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청산(三清山)

산칭산은 장시성 상라오 시 위산 현과 더싱 시의 경계에 위치하며, 위산 현의 중심으로부터 약 50 km, 상라오 시로부터 약 78 km 떨어져 있다. 회옥산맥 갈래의 도교의 명산이며, 풍경이 수려하다. 산칭산의 이름은 삼봉(옥경, 옥화)의 모습이 높고 험해 마치 삼청이 정상에 앉아 있는 것 같다(三峰峻抜、如三清列坐其巓)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삼봉 가운데 옥경봉(玉京峰)이 가장 높고, 해발 1819.9m이다.

동진 시대에 갈홍이 땅에서 불로장생의 단약을 만들었던 것이 시작이다. 당 희종의 시대에, 신천 태수 왕감이 태수에서 해임된 후 산칭산에서 은둔생활을 했다. 송나라 때 왕감의 후예인 왕림이 도관을 건설해, 산칭산은 도가의 ‘동천복지’가 되었다.

    삼봉
  1. 위징봉 (玉京峰 옥경봉)
  2. 위화봉 (玉華峰 옥화봉)
  3. 위쉬봉 (玉虛峰 옥허봉)

    9대경구
  1. 남청원
  2. 만수소노
  3. 서해안
  4. 양광해안
  5. 옥경봉
  6. 삼청관
  7. 서화대
  8. 삼동구
  9. 석고령
  10. 옥령관

    10대절경
  1. 동방여신 東方女神
  2. 거망출산 巨蟒出山
  3. 후왕헌실 猴王獻寶
  4. 옥녀개회 玉女開懷
  5. 로도배월 老道拜月
  6. 관음상곡 觀音賞曲
  7. 갈홍헌단 葛洪獻丹
  8. 신룡희송 神龍戲松
  9. 삼용출해 三龍出海
  10. 포뇌명천 蒲牢鳴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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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궁이 삼청산에 있네.. 당연한 얘기 겠지만 그게 거기 있는 줄은 몰랐네 장시성은 원래 불교가 더 유명하지 않나?

출처 위키

蛇苺 第28

苦肉計 | 28. 스스로를 괴롭힘.

지주는 별궁 외실에 들어온 온객행과 주자서에게 차를 대접하고 있다가 현무의 명령을 받고 지주를 데리러 온 문귀(文龜)를 따라 주극성으로 향했다. 외실을 나가면서 지주가 말했다.
“오래 걸릴 것 같은데 기다려 주겠나? 어쩌면 현무께서 그대를 부를지도 모르겠어.”
그리고는 온객행이 아니라 주자서를 힐끔 보았다. 온객행이 자리에서 일어나 지주를 배웅하며 말했다.
“나를? 현무께서? 알겠네. 여기에서 기다리지.”
지주가 온객행을 한참 보다가 마뜩잖은 표정을 짓고 온객행에게 말했다.
“그래. 필요한 것은 시위에게 말하게.”
지주는 나가면서 시위에게 별궁의 손님을 융숭히 대접하라고 몇 번이나 주의를 주고 신당으로 향했다.

고개를 숙이고 자리에 앉아 있는 주자서는 많이 지쳐 보여서 온객행이 다가가 물었다.
“유서. 왜 그러는가?”
주자서가 고개를 들어 온객행을 보고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괘념치 마소서.”
온객행이 눈썹을 늘어뜨려 울상을 만들자 주자서는 그 모습이 조금 반가워서 피식 웃었다. 온객행이 의자를 끌어다 주자서 옆에 찰싹 붙어 앉아 말했다.
“유서. 어찌 여기 있는가?”
주자서가 다시 고개를 숙이고 대답이 없자 온객행은 애가 타서 주자서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말했다.
“잘못을 따지자는 것이 아니네. 말하기 싫으면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이자 온객행이 주자서의 귓가에 입을 맞추고 말했다.
“유서 그래도 잘 먹고 잘 잤는지는 말해주게. 그대에게 다들 잘 대해 주었나?”
주자서는 이번에도 대답 없이 또 고개를 끄덕였다.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뭐라고 말하려는 데 밖에서 하인이 소반에 음식을 가지고 들어왔다. 온객행은 주자서를 놓아주고 자리에서 일어나 하인이 음식이 내려 놓는 것을 도왔다.

하인이 외실을 나가자 온객행은 다시 주자서 옆에 찰싹 붙어 앉아 젓가락을 들어 음식 이것저것을 집어 주자서의 앞접시에 놓고 말했다.
“유서. 어서 먹어봐.”
주자서는 온객행이 쥐여준 젓가락을 들고 한참 망설이더니 온객행이 집어준 음식을 조금 먹었다. 온객행은 탁상에 고개를 괴고 주자서가 먹는 것을 보고 말했다.
“유서. 입에 맞지 않은가?”
주자서는 온객행을 힐끔 보고 다시 음식을 입에 넣고 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자서도 음식을 몇 개 집어 온객행의 앞접시에 올려 놓고 말했다.
“흑랑께서도 드세요.”
온객행이 웃으며 주자서가 집어준 음식을 입에 넣고 말했다.
“응. 유서도 많이 먹어.”
말없이 음식을 먹던 온객행이 말했다.
“유서… 할 말이 있네.”
주자서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어 온객행을 보았다. 온객행도 젓가락을 놓고 주자서를 보고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내가….”
온객행이 망설이자 주자서가 웃으며 말했다.
“저는 괜찮으니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온객행이 난처한 표정으로 입을 달싹였다. 주자서가 말했다.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지 내치라고 한 것은 저이니 괘념치 마소서.”
온객행은 주자서의 말에 어리둥절하여 웃으며 말했다.
“그대를 내치다니 내가 왜 그대를 내치는가?”
주자서가 또 고개를 숙이고 입을 꾹 다물자 온객행이 탁상 아래에 있는 주자서의 손을 찾아 잡고 말했다.
“유서… 내가 내쳐줬으면 좋겠는가?”
주자서가 눈썹을 찌푸리자 온객행이 얼른 손을 들어 그의 미간을 쓸며 말했다.
“유서. 내가 부족한 것은 잘 알고 있네. 나 때문에 모진 말을 들은 것도 정말 미안해.”
주자서가 고개를 들어 온객행과 눈을 맞추고 말했다.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많이 부족하지요. 저는 흑랑께 입은 은혜를 갚을 길이 막막합니다.”
온객행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유서! 은혜라니? 아니야. 나는….”

주자서가 자리에서 일어나 온객행 앞에 무릎 꿇고 말했다.
“흑랑. 저의 효용은 잘 알고 있습니다. 저를 내치신다 하셔도 그것은 제가 부족한 것이니 자신을 괴롭게 하지 마소서.”
그리고 머리를 바닥에 붙이고 절했다. 온객행은 당황하여 자리에서 일어나 주자서를 일으키며 말했다.
“유서?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주자서가 고개를 들어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곁에 남으라 하시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떠나라 하시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끌어안고 말했다.
“유서. 떠나다니? 안 돼. 절대 안 돼.”
주자서는 온객행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흑랑께서 거두어 주신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어깨에 고개를 묻고 말했다.
“유서. 우리는 벌써 혼인했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유서가 나를 거두어 줘야지.”
주자서는 온객행의 말이 의아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 끌어안고 있던 두 사람은 하인이 음식을 치우러 다시 들어오는 기척에 서로를 놓아주었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다시 자리에 앉히고 말했다.
“유서. 내가 하려고 했던 말이 뭐냐 하면….”
온객행이 주자서 옆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한 갑자 동안이 아니라….”
주자서는 온객행의 말에 다시 눈썹을 찌푸렸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표정을 보고 울상을 만들어 말했다.
“그러니까 한 갑자 동안이 아니라 더 오래 같이 하고 싶은데….”
주자서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자 온객행이 자신의 소매를 뒤적이며 말했다.
“그대에게 줄 것이 있어.”
주자서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흑랑. 이미 충분히 차고 넘치게 받았는데 또 빚을 지우십니까?”
온객행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빚이라니? 다 내가 주고 싶어서 주는 것인데. 나에게 받는 것은 모두 원래 그대의 것이니 그런 생각하지 마시오.”
그러더니 소매에서 복숭아를 꺼내 주자서에게 내밀었다.

주자서는 복숭아와 온객행을 번갈아 보고 물었다.
“이것은…?”
온객행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유서. 유서가 이걸 먹으면 나와 함께 아주 오래 살 수 있어.”
주자서는 물끄러미 복숭아를 보았다. 온객행이 소매에서 칼을 꺼내 복숭아를 얼기설기 깎아 내밀었다. 주자서는 한참 내민 복숭아를 보다가 부유각에서 그랬던 것처럼 받아먹었다. 이 복숭아 역시 달고 향긋하다. 주자서가 온객행에게도 권하자 온객행이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나눠 먹으면 어떻게 될까? 아니야. 이건 유서 다 먹게.”
그리고 남은 복숭아도 모두 주자서의 입 속에 넣어주었다. 주자서가 복숭아를 다 먹자 온객행이 자리에서 일어나 대야를 가져와 함께 손을 씻었다. 주자서는 종화산에서 함께 손을 씻었던 것이 생각나서 조금 부끄러워졌다.

온객행이 수건을 가져와 주자서의 손을 닦아주며 말했다.
“내가 수선이 되었으니 이제 아무도 그대에게 물비린내 난다는 소리는 못할 것이오.”
주자서가 온객행을 보고 놀라서 물었다.
“수선이요?”
온객행이 주자서를 보고 낮게 웃으며 말했다.
“태평호의 수선이 되었는데… 유서는 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백택을 고쳐서 삽시다.”
주자서는 손을 닦고 대야를 치우는 온객행을 빤히 보다가 말했다.
“흑랑? 수선이요? 무슨 뜻입니까?”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다가가 말했다.
“이제 흑랑이라고 부르면 안 되겠군.”
주자서가 눈썹을 찌푸리자 온객행이 손을 들어 그의 미간을 쓸고 말했다.
“하늘에서 가져다 붙이는 이름 말고 내가 듣고 싶은 이름으로 불러 주시오.”
주자서가 고개를 들어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온객행?”
온객행이 활짝 웃으며 주자서를 끌어안고 말했다.
“유서. 나는 유서가 너무 좋아.”
주자서는 한참 안겨 있다가 팔을 들어 온객행을 마주 안았다.

온객행과 주자서는 외실에 앉아서 해가 질 때까지 지주를 기다렸지만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하인들이 다가와 온객행에게 물었다.
“객실을 정리할까요? 주무시겠습니까?”
온객행이 평상에 기대 눈을 감고 있는 주자서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부탁드립니다.”
하인이 시위들과 여기저기 구르며 조금 꼬질꼬질해진 주자서를 힐끔 보고 물었다.
“세목(洗沐)을 준비할까요?”
온객행이 주자서를 보고 있다가 하인에게 물었다.
“세목을 하면 기분이 좋아집니까?”
하인은 당황한 표정으로 한참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렇지 않을까요?”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준비해 주시오.”
하인이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내원 오른편 객실에 준비하겠습니다. 한식경(一食頃)만 기다려 주십시오.”
온객행이 하인에게 말했다.
“서두를 것 없습니다. 지주는 오늘 돌아오지 않을 것 같으니 천천히 하세요.”
하인은 온객행에게 조아리고 외실을 나갔다. 온객행은 다시 탁상으로 가서 하인이 내온 차를 마시며 평상에 기대어 앉은 주자서를 구경했다. ‘군영에 있었을 때에 저런 옷을 입었을까? 상투를 튼 것도 좋군.’

주자서는 저를 보는 시선이 따가워서 힐끔 눈을 떴다가 온객행과 눈이 마주쳤다. 어색하게 입꼬리를 끌어당겨 웃고 조금 몸을 틀어 앉았다. 주자서는 온객행이 한 말뜻을 찾느라 피곤도 잊은 채로 생각 중이다. 온객행이 처음에 희첩이니 내자니 하는 이야기를 꺼냈을 때는 발의 영력을 비호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이제 주자서에게 발의 영력이 없으니 그 비호는 더 이상 필요 없다. 태평호에 온 이후로 주자서의 처지를 대체로 표현한 말인 한낱 미물, 주자서가 스스로 생각해봐도 어느 정도 납득이 되는 말이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곁에 두려고 하는 이유를 주자서는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이미 사모하고 연모하는 이가 있는데.’ 주자서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당장 갈 곳이 없고 곁에 있으라 하니 곁에 있겠지만 주자서는 대체 어떤 태도로 온객행을 대해야 할지 몰랐다. 은하수에서 만난 남자는 주자서가 뭐라고 그에게 온객행을 부탁했을까? 이제는 요괴도 아니고 번듯한 신선이 된 모양이니 그 전보다 더 주자서의 형편과 어울리지 않는다.

애초에 주자서가 남의 사정을 돌보아 줄 만한 처지인가? 태평호 이후로 주자서는 남에게 보살핌을 받았으면 받았지 누구를 보살펴줄 여력이 없었다. 어쩌면 그를 돌보는 사람이 되라는 뜻일까? ‘부하가 되라는 건가?’ 그러다 보통 부하와 혼인까지 하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주자서는 눈을 뜨고 생각을 멈췄다. 온객행이 저에게 싫증이 날 때까지 버텨보자. 내쳐지면 그때 서쪽으로 향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저 서쪽으로 떠나기 전에 낙읍에 계신 모친이나 한번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당산에서 낙읍까지는 말을 빌려 가면 하루, 걸어가면 나흘이 걸렸다. 멀지 않은 곳에 계신다고 하니 괜히 더 그리워진다. 주자서는 온객행을 힐끔 보고 부탁을 해볼까 하다 말았다. 모친께 온객행을 뭐라고 소개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주자서가 평상에서 일어나 온객행이 있는 탁상의 자리에 앉았다. 찻주전자를 들어 찻잔을 채우고 조금 식은 차를 마셨다.

온객행이 차를 마시는 주자서를 보고 물었다.
“유서. 덥지 않은가?”
주자서가 찻잔을 비우고 내려놓으며 말했다.
“괜찮으니….”
말을 다 마치지 않고 주자서가 온객행의 얼굴을 보았다. 눈썹이 축 처져서 서러운 얼굴을 하는 온객행을 보다 피식 웃었다.
“덥지 않습니다. 산이 높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주자서의 대답에 온객행이 배시시 웃으며 물었다.
“춥지는 않은가?”
주자서에게 다가와 주자서의 앞섶을 쓸며 말했다.
“이 옷은 불편하지는 않은가?”
주자서는 고개를 끄덕이고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온객행이 주자서의 머리를 만지며 말했다.
“상투를 트는 것도 나쁘지 않군. 관을 해도 되겠어.”
주자서가 부스스 웃으며 말했다.
“관례는 이미 치렀으니 못할 것도 없습니다.”
온객행이 물었다.
“관례를 치렀는가?”
주자서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군영에서 장군께….”
온객행이 급하게 입을 가리고 말했다.
“아!”
주자서가 고개를 들어 온객행을 보자 온객행이 울상으로 말했다.
“또 실례를…. 용서하시오.”
주자서가 작게 웃고 답했다.
“아닙니다. 재미없는 이야기라도 듣고 싶으시다면 해드리지요.”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몸을 붙이고 앉아서 말했다.
“그대가 하는 말 중에 재미없는 것은 없으니 해주시오.”
온객행은 다시 고개를 괴고 주자서를 보았다. 주자서는 조금 부끄러워져서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기산에서 도망하여 낙읍에 도착한 주자서의 가족들은 한동안 피난민처럼 거처를 이곳저곳 옮겨야 했다. 그래서 이름도 바꾸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낙양성으로 들어가는 태곡관 밖에 있는 마을에서 품앗이를 하며 생계를 꾸렸다. 모친과 종형제인 형님께서 고생하신 덕분에 주자서가 충년이 될 즈음에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거처를 구할 수 있게 되었다. 금을 타는 것을 좋아하시는 모친을 위해 칠현금을 사드리려고 몇 년이나 돈을 모았지만 결국 그 돈으로 형님께서 혼인을 하셨다. 혼인을 하고 당질이 태어나 얼마 동안은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은 삶을 살았다. 조금 여유가 생겨서 주자서를 성안에 있는 서원에 보내기도 했다. 끼니 걱정을 하는 것이 제일 큰 걱정인 삶은 얼마 가지 못했다.

나라에 일이 생겨 징집령이 내려졌다. 주자서의 집에 징집령에 응할 수 있는 것은 형님뿐이었다. 형님은 모친 몰래 처자식을 데리고 도망을 가려고 하다가 잡혀서 전장으로 끌려갔다. 도망병인 형님의 처지가 군영에서 어땠을 지 지금의 주자서는 알고 있다. 형님께서 버티시지 못하셨을 것이다. 정말로 형님께서 전장에서 전사하셨는지 아니면 사고로 돌아가셨는지 그들은 형님의 시신을 찾지도 못했다. 그리고 주자서가 징집이 되어 사분군으로 최전방에 있는 전장으로 온 것이다. 막 지학을 넘긴 주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아 고생을 많이 했다. 서원에서 배운 것들은 실전과는 너무 달랐다. 부친께서 무관이었기 때문에 모친께서는 병서를 읽게 하셨고 그에 걸맞은 무도를 갖추기 위해 형님께 배웠던 검술은 전장에서 하나도 쓸모가 없었다. 비열하고 너저분한 전투는 살아남는 자를 승리자로 만든다. 그 승리자는 덕이 높을 필요도 어질거나 점잖을 필요도 없다.


주자서가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저는 겁이 많아요. 그래서 도망치는 것을 제일 잘합니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겁이 나면 알려주시오. 내가 달래주겠소.”
주자서가 고개를 흔들며 작게 웃자 온객행이 주자서의 귓가에 속삭였다.
“말하지 않았소. 아주 귀여워.”
주자서가 표정을 구기며 온객행을 밀어냈다.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내게 도망쳐 오시오. 내가 지켜주겠소.”
주자서가 웃으며 말했다.
“흑랑에게서 도망치고 싶으면 어찌합니까?”
온객행이 눈썹을 늘어뜨리고 말했다.
“안돼. 내가 혹시 겁나게 하면 말해주시오. 나는 모자라서 말해주지 않으면 모르는 바보니까.”
주자서가 뭐라고 말하려는데 하인이 기별하며 말했다.
“온공자. 객실이 준비되었습니다.”
온객행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자서를 일으키며 말했다.
“세목을 준비했다고 하니 가서 씻으시오.”
주자서는 온객행에게 이끌려 객실로 향했다.

따끈한 물이 담긴 커다란 목욕통은 객실 오른편에 있는 곁방에 준비되어 있었다. 주자서는 세목이라 하여 간단히 영견에 물을 묻혀 몸을 닦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본격적인 목욕통을 이용할 줄은 몰라서 얼떨떨했다. 온객행은 주자서를 곁방 안으로 밀어 넣으며 말했다.
“어서 씻게. 고상이 사나흘에 한번은 씻겨야 한다고 했는데 이제야 그대를 씻기는군.”
온객행의 말에 하인이 주자서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주자서가 어색하게 웃으며 머뭇거리자 하인이 물었다.
“시중을 들 아이들을 부를까요?”
주자서가 당황하며 손사래 치며 말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제가 하겠습니다.”
온객행이 하인에게 물었다.
“시중이라니?”
주자서가 하인을 보고 말했다.
“세목이 끝나면 어찌할까요?”
하인이 소매를 들어 공수하고 인사하며 말했다.
“그냥 두시면 저희가 치우겠습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시면 내원에 있는 하인에게 말씀하십시오.”
그리고 곁방을 나갔다. 하인이 나가는 것을 빤히 보고 있던 주자서가 고개를 돌려 온객행을 보았다.

온객행은 병풍 너머에 있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목욕통에 다가가 물을 만지고 말했다.
“아주 뜨겁네. 조심해야겠어.”
주자서가 온객행에게 다가갔다. 온객행이 주자서를 보고 멀뚱히 서 있자 주자서가 온객행에게 말했다.
“정말 시중이 필요하신 것이 아니면 저는 이만.”
온객행이 돌아 나가려는 주자서를 붙잡고 말했다.
“유서. 무슨 소리인가? 어서 씻으라니까?”
주자서가 목욕통과 온객행을 번갈아 보더니 말했다.
“제가요?”
온객행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자서가 얼굴이 빨개져서 고개를 숙이자 온객행이 주자서를 보고 있다가 덩달아 부끄러워져 놀란 듯이 말했다.
“아! 내가 자리를 비켜주겠네.”
그리고 곁방의 장지문을 닫고 나갔다. 온객행은 내원을 거닐다가 정원을 쓸고 있는 하인을 만났다. 온객행이 하인에게 다가가 말했다.
“이보게. 혹시 머릿기름을 좀 얻을 수 있겠는가?”
하인이 다가온 온객행에게 공손히 인사하고 말했다.
“공자께서 쓰실 것입니까?" 온객행은 조금 부끄러워져서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내자에게….”
하인이 빙긋 웃더니 말했다.
“객실로 가져다드리면 되겠습니까?”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고맙네.”
뒤돌아서 가려는 하인을 붙잡고 온객행은 품에서 염낭을 꺼내 은정을 쥐여 주고 활짝 웃었다.

주자서는 목욕통을 한참 보다가 결심을 하고 옷을 벗기 시작했다. 이런 황송한 대접을 또 언제 받아 볼까 싶은 생각도 있었고, 따뜻한 물에 들어가면 조금 굳어 있는 몸과 마음이 풀어질 것 같기도 했기 때문이다. 굉갑을 풀고 가죽 요대를 풀어 바닥에 놓았다. 주자서는 옷을 벗어 병풍에 걸어 두고 신발을 벗고 족건도 벗었다. 옷을 다 벗고 목욕통 안에 들어간 주자서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목욕통의 물은 뜨겁다고 하기보다는 미지근했는데 날이 춥지 않아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작은 도자기 그릇에 조협(皂莢)이 들어 있었다. 주자서는 콩깍지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상투를 튼 머리를 내리고 목욕통에 고개를 기댔다. 나른한 것이 잠깐 쉬었다가 씻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온객행은 반 시진이 넘도록 곁방에서 나올 기색이 없는 주자서에 애가 탔다. 혹시 무슨 일이 있을까 싶어 장지문 앞에서 이리저리 부산을 떨며 움직이는데도 곁방에서 기척이 없으니 더 불안한 것이다. 그렇다고 들어가서 벗은 몸을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니 온객행은 마음이 뒤숭숭했다. 내원에서 만났던 하인이 곁방을 정리하러 왔는지 온객행에게 다가와 물었다.
“아직도 나오지 않으셨습니까?”
온객행이 장지문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아직. 아직 조금 더 기다려주게.”
하인이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물이 많이 식었을 텐데…. 갈아입으실 옷은 있으십니까?”
온객행이 놀란 듯이 하인의 손을 잡고 말했다.
“맞아! 갈아입을 옷이 없네. 어쩌지? 그래서 나오지 못하는 모양이야.”
하인이 온객행을 보고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뿌리쳤다.
“갈아입을 옷을 준비할까요?”
하인의 말이 끝나자 마자 장지문이 열리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푹 젖은 주자서가 하얀 내의만 걸치고 나왔다.

너무 놀란 온객행은 얼른 장포를 벗어 주자서에게 둘러주며 말했다.
“유서! 이게 무슨….”
주자서는 온객행이 법석을 떠는 것은 개의치 않고 손에 들고 있는 옷을 하인에게 건네며 말했다.
“사졸의 옷을 빌렸는데….”
하인이 옷을 받아 들며 말했다.
“옷을 준비해 드릴까요?”
주자서가 온객행이 둘러준 장포에 팔을 꿰며 말했다.
“아….”
온객행이 하인을 물리며 말했다.
“여기는… 어… 가보시오.”
주자서가 고개를 조아리고 멀어지는 하인에게 말했다.
“부탁드립니다. 시위나 사졸이 입던 옷도 괜찮습니다.”
하인이 어깨너머로 주자서를 힐끔 보고 고개를 꾸벅하더니 외실 쪽으로 향했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그를 객실로 끌고 가며 말했다.
“유서. 어찌… 어찌….”
주자서는 온객행의 반응에 조금 부끄러워져서 입고 있는 장포를 여몄다.
“사내끼리 뭘 내외 하시오.”
온객행이 주자서를 객실 안에 먼저 들여보내고 장지문을 닫으며 말했다.
“어찌! 당연히 내외해야지요!”
주자서는 온객행의 반응에 멋쩍어서 입고 있는 장포를 보았다. 그의 젖은 머리카락이 온객행의 장포를 적시고 있었다. 주자서가 장포를 벗으려고 하자 온객행이 놀라서 다가와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
“왜… 왜 이러시오?”
주자서가 장포가 젖은 부분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옷이 젖습니다.”

주자서가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 온객행이 주자서의 얼굴을 잡았다. 주자서가 ‘앗’하는 사이 온객행이 얼굴을 붙여 입술을 맞췄다. 입술을 물고 핥고 빨더니 곧 입 안으로 온객행의 혀가 들어와 입안을 희롱했다. 주자서는 온객행이 이럴 때마다 대체 뭘 어떡해야 하는지 몰랐다. 전에는 밀어냈지만 지금은 밀어내기도 곤란했고 무엇보다 예전만큼 그렇게 낯설지도 않았다. ‘희롱도 많이 하면 익숙해지는 구나’ 같은 생각을 하다 주자서는 숨이 막혀서 뺨에 얹어진 온객행의 손을 잡았다. 온객행이 입을 떼고 이마를 맞붙이고 주자서를 불렀다.
“유서… 유서….”
주자서의 가쁘게 몰아쉬던 숨이 점차 평온해지자 온객행은 다시 주자서의 입술을 찾았다. 주자서의 손이 온객행의 어깨를 잡았다. 온객행은 밀어내는 기색 없이 얹어진 그 손이 사랑스러워서 어쩔 줄 몰랐다.

온객행이 한참 주자서의 입가를 희롱할 때 밖에서 하인이 기별해왔다.
“옷을 가져왔습니다.”
온객행은 주자서를 놔주고 싶지 않아서 입술을 떼고 주자서를 끌어안고 말했다.
“거기 두고 가시오.”
하인이 말했다.
“저는 물러가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온객행은 하인의 기척이 없어질 때까지 주자서를 꼭 안고 있다가 하인이 내원에 다다랐을 때 다시 주자서의 입술을 찾았다. 주자서가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흑랑. 옷을….”
온객행이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조각자나무 냄새가 나.”
주자서가 온객행의 품에서 나와 장지문으로 향하며 말했다.
“조협을 사용해서 씻었으니까요.”
장지문을 열려는 주자서의 소매를 잡아당겨 멈춘 온객행이 말했다.
“저기 병풍 뒤에 가 계시오.”
주자서가 침상 옆에 놓여있는 병풍을 보고 온객행이 시키는 대로 병풍으로 갔다.

병풍 뒤에는 크고 작은 함과 옷걸이가 있었다. 주자서는 함을 열어 보았지만 옷이 들어 있지는 않았다. 주자서가 함을 다 둘러보고 병풍에서 나오자 온객행이 하인이 가져온 옷을 펴보며 말했다.
“이것은 무명이 아니오? 소매도 짧고 이런 옷을 입힐 수는 없소.”
주자서가 온객행이 옷을 올려 놓은 탁상으로 가서 옷을 보며 말했다.
“이런 옷이 어때서요. 저는 편해서 좋습니다.”
주자서가 온객행의 장포를 벗고 옷을 입으려고 하자 온객행이 주자서의 앞섶을 잡고 말했다.
“유서! 병풍 뒤에 가서 입으시오.”
주자서는 고개를 들어 빨개진 온객행의 얼굴을 보고 부끄러워져서 헛기침을 하고 탁상에 놓인 옷을 들고 병풍으로 갔다. 입고 있던 온객행의 장포를 벗어 걸어 두고 내의 위에 서원 시위가 입는 옷 같은 호복과 바지를 입었다.

온객행은 병풍 뒤로 가는 주자서를 보았다. 자신의 장포를 입고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는 주자서는 온객행에게는 조금 낯선 것이라 마음이 울렁거렸다. 객실 안을 비추는 은은한 불빛에 병풍 너머로 옷을 갈아입는 주자서의 그림자가 보였다. ‘저 치는 일부러 저러는 걸까?’ 병풍 뒤에 비치는 주자서의 모습이 너무 야살스러워서 온객행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다 주자서가 한 말이 떠올랐다. ‘나는 사내를 좋아하지 않소.’ 온객행은 조금 슬퍼졌다. 온객행은 주자서가 자신을 좋아해 준다고 하면 수선이니 흑룡이니 하는 것도 다 내던져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온객행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유서. 나를 좋아해 줘요. 좋아해 줘요. 유서.”
주자서가 옷을 다 갈아입고 온객행의 장포를 들고 말했다.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다가가 젖은 머리를 만지며 말했다.
“어서 머리를 말려야겠어요.”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온객행의 옷을 들어 보이고 말했다.
“저 때문에 옷이 젖었네요.”
온객행은 주자서를 보고 조금은 슬프게 웃었다.

蛇苺 第27

趁火打劫 | 27. 불이 난 틈에 도둑질을 한다.

온객행은 반도원에서 열린 구름길을 내려오기 위해 어지간히 애를 써야 했다. 반도원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복숭아를 노리는 영혼이 매우 많았기 때문에 그들을 피해 다시 요대로 돌아오는 길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온객행은 자신에게 돌진하는 정신 나간 영들을 이리저리 피하며 혼탁한 구름 속에서 요대로 향하는 길을 찾아야 했다. 그러다 온객행은 주자서가 걱정되어 짜증이 일었다. 온객행은 구름 속에 물을 모아 주변에 두르고 다가오는 것들을 위협하다 구름 사이에 밖으로 통하는 틈을 발견했다.

고상은 요대의 중궁 천장에 있는 그림 속의 구름에서 나와 금모원군을 만났다. 금모원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생각보다 빨리 왔네. 누군가 될 줄은 알았지만 설마 너일 줄이야.”
고상이 다소곳이 손을 모으고 인사하며 말했다.
“황룡 하(夏), 금모원군을 뵙습니다.”
금모원군이 고상을 보고 말했다.
“그래. 앞으로 동왕공을 잘 모시도록 해라.”
고상이 고개를 힐끔 들어 금모원군을 보았다. 금모원군은 옆에 서 있는 양조에게 뭐라고 말하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 나른하게 용호좌 위에 기댔다.

양조가 중궁을 나가자 상석 옆에 서 있던 시동이 다가와 고상에게 말했다.
“황룡의 삼하궁(三河宮)으로 가 보시겠습니까?”
고상이 손을 내리고 시동에게 물었다.
“거기가 어디인데요? 저희 주인은 어디 계세요?”
시동이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산천대제께서는 동해에 계십니다.”
고상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이참! 내 주인은 태평호의 무지기란 말이예요.”
시동이 당황하며 무릎 꿇고 말했다.
“황룡. 통촉하소서.”
고상이 당황해 시동의 팔을 잡고 일으키며 말했다.
“주요는… 무지기는 어디 있어요?”
시동이 상석 쪽으로 힐끔 눈치를 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현악에 계십니다.”
고상이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소매를 들어 금모원군께 인사하고 현악, 무당산으로 향했다.


남쪽에서 천존의 명령을 받아 서둘러 온 주작과 적룡은 황룡이었던 후토의 모습을 보고 당황했다. 그래도 사람 꼴은 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너무 초라한 모습이라 보는 이가 오히려 민망했다. 적송자가 말했다.
“규산으로 데리고 가면 되네.”
주요가 후토를 보고 말했다.
“사람 가까이에 두면 위험하네. 그는 사람을 먹으니.”
적룡이 들고 있던 항아리의 천을 뜯어내자 후토는 소리를 지르다 항아리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적룡이 다시 천을 둘러 꼼꼼히 봉인하며 말했다.
“경계하겠습니다.”
주작이 소매를 들어 적송자와 주요에게 인사하며 말했다.
“누를 범했습니다. 현명을 부탁드립니다.”
주요 역시 소매를 들어 적송자에게 인사했다. 적송자는 인사하는 이들을 보고 있다가 신당으로 향하며 말했다.
“그럼 이 노인네는 먼저 가보겠네.”
주요가 자세를 바로 하고 주작을 보고 말했다.
“축융대선, 전당군. 저도 그럼 이만.”

주작이 주요를 붙잡으며 말했다.
“수원. 태평호의 화사가 승천했습니다.”
주요가 주작에게 다가가 말했다.
“승천? 아상이요?”
주작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천존께서 봉호를 내리셨소. 장강 강주에 검영이 북해 용왕으로 봉해졌습니다.”
주요가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강주의 검영이요? 흑망이 아니라요?”
적룡이 웃으며 말했다.
“천명을 받은 것은 검영과 흑망뿐이 아닙니다.”
주요가 적룡을 보고 물었다.
“그럼 흑망은…?”
신당에서 패하가 나오며 말했다.
“원군께서 뭐로든 봉하셨겠죠.”
주요가 뒤 돌아 패하를 보고 말했다.
“원군께서…? 그럼 요대에 있는 겁니까?”
주작과 적룡이 패하에게 인사하고 말했다.
“반도원에 있겠군요.”
패하가 주요에게 다가가 말했다.
“등선했으니 앞으로 종종 보겠군요.”
주요가 물었다.
“아상은… 화사는 어디에 있습니까?”
주작이 말했다.
“반도원에 함께 있지 않을까요?”
주요가 패하를 보고 물었다.
“발의 아이는요?”
패하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신당으로 들어오는 송문 앞에 서 있는 시위에게 갔다.


지주가 몸에서 뿜어냈던 실을 거두고 말했다.
“진정해. 진정해. 우리가 이럴 필요가 있나? 이름이 뭔가?”
주자서가 지주를 노려보며 말했다.
“아상은 어디 계시지? 무슨 짓을 한 거야?”
지주가 다가가자 주자서는 칼을 더 바짝 목에 가져 대며 말했다.
“아상께서는 어디 계시는가?”
지주가 혀를 차며 말했다.
“나야 모르지! 그것을 나에게 묻나?”
그러다 밖에서 지주에게 보고를 하던 시위가 인사하는 소리가 들렸다.
“오공공.”
주자서가 즉저의 호칭에 잠시 멈칫한 사이 지주가 주자서의 손에서 칼을 빼앗아 다시 주자서의 검집에 넣고 그를 무릎 꿇리며 말했다.
“고개는 들지 말고. 내 말이 끝나면 내게 인사하고 밖으로 나가서 시위 곁에 있게.”
주자서가 고개를 들어 지주를 보자 지주가 주자서의 머리를 누르며 말했다.
“고개 들지 말라고.”

즉저가 방 안으로 들어와 지주에게 말했다.
“사람이 하는 일은 믿을 수가 있어야지!”
지주가 주자서의 어깨를 툭 치자 주자서는 포권하여 인사하고 방을 나갔다. 즉저가 나가는 사람을 보고 물었다.
“무슨 일인가?”
지주가 침상에 걸터앉고 말했다.
“천주서원(天柱書院)의 일이네. 일단 황룡이 없어졌으니 보고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즉저가 탁상으로 가서 앉으며 말했다.
“대체 어디를 다녀온 거야? 현무께서는 또 어디 가셨나?”
지주가 짜증 내며 말했다.
“그걸 왜 내게 묻소?”
즉저가 혀를 차며 말했다.
“황룡 그 놈이 천존께 봉인 당했네. 이제 어디서 사람을 데려오지?”
지주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 고약한 취미생활 좀 나 모르게 하시오.”
즉저가 지주를 쏘아보며 말했다.
“자네야 뒷배가 있으니 아쉬울 것이 없지.”
지주가 자리에서 일어나 탁상으로 가서 앉으며 말했다.
“지금 그게 문제입니까? 천존께서 아셨으면 우리도 처벌을 피할 수 없어요.”
즉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전부 황룡에게 뒤집어씌우면 될 일 아닌가. 오히려 현무께서 공을 세우셨으니 이번에야 말로….”
지주가 차를 준비하며 말했다.
“우사께서 오셨어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즉저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발의 아이가 어디 갔을까?”
지주가 즉저를 보고 물었다.
“영력도 없고 그냥 사람 아니오? 그 치를 찾아서 어쩌려는 것인지….”
즉저가 지주를 보고 혀를 차며 말했다.
“현무께서 말씀하실 때 뭐 했나? 황룡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은 뒤집어씌우는 것이고 화풀이할 상대는 또 다른 이야기 아닌가?”
지주가 코웃음 치며 말했다.
“그러니까 그 고약한 취미생활 좀 나 모르게 하라니까요.”

즉저가 지주에게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 치는 흑망의 희첩이네.”
지주가 손을 멈추고 즉저를 보고 말했다.
“흑망의 희첩?”
즉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다행히 흑망 그 놈이 흑룡이 되지는 않았지만 뭐라도 쥐고 있는 것이 낫지 않겠나?”
지주가 코웃음 치며 말했다.
“그렇게 경계할 필요 없습니다.”
즉저가 장지문으로 향하며 말했다.
“자네야 뒷배가 있으니 아쉬울 것이 없지.”
지주가 즉저를 따라 나가며 말했다.
“천룡께서도 저의 뒷배가 아닙니까.”
즉저가 콧방귀를 끼며 말했다.
“내게 다 맡겨 놓고 대체 뭘 하고 다니는 건가?”
지주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뒷배가 있다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끈 떨어진 연이 되는 것은 항상 시간의 문제입니다.”
즉저가 고개를 돌려 지주를 보고 물었다.
“자네?”
지주가 즉저를 배웅하며 말했다.
“제가 영귀 어르신께 내쳐지면 나는 천룡 밖에 없어요. 아시죠?”
즉저가 웃으며 말했다.
“헛소리. 현무께서 계시는데 무슨 걱정인가?”
지주가 즉저에게 말했다.
“사람의 발로 도망쳤으니 멀리 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벌써 반나절이나 지났으니 모를 일이에요. 수색 범위를 서원 밖으로 넓히시죠.”
즉저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며 말했다.
“사람은 매일 자고 먹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을 테니 멀리 가지 못했을 거야.”
지주는 즉저를 잘 달래서 배웅하고 다시 별궁 안으로 들어오면서 문 앞에 시위 옆에 고개를 숙이고 서 있는 주자서의 팔을 잡아 별궁 안으로 들어갔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지주의 불평을 들은 주자서가 눈치를 보다 탁상이 있는 자리에 가서 앉아 지주가 내리다 만 찻물을 마셨다.

지주가 주자서를 보고 물었다.
“배가 고프겠군. 뭐라도 먹겠나?”
주자서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괜찮소. 나를 왜 도운 것이오?”
지주가 주자서 앞에 앉아 찻주전자에 물을 담으며 말했다.
“내가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아무래도 현무께서 원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야.”
주자서가 찻잔을 내려놓고 물었다.
“아상은 어디 계시오?”
지주가 찻잔에 차를 따르며 말했다.
“하늘로 승천했으니 지금쯤 어디 있는지 나야 모르지.”
주자서가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승천? 그게 무슨 소리요?”
지주가 찻잔을 들어 ‘후룩’ 마신 다음 말했다.
“네 몸에 있던 발의 영력이 사라졌네. 느끼지 못하겠는가?”
주자서는 지주의 말에 확실히 맥이 풀리고 고단한 느낌이 사라지고 몸에 힘이 들어간 것이 느껴졌다.

주자서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지주가 말을 이었다.
“발의 힘으로 승천했으니 못해도 신선이 됐을 것 아닌가?”
주자서가 다시 지주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자 지주가 물었다.
“너는 화사랑 무슨 관계인데 그렇게 화사를 찾는 것이냐?”
주자서가 표정을 구기고 입을 달싹이며 대답을 망설였다. 지주는 찻잔에 남은 차를 다 마시고 손을 내젓고 말했다.
“복잡한 사정이 있는 모양이군. 됐네. 별로 알고 싶지 않아.”
주자서가 고개를 숙이자 지주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나중에 천룡이나 지주를 벌한다고 하거든 좀 도와주게. 천룡이 벌을 받으면 나의 일을 누구에게 미루겠는가?”
주자서가 표정을 구기고 말했다.
“제가 뭐라고 돕는다는 말입니까? 일개 사람이라면서요?”
지주가 주자서를 지나쳐 침상으로 가 벌렁 눕고 말했다.
“그것도 그렇군. 난 좀 쉬어야 하겠으니 자네도 좀 쉬게.”
주자서가 장지문을 보고 물었다.
“오공공께서 다시 오지 않을까요?”
지주가 신발을 벗고 침상 위로 올라가며 말했다.
“지금 오공공 발등에 불이 떨어졌으니 여기 다시 올 여유가 생길지 모르겠군.”
그리고 이불을 펴서 덮었다. 주자서는 잠이 든 지주를 보고 있다가 탁상에 있는 차를 좀 더 마시고 평상으로 가서 몸을 뉘었다.

주자서는 생각했다. 어떤 일에 휘말린 것 같은데 주자서는 아직도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으니 답답했다. 몸에 있는 영력 때문에 생긴 일이니 영력이 사라졌으면 더 이상 주자서의 효용(效用)이 없어진 셈이다. 어젯밤에 객실에서 나와 주자서의 머릿속을 맴돌던 생각이 다시 머릿속을 채웠다. 돌아갈 곳이 없다는 것은 참 외로운 일이다. 제대로 작별 인사를 하고 싶었는데 얼떨결에 휩쓸려서 혼자만 멀리 쓸려온 느낌이다. 태평호에서 기연(奇緣)으로 만난 이들을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주자서는 조금 아쉬웠다. 아니 정말 조금일까? 요대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주자서는 본인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놓지 못했다. 하지만 무당산의 서원이라는 이 곳에 다시 살아 숨 쉬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니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그러다 자신의 처지가 생각나 마음이 답답해지는 것이다. 주자서는 휘몰아치는 생각에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주자서의 얼굴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지주와 함께 주자서를 호송했던 시위, 시위대장 그리고 즉저 정도이다. 일단 서원의 사졸로 잘 섞여 있다가 서쪽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서쪽은 산세가 험해 사람이 많이 살지 않아 숨어 살기 좋았다. 아니 좋다고 한다. 주자서는 아직 서쪽에 가본 적이 없다. ‘한 갑자… 오래 살 팔자가 아닌 줄 알았더니….’ 그 한 갑자를 함께하자던 이가 있었는데. 주자서에게 기나긴 한 갑자를 짧다며 아쉬워한 이가 있었는데. 혼자 버티려고 하니 버겁다. 그렇다고 두 분의 모친께서 주신 목숨을 버릴 수는 없어서 버티는 것이다. 전장에서 버텼던 것처럼. 주자서는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겠다고 평상에 앉아 있었다.

해가 져서 사위가 다 어두워질 동안 평상에 앉아 있던 주자서는 침상에 누워있는 지주를 향해 포권하여 인사하고 별궁을 나왔다. 순찰을 도는 다른 시위, 사졸과 섞여서 서원 이곳저곳을 떠돌다 동문의 번까지 서게 됐다. 주자서와 함께 번을 서는 사졸이 동문에 기대서며 말했다.
“나라에서 운영하는 서원이라 벌이가 좋다더니 기이한 일이 일어나 어디 무서워서 버티겠는가?”
주자서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정말 기이합니다.”
사졸이 주자서를 힐끔 보며 말했다.
“이곳으로 온 지 얼마 안 된 모양이군? 자네도 팔려 왔나?”
주자서가 고개를 숙이고 대답하지 않자 사졸이 다시 일어나 자세를 바로 하고 말했다.
“사람이 없어졌는데 찾는 이가 없으니 더 기이하지.”
주자서는 자신의 처지가 사졸이 말하는 것과 같아서 조금 우울해졌다.


주작과 적룡이 규산으로 향하고 패하와 함께 요대로 향하던 주요는 구름 속을 날고 있는 황룡과 마주쳤다. 고상이 주요를 발견하고 그의 품에 안겨 들며 말했다.
“주요!”
둘은 한참 안고 있다가 주요가 고상을 떼어내고 얼굴을 쓸며 말했다.
“아상. 어떻게 된 일이야?”
고상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주요. 나 황룡이 됐어. 그래서 화사인데도 빨갛지가 않았나 봐.”
주요가 고개를 돌려 패하를 쏘아보고 말했다.
“황룡?”
고상이 주요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며 말했다.
“응. 이제 주요가 하늘로 가면 따라갈 수 있어. 그렇지?”
주요가 다시 고개를 돌려 고상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이제 내가 아상을 따라가야 하겠는데?”
고상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 뭐 어떻게든 같이 있으면 되는 거지.”
주요가 고상을 품에서 놓고 패하를 보고 말했다.
“원군께서 알고 계시는 일이오?”
패하는 조금 놀란 얼굴을 하더니 말했다.
“저는 현악에서 일어나는 일 말고는 들은 것이 없습니다.”
주요는 고상을 보고 한숨 쉬며 말했다.
“이 어린 화사를 황룡자리에 앉혀 놓으면 그 뒷감당을 누가 합니까?”
패하가 다시 옥산으로 향하며 말했다.
“수원께서 바빠지시겠군요.”
주요도 고상을 데리고 다시 옥산으로 향했다.

날이 다 저물어 옥산에 도착했다. 청조의 안내로 다시 요대 안으로 들어온 주요와 고상은 금모원군을 배알(拜謁)했다. 요대에는 청룡과 백룡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청룡과 백룡이 고상에게 다가가 머리를 조아리며 인사했다.
“황룡을 뵙습니다.”
고상은 당황하여 소매를 들어 인사했다.
“어… 어….”
주요가 고상의 옆에 서서 소매를 들어 말했다.
“구망대선과 오윤왕(敖潤王)을 뵙습니다.”
고상이 주요를 힐끔 보고 따라서 고개를 숙였다. 청룡이 몸을 바로 세우고 품속에서 황룡의 인장을 꺼내 주요에게 건네고 말했다.
“삼하궁의 주인이 되셨으니 저희와 함께 가시면 됩니다.”
주요가 인장을 받아 한참 보고 있다가 그것을 고상에게 주며 말했다.
“아상. 아… 하천선(夏天仙).”
고상이 주요의 손에 들린 인장을 받아 살펴보며 말했다.
“천선은 무슨. 그냥 아상이라고 해.”
백룡이 고상을 보고 살포시 웃었다. 주요가 청룡과 백룡의 눈치를 보며 고상에게 다가가 귓가에 속삭였다.
“천존의 명으로 등선하는 이는 많지 않아.”
고상은 인장을 다시 주요에게 건네고 말했다.
“그래? 우리 태평호로 안가?”
청룡이 웃으며 말했다.
“태평호에는 주인이 생겼으니 저희와 삼하궁으로 가시지요.”
고상이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태평호의 주인은 주요인데….”
주요가 고상의 소매를 잡고 청룡에게 말했다.
“구망께서 먼저 가시지요.”
청룡이 고개를 돌려 원군에게 인사하고 중궁을 나갔다. 주요와 고상도 원군께 인사하고 청룡과 백룡을 따라 중궁을 나왔다.


깊은 물속으로 빠져나온 온객행은 뱀의 모습으로 변하여 수면 위로 올라갔다. 그가 도착한 곳은 이상하게도 요대가 아니라 태평호였다. 방금 온객행이 수면 위로 나오면서 만들어낸 물결이 태평호에 파동을 일으켰다. 하늘에 떠있는 보름달을 보고 온객행은 ‘벌써 미월이구나’ 했다. 달빛을 받은 온객행의 비늘은 그 전보다 더 푸르게 빛났다. 온객행은 그제야 자신의 모습이 더 이상 뱀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온객행은 물에서 나와 모습을 바꾸어 부유각으로 향했다. 부유각은 소령 선창에 매여 온객행이 떠나기 전과 같은 모습이다. 온객행은 부유각 내부를 살펴보고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여 백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백택에는 천교와 보살이 화로에 더덕을 굽고 있었다. 천교가 말했다.
“다들 어디 간 걸까?”
보살이 더덕을 뒤집으며 말했다.
“이렇게 실한 더덕은 진짜 오랜만이야.”
천교가 보살 옆에 쪼그려 앉으며 말했다.
“아상도 더덕 좋아하는데….”
온객행이 재실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아상은 귀한 몸이 되셔서 앞으로 보기 힘들거요.”
천교와 보살이 일어나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파사공자? 어찌 뭍에 나와 계십니까?”
온객행이 물었다.
“주요는 어디 있습니까?”
보살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주인께서 저희에게 어디 가신다고 말씀하고 가십니까?”
온객행이 다시 뒤돌아 나가려고 하자 천교가 온객행을 붙잡았다.
“파사공자! 더덕 드실래요?”
온객행이 뒤돌아 천교와 보살을 보고 말했다.
“이제 내가 태평호의 주인이오.”
그리고 모습을 용으로 바꿔 하늘로 날아올랐다. 천교와 보살이 문간으로 나와 날아가는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태평호의 주인이 바뀌었나?”
보살이 천교 옆에 서있다가 다시 더덕을 올려 놓은 화로로 가서 말했다.
“앗! 내 더덕! 좀… 탔어!”

온객행은 옥산으로 가려다 마지막에 고상이 주자서를 놓고 온 곳이 현악 금정이라는 것이 떠올라 현악으로 향했다. 태평호에서 현악까지는 거리가 멀지 않았기 때문에 해가 떠오를 즈음에 도착한 온객행은 현무를 모시는 천주서원으로 향했다. 산문에 도착한 온객행은 모습을 사람으로 바꾸어 사문을 지키고 있는 시위에게 물었다.
“지주는 서원에 있는가?”
온객행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포권하며 말했다.
“지주대인은 왜 찾으시오?”
온객행이 조금은 초조한 얼굴로 말했다.
“내가 부탁할 것이 있어 찾아왔소. 흑망이 왔다고 전해주겠소?”
시위는 온객행의 얼굴을 빤히 보고 움직일 낌새가 보이지 않자 온객행이 품속에서 염낭을 열어 은정을 쥐여주고 다시 말했다.
“지주대인께 흑망이 왔다고 전해주시오.”
그제야 시위는 은정을 손에 놓고 굴려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서원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당황한 얼굴의 지주가 나와 온객행을 반겼다.
“흑망! 진정하고 내 말을 들어보게.”
온객행이 눈썹을 찌푸리며 지주를 보자 지주가 온객행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서원 안으로 안내하며 말했다.
“내가 좀 더 신경을 썼어야 하는데 그새 도망갈 줄 어찌 알았겠는가?”
온객행이 지주의 팔을 뿌리치며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대체 아상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지주가 표정을 구기며 물었다.
“대체 그 화사가 뭐라고 다들 그러는 것인가?”
온객행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
“그 화사가 황룡이 되었으니 큰일 났군 협각(鋏角)”
지주가 당황하며 온객행의 입을 막고 소리쳤다.
“으악! 흑망! 제발. 언제 적 이름인가 조용히 좀 하게.”
그러더니 온객행을 놓아주고 다시 물었다.
“뭐라고? 황룡이 되었다고?”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유서는 어디 있나?”
지주가 온객행을 별궁으로 안내하며 말했다.
“화사가 황룡이 되었다고? 이거 큰일이군.”
온객행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우리 유서는 어디 있나? 발의 후손은 어디 있어?”
지주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흑망. 일단 차를 한잔하면서 내 얘기를 들어보면….”
그들이 별궁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 동문이 시끄러웠다.


즉저는 무당산 근처를 모두 수색했지만 발의 후손을 찾지 못했다. 초조해진 즉저는 일단 다시 서원으로 돌아가 현무께 상황을 보고한 뒤에 다시 수색을 하려고 했다. 동문으로 들어오던 즉저의 눈에 주자서가 동문 앞에서 번을 서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밤새 있었는지 조금 지친 기색을 한 주자서는 눈을 감고 있었는데 자는 것 같지는 않았다. 즉저가 코웃음을 치며 주자서에게 다가가 말했다.
“과연 등잔 밑이 가장 어둡군.”
주자서는 감고 있던 눈을 뜨고 태평호에서 온객행에게 두루마리를 건넸던 남자를 보고 놀라 바닥에 주저앉았다. 즉저는 주저앉은 주자서를 내려다보고 있다가 손을 들어 시위에게 그를 붙잡게 했다. 주자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붙잡으려는 시위를 공격했다. 주자서는 꽤 오랫동안 전장에서 굴렀기 때문에 시위 서넛을 상대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온종일 굶었던 터라 점점 몸에서 힘이 빠지는 것은 어찌 할 수가 없었다.

한창 대치하는 주자서와 시위를 보던 즉저가 혀를 차더니 시위를 물리고 말했다.
“너도 사람치고는 꽤 쓸만한가 보구나.”
주자서가 손을 모아 공수하고 말했다.
“오공공. 저에게 더 이상 발의 힘이 없으니 보내주십시오.”
즉저가 표정을 구기며 주자서를 보자 주자서는 무릎을 꿇고 말했다.
“보내주시면 다시 돌아오지 않겠습니다.”
즉저가 주자서에게 다가가 말했다.
“너를 보내주고 말고는 내가 정할 일이 아니다.”
즉저가 주자서의 앞섶을 잡고 그를 일으켜 세웠다. 시위가 다가와 주자서의 손에서 칼을 빼앗고 손을 등 뒤로 묶었다. 주자서가 즉저를 보고 몸부림치며 말했다.
“오공공!”
별궁에서 나온 지주가 즉저에게 다가가 물었다.
“천룡? 무슨 일이시오?”
즉저가 손이 묶인 주자서를 발치에 무릎 꿇게 하고 뒤돌아 지주를 보며 말했다.
“드디어 찾았어.”

지주 옆에 서 있던 온객행은 바닥에 무릎 꿇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낯이 익었다. 즉저는 지주 옆에 서 있는 온객행을 보고 눈에 띄게 당황하더니 말했다.
“그러니까… 흑망. 그러니까… 현무께서….”
무릎을 꿇고 숨을 몰아쉬고 있는 주자서에게 온객행이 다가가며 말했다.
“유서?”
주자서가 고개를 들어 온객행을 보았다. 온객행은 달려가 주자서를 끌어안고 말했다.
“유서. 유서….”
주자서는 다시 온객행을 본 것이 너무 반가워서 눈물이 조금 났다. 주자서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온객행을 불렀다.
“흑랑.”
온객행이 주자서를 놓아주고 얼굴을 보고 말했다.
“유서. 밥은 잘 먹었어? 잠은 잘 잤어? 왜… 왜 여기 있어?”
온객행이 묶여 있는 주자서의 손을 풀어주고 그의 어깨에 팔을 둘러 일으키며 말했다.
“유서. 배고프지? 어서 가서 밥을 먹자.”
주자서가 즉저의 눈치를 보며 온객행의 소매를 붙잡자 온객행이 즉저를 보았다.

즉저는 온객행을 보고 표정을 구기고 있다가 말했다.
“현무께서 그 사람에게 볼일이 있네.”
지주가 즉저에게 다가가 말했다.
“천룡. 일단 찾았다는 보고부터 하지. 흑망은 내가 별궁에서 대접하겠네.”
즉저가 지주를 보고 말했다.
“잘 할 수 있겠나? 흑망은….”
지주가 즉저를 신당 쪽으로 밀며 말했다.
“아무렴! 나도 일단은 가좌가 아닌가.”
즉저가 시위대장을 불러 뭔가를 지시하고 신당으로 향했다. 지주가 즉저를 노려보고 있는 흑망의 소매를 별궁으로 잡아 끌며 말했다.
“흑망. 일단 내 얘기를 들어보게.”
주자서도 멀어지는 즉저를 보고 있다가 온객행을 마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온객행은 주자서의 얼굴을 한참 보고 있다가 주자서의 손을 잡고 별궁으로 향했다. 지주가 주자서를 힐끔 보고 입을 벙긋거리며 말했다. ‘도와주게.’ 그제야 주자서는 자기 몸에 영력이 사라진 것이 떠올라서 온객행을 조금 밀어냈다. 온객행은 주자서가 미는 대로 밀리다가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유서. 유서는 정말 뭘 입어도 아름답군.”
주자서는 온객행의 흰소리에 아연하여 표정을 구겼다. 지주가 눈치껏 별궁 외실의 장지문을 열고 들어가며 말했다.
“오랜만에 아침 식사를 해볼까?”

蛇苺 第26

混水摸魚 | 26. 물을 휘저어 물고기를 잡는다.

적송자가 현악에 도착했을 때 패하가 그를 구름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패하를 발견한 적송자가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강녕한가?”
패하는 적송자를 향해 소매를 들어 올리고 인사했다.
“영귀, 우사를 뵙습니다.”
적송자가 패하가 탄 구름 위에 올라타며 말했다.
“뭘 보고 있나?”
패하가 하늘의 구름을 보고 말했다.
“누군가 천존의 부름을 받고 승천한 듯합니다.”
적송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일단 삼원에 들어서면 나오고 싶어 하는 치가 없으니 땅이 한가해졌군.”
패하가 적송자를 보고 말했다.
“우사께서 현무를 맡아 주셨으면….”
적송자가 손을 들어 패하를 멈추고 말했다.
“어허! 그런 재수 없는 소리를.”

패하가 작게 웃으며 구름 아래 서원을 보고 말했다.
“제가 온 것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적송자도 아래를 내려 보며 말했다.
“현명은 정말 좀 모자란 것 같긴 해.”
패하가 소매를 들어 고개를 조아리고 말했다.
“제가 무능하여 죄를 지었습니다.”
적송자가 손을 내젓고 말했다.
“아니네, 아니야. 현무 자리를 하겠다는 포부가 있는데 뭐가 더 필요한가? 앞으로 잘 가르치면 되네. 시간은 많으니.”
패하가 적송자 앞에 무릎 꿇고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패하. 스승님께 인사 올립니다.”
그리고 적송자를 향해 세 번 절했다. 패하 옆에 서 있던 가신 역시 적송자를 향해 조아렸다. 적송자가 뒷짐을 지고 서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나는 아주 엄한 스승인데 말이야….”
패하가 고개를 들어 적송자를 보고 말했다.
“제자, 스승님의 가르침을 따르겠습니다.”
적송자가 ‘허허허’ 웃으며 구름 아래로 뛰어내렸다.

적송자는 서원의 신당으로 들어가 소리쳤다.
“동왕공!”
신위에 걸려있는 현무가 그려진 편액에서 검은 안개가 나오더니 곧 현무의 궁궐인 주극성(周極城)으로 향하는 문이 나타났다. 적송자가 문 앞에 서서 동왕공을 부르자 곧 동왕공이 나와 적송자에게 인사했다.
“적송자! 제가 발의 아이를 잡아 두었으니 가서 보시지요.”
뒤에서 현무와 황룡이 나와 소매를 들어 인사했다. 적송자가 표정을 구기며 황룡을 보고 말했다.
“어찌 저 치가 여기 있소?”
적송자의 물음에 현무가 공손히 답했다.
“황룡께서도 적송자와 마찬가지로 발에게 원한이 있지요.”
적송자가 황룡을 보더니 말했다.
“어찌 황룡이라 하는가? 저게 어디를 봐서 황룡이란 말이야? 파사만도 못하군.”
적송자의 말에 황룡이 고개를 들어 적송자를 노려보았다. 현무가 신당을 나가는 장지문을 열고 말했다.
“적송자 일단 가서 발의 아이부터 보시지요.”
적송자가 ‘흥’하고 콧방귀를 끼자 동왕공이 그의 소매를 잡고 신당으로 향했다. 주극성에서 지주와 즉저가 나와 그들의 뒤를 따랐고 황룡은 마지못해 발걸음을 옮겼다.

주자서를 가둬 둔 건물 주변에 있는 시위들은 누군가 치웠는지 건물 근처가 한산했다. 현무가 다가가 건물에 쳐 놓은 진을 걷고 안으로 들어갔다. 적송자도 현무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현무는 건물 내부에서 느껴지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당황했다. 설마 발의 아이가 죽어버린 것인가 싶어 객실을 뒤졌지만 아무도 없었다. 현무가 짜증을 내며 지주와 즉저를 불렀다. 지주가 다가와 말했다.
“대선, 화사가 발의 영력으로 승천하였으니 이제 그는 더 이상 쓸모가 없지 않습니까?”
현무가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발에게 원한이 남은 이들에게 화풀이 대상이 필요하지 않은가? 어서 가서 찾아오게!”
지주가 고개를 조아리고 방을 나갔다. 즉저가 현무에게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 치는 태평호에 봉인된 흑망의 희첩입니다. 살려 두시면 분명히 쓸모가 있을 것입니다.”
현무가 혀를 차며 말했다.
“쯧! 내가 고작 파사 따위의 일에 신경을 쓰란 말이냐!”
즉저가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대선, 그 파사는 수원대선께서 보살피고 있는 이가 아닙니까.”
현무가 즉저를 보고 눈을 가늘게 뜨더니 소매를 들어 그를 물리고 말했다.
“그대가 알아서 하게.”
즉저가 고개를 조아리고 객실을 나갔다.

적송자는 실내를 둘러보다 평상에 가서 앉고 말했다.
“그래서 발은 어디 있나?”
현무가 다가가 소매를 모아 공수하고 말했다.
“그것이….”
산천대제가 적송자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 말했다.
“봉인이 깨지면서 어쩌면 영혼이 타버렸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적송자가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물었다.
“봉인이 깨졌으면 그 힘은 어디 갔나?”
동왕공이 고개를 끄덕이며 현무를 보았다. 뒤따라 들어온 황룡이 장지문에 기대서 말했다.
“승천한 용이 취했겠지요.”
적송자가 눈썹을 찌푸리고 말했다.
“발이 허락하지 않으면 힘이 깃들지 않았을 텐데?”
동왕공이 적송자를 보고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 입니까? 봉인을 깨면 그 힘이 깃드는 것이 아닙니까?”
적송자가 ‘허허허’ 웃으며 말했다.
“그럼 모두가 서로를 죽여 힘을 취하려고 들지 않겠는가?”
동왕공이 표정을 구기고 일어나 현무에게 말했다.
“감히 나를….”
현무가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대제. 아닙니다. 황룡이 분명히….”
그리고 뒤로 돌아 황룡을 보았다. 황룡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그 세월 사시면서 수련도 안 하시고 뭘 한 것이오? 동왕공?”
산천대제가 자리에서 일어나 황룡에게 손가락질하고 말했다.
“감히! 하늘에서 쫓겨난 주제에 나를 능멸하느냐!”
황룡이 몸을 바로 세우고 산천대제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제가 동왕공을 어찌 못할 것 같아 그러십니까?”
산천대제가 주춤하며 현무를 보았다.

현무는 조금 지쳤다는 듯이 의자에 가서 앉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적송자가 ‘허허허’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어찌 구렁이의 말을 들으셨소?”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황룡을 보았다. 황룡이 적송자에게 다가가 말했다.
“우사께서 너무 오래 사셨지요.”
적송자가 웃으며 말했다.
“과연 수원이 한 말이 맞았군.”
그리고 황룡에게 다가가 말했다.
“너였군. 뇌공이 한 말뜻을 이제야 알겠어.”
적송자의 몸 주변으로 구름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하자 현무는 한숨을 쉬고 산천대제를 모시고 객실을 나갔다. 황룡이 적송자를 보고 말했다.
“우사께서 저를 예전의 황룡이라고 생각하신 다면 조금 서운합니다.”
적송자가 말했다.
“자네의 본모습이 어떻게 변했는지 오랜만에 구경해 봐야겠어”
황룡이 몸 주변으로 검은 기운을 모으며 말했다.
“저도 땅에서 많은 것을 배웠지요.”

현무가 객실에서 나와 산천대제에게 말했다.
“대제께서는 일단 동해로 돌아가 계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산천대제가 객실 안을 보고 말했다.
“그럼 발의 영력은 어디 있나? 내 영력은 어디에 있느냔 말이야?”
현무가 심각한 표정을 하고 말했다.
“누군가 취한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 소란을 천존께서 아셨으니 당분간은 조용히 있는 것이 좋겠습니다.”
산천대제가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
“내가 황룡과 내통한 것이 알려지면!”
현무가 산천대제를 달래며 말했다.
“대제께서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사방신의 수장이 되면 황룡의 일은 묻으면 될 일입니다.”
산천대제가 어깨너머로 객실을 흘겨보며 말했다.
“감히 지선(地仙)도 못될 구렁이 주제에.”
현무가 지주를 찾으며 산천대제의 소매를 잡았다.
“제가 수장이 되면 감히 구렁이가 저에게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산천대제가 흐뭇하게 웃으며 현무를 보았다.
“그래. 내가 믿을 수 있는 것은 현무뿐이지.”


패하는 저 멀리서 날아오는 주요를 발견하고 그를 멈추며 말했다.
“수원! 여기는 어쩐 일이오?”
주요가 패하를 붙잡고 말했다.
“우리 아상이… 아상의 진이….”
패하가 주요를 구름 위에 자리로 권하고 말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수원?”
주요가 구름 아래 서원이 시끄러운 것을 보고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패하? 무슨 일입니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예요? 저기에 아상이 있어요!”
패하가 주요를 달래며 물었다.
“아상?”
주요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아 고상을 찾았다.
“우리 아이. 아상 아상….”
주요는 주자서에게 줬던 비녀가 부러진 곳을 시작해서 서원의 기척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 패하를 보고 물었다.
“발의 영력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패하가 하늘을 보고 말했다.
“누군가 발의 영력을 얻어 승천한 듯합니다.”
주요가 고개를 돌려 패하를 보고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누군가 영력을 취했다구요?”
패하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누군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주요가 서원으로 가려고 하자 패하가 주요를 막으며 말했다.
“수원. 저곳에 후토가 있습니다.”
주요는 금방 울상이 되어 패하에게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저는 내려 놓기 위해 왔으니까요.”
패하가 고개를 끄덕이고 주요를 놓아주었다. 주요는 작게 한숨을 쉬고 서원으로 향했다.

지주가 날아와 패하 앞에 무릎 꿇고 조아리며 말했다.
“영귀 어르신.”
패하가 지주를 보고 말했다.
“발의 아이는 어찌 되었느냐?”
지주가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진을 쳐서 가둬 두었는데 도망간 듯합니다.”
패하가 웃으며 말했다.
“그는 일개 사람일 뿐인데 재주도 좋구나.”
지주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지금 사람을 풀어 찾고 있습니다.”
패하가 서원을 내려보며 말했다.
“제자의 죄는 스승의 죄이니….”
패하는 현무가 산천대제를 배웅하는 것을 보고 있다가 말했다.
“지주. 가서 동왕공을 동해까지 배웅하도록 해라.”
지주가 고개를 조아리고 산천대제에게 향했다. 지주가 산천대제를 데리고 동해로 향한 것을 본 패하는 현무에게 향했다. 현무가 곧 패하의 기운을 읽고 고개를 들어 패하를 보고 표정을 구겼다. 패하가 웃으며 말했다.
“너는 배움이 많이 부족하구나.”
현무가 소매를 들어 패하에게 인사하며 말했다.
“제자 현명. 스승님을 뵙습니다.”
패하가 현무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짚고 혀를 차며 말했다.
“현명… 현명.”


주자서는 서원 주변에 쓰러져 있던 사람들과 함께 쓰러져 있다가 의원에게 옮겨졌다. 그리고는 서원에서 고용한 사졸처럼 행동했다. 다행히 최근에 새로 고용한 사졸이 많았는지 머리에 관을 올린 서원의 시위 중에 그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시위 대장이 방 안으로 들어와 주자서가 옷을 바꿔 입힌 사졸을 데리고 나갔다. 주자서는 눈치를 보고 있다가 슬그머니 일어나 방을 나왔다. 주변에서 순찰을 도는 다른 이들을 따라 순찰을 돌다가 그들이 쉬러 가는 것을 따라가 주방 근처에 있는 별실에 닿았다. 이제 막 서원 산문에서 번을 서고 돌아온 사람이 말했다.
“용이 승천하는 것을 그대들은 보았는가?”
그 사람의 말에 주변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모두 술렁이며 한마디씩 거들었다. 주자서는 물을 얻어 마시고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옆에 있는 사람이 관을 한 것을 보고 물었다.
“지주대인께서는 어디 계시오?”
시위가 주자서를 힐끔 보고 물었다.
“그건 왜 물으시오?”
주자서가 웃으며 말했다.
“지주대인께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

시위가 콧방귀를 끼고 말했다.
“대인께서 우리말을 들어주겠는가? 무슨 일인데 그러나?”
주자서가 몸을 붙여 시위의 귓가에 속삭였다.
“대인께서 데려온 그 사내가 적황색 뱀을 데려왔다 들었습니다.”
시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지. 나도 그렇게 들었네. 그 사내는 행색이 좀 우습긴 했어.”
주자서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땅꾼이 말하기를 붉은 뱀일수록 정력에 좋다 하였습니다.”
시위가 눈을 가늘게 뜨고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자네도 참… 뱀이 맛이 있기는 하지.”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주자서의 소매를 잡고 방을 나왔다. 시위가 물었다.
“탕으로 할 건가 구울 건가?”
주자서는 고민하다 답했다.
“탕으로 하기엔 번잡스러우니 구울까 합니다.”
시위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쩝. 맛있겠군. 지주대인께서는 사당 동쪽에 있는 별궁에 계시네. 가서 여쭙고 허락을 받으면 꼭 내게 말하게.”
주자서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위는 품속에서 작은 나무패를 꺼내더니 말했다.
“누가 묻거든 이 패를 보여주고 서문(西門)에 가씨(賈氏)가 보냈다 하게.”
주자서는 공수를 하려다 얼른 포권하고 고개를 조아려 인사했다. 순찰을 돌면서 파악해 두었던 서원 내부를 잘 둘러보고 마주치는 시위나 사졸에게 포권하여 인사하고 사당으로 향했다. 주자서가 별궁에 도착했을 때 주자서가 갇혀 있던 객실 쪽이 시끄러워졌다. 별궁의 호위를 하고 있던 시위들도 서둘러 사당으로 향했다. 주자서는 마음이 급해 별궁 안으로 들어가 고상을 찾기 시작했다. 시위와 사졸이 모두 빠져나간 별궁은 횃불도 밝히지 않아 어두웠다. 주자서는 은은하게 빛이 새어 나오고 있는 외실로 들어갔다. 작은 목소리로 고상을 불렀지만 인기척이 전혀 없었다. 주자서는 외실 탁자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다 내원을 지나 내실로 향했다. 내실은 불도 밝히지 않아 더욱 어두웠다. 주자서는 주변을 살펴보며 작은 소리로 고상을 부르며 별궁의 내실을 살펴보았다.


온객행이 두루마리를 열어보려고 하자 금모원군이 자리에서 일어나 하품을 하더니 손짓했다. 그러자 중궁의 천장에서 구름이 쏟아져 내리더니 반도원으로 향하는 길이 나타났다. 금모원군이 말했다.
“가는 길에 읽게.”
온객행이 소매를 들어 금모원군에게 인사하고 구름 위로 올라갔다. 온객행이 반도원에 발을 들여놓자 구름길은 곧 사라지고 온객행은 복숭아나무 숲에 홀로 서 있었다. 온객행은 주변을 둘러보고 손에 들린 두루마리를 열어 읽어보았다. 태평호의 수선(水仙) 견연(見衍). 누가 지은 이름인지는 모르지만 넓게 보라는 잔소리처럼 들려서 온객행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체로 하늘에서 온객행을 부르는 이름은 모두 온객행의 성에 차지 않았다. 온객행이 두루마리를 들어 보고 있을 때 기척이 나더니 누군가 다가와 말했다.
“흑망.”
온객행이 고개를 들어 다가온 이를 보았다.
“검영!”
검영이 온객행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그대는 또 누구의 꾀에 빠져 여기 있나?”

온객행이 주변을 둘러보고 검영에게 물었다.
“사형은 여기서 뭐 하고 계시오?”
검영이 온객행에게 들고 있던 두루마리를 건네며 말했다.
“오광군께서 나를 난처하게 만드시는군.”
온객행이 두루마리를 풀어 읽어보고 말했다.
“그래도 그대는 천존께 봉호를 받았군. 경연(景淵)이라니 나쁘지 않네.”
검영이 물었다.
“그대는 금모원군께 받았나 보군.”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고 물었다.
“이제 뭘 하면 되는 건가?”
검영이 한숨을 쉬고 말했다.
“나도 잘 모르겠어. 그래서 나는 복숭아 숲을 구경 중이네.”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사형께서는 여전히 풍치(風致)가 있고 멋들어지시오.”
검영이 온객행의 손에 들려 있는 두루마리를 다시 들고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나도 반도원은 처음이라서 말이야.”
온객행이 검영을 따라 걸으며 물었다.
“하늘로 가는 길이라 하던데 찾으셨소?”
검영이 온객행을 보고 고개를 흔들었다. 둘은 느긋하게 복숭아나무 숲을 거닐다 쓰러져 있는 인영을 발견했다. 검영이 온객행의 소매를 잡고 인영을 가리키며 말했다.
“흑망. 저게 무엇인가?”
온객행이 제철인데도 복숭아가 하나도 열리지 않은 나무를 올려다보다 검영이 가리킨 곳을 보고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누군가 또 반도원에 계신 것 아니오?”

검영과 온객행이 쓰러져 있는 인영에 다가갔다. 노란색 장포를 입은 고상이 바닥에 누워 있었다. 온객행이 놀라 고상에게 다가가 말했다.
“아상!”
온객행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고상을 품에 안고 흔들며 말했다.
“아상! 아상 정신 차려. 아상!”
고상은 표정을 구기더니 고개를 흔들고 온객행의 품에 고개를 기댔다. 검영이 온객행에게 물었다.
“아는 이인가?”
온객행이 고개를 들어 검영을 보고 말했다.
“이 아이가 나를 감시한다던 화사요.”
검영이 놀라며 말했다.
“화사라고?”
온객행이 고상의 손목을 들어 맥을 짚고는 놀라서 고상을 보았다. 고상은 한참 잠꼬대를 하는 것처럼 입을 오물거리다 부스스 눈을 떴다. 고상이 온객행을 발견하고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파사?”
온객행이 고상의 뺨을 쓸며 물었다.
“아상. 왜 여기 있어? 유서는?”
고상이 눈을 깜빡이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말했다.
“유서! 우리 유서!”

온객행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상의 팔을 붙잡아 일으키고 말했다.
“아상! 유서를 어디에 두고 여기에 있는 거야?”
고상은 두리번거리더니 복숭아나무를 보고 말했다.
“반도를 찾으면 되겠군.”
검영이 고상에게 소매를 들어 인사하며 말했다.
“저는 강주의 파사 검영입니다.”
고상이 검영을 발견하고 소매를 들어 인사하며 말했다.
“나는 황룡 하네.”
온객행이 고상의 팔을 붙잡고 말했다.
“뭐?! 황룡?”
고상이 눈을 깜빡이더니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어… 응. 파사. 나 천존을 뵈었어. 나를 오룡의 수장으로 봉하시겠데.”
검영이 고상에게 물었다.
“반도를 찾으면 된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고상이 검영을 보고 말했다.
“천존께서 반도원의 반도를 허락하셨으니 각자의 복숭아를 찾으면 영지(領地)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온객행이 고상의 얼굴을 보고 표정을 구기자 고상이 손을 들어 이마를 만지며 말했다.
“내가 그런 걸 어떻게 아는 걸까?”
온객행이 한숨을 쉬고 말했다.
“주요가 아니라 네가 귀한 자리에 갔네.”
고상이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뭐?”
온객행이 고상을 보고 크게 한숨을 쉬었다.

검영은 고개를 들어 복숭아나무를 보더니 말했다.
“내 복숭아는 찾은 듯하네.”
그리고 숲으로 들어가더니 복숭아를 들고나왔다. 그러자 그의 뒤쪽으로 구름길이 나타났다. 검영이 복숭아를 들고 온객행과 고상에게 인사하며 말했다.
“나는 이만 가보겠네. 또 보세.”
검영이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상도 온객행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파사. 나도 찾은 것 같은데….”
온객행이 고상을 보고 물었다.
“유서는? 유서는 어쩌고 너 혼자 여기 있어?”
고상이 입을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기린이 계시는데 설마 그럴 줄은 몰랐지. 얼른 돌아가서 유서를 구해줘야 해.”
온객행이 고상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물었다.
“유서를 구하다니? 유서는 요대의 동궁에 있는 것이 아니야?”
고상이 고개를 흔들고 말했다.
“즉저가 우릴 하수가 있는 어딘가로 데려갔어.”
온객행이 말했다.
“금정?”
고상이 씩씩거리며 말했다.
“돌아가면 망충 그 놈부터 혼내 줘야지.”

온객행이 고상에게 물었다.
“망충이라니? 지주가 왜?”
고상이 온객행의 손을 뿌리치고 말했다.
“암튼 어서 가서 유서를 구해줘야 해.”
그러더니 복숭아나무 위로 훌쩍 올라 복숭아를 땄다. 그러자 고상 뒤쪽으로도 구름길이 열렸다. 고상이 온객행에게 말했다.
“반도가 허락되었지만 꼭 내가 먹어야 하는 건 아니야. 나는 이거 주요 줄 거야.”
온객행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자 고상이 혀를 차며 말했다.
“너는 우리 유서 줘야지!”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어서 돌아가. 유서를 구해줘.”
고상이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얼른 찾아서 와. 주요랑 유서랑 기다리고 있을게.”
온객행이 고상을 보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상은 구름길로 걸어 들어가며 말했다.
“근데 오룡의 수장은 뭘 하는 거야?”
온객행은 고상의 혼잣말에 고개를 흔들고 웃다가 고개를 들어 복숭아나무를 보았다. 한참 거닐다 유독 빛이 나는 복숭아나무를 발견한 온객행은 그 곳에서 잘 익은 복숭아를 찾았다. 복숭아를 손에 쥐자 구름길이 나타났다. 온객행도 서둘러 구름길을 따라 나왔다.


주요는 적송자와 대치하고 있는 황룡을 보았다. 그가 기억하는 황룡과는 그 기운이 너무 달라서 주요는 황룡을 보고 흠칫 놀랐다. 적송자가 주요를 보고 말했다.
“원군께서 보냈는가?”
주요가 고개를 끄덕이고 적송자에게 소매를 들어 인사하고 말했다.
“우사. 황룡의 처분은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적송자가 황룡을 힐끔 보고 말했다.
“수원. 저 치는 황룡이 아니네. 사람을 먹는 구렁이지.”
주요가 적송자의 말에 눈썹을 늘어뜨리고 울상을 만들어 말했다.
“천존께서 정하신 일이 있습니다.”
적송자가 고개를 끄덕이고 황룡을 보고 말했다.
“네놈이 무엇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너와 나의 은원은 오늘 여기서 끝이다. 너는 모두에게서 잊히는 것이 가장 잘 어울려.”
적송자의 말에 황룡이 소리쳤다.
“헛소리! 모두 나를 기억할 것이다. 사람들이 천하의 왕으로 모시는 것이 천존인 것 같으냐? 나는 그들에게 이미 신이다.”
적송자가 혀를 차고 말했다.
“왜들 그렇게 삼원으로 가면 속세의 일에 무관심해지는지 알 것도 같네.”
그리고는 방을 나갔다.

주요가 황룡을 마주 보고 말했다.
“후토대선.”
황룡이 주요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수원. 너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구나.”
주요가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후토. 대체 무슨 짓을 한 겁니까?”
황룡이 평상에 가서 앉으며 말했다.
“수원. 나는 아직도 그대와 함께 중원을 다스리던 때를 잊지 못해. 그때 우리는 정말 행복했는데 말이야.”
황룡이 미소 지으며 주요를 보았다. 주요가 황룡에게 말했다.
“그대의 가신들은 모두 어디 있소?”
황룡의 얼굴이 굳어졌다. 주요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미공(羋公)은? 미공은 어찌 되셨습니까?”
황룡이 다시 웃는 얼굴을 만들어 물었다.
“천존께서 정하신 일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나를 땅에 버려 두셨으면서 어찌 나를 다시 찾으신다는 말이야?”
황룡은 소매를 털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천존께서 나를 다시 찾으셔서 하늘에 간다면, 수원. 그대가 나의 곁에 있었으면 하는데.”
주요가 황룡을 보고 울먹이며 다시 물었다.
“미공은 어찌 되셨습니까?”
황룡이 눈썹을 찌푸리고 말했다.
“그는 사람이 아닌가. 환생했겠지. 지금 그것이 중요한가?”
주요가 황룡을 보고 말했다.
“미공께서는 정녕 환생하실 수 있습니까?”
황룡이 주요에게 다가가 그가 입은 여인의 옷을 보고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수원. 그대는 어찌 아직도 과거에 살고 있는가?”
주요가 황룡을 노려보며 말했다.
“어쩌면 원군께서 하신 부탁을 지킬 수 없을 것 같아.”
그리고는 황룡을 공격했다.

그들의 싸움은 그 기세가 형형하여 사람이고 신선이고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었다. 날이 밝아서야 황룡의 기운이 조금 수그러들자 주요가 황룡의 목덜미를 쥐었다. 황룡은 검은 기운을 꺼내 주요를 밀어내려고 했지만 주요는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점점 주요의 눈이 금색으로 물들어가는 것을 본 황룡이 컥컥대며 말했다.
“감히 무지기… 무지기 따위가!”
주요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주요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를 무지기라 부르는 것은 그대뿐이네. 후토.”
황룡의 사람 모습이 점점 녹아서 검고 비늘이 여기저기 떨어진 초라한 구렁이로 변했다. 주요가 황룡을 보고 말했다.
“사람을 먹었으니 죽지 못 하겠구나.”
패하가 주요에게 다가가 말했다.
“수원. 고정하세요. 황룡의 처분은 천존께서 하실 겁니다.”
적송자가 곁에 서서 말했다.
“축융과 전당군이 오고 있는 중이네.”


지주는 동왕공을 동해에 모셔다드린 뒤에 다시 현악으로 갔다가 주작과 적룡을 모시러 남쪽에 다녀오는 길이다. 밤새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날이 밝자마자 남쪽에 다녀온 지주는 별궁으로 돌아가며 말했다.
“아주 동네북이지.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영귀 어르신 옆에 붙어 있는 게 나을 뻔했어.”
지주는 외실을 넘어 내실로 들어가며 입고 있던 장포를 벗고 침상으로 향했다. 그러다 내실 탁자에 고개를 괴고 있는 사졸을 발견했다. 지주는 조금 기가 막혀서 그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어찌 내실에 있느냐? 사졸이 어떻게 들어왔지?”
사졸이 고개를 들어 지주를 보았다. 지주가 사졸을 보고 말했다.
“어? 발의 아이?”
주자서가 지주를 보고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 다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아상을, 화사를 어찌 하셨소!”
그리고 잘게 기침을 하며 허리춤에 있는 칼로 손을 가져갔다. 지주가 주자서를 보고 표정을 구기고 말했다.
“왜 여기 있소?”
서원의 시위가 기별하고 말했다.
“지주대인. 발의 아이가 사라졌습니다.”
지주가 주자서를 보고 눈을 깜빡이자 주자서는 밖을 한번 보더니 검집에서 칼을 빼 들었다. 지주가 피식 웃으며 몸에서 실을 풀어내기 시작하자 주자서는 칼을 자기 목에 가져다 대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죽으면 흑망과 주인께서 가만히 있지 않으실 거요.”
지주가 표정을 구기고 물었다.
“주인?”
주자서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태평호의 주인 무지기가 나의 주인이시오.”
지주가 한숨을 쉬고 하늘을 보더니 말했다.
“이젠 사람까지 나를 동네북 취급이야. 빌어먹을.”

蛇苺 第25

借刀殺人 | 25. 칼을 빌려 사람을 죽인다.

고상은 주자서의 몸속에서 터지려고 하는 영력의 근원을 찾아 그 내단(內丹)을 몸으로 감쌌다. 이 영력의 힘을 막아낼 만큼의 힘이 없다는 것을 고상은 잘 알고 있었지만 이대로 그냥 두면 주자서의 영혼이 모두 타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렇게 했다. 온몸이 탈 것 같은 열기를 감싸 안으며 고상은 생각했다. ‘내가 없으면 주요는 어떡하지? 유서. 주요를 부탁해.’ 고상은 태평호에서 가장 즐거웠던 시기를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다섯 갑자 동안 행복했으니 영혼이 타버린다고 해도 아쉽지 않았다. 남은 이들이 아주 잠깐만 슬퍼하고 가끔 그녀가 생각나면 홍주로 혼을 불러 주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고상이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금빛 갑옷을 입고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그녀의 뒤를 따르는 것은 적송자와 뇌공으로, 그들의 힘에 눌린 응룡이 땅으로 추락하는 것을 보았다. 고상은 날아가는 것을 멈추고 뒤따라온 적송자와 뇌공에게 말했다.
“이 싸움을 멈추시오. 그대들도 이미 알고 있지 않소.”
뇌공이 뇌부를 휘두르며 말했다.
“말이 많군.”
고상이 뇌공을 향해 눈을 번쩍 뜨자 뇌공을 감싸고 있던 구름이 순식간에 증발했다. 뇌공이 고상을 보고 말했다.
“정말 골치 아프군.”
적송자가 구름을 불러 비를 내리려고 하자 고상은 다시 팔을 크게 휘둘러 적송자가 부르는 구름도 흩어버렸다. 적송자가 ‘쯧’ 하고 혀를 차며 말했다.
“너는 누구의 뜻으로 우리와 싸우는 것이냐?”
고상이 적송자와 뇌공을 보고 말했다.
“치우께서는 천존의 명(命)을 다하셨으니 삼원으로 돌아가는 것이 맞습니다.”
뇌공이 말했다.
“치우께서 원치 않으시네!”
고상이 손을 모아 두 사람에게 공수하고 말했다.
“그것은 치우께서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번쩍 떠서 적송자와 뇌공의 힘을 흩어냈다. 그들은 곧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더니 땅으로 추락했다.

고상은 고개를 돌려 하늘의 길에 들어가려는 치우를 막아내고 있는 서왕모와 동왕공을 보았다. 그들이 부리는 사방신과 사령이 다가와 막았지만 역부족이었다. 고상은 황룡에게 다가가 말했다.
“부친. 저에게 치우를 막아낼 힘이 있습니다.”
황룡이 다가온 고상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그래! 하지만 죽여서는 안된다. 그를 궁지로 몰아넣어라. 너의 일은 거기까지다.”
고상은 고개를 조아려 인사했다.
“예. 부친.”
고상은 하늘 높이 날아올라 불의 신인 치우에게 다가갔다.
“치우. 제발 싸움을 멈추세요. 그대의 명이 다한 것은 천존께서 결정하신 일입니다.”
치우가 고상을 보고 코웃음 치며 말했다.
“내가 최고 신이 된다면 모든 것은 내가 결정하는 일이 된다.”
고상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치우. 제발 싸움을 멈추세요. 삼원까지 일이 미치면 그다음은 아무도 치우를 도울 수 없습니다.”
치우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여기 너희들이 감히 나를 막을 수 있겠느냐?”
치우의 몸이 하얗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물과 바람을 다스리는 사방신과 사령의 기운이 약해지더니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땅으로 추락했다. 동왕공이 땅으로 추락하자 서왕모가 고상에게 말했다.
“발! 어서 치우를 막아라. 너뿐이다.”
황룡의 모습으로 변한 황룡이 땅으로 추락하면서 발을 보았다. 발은 추락하는 동료 신선들을 보고 있다가 서왕모에게 말했다.
“자리를 피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서왕모는 고개를 끄덕이고 추락하는 신선들에게 향했다. 발은 치우를 보고 슬프게 웃었다. 발은 단 한 번도 모두 개방한 적 없는 태양의 힘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알고 있었다. 이 힘으로 치우뿐만 아니라 땅의 모든 것들이 고통받을 것이라는 것을. 하지만 발은 힘을 멈추지 않았다. 치우는 발의 영력에 그 혼이 모두 타버리고 말았다. 발은 개방된 태양의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땅으로 추락했다.

발이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황룡이 그녀를 보고 있었다. 발은 몸을 일으켜 공수하여 인사했다.
“부친.”
황룡은 손을 들어 발의 뺨을 내려쳤다. 황룡에게 맞은 뺨을 움켜쥐고 발이 황룡을 보았다. 황룡이 말했다.
“죽이지 말라 했거늘! 그를 궁지로 몰아넣는 것 까지가 너의 일이라 했거늘!”
발이 다시 손을 모으고 말했다.
“부친, 방법이 없었습니다. 제가 그리하지 않았다면 치우께서 삼원에….”
황룡이 다시 손을 들어 발의 뺨을 치고 말했다.
“닥쳐라! 내가 허락하지 않은 일을! 감히 일개 천녀가 천신을 죽인다는 말이냐?”
황룡이 발에게서 등을 돌리고 말했다.
“나는 너 같은 딸을 두지 않았다.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져라!”
발이 눈물을 보이며 말했다.
“부친. 잘못했습니다.”
황룡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
“감히 천녀 따위가.”
황룡은 모습을 바꿔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것이 발이 기억하는 부친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이후로 발은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사람의 세상에 몸을 숨겼다. 그것도 쉽지 않았던 것이 태양의 힘이 너무 강해지는 바람에 그녀가 가는 곳은 어디든 가물었다. 마침내 사람들은 그녀를 가뭄 귀신이라 부르며 인정 없이 모질게 대했다. 천존이 발을 찾았을 때 그녀는 어두운 동굴 속에서 혼자 울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뺨에 닿기도 전에 모두 말라버렸다.

고상은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났다. 발에게 다가가 위로해주고 싶었다. 언제인가 파사가 고상에게 해주었던 것처럼 주요가 매번 고상에게 하는 것처럼. 동굴 속에 울고 있는 발에게 다가간 고상이 말했다.
“울지 마요. 내가 같이 있어 줄게요. 나랑 같이 태평호로 갈래요?”
발이 고개를 들어 고상을 보고 말했다.
“태평호?”
고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발에게 다가갔다. 발이 손을 앞으로 내밀어 고상을 막으며 말했다.
“오면 안돼. 나에게 오면 너도 타서 없어질 거야.”
고상이 발의 손을 잡고 그녀를 안으며 말했다.
“나는 햇빛 쬐는 것을 좋아해요. 복숭아는 조금 가물어야 더 달아지거든요.”

발이 고상을 마주 안으며 말했다.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어. 나는 너무 무서워.”
고상이 눈을 감고 발을 더 가깝게 끌어안으며 말했다.
“마음이 불안해서 그래요. 나도 마음이 불안하면 원래의 모습으로 변하는데 그럼 주요가 나를 이렇게 안아줬어요. 그럼 다시 마음이 편해져서….”
고상은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졸음에 의아하여 눈을 뜨고 발을 보았다. 발이 고상을 보고 웃으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고마워. 너는 자격이 있어. 나처럼 외롭지 않았으면 해.”
고상이 눈썹을 찌푸리자 발이 손을 들어 그녀의 찌푸린 눈썹을 쓸고 말했다.
“나는 너를 여름(夏)이라고 부를래.”


공중으로 떠오른 주자서의 몸을 잡으려는 산천대제를 현무가 막으며 말했다.
“대제 안 됩니다. 이미 봉인이 풀렸어요.”
산천대제가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봉인이 풀리다니?”
지주가 소매를 들어 현무에게 말했다.
“대선, 발의 아이와 태평호 무지기의 화사를 함께 데려왔는데 화사가 보이지 않습니다.”
황룡이 자리에서 쓰러지며 말했다.
“발의 아이가 영력을 흡수하고 있어요. 모두 방에서 나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즉저가 황룡을 부축해 방을 나가며 말했다.
“화사 따위가 발의 영력을 버티겠습니까?”
현무가 고개를 끄덕이며 산천대제를 부축해 방을 나갔다. 방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발의 영력에 기운을 뺏겼는지 쓰러져 있었다. 지주가 현무를 따르며 말했다.
“화사가 다 타면 그때 팔주령에 봉인하시죠.”
현무가 고개를 끄덕이며 방의 장지문을 닫고 건물에 진을 쳤다. 현무가 건물에 진을 치자마자 건물에서 새하얀 빛이 쏟아져 나오더니 하늘로 작은 용이 승천하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현무가 승천하는 용을 보며 말했다.
“막아라! 저 용이 승천해서는 안된다!”
즉저와 지주가 하늘로 날아올랐지만 땅에 사는 그들이 용을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건물 주변으로 구름이 쏟아지더니 결국 작은 용은 하늘로 승천하고 말았다.

하늘에 닿은 고상은 몸에 느껴지는 태양의 힘이 얼떨떨하여 천궁의 입구에 멀뚱히 서 있었다. 곧 하얀 영비를 두른 현녀가 다가와 그녀를 데리고 천존께서 사신다는 자미궁(紫微宮)으로 갔다. 자미궁 안에는 진성현녀와 사자가 함께 서 있었다. 고상이 천존이 계신다는 상석 앞으로 가서 넙죽 엎드려 인사했다.
“태평호의 화사 고상. 천존을 뵙습니다.”
고상의 인사에 진성현녀가 다가와 그녀를 일으키며 말했다.
“화사였구나.”
고상이 고개를 들자 발이 그녀를 일으켜 주었다. 고상은 반가워서 그녀의 손을 잡고 물었다.
“발?”
진성현녀가 고상의 뺨을 쓸며 말했다.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네. 그 이름.”
진성사자가 다가와 조아리며 말했다.
“천존께서 명하십니다.”
고상은 다가온 진성사자의 모습이 온객행과 비슷하여 자기도 모르게 작게 그를 불렀다.
“파사?”
진성현녀가 고상을 놓아주고 상석을 보며 소매를 들어 공수하고 말했다.
“황룡 하(夏)를 오룡의 수장으로 봉하소서.”
고상은 눈치를 보다가 다시 상석 쪽으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고상이 고개를 들어 소매 너머로 힐끔 상석을 보았으나 상석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곧 주변에 있던 현녀와 사자가 모두 무릎을 꿇었다. 상석에서 작은 빛이 내려오더니 고상의 이마에 가서 박혔다. 고상은 점점 뜨거워지는 이마를 붙들고 정신을 놓아버렸다.


주요는 두손으로 든 술잔을 놓치고 말았다.
“아상!”
주요가 자리에서 일어나 동궁으로 향하려고 하자 금모원군이 그를 막으며 말했다.
“수원? 무슨 일인가?”
주요가 금모원군을 뿌리치고 말했다.
“아상의 진(陣)이 사라졌어요. 아상은 어디 있습니까?”
금모원군이 미간을 찌푸리며 남궁을 지키고 있는 호위 여우에게 말했다.
“동궁으로 가서 청구를 데려와라.”
그리고 주요의 소매를 잡으며 말했다.
“수원. 아직 우리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네.”
주요는 크게 동요하며 말했다.
“아상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아요. 우리 아상은 어디 있습니까?”
금모원군이 주요를 다시 자리에 앉히고 적송자와 뇌공에게 눈치를 주었다. 뇌공이 자리에서 일어나 공공에게 가며 말했다.
“공공은 어찌 아직도 일어나지 못해?”
적송자가 금모원군을 보고 말했다.
“아무래도 어서 제자를 거두러 가야 하겠는데?”
금모원군이 적송자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패하는 지금쯤 현악(玄嶽; 무당산)에 있을 것입니다.”
적송자가 남궁을 나가며 말했다.
“현무와 함께 있겠군.”
그리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주요가 금모원군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원군. 저에게 중하를 지우지 마세요. 원군께서 하시려는 일이 무엇인지 알겠습니다. 제가 도울 수 있는 것은 모두 돕겠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는 제 몫이 아닙니다.”
금모원군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주요. 땅에서 후토가 어찌 영력을 보존하여 지탱하는지 아는가?”
주요가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설마….”
금모원군이 주요를 보며 말했다.
“그대의 상전 황룡은 하늘에서 쫓겨나며 죽었네.”
주요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설마… 설마….”
금모원군이 주요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수원. 황룡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을 막아주게.”
주요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주요는 금모원군을 보고 흐느끼더니 곧 양손을 들어 얼굴을 묻었다. 금모원군은 한숨을 쉬며 떨리는 주요의 등을 쓸었다.

뇌공은 공공과 온객행이 누워있는 평상으로 가서 그들을 보았다. 도철이 된 공공은 딱히 하늘에 미련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풍문으로는 그가 하늘로 올라가려고 한다 던 데 오늘 만난 공공은 오히려 서왕모를 돕고 있었다. 그는 도철이 되면서 촉룡과 척을 졌기 때문에 서쪽에는 잘 오지 않았는데 요대에서 공공을 만날 줄은 몰랐다. 뇌공이 다시 자리에 앉아 술잔을 들었다. 뇌공이 생각하기에 지금 이 사달은 어째 누군가가 일부러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오랫동안 공석으로 비워 두었다는 자리도 그렇고 갑자기 자리 따위를 탐내서 일을 벌이는 신선이라니 뇌공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겨우 한 갑자가 어찌 오랫동안이 될 수 있을까?

몇 백 몇 천 갑자를 사는 신선들에게 자리가 대체 무슨 소용일까? 그저 오늘 하루 즐겁고 술을 마실 수 있으면 족한 것을. 그러다 뇌공은 한숨을 쉬고 왜 요대에 오게 되었는지 생각했다. 뇌공은 외로웠다. 동왕공의 치기(稚氣)에 어울린 것은 정말 단순히 그가 외로웠기 때문이다. 아마 미쳐버렸다는 도예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들은 너무 오래 살았다. 영원한 안식을 허락받지 못한 그들이 정신을 놓고 미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이 천존께서 그들에게 내린 벌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뇌공은 문득 치우가 떠올랐다. 치우는 태양의 힘에 타오르면서 웃고 있었다. 어쩌면 그가 정말로 원했던 것은 천존의 자리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다시 정신이 든 주자서는 객실 바닥에 누워 있었다. 작게 신음을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살펴보았다. 조금 어수선하게 어질러진 것을 제외하면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주자서는 얼굴과 몸 여기저기를 만져보았다. 뜨겁게 타는 것 같은 느낌이 있었는데 만져보니 멀쩡했다. 주자서는 얼른 침상으로 가서 뱀으로 변한 고상을 찾았다. 이불을 모두 들추어 보았지만 뱀이 보이지 않았다. 주자서는 작은 목소리로 고상을 불렀다. 그러다 장지문으로 가서 장지문을 열려고 했으나 별궁에서 그랬던 것처럼 문은 열리지 않았다. 보이는 창호 문 마다 모두 가서 열어 보았지만 역시나 열리지 않았다.

주자서는 다시 서안으로 가서 앉으며 생각했다. 이 곳의 서책들은 대부분이 별의 위치를 계산하는 내용이다. 혼천설(渾天說)을 따르는 것으로 보아 나라에서 운영하는 서원 같다. 다시 내부를 살펴보니 벽에 걸린 편액은 천문도(天文圖)이고 나무로 만든 혼천의(渾天儀)도 보였다. 고상과 헤어지기 전에 해화상의 물길이 하수의 물길인 것 같다 했으니 이곳은 형주 양양(襄陽) 근처일 것이다. 별을 관측하는 서원이라면 높은 산 위에 있을 테니 양양에 있는 가장 높은 산이라면 무당산일 가능성이 제일 컸다. 주자서는 품에서 염낭을 꺼내 부절을 찾았다. 그러다 편연주에서 부절을 온객행에게 줬다는 것이 기억났다. 다시 나라로 돌아왔지만 신분을 증명할 길이 없다. 오히려 그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괜히 도망병이라는 신분을 들키면 자신뿐만 아니라 모친과 당질도 위험했다.

주자서는 한참 생각하다가 고개를 들어 대들보를 보았다. 평상을 잘 밟고 올라가면 위로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주자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평상 위로 올라가 대들보 위로 훌쩍 뛰어올랐다. 동량(棟梁) 사이로 몸을 비집고 들어가니 서까래가 보였다. 서까래로 손을 넣어 들어보니 기와가 들렸다. 주자서는 동량에 몸을 기대 서까래를 발로 찼다. 서까래 몇 개를 치우고 기와를 치우니 주자서가 나갈 수 있을 만큼의 틈이 생겼다. 주자서는 낑낑대며 밖으로 나왔다. 건물 주변이 안개로 가득했다. 주자서는 멀쩡한 서까래를 잘 배치하여 나온 구멍을 다시 기와로 잘 막고 건물 주변을 보았다. 건물 근처에서 보초를 서던 사람들이 모두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하늘을 보니 서원 위로 구름이 둥글게 모여들어 마치 방금 뭔가 하늘로 승천한 것처럼 보였다.

주자서는 지붕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고 생각했다. 막상 정말로 도망치려고 하니 갈 데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친께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온객행에게 가자니 방법이 없었다. 그러다 주자서는 혹시 뱀이 된 고상에게 그 지주라는 자가 몹쓸 짓을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주자서는 머리에 있는 비녀를 찾았다. 비녀를 보고 한참 앉아있던 주자서는 비녀를 부러뜨리려고 했다. 주요가 준 비녀는 조금 짧아서 손으로 부러뜨리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었다. 주자서는 한참 씨름을 하다가 비녀를 지붕 위에 올려 놓고 발로 밟았다. 그제야 비녀가 부러지더니 조금씩 삭아 들기 시작했다. 전부 삭아 가루가 된 비녀는 돌풍을 일으키며 사라졌다. 주자서는 비녀가 사라진 곳을 보고 있다가 주변을 살펴보고 지붕 아래로 내려왔다. 주변에 쓰러져 있는 병졸과 옷을 바꿔 입고 머리를 정리해서 병졸처럼 상투를 틀었다. 옷을 갈아입혀 놓고 보니 붉은 장포는 정말 여인이 입는 옷 같았다.


손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던 주요는 주자서에게 주었던 비녀가 깨진 것을 느꼈다. 고개를 들어 금모원군을 보고 말했다.
“유서는 어디 있습니까?”
금모원군이 곤란한 표정을 했다. 청구가 들어와 금모원군에게 인사했다.
“원군. 부르셨습니까?”
주요가 자리에서 일어나 청구에게 물었다.
“화사와 발의 아이는 어디 있소?”
청구가 금모원군의 눈치를 보고 고개를 더 깊숙이 조아렸다. 금모원군이 작게 혀를 차며 말했다.
“아무래도 현무가….”
주요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금정(金頂)”
금모원군이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어찌 아는가?”
주요가 금모원군을 보고 말했다.
“유서가 그곳에 있습니다. 지금 당장 가 봐야겠어요.”
금모원군이 주요를 막으며 말했다.
“내가 방금 적송자를 보내지 않았나? 적송자께서 화사를 데려오실 거야.”
주요가 금모원군을 뿌리치고 말했다.
“아니요. 아상은 제가 데려오겠습니다.”
금모원군이 주요의 팔을 잡고 말했다.
“그럼 흑망을 등선시키게. 그럼 보내주지.”
주요가 금모원군을 보고 말했다.
“무슨 뜻입니까? 원군?”

금모원군이 주요를 보고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흑망이 흑룡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치지 않는가?”
주요가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물었다.
“천존께서 흑망에게 주시려는 자리가 북해 용왕자리가 아닙니까?”
금모원군이 주요의 어깨를 감싸 안고 말했다.
“그래. 이래야 수원이지.”
주요가 고개를 돌려 평상에 누워있는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등선한다고 해도 그 자리를 하려고 하지 않을 텐데요?”
금모원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촉룡의 제자들은 하나같이 욕심이 없어서 말이야.”
주요가 다시 고개를 돌려 금모원군을 보았다. 금모원군이 주요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일단 구색을 갖추자는 것이지 혹시 모를 일 아닌가?”
주요가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흑망을 등선시키는 것은 어려울 일이 아니지요. 내자에게 푹 빠져 있으니 내자를 쥐고 흔들면 됩니다. 그러니 제가 더욱 더 금정에 가야지요.”
금모원군은 눈을 굴리고 잠깐 생각하더니 대답하지 않았다.

주요가 금모원군의 품에서 나와 소매를 들어 공수하고 말했다.
“원군. 적송자께서는 유서를 모릅니다. 저를 보내주세요.”
금모원군이 평상에서 자는 온객행을 힐끔 보고 말했다.
“발의 영력으로 찾으실 수 있을 걸세. 걱정 말라니까?”
주요가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원군!”
금모원군이 고개를 끄덕이며 주요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알겠네! 알겠어. 가보게. 대신 후토를 죽여서는 안되네.”
주요가 고개를 들어 금모원군을 보았다. 금모원군이 주요에게 다가가 귓가에 속삭였다.
“그는 궁기(窮奇)가 되어 규산(刲山)에 봉인되어야 하니까.”
주요는 더 묻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아상과 유서가 걱정되어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현악으로 향했다. 놀다가 다쳐서 진이 지워진 것이라고 별일 아니라고 계속 되뇌었지만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불안을 어찌할 수 없어 주요의 영력이 한껏 날카로워졌다.

금모원군이 뇌공에게 다가가 말했다.
“이제 공공은 다시 동쪽으로 돌아가도 되겠어요.”
뇌공이 공공을 보고 말했다.
“이제 자는 척은 그만하게.”
공공이 표정을 구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군. 저는 사흉이에요.”
뇌공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
“그러게 응룡을 돕긴 왜 도왔나?”
공공이 자리에서 일어나 소매를 털고 말했다.
“청룡이 하도 닦달을 해대니 저라고 방법이 있습니까?”
금모원군이 공공에게 물었다.
“검영은 어떨 것 같나?”
공공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
“원군께서 말씀하셨잖아요. 촉룡의 제자들은 욕심이 없다고.”
금모원군이 한숨을 쉬고 말했다.
“하긴 그랬으니 촉룡께서 제자로 받았겠지.”
공공이 금모원군을 쏘아보며 말했다.
“처음부터 후토가 어디 있는지 아셨죠?”
금모원군이 놀라는 척을 하고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나는 정말 몰랐네. 천존께서 하시는 일을 내가 어찌 알겠나?”
공공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
“진군께 뭔가 들은 것이 있으시지요?”
금모원군이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돌려 뇌공을 보았다.

뇌공이 누워있는 온객행을 보고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이 치는…?”
금모원군이 뇌공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뇌공.”
공공이 눈치를 보다가 금모원군에게 말했다.
“원군. 발의 아이는 어떻게 됐습니까?”
원군이 온객행을 보며 말했다.
“촉룡께서 이미 주인이 있다 하셨으니 그것은 걱정할 필요 없어.”
공공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이참! 원군 이렇게 안일하셔서.”
원군이 웃으며 공공을 보고 말했다.
“그러니 그대가 나를 돕는 것이 아닌가?”
공공이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태평호의 수선(水仙)으로 봉하시지요.”
금모원군이 눈썹을 찌푸리고 말했다.
“태평호?”
공공이 고개를 끄덕이며 소매를 들어 공수하고 말했다.
“흑망이 살던 서호에는 이미 다른 아이가 있으니 비어 있는 태평호에 봉하십시오.”
금모원군이 ‘흠’ 하더니 말했다.
“그 쪽은 사람이 별로 없어서 정말 한직이 될 텐데….”
공공이 몸을 세우고 금모원군을 보고 말했다.
“수선이 되고 난 다음에 그가 뭐가 될지는 천존께서 정하시겠지요.”
금모원군이 웃으며 말했다.
“그것도 그렇군.”

뇌공이 금모원군을 보고 말했다.
“그 사람과 닮았군.”
공공이 겸연쩍게 웃으며 말했다.
“본인이 모르는 것 같아서 그냥 두었는데 그렇게 되었습니다.”
뇌공이 다시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누군가 이 치를 위해 별이 되었나 보군.”
금모원군이 작게 한숨 쉬고 말했다.
“깨어나면 바로 봉하도록 하겠습니다.”
뇌공이 금모원군을 보고 물었다. 흑망은 사내가 아닌가? 어찌 자네가 봉작(封爵)을 내리는가? 동왕공은?”
금모원군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
“동왕공이 일 하는 것을 보셨습니까?”
뇌공이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그래도 동왕공의 옥새(玉璽)가 필요하지 않은가?”
금모원군이 몸을 돌려 중궁으로 향하며 말했다.
“천존께서 내리신 옥새는 하나뿐입니다. 그리고 그 옥새는 한 번도 제 손을 떠난 적이 없지요.”
뇌공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동왕공을 죽이라니까.”
금모원군이 몸을 돌려 뇌공을 보고 소매를 들어 인사하며 말했다.
“죽을 만큼 잘못하지 않았어요. 단지 분수에 맞지 않는 자리에 앉아 있을 뿐. 뇌공께서는 어서 도예께 가보세요. 필요하신 것은 말씀만 하세요. 서왕모가 돕겠습니다.”
뇌공은 고개를 끄덕이고 남궁을 나가며 말했다.
“오늘 마신 술이 도화주(桃花酒)인가? 아주 맛이 좋더군.”
서왕모가 뇌공이 나가는 길에 인사하며 말했다.
“기린편에 도예께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온객행이 눈을 떴을 때 온객행은 혼자 남궁 외실 평상에 누워 있었다. 주안상은 모두 치워진 상태였고 녹색 옷을 입은 시동이 입구에 서 있었다. 온객행이 일어난 것을 보고 물이 담긴 대야를 가져와 건네며 말했다.
“흑망께서는 중궁으로 드시지요.”
온객행은 대야에 간단히 관수하고 옷매무새를 단정히 했다. 그러다 동궁에 주자서가 생각나 시동에게 물었다.
“죄송한데… 내자를 만나고 가도 되겠습니까?”
시동이 단호하게 고개를 젓고 말했다.
“원군의 허락 없이 동궁에 가실 수 없습니다.”
온객행은 고개를 끄덕이고 시동을 따라 중궁으로 향했다. 오래 잤는지 해가 높이 떠 있었다. 중궁에 도착하자 용호좌 위에 나른하게 앉아 있는 금모원군이 보였다. 온객행이 나아가 소매를 들어 공수하고 인사했다.
“흑망. 원군을 뵙습니다.”
금모원군이 고개를 돌려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취수와 약수는 건넜으니 봉호(封號)를 내리 노라.”
금모원군 옆에 있던 섬여가 두루마리를 들고 온객행에게 왔다. 온객행은 얼떨결에 두루마리를 받고 금모원군에게 머리를 조아려 인사했다.
“서호의 흑망. 원군의 명령을 받습니다.”

蛇苺 第24

笑裏藏刀 | 24. 웃음 속에 칼을 감춘다.

온객행은 주서(周絮)를 좋아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사람의 유한한 시간이 마음에 걸렸다. 그에 대한 마음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 불안감은 더했다. 그러다 먹으면 신선이 될 수 있다는 복숭아, 반도가 떠오른 것이다. 금모원군의 반도원(蟠桃園)에 열리는 반도는 모두 주인이 정해져 있다. 금모원군의 요대는 금모원군의 거처이기도 하지만 땅의 신선이 하늘로 올라갈 때 반드시 거치는 관문이기도 했다. 반도원의 복숭아는 요대를 거쳐 하늘로 올라가는 길에 오르는 것이 가능한 신선에게만 허락된 것이다. 온객행은 금모원군을 만나기 위해 옥산에서 행패를 부렸다. 취수와 약수로 둘러싸인 옥산은 들어올 수 있는 존재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온객행의 횡포는 평화롭게 살고 있던 옥산의 화사와 삼족오는 물론 요대를 지키는 여우들에게 까지도 위협이 되었다. 커다란 뱀으로 변한 온객행은 옥산에 머물면서 삼족오와 여우를 못살게 굴었다. 그 과정에서 옥산의 복숭아나무 반 이상이 뽑혀 나갔다. 몇몇 오래된 화사들은 약수와 취수의 물길이 조금 바뀌었다고도 한다.

사흘동안 난리를 피웠지만 금모원군은 온객행을 만나주지 않았다. 온객행이 사학(肆虐)을 멈춘 것은 복숭아에서 태어나는 화사를 처음 봤기 때문이다. 보통 붉은 색에 검은색이나 흰색 반점이 생기는 화사들은 모두 복숭아에서 태어난다. 맨 처음에 화사가 되었던 이는 옥산의 복숭아가 아니라 반도원의 복숭아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그 이후로 화사는 복숭아에서 태어나 복숭아를 기르고 지키는 일을 한다고 했다. 그 화사는 다른 화사와는 달리 노란빛을 띄었다. 그 화사가 태어난 열매 역시 복숭아라고 하기보다는 귤이나 유자 같았다. 못생긴 열매에서 태어난 못생긴 화사가 측은하여 온객행은 행패를 멈추었다.

주서는 동정호 근처에 있는 절파고금(浙派古琴)을 수학하는 악사(樂士)였다. 그는 원래 익주(益州) 출신으로 원래라면 촉파(蜀派)에서 수학해야 했지만 자리가 나지 않아 형주(荊州)의 절파로 유학을 온 것이다. 대부분의 악사가 형주 출신인 절파에서 혼자 익주 출신으로 종종 불이익을 당하거나 고초를 겪었지만 주서는 언제나 웃는 얼굴이었다. 온객행은 문득 너무 오래 주서를 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지 않은 시간 중에 벌써 사흘이나 낭비했으면 그것으로 된 것이라고. 이제부터 더는 낭비하지 않으면 된 것이라고. 그가 다시 서호로 돌아갔을 때 주서는 아주 반갑게 그를 맞아주었다. 온객행은 다짐했다. 다시는 주서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그 이후로 온객행은 행복했다. 그의 긴 인생에서 처음으로 온객행의 마음을 채운 이가 나타난 것이다. 하얀 연꽃 같은 옷을 입고 사람들이 상상하는 하늘의 신을 노래하는 그는 사람인데 빛이 났다. 주서는 금을 타는 것을 좋아했는데 하늘의 신을 노래하는 가사를 붙여 금을 탈 때면 온객행은 그가 노래하는 하늘의 신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서를 만나기 위해 사람들의 세상으로 나온 온객행은 사람처럼 살았다. 먹고 마시고 웃고 울면서 점점 더 주서를 사랑했다. 청명이 조금 지나 마을이 어수선해졌다. 마을에 찾아온 법사는 마을의 기운이 요사스럽기 때문에 요괴를 퇴치해야 한다고 했다. 동정호 근처에는 항상 요괴가 많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법사의 말을 듣지 않았다. 하지만 법사가 나타난 이후에 마을에 큰 홍수가 나고 민심이 흉흉해지자 사람들은 요괴를 탓하기 시작했다.

법사는 사람들에게 웅황(雄黃) 가루로 만든 향낭을 만들어 팔며 말했다. 단양절 가장 밝은 중천에 요괴가 웅황 가루로 만든 술을 마시면 본래 모습으로 돌아간다고 말이다. 사람들은 웅황 가루가 든 향낭을 몸에 지니고 다니기 시작했다. 사실 웅황과는 크게 상관없이 영력이 부족한 요괴는 단양절이 되면 그 기가 약해져서 술을 마시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딱히 술을 마시지 않으면 크게 위험한 일이 없었기 때문에 온객행도 웃으며 주서가 건네는 향낭을 몸에 달았다. 한가지 온객행이 간과한 것이라면 웅황은 땅꾼이 뱀을 잡을 때 사용하는 독이라는 점이었다. 단양절 중천에 사람들이 모여 용 모양의 배를 띄웠다. 온객행은 주서와 함께 강가를 거닐었다. 주서는 흥이 올라 온객행에게 술을 권했고 한잔 정도는 괜찮을 것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한 온객행의 몸이 거대한 뱀으로 변하고 말았다. 온객행도 갑작스럽게 변화한 자신의 모습에 놀라 별수 없이 장강으로 몸을 숨겼다.

주서는 온객행과 함께 있었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질타(叱咤)받았다. 주서는 끝까지 온객행을 두둔했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들어주지도 믿어주지도 않았다. 그의 노온(老溫)은 사람을 절대 해치지 않는다고, 그의 노온은 홍수를 일으키지 않았다고. 온객행이 다시 영력을 회복해 사람의 모습이 되었을 때 주서는 옥에 갇혀 온객행을 만날 수 없었다. 주서를 찾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 온객행은 감옥에서 실려 나오는 시신들 속에서 주검으로 변한 주서를 찾았다. 그의 가느다란 몸에 난 상처를 하나하나 쓰다듬던 온객행의 비애(悲哀)는 살의(殺意)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서호 근처에 있던 마을이 물에 잠겼다. 서호의 장마는 눈이 내릴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그것을 보고 있던 공공이 온객행을 멈추고 벌한 것이다.

주서는 옥황상제(玉皇上帝) 앞에 무릎 꿇고 빌었다. 온객행의 죄를 대신해서 자신이 벌을 받겠다고 빌었다. 옥황상제는 그에게 은하수에 몸을 던질 것을 명했다. 별이 흐르는 강물에 빠진 사람은 다시는 환생할 수 없다. 주서는 옥황상제의 처분에 답했다.
“감은합니다.”
온객행의 죗값을 대신 지고 은하수에 몸을 던진 주서를 진성현녀가 거두었다. 태양 가장 가까이에 척박하고 외로운 진성에 그렇다 할 가신 한 명 없는 진성현녀가 주서를 가신으로 삼았다. 주서가 진성현녀의 가신이 되기 전에 그녀에게 부탁한 것이 한 가지 있는데, 진성현녀에게 빚이 있는 천존은 진성현녀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주서는 속세에서의 모든 기억을 버리고 다시는 땅의 일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서약(誓約)을 하고 진성사자(辰星使者)가 되었다.


주자서는 온몸이 타오르는 것 같은 열기를 버텨보고자 눈을 감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점점 하얗게 바래는 그의 의식을 더는 잡을 수 없어 그만 놓고 말았다. 주자서는 정신을 놓으면서 생각했다. ‘이게 마지막이구나… 흑랑께서 슬퍼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어쩌면 주자서는 온객행을 이미 좋아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주자서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작은 조각배 위에 앉아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강물 위에 크고 작은 배가 보였다. 주자서는 작게 한숨을 쉬고 은은하게 빛나는 강물을 보았다. 반짝이는 작은 별들이 모여 강이 되었다. 직녀가 견우를 만나기 위해 건너야 한다는 은하수가 이럴까? 강물로 손을 가져가는 주자서를 막은 것은 배에 함께 타고 있던 사람이었다. 온화하게 웃고 있는 그는 연꽃을 닮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주자서는 왜 그 옷이 연꽃을 닮았다고 생각했는지 알 수 없었다.

남자가 주자서에게 웃으며 말했다.
“노온은 잘 지내는가?”
주자서가 고개를 들어 남자를 보고 말했다.
“노온?”
남자가 고개를 숙이고 작게 웃으며 말했다.
“너는 그를 뭐라고 부르지?”
주자서는 한참 남자를 보고 있다가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흑랑.”
남자가 다시 고개를 들어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우리 여러 번 만났는데 기억하는가?”
주자서가 눈썹을 찌푸리자 남자가 말했다.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되네. 천존께서도 전부 들어주실 수는 없으셨겠지.”
주자서가 소매를 들어 공손히 인사했다.
“기산의 주가 자서. 인사드립니다.”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덕분에 현녀께서도 모두 내려 놓을 수 있게 되었네.”
주자서는 남자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어서 소매를 내리고 고개를 숙였다. 남자가 말을 이었다.
“받기만 원하는 자는 그에게 주고 있는 자를 참으로 쉽게 잊더군.”
남자가 한숨을 쉬고 말했다.
“노온은 다행히 받기만 원하지는 않았어. 앞으로 그를 잘 부탁하네.”

주자서가 고개를 들어 남자를 보고 말했다.
“제가 뭐라고 그를 부탁하십니까? 직접 하십시오.”
남자가 주자서를 보고 낮게 웃으며 말했다.
“그가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주자서가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남이 슬퍼하는 것을 즐기는 치가 어디 있소?”
남자가 조금 놀란 듯 주자서에게 말했다.
“그런가? 남의 슬픔을 즐기는 치는 아주 많은 줄 알았는데.”
주자서도 남자가 하는 말의 뜻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작게 코웃음 쳤다. 남자가 강물에 손을 담그며 말했다.
“그대의 영혼은 아직 이곳에 올 때가 되지 않았으니 돌아가는 것이 좋겠네.”
남자의 손에 담긴 강물이 반짝반짝 빛났다. 주자서가 그의 손을 보고 말했다.
“은하수 같습니다.”
남자는 ‘하하하’ 웃으며 말했다.
“그대는 알고 있는가 은하수의 기원(基源)을? 이 빛나는 별들이 무엇인지 아는가?”

주자서가 남자를 보고 말했다.
“별이 되고 싶은 혼령들이었겠지요. 땅에 있는 이들을 지켜보고자 하는 사람들이었겠지요.”
남자가 주자서를 보고 슬프게 웃으며 말했다.
“맞아.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기 위해 영혼을 태워 별이 되었지.”
남자가 손에 쥔 강물을 놓고 말했다.
“너는 영혼을 태워 별이 되고 싶을 만큼 사랑한 이가 있는가?”
주자서는 곰곰이 생각하다 말했다.
“모친을 위해서라면 그리 하겠소.”
남자가 잠시 강물을 들여다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그것은 자네 몫이 아니군.”
주자서가 남자를 보고 물었다.
“무슨 소리요?”
남자는 대답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자서를 내려보고 말했다.
“그대가 찾기를 바라겠네. 영혼을 태워 지키고 싶을 만큼 사랑하는 이를. 쉽지 않네. 모두 찾는 것도 아니네. 하지만 찾으려고 하면 누구든 찾을 수 있지.”
주자서가 고개를 들어 남자를 보았다. 남자는 인자하게 웃으며 주자서에게 말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끝났네. 나의 노온을 부탁한다는 말은 철회(撤回)하지. 대신 그대가 행복하기를 바라겠어.”
남자는 주자서에게 다가가 그의 이마에 손을 올려 놓았다. 남자의 손이 닿은 부분이 점점 뜨거워지더니 곧 주자서의 시야가 또 다시 새하얗게 바랬다. 주자서는 정신을 잃어가면서도 남자가 왜 마지막에 그에게 온객행을 부탁한다는 말을 철회했는지 알 수 없었다. 남자가 부탁했다면 주자서는 부채감으로 온객행을 받아 주었을 텐데.


온객행은 적송자의 팔에 매달려 울먹이며 말했다.
“유서에게 물비린내가 난다고 말했다구요. 우리 유서는 헤엄도 못 치고, 물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말입니다.”
적송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보았다. 주요는 온객행 옆에 앉아 고개를 흔들었고 공공과 뇌공은 심각한 대화를 하는 중이었고 금모원군과 청구는 어디에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적송자가 온객행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그래도 올 때 보니 자네가 뽑은 복숭아나무는 다시 잘 심었는지 옥산은 울창하던데?”
온객행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유서는 겁이 많아서 귀신이나 요괴를 무서워해요. 놀랄 때마다 저에게 붙어오는데 그의 체온이 너무 따뜻해서….”
적송자는 얼굴을 구기며 주요를 보았다. 주요는 못 볼 꼴을 봤다는 표정으로 온객행을 보며 혀를 찼다. 온객행은 한참 새로 얻은 내자의 사랑스러움을 자랑하다가 주안상에 머리를 처박고 곯아떨어졌다.

적송자가 주요를 보고 말했다.
“그럼 그 사람은 잊은 건가?”
주요가 온객행을 일으켜 자기 몸에 기대게 하고 말했다.
“난 자리를 채웠으니 그걸로 된 것 아닙니까?”
주요가 술잔을 들어 비우고는 말했다.
“원군께서는 대체 왜 이렇게 독한 술을 대접하는 걸까요?”
적송자가 금모원군이 앉아 있던 상석을 힐끔 보고 말했다.
“원군이 하려는 일에 딱히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네도 알지 않는가? 나와 뇌공에게 남은 원한이 있다는 것을.”
주요가 웃으며 말했다.
“적송자. 적송자. 어찌 아직도 모르십니까?”
적송자가 주요를 쏘아보며 술잔을 들어 비웠다. 주요가 온객행을 바닥에 잘 눕히고 말했다.
“적송자. 원한은 스스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제 내려 놓으세요.”
적송자가 주요와 자기 술잔에 술을 채우며 말했다.
“하하하. 수원. 정말 대선 같은 말을 하는군.”

주요가 술잔을 들어 적송자에게 보이며 말했다.
“적송자께서 원하시면 언제든지 그 은원은 관용의 계기가 됩니다.”
그리고 술잔을 들어 비웠다. 적송자 역시 술잔을 들어 비우고 말했다.
“나는 치욕을 잊을 수가 없어.”
주요가 슬프게 웃으며 말했다.
“적송자. 제 삶은 그 자체가 치욕입니다.”
적송자가 주요를 보고 슬프게 웃으며 말했다.
“용케 버티고 있군.”
주요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 모두 애써서 버티고 있지요.”
적송자는 술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아무래도 뇌공하고 좀 대화를 해야겠어.”
주요가 일어나는 적송자를 힐끔 보고 말했다.
“원군께서 부탁하시는 일을 거절하지 마세요. 이번 일에 책임을 지게 되시면 그 전보다 더 뒷방으로 가셔야 될 겁니다.”
적송자가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수원?”
주요가 고개를 들어 적송자를 보고 말했다.
“애초에 원망의 대상이 틀렸어요.”
적송자는 ‘허’하고 코웃음 치고 뇌공과 공공이 있는 자리로 갔다.

주요는 바닥에 웅크리고 자는 온객행을 보고 말했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우리는?”
주요가 온객행의 뺨에 손을 올려 쓸었다. ‘처음 태평호에 왔을 때 온객행이 어떠했더라?’ 같은 생각을 하며 주요는 웃었다. 주요는 갑자기 고상이 많이 보고 싶었다. 태평호에 아직 돌아오지 않은 천교와 보살도 보고 싶었다. 적송자를 만난 김에 천교와 보살 얘기를 하여 그 아이들도 신분을 올려주는 것이 맞는 것 같아 주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적송자를 찾았다. 공공과 뇌공, 적송자가 대화하는 것을 보고 있던 주요는 참으로 오랜만에 대선 자리가 아쉬웠다. 평생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하였었는데 역시 아직도 깨우칠 것이 많이 남은 중생(衆生)인 것이다. 사실 주요는 대선으로 살았을 때보다 무지기로 살면서 소중한 것이 훨씬 많이 생겼다.


금모원군은 거처로 보낸 양조가 다시 남궁으로 들어오자 미간을 찌푸렸다. 옆에서 시중을 들던 섬여가 고개를 돌려 양조를 보고 눈치껏 청구를 동궁으로 보냈다. 양조가 금모원군에게 다가와 말했다.
“원군. 수원께서 데려온 화사와 발의 아이가 사라졌습니다.”
금모원군이 작게 한숨을 쉬자 양조가 말을 이었다.
“봉황께서는 아무래도 동왕공과 현무가 벌인 일 같다고 하십니다.”
금모원군이 혀를 차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섬여에게 말했다.
“섬여. 가서 독한 술을 가져와라. 오늘 남궁에서 모시는 손님들 중 단 한 명도 내일 중천까지 남궁을 떠나서는 안된다.”
섬여가 고개를 조아리고 상석에서 폴짝 뛰어 남궁의 내실로 향했다. 원군이 양조의 시중을 받아 동궁으로 향하며 말했다.
“지금 동궁에는 누가 있지?”
양조가 손님들의 눈치를 보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린자께서 계셨는데 희발께 가신 것 같습니다. 지금은 봉황 혼자 계십니다.”
원군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가서 대려와 소려를 불러와라. 천존께 급히 전할 것이 있다.”
양조가 포권하여 인사하고 북궁을 향해 뛰기 시작하자 원군이 그를 말리며 말했다.
“양조! 아니다. 내가 가는 것이 빠르겠다. 너는 어서 가서 쉬어라.”
양조가 멋쩍게 웃자 원군이 양조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내일 중천까지 모두 기력을 회복해 두어라. 너희는 그것을 가장 최우선으로 해라.”
양조가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네. 원군.”

훌쩍 날아 북궁에 도착한 금모원군은 대려와 소려를 찾았다. 대려가 금모원군의 기척을 읽고 처소에서 나와 인사하며 말했다.
“원군.”
금모원군이 대려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교견. 봉호(蜂虎)랑 다녀올 곳이 있다.”
대려가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원군. 봉호는 지금 번을 서고 있어요. 대정을 시키시지요.”
금모원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대정은 어디 있지?”
대려가 휘파람을 불자 중궁 쪽에서 청조가 날아왔다. 금모원군을 발견한 청조가 금모원군 앞에 착지하고 인사했다. 금모원군이 대려와 청조의 소매를 잡고 북궁의 외실로 향하며 말했다.
“너희는 삼원(三垣)으로 가서 천존과 진성현녀께 소식을 전하도록 해라.”
대려가 고개를 들어 청조를 보고 말했다.
“원군. 아직 청조는….”
금모원군이 청조를 보며 말했다.
“너는 능히 할 수 있다.”
청조가 결연한 표정으로 금모원군과 대려를 보며 말했다.
“네. 할 수 있습니다.”

원군이 대려와 청조를 하늘로 보내고 다시 남궁으로 돌아왔을 때, 공공과 온객행은 평상에 누워있었고 적송자와 뇌공, 주요만 탁상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원군이 나타나자 적송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금모원군에게 다가가 말했다.
“원군. 어디 다녀오십니까? 이제 막 술자리가 시작되었는데.”
금모원군이 적송자를 다시 자리로 안내하며 말했다.
“오늘은 정말 끝까지 마셔봅시다.”
그리고 곁에서 술 시중을 들고 있는 섬여를 시켜 술을 더 들이게 했다. 주요는 고개를 흔들며 금모원군에게 말했다.
“원군. 저희에게 이 술이 다 무슨 의미입니까? 하실 말씀이 있으면 어서 하세요.”
원군이 자리에 앉아 주요를 보고 말했다.
“수원.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있으니 그것은 잠시 미루도록 하지.”
주요가 적송자와 뇌공의 눈치를 보고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뇌공이 말했다.
“원군께서 한직이라고 하는데 오히려 한직이라도 됐으면 좋겠소.”
금모원군이 뇌공을 보고 말했다.
“뇌공. 왜 이제야 오셨어요. 저에게 오셨으면 제가 설마 뇌공을 홀대라도 할까 봐요?”
적송자가 코웃음 치고 말했다.
“요즘에는 사방신이니 사령이니 하는 것들이 판을 치니 우리가 뭘 할 수 있겠는가?”
금모원군이 미간을 찡그리고 말했다.
“어디 감히 사방신과 사령이 뇌공과 적송자께 무례를 범한다는 말입니까?”
뇌공이 ‘허허허’ 웃으며 말했다.
“아니네. 아니야. 무슨 무례를. 그냥 늙은이와 어울려 준 것이지.”
적송자가 뇌공을 쏘아보며 말했다.
“이 노인네는 술만 들어가면 뭐든 ‘허허허’ 하고 넘기지.”
금모원군이 적송자를 보고 말했다.
“요대의 이야기는 누구에게 듣고 오셨습니까?”
뇌공이 술잔에 술을 따르며 말했다.
“서왕모의 요대를 서왕모 허락 없이 찾을 수 있는 자가 누구이겠는가?”
적송자가 뇌공에게 술잔을 내밀며 말했다.
“그러게 내가 그때 동왕하고 혼인하지 말라고 했잖아.”
금모원군이 적송자가 하는 것처럼 뇌공에게 술잔을 내밀며 말했다.
“그도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어요.”
뇌공이 적송자와 원군의 술잔을 채우고 말했다.
“허허허. 그것은 내가 제일 잘 알지.”

금모원군이 적송자에게 말했다.
“적송자께서 혹시 괜찮으시면 우리 패하를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적송자가 술잔을 비우고 금모원군을 보며 말했다.
“영귀를?”
금모원군이 고개를 끄덕이고 술잔을 비웠다. 뇌공이 다시 술잔을 채우며 말했다.
“북쪽에 무슨 일이 있는가?”
금모원군이 술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현천상제가 조락(凋落)하신 이후로 일이 끊이지 않습니다.”
뇌공이 술잔을 들어 비우고 말했다.
“그 정도 인가?”
주요가 거들었다.
“지금 현무를 하고 있는 현명은 원래 동북에 살던 수귀(水龜)로 현무자리에 앉기는 좀 부족하긴 하지요.”
적송자가 술잔에 술을 채우며 말했다.
“아무래도 현천상제 후임으로 가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본인이 하겠다고 하니 시켜준 것이지.”
금모원군이 적송자를 보고 말했다.
“적송자께서 한다고 하셨으면 좋잖아요.”
적송자가 금모원군을 보고 말했다.
“시켜주겠는가? 나의 상전은 치우였는데?”
금모원군이 코웃음 치고 말했다.
“치우의 신하이시니 더욱 알맞은 자리가 아닙니까?”
뇌공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원군 우리는 우리를 따르는 가신도 한 명 없네. 언제적 치우인가?”
금모원군이 뇌공을 보고 말했다.
“가신이야 필요 없으시니 안 두신 것 아닙니까? 필요하시면 말씀하세요. 요대에 쓸만한 아이들이 많으니.”
적송자가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그럼 나는 패하의 가신이 되는 건가?”
금모원군이 ‘하하하’ 웃으며 말했다.
“설마요. 패하가 적송자의 제자가 되는 것이겠지요.”
적송자가 화색을 하며 물었다.
“서왕모. 패하를 내 제자로 들여도 좋다는 말인가?”
금모원군이 술잔을 채우며 말했다.
“우리 패하가 적송자 성에 차시면 그리하세요.”
적송자가 ‘허허허’ 웃으며 술잔을 들었다.

금모원군이 뇌공을 보고 말했다.
“뇌공께서도 아시지요. 도예께서 요즘….”
뇌공이 술잔을 멈추고 금모원군을 보았다. 금모원군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다행히 읍강과 희발을 기억하셔서 저희가 돌봐 드리고 있는데….”
적송자가 코웃음 치며 말했다.
“백룡과 백호는 뭐하고 그것을 기린이 한다는 말인가?”
금모원군이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적송자께서 잊으셨어요? 도예를 봉인한 것이 누구인지를?”
적송자가 ‘아’하고 작게 탄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뇌공이 말했다.
“그렇지 욕수는 백호로 봉해진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어쩔 수가 없었겠군.”
금모원군이 뇌공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기린은 사령의 수장이라 수장의 일로도 바쁜데 도예의 일로 묶여 있으니 좀처럼 요대에도 오질 못해요.”
뇌공이 ‘허허허’ 웃으며 말했다.
“도예가 나를 알아볼지 모르겠군.”
금모원군이 뇌공의 술잔을 채우며 말했다.
“당연히 기억하지요. 어찌 잊겠습니까? 필요하신 것은 말씀만 하세요. 서왕모가 돕겠습니다.”

뇌공이 술잔을 비우고 말했다.
“산천대제는….”
금모원군이 뇌공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저희 부군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설마 제가 죽이기라도 하겠어요?”
적송자가 원군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차라리 죽이게. 그 치는 오히려 죽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어.”
뇌공이 맞장구 치며 말했다.
“죽이는 것이야 어렵지 않지. 그 죄를 누가 감당하는 것인가의 문제 아닌가.”
금모원군이 웃으며 말했다.
“동왕공의 일이야 사방신과 오룡을 잘 다스리면 될 일입니다.”
뇌공이 금모원군을 힐끔 보더니 물었다.
“누구를 갈아 치우려고 그런 말을 하는가?”
금모원군이 술잔을 들어 입술을 축이고 말했다.
“제일 쓸모없는 것부터 치워야지요.”
적송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동왕공을 죽이자니까?”
주요가 소매를 들어 입을 가리고 웃으며 말했다.
“동왕공을 담금질하는 자들부터 치워야지요.”

적송자가 술잔을 내려놓고 주요를 보며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금모원군이 적송자와 뇌공의 술잔을 채우며 말했다.
“그러니 다음부터는 일을 하시기 전에 좀 알아보고 하십시오.”
뇌공이 눈썹을 찌푸리며 금모원군을 보았다. 적송자가 뭔가 말하려는데 주요가 손을 들어 그들을 멈추고 말했다.
“혹시 기억하십니까? 제가 왜 무지기가 되었는지?”
뇌공이 주요의 말에 고개를 꺾어 ‘하하하’ 하고 웃었다. 적송자 역시 ‘하하하’ 웃으며 말했다.
“그대가 어찌 무지기라는 말인가?”
주요가 금모원군을 보고 말했다.
“원군. 저는 놓아줄 준비가 된 것 같습니다.”
금모원군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 다행이구나.”
뇌공이 다시 술병을 들어 다른 이들의 술잔을 채우며 말했다.
“큰일이 일어나려 하는가?”
금모원군이 양손으로 술잔을 들고 말했다.
“세상이 조용하다 해도 수많은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는 법이지요. 그것의 크고 작음을 정하는 것은 하늘입니다.”
금모원군의 말에 적송자와 뇌공도 술잔을 들었다. 주요도 두 손으로 술잔을 들었다.

蛇苺 第23

釜底抽薪 | 23. 솥 밑의 장작을 빼낸다.

고상은 어둠 속으로 빠져들어 가면서 주자서를 놓치지 않기 위해 그를 꼭 끌어안았다. 주자서는 평상에서 일어나려고 하다가 더 깊숙하게 그림자 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한참 아래로 떨어지던 둘은 그림자를 벗어나 검은 안개가 가득 찬 곳에 닿았다. 고상이 주자서의 몸을 이리저리 더듬으며 말했다.
“유서. 괜찮은가?”
주자서가 주변을 살펴보고 고상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아상께서는 괜찮으세요?”
고상이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보았다. 검은 안개가 걷히자 그들은 축축한 동굴 속에 있었다. 고상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물길?”
빛이 하나도 없어 어둑한 동굴 속에서 주자서는 보이는 것이 얼마 없어 고상을 가까이 안고 말했다.
“아상. 뭐가 보이십니까?”
고상이 눈을 감고 안개를 만들어 주자서와 자기를 감싸더니 말했다.
“어딘지 모르겠는데 해화상의 길인 것 같아. 유서, 나에게서 떨어지지 마라.”
고상이 만들어낸 안개에서는 은은하게 빛이 나서 그제야 주자서는 주변이 조금 보였는데 태평호에서 파양호에 갈 때 거쳤던 물길과 비슷한 동굴이었다.

고상은 잠깐 방향을 가늠하더니 물길을 걷기 시작했다. 주자서가 고상을 따르며 말했다.
“아상. 한 자리에 있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고상이 물길을 둘러보며 말했다.
“누군가 오고 있네. 숨는 것이 좋겠어.”
그리고 둘의 몸을 바위틈 사이에 숨기고 안개를 조금 더 만들어 둘을 가렸다. 고상이 한참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더니 말했다.
“여기 하수(夏水) 근처 같아.”
주자서가 몸을 움츠리며 말했다.
“하수?”
고상이 주자서의 입을 막고는 말했다.
“쉿!”
발소리가 들리고 검은 옷으로 무장한 이들이 횃불을 들고 동굴 안을 살폈다.
“여기 있을 것이다. 찾아라.”
고상이 미간을 찌푸리며 작게 말했다.
“사람?”
고상의 말에 주자서가 동굴 안에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옷과 무기를 보니 어느 귀한 집안의 사졸이나 호위 같았다. 군에서 사용하는 갑옷을 입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허리에 두른 가죽으로 만든 요대는 군병이 사용하는 것이었다. 군관이 그들이 쪼그려 앉아 숨어있는 틈까지 다가와 횃불을 이리저리 들춰보며 그들을 찾았다. 바로 앞에서 횃불을 흔드는 모습에 주자서가 몸을 뒤로 하자 고상이 그를 달래려는 듯 어깨에 팔을 둘렀다.


“분명히 여기라고 했는데 왜 보이지 않지?”
대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군관들에게 닦달했다. 곧 군관들이 들어온 쪽에 어떤 남자가 들어오더니 말했다.
“흠.”
대장이 그에게 인사하며 말했다.
“지주대인(蜘蛛大人). 저희가 찾았지만 보이지 않습니다.”
남자는 그들이 수색했다는 곳을 둘러보다가 고상과 주자서가 있는 틈을 보고 말했다.
“아주 예쁜 화사로군.”
고상이 혀를 차고 일어나며 안개를 걷었다.
“망충(網蟲).”
지주가 고상을 보고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화사.”
주자서가 고상 앞에 서며 말했다.
“그대들은 누구인데 해화상의 길에 계십니까?”
지주가 주자서를 보고 웃으며 물었다.
“네가 발의 후손인가?”
지주는 고상과 주자서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말했다.
“발의 후손이 왜 화사가 되었지?”
동굴을 수색하던 사람들이 고상과 주자서를 틈에서 끌어내어 지주 앞에 무릎 꿇게 했다.

고상이 지주를 보고 말했다.
“망충! 주인께서 알면 가만 두실 것 같아?”
지주가 고상에게 다가가 그녀의 턱을 손가락으로 들고 말했다.
“그러게. 무지기가 알기 전에 어서 해치워 버려야지.”
고상이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나를 건들기만 해봐! 내 몸에 그려진 진(陣)을 건들기만 해도 네놈들이 누구인지 밝혀내는 것은 일도 아니야!”
지주가 피식 웃으며 고상의 옷깃을 잡자 주자서가 몸부림을 치며 말했다.
“그만두시오! 어찌 여인을 욕보인다는 말이오!”
지주가 주자서를 보고 재밌다는 듯이 말했다.
“욕보여? 네 눈에는 이 뱀이 사람으로 보이나 보지?”
지주의 몸에서 가느다란 실이 뿜어져 나오더니 고상을 감쌌다. 주자서가 놀라서 고상을 보고 소리쳤다.
“아상!”
고상은 지주의 몸에서 나온 붉은 실에 휘감기더니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는 사람의 소리에서 점점 뱀이 내는 소리인 ‘쉭쉭’ 대는 소리로 바뀌었는데 지주의 실이 고상의 몸 안으로 녹는 것처럼 사라지더니 고상의 몸이 능소화 빛깔의 뱀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주자서는 ‘하!’ 하고 작게 숨을 들이켜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를 잡고 있던 군관들이 그를 놓아주자 주자서는 무릎 꿇고 뱀으로 변한 고상에게 다가갔다.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뱀을 만지자 뱀이 주자서의 손에 머리를 비볐다. 주자서는 얼른 뱀을 손안에 들고 말했다.
“이게… 이게 무슨 짓이오?”
지주가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겨우 화사 주제에 감히.”
주자서가 뱀을 조심스럽게 품에 안고 지주를 보고 말했다.
“나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오?”
지주가 주자서를 보고 말했다.
“발의 후손인데 왜 사내지?”
주자서는 조금 짜증이 난 기색으로 말했다.
“하늘이 하는 일을 내가 어찌 안다는 말이오!”
지주가 주자서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그것도 그렇네.”
그리고 군관에게 고갯짓하자 주자서를 놓아주었던 군관이 주자서를 일으켜 팔을 잡았다. 주자서가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원하는 것이 무엇이오?”
지주가 코웃음 치며 말했다.
“너 따위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 고작 사람 주제에.”
지주가 몸을 돌려 군관에게 지시하더니 금방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남은 군관들은 주자서를 데리고 물길을 걸어 밖으로 나왔다. 물길 밖은 물가 근처일 것이라는 주자서의 예상을 뒤 엎고 산에 있는 서원이었다.


군관들은 주자서를 감옥이 아니라 객실에 가뒀다. 주자서는 고상을 품속에 안고 그들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라 주었다. 물길에서 서원으로 오는 길에 보았던 군관들은 주인이 그들 대접을 잘했는지 위계질서도 있었고 지치거나 배를 곯은 기색이 없었다. 무기가 없는 주자서 혼자 당해낼 수 있을 만한 무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주자서는 일단 그들이 시키는 대로 따라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주자서가 대장으로 보이는 이에게 물었다.
“여기는 어디입니까?”
대장은 주자서를 품평하듯 위아래로 보더니 말했다.
“계집 같은 꼴을 해서는….”
주자서가 표정을 구기고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이오?”
군관의 대장은 주자서의 말을 무시하고 부하들에게 그를 지키라는 말을 하고 장지문을 닫았다. 주자서가 나가려고 하자 장지문 옆에 서 있던 군관이 그를 막았다. 주자서는 그들을 빤히 보다가 작게 한숨을 쉬고 얌전히 객실 안으로 들어왔다.

주자서는 침상 위에 안고 있던 작은 뱀을 놓아주고 그 아래 앉아서 뱀과 눈높이를 맞추고 말했다.
“아상께서도 뱀이셨군요.”
주자서가 뱀의 머리를 손가락 끝으로 문지르며 말했다.
“우리는 어쩌죠?”
뱀은 주자서가 쓰다듬어 주는 것을 한참 즐기다가 똬리를 틀었다. 주자서는 뱀에게서 시선을 떼고 객실을 둘러보았다. 이곳저곳에 놓인 서책과 죽간이 아니면 어느 귀족 집의 외실로도 보였다. 태평호 이후로 주자서는 참으로 분수에 맞지 않는 곳에 머무는 일이 많아졌다. 자리에서 일어나 혹시 무기로 쓸만한 것이 있을까 싶어 둘러보았지만 서신을 뜯는 날붙이 하나 없었다. 다시 침상으로 가서 똬리를 틀고 있는 뱀 옆에 앉아 말했다.
“사람이면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입니다.”
주자서는 작게 한숨 쉬고 뱀을 보았다. 뱀은 머리를 몸에 기대더니 곧 붉은 눈을 감았다. 주자서는 침상 위에 있는 이불을 펴서 뱀에게 덮어주고 죽간이 쌓여 있는 서안으로 가서 앉았다. 따로 보관하는 서책 같으니 읽어 보면 이곳이 뭐 하는 곳인지 알 수 있을까 싶어 주자서는 서책을 읽기 시작했다.

고상이 다시 눈을 떴을 때, 고상은 침상 위에 금침 위에 있었다. 해가 이미 졌는지 방안은 어슴푸레했다. 고상이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펴보자 주자서는 서안에 기대어 잠이 든 것 같았다. 고상은 천천히 침상에서 내려와 주자서에게 다가갔다. 서안을 타고 올라가자 주자서가 읽던 죽간이 보였다. 벌써 몇 개 읽었는지 서안 위에는 죽간 여러 책이 이리저리 놓여 있었다. 고상은 다른 기척을 읽고 얼른 주자서의 품속으로 들어갔다. 횃불을 들고 들어온 군관은 객실을 살펴보더니 서안에 앉아 고개를 괴고 잠들어 있는 주자서를 발견하고 말했다.
“야! 일어나라!”
주자서가 군관의 목소리에 어깨가 튀더니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이보시오. 내게도 이름이 있네. 어찌….”
군관이 주자서에게 다가가 그의 팔을 잡고 일으키며 말했다.
“주인이 오셨으니 일어나라!”
주자서가 일어나서 소매를 털며 옷매무새를 가다듬자 장지문을 열고 금색 옷을 입은 남자가 들어왔다.

금색 옷을 입은 남자가 들어와 상석에 가서 앉자 군관이 주자서의 팔을 잡고 그의 앞으로 가게 한 뒤에 무릎을 꿇게 했다. 주자서는 순순히 남자 앞에 무릎을 꿇고 소매를 들어 인사했다.
“기산의 주가 자서라 합니다.”
금색 옷을 입은 남자가 주자서를 한참 들여다보더니 혀를 차며 말했다.
“어찌 사내란 말이냐?”
주자서가 고개를 흔들고 말했다.
“하늘이 하시는 일을….”
남자가 주자서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나는 후토. 황룡이네.”
주자서가 고개를 들고 자기를 황룡이라 소개하는 남자의 얼굴을 보았다. 이제 막 장령(壯齡)에 들어선 남자는 인자하게 웃으며 주자서를 보았다. 주자서가 황룡을 보고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황룡…?”

황룡이 주자서에게 다가가 말했다.
“네가 발의 후손이라고?”
황룡은 주자서의 얼굴을 조금 더 보다가 그의 머리채를 잡고 말했다.
“감히 계집 주제에 나를 뛰어넘어?”
주자서가 잡힌 머리를 잡고 말했다.
“나… 나는….”
황룡이 주자서의 머리채를 쥐고 흔들며 말했다.
“네가 하늘에서 어떠한지 내 알 바 아니지만 땅에서까지 나를 능가하려 하느냐?”
주자서가 황룡의 손길이 이리저리 휘둘리며 말했다.
“무슨… 무슨 말씀….”
황룡이 주자서의 머리채를 거칠게 놓고 말했다.
“천존께서는 어째서 너 따위에게!”
주자서가 바닥에 고꾸라지자 황룡이 다가가 주자서의 몸을 발로 차며 말했다.
“산천대제께서 너의 힘을 갖고 나면 감히 누가 너 따위에게 관심을 두겠느냐? 감히! 감히!”
주자서는 몸을 동그랗게 말고 황룡의 발길질을 견뎠다.

내실 안으로 즉저와 지주가 들어왔다. 즉저가 말했다.
“그쯤 하시오. 산천대제께서 오고 계시는 중이니.”
황룡이 화를 삭이지 못하고 씩씩거리며 바닥에 누워있는 주자서에게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너의 공은 내가 가졌어야 마땅한데 어찌! 어찌!”
즉저가 탁상에 있는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영력을 빼앗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개 사람일 뿐이니 참으시오.”
황룡이 탁자로 가서 앉으며 말했다.
“요대의 일은 어떻게 되었소?”
지주가 바닥에 누워 있는 주자서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봉황 한 마리가 노망난 노인네 둘을 어찌 하겠습니까?”
즉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차피 천존께서는 노인네 노망으로 치실 테니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황룡이 주자서를 노려보며 말했다.
“어서 저것을 치우고 끊어냈으면 합니다”
즉저가 황룡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그리 될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지주가 객실을 둘러보고 뭔가 말하려고 할때 산천대제가 현명대선과 함께 객실 안으로 들어왔다. 즉저와 지주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조아려 인사했다. 현무가 소매를 들어 황룡에게 인사하며 말했다.
“후토.”
황룡도 자리에서 일어나 현무에게 인사했다.
“현명.”
산천대제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주자서를 발견하고 다가가며 말했다.
“발의 아이야.”
주자서가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 소매를 들고 고개를 조아려 인사했다. 주자서가 인사하는 모습을 본 현명이 ‘흥’하고 코웃음 쳤다. 산천대제가 주자서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그의 목덜미에 고개를 묻어 냄새를 맡더니 말했다.
“아… 발의 아이야.”
주자서가 몸을 바르작대며 품에서 나오려고 하자 산천대제가 주자서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끌어안고는 황룡에게 물었다.
“이… 이 영력을 어떻게? 어떻게?”
황룡이 산천대제를 보고 고개를 조아려 인사하고 말했다.
“팔주령은 가져오셨습니까?”
산천대제가 현무를 보자 현무가 소매에서 금동으로 만든 팔주령을 꺼내 탁상 위에 두었다.

산천대제가 주자서를 끌고 탁상으로 가서 팔주령을 손에 쥐었다. 산천대제가 현무와 황룡을 번갈아 보고 물었다.
“어찌하면 되는가? 어떻게 해야 발의 봉인을 풀 수 있지?”
현무와 황룡이 잠깐 시선을 마주했다 한숨을 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즉저가 소매를 들어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대제께서 직접 하셔야 합니다. 봉인을 푼 자에게 힘이 깃드니까요.”
산천대제는 팔주령을 주자서의 손에 쥐여 주더니 그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주자서는 조금 당황하여 대제의 팔을 잡고 말했다.
“동왕공. 이 방법은 아닌 것 같은데….”
현무가 대제의 소매를 잡고 주자서를 보며 말했다.
“이 치가 스스로 봉인을 풀 수 없으니 대제께서 직접 봉인을 깨신 뒤에 그 힘을 팔주령에 담으시면 됩니다.”
대제가 현무를 보고 물었다.
“봉인은 어떻게 깨는가?”
현무가 대제를 보고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일단 영을 들여다보시고 발의 힘을 찾으신 뒤에 부수면 됩니다.”
대제가 소매를 털어 현무의 손을 뿌리치고 말했다.
“그니까 그것을 어떻게 하냐는 말이네!”

황룡이 주자서를 빤히 보더니 말했다.
“이미 봉인이 깨어진 것 같으니 그냥 취하시지요.”
대제가 황룡을 보고 물었다.
“어떻게?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대제가 주자서의 앞섶에 고개를 박고 숨을 들이쉬더니 말했다.
“정말 충만한 영력이 느껴지는구나.”
황룡이 대제를 보고 낮게 웃으며 말했다.
“손으로 직접 꺼내시면 됩니다.”
그리고는 주자서의 등허리에 손을 대더니 그의 몸 안으로 황룡의 손이 들어가 주자서 몸 안을 헤집었다. 주자서는 ‘하!’하고 숨을 들이쉬고 고개를 들었다. 주자서의 눈과 입안에서 빛이 새기 시작하자 산천대제가 그의 얼굴을 붙잡았다. 주자서는 고개를 흔들어 얼굴을 붙여오는 산천대제를 밀어냈다. 곧 주자서의 품속에서 작은 뱀이 나와 주자서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산천대제가 놀라서 뱀을 잡아보려 했으나 잡지 못했다. 뱀이 주자서의 몸속으로 들어가자마자 주자서의 온몸에서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당황한 산천대제가 주자서를 놓아주자 주자서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뇌공과 한참 힘겨루기를 하던 읍강이 고개를 돌려 동궁을 보자 뇌공이 말했다.
“이제 나도 우습게 보이는가? 린?”
읍강이 고개를 돌려 뇌공을 보고 말했다.
“갑자기 왜 이러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뇌공이 ‘하하하’ 하고 크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원래 싸우는 것을 좋아하네? 나의 상전이 치우(蚩尤)였다는 것을 잊었나?”
읍강이 중궁을 보고 말했다.
“뇌공. 원군께서는 이런 일을 바라셔서 그리 하신 것이 아닙니다.”
뇌공이 뇌부(雷斧)를 휘둘러 벼락을 만들며 웃고 말했다.
“하하하. 뒷방 늙은이에게 무서운 것이 뭐가 있겠나? 어차피 나는 하늘로 올라가지도 못하니 그저 즐거우면 그만이지.”
읍강이 뇌공의 벼락을 피하자 곧 중궁에서 커다란 용이 나와 뇌공을 보고 말했다.
“뇌공께서 즐거우시면 수원이 어울려 드려야지요.”
주요를 본 뇌공이 모습을 사람으로 바꾸고는 말했다.
“수원. 그대가 왜 여기 있는가?”
주요 역시 용의 모습을 사람의 모습으로 바꾸고 말했다.
“원군께서 청하셔서 이렇게 왔습니다.”
읍강 역시 모습을 바꿔 동궁으로 향했다.

주요가 동궁으로 가는 읍강을 보고 뇌공에게 말했다.
“뇌공. 적송자께서는 이미 원군을 뵙고 계십니다.”
뇌공이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수원 그대가 있는 줄 알았으면 오지 않았네.”
주요가 공손히 고개를 조아리고 별궁 쪽으로 손바닥을 펴며 말했다.
“원군께서 기다리고 계시니 가시지요.”
뇌공이 한숨을 쉬고 별궁으로 향했다. 별궁에는 흠뻑 젖은 봉황과 청구, 양조가 원군 곁에 서 있었고. 그 앞에 적송자와 온객행이 대치하고 있었다. 적송자가 부루퉁하게 말했다.
“역시 촉룡의 제자 답군.”
온객행이 소매를 들고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제가 어찌 우사(雨師)께 무례를 범하겠습니까?”
적송자가 금모원군을 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요대에는 날짐승만 있으니 비가 오면 위험하다고.”
봉황이 몸에 물을 털어내며 말했다.
“적송자! 어찌….”
금모원군이 봉황의 말을 자르고 말했다.
“적송자. 우리 아이들 괴롭히는 일은 그만두세요. 날짐승만 있다니요. 적송자는 제가 무엇인지 잊으셨습니까?”
금모원군이 적송자를 쏘아보자 적송자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오랜만에 서왕모와 겨루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금모원군이 조금 날카로운 기색으로 말했다.
“하필 왜 이런 시기에 이러십니까?”
적송자가 양손을 펼쳐 보이며 말했다.
“나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난 정말 심심해서 놀러 온 것뿐이야.”
금모원군이 봉황과 양조 쪽으로 손을 펴고 버럭 소리질렀다.
“심심해서 우리 아이들을 괴롭힌다는 말입니까!”

주요가 금모원군에게 소매를 모아 인사하고 말했다.
“원군. 고정하소서.”
뇌공이 금모원군을 보고 말했다.
“원군 이렇게 화낼 일인가?”
금모원군이 뇌공을 쏘아보며 말했다.
“두분께서는 한직에 계시니 한가하셔서 좋겠습니다. 이렇게 한가하신 줄 알았으면 어서 찾아뵙고 도움을 청했어야 하는데!”
주요가 원군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원군. 이렇게 오셨으니 지금 하시지요.”
원군이 주요를 한참 보더니 표정을 바꿔 적송자와 뇌공을 보고 말했다.
“오랜만에 요대를 찾아 주셨으니 이 서왕모가 어찌 그냥 보낼 수 있겠습니까? 섬여!”
남궁 쪽에서 섬여가 폴짝 뛰어나와 말했다.
“원군.”
금모원군이 말했다.
“남궁에서 연회를 열어야 하겠다.”
섬여가 고개를 조아리고 남궁의 외실로 향했다. 남궁 외실에서 공공이 나와 적송자와 뇌공을 보고 소매를 들어 인사하며 말했다.
“적송자! 뇌공!”
뇌공이 공공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공공! 여기 있었는가?”
적송자가 금모원군의 눈치를 보며 주요에게 말했다.
“어서 흑망을 승천시키게.”
주요가 고개를 돌려 적송자를 보고 미간을 찌푸리자 적송자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원군이 원하는 것을 이루려면 저 치가 흑룡인 편이 쉽네.”
주요가 고개를 돌려 원군 옆에 서 있는 온객행을 보았다.

양조는 적송자의 비를 맞아 한동안 날 수 없었기 때문에 요대를 호위하는 군관들이 모두 여우로 바뀌었다. 삼족오를 통솔하는 양조는 원군에게 허락을 구하고 처소로 돌아갔다. 봉황 역시 원군과 손님들께 양해를 구하고 동궁으로 돌아갔다. 온객행이 주요를 보고 물었다.
“동궁에는 별일 없지요?”
주요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동궁에 린자가 계신 것을 몰랐던 것 같아.”
온객행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원군께 뭘 부탁하셨소?”
주요가 온객행을 쏘아보며 말했다.
“왜?”
온객행이 주요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귀한 자리로 가시는 것 아니오?”
주요가 표정을 구기고 말했다.
“시끄럽네. 자네야 말로 원군께 부탁드려 어서 흑룡으로 승천하시게.”
온객행이 고개를 돌려 주요를 보고 말했다.
“제가요?”
주요가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말했다.
“일단 흑룡이 되는 편이 여러모로 편할 거야.”
온객행이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했다.
“흑룡이 되면 유서가 물비린내 난다는 소리는 안 듣겠지요?”
주요가 온객행을 마주 보며 표정을 구기자 온객행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흑룡의 내자에게 물비린내 난다는 소리는 안 하겠지요?”
주요는 어이가 없어서 고개를 흔들며 헛웃음 쳤다.


봉황이 동궁에 도착해서 외실을 지나 거처로 향하는데 읍강이 나와 봉황을 보고 말했다.
“큰일이네.”
봉황이 다 젖은 깃털을 털며 말했다.
“린자. 무슨 일입니까?”
읍강이 봉황의 소매를 잡아 객실로 잡아 끌며 말했다.
“누가 화사와 발의 후손을 데려갔어.”
봉황이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린자?”
읍강이 객실 안으로 들어가 방안을 살피며 말했다.
“그림자야. 그림자를 쓰는 자네.”
봉황이 눈을 감았다 뜨자 그의 눈이 황금색으로 빛났다. 방안을 둘러보던 봉황이 평상이 있던 자리로 가서 주변을 보고 말했다.
“현명?”
읍강이 봉황에게 다가와 그의 팔을 잡고 말했다.
“수원과 흑망이 알아서는 안 되네.”
봉황이 읍강을 보고 말했다.
“어찌?”
읍강이 봉황을 보고 말했다.
“일단 흑망을 흑룡으로 등선 시키고 난 다음에 알려도 늦지 않네.”
봉황이 한숨 쉬며 말했다.
“린자. 저는 적송자의 비를 맞아서….”
읍강이 고개를 끄덕이고 봉황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일단 이곳을 지키고 있게. 내가 희발에게 가보겠네.”
봉황이 읍강에게 말했다.
“패하께 말씀드리세요. 이 일에 현명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읍강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
“내가 모르겠는가?”
봉황이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
“어서 움직이시죠.”
읍강이 봉황을 보고 작게 웃고는 고개를 끄덕이고 객실을 나갔다. 봉황은 방안을 둘러보다 평상 위로 올라가 벌렁 눕고 생각했다. ‘산천대제를 뭐 어떻게 하고 말일이 아니게 돼 버렸네….’


남궁의 연회에 자리를 안내받은 온객행과 주요는 자리에 앉아 태평호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적송자가 다가와 흑망에게 말했다.
“자네는 왜 여기 있나?”
온객행이 자리에서 일어나 적송자에게 공손히 인사했다. 온객행은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운 기색으로 말했다.
“원군께 부탁이 있어서….”
주요도 일어나 적송자에게 인사하고 말했다.
“이 치의 내자에게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적송자가 주요를 보고 물었다.
“이 치의 내자인데 자네는 왜 여기 있나?”
주요가 공공 쪽으로 눈짓하며 말했다.
“공공께서 나의 화사를 찾으시니 와야지요.”
적송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 화사가 왜 자네 화사인가? 파사를 감시하라고 붙인 것이 아니었나?”
주요가 온객행의 턱을 잡고 흔들며 말했다.
“이 파사도 제 파사입니다.”
온객행이 부스스 웃으며 말했다.
“수원께서 중매를 안 하셨으면 제가 어찌 내자를 얻었겠습니까.”
적송자가 주요와 온객행을 번갈아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태평호에서 잘 지내고 있었나 보군.”

주요가 적송자를 보며 말했다.
“우사께서는 하늘이 이 지경이 될 동안 뭐하셨소?”
적송자가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뒷방 늙은이인 내가 뭘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주요가 적송자를 흘겨보며 말했다.
“정말 무슨 부탁을 받고 오신 것은 아니지요?”
적송자가 공공과 대화하고 있는 뇌공을 가리키고 말했다.
“우린 진짜 심심해서 왔어. 이제 아무도 우리랑 교류하려고 하지 않으니까.”
주요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제가 모르겠습니까.”
온객행이 적송자와 주요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말했다.
“뒷방 늙은이들께서 오늘 흑망에게 주도(酒道)를 가르쳐 주셔야 하겠습니다. 요대의 술을 모두 마셔봅시다.”
적송자가 웃으며 말했다.
“흑망 그대는 어서 가서 취수를 건너고 오라니까.”
온객행이 적송자를 보고 말했다.
“아직 영력이 다 돌아오지 않았는데 제가 건널 수 있을까요?”
적송자가 온객행의 어깨에 팔을 둘러 어깨동무하고 말했다.
“내가 볼 때 나 등선할 때보다 더 기세가 좋아.”
온객행이 웃으며 말했다.
“제가요?”
적송자가 말했다.
“자네도 이제 꽤 나이가 있지 않나? 내자도 생겼으니 어서 등선 해야지.”

주요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네 내자가 흔한 사람은 아니니 어서 원군께 부탁드려 취수를 건너도록 해라.”
온객행이 남궁으로 들어오는 주안상을 보고 말했다.
“일단 술부터 마시면 안됩니까?”
적송자 역시 주안상을 보고 말했다.
“그것도 그렇군. 요대 나흘마의 솜씨는 하늘에서 유명하니까.”
온객행이 주요를 보고 말했다.
“주요. 알잖아요. 난 요대에서 환대를 받아본 적이 없소. 유서와 처음 왔을 때 내가 어디서 지냈는지 아시오?”
적송자가 어깨동무를 풀고 온객행을 주안상 앞에 앉히며 말했다.
“내가 들어줄 테니 말해보게.”
주요가 온객행에게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온객행. 자업자득이야. 네가 옥산에서 친 사고를 생각하면 별궁에 들인 것만으로도 환대야.”
적송자가 ‘허허허’ 웃으며 말했다.
“내가 모르는 일이 있었나 보군. 무슨 일이 있었나? 내게 털어 놔 보게.”
온객행이 주요를 쏘아보며 적송자 옆에 앉아 한탄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