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하령 25화

산하령 25화에 두사람의 대사 에 대한 고찰이다. 이 짧은 대화에 들어간 레퍼런스를 찾아보도록 하겠다. 4언율시라고 치면 각 구절마다 레퍼런스가 다르다.

天涯孤鴻 無根行客
세상 끝 외로운 기러기 갈 곳 없는 여행객
之手 坐看雲
그대 손을 잡고 앉아 떠도는 구름 바라본다.


주자서가 말한 부분에 대해 알아보자. 일단 이름얘기를 하면서 앞부분에 후술할 시들의 구절을 읊었다. 산하령의 시기적 배경이 언제인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당말기에서 송후기로 보는 사람이 많기떄문에 시대와 맞지않는 인용이 많은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어차피 무협이니 그냥 그러려니 하면 되는 것이다.
卜算子·黄州定慧院寓居作 蘇軾(소식)
복산자, 황주 정혜원 타향살이중 짓다.
缺月掛疏桐 漏斷人初靜
이지러진 달은 잎이 진 오동나무에 걸렸고 밤 깊어지니 사람들도 조용해 졌는데
時見幽人獨往來 縹緲孤鴻
누가 보랴 幽人(유인) 홀로 오가는 것 아득히 멀리엔 외로운 기러기 그림자
驚起卻回頭 有恨無人省
놀라 일어난 기러기 머리를 돌려 사람들 돌보지 않는 것에 한을 품고
揀盡寒枝不肯棲 楓落吳江冷
차가운 가지 골라 자려해도 내키지 않아 외롭게도 싸늘한 모래섬에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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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蘇軾)은 원풍(元豐) 3년(1080) 2월 황주(黃州)로 좌천되어 원풍 7년까지 황주에 유배되어 있었으며 황주에 유배되어 있는 자기 자신을 외기러기에 비유하여 맑고 고상하게 살려고 애썼지만 결국에는 황주에 유배되어 있는 신세임을 한탄한 노래이다.
소식은 재능에 비해 출세운이 별로였는지 유배도 많이다니고 좌천도 많이 당했다. 이 시를 보면 참 착잡한 마음이 잘 담겨있는데 무엇보다 저 멀리 보이는 기러기도 아니고 그 기러기의 그림자다. 기러기도 되지 못해 겨우 바닥에 비추는 외로운 그림자 신세라는 뜻이다. 물론 주자서가 의미한게 이 부분이지는 나도 모르지만 만약 그렇다면 정말 크아아아 가슴이 찢어진다. 과몰입

  1. 卜算子(복산자) : 사패명(詞牌名)으로 복산자령(卜算子令), 백척루(百尺樓)등으로 불리며, 쌍조(雙調) 44자이다. 대표적 작품에는 육유의 복산자(卜算子·咏梅)가 있다.
  2. 定慧院(정혜원) : 지금의 호북성(湖北省) 황강현(黃崗縣) 동남쪽에 있다. 蘇軾이 황주에 유배 되었을 때 머물던 곳이다.
  3. 缺月(결월) : 이지러진 달. 그믐에 지는 달.
  4. 漏斷(누단) : 물시계가 끊어짐. 밤이 깊음을 말한다. 更漏(경루)는 밤 동안의 시간(五更)을 알리는 누수(漏水)이다.
  5. 初靜(초정) : 비로소 조용해지다.
  6. 幽人(유인) : 유거(幽居)하는 사람, 은사(隱士). 蘇軾(소식) 자신을 말한다.
  7. 縹緲(표묘) : 멀고 어렴풋하다. 가물가물하고 희미하다.
  8. 孤鴻(고홍) : 외기러기. 鴻은 큰 기러기(大雁).
  9. 回頭(회두) : 머리를 돌이킴. 자신을 돌아봄.
  10. 揀盡(간진) : 고르고 고르다.
  11. 寒枝(한지) : 차가운 겨울 나뭇가지.
  12. 楓落吳江冷(풍락오강랭) : 보는 바가 듣는 바에 미치지 못한 경우를 비유한 고사이다.

    당나라 정세익(鄭世翼)이 최신명(崔信明)의 ‘풍락오강랭(楓落吳江冷)’의 구절을 듣고 직접 만났을 때 그 나머지 시 구절을 읽어 보고 실망했다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吳江(오강)은 무창 일대를 지나는 장강(長江). 삼국시대에 오나라에 속하여 오강이라 했다. 동파전집에는 이 부분이 “寂寞沙洲冷(적막하고 차가운 모래섬이라네.)”로 되어 있다. 이 사(詞)는 전송사(全宋詞) 및 동파전집(東坡全集)에 실려 있으며 송(宋) 신종(神宗) 원풍(元豊) 5년(1082) 12월 경 지은 시로 소식이 황주에 유배되어 있을 때 지은 사이다.

출처
憶少年·別歷下 晁補之(조부지)
젊은날을 기억하며, 역하에서 이별하다.
無窮官柳 無情畫舸 無根行客
끝없는 길가의 버들, 무정한 그림배들, 떠돌이 나그네들
南山尚相送 只高城人隔
남산은 항상 서로를 보내 주는데, 단지 높은 성은 사람 멀어지게 하네.
罨畫園林溪紺碧 算重來 盡成陳跡
다채로운 그림같은 정원계곡 붉고 푸른데, 다시 올 때면 수려 경치는 흔적만 있겠지.
劉郎鬢如此 況桃花顏色
유우석도 이미 반백이 되 다욌으니, 어찌 다시 붉은 도화빛 얼굴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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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부지(1053-1110), 본명은 오구(五九), 별명은 귀래자(桂來子)는 북송의 시인이자 작가로 소동파의 문객이었다. 그는 서예와 그림에 능하고 시와 시에 능하며 문학에도 능하다. 장뢰(張首), 황정견(皇庭廣), 진관(秦官)과 함께 수문사사(蘇门師師)로 불리며, 장뢰와 함께 조장(趙張)이라 불린다.

송사(宋詞)는 송나라의 가장 특징적인 문학 양식이며 매 수 곡조명이 있는데 이것을 ‘사패(词牌)’라고 부르고 격률에 따라 가사를 지은 것을 의성(依声)이라고 하였다. 송사는 멀리 시경(诗经)과 초사(楚辞)는 물론 한, 위, 육조의 시가(汉魏六朝诗歌)로부터 양분을 흡수하여 발전하였고 이후 명, 청(明清)의 희곡, 소설 등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출처1 출처2

왜인지 당시(唐詩)에 비해 떨어지는 인지도 때문에 검색난이도가 높다. 여기서 나오는 떠돌이 나그네들이란 구절을 사용했다. 이래저래 온객행이 정처없이 떠돌았다는 것을 잘 안다는 느낌으로 쓴것일까? 정말 말하지 않아도 전부 이해했다는 느낌도 들고 하필 이렇게 쓸쓸한 느낌이 나게 이름을 지은 온객행도 유죄다.

주자서가 많은 시중에 왜 하필 이별하는 시를 골랐을까? 지목숨 버리는거 제일 잘하는 주자서가 일부러 이 시를 골랐다는 것은 자기 스스로도 끝이 멀지 않았음을 어쩌면 직감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칠규삼추정 삼년동안 사는건데 온객행이랑 다니면서 이래저래 무공도 많이쓰고 온객행을 만난 시점이 주자서가 진왕을 떠나고 1년정도 지난 후라는 설정을 보면 주자서가 이미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정확히는 모른다 여러번 말하지만 나는 알못이니까


온객행이 말한 부분을 살펴보자. 온객행 역시 주자서의 이름을 가지고 운율을 맞춰보았다. 정말 염병천병이라고 할 수 있겠다

詩經 國風 邶風 擊鼓
시경 국풍 패풍 격고; 북소리
擊鼓其鏜 踊躍用兵 土國城漕 我獨南行
북소리 둥둥울리니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병기를 휘두른다.
도성에서 흙일을 하고 조읍에서 성을 쌓는데, 나는 홀로 남쪽으로 원정을 떠나노라.
從孫子仲 平陳與宋 不我以歸 憂心有忡
손자중을 따라가서 진나라와 송나라를 화평케했으나
나와 더불어 돌아갈 수 없으니 근심하는 마음으로 서글프다.
爰居爰處 爰喪其馬 于以求之 于林之下
여기저기 흩어져 지내다가 타던 말도 잃어버리고
이리저리 찾아 헤매다가 숲속에서 찾았네
死生契闊 與子成說 執子之手 與子偕老
생사를 같이하자고 그대와 다짐했고
그대의 손을 잡으며 백년해로 약속했지.
于嗟闊兮 不我活兮 于嗟洵兮 不我信兮
아아, 멀리 떨어짐이여!내가 같이 못함이여!
아아 약속함이여, 내가 약속을 지키지 못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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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고는 5장(章)에 매장 4구(句)로 소서(小序)에 ‘주우(州吁)를 원망하는 시다’라고 했다. 군사를 동원하여 폭란을 일으킨 주우가 공손문중을 장수로 삼아 진(陳)과 송(宋) 두 나라를 평정케 하자 국인들이 그 무례함을 들어 원망했다. 후에 진나라와 힘을 합해 정나라를 정벌하려고 했다. 진나라는 위환공의 외가였음으로 위나라의 대부 석작(石碏)이 위후와 공모하여 주우를 유인하여 복양(濮陽)에서 살해했다.

  1. 부(賦)다. 스토리가 있는 시인 것이다.
  2. 鏜(당)은 북치는 소리다.
  3. 踊躍(용약)은 앉았다 일어났다하면서 치고 찌르는 모습니다.
  4. 兵(병)은 창 등의 병장기를 말하고 土(토)는 흙손일이고 國(국)은 나라의 도성으로 국내에서 도성을 쌓는 일에 노역하는 漕城(조성)은 지금의 하남성 복양시(濮陽市) 부근의 조(漕) 땅에 성을 축조하는 노역이다.
  5. 손(孫)은 성이고 자중(子仲)은 자로 당시 원정군의 장수다.
  6. 평(平)은 화(和)함이니 진(陳)나라와 송(宋)나라를 우호케 함이다.

    춘추은공(隱公) 4년, 위환공(衛桓公) 완(完)을 죽이고 스스로 군주의 자리에 오른 주우(州吁)가 외국에 무력을 과시하여 국내의 백성들에게 위엄을 보이기 위해 송(宋) ․ 위(衛) ․ 진(陳) ․ 채(蔡)의 군사를 빌려 정(鄭)나라를 쳤던 일을 말한다. 이는 ‘평화조약을 이미 맺어 전쟁이 끝났는데 왜 나를 데리고 돌아가지 않는가?’하고 서글퍼서 하는 말이다.

  7. 爰(원)은 于是(우시)로 위나라 사람이 전쟁에 나가 于是居處(우시거처) 즉 여기저기 居(거)하고 處(처)하다가 말을 잃어버렸다. 말을 찾아 숲속을 헤매며 대오를 잃고 위치를 이탈하여 전의를 상실한 마음을 노래했다.
  8. 契闊(계활)은 막혀서 멀다는 뜻이다.
  9. 成說(성설)은 혼인서약을 지켰다는 말로 즉 약속대로 혼인을 이루었음이다.
  10. 우차(于嗟)는 탄식하는 말이다.
  11. 활(闊)은 계활(契闊)로 멀리 떨어짐이고 활(活)은 같이 사는 것이다.
  12. 순(洵)은 약속을 지킴이다. 신(信)은 ‘펼 신(伸)’과 통한다.
출처

전쟁에 나간 처지를 한탄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그중에 온객행이 가져다 쓴 부분은 네번째 부분으로 평생을 약속한 아내를 그리워하는 부분이다! 아내를 그리워해?! 하지만 마지막까지 읽어보면 이 시 역시 비극으로 끝난다. 하고 싶은 것, 약속 한 것 그 어떤것도 지키지 못함을 한탄하는 내용인 것이다. 그래도 일단 인용구의 내용만 보면 손을 잡고 백년해로를 약속하자는 뜻이니 온객행은 주자서에게 뭔가 약속을 하고 싶었던 걸까? 앞으로는 헤어지지 말자는 그런 다짐일까?

幽窗小記 中 陳繼儒(진계유)
看庭前花開花落 望天上雲捲雲舒
앞뜰의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바라보며, 하늘의 흘러가는 구름을 음미한다.

아무리 찾아도 한국어로 된 출처를 찾을 수가 없다. 애초에 유창소기라는 것이 정말 진계유가 썻는지에 대해 의심이 많고 책의 서명은 육소형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이부분은 위키를 참조했다.) 비슷한 내용이 채근담에도 나온다. 채근담 후집의 내용을 보려고 한다. 채근담이라는 책 자체도 홍자성이라는 사람이 유명한 구절을 모아놓은 것에 지나지 않지만 그래도 일단 정확한 출처가 애매한 소창유기보다는 채근담쪽이 더 신뢰가 가는 레퍼런스이기 때문이다.

採根譚 後集 70
채근담 후집 70
寵辱不警, 閒看庭前花開花落.
영욕에 놀라지 않고 한가로이 뜰 앞에 피고 지는 꽃을 본다.
去留無意, 漫隨天外雲卷雲舒.
가고 머무름에 뜻이 없어 무심히 하늘 밖에 떠도는 구름을 바라본다.
晴空朗月, 何天不可翶翔而飛蛾獨投夜燭
하늘 맑고 달 밝으니 어디론들 못 날아갈까? 부나비는 어찌하여 촛불에 몸을 던지고
淸泉綠卉, 何物不可飮啄而鴟鶚偏嗜腐鼠
맑은 샘과 푸른 풀 먹고 마실 수 있건마는 올빼미는 굳이 썩은 쥐를 즐긴다.
噫! 世之不爲飛蛾鴟鶚者幾何人哉
아, 이 세상에 부나비와 올빼미 아닌 사람이 그 몇이나 될 것인가.

뭘 말하고 싶은걸까? 뭐 정해진 운명은 거스를 수 없다. 뭐 그런 뜻인걸까? 채근담은 매번 읽을떄마다 그 뜻이 바뀌기 때문에 가끔 읽고 있는데 그래서 소창유기에 나왔다는 저 구절이 묘하게 친근해서 찾아본 결과 채근담에서 찾게 된것이다! 유유히 흘러가는 시간과 같이 정해진 것을 바꿀 수는 없다 뭐 그런 의미인것 같다. 온객행이 하고 싶었던 말은 대체 무엇일까? 주자서와 온객행은 꼭 만날 운명이었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걸까?

백년해로를 약속하고 그 다음에 우리는 꼭 만날 운명이었어 뭐 그런 얘기를 돌리고 돌려서 말한건가? 주자서를 향한 온객행의 고백인걸까? 이걸 듣고 잔을 부딧히고 술을 마시다니 이건 뭐 거의 프로포즈에 응한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아님)


이 모든 내용은 이 게시글을 참고로 작성 되었다. 중문주의

아름다웠던 그 15년

綺懷其十五 黄景仁
기회기십오 황경인

幾回花下坐吹簫,銀漢紅牆入望遙
꽃아래 앉아 피리를를 몇번이나 불었던가, 은하수 붉은 담장이 저 멀리 보이고
似此星辰非昨夜,爲誰風露立中宵
이 별은 어젯밤과 다른데 누구를 위해 바람과 이슬을 맞으며 한밤중에 깨어있나?
纏綿思盡抽殘繭,宛轉心傷剝後蕉
누에가 실을 다 뽑고 죽어야 그리움을 떨치려나 파초잎이 다 진 후에야 아픈 마음이 돌아 설까?
三五年時三五月,可憐杯酒不曾消
15년 15월, 애석하게도 술잔으로 과거를 지울 수 없네

황경인(1749~1783)은 청나라 시인이며 지금의 장수성 창저우 사람이다. 네살에 고아가 되었고 집안이 청빈했으며 소년시대에 이미 시로 명성을 얻었고 생계를 위해 사방으로 뛰어다녀야 했다. 평생 이백처럼 재능을 펼치지 못했고 가난에 시달렸다. 후에 현령으로 임명됐으나 빈곤과 질병으로 타향에서 객사하였다.

황경인은 젊었을 때 사촌 여동생과 사랑했는데 시작은 온정이 넘치지만 무언으로 끝난다. 그 짝사랑이 끝나 허무함과 쓸쓸함을 표현한 시이다. 두번째 구절인 '이 별은 어젯밤과 다른데 누구를 위해 바람과 이슬을 맞으며 한밤중에 깨어있나?' 이 싯구는 유명 무협소설에 쓰이면서 중국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시구가 되었다.

세번째에 나오는 누에같은 경우 당대(唐代)시인 이상은(李商隐)의 무제(无题) 시 중 春蠶到死絲方盡, 蠟炬成灰淚始干. ‘봄누에는 죽어서야 실 토하기를 그만두고 촛불은 재가 되어서 눈물이 마른다’ 가 떠오른다.
파초(芭蕉) 역시 이상은의 시 대증(代贈) 중에 芭蕉不展丁香結, 同向春風各自愁. ‘파초는 잎 못 펴고 라일락은 꽃잎 맺혀 함께 봄바람 향해서 각자 수심에 젖네.’ 라는 내용이 있다.


이 시는 앞서 소개한대로 무협소설에서 쓰인 이후로 누군가를 기다리는 뜻의 관용어구로 많이 쓰인다. 산하령에서는 두번 쓰였는데, 한번은 온객행이 4화에서 다른 한번은 주자서가 22화에서 말했다.

4화에서 온객행은 이 별은 어제와 같지 않으니 한시도 낭비하지 말고 술을 마셔야한다는 뜻으로 말했다.


그리고 같은 내용으로 22화에서 주자서가 술을 마시며 세번째 구절을 완전하게 읊는다. 온객행이 회복하기를 바라는 고상을 보고 한 말이다. 크아아 배운 도련님 티가 나는 주자서 너무 좋다. 


4화와 22화의 상황이 매우 다른것도 또다른 포인트인데 일단 4화에서는 둘다 서로가 정확히 누구인지 모르고 간을 보는 중이라면 22화에서는 서로의 정체를 모두 알고 있다. 같은 시지만 말하는 사람도 다르고 상황도 다르다. 인용된 구절이 황경인이 쓴 그 원작의 쓸쓸함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아니면 모 무협소설에서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애절함을 말하는 것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산하령의 시기적 배경을 송대(宋代)로 궁예하고 있는데 너무 최근의 시가 쓰인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도 너무 잘 어울리고 적절한 곳에 쓰였고 어차피 무협판타지니까 그런건 넘어가도록 하자.

북고산 아래에 잠시 머물다

次北固山下 王灣
차북고산하 왕만

당시삼백수 卷三 五言律詩 097
客路靑山外 行舟綠水前
길손은 푸른 산 바깥을 지나고 배는 짙푸른 물 위로 나아가네
潮平兩岸闊 風正一帆懸
물 불어 잔잔한 두 강둑은 드넓고 바람은 순풍이라 돛 하나만 올렸네
海日生殘夜 江春入舊年
밤의 끝에 바다에서 해가 솟아오르고 강은 이미 봄이라 한 해가 지나가네
鄕書何處達 歸雁洛陽邊
고향으로 보낸 서찰 어느 곳에 이르렀나 기러기 돌아가는 길에 낙양 지나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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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次(차): (잠시) 머물다. 멈추다.
  2. 北固山(북고산): 진강시鎭江市 북쪽 장강長江 가에 있는 산이다.
  3. 外(외): 하下로 쓰는 자료도 있다.
  4. 風正(풍정): 바람이 제대로 불다. 순풍.
  5. 殘夜(잔야): 곧 해가 뜨려고 하는 밤의 끝을 가리킨다.
  6. 江春入舊年(강춘입구년): 아직 새해가 되지 않았는데 강남은 벌써 봄이 왔다는 소식.
  7. 歸雁洛陽邊(귀안낙양변): 기러기가 소식을 전한다는 옛 이야기를 인용하여 북쪽으로 돌아가는 기러기가 고향인 낙양에 소식을 전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나타냄.
출처

王灣(왕만; 693~751) 자와 호 둘다 미상이다. 낙양 사람이다. 선천 연간에 진사가 되어 개원 초에 滎陽縣主簿(형양현주부)가 되었고, 《群書四部錄(군서사부록)》을 완성하는 문헌정리 사업에 참여하여 洛陽尉(낙양위)에 제수되었다. 《唐才子傳(당재자전)》에는 기무잠(綦毋潛)과 절친하였으며, 오초(吳楚; 양쯔강남쪽 지방)를 왕래하면서 많은 작품을 남겼다고 전한다. 《全唐詩(전당시)》에 10수의 작품이 실려 있다.

전당시에 작품이 10개나 실려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삶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다. 애초에 왕만이 남긴 시가 10개가 전부다. 따로 책을 내거나 하지 않아서 아마 소실된것으로 추정하는 듯 하다. 벼슬하는 동안의 기록을 제외하면 어디에서 태어났고 어디에서 죽었는지 생몰년도 조차도 확실하지가 않다. 그 중에도 차북고산하가 제일 유명한데 강남(양쯔강 남쪽지역)에 머무르면서 산과 호수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를 많이 썼다고 한다. 산수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그의 시풍은 후대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산하령에서는 20화에서 주자서가 온객행의 이름에 대해 말할때 나온다.

'客路靑山外 行舟綠水前'
이부분에서 여행객이 푸른산 바깥을 지나고 배가 물 위로 나아간다고 하는데 앞자를 따면 객행이다.

개인적으로는 견연의 연(衍)이라는 글자가 行사이에 氵(水)가 들어갔는데, 주자서가 생각한 구절을 보면 여행객이 푸른산 바깥을 지나며 배가 물을 지나간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연자를 풀어서 쓰면 가고 있는 사이에 물이 들어가니까 저 구절의 앞자를 따서 객행으로 지은것이 아닐까 하는 궁예를 하는것이다. 정말로 그런건지는 알수 없다. 왜냐면 난 알못이니까.

암튼 소소한 부분에서 주자서가 많이 배운 귀족이라는게 티가 나서 더 간질간질하고 도련님시절 주자서가 궁금해지는 것이다. 온객행이 무슨 말을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그러니 온객행이 죽고 못살지 진짜 죄많은 유죄남 주자서... 크아아아아아아 솔직히 34화부터는 온객행아 주자서 좀 놔줘라 싶은데 온객행이 안놔줘서 어영부영 해피엔딩도 새드엔딩도 아닌 뭐 그저그런 엔딩이 되버렸다. 그래서 내가 여직 하산을 못하고 있지... 나좀 나줘라ㅠㅠㅠㅠ

늘어진 이삭

詩經 國風 王風 黍離
시경 국풍 왕풍 서리; 늘어진 이삭

彼黍離離 彼稷之苗 行邁靡靡 中心搖搖
저기 기장 이삭 늘어지고, 피까지 돋아나 있는데, 갈수록 걸음은 더디어 지고, 슬픔은 물결처럼 출렁거리네.
知我者 謂我心憂 不知我者 謂我何求
내 마음을 아는 이야, 시름이 가득하다 하겠지만, 내 마음을 모르는 이는, 무엇 때문에 그러느냐 하겠지.
悠悠蒼天 此何人哉
아득하게 뻗은 푸른 하늘이여, 이는 누구의 탓인가?
彼黍離離 彼稷之穗 行邁靡靡 中心如醉
저기 기장 이삭 늘어지고, 피 이삭이 자라는데, 갈수록 걸음은 더디어 지고, 마음 속에는 술이 취한 듯 하네.
知我者 謂我心憂 不知我者 謂我何求
내 마음을 아는 이야, 근심이 가득하다 하겠지만, 내 마음을 모르는 이는, 무엇 때문에 그러느냐 하겠지.
悠悠蒼天 此何人哉
아득하게 뻗은 푸른 하늘이여, 이는 누구의 탓인가?
彼黍離離 彼稷之實 行邁靡靡 中心如噎
저기 기장 이삭 늘어지고, 피도 익어서 여물었는데, 발걸음은 더디어 지고, 마음속 슬픔에 목이 메이네.
知我者 謂我心憂 不知我者 謂我何求
내 마음을 아는 이야, 근심이 가득하다 하겠지만, 내 마음을 모르는 이는, 무엇 때문에 그러느냐 하겠지.
悠悠蒼天 此何人哉
아득하게 뻗은 푸른 하늘이여, 이는 누구의 탓인가?
더보기
  1. 피(彼): 〈모전(毛傳)〉에서는, ‘종묘와 궁실을 저기라고 한것이다’라고 하였다.
  2. 서(黍): 메기장.
  3. 이리(離離): 곡식의 과일이나 이삭이 익어서 늘어진 모양.
  4. 직(稷): 피. 또는 기장을 이름. 또한 서(黍)는 좁쌀,직(稷)은 옥수수라고도 한다.
  5. 행매(行邁): 걸어서 가는것.
  6. 미미(靡靡): 천천히 걷는모양. 모전(毛傳)〉에서는 ‘지지(遲遲)와 같다’고 하였다.
  7. 중심(中心): 심중(心中).마음속.
  8. 요요(搖搖): 근심이 되어 마음이 안정 되지 못한 것. 〈모전(毛傳)〉에서는, ‘깊이 근심하여 호소할 곳이없음’ 이라 하였고, 주희(朱熹)는 ‘정(定)하는 바가 없음’ 이라 하였다.
  9. 위아하구(謂我何求): 내가오래 머물며 떠날 줄을 모르고 있는 것을 보고, 다른 사람이 미심쩍게 여기는 의미가 함축된 말이다.
  10. 유유(悠悠): 아득하게 먼모양. 〈모전(毛傳)〉에서는, ‘멀다’라고 하였다.
  11. 차하인재(此何人哉):이렇게 망하게 한 그 사람은 누구인가?
  12. 수(穗): 벼나 보리등의 이삭을 이름.
  13. 중심여취(中心如醉): 근심에 취한 것이, 마치 술에 취한 듯하다.
  14. 실(實): 직묘(稷苗)인데, 곡식의 이삭인 수(穗)를 의미한다. 실(實)로 변한 것은 가서 볼때마다 곡식이 점점 더 자란 것을 시간적으로 말한 것이다.
  15. 열(噎): 목이 메다. 근심을하여 숨을 쉴수가 없는 상태를 말함.
출처

주나라 평왕(平王) 때 낙읍[落邑: 왕성(王城) 또는 동도(東都) 라고도 부름)]으로 도읍을 옮긴 다음, 한대부가 행역(行役)으로 옛 서울이었던 종주[宗周: 호경(鎬京) 또는 서도(西都)라고도 부름]에 이르러 보게 되었는데, 지난 날의 종묘와 궁실은 모두 다 없어지고 그곳에는 기장과 피만이 수북히 자라나 있는 것을 보고 그 슬픔을 읊은 것이라고 한다. 옛날의 화려했던 대궐터에 서있는 대부의 깊은 감회가 구체적인 자연묘사로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시경은 공자가 문하의 제자를 교육할 때, 주나라 왕조의 정치적 형태와 민중의 수용 태도를 가르치고 문학·교육에 힘쓰기 위하여 편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한시대에 〈제시(齊詩)〉·〈노시(魯詩)〉·〈한시(韓詩)〉·〈모시(毛詩)〉 라는 네 가지 종류의 책이 나왔지만, 오늘날 남은 것은 그중의 모시뿐이어서 별도로 모시라 하기도 한다. 

311편의 고대 민요를 '풍(風)', '아(雅)', '송(頌)'의 3부로 나누어서 편집하였다. 그중 6편은 제명(題名)만 있을 뿐 어구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가사가 있는 것은 305편이다. '풍(風)'이라는 것은 각국의 여러 지역에서 수집된 160개의 민요를 모은 것이요, '아(雅)'라는 것은 연석(宴席)의 노래로, 다시 소아(小雅)와 대아(大雅)로 구분된다. 소아 74편과 대아 31편은 조정에서 불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송(頌)' 40편은 왕조·조상의 제사를 지낼 때의 노래라고 여겨진다. 어느 것이든 고대의 이름없는 민중이나 지식인의 노래이다.

산하령에서는 14화에서 온객행이 자신의 배 안에서 말한다. 귀곡을 나오면서 분명히 생각한 뭔가가 있었을 텐데 주자서 만나면서 뭔가 잘못된 부분이 있나보다. 1화에서 온객행이 주자서를 보고 변수라고 했는데 온객행 본인이 생각한것보다 좀 많이 큰 변수였던것 같다.

비바람

詩經 國風 鄭風 風雨
시경 국풍 정풍 풍우; 비바람

風雨淒淒 雞鳴喈喈 旣見君子 云胡不夷
비바람이 몰아쳐 춥고 처량한데, 멀리서 닭울음 들려오네.
이제 그리운 님 돌아 오셨으니, 어찌 내 마음 편하지 않으랴!
風雨瀟瀟 雞鳴膠膠 旣見君子 云胡不瘳
비바람 세차게 몰아치는데, 닭울음 아득히 들려오네.
이제 그리운 님 돌아 오셨으니, 어찌 내 마음 체 내린듯 시원하지 않으랴!
風雨如晦 雞鳴不已 旣見君子 云胡不喜
비바람 몰아쳐 밤처럼 어두운데, 닭울음 그치지 않네.
이제 그리운 님 돌아 오셨으니, 어찌 내 마음 기쁘지 않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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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처처(淒淒): 날씨가 싸늘한 모양을 나타낸 의태어(擬態語). 날씨가 쌀쌀한 기운.
  2. 개개(喈喈): 듣기 좋은 새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를 나타낸 의성어(擬聲語).
  3. 운호(云胡):호(胡)는 ‘어찌’의뜻으로, 여하(如何)와 같다.
  4. 이(夷): 평(平)과 같은 뜻으로, ‘마음이 편안한 것’을 이른다.
  5. 소소(瀟瀟):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는 소리를 나타낸 의성어(擬聲語). 사납고 빠른 것을 의미한다.
  6. 교교(膠膠): 닭울음 소리를 나타낸 의성어(擬聲語).
  7. 추(瘳): 마음의 병이 낫다.
  8. 풍우여회(風雨如晦): 회(晦)는 어둠을 뜻한다. 새벽인데도 밤과 같다는것은 비바람이 몹시 심하다는 의미이다.
  9. 이(已): 그치다. 멈추다.
  10. 출처

객지에서 오랫동안 행역(行役)을 하다가 돌아온 남편을 맞아들인 아내의 기쁨과, 비바람치는 새벽에도 마음놓고 살 수 있게 된 안도감(安堵感)을 노래한 것 이라고 한다. 시경을 읽어보면 의외로 애정시가 많다. 남방에 초사가 있다면 북방에 시경이 있는데 보통 4언절구로 최초의 시가집의 타이틀에 걸맞게 귀족 뿐만아니라 민생의 시대상을 알수 있는 내용이 많아서 여러모로 역사연구에 기여를 하고 있다.

시경은 사서삼경할때 말하는 대표적인 유경에 속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느껴지는 지루할것 같은 느낌과는 달리 서정적이고 재미있는 내용이 굉장이 많다. 시경을 제외한 다른 유경의 경우 보통 역사를 집필한 내용이거나 왕실 혹은 집안의 법도같은 사실을 전하는 용도의 글이라 솔직히 지루하다. 쭉 읽는다기 보다는 그냥 필요한 부분을 찾아 읽는 편이라면 시경은 시집을 읽듯이 가끔 펼쳐봐도 전혀 지루하지 않다.

공자가 문하의 제자를 교육할 때, 주나라 왕조의 정치적 형태와 민중의 수용 태도를 가르치고 문학·교육에 힘쓰기 위하여 편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한시대에 〈제시(齊詩)〉·〈노시(魯詩)〉·〈한시(韓詩)〉·〈모시(毛詩)〉 라는 네 가지 종류의 책이 나왔지만, 오늘날 남은 것은 그중의 모시뿐이어서 별도로 모시라 하기도 한다.

311편의 고대 민요를 '풍(風)', '아(雅)', '송(頌)'의 3부로 나누어서 편집하였다. 그중 6편은 제명(題名)만 있을 뿐 어구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가사가 있는 것은 305편이다. '풍(風)'이라는 것은 각국의 여러 지역에서 수집된 160개의 민요를 모은 것이요, '아(雅)'라는 것은 연석(宴席)의 노래로, 다시 소아(小雅)와 대아(大雅)로 구분된다. 소아 74편과 대아 31편은 조정에서 불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송(頌)' 40편은 왕조·조상의 제사를 지낼 때의 노래라고 여겨진다. 어느 것이든 고대의 이름없는 민중이나 지식인의 노래이다.

이후로도 여러 학자들이 시경의 주석을 달았는데 시 자체가 아니라 당시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여 좀 과도하게 해석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기 때문에 직역한 것을 먼저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게다가 정풍의 경우 공자가 음탕(!)하다며 까기도 했다.

논어집주 衛靈公 위영공 第十五 10
放鄭聲 遠佞人, 鄭聲淫 佞人殆.
정(鄭)나라의 음란한 음악을 추방하며 말재주 있는 사람을 멀리 해야 하니, 정(鄭)나라 음악은 음탕하고 말재주 있는 사람은 위태롭다.


산하령에서는 14화에서 온객행이 주자서가 죽어간다는 것을알고 이 시를 읊는데, 이시가 쓰여진 배경을 생각하면 돌아온 남편을 보며 부른 노래 만약 내가 이 시를 산하령 보기 전에 봤다면 아마 온객행이 주자서의 정체를 확실히 알고 있다고 확신했을 것이다. 사실상 온객행이 '사형 나 왜 못알아봐 뿌애앵' 하는 부분이 아닐까? 돌아와서 너무 기쁜데 이제야 만나서 너무 기쁜데 막 너무 기뻐할 수도 없는 상황인 것이다!


주자서가 제일 잘하는 짓이다. 지목숨 버리기. 그러지 마로라 제발ㅠㅠㅠㅜㅠㅜ

춘정

折桂令·春情 徐再思
절계사·춘정 서재사

平生不會相思 才會相思 便害相思
평생 그리움 모르고 살았는데, 그리움이 생기자 상사병에 걸렸다.
身似浮雲 心如飛絮 氣若遊絲
그대 몸은 떠다니는 구름같고, 마음은 흔들리는 버들 같으며, 숨은 아지랑이 같은데
空一縷余香在此 盼千金遊子何之
여기에 잔향 한자락 남겨놓고 천금같은 그대는 어디로 가려하는가?
證候來時 正是何時 燈半昏時 月半明時
병증이 오는 때는 언제인가? 등이 반쯤 어두워질때 달이 반쯤 밝았을 때인가?

절계령·춘정은 원나라 시인 서재사의 작품인데 서재사는 섬세하고 수려한 시풍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산하령에서는 7화에 주자서가 독갈의 잔당을 해치우은 모습을 보고 온객행이 읊는다. 사랑시.. 연정시.. 아니 무슨 생각하셨는데 몸이 버들같데 정말 미쳤다.


바로 앞에서 사람이 죽었는데 너무 태연한 두사람.. 너무 낯설고요 아니 뭐 잘 어울리신다구요... 온객행이 입은 저 청록색 옷 너무 공작 같고 예쁘다 개취로 온객행 옷중에 제일 좋아한다.

기러기 무덤에 바치는 시

雁丘詞 元好問
안구사 원호문

問世間 情爲何物 直敎生死相許
세상 사람들에게 묻노니, 정이란 무엇이길래 생사를 가를까?
天南地北雙飛客 老翅幾回寒暑
천지간을 가로지르는 새야! 너희들은 지친 날개 위로 추위와 더위를 몇 번이나 겪었느냐!
歡樂趣 離別苦 就中更有癡兒女
만남의 기쁨과 이별의 고통 속에 헤매는 어리석은 여인이 있었는데,
君應有語 渺萬里層雲 千山暮景 隻影爲誰去
님께서 말이나 하련만, 아득한 만리에 구름만 첩첩이 보이고 해가 지고 산에 눈 내리면, 외로운 그림자 누굴 찾아 날아갈까
橫汾路 寂寞當年簫鼓 荒煙依舊平楚
분수의 물가를 가로 날아도 그때 피리와 북소리 적막하고 초나라엔 거친 연기 의구하다.
招魂楚些何嗟及 山鬼暗啼風雨
초혼가를 불러도 탄식을 금하지 못하겠고 산귀신도 비바람 속에 몰래 흐느낀다.
天也妬 未信與 鶯兒燕子俱黃土
하늘도 질투하는지 더불어 믿지 못할 것을 꾀꼬리와 제비도 황토에 묻혔다.
千秋萬古 爲留待騷人 狂歌痛飮 來訪雁丘處
천추만고에 어느 시인을 기다려 머물렀다가 취하도록 술 마시고 미친 듯 노래 부르며 기러기 무덤이나 찾아올 것을.

금나라 시인 원호문(1190-1257)이 금 장종(章宗) 태화(泰和) 5년(1205)에 사(詞)의 형식으로 지은 시이다. 원호문이 이 시를 쓴 이유는 과거시험을 보러가는 길에 만난 사냥꾼이 해준 이야기 때문이다. 사냥꾼이 말했다. "제가 기러기 한 쌍을 잡았는데 한 마리는 죽었고, 한 마리는 그물을 피해 도망쳐 살았습니다. 그런데 살아남은 기러기는 도무지 멀리 가지 않고 그 주위를 배회하며 슬피 울다가 땅에 머리를 찧고 자살해버렸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원호문은 죽은 기러기 한 쌍을 사서 분수(汾水)가에 묻어 주고, 돌을 쌓아 표시를 하고는 그곳을 기러기의 무덤이란 뜻으로 '안구(雁丘)'라 하고 이를 기리는 시 '안구사'를 지었다고 한다.

김용의 신조협려 초반에 이막수가 이 시를 읊어서 유명하기도 하다. 신조협려 읽을때는 이런 시가 있는지도 몰랐는데 다시 떠올려보니 이막수의 악행의 근원이 연정이었고 그 끝이 허무한것을 생각해보면 참 잘어울리는 시이다.

산하령에서는 6화에서 주자서가 떠나려고 할때 온객행이 주자서를 잡으며 읊는다. '아득한 만리에 구름만 첩첩이 보이고 해가 지고 산에 눈 내리면, 외로운 그림자 누굴 찾아 날아갈까' 날 두고 어딜 가냐고 묻는 내용인데 만약 이때 온객행이 주자서가 누구인지 눈치채고 있었다면 어쩌면 사형에게 자길 두고 어딜 가냐고 묻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미 예전부터 온객행은 사형을 마음에 담아둔 것일까? 보통 기러기는 결혼을 약속하는 혼수로 가장 처음 신랑이 신부에게 보내는 것으로 연정을 뜻한다. 자길 두고 어딜 가냐는 뜻의 그 많은 시 중에 왜 하필 기러기 무덤이라는 제목의 시를 가져다 쓴걸까? 마치 나한테 오해하라고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기러기를 건네며 청혼한건데 나만 모르는건 아닐까 막 오해해본다.



주자서 정말 그지 꼴을 하고 있는데도 온객행한테는 예뻐보이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