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idwinter’s Night Dream

집안을 감싸는 따뜻한 공기, 크리스마스 이브. 지인들과 보내는 평온하고 즐거운 저녁, 다크로드와 죽음을 먹는 자들의 대한 생각을 잠시 멀리 밀어두었다. 항상 같은 크리스마스 선물에 대한 이야기, 받고 싶은 선물에 대한 이야기, 학교에 있어서 알지 못했던 소소한 가족들의 이야기에 론은 귀 기울였다. 지니와 헤르미온느의 웃음소리가 가까워졌다. 소파 위에 늘어져있는 론을 발견하고는 지니가 다가와 옆에 앉았다. 론의 어깨에 머리를 살짝 기대며 헤르미온느에게 손짓했다. 헤르미온느의 뺨이 붉어졌다. 소파 위에 털썩 앉으며, 가져온 퀴블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론을 향해 크게 웃어보였다.

론을 사이에 두고 둘은 그렇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새로 출시된 사랑의 묘약이라던가, 다이애건 앨리에서 봤던 로브라던가, 받고 싶은, 혹은 주고 싶은 선물이야기…등등.

“헤르미, 내 머리카락 색은 너무 붉은 것 같아, 나도 헤르미처럼 갈색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헤르미온느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지니! 네 머리카락은 그 색일 때 제일 예뻐!”

지니가 론에게 시선을 돌리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론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지니가 물었다.

“론, 무슨 색깔 머리가 제일 좋아?”

점점 의식을 잃어가고 있던 론은 지니의 질문에 소파에 기대고 있던 머리를 들어올려 양 옆에 있는 두 소녀를 번갈아 쳐다보고는 한숨을 내 쉬었다.

“머리카락 색깔? 그게 뭐가 중요해?”

다시 머리를 소파에 기대려고 하는데 지니가 론의 머리카락을 움켜 쥐며 다시 물었다.

“아!!”

“머리카락이 어떤 색인 여자가 좋냐고!! 이 멍청아!”

지니의 손을 뿌리치며, 머리를 한번 헤치고는 곰곰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무슨 색깔 머리? 몸을 앞으로 숙여 팔꿈치를 무릎 위로하고 머리를 두 손에 묻었다. 딱히 떠오르는 생각이 없었다. 한번도 생각해 본적 없었던 주제였다. 한 손을 들어 머리카락을 앞으로 끌어당겨 보았다. 약간 두껍고 거친 느낌의 붉은 색 머리카락. 다시 소파쪽으로 기대며 지니와 헤르미온느의 머리카락을 만져봤다. 론의 행동에 떠들고 있던 지니와 헤르미온느는 론을 쳐다봤다. 지니의 머리카락은 론의 머리카락처럼 두꺼웠지만, 훨씬 부드러운 느낌이었다. 곱실거리지 않아서 그 느낌이 더 좋았지만, 너무 길었다. 헤르미온느의 머리카락은 얇고 부드러웠지만, 심하게 고불거려서 쓸어 내리면 손가락과 머리카락이 엉킬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얇고, 부드러운…”

자기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온 생각에 지니는 론을 쳐다보며 말했다.

“무슨 색이냐고 물어봤지, 누가 어떤 느낌이냐고 물어봤어?”

“무슨 색인지는 별로 안 중요한 것 같아. 그냥 어떤 느낌이냐가 중요해.”

솔직하게 지니를 보고 말했지만 지니의 표정은 론의 솔직함에 전혀 고마워 하는 태도가 아니었다. 지니는 한숨 섞인 말을 뱉어 냈다.

“남자들이란.”

지니의 말에 다시 고개를 소파위로 떨어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근래 들어 계속해서 실없는 지니의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해주면, 지니는 항상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같은 말로 끝을 맺곤 했다. 지니도 고개를 뒤로 떨구며 한숨을 내쉬었다. 옆에서 보고 있던 헤르미온느가 두 사람의 분위기에 곤란해 하는 표정을 짖고는 가지고 왔던 잡지를 뒤지더니 밝게 지니에게 물었다.

“지니! 크리스마스를 누구와 함께 보내고 싶어?”

헤르미온느의 질문에 고개를 론의 어깨쪽으로 옮겨 얹으며 헤르미온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한참 생각하더니 말했다.

“누구랑 보내고 싶다니 무슨 뜻이야?”

질문에 관심을 보이는 지니의 태도에 헤르미온느는 신이 난 다는 듯이 잡지에 써있는 질문을 읽기 시작했다.

“당신에게 하루의 시간이 있습니다. 오직 한 사람만을 선택할 수 있으며 선택한 그 사람과 당신 단 둘만이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낸다고 한다면, 당신은 어떤 사람과 그 시간을 함께 하고 싶으신가요?”

지니는 조금 생각하더니 헤르미온느에게 되물었다.

“헤르미는 누구랑 보내고 싶어?”

지니의 질문에 론을 할끗 보고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글쎄…”

헤르미온느의 행동에 지니는 낄낄거리고 웃더니, 다시 론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찌르며 론을 일으켰다.

“론! 누구랑 보내고 싶어?”

머리카락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론이 다시 고개를 들어 지니를 봤다. 눈살을 찌푸리며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자 지니는 한숨을 쉬며 헤르미온느가 했던 질문을 반복했다. 론은 다시 시선을 천장쪽으로 옮기며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나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

지니와 헤르미온느 모두 론의 말 뜻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조용히 있자 론은 다시 시선을 양 옆에 앉은 두 소녀에게 옮기고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니까, 그냥 또 한명의 위즐리도 아니고, 빨간 머리도 아니고, 해리포터의 친구라던가 헤르미온느의 친구, 혹은 지니의 오빠가 아닌 그냥 나 자신. 로날드 위즐리가 궁금한 사람하고 보내고 싶어.”

사람의 이름을 기대한 헤르미온느와 지니의 실망한 표정에 머쓱해진 론은 두 사람을 한번씩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몸을 천천히 소파로 기대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니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헤르미온느에게 물었다.

“심리 테스트 같은 거야?”

헤르미온느는 읽었던 잡지를 여기저기 뒤져보더니 다시 고개를 들어 지니를 보며 말했다.

“아니, 음, 응모권에 함께 보내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적어서 보내면 2인용 하와이행 포트키와 리조트 숙박권을 선물로 준데.”

지니는 몸을 일으키며, 헤르미온느가 들고 있던 잡지를 집어 들고는 자기 방으로 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헤르미온느는 급하게 지니 뒤를 따라가며 그 잡지의 소유권이 자신에게 있다며 웃었다. 계단을 올라가기 전에 론을 한번 힐끗 보고는 지니의 방으로 올라갔다. 시간이 흐르고 사람들은 하나 둘 잠자리를 위해 자리를 떠났다. 11시 27분, 이제 33분만 있으면 크리스마스다. 나른해진 몸을 이끌고 제일 꼭대기 층에 있는 방으로 향했다. 이미 너무 작아져 버려서 입을 수 없게 된, 작년에 받은 점퍼가 생각 났다. 제발 올해는 적갈색이 아니길 바래 보지만, 분명히 적갈색일 것이다.

방안이 추웠다. 밖은 이미 어두워 져 있었다. 눈이 조금씩 흩날렸다. 창문에 커튼을 치고 곧 체온으로 따뜻해질 이불 속에 몸을 묻었다. 고개를 돌려 해리가 와서 잠잘 침대쪽을 힐끔 보고, 고쳐 누웠다.

지니가 했던 질문들이 다시 떠올랐다. 머리카락, 얇고 부드러우면서 너무 길지도 너무 짧지도, 아니, 짧은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작은 바람에도 스쳐서 휘날리고, 햇빛을 받으면 햇빛에 하얗게 바래는 금발머리. 금발?

그 생각에 깜짝 놀라 급하게 일어나 앉았다.

‘절대로, 말포이를 생각하는 게 아니야. 학교에 금발머리 여자 애들을 생각한 걸 꺼야, 물론 아직 말포이던 여자 애들이던 머리카락을 만져본 적은 없지만, 분명 기분 좋을 꺼야… 어떤 느낌일까? 왜 머리를 항상 그렇게 빗어 넘기는 거지? 물론 그게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지만, 왠지 만지면 망가질 것만 같아서 만지기가 두려워. 망가진 모습? 헝클어진 말포이?’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휘두르며 머리 속을 채우는 생각을 털어 내려고 노력했다.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리고 손끝이 간질간질 했다. 그 모습을 본 해리가 방안으로 걸어 들어오며 부드럽게 웃었다.

“뭐해? 론? 괜찮아?”

붉어진 얼굴을 두 손에 묻으며 계속해서 머리를 흔들었지만, 생각처럼 쉽게 그 생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아냐, 아무것도 아니야”

그대로 뒤로 풀썩 누우며 천장을 바라봤다. 아직도 얼굴이 화끈 거리고 심장 뛰는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해리가 침대위로 기어 올라가며 물었다.

“불 꺼?”

론은 눈을 감고 어떤 감정도 담겨있지 않았던 말포이의 회색 눈동자를 생각했다. 분명 마치 텅 비어서 그 안에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그 눈동자의 주인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게 만드는, 끔찍하리 만큼 공허한, 감정하나 담기지 않은 죽은 사람 같은 눈동자가 론의 몸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론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해리는 조용히 ‘녹스’를 중얼거리고는 침대에 누웠다.




무겁고 두꺼운 커튼을 뚫고 들어온 아침의 푸른 빛, 유난히 아침이면 더 요란스럽게 들리는 새소리, 가끔 들리는 겨울 바람소리. 따뜻한 베개와 이불, 폭신한 침대. 잠을 자면서 밀어 두었던 무뎌진 감각들이 하나 둘 깨어나기 시작했다. 론은 아직 무거운 눈꺼풀을 감은 채로 침대 안에서 꾸물거렸다. 아직 조용한 주변으로 봐서는 이른 아침일 것이다. 크리스마스 아침, 위즐리의 버로우가 이렇게 조용할 리 없었다. 굳이 지금 눈을 뜨지 않아도 곧 나타나서 크리스마스를 위한 새로운 장난들로 론을 곤란하게 할 프레드와 조지 생각에 머리를 좀더 깊게 베개에 묻었다. 살짝 눈을 떠 침대 옆에 놓여진 작은 테이블의 시계를 보았다. 7시 20분쯤, 아니 18분, 19분쯤 되려나?

몸을 돌려 누워 앞에 있는 이불을 끌어 당겨 안았다. 체온에 따뜻하게 데워진 이불을 한아름 안고 다시 잠을 청하려는데, 이불 속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이게 올해, 프레드와 조지의 장난일까 싶어 끌어 당긴 이불을 더 바짝 끌어 당겨 안았다. 꿈틀 거림이 심해졌다. 한숨을 깊게 들이 쉬고는 눈을 감은 채로 고쳐 앉았다. 얼굴을 양손에 한번 묻고는 그대로 머리를 뒤로 쓸어 넘겼다.

살짝 눈을 뜨고는 주변을 살폈다. 무거운 커튼 사이로 비추는 희미한 빛에 푸르게 물든 방안이 조용했다. 고개를 돌려 프레드와 조지를 찾았다. 쌍둥이는 없었다. 문득 보게 된 해리의 침대도 밤새 아무도 사용하지 않은 냥 정돈된 채로 그 침대 안에 있어야 할 사람이 없었다. 인상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이것도 쌍둥이의 장난 중 일부인가?’

다시 시선을 돌려 침대를 봤다. 좀 좁다고 생각 했었는데, 정말 이불 속에 무언가가 이불을 둘둘 휘감은 채로 웅크리고 있었다. 갑자기 예전에 곰인형이 거미로 변했던 과거가 스치고, 그 기억에 몸을 부르르 떨며, 침대 옆에 벗어둔 슬리퍼를 찾았다. 침대 헤드에 걸쳐 놓았던 가운을 걸쳐 입고는 빙 돌아 그 이불을 돌돌 말고 있는 것을 침대 중앙으로 밀었다. 이불에 묻힌 중얼거림이 들렸다.

“음….”

일단 거미가 내는 소리가 아니라는 것에 안심한 론은 천천히 손을 이불쪽으로 가져갔다. 어쩌면 해리가 어젯밤에 잠결에 자기도 모르게 론의 침대에 와서 잔 것 일지도 모른 다는 생각에 이불 끝을 살짝 들어 올려 이불 안을 확인했다.

완벽하게 긴장이 풀어진 살짝 감긴 눈에 주근깨 한 점 없는 새 하얀 얼굴에 언제나 그렇듯이 뾰족한 턱, 살짝 벌어진 입까지…, 론은 살면서 이렇게 평화로운 모습의 말포이를 본적이 없었다. 자각하지 못한 작은 속삭임이 론의 목구멍을 빠져 나왔다.

“말포이!”

커다랗게 떠진 눈동자를 채우는 세상에서 제일 짜증나고 싫은 말포이가, 정말 이 단어가 과연 어울릴까 의심스럽지만, 굉장히 ‘순진한’ 얼굴로 ‘론 위즐리’의 침대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이불의 끝 자락을 손끝에 쥔 채로 구부정하게 어색하게 굽혀진 그 상태 그대로 언제부터 참았는지 모르는 숨을 천천히 고르고는 다시 그 짜증나는 얼굴을 이불로 덮어 버렸다. 몸을 곧게 펴고 눈을 감으며,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눈을 뜨고, 고개를 돌려 긴장한 목 근육을 풀어주고 어깨랑 다리도 한번 쭉 늘려 긴장을 풀어 준 뒤, 다시 이불 끝 자락을 살짝 들어 그 안에 있는 사람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평소라면 잘 정돈되어 빗겨진 금발머리가 이불 사이로 흩어져 있었다. 갑자기 어젯밤에 지니가 했던 질문이 떠올랐다. ‘론, 무슨 색깔 머리가 제일 좋아?’ 색깔에 대해 생각해 본적도 없고, 다른 사람을 볼 때, 머리색깔을 고려해본 적이 없는 론으로써는 참신한 질문이었다. 그리고 헤르미온느와 지니의 머리카락 감촉이 론의 손끝을 간질이는 것 같았다. 이불 사이에 흩어져 있는 금빛 머리카락이 두꺼운 커튼을 뚫지 못한 희미한 햇살에 거의 흰색으로 보였다. 마치 만지면 때가 탈 것 같은 머리카락으로 론은 천천히 손가락을 가져가 만져 보았다. 살짝 구불거리면서, 론의 머리카락 보다는 얇지만, 헤르미온느의 머리카락 보다는 두꺼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거칠다고 느껴졌다. 일단 말포이가 보이는 것처럼 소녀답지 않은 점에 실망하기도, 안심되기도 하는 혼란스러운 마음에 얼굴이 찡그려졌다. 좀더 많이 만져보면 달라질까 싶은 마음에 말포이의 얼굴 근처에 있는 머리카락으로 손을 가져가는 순간, 말포이의 눈이 떠졌다.

“어!”

깜짝 놀라 뒷걸음 치다 엉덩이부터 바닥에 넘어졌다. 몸을 지탱하기 위해 양손을 바닥에 집은 채로 얼어버렸다. 말포이는 다시 눈을 몇 번 깜박이더니 갑자기 몸을 일으켜 앉았다. 헝클어진 머리에, 아직 잠에서 덜 깬 멍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 보고는 바닥에 너부러진 론을 발견하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고개를 약간 갸웃거리더니 다시 침대 위에 있는 이불을 자기 몸쪽으로 끌어당겨 둥글게 말고는 이불 안쪽으로 파고 들었다.

“말포이…”

이불 밖으로 머리를 내민 말포이가 반쯤 눈을 뜨고 짜증으로 일그러진 표정으로 론을 마주했다. 론은 천천히 바닥에서 일어서며 걸쳤던 가운을 고쳐 입고 말했다.

“젠장, 거…거긴, 내 침대야! 당장 비켜!”

말포이는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고는 다시 이불 속으로 머리를 묻고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분명 말포이가 자는 침대는 론의 침대보다 훨씬 넓을 텐데, 왜 저렇게 몸을 작게 말고 있는지 론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물어보는 대신 말포이를 ‘론 위즐리’의 이불에서 떼어냈다.

“내 이불이라고! 비켜! 이 자식아!”

이불을 잡고 늘어지는 말포이를 떼내기 위해 말포이를 바닥쪽으로 끌어 당겼다. 그 바람에 말포이의 몸이 중심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굉장히 큰 ‘쿵’ 소리와 함께 침대 옆에 있는 테이블에 이마를 부딪혔다. 이마를 붙잡고 바닥에서 고통에 으르렁 거리던 말포이가 소리쳤다.

“이 트롤! 무슨 짓이야!”

소리에 놀라, 이불을 침대위로 던져 놓고는 이마를 붙잡고 있는 말포이에게 무릎을 굽혀 앉으며 물었다.

“괜찮아? 그 소리 진짜…”

론 쪽으로 휙 돌린 말포이의 눈살이 찌푸리며 노려봤다. 말포이의 손을 살짝 치워 부딪힌 쪽을 보려고 하자, 말포이는 론의 손을 찰싹 때리며 뿌리치며 숨을 삼켰다. 론 역시 얼굴을 찡그리며 말포이의 손목을 낚아채 상처부위를 봤다. 살짝 붉어져 볼록 튀어 나와 있었지만 피는 나지 않았다. 말포이의 이마에 혹이 생겼다.

론은 말포이의 손목을 놓으며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이불을 가지고 싸우다가, 넘어져서 혹이 난 말포이는 평소에 론이 봤던 말포이가 아니었다. 과연 론의 인생 중에, 말포이가 족제비로 변했을 때 말고 이보다 더 웃긴 상황이 있었을까? 그렇게 한참을 바닥을 구르며 웃다가, 말포이의 차가운 시선에 머쓱해진 론은 바닥에 앉으며 말포이의 행동을 살폈다.

론의 웃음을 멈춘걸 보고 있다가 고개를 돌리며 이해할 수 없는 신음 소리를 내더니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다가, 실수로 혹을 만져 또 다른 알 수 없는 소리를 냈다. 그 모습이 너무 웃긴 론은 자기도 모르게 또 낄낄거리고 웃었다.

론의 웃음소리에 화가 났는지 말포이는 고개를 돌려 침대 위에 있는 베개를 집어 들어서 론의 얼굴을 향해 던졌다. 얼굴을 제대로 맞은 베개가 무릎으로 떨어졌다. 멍한 표정으로 베개가 던져진 쪽을 보았다. 말포이의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학교에서 내내 시달려야 했던 악의 가득한 미소가 제자리를 찾았다. 하지만, 이마에 난 혹이 그 미소를 어떤 의미로 그전 보다 덜 악의적으로 보인다고 하면 이상할까?

무릎에 안착한 베개를 다시 집어 들어 말포이의 얼굴을 향해 던졌다. 말포이의 얼굴에 닿기도 전에 말포이는 팔을 들어 베개를 쳐내고는 몸을 일으켜 세우고는 빈정거리는 톤으로 말했다.

“위즐리, 하하. 굉장히 재미있네.”

론 역시 몸을 일으켜 세우며 말포이를 마주 봤다. 아직 낯설은 헝클어진 머리에, 약간 넉넉해 보이는 진한 녹색 파자마를 입고 론의 방을 살피기 시작했다.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놓여진 책들과, 벽쪽에 붙어있는 캐논 포스터들 해리가 자고 있었어야 할, 깨끗하게 정돈된 임시 침대 쪽으로 몸을 천천히 움직이며 론의 방을 조사라도 한다는 듯이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론은 기분 나쁜 이 침묵이 싫어서 문쪽으로 걸어가며 중얼거렸다.

“이게 만약에 올해 쌍둥이의 장난이라면, 곰인형 이후로 진짜 최고로 짜증나는 장난이야.”

살짝 열린 문밖을 나서면서, 조용한 복도를 지나 아래층을 향해 내려왔다. 거실로 내려 왔을 때, 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상했다. 보통 크리스마스 아침엔 가족끼리 모여 선물을 풀어보는 게 당연한 버로우에서 크리스마스 아침 거실에 아무도 없다니.

벽난로 옆에 장식된 트리 밑에 선물들도 그대로였다. 부엌쪽에서 들려야 할 부산한 아침식사 준비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천천히 몸을 옮겨 부엌 안으로 들어 섰지만, 역시 아무도 없었다. 이상한 느낌에 집안 곳곳을 살피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당연히 꺼려졌을 쌍둥이의 방도, 열어봐서는 안 되는 지니의 방도, 그리고 부모님의 방에 3층에 다락 옆에 붙어 있는 론이 살면서 단 한번도 사용 한적 없는 손님방까지 모두 뒤졌지만, 아무도 없었다. 천천히 계단을 내려와 바로 앞에 보이는 현관 문을 열었다.

밤새 내린 눈이 쌓여 길을 덮었다. 누군가가 왔던 흔적도, 나간 흔적도 찾아 볼 수 없었다. 곧 날카롭게 날을 벼린 겨울의 칼 바람에 양 팔로 몸을 감싸며 얼른 집 안으로 들어 왔다. 혹시 플루네트워크를 사용 했을까 싶어 식당 옆에 붙어 있는 벽난로를 체크 했지만, 어제 이후로 아무도 손을 대지 않은 것이 느껴졌다.

눈살을 찌푸리며, 론은 다시 천천히 꼭대기 층에 있는 이 집안에 론 말고 단 한명 밖에 없는 짜증나는 금발머리가 있는 방으로 올라갔다.




방으로 올라가는 길에 잠시, 욕실에 들러 물 주머니에 차가운 물을 가득 담았다. 그냥 내버려 두면 더 커져서, 지금보다 훨씬 재미 있겠지만, 일단 이 집에 있는 사람이 말포이 혼자 뿐이고, 이 상황을 함께 해결할 다른 사람을 찾기 전까지 말포이는 론이 가진 단 하나의 선택이었다. 주머니를 들고 다시 방안으로 들어 섰을 때, 매섭게 부는 겨울 바람이 론을 맞이 했다. 주황색의 두꺼운 커튼이 젖혀지고, 활짝 열린 창문에 몸을 기대고는 바깥을 보고 있는 말포이를 발견했다. 겨울 바람에 거의 흰색으로 보이는 얇은 머리카락과, 헐렁한 진한 녹색 파자마가 바람에 흔들렸다. 반쯤 감긴 눈으로 금방이라도 잠에 들 사람처럼 햇빛에 투명한, 항상 그렇듯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은 공허한 눈동자가 몸을 감싸는 차가운 겨울바람 보다 더 차갑게 느껴졌다. 손과 발끝이 추위에 얼얼해질 때까지 그렇게 서서 창 밖을 바라보는 말포이를 보고 있다가, 말포이를 창가에서 밀어내며 재빨리 창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침대 아래쪽에 떨어진 담요를 집어 몸에 감싸며 말했다.

“미친, 무슨 짓이야! 방이 차가워졌잖아!”

다시 말포이 쪽을 보며, 들고 왔던 물 주머니를 말포이가 있는 쪽으로 던졌다. 받는 척도 하지 않고, 그대로 말포이의 발 아래로 떨어진 물 주머니에서 물이 흘러 나왔다. 툴툴대며, 말포이를 밀어 내고 물 주머니를 들어 올리며, 흘러내린 물을 걸레로 덮었다. “빌어먹을.” 물에 젖는 걸레 옆에 맨발로 서있는 말포이를 한번 힐끔 보고는 물 주머니를 들고 다시 화장실로 향했다. 주머니 안에 물을 빼내고, 주머니를 다시 채운 다음, 다시 방 안으로 들어왔다. 말포이는 침대에 걸터앉아 굳게 닫힌 창문을 보고 있었다. 마치 새장 안에 갇힌 새처럼 그 창문이 열리면 당장이라도 날아갈 것처럼 열심히 보고 있었다. 대체 밖에 뭐가 있길래 저렇게 열심히 보고 있는 걸까? 창문쪽으로 고개를 돌려, 언제나 똑 같은 바깥을 보았다. 버로우의 낮은 울타리 너머로 넓은 들과, 작은 언덕, 숲이 보였다. 저 숲을 넘어가면 뒤쪽에 작은 호수가 있었다. 이런 날씨라면, 분명이 꽁꽁 얼었을 것이다, 몇 일만 더 기다리면, 분명 얼음낚시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말포이가 앉아있는 침대 옆에 털썩 앉으며 말포이의 시선을 샀다. 말포이의 앞머리를 한쪽으로 치우며, 아까 보다 좀더 붉게 부어 오른 혹을 봤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아파보이는 상처에, 말포이에게 미안해야 할지 한참 생각하다가, 살짝 입김을 불었다. 그 입김에 움츠리며, 신음소리를 냈다.

“이대로 두면 더 커질지도 몰라, 일단 차갑게 찜질해주면 좀 가라 앉을 테니까…”

가져온 물 주머니를 조심스럽게 말포이의 이마로 가져가며, 몇 번 더 살짝 불었다. 물 주머니가 혹을 다 가리고 난 다음에야, 론은 말포이와 자기 사이의 간격이 얼마나 좁은지 깨닫고, 몸을 뒤로 젖혔다. 말포이의 손목을 잡아 물 주머니로 손을 가져가게 했다. 겨울 바람에 차가워진 말포이의 손목이 과연 말포이가 살아 있기는 한가에 대해 의문을 갖게 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면서, 말포이의 맨발이 찬 마룻바닥에 닿아 있는 것을 봤다.

어깨에 둘러맸던 담요를 말포이에게 덮어 주고, 지니 방 옆에 있는 창고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랫동안 열어보지 않아서 인지, 어디에 뭐가 있는지 제대로 찾을 수 없었지만, 이것 저것 뒤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지니가 예전에 이상한 화장품을 사고 사은품으로 받았던 분홍색 털 슬리퍼를 찾았다. 그리고 오랫동안 입지 않았던 비슷한 색깔의 가운도 있었다. 그걸 들고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말포이는 물 주머니를 머리에 올려 놓은 채로 침대에 누워있었다. 헛기침을 해서 다시 돌아 왔다는 걸 알리려고 했지만, 진짜 기침이 론의 목구멍을 간질였다. 그렇게 몇 번 기침을 하고 침대위로 분홍색 가운을 던졌다. 말포이는 감고있던 두 눈을 뜨면서 배위에 안착한 가운을 눈쪽으로 들어 올렸다. 물 주머니를 한 손으로 잡고 몸을 일으키며,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론을 봤다. 론은 손에 들고 있는 분홍색 털신을 말포이 쪽으로 흔들며 말했다.

“내가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이야 말포이.”

물 주머니를 내려 놓으면서 말포이가 코웃음 쳤다.

“위즐리는 쓰던 걸 선물로 주나 보지? 하긴 너희 집 재정상태를 고려했을 때, 예상하기 힘든 일도 아니지만. 영광인걸, 위즐리에게 선물을 받을 날이 올 줄이야”

“닥쳐.”

분홍색 털신을 바닥으로 던지며 돌아 섰다. 이대로 돌아서서 하루종일 말포이를 피하는 것이 자신을 위해서도 말포이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대체 왜 버로우에 말포이와 론만 있는 건지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문을 나서며 아래층으로 향하기 전에 다시 방쪽으로 머리를 내밀며 가운을 앞뒤로 살펴보는 말포이에게 물었다. “배 안고파?”

계단을 내려와, 거실에 도착했을 즈음에, 말포이가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부엌 안으로 들어가, 먹을 것을 찾았다. 어제 남은 음식들과, 따뜻하게 주문이 걸어진 머핀이 보였다. 머핀과 쿠키가 든 바구니를 들고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옅은 핑크색 가운에, 분홍색 털 슬리퍼를 신고, 살짝 헝클어진 머리 사이로 보이는 붉게 부풀어 혹이 난 말포이가 식당 안으로 천천히 걸어 왔다. 아직 잠이 덜 깼는지, 멍한 표정에 주변을 살펴보는 모습이 낯설었다. 말포이에게 손을 흔들어 의자에 앉히고 가지고 온 바구니를 앞에 내려 놓으며 말했다.

“일단 집에 있는 게 이거밖에 없으니까, 먹어. 뭐 마실래?”

다시 몸을 돌려 부엌 쪽으로 향했다. 옆에 보이는 주전자에 물을 담고 스토브에 불을 붙였다. 찻장을 뒤져보니 이런 저런 종류의 마실만한 것이 나왔지만, 론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코코아 뿐이었다. 손에 잡히는 컵 두개를 집어 들고는 식당쪽을 힐끔 봤다. 머핀을 하나 집어 들고는 이리저리 돌려가며 살펴보고 있는 말포이가 보였다. 코웃음을 치며 머리를 한번 흔들고는, 따뜻하게 데워진 물을 컵에 붓고, 그 컵을 들고 다시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말포이 앞에 아이싱만 떼어먹고 남은 머핀이 있었다. 그리고는 쿠키가 있는 바구니 쪽으로 손을 가져가더니, 쿠키위에 얹어진 아이싱을 살짝 핥았다.

“너희 집요정 아이싱 괜찮은데?”

“집요정 이라니, 우리집엔 집요정 없어. 그건 우리 엄마가 만든 거야.”

론의 목소리에 놀란 표정으로 손에 들고있는 쿠키와 론을 번갈아 가며 보았다.

“너희 엄마가 요리를 한다고?”

아이싱을 핥았던 쿠키를 다시 아래쪽에 내려놓고, 바구니에 있는 머핀을 다시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머핀 위에 얹어진 아이싱 부분만 떼어 먹기 시작했다. 가지고 온 컵을 말포이 옆에 의도했던 것보다 약간 세게 컵을 내려 놓고 말포이의 손에서 머핀을 뺏었다.

“야! 앞에 있는 것부터 마저 먹고 먹어!”

론의 손에서 머핀을 채내며 말포이가 말했다.

“다 먹었어! 내가 먹고 싶은 부분만 먹을 거야!”

말포이는 옆에 놓여진 컵을 한번 살펴보더니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는 눈살을 찌푸리더니 말했다.

“너무 달잖아!”

설탕 덩어리인 아이싱 부분만 먹으면서, 코코아가 달다고 짜증내는 말포이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멍하게 쳐다보고 있다가 말포이 반대쪽에 털썩 내려 앉으며 말포이가 먹다 남긴 머핀을 집어 들어 한입 베어 물었다. 사실 엄마가 만든 음식은 거의 대부분 다 맛이 있었지만, 달기만 한 아이싱을 별로 안 좋아 했던 론은 아이싱이 없는 머핀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말포이가 기분 나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위즐리, 위즐리, 집요정이 필요 없네, 이미 자체가 미천한데 더 미천한 생물이 있어서 어디다 써?”

먹고 있던 머핀 부스러기를 말포이 쪽으로 던지며 말했다.

“닥치고 쳐 먹기나 해!”

역겹다는 표정으로 론을 한번 쳐다보더니 테이블 위로 턱을 괴고 집었던 머핀의 아이싱 부분을 손가락으로 떼서 먹기 시작했다. 항상 크리스마스를 버로우에서 보낸 사람처럼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머핀과 코코아를 먹는 말포이를 보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일단 그 전에 집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었다.

대체 왜? 어떤 이유로 말포이와 론만 이 집에 있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했다.

“말포이, 넌 궁금하지도 않아? 네가 왜 여기 있는지?”

말포이는 아이싱만 다 떼어먹은 또 다른 머핀을 론이 있는 쪽으로 밀어 내며, 괴었던 고개를 천천히 들어올리고는 주변을 살펴봤다. 그리고 시선을 론쪽으로 돌리며, 한쪽 입 꼬리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정황상, 난 위즐리 우리에 있어.”

잔뜩 짜증 섞인 으르렁 소리를 내고는 양손으로 식탁 위를 내리쳤다. 그 소리에 놀랐는지 말포이의 어깨가 움찔 했다. 말포이의 투명한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지금, 우리집에 너랑 나밖에 없는 굉장히 짜증나고 싫은 상황에 놓여있어, 너도 알다시피 나는 다혈질에 생각보다는 주먹이 앞서는 사람이야.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너의 비루하고 가냘픈 몸을 봤을 때 네가 나를 때려 눕힐 확률은 굉장히 낮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 주먹만한 머리 속에 든 뇌라는 걸 좀 사용할래?”

말포이는 마치 론이 이런 말을 할거라는 것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굉장히 차분한 모습이었지만, 말포이의 눈은 확실히 그가 화가 났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투명했던 눈동자가 점점 원래의 푸른빛이 도는 회색빛깔을 찾기 시작했다. 악의에 가득찬 미소가 다시 말포이의 얼굴에 자리잡았다.

“내 몸이 비루한지 아닌지 보기라도 했어? 마치 안다는 듯이 떠들지마 오크!”

“제발 좀 입닥쳐 말포이!”

“너나 그 커다란 입 좀 다물어. 위즐리!”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사실 뭘 할지 아무 생각도 없었지만, 일단 너무 화가 났다. 피가 흐르는 느낌이 팔뚝에서 느껴졌고, 귓속에서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크게 숨을 몇 번 들이 마신 뒤에, 다시 눈을 떴다. 말포이는 짜증 난다는 듯이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지만, 론의 행동에 약간 놀란 듯 몸을 뒤쪽으로 빼고 있었다. 다시 자리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

“내가 호의적으로 대하면, 너도 최소한의 호의를 좀 보일래?”

“위즐리는 이걸 호의라고 부르나 보지? 어찌나…”

말포이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좋아! 알겠어! 내가 잘못했어. 미안.”

론의 갑작스러운 사과에 혼란스러운 표정의 말포이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론은 컵에 얼마 남아있지 않던 코코아를 얼른 다 마시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집 안, 밖으로 사람들이 오거나 나간 흔적이 없어. 플루네트워크도 확인해봤지만, 이미 닫혀있고 정말 이 집안에, 너랑 나 둘 밖에 없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일단 좀 생각해 보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

말포이는 조금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론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빈 컵을 들고 부엌으로 향했다. “뭐 더 마실래?” 말포이가 반정도 남은 컵을 가지고 부엌쪽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다즐링이나, 얼그레이 같은 홍차는 없어?”

코코아가 있었던 찬장의 문을 열며 말포이에게 손짓했다. 말포이가 찬장쪽으로 고개를 옮기더니 론에게 물었다.

“이게 뭔데?”

“저기 보이는 저 상자 안에 든 찻잎이 아마 홍차였던 것 같은데, 난 어떻게 만드는지 몰라.”

론의 손가락이 가리킨, 약간 오래된 듯한 철제 상자랑 그 주변을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더니 조금 평범해 보이는, 그래도 짜증나는 미소를 만들어 내며 말했다.

“내가 차를 끓일 수 있다고 생각한 거야? 차라리 욕을 해.”

머리를 흔들며, 싱크대 쪽에 마시다 만 코코아 컵을 내려놓고 거실쪽으로 나갔다.




컵을 싱크대 아래로 내려놓은 뒤 말포이를 따라 거실쪽으로 나갔다. 말포이가 소파 위에 털썩 앉았다. 별 생각없이 말포이 옆에 앉으며 어젯밤에 지니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말포이 쪽을 한번 힐끔 보고는 잠깐 만져봤던 머리카락 느낌을 다시 생각해 내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 촉감보다, 엄청 편안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말포이의 자는 얼굴이 자꾸 머리속을 채웠다. 머리를 흔들며 코웃음을 한번 치고는 소파 뒤쪽으로 몸을 기대며 말했다.

“어제 밤에 지니가 이상한걸 물어보긴 했어.”

말포이도 론의 모습을 따라 몸을 뒤로 젖히면서, 소파 앞에 있는 커피 테이블 위에 분홍색 털 슬리퍼가 신겨진 발을 올려 놓으며 론에게 물었다.

“어떤?”

“어떤 색 머리카락이 좋으냐, 누구랑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냐, 뭐 이런 멍청한 여자 애들 질문.”

“그래서?”

“그래서…, 음…”

어제 했던 대화들이 갑자기 떠오르면서 두 뺨이 점점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 잘 생각해 보니, 방금 한 말이 오해를 살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에 말포이를 보았다. 말포이는 혼란스러운 건지, 기쁜 건지, 아니면 짜증난 건지 모를 듯한 표정으로 조용히 론을 살피더니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말포이의 웃음에 기분이 나빠진 론은 팔꿈치로 말포이의 옆구리를 찌르며, 물었다.

“뭐가 웃겨?”

몸을 앞으로 숙이며 배를 잡고 웃던 말포이가, 론의 팔꿈치가 닿은 쪽을 문지르며 론에게 말했다.

“그, 그, 그, 멍청한 질문들에 대한 답이 나야? 내 생각한거야?”

“뭐?! 아냐!”

재빨리 반응 했지만, 따뜻했던 뺨이 화끈거리는 것은 숨길 수 없었다. 그 모습에 말포이는 아까 보다 더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말포이가 이렇게 숨을 헐떡거리면서 웃는걸 본적이 없는 것 같았다. 항상 엄청 심각한 무표정이거나, 한쪽 입 꼬리만 살짝 올라간 짜증나는 미소라거나, 아니면 정말 못된 표정들 밖에 본적 없는 것 같은데, 처음으로 론과 비슷한 또래의 그냥 평범한 남자아이로 보였다. 말포이가 천천히 숨을 고르고 다시 몸을 소파에 기댔다. 론은 손을 들어올려 얼굴을 감싼 뒤, 붉어진 얼굴을 진정 시키기 위해 크게 한숨 쉬었다.

엄청 불편한 침묵이 얼마나 흘렀을까, 말포이가 입을 열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항상 성대한 파티가 열려, 유럽 각지에서 온 친척들과, 아버지께서 알고 계시는 영향력 있는 가문 사람들이 주로 참석하는 굉장히 격식 차린 모임이지. 매년 오는 사람들도 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에게 요구하는 것도 배로 늘어나지.”

한숨을 한번 쉬더니, 고개를 뒤로 젖혀 천정을 보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올해도 작년이랑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올해 새로 온 사람들 중에는 조금…, 조금, 다른 친척이 있었어. 프랑스 어딘가에서 왔다는데…, 붉은 머리에, 주근깨까지, 게다가 여자였어. 아버지는 중요한 사람이라며, 내게 집안을 안내해 주라고 부탁하셨지. 다른 사람들하고 같이 있을 때는 평소에 보는, 의례적이고 형식적인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나랑 둘만 남으니까 엄청…, 엄청 다른 사람이 되는 거야!”

얼굴로 가져갔던 손을 내리며, 양 옆에 아무렇게나 내려 놓다가, 말포이의 손과 론의 손끝이 살짝 스쳤다. 아주 조금, 순간적으로 스쳐졌지만, 말포이의 피부는 차가웠다. 벽난로 쪽을 보니, 불씨가 거의 다 죽어 있었다. 천천히 일어나 벽난로 옆에 쌓아둔 장작을 안쪽으로 밀어 넣으며, 안락의자에 걸쳐져 있던 담요를 가지고 다시 돌아와, 담요의 반쯤 말포이의 무릎을 덮은 다음 아까 보다 좀더 가깝게 다가가 앉으며 남은 담요를 무릎 위에 덮었다.

론의 행동을 아무 말 없이 지켜보고 있던 말포이는 론이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한번 코웃음을 치고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그 여자가, 자기는 위즐리랑 먼 친척이라고 말했어. 나한테 위즐리를 아냐고 물어봤지. 만약 아버지가 중요한 사람이라고 소개하지 않았으면, 두 번 생각도 안하고 그냥 그 자리에 그 여자를 내버려 둔 채로 다시 내방으로 가려고 했는데, 그렇게 했다간…”

말포는 말을 끝까지 잊지 못했다. 팔꿈치를 살짝 움직여 말포이를 툭 치며 말했다.

“했다간?”

“아무튼, 위즐리를 아냐고 물어봐서,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위즐리가 어떤지 물었어. 아는 게 있어야 대답을 해주지, 내가 아는 거라곤 위즐리는 빨간 머리에 주근깨가 많고 형제가 바글바글하고 버로우에 살고 머글을 완전 사랑한다는 것 밖에 모르는데, 어떻게 말을 해도 전혀 공손하지가 않은 거야.”

론은 이 말에 화를 내야 하는지, 아니면 말포이가 계속 말을 하게 둬야 되는지 고민했다. 평소라면 굉장히 화나고 짜증났을 말인데, 차분한 말포이의 목소리가 론을 덜 화나게 해주는 것 같았다. 부드러운 웃음소리가 론의 목을 빠져 나왔고, 그 소리에 한쪽 눈썹을 위로 치켜 올린 말포이가 한동안 론을 쳐다보더니 다시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같은 학년에 위즐리가 있다고 말을 했더니, 너에 대해 묻는 거야, 기숙사가 달라서 잘 모른다고 했더니, 엄청 실망한 표정으로는 자기에 대해 설명했어. 자기의 증조할머니가 위즐리였다고, 다른 친척들과는 교류가 활발한데 위즐리얘기만 꺼내면 엄청 싫어 한다고. 왜 인지는 말 안 해도 잘 알 테고, 아무튼 어젯밤 내내 그 여자에게 위즐리에 대한 이야기로 내내 시달리다가 잠이 들었는데, 일어나 보니 너의 멍청한 얼굴이 좋은 아침이라고 인사를 하더군.”

말포이의 마지막 말에 코웃음 치며 론 역시 발을 커피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꼼지락 거리는 분홍색 슬리퍼 옆에 주황색 슬리퍼가 나란히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 론은 잠깐 생각하고 싱긋 웃으며 말포이에게 말했다.

“그래서 내 생각 하면서 잠든 거야?”

“하! 너도 금발의 위즐리를 보면 내 생각부터 할걸?”

금발의 위즐리라…, 한동안 그냥 멍하게 계속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가 말포이의 어깨가 론의 팔뚝을 살짝 스쳤다. 앉은 자리에서 좀더 편안한 자세로 바꾸려는지 옆에 있는 쿠션을 치우며 말포이의 몸이 론이 앉은 쪽으로 기울었다. 고개를 들어 말포이를 보려는데, 진 녹색 파자마 사이로 살짝 보이는 목덜미가 론의 눈앞에 있었다. 곧 쿠션과 씨름을 마친 말포이가 다시 뒤쪽으로 풀썩 몸을 옮기며 론에게 물었다.

“좋아, 위즐리. 내 이유는 이래. 너는? 진짜 나랑 같이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었던 거야?”

눈살을 찌푸리며, 뭔가 굉장히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을 잠깐 밀어두고 머리를 한번 헤친 다음 다시 고개를 뒤로 젖히며 말했다.

“음…, 사실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은 사람은 나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어. 그냥 또 다른 위즐리나, 빨간머리나 해리포터의 친구가 아니라 그냥 론 위즐리가 궁금한 사람.”

“그럼 내가 아니라, 그, 그 여자랑 같이 있어야 되는 거 아니야?”

솔직하게 대답할까 말까 계속 고민하다가, 말포이가 먼저 솔직하게 말을 했으니, 이번엔 론이 솔직해질 차례인 것 같아서 머뭇거리다가 결국 아주 조용하게 속삭였다.

“그, 그…, 머리카락 색깔, 그것 때문에 잠깐…, 아주 잠깐…”

“머리카락 색깔?”

말포이는 머리카락을 앞쪽으로 끌어당겨 보며 얼굴을 찡그렸다. 그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론의 머리로 손을 가져가 한번 해치고, 움켜쥐었다.

“아야! 아파! 멍청이!”

손목을 낚아 채며, 고개를 들어 올려 말포이를 봤다. 손을 몇 번 흔들어 내 손을 뿌리치고는 고개를 휙 돌렸다. 아까 당겨봤던 머리카락이 어색한 모양으로 그대로 붕 떠있었다. 멍하게 손을 들어 하얀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평소보다는 당연히 헝클어져 있지만, 그래도 그나마 좀 정리가 되게끔 머리를 매만졌다. 말포이는 머리를 흔들며 몸을 멀리 뒤로 젖혔다. 론의 손이 닿았던 부분을 한번 더 쓰다듬더니 론을 한번 쳐다보고는 얼굴을 양손에 묻었다. 그리고 손에 묻힌 말포이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이제 어쩌지?”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정말 이대로 계속 말포이와 단 둘만 이 세상에 있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 날까, 생각해 보니 말포이랑 이렇게 오랫동안 서로를 모욕하지 않으면서 대화를 나눠 본 적이 한번도 없었고, 또 그냥 못되지 않은 그냥 평범한 말포이와 함께 보내는 것이 생각한 것보다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까 보다는 조금 덜 불편한 침묵이 흘렀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밀어 넣어 두었던 장작이 반쯤 타 들어 갔고, 크리스마스 트리에서 나는 약간 마른 듯한 잣나무 향이 집안을 에웠다. 고개를 돌려 말포이를 봤다. 거의 소파 위에 누운 채로 소파 옆에 난 창문 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뻔한 바깥풍경이 뭐가 그렇게 흥미로워서 쳐다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마치 내 생각에 대답이라도 해주려는 듯이 나지막한 속삭임이 들렸다.

“난 말포이 저택이 싫어. 담이 너무 높아서 갇힌 느낌이야. 근데, 여긴….”

말포이의 말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한동안 생각 하다가, 그냥 잊어 버리기로 했다. 격식 차린 딱딱한 크리스마스 파티에, 높은 담에 가로막혀 사는 말포이는 론이 생각했던, 원하는 건 뭐든지 다 가져서 행복할거라고 생각했던 말포이랑은 전혀 달랐다. 사실 학교에서 말포이를 봤을 때도, 그렇게 행복해 보이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




“밖에 나갈래?”

소파에서 일어 서면서 기지개를 켰다. 말포이가 보고 있던 창문 쪽으로 성큼 걸어가 밖을 보니 눈에 반사된 햇빛에 부셨다. 생각 했던 것보다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 보통 같았으면, 분명 아침부터 부산하게 일어나서 마당과 길을 쓸어야 하겠지만, 오늘은 눈을 쓸라고 잔소리할 엄마가 없으니, 굳이 찾아서 일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말포이는 아직도 창문 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말포이!”

계단을 오르며 말포이 쪽으로 손짓 했다. 무릎에 덮고있던 담요를 몸에 두르며 내 뒤를 따라 올라왔다. 방으로 가기 전에 바로 아래층에 있는 욕실로 갔다. 열린 창문으로 찬 바람이 불었다. ‘대체 누가 이렇게 문을 열어 두는 거야?’ 속으로 생각하며 창문을 닫았다. 물을 받아 따뜻해지는 주문을 걸고 말포이에게 손짓했다. 욕실 문쪽에서 머뭇거리고 있던 말포이가 안쪽으로 들어와, 받아놓은 물과 론을 번갈아 가며 봤다.

“난 샤워하고 싶어”

“이렇게 추운데 샤워했다간 감기 걸려.”

“샤워 할래.”

욕실 수납장에 여분의 칫솔을 찾고 있던 론은 숨소리와 같이 뱉어지는 말포이의 불평을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깊숙한 안쪽에서 새 칫솔을 발견하고 난 다음에야 몸을 돌려 말포이의 얼굴에 칫솔을 들이 대며 말했다.

“말포이!”

말포이는 고개를 푹 숙이면서 파자마 소매를 걷어 올렸다. 헐렁한 파자마를 팔꿈치 까지 걷어 올렸다. 아까 말포이의 손목을 잡았을 때 느낀 거지만, 여리거나 가냘프지 않았다. 하지만 그냥 눈으로만 보기에는 그렇게 보였다. 지니보다는 두꺼울까? 지팡이 없이 주먹다짐한다면 이 정도는 이길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말포이의 손이 물속으로 사라졌다. 물의 온도를 재듯 물속에서 몇 번 흔들더니,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좀 차가운 것 같아.”

한숨을 쉬며 천장을 봤다. ‘지니도 이 정도는 아니야.’ 조용히 따뜻해 지는 주문을 물을 향해 걸었다. 말포이는 갑자기 철벅거리는 소리와 함께 물 밖으로 손을 꺼내더니 말했다.

“너무 뜨거워!”

“말포이!”

커다랗게 질러진 목소리에 말포이의 어깨가 움찔했다. 칫솔을 입안에 집어 넣으며, 말포이 어깨에 걸쳐진 담요를 변기에 커버를 내리고 그 위에 올려뒀다. 차가운 바람이 이제야 느껴지는지 말포이는 작은 소리로 불평하더니 다시 손을 물 안으로 넣고 휘휘 젓더니 세수하기 시작했다. 흘러내린 앞머리가 물 표면 위를 스쳤다. 말포이의 세수하는 모습이 굉장히 얌전하고 품위 있어 보였다. 말포이는 세수하는 방법도 가르치는 건가 싶어서 코웃음이 쳐졌다. 세수를 다하고 고개를 든 말포이의 턱끝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목을 타고, 파자마 사이로 사라졌다. 옆에 걸려 있던 수건을 말포이 얼굴 쪽으로 던지면서 말포이를 밀어냈다. 입안을 헹궈냈다. 새 칫솔에 치약을 짜서 얼굴의 물기를 닦아내고 있는 말포이에게 건넸다.

세수를 하고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말포이는 변기 위에 앉아 욕실 안을 구경하고 있었다. 칫솔로 이를 닦으면서 좁은 욕실 안을 이리저리 살폈다. 세수를 하면서 젖은 앞머리가 원래의 색깔보다 조금 더 진해보였다. 목덜미에 허술하게 걸쳐진 수건을 낚아채 얼굴을 닦고 말포이가 입안을 헹굴 수 있도록 옆으로 물러 났다.

“칫솔은 그냥 그 컵 안에 같이 꽂아둬.”

수건을 다시 수건걸이에 걸면서 계단을 올라갔다. 잔뜩 말린 이불이 침대 위에 그대로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담요를 털어서 책상의자 위에 잠깐 걸어두고, 침대를 정리했다. 침대를 거의 다 정리했을 즈음 말포이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해리의 간이 침대 위에 털썩 앉았다. 정리가 끝나고 침대에 걸터앉으며 말포이 쪽을 봤을 때, 말포이는 또 멍하게 창문 밖을 보고 있었다.

옷장을 뒤져서 작아져서 못 입는 옷을 몇 개 꺼내서 침대 위로 던졌다. 가운을 벗어서 걸어두고 입을 만한 옷을 찾았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론쪽을 한번 힐끔 본 말포이는 창문 앞으로 자리를 옮겨서 론을 등지고 섰다. 재빨리 옷을 갈아 입고, 양말을 신으며 말포이에게 말했다.

“일단 네가 입을 만한걸 꺼내뒀으니까, 알아서 입고 내려와.”

그제야 창문에서 눈을 뗀 말포이가 침대 위에 놓인 R이 커다랗게 써있는 적갈색 점퍼를 보고 말했다.

“나보고 위즐리 점퍼를 입으라고?”

침대쪽으로 걸어가 놓여진 옷들을 앞뒤로 살펴보고는 눈살을 찌푸리며 론쪽을 봤다.

“그럼 지니옷 입을래? 너도 지니 못지않게 분홍색에 집착하는 것 같은데….”

짜증이 났는지 으르렁 대더니, 분홍색 가운을 벗어서 던져두고는 파자마 위에 바로 점퍼를 입기 시작했다. 한숨을 한번 쉬고는 현관문이 있는 쪽으로 걸어 내려갔다. 문 옆에 걸려있는 외투 중에 말포이가 입을 만한걸 찾다가, 밖에 눈이 왔으니, 부츠가 있어야 겠다고 생각해서 계단 아래쪽에 숨겨져 있는 신발장으로 갔다. 신발장 안쪽에서 찰리의 눈부츠를 꺼내서 앞뒤로 살펴보고 슬리퍼 위에 대보았다. 얼추 맞는 것 같아서 옆에 꺼내두고, 작년에 신었던 물려받은 조지 부츠를 꺼내 현관문쪽으로 부츠를 던져 뒀다.

쿵쾅거리는 소리와 함께 말포이가 내려왔다. 갑자기 분홍색 털신 론이 있는 쪽으로 날아왔다. 그 털신이 론의 무릎에 떨어지고, 인상을 쓰며 말포이를 봤다. 말포이는 슬리퍼가 벗겨진 발을 들며 말했다.

“위즐리”

엄지발가락 있는 부분에 살짝 구멍이 나서 꼼지락거리는 말포이의 흰색 발가락 끝부분이 보였다. 무릎에 있는 털신을 다시 말포이 쪽으로 던지며 현관문 쪽으로 걸어 갔다. 아무렇게나 던져진 부츠를 세워서 따뜻해지는 주문을 걸었다. 찰리의 부츠를 신고 남은 부츠를 말포이에게 손짓했다. 걸려있는 외투를 입고, 잠깐 생각한 다음, 해리의 외투를 말포이에게 건넸다. 누구 외투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하고는 모자를 쓰고 장갑을 꼈다. 문을 열어 밖으로 나섰다. 차가운 겨울 바람이 스쳤다. 뒤따라 나오던 말포이가 숨을 들이 마시며 말했다.

“으…, 추워!”

어깨너머로 말포이를 봤다. 잔뜩 움츠리고는 양손에 입김을 불어넣고 있었다. 겨울 바람에 이미 헝클어진 머리가 더 헝클어 지고 있었다. 다시 집 안쪽으로 들어가서 지니의 모자와 귀마개를 가지고 나와, 말포이에게 던져줬다. 말포이는 재빨리 장갑을 끼고는 귀마개를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론의 어깨를 툭툭 치며 물어봤다.

“이거 어쩌라구?”

말포이의 손에서 귀마개를 낚아채 머리에 씌워주고 말포이 머리를 붙잡은 채로 귀마개를 흔들었다.

“귀마개 어떻게 쓰는지도 몰라?”

고개를 흔들어 론의 손을 뿌리치고는 갑자기 눈 밭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오고 간 흔적 없이 새하얗게 발목까지 쌓인 눈이 뽀드득 소리와 함께 발자국이 하나 둘 씩 생겨났다. 울타리를 넘어 언덕 위까지 올라갔다. 커다란 나무 아래로는 다른데 보다 눈이 좀 덜 쌓여 있었다. 어디까지 가려는 건가 싶어서 고개를 들어 말포이를 찾았다. 갑자기 눈 뭉치가 뒤쪽에 있는 머리를 맞았다. 신경질 적으로 모자를 털어내며 말포이쪽을 향해 소리질렀다.

“말포이! 좀…”

또 다른 눈덩이가 얼굴에 맞았다. 입을 꽉 다물고 짜증 섞인 신음소리를 한번 뱉어낸 다음에 옆쪽 울타리 위에 있는 눈을 한 움큼 뭉쳐 말포이가 있는 쪽을 향해 있는 힘껏 던졌다.




차가운 바람에 코끝이 시려왔다. 이리저리 눈덩이를 들고 뛰어다녔다. 눈 밭에 미끄러운 데다, 경사까지 져서 앞으로 몇 번을 고꾸라지고 난 다음에야 말포이가 서있는 언덕 꼭대기에 닿았다. 가만히 서있는 말포이의 머리쪽으로 눈덩이를 던지며, 점점 거리를 좁혀갔다.

“위즐리”

조금 전까지만 해도 생전 처음 눈싸움 하는 사람처럼 신나서 눈싸움 하던 말포이가, 언덕 너머로 손가락질을 하며 머리에 묻은 눈을 털어냈다. 말포이 옆에 서서 손가락이 가리키는 쪽을 봤다. 여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머글 농장이 있다. 물론, 한번도 가본적은 없지만, 저 농장에는 노부부가 사는데 예전에 한번 집에 찾아온 적이 있었다. 잘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말포이를 봤다.

“멍청아! 또 다른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

“여기서 저기까지 가려면 20분 정도 걸어야 돼.”

버로우 쪽을 한번 쳐다보고 다시 그 머글 농장이 있는 쪽을 봤다. 눈 밟는 소리와 함께 말포이가 움직였다. 울타리를 따라,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길 위에 우리 흔적이 생겼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고, 가끔 불어오는 바람에 쌓인 눈이 흩날렸다.

그 농장에 사람이 있기를 바라는 걸까? 아니면 아무도 없기를 바라는 걸까? 사실 말포이와 같이 있는 이 시간이 그다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일까? 만약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에 잠겨 조용히 걸었다.

“근데, 여기 누가 사는지는 알아?”

말포이의 목소리에 내내 질문만 해대던 생각들을 빠져 나왔다. 떨구고 있던 시선을 들어 말포이를 봤다.

“어…음, 머글 부부가 살아.”

울타리 위에 쌓인 눈을 툭 치며, 농장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들판에 쌓인 눈 더미가 갑자기 움직였다. 말포이는 깜짝 놀라서 론의 팔을 움켜쥐며 바싹 다가섰다. 론은 그게 뭔가 싶어 자세히 보니 양들이 떼로 모여 있었다. ‘눈을 맞으면 양털이 상할 텐데…’라고 생각하면서 말했다.

“양 농장이야. 그 부부는 양을 키워.”

그리고 다시 농장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현관에 도착해서 부츠에 묻은 눈을 털어내려는데, 그때까지 말포이가 론의 팔에 매달려 있었다. 어깨를 살짝 움츠려 말포이를 떼내고, 모자를 벗으며 초인종을 눌렀다. 말포이도 발을 동동 구르며 부츠에서 눈을 털어냈다. 반복해서 몇 번 더 눌렀지만,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말포이가 갑자기 론을 밀치고 현관문을 열었다. 그 행동에 놀란 론이 말포이의 팔뚝을 잡았지만, 말포이는 론의 손을 흔들어 뿌리치고 집 안쪽으로 들어갔다.

“으…추워!”

“말포이! 남에 집에 그렇게 막 들어가면…”

집안에도 역시 인기척이 전혀 없었다. 말포이는 부츠를 현관 근처에 벗어 던지고, 거실쪽으로 걸어 들어가 벽난로 앞에 장작을 밀어 넣으며 바닥에 풀썩 앉았다. 아무렇게나 너부러진 부츠를 정갈하게 세워놓고, 론 역시 부츠를 벗고 거실 안쪽으로 들어갔다. 머글의 집은 해리의 집 이후로 처음 들어가 보는 것 같았다. 뭐, 정확히 말하면 들어가본 것은 아니었지만….

불쏘시개로 벽난로에 불을 붙이던 말포이가 갑자기 소리쳤다.

“위즐리! 배고파!”

우두커니 거실에 서있던 론은 말포이를 한번 보고, 부엌으로 보이는 곳을 쳐다봤다. 말포이쪽으로 걸어가서 말포이의 귀마개를 빼서, 말포이 무릎에 던지며 말했다.

“그렇게 크게 소리 칠 필요 없어. 그보다, 여긴 남에 집인데 이렇게 막…”

“어차피 아무도 없는데 어때! 배고프다고! 멍청아!”

말포이를 일으켜 세우며, 부엌쪽으로 같이 걸어 들어갔다. 버로우의 부엌과는 그 구조가 좀 달라보였다. 예전에 헤르미온느가 설명해준 냉장고라던가, 전자레인지가 보였다. 따라 들어온 말포이가 식탁 위에 놓은 쿠키를 집어 먹더니, 웅얼거렸다. “역시 아이싱은 너네 집이 더 맛있어.”

“말포이! 그렇게 막 먹지마!”

말포이는 바구니에서 쿠키를 몇 개 더 집어 들더니 론의 입 속으로 밀어 넣었다.

“너도 공범이야.”

그리고는 부엌 찬장 여기저기를 열어보기 시작했다. 몇 군데 더 열어보더니, 곧 호두와 땅콩 같은 견과류가 든 유리병을 발견하고는 꺼내서 먹었다. 냉장고를 열어보더니 론에게 손짓했다. “이것 좀 봐, 이 안은 차가워.”

안쪽에서 차가워진 고기파이를 찾아서 예전에 헤르미온느가 얘기해준 데로, 전자레인지 사용을 시도해봤다. 문을 열고 그 안쪽에 음식을 넣은 다음에, 버튼을 누르면 되는데…, 어떤 버튼이었는지 기억이 제대로 안 났다. 말포이와 사용법에 대해 실랑이하다가 말포이가 제안한 초록색 버튼을 누르자 갑자기 작동되기 시작했다. 말포이의 입 꼬리가 기분 나쁘게 올라가며 코웃음 쳤다. 고기파이로 배를 채우고 집안을 좀더 구경했다. 거실은 버로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침실로 보이는 방과, 서재 그리고 손님방 1층으로 정말 아담하게 꾸며진 농장 저택이었다. 화장실을 사용하고 거실쪽으로 걸어 나오는 길에, 찬장 위에 올려진 체스 판이 눈에 들어왔다.

“말포이, 체스 할 줄 알아?”

론은 안락의자 앞에 있는 발 받침을 끌어다 찬장 앞에 두고 체스가 든 상자로 손을 뻗었다. 손끝에 닿을 듯 말듯한 상자를 앞쪽으로 조심스럽게 끌어당겨 끝부분을 잡았을 때, 갑자기 말포이가 발 받침을 찼다. 간신히 몸의 중심을 잡고 바닥에 앉아있는 말포이를 봤다. 말포이는 히죽히죽 웃으며 계속해서 찼다.

“좀 얌전히 있어. 공주님”

론의 말에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론이 서있는 발판을 있는 힘껏 찼다. 한 손이 체스상자를 잡느라 어떻게 뭘 잡아보기도 전에 바닥으로 떨어졌다. 몸을 돌려 남은 한 손으로 바닥을 집으려고 했지만 말포이의 배위로 그대로 무게를 실어 넘어졌다. 대신 팔꿈치가 큰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윽”

상자를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고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팔꿈치를 움켜쥐며 바닥에 누워있는 말포이를 봤다. 방금 디멘터라도 본 것 마냥 깜짝 놀란 얼굴에 커다란 눈을 하고 론을 보고 있었다. 갑자기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말했다.

“무…무거우니까 비켜, 이…이 쓸모 없이 덩치만 큰 저능아야!”

몸을 완전히 일으켜 앉으면서 말포이의 숨결이 볼을 살짝 스쳤다. 말포이는 마치 론이 더러운 것이라도 되는 냥 밀어 내고는 안락의자로 가서 앉았다.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려다, 아침에 난 혹이 손에 닿았는지 작은 신음소리를 뱉어내고는 의자쪽으로 더 깊숙이 앉으며 천장을 봤다.

비웃어주기 알맞은 상황이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아까 밀어뒀던 그 불편하고 싫은 답답한 느낌이 다시 배 안쪽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헛기침을 한번하고 바닥에 내려놓은 체스 상자를 테이블 위에 꺼내 올려 놓으며 말했다.

“머글 체스나, 마법사 체스나 똑같아, 대신 머글 체스 말은 직접 움직여야 돼.”

고개를 빙그르르 돌려 자기 어깨에 기대더니, 론을 지루하다는 듯이 봤다.

“그냥 시작하면 내가 당연히 이기게 될 테니까, 몇 수 물러줄게.”

론의 말에 코웃음 치며 말포이가 론의 반대쪽에 털썩 내려 앉았다. 흰말을 앞쪽으로 놓고 있던 체스 판을 돌려 흰 말이 말포이쪽으로 향하게 하고 기분 나쁘게 미소 지어 보이며 말했다.

“덤벼봐, 빨강”

졸개를 움직일 때까지만 해도, 말포이의 실력을 알 수 없어서 론은 아무 생각 없이 말을 움직였다. 하지만 하나 둘 말들이 체스 판 위를 떠나고, 곧 말포이가 괜찮은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다음 수를 읽을 수 없게끔 두는 방식은 항상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론의 방식과는 많이 달랐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마침내 수를 읽어낸 론이 시계를 보며 외쳤다. 오후 3시가 지났다.

“체크메이트!”

“어? 잠깐! 말도 안돼.”

너무 오랫동안 남의 집에 머무는 것 같아서 체스판을 정리했다. 체스판을 정리하는 내내 말포이가, 뭔가 정당하지 못한 방법을 썼다고 계속해서 불평해 댔다. 발판을 밟고 조심스럽게 처음에 봤던 모습 그대로 올려두려고 했지만, 제대로 닿지 않아서 대충 올려 둘 수 밖에 없었다. 발판을 밟고 내려오면서 말포이에게 말했다.

“버로우에도 체스세트 있으니까, 이제 가자”

말포이는 끝까지 투덜대며 거실 바닥에 팽개쳐 뒀던 옷가지를 다시 걸쳐 입고는 현관문 쪽으로 향했다. 거실 안락 의자와 테이블 위를 한번 확인하고는 론 역시 현관문 쪽으로 걸어갔다. 바닥에 너부러져 있는 부츠에 따뜻해지는 주문을 조용히 외우고, 말포이에게 건넸다. 문을 여니, 찬 겨울 바람에 뱉어진 숨이 입김이 되었다. 문을 조용히 닫고 눈 위로 걸어갔다. 농장을 거의 다 빠져나올 때까지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말포이의 목소리가 바람소리와 함께 론의 귓가를 울렸다.

“진짜 우리밖에 없는 거야?”

말포이의 ‘우리’라는 말에 다시 불편해졌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머쓱해져서 손을 외투 주머니 안쪽 깊숙이 넣었다. 안쪽에 넣어둔 장갑을 매만지면서 생각했다. 계속 비슷한 종류의 질문들이 머리 속을 채웠지만 깊게 생각해 봐도 그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모자를 다시 푹 눌러쓰며 추위에 몸을 떨면서 버로우 쪽으로 걸었다. 그렇게 걷다가 갑자기 멈춰서 말포이에게 물었다.

“말포이, 너 너네 집에 가보고 싶지 않아?”

계속 시선을 아래로 떨구고 뒤따라 걷던 말포이가 론의 등에 살짝 부딪혔다. 짜증난 다는 표정을 하고는 아무 말 없이 비켜서서 다시 눈을 보며 버로우 쪽으로 걸어갔다. 머글 농장에 사는 사람들도 없었는데, 말포이 저택에 사람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왜 대답하지 않을까, 아침에 잠깐 나눴던 말포이 저택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생각해보니 학교에서 보던 말포이와 다르게 평범하고 소탈한 말포이가 낯설기도 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위즐리!”

말포이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얼굴에 눈덩이가 맞았다. ‘또 야?’

“젠장, 말포이! 지치지도 않냐!”

말포이가 있는 쪽으로 뛰어가다가 넘어졌다. 론이 넘어진 것을 보고 멈춰서 웃더니, 다가와서 주변에 있는 눈을 발로 밀어 론을 묻기 시작했다. 말포이의 발을 확 잡아당겼다. 말포이도 중심을 잃고 엉덩방아를 찧으며 바닥에 넘어졌다. 모자를 벗어 눈을 털어 내며 옆에 있던 눈을 집어 말포이 얼굴쪽으로 던졌다.

서로에게 눈덩이를 던지며 버로우 쪽으로 뛰어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벌써 해가 뉘엿뉘엿했다. 얼굴이 겨울바람에 마비되어 얼얼했다. 말포이가 던진 눈이 볼 근처에 맞아 입안으로 눈이 들어갔다. 눈을 뱉어 내며, 말포이가 있는 쪽을 봤다. 등을 진 채로 몸을 숙여 바닥에 있는 눈을 끌어 모아 뭉치고 있었다. 엉덩이 부분을 발로 차서 넘어뜨렸다.

“아악! 위즐리!!”

그대로 앞으로 넘어지며 얼굴이 눈 속에 파묻혔다. 말포이는 얼굴에 묻은 눈을 털어내며, 론이 서있는 쪽을 보며 웃었다. 들고 있던 눈덩이를 론의 머리 위쪽을 향해 던졌다. 눈살을 찌푸리며 방금 말포이가 눈을 던진 쪽을 보려고 고개를 드는 순간, 머리 위쪽에 나뭇가지에 걸려있던 눈이 후두두 쏟아졌다.




눈에 거의 묻힌 론을 보며 웃기 시작했다. 모처럼 말포이가 진심으로 웃는 것 같아서 피식 웃음이 났다. 그렇게 뒷걸음질 치며 웃던 말포이가 점점 앞뜰 앞에 패인 도랑쪽으로 향했다. ‘저러다 빠질 텐데…’ 라고 생각하면서 옷에 눈을 털어내는데, 물이 튀는 소리와 함께 말포이가 짧게 비명을 질렀다.

“앗!”

뒷걸음 치다 발이 도랑에 빠져 뒤로 풀썩 넘어졌다. 그렇게 깊은 도랑은 아니었지만, 물이 고여 있었는지 철벅거리는 소리에 말포이쪽으로 걸어갔다. 겉에만 살짝 얼어 있던 얼음이 말포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깨지면서 그 밑에 있는 물속으로 발이 빠진 것 같았다. 이미 물속에 빠진 발을 철벅거리며 뒤쪽으로 누워버렸다.

“말포이! 일어나!”

몸을 굽혀서 말포이의 팔을 앞으로 끌어 당겼다. 말포이는 몸을 뒤로 빼며 론을 도랑 안쪽으로 끌어내렸다. 한쪽 무릎을 도랑 끝에 어색하게 걸쳐놓고 약간 불편한 자세로 도랑에 빠지지 않기 위해 땅을 짚는 다는 것이 말포이의 어깨를 잡았다. 다시 일어 서기 위해 말포이쪽을 봤는데, 바닥에 축 늘어진 채로 어깨에 올라간 손을 보고 있었다.

흰 눈밭에 말포이의 머리카락이 좀더 노랗게 보이는 것 같았다. 언제나 그렇듯이 주근깨 한 점 없는 밀가루 반죽 같은 새하얀 얼굴에 뾰족한 턱에, 입술이 푸르게 변해서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몸의 중심을 잡고 말포이가 너부러져 있는 쪽으로 옮겨 서면서 누워있는 말포이를 앉혔다.

“얼른 일어나, 바지가 계속 젖잖아!”

이미 무릎까지 젖어 있는 발을 무겁게 들어 올렸다. 말포이가 일어나는걸 도왔다. 말포이가 일어서는 것을 확인하고 부엌에 있는 뒷문으로 들어가려고 문을 열었는데, 눈덩이가 날아와서 머리에 맞았다. ‘제발…’

“말포이!”

“아직 해도 안 졌는데 집안에 들어가서 뭐하게! 난 더 있을래!”

그냥 말포이 혼자 내버려 둘까 생각했지만, 아까 푸르게 변한 입술이 자꾸 생각났다. 머리를 흔들면 없어질까 싶어 한번 흔들어 봤지만, 소용 없었다. 한숨을 깊게 쉬고 눈을 뭉치고 있는 말포이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가, 손에 들고 있는 눈을 쳐냈다. 머리에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서 말포이의 머리에 푹 눌러 씌워 눈을 가리고는 그대로 어깨에 들쳐 멨다. 내내 낮은 목소리로 불평하던 말포이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말포이의 엉덩이 쪽을 툭툭 치면서 말했다.

“그래 착하지.”

론의 목소리에 그제야 정신이 좀 들었는지 소리지르며 몸부림 치기 시작했다. 론은 몸부림 치는 말포이를 메고서 집안으로 들어왔다. 거실로 들어서면서 벽난로를 확인했다. 불이 꺼져있었지만, 하루종일 햇볕이 좋아서 인지 집 안은 바깥보다 훨씬 따뜻했다. 벽난로 앞에 말포이를 내려놓고 부츠를 벗어 계단 쪽을 향해 던졌다. 장작을 벽난로 안쪽으로 집어 넣으며 불을 붙였다. 말포이는 계속 툴툴대며 젖은 부츠를 벗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손에 끼고 있던 장갑을 벗으며 젖은 부츠를 벗는걸 도왔다. 벗겨진 부츠를 다시 넣어놓기 위해 벽장 문을 열었다. 젖은 부츠를 거꾸로 세워서 원래 있던 자리에 대충 올려 놓고는 손에 잡히는 담요를 꺼내 들고 나왔다.

말포이는 해리의 외투를 벗어서 한쪽 옆으로 밀어뒀다. 가지고 온 담요를 말포이 쪽으로 던지며, 던져놓은 해리의 외투와 입고있는 외투를 벗어서 현관쪽에 다시 걸어 두었다. 거실로 들어서며 말포이에게 말했다.

“추우니까 젖은 바지는 얼른 벗어.”

눈살을 찌푸리며 론을 보더니 말포이의 뺨이 빨갛게 물들었다. 말포이의 반응에 론 역시 갑자기 뺨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밖에 오래 있어서 그런 거라고 계속 되뇌었지만, 그렇지 않은 게 분명했다.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말했다.

“나…난 형만 6명에 여동생도 있어! 괜찮으니까 얼른 벗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벌거벗은 말포이는 생각해본적도 없고, 앞으로도 상상할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말포이가 갈아입을 옷을 찾기 위해 방으로 올라갔다. 침대 위에 말포이의 진한 녹색 파자마 바지가 연분홍 가운 옆에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론의 침대 위에 덮어 두었던 담요와, 해리의 간이침대 위에 있는 담요까지 한아름 가슴에 안고 거실로 향했다. 말포이가 벗어놓은 바지가 한쪽으로 밀어져 있고 말포이는 벽장에서 꺼낸 담요에 온몸을 꽁꽁 둘러 싸고 있었다. 말포이에게 파자마 바지를 던져주고는 담요를 몇 개 더 덮어줬다. 그리고 부엌으로 가서 코코아 2잔을 타서 거실로 나왔다. 벽난로 앞에 담요더미만 있고 말포이가 없어서 가져온 컵을 테이블 위에 올려 놓으며 주변을 살폈다.

론이 부엌에서 코코아를 타는 동안 파자마를 입었는지 현관쪽에서 분홍색 슬리퍼를 다시 신고 론을 밀쳐내고는 벽난로 앞에 무릎을 가슴쪽으로 당겨 앉으며 담요를 어깨위로 끌어당겨 덮었다. 테이블에 올려뒀던 코코아를 말포이에게 건네며 론도 말포이 옆에 앉았다. 말포이의 어깨와 론의 어깨가 닿았다.

코코아를 마시며 장작이 타는걸 구경했다. 반쯤 정도 탓을 때 몸을 앞쪽으로 움직여 새 장작을 벽난로 안쪽으로 던졌다. 다시 원래 앉아있던 자세로 앉았다. 말포이의 다리가 론의 무릎에 닿았다.

코코아가 비워지고, 장작이 타면서 내는 불빛이 컵을 채웠다. 살짝 고개를 들어 시계를 보니 5시쯤 된 것 같았다. 창 밖으로 하늘 끝이 보라색으로 물든 것이 보였다. 한숨을 쉬며 다시 고개를 벽난로 쪽으로 틀었다. 론의 한숨에 무릎에 턱을 괴고 있던 말포이가 고개를 들어 론쪽을 보더니, 바짝 다가와 앉으며 두르고 있던 담요 한쪽을 론의 어깨위로 둘렀다. 말포이의 머리가 론의 어깨에 닿았다.

이 상황이 굉장히 어색하고 불편해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말포이가 닿은 부분이 따뜻했다. 낮부터 쌓였던 ‘우리끼리 남게 되면 어쩌지?’ 하는 질문들이 더 이상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조차 기억 나지 않았다. 그냥 지금 이 순간이, 그 순간이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졌다. 고개를 살짝 틀어서 말포이의 머리가 기대진 어깨를 봤다. 말포이는 눈을 감고 있었다. 천천히 앞머리를 들춰 살짝 튀어나온 혹을 봤다. 살짝 코웃음 치자 말포이의 눈이 떠졌다.

항상 텅 비어있다고 생각했던 눈동자 안에 그 동안은 본적 없었던, 뭔가가 있는 것 같았다. 시선 눈동자에서 코끝으로 코끝에서 입술로…, 파랗게 변해서 떨리던 입술은 은은한 장작불에 짙은 오렌지 빛이었다. 론의 손끝이 말포이의 입술에 닿았다. 말포이의 숨소리가 크게 들렸다. 심장 뛰는 소리가 머리를 울렸다. 반쯤 감긴 눈으로 론을 올려다보던 말포이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정말 조금만 더 앞으로 움직이면 입술이 닿을 것만 같았다.




누군가가 거칠게 론의 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으…음…”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올려 반쯤 눈을 뜨고 눈 앞에서 밝게 웃고 있는 해리를 봤다.

“메리 크리스마스, 론!”

눈살을 찌푸리며 침대 위를 더듬었다. 그러다 침대 끝부분에 팔꿈치를 맞았다. 낮은 신음소리가 목구멍을 타고 나왔다. 팔꿈치를 보려고 등쪽으로 기대 누우며 팔꿈치를 봤다. 멍이 들어 있었다. 갑자기 체스박스를 내리려다 말포이 위로 떨어진 게 생각났다. 벌떡 일어나 앉으며 주변을 살펴봤다. 론을 이상하게 쳐다보고 있던 해리가 입을 열었다.

“론? 괜찮아?”

잠깐 멍하게 창문 밖을 쳐다보고 있다가 크게 하품을 한번 했다. 해리는 론의 침대 위로 걸터앉으며 론의 이름을 다시 한번 불렀다. 론은 기지개를 펴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침대에 걸려있던 가운을 입고, 해리에게 한번 웃어보이고는 아래층 거실을 향해 뛰어 내려갔다.

말포이와 함께했던 어제와 다 똑같은데, 말포이만 없었다. 무심결에 벽난로 쪽으로 시선을 옮기다가, 잠에서 깨기 전 말포이의 얼굴이 생각났다.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리고,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연휴가 끝나고 호그와츠로 돌아가기 위해 학생들이 하나 둘 킹스크로스역으로 모여들었다. 크리스마스를 보낸 이야기 이런 저런 이야기에 역 안이 시끄러웠다. 론은 커다란 트렁크를 기차에 옮겨 싣고는 가족과 인사를 하려는지 다시 기차에서 내렸다. 그때 말포이가 론 옆을 스쳐 지나갔다. 말포이를 따라오던 사람의 짐이 론의 팔꿈치와 살짝 부딪혔다. 짧은 신음 소리와 함께 론은 부딪힌 팔꿈치를 양손으로 감쌌다. 론의 소리에 말포이는 가던 길을 멈추고 론을 향해 돌아섰다. 론을 향해 돌아서는데, 살짝 부는 바람에 살짝 흐트러진 앞머리 사이로 붉게 부푼 혹이 보였다. 눈을 커다랗게 뜨고 서로를 아무 말 없이 쳐다보고 서있다가 말포이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론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

Passacaglia

미완입니다. 어디까지 썼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쓰다 남은것도 어디있는지 찾을 수가 없네요... 뭘 쓰고 싶었던걸까요?


커다란 가방을 짊어진 소년의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이제 막 세탁을 마친듯한 빳빳한 셔츠에 작은 소년에게 어울리지 않는 커프가 어둠속에서 반짝였다. 문옆에 들고있던 가방을 내려놓은 소년은 현관옆에 작은 방안으로 들어갔다. 소년이 조심스럽게 내려온 계단 위에 주홍빛을 내뿜는 촛대를 들은 잠옷차림의 부인이 천천히 인기척이 있는 현관쪽으로 걸어갔다.

코트가 걸려있는 곳까지 손이 닿지 않는 소년은 자신의 코트를 아래쪽으로 당겨내리고 있었다. 소년을 발견한 부인은 촛대를 현관옆 테이블에 올려놓고 까치발을 들고있는 소년의 뒤로 바짝다가가 높이 걸려있는 코트를 내려주었다. 부인을 발견한 소년은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서다 부인과 부딪쳤다. 깜짝놀라 숨을 들이킨 소년은 놀란눈으로 자신에게 코트를 건내는 부인을 바라봤다. 그렇게 멈춰서 서로를 바라보던 두사람중 부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드레이코”

“어머니”

떨리는 목소리로 어린아이에게 어울리지 않는 공손함으로 부인을 마주한 소년은 희미한 미소를 띈 부인의 표정에 마음을 놓았는지 부인이 걸쳐주는 코트를 몸을 돌려 입었다. 부인은 몸을 낮추어 소년 머리끝에 입맞추며 말했다.

“아직도 몸이 다 낮지 않았으니 너무 무리하지 말도록 해” 그리고는 천천히 드레이코를 품에 안았다. 잔뜩 긴장되어 있던 소년의 어깨가 풀어지더니 작은 손이 부인을 마주 안았다. 얼굴을 부인의 목덜미에 묻으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였다. 부인은 드레이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더욱 꼬옥 아들을 안아 주었다.

“잘 할 수 있을거야. 우리 아들”

힘겹게 소년을 놓은 소년의 어머니는 현관문옆에 세워둔 가방을 들으며 문을 열었다. 소년이 가방을 받아 들은것을 확인한 부인은 소년의 두 뺨에 손을 가져갔다. 차가운 아침공기에 드레이코의 뺨이 따뜻했다. 빨갛게 상기된 볼에 입을 맞춘 부인은 자욱한 안개에 잘 보이지 않는 거리로 들어선 소년이 시야에서 사라질때까지 그렇게 보고 있었다. 커다란 가방에 작은 몸집의 소년의 발걸음이 불안해 보였다.

다시 방으로 돌아온 부인은 깨어있는 루시우스를 발견하고 놀랐다.

“나시샤, 어딜 다녀온거에요?”

천천히 촛대를 나이트테이블위에 올려놓으며 다시 침대안으로 들어가며 나시샤가 말했다.

“당신이 일어나 있는지 몰랐어요.”

루시우스의 품으로 들어오는 나시샤를 가슴으로 끌어 안으며 루시우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드레이코는..”

나시샤의 시선을 피하며 말을 잊지 못하는 루시우스의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나시샤가 뺨에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말포이가 남자들이란..”

호그와츠 음악원은 영국에서 클래식 음악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고싶어하는 학교중에 하나였다 초기에는 주니어와 시니어아카데미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최근에 더 어린 음악가들을 위해 프라이머리 아카데미가 새롭게 구성되었고 음악원에 입학하기위해 영국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오디션은 매년 지역별로 열렸고 세번의 오디션을 거쳐 30에서 40명정도의 아이들이 선발되어 음악을 공부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시험결과는 일주일 후에 실기 오디션 결과 발표가 있고 이후에 필기시험과 카디프 본교에서 진행하는 면접을 마치면 선발이 마감된다.

아직 새벽이었지만 학교안에는 이미 오디션을 보기 위한 지원자들이 모여서 연습을 하거나 긴장을 풀고 있었다. 추운 날씨를 뚫고 온 탓에 드레이코의 두 뺨이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시험장 쪽으로 걸음을 옮기다 같은 학교를 다니던 몇몇 사람에게 간단히 인사를 나누었다. 모두들 부모님의 안부를 물었지만, 드레이코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기다릴 수 있는 자리를 찾았다. 음을 맞추는 소리가 드레이코의 머리속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시험장 한쪽 구석에 아무도 없는 곳에 자리를 잡고는 가방을 조심스럽게 내려 놓고 입고 있던 코트와 모자를 벗었다. 연회장 안의 공기가 답답했는지 마른 기침을 뱉어낸 드레이코 옆으로 한 남자와 소년이 다가왔다. 남자는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모두 검은색으로 차려입은 그의 모습은 더욱더 그를 창백해 보이도록 했고, 작고 동그란 안경을 쓴 소년은 신이 났는지 남자의 손을 잡아 당기며 즐거움을 감추지 못했다.

“미스터 블랙”

드레이코는 남자쪽으로 몸을 살짝굽히며 인사했다.

“오 미스터 말포이 내 조카인 포터군이네.”

블랙의 말에 다시 드레이코의 시선이 동그란 안경을 쓴 소년에게로 갔다.

“미스터 포터 만나서 반갑습니다.”

조심스럽게 내밀어진 드레이코의 손을 멀뚱이 쳐다보던 포터는 크게 미소지으며 내밀어진 손을 두손으로 잡고 드레이코를 끌어당기며 말했다.

“안녕! 난 해리 포터야 만나서 반가워! 난 10살인데 넌 몇살이야?”

드레이코의 손을 잡기위에 놓아진 블랙의 손, 블랙은 미안한듯 드레이코에게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자리를 피했다. 도망가듯 피하는 블랙을 이상한눈으로 쳐다보던 드레이코는 자신의 손을 다시 자신쪽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너무 신이나! 넌 뭘 할거야? 난 이 학교에 너무 가고싶어 그럼 지루하고 재미없는 저택을 떠나서 더 많은 친구들도 사귀고 놀 수 있잖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떠들어대는 포터를 말없이 보고 있던 드레이코는 오디션 시간표를 핑계로 소년에게서 벗어나 다시 첼로를 세워둔 코너로 돌아왔다.

“저게 그 왕족의 사생아구나”

“예절이라는걸 안가르쳤나봐 정말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대체 블랙은 무슨 생각으로 저런 망아지를 양자로 들인걸까?”

주변에서 들려오는 포터의 가십에 머리를 한번 흔들고는 오디션을 위해 2층 대기실로 몸을 옮겼다. 5번 대기실 안쪽에서 머리를 높이 올린 부인이 나와 말포이의 이름을 외쳤다.

“드레이코 말포이? 요한 크리스토프 바흐 첼로협주곡 다단조?” 부인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간 드레이코는 첼로를 조율하고 그동안 열심히 연습한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빨간색 머리의 품채가 좋은 부인이 같은 머리색에 얼굴 온통 주근깨를 담은 소년의 손을 잡고 다른 한손에는 작은 바이올린 가방을 들고 가방안으로 들어섰다. 분주하게 오디션 시간표를 확인한 부인은 주변을 살펴보고 있던 아이의 이끌어 시험장 앞에 섰다. 시험관의 목소리를 들은 부인은 소년에게 바이올린을 들려주며 작은어깨에 손을 올리고 눈을 쳐다보며 말했다.

“로날드 위즐리? 탐린 글래스고 릴?”

“로날드 위즐리 넌 잘 할 수 있어. 우리아들”

소년을 품에 안으며 볼에 키스한 부인은 론이 시험장 안으로 들어가고 문이 닫히고 난 이후에도 한참동안 문쪽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바이올린을 꺼내 잡은 소년은 조율도 하지 않은채로 커다란 눈으로 시험관들을 멀뚱히 바라보다가 갑자기 연주를 시작했다. 시험을 마치고 나오는 론을 꼭 부여잡은 빨간머리 부인은 소년의 머리끝에 계속해서 키스하며 말했다.

“잘했어. 내아들.”

이것을 보고 있던 옆에 서잇는 쌍둥이 소년이 론 양쪽옆에서 함께 소년을 안으며 말했다.

“로니킨스도 같이 학교다니면 재밋겠다!”

“재밋겠다! 신난다!”

연회장을 빠져나오는 시험을 마친 사람들의 발걸음은 제각각이었다. 어떤 사람은 가볍고 홀가분했고 어떤 사람은 무겁고 후회가득했다. 시험이 끝나자 긴장이 풀렸는지 드레이코는 길가 근처에 있는 벤치에 살짝 걸터 앉았다. 흘러내린 머리를 쓸어 올리며 가져간 이마는 스스로가 느끼기에도 평소와 다르게 뜨거웠다. 춥다고 느껴져야할 거리의 차가운 겨울 바람이 시원하다고 느껴진 드레이코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벤치에 누워있는 드레이코를 발견한 론은 새하얀 속눈썹을 손으로 만져봤다. 마치 성에가 잔뜩 내려 앉은 나뭇가지같은 속눈썹은 녹지않고 그대로 있었다. 신기했는지 흘러내린 머리쪽으로 손을가져가던 론을 발견한 쌍둥이가 벤치쪽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프레드 론이 뭘 발견했어!”

“조지! 저건 첼로가방 같아!”

론이 조심스럽게 쓰다듬고있는 소년을 발견한 쌍둥이는 론을 이상한 눈으로 보며 말했다.

“론 뭐하는거야?”

“녹을것 같은 속눈썹이랑 머리카락을 가졌어! 근데 안녹아!”

론의 말을 들은 쌍둥이가 드레이코에게 손을 가져가려는 찰나 빨간머리 부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프레드! 조지! 무슨일이야?”

부인을 발견한 쌍둥이와 론은 여태까지 본인들이 생각하고 본것들을 두서없이 막 말하기 시작했다. 부인은 표정을 찡그리며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한꺼번에 세사람이 서로 다른것을 말하는것을 알아듣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는 벤치에 누워있는 소년을 발견했다.

“어머! 아서! 여기 아이가 아픈것 같아요.”

함께 걸어오던 빨간머리의 남자가 고개를 숙여 소년의 작은몸을 흔들어 깨우며 불렀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난처했는지 근처를 두리번 거리던 남자가 말했다.

“몰리, 아무래도 다시 시험장으로 가서 누구인지 물어봐야 할것 같아요. 아이의 부모가 아이를 찾고 있을 수도 있잖아요.”

아서의 말에 몰리에게 말을하고 있던 세명의 소년이 한꺼번에 다같이 시험장으로 몰리를 잡아 당기며 말했다.

“얼른 가서 이 아이 엄마를 찾아줘요!”

“엄마가 걱정하고 있을꺼에요!”

“아빠도 걱정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조심스럽게 아이를 안아 올린 남자는 옆에 놓여있는 커다란 가방을 어깨에 짊어지고 바쁘게 움직이는 부인과 아이들을 뒤따라 다시 연회장 안으로 들어섰다. 관계자에게 물어봤지만 누군지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난처해진 두 사람은 그렇게 연회장을 돌아다녔다. 다행히 드레이코의 시험관이었던 학교 관계자가 아이의 이름과 주소를 몰리와 아서에게 알려주었다. 아침에 타고 왔던 마차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몰리의 품에 안긴 금발머리의 소년과 커다란 첼로가방을 든 남자뒤를 졸졸 따르는 아이들이 곧 마차가 있는곳에 도착했다. 들고 있던 가방을 마차뒤에 조심스럽게 싣고, 몰리와 아이들이 마차안에 탈 수 있게 도왔다. 쌍둥이는 끝까지 아서와함께 말을 몰겠다고 떼를 썼다. 마차안에 올라탄 론은 몰리의 무릎위에 머리를 놓고 너부러진 드레이코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몰리가 마차 앞쪽에 탄 쌍둥이에게 주의를 주는동안 론은 다시한번 거의 하얗게 보이는 머리카락으로 손을 가져갔다. 금방이라도 녹을것 같은 백금색 머리카락은 부드럽고 조금 젖어있었다. 머리를 쓰다듬는 모습을 발견한 몰리는 론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괜찮아, 그냥 감기일거야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론”

“엄마, 얘는 왜 머리카락이 하얘요?”

론의 질문에 웃음이난 몰리는 웃으며 대답했다.

“아직 아기라서 그래 아마 자라면 좀더 짙은 머리색이 될꺼야”

10살이라고 하기엔 정말 작은 몸이긴 했다. 론이나 쌍둥이에 비해 훨씬 더 말라 보였다 입은 옷차림으로 봐서는 가난한집 아이는 아닌것 같았는데 얇고 연약한 모습에 몰리는 안쓰럽다는 듯이 식은땀으로 젖은 소년의 머리카락을 이마에서 치우며 뺨을 쓰다듬었다.

학교직원이 알려준 주소로 말을 몰던 아서는 주소를 몇번이나 확인해가며 커다란 저택쪽으로 말을 몰았다. 그 주변에 있는 다른 플랫이나 로하우스와는 다른 커다란 저택이 보였다. 뒤쪽에 있는 공원덕분에 그 모습은 더 웅장해보였다. 대문을 지나 현관까지 마차를 몰아간 아서는 몰리가 안고있던 소년을 받아 내리고는 뒤쪽에 실었던 첼로가방을 꺼내들었다. 아이들에게 마차 안에서 꼼짝하지 말고 기다리라고 말한 몰리는 현관쪽으로 올라가서 문을 두드렸다. 곧 깔끔한차림의 남자가 현관문을 열었다.

“네? 무슨 일이시죠?”

몰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안녕하세요, 저는 몰리위즐리 이쪽은 제 남편 아서 위즐리에요. 아드님이 아픈거 같아서 저희아 이렇게...”

몰리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남자는 천천히 뒤로 물러서며 문을 열었다.

“저는 미스터 말포이가 아닙니다. 잠시 기다리시면 제가 곧 주인님을 불러오도록 하겠습니다.”

남자의 말에 놀란 몰리의 볼이 빨갛게 물들었다. 두 사람은 곧 영접실로 안내받았다. 아서의 품에서 뒤척이던 소년이 작은 신음소리를 냈다. 계단을 내려오던 금발머리의 부인의 발걸음이 갑자기 바빠졌다. 영접실로 들어선 나시샤는 아서의 품에 안겨있는 드레이코를 발견하고는 놀라 다가가며 아이를 품에 안았다.

“오! 드레이코!”

나시샤의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놀란 아서는 드레이코를 나시샤에게 건내주고는 첼로가방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곧 영접실 안으로 루시우스가 들어왔다.

“미스터 위즐리, 미스 위즐리.”

평소에 별로 좋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던 아서와 루시우스는 서로의 모습에 잠시 당황한듯 멈춰섰다. 몰리는 천천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미스터 말포이 아드님께서 아프신것 같아서 저희가 오는길에 태워왔어요.”

옆에 서있던 아서가 거들었다.

“저는 당연히 미스터 말포이도 아드님과 함께 연회장에 계실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아드님 혼자 오셨더라구요.”

아서의 말에 나시샤가 날카롭게 루시우스를 보았다. 그리고는 드레이코를 침실로 옮기기위해 영접실을 나서며 말했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에요! 미스터 위즐리. 드레이코가 만약에 합격하게 되면 루시우스는 얼마나 후회를 할까요?”

나시샤의 말에 헛기침을 한 루시우스는 영접실 한켠에 있는 책상 서랍에서 수표수첩을 꺼내 한장 급하게 적어 아서에게 내밀며 말했다.

“얼마 되지 않지만 제 성의입니다.”

루시우스의 행동에 놀란 몰리는 얼굴이 빨갛게 닳아 올랐다. 몰리는 눈살을 찌푸리며 아서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저희는 이런걸 바라고 아이를 데려온게 아닙니다. 감사하다는 성의를 알았으니 저희는 이만.”

꾸물거리는 아서의 팔꿈치를 휙 잡아 당기며 단숨에 말포이 저택을 빠져나온 몰리는 마차에 올라타며 말했다.

“어쩜 저렇게 행동 할 수 있죠 그냥 고맙다고 하면 되는 일을 마치 우리가 뭔가 바라고 아이를 데려온것처럼 어쩜 저렇게 무례해요? 당신이 말한 그 말포이가 이 말포이로군요!”

몰리의 말에 고개를 흔들며 아서는 마차를 집으로 몰았다.

드레이코를 침대위에 누이면서 나시샤는 드레이코의 살짝 젖은 앞머리를 치우며 이마에 키스했다. 아이의 이마에 닿은 입술이 뜨겁다고 느껴질 정도로 열이 있었다. 바쁘게 걸음을 옮겨 집사에게 의사를 부를것을 당부하고는 영접실로 갔다. 손에 수표책을 들고 소파위에 걸터 앉아 있는 루시우스를 발견한 나시샤는 팔짱을 끼고는 그를 아래로 내려보며 말했다.

“고맙다는 말이었으면 충분했을거에요! 당신은 왜 필요 없는 적을 만드는거에요?”

나시샤의 말에 한숨을 몰아쉬는 루시우스는 수표책을 옆 테이블에 아무렇게나 내려놓고는 양손을 얼굴로 가져갔다.

“아직 몸이 다 낮지도 않았다구요, 대체 스스로한테 아들한테 왜이렇게 잔인하게 굴어요! 적어도 저라도 함께 갔으면 이런일은 없잖아요!”

힘없이 자리에서 일어난 루시우스는 나시샤에게 팔을 두르며 끌어 안았다. 고개를 돌리고 있던 나시샤는 루시우스의 행동에 한숨을 쉬며 마주 안았다.

“적어도 하고싶은걸 하게 해줘요. 당신은 아버님처럼 살지 않아도 되잖아요.”

일주일은 생각한것보다 훨씬 빨리 흘러갔다. 북클럽과 사교모임으로 바쁜 나시샤와 회사일로 자리를 비운 루시우스를 피해 드레이코는 집사에게 잠시 산책을 나갔다 오겠다는 말만 남긴채 집 밖을 나섰다. 전차를 이용할 수도 있었지만, 드레이코는 시험결과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그날 드레이코가 기억하는 것은 배로 무거웠던 첼로의 무게와 차가운 바람, 언뜻 스치듯 보았던 붉은머리, 그리고 마차소리.

시계탑 광장의 가게들과 노점은 잔뜩 흐린 날씨에 아랑곳 하지않고 저마다 큰소리로 호객행위를하며 광장을 가득 채운다. 평소답지 않게 사람들의 행동이나 모습, 물건들에 관심을 보이던 드레이코는 한숨을 깊게 내어쉬고는 시험을 봤던 왕립음악원 연회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연회장안은 오고 가는 사람들로 항상 사람이 많았다. 악기를 든 사람부터 극장에서나 볼법한 유명한 가수들 외국에서 온듯 보이는 화려한 귀족부터 유행하는 옷을 멋지게 차려입은 상인, 공연을 하는 사람과 공연을 볼 사람들 그리고 음악을 공부하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1층 로비 안으로 들어서자 시험 결과를 보기위해 모여든 아이들과 아이들의 부모님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로비안을 메우고 있었다. 결과 발표는 대극장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설명을 들은 드레이코는 대극장쪽으로 향했다. 스테이지위에 커튼이 양 옆으로 드리워진 단상위에 그랜드 피아노가 눈에 보였다. 그 바로 앞에 긴 테이블에 직원들이 앉아서 서류를 전달하고 있었다. 결과를 확인하고 입학허가를 받은 아이들은 함께 온 부모님과 함께 탄성을 지르기도, 눈물을 삼키지못하고 큰소리로 울거나 흐느끼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결과르 위해 테이블쪽으로 다가셔러는데 누군가가 드레이코의 이름을 큰소리로 불렀다. 대극장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말포이의 트레이드마크인 바랜듯한 금발머리와 창백하고 뾰족하 얼굴의 드레이코 쪽으로 쏟아졌다.

“드레이코! 드레이코 말포이!”

목소리가 들리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시험을 본 날 미스터 블랙과 함꼐 있던 안경쓴 소년이 드레이코를 향해 크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계속해서 불러지는 이름에 불편해진 드레이코는 빠른걸음으로 소년이 서있는 쪽으로 향했다.

“해리포터”

“드레이코!”

해리의 목소리에 론은 자신도 모르게 비집고 나온 웃음이 목구멍에 걸려 마치 코웃음치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금발머리소년은 론을 위아래로 훝어보며 차갑게 쏘아붙였다.

“너에게 내 이름이 우습니?”

해리가 론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론 위즐리! 바이올린을 연주한데! 게다가 형들이 다 학교에 다닌다고했어!”

팔짱을 끼고 아래위로 찬찬히 론을 훑어보던 드레이코는 론을 노려보다가 입꼬리를 살짝 들어 올리며 말했다.

“위즐리?”

드레이코의 거들먹이는 목소리에 마음이 상한 론은 흠칫하며 뒤로 물러섰다. 한참을 서로 바라보고 있던 론과 드레이코사이에서 해리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대기 시작했다. 론과 해리는 시험에 합격해서 필기시험을 보러 카디프로 가게 됬다고 말했다. 론의 형이 호그와트에서 일하고 있어서 론은 론의 아버지와함께 가서 호그와트에서 몇일 지내게 됬다고 말을하며 부러움을 감추지 않았다. 계속해서 두사람을 노려보던 드레이코는 갑자기 결과에 대해 알고싶지 않아졌다. 앞에 서있는 이 두사람이 붙었는데 만약 자신이 가지 못하게 되면 어떡해야할지 걱정이 되었다. 이야기를 듣는둥 마는둥하다가 갑자기 획 돌아서서 연회장을 빠져나갔다. 연회장을 나가는 드레이코의 뒷모습을 보던 론이 말했다.

“내가 뭔가 잘못한걸까? 이름때문에 웃은거 아닌데...”

“아닐거야, 사람들이 말포이는 원래 다 무례하다고했어.”

해리의 말에 한참동안 말이 없던 론이 입을 뻐끔거리다 결국 소리를 냈다.

“무례하다는게 무슨뜻인데?”

“나도 몰라”

해맑게 웃으며 미스터블랙이 있는쪽으로 뛰어가는 해리를 보던 론은 함께온 가족들이 이제야 생각이 났는지 두리번거리며 연회장을 맴돌았다. 몰리를 발견한 론은 몰리의 치마자락으로 뛰어들며 말했다.

“엄마!”

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몰리는 함께 대화를 나누던 머리를 높게 올린 부인에게 미안함을 표시하며 론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론 필기시험이 이제 얼마 안남았으니까 열심히 공부해야해.”

고개를 끄덕이며 론은 음악원을 막 나가고있는 드레이코에게 시선이 갔다. 드레이코의 부모님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의아하게 생각한 론은 몰리에게 금발소년쪽으로 손가락을 가리키며 말했다.

“엄마 쟤는 왜 혼자왔어요?”

드레이코를 발견한 몰리는 재빠르게 마차쪽으로 론을 끌어 당기며 가는 길을 재촉했다. 계속해서 드레이코에 대해 묻는 론에게 몰리는 어쩔수 없다는 듯이 나지막히 말했다.

“부모님 심부름을 온걸거야. 나중에 학교에서 만나게되면 물어보면 어떨까?”

몰리의 대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신나게 고개를 끄덕인 론은 몰리가탄 마부석 옆에 찰싹 달라붙어 앉으며 오늘 만난 해리와 미스터블랙에 대해 떠들어댔다. 드렐이코가 가는 쪽을 한번 힐끔 바라본 몰리는 한숨을 내쉬며 갈길을 재촉했다.

Through the cold

저녁 해가 다 지도록, 밖에서 놀던 위즐리가 아이들은 몰리가 저녁준비를 끝내자 마자 내는 커다란 소리에 이끌려 하나 둘 집안으로 들어 왔다. 끝까지 빗자루를 타지 못했다고 분해 하며 투정하는 론이 의자에 앉자, 아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앞쪽에 있는 스콘을 하나 접시 앞으로 가져와 저녁식사를 시작했다. 곧, 다른 가족들도 동참했다. 몰리의 갓 끓은 스튜접시가 하나 둘 식탁위로 날아왔고, 몰리도 곧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몰리를 본 아서가 고개를 돌려 몰리의 뺨에 키스하며 말했다.

“밖이 점점 쌀쌀해 지는데, 날도 짧아지고.”

“곧 겨울이 올 테니까요.”

몰리는 부드럽게 웃으며 아서의 뺨을 쓰다듬었다. 두 사람의 대화에 퍼시 옆에 앉아 있던 론이 말을 꺼냈다. “엄마. 저녁 먹고 잠깐만 빗자루 타면 안돼요?” 론의 질문에 창 밖을 보던 몰리는 해가 뉘엿뉘엿 지며 온통 주홍 빛으로 물든 하늘을 바라보았다. 식사가 끝날 때 즈음이면, 분명히 어두워져 있을 것이다. 다시 시선을 론에게 옮겨 미안함이 담긴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을 하려는 순간 아서가 힘차게 말했다.

“그래, 아빠랑 함께 날자꾸나.”

아서의 목소리에 얼굴에 있던 미안함이 씻긴 몰리는 론을 향해 크게 미소 지으며 프레드와 조지 옆에 앉으면서 론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어 주었다. 조지가 갑자기 일어서더니 몰리의 옆 자리로 옮겨 앉았다. 쌍둥이는 몰리의 양팔에 매달려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는 론을 향해 만족한다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론이 먹다 남은 스콘 조각을 조금 떼어 쌍둥이에게 던졌다. 몰리는 론에게 입술을 살짝 물으며, 표정을 굳혔다. 론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쌍둥이들을 노려봤다. 하지만 쌍둥이들은 자신들이 밖에서 뭘 하고 놀았는지 몰리에게 설명해주기 바빴다.

저녁식사가 끝나고, 몰리의 설거지와 쌍둥이의 모험을 듣던 아서와 론은 곧 밖으로 나왔다. 보라색 빛으로 물든 하늘 아래 빗자루를 들고 서 있었다. 아서는 빗자루를 타는 것이 오랜만이었다. 항상 플루네트워크를 사용 하는 것이 버릇이 되어서인지, 약간 흥분 되었다. 몸을 낮춰 론에게 눈을 맞추고 아서가 말했다.

“저녁에 비행하는건 위험해. 아빠가 지금 같이 있기 때문에 이 시간에 나오는 거야. 절대로 혼자서 이 시간에 밖에 나오면 안돼! 알지?”

아서의 꾸민듯한 근엄한 목소리에 입 꼬리가 올라간 론이 웃음을 숨기는데 실패하고 아빠의 품에 안기며 웃었다. 아서는 론을 한번 꼭 안아 준 다음에, 머리를 헤치고는 일어섰다. 빗자루에 올라타며 힘차게 땅을 내 딛었다. 론 역시 뒤따라 빗자루 위에 올라탔다.

겨울이 다가 와서 인지, 해가 지자 공기가 습하고 찬 공기가 아서의 뺨을 갈랐다. 자기도 모르게 비행을 즐긴 아서는 론이 생각나서 뒤를 보았다. 아직 서툴지만 아서 뒤를 잘 따라 오고 있었다. 보라색이던 하늘이 완전히 어두워지고, 별들이 그 모습을 선명히 할 때, 두 사람은 다시 집안으로 들어 왔다.

론의 두 뺨이 찬 공기에 스쳐 빨갛게 달아 올라 있었다. 아서는 차가워진 론의 두 뺨을 감싸 쥐며 론을 집안으로 이끌었다. 지니와 퍼시는 이미 잠자리에 들었다. 몰리는 거실에 앉아 마루에 엎드려 무언가 열심히 적고 있는 쌍둥이를 보고 있었다. 빌과 찰리는 방에서 뭘 하는지 보이지 않았다. 론이 거실로 들어오는 걸 본 몰리가 론에게 손짓하며 어깨를 감싸며 옆에 앉혔다. 밤공기에 차가워진 론의 팔뚝을 두 손으로 문지르며 론의 정수리에 살짝 키스했다. 아서는 론이 몰리 옆에 앉는 것을 확인하고, 문 옆에 세워 두었던 빗자루를 다시 창고 안으로 가져가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곧 겨울이 올 것이다. 곧 추워질 것이다.

집안으로 다시 들어온 아서는 바닥에 몸을 뒹굴며 늘어져 있는 쌍둥이를 쳐다보고는 시계를 봤다. 9시 40분. 아서는 쌍둥이가 누워있는 바닥 바로 앞에 주저 앉으며 쌍둥이를 쳐다봤다. 아서의 도착에 늘어져 있던 조지가 그 동안 쓰고 있던 종이를 아서에게 보여주며 자신들이 개발한 주문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누워있던 프레드 역시 조지의 설명에 만족하지 못했는지, 곧 들고있던 양피지를 뺏어 들어 옆에 있던 깃펜으로 무언가 다시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쌍둥이의 몰입한 모습에 웃던 아서의 시선이 소파에서 꼭 붙어 잠든 몰리와 론에게 갔다. 아서는 몰리의 무릎을 살짝 흔들어 깨웠다. 부스스 눈을 뜬 몰리는 조심스럽게 론을 두고 아서에게 손짓했다.

“자, 프레드,조지 너희도 어서 너희 방으로 올라가서 잘 준비 하렴.”

몰리의 목소리에 집중하던 양피지에서 고개를 돌린 쌍둥이가 투정하며 계단으로 올라갔다. 몰리는 올라가는 쌍둥이를 향해 일찍 자라고 소리치며 아서에게 론쪽을 가리키며 손짓했다. 아서는 조용히 자리를 털고 일어나 론을 안아 들었다. 노곤했는지 축 늘어져서 자는 론의 몸이 따뜻해져 있었다. 론의 방 문을 팔꿈치로 밀어 열고, 주황색 시트 위에 론을 올려 놓았다. 다 헤진 물려받은 신발을 벗기고, 한때 빌의 점퍼였던 점퍼를 조심스럽게 벗겼다. 잠옷으로 갈아 입히기엔 너무 깊게 잠이 든 것 같아, 그대로 시트를 젖혀 론을 밀어 넣었다. 곧 아이들의 이불을 더 두꺼운 것으로 바꿔야 한다고 몰리에게 말해야 한다는 걸 되 뇌이며, 론의 잠자리를 봐준 아서는 론의 이마에 살짝 키스 한 뒤 방문을 살짝 열어 둔 채로 몰리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빌, 찰리, 퍼시, 프레드, 조지, 론, 지니!!!!”

아침 식사 준비가 끝난 몰리는 큰소리로 계단 옆에 서서 아이들의 이름을 불렀다. 곧 쿵쾅거리는 소리와 함께 하나 둘 식탁으로 모였다. 구워진 토스트를 식탁 위로 옮기며, 몰리는 마음 속으로 아이들의 이름을 되 뇌이며 부스스한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빌, 찰리, 퍼시, 프레드, 조지, 론…, 론?’ 거실쪽을 한번 쳐다보고는 다시 한번 식탁에 둘러 앉은 아이들을 둘러 봤다. 출근 준비를 마친 아서가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몰리는 아서의 뺨에 키스하며 거실을 지나 계단쪽을 올려 다 보았다. 다시 한번 큰 소리로 론을 불렀다. 몰리는 계단을 올라가며 계속해서 론을 불렀지만, 론의 방 문 앞에 도착할 때 까지 식당에서 나는 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살짝 열린 방문을 낡은 경첩에서 나는 소리에 천천히 방문이 열리고, 주황색 침대 시트 위에 머리 끝까지 이불을 뒤집어 쓴 채로 옆으로 누워 자는 론이 보였다. 몰리는 어제 저녁에 빗자루를 타고 논 것에 지쳐서 늦잠을 자는 거라고 생각하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 반쯤 열린 창문으로 아침 바람이 쌀쌀했다. 밤새 문을 열어 놓고 잤는지, 방안이 조금 찼다. 얼른 창문을 닫으며, 론의 침대에 앉은 몰리는 조용히 론의 이름을 불렀다.

“론?”

몰리의 목소리에 이불의 부스럭 소리와 함께 두 뺨이 빨갛게 상기된 론이 얼굴을 내밀었다. 몰리는 론의 머리에 손을 가져가며 다시 한번 론의 이름을 부드럽게 불렀지만,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리지 못한 론은 투정하듯 몰리에게 매달렸다. 몰리의 손바닥에 닿은 론의 이마는 뜨거웠다. 몰리는 매달리는 론을 천천히 끌어 당겨 안았다. 축 늘어진 론의 몸에 열이 있었다. 몰리의 옷을 움켜쥔 론의 손이 조금 헐거워 졌을 때, 몰리는 다시 론을 침대 위에 뉘였다. 이불을 꼼꼼하게 덮어주고, 찬장에 감기 포션이 있었는지 생각했다. 이제 날이 더 쌀쌀 해질 테니, 슬슬 만들어 놓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론의 뺨을 한번 쓰다듬고서는 방을 나가기 위해 침대 위에서 일어났다. 론의 눈꺼풀이 부르르 떨리며 떠지더니, 몰리를 바라 보았다. 몰리는 고개를 숙여 론의 이마에 키스하며 말했다.

“좀 더 자렴. 푹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질 거야.”

론의 이불을 한번 더 고쳐 덮어주며 천천히 몸을 식당쪽으로 향했다. 문을 닫기 바로 직전, 다시 한번 고개를 돌려 론이 누워 있는 곳을 보았다. 론은 몰리가 나가는 것을 계속 보고 있었다. 몰리는 미소 지어 보이며 살짝 열린 문을 그대로 두고 아래층으로 향했다.

점심시간이 거의 다 되었을 때쯤, 몰리는 마당에 빨래를 널고 있었다. 방에서 창문 밖을 지켜보고 있던 쌍둥이는 몰리가 마당에 빨래 바구니를 들고 나오는 것을 보고 마당으로 나가기 위해 쿵쾅거리며 계단을 내려왔다. 거실을 지나 부엌쪽에 있는 뒷문으로 마당에 나가려고 하는데, 거실 소파 위에 론이 쓰러져 있었다. 조지는 바쁘게 걸음을 옮기는 프레드의 팔을 잡아 당기며 론에게 손짓했다. 론을 발견한 프레드는 조지를 바라보며 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조지는 프레드를 향해 크게 웃어 보이며 내려왔던 길을 거슬러 내려왔을 때보다는 조금 조용히 다시 방쪽으로 뛰어갔다. 프레드는 론을 일으켜 앉으며 주변에 있는 쿠션으로 론의 몸이 앉아 있을 수 있게 해 두었다. 론의 뺨은 붉게 물들어 있었고, 전체적으로 얼굴이 조금 부어 있었다. 론이 눈을 살짝 뜨며 프레드를 봤다. 프레드는 한번 크게 웃고는 론의 머리를 헝클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프레드가 막 소파에서 일어 났을 때, 조지가 손에 담요를 들고 내려오며 부엌을 향하는 프레드를 보았다. 조지는 론 옆에 풀썩 앉으며 이미 헝클어진 머리를 다시 한번 헝클었다. 론은 조지에게 매달리기 위해 두 손을 뼜었지만, 조지는 담요로 론의 몸을 감싸며 안아 주었다. 조지의 어깨에 머리를 뉘인 론이 몇 번 기침하더니 조지를 밀어 냈다. 담요 안쪽으로 얼굴을 숨기며 방금 전보다 좀 더 심하게 기침을 해 댔다.

“기침도 해?”

프레드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조지의 눈에 프레드 손에 들린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컵에 눈이 갔다. 테이블 위에 컵을 가지런히 올려 놓고 다시 소파에 앉은 프레드는 조지 품에 안겨있는 기침하는 론을 한번 보고는 조지와 프레드를 향해 팔을 내둘렀다. 조지의 어깨에 안착한 프레드의 숨이 간지러웠다. 기침이 멎은 론은 답답하다는 듯이 다시 담요 밖으로 고개를 살짝 내놓고는 뒤쪽에 앉은 프레드를 팔꿈치로 밀어 냈다. 프레드는 꾸며낸 슬픈 표정으로 더욱 세게 조지와 론을 안았다.

“베이비로니, 조지만 좋아하기야? 조지, 너의 첫번째는 나 아니야?”

프레드의 투정에 조지 역시 앞에 있는 두 사람을 더 세게 안았다. 마치 그 질문에 대답이라도 하듯, 두 사람과 지금 보다 더 가까워 지고 싶다는 듯, 그때 몰리가 밖에서 빈 바구니를 들고 거실로 들어 왔다. 부둥켜 안고있는 세 사람을 본 몰리 얼굴에 웃음이 났다.




루시우스의 일이 예전보다 더 바빠졌다. 집에 있는 시간보다 밖에 나가 있는 시간이 더 많아 졌다. 자연스럽게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줄었다. 오늘은 오후에 드레이코와 같이 퀴디치를 하기로 약속한 날이었지만, 늦게까지 이어진 마법부 회의 덕분에 저녁만찬이 시작 될 때 즈음에야 집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이었다.

연회실의 피아노에서 잔잔한 녹턴이 연주되고 있었다. 루시우스는 부정하고 싶었지만, 머글의 작곡 공식은 마법사들의 것보다 훨씬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루시우스의 남쪽관 비밀서재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 하는 것이 머글음악 수집이었다. 마법사들 중에 과연 악기를 마법 없이 연주 하는 사람이 있을까? 차갑고 날이 선 아버지의 눈동자가 부드러워 질 때, 슬픈 단조의 소나타가 울리는 무도장, 너무 어려서 이해할 수 없었던 수많은 감정이 흐르는, 아버지가 피아노를 연주하시던 무도장. 루시우스는 눈을 감고 그때 그 기억을 되새기고 있었다.

서툰 바이올린 소리에 몸을 돌려 연회장 쪽으로 향한 루시우스의 눈에 미소가 가득한 나시샤와 작은 바이올린을 턱에 괴고, 악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진지하게 연주하는 드레이코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완벽하지도, 그렇다고 잘하지도 않았다. 삐걱거리는 소리와 맞지 않는 음이었지만, 마음이 편안해 졌다. 열중한 드레이코의 뺨이 분홍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루시우스가 연회장에 들어온 것을 발견한 나시샤의 손이 멈췄다. 멈춘 피아노 소리에 드레이코는 악보에서 머리를 들어 루시우스를 바라 보았다. 방금 전까지 심각했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 나시샤의 뺨에 키스하고 드레이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하는 구나.”

드레이코는 루시우스의 말에 어깨를 들썩이고 얼굴에 활짝 핀 웃음을 숨기기 위해 고개를 숙이며 바이올린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시샤는 자리에서 일어나 피아노 덮개를 내려 놓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루시우스 옆에 섰다. 드레이코가 보고 있던 보면대를 한쪽으로 치우며 살짝 손뼉을 치며 집요정을 불렀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집요정이 나타났다. 나시샤는 막 정리가 끝난 드레이코의 바이올린과 보면대를 향해 손짓했다. 집 요정은 드레이코에게 다가서며 바이올린 케이스를 받아 들었다.

저녁은 언제나 그랬듯이, 조용하게 시작해서 조용하게 끝이 났다. 식사 중에 끝마치지 못했던 이야기를 계속하기 위해 나시샤와 로비로 향했다. 조용히 두 사람 뒤를 따르는 드레이코를 발견한 나시샤는 갑자기 무언가가 생각난 듯, 루시우스의 뺨에 살짝 키스한 뒤 서쪽관으로 발걸음을 급하게 옮겼다. 남겨진 두 말포이는 나시샤가 코너를 돌아 그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렇게 서있다가, 루시우스의 손이 드레이코의 어깨에 내려 앉으며 다시 걷기 시작했다.

회랑안이 저녁 노을에 붉게 물들었다. 조금 지나면 날이 저물 것 같았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있었다. 루시우스는 창밖에 시선을 고정한 드레이코를 내려다 보았다. 그리고 오늘 했던 약속이 생각 났다. 루시우스는 얻어놓았던 손을 치우며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물었다.

“퀴디치를 하기는 늦었지만, 잠깐 비행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구나.”

루시우스의 목소리에 드레이코는 루시우스의 허리춤을 꽉 안으며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드레이코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루시우스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얼굴을 루시우스의 쪽에 한번 비벼대더니 곧 손을 놓고 정원이 있는 쪽으로 뛰어 가기 시작했다. 루시우스의 헛기침에 발걸음을 멈춘 드레이코가 살짝 뒤를 돌아 루시우스의 미소를 확인한 뒤에 다시 평소보다 바쁜 걸음으로 정원쪽을 향하기 시작했다. 루시우스도 평소보다는 조금 바쁜 걸음으로 아들 뒤를 따랐다.

차가운 바람이 몸을 가른다. 붉었던 하늘이 자색으로 어두워 진다. 별들이 희미하게 그 모습을 보인다.

빗자루에서 막 몸을 내린 루시우스가 뒤쪽에 자연스럽게 착지하는 드레이코를 보았다. 정원에서 기다리고 있던 집 요정에게 끼고 있던 장갑과 빗자루를 던져주며, 드레이코의 빗자루를 받아 들었다. 힘이 들었는지 헐떡이는 숨을 잠시 몰아 쉬고 싱긋 웃어보였다. 차가운 바람에 붉게 물든 뺨이…. 고개를 숙이고 힘들게 숨을 고르는 아들의 몸쪽으로 다가가던 손이 공중에서 멈추고 금발의 소년이 머리를 다시 들기 전에 재빨리 손을 옮겨 눈 앞으로 내려온 머리를 쓸어냈다.

언제 왔는지 나시샤가 루시우스의 행동을 보고 가볍게 한숨을 쉬더니, 드레이코에게 다가갔다. 몸을 숙여 나시샤는 차가워진 아이의 볼을 두 손으로 감쌌다. 나시샤의 손바닥에 드레이코의 미소가 느껴졌다.

자기 방으로 향하는 드레이코의 어깨가 조금 무거워 보였다. 방문을 조심스럽게 닫고, 입고있던 망토와 옷을 가지런히 벗어두고는 잠옷으로 갈아 입었다. 커다랗고 깔끔하게 정리 되어 있는 방, 커다란 창문은 이미 두꺼운 벨벳 커튼으로 가려져 방안은 어두웠다. 맨발로 천천히 커다란 침대쪽으로 몸을 향하는 소년의 숨소리가 거칠었다. 차가운 흰색 시트에 몸을 던져 눕고는 몸 주변을 이불로 꽁꽁 둘러 쌌다. 커다란 침대에 묻힌 소년의 작은 몸이 힘겹게 뱉어지는 숨소리와 함께 소년의 빨갛게 닳아 오른 뺨이 차가운 베갯잇에 뉘어지고 무거운 눈꺼풀이 회색 눈동자를 덮었다. 머리 끝까지 신음소리를 숨기려는 냥 끌어당긴 이불로 베개 끝에 살짝 보이는 금빛 머리카락 만이 누군가가 그 침대 위에 있다는 걸 알려주는 듯 했다.

집 요정이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드레이코의 방 문 앞에 섰다. 천천히 문을 열고 들어가 무거운 벨벳 커튼을 제치자 햇빛이 방안으로 쏟아졌다. 커다란 침대 위에 이불더미 속에 드레이코의 얼굴에도 빛이 닿았다. 조금 거친 숨을 몰아 쉬면서 자리에서 일어 났다. 평소 때와는 다르게 비틀거리는 모습에 집 요정이 그를 도우러 옆에 섰다. 도움의 손길을 신경질 적으로 뿌리치며, 이미 잘 정돈되어 준비된 옷을 손에 들고 욕실로 향했다. 세면대에 차가운 물을 받아두고 얼굴을 담갔다. 그렇게 숨이 목에 차 오를 때까지 물 속에서 숨을 참아내던 드레이코가 숨을 몰아 쉬며 물 밖으로 얼굴을 들어 올렸다. 무거운 머리를 들어 올렸다.

벽을 집고 천천히 내려오는 계단 앞에서 숨을 고르고,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소년은 무거운 몸에 힘을 주어 가볍게 뛰었다. 연회장에 들어서자 긴 테이블 끝에 앉은 루시우스의 모습이 보였다. 나시샤는 고개를 돌려 급하게 뛰어 온 듯한 드레이코에게 의자로 손짓하며 말했다.

“늦었구나, 드레이코.”

지어낸 한숨을 내쉬며 드레이코는 무거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앞으로 흘러내린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며, 나시샤에게 미소 지어보였다. 미소 짓는 소년의 뺨이 붉었다.

“늦잠을 잤어요.”

자세를 곧게 하고 천천히 의자로 몸을 옮긴 드레이코는 털썩 의자에 앉았다. 코를 훌쩍이는 소리에 접시에 머물렀던 루시우스의 시선이 그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옮겨졌다.

“드레이코?”

루시우스의 목소리에 쳐져 있던 어깨가 다시 긴장했다. 살짝 고개를 돌려 루시우스의 눈동자를 만난 드레이코는 최선을 다해 미소 지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다시 자기 방으로 돌아오기까지 아득해지는 정신에 드레이코는 휘청거렸다. 방문을 살짝 열고 그 안에 들어서자 마자 쓰러지는 드레이코를 기다리고 있던 집 요정이 무겁게 받쳐들어 침대위로 옮겼다. 준비해온 포션을 조심스럽게 입술사이로 떨어뜨리며, 이불을 고쳐 덮어 주었다. 힘들게 몰아 쉬는 숨, 이제 붉다고 하기보다 오히려 하얗게 질렸다고 하는 것이 맞을까.

커다란 방, 깔끔하게 정리되어 마치 전시해 놓은 것 같은, 커다란 방. 어린 아이의 방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리기 힘든 커다랗고, 차가운 드레이코의 방. 나시샤는 천천히 그 방 안으로 몸을 옮겼다. 온 몸이 땀에 젖어 차가워진 드레이코를 천천히 시트에서 안아 들었다. 집 요정이 시트를 가는 동안 그렇게 드레이코를 안고 나시샤는 정신을 잃은 아이의 뺨을 쓰다듬었다. 힘껏 안아 주었지만, 항상 사랑하지만. 이렇게, 이렇게, 아무도 모르게, 이게 말포이 방식. 아이를 쓰다듬는 어머니의 손길이 그 어느 때보다, 누구보다 애절하다.

늦은 밤이 다 되서야, 드레이코의 숨소리가 편해져서야 나시샤는 드레이코의 방을 떠났다. 문이 닫히는 소리에 눈이 살짝 떠진 드레이코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깨끗하게 바뀐 시트, 그리고 커다란 침대 앞에 의자. 손을 옮겨 의자위로 가져갔다. 아직 따뜻했다. 누군가가, 누군가가 그가 아픈 것을 보고 있었다. 얼른 손을 치우며 방금 닫힌 문쪽을 보았다. 그리고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낼 것 같은 먹구름이 아이의 눈동자를 채운다.

Slap

크리스마스 파티가 한창인 말포이 저택의 연회장에 잔잔한 왈츠를 넘어 여자아이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람들의 시선이 방금 막 땅바닥으로 내쳐져 눈물방울을 하염없이 쏟아내는 곱실거리는 갈색머리를 가진, 찢어질 듯한 울음소리를 만들어내는 여자아이에게 쏠렸다. 그리고 그 앞에 주먹 쥐어진 양손을 몸에 바싹 붙인 채로, 방금 넘어진 그 여자아이를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열심히 노려보고 있는 금발의 소년이 있었다.

여자아이의 엄마처럼 보이는 갈색머리의 부인이 나타나 그 아이를 안아 들었다. 금발의 소년 옆으로 당황한 듯한 표정이 역력한 나시샤가 어렵게 그 부인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듣던 데로, 정말 훌륭한 아드님을 두셨군요.”

조용하고 침착하면서 상황을 정확히 비꼬는 그녀의 말이 루시우스의 귓가를 울렸다. 그녀의 목소리에 연회장은 단숨에 침묵으로 휩싸였다. 두 걸음에 거리를 좁혀 그 부인 앞에 선 루시우스는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로지부인, 제 아들의 무례함을 넓은 아량으로 용서해 주십시오...”

갈색 머리의 부인의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고개를 들어 루시우스를 아래로 내려 보았다. 그리고 사과를 받아줄 마음이 없는 듯, 돌아서려는 찰나, 루시우스가 숙였던 고개를 들며 미처 끝내지 못한 말을 끝냈다.

“하지만, 이 넓은 홀을 가득 채울만한 우렁찬 목소리를 가진 따님께서는 확실히 듣던 데로, 숙녀답군요.”

루시우스의 말에 돌아섰던 로지부인의 시선이 다시 그녀 앞에 선 금발의 남자에게 갔다. 얼어 붙을 것만 같은 날카로운 회색 눈동자가 그녀의 초콜릿 갈색 눈동자를 단숨에 얼렸다. 로지부인의 뺨이 붉어졌다.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루시우스는 나시샤의 드레스를 붙잡고 겁에 질려 서있는 아들을 어깨에 조심스럽게 손을 올려 놓으며 아들의 바라 보았다. 아들을 바라보는 그는 평소와 달라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눈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천천히 드레이코의 손을 잡고 서재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람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나시샤가 멈추었던 음악을 다시 연주하게 하고, 천천히 로지부인에게 다가서며 용서를 구했다. 다시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연회장을 메우기 시작했고, 나시샤는 방금 두 사람이 나간 문 쪽으로 시선을 한번 주고는 다시 로지부인의 불평에 집중했다.

서재를 향하는 내내 루시우스의 손에 쥐어진 작은 손이 쉬지않고 움직였다. 살짝 눈 끝으로 축 쳐진 금발소년의 어깨에 눈이 간 루시우스는 한숨을 삼켰다. 화가 나기도 하지만, 실망이 더 컸다. 삼켜진 그 한숨에는 드레이코에 대한 애틋한 루시우스의 마음 역시 녹아 있었다. 화내며 잔소리하고, 억울해 하며 울며 어리광을 피우는, 보통 평범한 아버지와 아들이 그 어느 때보다 부러운 루시우스였다. 서재 문 앞에 도착한 루시우스는 잡고 있던 작은 손을 놓고 문고리를 돌려 문을 열었다. 그리고 아이의 등에 손을 얻으며 방안으로 이끌었다. 천천히 망설이는 걸음으로 서재 안으로 들어선 부자는 그렇게 한동안 문 앞에 서있다가. 루시우스는 문득 방안에 한기를 느끼고, 벽난로 앞으로 다가가 불을 붙였다. 그리고 그 옆 안락의자에 앉으며 아직 문 앞에 서있는 드레이코를 보았다. 양손을 앞으로 가져와 바쁘게 움직이며 고개를 푹 숙이고 긴장한 모습을 숨기지 않았다. 그 모습에 올라가는 입 꼬리를 이성으로 내리 누르고 헛기침으로 드레이코의 시선을 샀다.

“어깨 펴고, 똑바로 서라.”

루시우스의 말에 드레이코의 표정이 굳어지며, 어깨가 긴장했다. 몸을 곧게 펴며 루시우스의 시선을 피하지 않는 드레이코의 비를 잔뜩 머금은 먹구름 눈동자가 루시우스의 마음을 찢었다. 아무 말 없이 그렇게 둘은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다. 루시우스는 시선을 벽난로의 불꽃으로 옮기며 손짓했다. 그 손짓에 드레이코는 몸을 움직여 벽난로 앞에 있는 의자에 몸을 낮췄다. 꼿꼿이 허리를 세우고 양손을 무릎에 가지런히 모은 채로 루시우스의 행동을 살폈다. 루시우스는 기다렸다. 평소라면 그가 의자에 와서 앉기 전에 그는 그가 원하는 대답을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그렇게 또 고요하게 시간이 흘렀다.

“드레이코?”

금발 소년의 시선이 벽난로의 타오르는 화염에서 얼음같이 찬 눈동자로 옮겨졌다. 그는 꿰뚫는 듯한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말포이를 모욕하는 걸 참을 수 없었어요. 그 아이가 저에 대해 모욕했다면 참았을 거에요. 하지만, 말포이를 모욕하면, 전 참지 않아요.”

그의 목소리는 확신에 가득 차 있었고, 그의 신념이 묻어 나왔다. 자랑스러움, 명예로움, 자신감. 그는 말포이였다. 루시우스는 그의 대답에 만족 했지만, 더 이상 그를 야단칠 마음이 없었지만, 그는 말포이로써 그의 아들을 완벽한 말포이로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그의 행동은 비록 상대방이 잘못 했어도, 남자답지 못한 행동 이었다.

“그녀는 너보다 훨씬 어리고, 약한 여자 아이였어.”

루시우스의 말에 드레이코의 표정이 찡그려 졌다. 사실 이 싸움은 그 여자아이가 먼저 시작한 것이었다. 드레이코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드레이코에게 포도 알을 던지는 예의를 모르는 아이였다. 계속되는 무시에 화가 난 그 아이가 뱉어낸 모욕은 드레이코라는 이름대신 말포이라는 이름으로 뱉어져 나왔고, 그 점을 참을 수 없는 말포이는 끝내 자신의 감정을 누르지 못했다. 그런데, 그 여자아이의 편을 들어주는 루시우스에게 점점 서운하면서 화가 났다. 무릎 위에 가지런히 놓여진 작은 손이 꽉 쥐어지는 것을 본 루시우스는 다시 시선을 벽난로로 옮겼다. 그렇게 다시 둘만의 시간이 묻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시샤가 천천히 서재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손님들을 주인 없이 내버려 두는 것은 루시우스 답지 않았고, 또 그 뜻은 드레이코가 자신의 잘못을 아직 인정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바쁜 걸음에 거칠어진 숨결을 문 앞에서 몰아 쉬고 천천히 문을 열었다. 벽난로 앞, 안락의자에 몸을 뉘인 지쳐보이는 듯한 루시우스와, 양손을 무릎에 올려놓고 곧은 자세로 소파에 앉아 있는 드레이코를 보고 눈썹을 치켜 올렸다.

나시샤의 도착을 눈치챈 루시우스는 고개를 들어 그의 아내를 바라보았다. 평소와 다른 상황에 질문 가득한 표정으로 천천히 걸음을 루시우스에게 옮기는 나시샤를 보다가, 루시우스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시샤는 그의 급작스러운 움직임에 잠깐 멈춰 섰다가, 그에게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드레이코는 루시우스의 움직임에 고개를 들어 어머니가 들어 오는 것을 보았다. 나시샤가 루시우스에게 거의 닿았을 때, 루시우스의 손이 나시샤의 뺨에 닿았다.

“찰싹”

루시우스의 손에 닿은 뺨이 붉게 물들었고, 나시샤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루시우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걸어 왔던 길을 돌아 거칠게 서재 문을 닫으며 나갔다. 루시우스의 시선이 큰소리를 내며 닫힌 문에서 드레이코에게 향했다.

드레이코는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그제야 깨달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루시우스 앞으로 걸어 왔다. 루시우스 앞에서 눈을 꼭 감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끝내, 루시우스가 원하는 대답을 했다.

“잘못했어요. 아버지.”

“말포이는 여자에게 손들지 않아. 누가 먼저 건, 누가 잘못 했건. 서쪽 도서관. 네가 용서 받을 만큼 충분한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 할 때까지.”

루시우스의 말에 드레이코는 천천히 발걸음을 목적지로 옮겼다. 그리고 어둡게 가라 앉은 먹구름이 비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드레이코의 작은 어깨가 가라 앉는 것을 뒤에서 지켜보던 루시우스는 힘들게 한숨을 삼켰다. 한동안 그렇게 서서 아들이 나간 문을 쳐다보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나시샤의 하얗고 가는 손이 루시우스의 어깨에 닿았다. 루시우스는 스스로가 언제 숙였는지 알 수 없는 고개를 들어 깊은 바다색 눈동자를 만났다. 그녀는 루시우스를 이해하고 있을까. 그녀의 입술이 루시우스의 뺨에 닿고, 그는 몸을 돌려 그녀와 마주 선다. 그녀는 방금 자신의 입술이 닿았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은 말포이와 어울리지 않아요.”

그녀의 말에 잠깐이나마 현실의 무게가 덜어진 것 같았다. 하지만 곧 그를 짓누르는 그의 이름은 그를 더 힘들게만 할 뿐이었다. 한숨 섞인 미소를 지어 보이며 루시우스는 자기 손이 닿았던 그녀의 뺨을 쓰다듬으며 그녀의 허리에 손을 둘렀다. 나시샤는 그의 손바닥에 키스하며 엷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가끔은, 너무 힘들어요. 원하는 만큼, 필요한 만큼 다 주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요.”

“나 역시…. 아버지를 용서 할 수 있을 것 같아….”




햇빛이 따사롭게 비치는 오후, 아서와 빌, 찰리, 론이 밖에 나와 울타리를 고치고 있었다. 고사리 같은 작은 손으로 형을 돕는 론이 마냥 기특하기만 아서는 집중해서 못을 고르는 론의 머리를 흐트렸다. 아서의 손길에 고개를 든 론의 얼굴에 행복한 웃음이 가득했다. 멀리서 프레드와 조지가 간식을 들고 뛰어 왔다. 아서는 쌍둥이에게 손짓하며, 빌과 찰리에게 자신이 있는 곳으로 오라고 손짓했다. 둘은 들고 있던 연장들을 손에서 천천히 내려놓으며 손을 털고 둘은 무슨 이야기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웃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아서는 울타리 밖에 있는 론이 다시 울타리 안으로 들어 올 수 있게 비스듬하게 걸쳐져 있는 나무를 들어 올려 론이 그 곳을 지날 수 있게 해주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울타리에서 멀지 않은 언덕 위에 커다란 나무가 있었다. 햇살이 좋아, 굳이 그늘을 찾을 이유는 없었지만, 꽤 오랜 시간 밖에 일을 하느라 꽤 더웠던 아서는 쌍둥이들 쪽을 향해 손을 휘휘 저으며, 언덕 위를 가리켰다. 쌍둥이는 오던 길을 살짝 틀어 언덕 쪽으로 향했다. 론은 곧 쌍둥이가 있는 쪽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아서는 뒤쪽에 걸어오고 있는 찰리와 빌을 기다리기로 결심하고 연장 통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미 론이 가지런히 정리해둔 연장 통은 아서가 더 이상 손댈 곳이 없었다. 자기 방을 이렇게 깨끗하게만 정리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론의 머리를 스치고, 아서는 점점 가까워지는 빌과 찰리의 목소리에 다시 고개를 들어 언덕에 서있는 나무를 바라 보았다.

아서가 나무 아래 도착했을 때, 쌍둥이들은 근처에 있는 그루터기에 머리를 마주하고 무엇인가를 열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론은 쌍둥이가 들고 온 바구니에서 아직 자기에겐 좀 큰 듯한 담요를 바닥에 깔고 있었다. 어찌나 열심히 했는지, 아서가 그 곳에 도착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뒤쪽에서 느긋하게 따라오던 빌이 담요와 사투하는 론을 보고는 머리를 휘휘 내저으며 론을 도왔다. 빌의 도움에 그제야 머리를 들어 아서와 찰리의 도착을 눈치챈 론은 그들을 향해 크게 웃어 보였다. 아서는 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쌍둥이가 가져온 바구니를 담요 위로 옮겼다.

빌이 쌍둥이를 담요로 끌고 오는 동안 아서는 바구니 안에 내용물을 확인했다. 샌드위치와 우유, 오렌지 주스가 단정하게 담겨 있었다. 안쪽에 있는 컵을 꺼내 들며, 샌드위치를 꺼내 들었다. 간식으로 먹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워 보였지만, 꽤 지쳐있던 아서는 그냥 하나 꺼내 들어 베어 물었다.

옆에 있던 빌 역시, 샌드위치를 하나 꺼내 들어 먹으려는 순간, 찰리가 뺏어 들었다. 빌은 찰리의 팔을 툭 치며 짜증을 내고는 다시 바구니 안에 있는 샌드위치를 꺼내 들었다. 언제 왔는지 쌍둥이도 바구니에서 하나씩 꺼내 들고 먹기 시작했다. 담요를 펼치는데 너무 힘을 쓴 론은 담요위에 축 늘어져 있다가 이내 다들 하나씩 샌드위치를 들고 먹는 것을 보고는 바구니쪽으로 기어왔다.

“어? 없네?”

샌드위치를 먹으며 고쳐 나간 울타리 쪽을 바라보고 있던 아서는 바구니에 약간 묻힌 론의 목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쌍둥이가 바구니 안쪽으로 론의 머리를 집어 넣으며 웃기 시작했다. 론은 쌍둥이의 손을 뿌리치려고 발버둥 치다가 바구니 안쪽으로 머리를 박았다. 안쪽에 들어있던 그릇이 달그락 거리는 소리와 함께 론이 쌍둥이를 향해 소리쳤다.

“하지마!”

아서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면서 아서는 쌍둥이에게 손을 휘휘 내저었다. 쌍둥이는 계속 킬킬 거리며 론의 몸을 누르고 있었다.

“엄마가 네건 일부러 빼고 안 넣은 거야.”

“넌 아까 지니랑 같이 간식 먹었자나! 넌 안 먹어도 돼”

“네가 어디 있는지도 모를걸?”

쌍둥이의 말에 론은 더 화가 났는지 아까 보다 더 크게 소리치며 짜증냈다. 보다 못한 찰리가 프레드? 조지? 쌍둥이들 중 한명을 밀쳐냈다. 보다 못한 빌이 론의 몸을 일으키며 쌍둥이들을 완전히 밀쳐냈다. 똑바로 앉은 론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 올라 있었다. 잔뜩 찡그린 얼굴로 쌍둥이쪽을 쳐다보다가 자리를 박차고 집쪽으로 뛰어갔다. 아서는 달려가는 론을 보다가 다시 쌍둥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정말 그래?”

조지는 어깨를 들썩이며, 프레드를 바라봤다. 프레드의 얼굴에 뭔가를 아는 듯한 미소가 떠오르자, 조지는 참고 있던 웃음을 뱉어 내며 담요 위를 굴렀다. 프레드도 조지를 따라 구르며 웃었다. 상황이 파악되지 않은 아서는 헛기침을 하며 쌍둥이의 어깨를 잡았다. 프레드는 누워서 아까 열심히 바라보고 있던 그루터기 쪽을 향해 손가락질 했다. 그리고 다시 아서의 얼굴을 보았다. 아서는 눈살을 찌푸리며 쌍둥이를 바라보다가, 론이 뛰어간 쪽을 봤다. 이제 막 집에 도착한 론은 문 앞에서 숨을 고르더니 머리를 쓸어 내리며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로 들어서자, 갓 구운 쿠키의 달콤한 냄새가 온 집안을 채우고 있었다. 거실쪽으로 걸어가, 테이블에 놓여있는 바구니 안에 머핀을 하나 집어 들고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귓불과 뺨이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고개를 들어 안락의자에서 몸을 앞 뒤로 천천히 흔들며 책을 보고 있는 퍼시쪽으로 시선을 한번 힐끔 주고는, 털썩 소리를 내며 소파에 주저 앉았다. 그리고 다시 손에 들린 머핀에 집중했다. 부엌에서 들리는 몰리의 목소리에 퍼시가 고개를 들어 론에서 지니로 시선을 옮긴 다음 책을 소파쪽으로 던지며 부엌쪽으로 걸어갔다.

금방 머핀을 다 먹어 치운 론은 테이블 위에 다시 손을 가져가며 지니가 앉아있는 바닥으로 내려 앉았다. 지니는 바쁘게 조각난 것들을 실에 꿰고 있었다. 익숙한 조각들에 론이 지니가 꿰어놓은 줄을 하나 들어 올렸다. 체스의 말 머리가 색깔별로 엇갈려 꿰여 있었다. 말이 놓여야 할 체스보드는 깨어진 다른 조각들로 인해 잔뜩 긁혀 있었다. 이미 많이 낡고 닳은 데다, 작아서 잘 사용하지 않았지만, 론에게 있어 소중한 것이었다. 론에게 처음이라는 경험은, 부모님께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미 형들이 다 했을 테니까. 체스는, 그런 론을 다른 형제와 다르게 만들어 주는 특별한 것이었고, 그리고 그 특별한 것을 함께한 그 체스세트는 론에게 중요했다. 그리고 그게 깨어졌다. 망가졌다. 흩어졌다.

멍하게 꿰어진 줄을 바라보다가, 지니가 고개를 들어 나머지 다 꿰어진 조각들을 들어 올리며 론을 향해 미소 지었다. 지니는 특별했다. 7남매 중 유일한 여자아이, 게다가 막내. 원하는 것, 뭐든지 쉽게 가질 수 있었다. 론은 평범했다. 7남매 중 마지막 아들, 첫째로 태어나거나, 재능 있거나, 똑똑하거나, 재미있거나…, 어느것 하나 그에게 해당되지 않았다. 그는 원하는 것을 가지기 위해 항상 최선을 다해야 했다. 론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들고있던 줄을 바닥에 내려 놓고 천천히 지니의 얼굴과 마주했다. 그렇게 웃는 지니의 얼굴을 얼마나 바라봤을까, 론의 바닷물이 흘렀다.

“찰싹”

한 순간에 사라진 지니의 미소, 론의 행동에 놀란 듯, 빨갛게 물드는 뺨에 손을 가져가 올리며 론을 보았다. 론의 뺨을 타고 흐른 굵은 눈물이 턱을 타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론의 표정은 알기 힘들었다. 참지 못할 만큼 화가 나보였지만,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벌써 후회한다는 눈물이 지니를 더 혼란스럽게 했다. 어린 지니가 이해하기엔 너무 많은 감정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아니, 특별한 지니가 이해하기엔 평범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론을 지니는 이해 할 수 없다.

작지만, 살이 맞닿는 소리에 허겁지겁 거실로 발걸음을 돌린 몰리와 퍼시의 눈에 바닥에 앉아 있는 두 명의 빨간 머리 아이가 보였다. 소녀는 뺨에 손을 댄 채로 얼어 버린 듯 앞에 있는 소년을 바라보았고, 소년은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 할 수 없는지 훌쩍이고 있었다. 거실로 막 들어선 두 사람은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몰리가 바닥에 주저 앉은 아이들에게 다가가기 전에 론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 계단을 서둘러 올라갔다. 계단 위를 울리던 발소리가 방문이 열렸다 닫히는 ‘달칵’ 소리와 함께 온 집안에 정적이 흘렀다.

몰리는 그제야 지니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붉게 물든 뺨. 몰리는 놀라서 지니를 안아 올리며 말했다.

“무슨 일이니? 지니? 론이…?”

몰리의 목소리에 참았던 숨을 돌리며 지니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무언가 대답을 하려고 했지만 곧 울음소리에 묻혔다. 몰리는 지니가 꿰어놓은 조각들과 잔뜩 긁혀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어버린 낡고 작은 어린이용 체스세트를 바라보았다.

밖에서 있던 이야기를 아서로부터 전해들은 몰리는, 쌍둥이들을 야단쳤다. 아이들을 야단칠 때 아서는 항상 아이들의 편이 되어주려고 했지만, 이번 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쌍둥이가 잘못 했다. 몰리와 아서는 놀랐다. 론은 단 한번도 먼저 누군가를 때리거나 괴롭히는 아이가 아니 였는데, 갑자기 밀려드는 아들과의 거리감에 두 사람은 두려워 졌다. 혹시 그들이 론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론의 행동에 놀란 건 아서와 몰리 뿐이 아니었다. 빌과 찰리, 프레드 조지 역시 놀랐다. 론은 평범한 아이였다. 사실 가족 중에 가장 있는 듯 없는 듯 한 아이였다. 먼저 다가와 돕고, 양보할 줄 아는 착한 아이였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나 보다.

그렇게 방 안에 론을 가둔지 딱 하루 만에 지니가 론의 방문 앞에 섰다. 아서와 몰리는 지니를 바라보며 쓴 미소를 지어 줬다. 지니 역시 웃어 보이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몰리는 지팡이를 들어 걸어 잠긴 문을 열었다. 침대 옆 바닥에 굽힌 다리를 가슴쪽으로 바짝 끌어 당겨 쪼그리고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론의 머리가 열린 문소리에 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미 얼굴에 울음이 가득한 지니가 긴장한 모습으로 문 앞에 서 있었고, 그 뒤에 몰리와 아서가 서있었다.

지니는 천천히 발걸음을 론에게로 향했다. 론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론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참고 있던 눈물을 터트렸다. 있는 힘껏 큰소리로 울던 지니가 헐떡이며 숨을 고르더니, 힘들게 입을 열었다. “오빠, 내가 미안해.” 그리고는 다시 얼굴을 론의 어깨에 묻으며 울기 시작했다. 지니의 팔이 론의 어깨에 둘러 졌을 때, 이미 론의 눈에는 눈물이 잔뜩 고여 있었다. 지니의 알아듣기 힘든 하지만 론에게 가장 필요했던 그 말이 론의 감정을 다시 휘저었다. “아니, 내가 미안.” 무릎을 감싸고 있던 손을 들어 작은 동생의 몸에 휘두르고 같이 엉엉 울기 시작했다.

몰리와 아서가 부둥켜 앉아 우는 아이들에게 닿았을 때, 눈물에, 감정에 잠긴 론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그들은 후회했다.

“잘못했어요.”

론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그 방에 있던 사람은 모두 들을 수 있었다. 그의 작은 목소리에 가장 먼저 귀 기울였던 적이 있었던가, 몰리와 아서는 후회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그 다짐이 얼마나 갈지는 자신 없었지만, 그들은 다짐했다.

Presence

손이 젖는다. 손이 핏물에 젖는다. 그가 차가운 바닥으로 쓰러진다. 새하얗게 질려버린 창백한 얼굴, 희미한 불빛아래 더 밝은 머리카락. 말포이.

드레이코 말포이.

의식 없이 축 늘어진 몸을 끌어 당겨 안았다. 몸을 낮추고 주변을 살핀다. 바람소리, 수풀이 스치는 소리, 화염이 타는 소리, 사람들의 비명소리.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 사람이 있다. 살갗을 파고드는 명백한 인기척, 자신감에 가득찬 그 인기척에 몸을 더 움츠렸다. 들고있던 지팡이를 굳게 쥐고, 눈을 감으며 온전히 청각에만 집중했다. 누군가의 발이 차가운 진흙바닥에 닿아 만들어내는 철벅거리는 소리가 충분히 가까워 졌을 때, 론은 쥐고있던 지팡이를 더욱 세게 움켜쥔 뒤, 그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소리쳤다.

“스투페파이!”

주문이 그 사람에 닿기 전에, 론은 쓰러진 말포이를 어깨에 들어 메고 달리기 시작했다. 뒤쪽에서 들리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아니 알고 있지만, 알고 싶지 않은 저주들이 계속해서 외쳐졌고, 그 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론은 쉬지 않고 달렸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을 때까지 달렸다.

주변은 어느새 어두워졌다. 희미하게 보이던 화염의 꼬리도, 갈대도 없었다. 높게 솟은 나무들 사이로 가끔 비추는 달빛뿐이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려놓은 정신을 잃은 그 사람을 보았다. 죽은 사람처럼 아무런 표정이 없는, 고요하고 적막한 이 숲과 기분 나쁘게 잘 어울리는 말포이. 거칠게 몰아 쉬어지는 내 숨소리 이외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가슴을 뚫고 나올듯한 빠른 심장박동이 천천히 원래의 속도를 찾고, 숨을 고르고 나자, 천천히 뛰는 나의 심장소리사이로 말포이의 빠른 심장소리가 들렸다.

말포이를 들쳐 맸던 어깨가 젖었다. 손끝에 묻어나는 붉은 갈색 핏물. 적갈색 피.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내는 오직 단 하나의 소리. 일정한 간격으로 빠르게 뛰는 심장소리. 몸을 옮겨 말포이쪽으로 다가갔다. 망토를 벗겨냈다. 피에 젖은 망토가 찰박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가 입고있는 검은색 로브 역시, 검은색이 아니었으면 온통 적갈색이겠지. 겉옷을 조심스럽게 벗겨냈다. 손에 꽉 쥐어진 지팡이를 빼내어 뒷주머니에 넣었다. 벗겨내진 로브 안에 상처를 입은 왼쪽 어깨부터 퍼진 핏물이 가슴쪽까지 번져 흰색 셔츠를 물들이고 있었다. 셔츠를 상처부위에서 떼어내고, 있는 힘껏 상처부위를 압박했다. 무거운 숨이 말포이의 입을 빠져 나오고, 말포이의 온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누워있는 말포이 위로 몸을 옮기며, 그가 움직이지 않게 고정하고 상처부위를 압박했다. 지팡이를 들어 간단한 응급처치 주문과 혈액생성을 촉진하는 주문을 외웠다.

계속해서 떨리는 그의 몸을 고정하기 위해 한동안 그렇게 말포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손을 떼며 상처를 보았다. 상처가 치료되기 시작했고, 그의 떨림도 덜해졌다. 셔츠 사이로 들어 난 그는 야위었다. 말랐다. 상처를 떠난 론의 손이 천천히 말포이의 가슴쪽으로 움직였다. 천천히 위아래로 움직이는 살아있는, 숨쉬고 있는 그의 가슴아래로 튀어나온 갈비뼈가 느껴졌다. 얇은 셔츠 위로 느껴지는 그의 메마른 몸. 차가운 몸.

그가 숨을 쉬고 있다는 것, 살아 있다는 것. 너무나도 분명하고 확실한데, 나는 왜 자꾸 확인하고 싶은 걸까? 천천히 고개를 숙여 그의 가슴에 귀를 가져갔다. 일정한 간격으로 빠르게 뛰는 심장소리. 고요한 이 숲에, 들리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만들어 내는 너의 심장소리. 몸을 더 가까이 가져간다. 심장소리, 다른 사람이 내는 심장소리, 살아있는 사람의 심장소리, 아무리 당겨 안아도 희미한 너의 심장소리. 더 강하게, 더 힘차게 뛰어봐.

바닥에 쓰러진 말포이의 몸을 붙잡고 얼마나 있었을까, 따뜻해진 말포이의 온기에 모든 상황이 갑자기 현실을 채웠다. 몸을 돌려 말포이 옆에 누웠다. 차갑게 불어오는 바람에 숲이 진동한다. 나뭇잎이 스쳐서 만들어내는 날이 선 거친 소리가 우리의 심장소리를 덮는다. 말포이와 나의 심장소리를 덮는다.

언제쯤 끝이 날까. 거울 속에 알 수 없는 푸른 눈동자의 무표정한 빨간 머리 남자가 나를 마주한다. 거울 속에 이 남자는 누구일까?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너무나도 간단한 이 규칙, 쉽고 간단한데 나는 이해하고 싶지 않다. 망설인다. 어쩌면 이해 했는지도 모른다. 혼란스럽다. 모든 상황은 너무나도 확실해서 혼란스러울 수 없는데, 감정은 그 혼란을 넘지 못한다.

무뎌진다. 감정에 무뎌진다. 누군가의 죽음이 더 이상 예전만큼 슬프지 않다. 사람들은 모두 그를 잊는다. 쉽게 잊는다. 그 누군가가 왜 죽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잊혀진다. 그 사실을 아는 모든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 한다. 살아 있지 않으면 의미가 없으니까. 죽어간 이름없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한 사람이 될 테니까. 살아 남기 위해 감정에 무뎌진다.

거울 속의 남자의 손이 주근깨 가득한 가슴위로 옮겨지고, 심장이 있는 부근에서 손바닥을 댄다. 손바닥 사이로 느껴지는 심장소리. 눈을 감고 그 소리에 집중한다. 살아 있다. 살아 남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거울 앞에 서있는 감정 없는 푸른 눈동자를 만난다. 낮선 눈동자를 만난다.

Jealousy

기숙사 문을 차고 들어오며 얼굴부터 침대에 묻어버린 론의 주먹이 침대 위를 두드렸다. 화를 참지 못하겠다는 듯, 으르렁 거리는 소리를 내며 침대시트에 그 소리가 덜어진 신음을 뱉어냈다. 무엇에 대한 분노일까? 그는 특별하지 않았다. 오히려 평범했다.

가족 중에 첫째로 태어나거나, 재능 있거나, 똑똑하거나, 재미있거나, 혹은 제일 막내이거나. 그 어느것 하나 그에게 해당되는 것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는 그냥 또 한명의 빨간머리, 위즐리.

특별히 선택 받거나, 남들과 다르게 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살아남은 소년, 죽음의 저주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소년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된 다는 것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흥미로웠다. 가끔은 위험하고, 가끔은 두렵기도 했지만 론이 그 소년과 함께 하는 일은 가족 중 누구 하나 경험해 본적 없는 일이었으며, 그래서 론을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단 한가지의 이유였다. 사람들의 관심은 그 소년과 함께 론에게도 나누어졌다. 남들이 모르는 비밀을 그 소년과 공유한다는 것은 그가 다른 사람과 다르다고 느끼게 해주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불의 잔에서 해리포터의 이름이 호명되었을 때, 해리포터의 초록색 눈동자는 덤블도어를 향해있었다. 헤르미온느의 손에 밀쳐져 불의 잔쪽으로 걸어가는 그의 발걸음은 주저하며 망설였다. 선택된 사람. 특별한 사람. 살아남은 소년. 연회장 안이 웅성거림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누군가가 소년을 향해 속임수를 썼다고 소리쳤다. 누군가는 그에게 자격이 없다며 욕설을 퍼부었다. 하지만 대다수는 그라서, 그이기 때문에 수긍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 화가 나는 것 같았다. 쏟아지는 관심의 중심에 항상 서있는 그는 특별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런 특별한 사람의 가장 친구라고 생각했던 론은 그 순간부터 평범해졌다. 그저 또한 명의 빨간머리, 위즐리.

침대 옆에 난 작은 창가 옆에 잠옷으로 갈아입은 론이 어두워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머리를 채우는 흐릿한 생각을 선명하게 하고 싶었지만,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캄캄해진 밤하늘에 조각구름 몇 개, 그리고 달. 달 옆에 뜨는 별은 아무리 밝아도 달을 이길 수 없다. 특별한 소년의 옆에 있는 그 역시, 특별한 소년을 이길 수 없다. 아무리 밝아도 아무도 몰라줄 테지, 아무리 밝아도 그 별만 바라봐 주는 사람은 없겠지.

해리가 기숙사 방안으로 바쁘게 들어왔다. 빠르게 잠옷으로 갈아 입고는 침대위로 뛰어 들었다. 신경질 적으로 머리를 쓸어 내렸다. 그의 손가락 사이로 보이는 번개모양의 상처가 오늘따라 더 붉고 깊어보였다.

론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침대로 향했다. 머리를 맴돌던 생각들이 희미해지다 못해 산산이 흩어지는 듯 했다. 두 눈을 한번 꽉 감았다가 다시 뜨며, 해리를 쳐다보았다.

“어떻게 한 거야?” 생각이 말이 되어 뱉어졌다. 론은 아직도 그가 그 소년에게 특별하다고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혹은 그에게 만큼은 뭔가 말해 줄 것이라고 믿었는지도 모르겠다. 해리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침대에 천천히 앉았다. 해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론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얼굴 위로 이불을 뒤집어 쓰며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다시 이불을 아래로 내리며 론을 쳐다봤다.

“출전자 대기실부터 그리핀도르 기숙사까지 올라오면서 사람들이 내내 그 질문만 해댔어. 너도 정말 내가 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내가 한 게 아니야! 대체 내가 왜 그런 짓을 하겠어?”

흩어졌던 생각이 다시 하나로 모여 점점 선명해 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의도했던 선명함이 아니었다. 점점 얼룩지고 더러운 생각이 머리 안쪽에 차고 흘러 넘쳐 론의 입 밖으로 흘러 나왔다. “그래, 그렇겠지. 네가 한 게 아니겠지.”

론의 대답에 해리는 이불을 걷어차고는 론의 앞에 섰다.

“론! 내가 왜 이런 짓을 하겠어?” 화가 난 해리의 목소리에 론은 방금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해리를 믿어야 된다는 것, 그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지만, 얼룩진 선명함이 그의 감정을 찌르고 있었다. “내가 알았으면 물었겠어?” 해리의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보며, 이미 말해진 진실을 거짓으로 치부하고 자신이 듣고 싶어 하는,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원했다.

“내가 한 게 아니야! 애초에 원하지도 않았어!”

“그럼, 그만 둬!” 론은 스스로의 목소리에 움찔했다.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큰 소리가 되어 입 밖을 떠난 그 말들이 기숙사에 있던 다른 사람들의 시선까지 샀다. 론의 말에 대답을 망설이는 해리의 모습에 그의 감정이 얼룩졌다. “위대한 해리 포터. 살아남은 소년…”

“닥쳐.”

론의 말은 해리의 목소리에 끝마쳐지지 못하고 입안에 머물렀다. 몸을 거칠게 돌아선 해리는 ‘털썩’ 소리와 함께 침대 위로 떨어졌다. 그리고는 침대 주변에 커튼을 쳤다. 론은 방금 전에 그의 입 밖을 떠난 그 말들을 벌써 후회하고 있었다. 더 이야기 하고 싶었지만, 살아남은 소년은 그렇지 않은 듯 했다. 그의 행동에 후회가 분노로 바뀌었다. 양 옆에 힘없이 축 늘어져 있던 손에 힘을 주어 주먹을 쥐고 침대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휴게실로 향했다.

휴게실 안에는 아직 몇몇의 사람들이 서로 모여 곧 벌어질 트리위자드 경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프레드와 조지가 벽난로 바로 앞에 앉아 사람들에게 내기를 권하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봤지만, 제일 따뜻한 벽난로 앞은 제일 붐볐다. 멀지 않은 곳에 안락의자에 몸을 던지며 쌍둥이가 있는 쪽을 보았다. 프레드의 시선이 론으로 향했다.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론이 앉은 안락의자의 팔걸이에 몸을 기대며 론에게 물었다.

“베이비로니, 여기서 뭐 하는 겐가?”

“제발 그렇게 부르지 좀 마!”

론의 시큰둥한 반응에 프레드는 론의 얼굴을 한번 살피더니 몸을 숙여 론의 귓가에 속삭였다. “어떻게 한 거래?” 그의 질문에 눈살을 찌푸리며 시선을 조지 쪽으로 옮겼다. 분명히 프레드가 뭘 물어봤을지 아는듯한 표정으로 론에게 대답을 재촉하는 손짓을 보냈다. 무슨 뜻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해리포터의 가장 친한 친구이기 때문에 쌍둥이는 그가 분명히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했을 테고, 그 사실이 론을 더 화나게 만들었다.

“내가 어떻게 알아!” 론의 짜증 섞인 대답에 프레드의 시선이 조지를 향했다.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이 사라지고 놀라는 듯한 표정 이었다. “뭐야? 해리가 너한테 말 안 해줬어?” 프레드의 말이 론의 마음을 베어냈다. 얼굴을 손에 묻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가슴속에 있던 무언가가 아래로 뚝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무언가가 있던 자리가 얼룩진 감정으로 채워졌다.


자신에게 화가 났다.

왜 특별하게 태어나지 않았을까?

첫째이거나, 가장 똑똑하거나, 가장 능력 있거나, 가장 재미있거나, 아니면 막내이거나.

그냥 또 한명의 위즐리. 그리고 지금은 살아남은 소년의 그림자.

천천히 성밖을 걸어 나오며, 론은 생각했다. 처음 해리를 만났을 때, 그는 그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과 같이 평범한 친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언제부터 론의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한 걸까. 언제부터 해리와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을까. 다른 친구들이 모르는 비밀을 함께 공유하고 모험하는 동안 어쩌면 론은 처음에 먹었던 마음과 다르게 해리에게 특별해지고 싶었던 것은 아닐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했다. 아니면 특별했다고 생각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얼마나 걸었을까, 검은 호수 근처에 다다라서야 성과 꽤 멀어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론은 급히 성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마치 성안이 텅 비어버린 것 같은 고요함. 모두들 트리위저드 경기를 보기위해 성안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얼마쯤 걸었을까, 연회장쪽 복도 끝에 다 닿았을 때, 지하로 가는 길목쪽에서 사람이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Mais, Père!
“하지만, 아버지!”

Faire taire. Ce que vous dites est absurde. Il n'a pas été….
“다물어. 말도 안 되는 소리 마라. 그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들은 분명히 프랑스어로 대화하고 있었다. 조금 낯익은 목소리였지만, 프랑스어의 부드러운 발음에 어울리지 않는 성난 목소리가 구분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좀더 가까이 다가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듣고 싶어서 몸을 앞쪽으로 기울이다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그렇게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주변이 워낙 조용해서 인지 평소보다 훨씬 크게 느껴지는 론의 발자국 소리에 경기가 벌어지고 있는 곳에서 나는 희미한 소리와 무거운 침묵이 주변을 감쌌다.

Nous n'aurons pas de conversation avec ce sujet à nouveau. À plus tard.
“더 이상 이 이야기는 너와 논의할 일이 아니다. 그럼.”

굵은 남자의 목소리가 나지막이 속삭이더니 발자국 소리와 함께 점점 멀어졌다.

벽에 기대서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이 회랑을 떠나기를 기다렸다. 갑자기 터져 나온 환호성에 경기가 열리는 쪽을 한번 힐끔 보고는 론은 발길을 돌렸다. 딱히 갈만한 곳도 없었다. 혼자 있을 만한 곳을 찾고 싶을 뿐이었다.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지금 론이 화가 난 대상이 해리인지, 아니면 자기 스스로 인지를 알고 싶었다. 가능하다면 누군가가 대신 대답해주기를 바랬다. 바닥을 보며 머리를 힘차게 한번 흔들었다. 그렇게 하면 생각이 정리 될 것 같았다. 코너를 돌아 아까 목소리가 들려왔던 회랑을 바라보았다. 금발에 검은 옷을 입고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누군가가 등을 지고 서 있었다.

그가 지금 보고 있는 쪽이, 대화를 했던 다른 사람이 나가는 쪽이었을까. 이미 그 사람은 복도를 떠나 텅 비어있는, 그가 지났을 길을 향해 그렇게 서 있었다. 마치 계속 그렇게 쳐다보고 있으면 다시 그 사람이 돌아 왔으면 좋겠다는 듯이, 한껏 긴장되어 있던 어깨가 아래쪽으로 축 쳐지면서 그의 고개가 떨구어졌다. 다가가면 깨 질 것 같은 그의 형체, 나지막한 목소리, 충분히 누군지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내가 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내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Merde, merde. Merde!! Toujours que, Potter!
“젠장, 젠장. 젠장!! 항상 포터만!”

말포이.

드레이코 말포이.

그의 손이 그의 머리를 감쌌고 살짝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평소 같았으면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았을 론이지만, 오늘은, 오늘 론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해리와 함께 했던 지는 4년, 가족보다 더 신뢰하고, 형제보다 더 사랑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론에게만은 모든 일을 털어 놓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선택 받은 특별한 사람의 특별한 친구이고 싶었다. 그것 말고는 론이 특별해 질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더욱 진심을 다 했다. 해리에게 만큼은 특별해 지고 싶어서. 그런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론이 느끼는 이런 배신감, 그리고 서운함. 말포이는 이해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천천히 회랑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말포이가 뒤로 돌았다. 그의 눈이 붉게 변해 있었지만, 론은 무시하기로 결정했다. 묽은 회색, 오늘 날씨처럼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 낼 것 같은 회색. 언제나 무감각하던 네 눈동자. 네게도 감정이 있긴 하구나. 항상 화난 눈이었는데. 오늘은 슬퍼보여.

“위즐리.”

그의 목소리에 론은 가던 길을 멈추고 말포이를 돌아봤다.

“말포이.”

무엇인가 말을 꺼내려다 다시 혀끝에서 삼키고 그는 내가 걸어가고 있던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회랑 끝에 그의 그림자가 머물다 사라질 때까지 말포이가 간 길을 멍하니 보고 서 있었다. 론은 슬퍼했던 걸까? 해리가 나에게 말해주지 않아서? 아니, 단지 질투 했던 것 뿐이다. 내가 선택 받거나 특별하지 않다는 사실에 내 스스로에게 화가 나서 해리를 질투 했던 것 뿐이었다. 그리고 그 화풀이를 해리에게 했다. 모두 론의 잘못 이었다. 론은 첫번째 경기가 끝나면 해리에게 사과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그리핀도르 탑으로 향했다.

그리고 말포이가 복도에서 했던 대화를 생각했다. 그가 대화를 나누고 있던 상대방에게 ‘아버지’라고 했다. 루시우스. 루시우스가 이번 일에 개입 된 것이라면 해리가 트리위저드 경기에 나가게 된 것은 어쩌면, 정말 해리가 말 한대로, 해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질투에 눈이 멀어 진실을 외면한 자신의 현재상황에 코웃음이 쳐졌다. 어서 빨리 경기가 끝나서 불편한 이 상황을 끝내고 싶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그냥 친구가 되자고. 특별한 친구가 아닌 그냥 친구. 언제든지 옆에 서 있어 줄 수 있는 그냥 친구.

언젠가 론 스스로가 온전히 혼자만의 힘으로 누군가에게 특별해지는 날이 올 거라고 희망하면서.

Masquerade

칠 흙같이 어두운 벌판. 바람에 흩어지는 갈대들. 스치는 갈대 소리에 묻혀 진흙에 묻혀 둔탁해지는 발소리들. 이내 누군가의 악마의 화염으로 벌판은 이곳 저곳이 붉게 물들며 환해졌다. 여기저기서 용서 받지 못할 저주들이 쏟아졌고, 누가 적인지 누가 아군인지 분간하지 못한 채 그 안에 갇힌 사람들은 하나 둘씩 그 화염의 열기에 미쳐가는 듯 했다.

그레이 백의 거친 포효가 벌판을 울리고, 고통의 비명과 신음소리가 들려 왔다. 하지만 여전이 바람이 만들어 내는 갈대들의 스치는 소리에, 화염이 수풀을 먹어치우는 소리에, 그 누구의 위치도 정확히 할 수 없었다. 어느 순간 자기의 무리와 떨어진 드레이코는 정신없이 화염의 반대방향으로 달리고 있었다. 그 곳이 어느 쪽인지 볼 여유 조차 없었다. 뒤 쪽에서 들리는 언젠가 한번쯤 들었을 법한 익숙한 목소리의 날카로운 비명소리도 바람소리와 갈대가 만들어내는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는다고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되뇌며 어서 빨리 그 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갈대 숲을 헤치고 있었다.


“드레이코! 네가 하지 않으면, 네가 당하게 될 거야.”

날카로운 목소리에 드레이코의 지팡이를 쥐고 있는 손이 주체할 수 없이 떨렸다. 떨리는 지팡이를 양손으로 부여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죽음의 저주를 외쳤다. 그의 앞에서 삶을 구걸하던 방금 전까지 살아있던 이름 모를 그 누군가가 드레이코의 손에 차가운 바닥에 너부러졌다.

뒤쪽에서 망설이는 드레이코에게 야유 하던 죽음을 먹는 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일어났고, 그녀의 차가운 눈초리에 주변이 조용해졌다. 벨라트릭스는 천천히 드레이코에게 다가와 어린아이에게 칭찬 하듯이 드레이코의 뺨을 살짝 두드리며 미소를 지었다. 미소를 짖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드레이코는 이내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 달리기 시작했다. 뒤쪽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다른 죽음을 먹는 자들의 비웃음 소리가 귓가에 들리지 않을 때까지, 숨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더 이상 숨쉬기가 힘들어 질 때까지 온 힘을 다해 달렸다.

오늘 그의 손에 죽은 그 사람은 누구 였을까. 그가 죽었다는 사실을 그 가족은 알까. 그가 누구의 편이 였을까.

힘 풀려버린 다리에 아무렇게나 주저 않은 채로, 살기 위해 숨을 쉬기 위해 헛기침을 하며 숨을 고르는 드레이코의 머리 속에 방금 자기가 죽인 사람의 절망적인 표정을 생각했다.

‘이대로 숨쉬지 않으면 죽을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면서 본능적으로 숨을 고르기 위해 헛기침을 하는 자신의 모습에 역겹다는 듯이 비웃기 시작했다. 한참동안 그 자리에 앉아 헐떡대며 자신을 비웃었던 그의 웃음소리가 울부짖음이 되었다. 꽉 쥐어진 주먹으로 땅을 치며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소리를 질러대며 그렇게 울었다.

누구에 대한 분노일까. 누구의 잘못일까.

전투는 런던을 비롯한 영국 각지에서 벌어졌다. 주문을 막아준다는 말도 안 되는 물건들이 암시장에서 거래 되었고, 한때 그 누구도 그 아름다움과 웅장함에 대해 의심 같지 않았을 말포이 저택은 죽음을 먹는 자들의 의해 점점 빛을 바래갔고, 지하 던전에서 들려오는 비명에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렇게 드레이코가 집이라고 여겼던, 평생을 살았던 말포이 저택은 더 이상 있고싶지 않은 끔찍한 곳으로 변해갔다.

저택 서쪽의 가족 도서관 안에 자신을 가둔 채로 삶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죽음을 먹는 자 그 누구도 드레이코를 찾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에게 이미 말포이라는 이름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저 다크로드. 다크로드가 그들에게 줄 명예와 영원한 삶, 오직 그것만이 그들의 관심사였다. 어째서 의심하지 않을까. 다크로드가 승리를 거머쥐고 세상의 꼭대기에 섰을 때, 그가 약속했던 것들을 줄 것이라는 믿음에 왜 의심하지 않을까. 창 문턱에 자신의 몸을 기대며 바깥쪽 하늘을 쳐다봤다. 먹구름에 어두워진 하늘 사이로 중간중간 밝은 하늘이 보였다. 하지만 햇살이 뚫기에는 너무 두꺼웠을까, 다시 두터운 구름들 사이로 사라진다.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떨구며 손을 보았다. 살짝 드러난 손목 끝으로 뱀의 머리 끝이 보였다. 소매를 걷어 죽음을 먹는 자들의 표식을 보았다. 살갗 위에 새겨진 해골과 뱀의 눈이 자신을 감시하는 것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두려웠다. 잃을 까봐 두려웠다. 드레이코는 자신의 선택에 부모님이나 그 어떤 것도 개입하지 못할 것이라고 자신했었다. 그런 그가 부모님께 사랑한다는 말에 단 한번도 마음을 담지 않았던 그가, 그들의 자신에 대한 사랑에 대한 의심과 증오로 절대 개의치 않으리라고 자신했던 그가, 그들을 잃을까 봐 두려웠다. 그에게 남은 건 그들 뿐이었다. 그가 자랑스러워 했던 집안의 명예, 다크로드의 존재와 함께 산산이 흩어졌다. 그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이제 더 이상 의미 없어진 죽음을 먹는 자들의 표식과 매일 밤 소리 없는 눈물로 밤을 지새우는 드레이코 말고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앞으로 오지 않을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현실을 더욱 참을 수 없게 만드는 그의 어머니.

“루시우스가 돌아오면 글래드래그스에 가서 멋진 옷을 맞출 거란다, 너희 아버지는 나에게 항상 금색이 잘 어울린다고 하셨어. 내가 좋아하는 색은 연보라 색이긴 하지만 그래도 난 그가 나에게 어울린다고 했던 색을 입는 게 더 좋단다. 그리고 파티를 하는 거야. 너도 알다시피 외가의 친척 중 대다수는 영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살고 있으니, 초청을 하면 모두들 즐겁게 올 거야. 아니, 우리가 그곳으로 가도 좋을 거야. 한동안 너무 영국 안에만 있었던 것 같구나. 네가 어릴 적에 프랑스에 있는 바닷가 근처 별장에서 여름을 보내는걸 정말 좋아했는데, 혹시 기억하고 있니?….”

“드레이코! 다크로드께서 집안에 필요 없는 물건들이 너무 많다고 하시니, 창고 안으로 좀 치웠으면 좋겠구나.”

아버지가 일하시던 서재,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안락의자. 어머니가 시간을 보내시던 남쪽 선룸의 테이블,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연회실의 피아노. 현관 홀의 샹들리에는 빛을 잃었고, 짜증날 만큼 적막했던 회랑에 울려 퍼지는 비웃음과 찢어질 듯한 쾌락의 웃음소리, 그리고 삶을 구걸하는 자들의 우는 소리. 삶을 위해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들의 신음소리.

“너도 네 아버지처럼 망설이고 질질 끌다간 똑 같은 꼴을 면치 못할걸? 킬킬.”

접대실 맨 끝 중앙에 앉은 다크로드. 그리고 그 오른쪽 4번째 의자에 앉아있는 나.

그리고, 시작된 죽음을 먹는 자들을 위한 가면무도회.

하나 둘 들고있던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다. 자신을 숨기지 않고서는 온전히 미칠 수 없으니까. 이렇게 우리들의 축제가 시작된다.


한참쯤 뒤 돌아 보지 않고 달렸을까, 사람이 만들어 내는 소리가 희미해졌다. 잠깐 무거운 숨을 몰아 쉬며 숨을 고르고 주변을 살펴 봤다. 그리고 이내 뒤쪽에서 자신이 아닌, 혹은 바람이나 화염이 아닌 그 무언가가 움직여 갈대를 스치는 소리에 자신의 몸을 낮췄다. 몰아 쉬던 숨을 잡아두고, 지팡이를 꽉 쥐었다. 지팡이를 겨누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막 주문을 외우려던 순간.

저 멀리 서 바랜 불빛에 드레이코가 알고 있었던 색과 조금 다른 붉은색 머리카락의 남자가, 갑작스러운 드레이코의 존재에 놀란 듯 바쁜 발걸음을 급하게 멈춰 섰다. 만약 드레이코의 앞에 서있던 남자가 망설이지 않았다면, 혹은 붉은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드레이코는 용서 받지 못할 주문을 사용하는데, 주저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윽고 누군가의 지팡이 끝에서 붉은 색 불꽃 만들어 졌고, 곧 드레이코의 어깨에 맞았다. 어깨를 파고 드는 고통, 목을 벗어나려는 신음을 볼 안쪽의 살을 씹으며 삼키고, 붉은 머리의 어깨를 잡아당겨 몸을 낮췄다. 뒤쪽에서 가면을 쓴 사람 하나가 지팡이를 앞으로 드리우며 계속 가까워 졌다. 드레이코는 지팡이를 잡고 있던 손을 바꿔 다가오는 그 사람에게 죽음의 저주를 쏘았고, 가면 속에 숨겨진 그의 눈빛은 저주가 그의 심장을 관통할 때 조차 알 수 없는 광기가 빛을 바랐다.

차가운 진흙바닥에 철벅거리는 소리와 함께 영혼을 잃은 살덩이가 내 동그라졌다.

붉은 머리는 둔탁하게 바닥에 닿는 소리와 함께 나의 움켜쥠을 뿌리쳤다, 그리고 자신의 지팡이를 더욱 세게 붙들었다. 그리고 나의 눈을 바라보았다.

론.

론 위즐리.

제발 다시는 만나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는데, 내 선택에 후회하지 않도록, 제발.. 제발 다시는 만나지 않게 해 달라고 빌었는데…. 널 다시 보면, 지금까지 붙잡고 있던 이 모든 것을 그냥 놓아 버릴 것만 같아서, 주저하지 않을 같아서. 명예, 권력, 가족 이런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될 것 같아서. 여기까지 끌고 온 나 자신을 놓아 버릴 것만 같아서….

그가 나사이의 간격이 조금씩 벌렸다. 적막함. 텅 빔. 공허함. 반경 몇 미터 안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은 오롯이 바람과 화염이 만들어 내는 소리가 허전함을 메우려는 듯 했다. 얼마나 그렇게 서로를 보고 있었을까, 이내 그의 손이 내 가면에 닿는다. 그제야 어깨의 통증이 파고든다. 항상 현실은 이렇게 아프지.

그의 손 끝에서 벗겨진 나의 가면이 바닥에 닿고, 그의 어둠에도 빛을 바라는 너의 푸른 눈동자가 혼란스러움이 요동 친다. 참아보려고 했지만, 참지 못한 내 고통은 곧 목소리가 되어 내 입술을 떠나고, 짧은 신음소리와 무거운 숨소리에 너의 시선은 내 어깨로 향한다. 검은색 망토에 가려진 보이지 않는 저주의 상처가 내 의식을 먹어 치우려고 한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아일랜드 외곽으로 이동이 가능한 포트키를 손에 쥔다.

깊게 숨을 들이 마시고 너에게 마주선다. 주머니에서 포트키를 꺼내어 너에게 보인다.

Il s'agit de la Portoloin.
“포트키야.”

그는 그 자리에서 순간 얼었다. 무슨 뜻인지 의미를 찾으려는 듯. 너는 알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얼마나 더 버텨낼 수 있을까. 죽음을 먹는 자들의 본거지 까지 순간이동하기 위해선 마지막 남은 내 힘을 모두 모아야 하지만, 너를 여기에 남겨두고 갈 수는 없어.

Il vous mènera d'ici.
“여기서 벗어나게 해줄 거야.”

목적지에 대해 설명하려고 했지만, 포트키를 들고 있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얼어 있는 그의 손을 잡아당겨 손바닥 위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 지팡이를 든 손을 옮기려는 순간 그의 손이 내 손목을 잡았다.

Vous avez été blessé.
“너 다쳤어.”

또렷한 너의 목소리, 그날, 드레이코가 너에게서 사라진 날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너는 분명히 나에게 실망하고 화내야 하는데, 한다는 말이 고작 이거라니. 위즐리답네. 어차피 너의 기억 속에 나는 그냥 말포이일 뿐이니까.

Nous n'avons pas le temps pour cette.
“이럴 시간 없어”

너의 손을 뿌리치며 다시 지팡이를 포트키로 가져간다.

나는 살 거야. 나는 살고 싶어. 내가 선택한 것들을 바로잡기 위해 살 거야. 후회를 하더라도 나는 살아 남을 거야. 살아 남아서 네 옆에 설 수는 없겠지만, 멀리 서라도 널 지켜볼 수 있게 난 살아 남을 거야. 살고 싶어. 네가 나를 용서하는 날이 오길 바라며 살 거야. 너를 보면서 살 거야.

급하게 드레이코가 지팡이를 든 손목을 잡으며 론의 다른 쪽 손이 드레이코의 저주가 맞은 어깨를 강하게 잡았다. 갑자기 시야가 어두워지며 온몸이 휘청거리는 것을 느낀 드레이코는 입술을 힘껏 물며 목소리가 입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무거운 숨소리를 뱉어냈다. 점점 흐려져가는 의식을 부여잡으며 있는 힘껏 목소리를 내려고 했지만, 속삭임으로 밖에 나오지 않는 목소리가 바람소리에 묻혔다.

Idiot! quoi pensez-vous!
“멍청이! 무슨 짓이야!”

그렇게 드레이코의 몸이 천천히 힘을 잃어갔다. 저주가 맞은쪽 어깨에서 흘러내린 피가 팔을 따라 손끝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마지막 까지 몸을 세우기 위해 붙잡고 있던 힘이 빠지면서 앞으로 쓰러졌다.

faux, Vous êtes un idiot.
“틀렸어, 네가 멍청이야.”

친숙하고 부드러운 론의 목소리가 드레이코의 귓가를 스치며, 드레이코는 의식을 잃었다.

Wonderland

사람들이 그에게 질문 했다.

"피고인 651980번, 당신은 ..날 ..시 ..분 경 ..에서 용서 받지 못하는 저주를 사용 했습니까?"

그는 우리와 똑같이 살고 싶었을 뿐인데, 어깨가 부서질것 같은 무거운 짐을 혼자 짊어지고, 어둠 속으로 잠길 수 밖에 없었을 뿐인데, 그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알고 싶어 하는 사람도 없다.

그가 했던 일이, 해야만 했던 일이 도마 위에 오르고 그 행동이 아닌 그가 도마 위에서 난도질 당한다. 그가 원했건 원치 않았건 그 죄는 나누어 지지 않고 온전히 그 혼자에게만 지워져 그를 짓누른다. 그의 어깨가 가라 앉는다.

나의 진술은 위선과 불신에 의해 침몰한다. 자기들의 더러운 얼룩을 감추기 위해 씻기지도 않을 것들 위에 또 다른 것을 덧입힌다. 전쟁 중에는 가장 쓸모 없었던, 가슴 제일 아래로 미어뒀던 기만과 가식이 신의와 정의라는 오류로 그들을 덮는다. 왜 그래야 했는지, 왜 그렇게 했는지, 아무도 그에게 묻지 않는다. 그는 전쟁 종범. 가면을 쓴 위선자들이 전가한 책임을 바보처럼 짊어지는 그를 나는 안다.

대체 뭐가 다른가? 지금 그들이 하는 일과, 죽음을 먹는 자들이 했던 일.

가족을 위해, 혹은 스스로를 위해 잘못된 선택을 했던 수많은 평범하고 보통의 사람들이 영웅 같은 굳은 의지와 용기를 발휘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처형된다. 그들은 영웅으로 태어 난 적이 없는데, 그냥 보통의 사람일 뿐인데. 어쩌면 그 영웅이라는 것도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던가?

알고 시작했던가, 전쟁이라는 것 어느 쪽이 옳고 그른지 알고 시작했던가. 몰랐을 뿐이다. 어떻게 파국을 맞이할지 몰랐을 뿐이다. 어느 쪽이 결국 나머지 한쪽을 밟고 일어 설지 몰랐을 뿐이다. 모두 함께 다 몰랐을 뿐이다.

심판 받는 자와 하는 자의 정의는 달라진 지 오래.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바로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을 의심하고 믿지 않는다.

의심하지 않고 믿으면, 그러지 않은 사람들의 화살이 나를 향해 쏟아진다. 두렵다. 내가 지금 신뢰하는 것들이 훗날 저들이 저지르는 일과 다르지 않다면, 나는 나를 어떻게 용서해야 할까?

이상한 나라. 모두들 행복한 가면을 쓰고 썩어 문드러져가는 추악한 죄와 감정을 숨긴다. 전쟁이 끝났다는 단순한 이유로, 그들을 가리고 있는 행복한 가면처럼 행복해질 수 있는 걸까?

몰라보게 수척해진 그, 깔끔하게 차려 입은 옷이 커보였다. 내가 지금 해줄 수 있는 것은 그를 향해 미소 지어 주는 것뿐. 근데 너무 힘이 든다. 얼굴을 찡그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힘이 든다. 그의 흐릿한 눈동자가 나와 만난다. 지쳐서 핏기가 선 그의 눈. 지금 나의 것도 그와 같겠지.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듯, 모든걸 뒤로하고 함께 달아나자는 듯, 흘러 넘치는 감정에 머리 끝까지 잠겨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본다. 그리고 지금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를 향해 미소 지어 주는 것뿐.

그 마저 도 힘이 든다. 어렵다.

나와 그와의 거리, 짐짓 세 걸음 이내. 나와 그와의 감정, 이미 하나.

사람들의 시선에 나와 그, 보이지 않는다.

"피고인 651980번에게 디멘터와의 입맞춤을 선고하는 바입니다."

판사의 목소리가 법정 안을 채우고, 그의 잘못된 선택에 대한 대가는 그의 영혼이 되었다. 정숙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를 일어나 이 곳을 떠난다. 죄인을 이송하는 사람들이 법정 안으로 들어온다. 그의 손에 고랑이 채워지고, 나는 앉아있던 자리를 박차고 너에게로 뛰어 든다.

있는 힘껏 너를 안는다. 네 얼굴이 내 가슴에 묻힌다. 이 온기, 이 감정, 너. 너. 온전히 너. 찰나 같은 이 시간을 영원히 얼리고 싶어.

사람들의 손이 나를 너에게서 떼어내고, 나는 그들을 뿌리치며 너에게 가려고 온 힘을 쏟는다. 너의 묶인 손이 내 손에 닿고, 내 손이 너의 손에 닿는다. 다른 사람에 의해 뿌리쳐진 그 손을 다시 잡기 위해 나는 최대한 내 손을 뻗어 보지만, 너는 이미 너무 멀다. 이게 내가 볼 수 있는 마지막, 영혼이 깃든 온전한 너. 눈 앞을 가리는 묽어 지는 시야, 눈물에 잠긴 너. 사람들의 손을 뿌리치며 계속해서 내 눈에 물기를 닦아 내려 하지만, 너는 이미 내 눈물에 잠겨있다. 흐릿한 너의 얼굴에 피는 작은 미소. 네가 주는 마지막 선물. 너무나도 선명해서 지워 낼 수 없을 것 같은 그가 점점 흐릿해진다.

앞으로 나는 살겠지. 영혼이 없는 네가 있는, 눈물에 잠긴 흐릿한 미소만이 너에 대한 마지막 추억이 된, 살고있지만 그렇지 않은...

네가 없는 이상한나라.

Quidditch

슬리데린 추격꾼이 던진 퀘이플이 파수꾼의 발에 맞고 튕겨져 나갔다. 관중석에 앉아있던 그리핀도르의 환호성이 커졌다. 론은 팔을 높이 들어 올리며, 자신의 선방을 과시했다. 그때, 슬리데린의 몰이꾼이 쳐낸 블러저가 아슬아슬하게 그리핀도르의 추격꾼을 스쳤다. 슬리데린팀의 거친 휘두름에 그리핀도르 선수가 퀘이플을 놓치자 아래쪽에 있던 슬리데린 수색꾼이 퀘이플을 잡아 같은 편에게 넘겨주었다. 그리핀도르의 파수꾼이 날아오는 퀘이플을 막으려고 빗자루를 움직이려고 할 때, 갑자기 하늘에서 무언가가 론을 향해 떨어졌다. 사람이었다. 추락하는 사람이 론의 빗자루를 스쳐 지나가려는 순간 론이 손을 뻗어 팔뚝을 잡았다.

“60 : 30, 슬리데린이 30점 앞서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리핀도르 파수꾼위로 슬리데린 수색꾼이 떨어졌는데요!”

중계를 하고 있던 사람의 커다란 목소리에 론은 정신을 차리고 떨어진 수색꾼을 빗자루 위로 끌어 당겼다. 정신을 잃은 듯 했다. 축 늘어진 몸을 가슴쪽으로 끌어당기며, 고개를 들어 경기상황을 봤다. 퀘이플은 그리핀도르 추격꾼의 손에 있었고, 다른 선수들은 모두 슬리데린 골문 앞으로 날아갔다. 자리를 바로잡고 추락한 사람의 상태를 살폈다. 그의 빗자루는 이미 운동장 아래로 떨어져 있었다. 론은 이대로 경기를 중단해야 할지, 아니면 계속 해야 될지 생각했다. 론의 가슴을 베고 늘어져 있는 사람을 앞으로 밀어내며 등을 두들겼다. 의식 없는 몸이 앞으로 기울어 다시 떨어지기 직전에 론이 망토를 붙잡아 다시 가슴쪽으로 끌어 당겼다. 그리고 이번엔 어깨를 잡고 세게 흔들었다.

“말포이!! 말포이!!”

어깨가 잠깐 들썩이더니, 말포이가 고개를 흔들었다. 마치 금방 잠에서 깨어 난 사람처럼 멍하게 주변을 살펴보고는 기댔던 몸을 곧게 세웠다. 그리고 빗자루를 움켜 쥐며 날아가려는 순간 뒤쪽에 묵직한 것이 느껴진 말포이는 뒤 쪽을 힐끔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고개를 완전히 돌려 어깨너머로 뒤에 있는 사람을 보았다. 빨간 머리가 잔뜩 짜증난 얼굴을 하고는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포이가 론에게 소리쳤다.

“내 빗자루에서 뭐 하는 거야?”

론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포이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30초쯤 그렇게 서로 쳐다보고 있다가, 론의 표정에 혼란스러운 말포이는 론을 떨어트리기 위해 팔꿈치로 론을 밀어냈다. 론이 말포이의 팔꿈치를 잡으며, 손가락을 들어 아래 운동장쪽에 떨어진 그의 빗자루를 가리켰다. 말포이의 시선이 론이 잡은 팔꿈치에서 반대편 손가락 그리고 운동장 바닥 모래에 떨어져 있는 빗자루로 움직였다. 아무리 좋은 빗자루도 하늘에서 주인 없이 떨어지면, 부서지기 마련, 거의 반 토막이 난 빗자루가 바닥에 너부러져 있었다. 론은 손을 흔들어 말포이의 시선을 산 다음 되 물었다.

“너야말로, 빗자루에서 뭐 하는 거야?”

론의 질문에 잠깐 만났던 말포이의 시선은 대답할 가치 없는 질문인냥 코웃음을 치고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봤다. 대다수의 추격꾼과 몰이꾼은 퀘이플을 잡은 크리핀도르 골대 쪽에 모여있었고, 그리핀도르의 수색꾼인 해리가 론을 향해 날아오고있었다.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해리를 발견한 말포이는 론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말포이의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몸을 약간 뒤로 젖힌 론이 말포이를 쳐다봤다. 말포이의 시선이 론을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도 전에, 말포이가 몸을 움직였다.

론의 머리 뒤에 작고 반짝이는 금빛 스니치가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말포이는 빗자루 위로 올라타며, 몸을 완전히 돌렸다. 론과 마주 앉은 말포이는 순식간에 둘 사이의 간격을 좁혔고, 말포이의 머리카락이 론의 뺨을 스치면서, 두 사람의 가슴이 맞닿았다. 갑작스러운 접촉에 깜짝 놀란 론은 그 상태로 얼었고, 말포이는 있는 힘껏 손을 뻗어 스니치를 손에 잡았다.

스니치를 손에 잡는 순간 중심을 잃은 말포이가 론의 목에 팔을 둘렀다. 그리고 흔들림을 감지한 론의 팔이 말포이의 허리를 감쌌다.

“슬리데린의 수색꾼이, 그리핀도르의 파수꾼 품에서 스니치를 잡았습니다! 210:30으로 슬리데린 팀의 승리입니다!”

중계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람들의 시선이 두 람을 향해 쏟아졌다. 그리고 그렇게 서로를 부둥켜 안고 얼어버린 두 사람의 얼굴이 붉어졌다.

As a Father

마법부와 호그와츠 관련 건에 대해 골치 아픈 일이 늘어난 루시우스는 서재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간단하게 서재에서 점심을 한 그가 일에 열중하는 사이, 누군가가 서재 문을 살짝 열고 서재 안으로 들어왔다.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 루시우스는 앞에 놓여있는 서류들을 유심히 살펴보며 어떻게 처리 해야 할까 하는 생각에 집중하려고 했다. 다음주까지 넉넉한 시간이 있음에도 어서 끝내버리고 나시샤나 드레이코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은 마음이 루시우스의 생각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루시우스가 깃펜을 잉크로 가져갔을 때, 책상 끝에 자신과 같은 색의 눈동자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금빛 머리를 한 드레이코가 얼굴을 손에 괴고 깊은 생각을 하는 것 마냥 루시우스를 쳐다봤다. 루시우스의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것을 본 드레이코가 갑자기 질문을 했다.

"순수혈통이 뭐에요?"

"그 어떤 것보다 투명하고 깨끗하며, 순수하기 때문에 그렇지 못한 것보다 더 큰 힘을 갖는 가문을 말한단다. 우리처럼. 그렇기 때문에 그렇지 못한 것 혹은 그러하면서 그렇지 못한 것을 탐하는 순수혈통은 옳지 못한 일이지."

"왜요?"

루시우스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호기심이 가득한 회색 빛 눈동자를 쳐다봤다. 그리고 천천히 들고있는 깃펜을 옮겨 옆에 있던 물이든 유리잔에 깃펜 끝을 담갔다. 유리잔 끝에서 천천히 잉크가 흘러나와 투명했던 물속에 아지랑이를 피우다 이내 흩어졌다.

드레이코는 천천히 잉크가 물속에서 퍼져 투명했던 물이 자신의 눈동자와 비슷한 회색이 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깨끗하고 모든 것을 투영하던 물이 자신의 눈동자 색과 비슷한 색깔을 띄게 되었다. 모든 것을 투영하기만 하는 순수한 투명함보다는 색깔을 갖는 게 더 멋진 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루시우스는 깃펜을 천천히 들어올리며, 드레이코를 쳐다봤다. 천천히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는 아들을 쳐다보며 그는 아들이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했다.

"아름다워요."

드레이코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루시우스는 귀를 의심했다. 투명한 물이 탁한 회색이 되었는데, 드레이코는 그것이 아름답다고 했다. 루시우스는 작은 헛기침으로 아들의 시선을 샀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드레이코, 투명하고 맑은 물이 탁한 회색이 되었는데 어째서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투명한건 싫어요. 모든걸 꿰뚫는 것 같아서 투명한건 싫어요."

루시우스는 드레이코의 말을 곱씹었다. 모든 것을 꿰뚫는 다는 것, 그것이 드레이코가 생각하는 순수함의 정의일까. 들고있던 깃펜을 내려놓고 천천히 어린 아들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한참동안 그렇게 드레이코의 눈을 쳐다보며 루시우스는 고민했다. 이대로 아들의 생각을 열어야 할지, 아니면 말포이의 생각으로 그를 묶어야 할지.

"투명하다는건, 여러가지 색을 가질 수도 있다는 뜻이야."

"하지만 그건 자기 색이 아니잖아요, 남의 색을 빼앗는 거지."

맞는 말이었다. 투명하다는 것, 순수하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 오히려 자신만의 색을 발하는 다른 그 무엇보다 더 교활한 것일지도. 루시우스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어리다 고만 생각했던 드레이코가 자신을 깊게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자랑스러웠고, 언제나 그랬듯이 사랑스러웠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벽난로 앞에 있는 의자로 향했다. 드레이코는 다시 한번 묽은 회색 빛이 된 유리컵을 힐끔 쳐다본 뒤 루시우스의 뒤를 종종걸음으로 따랐다. 커다란 안락의자에 앉아 뒤좇아온 드레이코를 무릎 위에 앉혔다. 오랜만에 갖는 아들과의 시간, 드레이코의 얼굴에 천진난만한 미소가 번졌다. 천천히 드레이코의 등을 쓰다듬으며, 천천히 말했다.

"투명한 물은 투명한 물이기 때문에 특별한 거란다. 너도 봤듯이, 쉽게 다른 색으로 물 들 수 있기 때문에 투명하고 순수한 그 자체로 그것을 유지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야. 그래서 순수한 것 그 자체가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이지."

루시우스의 가슴에 머리를 뉘인 드레이코는 벽난로의 모닥불을 쳐다보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루시우스는 나지막이 어린 아들이 지금 자기가 한 말에 대해 이해하기를 바랐다.

순수혈통이라는 것. 젊은 시절 루시우스 역시 스스로 도 그것이 비약이고 모순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포이라는 가문에 묶여 그것을 수용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실망했었다. 엄격한 아버지 앞에 반항하지 못하는 자신의 나약함이 싫었었다. 아버지의 엄격한 훈육, 강하고 투명해야 하는 말포이. 루시우스도 그런 무섭고 어려운 아버지가 되어야 했다.

오늘 이 밤이 지나고 나면, 루시우스도 더 이상 드레이코에게 다정한 아버지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른 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빨리 훌쩍 자라버린 드레이코의 생각이 앞으로 그가 겪었던 아버지에 대한 경외를 드레이코 또한 겪으리라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얼마나 그렇게 앉아 있었을까, 드레이코의 숨소리가 가지런해졌다. 드레이코의 얼굴위로 떨어진 밝은 금빛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이제 곧 다가올 드레이코의 생일이 지나고 나면, 어린아들은 5살이 된다. 아직 좀 더 뛰어 놀고, 좀 더 어리광을 부려도 되는 나이. 하지만 말포이로써 강해지기 시작해야 하는 나이.

루시우스는 드레이코가 영원히 어린아이로 남기를 몰래 빌었다. 그래서 그가 엄격한 아버지가 되지 않아도 될 수있게, 언제까지나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할 수 있는 아버지로 남을 수 있기를 몰래 빌었다.

The Luncheon

“나시샤, 마법부 오찬모임이 내일이에요.”

“알아요, 루시우스. 드레이코는 어쩌죠?”

마법부에서 연말 오찬모임을 성대하게 열기로 했다. 루시우스는 꼭 참석하리라 약속했고, 그의 부인과 동석할 것이라고 이미 연락을 해놓은 터였다. 하지만, 다른 가족들 역시 오찬모임에 참석하게 되는 바람에, 드레이코를 부탁할 사람이 없어졌다. 물론, 그 모임에 갈 수 없는 친척들이 있었지만, 드레이코를 맡길 만큼 그들을 신뢰하지 않았던 루시우스는 이런저런 가능성을 생각하며 책상 위에 서류들을 훑어 봤다. 루시우스의 손이 닿을 때마다 책상 위는 점점 더 어지러워 지기만 했다. 부산하게 서재에서 서류를 이리저리 챙겨보는 루시우스를 차분하게 바라보고 있던 나시샤가 입을 열었다.

“데려가죠.”

바쁘게 움직이던 루시우스의 손이 공기 중에 멈췄고, 짙은 회색 눈동자가 나시샤의 잔잔한 눈동자를 만났다. 눈살을 찌푸리며 한동안 깊게 생각하던 루시우스는 입가에 작은 미소를 보이며 머리를 흔들었고, 어지러운 책상위로 시선을 돌렸다. 말이 트이고 모든 것이 궁금하기만 하며 뭐든 만져봐야 성이 차는, 여기저기 부산하게 뛰어다니며 이것저것 질문을 던지는 드레이코를 생각할 때마다 평소에 늘 감추었던 미소를 루시우스는 얼굴에서 지워 낼 수 없었다.

“그가 제대로 행동할 수 있을지, 그게 걱정이에요.”

나시샤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는 이제 3살이에요. 제대로 행동하면 그게 더 이상해요.”

나시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루시우스는 더 이상 고민 해봐야 다른 방법이 없을 것 같은 생각에 몸을 의자에 던지며, 일을 시작하기 전보다 훨씬 어지러워진 책상 위와 나시샤를 번갈아보며 크게 미소 지었다. 루시우스는 일에 관련된 서류는 집 요정을 시켜 정리 시키지 않는 것을 잘 아는 나시샤는 그의 시선이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었다. 나시샤가 고개를 들며 루시우스를 아래로 내려다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살쪽 코웃음을 치며, 몸을 돌려 문쪽으로 걸어 나가며 말했다.

“집 요정에게 서재 근처에는 얼씬거리지 말라고 할 테니, 알아서 깨끗이 정리해주세요.”

문쪽을 향하는 나시샤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웃음을 참기 위해 입술을 굳게 다물고 목소리의 떨림이 루시우스에게 들키지 않게 조심하며 문고리에 손을 얹었다. 살짝 책상이 있는 쪽을 쳐다봤다. 루시우스가 고개를 뒤로 떨구며 불평 섞인 낮은 소리를 냈다. 천천히 문을 열며 마지막으로 루시우스와 눈이 마주친 나시샤는 살짝 미소 지으며 서재에서 나오며 문을 뒤에서 닫았다. 잠깐 서재 문에 기대서 얼굴을 뒤덮은 웃음을 지운 후에 발걸음을 드레이코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아서! 난 못 가요! 지니는 어떻게 하고 거길 간단 말이에요?”

“몰리, 그럼 어떻게 해요? 가족 오찬이에요, 당신도 함께 갈 꺼라고 이미 말했다 구요!”

두 사람의 큰소리에 꿈틀거리며 눈을 깜박이던 진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했다. 아이의 표정에 놀란 몰리는 지니를 향해 구구소리를 내며 달래기 시작했다. 몰리는 손으로 지니의 등을 쓰다듬으며, 아서를 쏘아봤다. 점심 오찬에 대해 조금 더 일찍 말해 주었다면, 지니를 누군가에게 부탁할 수도 있었겠지만, 아직 젖먹이인 지니를 몰리는 단 한 순간도 떼어 놓고 싶지 않았다. 6명의 아들 끝에 낳은 하나밖에 없는 딸이었다. 딸은 귀하게 대해야 귀해진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빈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몰리는 내심 그 말을 믿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지니도 데려가면 되잖아요?”

몰리는 믿을수 없다는 듯이 아서를 쳐다봤다. 만약 몰리가 가게 되면, 그건 이 집안 식구들이 모두 그 오찬모임에 참석하게 된다는 뜻이 된다. 바꿔 말하면 빌,찰리,퍼시,프레드,조지 그리고 론, 모두 다 같이 가게 된다는 뜻이다. 몰리는 오찬모임에서 프레드와 조지가 만들어낼 수 있는 사고들을 미리 머리 속으로 세며, 지니의 이마에 키스했다. 그리고 천천히 요람에 누이며 아서의 팔을 붙잡고 방 밖으로 이끌었다. 마당에서 바쁘게 놀고 있는 빌을 큰소리로 힘껏 불러 지니의 요람 옆에 붙여두고는 아서와 함께 거실로 자리를 옮겼다.

“미쳤어요? 위즐리 전부 그 오찬모임에 가자 구요?”

“어차피 비공식적인 자리에요. 그냥 직원끼리 모여서 크리켓하며 점심 먹는 정도일 거라 구요. 그리고 빌과 찰리가 있잖아요. 프레드와 조지는 그 둘이 잘 보살필 거에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몰리는 아서가 말하는 그 ‘비공식적인 자리’가 정말 비공식 적인 자리인지 회의를 가졌다. 막상 갈 생각을 하니 아이들 입힐 옷이며, 자신역시 어떻게 입어야 할지 벌써부터 급하게 생각하는 자신을 보면서, 내일 온 가족의 점심시간 외출을 확신하기 시작했다. 남편의 아이들에 대한 언급으로 몰리는 론이 떠올랐다. 다른 형제들 과는 달리, 조용하고 말썽도 잘 부리지 않았다. 지니와의 터울이 크지 않아서 인지, 몰리는 론에게 거의 신경을 써주지 못했다. 다른 형제들이 론을 잘 돌봤지만, 쌍둥이들에게 항상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인데다, 지니처럼 아직 어려서 걱정이 큰 몰리였다. 퍼시는 워낙 혼자 있거나,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아무리 관심을 쏟아도 퉁명스럽기만 한 퍼시에게 가끔 실망 할 때도 있는 몰리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 형제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 같아 걱정이 컸다.

“퍼시랑 론은요?”

“몰리, 당신도 잘 알잖아요. 그 둘은 언제나 조용하다는 것, 분명히 그 근처에 놀이터나 아니면 아이들이 놀만한 데가 있을 거에요. 내가 계속 지켜보면 되요. 당신은 지니만 잘 보살피면 되요.”

“당신은 애들을 잘 몰라요.”

“걱정 말아요. 그 둘은 내가 잘 돌볼 수 있어요.”


유난히 바쁘게 움직이며 나시샤는 거울 앞을 떠날 수 없었다. 남편이 말한 대로 성대한 오찬모임인지 아닌지 정확하게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 루시우스는 종종 차 마시는 평범한 소모임도 오찬모임이라고 과장해서 말하기를 좋아해서 - 남편 옆에서 다른 사람들 눈에 빛나보이고 싶은 마음을 숨기고 싶지 않았다. 아침 식사 때 루시우스의 크리켓경기에 대한 이야기로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는 그렇게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한 나시샤는 쌀쌀한 날씨에 밖에서 오찬모임으로 드레이코가 혹여 아프지는 않을까 하는 너무 이른 걱정과 루시우스와 드레이코 역시 어떤 복장을 갖춰야 할지를 고민하며 오전 내내 시간을 보냈다.

나시샤가 옷차림과 날씨에 대해 걱정하는 동안 말포이가 남자들은 거실 벽난로 앞에 앉아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초콜릿을 하나씩 풀어봤다. 루시우스의 큰 손이 초콜릿 포장을 벗기기 시작하면 아들의 작고 하얀 손이 초콜릿을 향해 돌진했다. 초콜릿 포장이 채 다 뜯겨지지도 않은 초콜릿을 입 속으로 넣으려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루시우스는 계속해서 번지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리고 오찬모임이 점점 걱정되기 시작했다. 드레이코의 모습에 자기도 모르게 남들에게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이지는 않을까 걱정되기 시작했다. 나시샤가 천천히 거실로 나오며 루시우스에게 손짓했다. 루시우스의 무릎위로 기어 올라오는 드레이코를 가볍게 들어 올리며 끌어 안으며 일어섰다.

천천히 저택 현관 홀을 지나, 이제 막 시작된 찬 겨울, 아직은 바람이 그다지 매섭지 않았다. 따갑게 내리쬐는 강한 햇살에 루시우스는 눈을 찌푸리며 아내와 아들을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나시샤, 아직 그렇게 춥지 않은데….”

“전 드레이코가 감기 걸리지 않길 바래요”

두터운 겨울 망토를 입고 뒤뚱거리며 걸어 나오는 드레이코를 보며 나시샤를 쳐다봤다. 두꺼운 옷 때문에 불편했는지 팔을 루시우스를 향해 들며, 안아 달라는 듯이 올려 다 봤다. 입이 앞으로 잔뜩 나온데다가, 거실에서 루시우스와 노는 바람에 낮잠을 얼마 자지 못해 눈 안에 졸음이 그득한 했다. 나시샤를 한번 쳐다보고는 아들을 가볍게 들어 안고는 나시샤에게 쏘아 붙였다.

“이렇게 두껍게 입히면 아이가 움직이기 힘들어 지잖아요.”

“드레이코는 안 움직일 거에요.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떻게 해요?

나시샤는 루시우스의 품에 안겨 얼굴을 두터운 스카프에 묻으려는 아들의 얼굴을 손으로 쓸어내며 볼에 키스했다. 평소보다 늦은 점심에, 배가 고파 잔뜩 골이 난 데다가, 남편의 말대로 옷을 너무 많이 입혀서 답답한지 쀼루퉁한 표정이었다.

나시샤의 말에 코웃음 치며 루시우스는 발걸음을 플루네트워크가 연결된 현관 별채로 향했다. 나시샤는 가방 안을 한번 더 살피며, 양산을 펼쳐 들었다. 양산을 어깨에 기댄 채로 행여나 드레이코가 추워할까, 여분으로 챙긴 담요와 혹시 몰라 하는 마음에 챙긴 감기약 포션과 드레이코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확인했다. 혹시 더 필요할 만한 게 뭐가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데, 별채로 향하던 루시우스가 언제 다시 돌아왔는지 가방을 낚아채며 어깨에 둘러매고는 나시샤를 재촉했다.

나시샤는 미소를 지어보이며 루시우스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평소에 외출하면 꼭 착용하던 장갑을 끼지 않은 남편의 손을 발견하고는 이내 망토에서 지팡이를 꺼내 장갑을 소환했다. 하지만 남편에게 건네주는 대신 가방 안에 넣고는 잡은 손을 한번 꾹 움켜 쥐었다. 머리를 루시우스의 어깨에 기대며 플루네트워크로 향했다.


“빌!, 찰리!”

몰리의 목소리가 오두막집 안에 울려 퍼졌다. 거실에서 프레드와 조지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장난감을 가지고 론을 골려 주고 있었다. 퍼시는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두터운 찰리의 겨울 망토를 꺼내 입으려고 하고 있었고, 찰리는 퍼시에게 더울 거라며 코트를 권하고 있었다. 쿵쾅거리는 발소리와 함께 빌이 위즐리의 트레이드마크 W가 크게 새겨진 점퍼를 입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퍼시와 실랑이 하고 있는 찰리의 팔을 끌어 당기며 몰리가 있는 부엌으로 향했다.

빌이 식당으로 들어오자 마자 몰리는 지니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고는 빌에게 지니를 보라고 눈짓했다. 빌이 한숨을 쉬며 지니 옆에 털썩 주저 안아서 지니의 활짝 웃는 얼굴을 마주했다. 찰리는 빌의 손을 뿌리치며 거실로 나가 쌍둥이들의 장난감을 빼앗았다. 이리저리 쌍둥이를 피해 뛰어 다니던 론이 찰리 뒤쪽으로 숨으며 쌍둥이들에게 혀를 내밀었다. 쌍둥이가 다시 론에게 달려들기 전에, 위즐리 부부가 거실로 나오며 서로의 옷 매무새를 다듬어 주었다.

“빌! 망토 챙겼니?”

몰리의 큰 목소리에 지니의 손을 잡고 부엌에서 지니와 빌이 나왔다. 몰리는 몸을 숙여 거실 소파에 널 부러져 있는 망토들 중에 제일 낡고 오래된 겨울망토를 꺼내 론에게 둘러 주었다. 퍼시가 입은 겨울 망토를 본 몰리는, 겨울이 오기 전에 빌에게 망토를 하나 사주어야 겠다고 생각 했다. 아서가 계단 위에 장난감들과 섞여있는 망토를 툭툭 털어 빌에게 건네 주고는 플루네트워크를 연결하는 주문을 벽난로에 걸었다.

“빌, 찰리. 프레드와 조지는 너희 책임이야. 혹시 무슨 일이 생기거나 말썽 피우면, 너희도 똑같이 혼날 줄 알아. 대신 아무 말썽 없이 집에 돌아오게 되면 올 겨울에 각각 겨울망토를 하나씩 사줄게.”

쌍둥이가 태어나고 난 다음부터 부쩍 자란 아들들 이었다. 싫은 내색도 할 법 한데, 싫은 내색 없이 동생들을 끔찍이 챙기는 모습에 몰리는 아들들이 자랑스러웠다. 게다가 쌍둥이는 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힘들었다. 아직도 그 둘을 분간해 내는 문제도 있고, 어린아이들 치고는 생각해 내는 장난의 수준이 귀여운 정도를 넘어 곤란한 경우가 더 많았다. 그에 비하면 퍼시는 조용하고 모든 일을 신중하게 선택하는 아이였다. 찰리, 빌과는 다르게 욕심도 많고 아이답지 않게 현실적이어서 가끔 거리감을 느끼기도 했다. 몸을 돌려 퍼시의 어깨에 손을 얹고는 작게 속삭였다.

“퍼시, 론을 잘 돌봐주렴, 엄마가 너를 제일 믿기 때문에 론을 부탁하는 거야. 알지?”

아서가 빌에게 플루가루를 쥐어주며 마법부로 이동하는 방법에 대해 아이들에게 설명하는 동안 몰리는 지니의 망토에 묻은 먼지를 한번 쓰다듬으며 지니와 론의 손을 꼭 붙잡았다.

“론, 아빠랑 같이 손잡고 가도록 해. 지니는 엄마랑 가도록 하자.”

빌과 찰리가 먼저 벽난로 안으로 들어갔다. 조지와 프레드가 플루가루로 장난 치려는 것을 낚아챈 몰리가 눈살을 찌푸리며 쌍둥이를 보았다. 그 사이 아서가 론의 손을 붙잡고 쌍둥이의 시선을 피하듯 벽난로 안으로 들어가며 힘차게 ‘마법부’를 외쳤다. 몰리는 쌍둥이의 어깨를 세게 움켜쥐며 번갈아가며 눈동자를 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이동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해 주고는 말했다.

“만약 말썽부리면,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장난감, 압수할거야. 그리고 앞으로 일주일동안 간식 없을 줄 알아.”

그렇게 말하고는 쌍둥이의 어깨를 잡아당겨 꼭 안아줬다. 몰리는 아직 스스로 이동하기에 어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쌍둥이들이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나름 확신하면서도 걱정되는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쌍둥이들이 숨막힌다는 듯이 몰리의 손을 뿌리치며 벽난로를 향해 걸어갔다. 이동하기 전에 몰리를 쳐다보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서로 교환한 쌍둥이는 플루가루를 내던지며 힘차게 마법부를 외쳤다. 그제야 안심이 된 몰리는 지니를 들어 안고 다시 한번 집안을 살펴봤다. 문이 제대로 다 닫혀있는지 확인하고, 벽난로로 향했다.


마법부 중앙 홀에 도착한 오찬모임에 참석하기 위한 마법사들이, 큰 황금 조각상 근처에서 삼삼오오 모여 서로의 근황을 나누고 있었다. 위즐리 가족은 곧 스캐맨더와 디고리 가족을 만났다. 아서는 곧 뉴트, 아모스와 함께 크리켓과 퀴디치에 대한 대화를 나눴고, 몰리 역시 스캐맨더 부인과 함께 빌과 찰리의 학교생활에 대해 말했다. 아이들은 다 같이 모여서 조각상 근처를 뛰어다니기도 하고, 몇몇 아는 얼굴과 인사를 하기도 했다.

루시우스가 마법부 장관과 인사를 하는 동안, 나시샤는 검색 대를 지나 승강기 근처에 있는 휴게실에서 드레이코를 안고, 오찬장소로 이동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국내 날씨가 좋아, 마법 게임 및 스포츠부의 부장인 맥펄란씨의 농장에서 오찬을 갖는다고 했다. 나시샤의 품속에서 곤히 잠든 드레이코의 등을 쓰다듬으며 창 문 밖으로 보이는 인파를 생각 없이 바라봤다.

오후 2시가 되자 중앙 홀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마법부 장관인 밀리센트 배그놀드씨의 연설로 사람들이 모두 조각상 근처로 몰렸다. 가족단위의 포트키로 맥펄란농장까지 이동하게 되고, 그곳에서 오찬모임을 할 것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이내 검색대 근처 포트키를 가진 직원에게로 몰렸고, 몰리는 아이들을 데리고 조각상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아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빌이 사람들을 헤치고 나오다가, 금발의 아이를 안고 있는 여자와 부딪히게 되었다.

“죄송합니다. 부인.”

빌의 정중한 사과에 부딪혀서 흘러내린 무거워보이는 가방을 다시 어깨 위로 끌어 올리며 금발의 부인이 미소 지었다. 그리고는 안고 있던 아이를 고쳐 안고는 조각상 쪽으로 향했다. 빌은 부인이 인파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다가 곧 몰리의 외침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맥펄란씨의 농장은 한적한 런던 외곽의 양을 치는 농장이었다. 커다란 농장 저택 뒤편에 있는 넓은 정원에서 오찬을 시작한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대화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뒤뜰에 걸린 마법의 주문덕분에 야외 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걱정과는 달리 굉장히 따뜻했다. 또, 맬펄란 부부는 어린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들이 좀더 편한하게 머물 수 있도록, 온실을 깨끗하게 정리해서 아이들이 뛰어 놀 수 있도록 배려했다. 오찬을 대충 끝낸 사람들은 편을 갈라 크리켓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몰리는 지니와 론, 쌍둥이, 퍼시를 데리고 맥펄란 부부가 준비해 둔 온실로 향했다. 중앙에 서있는 커다란 나무를 중심으로 아이들의 손이 닿지 않도록 온실의 식물들은 천정 근처를 둥둥 떠다녔으며, 바닥에는 폭신한 안락의자와 소파, 그리고 양털느낌의 카펫이 깔려 있어 아이들이 바닥에서 놀 수 있도록 배려해 둔 듯 했다. 프레드와 조지가 기다렸다는 듯이 망토를 몰리에게 휙 던지고는 다른 아이들이 있는 쪽으로 뛰어 갔다. 몰리는 바닥에 너부러진 망토를 챙기며 퍼시 쪽을 바라보았다. 퍼시는 다른 아이들과 노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이 제일 편해보이는 안락의자를 하나 골라 앉으며 망토에서 책을 하나 꺼내 들었다. 몰리는 근처 소파에 쌍둥이의 망토를 던져 놓으며 몸을 기댔다. 지니는 이내 망토를 몰리에게 주고는 중앙에 있는 커다란 나무 쪽을 향해 걸어갔다. 몰리의 시선이 지니에게 쏠려 있는 동안 론은 몰리가 앉은 소파위로 기어올라가 쌍둥이의 망토사이로 기어들어가 누웠다.

나시샤와 루시우스는 밀리센트 부부와 함께 식사를 했다. 식사 하는 내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드레이코 때문에 루시우스가 곤란한 기색이 역력했다. 나시샤는 곧 밀리센트 부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드레이코와 들고 온 가방을 안고 온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 제대로 먹지 못한 드레이코가 걱정 됐지만, 낮잠을 재우지 않으면 내내 투정할 것을 잘 아는 나시샤는 온실 안으로 들어오자 마자 아이가 누울 만한 곳을 찾았다. 문 근처에 있는 소파에 망토에 둘러 쌓여 잠들어 있는 빨간 머리 아이를 발견한 가방을 조심스럽게 소파 밑에 두고 드레이코를 내려 놓았다. 나시샤가 조심스럽게 드레이코의 두터운 겨울 망토를 벗기자, 드레이코는 소파위로 기어 올라가 잠들어 있는 아이 옆에 누웠다. 가방에서 담요를 꺼내 아이들에게 덮어준 뒤에, 주변을 한번 살펴본 다음, 루시우스에게 온실에 있을 것이라는 말을 전하기 위해 다시 밖으로 몸을 돌렸다. 온실을 나가기 바로 직전, 빨간 머리의 여자가 똑같이 붉은머리를 한 여자아이를 데리고 소파로 걸어 가는걸 확인한 나시샤는 남편을 향한 발걸음을 재촉했다.

지니가 앞으로 넘어지는 바람에 깜짝 놀라 달려간 몰리의 예상과는 다르게 배시시 웃는 지니의 웃음에 안심한 몰리는 지니를 일으켜 세워 옷에 묻은 흙을 털어주고는 소파로 걸어왔다. 론은 오늘 쌍둥이들과 노느라 낮잠을 자지 않아서 피곤했는지, 시끌시끌한 온실 안에서 평온하게 잘 잤다. 걸어오면서, 론이 덮고 있는 담요와 그 옆에 누워있는 금발머리 아이가 눈에 들어 왔다. 그리고 소파 앞에 커다란 가방이 있었다. 아이용 겨울 망토가 정갈하게 개여 가방을 덮고 있었다. 몰리는 가방을 한쪽으로 치우며 소파 끝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지니가 금발머리 아이의 등을 툭툭 치는 것을 낚아 채 말리며, 손을 옮겨 론의 얼굴이 담요 밖으로 나오게 담요를 살짝 치웠다. 금발머리의 아이가 몰리의 움직임에 론이 있는 쪽으로 몸을 웅크렸다. 아이들 때문에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몰리는 배가 고팠다. 정신 없이 자느라고 먹는 둥 마는 둥 했던 지니를 데리고, 퍼시에게 쌍둥이를 잘 보라고 부탁한 뒤에 온실을 빠져 나와 저택 내에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오찬이 끝난 정원은 이미 퀴디치를 하는 아이들로 가득 차 있었다.

루시우스에게 온실 안에 있겠다고 말을 전한 뒤, 드레이코가 깨어나면 먹이기 위해 약간의 음식과 음료를 챙겨 들고 온 나시샤는 옆에 있던 테이블에 음식을 놓고, 테이블 의자를 소파쪽으로 끌어와 앉았다. 아까는 보이지 않던 빨간 머리 아이의 얼굴이 보였다. 주근깨가 가득한 얼굴에 드레이코가 머리카락이 간지러웠는지 코끝을 찡그리고는 주근깨가 가득한 손으로 코를 긁었다. 나시샤는 빨간 머리와 주근깨로 벌써 그 아이가 어느 집 아이인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곤히 자는 아들을 깨우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하고, 조금만 더 자게 두기로 하고 가방을 끌어당겨 안에서 읽다 남은 책을 꺼내 들고 읽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흔들어 깨우는 느낌에 드레이코는 망설이며 눈을 떴다. 얼굴에 씨가 박힌 듯 딸기처럼 생긴 아이의 얼굴이 드레이코의 눈앞에 있었다.

“뭐야?”

잠에 잠긴 목소리로 퉁명스럽게 말을 밭은 드레이코는 몸을 일으켜 세워 앉았다. 론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말했다.

“배고파.”

론의 말을 듣고 보니 자기도 배가 고픈걸 깨달은 드레이코는 주변을 살펴보고는 테이블 옆 의자에 책을 읽다 잠이든 나시샤를 발견하고는 소파에서 내려왔다. 나시샤가 자는걸 유심히 지켜본 드레이코는 테이블 위에 음식을 발견하고는 론을 쳐다봤다. 그리고 손을 들어 음식에 손을 가져갔지만 아직 키가 너무 작았다.

론은 금발머리에 새하얀 남자아이가 음식에 닿기 위해 애쓰는 것을 보고, 바나나 같다고 생각했다. 노란색 껍질을 벗기면 흰색이 나오는. 뱃속에서 그르렁 소리를 들은 론은 고개를 들어 퍼시가 있는 쪽을 봤다. 퍼시는 나무 근처에 앉아서 책을 보고 있었다. 재빨리 소파에서 내려와 퍼시에게 달려갔다.

“퍼시! 배고파.”

퍼시는 책을 내려 시선을 론에게 돌렸다. 그리고 엄마가 있는 쪽을 봤지만 없었다. 주변을 살펴보니, 쌍둥이들은 다른 아이들과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데 정신이 없었다. 론이 퍼시의 소매 끝을 잡아당겨 소파근처에 있는 테이블을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저기 있어. 내려줘.”

자리에서 일어나, 테이블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금발의 부인이 책이 거의 떨어질 듯, 하얀 손가락 끝에 걸려있었다. 그리고 그 부인을 닮은 금발머리의 아이가 퍼시와 론을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퍼시가 테이블에서 샌드위치와 주스를 내려 론과 그 아이에게 주었다. 샌드위치를 두 손으로 받아 든 그 아이가 방글방글 웃었다. 그리고는 바닥에 털썩 주저 앉더니 음식을 내려놓고 론에게 앉으라고 손짓했다. 퍼시는 금발의 부인쪽을 다시 한번 쳐다보고는 원래 있던 자리로 천천히 걸어갔다.

접시 위에 샌드위치를 하나씩 들고 먹기 시작했다. 드레이코가 먹다가 목이 메이는지 옆에 있던 컵을 집어 주스를 마셨다. 론이 그걸 보고 있다가 내려놓는 컵을 낚아채 주스를 마셨다. 드레이코의 눈썹이 위로 살짝 올라가며 빨간머리와 주스가 든 컵을 번갈아보며 쳐다봤다. 론은 마저 먹던 샌드위치를 다시 입으로 가져가 크게 한입 베어 물며 드레이코를 쳐다봤다.

“이건, 내건데….”

말끝을 흐리며 드레이코 역시 먹다 남은 샌드위치를 입으로 가져갔다. 반쯤 먹다 배가 불렀는지 드레이코는 먹다 남은 샌드위치를 접시 위에 올려 놓으며 주스가 든 컵을 들었다. 막 샌드위치 하나를 다 먹은 론이 샌드위치를 접시 위에 올려놓는 드레이코를 쳐다보고는 물었다.

“먹어도 돼?”

“내가 먹던 건데, 어떻게 먹어?”

“먹으면 돼”

방긋 웃어보이며 반쯤 먹다 남은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드레이코는 주스를 조금씩 마시며 빨간머리를 쳐다봤다. 배가 불렀지만, 다른 아이가 먹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드레이코도 조금 더 먹고 싶어졌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까 음식을 내려줬던 사람 옆에 쿠키그릇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주스를 접시 위에 올려놓고 일어 섰다. 거의 다 먹은 샌드위치를 한입에 넣고 우적우적 씹으며 론 역시 드레이코를 따라 일어났다. 드레이코는 론이 일어나는 것을 확인하고는 퍼시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론은 목이 메였는지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접시 위에 놓은 컵을 들어 남은 주스를 모두 마셨다. 그리고 퍼시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 드레이코의 뒤를 좇았다.

“쿠키.”

드레이코의 목소리에 퍼시는 잠깐 고개를 들어 금발의 부인이 있는 쪽을 봤다. 론이 자신쪽을 향해 종종걸음으로 뛰어 오고 있는 것을 본 퍼시의 시선이 금발머리 아이에게서 멈췄다.

“뭐?”

퍼시의 반응을 예상 못했는지 당황한 눈치였다. 손가락을 들어 테이블 위에 쿠키가 든 상자를 가리키며 퍼시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아이를 퍼시는 론이 도착한 다음에야 그 시선을 쿠키가 든 상자로 옮겼다. 론은 도착하자마자 드레이코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고는 퍼시의 무릎위로 기어 올라오려고 하며 말했다.

“형, 쿠키”

퍼시는 불편 한 듯 움직이며, 책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쿠키 상자를 무릎 위에 올려 놓았다. 그 중에 제일 좋아하는 초콜릿 퍼지 쿠키를 들어올려 한입 베어 물고 앞에 있는 아이들에게 상자를 내밀었다. 론이 상자를 받아 들며 퍼시 바로 발 밑에 털썩 주저 앉았다. 지켜보고 있던 드레이코 역시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아 어떤 것을 먹을지 고민한다는 듯이 손가락을 입안에 넣고 쿠키를 열심히 살폈다. 그렇게 둘이 앉아 쿠키를 고르고 있을 때, 쌍둥이들이 강낭콩 젤리를 서로에게 던지며 퍼시쪽으로 다가왔다. 거의 다 왔을 때 그들은 서로에게 던지던 젤리를 론쪽을 향해 던지며 쿠키박스를 뺏어 바닥에 놓고 강낭콩 젤리를 옷 속에 넣으려고 했다. 론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드레이코는 깜짝 놀라 시선을 쿠키에서 쌍둥이쪽으로 옮겼다. 쌍둥이가 드레이코를 쳐다보며 물었다.

“얘는 뭐야?”

“하지마!”

론이 쌍둥이의 손을 뿌리치며 드레이코의 손목을 붙잡으며 일어섰다. 드레이코는 얼떨결에 손목을 붙잡힌 채로 쿠키가 든 박스에서 아무 쿠키를 하나 꺼내 집으며 론이 잡아 끄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쌍둥이는 론과 드레이코 쪽으로 젤리를 던지며, 박스주변에 털썩 주저 앉아 쿠키를 골랐다. 쌍둥이들의 관심이 쿠키에 쏠려 있는 동안 드레이코는 마지막에 꺼내든 쿠키를 입안에 넣으며 론이 가고 있는 쪽의 장난감 상자를 봤다.

방안에 있는 다른 재미있어 보이는 장난감들은 거의 아이들이 가져가서 장난감 상자 안에는 오래된 체스게임 세트 밖에 없었다. 드레이코는 론의 손을 뿌리치며 박스 안에서 체스상자를 꺼냈다. 위 아래로 흔들며, 뭔지 살펴본 드레이코는 론을 보았다. 론은 드레이코 손 위에 들려있는 체스상자의 뚜껑을 열어 안쪽에 체스 말과 체스 판을 확인했다. 그제야 이게 뭔지 깨달은 드레이코는 그 상자를 아래쪽에 내려놓고, 나시샤가 앉아있는 소파쪽을 향해 달렸다. 론은 상자뚜껑을 잘 덮은 뒤에 쌍둥이의 위치를 한번 확인하고는 드레이코의 뒤를 쫒았다.

소파에 다다른 드레이코는 나시샤의 가방 안에서 장난감 상자 안에서 본 것 보다는 약간 작고 훨씬 새것 같아 보이는 체스상자를 꺼내 론에게 내밀었다. 뚜껑을 열어 안쪽에 있는 판을 바닥에 놓고 상자 겉에 있는 모양을 보고 말을 하나 둘 제 위치에 올려 놓았다. 검은색과 흰색 말이 모두 제 위치를 찾았을 때 론은 드레이코가 뭘 하려고 하는 건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계속 주시했다. 드레이코는 상자 안쪽에 붙어 있는 그림으로 된 설명을 고심하듯 쳐다봤다. 론 역시 궁금했는지 드레이코의 옆으로 자리를 옮겨 드레이코가 보고 있는 그림을 봤다. 설명 같은 것이 글자로 써있긴 했지만, 론은 아직 글을 읽는 것을 완전히 배우지 못해서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드레이코는 조금 이해했다는 듯이 흰색 말이 있는 쪽으로 자신을 옮기며 론에게 검은 말이 있는 쪽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체스라는 것을 한번도 해본적 없는 론은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몰라 드레이코가 하는 대로 몇 번을 따라 하고는 체스 판 위에서 말들이 서로 싸우며 판 밖으로 밀어내는 모습과 말들이 가지는 의미에 자기도 모르게 푹 빠졌다. 그렇게 판 위에 말이 몇 개 남지 않았을 때, 나시샤의 책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책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나시샤의 눈이 천천히 떠졌다. 그리고 얼굴로 흘러내린 머리를 다시 정갈하게 쓸어 넘기며 몸을 곧게 폈다. 책이 떨어지는 쪽으로 고개를 획 돌린 드레이코는 벌떡 일어나 나시샤에게 달려갔다.

Maman!
“엄마!”

떨어진 책을 주워 들며, 드레이코가 볼을 무릎에 비벼대며 매달렸다. 나시샤는 아들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고는 주변을 둘러봤다. 위즐리 부인은 아직도 돌아 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이들이 놀고 있는 쪽에서는 빨간 머리의 아이들이 몇몇 더 보였다. 나시샤는 고개를 돌려 소파 바로 앞 바닥에 앉아 드레이코와 나시샤를 쳐다보는 아이를 한번 쳐다보고는 다시 시선을 드레이코 에게 옮겼다.

Avez-vous faim? Ma chère?
“배고프니, 내 아가?”

J'ai mangé des sandwiches.
“샌드위치 먹었어요”

Bon.
“그래”

몸을 숙여 드레이코의 이마에 키스했다. 그리고 천천히 일어나 가방 안에 책을 넣고, 담요를 집어 들었다. 바닥에 앉아 있던 아이는 계속해서 물끄러미 나시샤의 행동을 관찰했다. 나시샤가 정갈하게 갠 담요를 다시 가방 안에 집어 넣으며 드레이코의 망토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소파쪽으로 몸을 기대며 빨간 머리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드레이코랑 놀아줘서 고마워.”

나시샤의 손짓에 얼굴이 새빨개진 론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귀 끝까지 새빨개진 론의 모습에 드레이코가 까르르 웃으며 나시샤에게 말했다.

Maman, il ressemble à une fraise.
“엄마, 얘 딸기 같아요!”

드레이코의 말에 나시샤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시계를 한번 힐끔 쳐다보고는 나시샤가 드레이코에게 손짓했다. 너무 오랫동안 루시우스 옆을 떠나 있지 않았나 싶어, 서두르려고 했지만, 드레이코는 위즐리 소년과 노는 재미에 푹 빠진 듯 해 그럴 수 없었다. 웃음을 참지 못했는지 천천히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다가 앞으로 넘어지려고 했다. 나시샤가 놀라 앞으로 몸을 숙이기 전에 드레이코의 팔이 론의 어깨를 잡았다. 론은 넘어질뻔한 드레이코를 한참동안 멍하게 쳐다보더니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아이들이 웃는걸 지켜본 나시샤는 천천히 드레이코에게 망토를 입히며 다시 한번 시계를 봤다. 이제 오후 4시, 아이가 기분 좋게 깨어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확인한 나시샤는 소파에서 일어나며 가방을 들어 어깨에 둘러메고 드레이코의 손을 잡았다. 고개를 들어 나시샤를 쳐다보는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에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드레이코를 데리고 온실을 빠져 나왔다. 온실 밖을 나서기 전까지 드레이코는 소파 앞에 멍하니 앉아 있는 빨간 머리 소년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집 안이었다면 좀 더 놀고 싶다고 떼를 썼겠지만, 밖에 나와서 어리광을 피웠다가 루시우스에게 된통 혼이 난 뒤로는 의젓해진 드레이코였다. 안쓰러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론은 그 자리에 앉아서 금발의 부인과 아이가 나간 문쪽을 쳐다봤다. 얼마동안 그러고 있었을까, 쌍둥이가 론이 있는 쪽을 향해 달려왔다. 소파에 풀썩 앉은 채 주변을 두리 번 거리고 있을 때, 금발의 부인과 아이가 나간 문으로 몰리가 지니를 데리고 들어왔다.

몰리가 소파에 돌아와 앉았을 때까지도 론은 몰리가 들어온 문쪽을 계속해서 쳐다보고 있었다. 론 옆에서 자고 있던 아이와 가방이 없어진 것을 확인한 몰리는, 방금 그 아이가 떠난 것을 깨닫고 문쪽을 다시 한번 보았지만, 금발 머리인 사람들은 들어오거나 나가는 사람이 없었다. 몰리의 시선이 다시 론에게 갔을 때, 론은 바로 앞에 놓여진 체스 판을 바라보며 입꼬리가 귀에 걸릴 듯 환하게 웃고 있었다.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자, 론은 자리에서 가지고 놀던 체스 상자를 정리해서 가슴에 안았다. 집에서 빌과 아서가 체스 두는 것을 기억해내고는, 앞으로 뭘 하며 노는걸 제일 좋아할지 정한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