주서가 아무것도 묻지 않기에 나부몽 역시 답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온객행이 돌아와 내실로 들어오며 말했다.
“아서!”
온객행의 목소리에 창문을 열고 하늘을 보고 있던 주서의 고개가 장지문으로 돌아갔다. 주서는 여태 본적 없는 밝은 얼굴로 온객행을 불렀다.
“노온!”
주서의 호칭에 멋쩍은 것은 차시중을 들고 있던 나부몽 뿐이었다. 두 사람은 몇 년만에 만난 사람들처럼 손을 마주잡고 한참 얼굴을 마주 보았다. 괜히 쑥스러워진 나부몽이 헛기침을 하자 온객행이 주서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그를 밖으로 이끌며 말했다.
“아서 촉경(蜀京)에 가본적 있어?”
나부몽은 미리 준비해 두었던 짐을 들고 온객행의 뒤를 따랐다. 주서는 딱히 가진 것이 없었기 때문에 짐을 챙기는 것이 수월했다. 봇짐 하나도 안되는 적은 짐을 힐끔 본 온객행이 혀를 찼지만 나부몽은 본척도 하지 않았다. 온객행과 주서가 탄 마차는 함양성으로 향했다.

마차에 탄 온객행은 마차의 휘장을 걷어 바깥을 보며 말했다.
“아서. 위수를 따라 옹성(甕城)으로 갈거야. 거기서 남쪽으로 조금 더 내려가면 낭수(閬水)가 나오는데 낭수를 따라 가면 금방 촉경이야.”
주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온객행이 하는 말을 들었으나 그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솔직히 온객행은 주서가 이해하던 말던 별로 상관없었다. 장안이나 함양에는 온객행을 알아보는 이가 많으니 온객행을 잘 모르는 곳에 가서 주서와 함께 유람을 하고 싶은 것뿐이다. 미시(未時; 13-15시) 넘어서 천수장원을 출발한 마차는 신시(申時 15-17시)가 지나서 함양성에 도착했다. 함양성에 도착한 마차는 위수 물목에 있는 선착장에서 멈췄다. 온객행은 주서가 두른 피풍의를 잘 여며주고 먼저 마차에서 내렸다. 나부몽이 온객행을 보고 물었다.
“촉경에는 왜 가십니까? 가주께서 허락하신 일입니까?”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지금 조위녕이 어디 있는 줄 아는가?”
나부몽은 갑자기 온상 아가씨의 약혼자 이름이 나와 당황하며 표정을 구겼다.
“조공자는 왜요?”
온객행은 마차에서 내리는 주서의 손을 잡았다. 온객행은 휘청거리는 주서의 허리를 잡아주며 말했다.
“아서. 조심해.”
나부몽은 온객행의 행동에 콧방귀를 끼었지만 내심 주서라면 마차에서 내리다가 실족사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부몽은 선착장에 있는 일엽선(一葉船)을 보고 조금 놀랐다. 일엽선은 온여옥이 신의상단의 후계를 정하고 나서 부인 곡묘묘와 함께 황하를 유람하기 위해 만든 배인데, 온부인은 배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사고로 명을 달리했다. 그 이후로 이 배의 존재와 사용은 온가 내에서 암암리에 금지되어 왔다. 나부몽의 놀란 기색을 읽은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장안 선평방에 있는 온택보다 비싼 배인데 사용하지 않으면 아깝지 않소.”
나부몽은 말없이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 먼저 승선했다. 주서는 커다란 배를 보고 조금 사색이 되어 온객행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노온. 배를 탑니까?”
온객행은 주서가 부르는 호칭에 금방 기분이 좋아져서 활짝 웃으며 말했다.
“응. 아서.”
온객행은 주서를 배에 올라타는 선창으로 가며 말했다.
“아서 입엽선에 온 것을 환영해!”
주서는 조금 망설이더니 온객행에게 이끌려 배위에 발을 올려 놓았다. 온객행은 제일 상갑판에 있는 작은 누각으로 주서를 안내하며 말했다.
“옹성까지는 하루도 안 걸려. 촉경에 다녀오면 일엽선을 타고 황하를 유람하자.”
주서는 온객행에게 꼭 붙어 서서 말없이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해가지기 전에 일엽선은 함양의 선착장을 출발해 옹성으로 향했다. 옹성에서 낭수까지는 험준한 산길을 통과해서 가야하기 때문에 준비할 것이 많았다. 온객행은 준비해 둔 객실에 주서를 데려다 놓고 온가에서 고용한 선원을 확인하러 다시 갑판으로 가야 했다. 객실에 도착한 온객행은 화로를 평상 가까이에 가져와 찻물을 올려 놓으며 말했다.
“아서. 잠깐만 기다려. 선장을 만나고 올게.”
주서는 온객행의 소매를 잡고 고개를 흔들었다.
“노온.”
온객행이 주서의 손을 잡고 말했다.
“아서. 금방 다시 올게. 잠깐만 확인하고 올 거야”
온객행은 주서가 붙잡는 것이 좋아서 주서의 불안한 기색을 잘 읽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온객행은 주서를 탁상에 앉히고 남방에서 가져온 향을 태우고 말했다.
“이 향이 다 타기 전에 올 테니까 잠깐만 기다려.”
온객행이 장지문으로 향하자 주서는 자리에 일어나서 다시 온객행을 불렀다.
“노온….”
온객행은 주서를 향해 활짝 웃고는 장지문을 닫고 서둘러서 갑판으로 향했다.

나부몽은 배의 상황을 슬쩍 둘러보고 움직이기 편한 옷으로 갈아 입었다. 슬쩍 둘러보니 선원은 이번에 새로 고용한 사람들이고 하인들은 온택에서 온객행을 모시던 몇 명만 온 것 같았다. 온객행이 좋아하는 음식을 잘하는 어멈 몇과 내실의 하인 몇이 보였다. 나부몽은 눈짓으로 그들에게 인사를 하고 갑판 위로 올라갔다. 갑판에는 온객행과 선장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주서가 보이지 않았다. 나부몽은 의아하여 몸을 돌려 갑판 바로 아래 있는 객실로 향했다. 나부몽이 몇 번이나 밖에서 기별했지만 답이 없었다. 장원에 있을 때도 그런 적이 많았기 때문에 나부몽은 크게 한숨을 쉬고 들어간다는 티를 한참 내고 나서야 장지문을 열고 들어갔다. 나부몽이 예상하지 못한 것은 객실은 비어 있다는 점이었다. 나부몽은 객실 내부에서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퇴로를 모두 확인한 후에 객실을 나왔다. 온객행이 알기 전에 먼저 찾기를 바라면서 나부몽은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온객행이 객실에 주자서를 혼자 놔두고 나가자 마자 주자서는 장안으로 왔을 때가 떠올랐다. 누이와 함께 남창(南倉)에서 배를 타고 한양(漢陽)에 도착해서 두 사람은 옷을 바꿔 입었다. 한수(漢水)를 따라 장안으로 가는 길은 너무나 짧았다. 누이가 사랑한다던 그 사람이 벌써 곤주에 닿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주자서의 누이는 장안성에서 주자서와 헤어져 북쪽으로 향했다. 그게 누이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다. 황궁에 오고 나서는 금방 황제가 승하하는 바람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기대감에 부푼 적도 있었다. 부질없고 순진했던 옛날이야기. 주자서는 조금 웃음이 났다. 주자서는 부태후를 위해 베껴 쓰던 불경의 내용 중에 사람이 죽으면 그동안의 일을 되돌아보며 지옥의 왕들에게 재판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주자서가 조금은 바랬을지도 모를 죽음이 이미 다가와 코앞에 있었다는 사실에 조금은 화가 났다. 인생의 절반을 황궁에서 허비했다는 것이 너무 아깝고 억울했다. 운이 좋아 윤회의 굴레에 들어서면 그때는 또 어떤 고통으로 삶을 원망하게 될까? 그 어떤 지옥도 지금 주자서가 살고 있는 이 지옥보다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자서는 숨을 크게 들이 마시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방금 온객행이 나간 장지문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객실 바깥 복도에는 하인과 선원이 짐을 옮기고 있었지만 주자서에게 딱히 관심이 없었다. 주자서는 태연하게 문을 닫고 나와 짐을 싣고 있는 하인의 뒤를 따라 다시 선창으로 내려갔다. 주자서가 배에서 내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배 안에 있던 선원이 선창에 대놓았던 판자를 치우고 출항 준비를 했다. 주자서는 조금씩 멀어지는 배를 보며 생각했다. 온객행은 정말 나찰이었을까? 주자서는 딱히 갈 곳도 없었기 때문에 선창에 앉아 들어오고 나가는 배를 구경했다. 그러다 노을이 비치는 붉은 위수를 보았다. ‘집채만한 화등을 띄운다고 했는데….’ 주자서는 막연히 위수 강가에 앉아 처음으로 중추월에 화등을 구경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어쩌면 주자서는 아직도 조금 부질없고 순진할지도 모르겠다.

일엽선은 컸지만 승선한 인원을 얼추 파악하고 있는 나부몽은 갑판으로 올라가 선원에게 배를 멈추게 했다. 옆에서 배의 경로를 듣고 있던 온객행이 놀라 나부몽에게 물었다.
“부몽! 무슨 일인가?”
나부몽이 선원에게 지시를 하고 난간에 기대 방금 떠나온 하구를 보며 말했다.
“공자. 주서가 배 안에 없습니다.”
온객행은 잠깐 나부몽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헛웃음을 치고 말했다.
“부몽. 그게 무슨 소리야? 아서는 객실에….”
나부몽이 일엽선 근처로 온 작은 조각배 위로 훌쩍 뛰어내렸다. 고개를 들어 온객행을 보고 나부몽이 말했다.
“제가 데려올 테니 잠시 기다리십시오.”
온객행은 당황하여 서둘러 갑판을 내려가 객실로 향했다.

나부몽은 조각배를 얻어 타고 다시 하구에 도착했다. 일엽선을 댔던 곳에서 멀지 않은 강가에 주서는 멀뚱히 서서 강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위태로워 나부몽은 자기도 모르게 주서를 큰소리로 불렀다. 나부몽이 몇 번이나 그의 이름을 불렀지만 주서는 돌아보지 않았다. 나부몽이 다가가 주서의 소매를 잡아 챘을 때 주서는 나부몽의 거친 손길에 몸을 휘청였다. 놀란 나부몽이 주서를 부축하며 말했다.
“주공자! 몇 번이나 불렀는데!”
주서는 나부몽이 잡은 소매를 한참 보더니 나부몽을 보고 말했다.
“누이께서는 북쪽에서 안녕하십니까?”
나부몽은 슬슬 주서가 몸뿐만 아니라 정신도 아픈 것은 아닌가 의심됐다. 나부몽은 말없이 주서를 잡아당겨 다시 하구로 이끌었다. 주서는 나부몽이 하는대로 이리저리 휘둘리며 말했다.
“충추월에 위수에서 화등제를 한다 하는데….”
나부몽이 주자서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벌써 계추월입니다. 화등제는 끝났어요.”
나부몽의 말에 주서는 조금 울상이 되었다. 나부몽은 괜히 미안해져서 말했다.
“내년에 또 할 테니 그때 보러 옵시다.”
주자서는 나부몽의 말에 작게 코웃음 치고 말했다.
“내년….”

온객행은 나부몽의 손에 이끌려 다시 배에 승선한 주서에게 흰여우털이 달린 하얀 비단 피풍의를 둘러 주었다. 해가 져서 날씨가 쌀쌀해졌기 때문이다.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아서. 오늘만 참아. 배에 탄 줄도 모르게 아주 천천히 가라고 할게.”
주서는 온객행을 보고 웃는 얼굴을 꾸며보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온객행은 걱정이 되어 주서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객실로 향하며 말했다.
“부몽. 나대신 촉경까지의 경로를 좀 확인해 둬.”
나부몽은 객실로 향하는 온객행과 주서의 뒷모습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선장의 얼굴이 궁금증으로 가득했으나 무슨 일인지 묻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주 멍청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객실로 돌아온 온객행은 주서를 평상에 앉혀 놓고 화로를 보았다. 탄을 조금 더 넣고 찻물을 올렸다. 주서는 피풍의를 두르고 화로를 보고 있었다. 온객행이 얼른 차를 내려 주서의 손에 찻잔을 쥐여주며 말했다.
“아서. 오늘만 참아. 배가 싫었으면 말을 하지…. 미안해. 몰랐어.”
주서는 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표정 없이 멍하게 화로만 보았다. 애가 탄 온객행이 주서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목덜미에 고개를 기대며 말했다.
“아서. 미안해. 나는 아서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주서가 온객행의 말에 작게 웃었다. 온객행이 고개를 돌려 주서를 보았지만 주서는 의미없이 웃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온객행은 주서의 행동에 겁이 나서 주서를 꽉 끌어안고 말했다.
“아서. 왜 그래. 내가 잘못했어.”

주서는 화로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그대에게 권하니 종일 실컷 취하라. 어차피 유영(류영)의 무덤까지 닿지 않으니…. 세상을 떠돌던 유영도 죽을 때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 앞에서 죽었다 하니 저도 고향으로 가야 하겠습니다.(2)”
온객행은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아 주서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아서! 즐거움으로 세월을 채우기로 했잖아.(1)”
주서가 온객행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그렇습니까?”
온객행은 주서가 더 말하려는 것을 얼른 손을 들어 막았다.
“아서. 아서가 누구인지 나는 중요하지 않아. 그러니까 그런 말 하지 마.”
주서는 슬픈 눈으로 온객행을 보았다. 온객행은 조심스럽게 주서의 입에서 손을 떼고 주서와 이마를 맞대고 말했다.
“아서. 장안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자. 아무도 우리를 모르는 곳으로 가서 둘이 살자.”
주서는 대답없이 온객행의 손을 잡았다. 온객행은 주서의 손이 차가워서 안타까웠다. 온객행이 손을 마주 잡자 주서가 웃었다. 이번에는 꾸며낸 웃음이 아니었다.
“아서… 아서.”
온객행은 주서가 애달파 어쩔 줄 몰라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주자서도 온객행을 마주 안고 어깨에 고개를 기댔다.

주서는 온객행에게 점점 몸을 기대더니 종국에는 축 늘어졌다. 온객행은 주서를 평상에 눕히고 침상으로 가서 휘장을 열고 이불을 폈다. 주서는 그동안의 보살핌이 무색하게 가볍다. 온객행은 작게 한숨을 쉬고 주서를 침상 위에 올려 놓고 이불을 덮었다. 온객행은 그대로 침상 앞에 주저 앉아 주서의 얼굴을 보았다. 그러다 감긴 눈을 한번 콧날을 한번 그리고 까슬까슬한 입술을 만져보았다. 조금 야위었을 뿐 앳된 얼굴이다. 표정이 별로 없어서 안타깝고 애달픈 얼굴이다. 주서의 표정 하나하나에 온객행의 기분이 바닥에서 하늘을 오갔다. 벌써 두 번이나 주서는 온객행에게서 도망가려고 했다. 주서는 벌써 아는 걸까? 온객행이 얼마나 집요하고 주서에게 연연(戀戀)하고 있는지 말이다. 온객행은 차라리 주서가 아파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가 주서가 아픈 것이 두려워서 금방 떨쳐냈다. 온객행은 주서의 뺨을 쓸며 말했다.
“어떻게 해야 아서를 나에게 동여맬 수 있을까?”
온객행은 팔을 올려 턱을 괴고 눈을 감고 있는 주서의 얼굴을 보았다.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얼굴이다.

온객행은 요기거리를 가지고 객실에 들어온 나부몽의 손길에 눈을 떴다. 나부몽이 온객행의 얼굴을 보고 기가 막힌다는 듯 말했다.
“그렇게 좋습니까?”
온객행은 고개를 돌려 자고 있는 주서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응. 아서가 너무 좋아.”
나부몽은 조금 질린다는 듯이 말했다.
“벌써 두번이나 도망간 놈이 뭐가 좋다고.”
온객행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부몽의 팔뚝을 치며 조용히 말했다.
“부몽! 그렇게 말하지 마.”
나부몽이 주서를 보고 말했다.
“제가 보기에 정신도 성치 않은 것 같습니다.”
온객행이 찻잔에 차로 입을 축이고 말했다.
“어서 몸이 나아져야 치료라도 해볼텐데….”
나부몽이 고개를 끄덕이며 탁자로 가서 찻잔에 차를 따라 침대 협탁에 두었다. 나부몽이 하는 것을 보고 있던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는 아서랑 좀 친해졌어?”
나부몽이 온객행을 보고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죽은 사람 보다는 산 사람이 나으니까요.”
온객행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부몽을 향해 소리쳤다.
“부몽!”
온객행은 큰소리에 놀라 얼른 손을 들어 입을 막고 침상을 보았다. 주서는 온객행의 소란에도 눈을 뜨지 못했다. 침상 근처에 있던 나부몽이 주서에게 다가가 코 밑에 손가락을 넣어 숨을 쉬는 것을 확인했다. 나부몽이 온객행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온객행이 입에서 손을 떼고 작게 한숨을 쉬며 의자에 털썩 앉았다. 나부몽 역시 작게 한숨을 쉬며 다시 탁자로 가서 자리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