蛇苺 第20

無中生有 | 20. 무에서 유가 생겨난다.

산천대제는 주작과 백호를 힐끔 보더니 말했다.
“흑망은 천존께서 사하신 일은 결정했는가?”
온객행이 소매를 들어 고개를 조아리고 말했다.
“스승님께 고견(高見)을 듣고 결정할까 합니다.”
온객행이 계속해서 종화산에 가려는 것을 고집하자 짜증이 났는지 산천대제가 온객행의 뒤에 서 있는 주자서의 소매를 잡아 끌며 말했다.
“그럼 종화산에 다녀오시게. 그동안 그대의 내자는 내가 데리고 있지.”
주자서는 소매를 빼려고 힘을 줬지만 보이는 것과 달리 산천대제의 힘이 좋아 오히려 주자서가 휘청거렸다. 주작은 산천대제가 하는 것을 보고 있다가 말했다.
“대제. 아무리 그래도 남의 내자만 데리고 있는 것은 좀….”
산천대제가 표정을 구기고 주작을 보며 말했다.
“내가 황룡의 상전인데 무엇이 이상하다는 말이냐?”
백호가 주자서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며 말했다.
“정말 발의 영력이 느껴지는군.”
그리고 손을 들어 주자서를 잡으려고 하자 산천대제가 백호의 손을 후려치고 말했다.
“어디 감히!”
백호가 산천대제를 보고 못마땅한 표정을 하고는 고개를 조아렸다.

주자서가 소매를 들어 말하려고 하는데 하늘에서 돌풍이 몰아쳤다. 당황한 산천대제가 주자서의 소매를 놓자 주자서는 재빨리 온객행이 있는 쪽으로 몸을 틀었다. 돌풍 사이에서 응룡이 나타나 땅에 발을 디뎠다.
“원군께서 산천대제를 배웅하라 명하셨으니, 제가 대제를 동해까지 모시겠습니다.”
백호가 응룡을 보고 코웃음 치며 말했다.
“주작과 백호인 내가 있는데 그것은 무슨 뜻이오?”
주작이 백호를 말리며 말했다.
“경진선께서 그렇게 해주시겠습니까?”
응룡이 산천대제에게 포권하고 말했다.
“동쪽에 사는 신선 중에 동왕공께서 제일 한가하시니까요.”
백호가 으르렁 대며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인가! 무엄하다!”

주작은 고개를 흔들고 응룡과 백호를 번갈아 보더니 붉은 날개를 펼쳐 하늘로 날아오르며 말했다.
“원군께서 경진선께 부탁하셨으니 그럼 저는 경진선만 믿고 이만 남쪽으로 가보겠습니다.”
응룡이 하늘로 날아오른 주작에게 포권하고 말했다.
“축융대선, 안시선께서 요대의 일을 마치면 찾아뵙겠다고 전하라 하셨습니다.”
주작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백호를 보고 말했다.
“욕수. 그대가 기형(麒兄)과 린자(麟姊)에게 입은 은혜를 생각하게. 기린 덕택에 도예께서 조용한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말이야.”
백호가 주작을 보고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걱정 마시오! 내가 언제까지 애들일 것 같소?”
주작이 백호를 보고 혀를 차며 말했다.
“현명 하나로 충분하니 제발 사고 치지 말게. 산천대제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주작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산천대제의 대답도 듣지 않고 남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산천대제가 날아가는 주작의 뒷모습을 못마땅하게 보며 다시 주자서를 찾았다.

주자서는 온객행의 소매를 붙들고 그의 뒤에 서 있었다. 무슨 얘기를 했는지 온객행의 얼굴에 미소가 걸려있다. 산천대제가 온객행에게 말했다.
“종화산에 굳이 내자까지 가야 하겠는가? 흑망이 올 때까지 내가 옥산에서 그대의 내자와 기다리고 있겠네. 이름이 뭐라고 했지?”
응룡이 온객행 앞을 가로 막고 말했다.
“산천대제. 하늘에 소문이 자자합니다. 산천대제께서 희롱한 사람과 요괴가 한둘입니까? 대제의 뒤치다꺼리를 원군께서만 하셨겠어요?”
백호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산천대제를 보았다. 산천대제는 여인이고 사내고 그저 마음에 들면 멋대로 취하고 버렸기 때문에 신선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지 못했다. 사방신이나 오룡보다도 낮은 영력에 자기 일은 보통 사방신이나 금모원군에게 미루고 미색이나 탐했기 때문이다. 주자서가 발의 후손인 것을 모른다면 겉으로 보기에는 또 산천대제가 온객행의 내자를 탐하는 모양새였기 때문에 백호도 응룡의 말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응룡이 산천대제에게 손바닥을 펼쳐 길을 안내하며 말했다.
“산천대제 이쯤하고 동해로 가시지요.”
산천대제가 백호를 보자 백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흑망이 북해 용왕이 되면 어차피 오룡의 신하가 될 테니 걱정 마십시오.”
산천대제가 ‘흥’하고 코웃음 치고 응룡이 안내하는 데로 발걸음을 돌렸다. 응룡이 고개를 돌려 온객행에게 말했다.
“흑망. 종화산으로 가서 괜히 촉룡을 귀찮게 하지 말고 요대로 돌아가게.”
온객행이 소매를 들어 응룡에게 공수하고 말했다.
“경진선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산천대제가 응룡과 함께 사라지자 백호가 온객행에게 말했다.
“그 치가 발의 후손이오?”
온객행이 백호에게 소매를 들어 인사하며 말했다.
“흑망 욕수대선을 뵙습니다.”
주자서도 소매를 들어 인사했다. 백호가 주자서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예를 거두게. 발의 능력이 느껴지는군.”
주자서가 고개를 들어 백호를 보았다. 백호는 주자서의 얼굴을 한참 보더니 말했다.
“여인 치고는 흠….”
주자서가 자세를 바로 하고 소매를 털자 백호보다 세 치는 키가 컸다. 백호가 주자서를 올려보며 말했다.
“크군.”

온객행이 주자서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말했다.
“욕수대선, 우리 유서는 사내에요.”
백호가 주자서에게 시선을 떼지 못하고 말했다.
“발의 후손인데…?”
그러더니 온객행을 보고 물었다.
“발의 영력은 어떠한가? 벌써 취했는가?”
온객행이 표정을 구기고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무엇을 취한다는 말입니까? 영력은 금모원군께서 봉인하셔서 쓸 수 없습니다.”
백호가 아깝다는 듯이 온객행에게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너무 오래 봉인되어 있었나 보군! 이렇게 영력이 느껴질 정도인데 어찌 취할 수 없다는 말인가?”
온객행이 주자서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고 말했다.
“그 영력 때문에 우리 유서가 아파요.”
주자서는 온객행의 말에 눈을 굴리다 고개를 흔들었다.

백호가 주자서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내가… 내가….”
온객행이 주자서를 좀 더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탁음대선께서 발의 힘은 이미 주인이 있다 하셨습니다.”
백호가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그게 나일지 누가 아는가?”
온객행이 코웃음 치고 말했다.
“욕수대선께서는 태초의 가뭄을 모르십니까?”
백호가 주자서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그것이야 태초의 일이니 지금과는 다르지 않은가?”
온객행이 백호의 앞을 막아섰다.
“욕수대선께서는 오늘 제가 등선하는 것을 꼭 보셔야 하겠습니까?”
백호가 옥산 주변에 흐르는 강을 힐끔 보고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흑망 그런 뜻이 아니네. 그냥… 어떠한가 궁금해서 그랬네. 오랜만이기도 하지 않은가? 오광군(敖廣君; 청룡)과 전당군(錢塘君; 적룡)일지도 모르겠군.”
백호가 한발짝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그렇게 날을 세울 것 없네. 정말 별다른 뜻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야.”
온객행이 주자서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자기 옆에 붙이며 말했다.
“우리 유서를 위해서라면 등선은 일도 아니지요.”
백호가 표정을 구기고 말했다.
“촉룡의 제자인데 아무렴.”

백호가 한숨을 쉬고 말했다.
“그럼 나도 이만 가보겠네. 천도연때 또 보겠군.”
온객행이 주자서를 놓아주고 공수하여 인사하고 말했다.
“현명대선께 소금 잘 먹었다고 전해주십시오.”
백호가 고개를 휙 돌려서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아니! 흑망에게도 줬으면서 왜 나한테는!”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저야 수원대선께서 선물 받으신 것을 좀 얻어먹은 수준이지요.”
백호가 온객행에게 물었다.
“수원대선께서는 강녕하신가?”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태평호에 갇혀 계시지요.”
백호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그렇지… 어차피 그럴 것이면 도철(饕餮)이라도 되면 얼마나 좋은가?”
온객행이 백호를 쏘아보며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이오?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백호가 손사래를 치고 말했다.
“내가 실수했군. 못 들은 것으로 하게.”
온객행이 헛웃음 치고 말했다.
“욕수대선께서는 입을 조심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태금의 말씀을 잘 들으세요.”
백호가 하늘을 향해 우렁차게 ‘어흥’하고 울부짖자 하늘에서 구름이 쏟아졌다. 백호가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나야 태금이 하라는 대로만 하지.”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소매를 들어 고개를 조아려 인사했다. 주자서도 온객행을 따라 인사했다. 백호가 구름을 타고 서쪽으로 향했다.


주자서는 허리를 세우고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말했다.
“조아리는 것도 일입니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손을 잡고 말했다.
“조아리기 싫은가? 나도 어서 등선할까?”
주자서가 온객행을 흘겨보며 말했다.
“지금도 과분한데 뭐가 되시려구요?”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몸을 붙이며 말했다.
“산천대제도 대제를 하고 있으니 나라고 못 되라는 법 있나?”
주자서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물었다.
“금모원군께 장가드시게요?”
온객행이 주자서의 말에 고개를 꺾어 ‘하하하’하고 크게 웃었다. 주자서는 온객행이 웃는 것을 보고 있다가 헛웃음을 치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요대로 돌아갑니까?”
주자서의 말에 온객행이 웃음을 멈추고 주자서의 얼굴을 빤히 보았다. 주자서가 온객행에게 대답을 종용하듯 잡힌 손을 흔들자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라는 말 좋다.”
주자서는 별 시답지 않은 소리를 한다고 생각하며 한숨을 쉬고 말했다.
“그래서 요대로 갑니까?”
온객행이 주자서의 팔에 매달리며 말했다.
“유서. 우리 어떡할까? 우리 어떡하지?”

주자서가 잡힌 손으로 온객행을 ‘툭툭’ 치며 말했다.
“금모원군의 요대는 함부로 갈 수 없다고 하니 원군께서 부르실 때까지 기다립니까?”
온객행이 주자서의 얼굴을 보다가 얼굴을 붙여오자 주자서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정말. 흑랑!”
온객행이 눈썹을 늘어뜨리고 입을 내밀며 말했다.
“유서. 나 아픈 것 같네.”
주자서가 온객행의 손을 뿌리치려고 하자 온객행이 다시 주자서의 소매를 잡아 그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에이 알겠어. 복숭아나무 몇 그루 뽑으면 될 일을.”
주자서가 온객행을 휙 돌아보며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애먼 복숭아나무는 왜 뽑으시오?”
온객행이 근처에 있는 복숭아나무를 살펴보며 말했다.
“말썽을 부리면 원군께서 벌하셔야 하니 나를 찾지 않겠소.”

주자서가 혀를 차며 말했다.
“어찌 그리 괴팍하시오?”
그리고 온객행을 화사 마을이 있는 중턱으로 이끌었다.
“말로 부탁할 수 있는 일은 말로 하시오.”
온객행이 주자서가 이끄는 대로 걸으며 말했다.
“그럼 내가 입 맞추고 싶으면 입 맞추고 싶다고 부탁하면 될 일이오?”
주자서가 인상을 쓰고 짜증 내며 말했다.
“정말, 그것은 그대만 좋은 일 아니오.”
온객행이 발걸음을 멈추고 주자서를 돌려 세웠다. 주자서가 온객행을 힐끔 보고 다시 몸을 돌려 가려고 하자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말했다.
“정말 나만 좋은 일이오?”
주자서가 온객행을 보고 한숨 쉬며 말했다.
“그럼 나도 좋을 일이오?”
온객행이 주자서의 허리를 안고 몸을 붙이며 말했다.
“그럼 유서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을 때까지 합시다.”
주자서는 고개를 돌려 다가오는 온객행을 피하며 말했다.
“나는 사내를 좋아하지 않소!”
온객행이 주자서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내가 여인이라고 생각하고 해보시오.”
주자서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어찌… 그건 그대에게 못 할 짓이지 않소.”

온객행은 터지는 웃음을 겨우 참아내고 주자서의 어깨에 고개를 기댔다.
“유서. 나는 정말 그대가 좋아요.”
주자서가 팔을 들어 온객행의 등을 쓸며 말했다.
“저도 싫어하지는 않습니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더 당겨 안고 말했다.
“좋아해 주세요.”
주자서가 말없이 온객행의 등을 쓸었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고 말했다.
“그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주겠소. 그러니 나를 좋아해 주시오.”
주자서가 온객행의 말에 작게 웃었다. 정말 절절한 사랑 고백이다. 주자서는 자기의 뭐가 좋아서 온객행이 저에게 이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만난 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서로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더 많은데. 참으로 용감하다. 게다가 주자서는 내심 자신의 원서(遠逝)가 멀지 않았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딱히 몸이 아프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종종 아득하게 멀어지는 정신은 이제 주자서가 의지로 붙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온객행에게 짧다는 한 갑자도 채우지 못할 것 같아 또 상처를 주지는 않을까 걱정이 됐다. 주자서에게 싫어하지 않는다는 말은 좋아한다는 말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온객행이 그것을 알리 없으니 서로 엇갈리고 마는 것이다.


하늘에서 앙소가 내려와 물었다.
“내가 방해한 것인가?”
주자서가 온객행을 놓고 소매를 들어 인사하며 말했다.
“현조 어르신. 혹시 요대에 갈 수 있는 방법을 아십니까?”
앙소가 온객행을 힐끔 보고 말했다.
“내가 청조께 가서 고하고 오겠네. 조금 기다려 주겠나?”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이고 머리를 조아려 인사했다. 온객행도 주자서를 따라 고개를 끄덕였다. 앙소가 주자서에게 말했다.
“어디 가지 말고 거기 있게. 금방 오겠네.”
주자서는 앙소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있다가 복숭아나무 아래에 가서 앉았다. 해가 져서 어스름한 숲은 조금 스산하여 주자서가 온객행의 소매를 잡고 그를 옆에 앉혔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붙어 앉으며 말했다.
“유서 배고프지 않나? 목마르지 않아?”
그리고 소매에서 대나무 수통을 꺼내 주자서에게 건넸다.

주자서는 수통의 물을 조금 마시고 고개를 흔들었다.
“괜찮습니다.”
온객행이 입을 내밀고 말했다.
“괜찮다는 말을 금지해야 하겠어.”
주자서가 수통을 다시 건네며 말했다.
“정말 괜찮아서 괜찮다 하는 것인데 금지라니요.”
온객행이 수통을 다시 소매 안에 넣고 말했다.
“괜찮아도 안 괜찮다고 해줬으면 좋겠네. 나에게 앙탈하고 기댔으면 좋겠어.”
주자서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앙탈이라니….”
온객행이 팔을 둘러 주자서를 안고 목덜미에 입술을 비비고 말했다.
“나에게만… 나에게만 그랬으면 좋겠어.”
주자서가 하늘을 보고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저까지 앙탈합니까? 흑랑께서 제 몫까지 하고 계시는데요.”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얼굴을 떼고 ‘아!’하더니 말했다.
“그럼 내 앙탈만 받아주시오. 다른 사람 앙탈은 쳐다보지도 마시오.”
주자서가 웃으며 말했다.
“저에게 앙탈한들 제가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온객행이 주자서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그냥 옆에 있어만 주면 됩니다. 다른 데 가지 말고 제 옆에 계세요.”
주자서의 턱을 잡아 자기 쪽으로 돌린 온객행이 주자서 입술에 입을 맞추고 말했다.
“받아주세요. 제 앙탈.”
주자서가 온객행의 얼굴을 한참 보더니 부스스 웃었다. 온객행이 다시 얼굴을 붙여 오자 주자서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밖에서 이러지 않기로 하셨잖아요.”
온객행이 주자서의 뺨에 입을 맞추고 말했다.
“여긴 아무도 없지 않소.”
주자서는 서늘한 온객행의 입술이 뺨과 목덜미를 희롱하는 것을 참아내고 있었다. 처음에는 조금 부끄러웠으나 음란한 일도 많이 하다 보면 익숙해지는 것인지 이제는 목덜미나 입술쯤, 닳는 것도 아닌데 맞붙이고 싶다고 하면 그냥 하게 두는 경우에 이르렀다. 남들 앞에서 그러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주자서는 하늘을 보며 ‘앙소가 언제쯤 오려나’ 같은 생각을 하며 온객행의 앙탈을 받아주었다.


명백히 희롱하는 꼴인 두 사람 앞으로 구름이 쏟아져 내리더니 청조가 나타났다. 주자서가 온객행을 밀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청조가 혀를 차며 말했다.
“정말이지. 요대에 볼일이 없어 간다고 한 이는 흑망 그대가 아닌가?”
온객행이 주자서 옆에 붙어 서며 볼멘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응룡께서 권하셨는데 거절합니까?”
청조가 온객행을 노려보며 손가락질했다. 청조의 뒤에 서 있던 청구와 양조가 앞으로 나와 온객행에게 말했다.
“원군께서 자네의 내자를 보살피라 명하셨으니 잘 부탁하네.”
주자서가 소매를 들어 인사했다.
“유서… 신수(神獸)를 뵙습니다.”
주자서의 호칭에 청조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신수… 사람들이 그렇게 부른다지?”

청구가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흑망. 왜 화사처럼 입혀 놓았는가? 너의 의취인가?”
온객행이 소매를 들어 청구와 양조에게 인사하고 말했다.
“그동안 평안하셨습니까?”
양조가 웃으며 말했다.
“덕분에.”
청구가 온객행에게 고갯짓하며 말했다.
“어서 오르시게. 요대로 가지. 수원대선이 왔어.”
온객행이 주자서의 허리를 안고 구름에 오르며 말했다.
“주요가?”
양조가 온객행을 쏘아보며 말했다.
“어디 감히 대선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느냐.”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다섯 갑자 동안 동고동락(同苦同樂)한 사이이니 이름 정도야….”
청조가 더는 못 봐주겠다는 듯 고개를 획 돌리고 먼저 앞서 걸었다. 양조가 다가와 주자서의 옷자락을 만지며 말했다.
“얘도 수원대선처럼 여인의 옷을 입는 것을 즐기는가?”
주자서가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아니오!”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 유서는 뭘 입어도 아름답지요.”
청구가 ‘허’하고 헛웃음 짓고 말했다.
“유서. 흑망을 잘 부탁하네. 제발 말썽부리지 못하게 꽉 잡고 계시게.”
주자서가 청구를 보고 말했다.
“제가요?”
양조가 청구에게 말했다.
“흑망이 잡는다고 잡혀 주겠나?”
온객행이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유서가 잡으면 잡혀주겠네.”
온객행의 말에 청구와 양조가 고개를 꺾어 ‘하하하’하고 크게 웃었다.

요대에 도착해서 온객행은 주자서를 놓아주고 중궁으로 향했다. 일단 요대에 들어왔으니 금모원군께 인사를 드리는 것이 순서에 맞았기 때문이다. 온객행이 조금 지친 듯한 주자서의 허리를 안고 청구에게 물었다.
“청구. 중궁으로 갑니까?”
청구가 고개를 돌려 어깨너머로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아니네. 원군께서는 좀 바빠. 천도연의 일도 있고 그대 내자의 일도 있고.”
양조가 주자서 곁으로 와서 그의 소매를 잡고 물었다.
“유서 왜 그러는가?”
온객행이 양조의 손을 치우고 말했다.
“밥도 안 먹이고 이렇게 오래 걸었으니 힘들어서 그렇지요.”
양조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배가 고파서 그런가?”
주자서가 고개를 흔들고 온객행을 밀어내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괘념치 마소서.”
온객행이 입을 앞으로 내밀고 부루퉁하게 말했다.
“나는 유서가 그 말하는 것이 제일 싫어.”
앞서 걷던 청구가 ‘하’하고 헛웃음 치고 말했다.
“유난은.”
양조가 주자서를 빤히 보며 말했다.
“뭐 못 봐줄 정도는 아니야.”
온객행이 주자서를 다시 자기 품으로 끌어안고 말했다.
“그만 보시오! 닳겠소.”
주자서가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언제쯤 도착합니까?”
청구가 손가락으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문을 지나면 금방이네.”
남궁에 도착해서 온객행과 주자서는 주요와 다시 만났다.

복숭아빛깔 옷을 입고 얌전히 주요 옆에 앉아 눈치를 보던 고상은 남궁으로 들어오는 온객행을 보고 달려가 와락 끌어안고 말했다.
“파사!”
온객행이 당황하여 고상을 마주 안으며 말했다.
“아상! 아상도 같이 왔구나.”
주자서가 소매를 들어 고상에게 인사했다.
“아상.”
고상은 온객행 옆에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이 주자서라는 것을 알고 활짝 웃으며 주자서도 끌어안았다.
“우리 아기.”
주자서가 낮게 웃으며 말했다.
“아상. 저 아상의 누이를 만났어요.”
고상이 고개를 들어 주자서의 뺨에 손을 대고 말했다.
“우리 아가. 파사가 잘 챙겨줬어?”
주자서가 온객행을 힐끔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고상이 물었다.
“우리 언니? 소나를 만났어?”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이고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아상께서 주신 비녀가 마음에 드신다고 하셔서 드렸어요.”
고상이 눈썹을 찌푸리더니 금방 다시 웃으며 머리에 있는 나비 장식 하나를 떼서 주자서의 머리에 달아주며 말했다.
“이렇게 다시 만났으니까 됐어. 우리 유서.”
고상이 주자서가 입고 있는 옷을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나보다 더 화사 같네.”

고상을 지켜보고 있던 주요가 청구와 양조에게 인사하려고 하자 청구가 주요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어찌 대선께 인사를 받습니까? 예를 거두세요.”
주요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대선이 아니네.”
양조가 주요의 팔을 잡고 말했다.
“저희에게는 대선이시니 예를 거두세요.”
주요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그래. 이렇게 자주 보니 좋구나.”
양조가 웃으며 물었다.
“천룡은 어떻게 잘 떼고 오셨어요?”
주요가 표정을 구기며 고개를 흔들고 말했다.
“아주 탐욕스러운 아이야. 사자형제보다 더 해.”
청구가 웃으며 말했다.
“가시기 전에 또 들러 주세요.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말씀하시구요. 다 드리겠습니다.”
양조가 청구를 거들며 말했다.
“필요하신 것이 있으면 빼앗아서라도 드릴 테니 꼭 말씀하세요.”
주요가 웃으며 말했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네. 정말….”

청구가 물었다.
“원군은 만나 뵈셨어요?”
주요가 고상에게 고갯짓하고 말했다.
“우리 아이를 공공께서 부르셔서 나는 같이 왔어.”
청구와 양조가 주자서를 꼭 안고 있는 고상을 보고 말했다.
“저 화사 말씀이십니까?”
주요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네. 예쁘지?”
양조가 웃으며 말했다.
“많이 컸네요.”
주요가 청구의 소매를 잡고 물었다.
“공공께서는 어디에 머무시는가?”
청구가 고개를 들어 남궁을 지키는 군관 몇에게 눈짓하더니 말했다.
“남궁 내실에 머무세요. 원군께서 수원대선께서 오시면 동궁으로 모시라고 하셨습니다.”
주요가 손사래 치고 말했다.
“내가 어찌 동궁에? 안될 말이네. 별궁에 머물러야지.”
양조가 주요에게 바짝 다가가 귓가에 속삭였다.
“송구스럽습니다만 발의 아이를 부탁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요가 미간을 찌푸리고 청구와 양조를 보았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 주자서와 고상을 보았다. 비슷한 옷에 비슷한 머리 모양을 하고 있는 고상과 주자서는 얼핏 보면 정말 혈육 같아 보였다.

주요가 주자서에게 다가가 말했다.
“어찌 화사의 옷을 입었는가?”
주자서가 고상을 떼어놓고 소매를 들어 공수하여 인사하며 말했다.
“주인.”
온객행이 주자서의 등허리에 손을 얹고 말했다.
“주요. 나 유서에게 장가들었네. 그대가 중매한 것으로 했어.”
주요와 고상이 동시에 온객행을 보고 소리 질렀다.
“뭐?!”
“뭐라구!”
주요가 관자놀이를 짚으며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온객행. 뭐라고?”
온객행이 주자서의 손을 잡고 말했다.
“종화산에서 가약을 맺었소. 덕분에 참한 내자를 얻었으니 정말 천은(天恩)이 망극하오.”
주자서가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소첩은 정말 소박맞고 싶습니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보고 울상을 만들어 말했다.
“어찌 얻은 내자인데… 게다가 어찌 중매한 사람 앞에서 그런 모진 말이시오.”

주요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내가 언제 중매를 했다는 말인가?”
온객행이 주자서의 머리에 꽂혀 있는 비녀를 매만지며 말했다.
“주요가 아니었으면 나 같은 파사가 어디서 이런 내자를 얻었겠소.”
고상이 온객행을 밀며 말했다.
“이게 무슨 소리야? 우리 아가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온객행은 고상에게 웃으며 말했다.
“아상, 이제 내 처모(妻母)가 되시니 제가 예의를 갖춰야 하겠네요.”
그리고 고상에게 소매를 들어 절했다. 고상이 온객행의 팔을 잡고 말했다.
“안돼! 내가 못 봤잖아. 우리 아이가 혼인했는데 내가 못 보는 게 어디 있어? 다시 해! 내가 보는 데서 다시 해!”
주자서가 다급하게 아상의 소매를 붙들고 말했다.
“아상. 그게 아니에요. 희첩이라 언제 내쳐질지 모릅니다.”
고상이 주자서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말했다.
“어디 감히 우리 아이를 내친다는 말이야? 희첩이라니? 우리 아이는 정실이 아니면 못 줘.”
주자서가 표정을 구기며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을 하며 고상의 팔을 잡고 말했다.
“아상….”

蛇苺 第19

暗渡陳倉 | 19. 은밀히 진창을 건넌다.

온객행은 금모원군에게 종화산으로 돌아가겠다는 소리는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남궁에서 산천대제를 기다리고 있는 주작(朱雀)과 백호(白虎)를 만나러 갔다. 남궁의 외실에 앉아 있던 주작과 백호가 금모원군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원군.”
금모원군은 두 사람의 인사를 받지 않고 제일 상석으로 가서 쓰러지듯 누우며 말했다.
“축융(祝融), 욕수(蓐收), 우리가 이렇게 자주 보는 사이였던가요?”
붉게 타는 듯한 깃털 장식을 한 주작이 소매를 들어 올려 고개를 조아리고 말했다.
“원군. 북해 용왕의 일로 바빠서 동왕공께 소홀했습니다.”
하얀 호랑이의 가죽을 피풍의처럼 두른 백호가 옆에 무릎 꿇고 말했다.
“청룡이 중원의 일로 너무 바빠서 동왕공께 소홀 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산천대제가 백호와 주작을 보고 혀를 차며 말했다.
“그대들이 모시는 상전은 서왕모인가?”
그리고 걸어서 금모원군이 앉은 상석 옆에 앉았다. 백호와 주작은 표정을 구기고 산천대제를 힐끔 보더니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한숨을 쉬었다.

봉황이 들어와 주작과 백호를 일으키며 말했다.
“축융대선, 욕수대선 예를 거두세요. 원군께서 그대들을 탓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말에 금모원군이 옆에 있는 산천대제를 쏘아보며 ‘흥’하고 코웃음 쳤다. 주작과 백호가 금모원군의 눈치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응룡이 다가와 말했다.
“요즘 동쪽이 퍽 시끄럽습니다.”
응룡의 말에 백호가 응룡을 노려보며 말했다.
“구망대선(句芒大仙)께서는 중원을 준비하신다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쁜데 어찌 경진선께서는 한가해 보이십니다?”
주작이 백호를 나무라며 말했다.
“원군과 대제 앞에서 이게 무슨 무례인가? 욕수!”
백호가 다시 시선을 상석을 돌리고 고개를 조아렸다. 응룡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분수에 맞지 않은 일을 하고 계시니 스스로 우환을 만들고 계시는 것이 아닙니까? 구망대선께서는….”

황룡이 하늘에서 쫓겨난 이후에 사방신과 오룡의 수장이었던 현천상제의 부재를 대신해서 사방신과 오룡에 모두 속한 청룡 구망대선이 그들을 지휘하는 일을 맡았다. 청룡은 현무가 된 현명대선과 사이가 좋지 못했다. 원래 사방신과 오룡의 수장은 항상 현무가 맡아 왔고, 원래대로라면 현명대선이 수장을 맡는 것이 맞았으나 사방신과 오룡 중에서도 가장 어리고 하늘의 일에 관하여 잘 모르는 현명대선을 수장으로 둘 수는 없는 지라 청룡이 현명대선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임시로 맡았던 수장직이 굳어져 그렇게 되었다. 다른 사방신과 오룡은 각자 맡은 일이 바빠 수장 자리에 큰 관심이 없었고, 청룡 역시 사방신과 오룡의 일로 늘 바빴기 때문에 그저 이름뿐인 자리이기도 했다.

그 이름뿐인 자리를 현명대선은 가지고 싶어서 안달인 것이고, 그것을 얻어보고자 산천대제를 꼬드겨서 일을 키우는 것이다. 응룡은 너무 바쁜 청룡 대신해 팔자에도 없는 사방신 노릇까지 해야 하니 사방신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봉황이 응룡을 나무라려고 하는데 백호가 불쑥 끼어들어 말했다.
“흑망의 내자가 발의 후손이라는 것이 사실이오?”
봉황과 응룡 뒤에 얌전히 서 있던 온객행이 백호의 말에 표정을 구기며 생각했다. ‘태금께서 벌써 고(告)했군.’ 백호가 온객행에게 다가와 물었다.
“내자는 어디 있는가?”
온객행이 소매를 들어 백호에게 인사했다.
“흑망. 욕수대선을 뵙습니다.”
백호가 온객행의 소매를 잡아 일으키며 말했다.
“예를 거두게. 태금에게 들었어. 그 아이는 어디 있지?”

온객행이 난처해하며 대답을 망설이자 응룡이 다가와 온객행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말했다.
“발의 후손에게 왜 이렇게까지 관심을 두십니까? 산천대제께서 하신 것처럼 백호께서도 흑망의 내자를 범하시려고요?”
백호가 깜짝 놀라 산천대제를 보고 말했다.
“대제께서?”
산천대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응룡에게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내가 언제 발의 아이를 욕보였다는 말인가? 그저 그 아이가 양친의 허락도 없이 혼례를 올린 것이 잘못되었으니 바로잡으려고 그리 한 것이지!”

금모원군이 불편하다는 듯이 한숨을 쉬자 상석 옆에 있던 초록색 옷을 입은 시동이 다가와 금모원군의 시중을 들었다. 금모원군이 말했다.
“시끄럽다. 시끄러워. 이 이야기를 어찌 내 앞에서 하는가? 가서 촉룡께 하라니까?”
봉황이 산천대제에게 소매를 들어 공수하고 말했다.
“탁음대선께서 허락하신 혼인인데 감히 누가 시야비야(是也非也)할 수 있겠습니까?”
촉룡의 이름이 나오자 산천대제도 백호도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며 입을 꾹 다물었다. 온객행이 주변의 눈치를 보며 금모원군께 공수하고 말했다.
“원군께 더는 폐를 끼칠 수 없어 흑망은 스승님께 가려고 합니다.”

금모원군이 산천대제를 보고 눈썹을 들어 올리더니 물었다.
“동왕공. 어찌 하시겠소? 흑망과 종화산에 가시겠소?”
산천대제가 다시 금모원군 곁으로 가서 그녀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부인, 정말 다른 뜻이 있어서 그 아이를 데려가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초조한 듯 온객행에게 손가락질하더니 말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천도연인데 언제 갔다 언제 다시 오겠다는 말인가?”
금모원군이 소매를 털자 청구와 양조가 나타나 금모원군에게 다가갔다. 금모원군은 그들에게 뭐라고 말한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 상석 아래로 내려갔다.

산천대제가 금모원군을 따르자 금모원군이 말했다.
“동왕공. 동왕공. 나는 자리싸움에는 관심이 없어요. 원군 자리가 탐이 나시는 거면 가서 천존께 달라고 하세요. 어찌나 일이 많은지 당장이라도 때려 치고 싶은데….”
산천대제의 대제라는 칭호는 순전히 금모원군 덕분이었다. 그가 금모원군의 부군이 아니었다면 그는 대선은커녕 승천하지 못했을 것이다. 금모원군의 말을 들은 응룡과 봉황이 금모원군께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원군. 통촉(洞燭)하소서.”
금모원군이 봉황과 응룡의 어깨를 손으로 짚어 그들을 일으키고 말했다.
“그래. 그래. 나 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고생이지.”
금모원군이 어깨너머로 산천대제를 쏘아보며 말했다.
“그대들의 아이들이 그대를 위해 고생하는 것은 아십니까?”
그리고 주작과 백호를 마주하고 말했다.
“축융, 욕수, 어서 대제를 데리고 동해(東海)로 돌아가세요.”
주작과 백호가 금모원군에게 인사하고 산천대제를 부축했다.

산천대제가 표정을 구기며 주작과 백호를 보았다. 금모원군이 산천대제를 보고 말했다.
“우리는 천존께서 정한 대로 격년에 한 번만 만나는 것으로 되어 있으니 다음 격년에는 뵙지 않겠습니다. 천도연에는 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주작의 팔에 손을 올리고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
“축융. 사방신과 오룡은 천도연에서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말을 전해 참석하도록 하세요.”
주작과 백호가 고개를 끄덕이고 산천대제를 부축하며 남궁을 나갔다. 산천대제는 나가면서 서 있는 온객행을 노려보았는데 온객행은 소매를 들어 공수하며 고개를 조아렸다.

금모원군이 봉황과 응룡을 데리고 중궁으로 향하며 말했다.
“패하(覇下)는 아직 안 왔는가?”
봉황이 고개를 조아리고 말했다.
“백룡과 흑룡의 일 때문에 잠시 늦어지는 듯합니다.”
금모원군이 고개를 끄덕이며 온객행에게 고갯짓했다. 온객행은 봉황과 응룡의 뒤를 따랐다. 응룡이 말했다.
“희발(姬發)도 패하를 도우러 가셨으니 아마 늦어질 것 같습니다.”
금모원군이 고개를 돌려 응룡을 보고 말했다.
“그럼 읍강(邑姜)은?”
응룡이 봉황을 힐끔 보자 봉황이 대신 답했다.
“린자(麟姊)는 지금 오고 계시는 중입니다.”
금모원군이 잠깐 눈을 감고 숨을 고르더니 눈썹을 찌푸리고 말했다.
“그런데 발의 아이는 어디에 갔지?”
온객행이 고개를 들어 금모원군을 보고 물었다.
“원군. 무슨 말씀입니까? 유서는 지금 별궁에….”
금모원군이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요대에 없는데?”
온객행의 놀란 얼굴을 하더니 곧 금모원군과 사령(四靈)을 지나쳐 별궁으로 달려갔다.

금모원군이 온객행의 뒷모습을 보고 응룡에게 기대더니 말했다.
“경진. 네가 동왕공을 배웅해라. 혹시 또 발의 아이를 데려가려고 하거든… 흠… 혼내 줘라.”
응룡이 밝게 웃으며 두 손을 공손하게 모으고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원군! 원군께서 허락하신 겁니다. 봉황! 들었지?”
봉황이 ‘허허허’ 웃으며 응룡에게 손짓하자 응룡은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다시 남궁으로 향했다. 봉황이 금모원군께 다가가 물었다.
“원군. 천도연에 오성진군(五星眞君)께서 오십니까?”
금모원군이 웃으며 봉황의 얼굴을 톡톡 쳤다.
“우리 안시는 눈치가 너무 좋구나.”
금모원군은 다시 중궁으로 향하며 말했다.
“진군께서 미천한 원군의 연회에 오시겠는가? 걱정 말게. 천존께서 생각하신 것이 있으실 테니 우리는 그저 할 일을 하면 돼.”
그리고 봉황을 향해 빙긋 웃었다.

온객행은 정말 오랜만에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만큼 달렸다. 별궁에 도착하여 객실의 문을 열고 주자서를 찾았다.
“유서! 유서!”
방 안에는 가구가 몇 없어 황량했기 때문에 객실 안에 아무도 없다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다. 온객행의 눈에 동문이 있는 쪽으로 열린 창호 문이 보였다. 온객행은 객실을 나와 창호 문이 보이는 곳에 있는 정원과 객실을 모두 뒤졌지만 주자서는 보이지 않았다. 온객행이 객실에서 멀지 않은 동문에 있는 군병에게 물었다.
“우리 유서를… 검은 옷을 입은 사내… 우리 유서를….”
허둥지둥 정신없이 말하는 온객행을 보고 깃털 갑옷을 입은 군관이 말했다.
“검은 옷을 입은 파사라면 보았지요. 어떻게 요대에 들어왔는지는 몰라도 제 발로 옥산으로 나갔으니 별일 없을 거요.”
온객행이 군관의 어깨를 잡고 흔들며 말했다.
“그는 파사가 아니란 말이오!”
온객행의 날카로운 영력에 군관이 주춤하며 무기에 손을 가져갔다.

온객행은 군관을 놓고 말했다.
“원군께 흑망이 종화산으로 갔다고 전해주시오.”
군관이 온객행을 막으며 말했다.
“그것은 원군께서 허락한 일이오?”
온객행이 한숨을 쉬고 옷매무새를 정갈히 하고 군관을 보고 말했다.
“촉룡의 제자 흑망이 스승님께 간다고 전해 주시오.”
그리고 동문의 보초를 서는 군관을 위아래로 보고 피식 웃더니 말했다.
“요대의 군령(軍令)은 몹시 누긋한가 보오?”
온객행의 말에 보초를 서고 있던 군관들이 온객행을 위협하며 말했다.
“흑망! 요대에서 무엄하다!”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요대에 볼일이 없으니 이만 가보겠소.”
군관들은 온객행이 나가는 것을 막으려고 하였으나 그의 영력에 기가 눌려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들은 유유히 걸어 동문을 나가는 온객행을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곧 별궁 근처를 순찰하던 군관이 동문의 소란을 발견하고 다가왔지만 온객행은 이미 동문을 빠져나간 뒤였다. 깃털 갑옷을 입은 군관이 날아올라 중궁으로 향했다.


성령은 소나에게 먹어도 좋다고 허락을 받은 복숭아를 주자서에게 건넸다. 주자서는 소매에서 작은 칼을 꺼내 복숭아를 깎아서 성령이를 먹였다. 주자서가 하는 것을 보고 있던 주변의 복숭아를 받은 아이들이 주자서에게 다가와 하나둘 복숭아를 내밀었다. 주자서는 웃으며 복숭아를 받아 그것을 까서 아이들의 입에 넣어 주었다. 어떤 아이는 등에 검은 날개가 있었고 어떤 아이는 고상처럼 눈이 온통 새빨갰다.

성령이 신이 나서 말했다.
“시랑께서 하신 말씀 기억나?”
아이들이 복숭아를 먹으며 성령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시랑께서 사람은 정말 맛있다고 했어. 그런데 사람을 먹으면 정신이 나가서 미칠 수도 있다고 하셨어.”
복숭아를 먹던 빨간 눈의 아이가 말했다.
“사람을 먹으면 영력이 많아진 데.”
주자서는 해맑은 얼굴로 사람을 먹는다는 말을 하는 애들에게 좀 질려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빨간 눈의 아이가 주자서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왜 너에게서 파사 냄새가 나?”
주자서가 소매를 들어 몸에 냄새를 맡고 물었다.
“그래?”
아이들이 주자서의 옷자락을 들고 하나둘 냄새를 맡으며 말했다.
“정말 파사 냄새가 나. 근데 화사 냄새도 나.”
성령이 주자서를 보고 물었다.
“너는 화사야?”
주자서는 조금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아마 절반 정도는….”
아이들이 웃으며 말했다.
“에이, 그게 뭐야.”

주자서가 복숭아를 20개쯤 깠을 때 소린이 다가와 말했다.
“주자서! 희상랑께서 찾으시네.”
주자서는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 반가워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들이 주자서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아이, 복숭아는 그럼 누가 까줘.”
소린이 아이들을 주자서에게 떼어내며 말했다.
“원래는 껍질째 잘 먹으면서 갑자기 왜들 이래!”
주자서가 눈을 가늘게 뜨고 아이들을 보다가 ‘하하하’ 하고 웃었다. 그리고 소매를 들어 소린에게 인사하며 말했다.
“소린낭자. 손이 더러워서 그런데 손을 씻을 수 있을까요?”
주자서의 공손한 말에 소린이 조금 당황하며 말했다.
“어… 어… 저쪽에 우물이 있으니 그 쪽에 가서 닦으시오!”

주자서가 성큼성큼 걸어서 우물로 향하자 성령이 소린에게 다가와 말했다.
“소린자 나 저 사람 좋아. 우리랑 같이 살면 안돼?”
소린이 성령의 뺨을 쓰다듬고 말했다.
“안돼. 사람이 어떻게 옥산에서 살아.”
축(筑)이 다가와 말했다.
“언니. 저 사람한테서 화사 냄새가 나.”
성령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절반 정도는 화사래.”
소린이 눈썹을 찌푸리고 우물에서 손을 씻는 주자서를 보며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절반은 화사라니?”
축이 말했다.
“사람한테서 좋은 냄새나.”
그리고 성령을 보더니 뭐가 재미있는지 둘은 손으로 입을 가리고 ‘히히히’ 웃었다.

주자서는 소린과 함께 다시 신당으로 들어갔다. 어느 정도 준비를 마쳤는지 커다란 함에 비단 천으로 감싼 복숭아와 찬합 여러 개가 근처에 있었다. 부몽이 같이 들어온 소린을 손짓으로 물리고 주자서의 소매를 잡아 신당 내부로 데려가며 말했다.
“일단 이 시커먼 옷부터 어떻게 해보자.”
내실 안에는 분홍색 옷을 입은 소녀들과 소나가 있었는데 소나가 주자서를 위아래로 보더니 말했다.
“말랐군.”
소녀들이 주자서를 세워놓고 이리저리 자를 대보더니 붉은색 옷감을 가지고 바느질을 하기 시작했다.

소나가 주자서를 의자에 앉히고 머리에 비녀를 보고 말했다.
“아! 수원대선!”
소나는 주자서의 머리의 비녀를 빼서 손에 만져보더니 주자서를 쏘아보고 말했다.
“감히 너 따위가.”
주자서는 여태 머리를 고정하던 옥비녀가 갑자기 황송(惶悚)했다. 주자서가 뭐라고 말할 새도 없이 부몽이 다가와 그의 머리를 소녀들의 머리처럼 빗겨주고 소나의 손에서 옥비녀를 빼앗아 주자서의 머리를 고정하며 말했다.
“소나. 수원대선께서 주시지 않았으면 이런 미천한 것이 어찌 그분의 물건을 가질 수 있겠어.”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조금 화난 기색의 소나를 보았다. 소나는 씩씩대더니 내실을 나가버렸다.

부몽이 주자서의 머리를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말했다.
“그래도 아주 눈치가 없는 놈은 아닌가 보다.”
주자서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제가 지은 죄가 많아 천벌을 받는 중이지요.”
부몽이 주자서의 말에 ‘하하하’ 하고 웃었다. 바느질을 하던 아이들이 붉은 색 장포를 부몽에게 건넸다. 부몽이 장포를 주자서에게 건네며 물었다.
“시중이 필요한가?”
주자서가 고개를 흔들고 말했다.
“괜찮습니다.”
그리고 내실을 둘러보더니 옷걸이와 병풍이 있는 곳으로 가서 요대를 풀고 검은 장포를 벗었다.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있던 소녀들이 ‘까르르’하고 웃었다. 부몽이 소녀들을 보고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저 아이의 키가 크니 높은 신발을 신어야겠다.”
부몽의 말에 소녀들이 분주하게 부몽을 데리고 내실을 나갔다. 주자서는 텅 비어 있는 내실을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이곳이 여인의 방인 것이 생각나서 ‘큼큼’하고 헛기침을 한 뒤에 탁자에 가서 앉았다. 소녀들과 비슷한 머리모양을 한 것이 어색해서 머리에 있는 비녀를 손으로 더듬었다. ‘그렇게 대단한 것인지 몰랐네….’

소나가 내실로 들어와 주자서에게 고갯짓했다. 주자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소나를 따라 다시 신당으로 갔다. 부몽은 높은 신발에 화려한 머리 장식을 하고 소나가 준비한 천도(天桃)가 든 함을 살펴보더니 소나를 보고 활짝 웃었다. 소나가 고개를 숙여 부몽에게 인사했다.
“희상랑.”
부몽이 주자서를 위아래로 보더니 말했다.
“그대는 요대에 도착할 때까지 고개를 들지 말게.”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부몽은 고분고분한 주자서의 행동에 조금 마음이 누그러진 상태였다. 부몽이 신당의 신위를 향해 절을 하고 양손을 들어 입김을 불더니 그 입김이 점점 안개가 되어 신당 안을 가득 채웠다. 주자서는 고상이 부유각을 안개로 채운 것이 생각나서 작게 웃었다. 곧 신당의 신위에서 구름이 내려오더니 요대로 향하는 구름길이 나타났다.

부몽이 구름 위로 올라서자 소나가 복숭아가 든 함을 들었다. 주자서도 소나 옆으로 가서 복숭아가 든 함을 들었다. 소나와 주자서가 구름길로 올라 가려고 하는데 주자서는 구름을 밟을 수가 없어서 주춤하는 바람에 소나가 얼른 영력으로 함을 잡았다. 소나가 주자서를 보고 혀를 차면서 말했다.
“정말이지 쓸모라고는….”
주자서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소나가 함을 앞으로 먼저 보내고 주자서에게 다가와 그의 팔을 붙잡았다. 주자서는 여인에게 매달리는 것이 조금 부끄러웠으나 다른 방법이 없어 소나의 소매를 붙잡았다. 소나는 눈을 감고 숨을 고르더니 주자서의 요대를 잡았다.

깜짝 놀란 주자서가 소나를 보았다. 소나의 눈은 고상이 그랬던 것처럼 새빨갛게 변해 있었다.
“너는 꼼짝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
소나의 말에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이고 소나의 소매를 놓았다. 세 사람이 구름길을 거의 다 지나 요대 입구가 보이는 즈음 삼족오가 날아와 부몽에게 말했다.
“희상랑! 흑망이! 흑망이!”
부몽이 고개를 돌려 구름길 끝을 보았다. 부몽이 작게 고개를 흔들고 소나에게 말했다.
“소나. 그 아이를 놔줘라.”
소나는 부몽의 말을 듣자마자 고민하는 기색 없이 주자서의 요대를 놓았다. 주자서는 소나의 소매를 다급하게 잡으려다 소나의 매서운 눈초리에 움찔하며 때를 놓쳤다. 그리고 바닥으로 밑으로 꺼지기 시작했다. 주자서는 자기도 모르게 그를 찾았다.
“흑랑!”


추락하는 주자서를 받은 것은 온객행이 아니라 현조 앙소였다. 앙소가 주자서의 손을 잡아 그를 구름 위에 있는 온객행에게 안겨주었다. 주자서는 온객행의 얼굴을 보고 조금 반가워서 웃었다. 온객행은 주자서를 품에 안더니 어깨에 고개를 묻고 말했다.
“유서. 유서….”
주자서가 온객행을 마주 안으며 말했다.
“요대가 그렇게 가기 힘든 곳인지 몰랐소.”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자서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구름 위에서 뛰어내렸다. 주자서는 놀라서 온객행의 목에 팔을 감고 눈을 꼭 감았다. 옥산 아래로 내려온 온객행이 주자서를 땅에 내려놓고 이리저리 살펴보며 물었다.
“유서 어디 다친 곳은 없는가?”

주자서는 조금 놀라서 자리에 주저앉으며 말했다.
“흑랑. 어디서 뛰어내릴 거면 좀 말을 하고 하시오.”
온객행이 주자서의 타박에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말했다.
“유서….”
주자서가 한숨 쉬고 말했다.
“괜찮습니다. 별일 없었어요. 그냥 옥산의 화사들과 복숭아를 먹었습니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와락 안고 말했다.
“말도 없이 어디를 간 거야?”
주자서가 온객행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아… 그러게 왜 가둬 두셨소?”
온객행이 주자서를 놓아주고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가둔 것이 아니네. 내가 그대를 왜 가두겠는가? 못 들어오게 막은 거지.”
주자서는 온객행을 보고 눈을 깜빡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아… 그렇군.”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물었다.
“그렇게 답답했는가? 도망가고 싶을 만큼?”
주자서가 온객행을 보고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도망쳐도 됩니까?”
온객행이 다시 주자서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안 돼. 안 되네. 절대 안 돼.”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초연(超然)하게 말했다.
“역시 그렇겠죠.”

온객행은 한참 동안 주자서를 놓아주지 않고 품에 안고 있었다. 주자서는 혹시 또 우나 싶어서 그의 기색을 살폈지만 온객행은 주자서의 어깨에 고개를 묻고 놀란 마음을 진정하고 있는 것 같았다. 죽지도 않았고 다시 만났는데 유난스럽다고 생각한 주자서는 안겨서 주변에 있는 복숭아나무를 구경했다. 저 멀리 복숭아를 따는 아이들이 둘을 보고 경계하는 것이 보이길래 소매를 들어 그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주자서가 손짓한 곳을 힐끔 돌아본 온객행이 일어나서 주자서를 일으키며 말했다.
“화사가 되기로 하셨소?”
주자서가 소매를 들어 이리저리 펄럭이더니 말했다.
“뭐 이미 반쯤은 화사가 아니오.”
온객행이 일어난 주자서의 허리를 끌어안고 주자서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주자서는 작게 한숨 쉬며 말했다.
“덕분에 물비린내가 난다 합니다.”
온객행이 표정을 구기고 주자서를 놓아주며 말했다.
“누가 그런 소리를 한다는 말이오?”
주자서가 손바닥을 펴더니 하나씩 꼽으며 말했다.
“현리낭자, 청조, 금모원군, 산천대제, 희상랑….”

온객행은 하나씩 접히는 손가락을 보고 ‘그렇게 많았나?’ 생각하며 주자서의 손을 잡고 말했다.
“아이, 유서 그런 것이 무슨 상관인가?”
주자서가 온객행의 손을 놓고 붉은 소매를 털며 말했다.
“헤엄도 못 치는데 물비린내가 난다고 하니 억울해서 그렇지요.”
온객행이 주자서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말했다.
“내가 가르쳐 주겠네.”
주자서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물은 싫습니다.”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기대며 말했다.
“어쩌지? 내가 용왕이 되면 물속에서 살지도 모르는데.”
주자서가 온객행을 보고 물었다.
“용왕이 되시게요?”
온객행이 주자서 얼굴을 빤히 보다가 가깝게 붙여오자 주자서가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밖에서 이러는 것도 싫습니다.”
온객행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고 말했다.
“주변에 아무도 없으면 괜찮은 것 아닌가?”
주자서가 온객행의 품에서 나와 옥산을 둘러보며 말했다.
“싫으면 내치시오.”
온객행이 얼른 주자서에게 다가가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내가 언제 싫다 했는가? 그냥… 아쉬워서 그렇지….”

주자서는 주변을 둘러보고 물었다.
“요대로 돌아갑니까?”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물었다.
“돌아가고 싶소?”
주자서가 잠시 고민하는 사이 하늘에서 구름이 쏟아지더니 산천대제와 주작, 백호가 나타났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손을 잡아 그의 곁으로 끌어당겼다. 산천대제가 온객행에게 다가가 말했다.
“촉룡께서 허락하셨다고는 하나 어찌 부모의 허락 없이 혼례를 올린다는 말인가?”
온객행이 소매를 들어 공수하고 인사하며 말했다.
“내자의 병이 나으면 찾아 뵐 것입니다.”
산천대제가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병? 아프다는 말이냐?”

산천대제가 가까이 다가오자 주자서가 공수하고 손을 모아 말했다.
“대제께서 어찌 소인을 찾으십니까?”
주자서의 말에 산천대제가 그의 팔을 잡고 말했다.
“그대가 발의 후손이니 내가 그대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이 있어서 그러하네.”
주자서가 산천대제의 손을 소매를 털어 뿌리치고 말했다.
“소인은 이미 흑망의 내자가 되었으니 전하고자 하는 것이 있으시면 그에게 전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온객행의 뒤로 가서 섰다. 온객행이 다시 소매를 들어 공수하고 산천대제에게 말했다.
“저희 내외는 종화산 탁음대선께 금모원군의 초대를 전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뒤에 서 있던 백호가 코웃음 치고 말했다.
“언제 촉룡께서 초대에 응하신 적이 있는가?”
온객행이 소매를 내리고 백호를 보며 말했다.
“이번엔 또 모르는 일이지요.”

蛇苺 第18

連環計 | 18. 고리를 잇는 방법.

산천대제가 다녀간 이후로 별궁 근처에는 그 전보다 더 많은 군병이 배치되었다. 별궁 내부이긴 하지만 동문에서 멀지 않은 주자서와 온객행의 객실은 그전에도 다른 곳보다 지켜보는 눈이 많았는데 지금은 그것보다 훨씬 많은 눈이 그들을 감시하고 있다. 보호라는 명목의 감시는 주자서의 행동 범위를 객실 내부로 한정하게 했는데, 깃털 갑옷을 입은 군관부터 푸른색 가죽 비늘갑옷을 입은 군관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그들의 눈이 신경 쓰여서 정언(井鄢; 화장실)에 다녀오는 것도 눈치가 보였다. 주자서는 그래서 전보다 더 안 마시고 더 안 먹었다. 딱히 몸을 움직이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라 그렇게 배가 고프지도 않아서 몸을 소홀히 하니 주자서는 잠이 많아지고 멍하게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런 주자서를 보고 있는 온객행만 애가 타서 온객행의 영력이 한껏 날이 서 있었다.

창호 문을 열어 그 앞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고개를 괴고 정원을 구경하던 주자서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딱히 큰 의미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 주자서는 좀 심심했다. 물론 산천대제가 다시 와서 난동을 부리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기는 했다. 산천대제께서는 주자서를 왜 황룡에게 데려간다고 했을까? 태평호에서 서왕모의 요대까지 오는 길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지만 이 사달의 이유를 모르니, 지금 주자서의 뒤통수를 뚫어져라 애절하게 쳐다보고 있는 온객행이 알아서 하겠지 싶은 생각으로 마음을 내려 놓았다. 온객행이 말하는 그들의 짧은 한 갑자는 주자서에게는 너무 고달프고 길어서 이번 생에는 장수할 팔자는 아닌가 싶기도 했다. 주자서는 살랑이는 바람과 함께 실려 온 작약의 향기가 좋아서 눈을 감았다. 그 향이 월계화와 비슷하여 낙읍의 모친이 떠올라 주자서는 또 다시 한숨을 쉬고 말았다. 온객행이 주자서 옆에 의자를 붙여 놓고 앉아 말했다.
“유서….”
주자서는 다시 눈을 떠서 옆에 앉은 온객행을 힐끔 보았다.
“유서 배고프지 않은가? 목마르지 않은가?”
유서는 작게 고개를 흔들고 다시 시선을 창호 문밖으로 던졌다. 창호 밖의 풍경에 갑옷을 입은 군병이 들어와서 주자서는 작게 혀를 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온객행은 안절부절못하더니 객실을 나갔다.

주자서는 심심하여 객실 내부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넓다면 넓고 좁다면 좁은 객실에는 사실 가구가 많지 않아서 조금 텅 빈 느낌도 들었다. 벌써 이틀이나 온객행과 함께 잠을 청했던 침상은 자세히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크기가 커서 주자서는 자기의 몸이 큰 것인지 온객행의 몸이 큰 것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생각하다 헛웃음 치고 고개를 흔들었다. 겨우 이틀인데 한 침상에서 같이 자는 것은 별일 아닌 일이 되어 버린 것이 우스웠다. 딱히 주자서가 걱정할 만한 일을 온객행이 하지도 않았고, 조금 서늘한 온객행을 끌어안으면 잠이 잘 왔기 때문이다. 몸이 고단하여 죽은 듯이 자는 일이 허다했던 군영의 생활을 생각하면 이 곳의 생활은 안락하다 못해 무료한데 마음이 그렇지 못했다. 내려 놓으려고 해도 자꾸만 치미는 이 불안한 마음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으니 한숨만 쉬는 것이다. ‘죄를 지은 것은 하늘인데 어찌 천벌은 내가 받고 있는지….’ 주자서는 열린 창호 밖을 슬쩍 보고 장지문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주자서는 장지문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장지문은 열리지 않았다. 딱히 걸쇠를 걸어 놓거나 문 앞이나 뒤에 뭔가를 가져다 놓은 것도 아닌데 열리지 않았다. 주자서는 작게 혀를 차며 말했다.
“온객행.”
그리고 조금은 화가 나서 탁자로 가서 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러다 창호 문으로 다가가 밖을 살펴봤다. 요대의 동문으로 나가는 곳에 군병이 교대를 하고 있는지 조금 부산스러웠다. 주자서는 창호 문에 걸터앉아 있다가 훌쩍 창호 문을 넘어 밖으로 나왔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동문으로 갔다. 동문에 서 있는 관병은 자기들끼리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지 주자서가 동문을 넘어 요대를 나가는데도 아무것도 묻지 않고 손을 흔들어주었다. 주자서는 공손히 소매를 들어 인사하고 옥산으로 나왔다.


온객행은 답답하게 별궁에 갇혀 있는 주자서가 걱정이 되어 금모원군께 다시 종화산으로 돌아가겠다고 고하려던 참이다. 별궁을 나와 남궁에 들어서자 사령(四靈) 봉황(鳳凰)과 응룡(鷹龍)이 온객행을 발견하고 인사했다.
“흑망. 오랜만이네.”
온객행이 소매를 들어 응룡과 봉황에게 인사했다.
“안시선(安市仙), 경진선(庚辰仙).”
응룡이 웃으며 말했다.
“그 이름 참 오랜만에 듣는군.”
봉황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취수와 약수를 건너러 왔나? 천존게서 북해 용왕 자리를 사하셨다며?”
응룡이 온객행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축하하네. 승천하겠군.”
봉황이 웃으며 말했다.
“용왕이 되면 자주 보겠네.”
온객행이 고개를 젓고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저는 원군께 부탁이 있어서 잠시 들른 것입니다.”
응룡이 눈썹을 찌푸리고 물었다.
“무슨 뜻인가? 자리를 거절할 생각인가?”

봉황이 온객행에게 가까이 다가가 손을 들고 속삭였다.
“요즘 하늘이 아주 시끄럽네. 천존께서도 원군께서도 걱정이 많으시네.”
온객행이 눈을 굴리고 말했다.
“어찌 미천한 저에게 용왕 자리를….”
응룡이 온객행을 동궁 쪽으로 이끌며 말했다.
“묻고 싶은 것이 많으니 자리를 옮기지.”
봉황이 맞장구를 치며 온객행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영귀(靈龜)와 기린(麒麟)은 만나보았는가? 그들은 요즘 그 북해 용왕 자리 때문에 아주 바쁘네.”
온객행이 아쉬운 듯 중궁을 바라보자 응룡이 그에게 말했다.
“장가 들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내자는 어떠한가? 정말 묻고 싶은 것이 많아.”
봉황이 거들었다.
“맞아! 대체 어떻게 한 것인가? 봉인된 동안 대체 무슨 짓을 한 건가?”
그리고는 호쾌하게 ‘하하하’ 하고 웃었다.


옥산의 복숭아나무 가지 끝에 복숭아가 탐스럽게 열려있다. 주자서는 복숭아를 구경하며 걷다가 작은 아이가 높은 가지에 있는 복숭아를 따려는 것을 발견했다. 주자서는 주변을 둘러보고 혹시 다른 사람이 있는지 확인했지만 아이는 혼자서 커다란 망태기에 복숭아를 따고 있었다. 주자서가 다가가 가지 끝에 있는 복숭아를 따서 아이에게 건넸다. 아이가 활짝 웃으며 복숭아를 받아 들고 말했다.
“파사. 감사합니다.”
주자서는 자신을 파사라고 부르는 것이 의아했지만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 말았다. 한동안 아이가 복숭아를 따는 것을 도왔는데 멀리서 아이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성령(成嶺)!”
아이가 커다란 망태기를 들려고 하자 주자서가 성령에게 물었다.
“들 수 있겠는가?”
망태기를 들어 아이의 등에 메 주려는 데 아이의 등에 아주 작은 검은 날개가 있었다. 성령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자서가 건네는 복숭아가 가득 든 망태기를 번쩍 들고 소녀를 불렀다.
“소린자(小憐姊)!”
아이는 소녀가 반가운지 그녀에게 달려갔다.

성령을 부른 소린이 주자서에게 다가와 말했다.
“누구신데 옥산에 계시오?”
주자서가 소매를 들어 공손히 공수했다. 뭐라고 소개하면 좋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소린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파사가 왜 옥산에 있느냐는 말이오!”
소린은 자신에게 다가온 성령의 어깨를 잡아 자기 뒤로 오게 하고 경계하는 기색으로 주자서를 노려보았다. 주자서를 노려보는 소녀의 기세가 대단하여 주자서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아… 나는 파사가 아니오.”
소녀가 말했다.
“그럼 이 파사의 기운은 무엇이오!”
주자서가 손을 내리고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아… 그러니까 나는….”
하늘에서 ‘푸드득’ 하고 새가 나는 소리가 나더니 앙소가 내려와 말했다.
“소린, 무슨 일이냐?”
소린이 앙소에게 달려가 그의 소매를 잡고 주자서에게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현조어르신, 파사가 들어왔어요.”

앙소가 주자서를 발견하고 놀라며 말했다.
“아! 흑망의 내자?”
소린이 앙소의 허리를 안고 두려워하는 기색으로 말했다.
“흑망?”
앙소가 소녀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아. 괜찮다. 괜찮아 저 자는 사람이니 무서워할 것 없다.”
성령이 주자서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사람?”
소린이 얼른 앙소의 품에서 나와 성령의 소매를 붙잡고 말했다.
“성령!”
아이가 웃으며 주자서에게 손가락질하고 말했다.
“시랑(豺狼)께서 사람은 맛있다고 그랬어.”
앙소가 아이를 붙잡고 말했다.
“성령! 안돼. 저것의 주인은 파사라서 먹으면 안된다.”
주자서는 조금 당황하여 얼굴을 굳히고 조금 뒷걸음질 쳤다. 저렇게 조그만 아이도 사람을 먹는다고 하니 확실히 요괴들이 있는 곳이구나 싶어서 주자서가 다시 소매를 들어 공수하고 말했다.
“저는 이만 별궁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앙소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원군의 허락 없이 요대에 들어갈 수 없네. 어떻게 나왔나?”
주자서는 주변을 둘러보며 나왔던 동문을 찾았다. 하지만 동문은커녕 건물도 보이지 않았다. 앙소가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요대에는 원군의 허락이 없으면 함부로 들어갈 수 없네.”
주자서는 조금 허탈하여 고개를 끄덕이고 앙소를 보았다. 앙소는 물끄러미 주자서를 보더니 말했다.
“나는 옥산을 지키는 일개 말단이라 요대에 들어갈 수 없네.”
성령이 앙소의 소매에 매달리며 ‘까르르’ 웃고 말했다.
“현조 어르신이 말단이래.”
소린이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오늘 천도(天桃)를 요대에 올리는 날입니다.”
앙소가 소린의 얼굴을 쓸며 말했다.
“그래. 오늘은 누가 가지고 들어가느냐?”
성령이 대신 답했다.
“희상랑(稀喪娘).”
앙소가 한숨을 쉬고 말했다.
“화사는 파사를 싫어하는데 어쩌나.”
주자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화사?”
앙소가 성령과 소린을 놓아주고 주자서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일단 부몽에게 말해보고 안되면… 그건 그다음에 생각합시다.”

주자서는 소령과 소린, 앙소와 함께 옥산 중턱에 있는 작은 마을로 들어갔다. 성령, 소린과 비슷해 보이는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복숭아를 담은 망태기를 들고 붉은 옷을 입은 여인에게 다가가자 여인은 망태기를 받아 안에 든 복숭아를 꺼내 이리저리 골랐다. 복숭앗빛의 연한 색의 옷을 입은 소녀들이 여인이 골라낸 복숭아를 옥으로 만든 쟁반에 담아 마을 중앙에 있는 신당(神堂) 같은 곳으로 가져갔다. 앙소가 붉은 옷을 입은 여인에게 말했다.
“부몽(浮夢).”
여인이 앙소를 발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현조. 여기까지 무슨 일인가?”
앙소가 손을 내젓고 말했다.
“자네까지 현조라 부르는가.”
여인이 살포시 웃더니 앙소의 옆에 서 있는 주자서를 발견하게 고갯짓을 했다. 앙소가 말했다.
“이쪽은….”
성령이 주자서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흑망의 내자래요.”
앙소가 얼른 성령의 입을 막고 다급하게 말했다.
“발의 후손이오!”
주자서를 쳐다보고 있던 여인의 시선이 한순간에 날카로워졌다. 앙소의 말에 그녀가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발의 후손?”

주자서는 이 여인도 고상과 같은 화사라고 하니 조금은 친밀한 마음이 들었다. 주자서는 눈치껏 소매를 들어 인사했다.
“기산 주가 자서라고 합니다.”
부몽이 다가와 주자서를 보더니 표정을 구기고 소매로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
“물비린내가 진동을 하는군.”
요대에서 청조에게 들었던 물비린내 소리를 다시 들으니 주자서는 조금 마음이 주눅 들었다. 주자서가 소매를 든 채로 부몽을 힐끔 보았다. 부몽이 앙소에게 시선을 옮기며 물었다.
“이 치가 왜 여기 있소?”
앙소가 곤란하다는 듯이 허리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그러니까 그것이 말이네….”

성령이 주자서의 소매를 잡아 내리더니 그의 손을 ‘앙’ 물고 말했다.
“희상랑. 우리가 먹으면 안 돼요?”
부몽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
“네가 그 아이를 먹으면 이번엔 옥산 전체가 쑥대밭이 될지도 모르겠구나.”
주자서가 아이를 꺼리는 기색을 보이지 않자 소린도 주자서에게 다가가 그를 만져보며 말했다.
“살아 있는 사람은 처음 봐요.”
아이들이 만지작거리는 것을 개의치 않고 주자서가 앙소를 향해 고개를 돌려 물었다.
“흑랑이 찾지 않을까요?”
앙소가 주자서의 호칭에 ‘하하하’ 웃더니 말했다.
“흑랑?”
부몽도 소매를 든 채로 점점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주자서는 아이들의 손에 이끌려서 분홍색 옷을 입은 소녀들이 복숭아를 가져다 놓는 신당으로 향했다. 그 곳에는 붉은 옷을 입은 여인이 한 명 더 있었는데 그 여인은 찬합을 여러 개 펼쳐 놓고 옥 쟁반 위에 올려진 복숭아를 이리저리 살펴본 뒤에 찬합에 넣었다. 여인이 아이들을 발견하고 말했다.
“성령, 소린. 복숭아는 모두 땄는가?”
성령이 여인에게 달려가 안기며 말했다.
“소이(俏姨)! 내가 사람을 주웠어.”
주자서는 성령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소나(俏羅)가 자리에서 일어나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사람이라고? 하지만…?”
부몽이 신당 안으로 들어오며 소나의 말을 끊고 말했다.
“소나. 요대로 가려면 얼마나 남았지?”
소나가 장지문 밖에 있는 해를 보고 시간을 가늠하더니 말했다.
“술시(戌時) 지나서 해 질 녘 즈음이니 아직 두 시진도 더 남았습니다.”
부몽이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그동안 이 사람을 어쩌지?”

소나가 주자서에게 다가와 그를 유심히 보더니 말했다.
“혹 고상을 아시오?”
주자서가 고상의 이름을 듣고 품속에서 고상이 주었던 꽃 비녀를 꺼내 들고 말했다.
“내 모… 은인(恩人)이시오.”
소나가 주자서의 손에 들린 꽃 비녀를 보더니 작게 탄식하며 꽃 비녀를 쓸었다.
“아상.”
주자서가 꽃 비녀를 건네고 말했다.
“고상을 아시오?”
소나가 비녀를 뺨에 대보더니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아상은 나의 누이동생이오.”
부몽이 소나에게 다가와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소나. 수원대선께서 잘 보살펴 주실 거야.”
소나가 울상을 만들어 부몽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고 말했다.
“화사가 어찌 물가에 산다는 말입니까?”

주자서가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에 고개를 돌리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상께서는 잘 지내고 계십니다.”
소나가 몸을 틀어 주자서를 마주 보고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우리 아상은 잘 지냅니까? 건강해요? 그 망할 파사가 괴롭히지는 않습니까?”
주자서는 그 망할 파사가 자신의 부군이라는 것은 말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며 답했다.
“수원대선께서 잘 보살펴 주고 계세요. 태평호는 조용해서 심심한 것이 제일 걱정이신 걸요.”
소나가 얼굴을 구기며 말했다.
“파사의 봉인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까?”
주자서가 앙소를 힐끔 보며 눈치를 보자 부몽이 다가와 소나를 달래며 말했다.
“봉인이 끝나면 다시 돌아올 것이다. 살아 있으니 언젠가는 만나지 않겠니.”
소나가 손에 들린 꽃 비녀를 보고 주자서를 보았다. 주자서는 꽃 비녀와 소나의 얼굴을 번갈아 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그 비녀는 저보다….”
소나는 주자서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비녀에 입을 맞추더니 머리에 꽂았다. 부몽이 소나의 머리카락을 넘기며 말했다.
“예쁘다.”
소나가 부몽을 마주 보고 웃었다.


온객행은 요대의 동궁에는 처음 와 보는 참이다. 이 곳은 금모원군이 부리는 사령이 지내는 곳으로 금모원군의 거처인 북궁과 서궁의 규모와 비교하면 조금 작았지만 남궁보다는 컸다. 이 곳은 요대에 있는 다른 전각과는 달리 호위나 병졸이 보초를 서지 않았는데 보통 사령은 이곳에서 지내는 날보다 각자가 수호하는 지역에 머무는 날이 많기도 했고 감히 요대까지 침범하여 사령을 공격한다 해도 그들을 이길 수 있는 존재는 손에 꼽혔기 때문이다. 응룡이 서툴게 이리저리 움직이며 차를 준비하자 온객행이 눈치껏 소매에서 다구를 꺼내 차를 내리며 말했다.
“올해 태평호의 연잎향이 좋습니다.”
응룡과 황룡이 자리에 앉아 온객행이 권한 찻잔을 들어 향을 맡고 말했다.
“정말 향이 좋군.”
황룡이 찻잔을 ‘후후’ 불며 말했다.
“기린께서 아주 곤란하게 됐어.”
응룡이 찻잔을 비우고 다시 온객행에게 찻잔을 내밀며 말했다.
“맞아. 백룡이랑 함께 발등에 불이 떨어졌겠군.”

온객행이 차로 입을 축이고 물었다.
“도예(檮杌)께서는 아직도 봉인되어 계십니까?”
응룡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요즘 정신이 다시 돌아오신 것 같던데 또 모르지. 그 노인네는 너무 오래 살았으니까.”
봉황이 헛웃음 치고 말했다.
“아무도 사흉이 되고 싶어 하지 않으니 그렇지. 공공이 혼돈(渾沌)이 된 지도 벌써….”
응룡이 작게 한숨 쉬고 말했다.
“공공은 그 자리를 즐기는 듯해서 다행이야.”
봉황이 응룡을 보고 말했다.
“공공은 원래 사람을 좋아했으니까.”
온객행이 응룡과 봉황의 찻잔을 채우고 물었다.
“황룡의 일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봉황이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
“그 치 이야기는 무엇 하러 꺼내는가 괜히 마음만 답답해지게.”
응룡이 찻잔을 들고 얼굴을 구기더니 말했다.
“대체 하늘로 솟았는지 땅으로 꺼졌는지 찾을 수가 없어서 말이야.”

온객행이 응룡을 보고 물었다.
“황룡을 왜 찾으십니까?”
봉황이 온객행을 말리며 말했다.
“흑망. 그만두게. 응룡이 어찌 천궁에 갈 수 없게 되었는지 그대도 알지 않는가.”
온객행이 응룡을 향해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경진선 무례를 범했습니다.”
응룡이 ‘쯧’하고 혀를 차고 온객행 쪽으로 손을 흔들며 말했다.
“예를 거두게. 그게 자네 잘못인가? 천존께서 왜 그를 사람의 세상으로 보내셨는지 모르겠어.”
봉황이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사람들의 세상은 어떠한가? 하늘만큼 어지러운가?”
온객행이 찻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법이니까요.”
응룡이 온객행에게 물었다.
“사람들의 세상에는 전쟁이 났다던데 이러다 하늘에서도 무슨 일이 나는 건지 모르겠어.”
봉황이 응룡에게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응룡! 경진선. 입을 조심하게.”
응룡이 봉황을 향해 코웃음 치며 말했다.
“들으라면 들으라고 하게. 내게 더 잃을 게 뭐가 있겠나?”

온객행은 다시 찻잔을 들어 입을 축이고 말했다.
“제가 내자 삼은 이가….”
봉황이 화색을 하며 온객행에게 몸을 붙이고 물었다.
“그래! 혼인을 했다고? 촉룡께서는 허락하셨는가?”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룡이 말했다.
“촉룡께서 허락하신다고 티를 내겠는가? 어떤 이와 했는가? 사람인가?”
온객행이 다시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발의 후손과 혼인했습니다.”
응룡이 찻잔을 내려놓고 온객행에게 가깝게 붙어 앉으며 말했다.
“뭐?! 발?”
봉황이 놀란 기색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온객행에게 다시 물었다.
“황룡의 딸 발 말인가? 그녀의 후손이라고?”

응룡이 온객행에게 물었다.
“진성현녀(辰星玄女)께서 아시는가?”
봉황이 응룡의 입을 막으며 말했다.
“경진! 그 입을 정말….”
응룡이 입을 손으로 가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온객행이 응룡과 봉황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진성현녀께서 발을 거두셨군요.”
봉황이 ‘쯧’하고 혀를 차며 응룡에게 말했다.
“자네는 별안간 귀도 얇고 입이 가벼우니 우환(憂患)이 끊이지 않는 것이네!”
응룡이 봉황을 쏘아보며 말했다.
“흑망이 북해 용왕이 되면 다 알게 될 일인데 뭘 그러나.”
온객행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저는 부족해서 용왕 자리는….”

응룡이 온객행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오늘이라도 취수와 약수를 넘어 승천하면 될 일 아닌가?”
온객행이 한숨을 쉬고 한참 뜸을 들이자 봉황이 물었다.
“왜? 무슨 문제가 있는가?”
온객행이 눈썹을 축 늘어뜨리고 울상을 만들어 조금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의 내자 몸에 발의 능력이 봉인되어 있는데 그것이 조금 깨진 것 같습니다. 그 힘을 내자가 견디지 못하면….”
그리고 품에서 영견을 꺼내 눈꼬리를 찍었다. 응룡이 온객행의 등을 쓸며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말해보게.”
봉황이 다시 자리에 앉아 물었다.
“혹 사내인가?”
온객행이 고개를 들어 봉황을 보고 물었다.
“혹시 아시는 것이 있으십니까?”
봉황이 온객행을 한참 쳐다보더니 고개를 작게 흔들고 말했다.
“아니네. 내가 말할 자리가 아니니 원군께 듣게.”
온객행이 일어나 봉황에게 무릎 꿇고 소매를 들어 공수하며 말했다.
“안시선. 제발 안시선. 우리 유서를 구해주십시오.”
봉황이 자리에서 일어나 온객행을 일으키며 말했다.
“흑망. 이러지 말게.”

응룡이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이름이 유서라고? 버들개지처럼 아주 귀여운 여인이겠군.”
온객행이 고개를 젓고 영견으로 눈꼬리를 찍고는 말했다.
“유서는 사내입니다.”
봉황이 온객행을 다시 의자에 앉히고 말했다.
“사내라고… 정말 봉인이 깨지면 영혼이 타버릴지도 모르겠군.”
온객행이 봉황의 소매를 붙들고 말했다.
“안시선. 제발 우리 유서를 살려주세요.”
응룡이 봉황을 보고 말했다.
“이건 우리가 어찌 할 수 있는 정도를 아득히 뛰어넘는군.”
봉황이 응룡을 마주 보며 말했다.
“그러게. 흑망 그대는 언제나 나를 놀라게 하는군.”

응룡이 온객행을 보고 물었다.
“그런데 중궁에는 왜 가는 길이었나?”
온객행이 말했다.
“유서가 별궁 안에 갇혀 있는 것이 답답한 것 같아서 천도연까지 종화산에 가있으려구요.”
봉황이 자리에 가서 앉으며 말했다.
“그래서 별궁에 호위를 늘린 거군.”
응룡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원군께는 안가는 것이 좋네. 지금 동왕공이 와서 아주 기분이 안 좋으셔.”
봉황이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동왕공은 대체 요대를 어떻게 찾으시는 걸까?”
응룡이 찻잔에 차를 따르며 말했다.
“싫어도 서왕모의 부군이시니까요.”
봉황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근데 오룡 하나 대동 안 하시고 뭐가 그렇게 급하셔서 혼자 오셨지?”
응룡이 온객행을 손가락질하고 말했다.
“발 때문이겠죠”
봉황이 고개를 흔들더니 말했다.
“복잡하군.”

온객행이 봉황을 보고 물었다.
“산천대제께서는 왜 발의 힘을 탐하십니까?”
응룡이 온객행의 질문을 듣고 ‘하!’ 하고 숨을 들이켰다. 봉황이 응룡을 보고 혀를 차며 그를 불렀다.
“쯧! 경진!”
온객행이 다시 영견을 들어 나지도 않은 눈물을 찍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래도 내자가 불편해하니 종화산으로 가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응룡이 봉황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래. 동왕공도 촉룡께는 뭘 못하시겠지.”
봉황이 깊게 한숨 쉬며 말했다.
“정말 못하셔야 할 텐데 말이야. 동왕공께서 촉룡을 도발하면 진짜 하늘이 뒤집어지는 일이 일어날 거야.”
온객행이 소매를 들어 응룡과 봉황에게 인사하려고 하자 응룡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같이 가세. 나도 원군을 뵙고 드려야 할 말이 있으니.”
봉황도 일어나 나가는 장지문을 열고 손바닥을 펴며 말했다.
“그래. 같이 가지.”
온객행이 응룡과 봉황을 따라 동궁에서 중궁으로 연결된 회랑으로 나왔다.

중궁에는 금모원군이 용호좌에 앉아 있고 그 옆에 있는 작은 의자에 산천대제가 앉아 있었다. 산천대제가 연신 금모원군에게 무언가 말을 하고 있었는데 주유가 고하여 들어온 응룡과 봉황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동왕공. 나는 일이 바쁘니 약속된 날에 다시 오세요.”
산천대제가 금모원군을 따라 급히 상석에서 내려오며 말했다.
“서왕모. 그러지 말고 내 말을 들어보게.”
금모원군이 고개를 돌려 산천대제를 쏘아보며 말했다.
“여태 듣지 않았습니까? 발의 아이를 데려가려면 흑망도 데려가세요. 탁음대선 앞에서 혼인을 치렀는데 어찌 없는 일 친다는 말입니까? 그럼 가서 탁음대선께 말하고 오세요.”
금모원군은 응룡과 봉황 뒤에 서 있는 흑망을 발견하고 고개 너머로 산천대제를 힐끔 보았다.

蛇苺 第17

關文捉賊 | 17. 문을 닫아걸고 도적을 포획하라.

온객행이 주자서가 받은 처방전의 약초를 구하기 위해 객실을 나와 별원으로 나오자 별궁을 나가는 문 앞에 검은 깃털의 군관이 서 있었다. 온객행은 그들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가 코웃음 치고 별궁 정원에 있는 풀들을 보며 약초를 찾았다. 군관들은 온객행이 정원에 들어가 풀숲을 헤치는 것을 보고 못마땅한 얼굴을 하고 고개를 내저었다. 온객행이 지백이 적어준 처방전의 약초의 절반 정도를 찾았을 때 기척이 너무 많이 느껴져서 일어나 별궁으로 들어오는 입구를 보았다. 그 곳에는 요대에서 일하는 푸른 옷을 입은 여우와 검은 깃털 갑옷을 입은 삼족오 여러 마리가 별원을 구경하고 있었다. 온객행은 그들의 시선이 자신이 아니라 별원을 향한 것이 기분 나빠 표정을 구기고 고개를 돌려 그들이 보고 있는 쪽을 보았다.

주자서는 식기와 다구를 정리하고 객실 내부를 구경했다. 이 곳은 그동안 머물렀던 곳들 보다는 조금 허름했는데 그동안 머물렀던 곳이 분수에 맞지 않게 과하다고 생각하던 참이라 주자서는 조금 마음이 놓였다. 날이 저무는지 내부가 어둑하여 주자서는 보이는 창호 문을 열었다. 구름 위에 있는 궁궐에 있는 것 치고는 평범한 바깥 풍경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자리에 앉아 별궁의 정원을 구경했다. 그러다 온객행이 한참 돌아오지 않는 것이 이상하여 밖으로 나가는 장지문을 살짝 열었다. 주자서가 머무는 객실은 다른 별궁의 건물들과는 조금 거리가 있고 바로 앞에 작은 정원이 있었다. 머리만 밖으로 내밀어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다른 사람이나 혹은 보았던 깃털 갑옷을 입은 이들의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아 주자서는 장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온객행이 작은 바구니를 들고 이리저리 풀숲을 들추는 것이 보이는 곳까지 나와서 정원의 돌난간에 앉았다. 온객행은 구름 같은 회색 장포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풀숲을 헤쳤다. 뭘 찾는지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바구니를 놓고 쪼그리고 앉아 풀을 캤다. 주자서가 주변에 있는 꽃나무를 보고 생각했다. ‘뭘 찾는 거지?’ 오뉴월에 피는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모란은 벌써 다 질 때가 된 것 같은데 크고 아름답게 피었다. 작약의 진한 향기가 가득한데 벌과 나비가 보이지 않아 조금 서운했다. ‘언제 마지막으로 꽃을 구경했더라.’ 삶이 고단하여 꽃을 즐길 여유도 없이 살았다. 살았던 집의 울타리에 월계화를 심었던 것 같은데 꽃을 만지려고 하다가 가시에 찔린 당질의 손가락을 쓸어주었던 기억이 났다. ‘녕(寧)이는 징집이 되었을까?’ 이제 막 관을 올렸을 당질 생각에 주자서는 한숨을 쉬었다. 주자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혹시 월계화는 없는지 별원을 거닐었다.

월계화 같이 생긴 꽃을 발견하여 쪼그리고 앉아 꽃을 살펴보는데 온객행이 다가왔다. 저녁노을에 본 온객행의 얼굴은 조금 붉어서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주자서가 자리에서 일어나 장포를 털고 말했다.
“이 화원에는 계절이 없는 듯합니다. 국화와 모란이 함께 핀 것은 처음 보았어요.”
온객행이 주자서의 팔을 잡아 객실로 향하며 말했다.
“왜 나와 있는가? 안에 있지 않고?”
주자서는 아쉬운 듯 보고 있던 꽃을 향해 고개를 돌리다 별궁으로 들어오는 문간에 모여 있는 군관들을 보았다. 다시 고개를 돌려 온객행에게 몸을 붙이고 물었다.
“혹시 여기 있는 분들도 사람을 드시오?”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바구니를 건네고 어깨에 팔을 두르며 뒤쪽을 노려보고 말했다.
“육신을 먹으면 다행이오. 저들은 혼령을 먹으니 더 위험하지.”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혼령이 먹히면 어떻게 됩니까?”
온객행이 다시 고개를 돌려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글쎄. 세상에서 사라지는 거라고 하던데.”
주자서는 그게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 몰라서 고개를 끄덕였다.

주자서가 온객행이 채집한 약초를 보고 물었다.
“이것은 다 무엇입니까?”
온객행이 객실의 장지문을 열고 주자서를 먼저 들여보낸 후 어깨너머로 여우와 삼족오를 흘겨보고 문을 닫았다. 온객행이 주자서가 탁자 위에 올려 놓은 바구니 안에서 나무뿌리와 잎사귀 같은 것을 대야에 가지고 가서 씻더니 도자기 그릇을 꺼내 화로 위에 올렸다.
“유서가 아프니까 달여 먹이려구.”
주자서가 표정을 구기고 말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약까지 먹어야 할 정도로 아프지 않아요.”
온객행이 하던 일을 멈추고 약초를 보고 서 있는 주자서에게 다가가 말했다.
“유서.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해주게. 흑랑은 모자라서 말해주지 않으면 모르는 바보니까.”
주자서가 시선을 들어 온객행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흑랑께서 모자란다고 하시면 저는 대체….”
온객행이 주자서의 허리를 끌어안고 말했다.
“분에 넘치지. 나의 유서는.”
주자서는 당황해서 온객행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고 밀어낼까 말까 고민하다가 온객행의 등에 손을 얹어 토닥이며 말했다.
“저는 정말 괜찮습니다. 아프면 꼭 아프다고 말씀드릴게요.”
온객행이 주자서의 어깨에 고개를 묻고 고개를 끄덕였다.

간단히 저녁을 먹고 온객행이 달여준 탕약까지 마신 주자서는 대야에 세수를 하고 겉에 입은 장포를 벗어 옷걸이에 걸었다. 객실을 다시 둘러보니 침상만 하나 있고 평상도 없고 딱히 몸을 뉠만한 곳이 없었다. 주자서가 중의를 벗을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데 온객행이 다가와서 주자서가 중의를 벗는 것을 도왔다. 주자서가 옷을 벗고 침상에 걸터앉아 말했다.
“흑랑께서는 어디서 주무십니까?”
온객행이 장포를 벗고 주자서 옆에 가서 앉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조금 피곤한 것 같기도 하오.”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거의 이레 동안 안 주무셨으니까요.”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고 고개를 돌려 주자서를 보았다. 주자서가 팔에 고개를 괴고 생각하더니 말했다.
“번(番)을 설까요? 먼저 주무시겠습니까?”
온객행이 고개를 돌려 조금은 작은 침상을 보고 말했다.
“조금 붙어서 자면 같이 잘 수 있을 것 같은데… 유서는 피곤하지 않은가?”

주자서가 몸을 일으켜 침상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신발을 벗고 침상 위로 올라갔다. 온객행도 입고 있던 중의를 벗어 옷걸이에 걸어 두고 침상에 걸터앉아 신발을 벗었다. 주자서는 침상 안쪽으로 깊숙하게 들어가 몸을 옆으로 뉘었다. 온객행이 조금은 주저하는 듯 침상 위로 올라오자 주자서가 온객행을 쏘아보며 말했다.
“희첩의 일은 하지 않을 것이오.”
온객행이 바로 누우며 말했다.
“유서가 원하지 않으면 나도 원하지 않는다니까.”
그리고 이불을 끌어 덮고 보란 듯이 양손을 얌전히 가슴 위에 올려 두었다. 주자서는 온객행이 하는 것을 한동안 보고 있다가 눈을 굴리고 등을 돌려 누웠다. 온객행이 고개만 돌려 주자서의 등을 보았다.

등만 보는 것이 조금 서운해서 온객행이 몸을 옆으로 누이고 주자서의 등을 끌어안았다. 주자서가 화들짝 놀라더니 온객행의 몸을 팔꿈치로 밀며 말했다.
“무슨 짓이오?”
온객행이 주자서의 등에 뺨을 비비고 말했다.
“부유각에서 했던 것처럼 그러면 안 되겠는가?”
주자서는 온객행의 몸을 밀어내는 것을 멈추고 잠깐 생각하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온객행은 그 허락이 기꺼워서 주자서의 목덜미에 고개를 묻고 주자서를 품에 가두어 안았다. 주자서는 처음에는 불편한 듯 몸을 굳히고 좀 바르작대더니 작게 한숨을 쉬고 잠을 청했다. 주자서의 숨소리가 점점 일정해지고 몸이 부드러워졌다. 주자서의 체온이 살짝 올라가서 온객행에게 조금 뜨겁다고 느껴질 정도가 되었을 때 온객행도 스르르 잠이 들었다. 사람의 체온은 따뜻하고 마음을 달래주어서 온객행의 마음을 조금씩 채운다.


다음날 아침 온객행이 눈을 떴을 때 주요가 주자서에게 주었다는 비녀가 눈에 들어왔다. 조금 푸른빛이 도는 옥으로 만들어진 비녀는 조금 짧았는데 그동안 머리를 매만져주지 않아서 조금 흐트러져 있었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몸에 두르고 있던 팔을 들어 옥비녀를 주자서의 머리에서 빼냈다. 주자서의 머리카락은 금방 흐트러져 내렸다. 온객행은 푸석하게 갈라진 주자서의 머리끝을 보면서 머릿기름을 얻어 발라줘야지 하는 생각을 하며 다시 눈을 감았다. 온객행의 목덜미에 느껴지는 주자서의 숨결이 간지러워서 온객행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온객행은 이불을 끌어 주자서에게 덮어주고 다시 팔을 둘러 주자서를 품에 안았다. 주자서는 잠깐 잠에서 깬 것처럼 몸을 뒤척이다 몸을 웅크리고 온객행의 내의 앞섶에 뺨을 비볐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몸짓이 사랑스러워 낮게 웃고 말았다.

주자서는 뺨에 닿아오는 옷감의 감촉이 익숙한 거친 것이 아니라 잠깐 꿈을 꾸는 줄 알았다. 조금은 서늘한 옷감에 뺨을 비비다 온객행의 낮은 웃음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주자서가 고개를 들어 자기를 안고 있는 온객행을 보고 뺨을 빨갛게 물들였다. 온객행은 일어난 주자서를 다스 추슬러 안고 말했다.
“유서. 조금 더 자게. 우리는 손님이니 더 자도 괜찮아.”
온객행은 속으로 ‘손님이라 하기보다는 볼모에 더 가깝지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조금 더 웃었다. 주자서는 잠이 덜 깼는지 온객행이 하는 대로 가슴에 고개를 기댔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아 말했다.
“이… 이것은.”
온객행이 주자서를 다시 자리에 눕히며 말했다.
“아니네. 희첩의 일이 아니라 그냥 잠을 자는 일이네.”
주자서는 맥이 풀려서 온객행의 팔을 베고 누워 말했다.
“밤 시중이 필요한 것이라면 여인을 구하십시오.”

온객행이 주자서의 가슴에 팔을 올려놓고 말했다.
“현리에게 물어볼 걸 그랬소.”
시원한 온객행의 체온에 다시 스르르 눈이 감긴 주자서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뭘 말이오?”
온객행이 주자서의 뺨에 귓가에 입을 맞추고 작게 속삭였다.
“사내들끼리 어떻게 정을 통하는지 말이야.”
주자서는 한동안 가만히 온객행 품에 안겨 있다가 찬물을 뒤집어쓴 사람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온객행에게 버럭 소리 질렀다.
“온객행!”
온객행이 고개를 팔에 괴고 주자서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응. 유서가 불러주니 더 좋군. 그 이름.”
주자서가 온객행을 넘어 침대에 걸터앉아 신발을 신으며 말했다.
“앞으로는 제가 바닥에서 자겠습니다.”
온객행이 몸을 돌려 주자서의 허리를 안고 말했다.
“찬 바닥에서 어찌 잔다는 말인가?”
주자서가 허리에 매달려 오는 온객행의 손을 잡아떼며 말했다.
“차라리 찬 바닥이 마음이 편할 것 같습니다.”
온객행이 자리에서 일어나 양손에 다 잡히는 주자서의 허리를 잡고 말했다.
“유서 자네 정말 너무 말랐군.”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신발을 신고 탁상으로 가서 찻주전자에 물을 올리고 화로에 불을 붙였다.

주자서가 흘러내린 머리를 정리하며 물었다.
“비녀는 어디 두셨습니까?”
온객행이 침상으로 다가와 머리맡에 두었던 옥비녀를 꺼내 주자서의 머리를 매만지며 말했다.
“목덜미를 가리는 것이 좋겠어요.”
주자서는 고개를 끄덕이고 별말 없이 온객행이 해주는 대로 했다. 온객행도 어제 벗어 놓은 옷을 찾아 중의를 입고 요대를 메고 장포를 둘러 입었다. 주자서는 대야를 찾아 물동이에 물을 채우더니 세수를 하고 옷을 입었다. 온객행이 은은하게 비치는 검은 장포를 주자서에게 둘러주며 말했다.
“이 옷은 정말 너무 야살스러운 것 같네.”
주자서가 얼굴을 구기며 말했다.
“예?”
주자서는 소매를 들어 하얀 중의를 은은하게 비치는 장포를 보았다. 원래 온객행의 몸에 맞춘 옷이라 소매가 길어 잘 정리하지 않으면 금방 주자서의 손을 덮었다. 그렇다고 또 너무 많이 소매를 털면 팔꿈치까지 훤하게 속살이 보였다. 주자서는 살면서 야살스럽다는 소리도 처음 들어 봤지만 옷을 다 입고 있는데 그러니 더욱 황당했다. 주자서가 고개를 흔들며 온객행에게 말했다.
“흑랑께서는 참 취향이 독특하시오.”
주자서가 다회(多繪)로 옷을 잘 추슬러 매고 탁상으로 가서 아직 찻잎을 넣지 않은 끓인 물을 마셨다.

온객행은 뺨을 붉히며 주자서를 빤히 보고 있다가 불쑥 물었다.
“혹 유서는 차를 즐기지 않는가?”
주자서는 조금 뜨끔하여 온객행을 보고 작게 고개를 흔들었다. 온객행이 소매에서 작은 나무함 몇 개를 꺼내 놓고 말했다.
“내가 가진 차는 모두 생차라 그러한가? 향을 맡아보고 골라보게.”
그리고 냄비를 꺼내 찐쌀을 넣고 죽을 끓였다. 주자서는 마셔도 탈이 나지 않는 물만 마셔도 다행인 생활을 너무 오래 해서 고상하게 차 맛을 즐기는 것이 어떤 것이었는지 잊어버렸다. 원래 차를 즐길 만큼 좋은 형편도 아니었고, 가끔 운이 좋으면 감잎이나 모과로 만든 차를 마셨지만 그것도 형편이 좋을 때 이야기였다. 모친께서 덜 여문 월계화를 따다가 말려서 차로 마시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주자서가 고개를 돌려 온객행에게 물었다.
“월계화도 차로 마시는 것을 아시오?”
온객행이 죽이 담긴 그릇에 껍질을 깐 연실을 넣고 말했다.
“알지요. 어혈을 풀어주어 여인에게 좋은 차입니다.”
주자서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습니까?”
주자서는 모친께서 알고 그렇게 하셨는지 아니면 정말 좋아하셨는지 알 수 없어서 죄스러워졌다. 조금 풀이 죽은 주자서의 기색을 눈치챈 온객행이 물었다.
“월계화를 좋아합니까?”
주자서가 온객행이 늘어놓은 차함의 뚜껑을 열어 향을 맡아보며 말했다.
“제가 아니라 모친께서.”
온객행이 고개를 갸웃하고 말했다.
“아상이 월계화를 좋아한다구요? 몰랐습니다.”
주자서가 얼굴을 구기고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 모친 말고 진짜 모친 말이오. 낙읍에 계시는.”
온객행이 주자서 옆에 어깨를 붙여 앉고 말했다.
“아. 찾아뵈어야 하는데. 유서의 몸이 다 나으면 찾아가 뵙시다. 그리고 태평호에서 같이 살아요.”
주자서가 고개를 돌려 온객행을 마주 보고 물었다.
“그리 하시겠습니까?”
모친과 함께 태평호에 산다면 주자서가 그리던 공상에 조금은 가까워질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고개를 기울이더니 물었다.
“제가 다 나아요? 제가 어디 아픕니까?”

온객행이 그릇에 죽을 퍼 담고 입으로 ‘후후’ 불며 말했다.
“후우. 발의 영력을 다른 데로 옮겨야지요. 그러다 봉인이 깨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요.”
어제 금모원군께서 주요가 봉인을 깨뜨렸다고 했다. 주자서의 영력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혼을 본 것이라면 발의 영력까지 닿지 못했을 텐데 어쩌다 봉인을 건드리게 된 걸까? 주자서가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쉬더니 물었다.
“봉인이 깨지면 어떻게 됩니까?”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그릇을 내밀고 말했다.
“유서. 걱정 마세요. 내가 그대의 일은 나의 일이라고 했잖아요.”
주자서는 온객행의 다정한 목소리에 위로가 되어 부스스 웃으며 말했다.
“나의 일인데 어째 제가 제일 모르는 것 같습니다.”
주자서가 온객행에게서 그릇을 받아 숟가락을 들었다. 온객행이 자기 몫의 그릇을 퍼 담아 ‘후후’ 식히며 말했다.
“촉룡께서는 틀린 말은 하지 않으시니 걱정 마세요.”
둘은 탁상에 마주 앉아 조용히 죽을 먹었다.


주자서가 식사를 거의 마쳤을 때에 밖이 소란스러웠다. 온객행은 먹던 그릇을 내려놓고 표정을 구기며 장지문으로 다가갔다. 온객행이 장지문에 닿기도 전에 장지문이 벌컥 열리고 새하얀 머리의 노인이 하얀 깃털 옷을 입고 들어와 소리쳤다.
“발의 후손은 어디 있느냐?”
온객행이 소매를 들어 공수하여 인사하고 말했다.
“흑망. 산천대제를 뵙습니다.”
산천대제는 온객행의 인사도 받지 않고 탁상 근처에 앉아 있는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아자(兒子). 네가… 네가 발의 아이구나.”
주자서는 인사를 하고 있는 온객행을 힐끔 보고 일어서서 소매를 들어 공손히 인사하며 말했다.
“기산의… 아… 흑망의 내자 유서(柳絮). 산천대제를 뵙습니다.”
주자서의 소개에 산천대제가 주자서에게 다가가는 것을 멈추고 온객행을 보고 표정을 구겼다.
“흑망의 내자?”
문밖에서 공공이 다급하게 객실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동왕공(東王公), 동왕공 일단 제 말을….”

산천대제가 온객행에게 다가가 말했다.
“너는 촉룡의 제자가 아니었던가? 어찌 발의 아이를 내자로 들였지?”
온객행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스승님께서 허락하셔서 종화산에서 가약(佳約)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주자서를 보고 얼굴을 붉혔다. 산천대제가 눈을 가늘게 뜨고 온객행을 보다가 성큼 걸어서 주자서의 손목을 낚아채 밖으로 끌고 나가며 말했다.
“어찌 발의 아비인 황룡의 허락도 없이 혼인을 한다는 말인가? 그런 법도 들어본 적이 없네.”
주자서는 산천대제에게 끌려 나가면서 온객행의 소매를 잡았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따라 나가며 말했다.
“대제. 유서는….”
주자서가 남궁에서 별궁으로 이어지는 문 앞까지 끌려 나가서야 금모원군이 모습을 드러냈다. 중궁에서 보았던 파란 옷을 입은 여인과 검은 깃털 갑옷을 입은 여인이 산천대제의 길을 막았다. 산천대제가 금모원군을 보고 말했다.
“서왕모. 이것은 무슨 뜻인가?”
금모원군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동왕공. 그 아이도 희첩으로 두시려고요?”

산천대제가 주자서의 손목을 놓고 말했다.
“부인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전부 오해예요.”
금모원군이 ‘하’하고 헛웃음 치고 말했다.
“남에 것을 그렇게 탐하셔서 그 자리를 어찌 보전하시려고 그러십니까?”
산천대제가 표정을 구기고 말했다.
“부인께서 계시는데 제가 무슨 걱정입니까?”
금모원군이 눈을 굴리며 고개를 흔들고 말했다.
“사방신은 어쩌시고 혼자 오셨어요?”
산천대제가 그제야 자신이 금모원군의 요대에 혼자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는 지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말했다.
“그들은 각자 맡은 일이 바빠서….”
금모원군이 산천대제의 말을 끊고 말했다.
“격년에 한번 보는 것도 저는 벅찹니다. 이렇게 마음대로 찾아와서 저의 궁을 어지럽히시면 저라고 어찌 가만히 있겠습니까?”

산천대제가 금모원군을 힐끔 보고 다시 주자서의 손목을 잡고 말했다.
“아무튼 이 아이는 제가 데려가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금모원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게 하세요.”
온객행이 주자서를 품에 안고 말했다.
“원군!”
금모원군이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그 아이는 흑망의 내자이니 흑망도 같이 데리고 가셔야 하겠네요.”
산천대제가 주자서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아가. 내가 너의 아비에게 데려다주마. 나와 가자.”
주자서가 고개를 돌려 온객행을 보았다. 산천대제가 주자서의 턱을 잡아 쥐고 말했다.
“내가 너에게 지금 말하고 있지 않느냐!”
온객행이 산천대제 앞에 넙죽 엎드려 큰 소리로 말했다.
“산천대제께서 어찌 흑망의 내자를 함부로 범하십니까?”
온객행의 목소리에 주변에서 소란을 지켜보던 크고 작은 신선들이 하나둘 별궁으로 몰려 들었다. 산천대제는 온객행의 말에 당황하여 주자서를 놓아주고 말했다.
“흑망! 그게 무슨 소리인가? 내가 어찌?”
주변에 있던 신선이 표정을 구기며 속닥였다. ‘동왕공은 손버릇이 안 좋으시지….’ 주변에 있던 다른 신선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는 분위기가 되자 산천대제는 당황한 듯 금모원군에게 다가갔다.

금모원군이 푸른 옷을 입은 여인과 검은 깃털 갑옷을 입은 여인에게 말했다.
“청구(靑丘), 양조(陽鳥) 너희들이 나의 못난 부군을 중궁까지 모셔야겠다.”
그리고 산천대제를 쏘아보고 고개를 돌려 중궁으로 향했다. 청구가 산천대제에게 다가가 말했다.
“동왕공. 원군께서 말씀하신 대로 따르시지요.”
양조가 작게 코웃음 치며 말했다.
“발의 아비에게 데려가시겠다니. 마치 황룡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는 것 같습니다?”
공공이 산천대제를 부축하며 말했다.
“양조, 그게 대체 무슨 말인가? 황룡이 어찌 감히 다시 하늘과 내통한다는 말이야?”
산천대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공공의 부축을 받으며 별궁을 나갔다. 청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황룡이 요대에 발을 붙이는 순간이 마지막 숨을 쉬는 순간일 것입니다.”
공공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황룡에게 원한이 있는 자가 어찌 청구뿐이겠는가?”
양조가 웃으며 말했다.
“서왕모께서 황룡이 사라지길 원하셨다면 황룡이 아직까지 살아있을 수 있었을까요?”
산천대제가 불편한 듯 헛기침을 했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품에 안고 별궁을 나가는 산천대제를 보았다. 산천대제는 나가다가 고개를 돌려 온객행의 앞섶을 잡고 떨고 있는 주자서를 보았다. 그의 눈에 일렁이는 탐욕이 보여 온객행은 헛웃음이 났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몸에 팔을 두르고 그의 귓가에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유서. 괜찮아. 내가 있잖아.”
온객행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별궁 문을 나가는 산천대제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온객행은 만약 필요하면 당장 주자서를 데리고 종화산으로 망명도주(亡命逃走)할 생각이다. 촉룡께서는 세속에 관심이 없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만큼 자신의 지켜보는 일이 소중하신 분이라 자기 일을 방해받는 것을 싫어하셨다. 촉룡께서는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고 간섭하시는 것을 싫어하시니 저들이 계속해서 스승님을 괴롭히면 스승님께서도 가만히 있지 않으실 것이다. 과거 공공께서 촉룡의 힘을 도발했다가 천궁에서 쫓겨나 사흉이 된 것을 안다면 함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주자서를 붙잡았던 하얀 깃털 옷을 입은 남자의 눈은 심욕(心慾)과 야욕(野慾)으로 가득 차 있었다. 주자서와 그의 동료를 사지(死地)로 몰아넣은 장수의 눈과 같은 눈이다. 주자서는 손이 떨리는 것을 감추기 위해 온객행의 앞섶을 더 꼭 쥐어 잡았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귓가에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유서. 괜찮아.”
온객행의 목소리에 안심이 되는 것이 터무니없고 기가 막혀서 주자서는 헛웃음이 나왔다. 주자서는 작게 숨을 헐떡이다 ‘컥컥’ 대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등을 쓸며 말했다.
“유서. 괜찮아.”
주자서가 좀처럼 진정하지 못하자 온객행이 주자서의 뺨을 손에 가두고 말했다.
“유서.”
주자서는 온객행의 손을 잡고 눈을 감고 진정하려고 애썼다.

공포감으로 휩싸인 주자서의 마음이 자꾸만 주자서의 의식을 점멸하게 만들었다. 온객행은 헐떡이는 주자서가 가여워 이마를 붙이고 주자서의 이름을 부르다 주자서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한동안 입을 맞추다 주자서의 숨이 조금 멈추자 온객행은 입술을 떼고 말했다.
“유서. 내가 아프면 꼭 이렇게 해줘야 해.”
그리고 다시 입술을 붙였다. 또 한참 입술을 맞붙이던 온객행이 주자서가 축 늘어지자 그를 놓아주었다. 주자서가 작게 숨을 몰아쉬며 온객행을 보았다.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봐. 이렇게 하면 금방 안 아파.”
주자서는 지금 이 상황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蛇苺 第16

上屋抽梯 | 16. 지붕에 올려놓고 사다리를 치우다.

대려와 소려는 온객행을 흘겨보더니 옆에 서 있는 주자서를 위아래로 품평하듯 보았다. 청조가 말했다.
“물비린내가 진동을 하는군.”
청조는 온객행의 말을 듣지도 않고 요대의 대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대려와 소려가 온객행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자서에게 말했다.
“그대는 사람으로 요대를 방문하는 것이니 이 구슬을….”
소려가 주자서의 머리에 꽂혀 있는 비녀를 보고 말했다.
“교견자(咬鹃姊). 주요의 비녀가 있어요.”
대려가 고개를 돌려 주자서의 머리에 꽂혀 있는 비녀를 보고 ‘흠’ 하더니 손에 들고 있던 구슬을 다시 품속에 넣고 말했다.
“금모원군께서 기다리고 계시니 중궁(中宮)으로 가지.”
그리고 몸을 돌려 회랑으로 향했다. 주자서는 태연이라고 하여 연못 안에 궁궐이 있는 것 인 줄 알았는데 서왕모의 요대는 구름 위에 있었다.

크고 작은 전각이 있고 그 앞에는 옥산에 들어와서 만났던 이처럼 등에 검은 날개가 달린 깃털 갑옷을 입은 군병 여럿이 대문을 지키고 있었다. 그들을 데리고 가는 대려와 소려의 지위가 높은 것인지 군병들이 고개를 조아려 인사했다. 온객행과 주자서가 지나칠 때마다 그들을 빤히 보았다. 주자서는 조금 겁이 나서 온객행의 소매를 잡았다. 온객행은 소매를 잡아 온 주자서의 손을 보고 배시시 웃더니 주자서의 손을 맞잡고 그를 자기 쪽으로 조금 끌어당겼다. 거의 반 시진 정도 회랑을 걸어 커다란 대문 두 개를 더 지나 중궁에 도착했다. 중궁이라고 불리는 정전(正殿)은 그 크기가 정말 궁궐 같았는데 그 주변에도 검은 깃털의 군병이 지키고 있었다. 대려가 정전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서 있는 푸른 갑옷을 입은 여인에게 말했다.
“주유(朱獳). 흑망이 원군을 뵙고자 청합니다.”
주유는 온객행을 흘끔 보더니 큰 목소리로 말했다.
“서호의 흑망! 태허구광구대금모원군 (太虛九光龜臺金母元君)의 근광(覲光)을 청합니다!”
곧 대전의 문이 열리고 안에서 연한 초록빛 옷을 입은 시동(侍童) 둘이 나와 온객행에게 말했다.
“흑망은 대전으로 들어오시게.”

온객행은 옆에 서 있는 주자서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괜찮아. 너의 일은 나의 일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그리고 귓가에 입을 맞췄다. 주자서는 깜짝 놀라 펄쩍 뛰더니 온객행을 흘겨보며 말했다.
“이 상황에 희롱이시오!”
온객행이 낮게 웃으며 고개를 돌려 대전 안으로 발을 옮겼다. 주자서가 온객행에게 잡힌 손을 빼려고 했지만 온객행은 놓아주지 않았다. 정전 안으로 들어가니 옥으로 만든 커다란 기둥에 천장에는 온갖 보옥으로 그려진 여우와 삼족오가 보였다. 금으로 만든 촛대가 곳곳에 있어 내실을 밝혀 주었는데 내부에 있는데도 마치 밖에 있는 것처럼 밝았다. 은은하게 푸른 빛을 발하는 기둥이 마치 하늘에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다. 주자서는 아름다운 대궐의 모습에 잠시 넋이 나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초록빛 옷을 입은 시동 여럿이 여기저기서 각자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었고 푸른색 갑옷을 입은 여인들이 열두 개의 옥으로 만든 기둥 앞에 서 있었다. 그 여인들을 지나 정전의 상석에는 오색으로 빛나는 옥을 호랑이와 용이 받들고 있는 모양으로 조각한 용호좌(龍虎座)에 아름다운 여인이 흐트러진 차림새로 누워 있었다. 그녀의 왼쪽에는 푸른색 옷을 입은 아름다운 여인과 오른쪽에는 칠흑의 깃털 갑옷을 입은 여인이 서 있다. 온객행은 상석으로 올라가는 계단 바로 앞에 있는 향로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주자서의 손을 놓고 소매를 들어 인사했다.
“서호의 흑망 원군을 뵙습니다.”
주자서도 두리번거리는 것을 멈추고 온객행 옆에 서서 손을 모아 공손히 인사했다.

용호좌에 앉아 있는 금모원군이 고개를 돌려 온객행과 주자서를 보았다. 금모원군의 옷은 입은 듯 벗은 듯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었고 그녀의 머리에 화려한 장식이 칠흑 같은 머리카락과 함께 흐트러져 내리고 있었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앉으려고 하자 상석 아래에 있던 초록색 옷을 입은 시동이 그녀의 시중을 들었다. 금모원군이 작게 웃더니 시동에게 말했다.
“섬여(蟾蜍), 가서 공공을 모셔 오너라.”
섬여는 여인에게 조아리고 상석에서 폴짝 뛰어내려 작은 다리로 달려서 정전을 나갔다. 금모원군이 일어나서 앉자 그녀가 입고 있던 옷이 영비(靈飛)처럼 날려 그녀의 주변을 에워쌌다. 금모원군이 온객행에게 말했다.
“흑망. 천존께서 그대에게 하명하신 일은 어찌하고 여기 계십니까?”
온객행이 머리를 조아리고 말했다.
“미천한 저에게 어찌 중하(重荷)를 지우십니까.”
금모원군이 ‘하하하’ 하고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상석의 계단을 내려오며 말했다.
“오늘 취수(翠水)를 건너 흑룡이 되시겠습니까?”
온객행이 자리에 무릎 꿇고 말했다.
“원군께 청이 있어서 왔습니다.”

금모원군이 계단을 내려와 온객행 옆에 눈치껏 무릎 꿇은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하늘이 너에게 죄를 지었구나.”
주자서는 촉룡과 같은 말을 하는 금모원군을 고개를 들어 보았다. 금모원군은 주자서의 뺨에 손을 올리고 눈을 감았다. 주자서는 뺨에 닿는 느낌이 없어서 어리둥절했다. 온객행이 머리를 바닥에 붙이며 말했다.
“저의 내자를 도와주실 수 있는 것은 원군뿐입니다.”
다시 떠진 금모원군의 눈은 새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금모원군이 주자서에게 손을 떼고 웃으며 말했다.
“촉룡께서는 뭐라고 하셨지?”
주자서가 금모원군의 빛나는 눈을 보고 홀린 듯 말했다.
“발의 힘에는 이미 주인이 있어 거둘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금모원군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흠’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그렇다면 나도 도와줄 수 없겠군.”
주자서는 넋을 놓고 금모원군을 보고 있다가 갑자기 앞으로 풀썩 고꾸라졌다.

금모원군이 다시 상석을 오르며 말했다.
“용케 발의 영력을 버티고 있군.”
온객행이 놀라서 쓰러진 주자서를 품에 안고 말했다.
“제발 원군. 저의 내자를 도와주세요.”
금모원군이 온객행의 말에 고개를 꺾어 ‘하하하’ 웃고 용호좌에 앉으며 말했다.
“내자?”
그리고 조금 더 웃었다. 곧 밖에서 주유가 다시 기별해왔다.
“공공께서 금모원군께 근광(覲光)을 청합니다.”
금모원군은 정전으로 들어오는 문을 보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상석 아래에 있던 초록색 옷을 입은 시동이 정전의 장지문으로 달려가 문을 열고 공공을 맞이했다. 공공이 대전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흑망이 왔다고요?”
공공이 주자서를 안고 있는 온객행을 발견하고 말했다.
“흑망. 그 아이가?”
금모원군이 용호좌에 앉아 말했다.
“공공. 내가 이겼으니 현주(玄珠)를 어서 내놓게.”
공공이 흑망에게 다가가 말했다.
“설마 벌써 취하였느냐?”

온객행은 주자서를 추슬러 안고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공공.”
공공이 온객행 앞에 쪼그리고 앉아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예를 거둬라. 흑망. 벌써 취했느냐? 촉룡께서 허락하셨는가?”
온객행이 고개를 들어 공공을 보고 말했다.
“무슨…?”
온객행이 주자서를 품에 끌어안은 것을 보고 공공이 자리에서 일어나 금모원군에게 공수하여 인사하고 말했다.
“원군. 한시름 놓았습니다.”
그리고 품속에서 검은 구슬을 꺼내더니 같이 들어온 섬여에게 구슬을 건넸다. 섬여는 공공에게 받은 구슬을 들고 폴짝 뛰어 상석에 있는 금모원군에게 바쳤다. 금모원군은 구슬을 들어 손안에서 굴리더니 말했다.
“흠… 예상했던 것 보다 더 별거 아니군.”
공공이 눈을 굴리며 말했다.
“그럼 다시 돌려주시지요!”
금모원군이 공공을 보며 말했다.
“주었다 뺏는 법이 어디 있는가?”
그리고 온객행의 품에 있는 주자서에게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주요가 봉인을 깨는 바람에 시간이 얼마 없어.”

공공이 고개를 돌려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이 자가 발이 되는 겁니까?”
금모원군이 고개를 흔들고 말했다.
“아니 될 소리를. 사내가 어찌 태양신이 된다는 말인가? 그대는 태초의 가뭄을 잊었는가?”
공공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그러면…?”
금모원군이 휘우듬하게 몸을 기대며 말했다.
“촉룡께서 발의 힘은 이미 주인이 있다고 하니 기다리면 될 듯하네.”
공공이 금모원군을 보고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상류에게서 기별이 왔는데 아무래도 산천대제께서 아신 것 같습니다.”
금모원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천룡을 보내기를 잘 한 것 같아. 그 아이는 입이 가벼우니까. 주요가 붙잡는다고 애를 썼겠군.”

공공이 금모원군에게 말했다.
“천도연(天桃宴)에 부르시지요.”
금모원군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수원은 내가 보고싶다고 해도 나를 만나러 오지 않는걸.”
금모원군이 공공을 보고 말했다.
“그대가 화사를 부르면 또 모를 일이지만.”
공공이 소매를 들어 공수하고 말했다.
“당장 부르겠습니다. 당장 고상을 부르지요.”
금모원군이 ‘까르르’ 웃으며 말했다.
“그래. 주요는 다정하니까 화사를 이 교활한 노인네들 소굴에 혼자 보내지는 않겠지.”
그리고 옆에 있는 섬여에게 손짓하더니 시동의 귀에 뭔가를 속삭였다. 시동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상석을 내려와 온객행에게 말했다.
“흑망공자. 따라오시지요.”
그리고 정전을 나갔다. 온객행은 쓰러진 주자서를 들어 품에 안고 금모원군과 공공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섬여를 따라 나갔다. 섬여는 폴짝폴짝 뛰어서 남궁(南宮)으로 향했다. 남궁의 서쪽에는 요지(瑶池)라 불리는 아름다운 연못이 있고 동쪽에는 서왕모의 손님이 머무는 별궁이 있었다. 섬여는 그들을 별궁으로 안내하며 말했다.
“서왕모께서 미월(未月 음력 6월) 보름에 천도연을 베푸십니다. 그때까지 별궁에서 지내시면 됩니다.”

온객행이 물었다.
“저의 내자의 몸이 좋지 않은 것 같은데… 요대에 사람의 의술을 하는 자는 없습니까?”
섬여가 코웃음 치며 말했다.
“요대에 사람이 없는데 어찌 사람의 의술을 아는 자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어깨너머로 주자서를 보더니 말했다.
“지백(岐伯)이라도 불러 드리지요.”
온객행이 고개를 조아리고 섬여에게 인사했다.
“부탁드립니다.”
섬여가 별궁에 도착해 동문 근처에 있는 허름한 객실로 온객행을 안내하며 말했다.
“이번에도 말썽을 부리면 다시는 요대에 못 들어올 줄 아시오.”
온객행이 실내로 들어가 주자서를 침상 위에 눕히고 말했다.
“내자만 나으면 오래 머무를 마음도 없습니다.”
섬여가 문간에 서서 온객행이 하는 것을 보더니 말했다.
“그자가 발의 후손이오?”
온객행이 주변을 돌아보더니 대야에 물을 채우고 품속에서 영견을 꺼내 적셔서 주자서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온객행이 하는 것을 보던 섬여가 ‘흥’하고 코웃음을 치고 객실을 나갔다. 온객행은 힐끔 어깨너머로 문간을 보고 다시 주자서의 손을 잡아 손도 닦아주었다.


주자서는 금모원군의 영력에 눌려서 정신을 잃은 것 같았다. 주자서에게 묻는 것보다 그의 영혼을 들여다보는 것이 더 빠르고 정확했을 테니 그렇게 하신 것이겠지만 발의 영력이 봉인되어 있는 주자서의 몸은 보통 사람과는 조금 달라서 그 상태가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알 수 없는 온객행은 애가 탔다. 금모원군과 공공의 대화를 미루어 봤을 때 주자서가 태평호로 흘러 들어온 것은 우연(偶然)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저를 두고 현주를 걸고 내기를 한 것 같은데 내용을 모르니 기분만 나쁘고 마는 것이다. 온객행은 침상에 누워있는 주자서의 얼굴을 쓸며 생각했다. ‘그래도 유서를 얻었으니 기분 좀 나쁜 것쯤이야 일도 아니지.’ 온객행은 침상에 올려진 주자서의 손을 잡았다.
“유서. 아프지 말게. 우리의 한 갑자는 너무나도 짧은데… 그대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리고 주자서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문간에서 누군가가 기별했다.
“흑망공자.”
온객행은 아쉬운 듯 주자서의 손을 놓아주고 장지문을 열었다.

하얀 머리가 성성한 노인이 손을 모으고 인사했다.
“흑망공자. 지백 인사 올립니다.”
지백은 황제가 하늘에서 쫓겨나 땅으로 내려갔을 때 사람에게 의술을 가르쳤는데, 그 중에 가장 뛰어났던 사람이다. 황룡은 지백을 금모원군께 바쳤다. 삶과 죽음의 신인 금모원군에게 딱히 필요한 사람도 아니었고, 하늘에서의 황제의 평판이 그다지 좋지 못해 겨우 요대에 눈치를 보며 붙어살고 있는 귀신이다. 온객행도 그와 처지가 다르지 않아 마음이 착잡했다. 온객행이 손을 모아 인사했다.
“지백. 어서 들어오게.”
지백이 침상 쪽을 보고 물었다.
“저 분이 아씨의 후손입니까?”
지백은 황제의 신하였기 때문에 황제의 딸인 발과도 아는 사이였다.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고 침상 앞으로 다가가 의자를 놓고 말했다.
“원군께서 영혼을 보셔서 조금 놀란 것 같은데 또 모르는 일이니….”

지백이 고개를 끄덕이며 온객행이 놓은 의자에 가서 앉아 주자서의 맥을 짚었다. 온객행은 지백이 주자서의 몸을 만지는 것이 불쾌하다는 생각이 치밀었다. 온객행은 소매에서 다구를 꺼내 차를 내렸다. 온객행이 화로를 찾아 불을 붙이고 물 주전자에 물을 채워 물이 거의 끓었을 즈음 지백이 자리에서 일어나 온객행에게 말했다.
“기력이 과하여 실증(實症)이 드셨습니다. 아마 많이 힘드셨을 텐데….”
온객행이 주자서의 발치에 앉아 그의 몸에 이불을 덮으며 말했다.
“항상 괜찮다는 말 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 조금 더워하고 음식을 잘 먹지 못했습니다.”
지백이 주자서의 얼굴을 보더니 그의 눈과 입안을 보고 말했다.
“아마 소화가 잘 안되어서 뭐든 먹고 싶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묽은 죽이나 물, 차 정도 밖에 먹지 않았습니다.”
지백은 가지고 들어온 찬합에서 작은 영견과 지필묵을 꺼내 처방전을 썼다.

지백은 온객행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말이 좋아 손님이지 요대에 감금당한 처지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요대 근처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약초들을 잘 조합하여 처방전을 적었다. 그리고 온객행에게 건네고 말했다.
“양기 발산을 돕는 약초들이니 달여서 먹여 보십시오. 몸에 봉인된 아씨의 영력이 사람의 장기(臟器)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온객행이 지백이 써준 처방전을 받아 들고 말했다.
“정말 고맙네. 내 처지가 이래서 사례할 것도 마땅하지 않군.”
지백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덕분에 아씨의 후손을 뵈었으니 자주 뵙게 해주십시오. 저에겐 그보다 더한 복이 없습니다.”
온객행이 지백에게 차를 권하자 지백이 차를 거절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온객행은 지백이 들고 들어온 의함(醫函)을 대신 들고 그가 나가는 길을 배웅하며 말했다.
“언제라도 들러 주게.”
온객행이 의함을 지백에게 건네고 소매에서 작은 찬합을 꺼내며 말했다.
“지백. 이것은 별것 아니지만 받아주게. 태평호에서 딴 연잎차네.”
지백이 작은 함을 두손으로 받고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흑망공자. 도울 일이 생기시면 꼭 알려주십시오. 저는 남쪽 수구문(水口門) 근처에 있는 작은 연못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동정호에서 온 잉어들을 돌보고 있지요.”
온객행이 주자서가 누워있는 침상 쪽을 보고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잉어인가?”
지백이 ‘허허허’ 웃으며 말했다.
“예. 요대에서 수구문에 있는 잉어 숫자를 알고 있는 것은 지백 혼자입니다.”
온객행이 지백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그래. 기운을 차리면 꼭 들르겠네.”
지백은 온객행의 손에 들려 있는 찬합을 들고 가는 길에 몇 번 뒤 돌아서 온객행에게 인사했다. 아마 지백은 누군가와 대화한 것이 참으로 오랜만일 것이다. 황룡이 저지른 짓은 황룡을 모시던 많은 이들을 곤란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침상위에서 뒤척이는 주자서를 보고 온객행은 혹시 유서가 밥때를 놓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인가 싶어 소매에서 재료를 꺼내 죽을 끓이기 시작했다. 주자서는 담백하게 간하지 않은 죽을 제일 잘 먹었다. 잘 먹는다는 것이 태평호에 처음 왔을 때처럼 기력을 차리기 위해 열심히 먹었던 것과 비교하면 보잘것없는 것이라 온객행은 걱정이 되었다. 그냥 다른 음식보다 조금 더 먹는 수준이다. 물고기를 잡아 주면 곧잘 먹었는데 요대를 떠나기 전에 지백에게 들러 잉어를 먹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온객행은 소매에서 주자서가 산 묵은 찐쌀과 연실, 우두를 넣고 죽을 끓였다. 얼추 익어 딱 먹기 좋을 때 주자서가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온객행이 얼른 다가가 주자서를 일으키며 물었다.
“유서. 괜찮은가?”
주자서가 자리에서 일어나 앉자 온객행이 내려놓았던 조금 식은 차를 입가에 대주었다. 주자서는 찻잔을 받아 마시고 목을 가다듬고 물었다.
“여기는…?”
온객행이 다 잠긴 주자서의 목소리에 낮게 웃으며 말했다.
“여긴 요대의 별궁이오.”
온객행이 주자서가 들고 있는 찻잔에 찻물을 더 담고 끓이던 죽을 ‘후후’ 불며 가져와 말했다.
“유서. 하루에 세 번 밥을 먹지 않아서 아픈 것이네. 그러니 끼니를 거르지 않는 것이 좋겠어.”
주자서는 들고 있던 찻잔을 마시고 온객행에게 건네고는 죽그릇을 받아서 들고 ‘후후’ 불더니 죽을 먹었다.

온객행이 주자서가 거의 비운 그릇에 죽을 더 덜어주려고 하자 주자서가 고개를 흔들고 말했다.
“충분합니다. 온공자께서는 안 드십니까?”
온객행이 주자서 옆에 앉아 주자서의 죽그릇을 들고 말했다.
“내가 같이 먹었으면 좋겠는가?”
주자서는 아직 정신이 없는지 눈을 깜빡이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알겠네. 앞으로는 같이 먹지.”
그리고 주자서를 일으켜 탁상에 데려와 앉히고 죽을 조금 더 덜어주며 말했다.
“나는 혼자 먹고 싶지 않으니 유서가 좀 도와주게.”
주자서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기 몫의 그릇을 들고 죽을 조금 더 먹었다. 온객행은 기분이 좋아져서 식지도 않은 죽을 먹으려다 입을 데었다.
“아!”
주자서가 놀라서 온객행을 보고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온객행이 입가에 손을 가져가 입을 가리고 고개를 흔들었다.

주자서가 자리에서 일어나 온객행에게 다가가 손을 치우고 입가를 보았다. 살짝 붉게 변한 입술은 사실 멀쩡해 보였다. 주자서가 붉게 변한 입술을 손가락 끝으로 쓸었다.
“데이기도 하는군요.”
온객행이 주자서를 한참 올려 보다가 입가를 매만지는 주자서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
“아파.”
주자서가 손을 떼고 말했다.
“데였으니 식혀주어야지요.”
그리고 온객행의 입가에 ‘호’ 하고 숨을 불었다. 온객행은 마음이 간질간질해져서 주자서가 하는 것을 보고 있다가 벌떡 일어나서 주자서의 뺨을 잡고 입을 맞추었다. 입술을 핥다가 ‘앗’ 하는 소리와 함께 주자서의 입 안으로 온객행의 혀가 들어왔다. 치열을 훑더니 입천장을 쓸고 혀를 빨았다. 온객행의 손을 떼려고 몸부림치던 주자서는 다리에 힘이 풀려 풀썩 주저앉았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따라서 바닥에 앉아 그의 몸에 팔을 두르고 그의 입술을 조금 더 핥았다. 주자서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오… 온공자….”
온객행이 주자서와 이마를 맞대고 말했다.
“이제 안 아픈 것 같아.”
주자서는 얼굴이 빨개져서 고개를 돌렸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목덜미에 희미하게 남은 잇자국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내가 아프면 이렇게 해주게. 그럼 하나도 안 아플 것 같아.”
그리고 주자서의 목덜미에 입을 맞췄다. 주자서가 온객행의 얼굴을 밀며 물었다.
“혼인까지 했는데 표식이 필요합니까?”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힐끔 본 온객행의 눈에 흰자위가 없다. 주자서는 한동안 온객행의 눈을 빤히 보다가 온객행의 눈 위로 손을 올렸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온기에 눈을 감았다가 그의 손이 떨어지는 것이 아쉬워서 작게 탄식하며 눈을 떴다. 다시 떠진 온객행의 눈은 사람의 것과 같아서 주자서가 배시시 웃었다. 주자서가 웃는 모습에 온객행의 눈이 다시 새카맣게 물들었다. 온객행이 다시 주자서의 입술을 찾았다.

고개를 돌리려는 주자서의 턱을 잡고 온객행이 말했다.
“아직 더 아픈 것 같은데….”
그리고 주자서의 입술을 탐했다. 탐하면 탐할수록 부족해서 마치 바닷물을 마시는 것 같다. 방금 마셨는데도 갈증은 멈추지 않고 더 갈망하게 된다. 주자서의 몸에 힘이 쭉 빠져 축 늘어질 때까지 괴롭히던 온객행이 주자서를 일으키며 말했다.
“나는 아직 아픈 것 같은데….”
주자서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하아… 하아… 이건 희첩의 일이 아닙니까?”
온객행이 주자서를 자리에 앉히고 자기도 자리에 앉아 죽그릇을 들고 말했다.
“희첩의 일이 곧 부인의 일이지요.”
주자서가 찻주전자를 집어 차를 따르고 마시며 말했다.
“소첩은 소박맞고 싶습니다.”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죽그릇을 밀어 식사를 종용(慫慂)하며 말했다.
“어찌 얻은 부인인데 박대한다는 말이오?”
주자서가 다시 숟가락을 들고 죽을 뜨며 말했다.
“부인한다고 한적 없는데….”

주자서의 불평하는 소리에 온객행이 눈썹을 늘어뜨리고 울상을 만들어 말했다.
“유서. 그대에게 내가 많이 부족한 것을 알고 있네.”
주자서가 부루퉁하게 온객행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온객행이 죽그릇을 내려놓고 물었다.
“어찌하면 그대 마음을 채울 수 있겠는가?”
온객행이 자리를 옮겨 주자서 옆에 어깨를 붙이고 앉아서 기대고 말했다.
“유서는 어떤 반려를 원하는가? 말해보게.”
주자서도 징병 당하기 전까지는 참한 여인과 가정을 이루는 꿈을 꾼 적이 있었다. 사는 곳이 멀지 않은 여인으로 홀어머니인 모친께서 서운하지 않으시게 처가의 식구들과 함께 의지하며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부인께서 아이를 원하면 사내아이는 징집의 대상이 되니 딸아이였으면 좋겠다는 그런 막연하고 어렴풋한 공상(空想). 주자서는 부스스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평범하고 무난한 생활과는 한참 거리가 먼 곳에 있었다. 지금 주자서는 금모원군의 궁궐인 요대에 있다.

주자서의 불안을 느낀 온객행이 죽그릇을 내려놓고 주자서의 몸에 팔을 둘러 안고 말했다.
“유서. 제가 맞추겠습니다. 제가 옆에 있겠습니다.”
주자서는 언젠가 그런 소리를 들은 것 같기도 하여 기시감이 들었다.
“온공자….”
하고 운을 띄우려는 주자서를 멈추고 온객행이 말했다.
“그렇게 부르는 것은 법도에 맞지 않으니…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요?”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고 말했다.
“그래도 나를 부인이나 내자라고 부르는 것은 그만두시오.”
그리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목덜미에 고개를 기대고 말했다.
“그럼 부군(夫君)이라고 불러주세요.”

주자서가 얼굴을 구기고 고개를 흔들었다.
“싫소. 나는 그냥 유서라고 부르시오.”
온객행이 주자서를 불렀다.
“유서.”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흑랑(黑郞).”
흑망은 온객행이 별로 좋아하는 이름이 아니었는데 주자서가 그렇게 부른다고 하니 또 다르게 들렸다. 온객행의 세상이 그의 생각이 주자서로 인해 변하고 있다. 온객행이 배시시 웃으며 주자서의 목덜미에 뺨을 비볐다.
“유서.”
주자서가 웃으며 말했다.
“마음에 드시오? 흑랑?”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유서. 흑랑이 앞으로 잘하겠네.”
주자서가 온객행을 힐끔 보더니 말했다.
“잠깐 신세 좀 집시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말에 서운한 듯 아쉽게 웃었다.

蛇苺 第15

瞞天過海 | 15. 하늘을 속이고 바다를 건너다.

온객행은 가져온 함을 열어서 그 안에 들어 있는 것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촉룡은 이미 모두 보았으면서도 얼굴에 미소를 띠고 들어주었다. 촉룡이 온객행에게 말했다.
“고맙구나. 사람들은 정말 재미있는 생각을 해.”
온객행이 고개를 조아리고 말했다.
“부족한 제자가 스승님을 기쁘게 할 방법이 겨우 이런 것이라 송구합니다.”
촉룡이 ‘하하하’ 웃으며 말했다.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아도 네가 오면 충분히 기쁘다.”
온객행이 주변에 있는 함을 정리해서 들고 촉룡이 앉아있는 자리 아래에 있는 동굴로 들어갔다. 촉룡이 현리를 보고 말했다.
“오늘도 비늘을 줍겠느냐?”
현리가 촉룡의 앉은 자리 주변을 보고 말했다.
“감사합니다. 탁음대선.”
그리고 주변을 다니며 주자서 눈에는 희미하게 보이는 것을 주웠다. 주자서가 멀뚱히 산꼭대기에 앉아 있는 촉룡을 보았다. 촉룡은 눈을 감고 있었는데 온객행과 현리는 마치 그가 전부 다 보고 있다는 듯이 행동했다.

촉룡이 주자서에게 말했다.
“아자(兒子). 하늘이 너에게 죄를 지었구나.”
주자서가 눈을 깜빡이며 촉룡을 보았다. 주자서는 주변을 두리번거려 아무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야 촉룡이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주자서가 얼른 소매를 들어 공수하고 말했다.
“기산의 주가 자서, 촉룡을 뵙습니다.”
촉룡은 주자서 쪽으로 얼굴을 가깝게 붙이고 말했다.
“모든 일은 균형이 중요하지. 순환을 깨뜨려서는 안된다.”
주자서는 촉룡이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어서 고개를 조아리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촉룡이 주자서와 거리를 벌리고 말했다.
“온객행을 잘 부탁하네.”
주자서는 눈을 굴리며 생각했다. ‘누가 누굴 부탁한다는 말인지….’

온객행이 동굴에서 나와 촉룡과 주자서가 대화하는 것을 보고 말했다.
“스승님.”
그리고 주자서 곁으로 다가와 주자서의 손을 잡고 말했다.
“스승님 이치는 제가….”
촉룡은 고개를 하늘로 들더니 곧 자기 자리로 돌아가 둘을 내려보며 말했다.
“나의 허락이 필요해서 오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고 소매를 들어 공수하고 말했다.
“유서의 몸에 있는 발의 능력을 거두어 주셨으면 합니다.”
촉룡이 눈썹을 찡그리고 말했다.
“발의 힘을? 내가?”
온객행이 말했다.
“금모원군께서도 산천대제께서도 거두실 수 없는 힘인 것으로 압니다.”
촉룡이 고개를 젓고 말했다.
“아니다. 거둘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거두어서는 안되는 것이지.”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그러니 촉룡께서 거두어 주십시오.”
촉룡은 한참이나 대답이 없었다. 현리가 작은 나무함을 들고 촉룡에게 와서 인사했다.
“탁음대선의 자애함에 망극합니다.”
촉룡은 현리를 향해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현리는 나무함을 들고 다소곳이 인사했다. 그리고 타고 온 돛단배가 있는 곳으로 갔다.

촉룡이 한참 동안 생각하고 온객행에게 말했다.
“발의 힘은 이미 주인이 정해졌으니 내가 거둘 수 없다.”
온객행이 소매를 내리고 물었다.
“하지만 상선!”
촉룡이 고개를 흔들고 온객행을 보고 물었다.
“정말 저 사람을 내자 삼겠느냐?”
온객행은 촉룡이 과거에 관해 묻는 것을 눈치챘다. 과거에 그를 버리고 이 사람을, 주자서를 선택해도 괜찮은 것이냐고 묻는 것이다. 온객행은 주자서를 만나고 주서를 생각하는 일이 많이 줄었다. 그에게 미안한 감정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는 죽었고 다시 돌아올 수도 만날 수도 없다. 온객행은 그와 하지 못해서 후회했던 것을 주자서와 모두 해보고 싶었다. 그게 비록 한 갑자일지라도. 온객행은 한참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내자 삼겠습니다.”
그리고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주자서를 보았다. 주자서는 고개를 힐끔 들어 온객행을 마주 보았다. 촉룡은 둘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 고개를 동쪽으로 돌렸다. 온객행은 작게 한숨을 쉬고 소매를 들어 촉룡께 인사했다. 주자서도 온객행을 따라 인사했다.


배의 선미 난간에 기대어 있던 현리가 온객행과 주자서를 발견하고 말했다.
“촉룡께서는 뭐라고 하시는가?”
온객행이 주자서의 허리를 안고 승선하며 말했다.
“발의 힘은 이미 주인이 있다 하시네.”
현리가 주자서를 힐끔 보고 말했다.
“유서가 태양신이 된다는 말이야?”
주자서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별안간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하나도 모르겠소. 도통 수수께끼 같은 말뿐이니.”
현리가 주자서를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촉룡께서도 거두시지 않는 이유가 있으시겠지. 하늘에서 또 권력 싸움 같은 것이 나면 안 되는데 말이야.”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람의 세상이 시끄러워진 것도 하늘이 시끄러워서 그런 것이겠지.”
현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부루퉁한 표정으로 현리와 온객행의 대화를 듣고 있는 주자서를 발견하고 현리가 웃으며 말했다.
“촉룡께서는 혼인을 허락하셨는가?”
온객행이 주자서의 손을 잡고 말했다.
“촉룡께서 허락하지 않으신다고 내가 못 할 것 같나?”
현리가 ‘허’하고 헛웃음 치고 말했다.
“촉룡께서 그걸 모를 리 없지.”

온객행이 촉룡이 앉아 있는 산꼭대기를 보고 말했다.
“내게는 스승님뿐이니 스승님 가까이에서 혼례를 치르고 싶었네.”
주자서가 온객행을 보고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혼례?”
현리가 내실로 들어가 커다란 함을 가지고 나오며 말했다.
“자 여기. 내가 혼례복을 준비했지.”
그리고 함을 열었다. 안에는 검은색 비단에 훈(纁; 분홍)색 깃을 달고 붉은색으로 화려하게 수 놓인 장포가 들어 있었다. 주자서가 혼례복을 보고 온객행의 손을 뿌리치고 말했다.
“정말로 혼례를 치른다는 말은….”
현리가 장포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조금 구식일지도 모르겠어. 요즘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혼례를 치르는 지 본 적이 없거든.”
그리고 장포를 들어 주자서의 어깨에 걸쳤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이리저리 보더니 말했다.
“유서는 정말 뭘 입어도 다 잘 어울리는군.”
현리가 온객행에게도 혼례복을 걸치고 말했다.
“아직 때가 좋지 못하니 내일 아침에 하도록 하지.”
온객행이 하늘을 보고 별을 헤아리더니 말했다.
“사시(巳時)가 좋겠어.”
현리가 고개를 끄덕이고 물었다.
“밥 안 먹이나? 곧 재워야 하지 않아?”
온객행이 주자서의 등허리에 손을 얹고 그를 내실로 안내하며 말했다.
“그러네.”

주자서는 평상에 앉아 온객행과 현리가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찐쌀로 죽을 끓이는 것을 보았다. 현리가 죽에 말린 대추를 넣으려고 하자 온객행이 현리를 말리며 말했다.
“현리. 유서는 단 것을 안 좋아한다니까.”
현리가 평상에 넋을 놓고 앉아 있는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안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익숙하지 않은 것이네.”
온객행이 얼른 끓고 있는 죽을 작은 그릇에 옮겨 담고 말했다.
“유서는 많이 먹지 않으니 나머지는 그대 다 드시게.”
현리가 대추를 넣더니 곧 소매에서 작은 항아리를 꺼내 꿀을 넣고 말했다.
“잘 먹지 않으니 저렇게 꼬챙이처럼 말랐지.”
온객행이 죽을 ‘후후’ 불어 식혀서 주자서에게 건네고 어깨너머로 현리를 흘겨보며 말했다.
“이 꼬챙이는 내 꼬챙이니 신경 끄게.”
주자서는 온객행에게 받은 죽을 한참 보고 있다가 평상 옆에 있는 협탁에 올려 놓았다. 온객행이 다시 죽그릇을 들어 ‘후후’ 불며 말했다.
“너무 뜨거운가?”
주자서는 온객행을 빤히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실을 나가 선미로 향했다. 온객행이 죽그릇을 들고 주자서를 따라 나갔다.

주자서는 선미에 있는 키에 가서 앉아 하늘을 보았다. 서쪽으로 이지러진 달이 지는 것을 보아 벌써 자정이 넘은 시간인 것 같았다. 주자서는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시간의 흐름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벌어지고 있는 이 일에 분명히 주자서도 관련이 있는 듯 보이는데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가 없었다. 처음에 희첩의 이야기를 꺼냈을 때 온객행은 분명히 그런 시늉을 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갑자기 혼인이라니. 게다가 장가 드는 것도 아니고 시집을 가다니. 주자서는 황당해서 헛웃음이 나왔다. 온객행이 곧 죽을 ‘후후’ 불어 주자서의 입 앞에 숟가락을 내밀었다. 주자서는 시선만 들어 온객행을 보고 고개를 돌렸다. 온객행이 주자서 옆에 난간에 기대 앉고 한참 더 죽을 식히고는 말했다.
“유서 뭐라도 먹어야지.”
주자서가 한숨 쉬고 말했다.
“혼인이라니 무슨 소리요?”
온객행이 다시 죽을 떠서 주자서의 입 앞에 대고 말했다.
“한술 뜨게.”

주자서가 온객행의 손에 있는 죽그릇과 숟가락을 뺐어 들고 말했다.
“그냥 시늉만 하기로 한 것이 아니었소?”
온객행이 눈썹을 축 늘어뜨리고 말했다.
“유서… 내가 그렇게 싫은가?”
주자서가 죽을 한 술 떠먹고 말했다.
“지금 이게 좋고 싫고 의 문제입니까? 혼인은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인데 어찌 이런 식으로?”
그리고 죽을 한술 더 떴다. 주자서가 먹는 것을 보고 마음을 놓은 온객행이 난간에 몸을 기대고 앉아 말했다.
“나는 조금 진심이 됐는지도 모르겠어.”
주자서는 말없이 죽을 다 먹고 죽그릇을 내려 놓았다. 온객행이 소매에서 대나무 수통을 꺼내 주자서에게 건네며 말했다.
“그대는 내가 좋아할 만한 점이 아주 많은 사람이네.”
주자서가 수통의 물을 마시고 말했다.
“시늉이 아니라는 뜻이오?”
온객행이 고개를 돌려 주자서를 한참 보고 답했다.
“사실 잘 모르겠어.”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이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럼 언제든지 내치시오. 마음에 안 들면.”

온객행이 주자서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말했다.
“지금 부인을 박대하라는 말이오?”
주자서가 온객행의 팔을 뿌리치며 말했다.
“나는 부인을 한다고 한적 없소.”
온객행이 입을 앞을 내밀고 말했다.
“희첩이든 부인이든 마음대로 하라고 하지 않았소?”
주자서가 몸부림을 멈추고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희첩인 편이 소박 맞기 좋은 것 같소.”
온객행이 주자서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고 말했다.
“희첩도 하고 부인도 하시오.”
주자서가 온객행의 얼굴을 손으로 밀었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밀어내는 손을 잡고 말했다.
“내가 부인을 희첩 총애하듯 예뻐해드리리다.”
주자서가 ‘쯧’하고 혀를 차고 말했다.
“희첩의 일이던 부인의 일이던 나는 그런 일은 하지 않을 것이오.”
온객행이 주자서의 어깨에 있는 손을 내려 그의 허리춤을 잡고 말했다.
“그대가 원치 않는 일은 나도 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주자서의 목덜미에 고개를 묻었다. 주자서는 바르작대다가 곧 반항을 멈추고 얌전히 안겼다.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이오?”
주자서의 물음에 온객행이 낮게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시오. 내 부인이 되면 그대의 일은 나의 일이 되는 것이니.”
주자서가 온객행의 몸에 기대며 말했다.
“도통 그 나의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말이오.”
온객행은 부스스 웃더니 눈앞에 보이는 주자서의 목덜미를 핥고 빨았다. 마치 표식을 하는 것처럼.

온객행에게 기대오는 몸이 축 늘어지더니 무거워졌다. 선잠이 든 주자서를 일으켜 세우고 내실에 있는 평상에 눕혔다. 이불을 찾아 잘 덮어주고 내실에 있는 제등을 선미로 가지고 나와 걸었다. 현리가 온객행을 따라 나오며 말했다.
“그렇게 마음대로 불을 꺼도 되는 건가? 여기 나도 있는데.”
온객행이 현리를 힐끔 보고 말했다.
“어둠 속에서 더 많이 보이지 않습니까? 저는 그런데….”
현리가 ‘흥’하고 코웃음 치고 난간에 기대어 앉았다.
“버들개지가 혼인은 싫다 하는가?”
온객행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다정한 사람이라 잘 속는다고 말씀드렸잖아요.”
현리가 온객행을 빤히 보며 말했다.
“정말 속이는 것인가?”
온객행은 주자서에게 했던 말을 똑같이 해주었다.
“사실 잘 모르겠어.”
현리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이번에는 그대가 먼저 다가가게. 그대의 하얀 연꽃이 그대에게 했던 것처럼.”
온객행이 고개를 숙이고 조금은 슬픈 표정으로 웃었다.
“그는 정말 감연(敢然)했어.”
현리가 하늘의 별을 보며 말했다.
“응. 사람들은 참 감연해.”
온객행이 현리의 옆에 어깨를 붙여 앉고 말했다.
“힘들지 않은가?”
현리의 눈이 조금씩 젖었다.
“모두 기억하네. 그들의 기억은 하나하나 모두 보석 같지. 후회 따위로 색이 바라지 않는 보석.”
온객행은 고개를 끄덕이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흐르려는 눈물을 참아보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다. 달이 진 밤하늘의 별이 밝기 때문이다.


주자서는 다음 날 아침 조금 일찍 눈이 떠졌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둘러봤지만 내실 안에는 사람이 없었다. 선미 쪽에서 현리가 휘장을 걷고 들어와 함이 쌓인 곳에 가서 무엇인가를 찾았다. 주자서가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인사했다.
“현리낭자. 좋은 아침입니다.”
현리가 어깨너머로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벌써 일어났는가? 흑망이 뭐라고 했지? 세 시진은 자야 한다 하던데 조금 더 자게.”
주자서가 자리에서 일어나 현리에게 다가가 말했다.
“낭자께서도 소인을 어린아이 취급이십니까?”
현리가 작은 함을 들고 일어나 말했다.
“그럼. 어린 아이이지.”
현리는 함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말했다.
“이건 우리 아이들이 시집갈 때 내가 해주는 것인데.”
함 안에는 금으로 만든 머리 장신구가 들어 있었다. 주자서가 손을 내젓고 말했다.
“현리낭자께서는 이미 갚을 수 없을 만큼 너무 많은 것을 해주셨는데 이런 귀한 것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현리가 ‘하하하’ 웃으며 말했다.
“내게 은혜를 입은 것은 아는가?”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리가 고개를 돌려 장식을 보며 말했다.
“그럼 이건 흑망에게 주는 것으로 하지.”

주자서는 현리가 하는 대로 가만히 앉아서 혼례복을 입고 머리를 올렸다. 현리가 주자서의 머리를 매만지며 말했다.
“여인들이 하는 것처럼 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말게. 시집가는 사내는 그대가 처음이 아니니.”
주자서가 시선을 힐끔 들어 현리를 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온객행이 혼례복을 입고 주자서에게 다가오자 현리가 말했다.
“신랑 신부는 혼례 전까지 서로를 보지 않는 것이 좋네.”
온객행이 발걸음을 멈추고 머뭇거리더니 곧 휘장을 걷고 내실을 나갔다. 온객행은 밖으로 나가 작변(爵弁)을 쓰고 손을 씻을 물과 대야, 합환주를 준비했다. 촉룡은 감았던 눈을 뜨고 세상을 보고 있었다. 온객행은 촉룡께 가서 혼례를 올릴 것을 고했지만 촉룡은 대답이 없었다. 온객행도 딱히 대답을 바라고 한 것이 아니라 금방 다시 돌아와서 혼례를 준비했다. 주자서는 온객행이 날이 더울 때 부쳐줬던 깃털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현리의 도움을 받아 배에서 내렸다. 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작은 탁자를 두고 그 위에 작은 대야와 술잔이 있었다.

주자서가 배에서 나오자 온객행이 장포를 털고 탁자 앞에 가서 주자서를 맞이했다. 주자서는 들고 있던 깃털 부채를 온객행에게 건넸다. 온객행은 부채를 받아 탁자 위에 놓고 주자서의 손을 잡았다. 주자서의 손을 잡고 그를 탁자로 이끌어 물을 담은 대야에 함께 손을 씻었다. 영견으로 손을 잘 닦고 탁자에 있는 잔을 나눠 들었다. 곧 현리가 다가와 잔에 물을 담았다. 둘은 물로 입을 헹구고 현리가 따라주는 합환주를 마셨다. 그리고 촉룡이 있는 쪽을 향해 절을 했다. 다음은 사례가 있는 쪽으로, 그다음은 태평호가 있는 쪽으로 절을 했다. 절을 마치고 일어난 두사람이 서로를 향해 맞절하고 혼례의 의식이 끝났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손을 잡고 말했다.
“잘 부탁합니다.”
주자서는 촉룡이 그에게 했던 말이 떠올라서 시선을 들어 촉룡을 보았다. 촉룡은 혼례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무심하게 동쪽을 보고 있었다. 주자서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현리와 온객행, 주자서는 다시 촉룡에게 이별을 고하고 태연으로 향했다.


온객행은 주자서를 먹인다고 찐쌀을 꺼내 죽을 끓이고 있었고, 주자서는 현리가 골라주는 옷을 입어 보고 있는 중이었다. 혼례복을 계속 입고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자서가 원래 입고 있던 옷은 여름옷이라 고도가 높은 옥산에서 입기에는 조금 추웠다. 현리가 주자서에게 옷을 입혀주려고 하자 주자서가 손을 들어 거절하고 자기가 입었다. 현리가 주자서가 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가 말했다.
“그렇게 입으니까 꼭 흑망 같다. 검은색도 잘 어울리네.”
주자서가 소매를 들어 보고 현리에게 물었다.
“그렇습니까?”
온객행이 주자서를 부르며 말했다.
“유서. 와서 밥 먹게.”
주자서가 탁자로 가서 앉자 온객행이 죽을 그릇에 떠서 건넸다. 은은하게 비치는 검은 장포를 입은 주자서는 너무 야살스러워서 온객행이 부루퉁한 표정으로 현리에게 말했다.
“이런 옷은 너무… 너무!”
현리가 주자서 옆에 앉아 죽 그릇에 죽을 퍼 담고 말했다.
“너무 뭐? 잘 어울리지? 너한테 맞춘 옷이라 그런지 소매가 기네.”
주자서는 긴 소매가 불편했는지 몇 번 털더니 팔꿈치가 훤히 보이게 하고 죽그릇을 들고 먹었다. 온객행이 놀라서 주자서 옆에 앉아 소매를 올리고 말했다.
“내의도 입지 않았어? 어찌 이렇게….”
주자서는 온객행의 시중은 아랑곳하지 않고 죽을 먹었다.

현리가 ‘흥’하고 코웃음 치며 말했다.
“입었네! 입었어. 손도 못 대게 하더군. 지조와 절개가 넘치는 부인을 두셨어. 흑망.”
온객행은 주자서 옆에 앉아서 그의 허리를 안고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현리가 질색을 하고 말했다.
“발정이라도 하는가 흑망. 여기 나도 있네.”
온객행이 고개를 들어 현리를 보고 말했다.
“언제 마지막으로 열락(悅樂)이 왔었는지 기억도 안 나네. 열락이 오면 어떻지?”
주자서가 죽그릇을 내려놓고 말했다.
“두 분께서는 꼭 밥 먹는데 그런 이야기를 나누셔야 하겠습니까?”
온객행이 주자서가 내려놓은 죽그릇에 숟가락을 들어 주자서 입 앞으로 가져가며 말했다.
“유서. 많이 먹게. 어서 살을 찌워야 내가 잡아먹을 것이 아닌가?”
주자서가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사람은 안 드신다면서요.”
현리가 고개를 꺾어 ‘하하하’ 웃으며 말했다.
“내가 저번에 말하지 않았나? 침상에서 뒹구는 것도….”
주자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현리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내실 밖으로 나갔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뒤따라 나가며 현리에게 말했다.
“자예! 제발.”
현리가 억울하다는 듯이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흑망. 이번엔 그대도 거들지 않았는가?”


태연으로 향하는 배의 키는 현리가 잡았는데 종화산에서 태연까지는 거리가 멀지 않았기 때문에 중천이 조금 넘어 태연에 도착했다. 금모원군인 서왕모는 옥산(玉山) 꼭대기에 있는 태연(太淵)이라는 호수에 있는 요대(瑤臺)라고 불리는 궁궐에서 산다. 그녀의 옥산은 복숭아나무로 가득한데 한창 철인 복숭아가 나무 여기저기에 달려 있었다. 이 복숭아들은 태연에서 천궁으로 가는 길에 있는 반도원(蟠桃園)의 반도(蟠桃)는 아니다. 반도는 모든 병을 고치고 죽지 않는 몸을 만들어 준다. 보통 사람이 먹으면 등선할 수 있을 정도로 영약이다. 옥산의 천도는 반도 만큼은 아니지만 영력의 힘을 끌어 올려 수련을 도왔기 때문에 삼족오가 옥산 주변을 맴돌며 지키고 있다. 현리가 삼족오를 발견하고 키를 놓고 일어나 소매를 들어 인사했다.
“앙소(仰韶)! 현리가 왔습니다.”
삼족오가 내실 지붕에 내려앉아 말했다.
“현리! 이게 대체 얼마 만이야? 단오절에 왜 오지 않았어?”
현리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사람들하고 좀 일이 있었어요.”
앙소가 선미로 내려와 말했다.
“어디 다치지는 않았지? 너도 어서 승천해서 우리와 함께 살면 좋잖아.”
현리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는 아직 사람들하고 사는 게 좋아요.”
앙소가 ‘하하하’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무슨 일로 온 거야? 이 배는 대체 뭐야?”
앙소가 배를 둘러보며 말했다.

온객행이 휘장을 걷고 내실에서 나와 인사했다.
“흑망. 현조(玄鳥)를 뵙습니다.”
앙소가 표정을 구기고 현리를 보았다. 현리가 온객행에게 고갯짓하고 말했다.
“앙소, 나도 원군께서 시킨 대로 하는 거예요.”
온객행이 물었다.
“현리. 그게 무슨 소리야?”
현리가 두 사람에게 손을 들어 내젓고 말했다.
“나에게 묻지 마시오. 금모원군께서 모두 대답하실 테니 내게 묻지 마시오.”
앙소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원군께서 다 뜻이 있으셔서 그리 하셨겠지….”
앙소가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이번에도 부탁을 하러 왔는가?”
온객행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앙소가 허리에 찬 검으로 손을 가져가며 말했다.
“정말 부탁인가? 저번처럼 위협이 아니고?”
현리가 옥산에 배를 올려 놓고 말했다.
“청조께서도 아시는 일이니 걱정 마시오.”
앙소가 온객행을 경계하며 말했다.
“어디 쉽게 잊히는 일이어야지. 그때 뽑힌 복숭아나무가 몇 그루인지 아느냐?”
온객행이 고개를 숙이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결례를 범했습니다.”
앙소가 ‘흥’하고 웃으며 말했다.
“결례인 것을 안다니 다행이군.”
현리가 앙소에게 물었다.
“공공께서도 태연에 계신다고 들었는데 맞습니까?”
앙소가 온객행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말했다.
“그래. 상류에게 일을 맡겨 놓고 오셨다는데 벌써 달포가 지났군.”

온객행이 내실 휘장 안으로 손을 쑥 집어넣더니 주자서의 손을 잡아 밖으로 잡아 끌었다. 주자서는 내실 안에서 휘장을 붙잡고 까만 날개가 달린 남자를 보고 있었다. 깃털로 만든 갑옷을 입은 남자의 발은 새의 발 같아서 조금 겁이 났다. 갑자기 밖으로 끌려 나온 주자서는 머뭇거리다가 온객행의 손을 뿌리치고 소매를 들어 인사했다.
“기산의 주가 자서, 현조께 인사드립니다.”
주자서의 인사를 얼떨떨하게 받은 현조가 현리를 보고 말했다.
“사람이 아닌가?”
현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발의 후손이오.”
현조가 다시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사내가 아닌가?”
주자서는 저 질문에 이제 헛웃음이 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주자서가 피식 웃자 온객행이 주자서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말했다.
“저의 내자입니다.”
현조가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내자? 혼인했단 말인가? 자네 봉인이 풀린 지 얼마 안 되지 않았나…?”

하늘에서 구름이 내려오더니 그 구름을 사뿐히 밟고 청조가 내려와 말했다.
“흑망. 원군을 뵙는 것이 순서가 아닌가?”
앙소와 현리가 청조에게 인사하고 배에서 내렸다. 온객행은 청조에게 인사하고 주자서의 허리를 안고 구름 위로 올랐다. 온객행은 마치 구름을 밟을 수 있는 것처럼 밟고 서 있었지만 주자서는 밟히는 것이 없어서 온객행의 목에 팔을 둘러 안았다. 청조가 현리에게 말했다.
“현리. 고생했다. 너는 이제 그만 가도 좋다. 중원(中元) 때 보자.”
현리가 소매를 들어 인사하며 말했다.
“대정자. 필요한 것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기별하세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청조가 입꼬리를 끌어올려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였다. 앙소도 청조에게 인사하고 다시 하늘로 날아올랐다.

청조가 고개를 돌려 꼭 붙어있는 온객행과 주자서를 보고 ‘흥’하고 코웃음 친 후에 구름길을 걸었다. 주자서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것을 멈추지 못했는데 온객행이 구름길을 걷기 시작하자 곧 구름 사이로 노금과 삼족오가 날아와 온객행을 경계했다. 온객행은 예상했던 일이라 별로 놀라지 않았지만 주자서는 하늘을 나는 날개 달린 그들을 보고 조금 놀란 듯했다. 평소에 볼 수 없는 광경이기는 해서 온객행도 주자서를 더 가깝게 끌어안았다. 구름길 끝에 다다르자 청조와 비슷하게 생긴 여인 둘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요대(瑤臺) 입구에 내려놓고 인사했다.
“흑망 대려(大鵹)와, 소려(小鵹)를 뵙습니다.”
주자서도 온객행을 따라서 소매를 들어 인사했다.

蛇苺 第14

擒賊擒王 | 14. 왕을 먼저 노린다.

다음날 오후에 배는 파(巴)에 도착했다. 파는 촉(蜀)으로 들어가는 입구였기 때문에 나라가 바뀌어 관병이 배를 검문했다. 현리는 아침 일찍 온객행과 주자서를 갑판으로 불러서 말했다.
“벌써 금사강(金沙江) 지역으로 들어왔으니 두 분께서 알아 두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온객행과 주자서는 현리가 준비해준 차를 마시며 현리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현리는 살고 있는 곳은 동정호 근처였지만 그녀는 사람들 사이에서 홍상(洪商)이라고 불리는 상인으로 금사강과 장강, 구강을 오가며 비단과 패물을 거래하는 꽤 큰 상인이었다. 그녀는 동정호가 있는 나라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오(吳)나라 사람이 가지는 상인의 낙계(烙契)로 신분을 증명할 수 있다고 했다. 그녀가 꺼낸 작은 비단 주머니 안에는 황동으로 만든 패에 홍상 자예라는 이름과 그녀의 출신인 형주(荊州) 남군(南郡)이라고 쓰여 있었다.

온객행은 신기하다는 듯이 패를 만지며 물었다.
“언제 만든 것인가?”
현리가 온객행의 손에 들려 있는 패를 빼앗아 다시 비단 주머니 안에 넣고 말했다.
“그런 것은 알 필요 없네. 아무튼 그대들은 나의 하인으로 해 둘 것이니 그렇게 알게.”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나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가?”
현리는 한참 생각하더니 말했다.
“호위라고 해두지.”
온객행이 고개를 꺾어 시원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내가 그대의? 하하하.”
현리도 온객행을 마주 보고 조금 웃다가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유서는 뭐라고 할까…? 글은 읽는가?”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했다.
“네. 저는 위(魏)나라 사람입니다.”
그리고 품속에서 염낭을 꺼내더니 그 안에서 작은 나무패를 꺼냈다. 위나라 군영에서 병사들의 신분을 증명하기 위해 만드는 부절(符節)이다. 주자서의 이름과 그가 소속된 군대의 이름이 적혀 있다.

현리는 부절을 받아 보더니 온객행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이런 것은 보여주지 않는 것이 좋겠네.”
온객행은 주자서의 부절을 받아 소매 안에 넣었다. 주자서가 부절을 다시 받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온객행이 주자서의 손을 잡고 말했다.
“때가 되면 다시 돌려줄 테니 지금은 내가 가지고 있겠네.”
주자서는 탐탁지 않은 듯한 표정을 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현리가 혀를 작게 차며 말했다.
“그럼 그대도 일단은 호위로 하지. 군대에 있었으면 칼 좀 휘둘렀을 것 아닌가.”
주자서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현리가 온객행이 입은 옷을 보고 말했다.
“호위인데 소매가 긴 옷을 입는 것은 이상하니 내가 사람을 시켜 객실로 옷을 보내겠네.”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 주자서도 온객행을 따라 일어나 방을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망상이 푸른색의 옷을 가지고 들어왔다. 가죽으로 된 굉갑(肱甲)과 꽤 그럴듯한 검도 준비했다. 온객행은 무인(武人)의 옷을 입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주자서가 얼른 입고 온객행을 도왔다. 소매에 굉갑을 하고 옷을 고정하는 요대 위에 가죽 요대를 맸다. 온객행의 관을 보고 주자서가 말했다.
“그 관은 너무 화려하니 바꾸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리고 온객행이 가져온 패물이 들은 함을 열어 살펴보았다. 용의 머리가 조각된 작은 은비녀를 꺼내든 주자서가 온객행을 앉히고 머리에 관을 빼고 온객행의 머리를 잘 빗어 하나로 묶어 올린 뒤 비녀를 꽂아 주었다. 온객행을 일으켜 세우고 요리조리 둘러보던 주자서가 검을 가져와 온객행의 허리띠에 꽂아 주며 물었다.
“온공자께서는 오른손을 쓰시니 검은 왼쪽에 오는 것이 맞습니다.”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고 주자서가 하는 데로 두었다. 온객행은 주자서가 자신의 몸을 더듬는 것이 좋았다.


파에 가까워질수록 지형이 완만하고 바람이 좋아 편연주에 속도가 붙었다. 강폭이 좁고 굽이치는 곳에 설치된 관문의 검문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라 그들은 곧 관문로에 도착했다. 부두에 접안하고 선창에 다리를 내리자 곧 갑옷으로 무장한 병사가 배 안으로 들어왔다. 온객행과 주자서는 현리의 옆에 서서 현리가 하는 것을 따라 손을 올려 인사했다. 파와 촉의 경계를 관리 감독하는 도독(都督) 풍습(馮習)은 현리를 보고 포권하여 인사하며 말했다.
“예부인(霓婦人).”
현리가 웃으며 말했다.
“풍도독(馮都督)! 그동안 잘 지냈는가?”
풍습이 부끄러워하며 현리에게 말했다.
“예부인께서는 어찌 더 아름다워지셨습니까?”
현리가 소매로 입을 가리고 웃으며 말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

풍습이 관병들에게 지시했다.
“말로 보여 달라고 하면 모두 보여 줄 터이니 함부로 하지 말게.”
현리가 소매에서 작은 염낭을 꺼내 풍습에게 건네고 말했다.
“저번에 부탁한 것이네. 풍부인께서 좋아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풍습이 얼른 염낭을 받고 말했다.
“예부인께서 주시는 것은 무엇이든 좋지요.”
현리는 풍습을 갑판으로 안내하며 말했다.
“요즘 장강의 치안이 별로 좋지 못해서….”
풍습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도 들었습니다. 큰 전투가 있었다 하지요?”
현리가 풍습에게 자리를 권하며 말했다.
“나는 그런 것은 잘 몰라서요.”
그리고 망상에게 시켜 차를 준비했다. 온객행과 주자서는 현리가 앉은 평상 양옆에 서서 풍습과 현리가 하는 대화를 들었다.

풍습은 요즘 지나다니는 배들의 대부분이 식량을 나르는 배라는 것과 사람을 실어 나르는 배들은 관리가 더 삼엄하여 오고 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얘기를 하며 차를 마셨다. 현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풍습의 말을 들어주었다. 한 시진 정도 지나 검문이 끝나고 풍습이 관병을 모아 배에서 내렸다. 현리는 작은 주머니에 동전을 넣어 배를 검문한 관병들에게 주었다. 그들이 배를 내리고 선창에 내린 다리를 올리고 다시 출항했다. 온객행이 난간에 기대 검문소에 있는 풍습을 보고 현리에게 물었다.
“어떻게 아는 사이인가?”
현리가 풍습에게 작게 손을 흔들고 말했다.
“저자도 형주 남군 출신이네.”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자서는 얼굴로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닦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습하고 더운 기온에 가죽으로 만든 갑옷을 두르고 있으니 더워도 너무 더웠다. 온객행이 품에서 영견을 꺼내 주자서의 땀을 닦아주며 물었다.
“더운가?”
주자서는 현리의 눈치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현리가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이 배는 커서 서주(叙州)까지 밖에 갈 수 없네. 문수(汶水)로 가는가 아니면 계속 금사강으로 가는가?”
온객행이 주자서의 목덜미에 손을 얹고 말했다.
“문수로는 천산 근처까지 밖에 갈 수 없으니 금사강으로 가야 할 텐데…. 산세가 험해서….”
주자서는 목덜미에 얹어진 온객행의 손이 시원해서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았다. 현리가 말했다.
“서주를 지나면 유속이 빠르고 가파를 테니 물길로 가는 것도 방법이네.”
온객행이 나머지 손도 들어 주자서의 이마에 대고 말했다.
“유서는 오래 걷지 못해서….”

현리가 둘이 하는 모습을 빤히 보고 있다가 코웃음 치고 말했다.
“그 배는 어찌했나?”
온객행이 현리를 보고 물었다.
“그 배?”
현리가 말했다.
“그대가 유서와 여흥을 즐기던 배 말이네.”
온객행이 고개를 휙 돌려 현리를 쏘아보며 말했다.
“그 배는 왜?”
현리가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그대 혼자서는 하늘에 띄울 수 없겠지만 내가 도우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지 않는가?”
온객행이 주자서의 뒷덜미에 얹었던 손을 내리고 말했다.
“하늘길로 가자는 말인가?”
현리가 온객행을 보고 물었다.
“설마 노금(露禽)에게 밉보였는가?”
온객행이 주자서의 어깨를 잡아 그를 똑바로 세우고 말했다.
“밉보이기 전에 공공께서 멈춰 주셨지.”
현리가 갑판 아래로 내려가며 말했다.
“꺼내 보게 그 배. 하늘길로 가면 하루 안에 도착하겠군.”
온객행이 주자서를 놓아주고 현리를 따라가며 말했다.
“어디에 꺼내 놓으라는 말인가?”
온객행이 뒤따라오는 주자서를 힐끔 보고 말했다.
“함부로 도술을 쓰고 싶지 않네.”
주자서는 더위에 지쳤는지 현리와 온객행이 뭘 하는지 관심이 없어 보였다.

노를 젓는 노어가 있는 하갑판으로 내려온 현리는 온객행에게 배를 꺼내게 했다. 온객행은 품속에서 작은 구슬 하나를 꺼내더니 ‘후’하고 입김을 불었다. 검은 연기에 감싸인 구슬이 곧 파양호에서 샀던 돛단배가 되었다. 현리가 배에 올라타고 말했다.
“꽤 크네.”
온객행이 주자서의 허리를 잡고 선미에 훌쩍 올라서서 말했다. 주자서는 지쳤는지 온객행에게 기대서 별말 하지 않았다.
“편연주가 매우 큰 것이네.”
현리가 내실에 있는 포단 두 개를 보고 말했다.
“그러니까 대체 뭘 했길래 물길도 못 읽었느냐는 말이야.”
온객행이 주자서를 놓아주고 현리에게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아무 것도 안 했네! 왜 자꾸 그런 말을 하는가?”
현리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아니면 아닌 것이지 왜 성을 내는 것인가? 아무 일도 없어서 서운한가? 어디 눈치가 보여서 같은 배에 타겠나?”
온객행은 얼굴이 빨개져서 현리를 보고 발을 구르더니 고개를 획 돌려서 주자서에게 갔다.

주자서는 선미에 앉아 쉬고 있었다. 온객행이 다가오자 주자서는 온객행의 손을 잡아 이마에 놓았다. 주자서는 이런 습한 더위는 많이 경험해보지 못했다. 보통 봄, 여름에는 둔전(屯田)을 위해 농사가 가능한 비옥한 지역으로 이동했다. 비록 습하거나 덥더라도 갑옷을 입고 일을 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워도 괜찮았다. 군영에서 지내는 동안 더위에는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찜통에서 찌는 듯한 더위는 그냥 더위보다 더 참기 쉽지 않았다. 가끔 닿아오는 온객행의 서늘한 체온이 좋아 주자서는 자기도 모르게 온객행에게 몸을 붙이는 일이 많아졌다. 주자서는 온객행이 근처에 있으면 그의 손을 잡아 이마며 목덜미 있는 쪽에 두었다. 그렇게 하면 열이 조금 식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온객행이 주자서가 하는 행동을 흐뭇한 얼굴로 보고 있다가 어깨너머로 현리에게 말했다.
“일단 옷부터 갈아입는 것이 좋겠어.”
온객행은 한손은 주자서의 허리에 한손은 이마에 놓고 그를 데리고 객실로 향했다. 현리가 온객행을 향해 말했다.
“여기 좀 내 취향대로 꾸며도 괜찮지?”
온객행은 현리를 보지도 않고 말했다.
“마음대로 하게.”

객실에 도착한 온객행은 현리가 여름에 입는 옷이라고 했던 장포를 찾아 옷걸이에 걸었다. 주자서는 의자에 앉아 굉갑과 요대를 풀고 말했다.
“온공자께서도 어서 갈아입으세요. 덥습니다.”
온객행이 다가와 주자서의 시중을 들려고 하자 옷고름을 풀던 주자서가 멈칫하더니 온객행에게 말했다.
“온공자께서도 옷을 갈아입으시지요.”
하고 온객행의 굉갑과 요대를 풀어주었다. 그리고 온객행이 걸어 놓은 장포 중에 전에 입었던 연한 쪽빛의 장포를 들고 침상 앞에 있는 병풍 뒤로 갔다. 온객행이 그의 뒤를 따르자 주자서가 옷걸이에 걸린 하얀 장포를 온객행에게 건네고 말했다.
“온공자께서도 어서 갈아입으시오.”
온객행이 안절부절못하자 주자서가 온객행을 밀어냈다. 온객행은 밀어내는 대로 밀리다가 하얀 장포를 들고 탁상에 가서 앉았다.

병풍 너머로 주자서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더웠는지 금방 옷고름을 풀어낸 주자서는 근처에 물이 담긴 대야에 걸려있던 영견으로 땀을 닦더니 내의를 갈아입고 중의도 입지 않고 바로 장포를 둘러 입었다. 빤히 병풍을 보고 있던 온객행은 부끄러워져서 일어나 앞섶을 풀고 옷을 갈아입었다. 온객행이 장포를 걸치자 하얀 장포는 곧 은은한 회색이 되었다. 온객행은 먹구름 가득한 하늘이 생각나 금방 풀이 죽었다. 주자서는 옷을 다 입고 나와 탁자에 앉으며 말했다.
“정말 너무 덥습니다.”
온객행이 패물 상자 옆에 있는 함에서 깃털로 만든 부채를 꺼내며 말했다.
“유서 그렇게 더운가?”
주자서는 한참 입을 달싹이더니 말했다.
“괜찮습니다. 참을 만해요.”
온객행이 부채를 내려놓고 주자서의 양 뺨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이렇게 하면 좀 어떠한가?”
주자서는 뺨을 감싼 온객행의 손을 겹쳐 잡고 땀을 식혔다.

온객행은 한참 주자서의 얼굴을 보고 있다가 얼굴을 붙여서 입술을 맞췄다. 주자서가 온객행의 손을 얼굴에서 잡아떼고 말했다.
“정말… 온공자….”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얼굴을 붙이며 말했다.
“여기는 아무도 없지 않은가?”
온객행이 주자서의 손을 잡고 자신의 앞섶에 넣으며 말했다.
“여기도 시원하니 만져보게.”
주자서가 온객행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온공자!”
온객행은 내심 서운한 듯 주자서의 손을 놓아주고 말했다.
“농담이야. 성내지 말게.”
주자서는 더위로 진이 다 빠져서 온객행을 나무랄 기력도 남아 있지 않았다. 풀이 죽은 온객행을 보고 주자서가 작게 웃었다. 밝은 색 옷을 입고 관을 한 온객행은 주자서 보다 한참 어려 보였다. 주자서가 온객행이 입은 옷을 만져보더니 말했다.
“구름 같습니다.”
온객행이 눈썹을 늘어뜨리고 주자서를 보며 말했다.
“싫은가?”
주자서는 온객행을 마주 보고 웃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온객행은 소매를 들어 장포를 다시 보았다. 칙칙하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그렇게 나쁜 것 같지도 않다.


온객행은 주자서를 데리고 다시 하갑판으로 내려갔다. 현리가 망상과 나어에게 이런 저런 일을 시키다 온객행을 발견하고 말했다.
“이 배는 정말 너무 작다. 뭘 실을 수가 없네.”
온객행이 주자서의 허리를 안고 선수에 올라타서 말했다.
“유서가 너무 더워하는데 어떡하지?”
주자서가 당황한 듯 소매를 털어 손을 모으고 말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현리가 선미에서 객실을 거쳐 선수로 나오면서 말했다.
“내가 의자랑 탁자 같은 것도 놓아 두었어. 촉룡을 뵙고 나면 바로 태연으로 가는가?”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리는 잠깐 생각하더니 망상을 불러 지시를 내렸다. 온객행이 돛단배의 내실을 둘러보고 말했다.
“이게 뭐야. 뭘 이렇게 많이 실었어?”
현리가 내실의 휘장을 걷고 말했다.
“많다니? 추리고 또 추리고 또 추렸다고!”
온객행이 한쪽에 쌓인 함을 열어보고 말했다.
“이렇게 많은 옷이 왜 필요한 건데?”
현리가 내실 안으로 들어와 제일 작은 함을 가리키고 말했다.
“내 옷만 있는 것이 아니네.”
온객행은 작은 함을 보고 코웃음 치고 현리가 가져다 놓은 평상 위에 가서 앉았다. 주자서는 선미에서 내실을 힐끔 들여다보더니 선미 난간에 걸터앉았다. 배 안에 또 배가 있는 신기한 광경이라 주자서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현리가 온객행에게 물었다.
“어떻게? 날 수 있겠는가?”
온객행이 현리에게 물었다.
“키(舵)는 누가 잡나?”
현리가 온객행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당연히 그대가 잡아야지. 촉룡께 가는 길이 아닌가?”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딱히 누가 잡는다고 달라질 것이 있겠는가?”
현리가 배에서 내리며 말했다.
“하늘길로 가는 것이니 내가 노금께 미리 기별해 놓았네.”
온객행이 물었다.
“뭘 드려야 하는가?”
현리가 어깨너머로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그것은 걱정할 필요 없네. 내가 준비할 테니.”
온객행은 고개를 돌려 주자서를 찾았다. 선수에 눈을 감고 앉아 있는 주자서가 지쳐 보여 온객행이 소매에서 깃털 부채를 꺼내고 다가갔다. 온객행에게 부채를 부쳐주자 금방 눈을 뜨고 손사래를 치고 말했다.
“괜찮습니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이마에 맺힌 땀을 발견하고 소매를 들어 땀을 닦아주려고 하자 주자서가 얼른 몸을 물려 피하며 말했다.
“옷이 더러워집니다. 저는 정말 괜찮으니 괘념치 마소서.”
온객행이 주자서의 어깨에 팔을 둘러 몸을 가깝게 붙이고 말했다.
“그대에게 더러운 것은 아무것도 없네.”
주자서가 작게 헛웃음 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내실로 들어갔다.

주자서는 평상에 몸을 기대더니 금방 얕은 잠에 빠졌다. 다시 배로 돌아온 현리가 평상에 누워있는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왜 저래?”
온객행이 주자서 옆에 앉아 부채를 부치며 말했다.
“이렇게 더워해서 어떡하지?”
현리가 코웃음 치고 선미로 나가며 말했다.
“돛은 접고 오늘은 달이 밝지 않고 구름이 많으니 조심하는 것이 좋겠어.”
하갑판의 측면의 문이 열리고 강물이 보였다. 온객행이 강을 둘러보고 말했다.
“오늘은 물안개가 많아도 이상하지 않은 날이니 조금 짙게 하면 될 일이네.”
현리가 망상 몇을 불러 말했다.
“우리 아가. 물안개를 부탁해도 될까?”
망상은 공손하게 머리를 조아리고 강물 안으로 들어갔다.

현리가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그런 것까지 우리가 할 필요 없지.”
온객행이 코웃음 치고 말했다.
“검영 들으라고 하는 소리인가?”
현리가 내실의 휘장을 내리고 코웃음 치며 말했다.
“탁음대선의 제자들은 당최 욕심이 없으니까 말이야.”
온객행이 키를 잡고 영력으로 배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내일 아침에는 도착했으면 좋겠는데.”
현리가 웃으며 말했다.
“너의 내자를 먹이고 재워야지.”
온객행이 힘을 멈추고 말했다.
“유서 먹일 것을 안 챙겼네.”
현리가 영력으로 배를 밀어 강물 위에 띄우고 말했다.
“내가 챙겼네.”
그제야 온객행이 다시 배에 영력을 실어 배를 들어 올렸다. 곧 편연주의 측면이 닫히고 망상의 물안개가 장사강에 피어올랐다.

배를 하늘 높이 띄우고 금방 돛을 펼쳤다. 두 시진 정도 하늘을 날자 저 멀리 동이 터오는 것이 보였다. 해가 뜨고 밝아지자 구름 위를 나는 배는 금방 노금을 만났다. 노금이 배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이런 것은 또 처음 보는군”
현리가 웃으며 노금에게 인사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태금(胎禽).”
태금이 선미에 현리를 발견하고 다가가 말했다.
“어디에 가는 길인데 배를 띄웠나? 어디 구름 마차 빌릴 곳이 없었나?”
현리가 선미 쪽으로 고갯짓하며 말했다.
“흑망이 장가를 가서 신부를 촉룡께 데려가는 길입니다.”
태금이 내실을 보고 물었다.
“흑망이? 그 사람이랑?”
현리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번엔 좀 달라요.”

태금이 훌쩍 내실 위로 뛰어올라 돛을 잡고 말했다.
“흑망. 오랜만이네.”
온객행이 내실 위에 태금을 발견하고 말했다.
“오랜만입니다.”
태금이 선미로 훌쩍 뛰어내려 말했다.
“북해 용왕이 된다더니 사실인가?”
온객행이 키를 놓고 손을 모아 공손히 인사하며 말했다.
“제가요?”
태금이 온객행의 팔을 잡고 말했다.
“예를 거두게. 스승님께 가는 길인가?”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였다. 태금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참… 공공께서 괜한 소리를 하셨더군. 내가 흑망에게 영지초 한두뿌리도 못줄만큼 인색한 치였나?”
온객행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니지요. 지난 일이니 괘념치 마소서.”
태금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래. 지난 일이지. 장가를 간다고? 소개해주겠나?”
온객행이 얼굴을 붉히고 말했다.
“아… 그러시겠습니까? 잠시만….”
온객행이 휘장을 걷고 내실로 들어갔다. 태금은 내실 안을 힐끔 본 뒤에 키를 잡고 조금 틀어진 방향을 조절하며 말했다.
“현리! 이 배는 내가 천산까지 몰고 가겠네.”
현리의 대답 소리를 듣고 태금이 배의 키를 놓고 내실로 들어갔다.

내실 안에 평상에 붙어 앉아 있는 온객행과 주자서를 발견하고 태금이 말했다.
“아! 어찌?”
현리가 탁상에 앉아 차를 우리며 말했다.
“그렇게 됐습니다.”
태금이 주자서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말했다.
“흑망은 욕심이 없는 것이 아니었는가?”
현리가 주자서를 힐끔 보고 말했다.
“욕심 없는 이가 데리고 있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노금이 힘겹게 시선을 떼고 말했다.
“그건 그렇지.”
온객행이 주자서의 얼굴을 영견으로 닦아주고 그를 일으키며 말했다.
“유서. 일어나보게. 소개하고 싶은 이가 있어.”
주자서는 얼른 눈을 뜨고 주변을 보았다. 탁상에 현리와 함께 등에 하얀 날개가 달린 남자가 앉아 있다. 깜짝 놀란 주자서의 어깨가 튀자 온객행이 주자서의 어깨를 감싸 안고 말했다.
“유서. 괜찮아. 걱정 말게.”
주자서가 자세를 바로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온객행도 자리에서 일어나 태금에게 다시 공수하여 인사하며 말했다.
“흑망. 태금을 뵙습니다.”
주자서도 눈치를 보고 있다가 소매를 털고 손을 모으고 인사했다. 태금이 온객행이 있는 쪽을 손을 내젓고 말했다.
“예를 거두게.”
온객행이 주자서를 탁자로 데려가 앉히고 그 옆에 찰싹 붙어 앉았다.

태금이 주자서를 빤히 보며 물었다.
“사내인가?”
주자서는 이 질문을 수도 없이 들었기 때문에 익숙해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온객행이 답하기도 전에 탐탁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기산 주가 자서입니다.”
태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기산. 모친께서는…?”
온객행이 태금의 말을 다급하게 끊고 말했다.
“자세한 사정은 제가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태금이 다시 주자서 보고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혼인을 한다고?”
온객행이 뺨을 붉히고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네….”
주자서가 온객행을 힐끔 보고 입술을 꼭 깨물고 고개를 숙였다. 태금이 현리가 따른 찻잔을 비우고 말했다.
“뭐 사정이 있겠지. 내가 물을 자리는 아닌 것 같네.”
현리가 물었다.
“백호이신 욕수상선(蓐收上仙)께서는 안녕하십니까?”
태금이 고개를 돌려 현리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그럼. 서쪽은 사람이 많지 않아 언제나 평화롭지.”
현리와 태금은 차를 마셨다. 온객행이 찻잔을 들어 주자서의 손에 쥐여 주었다. 주자서는 입술만 축이고 다시 탁자에 내려 놓았다.


태금의 능력이 좋았는지 아니면 자리가 불편해서였는지 그들은 금방 종화산에 도착했다. 태금은 그들을 종화산에 내려주고 금방 다시 원래 지키던 서쪽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온객행은 배에서 내리는 주자서를 도왔고 현리는 촉룡에게 드린다며 가져온 선물을 꺼내느라 법석을 떨었다. 주자서와 온객행도 현리를 보고 있다가 그녀를 도왔다. 각자 크고 작은 함을 들고 종화산을 올랐다. 종화산 꼭대기에 앉아 있는 탁음대선 촉룡은 언제부터 그 자리에 있었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천존과 태어난 시기가 비슷한 그가 겨우 대선의 자리에 머무는 것은 아마도 촉룡 스스로가 그런 자리에 큰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의 힘이 탐이 나서 촉룡을 도발하던 요괴와 신선이 있었지만 그것도 아주 까마득한 옛날이야기다.

촉룡은 슬슬 감기는 눈을 그대로 내버려 둔 채로 말했다.
“흑망. 오랜만에 보는구나.”
온객행이 함을 내려놓고 말했다.
“못난 제자 흑망. 스승님을 뵙습니다.”
현리도 들고 온 함을 내려놓고 소매를 들어 공손히 인사했다.
“홍호의 현리, 탁음대선을 뵙습니다.”
촉룡의 눈이 스르르 감기고 땅에 어둠이 찾아왔다. 감은 눈으로 촉룡은 고개를 돌려 온객행과 현리를 향해 말했다.
“현리도 왔구나. 나의 비늘을 원하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가져가도 좋다.”
현리가 소매로 입을 가리고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붉고 아름다운 비늘을 어찌 그냥 가져간다는 말입니까? 원군께서 저를 그렇게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촉룡이 미소 짓고 말했다.
“그래. 서왕모께서는 안녕하신가?”
현리가 내려놓은 함을 들어 올리고 말했다.
“저는 이제 홍호에서 장사를 하고 있어요. 탁음대선께 드리려고 야명주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함을 열어 은은하게 빛나는 구슬을 보여주었다. 탁음대선은 그것을 보더니 말했다.
“신기하구나. 하지만 그것은 사람에게 별로 좋은 것이 아니니 내가 가지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자리에서 내려와 야명주를 한입에 꿀꺽 삼켰다. 현리가 말했다.
“탁음대선께서 마음에 드셨다니 영광입니다.”
촉룡이 말했다.
“다음에 또 발견하거든 가져오거라.”
현리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촉룡은 다시 자리로 올라가려다 온객행 옆에 서 있는 주자서를 발견하고 자리에서 멈췄다. 그리고 작게 코웃음 치더니 다시 종화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