蛇苺 第31

遠交近攻 | 31. 멀리 사귀고 가깝게 공격한다.

주자서가 자리에서 일어나 운신할 수 있게 되자 온객행은 주자서를 지백에게 부탁하고 주극성 여기저기를 다니며 현무의 가신들에게 인사를 다녀야 했다. 임시직이라고 해도 지내는 동안 괜히 척을 질 필요는 없었기 때문에 온객행도 문귀가 저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것을 뭐라고 하지 않았다. 인사를 하면서도 계속해서 초조하게 구는 온객행을 보고 문귀가 타박했다.
“지금 주극성을 얕보는 건가?”
온객행이 표정을 구기고 말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문귀가 온객행의 어깨를 잡아 정전 뒤쪽에 있는 의풍전(懿風殿)으로 향하며 말했다.
“감히 누가 주극성에 들어와 그대의 내자를 괴롭히겠는가? 걱정 마.”
온객행이 문귀의 손을 뿌리치고 말했다.
“아직 다 낫지도 않았으니 건강을 염려하는 것이지 그런 것을 염려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귀가 온객행을 흘려보더니 ‘흥’하고 코웃음 쳤다.

처음에는 시력이었다. 가까이 있는 것은 그 전보다 더 또렷하고 선명하게 보였으나 멀리 있는 것은 뿌옇게 보였다. 주자서는 여러 번 눈을 비볐다. 주자서가 눈을 불편해하는 것을 처음 눈치챈 것은 지백이었다. 붉게 변한 눈에는 눈동자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지백은 주자서가 뭘 보고 있는 것인지 몰랐으나 자리에 앉아 멍하게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네다섯걸음 이상 떨어져 있는 사물이나 사람을 잘 구별하지 못했다. 잘 보이지 않으니 움직임이 조심스러워지고 움직임을 조심스럽게 하다 보니 그냥 가만히 앉아 있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것이다. 지백이 주자서에게 다가가 물었다.
“유서? 괜찮은가?”
주자서가 눈을 비비며 말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리고 눈을 감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지백이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그대는 죄인으로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니네. 내가 수선께 부탁드려서….”
주자서가 고개를 들고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그다음은 청각이었다. 날카로워진 청각은 주자서를 더 예민하게 했다. 낯설고 익숙하지 않은 감각으로 거리를 가늠하는 것이 서투른 주자서는 가만히 앉아있다가 갑자기 놀라는 일이 많았다. 신기하게도 주자서는 온객행이 돌아오면 그런 내색을 아주 잘 감추었다. 지백은 몇 번이나 주자서에게 신열에 대해 말해주려고 하다가 온객행의 눈치가 보여 그만두었다.

주자서는 열병에 걸려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열병을 앓고 난 사람이 시력을 잃을 수도 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직은 가까이에 있는 것은 보이니 문제가 없지만 하나도 보이지 않기 시작하면 큰일이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은 주자서에게 너무 답답하고 견디기 힘든 일이라 주자서는 한숨만 늘어갔다. 눈이 잘 안 보여서 청각이 예민해진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주자서는 온객행을 볼 때마다 입을 달싹이며 태평호로 언제 돌아가는지 묻고 싶었지만 묻지 못했다. 하인들이 들어와 온객행에게 서간과 서책을 나르면 온객행은 주자서의 시중을 들다가 밤새 서안에 앉아 죽간을 읽었다. 저를 위해 불도 켜지 않고 서안에 앉아 죽간을 읽고 있는 온객행을 보고 있으면 주자서는 죄스러워졌다. 주자서의 몸이 점점 나아지니 지백도 곧 서귀를 따라 천주서원에서 지내게 되었다. 지백은 원래 사람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을 상대하는 일이 익숙하여 그렇게 됐다. 지백이 온객행에게 뭐라고 말했는지 사라각에서 일하는 하인들의 숫자가 줄었다. 주자서는 내실이나 내원에 앉아 온객행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날 아침도 온객행은 주자서를 한참 안고 있다가 말했다.
“유서. 정말 가기 싫어. 근데 아직도 인사해야 할 가신들이 너무 많아. 내 가신들도 아닌데 내가 왜 만나야 하는 걸까?”
주자서는 온객행의 등을 쓸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온객행이 한참 주자서에게 투정을 하고 문귀가 내원 안까지 들어와서 온객행을 찾아야 온객행은 주자서를 놓아주었다. 문에서 멀어지는 온객행의 모습이 희미해서 주자서는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주자서가 갈 수 있는 범위는 사라각 내부가 전부였고 그 조차도 외실과 내실을 제외하면 익숙하지 않아 부딪히기 일쑤였다. 주자서는 내실로 돌아와 탁상에 앉아 또 한숨을 쉬었다. 누군가의 기척을 읽은 주자서가 자리에서 일어나 벽 쪽으로 몸을 붙였다. 기척이 사라져 서야 주자서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온객행에게 말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은 알고 있다. 어떻게 그 말을 전해야 할지 방법을 모르니 답답한 것이다. 짐이 될 것 같으니 떠나겠다고 그동안 감사했으니 이 벽옥(璧玉)을 받아 주시라고. 주자서는 품속에서 벽옥을 꺼내 보았다. 벽옥을 다시 품속에 넣다가 본 주자서의 팔은 붉은 비늘로 덮여 있었다. 주자서는 눈을 비비고 다시 팔을 보았다. 손을 들어 만져보니 비늘의 촉감이다. 비늘을 만지는 손등에도 비늘이 보였다. 주자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면경을 찾았다. 내실에는 어디에도 면경을 찾을 수가 없었다. 주자서는 등잔을 켜서 물을 담아 놓는 항아리를 보았다. 물 항아리에 비치는 등잔을 들고 서 있는 남자의 눈은 눈동자 없이 붉다.


온객행은 문귀에게 사정사정해서 주자서와 점심을 먹으려고 잠깐 사라각에 들렀다. 지백의 말로는 주자서가 하인들을 불편해하니 하인을 많이 두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했지만 온객행은 자기 말고 다른 사람이 주자서의 시중을 드는 것이 싫었다. 외실에 있는 하인이 온객행을 보고 인사하며 물었다.
“수선. 점심을 준비할까요?”
온객행이 내실로 향하며 말했다.
“오늘은 날씨가 좋으니 내원에서 먹겠습니다.”
하인이 고개를 조아리고 주방으로 향했다. 내실의 장지문을 열고 온객행이 주자서를 불렀다.
“유서! 같이 점심 먹으려고….”
실내는 평소와 달리 조금 부산스러웠는데 주자서가 보이지 않았다. 주자서는 보통 내원에 앉아 있거나 내실에 앉아서 온객행이 읽던 죽간을 보았다.
“유서?”
온객행은 물동이 옆에 깨진 등잔을 발견했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온객행은 내실에서 기척이 느껴지지 않아 당황하며 밖으로 나갔다. 사라각 문을 지키는 별주부에게 온객행이 물었다.
“유서가 어디 나갔는가?”
별주부는 온객행을 보고 포권하며 고개를 흔들고 대답했다.
“하인을 제외하면 아무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온객행은 사라각에 있는 후문에 호위에게도 같은 것을 물었지만 같은 대답을 들었다. 온객행은 다시 내원으로 돌아와 서실과 별실, 주방까지 모두 뒤졌지만 주자서가 보이지 않았다.

온객행은 한참 사라각을 찾다가 주자서가 현녀께 받은 벽옥이 생각났다. 주자서가 아니라 벽옥의 기운을 찾으니 벽옥은 내실에 있었다. 침대 옆에 침구를 보관하는 함 옆에 무릎을 안고 쪼그리고 앉아 있는 주자서는 정말이지 그 모습이 너무 초라하고 가여워서 온객행은 자기도 모르게 작게 탄식했다.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다가가 말했다.
“유서… 왜 여기 있어?”
주자서는 고개를 들지 않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지 마세요.”
온객행은 주자서를 향해 뻗었던 손을 거두고 주자서 옆에 앉았다. 주자서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주자서의 귓가에 입을 맞추고 말했다.
“유서, 왜 여기 있어? 이렇게 좁고 어두운 곳에.”
주자서가 소매에 얼굴을 비비더니 고개를 들어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저는 괴물이에요.”
울먹이는 주자서의 목소리를 듣고 온객행은 마음이 아파서 고개를 흔들고 주자서를 당겨 안으며 말했다.
“유서, 그게 무슨 소리야.”
주자서가 소매를 걷어 팔을 보여주고 말했다.
“저는 이제 사람이 아닙니까?”

온객행이 주자서의 팔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예쁜 비늘이네.”
온객행의 말에 주자서는 조금 화가 나서 그를 밀쳤다.
“이 꼴로 이제 어디를 간다는 말이오!”
그러더니 다시 고개를 소매에 묻고 훌쩍이기 시작했다. 온객행은 다시 주자서를 끌어안고 말했다.
“이 꼴이 어때서? 예쁘기만 한데.”
주자서가 고개를 들어 온객행을 노려보며 말했다.
“온객행!”
온객행은 ‘응’하고 대답하고 다시 주자서를 품에 안았다. 주자서는 바르작거리며 밀어내더니 온객행을 마주 안고 그의 어깨에 기대 울었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등을 쓸며 서귀와 지백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해줬다. 불안하게 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천천히 설명해주면 될 것 같았는데 이렇게 빨리 화사의 모습이 나타날 줄은 온객행도 몰랐다.
“운기조식하여 마음을 다스리면 모습은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소.”
주자서의 끄덕임이 온객행의 어깨에 느껴졌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등을 쓸며 말했다.
“나는 유서가 어떤 모습이라도 다 좋아하니 걱정 마세요.”
주자서가 온객행을 놓아주고 몸을 물리며 말했다.
“저는… 저는 이제 사람을 먹습니까?”
온객행이 낮게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오. 아니오. 영력을 쌓는 방법은 많으니 그렇게 서두를 필요는 없소.”
주자서는 팔에 있는 비늘을 보며 물었다.
“나도 집채만 해지는 것이오?”
온객행은 주자서의 뺨에 난 눈물 자국을 지우며 말했다.
“화사는 보통 그렇게 커지지는 않소. 나는 파사라 큰 것이오.”
주자서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온객행은 양손으로 주자서의 뺨을 감싸고 눈물 자국을 보고 눈썹을 축 늘어뜨리고 말했다.
“유서. 울지 마세요. 뱀이 된 것이 그렇게 싫으셨습니까?”
주자서가 눈썹을 찌푸리고 온객행을 보았다. 그러다 온객행이 놀라며 물었다.
“유서… 혹시 뱀을 싫어합니까?”
주자서는 손을 들어 온객행의 손목을 잡아 얼굴에서 그의 손을 떼어내고 고개를 흔들었다.
“언제부터 이랬습니까?”
주자서의 물음에 온객행이 고개를 돌려 주자서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유서. 밥은 먹었어요?”
주자서가 온객행의 얼굴을 잡아 돌리고 물었다.
“언제부터 이런 모습이었습니까?”
온객행이 주자서의 손을 겹쳐 잡고 말했다.
“유서. 나는 배가 고픈 것 같아요.”
주자서가 눈을 가늘게 뜨고 온객행을 쏘아보다가 얼굴을 놓아주며 말했다.
“거짓말.”
온객행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자서의 팔을 잡고 일으키며 말했다.
“유서는 어떤 모습이던 아름다우니 걱정 마시오.”
주자서는 온객행을 흘겨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인이 내실에 기별했다.
“수선.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소매를 잡고 내원으로 이끌자 주자서가 하인의 눈치를 보았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허리를 잡아 내원으로 나가며 말했다.
“저들은 모두 두꺼비이니 그렇게 부끄러워할 필요 없어요.”
점심을 준비하던 하인이 온객행의 말에 주자서를 힐끔 보고 다시 고개를 조아렸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귓가에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모두 먹어 치우시오.”
주자서가 온객행을 밀치며 말했다.
“온객행!”
온객행이 웃으며 다시 주자서의 허리를 잡았다.
“응. 유서.”


둘이 옥신각신하는 도중에 외실에서 하인이 기별했다.
“문귀께서 오셨습니다.”
온객행이 혀를 차며 말했다.
“벌써?”
문귀가 내원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밥 챙겨주러 간다더니….”
주자서가 온객행의 품에서 나와 문귀에게 공손히 인사했다. 온객행이 하인을 시켜 문귀의 몫을 준비하게 시켰다. 문귀가 정각에 차려진 음식을 보고 말했다.
“나는 굳이 먹을 필요는 없는데….”
온객행이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그럼 가시오.”
그리고 주자서의 소매를 잡아 옆에 앉혔다. 온객행은 작은 접시에 음식을 담아 주자서에게 내밀었다. 주자서는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다가 눈을 힐끔 들어 아직도 서 있는 문귀를 보았다. 문귀는 온객행과 주자서를 보더니 ‘흠’하고 자리에 앉았다. 하인이 앞접시와 젓가락을 가져와 문귀 앞에 놓았다. 문귀가 젓가락을 들어 음식을 덜어 먹기 시작하자 주자서도 젓가락을 들어 온객행이 집어준 음식을 먹었다. 온객행은 고개를 괴고 주자서가 먹는 것을 보았다.

문귀가 음식을 먹다가 말했다.
“영력을 쌓으려면 스승이 필요하겠군.”
온객행이 문귀를 보고 말했다.
“스승? 여기 내가 있는데 스승이 왜 필요합니까?”
문귀가 혀를 차며 말했다.
“너는 할 일이 아주 많으니 유서는 스승을 모시도록 하게. 하늘에서 지내려면 인맥이 중요하지 않은가?”
온객행이 몸을 바로 하고 정색하며 말했다.
“유서라 부르지 마시오! 온부인이나 수선부인이나 그런 걸로 부르시오. 어디 감히 남의 내자의 이름을 함부로 부른다는 말이오?”
주자서가 온객행의 팔을 툭 치고 말했다.
“문귀 어르신. 편한 대로 부르십시오. 저는 괜찮습니다.”
온객행이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그런 법도 들어본 적 없소.”
문귀가 한숨을 쉬고 말했다.
“천룡이나 지주를 붙여줄까 생각하는데….”
온객행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문귀에게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무극형! 미쳤소?”
문귀가 콧방귀를 끼고 말했다.
“천룡은 문안(文案)이 빨라서 정전의 일에서 뺄 수 없으니 일단은 지주를 사라각으로 보내겠소.”

온객행이 다시 자리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
“즉저가 일을 그렇게 잘합니까?”
문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치는 욕심이 과해서 그렇지, 일은 잘해.”
온객행은 표정을 구기고 말했다.
“앞으로 계속 부딪히겠군요. 제가 등선했으니 그쪽도 배알이 뒤틀릴 텐데….”
문귀가 젓가락을 내려놓고 말했다.
“지금은 천도연 때문에 아주 급한 현안 빼고는 모두 미뤄둬서 한가한 편이네. 백종절… 하아….”
온객행이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정말 괜한 일을 맡은 것 같소.”
문귀가 주자서를 빤히 보고 말했다.
“화사이니 어쩌면 옥산에 가서 수련하는 것이 빠를지도 모르겠군.”
온객행이 주자서의 팔을 잡고 말했다.
“그럼 나도 옥산으로 가겠소.”
문귀가 한숨을 쉬고 말했다.
“지백도 보내주셨으니 원군께 청해 봅시다.”

주자서가 젓가락을 내려놓고 물었다.
“제가 알아 두어야 할 내용이 담긴 서책은 없습니까?”
문귀가 주자서를 보고 물었다.
“글을 읽을 줄 아시오?”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문귀가 ‘흠’ 하더니 말했다.
“남쪽 별각에 장서각이 있으니 드나들 수 있게 통행패를 전하라 하겠소.”
주자서가 자리에서 일어나 소매를 들어 인사했다.
“감은하옵니다.”
문귀가 주자서가 하는 것을 보고 있다가 말했다.
“예를 거두시오. 지금은 견연이 나의 상전이니 예법은 생략합시다.”
문귀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온객행을 보았다. 온객행은 일어나 있는 주자서의 허리를 안고 주자서의 팔에 뺨을 비볐다. 고개를 숙이고 온객행의 희롱을 받아주는 주자서의 눈가가 붉어서 문귀는 잘못을 저지른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입 안이 썼다.

문귀가 말했다.
“오늘은 그럼 사라각에서 보고를 받게. 일단 정전의 관헌(官憲)은 모두 만났으니 사당(四堂)의 관료는 따로 날을 잡아 정전에서 보는 것으로 하지. 주극성은 크기 때문에 정무(政務)에 따라 일하는 장소가 다르니 오늘은 내자를 데리고 성 내부를 돌아보도록 하게.”
그리고 품속에서 금으로 만든 거북이가 달린 옥패를 꺼냈다. 온객행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자 문귀가 온객행을 흘겨보고 말했다.
“빌려주는 것이네. 내일 돌려주게.”
온객행이 문귀 손에 있는 옥패를 낚아채고 말했다.
“어차피 모두 들어 갈 수 있는 것은 아닐 것 아니오.”
문귀가 온객행을 못마땅하게 보며 말했다.
“그래도 웬만한 데는 다 갈 수 있네. 북쪽 후원에 있는 소요지(逍遙池)에 연꽃이 아주 많이 피었겠군.”
문귀가 소매를 들어 인사하자 온객행도 소매를 들어 문귀에게 인사했다. 서 있던 주자서도 소매를 들어 인사했다.

온객행은 주자서를 다시 자리에 앉히고 젓가락을 들어 음식을 집어주며 말했다.
“오늘은 계속 같이 있을 수 있겠다.”
주자서는 온객행을 한번 보고 다시 자리에 앉아 고개를 숙였다.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음식을 권하며 말했다.
“많이 먹어 유서. 아직 완전히 화사가 된 것이 아니야.”
주자서가 고개를 살짝 들어 온객행에게 물었다.
“모습은 언제 바꿀 수 있습니까?”
온객행이 젓가락을 내려놓고 주자서의 손을 잡고 말했다.
“왜? 부끄러워서 그래? 아주 예뻐.”
주자서가 헛웃음 치고 온객행의 손을 뿌리치고 말했다.
“사람도 요괴도 아닌 모습을 한 것이 이상해서 그렇습니다.”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흠….”
식사를 마치고 온객행은 하인을 시켜 내실에 면경을 들이게 했다. 온객행은 소매를 뒤져 현리에게 받은 장신구 함을 꺼내 주자서에게 보여주었다.
“유서 이리 와서 골라봐.”
주자서는 화려한 장신구가 들은 함을 보고 조금 주눅 들어서 말했다.
“이건 왜요?”
온객행이 주자서를 면경 앞에 앉히고 말했다.
“관을 올리고 싶다고 했지? 마음에 드는 관을 골라봐.”

주자서는 감히 비싸 보이는 관을 만질 수 없어 말했다.
“저는….”
주자서가 머뭇거리자 온객행은 태평호에서 하고 있던 은으로 만든 관을 집어 주자서의 머리에 대보고 말했다.
“그럼 내가 하던 것을 하게.”
그러더니 온객행의 눈이 검게 변했다. 손에 든 은관에 ‘후’하고 입김을 불자 은의 색깔이 조금 어둡게 변했다. 온객행은 표정을 구기더니 말했다.
“내가 검은색이라 탁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어.”
주자서는 내심 조금은 바랜 듯한 느낌이라 더 좋았지만 굳이 말하지 않았다. 온객행은 면경 앞에서 한참 주자서의 머리를 매만지더니 은관을 해주었다. 머리를 은관으로 고정하자 주자서의 눈이 다시 사람의 눈으로 바뀌었다. 주자서는 소매를 걷어 팔을 보았다. 붉게 보이는 비늘도 사라지고 사람의 모습이었다. 주자서가 고개를 들어 온객행을 보자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임시방편이긴 하지만 수련을 해서 영력을 쓸 수 있을 때 까지는 이렇게 하자.”
주자서는 고마운 마음이 울컥 치밀어서 온객행의 손을 찾아 잡았다.
“흑랑….”

온객행이 주자서의 손을 맞잡고 웃으며 말했다.
“우리 호칭도 좀 정리해야겠다.”
온객행이 주자서가 앉은 의자 팔걸이에 기대 앉아 말했다.
“유서. 나는 태평호의 견연입니다. 하지만 온객행이라는 이름이 제일 좋아요.”
주자서가 기대 앉은 온객행의 등에 고개를 기대고 말했다.
“저는 기산 주가 자서입니다. 이제는 유서라는 이름도 익숙해요.”
주자서의 말에 온객행이 부스스 웃었다. 온객행이 어깨너머로 물었다.
“온랑(溫娘)이라고 부를까?”
주자서가 온객행에게 물었다.
“저도 온랑(溫郞)이라고 부릅니까?”
온객행은 마음이 간질간질해져서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그럼 너무 헷갈리겠다.”
온객행은 한참 생각하다 말했다.
“객행이라는 이름은 내가 지었어. 나는 서호에 정착하기 전에 정말 많이 떠돌았거든.”
주자서가 온객행의 손을 꼭 잡았다. 온객행이 부스스 웃으며 말했다.
“밖으로 나와도 갈 곳이 없고. 안에 들어도 머물 곳이 없네.” (6)
주자서가 팔을 들어 온객행의 허리를 안았다. 온객행이 몸을 돌려 주자서를 품에 안고 말했다.
“내가 정말 좋아하던 사람이 해준 말인데… 좋아한다는 말도 못했는데 죽었어.”
주자서는 은하수에서 만났던 남자가 떠올랐다.
“알고 계실 겁니다.”
온객행이 낮게 웃으며 말했다.
“정말 그럴까?”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온객행이 행복하기를 바라실 거에요.”

온객행은 한참 말이 없다가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객행이라고 불러줄래?”
주자서가 온객행의 품에서 나와 온객행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객행.”
주자서는 품속에서 현녀에게 받은 벽옥을 꺼내 온객행에게 내밀고 말했다.
“이것으로 은혜를 갚을 수 있습니까?”
온객행은 주자서가 내민 벽옥을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 주자서가 온객행의 손을 잡아 손 위에 벽옥을 올려놓고 말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것은 이것뿐입니다. 저는 모자란 사람이라… 이제 사람도 아니오. 예전에 했던 말은 진심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내치세요.”
온객행이 주자서의 손을 잡고 말했다.
“유서. 은혜라니 서로 좋아하는데 은혜가 다 무슨 말이야?”
주자서가 온객행을 보고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네?”
온객행이 주자서를 보고 눈썹을 늘어뜨리며 말했다.
“응?”
주자서가 눈을 굴리며 물었다.
“제가… 제가 수선을 좋아합니까?”
온객행은 울상을 하고 주자서에게 물었다.
“내가 싫은가?”
주자서는 얼른 고개를 흔들고 말했다.
“아… 하지만….”

온객행이 주자서를 다시 끌어안고 말했다.
“알아. 사내는 싫다고 했지. 유서가 싫은 것은 안 할 거야. 우리에게는 시간이 아주 많으니까 천천히 찾으면 돼. 일단 나를 좋아해 주는 것이 먼저야.”
주자서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ㅈ…해요….”
온객행이 얼굴을 붙이며 물었다.
“응?”
주자서가 고개를 들어 온객행의 귓가에 속삭였다.
“좋아해요. 온객행.”
온객행은 텅 비었던 마음이 가득 차서 흘러넘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온객행은 주자서를 더 바짝 끌어안고 말했다.
“나도 좋아해. 많이 좋아해. 사랑해.”
주자서는 부끄러워서 온객행의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귓가에 입을 맞추고 말했다.
“사실은 유서에게 받고 싶은 것이 있어.”
온객행은 주자서에게 벽옥을 돌려주고 말했다.
“나는 유서 마음이 가지고 싶어.”
주자서는 벽옥을 보고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제 마음 따위를 어디에 쓰시게요?”

온객행이 주자서의 뺨에 손을 올려 자기를 보게 하고 말했다.
“나는 벽옥보다 유서 마음이 더 가지고 싶어. 나한테는 이 벽옥보다 그게 훨씬 더 소중해.”
주자서는 자기를 바라보는 온객행의 눈빛이 뜨거워서 부끄러워졌다. 주자서가 고개를 돌리려고 하자 온객행이 말했다.
“유서 사랑해.”
주자서는 고개를 들어 다시 온객행의 눈을 마주했다. 그리고 말했다.
“드리겠소. 내 마음 전부 가지시오.”
온객행의 눈을 올곧게 바라보는 그 시선이 좋아서 온객행은 주자서를 당겨 안고 입을 맞췄다. 입술을 핥고 입안에서 뜨거운 살덩이를 찾아 핥고 빨았다. 그동안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라 온객행도 주자서도 조금 금방 숨이 차올랐다. 온객행이 이마를 맞대고 부스스 웃자 주자서도 온객행을 따라 웃었다.

온객행이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어.”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내는 싫은 줄 알았는데….”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뭐가 좋았나? 핥는 것? 빠는 것?”
주자서의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보던 온객행은 주자서가 사랑스러워서 다시 그의 입안을 희롱했다. 숨이 찬 주자서가 온객행의 손을 잡았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말했다.
“물어볼 걸 그랬어.”
주자서가 숨을 몰아쉬며 온객행을 보았다. 온객행의 눈동자가 새카맣게 변했다. 전에는 무서웠는데 주자서는 이제 별로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지긋이 바라보며 말했다.
“사내끼리 어떻게 정을 통하는지 말이야.”
주자서는 부끄러워져서 온객행의 어깨를 밀었다. 온객행이 웃으며 주자서를 끌어당겨 안았다.
“현리에게 서신을 보내야겠어.”
주자서가 질색하며 말했다.
“온객행!”
온객행은 주자서의 목덜미에 고개를 묻고 낮게 웃으며 답했다.
“응.”

온객행은 주자서의 얼굴을 닦아주고 문귀가 추천했던 후원으로 갔다. 소요지라는 연못은 그 규모가 커서 태평호를 생각나게 했다. 주자서는 주극성을 돌아보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것을 멈추지 못했는데 그제야 온객행은 주자서의 상태가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눈치챘다. 온객행은 한참 주자서를 닦달하여 주자서의 시력이 나빠진 것을 들었다. 그리고 어깨를 튀며 놀라는 그의 행동으로 그의 청각이 전보다 예민해졌다는 것을 눈치챘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손을 잡고 어깨에 고개를 묻으며 말했다.
“유서. 나는 정말 바보야.”
주자서는 희미하게 보이는 연못의 연꽃을 보며 말했다.
“객행이 바보면 저는 무엇입니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멀리서 후원을 정리하는 나흘마의 기척에 주자서는 또 어깨를 튀며 놀랐다. 온객행은 그 전보다 더 자주 주자서에게 입버릇처럼 말했다.
“유서, 객행은 모자라서 말해주지 않으면 모르는 바보야.”
그러면 주자서는 고개를 흔들며 대꾸했다.
“객행. 앙탈이 너무 과하십니다.”
주자서는 온객행이 퍼붓는 애정이 정말 자기가 좋아서 였다는 것을 깨닫는 중이라 얼떨떨했다.


(6) 조식(曹植) 雜詩 잡시
悠悠遠行客 去家千里餘
멀리 멀리 떠나온 나그네여. 집을 떠나 천리쯤 이로다.
出亦無所之 入亦無所止
밖으로 나와도 갈 곳이 없고 안에 들어도 머물 곳이 없네.
浮雲翳日光 悲風動地氣
뜬구름은 햇빛을 가리고 쓸쓸한 바람은 회오리를 일으키네.

蛇苺 第30

圍魏救趙 | 30. 위나라를 위협해 조나라를 구한다.

적송자는 대전의 중앙에 무릎 꿇고 있는 현무와 그의 가신을 보고 있다가 혀를 차며 말했다.
“즉저와 지주는 천궁으로 가서 눈을 바치고 오게.”
즉저와 지주가 자리에서 일어나 한숨을 쉬고 소매를 들어 인사하고 요대로 향했다. 택귀와 화귀가 다가와 현무를 부축했다. 적송자가 현무를 보고 말했다.
“나는 너의 스승의 스승이니 네가 싫어도 어쩔 수 없다.”
현무는 울상이 되어 적송자에게 말했다.
“우사! 정말 억울해요. 저는 단지….”
적송자가 손을 들어 현무의 말을 끊고 말했다.
“방법이 틀렸어. 그건 내가 아주 잘 알지.”
문귀가 다가와 무릎 꿇고 말했다.
“현무. 제가 동해까지 따르겠습니다.”
현무가 문귀의 소매를 잡아 일으키며 말했다.
“아니다. 나에게 내려진 처벌이니 너의 일이 아니다.”
택귀와 화귀도 무릎 꿇고 말했다.
“주인을 잘못 모신 것은 저희의 죄이니 거절하지 말아주십시오.”
현무가 혀를 차며 말했다.
“너희는 남아서 견연을 도와라.”
그리고 몸을 돌려 온객행을 보았다.

온객행은 자리에서 일어나 아직 엎드려 있는 주자서를 일으키고 옷을 털었다. 주자서가 온객행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현무가 되시는 겁니까?”
온객행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태평호로 돌아가야지 현무는 무슨.”
적송자가 온객행에게 다가와 말했다.
“원래 현무는 거북이랑 뱀 한 쌍이니 딱 좋군.”
온객행이 소매를 들어 인사하며 말했다.
“우사께서 농담이 지나치십니다. 이제 막 등선한 제가 어찌….”
적송자가 현무 쪽으로 고갯짓하며 말했다.
“저 치가 돌아올 때까지 잘 부탁하네.”
온객행이 고개를 들어 적송자를 보고 얼굴을 구기며 말했다.
“북쪽은 추워서 싫은데….”
현무가 다가와 온객행에게 소매를 들어 인사하며 말했다.
“내가 없는 동안 주극성을 부탁하네.”
그리고 품에서 아주 짙은 붉은색의 옥수(玉髓) 인장을 꺼내 온객행에게 내밀었다. 온객행은 인장을 받지 않고 소매를 들어 인사하며 말했다.
“현명대선. 제발 가지 마세요.”

현무가 온객행의 손을 잡아 인장을 건네고 말했다.
“내가 없는 동안 나의 아이들을 부탁하네.”
그리고 현무가 고개를 들어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산천대제께서 그대가 싫어서 그리 하신 것이 아니네. 무례를 저질렀군. 내가 사과하지.”
그리고 소매를 들어 인사했다. 주자서도 얼른 소매를 들어 공수하고 말했다.
“아닙니다. 예를 거두세요.”
현무가 몸을 바로 세우고 말했다.
“그대는 사람이니 견연을 도와주게. 천주서원은 나라의 대사를 결정하는 곳이기도 하니 사람과 부딪힐 일이 많네.”
주자서가 소매를 들어 공수하고 인사했다. 온객행이 현무에게 물었다.
“북쪽으로 안 갑니까?”
현무가 웃으며 말했다.
“그쪽은 걱정 말게. 자네 사형이 흑룡이 되었으니 어떻게 되겠지.”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형께서 버티실지 모르겠습니다.”
적송자가 말했다.
“장강의 물안개야 그 치가 없어도 피어오를 테니 걱정할 것 없네.”
현무가 적송자와 온객행에게 인사하고 대전을 나갔다. 택귀와 화귀가 현무의 뒤를 따랐다.

문귀가 온객행에게 다가와 소매를 들어 인사하며 말했다.
“일이 이렇게 됐으니 잘 부탁드립니다.”
온객행이 얼른 문귀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무궁형(無弓兄) 이게 무슨 일입니까?”
문귀가 웃으며 말했다.
“그 이름 참 오랜만에 듣네. 이제 자네가 싫어하는 흑망이라고 못 부르겠군.”
온객행이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견연이란 이름도 그렇게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적송자가 웃으며 말했다.
“넓게 보라. 아주 잘 어울리는데 무슨 소리인가?”
나흘마가 다가와 고개를 조아리고 온객행에게 말했다.
“수선. 소신은 석척(蜥蜴)이라 합니다. 주극성의 살림을 맡아 보고 있습니다. 천도연이 멀지 않아 검정(檢定)하고 과단(果斷)하셔야 할 일이 많습니다.”
온객행이 적송자에게 소매를 들어 말했다.
“모자란 파사가 우사께 가르침을 청합니다.”
문귀가 온객행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어허. 못해도 흑룡이라 하게. 어디 감히 현무 대리가 파사라는 말인가?”
온객행이 고개를 들어 문귀를 보고 말했다.
“등선하지 말걸 그랬소.”
적송자가 손사래 치고 말했다.
“그래. 그렇구나. 등선도 못한 요괴가 어찌 하늘의 일을 한다는 말이냐?”
적송자의 말에 온객행과 문귀가 웃음을 터뜨렸다.

현녀께 받은 벽을 보고 있던 주자서는 벽을 품속에 넣고 한숨을 쉬었다. 머릿속이 뿌옇고 열이 나는 것 같아 손을 들어 이마를 짚었다. 손에 닿는 살갗이 뜨거워서 주자서는 열을 좀 식혀보고자 손바닥으로 얼굴을 부쳤다. 주자서는 적송자의 시선을 느끼고 바로 손을 내리고 고개를 조아렸다. 그리고 슬쩍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온객행은 주자서가 잘 모르는 이들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누구라고 말했던 것 같은데 머릿속에 남은 것이 없었다. 주자서는 작게 한숨을 쉬고 흩어지려는 정신을 다잡았다. 한참 고개를 숙이고 버티고 있는데 누군가가 그의 팔을 잡았다. 주자서가 눈을 뜨고 고개를 들자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유서. 꼭 주극성에서 지내지 않아도 된데. 어서 태평호로 돌아가자.”
주자서는 태평호라는 말이 반가워서 부스스 웃었다. 그리고 시야가 점멸하더니 새카맣게 꺼졌다. 온객행은 자기 품에 기대오는 주자서가 사랑스러워서 마주 안았다. ‘태평호로 돌아가서 여태까지 있던 일을 잘 설명해주고 그의 가족을 데려와 함께 살아야지.’ 그런 생각을 했다. 온객행은 주변의 눈치를 보며 주자서를 추슬러 안았다. 축 늘어진 그가 온전히 기대오는 것이 기꺼워서 온객행은 그렇게 주자서를 안고 있었다.

온객행과 주자서를 보고 있던 적송자가 말했다.
“수선, 자네 내자 아픈 것 같은데?”
온객행이 주자서를 놓아주자 주자서의 고개가 뒤로 넘어갔다. 온객행이 놀라 다시 끌어안자 주자서의 다리가 풀썩 꺾였다. 온객행이 놀라서 말했다.
“유서! 유서 왜 이러는가?”
석척이 다가와 물었다.
“사라각(謝羅閣)에 거처를 마련할까요?”
문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습니다. 석척. 사라각을 정리하여 견연의 거처로 합시다.”
석척이 고개를 조아리더니 주변에 있던 나흘마에게 명령을 내렸다. 검은색 옷을 입은 나흘마가 종종걸음으로 대전을 바쁘게 나갔다. 온객행은 주자서를 품에 안고 뺨을 쓸며 말했다.
“유서… 왜 이러는가? 나는 말해주지 않으면 모르는 바보란 말이야.”
온객행이 애틋하게 구는 것을 보고 있던 적송자가 고개를 문귀를 보고 말했다.
“이 치를 구슬리려면 버들개지를 휘저으면 되겠군.”
문귀가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자 온객행이 고개를 들어 둘을 노려보고 말했다.
“휘저어 보시오! 당장 종화산으로 가겠소.”

적송자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갑자기 촉룡은 왜 언급하는가?”
문귀가 온객행에게 다가가 주자서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농이네 농. 어찌 사람을 괴롭히겠는가? 어서 사라각으로 그대의 처(妻)를 옮기게. 그 곳은 대전과도 서원으로 나가는 북극문(北極門)과도 가까우니 잠시 지내는 거처로 사용하게.”
온객행이 문귀의 손을 뿌리치고 말했다.
“만지지 마시오!”
문귀가 조금 날카로운 온객행의 영력에 당황하며 말했다.
“온공자. 진정해. 의원을 불러주지.”
적송자가 온객행과 문귀를 보더니 혀를 차고 석척을 앞세워 대전을 나갔다. 문귀가 석척을 따라 나가는 적송자를 보고 말했다.
“우사께서 도우시면 그리 어려울 일도 없을 거야. 어서 가서 처를 간병해야 하지 않겠나?”
온객행이 주자서를 팔로 안아서 들어 올렸다. 문귀가 대전 밖으로 향하며 말했다.
“멀지 않아. 가는 길에 서귀(筮龜)를 부르세. 그는 사람의 의학을 알고 있어.”
온객행은 문귀를 따라 대전을 나갔다.


사라각은 주극성 동쪽에 위치한 전각 중의 하나로 주극성의 동문은 무당산의 천주서원과 연결되어 있었다. 동문인데도 왜인지 이름은 북극문이다. 문귀는 보초를 서고 있던 별주부(鼈主簿)에게 사라각으로 안내를 부탁한 뒤 남쪽 별각에 있는 서귀에게 향했다. 사라각에 도착하자 나흘마 여럿이 분주히 움직이며 내부를 정리하고 있었다. 나흘마가 다가와 별주부에게 물었다.
“내실 정리는 모두 마쳤으니 내실로 가시겠습니까?”
별주부가 온객행에게 포권하자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흘마는 몸을 돌려 장지문을 열고 내실로 향했고, 별주부는 외실 밖으로 나가 사라각 문 앞에 섰다. 내실에 도착한 온객행은 주자서를 침상 위에 올려 놓고 침상 주변에 있는 대야에 물을 채워 영견을 적셨다. 얼른 적신 영견으로 주자서의 얼굴이며 목덜미를 닦아주었다. 평소보다 주자서의 체온이 조금 더 뜨거웠는지도 모르겠다. 얼굴이 붉기에 부끄러운 줄 알았다. 온객행은 자기가 사람이 아니라 억울했다. 사람이었다면 미리 알 수 있었을까? 외부가 시끄럽더니 문귀가 서귀를 데리고 나타났다.

서귀가 침상에 누워있는 주자서의 맥을 짚었다. 손목에서도 느껴지는 열기에 서귀가 주자서의 앞섶을 잡아 벌리자 온객행이 놀라서 서귀의 손을 잡고 말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서귀가 온객행의 손을 뿌리치고 말했다.
“열이 너무 많이 나지 않는가?”
그리고 다시 주자서의 손목을 잡고 맥을 짚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이 치는 사람인가?”
온객행이 주자서의 앞섶을 다시 잘 여미고 그의 뺨에 물을 적신 영견을 대고 서귀를 쏘아보며 말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어제 반도를 먹였거든요.”
서귀가 다시 주자서의 얼굴을 보고 감긴 눈을 열어 보더니 물었다.
“근데 왜 요괴의 기운이 있는가?”
온객행이 방금 서귀가 만졌던 주자서의 눈을 조심스럽게 닦으며 말했다.
“화사가 피를 먹였어요. 살리려고.”
문귀가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승천했다던 그 화사의 피를 먹었나?”
서귀가 덧붙여 물었다.
“취한 것이 아니라 화사가 자발적으로 준 것인가?”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귀가 주자서의 손목을 놓고 자세를 바로 하고 앉으며 말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나도 잘 모르겠군.”
문귀가 온객행에게 물었다.
“그 화사가 황룡이 되었다던데 사실인가?”
온객행은 주자서에게 시선을 떼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얼굴과 손을 한참 닦다가 고개를 돌려 문귀를 보고 말했다.
“무극형! 요대의 지백을 불러주세요. 그는 유서를 진맥한 적이 있습니다. 그라면 알지도 몰라요.”
문귀가 고개를 끄덕이고 허둥거리며 내실을 나갔다.

서귀가 주자서를 유심히 보더니 말했다.
“어쩌면 요괴가 되려고 신열(神熱)이 오른 것인지도 모르겠어.”
온객행이 서귀를 보고 물었다.
“신열?”
서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황룡이 된 화사의 피를 마신 것이라면 그 화사도 보통 화사는 아닐 테니 사람이 요괴가 되는 것은 당연한데….”
온객행이 다시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아상의 피를 마신 것은 벌써 보름도 더 전의 일인데 왜 이제야….”
서귀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정확한 원인과 이유를 모르니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많지 않군. 그래도 열이 나는 것은 사람에게나 요괴에게나 좋지 않으니 옷을 벗겨 열을 식혀주게.”
서귀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온객행이 서귀를 따라 일어나며 말했다.
“어르신. 제발 우리 유서를 살려주세요.”
서귀가 뒤돌아 주자서를 보더니 온객행에게 물었다.
“이 치가 발의 후손인가?”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였다. 문귀가 다시 내실로 들어와 말했다.
“요대로 사람을 보냈으니 지백이 곧 올 거야.”
서귀가 문귀에게 가서 귓가에 뭔가를 작게 속삭였다. 온객행은 둘을 보고 있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주자서를 보았다. 침상에 걸터앉아 연신 주자서의 얼굴을 영견으로 닦으며 그를 불렀다.
“유서. 유서….”

문귀와 서귀가 내실을 나가며 말했다.
“견연. 열을 내리는 탕약을 올리라 할 테니 일단 열을 식혀주게.”
온객행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에게 다가가 말했다.
“제가 어서 가서 지백을 데려올까요?”
문귀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내가 금귀자(金龜子)를 구름 마차로 보냈으니 날이 지기 전에 올 거야. 너무 걱정 말게.”
서귀가 온객행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장서각에 가서 확인할 것이 있네. 가서 확인해보고 다시 오지.”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고 소매를 들어 인사했다. 서귀와 문귀도 온객행에게 인사하고 내실을 나갔다. 온객행은 다시 내실로 들어와 열에 들떠 숨을 몰아쉬는 주자서를 보았다. 온객행은 내실을 둘러보고 닫힌 장지문과 창호를 모두 열고 옷걸이 근처에 있는 병풍을 가져와 침상 앞에 두었다. 그리고 누워있는 주자서의 요대를 풀고 장포를 벗겼다. 주자서는 온객행의 서늘한 체온이 좋았는지 온객행의 품에 고개를 기댔다.

온객행은 이불을 걷고 주자서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고 말했다.
“유서… 내가 잘 할게. 날 떠나지 마.”
주자서는 온객행의 손에 얼굴을 비비다 이내 축 늘어졌다. 온객행은 하인이 탕약을 들고 들어올 때까지 주자서를 안고 있다가 하인의 기척에 주자서를 놓아주고 탕약을 받았다. 하인이 침상이 있는 쪽을 힐끔 보더니 물었다.
“수빙(水氷)을 준비할까요?”
온객행이 고민하다 고개를 젓고 물었다.
“지백은 아직 인가?”
하인이 고개를 흔들더니 금방 인사하고 내실을 나갔다. 온객행은 탕약이 담긴 소반을 들고 침상으로 갔다. 온객행은 협탁에 소반을 놓았다. 주자서의 어깨에 팔을 둘러 그를 일으키고 협탁에 있는 탕약 그릇을 들어 그의 입가에 가져갔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몸을 작게 흔들며 말했다.
“유서. 잠깐만 일어나 봐. 유서.”

주자서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지만 눈을 뜨지는 못했다. 온객행은 숟가락을 들어 후후 불어 주자서의 입가로 가져갔다. 주자서는 좀처럼 탕약을 삼키지 못했다. 입가에 흐른 탕약을 적신 영견으로 닦아낸 온객행은 애가 닳아 안절부절못하다가 탕약을 입에 머금고 주자서와 입을 맞췄다. 온객행은 기다란 혀로 탕약이 기도로 넘어가지 않게 약을 먹였다. 몇 번 입을 맞추자 탕약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주자서도 목이 말랐는지 탕약을 머금은 온객행의 혀를 찾아 빨았다. 온객행은 화들짝 놀라 입을 떼고 주자서를 보았다. 주자서는 입을 벌리고 있다가 입맛을 다시더니 입술을 혀로 축였다. 온객행은 정염이 일어 주자서에게 얼굴을 붙였다가 주자서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그를 끌어당겨 안았다. 표식을 하는 것처럼 그의 목덜미를 핥고 빨다가 주자서를 놓아주고 남은 탕약을 입에 넣어주고 눕혔다. 온객행은 주자서 옆에 앉아서 가끔 영견에 물을 적셔 주자서의 입술을 축여 주었다. 주자서는 축 늘어져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뭔가를 웅얼거리다가 숨을 헐떡였다. 온객행은 그런 주자서를 일으켜 앉아 등을 쓸어 주었다.


서귀가 중천이 넘어 사라각으로 들어왔다. 온객행은 서귀가 다가와 주자서를 진맥하는 것을 보았다. 서귀가 주자서의 뺨에 손을 대보더니 말했다.
“좀처럼 열이 떨어지지 않는군.”
온객행이 서귀의 소매를 잡고 물었다.
“장서각에서 확인하신다는 것은 확인하셨습니까? 서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람이 요괴가 되는 것들을 좀 찾아봤는데 말이야….”
온객행이 주자서의 입술을 축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사람은 신선이 되고자 하지 요괴가 되고자 하지 않아서 말이야. 죄를 지어 요괴가 된 사람이 대부분이네. 이 치는 그것에 해당되지 않지 않은가? 요괴가 은혜를 갚고자 요괴의 피를 바쳐 장수한 사람들의 내용도 있긴 했지만 흔하지 않은 일이네. 화사의 피를 얼마나 먹였나?”
온객행이 서귀를 보고 말했다.
“아상의 말로는 한 말 정도 먹였다고 한 것 같습니다. 사나흘… 거의 닷새 정도 일어나지 못했으니까요.”

서귀가 ‘흠’ 하더니 말했다.
“죽을 사람이었는데 살린 것일 수도 있겠군. 삼청(三淸)께서 별말 없는 것을 보면 하늘이 이 치에게 뭔가 잘못한 모양인데?”
온객행이 주자서의 손을 잡아 영견으로 닦으며 말했다.
“정전에서 만난 현녀께서도 스승님께서도 원군께서도 하늘이 유서에게 죄를 지었다고 하셨습니다.”
서귀가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그런 것이라면 너무 걱정 말게. 죽이기야 하시겠는가? 설사 죽는다 하더라도 삼원으로 가겠지.”
온객행이 울상을 하고 말했다.
“안 돼요. 아직… 아직 유서랑 아무것도 못 했는데 삼원에 가고 싶지 않아요.”
서귀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 치랑 뭘 하려고 그러나?”
온객행이 주자서의 얼굴을 보고 살포시 웃으며 말했다.
“구름이 많아 비가 오는 것도 밝게 뜬 가을밤의 달도 눈이 오는 산자락의 외로운 소나무도 봄비가 태평호를 채우는 것도 함께 보지 못했습니다.” (5)

서귀가 고개를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애정시를 내가 들어서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서귀가 탁자로 나와 지필묵으로 나뭇조각에 처방전을 쓰며 말했다.
“만약 신열이라면 열이 올랐다 내렸다 며칠 앓을 테니 따로 간병할 사람을 두는 것이 좋겠네.”
온객행이 병풍 옆에 서서 서귀를 보고 말했다.
“우리 유서가 낫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할 겁니다. 아무도 믿을 수 없어요.”
서귀가 ‘허허허’ 웃으며 말했다.
“석척에게 시급한 것부터 주극성과 천주서원의 일에 대해 보고하라 이르겠네.”
온객행이 표정을 구기고 탁상에 가서 앉았다.
“무슨 뜻입니까?”
서귀가 자리에서 일어나 처방을 적은 나무 조각을 내실 밖에 있는 나흘마에게 건네고 내실을 나가며 말했다.
“현명대선께서는 하루도 쉬지 않으셨네. 이참에 좀 푹 쉬다 오셨으면 좋겠어. 잘 부탁하네. 현무 대리.”
그리고 옆에 서 있는 나흘마에게 말했다.
“북해수(北海水)를 준비해 수선의 내자를 씻기게.”
나흘마가 고개를 조아리고 서둘러 내원으로 향했다. 온객행은 활짝 열어놓은 문간에 서서 서귀를 보고 말했다.
“우리 유서는….”
서귀가 어깨너머로 온객행을 보고 헛웃음 치고 말했다.
“열이 떨어지면 금방 깨어날걸세. 지백이 온다지? 그에게 묻게.”
온객행이 소매를 들어 서귀에게 인사했다.


해가 저물 즈음 구름 마차를 타고 무당산에 도착한 지백은 금귀자의 안내에 따라 북극문을 지나 주극성에 들어가 동쪽 별궁으로 향했다. 주극성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내부가 어수선했다. 별궁은 별주부 몇이 호위를 서고 있었는데 금귀자와 지백이 나타나자 그들을 내실로 안내하며 말했다.
“수선께서 오래 기다리셔서 조금 날카로우니 조심하십시오.”
내원에 있던 나흘마가 지백을 발견하고 그들을 내실로 안내했다. 내실에 도착해 나흘마가 지백의 도착을 고하자 안쪽에서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내의만 입은 온객행이 나와 지백의 손을 잡았다.
“지백! 기다렸네.”
온객행은 지백의 손에 들린 의함을 대신 들고 그를 침상 쪽으로 이끌며 말했다.
“열은 조금 떨어졌는데 벌써 몇 시진째 정신을 차리지 못합니다.”
지백이 침상에 누워있는 주자서를 보았다. 온객행이 조금 흐트러진 주자서의 앞섶을 잘 여며 정리하고 말했다.
“서귀께서 진맥하셨는데 신열이 오른 것일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지백이 ‘아!’ 하고 자리에 앉아 주자서의 얼굴을 보고 맥을 짚었다.

지백은 한참 주자서의 손목을 붙들고 있다가 말했다.
“수선. 이미 사람의 맥이 아닙니다.”
온객행이 이상한 얼굴을 하고 물었다.
“지백… 유서가 혹시 요괴가 되는 것을 오래 사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면 어떡하지요?”
지백이 주자서의 손을 놓고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요괴가 되었다고 모두 오래 사는 것은 아닙니다.”
온객행이 지백의 손을 잡고 말했다.
“내가 반도를 먹였어요.”
지백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자서를 보았다. 한참 말이 없던 지백이 말했다.
“이제 막 요괴가 되었는데 반도까지 먹었으니 정말 신열이 오른 것일 수도 있고, 그동안 피로와 긴장이 쌓여서 탈이 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 저의 부족한 지식으로 알 수 없으나, 후자의 경우 푹 쉬면 좋아질 것입니다.”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내가 등선하는 동안 고생을 한 것 같소. 주요와 고상에게 부탁해 놓았는데 정말….”
지백이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황룡과 수원대선께서는 청룡과 백룡을 따라 삼하궁으로 가셨습니다.”
온객행이 입을 삐죽이고 말했다.
“자기 아이라 하더니 이렇게 버려 두고 말이야.”
지백이 온객행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황룡께서도 얼떨떨하셔서 겨를이 없으실 테니 수선께서 용서하세요.”
온객행이 지백을 보고 말했다.
“수선 주제에 어찌 천선께 무례를 범하겠습니까?”
지백이 의함에서 이런 저런 약초를 꺼내 온객행에게 건네고 말했다.
“열을 떨어뜨리는 해열 작용의 처방과 기를 돋우는 처방을 해드릴 테니….”
온객행이 지백의 곁에 붙어 서서 말했다.
“지백. 내가 한동안 주극성에 머무르게 될지도 모르는데 혹시 괜찮으면 여기에 와 있어 줄 수 있는가?”

지백은 놀라서 고개를 들어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수선?”
온객행이 지백이 꺼내 놓은 약재를 둘러보고 말했다.
“내가 원군께 청할 테니 그대만 괜찮으면 여기 와서 나를 도와주게.”
지백이 온객행에게 손을 모아 공수하며 말했다.
“수선. 제 처지가 좋지 못해 누가 될까 염려됩니다.”
온객행이 지백의 팔을 잡고 말했다.
“내 처지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알지 않습니까?”
지백이 고개를 들어 온객행을 힐끔 보고 말했다.
“이제는 좀 다르지 않습니까? 수선이 되셨다던데….”
온객행이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천존께서 사람과 혼인했다고 벌을 내리셔서….”
지백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부족한 약재에 대한 처방전을 천에 썼다. 온객행이 장지문 밖에 있는 하인에게 약재를 다릴 도구를 부탁하고 지백에게 다가가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현무 대리라니 차라리 다시 태평호에 봉인되는 편이 낫겠어.”
온객행의 말에 지백은 글자의 삐침을 잘못 썼다. 눈을 커다랗게 뜨고 저를 보는 지백을 보고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임시직이오. 임시직.”
지백이 붓을 놓고 온객행에게 소매를 들어 공수하고 말했다.
“수선. 저를 곤란하게 하십니까?”
온객행이 지백의 팔을 잡고 말했다.
“좀 같이 곤란합시다. 저라고 곤란하지 않겠어요?”
그리고는 서안에 가득 쌓인 죽간을 가리켰다.


주자서는 온객행이 먹여주는 탕약을 먹고 사라각에 있는 하인들과 지백의 정성스러운 보살핌으로 이틀 뒤에 정신을 차렸다. 아주 잠깐씩 정신이 돌아왔다 다시 죽은 사람처럼 축 늘어져서 잠을 잤기 때문에 온객행만 애가 타서 하인들과 지백을 들들 볶았다. 깨어난 주자서의 눈은 옥산의 화사처럼 붉은 색으로 변해 있었다. 온객행은 주자서가 겁을 먹을까 일부러 내색하지 않았다. 지백도 온객행의 눈치를 보고 별말 하지 않았다. 온객행의 몸 위에 몸을 반쯤 걸쳐 놓은 채로 서늘한 가슴을 베고 자던 주자서는 목이 말라서 잠에서 깼다. 어스름한 빛이 들어오는 것으로 봐서는 이제 막 날이 밝기 시작한 모양이다.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도 참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던 주자서는 고개를 들어 온객행을 보았다. 온객행은 주자서가 몸을 바르작대는 대도 그를 품으로 당겨 안을뿐 눈을 뜨지 않았다.

주자서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흑랑.”
온객행은 주자서를 가깝게 끌어안고 그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대답했다.
“유서.”
주자서가 몸에 힘을 주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온객행이 눈꺼풀을 반만 들어 눈을 뜨고 말했다.
“유서. 왜? 아파?”
주자서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물… 목이 말라요.”
온객행은 잠결에 침상 옆에 있는 협탁에 놓아둔 찻잔의 물을 마시고 주자서의 입을 맞췄다. 당황한 주자서는 온객행이 해주는 대로 입안에 들어온 물을 마셨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입술을 축이듯 혀를 내밀어 빨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 찻잔을 들어 찻물을 마시려고 했다. 주자서가 얼른 손을 들어 온객행의 찻잔을 빼앗아 들고 마시며 말했다.
“제가 할 수 있습니다.”
주자서가 물을 다 마시자 온객행이 입술을 붙여왔다. 주자서가 고개를 돌리자 온객행이 낮게 웃으며 말했다.
“유서. 나도 목말라.”
주자서는 열에 들떠 잠결에 수도 없이 온객행과 입을 맞췄던 것이 어렴풋이 생각나 부끄러워졌다. 주자서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자 온객행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자서의 양 뺨을 잡고 말했다.
“유서. 또 열이 오르는가?”
주자서는 뺨에 닿은 온객행의 손이 예전만큼 서늘하지 않아서 손을 들어 그의 손을 잡고 눈썹을 찌푸렸다. 온객행이 찌푸려진 주자서의 미간에 입을 맞추고 말했다.
“유서. 왜 그러는가?”
주자서는 고개를 흔들고 온객행의 손을 뿌리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침상을 내려왔다.


(5) 도연명(陶淵明) 四時 사시사철
春水滿四澤 夏雲多奇峰
봄에는 물이 가득해 사방에 연못이 여름에는 구름이 많아 기이한 봉우리
秋月揚明輝 冬嶺秀孤松
가을 달은 밝은 빛을 휘날리고 겨울 산자락에는 외로운 소나무 아름답다.

蛇苺 第29

隔岸觀火 | 29. 강 건너 불 구경.

지주를 데리러 온 문귀가 말했다.
“스승님께서 우사(雨師)를 태부로 모시라 하셨네.”
지주가 문귀를 보고 물었다.
“그럼 우리도 적송자를 태부로 모십니까?”
문귀가 머뭇거리며 말을 아끼자 지주가 한숨을 쉬고 말했다.
“스승님의 스승님이시니 원치 않아도 태부로 모시겠군요.”
문귀가 지주를 보고 물었다.
“현무께서 왜 그렇게 자리에 연연하시는지 모르겠어. 아무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일인 것 같은데….”
지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구망대선께서 너무 바쁘셔서 그렇지, 사방신에 오룡의 일까지… 어휴. 나는 하라고 해도 싫을 것 같은데.”
문귀가 혀를 차며 지주에게 말했다.
“현무께서 도움이 되고 싶으셔서 그렇지. 스승님께서 혼내고 가셨으니 기분이 안 좋으실 거야.”

지주가 문귀를 힐끔 보고 물었다.
“자네도 혼났나?”
문귀가 표정을 구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뿐이겠는가? 택귀(澤龜)와 화귀(火龜)까지 혼났지.”
지주가 낮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몸만 힘들고 말았으니 다행인 걸까?”
문귀가 지주를 보고 말했다.
“그러게 평소에 왜 그 즉저와 친하게 지냈나?”
지주가 혀를 차며 말했다.
“아이참! 사형! 천룡이요. 천룡. 같은 상전 모시는데 그렇게 미워해서 무슨 득이 있다고.”
문귀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 치는 너무 욕심이 많아.”
지주가 코웃음 치며 말했다.
“욕심이야 세월이 흐르면 별일 아닙니다. 저는 그 치가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 더 걱정이에요.”
문귀가 ‘하하하’ 웃으며 말했다.
“사람 좋아하는 이가 어디 있나?”

지주가 문귀의 소매를 잡고 주변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암튼 저는 현무께서 하시는 일을 전부 보고 했으니 그렇게 혼나지는 않을 겁니다.”
문귀가 말했다.
“그것은 또 모를 일이지만 너무 걱정 말게. 현무께서 벌 받는 것을 보고만 있으시겠는가?”
지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것도 걱정이지요. 무슨 벌을 누구에게 받으실지….”
대전(大殿)에 다다라 대전을 지키는 능리(鯪鯉)가 그들의 도착을 고했다. 문귀는 대전으로 들어가는 지주를 보고 말했다.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게. 모두 자네 탓이네.”
지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씁쓸하게 웃었다.
“제가 모자란 탓이지요. 제가 어리석은 탓이지요.”
지주는 대전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온객행은 영력으로 주자서의 머리를 말리고 하인이 가져다 놓았다는 머릿기름을 찾았다. 세목을 하고 노곤한 주자서는 졸음을 쫓아보고자 탁상에 앉아 차를 마셨다. 온객행은 방안 여기저기를 뒤지다 침상 옆에 협탁 위에 놓인 작은 도자기 병을 발견했다. 뚜껑을 열어 냄새를 맡아보니 수유(茱萸) 냄새가 났다.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다가가 병을 건네며 물었다.
“이것이 정발유(整髮油)입니까?”
주자서가 병을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냄새를 맡고 고개를 끄덕였다. 온객행은 그것을 손에 조금 덜어 주자서의 머리를 매만졌다. 온객행이 머리를 매만지기 시작하자 주자서는 정말 더 이상 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주자서가 연신 고개를 흔들어 잠을 떨치려 하자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고단하시오?”
주자서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저는 잠시 눈을 붙일 테니 지주대인께서 오시면 깨워주세요.”
그리고 탁상에 엎어졌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머리를 놓고 그를 일으키며 말했다.
“유서. 침상에 가서 주무세요. 지주가 온다고 해도 이 밤에 우리를 찾지 않을 테니 편히 주무세요.”
주자서는 별로 몸을 움직이고 싶지 않아서 웅얼거리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잠깐만 쉬면 됩니다.”
온객행은 다시 탁상에 엎어진 주자서를 보고 안절부절못했다. 그러다 주자서의 등에 늘어진 머리카락을 보고 다시 머릿기름을 손에 덜어 꼼꼼히 발랐다. 조금은 푸석하고 갈라진 머리카락이 안타까워서 온객행은 앞으로 씻길 때마다 머릿기름을 발라줘야 하겠다고 다짐했다. 반도원의 반도를 먹였으니 앞으로 수련을 시키면 점점 더 먹고 자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온객행은 주자서와 오래도록 같이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부풀었다.

주자서가 앉아 있는 의자 옆에 앉아서 주자서를 보고 있다가 아무래도 불편해 보이는 모습에 온객행은 주자서의 몸을 일으켜 품에 안았다. 주자서는 잠깐사이 깊게 잠이 들었는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온객행은 순간 조금 당황하여 주자서가 숨을 쉬는지 확인했다. 손가락을 간지럽히는 얕은 숨이 사랑스러워서 온객행은 주자서를 품에 안았다.
“유서. 정말 좋아해요. 나를 좋아해 주세요.”
온객행은 주자서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그를 들어 침상 위에 눕혔다. 신발을 벗기자 족건도 신지 않은 맨발이 나왔다. 온객행은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어찌….”
온객행은 고개를 돌리고 이불을 찾아 주자서의 몸을 덮어 가렸다. 감히 입은 옷을 벗길 수 없어서 그렇게 했다. 온객행은 주자서를 볼 때마다 일어나는 정욕을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정말 현리에게 물어볼걸 그랬어.’ 온객행은 침상 아래에 신발을 둔 곳에 앉아 잠이 든 주자서의 얼굴을 빤히 보았다. 고개를 괴고 보고 있다가 주자서의 뺨을 쓰다듬었다. 뒤척이지도 않고 자는 것이 정말 많이 고단했던 모양이다.

주서와는 이렇게까지 친밀하지 못했다. 주서는 온객행이 그저 뱀인 줄 알았다. 너무 오래 살아서 사람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는 그런 뱀인 줄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단양절에 장강에서 커다란 파사가 되었을 때 주서는 다른 사람들만큼이나 놀랐을 것이다. 주자서가 했던 말처럼 주서 역시 온객행이 집채만 한 뱀인 줄은 몰랐을 테니까. 비가 오는 날 사람의 기척을 읽지 못하고 밟힌 것은 온객행에게 조금은 치욕스러운 일이었다. 뱀인 그를 잘 보살펴준 주서를 만났으니 더는 치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해보니 비가 오는 날 물이 불어 위험한 서호에 주서는 왜 온 것일까?

뱀이라는 것을 주서에게 들킨 이후로 주서는 온객행이 저를 만지는 것을 꺼렸다. 체온이 높은 자신을 만지면 다칠까 상처받을까 항상 온객행을 대할 때 매우 조심했다. 온객행이 아픈 것이 끔찍이도 싫었던 주서는 대신 아프고 싶다고도 했었다. 함께 할 수 있다면 그 어떤 고통도 달가울 것이라고도 했었다. 온객행은 이제야 주서가 한 말의 뜻을 알 것 같았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얼굴을 보고 말했다.
“유서. 사랑해. 나를 사랑해 줘.”
온객행은 팔에 얼굴을 기대고 주자서를 보았다. 그러다 손을 들어 주자서의 눈썹을 코를 쓸어 보았다. 온객행의 손가락이 닿자 주자서는 얼굴을 살짝 찡그렸지만 금방 표정이 풀어졌다. 온객행의 손가락 끝에 조금은 뜨거운 그 체온이 기꺼워서 웃음이 나왔다. 조금 데인 것처럼 아린 것도 전부 좋았다.


주자서는 어떤 꿈을 꾸고 있다가 번쩍 눈을 떴다. 눈앞에는 온객행이 침상 위에 고개를 기대고 눈을 감고 있었다. 주자서는 너무 가까운 얼굴이 어색해서 몸을 뒤로 물렸다. 무슨 꿈을 꾸다 깼는데 무슨 꿈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게다가 밝혀 놓은 등잔의 불이 다했는지 객실 안이 어두웠다. 주자서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주자서는 잠깐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뜨고 눈앞에 있는 온객행의 얼굴을 보았다. ‘이 치는 나를 어떻게 하고 싶은 걸까? 한 갑자가 아니라 더 오래? 어떻게?’ 온객행의 자는 얼굴은 너무 애리애리하여 주자서는 괜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신선이 되었다고 하니 못해도 몇 백 갑자는 살았을 이의 얼굴이 참으로 어리다. 주자서는 자기도 모르게 작게 한숨을 쉬었다. 주자서의 한숨 소리에 온객행이 스르르 눈을 떴다. 서로를 한참 바라보고 있다가 온객행이 주자서를 향해 배시시 웃었다. 온객행의 얼굴이 너무 기뻐 보여서 주자서도 부스스 웃고 말았다.

주자서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몸을 뒤척였지만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물속에 빠진 것처럼 늘어지고 몸이 무거웠다. 주자서가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온객행이 자리에서 일어나 침상에 걸터앉아 말했다.
“유서 왜 벌써 일어났어? 조금 더 자게.”
주자서가 ‘끙’ 소리를 내며 겨우 팔에 기대 몸을 일으키자 온객행이 주자서의 어깨에 팔을 둘러 그를 일으키며 물었다.
“유서. 왜 그래?”
주자서는 말을 듣지 않는 몸뚱이에 조금 화가 나서 입을 다물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주자서는 정말 오랜만에 몸이 아팠다. 마지막으로 몸이 아팠을 때가 언제인지 너무 까마득해 기억도 나지 않았다. 몸과 마음을 풀다 못해 늘어져서 풍한이라도 든 모양이다. 주자서는 낭패감에 또 한숨을 쉬고 말았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손을 잡고 물었다.
“유서. 왜 그러는가? 나는 바보라 말해주지 않으면 모르겠어.”
온객행의 말에 주자서가 작게 웃고 고개를 흔들었다. 온객행이 손을 들어 주자서의 뺨을 만졌다. 주자서는 뺨에 다가온 온객행의 서늘한 체온이 좋아서 그의 손에 고개를 기댔다. 온객행은 주자서가 눈을 감고 고개를 기대고 있는 것을 한참 보다가 주자서를 품에 끌어안았다.
“유서. 무서워서 그래? 겁이 났는가? 내가 곁에 있어 주겠네.”
주자서는 작게 웃더니 온객행의 품에 고개를 기대고 다시 잠이 들었다.

온객행은 날이 밝아 밖에서 하인이 기별을 할 때까지 침상 위에 주자서를 끌어안고 있었다. 하인이 장지문 밖에서 말했다.
“온공자. 주극성의 주인께서 부르십니다.”
온객행은 힘겹게 주자서를 놓아 침상 위에 잘 눕힌 뒤에 장지문 밖으로 나가 하인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주인이라 하면 현명대선께서 나를 찾으시는가?”
하인이 온객행에게 맞춰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발의 아이도 데려오라 하셨습니다.”
온객행이 표정을 구기고 말했다.
“그는 발의 아이가 아니라 나의 내자요.”
하인이 온객행을 빤히 보다가 당황한 듯 헛기침을 조금 하더니 말했다.
“아… 주인께서 온공자 내외를 뵙고자 하십니다.”
온객행은 하인이 자기와 주자서를 내외라고 부른 것이 기분 좋아 말했다.
“지금 당장 말이오?”
온객행이 하늘을 보고 말했다.
“이제 진시가 방금 지난 것 같은데 너무 이르지 않습니까?”
하인이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밤새 주극성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현녀께서 오셨습니다.”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의 내자는 아직 사람이라 자고 있으니 조금만 시간을 주게.”
하인이 고개를 들어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온객행은 하인의 재촉하는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이고 객실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온객행은 침상으로 가서 자는 주자서의 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유서. 유서 일어나보게.”
주자서는 표정을 일그러뜨리고 ‘끙’ 소리를 내더니 천천히 눈을 뜨고 온객행을 보았다.
“유서. 잠시 가보아야 할 곳이 있어.”
눈을 뜨고서도 주자서가 자리에서 일어날 기색이 보이지 않자 온객행이 주자서의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현무께서 우리를 부르시니 가 봐야겠어.”
주자서는 온객행이 일으키는 대로 일어나 앉아 멍하니 있다가 이불을 걷었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맨발을 보고 또 깜짝 놀라며 다시 이불을 덮어주고 말했다.
“유서! 잠깐… 잠깐 그대로 있게.”
그리고는 법석을 떨며 방안을 뒤져 족건을 찾아왔다. 온객행은 침상 위에 앉아 눈을 감고 있는 주자서를 보고 있다가 이불을 살며시 들어 주자서의 발에 족건을 신겼다. 다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정리해서 반으로 묶고 침상 아래 두었던 신발을 찾아 신겼다. 주자서는 그때까지도 눈을 뜨지 못하고 온객행이 하는 시중을 모두 받아주었다. 온객행은 휘두르는 대로 휘둘리는 주자서가 좋아서 신발을 다 신기고 일어나 주자서를 끌어안았다. 한참 끌어안고 있어도 밀어내는 기색이 없으니 온객행은 계속 그러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객실 밖에서 하인이 헛기침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온객행은 어깨너머로 장지문을 흘겨보다가 주자서의 어깨에 팔을 둘러 그를 일으켰다. 주자서는 자리에서 일어나서야 눈을 뜨고 몸에 힘을 줬다. 조금 빨갛게 달아오른 주자서의 뺨이 귀여워서 온객행이 그의 뺨을 쓸고 말했다.
“잠깐 다녀와서도 계속 고단하면 더 주무시게.”
주자서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온객행은 그대로 주자서를 데리고 나가려다 주자서가 입은 무명옷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를 평상 위에 앉히고 소매를 뒤져 옷을 찾았다. 현리에게 받은 옷 중에 주자서가 편연주에서 더울 때 입었던 아마포로 지은 옷을 꺼내 주자서에게 건네며 말했다.
“유서. 아무래도 그 옷은 격식에 맞지 않으니 이것으로 갈아입게.”
주자서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나 요대를 풀었다.

온객행이 놀라서 그의 손을 잡고 병풍으로 그를 데려가며 말했다.
“아이참! 유서!”
주자서는 온객행이 하는 대로 이리저리 끌려다니다 병풍 뒤에 가서 입었던 호복을 벗고 중의도 없이 내의 위에 연한 쪽빛 장포를 걸쳐 입었다. 주자서가 옷을 갈아입고 소매를 털며 나오자 온객행이 얼른 주자서에게 다가가 말린 연잎이 들은 백동으로 만든 함이 달린 요패를 요대에 걸어주며 옷매무새를 만져주었다.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유서. 겁먹을 것 없어. 그대의 일은 나의 일이니 내가 지켜주겠네.”
주자서는 고개를 들어 온객행을 보고 빙긋 웃었다. 온객행은 주자서를 보고 있다가 그의 얼굴을 잡고 입을 맞추려는 데 밖에서 하인이 다시 기별했다.
“온공자!”
온객행은 주자서와 이마를 맞대고 있다가 작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어서 다녀오자.”
그리고 주자서의 등허리에 손을 얹고 장지문으로 향했다.

별궁을 나와 송문을 거쳐 신당 정전에 다다르자 거북이 몇이 나와 온객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문귀가 말했다.
“흑망공자께서는 주극성 대전으로 가시지요.”
문귀 옆에 있던 나흘마가 주자서에게 다가왔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말했다.
“이건 무슨 뜻이오?”
문귀가 신당 안으로 들어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온객행을 보고 물었다.
“무슨 말씀이시오?”
나흘마가 문귀에게 포권하고 말했다.
“영귀 어르신께서 당부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문귀가 나흘마를 보고 말했다.
“스승님께서?”
나흘마가 고개를 조아리자 문귀가 발걸음을 다시 옮겨 온객행에게 다가와 말했다.
“흑망은 걱정 말게. 현무께서 발의 아이에게 물을 것이 있어 그러는 것이니.”

온객행이 문귀를 보고 말했다.
“아직 듣지 못하신 것 같으니 말씀드립니다. 저는 이제 흑망이 아니에요.”
문귀가 온객행을 보고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리자 온객행이 품에서 두루마리를 꺼내 문귀에게 건네고 말했다.
“태평호의 수선 견연이오.”
문귀가 두루마리를 펼쳐 읽어보더니 ‘흠’하고 다시 온객행에게 돌려주고 말했다.
“축하하네. 이름처럼 넓게 보시게.”
온객행이 표정을 구기자 문귀가 나흘마를 보고 말했다.
“장고(長股), 스승님께는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나흘마는 문귀에게 인사하고 송문 밖으로 나갔다. 문귀가 다시 신당 쪽으로 향하며 말했다.
“수선께서는 그럼 가시지요.”
온객행은 문귀의 뒤를 따라 신당에 걸려있는 편액 안으로 들어갔다.


주극성은 사방신의 성이기도 했기 때문에 그 규모가 컸다. 금모원군의 요대만큼은 아니지만 동해에 있는 동왕공의 궁전만큼 넓고 컸다. 하지만 현천상제의 조락 이후에 가신들이 많이 빠졌기 때문에 성안은 조금 어수선했다. 영귀의 제자였던 현명은 함께 수학한 이들을 등용했기 때문에 갈 곳이 없는 영귀의 제자들이 머물기도 했다. 현명은 수귀 답지 않은 호방한 성격으로 신선과 요괴는 물론 사람과도 인맥이 두터웠기 때문에 그가 현무의 자리를 청했을 때 그의 어린 나이나 조금 모자란 영력에도 불구하고 금모원군도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 산천대제 역시 호방한 현무와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는데 현무는 미색에는 취미가 없어서 둘 사이를 타락한 황룡 후토가 이어주고 있었다. 후토는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라에서 꽤 높은 관리직인 대부(大夫)가 되어 천주서원에서 역법(曆法)을 주관하고 계산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점을 치고 하늘을 연구하는 것은 궁궐에서는 아주 큰 대사(大事)였기 때문에 후토는 지식을 가지고 권력을 휘둘렀다. 부족한 영력을 채우기 위해서는 사람의 영혼이 아주 많이 필요했는데 사람들의 눈을 속여 취하기 위해서는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죽어 없어지는 전쟁이야 말로 아주 좋은 명분이었을 것이다. 후토를 먼저 찾은 것은 현무였는데 그는 처음에 후토를 숨겨줄 생각은 없었다. 그러다 후토가 사방신의 수장자리에 대한 이로운 조건을 일부러 흘렸고, 후토의 말에 구슬린 현무가 속아서 산천대제와 함께 일을 꾸미게 된 것이다. 규산에 봉인된 후토가 대부분의 죄를 뒤집어쓰겠지만 그렇다고 현무와 산천대제의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현무는 발의 아이에게 어느 정도 책임을 전가(轉嫁)할 속셈이었다. 물론 영귀가 그 속셈을 눈치채고 미리 빼돌려 주요에게 보내려고 했는데 즉저가 먼저 주자서를 찾는 바람에 일이 틀어진 것이다. 다행히 온객행이 와서 그것도 틀어졌다.

문귀는 뒤따라오는 온객행과 주자서를 힐끔 보고 말했다.
“지금 대전에 혜현녀(彗玄女)께서 천존의 별성으로 와 계십니다.”
주자서는 조금 늘어지는 듯하더니 온객행에게 조금씩 몸을 기대왔다. 온객행은 기대오는 주자서가 기꺼워서 문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주자서를 더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대전에 다다라 문귀가 능리에게 도착을 고했다. 곧 대전 안에서 나흘마가 나와 말했다.
“안으로 드시지요.”
주자서는 몸을 세우고 온객행의 팔을 잡고 말했다.
“말로 부탁할 수 있는 일은 말로 하세요. 저는 정말 괜찮습니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놓아주고 말했다.
“그 괜찮다는 말 정말 싫어. 안 하면 안돼?”
온객행의 투정에 부스스 웃은 주자서가 온객행의 등허리에 손을 올려 그를 대전 안으로 밀어 넣으며 말했다.
“말로 부탁하셨으니 노력해 보겠습니다.”
온객행이 소매를 털고 대전 안으로 들어갔다. 주자서도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온객행을 따라 대전 안으로 들어갔다.

붉은빛이 은은하게 도는 옻칠이 된 궁궐 내부는 날이 밝았음에도 어두웠는데 내부를 밝히는 촛대 마저 대전 중앙에서 쏟아지고 있는 햇빛을 제외하면 상석에 있는 것이 전부라 궁궐의 정전이라기 보다는 사람을 데려다 취조하는 관청 같았다. 건물을 받치는 기둥은 뱀의 모양으로 그것을 받치는 주춧돌은 거북이 모양이었다. 햇빛이 들어오는 데에 현무와 즉저, 지주가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고 상석에는 새하얀 두의(頭衣)를 쓴 사람이 앉아 있었다. 온객행이 소매를 들어 인사했다. 주자서도 온객행에게 맞춰 소매를 들어 고개를 숙이고 인사했다. 대전 내부는 아주 조용했는데 너무 어두워서 대전 안에 있는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 주자서는 고개를 숙이고 온객행의 곁에 바짝 붙어 섰다.

현무가 고개를 돌려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저는 발의 후손을 찾고자 한 것이지 후토를 도우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즉저가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후토에게 쫓기고 있는 발의 후손을 보호하기 위하여….”
상석에 있는 여인이 코웃음을 치고 말했다.
“그만. 후토가 발의 후손을 찾고 있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네.”
현무가 바닥에 조아리며 말했다.
“모두 저의 부덕함 때문입니다. 어찌 저의 허물의 죄를 솔정(率丁)에게 물으십니까?”
지주와 즉저가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고 말했다.
“현녀. 현무께서는 죄가 없으십니다. 모두 부족한 저희의 불찰입니다.”
현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그들에게 말했다.
“어찌 이것이 그대들의 죄겠습니까? 천존께서 그대들에게 벌을 내리시니, 현무는 한 갑자동안 주극성으로 돌아오는 것을 금하고 동해로 가서 목공(木公)을 모시세요. 천룡과 지주는 천존께 눈을 바치세요.”
현무가 고개를 조아려 인사했다.
“자비로우신 천존께 감은하옵니다.”
즉저와 지주도 현무를 따라 말했다.
“감은하옵니다.”

현녀가 다시 자리에 앉고 말했다.
“천존께서 현무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견연을 임시 현무의 자리에 봉하셨는데 어찌하겠소? 수선?”
온객행은 심드렁하게 서 있다가 깜짝 놀라며 무릎 꿇고 소매를 들어 말했다.
“저에게 너무 과분한 임무입니다. 어찌 이제 막 등선한 저에게 남분(濫分)한 책임을 지우십니까?”
주자서도 옆에 서 있다가 얼떨결에 같이 무릎을 꿇었다. 현녀는 코웃음 치더니 말했다.
“겨우 한 갑자도 못 버티겠습니까?”
온객행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
“현무께서 하시는 막중한 과업을 가신 하나 없는 제가 어찌 할 수 있겠습니까? 주극성에 계시는 그 어떤 가신들보다도 못난 제가 어찌… 부디 존명을 거두어 주소서.”
그리고 머리를 땅에 붙이고 넙죽 절했다. 주자서는 조금 멍하게 있다가 온객행을 따라 절했다.

현녀는 ‘흠’ 하더니 말했다.
“천존의 허락 없이 사람과 혼인한 것은 어찌 할 셈이오?”
온객행이 고개를 들어 현녀를 보고 말했다.
“그것은! 제가 내자를 맞은 것은 제가 아직 파사일때 천간을 구분하지 못했던 요괴의 치기를 벌하실 참입니까?”
현녀가 말했다.
“하늘의 법이 지엄(至嚴)하여 천존의 허락 없이 사람의 생애에 간섭해서는 안된다는 가장 기본적인 도리도 잊었다는 말이오?”
온객행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
“제가 유서와 아이를 낳을 것도 아닌데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온객행의 말에 현녀 잠깐 멈칫하더니 말했다.
“견연. 이것이 자손의 문제인가? 하늘의 법도에 대해 말하고 있네.”
온객행이 말했다.
“천존께서 원치 않으시는 일을 할 마음도 할 수 있는 방법도 없습니다. 유서는 저의 몫의 반도를 먹었으니 이제 그는 온전히 사람이 될 수도 없습니다.”
온객행의 말에 주자서가 고개를 들어 온객행을 보았다. 온객행이 다시 고개를 조아리고 말했다.
“벌을 내리시면 받겠습니다. 그 죄는 모두 저의 죄이니 저만 벌 하소서.”
주자서는 뭔가 말하려고 입을 달싹이다가 주변의 눈치를 보고 다시 머리를 조아려 절했다. 현녀가 말했다.
“그러니 한 갑자 동안 현무 노릇을 하시오. 벌이라고 칩시다.”
온객행이 고개를 다시 들고 현녀를 보며 말했다.
“현녀! 통촉하소서!”

현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상석에서 내려와 주자서 앞에 서서 말했다.
“발의 아이. 기산의 주가 자서는 들어라.”
주자서가 고개를 들어 현녀를 힐끔 보고 소매를 들어 공수했다. 현녀가 말했다.
“하늘이 너에게 죄를 지었으니 너의 소원을 한가지 들어주도록 하겠다.”
주자서가 고개를 들어 현녀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온객행은 얼른 주자서 곁으로 다가가 말했다.
“꼭 지금 당장 말해야 하는 것이 아니니 조심해서 말하게.”
주자서가 온객행의 말을 듣고 다시 현녀를 보고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소인에게 시간을 주소서.”
현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너는 발의 후손이니 네가 원하면 언제든 천궁에 머무를 수 있다. 지금 나와 가겠느냐?”

주자서가 고개를 들어 물었다.
“저희 모친께서는…?”
현녀가 고개를 젓고 말했다.
“사람의 생애가 끝나면 너희 모친께서도 올 것이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소매를 붙들고 말했다.
“유서?”
주자서가 온객행을 빤히 보다가 다시 소매를 들어 말했다.
“소인에게 시간을 주소서.”
현녀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그래. 시간은 많으니.”
현녀가 품에서 비취로 만든 벽(璧)을 건네고 말했다.
“그 벽에 너의 결정을 말하면 된다.”
주자서는 양손을 들어 현녀가 건넨 벽을 받았다. 현녀는 상석으로 올라가며 말했다.
“견연의 일을 적송자께서 도와주십시오.”
기둥 한쪽에 기대어 있던 적송자가 혀를 차며 나와 말했다.
“언제부터 아셨소?”
현녀가 상석에 서서 말했다.
“천존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고개를 들더니 새하얀 빛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

삼청산(三清山)

산칭산은 장시성 상라오 시 위산 현과 더싱 시의 경계에 위치하며, 위산 현의 중심으로부터 약 50 km, 상라오 시로부터 약 78 km 떨어져 있다. 회옥산맥 갈래의 도교의 명산이며, 풍경이 수려하다. 산칭산의 이름은 삼봉(옥경, 옥화)의 모습이 높고 험해 마치 삼청이 정상에 앉아 있는 것 같다(三峰峻抜、如三清列坐其巓)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삼봉 가운데 옥경봉(玉京峰)이 가장 높고, 해발 1819.9m이다.

동진 시대에 갈홍이 땅에서 불로장생의 단약을 만들었던 것이 시작이다. 당 희종의 시대에, 신천 태수 왕감이 태수에서 해임된 후 산칭산에서 은둔생활을 했다. 송나라 때 왕감의 후예인 왕림이 도관을 건설해, 산칭산은 도가의 ‘동천복지’가 되었다.

    삼봉
  1. 위징봉 (玉京峰 옥경봉)
  2. 위화봉 (玉華峰 옥화봉)
  3. 위쉬봉 (玉虛峰 옥허봉)

    9대경구
  1. 남청원
  2. 만수소노
  3. 서해안
  4. 양광해안
  5. 옥경봉
  6. 삼청관
  7. 서화대
  8. 삼동구
  9. 석고령
  10. 옥령관

    10대절경
  1. 동방여신 東方女神
  2. 거망출산 巨蟒出山
  3. 후왕헌실 猴王獻寶
  4. 옥녀개회 玉女開懷
  5. 로도배월 老道拜月
  6. 관음상곡 觀音賞曲
  7. 갈홍헌단 葛洪獻丹
  8. 신룡희송 神龍戲松
  9. 삼용출해 三龍出海
  10. 포뇌명천 蒲牢鳴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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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궁이 삼청산에 있네.. 당연한 얘기 겠지만 그게 거기 있는 줄은 몰랐네 장시성은 원래 불교가 더 유명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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蛇苺 第28

苦肉計 | 28. 스스로를 괴롭힘.

지주는 별궁 외실에 들어온 온객행과 주자서에게 차를 대접하고 있다가 현무의 명령을 받고 지주를 데리러 온 문귀(文龜)를 따라 주극성으로 향했다. 외실을 나가면서 지주가 말했다.
“오래 걸릴 것 같은데 기다려 주겠나? 어쩌면 현무께서 그대를 부를지도 모르겠어.”
그리고는 온객행이 아니라 주자서를 힐끔 보았다. 온객행이 자리에서 일어나 지주를 배웅하며 말했다.
“나를? 현무께서? 알겠네. 여기에서 기다리지.”
지주가 온객행을 한참 보다가 마뜩잖은 표정을 짓고 온객행에게 말했다.
“그래. 필요한 것은 시위에게 말하게.”
지주는 나가면서 시위에게 별궁의 손님을 융숭히 대접하라고 몇 번이나 주의를 주고 신당으로 향했다.

고개를 숙이고 자리에 앉아 있는 주자서는 많이 지쳐 보여서 온객행이 다가가 물었다.
“유서. 왜 그러는가?”
주자서가 고개를 들어 온객행을 보고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괘념치 마소서.”
온객행이 눈썹을 늘어뜨려 울상을 만들자 주자서는 그 모습이 조금 반가워서 피식 웃었다. 온객행이 의자를 끌어다 주자서 옆에 찰싹 붙어 앉아 말했다.
“유서. 어찌 여기 있는가?”
주자서가 다시 고개를 숙이고 대답이 없자 온객행은 애가 타서 주자서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말했다.
“잘못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네. 말하기 싫으면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이자 온객행이 주자서의 귓가에 입을 맞추고 말했다.
“유서 그래도 잘 먹고 잘 잤는지는 말해주게. 그대에게 다들 잘 대해 주었나?”
주자서는 이번에도 대답 없이 또 고개를 끄덕였다.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뭐라고 말하려는 데 밖에서 하인이 소반에 음식을 가지고 들어왔다. 온객행은 주자서를 놓아주고 자리에서 일어나 하인이 음식이 내려 놓는 것을 도왔다.

하인이 외실을 나가자 온객행은 다시 주자서 옆에 찰싹 붙어 앉아 젓가락을 들어 음식 이것저것을 집어 주자서의 앞접시에 놓고 말했다.
“유서. 어서 먹어봐.”
주자서는 온객행이 쥐여준 젓가락을 들고 한참 망설이더니 온객행이 집어준 음식을 조금 먹었다. 온객행은 탁상에 고개를 괴고 주자서가 먹는 것을 보고 말했다.
“유서. 입에 맞지 않은가?”
주자서는 온객행을 힐끔 보고 다시 음식을 입에 넣고 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자서도 음식을 몇 개 집어 온객행의 앞접시에 올려 놓고 말했다.
“흑랑께서도 드세요.”
온객행이 웃으며 주자서가 집어준 음식을 입에 넣고 말했다.
“응. 유서도 많이 먹어.”
말없이 음식을 먹던 온객행이 말했다.
“유서… 할 말이 있네.”
주자서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어 온객행을 보았다. 온객행도 젓가락을 놓고 주자서를 보고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내가….”
온객행이 망설이자 주자서가 웃으며 말했다.
“저는 괜찮으니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온객행이 난처한 표정으로 입을 달싹였다. 주자서가 말했다.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지 내치라고 한 것은 저이니 괘념치 마소서.”
온객행은 주자서의 말에 어리둥절하여 웃으며 말했다.
“그대를 내치다니 내가 왜 그대를 내치는가?”
주자서가 또 고개를 숙이고 입을 꾹 다물자 온객행이 탁상 아래에 있는 주자서의 손을 찾아 잡고 말했다.
“유서… 내가 내쳐줬으면 좋겠는가?”
주자서가 눈썹을 찌푸리자 온객행이 얼른 손을 들어 그의 미간을 쓸며 말했다.
“유서. 내가 부족한 것은 잘 알고 있네. 나 때문에 모진 말을 들은 것도 정말 미안해.”
주자서가 고개를 들어 온객행과 눈을 맞추고 말했다.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많이 부족하지요. 저는 흑랑께 입은 은혜를 갚을 길이 막막합니다.”
온객행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유서! 은혜라니? 아니야. 나는….”

주자서가 자리에서 일어나 온객행 앞에 무릎 꿇고 말했다.
“흑랑. 저의 효용은 잘 알고 있습니다. 저를 내치신다 하셔도 그것은 제가 부족한 것이니 자신을 괴롭게 하지 마소서.”
그리고 머리를 바닥에 붙이고 절했다. 온객행은 당황하여 자리에서 일어나 주자서를 일으키며 말했다.
“유서?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주자서가 고개를 들어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곁에 남으라 하시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떠나라 하시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끌어안고 말했다.
“유서. 떠나다니? 안 돼. 절대 안 돼.”
주자서는 온객행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흑랑께서 거두어 주신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어깨에 고개를 묻고 말했다.
“유서. 우리는 벌써 혼인했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유서가 나를 거두어 줘야지.”
주자서는 온객행의 말이 의아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 끌어안고 있던 두 사람은 하인이 음식을 치우러 다시 들어오는 기척에 서로를 놓아주었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다시 자리에 앉히고 말했다.
“유서. 내가 하려고 했던 말이 뭐냐 하면….”
온객행이 주자서 옆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한 갑자 동안이 아니라….”
주자서는 온객행의 말에 다시 눈썹을 찌푸렸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표정을 보고 울상을 만들어 말했다.
“그러니까 한 갑자 동안이 아니라 더 오래 같이 하고 싶은데….”
주자서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자 온객행이 자신의 소매를 뒤적이며 말했다.
“그대에게 줄 것이 있어.”
주자서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흑랑. 이미 충분히 차고 넘치게 받았는데 또 빚을 지우십니까?”
온객행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빚이라니? 다 내가 주고 싶어서 주는 것인데. 나에게 받는 것은 모두 원래 그대의 것이니 그런 생각하지 마시오.”
그러더니 소매에서 복숭아를 꺼내 주자서에게 내밀었다.

주자서는 복숭아와 온객행을 번갈아 보고 물었다.
“이것은…?”
온객행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유서. 유서가 이걸 먹으면 나와 함께 아주 오래 살 수 있어.”
주자서는 물끄러미 복숭아를 보았다. 온객행이 소매에서 칼을 꺼내 복숭아를 얼기설기 깎아 내밀었다. 주자서는 한참 내민 복숭아를 보다가 부유각에서 그랬던 것처럼 받아먹었다. 이 복숭아 역시 달고 향긋하다. 주자서가 온객행에게도 권하자 온객행이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나눠 먹으면 어떻게 될까? 아니야. 이건 유서 다 먹게.”
그리고 남은 복숭아도 모두 주자서의 입 속에 넣어주었다. 주자서가 복숭아를 다 먹자 온객행이 자리에서 일어나 대야를 가져와 함께 손을 씻었다. 주자서는 종화산에서 함께 손을 씻었던 것이 생각나서 조금 부끄러워졌다.

온객행이 수건을 가져와 주자서의 손을 닦아주며 말했다.
“내가 수선이 되었으니 이제 아무도 그대에게 물비린내 난다는 소리는 못할 것이오.”
주자서가 온객행을 보고 놀라서 물었다.
“수선이요?”
온객행이 주자서를 보고 낮게 웃으며 말했다.
“태평호의 수선이 되었는데… 유서는 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백택을 고쳐서 삽시다.”
주자서는 손을 닦고 대야를 치우는 온객행을 빤히 보다가 말했다.
“흑랑? 수선이요? 무슨 뜻입니까?”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다가가 말했다.
“이제 흑랑이라고 부르면 안 되겠군.”
주자서가 눈썹을 찌푸리자 온객행이 손을 들어 그의 미간을 쓸고 말했다.
“하늘에서 가져다 붙이는 이름 말고 내가 듣고 싶은 이름으로 불러 주시오.”
주자서가 고개를 들어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온객행?”
온객행이 활짝 웃으며 주자서를 끌어안고 말했다.
“유서. 나는 유서가 너무 좋아.”
주자서는 한참 안겨 있다가 팔을 들어 온객행을 마주 안았다.

온객행과 주자서는 외실에 앉아서 해가 질 때까지 지주를 기다렸지만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하인들이 다가와 온객행에게 물었다.
“객실을 정리할까요? 주무시겠습니까?”
온객행이 평상에 기대 눈을 감고 있는 주자서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부탁드립니다.”
하인이 시위들과 여기저기 구르며 조금 꼬질꼬질해진 주자서를 힐끔 보고 물었다.
“세목(洗沐)을 준비할까요?”
온객행이 주자서를 보고 있다가 하인에게 물었다.
“세목을 하면 기분이 좋아집니까?”
하인은 당황한 표정으로 한참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렇지 않을까요?”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준비해 주시오.”
하인이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내원 오른편 객실에 준비하겠습니다. 한식경(一食頃)만 기다려 주십시오.”
온객행이 하인에게 말했다.
“서두를 것 없습니다. 지주는 오늘 돌아오지 않을 것 같으니 천천히 하세요.”
하인은 온객행에게 조아리고 외실을 나갔다. 온객행은 다시 탁상으로 가서 하인이 내온 차를 마시며 평상에 기대어 앉은 주자서를 구경했다. ‘군영에 있었을 때에 저런 옷을 입었을까? 상투를 튼 것도 좋군.’

주자서는 저를 보는 시선이 따가워서 힐끔 눈을 떴다가 온객행과 눈이 마주쳤다. 어색하게 입꼬리를 끌어당겨 웃고 조금 몸을 틀어 앉았다. 주자서는 온객행이 한 말뜻을 찾느라 피곤도 잊은 채로 생각 중이다. 온객행이 처음에 희첩이니 내자니 하는 이야기를 꺼냈을 때는 발의 영력을 비호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이제 주자서에게 발의 영력이 없으니 그 비호는 더 이상 필요 없다. 태평호에 온 이후로 주자서의 처지를 대체로 표현한 말인 한낱 미물, 주자서가 스스로 생각해봐도 어느 정도 납득이 되는 말이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곁에 두려고 하는 이유를 주자서는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이미 사모하고 연모하는 이가 있는데.’ 주자서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당장 갈 곳이 없고 곁에 있으라 하니 곁에 있겠지만 주자서는 대체 어떤 태도로 온객행을 대해야 할지 몰랐다. 은하수에서 만난 남자는 주자서가 뭐라고 그에게 온객행을 부탁했을까? 이제는 요괴도 아니고 번듯한 신선이 된 모양이니 그 전보다 더 주자서의 형편과 어울리지 않는다.

애초에 주자서가 남의 사정을 돌보아 줄 만한 처지인가? 태평호 이후로 주자서는 남에게 보살핌을 받았으면 받았지 누구를 보살펴줄 여력이 없었다. 어쩌면 그를 돌보는 사람이 되라는 뜻일까? ‘부하가 되라는 건가?’ 그러다 보통 부하와 혼인까지 하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주자서는 눈을 뜨고 생각을 멈췄다. 온객행이 저에게 싫증이 날 때까지 버텨보자. 내쳐지면 그때 서쪽으로 향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저 서쪽으로 떠나기 전에 낙읍에 계신 모친이나 한번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당산에서 낙읍까지는 말을 빌려 가면 하루, 걸어가면 나흘이 걸렸다. 멀지 않은 곳에 계신다고 하니 괜히 더 그리워진다. 주자서는 온객행을 힐끔 보고 부탁을 해볼까 하다 말았다. 모친께 온객행을 뭐라고 소개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주자서가 평상에서 일어나 온객행이 있는 탁상의 자리에 앉았다. 찻주전자를 들어 찻잔을 채우고 조금 식은 차를 마셨다.

온객행이 차를 마시는 주자서를 보고 물었다.
“유서. 덥지 않은가?”
주자서가 찻잔을 비우고 내려놓으며 말했다.
“괜찮으니….”
말을 다 마치지 않고 주자서가 온객행의 얼굴을 보았다. 눈썹이 축 처져서 서러운 얼굴을 하는 온객행을 보다 피식 웃었다.
“덥지 않습니다. 산이 높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주자서의 대답에 온객행이 배시시 웃으며 물었다.
“춥지는 않은가?”
주자서에게 다가와 주자서의 앞섶을 쓸며 말했다.
“이 옷은 불편하지는 않은가?”
주자서는 고개를 끄덕이고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머리를 만지며 말했다.
“상투를 트는 것도 나쁘지 않군. 관을 해도 되겠어.”
주자서가 부스스 웃으며 말했다.
“관례는 이미 치렀으니 못할 것도 없습니다.”
온객행이 물었다.
“관례를 치렀는가?”
주자서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군영에서 장군께….”
온객행이 급하게 입을 가리고 말했다.
“아!”
주자서가 고개를 들어 온객행을 보자 온객행이 울상으로 말했다.
“또 실례를…. 용서하시오.”
주자서가 작게 웃고 답했다.
“아닙니다. 재미없는 이야기라도 듣고 싶으시다면 해드리지요.”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몸을 붙이고 앉아서 말했다.
“그대가 하는 말 중에 재미없는 것은 없으니 해주시오.”
온객행은 다시 고개를 괴고 주자서를 보았다. 주자서는 조금 부끄러워져서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기산에서 도망하여 낙읍에 도착한 주자서의 가족들은 한동안 피난민처럼 거처를 이곳저곳 옮겨야 했다. 그래서 이름도 바꾸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낙양성으로 들어가는 태곡관 밖에 있는 마을에서 품앗이를 하며 생계를 꾸렸다. 모친과 종형제인 형님께서 고생하신 덕분에 주자서가 충년이 될 즈음에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거처를 구할 수 있게 되었다. 금을 타는 것을 좋아하시는 모친을 위해 칠현금을 사드리려고 몇 년이나 돈을 모았지만 결국 그 돈으로 형님께서 혼인을 하셨다. 혼인을 하고 당질이 태어나 얼마 동안은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은 삶을 살았다. 조금 여유가 생겨서 주자서를 성안에 있는 서원에 보내기도 했다. 끼니 걱정을 하는 것이 제일 큰 걱정인 삶은 얼마 가지 못했다.

나라에 일이 생겨 징집령이 내려졌다. 주자서의 집에 징집령에 응할 수 있는 것은 형님뿐이었다. 형님은 모친 몰래 처자식을 데리고 도망을 가려고 하다가 잡혀서 전장으로 끌려갔다. 도망병인 형님의 처지가 군영에서 어땠을 지 지금의 주자서는 알고 있다. 형님께서 버티시지 못하셨을 것이다. 정말로 형님께서 전장에서 전사하셨는지 아니면 사고로 돌아가셨는지 그들은 형님의 시신을 찾지도 못했다. 그리고 주자서가 징집이 되어 사분군으로 최전방에 있는 전장으로 온 것이다. 막 지학을 넘긴 주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아 고생을 많이 했다. 서원에서 배운 것들은 실전과는 너무 달랐다. 부친께서 무관이었기 때문에 모친께서는 병서를 읽게 하셨고 그에 걸맞은 무도를 갖추기 위해 형님께 배웠던 검술은 전장에서 하나도 쓸모가 없었다. 비열하고 너저분한 전투는 살아남는 자를 승리자로 만든다. 그 승리자는 덕이 높을 필요도 어질거나 점잖을 필요도 없다.


주자서가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저는 겁이 많아요. 그래서 도망치는 것을 제일 잘합니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겁이 나면 알려주시오. 내가 달래주겠소.”
주자서가 고개를 흔들며 작게 웃자 온객행이 주자서의 귓가에 속삭였다.
“말하지 않았소. 아주 귀여워.”
주자서가 표정을 구기며 온객행을 밀어냈다.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내게 도망쳐 오시오. 내가 지켜주겠소.”
주자서가 웃으며 말했다.
“흑랑에게서 도망치고 싶으면 어찌합니까?”
온객행이 눈썹을 늘어뜨리고 말했다.
“안돼. 내가 혹시 겁나게 하면 말해주시오. 나는 모자라서 말해주지 않으면 모르는 바보니까.”
주자서가 뭐라고 말하려는데 하인이 기별하며 말했다.
“온공자. 객실이 준비되었습니다.”
온객행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자서를 일으키며 말했다.
“세목을 준비했다고 하니 가서 씻으시오.”
주자서는 온객행에게 이끌려 객실로 향했다.

따끈한 물이 담긴 커다란 목욕통은 객실 오른편에 있는 곁방에 준비되어 있었다. 주자서는 세목이라 하여 간단히 영견에 물을 묻혀 몸을 닦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본격적인 목욕통을 이용할 줄은 몰라서 얼떨떨했다. 온객행은 주자서를 곁방 안으로 밀어 넣으며 말했다.
“어서 씻게. 고상이 사나흘에 한번은 씻겨야 한다고 했는데 이제야 그대를 씻기는군.”
온객행의 말에 하인이 주자서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주자서가 어색하게 웃으며 머뭇거리자 하인이 물었다.
“시중을 들 아이들을 부를까요?”
주자서가 당황하며 손사래 치며 말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제가 하겠습니다.”
온객행이 하인에게 물었다.
“시중이라니?”
주자서가 하인을 보고 말했다.
“세목이 끝나면 어찌할까요?”
하인이 소매를 들어 공수하고 인사하며 말했다.
“그냥 두시면 저희가 치우겠습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시면 내원에 있는 하인에게 말씀하십시오.”
그리고 곁방을 나갔다. 하인이 나가는 것을 빤히 보고 있던 주자서가 고개를 돌려 온객행을 보았다.

온객행은 병풍 너머에 있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목욕통에 다가가 물을 만지고 말했다.
“아주 뜨겁네. 조심해야겠어.”
주자서가 온객행에게 다가갔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보고 멀뚱히 서 있자 주자서가 온객행에게 말했다.
“정말 시중이 필요하신 것이 아니면 저는 이만.”
온객행이 돌아 나가려는 주자서를 붙잡고 말했다.
“유서. 무슨 소리인가? 어서 씻으라니까?”
주자서가 목욕통과 온객행을 번갈아 보더니 말했다.
“제가요?”
온객행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자서가 얼굴이 빨개져서 고개를 숙이자 온객행이 주자서를 보고 있다가 덩달아 부끄러워져 놀란 듯이 말했다.
“아! 내가 자리를 비켜주겠네.”
그리고 곁방의 장지문을 닫고 나갔다. 온객행은 내원을 거닐다가 정원을 쓸고 있는 하인을 만났다. 온객행이 하인에게 다가가 말했다.
“이보게. 혹시 머릿기름을 좀 얻을 수 있겠는가?”
하인이 다가온 온객행에게 공손히 인사하고 말했다.
“공자께서 쓰실 것입니까?" 온객행은 조금 부끄러워져서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내자에게….”
하인이 빙긋 웃더니 말했다.
“객실로 가져다드리면 되겠습니까?”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고맙네.”
뒤돌아서 가려는 하인을 붙잡고 온객행은 품에서 염낭을 꺼내 은정을 쥐여 주고 활짝 웃었다.

주자서는 목욕통을 한참 보다가 결심을 하고 옷을 벗기 시작했다. 이런 황송한 대접을 또 언제 받아 볼까 싶은 생각도 있었고, 따뜻한 물에 들어가면 조금 굳어 있는 몸과 마음이 풀어질 것 같기도 했기 때문이다. 굉갑을 풀고 가죽 요대를 풀어 바닥에 놓았다. 주자서는 옷을 벗어 병풍에 걸어 두고 신발을 벗고 족건도 벗었다. 옷을 다 벗고 목욕통 안에 들어간 주자서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목욕통의 물은 뜨겁다고 하기보다는 미지근했는데 날이 춥지 않아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작은 도자기 그릇에 조협(皂莢)이 들어 있었다. 주자서는 콩깍지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상투를 튼 머리를 내리고 목욕통에 고개를 기댔다. 나른한 것이 잠깐 쉬었다가 씻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온객행은 반 시진이 넘도록 곁방에서 나올 기색이 없는 주자서에 애가 탔다. 혹시 무슨 일이 있을까 싶어 장지문 앞에서 이리저리 부산을 떨며 움직이는데도 곁방에서 기척이 없으니 더 불안한 것이다. 그렇다고 들어가서 벗은 몸을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니 온객행은 마음이 뒤숭숭했다. 내원에서 만났던 하인이 곁방을 정리하러 왔는지 온객행에게 다가와 물었다.
“아직도 나오지 않으셨습니까?”
온객행이 장지문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아직. 아직 조금 더 기다려주게.”
하인이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물이 많이 식었을 텐데…. 갈아입으실 옷은 있으십니까?”
온객행이 놀란 듯이 하인의 손을 잡고 말했다.
“맞아! 갈아입을 옷이 없네. 어쩌지? 그래서 나오지 못하는 모양이야.”
하인이 온객행을 보고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뿌리쳤다.
“갈아입을 옷을 준비할까요?”
하인의 말이 끝나자 마자 장지문이 열리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푹 젖은 주자서가 하얀 내의만 걸치고 나왔다.

너무 놀란 온객행은 얼른 장포를 벗어 주자서에게 둘러주며 말했다.
“유서! 이게 무슨….”
주자서는 온객행이 법석을 떠는 것은 개의치 않고 손에 들고 있는 옷을 하인에게 건네며 말했다.
“사졸의 옷을 빌렸는데….”
하인이 옷을 받아 들며 말했다.
“옷을 준비해 드릴까요?”
주자서가 온객행이 둘러준 장포에 팔을 꿰며 말했다.
“아….”
온객행이 하인을 물리며 말했다.
“여기는… 어… 가보시오.”
주자서가 고개를 조아리고 멀어지는 하인에게 말했다.
“부탁드립니다. 시위나 사졸이 입던 옷도 괜찮습니다.”
하인이 어깨너머로 주자서를 힐끔 보고 고개를 꾸벅하더니 외실 쪽으로 향했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그를 객실로 끌고 가며 말했다.
“유서. 어찌… 어찌….”
주자서는 온객행의 반응에 조금 부끄러워져서 입고 있는 장포를 여몄다.
“사내끼리 뭘 내외 하시오.”
온객행이 주자서를 객실 안에 먼저 들여보내고 장지문을 닫으며 말했다.
“어찌! 당연히 내외해야지요!”
주자서는 온객행의 반응에 멋쩍어서 입고 있는 장포를 보았다. 그의 젖은 머리카락이 온객행의 장포를 적시고 있었다. 주자서가 장포를 벗으려고 하자 온객행이 놀라서 다가와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
“왜… 왜 이러시오?”
주자서가 장포가 젖은 부분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옷이 젖습니다.”

주자서가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 온객행이 주자서의 얼굴을 잡았다. 주자서가 ‘앗’하는 사이 온객행이 얼굴을 붙여 입술을 맞췄다. 입술을 물고 핥고 빨더니 곧 입 안으로 온객행의 혀가 들어와 입안을 희롱했다. 주자서는 온객행이 이럴 때마다 대체 뭘 어떡해야 하는지 몰랐다. 전에는 밀어냈지만 지금은 밀어내기도 곤란했고 무엇보다 예전만큼 그렇게 낯설지도 않았다. ‘희롱도 많이 하면 익숙해지는 구나’ 같은 생각을 하다 주자서는 숨이 막혀서 뺨에 얹어진 온객행의 손을 잡았다. 온객행이 입을 떼고 이마를 맞붙이고 주자서를 불렀다.
“유서… 유서….”
주자서의 가쁘게 몰아쉬던 숨이 점차 평온해지자 온객행은 다시 주자서의 입술을 찾았다. 주자서의 손이 온객행의 어깨를 잡았다. 온객행은 밀어내는 기색 없이 얹어진 그 손이 사랑스러워서 어쩔 줄 몰랐다.

온객행이 한참 주자서의 입가를 희롱할 때 밖에서 하인이 기별해왔다.
“옷을 가져왔습니다.”
온객행은 주자서를 놔주고 싶지 않아서 입술을 떼고 주자서를 끌어안고 말했다.
“거기 두고 가시오.”
하인이 말했다.
“저는 물러가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온객행은 하인의 기척이 없어질 때까지 주자서를 꼭 안고 있다가 하인이 내원에 다다랐을 때 다시 주자서의 입술을 찾았다. 주자서가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흑랑. 옷을….”
온객행이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조각자나무 냄새가 나.”
주자서가 온객행의 품에서 나와 장지문으로 향하며 말했다.
“조협을 사용해서 씻었으니까요.”
장지문을 열려는 주자서의 소매를 잡아당겨 멈춘 온객행이 말했다.
“저기 병풍 뒤에 가 계시오.”
주자서가 침상 옆에 놓여있는 병풍을 보고 온객행이 시키는 대로 병풍으로 갔다.

병풍 뒤에는 크고 작은 함과 옷걸이가 있었다. 주자서는 함을 열어 보았지만 옷이 들어 있지는 않았다. 주자서가 함을 다 둘러보고 병풍에서 나오자 온객행이 하인이 가져온 옷을 펴보며 말했다.
“이것은 무명이 아니오? 소매도 짧고 이런 옷을 입힐 수는 없소.”
주자서가 온객행이 옷을 올려 놓은 탁상으로 가서 옷을 보며 말했다.
“이런 옷이 어때서요. 저는 편해서 좋습니다.”
주자서가 온객행의 장포를 벗고 옷을 입으려고 하자 온객행이 주자서의 앞섶을 잡고 말했다.
“유서! 병풍 뒤에 가서 입으시오.”
주자서는 고개를 들어 빨개진 온객행의 얼굴을 보고 부끄러워져서 헛기침을 하고 탁상에 놓인 옷을 들고 병풍으로 갔다. 입고 있던 온객행의 장포를 벗어 걸어 두고 내의 위에 서원 시위가 입는 옷 같은 호복과 바지를 입었다.

온객행은 병풍 뒤로 가는 주자서를 보았다. 자신의 장포를 입고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는 주자서는 온객행에게는 조금 낯선 것이라 마음이 울렁거렸다. 객실 안을 비추는 은은한 불빛에 병풍 너머로 옷을 갈아입는 주자서의 그림자가 보였다. ‘저 치는 일부러 저러는 걸까?’ 병풍 뒤에 비치는 주자서의 모습이 너무 야살스러워서 온객행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다 주자서가 한 말이 떠올랐다. ‘나는 사내를 좋아하지 않소.’ 온객행은 조금 슬퍼졌다. 온객행은 주자서가 자신을 좋아해 준다고 하면 수선이니 흑룡이니 하는 것도 다 내던져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온객행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유서. 나를 좋아해 줘요. 좋아해 줘요. 유서.”
주자서가 옷을 다 갈아입고 온객행의 장포를 들고 말했다.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다가가 젖은 머리를 만지며 말했다.
“어서 머리를 말려야겠어요.”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온객행의 옷을 들어 보이고 말했다.
“저 때문에 옷이 젖었네요.”
온객행은 주자서를 보고 조금은 슬프게 웃었다.

蛇苺 第27

趁火打劫 | 27. 불이 난 틈에 도둑질을 한다.

온객행은 반도원에서 열린 구름길을 내려오기 위해 어지간히 애를 써야 했다. 반도원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복숭아를 노리는 영혼이 매우 많았기 때문에 그들을 피해 다시 요대로 돌아오는 길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온객행은 자신에게 돌진하는 정신 나간 영들을 이리저리 피하며 혼탁한 구름 속에서 요대로 향하는 길을 찾아야 했다. 그러다 온객행은 주자서가 걱정되어 짜증이 일었다. 온객행은 구름 속에 물을 모아 주변에 두르고 다가오는 것들을 위협하다 구름 사이에 밖으로 통하는 틈을 발견했다.

고상은 요대의 중궁 천장에 있는 그림 속의 구름에서 나와 금모원군을 만났다. 금모원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생각보다 빨리 왔네. 누군가 될 줄은 알았지만 설마 너일 줄이야.”
고상이 다소곳이 손을 모으고 인사하며 말했다.
“황룡 하(夏), 금모원군을 뵙습니다.”
금모원군이 고상을 보고 말했다.
“그래. 앞으로 동왕공을 잘 모시도록 해라.”
고상이 고개를 힐끔 들어 금모원군을 보았다. 금모원군은 옆에 서 있는 양조에게 뭐라고 말하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 나른하게 용호좌 위에 기댔다.

양조가 중궁을 나가자 상석 옆에 서 있던 시동이 다가와 고상에게 말했다.
“황룡의 삼하궁(三河宮)으로 가 보시겠습니까?”
고상이 손을 내리고 시동에게 물었다.
“거기가 어디인데요? 저희 주인은 어디 계세요?”
시동이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산천대제께서는 동해에 계십니다.”
고상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이참! 내 주인은 태평호의 무지기란 말이예요.”
시동이 당황하며 무릎 꿇고 말했다.
“황룡. 통촉하소서.”
고상이 당황해 시동의 팔을 잡고 일으키며 말했다.
“주요는… 무지기는 어디 있어요?”
시동이 상석 쪽으로 힐끔 눈치를 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현악에 계십니다.”
고상이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소매를 들어 금모원군께 인사하고 현악, 무당산으로 향했다.


남쪽에서 천존의 명령을 받아 서둘러 온 주작과 적룡은 황룡이었던 후토의 모습을 보고 당황했다. 그래도 사람 꼴은 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너무 초라한 모습이라 보는 이가 오히려 민망했다. 적송자가 말했다.
“규산으로 데리고 가면 되네.”
주요가 후토를 보고 말했다.
“사람 가까이에 두면 위험하네. 그는 사람을 먹으니.”
적룡이 들고 있던 항아리의 천을 뜯어내자 후토는 소리를 지르다 항아리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적룡이 다시 천을 둘러 꼼꼼히 봉인하며 말했다.
“경계하겠습니다.”
주작이 소매를 들어 적송자와 주요에게 인사하며 말했다.
“누를 범했습니다. 현명을 부탁드립니다.”
주요 역시 소매를 들어 적송자에게 인사했다. 적송자는 인사하는 이들을 보고 있다가 신당으로 향하며 말했다.
“그럼 이 노인네는 먼저 가보겠네.”
주요가 자세를 바로 하고 주작을 보고 말했다.
“축융대선, 전당군. 저도 그럼 이만.”

주작이 주요를 붙잡으며 말했다.
“수원. 태평호의 화사가 승천했습니다.”
주요가 주작에게 다가가 말했다.
“승천? 아상이요?”
주작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천존께서 봉호를 내리셨소. 장강 강주에 검영이 북해 용왕으로 봉해졌습니다.”
주요가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강주의 검영이요? 흑망이 아니라요?”
적룡이 웃으며 말했다.
“천명을 받은 것은 검영과 흑망뿐이 아닙니다.”
주요가 적룡을 보고 물었다.
“그럼 흑망은…?”
신당에서 패하가 나오며 말했다.
“원군께서 뭐로든 봉하셨겠죠.”
주요가 뒤 돌아 패하를 보고 말했다.
“원군께서…? 그럼 요대에 있는 겁니까?”
주작과 적룡이 패하에게 인사하고 말했다.
“반도원에 있겠군요.”
패하가 주요에게 다가가 말했다.
“등선했으니 앞으로 종종 보겠군요.”
주요가 물었다.
“아상은… 화사는 어디에 있습니까?”
주작이 말했다.
“반도원에 함께 있지 않을까요?”
주요가 패하를 보고 물었다.
“발의 아이는요?”
패하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신당으로 들어오는 송문 앞에 서 있는 시위에게 갔다.


지주가 몸에서 뿜어냈던 실을 거두고 말했다.
“진정해. 진정해. 우리가 이럴 필요가 있나? 이름이 뭔가?”
주자서가 지주를 노려보며 말했다.
“아상은 어디 계시지? 무슨 짓을 한 거야?”
지주가 다가가자 주자서는 칼을 더 바짝 목에 가져 대며 말했다.
“아상께서는 어디 계시는가?”
지주가 혀를 차며 말했다.
“나야 모르지! 그것을 나에게 묻나?”
그러다 밖에서 지주에게 보고를 하던 시위가 인사하는 소리가 들렸다.
“오공공.”
주자서가 즉저의 호칭에 잠시 멈칫한 사이 지주가 주자서의 손에서 칼을 빼앗아 다시 주자서의 검집에 넣고 그를 무릎 꿇리며 말했다.
“고개는 들지 말고. 내 말이 끝나면 내게 인사하고 밖으로 나가서 시위 곁에 있게.”
주자서가 고개를 들어 지주를 보자 지주가 주자서의 머리를 누르며 말했다.
“고개 들지 말라고.”

즉저가 방 안으로 들어와 지주에게 말했다.
“사람이 하는 일은 믿을 수가 있어야지!”
지주가 주자서의 어깨를 툭 치자 주자서는 포권하여 인사하고 방을 나갔다. 즉저가 나가는 사람을 보고 물었다.
“무슨 일인가?”
지주가 침상에 걸터앉고 말했다.
“천주서원(天柱書院)의 일이네. 일단 황룡이 없어졌으니 보고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즉저가 탁상으로 가서 앉으며 말했다.
“대체 어디를 다녀온 거야? 현무께서는 또 어디 가셨나?”
지주가 짜증 내며 말했다.
“그걸 왜 내게 묻소?”
즉저가 혀를 차며 말했다.
“황룡 그 놈이 천존께 봉인 당했네. 이제 어디서 사람을 데려오지?”
지주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 고약한 취미생활 좀 나 모르게 하시오.”
즉저가 지주를 쏘아보며 말했다.
“자네야 뒷배가 있으니 아쉬울 것이 없지.”
지주가 자리에서 일어나 탁상으로 가서 앉으며 말했다.
“지금 그게 문제입니까? 천존께서 아셨으면 우리도 처벌을 피할 수 없어요.”
즉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전부 황룡에게 뒤집어씌우면 될 일 아닌가. 오히려 현무께서 공을 세우셨으니 이번에야 말로….”
지주가 차를 준비하며 말했다.
“우사께서 오셨어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즉저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발의 아이가 어디 갔을까?”
지주가 즉저를 보고 물었다.
“영력도 없고 그냥 사람 아니오? 그 치를 찾아서 어쩌려는 것인지….”
즉저가 지주를 보고 혀를 차며 말했다.
“현무께서 말씀하실 때 뭐 했나? 황룡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은 뒤집어씌우는 것이고 화풀이할 상대는 또 다른 이야기 아닌가?”
지주가 코웃음 치며 말했다.
“그러니까 그 고약한 취미생활 좀 나 모르게 하라니까요.”

즉저가 지주에게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 치는 흑망의 희첩이네.”
지주가 손을 멈추고 즉저를 보고 말했다.
“흑망의 희첩?”
즉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다행히 흑망 그 놈이 흑룡이 되지는 않았지만 뭐라도 쥐고 있는 것이 낫지 않겠나?”
지주가 코웃음 치며 말했다.
“그렇게 경계할 필요 없습니다.”
즉저가 장지문으로 향하며 말했다.
“자네야 뒷배가 있으니 아쉬울 것이 없지.”
지주가 즉저를 따라 나가며 말했다.
“천룡께서도 저의 뒷배가 아닙니까.”
즉저가 콧방귀를 끼며 말했다.
“내게 다 맡겨 놓고 대체 뭘 하고 다니는 건가?”
지주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뒷배가 있다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끈 떨어진 연이 되는 것은 항상 시간의 문제입니다.”
즉저가 고개를 돌려 지주를 보고 물었다.
“자네?”
지주가 즉저를 배웅하며 말했다.
“제가 영귀 어르신께 내쳐지면 나는 천룡 밖에 없어요. 아시죠?”
즉저가 웃으며 말했다.
“헛소리. 현무께서 계시는데 무슨 걱정인가?”
지주가 즉저에게 말했다.
“사람의 발로 도망쳤으니 멀리 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벌써 반나절이나 지났으니 모를 일이에요. 수색 범위를 서원 밖으로 넓히시죠.”
즉저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며 말했다.
“사람은 매일 자고 먹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을 테니 멀리 가지 못했을 거야.”
지주는 즉저를 잘 달래서 배웅하고 다시 별궁 안으로 들어오면서 문 앞에 시위 옆에 고개를 숙이고 서 있는 주자서의 팔을 잡아 별궁 안으로 들어갔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지주의 불평을 들은 주자서가 눈치를 보다 탁상이 있는 자리에 가서 앉아 지주가 내리다 만 찻물을 마셨다.

지주가 주자서를 보고 물었다.
“배가 고프겠군. 뭐라도 먹겠나?”
주자서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괜찮소. 나를 왜 도운 것이오?”
지주가 주자서 앞에 앉아 찻주전자에 물을 담으며 말했다.
“내가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아무래도 현무께서 원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야.”
주자서가 찻잔을 내려놓고 물었다.
“아상은 어디 계시오?”
지주가 찻잔에 차를 따르며 말했다.
“하늘로 승천했으니 지금쯤 어디 있는지 나야 모르지.”
주자서가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승천? 그게 무슨 소리요?”
지주가 찻잔을 들어 ‘후룩’ 마신 다음 말했다.
“네 몸에 있던 발의 영력이 사라졌네. 느끼지 못하겠는가?”
주자서는 지주의 말에 확실히 맥이 풀리고 고단한 느낌이 사라지고 몸에 힘이 들어간 것이 느껴졌다.

주자서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지주가 말을 이었다.
“발의 힘으로 승천했으니 못해도 신선이 됐을 것 아닌가?”
주자서가 다시 지주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자 지주가 물었다.
“너는 화사랑 무슨 관계인데 그렇게 화사를 찾는 것이냐?”
주자서가 표정을 구기고 입을 달싹이며 대답을 망설였다. 지주는 찻잔에 남은 차를 다 마시고 손을 내젓고 말했다.
“복잡한 사정이 있는 모양이군. 됐네. 별로 알고 싶지 않아.”
주자서가 고개를 숙이자 지주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나중에 천룡이나 지주를 벌한다고 하거든 좀 도와주게. 천룡이 벌을 받으면 나의 일을 누구에게 미루겠는가?”
주자서가 표정을 구기고 말했다.
“제가 뭐라고 돕는다는 말입니까? 일개 사람이라면서요?”
지주가 주자서를 지나쳐 침상으로 가 벌렁 눕고 말했다.
“그것도 그렇군. 난 좀 쉬어야 하겠으니 자네도 좀 쉬게.”
주자서가 장지문을 보고 물었다.
“오공공께서 다시 오지 않을까요?”
지주가 신발을 벗고 침상 위로 올라가며 말했다.
“지금 오공공 발등에 불이 떨어졌으니 여기 다시 올 여유가 생길지 모르겠군.”
그리고 이불을 펴서 덮었다. 주자서는 잠이 든 지주를 보고 있다가 탁상에 있는 차를 좀 더 마시고 평상으로 가서 몸을 뉘었다.

주자서는 생각했다. 어떤 일에 휘말린 것 같은데 주자서는 아직도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으니 답답했다. 몸에 있는 영력 때문에 생긴 일이니 영력이 사라졌으면 더 이상 주자서의 효용(效用)이 없어진 셈이다. 어젯밤에 객실에서 나와 주자서의 머릿속을 맴돌던 생각이 다시 머릿속을 채웠다. 돌아갈 곳이 없다는 것은 참 외로운 일이다. 제대로 작별 인사를 하고 싶었는데 얼떨결에 휩쓸려서 혼자만 멀리 쓸려온 느낌이다. 태평호에서 기연(奇緣)으로 만난 이들을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주자서는 조금 아쉬웠다. 아니 정말 조금일까? 요대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주자서는 본인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놓지 못했다. 하지만 무당산의 서원이라는 이 곳에 다시 살아 숨 쉬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니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그러다 자신의 처지가 생각나 마음이 답답해지는 것이다. 주자서는 휘몰아치는 생각에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주자서의 얼굴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지주와 함께 주자서를 호송했던 시위, 시위대장 그리고 즉저 정도이다. 일단 서원의 사졸로 잘 섞여 있다가 서쪽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서쪽은 산세가 험해 사람이 많이 살지 않아 숨어 살기 좋았다. 아니 좋다고 한다. 주자서는 아직 서쪽에 가본 적이 없다. ‘한 갑자… 오래 살 팔자가 아닌 줄 알았더니….’ 그 한 갑자를 함께하자던 이가 있었는데. 주자서에게 기나긴 한 갑자를 짧다며 아쉬워한 이가 있었는데. 혼자 버티려고 하니 버겁다. 그렇다고 두 분의 모친께서 주신 목숨을 버릴 수는 없어서 버티는 것이다. 전장에서 버텼던 것처럼. 주자서는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겠다고 평상에 앉아 있었다.

해가 져서 사위가 다 어두워질 동안 평상에 앉아 있던 주자서는 침상에 누워있는 지주를 향해 포권하여 인사하고 별궁을 나왔다. 순찰을 도는 다른 시위, 사졸과 섞여서 서원 이곳저곳을 떠돌다 동문의 번까지 서게 됐다. 주자서와 함께 번을 서는 사졸이 동문에 기대서며 말했다.
“나라에서 운영하는 서원이라 벌이가 좋다더니 기이한 일이 일어나 어디 무서워서 버티겠는가?”
주자서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정말 기이합니다.”
사졸이 주자서를 힐끔 보며 말했다.
“이곳으로 온 지 얼마 안 된 모양이군? 자네도 팔려 왔나?”
주자서가 고개를 숙이고 대답하지 않자 사졸이 다시 일어나 자세를 바로 하고 말했다.
“사람이 없어졌는데 찾는 이가 없으니 더 기이하지.”
주자서는 자신의 처지가 사졸이 말하는 것과 같아서 조금 우울해졌다.


주작과 적룡이 규산으로 향하고 패하와 함께 요대로 향하던 주요는 구름 속을 날고 있는 황룡과 마주쳤다. 고상이 주요를 발견하고 그의 품에 안겨 들며 말했다.
“주요!”
둘은 한참 안고 있다가 주요가 고상을 떼어내고 얼굴을 쓸며 말했다.
“아상. 어떻게 된 일이야?”
고상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주요. 나 황룡이 됐어. 그래서 화사인데도 빨갛지가 않았나 봐.”
주요가 고개를 돌려 패하를 쏘아보고 말했다.
“황룡?”
고상이 주요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며 말했다.
“응. 이제 주요가 하늘로 가면 따라갈 수 있어. 그렇지?”
주요가 다시 고개를 돌려 고상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이제 내가 아상을 따라가야 하겠는데?”
고상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 뭐 어떻게든 같이 있으면 되는 거지.”
주요가 고상을 품에서 놓고 패하를 보고 말했다.
“원군께서 알고 계시는 일이오?”
패하는 조금 놀란 얼굴을 하더니 말했다.
“저는 현악에서 일어나는 일 말고는 들은 것이 없습니다.”
주요는 고상을 보고 한숨 쉬며 말했다.
“이 어린 화사를 황룡자리에 앉혀 놓으면 그 뒷감당을 누가 합니까?”
패하가 다시 옥산으로 향하며 말했다.
“수원께서 바빠지시겠군요.”
주요도 고상을 데리고 다시 옥산으로 향했다.

날이 다 저물어 옥산에 도착했다. 청조의 안내로 다시 요대 안으로 들어온 주요와 고상은 금모원군을 배알(拜謁)했다. 요대에는 청룡과 백룡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청룡과 백룡이 고상에게 다가가 머리를 조아리며 인사했다.
“황룡을 뵙습니다.”
고상은 당황하여 소매를 들어 인사했다.
“어… 어….”
주요가 고상의 옆에 서서 소매를 들어 말했다.
“구망대선과 오윤왕(敖潤王)을 뵙습니다.”
고상이 주요를 힐끔 보고 따라서 고개를 숙였다. 청룡이 몸을 바로 세우고 품속에서 황룡의 인장을 꺼내 주요에게 건네고 말했다.
“삼하궁의 주인이 되셨으니 저희와 함께 가시면 됩니다.”
주요가 인장을 받아 한참 보고 있다가 그것을 고상에게 주며 말했다.
“아상. 아… 하천선(夏天仙).”
고상이 주요의 손에 들린 인장을 받아 살펴보며 말했다.
“천선은 무슨. 그냥 아상이라고 해.”
백룡이 고상을 보고 살포시 웃었다. 주요가 청룡과 백룡의 눈치를 보며 고상에게 다가가 귓가에 속삭였다.
“천존의 명으로 등선하는 이는 많지 않아.”
고상은 인장을 다시 주요에게 건네고 말했다.
“그래? 우리 태평호로 안가?”
청룡이 웃으며 말했다.
“태평호에는 주인이 생겼으니 저희와 삼하궁으로 가시지요.”
고상이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태평호의 주인은 주요인데….”
주요가 고상의 소매를 잡고 청룡에게 말했다.
“구망께서 먼저 가시지요.”
청룡이 고개를 돌려 원군에게 인사하고 중궁을 나갔다. 주요와 고상도 원군께 인사하고 청룡과 백룡을 따라 중궁을 나왔다.


깊은 물속으로 빠져나온 온객행은 뱀의 모습으로 변하여 수면 위로 올라갔다. 그가 도착한 곳은 이상하게도 요대가 아니라 태평호였다. 방금 온객행이 수면 위로 나오면서 만들어낸 물결이 태평호에 파동을 일으켰다. 하늘에 떠있는 보름달을 보고 온객행은 ‘벌써 미월이구나’ 했다. 달빛을 받은 온객행의 비늘은 그 전보다 더 푸르게 빛났다. 온객행은 그제야 자신의 모습이 더 이상 뱀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온객행은 물에서 나와 모습을 바꾸어 부유각으로 향했다. 부유각은 소령 선창에 매여 온객행이 떠나기 전과 같은 모습이다. 온객행은 부유각 내부를 살펴보고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여 백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백택에는 천교와 보살이 화로에 더덕을 굽고 있었다. 천교가 말했다.
“다들 어디 간 걸까?”
보살이 더덕을 뒤집으며 말했다.
“이렇게 실한 더덕은 진짜 오랜만이야.”
천교가 보살 옆에 쪼그려 앉으며 말했다.
“아상도 더덕 좋아하는데….”
온객행이 재실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아상은 귀한 몸이 되셔서 앞으로 보기 힘들거요.”
천교와 보살이 일어나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파사공자? 어찌 뭍에 나와 계십니까?”
온객행이 물었다.
“주요는 어디 있습니까?”
보살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주인께서 저희에게 어디 가신다고 말씀하고 가십니까?”
온객행이 다시 뒤돌아 나가려고 하자 천교가 온객행을 붙잡았다.
“파사공자! 더덕 드실래요?”
온객행이 뒤돌아 천교와 보살을 보고 말했다.
“이제 내가 태평호의 주인이오.”
그리고 모습을 용으로 바꿔 하늘로 날아올랐다. 천교와 보살이 문간으로 나와 날아가는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태평호의 주인이 바뀌었나?”
보살이 천교 옆에 서있다가 다시 더덕을 올려 놓은 화로로 가서 말했다.
“앗! 내 더덕! 좀… 탔어!”

온객행은 옥산으로 가려다 마지막에 고상이 주자서를 놓고 온 곳이 현악 금정이라는 것이 떠올라 현악으로 향했다. 태평호에서 현악까지는 거리가 멀지 않았기 때문에 해가 떠오를 즈음에 도착한 온객행은 현무를 모시는 천주서원으로 향했다. 산문에 도착한 온객행은 모습을 사람으로 바꾸어 사문을 지키고 있는 시위에게 물었다.
“지주는 서원에 있는가?”
온객행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포권하며 말했다.
“지주대인은 왜 찾으시오?”
온객행이 조금은 초조한 얼굴로 말했다.
“내가 부탁할 것이 있어 찾아왔소. 흑망이 왔다고 전해주겠소?”
시위는 온객행의 얼굴을 빤히 보고 움직일 낌새가 보이지 않자 온객행이 품속에서 염낭을 열어 은정을 쥐여주고 다시 말했다.
“지주대인께 흑망이 왔다고 전해주시오.”
그제야 시위는 은정을 손에 놓고 굴려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서원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당황한 얼굴의 지주가 나와 온객행을 반겼다.
“흑망! 진정하고 내 말을 들어보게.”
온객행이 눈썹을 찌푸리며 지주를 보자 지주가 온객행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서원 안으로 안내하며 말했다.
“내가 좀 더 신경을 썼어야 하는데 그새 도망갈 줄 어찌 알았겠는가?”
온객행이 지주의 팔을 뿌리치며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대체 아상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지주가 표정을 구기며 물었다.
“대체 그 화사가 뭐라고 다들 그러는 것인가?”
온객행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
“그 화사가 황룡이 되었으니 큰일 났군 협각(鋏角)”
지주가 당황하며 온객행의 입을 막고 소리쳤다.
“으악! 흑망! 제발. 언제 적 이름인가 조용히 좀 하게.”
그러더니 온객행을 놓아주고 다시 물었다.
“뭐라고? 황룡이 되었다고?”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유서는 어디 있나?”
지주가 온객행을 별궁으로 안내하며 말했다.
“화사가 황룡이 되었다고? 이거 큰일이군.”
온객행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우리 유서는 어디 있나? 발의 후손은 어디 있어?”
지주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흑망. 일단 차를 한잔하면서 내 얘기를 들어보면….”
그들이 별궁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 동문이 시끄러웠다.


즉저는 무당산 근처를 모두 수색했지만 발의 후손을 찾지 못했다. 초조해진 즉저는 일단 다시 서원으로 돌아가 현무께 상황을 보고한 뒤에 다시 수색을 하려고 했다. 동문으로 들어오던 즉저의 눈에 주자서가 동문 앞에서 번을 서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밤새 있었는지 조금 지친 기색을 한 주자서는 눈을 감고 있었는데 자는 것 같지는 않았다. 즉저가 코웃음을 치며 주자서에게 다가가 말했다.
“과연 등잔 밑이 가장 어둡군.”
주자서는 감고 있던 눈을 뜨고 태평호에서 온객행에게 두루마리를 건넸던 남자를 보고 놀라 바닥에 주저앉았다. 즉저는 주저앉은 주자서를 내려다보고 있다가 손을 들어 시위에게 그를 붙잡게 했다. 주자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붙잡으려는 시위를 공격했다. 주자서는 꽤 오랫동안 전장에서 굴렀기 때문에 시위 서넛을 상대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온종일 굶었던 터라 점점 몸에서 힘이 빠지는 것은 어찌 할 수가 없었다.

한창 대치하는 주자서와 시위를 보던 즉저가 혀를 차더니 시위를 물리고 말했다.
“너도 사람치고는 꽤 쓸만한가 보구나.”
주자서가 손을 모아 공수하고 말했다.
“오공공. 저에게 더 이상 발의 힘이 없으니 보내주십시오.”
즉저가 표정을 구기며 주자서를 보자 주자서는 무릎을 꿇고 말했다.
“보내주시면 다시 돌아오지 않겠습니다.”
즉저가 주자서에게 다가가 말했다.
“너를 보내주고 말고는 내가 정할 일이 아니다.”
즉저가 주자서의 앞섶을 잡고 그를 일으켜 세웠다. 시위가 다가와 주자서의 손에서 칼을 빼앗고 손을 등 뒤로 묶었다. 주자서가 즉저를 보고 몸부림치며 말했다.
“오공공!”
별궁에서 나온 지주가 즉저에게 다가가 물었다.
“천룡? 무슨 일이시오?”
즉저가 손이 묶인 주자서를 발치에 무릎 꿇게 하고 뒤돌아 지주를 보며 말했다.
“드디어 찾았어.”

지주 옆에 서 있던 온객행은 바닥에 무릎 꿇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낯이 익었다. 즉저는 지주 옆에 서 있는 온객행을 보고 눈에 띄게 당황하더니 말했다.
“그러니까… 흑망. 그러니까… 현무께서….”
무릎을 꿇고 숨을 몰아쉬고 있는 주자서에게 온객행이 다가가며 말했다.
“유서?”
주자서가 고개를 들어 온객행을 보았다. 온객행은 달려가 주자서를 끌어안고 말했다.
“유서. 유서….”
주자서는 다시 온객행을 본 것이 너무 반가워서 눈물이 조금 났다. 주자서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온객행을 불렀다.
“흑랑.”
온객행이 주자서를 놓아주고 얼굴을 보고 말했다.
“유서. 밥은 잘 먹었어? 잠은 잘 잤어? 왜… 왜 여기 있어?”
온객행이 묶여 있는 주자서의 손을 풀어주고 그의 어깨에 팔을 둘러 일으키며 말했다.
“유서. 배고프지? 어서 가서 밥을 먹자.”
주자서가 즉저의 눈치를 보며 온객행의 소매를 붙잡자 온객행이 즉저를 보았다.

즉저는 온객행을 보고 표정을 구기고 있다가 말했다.
“현무께서 그 사람에게 볼일이 있네.”
지주가 즉저에게 다가가 말했다.
“천룡. 일단 찾았다는 보고부터 하지. 흑망은 내가 별궁에서 대접하겠네.”
즉저가 지주를 보고 말했다.
“잘 할 수 있겠나? 흑망은….”
지주가 즉저를 신당 쪽으로 밀며 말했다.
“아무렴! 나도 일단은 가좌가 아닌가.”
즉저가 시위대장을 불러 뭔가를 지시하고 신당으로 향했다. 지주가 즉저를 노려보고 있는 흑망의 소매를 별궁으로 잡아 끌며 말했다.
“흑망. 일단 내 얘기를 들어보게.”
주자서도 멀어지는 즉저를 보고 있다가 온객행을 마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얼굴을 한참 보고 있다가 주자서의 손을 잡고 별궁으로 향했다. 지주가 주자서를 힐끔 보고 입을 벙긋거리며 말했다. ‘도와주게.’ 그제야 주자서는 자기 몸에 영력이 사라진 것이 떠올라서 온객행을 조금 밀어냈다. 온객행은 주자서가 미는 대로 밀리다가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유서. 유서는 정말 뭘 입어도 아름답군.”
주자서는 온객행의 흰소리에 아연하여 표정을 구겼다. 지주가 눈치껏 별궁 외실의 장지문을 열고 들어가며 말했다.
“오랜만에 아침 식사를 해볼까?”

蛇苺 第26

混水摸魚 | 26. 물을 휘저어 물고기를 잡는다.

적송자가 현악에 도착했을 때 패하가 그를 구름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패하를 발견한 적송자가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강녕한가?”
패하는 적송자를 향해 소매를 들어 올리고 인사했다.
“영귀, 우사를 뵙습니다.”
적송자가 패하가 탄 구름 위에 올라타며 말했다.
“뭘 보고 있나?”
패하가 하늘의 구름을 보고 말했다.
“누군가 천존의 부름을 받고 승천한 듯합니다.”
적송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단 삼원에 들어서면 나오고 싶어 하는 치가 없으니 땅이 한가해졌군.”
패하가 적송자를 보고 말했다.
“우사께서 현무를 맡아 주셨으면….”
적송자가 손을 들어 패하를 멈추고 말했다.
“어허! 그런 재수 없는 소리를.”

패하가 작게 웃으며 구름 아래 서원을 보고 말했다.
“제가 온 것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적송자도 아래를 내려 보며 말했다.
“현명은 정말 좀 모자란 것 같긴 해.”
패하가 소매를 들어 고개를 조아리고 말했다.
“제가 무능하여 죄를 지었습니다.”
적송자가 손을 내젓고 말했다.
“아니네, 아니야. 현무 자리를 하겠다는 포부가 있는데 뭐가 더 필요한가? 앞으로 잘 가르치면 되네. 시간은 많으니.”
패하가 적송자 앞에 무릎 꿇고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패하. 스승님께 인사 올립니다.”
그리고 적송자를 향해 세 번 절했다. 패하 옆에 서 있던 가신 역시 적송자를 향해 조아렸다. 적송자가 뒷짐을 지고 서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나는 아주 엄한 스승인데 말이야….”
패하가 고개를 들어 적송자를 보고 말했다.
“제자, 스승님의 가르침을 따르겠습니다.”
적송자가 ‘허허허’ 웃으며 구름 아래로 뛰어내렸다.

적송자는 서원의 신당으로 들어가 소리쳤다.
“동왕공!”
신위에 걸려있는 현무가 그려진 편액에서 검은 안개가 나오더니 곧 현무의 궁궐인 주극성(周極城)으로 향하는 문이 나타났다. 적송자가 문 앞에 서서 동왕공을 부르자 곧 동왕공이 나와 적송자에게 인사했다.
“적송자! 제가 발의 아이를 잡아 두었으니 가서 보시지요.”
뒤에서 현무와 황룡이 나와 소매를 들어 인사했다. 적송자가 표정을 구기며 황룡을 보고 말했다.
“어찌 저 치가 여기 있소?”
적송자의 물음에 현무가 공손히 답했다.
“황룡께서도 적송자와 마찬가지로 발에게 원한이 있지요.”
적송자가 황룡을 보더니 말했다.
“어찌 황룡이라 하는가? 저게 어디를 봐서 황룡이란 말이야? 파사만도 못하군.”
적송자의 말에 황룡이 고개를 들어 적송자를 노려보았다. 현무가 신당을 나가는 장지문을 열고 말했다.
“적송자 일단 가서 발의 아이부터 보시지요.”
적송자가 ‘흥’하고 콧방귀를 끼자 동왕공이 그의 소매를 잡고 신당으로 향했다. 주극성에서 지주와 즉저가 나와 그들의 뒤를 따랐고 황룡은 마지못해 발걸음을 옮겼다.

주자서를 가둬 둔 건물 주변에 있는 시위들은 누군가 치웠는지 건물 근처가 한산했다. 현무가 다가가 건물에 쳐 놓은 진을 걷고 안으로 들어갔다. 적송자도 현무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현무는 건물 내부에서 느껴지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당황했다. 설마 발의 아이가 죽어버린 것인가 싶어 객실을 뒤졌지만 아무도 없었다. 현무가 짜증을 내며 지주와 즉저를 불렀다. 지주가 다가와 말했다.
“대선, 화사가 발의 영력으로 승천하였으니 이제 그는 더 이상 쓸모가 없지 않습니까?”
현무가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발에게 원한이 남은 이들에게 화풀이 대상이 필요하지 않은가? 어서 가서 찾아오게!”
지주가 고개를 조아리고 방을 나갔다. 즉저가 현무에게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 치는 태평호에 봉인된 흑망의 희첩입니다. 살려 두시면 분명히 쓸모가 있을 것입니다.”
현무가 혀를 차며 말했다.
“쯧! 내가 고작 파사 따위의 일에 신경을 쓰란 말이냐!”
즉저가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대선, 그 파사는 수원대선께서 보살피고 있는 이가 아닙니까.”
현무가 즉저를 보고 눈을 가늘게 뜨더니 소매를 들어 그를 물리고 말했다.
“그대가 알아서 하게.”
즉저가 고개를 조아리고 객실을 나갔다.

적송자는 실내를 둘러보다 평상에 가서 앉고 말했다.
“그래서 발은 어디 있나?”
현무가 다가가 소매를 모아 공수하고 말했다.
“그것이….”
산천대제가 적송자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 말했다.
“봉인이 깨지면서 어쩌면 영혼이 타버렸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적송자가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물었다.
“봉인이 깨졌으면 그 힘은 어디 갔나?”
동왕공이 고개를 끄덕이며 현무를 보았다. 뒤따라 들어온 황룡이 장지문에 기대서 말했다.
“승천한 용이 취했겠지요.”
적송자가 눈썹을 찌푸리고 말했다.
“발이 허락하지 않으면 힘이 깃들지 않았을 텐데?”
동왕공이 적송자를 보고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 입니까? 봉인을 깨면 그 힘이 깃드는 것이 아닙니까?”
적송자가 ‘허허허’ 웃으며 말했다.
“그럼 모두가 서로를 죽여 힘을 취하려고 들지 않겠는가?”
동왕공이 표정을 구기고 일어나 현무에게 말했다.
“감히 나를….”
현무가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대제. 아닙니다. 황룡이 분명히….”
그리고 뒤로 돌아 황룡을 보았다. 황룡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그 세월 사시면서 수련도 안 하시고 뭘 한 것이오? 동왕공?”
산천대제가 자리에서 일어나 황룡에게 손가락질하고 말했다.
“감히! 하늘에서 쫓겨난 주제에 나를 능멸하느냐!”
황룡이 몸을 바로 세우고 산천대제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제가 동왕공을 어찌 못할 것 같아 그러십니까?”
산천대제가 주춤하며 현무를 보았다.

현무는 조금 지쳤다는 듯이 의자에 가서 앉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적송자가 ‘허허허’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어찌 구렁이의 말을 들으셨소?”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황룡을 보았다. 황룡이 적송자에게 다가가 말했다.
“우사께서 너무 오래 사셨지요.”
적송자가 웃으며 말했다.
“과연 수원이 한 말이 맞았군.”
그리고 황룡에게 다가가 말했다.
“너였군. 뇌공이 한 말뜻을 이제야 알겠어.”
적송자의 몸 주변으로 구름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하자 현무는 한숨을 쉬고 산천대제를 모시고 객실을 나갔다. 황룡이 적송자를 보고 말했다.
“우사께서 저를 예전의 황룡이라고 생각하신 다면 조금 서운합니다.”
적송자가 말했다.
“자네의 본모습이 어떻게 변했는지 오랜만에 구경해 봐야겠어”
황룡이 몸 주변으로 검은 기운을 모으며 말했다.
“저도 땅에서 많은 것을 배웠지요.”

현무가 객실에서 나와 산천대제에게 말했다.
“대제께서는 일단 동해로 돌아가 계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산천대제가 객실 안을 보고 말했다.
“그럼 발의 영력은 어디 있나? 내 영력은 어디에 있느냔 말이야?”
현무가 심각한 표정을 하고 말했다.
“누군가 취한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 소란을 천존께서 아셨으니 당분간은 조용히 있는 것이 좋겠습니다.”
산천대제가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
“내가 황룡과 내통한 것이 알려지면!”
현무가 산천대제를 달래며 말했다.
“대제께서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사방신의 수장이 되면 황룡의 일은 묻으면 될 일입니다.”
산천대제가 어깨너머로 객실을 흘겨보며 말했다.
“감히 지선(地仙)도 못될 구렁이 주제에.”
현무가 지주를 찾으며 산천대제의 소매를 잡았다.
“제가 수장이 되면 감히 구렁이가 저에게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산천대제가 흐뭇하게 웃으며 현무를 보았다.
“그래. 내가 믿을 수 있는 것은 현무뿐이지.”


패하는 저 멀리서 날아오는 주요를 발견하고 그를 멈추며 말했다.
“수원! 여기는 어쩐 일이오?”
주요가 패하를 붙잡고 말했다.
“우리 아상이… 아상의 진이….”
패하가 주요를 구름 위에 자리로 권하고 말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수원?”
주요가 구름 아래 서원이 시끄러운 것을 보고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패하? 무슨 일입니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예요? 저기에 아상이 있어요!”
패하가 주요를 달래며 물었다.
“아상?”
주요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아 고상을 찾았다.
“우리 아이. 아상 아상….”
주요는 주자서에게 줬던 비녀가 부러진 곳을 시작해서 서원의 기척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 패하를 보고 물었다.
“발의 영력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패하가 하늘을 보고 말했다.
“누군가 발의 영력을 얻어 승천한 듯합니다.”
주요가 고개를 돌려 패하를 보고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누군가 영력을 취했다구요?”
패하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누군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주요가 서원으로 가려고 하자 패하가 주요를 막으며 말했다.
“수원. 저곳에 후토가 있습니다.”
주요는 금방 울상이 되어 패하에게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저는 내려 놓기 위해 왔으니까요.”
패하가 고개를 끄덕이고 주요를 놓아주었다. 주요는 작게 한숨을 쉬고 서원으로 향했다.

지주가 날아와 패하 앞에 무릎 꿇고 조아리며 말했다.
“영귀 어르신.”
패하가 지주를 보고 말했다.
“발의 아이는 어찌 되었느냐?”
지주가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진을 쳐서 가둬 두었는데 도망간 듯합니다.”
패하가 웃으며 말했다.
“그는 일개 사람일 뿐인데 재주도 좋구나.”
지주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지금 사람을 풀어 찾고 있습니다.”
패하가 서원을 내려보며 말했다.
“제자의 죄는 스승의 죄이니….”
패하는 현무가 산천대제를 배웅하는 것을 보고 있다가 말했다.
“지주. 가서 동왕공을 동해까지 배웅하도록 해라.”
지주가 고개를 조아리고 산천대제에게 향했다. 지주가 산천대제를 데리고 동해로 향한 것을 본 패하는 현무에게 향했다. 현무가 곧 패하의 기운을 읽고 고개를 들어 패하를 보고 표정을 구겼다. 패하가 웃으며 말했다.
“너는 배움이 많이 부족하구나.”
현무가 소매를 들어 패하에게 인사하며 말했다.
“제자 현명. 스승님을 뵙습니다.”
패하가 현무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짚고 혀를 차며 말했다.
“현명… 현명.”


주자서는 서원 주변에 쓰러져 있던 사람들과 함께 쓰러져 있다가 의원에게 옮겨졌다. 그리고는 서원에서 고용한 사졸처럼 행동했다. 다행히 최근에 새로 고용한 사졸이 많았는지 머리에 관을 올린 서원의 시위 중에 그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시위 대장이 방 안으로 들어와 주자서가 옷을 바꿔 입힌 사졸을 데리고 나갔다. 주자서는 눈치를 보고 있다가 슬그머니 일어나 방을 나왔다. 주변에서 순찰을 도는 다른 이들을 따라 순찰을 돌다가 그들이 쉬러 가는 것을 따라가 주방 근처에 있는 별실에 닿았다. 이제 막 서원 산문에서 번을 서고 돌아온 사람이 말했다.
“용이 승천하는 것을 그대들은 보았는가?”
그 사람의 말에 주변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모두 술렁이며 한마디씩 거들었다. 주자서는 물을 얻어 마시고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옆에 있는 사람이 관을 한 것을 보고 물었다.
“지주대인께서는 어디 계시오?”
시위가 주자서를 힐끔 보고 물었다.
“그건 왜 물으시오?”
주자서가 웃으며 말했다.
“지주대인께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

시위가 콧방귀를 끼고 말했다.
“대인께서 우리말을 들어주겠는가? 무슨 일인데 그러나?”
주자서가 몸을 붙여 시위의 귓가에 속삭였다.
“대인께서 데려온 그 사내가 적황색 뱀을 데려왔다 들었습니다.”
시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지. 나도 그렇게 들었네. 그 사내는 행색이 좀 우습긴 했어.”
주자서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땅꾼이 말하기를 붉은 뱀일수록 정력에 좋다 하였습니다.”
시위가 눈을 가늘게 뜨고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자네도 참… 뱀이 맛이 있기는 하지.”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주자서의 소매를 잡고 방을 나왔다. 시위가 물었다.
“탕으로 할 건가 구울 건가?”
주자서는 고민하다 답했다.
“탕으로 하기엔 번잡스러우니 구울까 합니다.”
시위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쩝. 맛있겠군. 지주대인께서는 사당 동쪽에 있는 별궁에 계시네. 가서 여쭙고 허락을 받으면 꼭 내게 말하게.”
주자서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위는 품속에서 작은 나무패를 꺼내더니 말했다.
“누가 묻거든 이 패를 보여주고 서문(西門)에 가씨(賈氏)가 보냈다 하게.”
주자서는 공수를 하려다 얼른 포권하고 고개를 조아려 인사했다. 순찰을 돌면서 파악해 두었던 서원 내부를 잘 둘러보고 마주치는 시위나 사졸에게 포권하여 인사하고 사당으로 향했다. 주자서가 별궁에 도착했을 때 주자서가 갇혀 있던 객실 쪽이 시끄러워졌다. 별궁의 호위를 하고 있던 시위들도 서둘러 사당으로 향했다. 주자서는 마음이 급해 별궁 안으로 들어가 고상을 찾기 시작했다. 시위와 사졸이 모두 빠져나간 별궁은 횃불도 밝히지 않아 어두웠다. 주자서는 은은하게 빛이 새어 나오고 있는 외실로 들어갔다. 작은 목소리로 고상을 불렀지만 인기척이 전혀 없었다. 주자서는 외실 탁자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다 내원을 지나 내실로 향했다. 내실은 불도 밝히지 않아 더욱 어두웠다. 주자서는 주변을 살펴보며 작은 소리로 고상을 부르며 별궁의 내실을 살펴보았다.


온객행이 두루마리를 열어보려고 하자 금모원군이 자리에서 일어나 하품을 하더니 손짓했다. 그러자 중궁의 천장에서 구름이 쏟아져 내리더니 반도원으로 향하는 길이 나타났다. 금모원군이 말했다.
“가는 길에 읽게.”
온객행이 소매를 들어 금모원군에게 인사하고 구름 위로 올라갔다. 온객행이 반도원에 발을 들여놓자 구름길은 곧 사라지고 온객행은 복숭아나무 숲에 홀로 서 있었다. 온객행은 주변을 둘러보고 손에 들린 두루마리를 열어 읽어보았다. 태평호의 수선(水仙) 견연(見衍). 누가 지은 이름인지는 모르지만 넓게 보라는 잔소리처럼 들려서 온객행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체로 하늘에서 온객행을 부르는 이름은 모두 온객행의 성에 차지 않았다. 온객행이 두루마리를 들어 보고 있을 때 기척이 나더니 누군가 다가와 말했다.
“흑망.”
온객행이 고개를 들어 다가온 이를 보았다.
“검영!”
검영이 온객행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그대는 또 누구의 꾀에 빠져 여기 있나?”

온객행이 주변을 둘러보고 검영에게 물었다.
“사형은 여기서 뭐 하고 계시오?”
검영이 온객행에게 들고 있던 두루마리를 건네며 말했다.
“오광군께서 나를 난처하게 만드시는군.”
온객행이 두루마리를 풀어 읽어보고 말했다.
“그래도 그대는 천존께 봉호를 받았군. 경연(景淵)이라니 나쁘지 않네.”
검영이 물었다.
“그대는 금모원군께 받았나 보군.”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고 물었다.
“이제 뭘 하면 되는 건가?”
검영이 한숨을 쉬고 말했다.
“나도 잘 모르겠어. 그래서 나는 복숭아 숲을 구경 중이네.”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사형께서는 여전히 풍치(風致)가 있고 멋들어지시오.”
검영이 온객행의 손에 들려 있는 두루마리를 다시 들고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나도 반도원은 처음이라서 말이야.”
온객행이 검영을 따라 걸으며 물었다.
“하늘로 가는 길이라 하던데 찾으셨소?”
검영이 온객행을 보고 고개를 흔들었다. 둘은 느긋하게 복숭아나무 숲을 거닐다 쓰러져 있는 인영을 발견했다. 검영이 온객행의 소매를 잡고 인영을 가리키며 말했다.
“흑망. 저게 무엇인가?”
온객행이 제철인데도 복숭아가 하나도 열리지 않은 나무를 올려다보다 검영이 가리킨 곳을 보고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누군가 또 반도원에 계신 것 아니오?”

검영과 온객행이 쓰러져 있는 인영에 다가갔다. 노란색 장포를 입은 고상이 바닥에 누워 있었다. 온객행이 놀라 고상에게 다가가 말했다.
“아상!”
온객행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고상을 품에 안고 흔들며 말했다.
“아상! 아상 정신 차려. 아상!”
고상은 표정을 구기더니 고개를 흔들고 온객행의 품에 고개를 기댔다. 검영이 온객행에게 물었다.
“아는 이인가?”
온객행이 고개를 들어 검영을 보고 말했다.
“이 아이가 나를 감시한다던 화사요.”
검영이 놀라며 말했다.
“화사라고?”
온객행이 고상의 손목을 들어 맥을 짚고는 놀라서 고상을 보았다. 고상은 한참 잠꼬대를 하는 것처럼 입을 오물거리다 부스스 눈을 떴다. 고상이 온객행을 발견하고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파사?”
온객행이 고상의 뺨을 쓸며 물었다.
“아상. 왜 여기 있어? 유서는?”
고상이 눈을 깜빡이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말했다.
“유서! 우리 유서!”

온객행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상의 팔을 붙잡아 일으키고 말했다.
“아상! 유서를 어디에 두고 여기에 있는 거야?”
고상은 두리번거리더니 복숭아나무를 보고 말했다.
“반도를 찾으면 되겠군.”
검영이 고상에게 소매를 들어 인사하며 말했다.
“저는 강주의 파사 검영입니다.”
고상이 검영을 발견하고 소매를 들어 인사하며 말했다.
“나는 황룡 하네.”
온객행이 고상의 팔을 붙잡고 말했다.
“뭐?! 황룡?”
고상이 눈을 깜빡이더니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어… 응. 파사. 나 천존을 뵈었어. 나를 오룡의 수장으로 봉하시겠데.”
검영이 고상에게 물었다.
“반도를 찾으면 된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고상이 검영을 보고 말했다.
“천존께서 반도원의 반도를 허락하셨으니 각자의 복숭아를 찾으면 영지(領地)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온객행이 고상의 얼굴을 보고 표정을 구기자 고상이 손을 들어 이마를 만지며 말했다.
“내가 그런 걸 어떻게 아는 걸까?”
온객행이 한숨을 쉬고 말했다.
“주요가 아니라 네가 귀한 자리에 갔네.”
고상이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뭐?”
온객행이 고상을 보고 크게 한숨을 쉬었다.

검영은 고개를 들어 복숭아나무를 보더니 말했다.
“내 복숭아는 찾은 듯하네.”
그리고 숲으로 들어가더니 복숭아를 들고나왔다. 그러자 그의 뒤쪽으로 구름길이 나타났다. 검영이 복숭아를 들고 온객행과 고상에게 인사하며 말했다.
“나는 이만 가보겠네. 또 보세.”
검영이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상도 온객행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파사. 나도 찾은 것 같은데….”
온객행이 고상을 보고 물었다.
“유서는? 유서는 어쩌고 너 혼자 여기 있어?”
고상이 입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기린이 계시는데 설마 그럴 줄은 몰랐지. 얼른 돌아가서 유서를 구해줘야 해.”
온객행이 고상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물었다.
“유서를 구하다니? 유서는 요대의 동궁에 있는 것이 아니야?”
고상이 고개를 흔들고 말했다.
“즉저가 우릴 하수가 있는 어딘가로 데려갔어.”
온객행이 말했다.
“금정?”
고상이 씩씩거리며 말했다.
“돌아가면 망충 그 놈부터 혼내 줘야지.”

온객행이 고상에게 물었다.
“망충이라니? 지주가 왜?”
고상이 온객행의 손을 뿌리치고 말했다.
“암튼 어서 가서 유서를 구해줘야 해.”
그러더니 복숭아나무 위로 훌쩍 올라 복숭아를 땄다. 그러자 고상 뒤쪽으로도 구름길이 열렸다. 고상이 온객행에게 말했다.
“반도가 허락되었지만 꼭 내가 먹어야 하는 건 아니야. 나는 이거 주요 줄 거야.”
온객행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자 고상이 혀를 차며 말했다.
“너는 우리 유서 줘야지!”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어서 돌아가. 유서를 구해줘.”
고상이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얼른 찾아서 와. 주요랑 유서랑 기다리고 있을게.”
온객행이 고상을 보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상은 구름길로 걸어 들어가며 말했다.
“근데 오룡의 수장은 뭘 하는 거야?”
온객행은 고상의 혼잣말에 고개를 흔들고 웃다가 고개를 들어 복숭아나무를 보았다. 한참 거닐다 유독 빛이 나는 복숭아나무를 발견한 온객행은 그 곳에서 잘 익은 복숭아를 찾았다. 복숭아를 손에 쥐자 구름길이 나타났다. 온객행도 서둘러 구름길을 따라 나왔다.


주요는 적송자와 대치하고 있는 황룡을 보았다. 그가 기억하는 황룡과는 그 기운이 너무 달라서 주요는 황룡을 보고 흠칫 놀랐다. 적송자가 주요를 보고 말했다.
“원군께서 보냈는가?”
주요가 고개를 끄덕이고 적송자에게 소매를 들어 인사하고 말했다.
“우사. 황룡의 처분은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적송자가 황룡을 힐끔 보고 말했다.
“수원. 저 치는 황룡이 아니네. 사람을 먹는 구렁이지.”
주요가 적송자의 말에 눈썹을 늘어뜨리고 울상을 만들어 말했다.
“천존께서 정하신 일이 있습니다.”
적송자가 고개를 끄덕이고 황룡을 보고 말했다.
“네놈이 무엇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너와 나의 은원은 오늘 여기서 끝이다. 너는 모두에게서 잊히는 것이 가장 잘 어울려.”
적송자의 말에 황룡이 소리쳤다.
“헛소리! 모두 나를 기억할 것이다. 사람들이 천하의 왕으로 모시는 것이 천존인 것 같으냐? 나는 그들에게 이미 신이다.”
적송자가 혀를 차고 말했다.
“왜들 그렇게 삼원으로 가면 속세의 일에 무관심해지는지 알 것도 같네.”
그리고는 방을 나갔다.

주요가 황룡을 마주 보고 말했다.
“후토대선.”
황룡이 주요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수원. 너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구나.”
주요가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후토. 대체 무슨 짓을 한 겁니까?”
황룡이 평상에 가서 앉으며 말했다.
“수원. 나는 아직도 그대와 함께 중원을 다스리던 때를 잊지 못해. 그때 우리는 정말 행복했는데 말이야.”
황룡이 미소 지으며 주요를 보았다. 주요가 황룡에게 말했다.
“그대의 가신들은 모두 어디 있소?”
황룡의 얼굴이 굳어졌다. 주요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미공(羋公)은? 미공은 어찌 되셨습니까?”
황룡이 다시 웃는 얼굴을 만들어 물었다.
“천존께서 정하신 일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나를 땅에 버려 두셨으면서 어찌 나를 다시 찾으신다는 말이야?”
황룡은 소매를 털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천존께서 나를 다시 찾으셔서 하늘에 간다면, 수원. 그대가 나의 곁에 있었으면 하는데.”
주요가 황룡을 보고 울먹이며 다시 물었다.
“미공은 어찌 되셨습니까?”
황룡이 눈썹을 찌푸리고 말했다.
“그는 사람이 아닌가. 환생했겠지. 지금 그것이 중요한가?”
주요가 황룡을 보고 말했다.
“미공께서는 정녕 환생하실 수 있습니까?”
황룡이 주요에게 다가가 그가 입은 여인의 옷을 보고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수원. 그대는 어찌 아직도 과거에 살고 있는가?”
주요가 황룡을 노려보며 말했다.
“어쩌면 원군께서 하신 부탁을 지킬 수 없을 것 같아.”
그리고는 황룡을 공격했다.

그들의 싸움은 그 기세가 형형하여 사람이고 신선이고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었다. 날이 밝아서야 황룡의 기운이 조금 수그러들자 주요가 황룡의 목덜미를 쥐었다. 황룡은 검은 기운을 꺼내 주요를 밀어내려고 했지만 주요는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점점 주요의 눈이 금색으로 물들어가는 것을 본 황룡이 컥컥대며 말했다.
“감히 무지기… 무지기 따위가!”
주요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주요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를 무지기라 부르는 것은 그대뿐이네. 후토.”
황룡의 사람 모습이 점점 녹아서 검고 비늘이 여기저기 떨어진 초라한 구렁이로 변했다. 주요가 황룡을 보고 말했다.
“사람을 먹었으니 죽지 못 하겠구나.”
패하가 주요에게 다가가 말했다.
“수원. 고정하세요. 황룡의 처분은 천존께서 하실 겁니다.”
적송자가 곁에 서서 말했다.
“축융과 전당군이 오고 있는 중이네.”


지주는 동왕공을 동해에 모셔다드린 뒤에 다시 현악으로 갔다가 주작과 적룡을 모시러 남쪽에 다녀오는 길이다. 밤새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날이 밝자마자 남쪽에 다녀온 지주는 별궁으로 돌아가며 말했다.
“아주 동네북이지.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영귀 어르신 옆에 붙어 있는 게 나을 뻔했어.”
지주는 외실을 넘어 내실로 들어가며 입고 있던 장포를 벗고 침상으로 향했다. 그러다 내실 탁자에 고개를 괴고 있는 사졸을 발견했다. 지주는 조금 기가 막혀서 그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어찌 내실에 있느냐? 사졸이 어떻게 들어왔지?”
사졸이 고개를 들어 지주를 보았다. 지주가 사졸을 보고 말했다.
“어? 발의 아이?”
주자서가 지주를 보고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 다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아상을, 화사를 어찌 하셨소!”
그리고 잘게 기침을 하며 허리춤에 있는 칼로 손을 가져갔다. 지주가 주자서를 보고 표정을 구기고 말했다.
“왜 여기 있소?”
서원의 시위가 기별하고 말했다.
“지주대인. 발의 아이가 사라졌습니다.”
지주가 주자서를 보고 눈을 깜빡이자 주자서는 밖을 한번 보더니 검집에서 칼을 빼 들었다. 지주가 피식 웃으며 몸에서 실을 풀어내기 시작하자 주자서는 칼을 자기 목에 가져다 대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죽으면 흑망과 주인께서 가만히 있지 않으실 거요.”
지주가 표정을 구기고 물었다.
“주인?”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태평호의 주인 무지기가 나의 주인이시오.”
지주가 한숨을 쉬고 하늘을 보더니 말했다.
“이젠 사람까지 나를 동네북 취급이야. 빌어먹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