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람

詩經 國風 鄭風 風雨
시경 국풍 정풍 풍우; 비바람

風雨淒淒 雞鳴喈喈 旣見君子 云胡不夷
비바람이 몰아쳐 춥고 처량한데, 멀리서 닭울음 들려오네.
이제 그리운 님 돌아 오셨으니, 어찌 내 마음 편하지 않으랴!
風雨瀟瀟 雞鳴膠膠 旣見君子 云胡不瘳
비바람 세차게 몰아치는데, 닭울음 아득히 들려오네.
이제 그리운 님 돌아 오셨으니, 어찌 내 마음 체 내린듯 시원하지 않으랴!
風雨如晦 雞鳴不已 旣見君子 云胡不喜
비바람 몰아쳐 밤처럼 어두운데, 닭울음 그치지 않네.
이제 그리운 님 돌아 오셨으니, 어찌 내 마음 기쁘지 않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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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처처(淒淒): 날씨가 싸늘한 모양을 나타낸 의태어(擬態語). 날씨가 쌀쌀한 기운.
  2. 개개(喈喈): 듣기 좋은 새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를 나타낸 의성어(擬聲語).
  3. 운호(云胡):호(胡)는 ‘어찌’의뜻으로, 여하(如何)와 같다.
  4. 이(夷): 평(平)과 같은 뜻으로, ‘마음이 편안한 것’을 이른다.
  5. 소소(瀟瀟):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는 소리를 나타낸 의성어(擬聲語). 사납고 빠른 것을 의미한다.
  6. 교교(膠膠): 닭울음 소리를 나타낸 의성어(擬聲語).
  7. 추(瘳): 마음의 병이 낫다.
  8. 풍우여회(風雨如晦): 회(晦)는 어둠을 뜻한다. 새벽인데도 밤과 같다는것은 비바람이 몹시 심하다는 의미이다.
  9. 이(已): 그치다. 멈추다.
  10. 출처

객지에서 오랫동안 행역(行役)을 하다가 돌아온 남편을 맞아들인 아내의 기쁨과, 비바람치는 새벽에도 마음놓고 살 수 있게 된 안도감(安堵感)을 노래한 것 이라고 한다. 시경을 읽어보면 의외로 애정시가 많다. 남방에 초사가 있다면 북방에 시경이 있는데 보통 4언절구로 최초의 시가집의 타이틀에 걸맞게 귀족 뿐만아니라 민생의 시대상을 알수 있는 내용이 많아서 여러모로 역사연구에 기여를 하고 있다.

시경은 사서삼경할때 말하는 대표적인 유경에 속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느껴지는 지루할것 같은 느낌과는 달리 서정적이고 재미있는 내용이 굉장이 많다. 시경을 제외한 다른 유경의 경우 보통 역사를 집필한 내용이거나 왕실 혹은 집안의 법도같은 사실을 전하는 용도의 글이라 솔직히 지루하다. 쭉 읽는다기 보다는 그냥 필요한 부분을 찾아 읽는 편이라면 시경은 시집을 읽듯이 가끔 펼쳐봐도 전혀 지루하지 않다.

공자가 문하의 제자를 교육할 때, 주나라 왕조의 정치적 형태와 민중의 수용 태도를 가르치고 문학·교육에 힘쓰기 위하여 편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한시대에 〈제시(齊詩)〉·〈노시(魯詩)〉·〈한시(韓詩)〉·〈모시(毛詩)〉 라는 네 가지 종류의 책이 나왔지만, 오늘날 남은 것은 그중의 모시뿐이어서 별도로 모시라 하기도 한다.

311편의 고대 민요를 '풍(風)', '아(雅)', '송(頌)'의 3부로 나누어서 편집하였다. 그중 6편은 제명(題名)만 있을 뿐 어구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가사가 있는 것은 305편이다. '풍(風)'이라는 것은 각국의 여러 지역에서 수집된 160개의 민요를 모은 것이요, '아(雅)'라는 것은 연석(宴席)의 노래로, 다시 소아(小雅)와 대아(大雅)로 구분된다. 소아 74편과 대아 31편은 조정에서 불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송(頌)' 40편은 왕조·조상의 제사를 지낼 때의 노래라고 여겨진다. 어느 것이든 고대의 이름없는 민중이나 지식인의 노래이다.

이후로도 여러 학자들이 시경의 주석을 달았는데 시 자체가 아니라 당시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여 좀 과도하게 해석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기 때문에 직역한 것을 먼저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게다가 정풍의 경우 공자가 음탕(!)하다며 까기도 했다.

논어집주 衛靈公 위영공 第十五 10
放鄭聲 遠佞人, 鄭聲淫 佞人殆.
정(鄭)나라의 음란한 음악을 추방하며 말재주 있는 사람을 멀리 해야 하니, 정(鄭)나라 음악은 음탕하고 말재주 있는 사람은 위태롭다.


산하령에서는 14화에서 온객행이 주자서가 죽어간다는 것을알고 이 시를 읊는데, 이시가 쓰여진 배경을 생각하면 돌아온 남편을 보며 부른 노래 만약 내가 이 시를 산하령 보기 전에 봤다면 아마 온객행이 주자서의 정체를 확실히 알고 있다고 확신했을 것이다. 사실상 온객행이 '사형 나 왜 못알아봐 뿌애앵' 하는 부분이 아닐까? 돌아와서 너무 기쁜데 이제야 만나서 너무 기쁜데 막 너무 기뻐할 수도 없는 상황인 것이다!


주자서가 제일 잘하는 짓이다. 지목숨 버리기. 그러지 마로라 제발ㅠㅠㅠㅜㅠㅜ

춘정

折桂令·春情 徐再思
절계사·춘정 서재사

平生不會相思 才會相思 便害相思
평생 그리움 모르고 살았는데, 그리움이 생기자 상사병에 걸렸다.
身似浮雲 心如飛絮 氣若遊絲
그대 몸은 떠다니는 구름같고, 마음은 흔들리는 버들 같으며, 숨은 아지랑이 같은데
空一縷余香在此 盼千金遊子何之
여기에 잔향 한자락 남겨놓고 천금같은 그대는 어디로 가려하는가?
證候來時 正是何時 燈半昏時 月半明時
병증이 오는 때는 언제인가? 등이 반쯤 어두워질때 달이 반쯤 밝았을 때인가?

절계령·춘정은 원나라 시인 서재사의 작품인데 서재사는 섬세하고 수려한 시풍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산하령에서는 7화에 주자서가 독갈의 잔당을 해치우은 모습을 보고 온객행이 읊는다. 사랑시.. 연정시.. 아니 무슨 생각하셨는데 몸이 버들같데 정말 미쳤다.


바로 앞에서 사람이 죽었는데 너무 태연한 두사람.. 너무 낯설고요 아니 뭐 잘 어울리신다구요... 온객행이 입은 저 청록색 옷 너무 공작 같고 예쁘다 개취로 온객행 옷중에 제일 좋아한다.

기러기 무덤에 바치는 시

雁丘詞 元好問
안구사 원호문

問世間 情爲何物 直敎生死相許
세상 사람들에게 묻노니, 정이란 무엇이길래 생사를 가를까?
天南地北雙飛客 老翅幾回寒暑
천지간을 가로지르는 새야! 너희들은 지친 날개 위로 추위와 더위를 몇 번이나 겪었느냐!
歡樂趣 離別苦 就中更有癡兒女
만남의 기쁨과 이별의 고통 속에 헤매는 어리석은 여인이 있었는데,
君應有語 渺萬里層雲 千山暮景 隻影爲誰去
님께서 말이나 하련만, 아득한 만리에 구름만 첩첩이 보이고 해가 지고 산에 눈 내리면, 외로운 그림자 누굴 찾아 날아갈까
橫汾路 寂寞當年簫鼓 荒煙依舊平楚
분수의 물가를 가로 날아도 그때 피리와 북소리 적막하고 초나라엔 거친 연기 의구하다.
招魂楚些何嗟及 山鬼暗啼風雨
초혼가를 불러도 탄식을 금하지 못하겠고 산귀신도 비바람 속에 몰래 흐느낀다.
天也妬 未信與 鶯兒燕子俱黃土
하늘도 질투하는지 더불어 믿지 못할 것을 꾀꼬리와 제비도 황토에 묻혔다.
千秋萬古 爲留待騷人 狂歌痛飮 來訪雁丘處
천추만고에 어느 시인을 기다려 머물렀다가 취하도록 술 마시고 미친 듯 노래 부르며 기러기 무덤이나 찾아올 것을.

금나라 시인 원호문(1190-1257)이 금 장종(章宗) 태화(泰和) 5년(1205)에 사(詞)의 형식으로 지은 시이다. 원호문이 이 시를 쓴 이유는 과거시험을 보러가는 길에 만난 사냥꾼이 해준 이야기 때문이다. 사냥꾼이 말했다. "제가 기러기 한 쌍을 잡았는데 한 마리는 죽었고, 한 마리는 그물을 피해 도망쳐 살았습니다. 그런데 살아남은 기러기는 도무지 멀리 가지 않고 그 주위를 배회하며 슬피 울다가 땅에 머리를 찧고 자살해버렸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원호문은 죽은 기러기 한 쌍을 사서 분수(汾水)가에 묻어 주고, 돌을 쌓아 표시를 하고는 그곳을 기러기의 무덤이란 뜻으로 '안구(雁丘)'라 하고 이를 기리는 시 '안구사'를 지었다고 한다.

김용의 신조협려 초반에 이막수가 이 시를 읊어서 유명하기도 하다. 신조협려 읽을때는 이런 시가 있는지도 몰랐는데 다시 떠올려보니 이막수의 악행의 근원이 연정이었고 그 끝이 허무한것을 생각해보면 참 잘어울리는 시이다.

산하령에서는 6화에서 주자서가 떠나려고 할때 온객행이 주자서를 잡으며 읊는다. '아득한 만리에 구름만 첩첩이 보이고 해가 지고 산에 눈 내리면, 외로운 그림자 누굴 찾아 날아갈까' 날 두고 어딜 가냐고 묻는 내용인데 만약 이때 온객행이 주자서가 누구인지 눈치채고 있었다면 어쩌면 사형에게 자길 두고 어딜 가냐고 묻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미 예전부터 온객행은 사형을 마음에 담아둔 것일까? 보통 기러기는 결혼을 약속하는 혼수로 가장 처음 신랑이 신부에게 보내는 것으로 연정을 뜻한다. 자길 두고 어딜 가냐는 뜻의 그 많은 시 중에 왜 하필 기러기 무덤이라는 제목의 시를 가져다 쓴걸까? 마치 나한테 오해하라고 온객행이 주자서에게 기러기를 건네며 청혼한건데 나만 모르는건 아닐까 막 오해해본다.



주자서 정말 그지 꼴을 하고 있는데도 온객행한테는 예뻐보이나 보다..

이렇게 사는건 사랑을 위해 죽는거나 마찬가지야

Vivir así es morir de amor Nathy Peluso

Siempre me traiciona la razón
y me domina el corazón
No sé luchar contra el amor
Reason always betrays me and my heart dominates me. I don't know how to fight against love.

Siempre me voy a enamorar
de quien de mí no se enamora
Y es por eso que mi alma llora.
I'll always fall in love with the one that doesn't fall for me. And that is why my soul weeps.

Ya no puedo más, ya no puedo más
Siempre se repite esta misma historia
Ya no puedo más, ya no puedo más
Estoy harto de rodar como una noria.
I can't take it anymore. I can't take it anymore. It's always the same story.
I can't take it anymore. I can't take it anymore I'm fed up with rolling like a Ferris wheel

Vivir así es morir de amor
Por amor tengo el alma herida
Por amor, no quiero más vida que su vida Melancolía,
To live like this is to die of love. Because of love my soul is wounded.
Because of love, I don't want more life than her life Melancholy

Vivir así es morir de amor
Soy mendiga de sus besos
Soy su amiga y quiero ser algo más que eso, Melancolía.
To live like this is to die of love. I'm a beggar of her kisses.
I'm her friend but I want to be more than that Melancholy

Siempre se apodera de mi ser,
Mi serenidad se vuelve locura (Se vuelve locura)
Y me llena de amargura.
Love always takes control of my self. My serenity turns into madness. And it fills me with bitterness.

Siempre me voy a enamorar
de quien de mí no se enamora
Y es por eso que mi alma llora.
I'll always fall in love with the one that doesn't fall for me. And that is why my soul weeps.

Ya no puedo más, ya no puedo más
Siempre se repite la misma historia
Ya no puedo más, ya no puedo más
Estoy harto de rodar como una noria.
I can't take it anymore. I can't take it anymore. It's always the same story.
I can't take it anymore. I can't take it anymore I'm fed up with rolling like a Ferris wheel

Vivir así es morir de amor
Por amor tengo el alma herida
Por amor, no quiero más vida que su vida Melancolía,
To live like this is to die of love. Because of love my soul is wounded.
Because of love, I don't want more life than her life Melancholy

Vivir así es morir de amor
Soy mendiga de sus besos
Soy su amiga y quiero ser algo más que eso, Melancolía.
To live like this is to die of love. I'm a beggar of her kisses.
I'm her friend but I want to be more than that Melancholy

요즘 이 노래만 듣는다. 원곡도 좋더라 원래는 Camilo Sesto 이라는 스페인 가수가 원곡자. 그래서 뭔가 발음이 나띠랑은 조금 다르다. 나띠는 아르헨티나 발음이니까❤️ 항상 느끼는건 라틴음악은 꽤나 한국의 트로트랑 결이 비슷하다는 것? 사랑에 죽고 사는 내용도 많고 멜로디도 굉장히 서정적이고 신난다.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되는..

천인유혼

문덕은 요괴를 쫒다 무리와 헤어저 어떤 마을로 들어오게 됬다. 요괴로 안해 흉 흉해진 민심으로 그 마을 역시 오가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객잔에 들러 간단히 요기를 한 문덕은 주인에게 물었다.

"혹 이 근처에 절은 없습니까?" 가게 점원은 우물쭈물하더니 곧 주인에게 가 귓속말을 했다. 주인은 문덕에게 다가오더니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있지요, 불심이 강한 사람들만 모인다는 난약사라는 절입니다. 마을밖으로 두 시진쯤 큰 산쪽으로 걷다보면 나오는데 커다란 나무에 둘러쌓여 절경인 곳이지요." 문덕은 생소한 이름에 고개를 끄덕이며 고맙다 말하고 먹은 음식값을 계산하고 가게를 나왔다. 그가 나오는 길에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눈초리가 따가웠다.

한참을 걷다보니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하늘을 잠깐 쳐다본 문덕은 곧 그칠비는 아닌것 같아 비를 피할만한 곳을 찾아 헤맸다. 산쪽으로 걷다보니 길도 변변치 않았고 주변에 그렇다할 건물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풀숲에서 칼 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보자 어떤 노인이 도적떼를 상대하고 있었다. 문덕은 검을 움켜쥐고 빠르게 그쪽으로 이동했다. 노인은 눈을 감고 빗소리를 듯는듯 하더니 갑자기 하늘로 날아올라 도적떼의 혈도를 번개처럼 누르며 제압해 나갔다. 그는 불경을 외우는 듯한 주문을 외우 며 자세를 바로하고 다가온 문덕쪽으로 고개를 돌려 눈을 떴다.

"나는 사람은 해치지 않소" 노인의 말에 문덕은 검에서 손을 떼고 합장했다. 합장하는 그를 본 노인은 자신 을 연적하라고 소개했고, 그 또한 요괴퇴치를 위해 마을에 머무는 중이라고 말 했다. 비가 점점 거세지자 연적하는 문덕을 데라고 자신이 기거하고 있는 절인 난약사로 향했다.

절의 초입에 들어섰을때 이미 날이 진 이후였고, 산속이라 더욱 어두웠다. 기나 긴 108계단을 지나 도착한 난약사는 이미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지 않았는지,거 의 폐허같았다. 법당안에 들어서자 난약사라고 쓰인 현판이 보였고, 원래 불상 이 있어야할 자리에는 왠 커다란 나무만 자라고 있었다. 나무는 길게 뻣어 절의 대들보를 대신하였고, 천정은 여기저기 가지들이 뻣어자라 구멍나 있었다.

"어르신 께서는 이런곳에서 지내고 계십니까?" 문덕이 주변을 살펴보고는 지붕에서 세는 빗물로 손을 적시며 연적하에게 말했 다. 노인은 호탕하게 웃으며, 비를 막아줄 지붕과 몸을 뉘일 바닥이 있으면 그걸 로 충분하다 말했다. 문덕은 새는 비를 피해 법당의 2층으로 올라가 여기저기 살펴보았다. 지금은 사 용하지 않는 글자가 쓰여진 죽간과 법서로 보이는 종이책이 보였으나, 세월과 비바람에 그 흔적이 희미했다. 노인이 있는곳으로 다시 내려간 문덕은 근처에 마른 나뭇가지를 모아 불을 피웠다.

불을 피우고나니 연적하가 어디서 구했는지 알수없는 음식을 권하기에 문덕은 별 의심없이 그것을 먹었다. 연적하는 술도 권했는디, 문덕은 정중히 거절했다.

비를 맞아서 인지, 덥쳐오는 피곤에 금방 잠이 들고 말았다.

얼마나 잤을까, 그렇게 긴시간은 아닌것 같았는데 문덕앞에 피워놓은 불씨가 거 의 죽어있었다. 문덕은 근처에 두었던 살짝 젖은 장작을 몇개 집어 불가 근처에 두고 숨을 불어넣었다. 젖어서 인지 매캐한 연기가 불당안을 채웠다. 비는 그쳤 는지 더 이상 천정에서 물이 세지 않았다. 다시 물가 근처에 몸을 뉘이려는데 청 아한 피리소리가 들렸다. 문덕은 노인의 의아한 취미에 흥미가 생겨 수마를 잠 시 뒤로하고 소리가 나는 밖으로 나갔다. 안은 분명 아까 노인과 함께온 다 낡은 폐허였는데 달빛에 본 바깥은 꽤 운치가 좋았다. 커다란 버드나무 사이로 비치는 달빛에 절에 어울리지않는 커다란 연 못 가운데 정자가 있었다.

정자는 흰색천으로 장식되어 있었는데 비가 온후에 시원한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고 있었다. 문덕이 조금씩 그 정자로 다가가자 정자안에 인영이 비쳤다. 드리운 천을 치우자 꽃같이 아름다운 사내가 옥으로 된 피리를 불고 있었다. 2 길게 늘어뜨린 머리에 그림자만 보았다면 낭자라고 오해할만큼 단정하고 그윽 한 눈매의 공자였다. 시선을 느꼈는지 곧 청아하기 들리던 피리소리가 멈추고 감겨있던 눈이 떠지며 문덕쪽으러 고개를 들었다. 문덕은 그가 움직이는 모습 을 보며 숨을 참았다. 왜 그렇게 했는지 그는 알지 못했다. 사내는 문덕을 향해 살풋이 웃어보였다. 곱게 접히는 눈이 참 예뻤다. 사내가 문덕에게 물었다.

"이 밤에 이 곳에서 무얼 하고 계싶니까?" 숨이찬 문덕은 몇번 숨을 골랐다. 무엇을 이야기 해야할지 몰라 문덕은 사실대 로 털어놓았다. 본인은 즙요사라는 절에 의탁하여 요괴를 잡는 법사이며, 지금 무리와 떨어져 다시 도성으로 가는 길이라고,여행중에 만난 도사가 도와주어 잠 시 이 절에 머무르게 되었다고 말했다. 사내는 그 말을 듣더니 안색이 창백해졌 다. 불편한 기색을 읽은 문덕이 말했다. "그대는 무슨 연유로 이 밥에 이곳에서 피리를 불고 계시오?" 사내는 손에 쥔 옥피리를 한번보고 다시 문덕을 바라보았다. 아련한듯한 표정 에 문덕은 이유없이 숨을 쉬는것이 불편해졌다. 사내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문 덕에게 천천히 걸어왔다. "저의 양모께서 제 피리소리를 좋아하지 않으셔서 이렇게 밤마다 몰래나와 불 고있습니다." 문덕은 그와 시선을 맞추며말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연주를..."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인기척이 들렸다. 사내는 빠르게 문덕의 손을 낙아채 법 당안으로 들어갔다. 문덕은 사내에게 이끌려 법당 벽으로 밀쳐졌다. 사내의 숨 소리가 문덕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두사람 사이에는 종잇장하나 없이 밀착된 상태였다. 문덕은 머릿속이 하얘진것처럼 아무생각도 할 수 없었다.

연적하는 사찰 주변을 둘러보며 무언가를 찾는듯 했다. 문덕은 일단 사내를 아 까 둘러볼때 보았던 2층에 있는 서고에 숨겨주고는 연적하를 찾았다.

"어르신 무엇을 찾으십니까?" 문덕을 발견한 노인은 곧 그에게 누군가를 보지 못했느냐고 물었다. 피리소리가 나기에 최대한 빨리 달려왔는데도 보이지 않는 다며 잔뜩 심통이 난 모양이었다. 그때 근처에서 나풀거리는 비단옷을 입은 아 름다운 낭자가 나타나 검으로 연적하를 공격했다. 갑자기 서로를 공격하는 두 사람사이에 끼인 문덕은 두 사람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연적하가 답했다.

"저 계집은 사람이 아니네" 그러자 코웃음을 친 낭자가 맞받아쳤다.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동굴속에 것처 럼 울렸는데, 그녀의 입은 말하는 동안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요즘세상에 사람보다 더 추악한것 천지인데 사람 아닌것이 뭐 어때서 그러시 오?" 문덕은 검에 손을 가져가며 낭자에게 물었다.

"사람이 아니라면 요괴란 말이오?" 낭자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요괴면 어떻고 사람이면 어떻단 말이오? 어차피 우리가 사냥하는 사람들도 다 른 사람들을 사냥해 먹고사는 도적놈들 뿐인데." 그 말에 연적하와 문덕은 할말을 잃었다. 확실히 그녀가 하는 말이 틀린말은 아 니었다. 사람을 해치는건 어쩌면 요괴보다 사람인경우가 훨씬 많았다. 수 많은 요괴를 베어온 문덕도 항상 스스로에게 하던 질문이었다. 사람을 해하 는것은 과연 요괴인것인가. 말없이 서로를 노려보던 연적하와 낭자는 칼을 거 두지 않았지만 문덕은 칼을 거두었다. 낭자가 말했다.

"오늘은 사람이 아니라 오라버니를 찾으러 온것이오 찾으면 살생없이 돌아갈것 이니 길을 비키시오." 문덕은 문득 그 오라버니라는 자가 아까만난 그 사내가 아닐까 생각했다. 연적 하는 그 낭자를 보낼 생각이 없는지 검을 거두지 않았다. 그 둘은 몇번 초식을 주고 받았지만, 연법사의 공력이 훨씬 강했다. 산 끝이 어수룩이 밝아오자 낭자 는 사방에 대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오라버니 곧 해가 뜹니다 어서 돌아갑시다." 산 속의 아침은 밤만큼이나 빨라 그녀는 몇번오라버니를 부르더니 연적하의 기 세를 당해내지 못하고 산 속으로 재빠르게 도망쳤다. 연법사가 따르려는것을 문덕이 말리며 물었다.

"곧 날이 밝을테니 찾고싶어도 찾지 못할겁니다, 대체 누구이기에 사람이 아니 라는 겁니까?" 연적하는 낭자가 사라진 쪽을 주시하며 주변을 살폈다.

"법당안에 있는 나무귀신의 끄나풀이지. 사찰 안뜰에 안치된 유골함의 혼들을 자기 마음대로 부려 사람들의 정기를 빨아먹는 요괴라네." 법당안의 커다란 나무가 아침해에를 밭아 그 모습을 완전히 드러냈다. 수많은 가지 사이로 들어오는 쪼개진 햇빛이 바닥에 흩어졌다. 난약사 전체에 그 가지 가 드라우지 않은 곳이 없었다. 후에 문득 사내가 걱정된 문덕은 후에 서고로 가 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 사내 역시 나무귀신이 부린다는 혼백이었을까. 갑 자기 몰려오는 피로감에 문덕은 법당안으로 들어가 이미 까맣게 다 죽어버린 모닥불 옆에 몸을 뉘였다. 참으로도 긴 밤이었다. 혹은 꿈이었을까?

해가 중천에 떠서야 눈이 떠진 문덕은 연법사를 찾았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 았다. 밤새 산속을 헤멧을텐데 어디서 그런 기운이 나는지 문덕은 문득 그의 공 력이 대단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듣지 못한 대답이 있어 문덕은 난약사 로 오기전 들렀던 마을에 다시 방문했다. 마을은 대낮이었는데도 사람이 많지 않았다. 도적떼가 이리저리 마을을 들 쑤시고 다녔지만 말리는 사람 하나 없었 다. 근처 역참을 찾아 마부에게 물었다.

"혹시 도성으로 서신을 전할수 있소?" 마부는 두손을 흔들며, 이 촌구석에서 도성까지 가는 자도 없을뿐더러 서신을 전할만한 사람도 없다고 말했다. 답답해진 문덕은 체념한채로 어젯밤에 일을 고려하여 다시한번 물었다.

"난약사를 아시오?" 마부는 난약사라는 이름만으로도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는 벌벌 떨었다. 귀신과 요괴가 나오는 오래된 절이라고, 그 마을에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난약사에는 불 심과 공력이 강한 스님이 이끄는 절이었는데, 세상이 혼란해지자 제자들이 하나 둘 사라지고 늙은 노승만 사찰에 남아 절을 지켰다고 했다. 그것도 벌써 백년이 넘은 이야기이며, 그 노승이 취미삼아 접목하여 키운 버드나무가 노승이 죽자 불상을 집어삼키고 절을 집어삼켜 요괴가 되었다는 전설이었다.

밤에 숲길을 가다보면 갑자기 커다란 유곽이 나타나 아름다운 모습으로 어떨때 는 여자였고, 어떨때는 남자였고 또 어떨때는 그 둘이 아닐때도 있다고 했다. 마 치 그 숲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은밀한 개인취향을 하나하나 알고 있다는 듯 이 산길을 가는 사람들을 유혹하여 그 정기를 취한다고 했다.

"사람을 해친단 말이오? 살아 돌아온 자는 없소?" 마부는 우물쭈물하더니 마을 우물근처에 문장을 팔아 먹고사는 서생이 다시 돌 아왔지만 제정신이 아니라고 했다. 문덕은 마부에게 고맙다고 얼마남지 않은 여비로 사례하고 그 문장가가 산다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손님이라고는 한명도 없는 거리에 현판만 덩그러니 걸어놓은 그가게의 문체는 꽤나 훌륭한 것이어서 문덕은 놀랐다. 안으로 들어가자 죽간과 비단에 쓰인 글 자들이 보였다. 서체는 아름다웠지만 그 내용이 여간 색스러워 문덕은 곧 읽는 것을 그만두었다.

손님이 들어왔는데도 기척이 없어 문덕은 가게 안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글 쟁이가 글을 쓰는 곳인것 같은 방안에 들어가자 그림들이 보았다. 글쟁이는 글 씨 뿐만 아니라 그림에도 소질이 있는지 어제 보았던 낭자와 꽤나 비슷한 아름 다운 여자그림 이었다. "아름답지요, 은애합니다만 이제 다시는 만날수 없으니.." 조용한 목소리에 깜짝놀란 문덕은 뒤를 돌아보았다. 먹의 얼룩이 여기저기 묻 은 서생옷을 입은 남자가 그림을 몽롱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문덕은 남자에게 물었다.

"다시 만날수 없다니 어찌 그렇소?" 서생은 그 여자는 자기와 결혼을 약속한 근처마을의 낭자였는데, 도적떼가 마을 을 덥쳐 화를 당했다는 이야기였다. 문덕은 서생에게 다가가 물었다.

"혹 난약사에서 그 낭자를 다시 보지 않았소?" 난약사라는 이른에 눈에 띄게 당황한 기색을 보이는 서생이 주변을 살피며 말 했다.

"어찌 아시오? 그녀는 나를 구해준 대신에 목소리를 잃었다 들었소 다시 찾아가 면 그 다음에는 목소리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그녀의 양모가 그렇게 말했소." 서생은 한참을 마부에게서 들었던 전설얘기와 그 낭자에 대해 털어놓더니 훌쩍 이기 시작했다. 한참을 가게를 나올 궁리를 하던 문덕에게 술이라도 대접하겠 다는 서생을 겨우 거절하자 날은 벌써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다시 난약사로 돌아오는 길은 어두웠다. 산세로 접어들자 나무들 사이로 비치 는 달빛이 잎사귀에 가려져 길이 더 어두웠다. 문덕은 마을로 돌아가 하루를 머 물까 생각하였지만 남은 여비가 충분치 않아 무리해서 난약사로 향하는 중이었 다.

얼마나 걸었을까, 시끌벅적한 음악소리와 함께 불빛이 수풀사이에 아른거렸다.

기척을 숨기고 조심스레 다가가니, 낮에 마을에서 행패를 부리던 도적놈들이었 다. 그들은 유곽으로 보이는 건물 앞에서 하나하나 어여쁜 낭자들을 끼고는 히 히덕 거리고 있었다. 그 유곽은 꾀나 장사가 잘되는지, 슬쩍 보이는 안쪽에도 손 님이 많은것 같았다. 문덕은 낮에 마부가 말해주었던 그 요괴의 유곽이 바로 이 것이구나 싶었다. "나으리 잠시 쉬었다 가시어요." 어여쁜 낭자는 속살이 다 비치는 얇은 침의위에 겉옷하나만 걸쳤는지 살짝 살 짝 남자에게 속살을 비치며 유혹해왔다. 낭자들은 그 도둑들의 팔을 당겨 유곽 쪽으로 끌며 말했다. 유곽은 마치 대낮처럼 밝게 여기저기 불을 피워 놓았는데 그 색이 원래의 불꽃 색이 아닌 푸르스름한 색을 띄었다. 젖은 장작이 섞였는지 여기저기 희뿌연 연 기가 유곽의 분위기를 더욱 오묘하기 만들었다. 도둑들과 호객행위를 하며 실 랑이를 하는 낭자들 사이에 어제 보았던 그 사내가 멀뚱히 유곽문 옆에 서 있었 다. 도둑들중 한명이 그에게 다가가 어깨를 감싸며 사내를 안아왔다.

"자네도 이 유곽에서 밤을 팔고 있소?" 도둑의 말에 사내는 불편해보이는 듯했으나 손을 치우지 않고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다.

"저리 아리따운 낭자들을 두고 사내와 밤을 보내시려구요?" 도둑은 호탕하게 웃으며 사내의 몸에 바짝 밀착해오며 귓가에 속삭였다.

"도성에 가면 대궐집 대작들중에 남첩이 없는 자가 없다 들었소. 얼마나 좋으면 집에 들여 취하겠소?" 도둑의 손이 사내의 가슴팍에 살짝 벌어진 옷속으로 파고들자 사내는 부끄러운 듯 그의 손을 떼어내려 바르작댔다. 문덕은 괜히 기분이 나빠 시선을 다른 곳으 로 옮겨보았지만, 자신도 모르게 또 그 사내를 눈으로 쫒고 있었다. 옆에서 그 꼴을 보고 있던 낭자가 피식 웃으며 그 도둑에게 다가가 기대며 말했 다.

"그 목석같은 사내놈을 안아봐야 그게 무슨 재미에요?" 낭자는 도둑의 몸에 반쯤 기댄채로 귓가에 색스러운 것들을 속삭였다. 도둑은 그 말에 동했는지 사내의 품속에 넣었던 손을 거두고 그녀의 허리를 잡아채며 웃었다. 덩그러니 남겨진 사내는 두사람이 유곽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멀뚱히 바라봤다.

도둑들은 이미 하나 둘 옆에 여인을 데리고 유곽안으로 들어갔다. 저 도둑들은 이 근처 사람은 아니었는지 첩첩산중에 동떨어져있는 유곽에 의심없이 들어갔 다. 위치도 그렇고, 안에 있는 저 많은 손님들은 대체 무어란 말인가. 문덕은 생 각했다. 얼마 지나지않아 유곽 앞은 한산해졌고 호위로 보이는 자가나와 사내 를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문덕은 인적이 드물어지고 난 다음에도 한동안 주 변의 동태를 살피며 있다가 난약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달이 차지않아 더 어두운 좁은 산길을 따라 108계단에 다 다랐다. 익숙 한 곳에 도착하니 긴장감이 풀어져서인지 문덕은 계단을 오르기전에 잠시 앉아 숨을 돌렸다. 그때 길 끝에 희미한 인영이 난약사쪽으로 오고 있었다. 피리를 불 러온 그 사내일것이었다. 조금 기다리자 그 사내도 문덕들 발견했다. 손에든 옥 적을 다시 소매품으로 넣고 문덕이 앉아 있는 계단 옆에 앉았다.

"아직도 여기 계십니까?" 문덕은 문득 그의 이름이 궁금했다.

"나는 즙요사의 법사 배문덕이오." 갑작스러운 소개에 사내는 말없이 반쯤차오른 달을 한동안 보다가 입을 열었 다.

"저는 공자경이라 합니다." 둘은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공자경이라 스스로를 소개한 남자는 소매품에서 피 라를 꺼내어 불었다. 유곽과는 영 어울리지않는 구슬픈곡조였다. 어째서 그의 양모가 그의 피리소리를 싫어하는지 알것 같았다. 눈을감고 곡조를 감상하고 있던 문덕은 인기척을 느꼈다. 옆에 앉아 파리를 불고있는 공자경의 손을 잡아 소리를 죽이자, 멀지 않은 곳에서 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문덕은 공자경이 연적하를 만난면 좋은 일이 없을것 같아 공자경의 손목을 붙 잡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한 싸움에 휘말릴것 같으니 자리를 옮깁시다." 문덕은 근처 숲속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길도 나있지 않은 숲속으로 조금 들 어가자 연적하와 어떤 무사가 대결을 하고 있었다.

"난약사에 머무른해가 몇해인데 아직도 모르시겠소?" 혼백들응 그저 나무귀신 이 부리는 또다른 희생량일 뿐이라은걸 알고 계시지 않소!" "그 결과가 어찌되었든, 죄의 경중을 따지기 전에 그들은 사람이 아니오!" "그들이 성불하게 돕는다면 다시 윤회의 굴레안에서 그들의 죄값을 치를것이 오. 그들을 돕는것 역시 공덕을 쌓는 일이란 말이오!" 연적하는 더이상 듣지 않겠다는듯 커다란 칼을 휘둘러댔다. 좀더 가까이 다가 가니 근처에 저번에 보았던 낭자가 공격을 받았는지 나무에 기대어 숨을 고르 고 있었다. 그녀를 본 공자경은 놀란듯 그녀를 불렀다. 그 소리에 연적하가 제빠 르게 문덕을 향해 공격했다.

"월지!" "오라버니!" 공자경은 나무 근처에 쓰러져있는 월지를 살갑게 부축했다. 그녀의 어깨를 붙 잡고 일으키자 고통에 얕은 신음이 월지의 입밖으로 새어나왔다.

연적하의 공격을 강신히 막아낸 문덕이 말했다.

"연법사님, 문덕입니다. 즙요사에 배문덕이요!" 연적하는 칼을 거두고 무사와 월지, 공자경에게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저 삿된것들이 내가 말한 그 요괴들이오. 나를 도와 저들을 처단하고 공덕을 쌓 읍시다." 그 소리를 듣고 있던 무사가 끼어들었다.

"나는 섬서에서 온 좌천호라하오. 누이의 유골을 찾아 곽북형까지 오게 되었소.

즙요사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있소, 어찌 이런 변방까지 나와계시오?" "임무수행후 복귀하는 도중 무리들과 헤어져 길을 잃었소. 하루 몸을 쉴곳을 찾 다 난약사로 오게되었고, 연법사님을 만나 나무귀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소." "그렇다면 알것아니오 이 혼백들 역시 그저 삿스러운 나무귀신의 피해자라는 것을 말이오!" 문덕은 누구의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난처했다. 겨누누칼을 거두지 않는 연적하는 내버려둔다면 분명 앞에 있능 저들을 해할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좌 천호라 자신을 소개한 저 무사는 혼백도 요괴도 아니고 사람인것 같았다. 누구 하나 섣불리 움직이 못하는 고요한 긴장감속에 공자경이 입을열었다. "섬서에서 온 아이라면, 혼백도 찾을 수 없을겁니다." 그 말에 좌천호가 월지와 공자경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 재차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오? 그 아이의 이름은 좌천풍이고 죽었을때 열넷이었소 죽은지 10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공자는 어찌 찾을 수 없다 말하시오? 옆에서 가늘게 숨을 몰아쉬던 월지가 대답했다.

"어머니는 너무 어리거나 쓸모없는 혼백의 정기는 취해 소멸시켜버릴때도 있 소. 너무 어리기도 했고, 숫기도 없어 사람을 유혹하는 일이 서툴고, 일을 배우 는 속도도 느려, 나무귀신에게 부려진지 몇주 되지도 않아 그리 갔소. 그녀의 유 골함은 나무귀신이 양분으로 모두 흡수하여 비어있을거요." 좌천호는 월지의 말에 그럴리 없다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헛헛한 웃음소리가 어느새 흐느낌이 되었고, 큰 소리로 통곡하기 시작했다. 문덕은 연적하의 칼이 쥐어진 손을 내리며 말했다.

"연법사님 일단 칼을 거두시고 저들의 이야기도 들어 봅시다. 일찍이 좌천호가 말한것이 사실이라면 저 사람, 혼백들도 원치않게 나무귀신에 묶여있는것이 아 닙니까? 나무귀신을 퇴치한 후에도 사람을 해친다면 그때 벌하여도 늦지 않습 니다." "저들 역시 나무귀신의 끄나풀, 언제 사람의 정기를 취할지 모를일 아니오! 저 사란은 차치하고 저 혼백들이라도 처치하여 공덕을 쌓아야겠소!" 앉아서 통곡하던 좌천호 역시 그들에게 검을 드리우며 말했다.

"그 어린것이 나무요괴에게 당하는동안 당신들은 무엇을 했소?!" "우리도 언제 나무귀신의 밥이 될지 모르는 바람앞의 촛불인데 누굴 돕는단 말 이오! 오라버니는 사람의 정기를 취하지 않아 스스로 점점 사라지고 있소! 나무 귀신이 오라버니를 연모하지 않았다면 오라버니도 오래전에 양분이되어 사라 졌을 거요!" 공자경은 슬픈표정으로 말을 마치자마자 힘겨운 기침을 뱉는 월지를 부축했다.

한동안 아무도 아무말 할 수 없었다. 산새들의 시끄러운 지저귐에 날이 밝아오는 것을 눈치챈 공자경이 말했다. "돕겠소." 그들에게 칼을 거두지 않은 연적하가 물었다. "무엇을 말이오?" 공자경은 담담히 결심한듯 월지 잠시두고 연적하의 칼끝에 섰다.

"어머니를, 나무요괴를 처단하는것을 돕겠소. 그러니 오늘은 나와 누이를 보내 주시오." 산끝이 어수룩하게 밝아지자 연적하는 칼을 거두었다. 그의 표정은 매우 혼란 스러워 보였다. 공자경은 예를 다해 연법사에게 인사하고 월지를 데리고 숲속 으로 사라졌다. 연적하, 좌천호 배문덕은 혼백이 사라진 쪽을 새벽의 푸른빛이 아침햇살로 바뀔때까지 말없이 바라봤다.

사찰에서 잠시 쉰 좌천호와 배문덕은 안뜰에 있는 묘지로 갔다. 좌천호의 여동 생은 이 북곽현으로 어린나이에 시닙을 왔다고 했다. 오는 길이 험에 병을 얻었 는데 얼마 버티지 못하고 죽었는데 섬서까지 길이 멀어 몇해가 지나서야 그 소 식이 닿았다고 했다. 그는 흐느끼며 유골함에 적힌 글씨를 읽어 갔다. 문덕은 이 유골함중에 공자경과 월지의 유골함도 있을까 싶어 좌천호와함께 유골함을 뒤 졌다.

안뜰에서 찾지 못한 둘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법당안에 버드나무 가지 아래를 파보았다. 대낮이었으나 음침하게 드리운 가지들로 인해 어둡고 서늘했다. 얼 마 파지 않았는데 갖은 벌레와 지네가 들끓었다. 그 밑을 보니 깨진 유골함과 한 데 섞인 유골들이 보였다. 깨진 유골함중에 좌천호 동생의 이름도 있었다.

"지네는 독충이니 섣불리 손을 넣어 꺼냈다간 다칠거요." 문덕의 만류에도 좌천 호는 깨진 유골함을 꺼냈다. 그것을 품속에 간직해온 분홍색 고운비단에 싸고 는 가슴에 넣었다. 문덕은 혹시 독충에 물리지는 않았는지 걱정됬지만, 위로의 말 조차 건낼수 없었다. 좌천호는 흐느끼며 말했다.

"심성이 착하고 여린아이였으니, 사람을 해치는일을 할 수 없었을 거요. 혼백이 라도 남아있었으면 한번더 보고 싶었는데..." 좌천호는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문덕은 그를 위로하며 법당안을 가득채운 버드나무를 보았다. 버드나뭇잎이 가 지에서부터 아래로 늘어져 마치 장막같았다. 문덕은 아래로 축처진 가지를 당 겨 잎을 만져보았다.

"수양버들 같은데 물가도 없이 이렇게 크게 자란것이 과연 요사스러운 나무인 것 같소." 좌천호역시 문덕의 말에 동의하며 눈물을 닦았다. "사람이나 혼백의 정기를 취해서 자란 나무이니 보통의 수양버들보다 그 크기 가 큰것은 당연하지요. 뿌리근처에 저렇게 독충이 많은데도 가지 한군데 마르 거나 뿌리 한군데 썩은곳이 없소." 문덕은 밖으로 나와 버드나무 가지가 뻗어진 모양을 보았다. 안뜰에도 그 가지 가 있었지만, 법당처럼 완전하게 장악한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법당 2층에 올라가면 노승이 기거했다는 서고가 있소." 문덕은 법당안을 살펴 보고 있는 좌천호에게 말했다. 그는 문덕의 말을 듣고 다 부서져가는 계단을 올 라 2층으로 갔다.

전서로 쓰여진 오래된 죽간과 빗물에 색이 바란 종이책들이 여기저기 바닥에 널려있었다. 죽간에 쓰여진것은 오래된 법문이나 유명한 법서였고, 빗물에 훼 손이 심해 읽기 힘든 종이책들은 해서로 비교적 최근에 쓰여진 문서들이었다.

제일 바닥쪽에 그나마 번지지않아 읽을수 있는 글자들이 남아있는 쪽에는 노승 의 고민들이 드문드문 읽혔다. 어지러운 세상과 떠나가는 제자들에 대한 안타 까움이 쓰여있었다. 다 낡은 함 안에 버드나무가 멋드러지게 그려진 그림이 몇 점 나왔다. 몇번 젖었다 말랐는지 상태는 좋지 않았지만, 소식의 한시까지 멋드 러지게 쓰인 그림이었다. 문덕은 그중에 제일 상태가 좋은것을 골라 검집 옆에 걸었다. 기회가 되면 마을에 가서 혹시 노승에 대해 아는 자가 있는지 물어볼 참 이었다. 시장기를 느낀 문덕은 어제 마을에서 구해온 밀떡을 좌천호와 나누어 먹으며 마을로 향했다.

"나무귀신에 대해 아는것이 없으니 답답하오." 좌천호가 밀떡을 우물거리며 자 신의 물주머니를 문덕에게 권했다. 물주머니를 받아 목을 축인 문덕은 연적하 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했다. "불에 태워보려고도 하고, 가지를 베려고도 해봤지 만, 불을 붙이면 비가오고, 가지를 베려고하면 온갖곳에서 새가 날아와 방해한 다 들었소. 연법사님께서 이곳에 기거하신지 꽤 되신것 같은데, 아직까지 저 버 드나무가 꼿꼿이 버티고 서있는것을 보면 보통의 방법으로는 처치하기 힘든 것 같소." 문덕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좌천호는 연적하가 고집불통이라며 융통성이 없다 며 넋두리했다.

그는 기회가 된다면 그의 제자가 되어 공덕을 쌓는 법사가 되고 싶다고 했지만 연적하의 꽉막힌 사고방식때문에 주저하고 있다고 했다. 문덕은 연적하는 아무도 제자로 받아들이지 않을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입밖으로 내지 는 않았다. 이야기의 주제는 좌천호의 여동생에서 어느새 어제 보았던 혼백으 로 넘어가 있었다. "월지라는 그 낭자는 부모의 빚에 유곽에 팔렸다 몹쓸병에 걸려 죽은 여인이라 했소. 그 오라비라는 자는 친 오라비는 아닌것이 도성의 어느 고관대작집 아들 이라더이다. 어쩌다 나무귀신의 손아귀에 들어갔는지는 모르나 나무귀신이 아 주 애지중지하는 혼백이라더이다.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모르나 다른 혼백들이 모두 그를 잘 따른다고 했소." 마을에 다다른 두사람은 주점에 들어가 허기를 달래고 난약사에 있었던 노승에 대해 여기저기 물어보았다. 하지만 이미 몇백년도 더 지난 이야기이고, 쇠퇴된 마을에 남아있는 사람도 몇 없어 큰 수확은 없었다. 두 사람은 요깃거리를 조금 챙기고 다시 난약사로 향했다.

"대체 무슨 수로 돕겠다는건지 알수가 없소, 일개 혼백이 도움을 주어봐야 얼마 나 도움이 되겠소?" 좌천호가 말했다.

"그래도 여태 우리가 알아낸것보다는 나무귀신에 대해 더 잘 알것같지 않소? 약 점이라던가 분명 퇴치할 방법을 알고 있을거요." 좌천호에게 어제 보았던 유곽에 대해 이야기하며, 오늘은 날이 어두워지기전에 그곳을 살펴보자고 했다.

어젯밤에 봤을때와는 사뭇 그 분위기가 달라 찾기 어려웠지만 난약사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폐허가된 객잔이 있었다. 어제 아름다운 낭자들이 도둑들 을 유혹하던 그 곳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넓은 마당이 나왔다. 잡초가 여기저 기 자라고 있었다. 한때는 꽤 큰 객잔이었는지 건물안에 마구간도 있었다. 하지 만 남아있는 세간살이가 별로 없었다. 부서진 의자와 탁자가 바닥을 뒹굴고 있 었다. 윗층 누각에 올라가보니 난약사를 뚫고 자란 버드나무의 꼭지가 보였다.

이 자리는 분명 나무귀신이 선택한 자리일것이다.뒷뜰은 한때 정원이었는지 연 못위에 작은 정자가 보였지만 수풀이 우거져 접근하기가 쉽지 않아보였다. 작 은 관목은 여기저기 보였지만 객잔의 높이를 넘는 나무는 없었다. 당장 담장을 넘어온 근처의 나무들의 키가 높아 객잔을 찾는디 어려움을 격었던지라 의아했다.

한참을 객잔안을 휘젖고 다니던 두사람은 인기척에 밖으로 나갔다. 연적하가 바닥에 부적을 그리고 있었다. 문덕은 반가운 기색을 내비치며 그에게 다가갔 다. "법사님! 찾고 있었습니다." 연적하는 문덕과 좌천호를 무시하고는 계속해서 바닥에 부적을 써내려갔다. 문 덕은 개의치 않고 오늘 좌천호와 찾아낸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검집옆에 걸 어두었던 버드나무그림을 그에게 보여주며 이야기하자 연적하가 그림을 뺏어 들며 말했다.

"이것은 어디서 찾았지?" 문덕은 법당에서 발견한 서고와 그가 읽었던 책에 관련된 이야기를했다. 어떤 법문이 죽간에 쓰여있었고, 그 관련된 해석이 책으로 묶여져 있었다 말하자 연 적하는 왜 그동안 나무귀신에게 법문이 듣지 않았는지 이해한 눈치였다.

"이 그림 말고 다른 그림도 있었나?" "다른 그림들도 이것과 비슷한 것들이었습니다." 연적하는 유심히 그림을 뜯어보았다. 그리고는 저물어가는 해를 보고 두사람에 게 경고하듯 말했다.

"나무귀신을 처단하는 일을 먼저 하는 것뿐, 나는 사람이 아닌것의 도움을 받는 것을 믿지 않소. 하지만 그들도 나무귀신에게 묶여있는 혼백일 뿐이니 성불을 하고자 하는 것들은 도울것이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모두 처단할것이오. 산속 의 밤은 빨리 찾아오니 어서 난약사로 돌아가 계시오." 이번엔 좌천호가 입을 열었다.

"나도 법사님을 돕고 싶습니다. 법사님과 비교하면 보잘것 없는 공력이지만, 그 래도 상대는 매우 요사스러운 귀신이니 서로 돕는것이 어떻습니까?" 연적한 귀찮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혼백들에게 홀려 정기를 빼앗기지 않으면 다행일거요. 방해나 될터이니 법당 에 버드나무나 잘 감시해주시오, 혹시 그 나무이 대해 다른 기록이 있는지 찾아 봐 준다면 더욱 좋소." 좌천호는 애물단지 취급당한것이 기분나빴는지 표정이 어두워졌다가 딱히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입을 닫았다. 두사람은 객잔을 나 와 난약사로 향했다. 난약사에 다다랐을때, 이미 날은 어둡고 조금씩 차오르는 상현달이 하늘에 떠 있었다. 구름이 없어서인지 만월이 아닌데도 밝았다. 오는길에 주웠던 뗄감으 로 작은 모닥불을 만든 문덕은 그림을 펼쳐보았다. 노승은 퍽이나 외로웠던 모 양이다. 만약 정말 그 혼자 이 사찰에 남아 생을 마감했다면, 그의 시신을 장사 지낸이는 누구일까 열반에 들어 생을 마감하셨을까 여러가지 생각이 문덕의 머 릿속을 채웠다.

The Midwinter’s Night Dream

집안을 감싸는 따뜻한 공기, 크리스마스 이브. 지인들과 보내는 평온하고 즐거운 저녁, 다크로드와 죽음을 먹는 자들의 대한 생각을 잠시 멀리 밀어두었다. 항상 같은 크리스마스 선물에 대한 이야기, 받고 싶은 선물에 대한 이야기, 학교에 있어서 알지 못했던 소소한 가족들의 이야기에 론은 귀 기울였다. 지니와 헤르미온느의 웃음소리가 가까워졌다. 소파 위에 늘어져있는 론을 발견하고는 지니가 다가와 옆에 앉았다. 론의 어깨에 머리를 살짝 기대며 헤르미온느에게 손짓했다. 헤르미온느의 뺨이 붉어졌다. 소파 위에 털썩 앉으며, 가져온 퀴블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론을 향해 크게 웃어보였다.

론을 사이에 두고 둘은 그렇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새로 출시된 사랑의 묘약이라던가, 다이애건 앨리에서 봤던 로브라던가, 받고 싶은, 혹은 주고 싶은 선물이야기…등등.

“헤르미, 내 머리카락 색은 너무 붉은 것 같아, 나도 헤르미처럼 갈색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헤르미온느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지니! 네 머리카락은 그 색일 때 제일 예뻐!”

지니가 론에게 시선을 돌리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론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지니가 물었다.

“론, 무슨 색깔 머리가 제일 좋아?”

점점 의식을 잃어가고 있던 론은 지니의 질문에 소파에 기대고 있던 머리를 들어올려 양 옆에 있는 두 소녀를 번갈아 쳐다보고는 한숨을 내 쉬었다.

“머리카락 색깔? 그게 뭐가 중요해?”

다시 머리를 소파에 기대려고 하는데 지니가 론의 머리카락을 움켜 쥐며 다시 물었다.

“아!!”

“머리카락이 어떤 색인 여자가 좋냐고!! 이 멍청아!”

지니의 손을 뿌리치며, 머리를 한번 헤치고는 곰곰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무슨 색깔 머리? 몸을 앞으로 숙여 팔꿈치를 무릎 위로하고 머리를 두 손에 묻었다. 딱히 떠오르는 생각이 없었다. 한번도 생각해 본적 없었던 주제였다. 한 손을 들어 머리카락을 앞으로 끌어당겨 보았다. 약간 두껍고 거친 느낌의 붉은 색 머리카락. 다시 소파쪽으로 기대며 지니와 헤르미온느의 머리카락을 만져봤다. 론의 행동에 떠들고 있던 지니와 헤르미온느는 론을 쳐다봤다. 지니의 머리카락은 론의 머리카락처럼 두꺼웠지만, 훨씬 부드러운 느낌이었다. 곱실거리지 않아서 그 느낌이 더 좋았지만, 너무 길었다. 헤르미온느의 머리카락은 얇고 부드러웠지만, 심하게 고불거려서 쓸어 내리면 손가락과 머리카락이 엉킬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얇고, 부드러운…”

자기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온 생각에 지니는 론을 쳐다보며 말했다.

“무슨 색이냐고 물어봤지, 누가 어떤 느낌이냐고 물어봤어?”

“무슨 색인지는 별로 안 중요한 것 같아. 그냥 어떤 느낌이냐가 중요해.”

솔직하게 지니를 보고 말했지만 지니의 표정은 론의 솔직함에 전혀 고마워 하는 태도가 아니었다. 지니는 한숨 섞인 말을 뱉어 냈다.

“남자들이란.”

지니의 말에 다시 고개를 소파위로 떨어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근래 들어 계속해서 실없는 지니의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해주면, 지니는 항상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같은 말로 끝을 맺곤 했다. 지니도 고개를 뒤로 떨구며 한숨을 내쉬었다. 옆에서 보고 있던 헤르미온느가 두 사람의 분위기에 곤란해 하는 표정을 짖고는 가지고 왔던 잡지를 뒤지더니 밝게 지니에게 물었다.

“지니! 크리스마스를 누구와 함께 보내고 싶어?”

헤르미온느의 질문에 고개를 론의 어깨쪽으로 옮겨 얹으며 헤르미온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한참 생각하더니 말했다.

“누구랑 보내고 싶다니 무슨 뜻이야?”

질문에 관심을 보이는 지니의 태도에 헤르미온느는 신이 난 다는 듯이 잡지에 써있는 질문을 읽기 시작했다.

“당신에게 하루의 시간이 있습니다. 오직 한 사람만을 선택할 수 있으며 선택한 그 사람과 당신 단 둘만이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낸다고 한다면, 당신은 어떤 사람과 그 시간을 함께 하고 싶으신가요?”

지니는 조금 생각하더니 헤르미온느에게 되물었다.

“헤르미는 누구랑 보내고 싶어?”

지니의 질문에 론을 할끗 보고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글쎄…”

헤르미온느의 행동에 지니는 낄낄거리고 웃더니, 다시 론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찌르며 론을 일으켰다.

“론! 누구랑 보내고 싶어?”

머리카락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론이 다시 고개를 들어 지니를 봤다. 눈살을 찌푸리며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자 지니는 한숨을 쉬며 헤르미온느가 했던 질문을 반복했다. 론은 다시 시선을 천장쪽으로 옮기며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나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

지니와 헤르미온느 모두 론의 말 뜻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조용히 있자 론은 다시 시선을 양 옆에 앉은 두 소녀에게 옮기고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니까, 그냥 또 한명의 위즐리도 아니고, 빨간 머리도 아니고, 해리포터의 친구라던가 헤르미온느의 친구, 혹은 지니의 오빠가 아닌 그냥 나 자신. 로날드 위즐리가 궁금한 사람하고 보내고 싶어.”

사람의 이름을 기대한 헤르미온느와 지니의 실망한 표정에 머쓱해진 론은 두 사람을 한번씩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몸을 천천히 소파로 기대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니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헤르미온느에게 물었다.

“심리 테스트 같은 거야?”

헤르미온느는 읽었던 잡지를 여기저기 뒤져보더니 다시 고개를 들어 지니를 보며 말했다.

“아니, 음, 응모권에 함께 보내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적어서 보내면 2인용 하와이행 포트키와 리조트 숙박권을 선물로 준데.”

지니는 몸을 일으키며, 헤르미온느가 들고 있던 잡지를 집어 들고는 자기 방으로 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헤르미온느는 급하게 지니 뒤를 따라가며 그 잡지의 소유권이 자신에게 있다며 웃었다. 계단을 올라가기 전에 론을 한번 힐끗 보고는 지니의 방으로 올라갔다. 시간이 흐르고 사람들은 하나 둘 잠자리를 위해 자리를 떠났다. 11시 27분, 이제 33분만 있으면 크리스마스다. 나른해진 몸을 이끌고 제일 꼭대기 층에 있는 방으로 향했다. 이미 너무 작아져 버려서 입을 수 없게 된, 작년에 받은 점퍼가 생각 났다. 제발 올해는 적갈색이 아니길 바래 보지만, 분명히 적갈색일 것이다.

방안이 추웠다. 밖은 이미 어두워 져 있었다. 눈이 조금씩 흩날렸다. 창문에 커튼을 치고 곧 체온으로 따뜻해질 이불 속에 몸을 묻었다. 고개를 돌려 해리가 와서 잠잘 침대쪽을 힐끔 보고, 고쳐 누웠다.

지니가 했던 질문들이 다시 떠올랐다. 머리카락, 얇고 부드러우면서 너무 길지도 너무 짧지도, 아니, 짧은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작은 바람에도 스쳐서 휘날리고, 햇빛을 받으면 햇빛에 하얗게 바래는 금발머리. 금발?

그 생각에 깜짝 놀라 급하게 일어나 앉았다.

‘절대로, 말포이를 생각하는 게 아니야. 학교에 금발머리 여자 애들을 생각한 걸 꺼야, 물론 아직 말포이던 여자 애들이던 머리카락을 만져본 적은 없지만, 분명 기분 좋을 꺼야… 어떤 느낌일까? 왜 머리를 항상 그렇게 빗어 넘기는 거지? 물론 그게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지만, 왠지 만지면 망가질 것만 같아서 만지기가 두려워. 망가진 모습? 헝클어진 말포이?’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휘두르며 머리 속을 채우는 생각을 털어 내려고 노력했다.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리고 손끝이 간질간질 했다. 그 모습을 본 해리가 방안으로 걸어 들어오며 부드럽게 웃었다.

“뭐해? 론? 괜찮아?”

붉어진 얼굴을 두 손에 묻으며 계속해서 머리를 흔들었지만, 생각처럼 쉽게 그 생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아냐, 아무것도 아니야”

그대로 뒤로 풀썩 누우며 천장을 바라봤다. 아직도 얼굴이 화끈 거리고 심장 뛰는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해리가 침대위로 기어 올라가며 물었다.

“불 꺼?”

론은 눈을 감고 어떤 감정도 담겨있지 않았던 말포이의 회색 눈동자를 생각했다. 분명 마치 텅 비어서 그 안에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그 눈동자의 주인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게 만드는, 끔찍하리 만큼 공허한, 감정하나 담기지 않은 죽은 사람 같은 눈동자가 론의 몸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론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해리는 조용히 ‘녹스’를 중얼거리고는 침대에 누웠다.




무겁고 두꺼운 커튼을 뚫고 들어온 아침의 푸른 빛, 유난히 아침이면 더 요란스럽게 들리는 새소리, 가끔 들리는 겨울 바람소리. 따뜻한 베개와 이불, 폭신한 침대. 잠을 자면서 밀어 두었던 무뎌진 감각들이 하나 둘 깨어나기 시작했다. 론은 아직 무거운 눈꺼풀을 감은 채로 침대 안에서 꾸물거렸다. 아직 조용한 주변으로 봐서는 이른 아침일 것이다. 크리스마스 아침, 위즐리의 버로우가 이렇게 조용할 리 없었다. 굳이 지금 눈을 뜨지 않아도 곧 나타나서 크리스마스를 위한 새로운 장난들로 론을 곤란하게 할 프레드와 조지 생각에 머리를 좀더 깊게 베개에 묻었다. 살짝 눈을 떠 침대 옆에 놓여진 작은 테이블의 시계를 보았다. 7시 20분쯤, 아니 18분, 19분쯤 되려나?

몸을 돌려 누워 앞에 있는 이불을 끌어 당겨 안았다. 체온에 따뜻하게 데워진 이불을 한아름 안고 다시 잠을 청하려는데, 이불 속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이게 올해, 프레드와 조지의 장난일까 싶어 끌어 당긴 이불을 더 바짝 끌어 당겨 안았다. 꿈틀 거림이 심해졌다. 한숨을 깊게 들이 쉬고는 눈을 감은 채로 고쳐 앉았다. 얼굴을 양손에 한번 묻고는 그대로 머리를 뒤로 쓸어 넘겼다.

살짝 눈을 뜨고는 주변을 살폈다. 무거운 커튼 사이로 비추는 희미한 빛에 푸르게 물든 방안이 조용했다. 고개를 돌려 프레드와 조지를 찾았다. 쌍둥이는 없었다. 문득 보게 된 해리의 침대도 밤새 아무도 사용하지 않은 냥 정돈된 채로 그 침대 안에 있어야 할 사람이 없었다. 인상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이것도 쌍둥이의 장난 중 일부인가?’

다시 시선을 돌려 침대를 봤다. 좀 좁다고 생각 했었는데, 정말 이불 속에 무언가가 이불을 둘둘 휘감은 채로 웅크리고 있었다. 갑자기 예전에 곰인형이 거미로 변했던 과거가 스치고, 그 기억에 몸을 부르르 떨며, 침대 옆에 벗어둔 슬리퍼를 찾았다. 침대 헤드에 걸쳐 놓았던 가운을 걸쳐 입고는 빙 돌아 그 이불을 돌돌 말고 있는 것을 침대 중앙으로 밀었다. 이불에 묻힌 중얼거림이 들렸다.

“음….”

일단 거미가 내는 소리가 아니라는 것에 안심한 론은 천천히 손을 이불쪽으로 가져갔다. 어쩌면 해리가 어젯밤에 잠결에 자기도 모르게 론의 침대에 와서 잔 것 일지도 모른 다는 생각에 이불 끝을 살짝 들어 올려 이불 안을 확인했다.

완벽하게 긴장이 풀어진 살짝 감긴 눈에 주근깨 한 점 없는 새 하얀 얼굴에 언제나 그렇듯이 뾰족한 턱, 살짝 벌어진 입까지…, 론은 살면서 이렇게 평화로운 모습의 말포이를 본적이 없었다. 자각하지 못한 작은 속삭임이 론의 목구멍을 빠져 나왔다.

“말포이!”

커다랗게 떠진 눈동자를 채우는 세상에서 제일 짜증나고 싫은 말포이가, 정말 이 단어가 과연 어울릴까 의심스럽지만, 굉장히 ‘순진한’ 얼굴로 ‘론 위즐리’의 침대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이불의 끝 자락을 손끝에 쥔 채로 구부정하게 어색하게 굽혀진 그 상태 그대로 언제부터 참았는지 모르는 숨을 천천히 고르고는 다시 그 짜증나는 얼굴을 이불로 덮어 버렸다. 몸을 곧게 펴고 눈을 감으며,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눈을 뜨고, 고개를 돌려 긴장한 목 근육을 풀어주고 어깨랑 다리도 한번 쭉 늘려 긴장을 풀어 준 뒤, 다시 이불 끝 자락을 살짝 들어 그 안에 있는 사람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평소라면 잘 정돈되어 빗겨진 금발머리가 이불 사이로 흩어져 있었다. 갑자기 어젯밤에 지니가 했던 질문이 떠올랐다. ‘론, 무슨 색깔 머리가 제일 좋아?’ 색깔에 대해 생각해 본적도 없고, 다른 사람을 볼 때, 머리색깔을 고려해본 적이 없는 론으로써는 참신한 질문이었다. 그리고 헤르미온느와 지니의 머리카락 감촉이 론의 손끝을 간질이는 것 같았다. 이불 사이에 흩어져 있는 금빛 머리카락이 두꺼운 커튼을 뚫지 못한 희미한 햇살에 거의 흰색으로 보였다. 마치 만지면 때가 탈 것 같은 머리카락으로 론은 천천히 손가락을 가져가 만져 보았다. 살짝 구불거리면서, 론의 머리카락 보다는 얇지만, 헤르미온느의 머리카락 보다는 두꺼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거칠다고 느껴졌다. 일단 말포이가 보이는 것처럼 소녀답지 않은 점에 실망하기도, 안심되기도 하는 혼란스러운 마음에 얼굴이 찡그려졌다. 좀더 많이 만져보면 달라질까 싶은 마음에 말포이의 얼굴 근처에 있는 머리카락으로 손을 가져가는 순간, 말포이의 눈이 떠졌다.

“어!”

깜짝 놀라 뒷걸음 치다 엉덩이부터 바닥에 넘어졌다. 몸을 지탱하기 위해 양손을 바닥에 집은 채로 얼어버렸다. 말포이는 다시 눈을 몇 번 깜박이더니 갑자기 몸을 일으켜 앉았다. 헝클어진 머리에, 아직 잠에서 덜 깬 멍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 보고는 바닥에 너부러진 론을 발견하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고개를 약간 갸웃거리더니 다시 침대 위에 있는 이불을 자기 몸쪽으로 끌어당겨 둥글게 말고는 이불 안쪽으로 파고 들었다.

“말포이…”

이불 밖으로 머리를 내민 말포이가 반쯤 눈을 뜨고 짜증으로 일그러진 표정으로 론을 마주했다. 론은 천천히 바닥에서 일어서며 걸쳤던 가운을 고쳐 입고 말했다.

“젠장, 거…거긴, 내 침대야! 당장 비켜!”

말포이는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고는 다시 이불 속으로 머리를 묻고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분명 말포이가 자는 침대는 론의 침대보다 훨씬 넓을 텐데, 왜 저렇게 몸을 작게 말고 있는지 론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물어보는 대신 말포이를 ‘론 위즐리’의 이불에서 떼어냈다.

“내 이불이라고! 비켜! 이 자식아!”

이불을 잡고 늘어지는 말포이를 떼내기 위해 말포이를 바닥쪽으로 끌어 당겼다. 그 바람에 말포이의 몸이 중심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굉장히 큰 ‘쿵’ 소리와 함께 침대 옆에 있는 테이블에 이마를 부딪혔다. 이마를 붙잡고 바닥에서 고통에 으르렁 거리던 말포이가 소리쳤다.

“이 트롤! 무슨 짓이야!”

소리에 놀라, 이불을 침대위로 던져 놓고는 이마를 붙잡고 있는 말포이에게 무릎을 굽혀 앉으며 물었다.

“괜찮아? 그 소리 진짜…”

론 쪽으로 휙 돌린 말포이의 눈살이 찌푸리며 노려봤다. 말포이의 손을 살짝 치워 부딪힌 쪽을 보려고 하자, 말포이는 론의 손을 찰싹 때리며 뿌리치며 숨을 삼켰다. 론 역시 얼굴을 찡그리며 말포이의 손목을 낚아채 상처부위를 봤다. 살짝 붉어져 볼록 튀어 나와 있었지만 피는 나지 않았다. 말포이의 이마에 혹이 생겼다.

론은 말포이의 손목을 놓으며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이불을 가지고 싸우다가, 넘어져서 혹이 난 말포이는 평소에 론이 봤던 말포이가 아니었다. 과연 론의 인생 중에, 말포이가 족제비로 변했을 때 말고 이보다 더 웃긴 상황이 있었을까? 그렇게 한참을 바닥을 구르며 웃다가, 말포이의 차가운 시선에 머쓱해진 론은 바닥에 앉으며 말포이의 행동을 살폈다.

론의 웃음을 멈춘걸 보고 있다가 고개를 돌리며 이해할 수 없는 신음 소리를 내더니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다가, 실수로 혹을 만져 또 다른 알 수 없는 소리를 냈다. 그 모습이 너무 웃긴 론은 자기도 모르게 또 낄낄거리고 웃었다.

론의 웃음소리에 화가 났는지 말포이는 고개를 돌려 침대 위에 있는 베개를 집어 들어서 론의 얼굴을 향해 던졌다. 얼굴을 제대로 맞은 베개가 무릎으로 떨어졌다. 멍한 표정으로 베개가 던져진 쪽을 보았다. 말포이의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학교에서 내내 시달려야 했던 악의 가득한 미소가 제자리를 찾았다. 하지만, 이마에 난 혹이 그 미소를 어떤 의미로 그전 보다 덜 악의적으로 보인다고 하면 이상할까?

무릎에 안착한 베개를 다시 집어 들어 말포이의 얼굴을 향해 던졌다. 말포이의 얼굴에 닿기도 전에 말포이는 팔을 들어 베개를 쳐내고는 몸을 일으켜 세우고는 빈정거리는 톤으로 말했다.

“위즐리, 하하. 굉장히 재미있네.”

론 역시 몸을 일으켜 세우며 말포이를 마주 봤다. 아직 낯설은 헝클어진 머리에, 약간 넉넉해 보이는 진한 녹색 파자마를 입고 론의 방을 살피기 시작했다.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놓여진 책들과, 벽쪽에 붙어있는 캐논 포스터들 해리가 자고 있었어야 할, 깨끗하게 정돈된 임시 침대 쪽으로 몸을 천천히 움직이며 론의 방을 조사라도 한다는 듯이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론은 기분 나쁜 이 침묵이 싫어서 문쪽으로 걸어가며 중얼거렸다.

“이게 만약에 올해 쌍둥이의 장난이라면, 곰인형 이후로 진짜 최고로 짜증나는 장난이야.”

살짝 열린 문밖을 나서면서, 조용한 복도를 지나 아래층을 향해 내려왔다. 거실로 내려 왔을 때, 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상했다. 보통 크리스마스 아침엔 가족끼리 모여 선물을 풀어보는 게 당연한 버로우에서 크리스마스 아침 거실에 아무도 없다니.

벽난로 옆에 장식된 트리 밑에 선물들도 그대로였다. 부엌쪽에서 들려야 할 부산한 아침식사 준비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천천히 몸을 옮겨 부엌 안으로 들어 섰지만, 역시 아무도 없었다. 이상한 느낌에 집안 곳곳을 살피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당연히 꺼려졌을 쌍둥이의 방도, 열어봐서는 안 되는 지니의 방도, 그리고 부모님의 방에 3층에 다락 옆에 붙어 있는 론이 살면서 단 한번도 사용 한적 없는 손님방까지 모두 뒤졌지만, 아무도 없었다. 천천히 계단을 내려와 바로 앞에 보이는 현관 문을 열었다.

밤새 내린 눈이 쌓여 길을 덮었다. 누군가가 왔던 흔적도, 나간 흔적도 찾아 볼 수 없었다. 곧 날카롭게 날을 벼린 겨울의 칼 바람에 양 팔로 몸을 감싸며 얼른 집 안으로 들어 왔다. 혹시 플루네트워크를 사용 했을까 싶어 식당 옆에 붙어 있는 벽난로를 체크 했지만, 어제 이후로 아무도 손을 대지 않은 것이 느껴졌다.

눈살을 찌푸리며, 론은 다시 천천히 꼭대기 층에 있는 이 집안에 론 말고 단 한명 밖에 없는 짜증나는 금발머리가 있는 방으로 올라갔다.




방으로 올라가는 길에 잠시, 욕실에 들러 물 주머니에 차가운 물을 가득 담았다. 그냥 내버려 두면 더 커져서, 지금보다 훨씬 재미 있겠지만, 일단 이 집에 있는 사람이 말포이 혼자 뿐이고, 이 상황을 함께 해결할 다른 사람을 찾기 전까지 말포이는 론이 가진 단 하나의 선택이었다. 주머니를 들고 다시 방안으로 들어 섰을 때, 매섭게 부는 겨울 바람이 론을 맞이 했다. 주황색의 두꺼운 커튼이 젖혀지고, 활짝 열린 창문에 몸을 기대고는 바깥을 보고 있는 말포이를 발견했다. 겨울 바람에 거의 흰색으로 보이는 얇은 머리카락과, 헐렁한 진한 녹색 파자마가 바람에 흔들렸다. 반쯤 감긴 눈으로 금방이라도 잠에 들 사람처럼 햇빛에 투명한, 항상 그렇듯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은 공허한 눈동자가 몸을 감싸는 차가운 겨울바람 보다 더 차갑게 느껴졌다. 손과 발끝이 추위에 얼얼해질 때까지 그렇게 서서 창 밖을 바라보는 말포이를 보고 있다가, 말포이를 창가에서 밀어내며 재빨리 창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침대 아래쪽에 떨어진 담요를 집어 몸에 감싸며 말했다.

“미친, 무슨 짓이야! 방이 차가워졌잖아!”

다시 말포이 쪽을 보며, 들고 왔던 물 주머니를 말포이가 있는 쪽으로 던졌다. 받는 척도 하지 않고, 그대로 말포이의 발 아래로 떨어진 물 주머니에서 물이 흘러 나왔다. 툴툴대며, 말포이를 밀어 내고 물 주머니를 들어 올리며, 흘러내린 물을 걸레로 덮었다. “빌어먹을.” 물에 젖는 걸레 옆에 맨발로 서있는 말포이를 한번 힐끔 보고는 물 주머니를 들고 다시 화장실로 향했다. 주머니 안에 물을 빼내고, 주머니를 다시 채운 다음, 다시 방 안으로 들어왔다. 말포이는 침대에 걸터앉아 굳게 닫힌 창문을 보고 있었다. 마치 새장 안에 갇힌 새처럼 그 창문이 열리면 당장이라도 날아갈 것처럼 열심히 보고 있었다. 대체 밖에 뭐가 있길래 저렇게 열심히 보고 있는 걸까? 창문쪽으로 고개를 돌려, 언제나 똑 같은 바깥을 보았다. 버로우의 낮은 울타리 너머로 넓은 들과, 작은 언덕, 숲이 보였다. 저 숲을 넘어가면 뒤쪽에 작은 호수가 있었다. 이런 날씨라면, 분명이 꽁꽁 얼었을 것이다, 몇 일만 더 기다리면, 분명 얼음낚시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말포이가 앉아있는 침대 옆에 털썩 앉으며 말포이의 시선을 샀다. 말포이의 앞머리를 한쪽으로 치우며, 아까 보다 좀더 붉게 부어 오른 혹을 봤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아파보이는 상처에, 말포이에게 미안해야 할지 한참 생각하다가, 살짝 입김을 불었다. 그 입김에 움츠리며, 신음소리를 냈다.

“이대로 두면 더 커질지도 몰라, 일단 차갑게 찜질해주면 좀 가라 앉을 테니까…”

가져온 물 주머니를 조심스럽게 말포이의 이마로 가져가며, 몇 번 더 살짝 불었다. 물 주머니가 혹을 다 가리고 난 다음에야, 론은 말포이와 자기 사이의 간격이 얼마나 좁은지 깨닫고, 몸을 뒤로 젖혔다. 말포이의 손목을 잡아 물 주머니로 손을 가져가게 했다. 겨울 바람에 차가워진 말포이의 손목이 과연 말포이가 살아 있기는 한가에 대해 의문을 갖게 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면서, 말포이의 맨발이 찬 마룻바닥에 닿아 있는 것을 봤다.

어깨에 둘러맸던 담요를 말포이에게 덮어 주고, 지니 방 옆에 있는 창고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랫동안 열어보지 않아서 인지, 어디에 뭐가 있는지 제대로 찾을 수 없었지만, 이것 저것 뒤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지니가 예전에 이상한 화장품을 사고 사은품으로 받았던 분홍색 털 슬리퍼를 찾았다. 그리고 오랫동안 입지 않았던 비슷한 색깔의 가운도 있었다. 그걸 들고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말포이는 물 주머니를 머리에 올려 놓은 채로 침대에 누워있었다. 헛기침을 해서 다시 돌아 왔다는 걸 알리려고 했지만, 진짜 기침이 론의 목구멍을 간질였다. 그렇게 몇 번 기침을 하고 침대위로 분홍색 가운을 던졌다. 말포이는 감고있던 두 눈을 뜨면서 배위에 안착한 가운을 눈쪽으로 들어 올렸다. 물 주머니를 한 손으로 잡고 몸을 일으키며,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론을 봤다. 론은 손에 들고 있는 분홍색 털신을 말포이 쪽으로 흔들며 말했다.

“내가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이야 말포이.”

물 주머니를 내려 놓으면서 말포이가 코웃음 쳤다.

“위즐리는 쓰던 걸 선물로 주나 보지? 하긴 너희 집 재정상태를 고려했을 때, 예상하기 힘든 일도 아니지만. 영광인걸, 위즐리에게 선물을 받을 날이 올 줄이야”

“닥쳐.”

분홍색 털신을 바닥으로 던지며 돌아 섰다. 이대로 돌아서서 하루종일 말포이를 피하는 것이 자신을 위해서도 말포이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대체 왜 버로우에 말포이와 론만 있는 건지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문을 나서며 아래층으로 향하기 전에 다시 방쪽으로 머리를 내밀며 가운을 앞뒤로 살펴보는 말포이에게 물었다. “배 안고파?”

계단을 내려와, 거실에 도착했을 즈음에, 말포이가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부엌 안으로 들어가, 먹을 것을 찾았다. 어제 남은 음식들과, 따뜻하게 주문이 걸어진 머핀이 보였다. 머핀과 쿠키가 든 바구니를 들고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옅은 핑크색 가운에, 분홍색 털 슬리퍼를 신고, 살짝 헝클어진 머리 사이로 보이는 붉게 부풀어 혹이 난 말포이가 식당 안으로 천천히 걸어 왔다. 아직 잠이 덜 깼는지, 멍한 표정에 주변을 살펴보는 모습이 낯설었다. 말포이에게 손을 흔들어 의자에 앉히고 가지고 온 바구니를 앞에 내려 놓으며 말했다.

“일단 집에 있는 게 이거밖에 없으니까, 먹어. 뭐 마실래?”

다시 몸을 돌려 부엌 쪽으로 향했다. 옆에 보이는 주전자에 물을 담고 스토브에 불을 붙였다. 찻장을 뒤져보니 이런 저런 종류의 마실만한 것이 나왔지만, 론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코코아 뿐이었다. 손에 잡히는 컵 두개를 집어 들고는 식당쪽을 힐끔 봤다. 머핀을 하나 집어 들고는 이리저리 돌려가며 살펴보고 있는 말포이가 보였다. 코웃음을 치며 머리를 한번 흔들고는, 따뜻하게 데워진 물을 컵에 붓고, 그 컵을 들고 다시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말포이 앞에 아이싱만 떼어먹고 남은 머핀이 있었다. 그리고는 쿠키가 있는 바구니 쪽으로 손을 가져가더니, 쿠키위에 얹어진 아이싱을 살짝 핥았다.

“너희 집요정 아이싱 괜찮은데?”

“집요정 이라니, 우리집엔 집요정 없어. 그건 우리 엄마가 만든 거야.”

론의 목소리에 놀란 표정으로 손에 들고있는 쿠키와 론을 번갈아 가며 보았다.

“너희 엄마가 요리를 한다고?”

아이싱을 핥았던 쿠키를 다시 아래쪽에 내려놓고, 바구니에 있는 머핀을 다시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머핀 위에 얹어진 아이싱 부분만 떼어 먹기 시작했다. 가지고 온 컵을 말포이 옆에 의도했던 것보다 약간 세게 컵을 내려 놓고 말포이의 손에서 머핀을 뺏었다.

“야! 앞에 있는 것부터 마저 먹고 먹어!”

론의 손에서 머핀을 채내며 말포이가 말했다.

“다 먹었어! 내가 먹고 싶은 부분만 먹을 거야!”

말포이는 옆에 놓여진 컵을 한번 살펴보더니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는 눈살을 찌푸리더니 말했다.

“너무 달잖아!”

설탕 덩어리인 아이싱 부분만 먹으면서, 코코아가 달다고 짜증내는 말포이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멍하게 쳐다보고 있다가 말포이 반대쪽에 털썩 내려 앉으며 말포이가 먹다 남긴 머핀을 집어 들어 한입 베어 물었다. 사실 엄마가 만든 음식은 거의 대부분 다 맛이 있었지만, 달기만 한 아이싱을 별로 안 좋아 했던 론은 아이싱이 없는 머핀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말포이가 기분 나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위즐리, 위즐리, 집요정이 필요 없네, 이미 자체가 미천한데 더 미천한 생물이 있어서 어디다 써?”

먹고 있던 머핀 부스러기를 말포이 쪽으로 던지며 말했다.

“닥치고 쳐 먹기나 해!”

역겹다는 표정으로 론을 한번 쳐다보더니 테이블 위로 턱을 괴고 집었던 머핀의 아이싱 부분을 손가락으로 떼서 먹기 시작했다. 항상 크리스마스를 버로우에서 보낸 사람처럼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머핀과 코코아를 먹는 말포이를 보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일단 그 전에 집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었다.

대체 왜? 어떤 이유로 말포이와 론만 이 집에 있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했다.

“말포이, 넌 궁금하지도 않아? 네가 왜 여기 있는지?”

말포이는 아이싱만 다 떼어먹은 또 다른 머핀을 론이 있는 쪽으로 밀어 내며, 괴었던 고개를 천천히 들어올리고는 주변을 살펴봤다. 그리고 시선을 론쪽으로 돌리며, 한쪽 입 꼬리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정황상, 난 위즐리 우리에 있어.”

잔뜩 짜증 섞인 으르렁 소리를 내고는 양손으로 식탁 위를 내리쳤다. 그 소리에 놀랐는지 말포이의 어깨가 움찔 했다. 말포이의 투명한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지금, 우리집에 너랑 나밖에 없는 굉장히 짜증나고 싫은 상황에 놓여있어, 너도 알다시피 나는 다혈질에 생각보다는 주먹이 앞서는 사람이야.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너의 비루하고 가냘픈 몸을 봤을 때 네가 나를 때려 눕힐 확률은 굉장히 낮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 주먹만한 머리 속에 든 뇌라는 걸 좀 사용할래?”

말포이는 마치 론이 이런 말을 할거라는 것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굉장히 차분한 모습이었지만, 말포이의 눈은 확실히 그가 화가 났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투명했던 눈동자가 점점 원래의 푸른빛이 도는 회색빛깔을 찾기 시작했다. 악의에 가득찬 미소가 다시 말포이의 얼굴에 자리잡았다.

“내 몸이 비루한지 아닌지 보기라도 했어? 마치 안다는 듯이 떠들지마 오크!”

“제발 좀 입닥쳐 말포이!”

“너나 그 커다란 입 좀 다물어. 위즐리!”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사실 뭘 할지 아무 생각도 없었지만, 일단 너무 화가 났다. 피가 흐르는 느낌이 팔뚝에서 느껴졌고, 귓속에서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크게 숨을 몇 번 들이 마신 뒤에, 다시 눈을 떴다. 말포이는 짜증 난다는 듯이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지만, 론의 행동에 약간 놀란 듯 몸을 뒤쪽으로 빼고 있었다. 다시 자리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

“내가 호의적으로 대하면, 너도 최소한의 호의를 좀 보일래?”

“위즐리는 이걸 호의라고 부르나 보지? 어찌나…”

말포이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좋아! 알겠어! 내가 잘못했어. 미안.”

론의 갑작스러운 사과에 혼란스러운 표정의 말포이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론은 컵에 얼마 남아있지 않던 코코아를 얼른 다 마시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집 안, 밖으로 사람들이 오거나 나간 흔적이 없어. 플루네트워크도 확인해봤지만, 이미 닫혀있고 정말 이 집안에, 너랑 나 둘 밖에 없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일단 좀 생각해 보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

말포이는 조금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론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빈 컵을 들고 부엌으로 향했다. “뭐 더 마실래?” 말포이가 반정도 남은 컵을 가지고 부엌쪽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다즐링이나, 얼그레이 같은 홍차는 없어?”

코코아가 있었던 찬장의 문을 열며 말포이에게 손짓했다. 말포이가 찬장쪽으로 고개를 옮기더니 론에게 물었다.

“이게 뭔데?”

“저기 보이는 저 상자 안에 든 찻잎이 아마 홍차였던 것 같은데, 난 어떻게 만드는지 몰라.”

론의 손가락이 가리킨, 약간 오래된 듯한 철제 상자랑 그 주변을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더니 조금 평범해 보이는, 그래도 짜증나는 미소를 만들어 내며 말했다.

“내가 차를 끓일 수 있다고 생각한 거야? 차라리 욕을 해.”

머리를 흔들며, 싱크대 쪽에 마시다 만 코코아 컵을 내려놓고 거실쪽으로 나갔다.




컵을 싱크대 아래로 내려놓은 뒤 말포이를 따라 거실쪽으로 나갔다. 말포이가 소파 위에 털썩 앉았다. 별 생각없이 말포이 옆에 앉으며 어젯밤에 지니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말포이 쪽을 한번 힐끔 보고는 잠깐 만져봤던 머리카락 느낌을 다시 생각해 내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 촉감보다, 엄청 편안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말포이의 자는 얼굴이 자꾸 머리속을 채웠다. 머리를 흔들며 코웃음을 한번 치고는 소파 뒤쪽으로 몸을 기대며 말했다.

“어제 밤에 지니가 이상한걸 물어보긴 했어.”

말포이도 론의 모습을 따라 몸을 뒤로 젖히면서, 소파 앞에 있는 커피 테이블 위에 분홍색 털 슬리퍼가 신겨진 발을 올려 놓으며 론에게 물었다.

“어떤?”

“어떤 색 머리카락이 좋으냐, 누구랑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냐, 뭐 이런 멍청한 여자 애들 질문.”

“그래서?”

“그래서…, 음…”

어제 했던 대화들이 갑자기 떠오르면서 두 뺨이 점점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 잘 생각해 보니, 방금 한 말이 오해를 살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에 말포이를 보았다. 말포이는 혼란스러운 건지, 기쁜 건지, 아니면 짜증난 건지 모를 듯한 표정으로 조용히 론을 살피더니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말포이의 웃음에 기분이 나빠진 론은 팔꿈치로 말포이의 옆구리를 찌르며, 물었다.

“뭐가 웃겨?”

몸을 앞으로 숙이며 배를 잡고 웃던 말포이가, 론의 팔꿈치가 닿은 쪽을 문지르며 론에게 말했다.

“그, 그, 그, 멍청한 질문들에 대한 답이 나야? 내 생각한거야?”

“뭐?! 아냐!”

재빨리 반응 했지만, 따뜻했던 뺨이 화끈거리는 것은 숨길 수 없었다. 그 모습에 말포이는 아까 보다 더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말포이가 이렇게 숨을 헐떡거리면서 웃는걸 본적이 없는 것 같았다. 항상 엄청 심각한 무표정이거나, 한쪽 입 꼬리만 살짝 올라간 짜증나는 미소라거나, 아니면 정말 못된 표정들 밖에 본적 없는 것 같은데, 처음으로 론과 비슷한 또래의 그냥 평범한 남자아이로 보였다. 말포이가 천천히 숨을 고르고 다시 몸을 소파에 기댔다. 론은 손을 들어올려 얼굴을 감싼 뒤, 붉어진 얼굴을 진정 시키기 위해 크게 한숨 쉬었다.

엄청 불편한 침묵이 얼마나 흘렀을까, 말포이가 입을 열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항상 성대한 파티가 열려, 유럽 각지에서 온 친척들과, 아버지께서 알고 계시는 영향력 있는 가문 사람들이 주로 참석하는 굉장히 격식 차린 모임이지. 매년 오는 사람들도 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에게 요구하는 것도 배로 늘어나지.”

한숨을 한번 쉬더니, 고개를 뒤로 젖혀 천정을 보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올해도 작년이랑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올해 새로 온 사람들 중에는 조금…, 조금, 다른 친척이 있었어. 프랑스 어딘가에서 왔다는데…, 붉은 머리에, 주근깨까지, 게다가 여자였어. 아버지는 중요한 사람이라며, 내게 집안을 안내해 주라고 부탁하셨지. 다른 사람들하고 같이 있을 때는 평소에 보는, 의례적이고 형식적인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나랑 둘만 남으니까 엄청…, 엄청 다른 사람이 되는 거야!”

얼굴로 가져갔던 손을 내리며, 양 옆에 아무렇게나 내려 놓다가, 말포이의 손과 론의 손끝이 살짝 스쳤다. 아주 조금, 순간적으로 스쳐졌지만, 말포이의 피부는 차가웠다. 벽난로 쪽을 보니, 불씨가 거의 다 죽어 있었다. 천천히 일어나 벽난로 옆에 쌓아둔 장작을 안쪽으로 밀어 넣으며, 안락의자에 걸쳐져 있던 담요를 가지고 다시 돌아와, 담요의 반쯤 말포이의 무릎을 덮은 다음 아까 보다 좀더 가깝게 다가가 앉으며 남은 담요를 무릎 위에 덮었다.

론의 행동을 아무 말 없이 지켜보고 있던 말포이는 론이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한번 코웃음을 치고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그 여자가, 자기는 위즐리랑 먼 친척이라고 말했어. 나한테 위즐리를 아냐고 물어봤지. 만약 아버지가 중요한 사람이라고 소개하지 않았으면, 두 번 생각도 안하고 그냥 그 자리에 그 여자를 내버려 둔 채로 다시 내방으로 가려고 했는데, 그렇게 했다간…”

말포는 말을 끝까지 잊지 못했다. 팔꿈치를 살짝 움직여 말포이를 툭 치며 말했다.

“했다간?”

“아무튼, 위즐리를 아냐고 물어봐서,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위즐리가 어떤지 물었어. 아는 게 있어야 대답을 해주지, 내가 아는 거라곤 위즐리는 빨간 머리에 주근깨가 많고 형제가 바글바글하고 버로우에 살고 머글을 완전 사랑한다는 것 밖에 모르는데, 어떻게 말을 해도 전혀 공손하지가 않은 거야.”

론은 이 말에 화를 내야 하는지, 아니면 말포이가 계속 말을 하게 둬야 되는지 고민했다. 평소라면 굉장히 화나고 짜증났을 말인데, 차분한 말포이의 목소리가 론을 덜 화나게 해주는 것 같았다. 부드러운 웃음소리가 론의 목을 빠져 나왔고, 그 소리에 한쪽 눈썹을 위로 치켜 올린 말포이가 한동안 론을 쳐다보더니 다시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같은 학년에 위즐리가 있다고 말을 했더니, 너에 대해 묻는 거야, 기숙사가 달라서 잘 모른다고 했더니, 엄청 실망한 표정으로는 자기에 대해 설명했어. 자기의 증조할머니가 위즐리였다고, 다른 친척들과는 교류가 활발한데 위즐리얘기만 꺼내면 엄청 싫어 한다고. 왜 인지는 말 안 해도 잘 알 테고, 아무튼 어젯밤 내내 그 여자에게 위즐리에 대한 이야기로 내내 시달리다가 잠이 들었는데, 일어나 보니 너의 멍청한 얼굴이 좋은 아침이라고 인사를 하더군.”

말포이의 마지막 말에 코웃음 치며 론 역시 발을 커피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꼼지락 거리는 분홍색 슬리퍼 옆에 주황색 슬리퍼가 나란히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 론은 잠깐 생각하고 싱긋 웃으며 말포이에게 말했다.

“그래서 내 생각 하면서 잠든 거야?”

“하! 너도 금발의 위즐리를 보면 내 생각부터 할걸?”

금발의 위즐리라…, 한동안 그냥 멍하게 계속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가 말포이의 어깨가 론의 팔뚝을 살짝 스쳤다. 앉은 자리에서 좀더 편안한 자세로 바꾸려는지 옆에 있는 쿠션을 치우며 말포이의 몸이 론이 앉은 쪽으로 기울었다. 고개를 들어 말포이를 보려는데, 진 녹색 파자마 사이로 살짝 보이는 목덜미가 론의 눈앞에 있었다. 곧 쿠션과 씨름을 마친 말포이가 다시 뒤쪽으로 풀썩 몸을 옮기며 론에게 물었다.

“좋아, 위즐리. 내 이유는 이래. 너는? 진짜 나랑 같이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었던 거야?”

눈살을 찌푸리며, 뭔가 굉장히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을 잠깐 밀어두고 머리를 한번 헤친 다음 다시 고개를 뒤로 젖히며 말했다.

“음…, 사실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은 사람은 나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어. 그냥 또 다른 위즐리나, 빨간머리나 해리포터의 친구가 아니라 그냥 론 위즐리가 궁금한 사람.”

“그럼 내가 아니라, 그, 그 여자랑 같이 있어야 되는 거 아니야?”

솔직하게 대답할까 말까 계속 고민하다가, 말포이가 먼저 솔직하게 말을 했으니, 이번엔 론이 솔직해질 차례인 것 같아서 머뭇거리다가 결국 아주 조용하게 속삭였다.

“그, 그…, 머리카락 색깔, 그것 때문에 잠깐…, 아주 잠깐…”

“머리카락 색깔?”

말포이는 머리카락을 앞쪽으로 끌어당겨 보며 얼굴을 찡그렸다. 그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론의 머리로 손을 가져가 한번 해치고, 움켜쥐었다.

“아야! 아파! 멍청이!”

손목을 낚아 채며, 고개를 들어 올려 말포이를 봤다. 손을 몇 번 흔들어 내 손을 뿌리치고는 고개를 휙 돌렸다. 아까 당겨봤던 머리카락이 어색한 모양으로 그대로 붕 떠있었다. 멍하게 손을 들어 하얀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평소보다는 당연히 헝클어져 있지만, 그래도 그나마 좀 정리가 되게끔 머리를 매만졌다. 말포이는 머리를 흔들며 몸을 멀리 뒤로 젖혔다. 론의 손이 닿았던 부분을 한번 더 쓰다듬더니 론을 한번 쳐다보고는 얼굴을 양손에 묻었다. 그리고 손에 묻힌 말포이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이제 어쩌지?”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정말 이대로 계속 말포이와 단 둘만 이 세상에 있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 날까, 생각해 보니 말포이랑 이렇게 오랫동안 서로를 모욕하지 않으면서 대화를 나눠 본 적이 한번도 없었고, 또 그냥 못되지 않은 그냥 평범한 말포이와 함께 보내는 것이 생각한 것보다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까 보다는 조금 덜 불편한 침묵이 흘렀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밀어 넣어 두었던 장작이 반쯤 타 들어 갔고, 크리스마스 트리에서 나는 약간 마른 듯한 잣나무 향이 집안을 에웠다. 고개를 돌려 말포이를 봤다. 거의 소파 위에 누운 채로 소파 옆에 난 창문 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뻔한 바깥풍경이 뭐가 그렇게 흥미로워서 쳐다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마치 내 생각에 대답이라도 해주려는 듯이 나지막한 속삭임이 들렸다.

“난 말포이 저택이 싫어. 담이 너무 높아서 갇힌 느낌이야. 근데, 여긴….”

말포이의 말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한동안 생각 하다가, 그냥 잊어 버리기로 했다. 격식 차린 딱딱한 크리스마스 파티에, 높은 담에 가로막혀 사는 말포이는 론이 생각했던, 원하는 건 뭐든지 다 가져서 행복할거라고 생각했던 말포이랑은 전혀 달랐다. 사실 학교에서 말포이를 봤을 때도, 그렇게 행복해 보이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




“밖에 나갈래?”

소파에서 일어 서면서 기지개를 켰다. 말포이가 보고 있던 창문 쪽으로 성큼 걸어가 밖을 보니 눈에 반사된 햇빛에 부셨다. 생각 했던 것보다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 보통 같았으면, 분명 아침부터 부산하게 일어나서 마당과 길을 쓸어야 하겠지만, 오늘은 눈을 쓸라고 잔소리할 엄마가 없으니, 굳이 찾아서 일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말포이는 아직도 창문 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말포이!”

계단을 오르며 말포이 쪽으로 손짓 했다. 무릎에 덮고있던 담요를 몸에 두르며 내 뒤를 따라 올라왔다. 방으로 가기 전에 바로 아래층에 있는 욕실로 갔다. 열린 창문으로 찬 바람이 불었다. ‘대체 누가 이렇게 문을 열어 두는 거야?’ 속으로 생각하며 창문을 닫았다. 물을 받아 따뜻해지는 주문을 걸고 말포이에게 손짓했다. 욕실 문쪽에서 머뭇거리고 있던 말포이가 안쪽으로 들어와, 받아놓은 물과 론을 번갈아 가며 봤다.

“난 샤워하고 싶어”

“이렇게 추운데 샤워했다간 감기 걸려.”

“샤워 할래.”

욕실 수납장에 여분의 칫솔을 찾고 있던 론은 숨소리와 같이 뱉어지는 말포이의 불평을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깊숙한 안쪽에서 새 칫솔을 발견하고 난 다음에야 몸을 돌려 말포이의 얼굴에 칫솔을 들이 대며 말했다.

“말포이!”

말포이는 고개를 푹 숙이면서 파자마 소매를 걷어 올렸다. 헐렁한 파자마를 팔꿈치 까지 걷어 올렸다. 아까 말포이의 손목을 잡았을 때 느낀 거지만, 여리거나 가냘프지 않았다. 하지만 그냥 눈으로만 보기에는 그렇게 보였다. 지니보다는 두꺼울까? 지팡이 없이 주먹다짐한다면 이 정도는 이길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말포이의 손이 물속으로 사라졌다. 물의 온도를 재듯 물속에서 몇 번 흔들더니,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좀 차가운 것 같아.”

한숨을 쉬며 천장을 봤다. ‘지니도 이 정도는 아니야.’ 조용히 따뜻해 지는 주문을 물을 향해 걸었다. 말포이는 갑자기 철벅거리는 소리와 함께 물 밖으로 손을 꺼내더니 말했다.

“너무 뜨거워!”

“말포이!”

커다랗게 질러진 목소리에 말포이의 어깨가 움찔했다. 칫솔을 입안에 집어 넣으며, 말포이 어깨에 걸쳐진 담요를 변기에 커버를 내리고 그 위에 올려뒀다. 차가운 바람이 이제야 느껴지는지 말포이는 작은 소리로 불평하더니 다시 손을 물 안으로 넣고 휘휘 젓더니 세수하기 시작했다. 흘러내린 앞머리가 물 표면 위를 스쳤다. 말포이의 세수하는 모습이 굉장히 얌전하고 품위 있어 보였다. 말포이는 세수하는 방법도 가르치는 건가 싶어서 코웃음이 쳐졌다. 세수를 다하고 고개를 든 말포이의 턱끝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목을 타고, 파자마 사이로 사라졌다. 옆에 걸려 있던 수건을 말포이 얼굴 쪽으로 던지면서 말포이를 밀어냈다. 입안을 헹궈냈다. 새 칫솔에 치약을 짜서 얼굴의 물기를 닦아내고 있는 말포이에게 건넸다.

세수를 하고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말포이는 변기 위에 앉아 욕실 안을 구경하고 있었다. 칫솔로 이를 닦으면서 좁은 욕실 안을 이리저리 살폈다. 세수를 하면서 젖은 앞머리가 원래의 색깔보다 조금 더 진해보였다. 목덜미에 허술하게 걸쳐진 수건을 낚아채 얼굴을 닦고 말포이가 입안을 헹굴 수 있도록 옆으로 물러 났다.

“칫솔은 그냥 그 컵 안에 같이 꽂아둬.”

수건을 다시 수건걸이에 걸면서 계단을 올라갔다. 잔뜩 말린 이불이 침대 위에 그대로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담요를 털어서 책상의자 위에 잠깐 걸어두고, 침대를 정리했다. 침대를 거의 다 정리했을 즈음 말포이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해리의 간이 침대 위에 털썩 앉았다. 정리가 끝나고 침대에 걸터앉으며 말포이 쪽을 봤을 때, 말포이는 또 멍하게 창문 밖을 보고 있었다.

옷장을 뒤져서 작아져서 못 입는 옷을 몇 개 꺼내서 침대 위로 던졌다. 가운을 벗어서 걸어두고 입을 만한 옷을 찾았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론쪽을 한번 힐끔 본 말포이는 창문 앞으로 자리를 옮겨서 론을 등지고 섰다. 재빨리 옷을 갈아 입고, 양말을 신으며 말포이에게 말했다.

“일단 네가 입을 만한걸 꺼내뒀으니까, 알아서 입고 내려와.”

그제야 창문에서 눈을 뗀 말포이가 침대 위에 놓인 R이 커다랗게 써있는 적갈색 점퍼를 보고 말했다.

“나보고 위즐리 점퍼를 입으라고?”

침대쪽으로 걸어가 놓여진 옷들을 앞뒤로 살펴보고는 눈살을 찌푸리며 론쪽을 봤다.

“그럼 지니옷 입을래? 너도 지니 못지않게 분홍색에 집착하는 것 같은데….”

짜증이 났는지 으르렁 대더니, 분홍색 가운을 벗어서 던져두고는 파자마 위에 바로 점퍼를 입기 시작했다. 한숨을 한번 쉬고는 현관문이 있는 쪽으로 걸어 내려갔다. 문 옆에 걸려있는 외투 중에 말포이가 입을 만한걸 찾다가, 밖에 눈이 왔으니, 부츠가 있어야 겠다고 생각해서 계단 아래쪽에 숨겨져 있는 신발장으로 갔다. 신발장 안쪽에서 찰리의 눈부츠를 꺼내서 앞뒤로 살펴보고 슬리퍼 위에 대보았다. 얼추 맞는 것 같아서 옆에 꺼내두고, 작년에 신었던 물려받은 조지 부츠를 꺼내 현관문쪽으로 부츠를 던져 뒀다.

쿵쾅거리는 소리와 함께 말포이가 내려왔다. 갑자기 분홍색 털신 론이 있는 쪽으로 날아왔다. 그 털신이 론의 무릎에 떨어지고, 인상을 쓰며 말포이를 봤다. 말포이는 슬리퍼가 벗겨진 발을 들며 말했다.

“위즐리”

엄지발가락 있는 부분에 살짝 구멍이 나서 꼼지락거리는 말포이의 흰색 발가락 끝부분이 보였다. 무릎에 있는 털신을 다시 말포이 쪽으로 던지며 현관문 쪽으로 걸어 갔다. 아무렇게나 던져진 부츠를 세워서 따뜻해지는 주문을 걸었다. 찰리의 부츠를 신고 남은 부츠를 말포이에게 손짓했다. 걸려있는 외투를 입고, 잠깐 생각한 다음, 해리의 외투를 말포이에게 건넸다. 누구 외투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하고는 모자를 쓰고 장갑을 꼈다. 문을 열어 밖으로 나섰다. 차가운 겨울 바람이 스쳤다. 뒤따라 나오던 말포이가 숨을 들이 마시며 말했다.

“으…, 추워!”

어깨너머로 말포이를 봤다. 잔뜩 움츠리고는 양손에 입김을 불어넣고 있었다. 겨울 바람에 이미 헝클어진 머리가 더 헝클어 지고 있었다. 다시 집 안쪽으로 들어가서 지니의 모자와 귀마개를 가지고 나와, 말포이에게 던져줬다. 말포이는 재빨리 장갑을 끼고는 귀마개를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론의 어깨를 툭툭 치며 물어봤다.

“이거 어쩌라구?”

말포이의 손에서 귀마개를 낚아채 머리에 씌워주고 말포이 머리를 붙잡은 채로 귀마개를 흔들었다.

“귀마개 어떻게 쓰는지도 몰라?”

고개를 흔들어 론의 손을 뿌리치고는 갑자기 눈 밭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오고 간 흔적 없이 새하얗게 발목까지 쌓인 눈이 뽀드득 소리와 함께 발자국이 하나 둘 씩 생겨났다. 울타리를 넘어 언덕 위까지 올라갔다. 커다란 나무 아래로는 다른데 보다 눈이 좀 덜 쌓여 있었다. 어디까지 가려는 건가 싶어서 고개를 들어 말포이를 찾았다. 갑자기 눈 뭉치가 뒤쪽에 있는 머리를 맞았다. 신경질 적으로 모자를 털어내며 말포이쪽을 향해 소리질렀다.

“말포이! 좀…”

또 다른 눈덩이가 얼굴에 맞았다. 입을 꽉 다물고 짜증 섞인 신음소리를 한번 뱉어낸 다음에 옆쪽 울타리 위에 있는 눈을 한 움큼 뭉쳐 말포이가 있는 쪽을 향해 있는 힘껏 던졌다.




차가운 바람에 코끝이 시려왔다. 이리저리 눈덩이를 들고 뛰어다녔다. 눈 밭에 미끄러운 데다, 경사까지 져서 앞으로 몇 번을 고꾸라지고 난 다음에야 말포이가 서있는 언덕 꼭대기에 닿았다. 가만히 서있는 말포이의 머리쪽으로 눈덩이를 던지며, 점점 거리를 좁혀갔다.

“위즐리”

조금 전까지만 해도 생전 처음 눈싸움 하는 사람처럼 신나서 눈싸움 하던 말포이가, 언덕 너머로 손가락질을 하며 머리에 묻은 눈을 털어냈다. 말포이 옆에 서서 손가락이 가리키는 쪽을 봤다. 여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머글 농장이 있다. 물론, 한번도 가본적은 없지만, 저 농장에는 노부부가 사는데 예전에 한번 집에 찾아온 적이 있었다. 잘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말포이를 봤다.

“멍청아! 또 다른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

“여기서 저기까지 가려면 20분 정도 걸어야 돼.”

버로우 쪽을 한번 쳐다보고 다시 그 머글 농장이 있는 쪽을 봤다. 눈 밟는 소리와 함께 말포이가 움직였다. 울타리를 따라,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길 위에 우리 흔적이 생겼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고, 가끔 불어오는 바람에 쌓인 눈이 흩날렸다.

그 농장에 사람이 있기를 바라는 걸까? 아니면 아무도 없기를 바라는 걸까? 사실 말포이와 같이 있는 이 시간이 그다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일까? 만약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에 잠겨 조용히 걸었다.

“근데, 여기 누가 사는지는 알아?”

말포이의 목소리에 내내 질문만 해대던 생각들을 빠져 나왔다. 떨구고 있던 시선을 들어 말포이를 봤다.

“어…음, 머글 부부가 살아.”

울타리 위에 쌓인 눈을 툭 치며, 농장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들판에 쌓인 눈 더미가 갑자기 움직였다. 말포이는 깜짝 놀라서 론의 팔을 움켜쥐며 바싹 다가섰다. 론은 그게 뭔가 싶어 자세히 보니 양들이 떼로 모여 있었다. ‘눈을 맞으면 양털이 상할 텐데…’라고 생각하면서 말했다.

“양 농장이야. 그 부부는 양을 키워.”

그리고 다시 농장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현관에 도착해서 부츠에 묻은 눈을 털어내려는데, 그때까지 말포이가 론의 팔에 매달려 있었다. 어깨를 살짝 움츠려 말포이를 떼내고, 모자를 벗으며 초인종을 눌렀다. 말포이도 발을 동동 구르며 부츠에서 눈을 털어냈다. 반복해서 몇 번 더 눌렀지만,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말포이가 갑자기 론을 밀치고 현관문을 열었다. 그 행동에 놀란 론이 말포이의 팔뚝을 잡았지만, 말포이는 론의 손을 흔들어 뿌리치고 집 안쪽으로 들어갔다.

“으…추워!”

“말포이! 남에 집에 그렇게 막 들어가면…”

집안에도 역시 인기척이 전혀 없었다. 말포이는 부츠를 현관 근처에 벗어 던지고, 거실쪽으로 걸어 들어가 벽난로 앞에 장작을 밀어 넣으며 바닥에 풀썩 앉았다. 아무렇게나 너부러진 부츠를 정갈하게 세워놓고, 론 역시 부츠를 벗고 거실 안쪽으로 들어갔다. 머글의 집은 해리의 집 이후로 처음 들어가 보는 것 같았다. 뭐, 정확히 말하면 들어가본 것은 아니었지만….

불쏘시개로 벽난로에 불을 붙이던 말포이가 갑자기 소리쳤다.

“위즐리! 배고파!”

우두커니 거실에 서있던 론은 말포이를 한번 보고, 부엌으로 보이는 곳을 쳐다봤다. 말포이쪽으로 걸어가서 말포이의 귀마개를 빼서, 말포이 무릎에 던지며 말했다.

“그렇게 크게 소리 칠 필요 없어. 그보다, 여긴 남에 집인데 이렇게 막…”

“어차피 아무도 없는데 어때! 배고프다고! 멍청아!”

말포이를 일으켜 세우며, 부엌쪽으로 같이 걸어 들어갔다. 버로우의 부엌과는 그 구조가 좀 달라보였다. 예전에 헤르미온느가 설명해준 냉장고라던가, 전자레인지가 보였다. 따라 들어온 말포이가 식탁 위에 놓은 쿠키를 집어 먹더니, 웅얼거렸다. “역시 아이싱은 너네 집이 더 맛있어.”

“말포이! 그렇게 막 먹지마!”

말포이는 바구니에서 쿠키를 몇 개 더 집어 들더니 론의 입 속으로 밀어 넣었다.

“너도 공범이야.”

그리고는 부엌 찬장 여기저기를 열어보기 시작했다. 몇 군데 더 열어보더니, 곧 호두와 땅콩 같은 견과류가 든 유리병을 발견하고는 꺼내서 먹었다. 냉장고를 열어보더니 론에게 손짓했다. “이것 좀 봐, 이 안은 차가워.”

안쪽에서 차가워진 고기파이를 찾아서 예전에 헤르미온느가 얘기해준 데로, 전자레인지 사용을 시도해봤다. 문을 열고 그 안쪽에 음식을 넣은 다음에, 버튼을 누르면 되는데…, 어떤 버튼이었는지 기억이 제대로 안 났다. 말포이와 사용법에 대해 실랑이하다가 말포이가 제안한 초록색 버튼을 누르자 갑자기 작동되기 시작했다. 말포이의 입 꼬리가 기분 나쁘게 올라가며 코웃음 쳤다. 고기파이로 배를 채우고 집안을 좀더 구경했다. 거실은 버로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침실로 보이는 방과, 서재 그리고 손님방 1층으로 정말 아담하게 꾸며진 농장 저택이었다. 화장실을 사용하고 거실쪽으로 걸어 나오는 길에, 찬장 위에 올려진 체스 판이 눈에 들어왔다.

“말포이, 체스 할 줄 알아?”

론은 안락의자 앞에 있는 발 받침을 끌어다 찬장 앞에 두고 체스가 든 상자로 손을 뻗었다. 손끝에 닿을 듯 말듯한 상자를 앞쪽으로 조심스럽게 끌어당겨 끝부분을 잡았을 때, 갑자기 말포이가 발 받침을 찼다. 간신히 몸의 중심을 잡고 바닥에 앉아있는 말포이를 봤다. 말포이는 히죽히죽 웃으며 계속해서 찼다.

“좀 얌전히 있어. 공주님”

론의 말에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론이 서있는 발판을 있는 힘껏 찼다. 한 손이 체스상자를 잡느라 어떻게 뭘 잡아보기도 전에 바닥으로 떨어졌다. 몸을 돌려 남은 한 손으로 바닥을 집으려고 했지만 말포이의 배위로 그대로 무게를 실어 넘어졌다. 대신 팔꿈치가 큰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윽”

상자를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고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팔꿈치를 움켜쥐며 바닥에 누워있는 말포이를 봤다. 방금 디멘터라도 본 것 마냥 깜짝 놀란 얼굴에 커다란 눈을 하고 론을 보고 있었다. 갑자기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말했다.

“무…무거우니까 비켜, 이…이 쓸모 없이 덩치만 큰 저능아야!”

몸을 완전히 일으켜 앉으면서 말포이의 숨결이 볼을 살짝 스쳤다. 말포이는 마치 론이 더러운 것이라도 되는 냥 밀어 내고는 안락의자로 가서 앉았다.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려다, 아침에 난 혹이 손에 닿았는지 작은 신음소리를 뱉어내고는 의자쪽으로 더 깊숙이 앉으며 천장을 봤다.

비웃어주기 알맞은 상황이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아까 밀어뒀던 그 불편하고 싫은 답답한 느낌이 다시 배 안쪽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헛기침을 한번하고 바닥에 내려놓은 체스 상자를 테이블 위에 꺼내 올려 놓으며 말했다.

“머글 체스나, 마법사 체스나 똑같아, 대신 머글 체스 말은 직접 움직여야 돼.”

고개를 빙그르르 돌려 자기 어깨에 기대더니, 론을 지루하다는 듯이 봤다.

“그냥 시작하면 내가 당연히 이기게 될 테니까, 몇 수 물러줄게.”

론의 말에 코웃음 치며 말포이가 론의 반대쪽에 털썩 내려 앉았다. 흰말을 앞쪽으로 놓고 있던 체스 판을 돌려 흰 말이 말포이쪽으로 향하게 하고 기분 나쁘게 미소 지어 보이며 말했다.

“덤벼봐, 빨강”

졸개를 움직일 때까지만 해도, 말포이의 실력을 알 수 없어서 론은 아무 생각 없이 말을 움직였다. 하지만 하나 둘 말들이 체스 판 위를 떠나고, 곧 말포이가 괜찮은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다음 수를 읽을 수 없게끔 두는 방식은 항상 직접적으로 공격하는 론의 방식과는 많이 달랐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마침내 수를 읽어낸 론이 시계를 보며 외쳤다. 오후 3시가 지났다.

“체크메이트!”

“어? 잠깐! 말도 안돼.”

너무 오랫동안 남의 집에 머무는 것 같아서 체스판을 정리했다. 체스판을 정리하는 내내 말포이가, 뭔가 정당하지 못한 방법을 썼다고 계속해서 불평해 댔다. 발판을 밟고 조심스럽게 처음에 봤던 모습 그대로 올려두려고 했지만, 제대로 닿지 않아서 대충 올려 둘 수 밖에 없었다. 발판을 밟고 내려오면서 말포이에게 말했다.

“버로우에도 체스세트 있으니까, 이제 가자”

말포이는 끝까지 투덜대며 거실 바닥에 팽개쳐 뒀던 옷가지를 다시 걸쳐 입고는 현관문 쪽으로 향했다. 거실 안락 의자와 테이블 위를 한번 확인하고는 론 역시 현관문 쪽으로 걸어갔다. 바닥에 너부러져 있는 부츠에 따뜻해지는 주문을 조용히 외우고, 말포이에게 건넸다. 문을 여니, 찬 겨울 바람에 뱉어진 숨이 입김이 되었다. 문을 조용히 닫고 눈 위로 걸어갔다. 농장을 거의 다 빠져나올 때까지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말포이의 목소리가 바람소리와 함께 론의 귓가를 울렸다.

“진짜 우리밖에 없는 거야?”

말포이의 ‘우리’라는 말에 다시 불편해졌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머쓱해져서 손을 외투 주머니 안쪽 깊숙이 넣었다. 안쪽에 넣어둔 장갑을 매만지면서 생각했다. 계속 비슷한 종류의 질문들이 머리 속을 채웠지만 깊게 생각해 봐도 그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모자를 다시 푹 눌러쓰며 추위에 몸을 떨면서 버로우 쪽으로 걸었다. 그렇게 걷다가 갑자기 멈춰서 말포이에게 물었다.

“말포이, 너 너네 집에 가보고 싶지 않아?”

계속 시선을 아래로 떨구고 뒤따라 걷던 말포이가 론의 등에 살짝 부딪혔다. 짜증난 다는 표정을 하고는 아무 말 없이 비켜서서 다시 눈을 보며 버로우 쪽으로 걸어갔다. 머글 농장에 사는 사람들도 없었는데, 말포이 저택에 사람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왜 대답하지 않을까, 아침에 잠깐 나눴던 말포이 저택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생각해보니 학교에서 보던 말포이와 다르게 평범하고 소탈한 말포이가 낯설기도 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위즐리!”

말포이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얼굴에 눈덩이가 맞았다. ‘또 야?’

“젠장, 말포이! 지치지도 않냐!”

말포이가 있는 쪽으로 뛰어가다가 넘어졌다. 론이 넘어진 것을 보고 멈춰서 웃더니, 다가와서 주변에 있는 눈을 발로 밀어 론을 묻기 시작했다. 말포이의 발을 확 잡아당겼다. 말포이도 중심을 잃고 엉덩방아를 찧으며 바닥에 넘어졌다. 모자를 벗어 눈을 털어 내며 옆에 있던 눈을 집어 말포이 얼굴쪽으로 던졌다.

서로에게 눈덩이를 던지며 버로우 쪽으로 뛰어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벌써 해가 뉘엿뉘엿했다. 얼굴이 겨울바람에 마비되어 얼얼했다. 말포이가 던진 눈이 볼 근처에 맞아 입안으로 눈이 들어갔다. 눈을 뱉어 내며, 말포이가 있는 쪽을 봤다. 등을 진 채로 몸을 숙여 바닥에 있는 눈을 끌어 모아 뭉치고 있었다. 엉덩이 부분을 발로 차서 넘어뜨렸다.

“아악! 위즐리!!”

그대로 앞으로 넘어지며 얼굴이 눈 속에 파묻혔다. 말포이는 얼굴에 묻은 눈을 털어내며, 론이 서있는 쪽을 보며 웃었다. 들고 있던 눈덩이를 론의 머리 위쪽을 향해 던졌다. 눈살을 찌푸리며 방금 말포이가 눈을 던진 쪽을 보려고 고개를 드는 순간, 머리 위쪽에 나뭇가지에 걸려있던 눈이 후두두 쏟아졌다.




눈에 거의 묻힌 론을 보며 웃기 시작했다. 모처럼 말포이가 진심으로 웃는 것 같아서 피식 웃음이 났다. 그렇게 뒷걸음질 치며 웃던 말포이가 점점 앞뜰 앞에 패인 도랑쪽으로 향했다. ‘저러다 빠질 텐데…’ 라고 생각하면서 옷에 눈을 털어내는데, 물이 튀는 소리와 함께 말포이가 짧게 비명을 질렀다.

“앗!”

뒷걸음 치다 발이 도랑에 빠져 뒤로 풀썩 넘어졌다. 그렇게 깊은 도랑은 아니었지만, 물이 고여 있었는지 철벅거리는 소리에 말포이쪽으로 걸어갔다. 겉에만 살짝 얼어 있던 얼음이 말포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깨지면서 그 밑에 있는 물속으로 발이 빠진 것 같았다. 이미 물속에 빠진 발을 철벅거리며 뒤쪽으로 누워버렸다.

“말포이! 일어나!”

몸을 굽혀서 말포이의 팔을 앞으로 끌어 당겼다. 말포이는 몸을 뒤로 빼며 론을 도랑 안쪽으로 끌어내렸다. 한쪽 무릎을 도랑 끝에 어색하게 걸쳐놓고 약간 불편한 자세로 도랑에 빠지지 않기 위해 땅을 짚는 다는 것이 말포이의 어깨를 잡았다. 다시 일어 서기 위해 말포이쪽을 봤는데, 바닥에 축 늘어진 채로 어깨에 올라간 손을 보고 있었다.

흰 눈밭에 말포이의 머리카락이 좀더 노랗게 보이는 것 같았다. 언제나 그렇듯이 주근깨 한 점 없는 밀가루 반죽 같은 새하얀 얼굴에 뾰족한 턱에, 입술이 푸르게 변해서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몸의 중심을 잡고 말포이가 너부러져 있는 쪽으로 옮겨 서면서 누워있는 말포이를 앉혔다.

“얼른 일어나, 바지가 계속 젖잖아!”

이미 무릎까지 젖어 있는 발을 무겁게 들어 올렸다. 말포이가 일어나는걸 도왔다. 말포이가 일어서는 것을 확인하고 부엌에 있는 뒷문으로 들어가려고 문을 열었는데, 눈덩이가 날아와서 머리에 맞았다. ‘제발…’

“말포이!”

“아직 해도 안 졌는데 집안에 들어가서 뭐하게! 난 더 있을래!”

그냥 말포이 혼자 내버려 둘까 생각했지만, 아까 푸르게 변한 입술이 자꾸 생각났다. 머리를 흔들면 없어질까 싶어 한번 흔들어 봤지만, 소용 없었다. 한숨을 깊게 쉬고 눈을 뭉치고 있는 말포이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가, 손에 들고 있는 눈을 쳐냈다. 머리에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서 말포이의 머리에 푹 눌러 씌워 눈을 가리고는 그대로 어깨에 들쳐 멨다. 내내 낮은 목소리로 불평하던 말포이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말포이의 엉덩이 쪽을 툭툭 치면서 말했다.

“그래 착하지.”

론의 목소리에 그제야 정신이 좀 들었는지 소리지르며 몸부림 치기 시작했다. 론은 몸부림 치는 말포이를 메고서 집안으로 들어왔다. 거실로 들어서면서 벽난로를 확인했다. 불이 꺼져있었지만, 하루종일 햇볕이 좋아서 인지 집 안은 바깥보다 훨씬 따뜻했다. 벽난로 앞에 말포이를 내려놓고 부츠를 벗어 계단 쪽을 향해 던졌다. 장작을 벽난로 안쪽으로 집어 넣으며 불을 붙였다. 말포이는 계속 툴툴대며 젖은 부츠를 벗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손에 끼고 있던 장갑을 벗으며 젖은 부츠를 벗는걸 도왔다. 벗겨진 부츠를 다시 넣어놓기 위해 벽장 문을 열었다. 젖은 부츠를 거꾸로 세워서 원래 있던 자리에 대충 올려 놓고는 손에 잡히는 담요를 꺼내 들고 나왔다.

말포이는 해리의 외투를 벗어서 한쪽 옆으로 밀어뒀다. 가지고 온 담요를 말포이 쪽으로 던지며, 던져놓은 해리의 외투와 입고있는 외투를 벗어서 현관쪽에 다시 걸어 두었다. 거실로 들어서며 말포이에게 말했다.

“추우니까 젖은 바지는 얼른 벗어.”

눈살을 찌푸리며 론을 보더니 말포이의 뺨이 빨갛게 물들었다. 말포이의 반응에 론 역시 갑자기 뺨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밖에 오래 있어서 그런 거라고 계속 되뇌었지만, 그렇지 않은 게 분명했다.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말했다.

“나…난 형만 6명에 여동생도 있어! 괜찮으니까 얼른 벗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벌거벗은 말포이는 생각해본적도 없고, 앞으로도 상상할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말포이가 갈아입을 옷을 찾기 위해 방으로 올라갔다. 침대 위에 말포이의 진한 녹색 파자마 바지가 연분홍 가운 옆에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론의 침대 위에 덮어 두었던 담요와, 해리의 간이침대 위에 있는 담요까지 한아름 가슴에 안고 거실로 향했다. 말포이가 벗어놓은 바지가 한쪽으로 밀어져 있고 말포이는 벽장에서 꺼낸 담요에 온몸을 꽁꽁 둘러 싸고 있었다. 말포이에게 파자마 바지를 던져주고는 담요를 몇 개 더 덮어줬다. 그리고 부엌으로 가서 코코아 2잔을 타서 거실로 나왔다. 벽난로 앞에 담요더미만 있고 말포이가 없어서 가져온 컵을 테이블 위에 올려 놓으며 주변을 살폈다.

론이 부엌에서 코코아를 타는 동안 파자마를 입었는지 현관쪽에서 분홍색 슬리퍼를 다시 신고 론을 밀쳐내고는 벽난로 앞에 무릎을 가슴쪽으로 당겨 앉으며 담요를 어깨위로 끌어당겨 덮었다. 테이블에 올려뒀던 코코아를 말포이에게 건네며 론도 말포이 옆에 앉았다. 말포이의 어깨와 론의 어깨가 닿았다.

코코아를 마시며 장작이 타는걸 구경했다. 반쯤 정도 탓을 때 몸을 앞쪽으로 움직여 새 장작을 벽난로 안쪽으로 던졌다. 다시 원래 앉아있던 자세로 앉았다. 말포이의 다리가 론의 무릎에 닿았다.

코코아가 비워지고, 장작이 타면서 내는 불빛이 컵을 채웠다. 살짝 고개를 들어 시계를 보니 5시쯤 된 것 같았다. 창 밖으로 하늘 끝이 보라색으로 물든 것이 보였다. 한숨을 쉬며 다시 고개를 벽난로 쪽으로 틀었다. 론의 한숨에 무릎에 턱을 괴고 있던 말포이가 고개를 들어 론쪽을 보더니, 바짝 다가와 앉으며 두르고 있던 담요 한쪽을 론의 어깨위로 둘렀다. 말포이의 머리가 론의 어깨에 닿았다.

이 상황이 굉장히 어색하고 불편해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말포이가 닿은 부분이 따뜻했다. 낮부터 쌓였던 ‘우리끼리 남게 되면 어쩌지?’ 하는 질문들이 더 이상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조차 기억 나지 않았다. 그냥 지금 이 순간이, 그 순간이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졌다. 고개를 살짝 틀어서 말포이의 머리가 기대진 어깨를 봤다. 말포이는 눈을 감고 있었다. 천천히 앞머리를 들춰 살짝 튀어나온 혹을 봤다. 살짝 코웃음 치자 말포이의 눈이 떠졌다.

항상 텅 비어있다고 생각했던 눈동자 안에 그 동안은 본적 없었던, 뭔가가 있는 것 같았다. 시선 눈동자에서 코끝으로 코끝에서 입술로…, 파랗게 변해서 떨리던 입술은 은은한 장작불에 짙은 오렌지 빛이었다. 론의 손끝이 말포이의 입술에 닿았다. 말포이의 숨소리가 크게 들렸다. 심장 뛰는 소리가 머리를 울렸다. 반쯤 감긴 눈으로 론을 올려다보던 말포이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정말 조금만 더 앞으로 움직이면 입술이 닿을 것만 같았다.




누군가가 거칠게 론의 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으…음…”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올려 반쯤 눈을 뜨고 눈 앞에서 밝게 웃고 있는 해리를 봤다.

“메리 크리스마스, 론!”

눈살을 찌푸리며 침대 위를 더듬었다. 그러다 침대 끝부분에 팔꿈치를 맞았다. 낮은 신음소리가 목구멍을 타고 나왔다. 팔꿈치를 보려고 등쪽으로 기대 누우며 팔꿈치를 봤다. 멍이 들어 있었다. 갑자기 체스박스를 내리려다 말포이 위로 떨어진 게 생각났다. 벌떡 일어나 앉으며 주변을 살펴봤다. 론을 이상하게 쳐다보고 있던 해리가 입을 열었다.

“론? 괜찮아?”

잠깐 멍하게 창문 밖을 쳐다보고 있다가 크게 하품을 한번 했다. 해리는 론의 침대 위로 걸터앉으며 론의 이름을 다시 한번 불렀다. 론은 기지개를 펴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침대에 걸려있던 가운을 입고, 해리에게 한번 웃어보이고는 아래층 거실을 향해 뛰어 내려갔다.

말포이와 함께했던 어제와 다 똑같은데, 말포이만 없었다. 무심결에 벽난로 쪽으로 시선을 옮기다가, 잠에서 깨기 전 말포이의 얼굴이 생각났다.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리고,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연휴가 끝나고 호그와츠로 돌아가기 위해 학생들이 하나 둘 킹스크로스역으로 모여들었다. 크리스마스를 보낸 이야기 이런 저런 이야기에 역 안이 시끄러웠다. 론은 커다란 트렁크를 기차에 옮겨 싣고는 가족과 인사를 하려는지 다시 기차에서 내렸다. 그때 말포이가 론 옆을 스쳐 지나갔다. 말포이를 따라오던 사람의 짐이 론의 팔꿈치와 살짝 부딪혔다. 짧은 신음 소리와 함께 론은 부딪힌 팔꿈치를 양손으로 감쌌다. 론의 소리에 말포이는 가던 길을 멈추고 론을 향해 돌아섰다. 론을 향해 돌아서는데, 살짝 부는 바람에 살짝 흐트러진 앞머리 사이로 붉게 부푼 혹이 보였다. 눈을 커다랗게 뜨고 서로를 아무 말 없이 쳐다보고 서있다가 말포이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론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

Passacaglia

미완입니다. 어디까지 썼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쓰다 남은것도 어디있는지 찾을 수가 없네요... 뭘 쓰고 싶었던걸까요?


커다란 가방을 짊어진 소년의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이제 막 세탁을 마친듯한 빳빳한 셔츠에 작은 소년에게 어울리지 않는 커프가 어둠속에서 반짝였다. 문옆에 들고있던 가방을 내려놓은 소년은 현관옆에 작은 방안으로 들어갔다. 소년이 조심스럽게 내려온 계단 위에 주홍빛을 내뿜는 촛대를 들은 잠옷차림의 부인이 천천히 인기척이 있는 현관쪽으로 걸어갔다.

코트가 걸려있는 곳까지 손이 닿지 않는 소년은 자신의 코트를 아래쪽으로 당겨내리고 있었다. 소년을 발견한 부인은 촛대를 현관옆 테이블에 올려놓고 까치발을 들고있는 소년의 뒤로 바짝다가가 높이 걸려있는 코트를 내려주었다. 부인을 발견한 소년은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서다 부인과 부딪쳤다. 깜짝놀라 숨을 들이킨 소년은 놀란눈으로 자신에게 코트를 건내는 부인을 바라봤다. 그렇게 멈춰서 서로를 바라보던 두사람중 부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드레이코”

“어머니”

떨리는 목소리로 어린아이에게 어울리지 않는 공손함으로 부인을 마주한 소년은 희미한 미소를 띈 부인의 표정에 마음을 놓았는지 부인이 걸쳐주는 코트를 몸을 돌려 입었다. 부인은 몸을 낮추어 소년 머리끝에 입맞추며 말했다.

“아직도 몸이 다 낮지 않았으니 너무 무리하지 말도록 해” 그리고는 천천히 드레이코를 품에 안았다. 잔뜩 긴장되어 있던 소년의 어깨가 풀어지더니 작은 손이 부인을 마주 안았다. 얼굴을 부인의 목덜미에 묻으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였다. 부인은 드레이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더욱 꼬옥 아들을 안아 주었다.

“잘 할 수 있을거야. 우리 아들”

힘겹게 소년을 놓은 소년의 어머니는 현관문옆에 세워둔 가방을 들으며 문을 열었다. 소년이 가방을 받아 들은것을 확인한 부인은 소년의 두 뺨에 손을 가져갔다. 차가운 아침공기에 드레이코의 뺨이 따뜻했다. 빨갛게 상기된 볼에 입을 맞춘 부인은 자욱한 안개에 잘 보이지 않는 거리로 들어선 소년이 시야에서 사라질때까지 그렇게 보고 있었다. 커다란 가방에 작은 몸집의 소년의 발걸음이 불안해 보였다.

다시 방으로 돌아온 부인은 깨어있는 루시우스를 발견하고 놀랐다.

“나시샤, 어딜 다녀온거에요?”

천천히 촛대를 나이트테이블위에 올려놓으며 다시 침대안으로 들어가며 나시샤가 말했다.

“당신이 일어나 있는지 몰랐어요.”

루시우스의 품으로 들어오는 나시샤를 가슴으로 끌어 안으며 루시우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드레이코는..”

나시샤의 시선을 피하며 말을 잊지 못하는 루시우스의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나시샤가 뺨에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말포이가 남자들이란..”

호그와츠 음악원은 영국에서 클래식 음악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고싶어하는 학교중에 하나였다 초기에는 주니어와 시니어아카데미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최근에 더 어린 음악가들을 위해 프라이머리 아카데미가 새롭게 구성되었고 음악원에 입학하기위해 영국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오디션은 매년 지역별로 열렸고 세번의 오디션을 거쳐 30에서 40명정도의 아이들이 선발되어 음악을 공부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시험결과는 일주일 후에 실기 오디션 결과 발표가 있고 이후에 필기시험과 카디프 본교에서 진행하는 면접을 마치면 선발이 마감된다.

아직 새벽이었지만 학교안에는 이미 오디션을 보기 위한 지원자들이 모여서 연습을 하거나 긴장을 풀고 있었다. 추운 날씨를 뚫고 온 탓에 드레이코의 두 뺨이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시험장 쪽으로 걸음을 옮기다 같은 학교를 다니던 몇몇 사람에게 간단히 인사를 나누었다. 모두들 부모님의 안부를 물었지만, 드레이코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기다릴 수 있는 자리를 찾았다. 음을 맞추는 소리가 드레이코의 머리속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시험장 한쪽 구석에 아무도 없는 곳에 자리를 잡고는 가방을 조심스럽게 내려 놓고 입고 있던 코트와 모자를 벗었다. 연회장 안의 공기가 답답했는지 마른 기침을 뱉어낸 드레이코 옆으로 한 남자와 소년이 다가왔다. 남자는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모두 검은색으로 차려입은 그의 모습은 더욱더 그를 창백해 보이도록 했고, 작고 동그란 안경을 쓴 소년은 신이 났는지 남자의 손을 잡아 당기며 즐거움을 감추지 못했다.

“미스터 블랙”

드레이코는 남자쪽으로 몸을 살짝굽히며 인사했다.

“오 미스터 말포이 내 조카인 포터군이네.”

블랙의 말에 다시 드레이코의 시선이 동그란 안경을 쓴 소년에게로 갔다.

“미스터 포터 만나서 반갑습니다.”

조심스럽게 내밀어진 드레이코의 손을 멀뚱이 쳐다보던 포터는 크게 미소지으며 내밀어진 손을 두손으로 잡고 드레이코를 끌어당기며 말했다.

“안녕! 난 해리 포터야 만나서 반가워! 난 10살인데 넌 몇살이야?”

드레이코의 손을 잡기위에 놓아진 블랙의 손, 블랙은 미안한듯 드레이코에게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자리를 피했다. 도망가듯 피하는 블랙을 이상한눈으로 쳐다보던 드레이코는 자신의 손을 다시 자신쪽으로 끌어당기며 말했다.

“너무 신이나! 넌 뭘 할거야? 난 이 학교에 너무 가고싶어 그럼 지루하고 재미없는 저택을 떠나서 더 많은 친구들도 사귀고 놀 수 있잖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떠들어대는 포터를 말없이 보고 있던 드레이코는 오디션 시간표를 핑계로 소년에게서 벗어나 다시 첼로를 세워둔 코너로 돌아왔다.

“저게 그 왕족의 사생아구나”

“예절이라는걸 안가르쳤나봐 정말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대체 블랙은 무슨 생각으로 저런 망아지를 양자로 들인걸까?”

주변에서 들려오는 포터의 가십에 머리를 한번 흔들고는 오디션을 위해 2층 대기실로 몸을 옮겼다. 5번 대기실 안쪽에서 머리를 높이 올린 부인이 나와 말포이의 이름을 외쳤다.

“드레이코 말포이? 요한 크리스토프 바흐 첼로협주곡 다단조?” 부인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간 드레이코는 첼로를 조율하고 그동안 열심히 연습한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빨간색 머리의 품채가 좋은 부인이 같은 머리색에 얼굴 온통 주근깨를 담은 소년의 손을 잡고 다른 한손에는 작은 바이올린 가방을 들고 가방안으로 들어섰다. 분주하게 오디션 시간표를 확인한 부인은 주변을 살펴보고 있던 아이의 이끌어 시험장 앞에 섰다. 시험관의 목소리를 들은 부인은 소년에게 바이올린을 들려주며 작은어깨에 손을 올리고 눈을 쳐다보며 말했다.

“로날드 위즐리? 탐린 글래스고 릴?”

“로날드 위즐리 넌 잘 할 수 있어. 우리아들”

소년을 품에 안으며 볼에 키스한 부인은 론이 시험장 안으로 들어가고 문이 닫히고 난 이후에도 한참동안 문쪽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바이올린을 꺼내 잡은 소년은 조율도 하지 않은채로 커다란 눈으로 시험관들을 멀뚱히 바라보다가 갑자기 연주를 시작했다. 시험을 마치고 나오는 론을 꼭 부여잡은 빨간머리 부인은 소년의 머리끝에 계속해서 키스하며 말했다.

“잘했어. 내아들.”

이것을 보고 있던 옆에 서잇는 쌍둥이 소년이 론 양쪽옆에서 함께 소년을 안으며 말했다.

“로니킨스도 같이 학교다니면 재밋겠다!”

“재밋겠다! 신난다!”

연회장을 빠져나오는 시험을 마친 사람들의 발걸음은 제각각이었다. 어떤 사람은 가볍고 홀가분했고 어떤 사람은 무겁고 후회가득했다. 시험이 끝나자 긴장이 풀렸는지 드레이코는 길가 근처에 있는 벤치에 살짝 걸터 앉았다. 흘러내린 머리를 쓸어 올리며 가져간 이마는 스스로가 느끼기에도 평소와 다르게 뜨거웠다. 춥다고 느껴져야할 거리의 차가운 겨울 바람이 시원하다고 느껴진 드레이코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벤치에 누워있는 드레이코를 발견한 론은 새하얀 속눈썹을 손으로 만져봤다. 마치 성에가 잔뜩 내려 앉은 나뭇가지같은 속눈썹은 녹지않고 그대로 있었다. 신기했는지 흘러내린 머리쪽으로 손을가져가던 론을 발견한 쌍둥이가 벤치쪽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프레드 론이 뭘 발견했어!”

“조지! 저건 첼로가방 같아!”

론이 조심스럽게 쓰다듬고있는 소년을 발견한 쌍둥이는 론을 이상한 눈으로 보며 말했다.

“론 뭐하는거야?”

“녹을것 같은 속눈썹이랑 머리카락을 가졌어! 근데 안녹아!”

론의 말을 들은 쌍둥이가 드레이코에게 손을 가져가려는 찰나 빨간머리 부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프레드! 조지! 무슨일이야?”

부인을 발견한 쌍둥이와 론은 여태까지 본인들이 생각하고 본것들을 두서없이 막 말하기 시작했다. 부인은 표정을 찡그리며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한꺼번에 세사람이 서로 다른것을 말하는것을 알아듣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는 벤치에 누워있는 소년을 발견했다.

“어머! 아서! 여기 아이가 아픈것 같아요.”

함께 걸어오던 빨간머리의 남자가 고개를 숙여 소년의 작은몸을 흔들어 깨우며 불렀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난처했는지 근처를 두리번 거리던 남자가 말했다.

“몰리, 아무래도 다시 시험장으로 가서 누구인지 물어봐야 할것 같아요. 아이의 부모가 아이를 찾고 있을 수도 있잖아요.”

아서의 말에 몰리에게 말을하고 있던 세명의 소년이 한꺼번에 다같이 시험장으로 몰리를 잡아 당기며 말했다.

“얼른 가서 이 아이 엄마를 찾아줘요!”

“엄마가 걱정하고 있을꺼에요!”

“아빠도 걱정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조심스럽게 아이를 안아 올린 남자는 옆에 놓여있는 커다란 가방을 어깨에 짊어지고 바쁘게 움직이는 부인과 아이들을 뒤따라 다시 연회장 안으로 들어섰다. 관계자에게 물어봤지만 누군지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난처해진 두 사람은 그렇게 연회장을 돌아다녔다. 다행히 드레이코의 시험관이었던 학교 관계자가 아이의 이름과 주소를 몰리와 아서에게 알려주었다. 아침에 타고 왔던 마차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몰리의 품에 안긴 금발머리의 소년과 커다란 첼로가방을 든 남자뒤를 졸졸 따르는 아이들이 곧 마차가 있는곳에 도착했다. 들고 있던 가방을 마차뒤에 조심스럽게 싣고, 몰리와 아이들이 마차안에 탈 수 있게 도왔다. 쌍둥이는 끝까지 아서와함께 말을 몰겠다고 떼를 썼다. 마차안에 올라탄 론은 몰리의 무릎위에 머리를 놓고 너부러진 드레이코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몰리가 마차 앞쪽에 탄 쌍둥이에게 주의를 주는동안 론은 다시한번 거의 하얗게 보이는 머리카락으로 손을 가져갔다. 금방이라도 녹을것 같은 백금색 머리카락은 부드럽고 조금 젖어있었다. 머리를 쓰다듬는 모습을 발견한 몰리는 론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괜찮아, 그냥 감기일거야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론”

“엄마, 얘는 왜 머리카락이 하얘요?”

론의 질문에 웃음이난 몰리는 웃으며 대답했다.

“아직 아기라서 그래 아마 자라면 좀더 짙은 머리색이 될꺼야”

10살이라고 하기엔 정말 작은 몸이긴 했다. 론이나 쌍둥이에 비해 훨씬 더 말라 보였다 입은 옷차림으로 봐서는 가난한집 아이는 아닌것 같았는데 얇고 연약한 모습에 몰리는 안쓰럽다는 듯이 식은땀으로 젖은 소년의 머리카락을 이마에서 치우며 뺨을 쓰다듬었다.

학교직원이 알려준 주소로 말을 몰던 아서는 주소를 몇번이나 확인해가며 커다란 저택쪽으로 말을 몰았다. 그 주변에 있는 다른 플랫이나 로하우스와는 다른 커다란 저택이 보였다. 뒤쪽에 있는 공원덕분에 그 모습은 더 웅장해보였다. 대문을 지나 현관까지 마차를 몰아간 아서는 몰리가 안고있던 소년을 받아 내리고는 뒤쪽에 실었던 첼로가방을 꺼내들었다. 아이들에게 마차 안에서 꼼짝하지 말고 기다리라고 말한 몰리는 현관쪽으로 올라가서 문을 두드렸다. 곧 깔끔한차림의 남자가 현관문을 열었다.

“네? 무슨 일이시죠?”

몰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안녕하세요, 저는 몰리위즐리 이쪽은 제 남편 아서 위즐리에요. 아드님이 아픈거 같아서 저희아 이렇게...”

몰리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남자는 천천히 뒤로 물러서며 문을 열었다.

“저는 미스터 말포이가 아닙니다. 잠시 기다리시면 제가 곧 주인님을 불러오도록 하겠습니다.”

남자의 말에 놀란 몰리의 볼이 빨갛게 물들었다. 두 사람은 곧 영접실로 안내받았다. 아서의 품에서 뒤척이던 소년이 작은 신음소리를 냈다. 계단을 내려오던 금발머리의 부인의 발걸음이 갑자기 바빠졌다. 영접실로 들어선 나시샤는 아서의 품에 안겨있는 드레이코를 발견하고는 놀라 다가가며 아이를 품에 안았다.

“오! 드레이코!”

나시샤의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놀란 아서는 드레이코를 나시샤에게 건내주고는 첼로가방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곧 영접실 안으로 루시우스가 들어왔다.

“미스터 위즐리, 미스 위즐리.”

평소에 별로 좋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던 아서와 루시우스는 서로의 모습에 잠시 당황한듯 멈춰섰다. 몰리는 천천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미스터 말포이 아드님께서 아프신것 같아서 저희가 오는길에 태워왔어요.”

옆에 서있던 아서가 거들었다.

“저는 당연히 미스터 말포이도 아드님과 함께 연회장에 계실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아드님 혼자 오셨더라구요.”

아서의 말에 나시샤가 날카롭게 루시우스를 보았다. 그리고는 드레이코를 침실로 옮기기위해 영접실을 나서며 말했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에요! 미스터 위즐리. 드레이코가 만약에 합격하게 되면 루시우스는 얼마나 후회를 할까요?”

나시샤의 말에 헛기침을 한 루시우스는 영접실 한켠에 있는 책상 서랍에서 수표수첩을 꺼내 한장 급하게 적어 아서에게 내밀며 말했다.

“얼마 되지 않지만 제 성의입니다.”

루시우스의 행동에 놀란 몰리는 얼굴이 빨갛게 닳아 올랐다. 몰리는 눈살을 찌푸리며 아서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저희는 이런걸 바라고 아이를 데려온게 아닙니다. 감사하다는 성의를 알았으니 저희는 이만.”

꾸물거리는 아서의 팔꿈치를 휙 잡아 당기며 단숨에 말포이 저택을 빠져나온 몰리는 마차에 올라타며 말했다.

“어쩜 저렇게 행동 할 수 있죠 그냥 고맙다고 하면 되는 일을 마치 우리가 뭔가 바라고 아이를 데려온것처럼 어쩜 저렇게 무례해요? 당신이 말한 그 말포이가 이 말포이로군요!”

몰리의 말에 고개를 흔들며 아서는 마차를 집으로 몰았다.

드레이코를 침대위에 누이면서 나시샤는 드레이코의 살짝 젖은 앞머리를 치우며 이마에 키스했다. 아이의 이마에 닿은 입술이 뜨겁다고 느껴질 정도로 열이 있었다. 바쁘게 걸음을 옮겨 집사에게 의사를 부를것을 당부하고는 영접실로 갔다. 손에 수표책을 들고 소파위에 걸터 앉아 있는 루시우스를 발견한 나시샤는 팔짱을 끼고는 그를 아래로 내려보며 말했다.

“고맙다는 말이었으면 충분했을거에요! 당신은 왜 필요 없는 적을 만드는거에요?”

나시샤의 말에 한숨을 몰아쉬는 루시우스는 수표책을 옆 테이블에 아무렇게나 내려놓고는 양손을 얼굴로 가져갔다.

“아직 몸이 다 낮지도 않았다구요, 대체 스스로한테 아들한테 왜이렇게 잔인하게 굴어요! 적어도 저라도 함께 갔으면 이런일은 없잖아요!”

힘없이 자리에서 일어난 루시우스는 나시샤에게 팔을 두르며 끌어 안았다. 고개를 돌리고 있던 나시샤는 루시우스의 행동에 한숨을 쉬며 마주 안았다.

“적어도 하고싶은걸 하게 해줘요. 당신은 아버님처럼 살지 않아도 되잖아요.”

일주일은 생각한것보다 훨씬 빨리 흘러갔다. 북클럽과 사교모임으로 바쁜 나시샤와 회사일로 자리를 비운 루시우스를 피해 드레이코는 집사에게 잠시 산책을 나갔다 오겠다는 말만 남긴채 집 밖을 나섰다. 전차를 이용할 수도 있었지만, 드레이코는 시험결과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그날 드레이코가 기억하는 것은 배로 무거웠던 첼로의 무게와 차가운 바람, 언뜻 스치듯 보았던 붉은머리, 그리고 마차소리.

시계탑 광장의 가게들과 노점은 잔뜩 흐린 날씨에 아랑곳 하지않고 저마다 큰소리로 호객행위를하며 광장을 가득 채운다. 평소답지 않게 사람들의 행동이나 모습, 물건들에 관심을 보이던 드레이코는 한숨을 깊게 내어쉬고는 시험을 봤던 왕립음악원 연회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연회장안은 오고 가는 사람들로 항상 사람이 많았다. 악기를 든 사람부터 극장에서나 볼법한 유명한 가수들 외국에서 온듯 보이는 화려한 귀족부터 유행하는 옷을 멋지게 차려입은 상인, 공연을 하는 사람과 공연을 볼 사람들 그리고 음악을 공부하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1층 로비 안으로 들어서자 시험 결과를 보기위해 모여든 아이들과 아이들의 부모님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로비안을 메우고 있었다. 결과 발표는 대극장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설명을 들은 드레이코는 대극장쪽으로 향했다. 스테이지위에 커튼이 양 옆으로 드리워진 단상위에 그랜드 피아노가 눈에 보였다. 그 바로 앞에 긴 테이블에 직원들이 앉아서 서류를 전달하고 있었다. 결과를 확인하고 입학허가를 받은 아이들은 함께 온 부모님과 함께 탄성을 지르기도, 눈물을 삼키지못하고 큰소리로 울거나 흐느끼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결과르 위해 테이블쪽으로 다가셔러는데 누군가가 드레이코의 이름을 큰소리로 불렀다. 대극장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말포이의 트레이드마크인 바랜듯한 금발머리와 창백하고 뾰족하 얼굴의 드레이코 쪽으로 쏟아졌다.

“드레이코! 드레이코 말포이!”

목소리가 들리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시험을 본 날 미스터 블랙과 함꼐 있던 안경쓴 소년이 드레이코를 향해 크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계속해서 불러지는 이름에 불편해진 드레이코는 빠른걸음으로 소년이 서있는 쪽으로 향했다.

“해리포터”

“드레이코!”

해리의 목소리에 론은 자신도 모르게 비집고 나온 웃음이 목구멍에 걸려 마치 코웃음치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에 금발머리소년은 론을 위아래로 훝어보며 차갑게 쏘아붙였다.

“너에게 내 이름이 우습니?”

해리가 론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론 위즐리! 바이올린을 연주한데! 게다가 형들이 다 학교에 다닌다고했어!”

팔짱을 끼고 아래위로 찬찬히 론을 훑어보던 드레이코는 론을 노려보다가 입꼬리를 살짝 들어 올리며 말했다.

“위즐리?”

드레이코의 거들먹이는 목소리에 마음이 상한 론은 흠칫하며 뒤로 물러섰다. 한참을 서로 바라보고 있던 론과 드레이코사이에서 해리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대기 시작했다. 론과 해리는 시험에 합격해서 필기시험을 보러 카디프로 가게 됬다고 말했다. 론의 형이 호그와트에서 일하고 있어서 론은 론의 아버지와함께 가서 호그와트에서 몇일 지내게 됬다고 말을하며 부러움을 감추지 않았다. 계속해서 두사람을 노려보던 드레이코는 갑자기 결과에 대해 알고싶지 않아졌다. 앞에 서있는 이 두사람이 붙었는데 만약 자신이 가지 못하게 되면 어떡해야할지 걱정이 되었다. 이야기를 듣는둥 마는둥하다가 갑자기 획 돌아서서 연회장을 빠져나갔다. 연회장을 나가는 드레이코의 뒷모습을 보던 론이 말했다.

“내가 뭔가 잘못한걸까? 이름때문에 웃은거 아닌데...”

“아닐거야, 사람들이 말포이는 원래 다 무례하다고했어.”

해리의 말에 한참동안 말이 없던 론이 입을 뻐끔거리다 결국 소리를 냈다.

“무례하다는게 무슨뜻인데?”

“나도 몰라”

해맑게 웃으며 미스터블랙이 있는쪽으로 뛰어가는 해리를 보던 론은 함께온 가족들이 이제야 생각이 났는지 두리번거리며 연회장을 맴돌았다. 몰리를 발견한 론은 몰리의 치마자락으로 뛰어들며 말했다.

“엄마!”

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몰리는 함께 대화를 나누던 머리를 높게 올린 부인에게 미안함을 표시하며 론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론 필기시험이 이제 얼마 안남았으니까 열심히 공부해야해.”

고개를 끄덕이며 론은 음악원을 막 나가고있는 드레이코에게 시선이 갔다. 드레이코의 부모님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의아하게 생각한 론은 몰리에게 금발소년쪽으로 손가락을 가리키며 말했다.

“엄마 쟤는 왜 혼자왔어요?”

드레이코를 발견한 몰리는 재빠르게 마차쪽으로 론을 끌어 당기며 가는 길을 재촉했다. 계속해서 드레이코에 대해 묻는 론에게 몰리는 어쩔수 없다는 듯이 나지막히 말했다.

“부모님 심부름을 온걸거야. 나중에 학교에서 만나게되면 물어보면 어떨까?”

몰리의 대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신나게 고개를 끄덕인 론은 몰리가탄 마부석 옆에 찰싹 달라붙어 앉으며 오늘 만난 해리와 미스터블랙에 대해 떠들어댔다. 드렐이코가 가는 쪽을 한번 힐끔 바라본 몰리는 한숨을 내쉬며 갈길을 재촉했다.